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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風雲大陸

 

 

 

! !

수십 명이 뒹굴 수 있는 거대한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금포(錦袍)노인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두번 쳤다.

스스스슷!

그러자 정갈한 백의를 입은 미소년들이 들어와 즉시 침상주위에 늘어섰다.

그리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소년의 손짓에 따라서 침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화정지(花精池)로 가자.]

금포노인은 나직하게 말했다.

금포노인과 삼십 명 정도 되는 여인들을 태운 둥근 침상은 밖으로 운반되어 나갔다.

오십 명이나 되는 소년들이 침상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둥근지붕의 건물을 빠져나가 마천루처럼 솟아있는 전각들 사이로 지나갔다.

움직이던 자들은 즉시 땅바닥에 엎드리며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금포노인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전각들의 뒤에 푸른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넓게 뚫어진 길은 시원스러워 보였고 나무들 사이사이에 공들여 손을 본 흔적이 역력한 꽃들이 짙은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벌과 나비는 미녀들의 몸위로도 날아다녔으며, 새소리는 인간이 세상을 잊게하는 힘이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었다.

연꽃과 수국이 만발하고 있었으며 물위로 자라있는 나무들에도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있었고 연못의 주위도 수백가지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금포노인은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말했다.

[환요(幻妖)는 옷을 벗고 그곳에 누워라.]

사라락! 사락!

환요는 허리 숙여 절하고는 일어서 자신의 타는 듯이 붉은 홍의(紅衣)를 벗어 옆에 놓았다.

그녀의 머리위로 파란 하늘이 눈부신데 그녀는 우유빛 나신으로 금포노인 앞에 섰다.

얼굴에는 농염한 미소가 뜨거움을 담고 금포노인을 향해 피워지고 있었다.

잘 구워진 도자기의 흐름선 보다 더욱 유연해보이는 허리는 위로 터질듯 풍만한 유방을 받치고 있었고 아래로는 어떤 충격이든 다 무마시킬 수 있을 정도로 탄력있는 둔부를 요사스럽게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가 뒤로 누웠다.

모로 세워진 무릎은 오무려져 있었으나 은밀한 비궁은 오히려 금포노인을 향해 뚜렷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금포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상하다가 눈을 사르르 감으며 말했다.

[초훼(草卉)도 옷을 벗어라.]

노인의 뒷쪽에서 한 여인이 일어섰다.

나이는 십팔구세 정도, 아직 이십세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홍색 나삼으로 감싸고 있는 그녀의 나신은 터질듯 풍만했으며 허무한 듯 보이는 그녀의 퇴폐적인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에 족했다.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둔부에까지 치렁치렁늘어져 있는데...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몇 번 흔들었다.

사라라락!

그러자 홍색 나삼이 오무라진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가슴에 잠시 걸렸다.

초훼는 다시 몸을 꼬듯이 흔들었고 나삼은 그녀의 둔부를 타고 발등으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나삼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다리는 옥으로 깎아서 만든듯 미려하고도 가늘었으며 희디흰 허벅지는 둔부로 이어지면서 그 사이에 검은 수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초훼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치골의 앞쪽을 살짝 눌려서 밀어내렸다.

부드러운 수풀이 그녀의 손을 따라 풀잎처럼 누웠다.

그때 노인의 권태로운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환요의 몸위로 올라가라.]

초훼는 누워있는 환요의 곁으로 걸어갔다. 둔부가 살랑살랑 꽃대처럼 흔들렸다.

환요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면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오십 명의 미소년들에게 들리워진 침상은 이제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소년들은 평지를 걷듯이 길이 끝난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위로 물이 완전히 잠겼을 때야 침상을 잡고 헤엄치며 연못의 가운데로 가고 있었다.

침상은 배처럼 물위에서 움직였다.

 

초훼는 환요의 배위에 걸터앉았다.

두 여인의 음모가 마주치면서 작은 소음을 냈다.

금포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고!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란 말이야.]

그말을 듣는 순간 초훼는 환요의 허벅지를 타고 자신의 음부로 밀어내리면서 자벌레 처럼 몸을 뻗었다.

그녀의 두손이 환요의 복숭아같은 유방을 밀어올렸다.

붉은 혓바닥은 환요의 배꼽을 핥으며 그녀의 배꼽은 환요의 은밀한 곳에 있는 민감한 부분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 ]

환요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초훼는 손과 입으로 그녀의 전신을 애무했다.

