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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十 章

 

              死境奇緣

 

 

 

황량한 단애 아래,

크으... 죽지 않은 것은... 순전히 신기황 어르신네 덕분이다. 그분이 나의 골격을 철골(鐵骨)로 만드시지 않았다면...!”

문득 고통스러운 중얼거림과 함께 한 명의 인물이 풀더미 속에서 기어나왔다.

전신이 온통 흙과 피로 뒤범벅되어 형편없는 몰골.

! 군무현! 그는 바로 군무현이 아닌가?

그는 혈종제(血宗帝)와의 충돌로 인해 무너지는 지반에 쓸려 천인단애로 떨어진 것이었다.

... 우선... 어디에 가서... 운공을 해야한다!”

군무현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문득, 무엇을 발견했는지 그의 눈빛이 번뜩 빛났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에 묻힌 하나의 동혈(洞穴)이 빠꼼하게 뚫려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도 평범하여 언듯 지나치면 볼 수 없는 동굴이었다.

... ...!”

군무현은 전신 골격이 부서지는 듯한 엄청난 고통으로 안면을 이지러뜨렸다. 하나,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악물며 천천히 동굴을 향해 다가갔다.

이어, 그는 거의 기다시피하여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한데, 동굴 속으로 들어서던 군무현, 그는 일순 흠칫했다.

동굴의 변면, 그곳은 기이하게도 온통 기이한 문양으로 뒤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전체에 걸쳐 빽빽이 뒤덮여 있는 문양, 그것은 마치 올챙이와 같은 문양이었다.

순간, 군무현의 두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고대...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아닌가!”

벽 전체를 가득 뒤덮고 있는 기이한 형태의 문양. 그것들은 갑골문자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고어(古語)였다.

군무현의 눈빛은 강렬한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곧 정신을 집중하며 고통도 잊은 채 갑골문자를 해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만상자(萬像子)... 인연있는 자를... 위해 남긴다...!”

순간, 군무현의 안색이 급벽히 변화했다.

... 만상자(萬像子)! 이곳에 만상자의 손길이 미치다니...!”

그는 경악하며 흥분과 기대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구류천종(九流天宗)을 세운 인물, 그가 바로 만상자가 아닌가?

군무현은 만상자의 기묘한 안배로 인해 구류지존이 되었다. 한데, 다시 또 다른 만상자의 안배를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군무현은 격탕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계속 벽면의 갑골문자를 해독해 나갔다.

 

혈종(血宗)의 야심을 막기 위해 노부는 구류천종(九流天宗)과 선부(仙府)를 세웠다...

 

군무현은 갈수록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 선부(仙府)를 세우신 분도 역시 만상자였단 말인가?”

그것은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천오백 년 전, 당시 천하는 한 명의 희대의 마종에 의해 피로 씻기고 있었다.

 

고금제일마(古今第一魔) 혈천종(血天宗)!

 

바로 그에 의해서였다.

이를 보다못한 한 명의 은거기인이 세사에 나와 혈천종(血天宗)을 무공과 기지로써 꺾어 제거했다.

그가 바로 만상자였다. 하나, 천하인들은 아무도 몰랐다.

고금제일마 혈천종이 만상자에 의해 죽었음을. 다만, 혈천종이 의문의 실종을 한 것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고금제일마 혈천종! 그는 만상자의 손에 죽어가면서 엄청난 저주를 남겼다.

 

흐흐... 본종은 죽어도 본종(本宗)의 뿌리는 건재하다. 늙은이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즉시... 본종의 후예가 천하를 혈세(血洗)하리라!

 

천기를 살핀 만상자, 그는 과연 자신으로서도 일시에 제거할 수 없는 거대한 마()의 뿌리가 박혀 있음을 깨달았다.

뭔가 지속적인 방편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생각 끝에 만상자는 극락천존(極樂天尊)으로 하여금 선부(仙府)를 세워 혈천종의 후예를 제거케 한 것이다.

 

그러나... 노부가 죽고 천오백 년이 흐른 뒤, 혈천종의 마기가 초극(招極)에 이르러 선부(仙府)마저도 무너지리라. 이를 걱정하여 노부가 만든 마지막 안배가 그대 구류지존(九流至尊)이니라. 이제, 그대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남기는 바이다...

 

그와 같은 글 아래에는 지극히 심오하고 난해한 구결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구류귀허대천결(九流歸虛大天訣)!

 

그 구결의 제목은 그러했다.

순간,

... 이것은...!”

군무현의 안면에 숨막힐 듯한 격동의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도 심오박대한 내공심법이었다.

태양천제나 빙백염후의 내공심법마저 유치하게 느껴질 정도로, 과연 그런 내공심법이 천하에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믿기 힘들 정도였다.

