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천신폭풍탑(天神暴風塔)'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20.06.18 [천신폭풍탑] 제 21장 삼노장의 귀빈
  2. 2020.06.16 [천신폭풍탑] 제 20장 우울한 고금제일인 2
  3. 2020.06.15 [천신폭풍탑] 제 20장 우울한 고금제일인 1
  4. 2020.06.13 [천신폭풍탑] 제 19장 마음을 가두는 기이한 성형진 2
  5. 2020.06.12 [천신폭풍탑] 제 19장 마음을 가두는 기이한 성형진 1
  6. 2020.06.11 [천신폭풍탑] 제 18장 검룡난무 3
  7. 2020.06.09 [천신폭풍탑] 제 18장 검룡난무 2
  8. 2020.06.08 [천신폭풍탑] 제 18장 검룡난무 1
  9. 2020.06.07 [천신폭풍탑] 제 17장 해남도의 보물
  10. 2020.06.05 [천신폭풍탑] 제 16장 밀실의 기계인간 2
  11. 2020.06.04 [천신폭풍탑] 제 16장 밀실의 기계인간 1
  12. 2020.06.03 [천신폭풍탑] 제 15장 가공, 천신폭풍보 2
  13. 2020.06.02 [천신폭풍탑] 제 15장 가공, 천신폭풍보 1
  14. 2020.06.01 [천신폭풍탑] 제 14장 시작된 곳에서 시작을
  15. 2020.05.29 [천신폭풍탑] 제 13장 깨어진 돌머리 2
  16. 2020.05.28 [천신폭풍탑] 제 13장 깨어진 돌머리 1
  17. 2020.05.27 [천신폭풍탑] 제 12장 폭풍무존, 천년만의 부활
  18. 2020.05.26 [천신폭풍탑] 제 11장 장강대혈전
  19. 2020.05.25 [천신폭풍탑] 제 10장 풍운의 대륙
  20. 2020.05.23 [천신폭풍탑] 제 9장 절진 속의 부활
  21. 2020.05.22 [천신폭풍탑] 제 8장 구가천마검법과 살마경의 무공
  22. 2020.05.21 [천신폭풍탑] 제 7장 고검문의 문주 1
  23. 2020.05.20 [천신폭풍탑] 제 6장 유랑의 세월
  24. 2020.05.16 [천신폭풍탑] 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3
  25. 2020.05.15 [천신폭풍탑] 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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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三老莊貴賓

 

 

 

석두공은 맞은 편 전각에서 걸어나오는 또 한명의 흑의인을 볼 수가 있었다.

그자는 이곳에 온 다른 자들과는 달라보였다.

움직임이 마치 귀신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다.

특이한 보법을 밟아 상대가 예측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흰머리들은 본좌가 상대하겠다. 너희들은 나머지를 죽여라!]

서로가 서로를 죽이라는 명령이 반복되어 터져나왔다.

추릿!

그 흑의인은 검을 뽑아들고 목을 찌를 듯한 자세를 취하며 조창에게 다가갔다.

파앗!

조창과의 거리가 사장 정도로 좁혀 졌을 때 갑자기 흑의인은 조창에게 쇄도하며 검을 찔러냈다.

실로 쾌속하여 한줄기 빛과 같이 보였다.

(...)

조창은 내심 소리치며 고개를 돌리며 일장을 밀었다.

한데,

화끈!

조창의 자신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어나오는 것을 느꼈다.

흑의인은 분명히 자신의 목을 노렸는데 어떻게 허리게 베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창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흑의인의 검은 다시 그의 가슴을 찔러오고 있었다.

말도 없고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고도의 살인수법을 익힌 전문살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크아악!]

[으악! !]

삼노장의 무사들이 죽어가며 지르는 비명소리가 삼노장을 울렸다.

그러나 조창은 그 사이에 다시 일검을 맞았다.

흑의인의 장검은 그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찔러들어오고 있었다.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가슴을 찌르는가 싶었는데 머리를 베어오고, 다리를 벤다고 생각했는데 목을 찌르고 있었다.

조창은 자식의 절학인 화염장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식은 땀을 흘렸다.

한데 팽덕과 하진은 꼼작도 하지 않고 한곳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조창은 속으로 욕을 했다.

(무정한 놈들... )

그러나 석두공은 팽덕과 하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마치 동상처럼 가만히 있었다.