그녀의 혀는 환요를 타액으로 목욕시켰으며 그녀의 손가락은 환요의 모든 성감대를 빠뜨리지 않고 자극시켰다.

초훼는 마치 남자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환요의 흥분을 참지 못해 발하는 신음소린 높아만 갔다.

침상위의 다른 여인들이 몸을 꼬며 손을 그녀들의 소중한 곳으로 가져갔고 허벅지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인도 있었다.

짝짝!

문득 노인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침상이 멈추어지고 헤엄치던 미소년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금포노인이 우두머리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라오라!]

퓨웃!

소년은 물속에서 높이 뛰어올라 허공에서 옷의 물을 털어버리며 침상위에 내려섰다.

그는 마치 나무로 깍아서 만든 사람인듯 표정이 없었다.

노인이 말했다.

[환요를 강간해라. 단 무공을 사용하지 말고! 성공한다면 네게 환요를 주겠다.]

소년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보이고는 즉시 옷을 벗었다.

침상위의 여인들에게 그러한 일은 자주 있어온 일인 듯 그녀들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초훼는 한쪽으로 물러섰고 당사자인 환요는 더욱 요염하게 웃어보였을 뿐이다.

초훼의 애무로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잘익은 홍시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곳을 만지고 있었다.

휘익!

소년은 병아리를 덮치는 매처럼 환요의 몸위로 날아들었다.

그의 남성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것은 하나의 흉기가 되어 그녀를 찔러가고 있었다.

환요는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손으로 자신의 가장 예민한 곳을 만졌다.

[!]

소년이 자신의 위에 올라오자 환요는 거친 숨소리를 냈다.

소년이 그녀의 비부를 겨냥하고 급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환요는 아주 가볍게 둔부를 살짝 움직이며 소년의 남성을 피해버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환요의 은밀한 곳에서 흘러나온 촉촉한 음액이 소년의 남성에 묻었을 정도였다.

[헉헉헉!]

소년은 연이어 허리를 흔들었으나 모두 허공이거나 살짝 건들리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미친듯이 그는 허리를 흔들었고, 또한 환요가 피하지 못하도록 둔부를 꽉 움켜쥐기도 했다.

그러나 환요의 절묘한 방어 기술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아아아아... 아아!]

그러나 환요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참기 힘든 욕정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으헝!]

갑자기 소년이 짐승처럼 소리치며 환요의 두 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그제서야 다리를 밀어서 환요가 둔부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

다른 여인들의 입에서 짧은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환요와 소년은 단순한 정사가 아닌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소년에게 환요가 강간당하게 된다면 그녀는 이제 이 화려한 침상을 떠나서 수 많은 남자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금포노인을 모시는 몸에서 하루아침에의 신분하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니...

위기의 순간, 환요는 갑자기 두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힘껏 밀어버렸다.

그것은 둔부를 움직인 것이나 다름 없는 효과를 냈다.

[!]

다른 여인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때였다.

[그만, 그만!]

금포노인이 소리쳤다.

소년은 기계처럼 우뚝 일어섰다.

[내려가라.]

소년은 자신의 옷가지를 집어들고 침상을 내려갔다.

순간 노인의 좌수가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도저히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스스스!

침상을 내려가던 소년의 몸이 먼지로 분해되어 물속으로 스며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떤 기척도 없었으며 피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년은 흙으로 변해 물에 녹아버린 것이었다.

진정 이처럼 마법같은 무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명을 완수하지 못한 자에겐 죽음만이 있을 뿐이지.]

금포노인의 말이었다. 소년은 환요를 강간하라는 명을 완수하지 못한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금포노인은 미사를 소리쳐 불렀다.

[미사! 내 옷을 벗겨라!]

은빛 나삼을 입은 미사가 노인의 옷을 벗겼고 노인은 침상위에서 우뚝 일어섰다.

노인의 키는 누워있을 땐 몰랐지만 육척이 넘어보이는 거한이었다.

그는 여전히 누워있는 환요에게로 걸어가서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흐흐흐흐... 삼마경을 얻은 그 세 놈은 방금 전의 그놈과 똑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지지 못할 것을... 노부를 위해 달구어 놓기만 할 뿐...]