군무현은 온 몸이 격심하게 떨리는 엄청난 격동에 휩싸였다.

이것이라면... 태양(太陽)과 빙백(氷魄)의 상반되는 양극기공을 합일(合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희열과 격동, 그것은 군무현이 겪은 최대의 격동이었다.

 

스스스... 신비한 적백(赤白)의 강기가 반투명한 색채로 퍼지며 사위를 뒤덮고 있었다.

스스스... 위 잉! 희고 붉은 두 가지의 상반된 강기는 서로 어울리며 주위로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한데 한 순간, 우르르르... 츠츠츠읏! 상반된 두 가지 강기는 급격히 하나로 녹아들어 무형의 극강한 기류로써 합쳐지는 것이 아닌가?

스스... 파파파 팟! 그 무형강기가 뻗어나가는 곳에는 무엇하나 견디어 내는 것이 없었다.

모조리 박살나 가루로 흩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문득,

심어초극류(心御招極流)!”

신비한 무형경기 속에서 한 소리 정대하고 낭랑한 일성이 터져나왔다.

다음 순간, 콰르르르 릉! 우르릉... ! 오백 장 밖의 석벽이 거창한 폭음과 함께 송두리째 허물어져 내렸다.

하나의 널찍한 암반 위, 한 명의 괴인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온통 먼지와 피로 뒤범벅된 지저분한 옷차림, 봉두난발로 제멋대로 풀어 헤쳐진 머리카락,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턱밑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었다.

도저히 나이를 분간할 수 없는 모습. 하나, 눈빛, 괴인의 눈빛만은 실로 신비하기 그지없었다.

천하를 담을 듯 정심하고 유현하게 빛나는 눈빛,

문득,

두달... 천하를 혈문(血門)에 내준 것은 두달로써 충분하다!”

괴인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한조각 푸른 천이 가려져 있는 듯이 아스라이 먼 하늘, 바로 그때였다.

구 우! 한 마리 천리신응이 쏜살같이 괴인의 어깨 위로 꽂히듯 내려와 앉았다. 그러자, 괴인은 눈을 빛내며 천리신응의 발목에 묶여져 있는 헝겊을 끌러냈다.

 

지존께 알립니다.

감숙 일대로 일단의 여인들이 남하하고 있습니다. 대초원(大草原)과 북해(北海)에서 오는 여인들로 보입니다. 그들은 감숙 일대로 나가있는 빙백궁과 충돌한 것으로 예측됩니다!

신응(神鷹).

 

...!”

괴인의 입가에 한줄기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어, 푸스스... 그가 가볍게 힘을 주자 헝겊조각은 재로 화해 흩어졌다.

문득, 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묵빙현하와 말썽꾸러기 오미(娛美)가 마침내 연공을 끝낸 모양이군!”

군무현! 그는 바로 군무현이었다.

그는 두달 동안 이곳 절곡에서 지내왔다. 그의 형색이 말이 아닌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하나, 그는 두 달동안 엄청나게 변모했다.

이제 단연코 그는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 된 것이다.

천험의 단애 밑에 자리한 음침한 절곡(絶谷).

군무현은 그곳에 앉아서도 천하정세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혈문(血門)! 그동안 그들은 천하를 장악했으며 사백육십개 문파의 장문인을 자기들의 괴뢰로 세웠다.

그들은 곧 무림의 법()이었다. 그 자들의 만행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루에 그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자가 오천 명, 능욕을 당하는 아녀자들은 무려 일만(一萬)에 달했다.

실로 인간으로서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악행을 다 일삼고 있은 것이다.

군무현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문득 싸늘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마기(魔氣)가 하늘에 이르렀으니... 이제 철퇴를 받을 시기가 다가왔다!”

반각 후,

우 우!”

한소리 웅후한 장소가 절곡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 환영(幻影)같은 한 줄기 그림자가 절곡을 빠져나갔다.

 

X X X

 

천마궁(天魔宮)!

정의맹의 급습으로 불탔던 천마궁은 전보다 두 배 더 증축되었다. 실로 그 규모는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또한, 그 가공할 위용은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하기 이를데 없었다.

혈문(血門)의 천마단(天魔壇)!

당금 천하무림의 마도(魔道)를 지배하는 곳. 단주는 천마제군(天魔帝君)이었다.

 

천마전(天魔殿)!

 

아아... ...!”

자지러질 듯한 여인의 교성이 뜨겁고 끈끈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호화의 극을 이룬 침실, 침상 위에 두 명의 남녀가 벌거벗은 채 서로 뒤엉켜 있었다.

흐흐... 역시 하북제일미(河北第一美)!”