(내가 도와야겠군.)

석두공은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조할아버지 거들어드릴까요? ]

허공에서 작고 흰 그림자가 떨어지면서 말했다.

조창은 크게 기쁘하며 대답했다.

[장아가씨께 번거로움을 드리는구려. !]

말하는 사이에 다시 다리에 일검을 맞았다.

나타난 것은 작고 흰그림자는 십육칠 세 정도 되어보이는 소녀였다.

깜찍하고 귀여운 얼굴이었다.

그녀는 생긋웃으며 허리의 체대를 풀었다.

휘리리릭!

긴 체대가 연검(軟劒)으로 변하며 흑의인을 베어갔다.

!

흑의인은 조창을 공격하던 검을 돌려 막았다.

그 사이에 조창은 숨을 돌리며 뒤로 물러섰다.

소녀의 체대는 방향을 돌려 이번에는 장원의 무사들을 살해하고 있는 흑의인들을 향했다.

휘리릭!

[크악!]

마음대로 방향을 틀면서 날아드는 긴 연검을 피하지 못한 한 흑의인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소녀는 땅으로 내려선 후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길고 가는 연검만을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검술은 소박한 듯하면서도 정치(精緻)했고, 빠르면서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석두공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보다 어린 것같은 데 저같은 검술을 닦는 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저런 검술은 명사(名師)의 지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조창을 공격했던 그 흑의인이 허공으로 솟구치며 소리쳤다.

[퇴각해라.]

휙휙휙!

상대를 버려두고 흑의인들은 담을 넘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호호호호...]

소녀가 낭낭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휘리릭!

갑자기 그녀의 연검이 방향을 틀어 팽덕과 하진에게로 날아갔다.

[! 안돼!]

조창이 다급성을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연검은 두 사람의 몸을 살짝 찍고는 물러났다.

차앗!

팽덕과 하진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번쩍!

거의 동시에 그들의 뒤에서 돌연 백광이 솟구쳤다.

작약을 담은 상자 속에서 두 명의 흑의인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팽덕과 하진은 아슬아슬하게 그들의 검을 피했던 것이다.

[크하하하... ]

흑의인들은 광소를 터뜨리며 석두공의 머리위를 지나 사라져버렸다.

그들의 무공은 조창을 상대했던 그 흑의인에 비해 모자라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이엇다.

-!

콰콰쾅!

석두공은 눈앞이 섬광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꼈다.

 

전각이 폭발해버렸다.

십리 밖에서도 하늘로 치솟는 불꽃을 볼 수 있었다.

전각이 있던 곳에는 큰 웅덩이가 생겨버렸다.

삼노장의 전각들 중에서 태반이 무너져버렸다.

삼노장에는 사람의 모습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돌연,

들썩들썩!

무너진 한채의 전각의 일부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아가씨라고 불린 소녀가 하얗게 질린 채 기어나왔다.

그녀의 옷자락은 군데군데 불길에 타고 그을려 시꺼멓게 변해있었다.

그녀는 폭발의 여력에 날아가 전각속에 쳐박혔다가 전각이 무너지자 갇혀버렸던 것이다.

[팽할아버지! 조할아버지! 하 할아버지!]

장아가씨가 사방을 두리번 거리며 소리쳐 불렀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웅덩이가 마치 마귀의 입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으으으... 장아가씨... ]

미약한 신음과 함께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웅덩이가 파지면서 생긴 주위의 흙더미 속에서 나는 소리였다.

장아가씨가 비틀거리며 다가가 손과 발로 흙을 치웠다.

팽덕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흙이 코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고서 드러누워있었다.

심한 화상으로 인해 전신에 물집이 생겼는데 그 물집에는 흙들이 파고 들어있어 끔찍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이었다.

단지 그의 얼굴만은 본능적으로 가렸는지 그다지 손상을 입지 않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장아가씨는 그를 끌어내어 반듯한 곳에 눕혔다.

그때 흙더미 속에서 나온 손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

장아가씨는 깜짝 놀라며 힘껏 발을 잡아뺐다.

그러나 그녀의 발목을 잡은 손은 더할 수 없이 완강했다.

장아가씨는 발목이 으스러지는 것같은 고통을 느꼈다.

쓔욱!