금포노인은 환요의 두 발을 어깨에 걸치며 그의 남성위에 그녀를 얹어 놓았다.

[!]

환요가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그 비명은 한번의 위기를 넘긴 후의 행복한 비명이었다.

나무가지에 바가지를 걸어놓은 모양으로 환요의 은밀한 곳은 위로 뻗은 금포노인의 남성에 깊히 꿰어있었다.

금포노인은 환요의 몸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아아! !]

환요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일그러지고, 이를 악다문 노인은 오랫만에 자신이 힘으로 여인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무림 자체이기라도 하듯이...

다른 여인들은 그의 주변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하늘 파란 물...

오색 만발한 꽃들이 있는 곳에서 불꽃보다 뜨거운 육체의 향연이 벌어진 것이다.

 

× × ×

 

황산(黃山)!

서하객(徐霞客)은 삼십 년에 걸쳐 대륙의 산하를 편력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태산, 형산, 항산, 숭산, 화산의 오악(五岳)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멋으로 인해 다른 보통의 산 따위는 성에 차지도 않는다.

그러나 황산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오악조차도 눈에 차지않는다!

 

이렇게 세인들의 칭송을 받는 황산에는 사절(四絶)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기송(奇松), 즉 기이한 모습을 한 소나무들,

기암(奇岩),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

운해(雲海), 넓게 펼쳐진 구름의 바다,

그리고 마지막은 온천(溫泉)이 그 사절이다.

 

이렇게 경관이 뛰어난 황산은 칠십 두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연화봉(蓮花峰)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곳은 연화봉이 아닌 천도봉(天都峰)으로 이곳에는 당금 무림에서 결코 넘보지 못하는 하나의 거대한 힘이 웅크리고 있다.

 

<백검보(百劒堡)>

 

천도봉 남쪽 산록에 장엄하게 벌려 서있는 한채의 보루!

그것은 바로 이정(二正)중 한명인 검성(劒聖) 당이정(唐利貞)의 백검보였다.

원래 백검보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백검보는 홍택호(洪澤湖) 옆에서 오가는 배들을 수적(水賊)들로부터 막아주는 역할 따위나 하던 보잘 것없는 방파에 불과했었다.

백검보라는 명칭도 원래는 무사들의 수가 백명이 넘지 않았기에 붙은 것이었다.

한데 이 백검보는 현재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劒)이라고 추앙되는 검성 당이정이 보주가 되면서부터 그 기세가 엄청나게 팽창했다.

물론 무사들의 숫자가 불어난 것은 아니었다.

무사들의 수효는 여전히 정확하게 일백명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무공은 모두가 무림의 일개 방파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해져버렸다.

당이정은 단신으로 공포의 살인마이던 천산구혈마(天山九血魔)를 삼십초가 되기 전에 모두 죽여버리는 위엄을 보였으며, 장강의 칠십이수로채의 채주 흑수신마(黑手神魔)와 대결에서는 이초만에 그의 두 팔과 머리를 베어버렸다.

이 쾌거로써 당이정은 무림에서 검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천산구혈마가 어떤 인물이었던가?

전통의 도가(刀家)인 하북팽가(河北彭家)에 뛰어들어 가주이하 일백구십 인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빼앗아 갔으며, 오대산(五臺山) 청량사(淸涼寺)에서는 다섯 채의 불전을 불사르고 청량사의 주지 이하 사십칠인의 고수들을 찢어죽인 공포의 마두들이 아니던가?

그들의 살인행각을 막기위해 소림에서 파견했던 십이무승(十二武僧)들은 그들에게 눈알을 파이고 간을 뽑아주었어야 했고, 그들을 뒤쫓던 정파의 고수 일백여 인을 황하에서 수장시켜버린 인물들이었다.

또한 흑수신마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욱 무서운 인물이었으니... 장강에 빌붙어 사는 칠십 두개의 수적(水賊)의 무리들을 통합하여 그 수좌로 올라선 인물이었다.

휘하에 거느린 고수들의 수효는 무려 일만육천에 이르렀고 그의 가공할 흑수(黑手)는 어느 누구도 이장을 받아내지 못했었다.

고수를 두려워 하지 않는 흑수신마!

하지만 그도 검성 당이정의 명성만을 높혀주었을 뿐이었다.