사내는 교활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 ...!”

그 자는 미끈하게 빠진 몸매의 젊은 미부를 올라탄 채 욕정을 발산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흐윽... 아아...!”

그 밑에 깔려 몸부림치고 있는 여인, 그녀는 하북팽가(河北彭家)의 안주인이며 하북제일미(河北第一美)라 불리는 홍우비연(紅羽飛燕)이었다.

남편인 개산신권(蓋山神拳)을 천마제군의 마수에 잃고 지금은 그 자의 노리개가 되어 밤낮으로 학대를 당하고 있는 상태였다.

흑흑... 차라리... 나를 죽여요... 아흐윽... ...!”

홍우비연은 숨넘어가는 비명을 내지르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쯧쯧... 늙은이의 꼴이 과히 보기에 좋지않군!”

문득 나직하게 혀차는 소리가 천마제군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순간,

(!)

천마제군은 차가운 물벼락을 맞은 듯 욕정이가 싹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때,

... 어멋!”

홍우비연은 돌연 소스라칠 듯한 외침을 터뜨렸다.

천마제군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천마제군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죽어랏!”

쿠 쿵! 그 자는 음갈과 함께 맹렬히 일장을 후려쳤다.

하나,

쯧쯧... 앞이나 가릴 것이지. 그 볼품없는 물건을 굳이 구경시켜야 하겠는가?”

재차 여유있고 태연한 음성이 바로 천마제군의 머리 위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잔뜩 비웃음을 담은 모욕적인 말이었다.

대경실색하며 급히 고개를 돌리던 천마제군,

!”

일순 그 자는 아연하여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천정에 한 명의 괴인이 거미처럼 찰싹 달라붙은 채 침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지저분한 누더기 옷을 걸친 괴인, 천마제군은 일순 어이가 없었다.

하나,

이놈! 죽어랏!”

그 자는 분노하며 성난 사자처럼 무자비하게 장을 후려쳤다.

파파파 팍! 시커먼 강기가 벼락치듯 천정의 괴인을 향해 짓쳐갔다. 하나,

현천묵강수라...!”

괴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태연하게 중얼거렸다.

그는 피하거나 맞받을 생각도 하지않고 날아오는 강기를 태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한순간, 쿠 쿵! 강기는 정확히 괴인의 가슴을 가격했다.

하나,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 ...!”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 쪽은 오히려 천마제군이었다.

... 나오랏!”

마침내 천마제군은 분노로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 그 자는 발악하듯 외치며 침실을 뛰쳐나갔다.

천정의 괴인, 그는 침상 위에 알몸으로 망연히 누워있는 홍우비연에게 힐끗 시선을 던진 후 몸을 움직였다.

스스스... 그때, 밖으로 뛰쳐나온 천마제군은 찢어질 듯 두 눈을 부릅떴다.

... ... 이럴 수가...!”

그 자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사색이 되어 몸을 비틀거렸다.

곳곳에 널려있는 혈문의 마도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때,

세상에 있어 보았자 소용없는 쓰레기들인지라 일찌감치 처분해 버렸다. 지옥에 가면 아마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괴인이 천천히 걸어나오며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순간, 괴인은 부드득 이를 갈아붙이며 충혈된 눈을 부릅떴다.

... 이제 알았다. 네놈은... 죽었다고알려진 구류지존!”

괴인, 즉 군무현은 그제서야 여유있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본인이 죽었다고 믿는 것은 혈문의 일방적인 생각에 불과했지!”

... ...!”

천마제군은 안색이 시커멓게 질리며 주춤주춤 뒷걸음질쳤다. 하나, 그 자는 일순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현천마라복강쇄!”

그 자는 공포를 떨쳐버리기라도 할 듯 벼락같이 외치며 쌍수를 후려쳤다.

하나,

태양광풍륜을 아는가?”

슈슈 슉! 쐐 액! 태연하게 중얼거리던 군무현의 헐렁한 소매 속에서 검붉은 륜()이 번개같이 뻗어나왔다.

! 그 륜에서는 삽시에 천지를 불태워 버릴 듯한 극양지기가 확 폭발하는 것이 아닌가?

직후, 화르르! 콰콰 쾅!

크 악!”

거창한 폭음과 함께 단말마의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보라! 놀랍게도 주위 백장이 삽시에 재로 화해 스러져 버린 것이 아닌가?

그 속에 천마제군의 벌거벗은 몸뚱이는 불길에 휩싸여 타올랐다.

화르르! 이윽고, 츠츠읏! 군무현은 되날아온 태양광폭륜을 회수하며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오미(娛美)가 보고 싶은걸!”

스스스스... 한소리 나직한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신형은 삽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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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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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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