그녀의 발목에 이끌려 검게 탄 숯덩이같은 것이 흙더미 속에서 뽑혀나왔다.

땅 밖으로 나오자 그 숯덩이는 장아가씨의 발목을 놓았다.

장아가씨의 눈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발목의 뼈가 부러진듯 서있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숯덩이가 누군지를 살폈지만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때 몇 사람이 달려오며 소리쳤다.

[장주님! 장주님!]

장원의 일하던 노인들로 이곳에 있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폭발에 크게 놀라 금방 다가오지 못했다가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다가 아무 기척이 없자 다가온 것이었다.

장아가씨가 반색하며 그들을 불렀다.

[이리오세요.]

장아가씨의 지휘아래 시체들과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찾는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날이 새도록 땅을 파고 전각들을 뒤지고 했지만 그들이 찾아낸 건 오직 세명의 장주와 한 구의 숯덩이 같은 인물뿐이었다.

몇 개의 타다남은 팔과 다리들을 찾아내기도 했으나 주인을 알 수도 없었다.

팽덕과 조창의 부상은 상당히 양호한 편이었다.

내상과 화상이 심하긴 했지만 치료하면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진의 화상은 심했다.

그는 두 다리가 완전히 타버려 하체가 짧아져버린 상태였다.

장아가씨는 그들을 치료하고 녹초가 되어 벌렁 드러누웠다.

그녀도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었지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쉬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곁에 공교롭게도 숯덩이같은 인물이 눕혀져 있었다.

지금 그녀와 생존자들이 있는 곳은 장원의 뒤쪽에 있는 귀빈을 맞는 곳이다.

바로 현재의 그녀가 머무는 거처이기도 하다.

[... 이 사람도 살 수가 있을까?]

장아가씨는 몸이 천근만근이었으나 옆에 있는 숯덩이를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숯덩어리는 숯덩어리 같은 데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진의 하체가 타서 없어진 것에 비하면 그것은 기적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었다.

장아가씨는 그의 팔에 손을 대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숯덩이 같은 인물은 숨이 멎어있었으나 기이하게도 심장의 박동이 아주 힘찬 것이 아닌가?

더구나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진력이 그 숯덩어리의 몸속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그 힘이 거대했다.

장아가씨는 세상에 그처럼 고강한 내공이 존재한다는 것을 듣도보도 못한 것이다.

숯덩어리는 살아있었다. 기이한 일이었다.

(삼노장에 이런 인물이 있었던가?)

그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데,

쩌쩍!

! 쩌적!

갑자기 숯덩어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

장아가씨는 깜짝 놀라서 천근만근 같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때 그녀의 뒤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제자를 구한 게 너냐?]

장아가씨는 흠칫 놀라며 뒤로 돌았다.

허무한 듯 또는 담담한 듯이 서있는 삼십세 정도의 사나이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후줄근하게 보이는 백의를 입은 사나이였다.

[당신은 누구세요?]

장아가씨가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폭풍무존이었다.

그는 허무한 듯이 말했다.

[나를 경계할 필요는 없다. 내 제자를 구해줬으니 노부는 저들을 치료해주도록하마.]

(노부?)

장아가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 쩌적!

숯덩어리는 계속 균열이 가고 있는데 폭풍무존은 손을 내밀었다.

돌연,

슈우우우우-!

그의 손에서 흰기류가 솟아오르더니 작은 구슬처럼 뭉쳐졌다.

장아가씨는 그같은 기이한 일에 눈을 크게 떴다.

(진기가 형체를 이루다니... 어 어떻게 저런 일이 있을 수가있지?)

구슬은 세개나 되었다.

그것은 폭풍무존의 손바닥에서 두둥실 떠올라 세방향으로 날아갔다.

팽덕과 조창, 그리고 하진에게로였다.

구슬은 그들의 단전으로 직접 스며들어버렸다.

폭풍무존이 장아가씨를 보면서 물었다.

[그리고 보니 정작 네게는 준 것이 없군. 이름이 무엇이냐?]

[지연(芝娟), 장지연이에요.]

장아가씨는 황급히 대답했다.

폭풍무존의 신기에 놀라서 그녀는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강변의 단애로 나를 찾아오도록 해라.]

폭풍무존은 그녀의 눈을 보면서 말한 후에 열려진 창으로 신선처럼 날아나갔다.