또한 당이정의 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은 그의 수하들인 백검(百劒)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당이정의 명성만이 풍문처럼 떠돌던 어느날 백검 중의 육십세번 째 서열에 있는 함사전(咸四箭)이라는 인물이 소주(蘇州)에 들렀다가 파렴치한 무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도화방(桃花幇)이라는 곳의 인물들인데 도화방은 원래 기녀들을 양성하여 기루에 팔아넘기는 흑도의 방파였다.

도화방의 수하들은 소주의 대로에서 버젓이 드러내 놓고 여인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은 그들의 횡포와 보복이 두려워서 아무도 못본 체하고 지나갔다.

함사전은 그자리에서는 가만히 있었지만 암암리에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그들이 숲속으로 들어가 여인의 몸을 망치려 하는 순간에 그들을 덮쳐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도화방의 본거지로 쳐들어갔다.

도화방의 사대호법이 그의 일검에 쓰러졌으며, 도화방주인 색골요희(色骨妖姬) 음자영(陰姿瓔)은 옷을 홀랑 벗어던지는 둥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그의 살수를 피하고자 했으나 이십사초만에 머리는 머리대로 떨어지고 몸은 몸대로 세토막으로 잘려진 고깃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무림인들은 함사전 개인의 무공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백검보내에서 단지 육십삼위의 보잘 것 없는 서열에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비록 도화방이 작고 약한 방파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문을 연 일개방파인데 한 개인의 손으로 멸망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한데도 백검보의 최고수인 보주가 아닌 그의 수하들 중의 일인이 완전히 궤멸시켜버렸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백검보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어느 문파를 공격한다면...?

무림인들은 백검보주 당이정을 십대고수의 우두머리 격인 이정(二正)의 일인으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듯이 백검보는 그 활약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웅크린 사자였다.

 

백검보의 전각들 사이사이로는 제거되지 않은 천연의 거대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두 노인이 있었다.

한데 그들의 모습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한사람은 오척의 단구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머리 두개는 더 큰 것같은 장신이었다.

앉아 있는 모습 만으로도 어른과 아이가 앉아 있는 듯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데 백()을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는 단구의 노인, 그는 바로 만박노조가 아닌가?

검성과 함께 이정의 일인인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백검보 내에 와있었다.

바둑판에는 오직 두개의 돌만이 놓여있었다.

[검성아우께서 이 우형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만박노조는 돌연 돌을 던지며 물었다.

그와 마주앉은 노인, 학창의를 걸쳤으며 검객의 분위기는 조금도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 서당의 글선생같은 모습으로 수염을 반자가량 기르고 있다. 눈매는 부드러우며 얼굴또한 온화하다.

한데 이러한 노인이 바로 백검보의 보주인 검성 당이정이란 말인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박노조의 눈빛은 예리했다.

그와 검성은 함께 이정으로서, 우형우제하는 사이였다.

이따금씩 만나는 그들은 종종 바둑을 두곤 했는데, 그때마다 검성은 두점을 깔고 두어야만 했다.

한데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성은 만박노조가 접어준 두점을 귀의 모서리에 둘다 붙여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바둑을 두자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검성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무림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해본 것이오. 이제는 무림에 이정이사이객(二正二邪二客)이 있을 뿐 일사삼객(一邪三客)은 사라지고 없소이다. 독비신검객(獨臂神劍客)의 행적은 묘연하지만 나머지 세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으니...]

온화했지만 천하에 대한 우려가 가득한 음성이었다.

만박노조가 탄식을 했다.

[이미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등 세놈의 손에 천하의 반이 들어갔네. 군소방파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복속했고 버티고 있는 것이라곤 자네의 그늘에 있는 문파들과 단혼곡의 하삼풍, 그리고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정도일세.]

[대체 놈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이길래 이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요? 소제는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그들과 맞서보고 싶은 생각뿐이오.]

검성은 침통하게 말했다.

무림에는 이미 이정삼사오객이 평화를 유지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것은 오년 전 동정호에 은거하고 있던 천하제일고수인 동호천이 죽음과 동시에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작년까지는 무림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이처럼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부운청풍객이 검종맹(劒宗盟)이라는 세력을 거느리고 무림에 재등장함으로써 상황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부운청풍객의 검종맹에 속한 인물들은 모두가 극악신랄한 검법을 가졌으며 그들은 거의 어떤 상대이든 단 일초에 목숨을 빼앗곤 했다.

무림의 이백삼십 여개 방파가 검종맹에 복종을 맹세했으며 굴복하지 않은 사십일 개의 방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검종맹은 삽시간에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해버렸다.

한데 검종맹이 보이는 곳에서 무림을 장악해나간 반면에 잔혼각(殘魂閣)으로 알려진 살수세력은 은밀하게 문파의 수뇌들을 흡수하는 방법을 취했다.

거부하는 자에겐 죽음을, 그리고 그 가짜를 만들어 그 문파를 장악했다.

강남과 강북에서 일어난 이런 세력으로 인해 천하는 피로써 들끓었고,

남해로부터는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의 도주인 초천풍이 붉은 그림자를 해안일대에 드리우고 점점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만박노조가 말했다.

[... 동호천 노선배께선 사후대책을 마련해 놓았을 줄 알았는데... 그 소년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

검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소년의 무공이 고강했다면 혹시 요즘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일초진천수(一招震天手)라는 그 인물일 수도 있지 않소? 그도 신분 내력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니... ]

[노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네. 하지만 그 일초진천수는 그 소년은 결코 아니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 소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그때였다.

스스슷!

갑자기 만박노조의 뒤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섬쾌! 무슨일이냐?]

만박노조가 물었다.

섬쾌라는 대꼬챙이처럼 바싹 마른 인물이 대답했다.

[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

만박노조는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이 누군지 몰라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섬쾌는 만박노조가 검종맹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했었기 때문이다.

만박노조의 물음은 무엇때문에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섬쾌가 말했다.

[부운청풍객, 잔혼살객, 그리고 적룡혈운도주가 검종맹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갑자기 만박노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검성아우! 그들은 자네를 노리고 있네.]

긴박한 만박노조의 말에도 검성은 덤덤한 표정이엇다.

저를 말입니까?”

만박노조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틀림없네! 고수이면서도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당금무림에서 자네와 단혼곡주 하삼풍, 철사보주 맹호산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네. 아마도 그들의 첫번째 상대는 자넬걸세. 그들이 백검보를 공격한다면 우리 두사람 만으로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네.”

[우리가 꼭 패한다고는 생각지는 않소. 다른 자들은 몰라도 부운청풍객에 대해서는 소제도 조금 알고 있소이다.]

검성이 여전히 초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만박노조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부운청풍객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금시초문이군. 그의 내력은 아무도 모르는데.]

[그는 내 사제요. 비록 그가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검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박노조가 소리쳤다.

[그럼 그가 백검보 출신이란 말인가?]

[그렇진 않소. 소제에겐 사문이 따로 있소이다. 아마 만박형도 들어보았을 것이오. 고검문이라고... ]

[고검문!]

만박노조가 비명을 질렀다.

천하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그인지라 전설적인 세외의 문파 고검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었군. 그래서 자네의 검법이 그토록 뛰어난 것이었군. 부운청풍객 그자도 고검문의 제자란 말인가?]

만박노조가 탄식하며 물엇다.

검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한데 그는 나를 모른척 하고 있소. 내가 사문에서 수련을 끝내고 무림에 나온 후에 사부께서 그를 제자로 맞기는 했지만 서로 안면은 있는 사이임에는 틀림없소.]

[한데 그가 왜 자네를 사형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이어진 만박노조의 물음에 검성은 처연하게 웃었다.

[소제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사문에서 폐출당한 몸이오. 그래서 사문이 있는 일천리 이내에도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소. 그가 나를 사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오.]

[...!]

만박노조는 묵묵히 있다가 돌연 섬쾌에게 말했다.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그리고 철사보주를 찾아서 이곳으로 오게 하라. 뭉치지 않고서는 그들을 대항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존명!”

스스스!

섬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박노조는 심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검성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 지금은 그들을 방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네.]

검성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맹호산과 혈포단객이 와줄지가 염려스럽소.]

[생각할 줄 아는 자들이니 그들도 오게될 걸세.]

만박노조가 다부진 음성으로 말했다.

검성의 어깨는 무척 왜소해진 것같았다.

사문에서 폐출당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그가 무림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그 휴유증 때문일 수도 있었다. 백검보가 무림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된 것조차도 같은 원인일 것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언젠가는 불붙게 될 것이다.

천하제일 검문인 고검문의 대제자로서 검성의 혼은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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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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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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