쩌쩍! !

균열이 가고 있던 숯덩어리가 둥실 떠오르며 그의 뒤를 따라서 사라졌다.

장지연은 자신의 손등을 꼬집었다. 분명히 꿈은 아니었다.

[으으음... ]

그때 팽덕 등이 신음소리를 내면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 × ×

 

[사부님!]

[빨간 것이 영락없이 금방 태어난 아기로구나.]

폭풍무존이 말했다.

불에 탄 껍질을 벗어버린 석두공은 그야말로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빨간 몸으로 폭풍무존 앞에 엎드렸다.

[복수하러 갔느냐?]

폭풍무존이 물었다.

알같은 석두공은 고개를 저었다.

머리카락도 홀랑 타버린 후에 배냇머리처럼 부드럽고 노르스름한 솜털이 있을 뿐이고, 눈썹도 희미했다.

[아닙니다. 전 그자들에게 사부님을 부탁하려고...]

[다 부질없는 짓이다. 부질없는 짓이야.]

폭풍무존이 탄식하며 말했다.

 

단애 위에는 장강의 급류를 바라보고 한채의 초옥이 서있었다.

급하게 만들어져 초옥의 지붕으로 썬 나무들은 아직도 푸른 빛이 가시지 않았다.

그 초옥 속에 폭풍무존과 석두공이 있는 것이다.

폭풍무존이 말했다.

[너는 나를 깨우지 말았어야 했다. 차라리 영원히 잠들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석두공은 천신폭풍탑에서 충동을 이기지 못해 천신폭풍보를 펼친 적이 있다.

천신폭풍탑은 모두 삼층이었는데 그 삼층에 폭풍무존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천신폭풍보에서 펼쳐진 힘으로 인해 탑이 파괴될 때 그 힘을 빌어서 다시 정신을 차렸었다.

폭풍무존은 석두공에게 그를 탓하는 듯 말했지만 실상 그 말은 자신을 탓하고 하늘을 탓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이 살고자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그같은 능력이 없었더라면 살고자 해도 살수가 없었을 것이다.

고금제일의 절대강자인 폭풍무존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린 지금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고독을 달래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세월은 너무 변해버렸다.

폭풍무존은 스스로가 자신을 걸어다니는 시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죽었어야 할 사람...

폭풍무존은 일어서면서 말했다.

[옷을 구해오마.]

석두공은 폭풍무존이 나간 후 알몸으로 방안을 서성였다.

방바닥은 나무들을 깎아서 깔아놓아 편편했다.

방 한쪽 구석에는 그가 허물처럼 벗어놓은 숯껍질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천왕저가 그 숯껍질에 붙어있었다.

석두공은 잔혼각의 인물들이 작약으로 위장하여 갖다 놓았던 화약이 폭발하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었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있는 오독패혼공과 포연신공의 힘으로 말미암아 그는 중상을 입지도 않고 살아난 것이다.

포연신공은 그의 내공을 다시 한번 뒤집어놓았다.

그리고 석두공은 불에 탄 허물을 벗어버리고 매끈한 알몸으로 다시 태어났다.

변화는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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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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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우울한 고금제일인 (2)

 

 

 

삼경이 지난 깊은 밤,

쿵쿵쿵!

[누구요?]

주점 주인 왕노이는 눈을 비비면서 나가 문을 열었다.

[!]

왕노이는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고 헛바람을 삼켰다. 해질 무렵에 떠났던 술꾼 중의 한사람이었다.

무슨 일을 내고야 말 것같던 두 사람 중의 한사람,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왕노이가 물었다.

[공자님께서 무슨 일로 다시 우리집에... ]

[왕노이! 당신을 왕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소.]

석두공이 말했다.

[저녁때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었던 그 세 노인은 어디에 있는 사람들인지 말해주시오.]

[, 모릅니다. 공자님!]

왕노이는 이놈이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구나 생각하며 말했다.

석두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들이 당신을 아는데 당신이 그들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소. 어서 말하시오.]

[정말 모릅니다. 단지 우리집에 자주 찾는 손님일 뿐입니다.]

왕노이는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석두공이 그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말귀를 못 알아 듣는군.]

순간 왕노이는 석두공의 키가 작아지는 것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그는 사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석두공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어어... ]

석두공은 단지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고 있는데 그의 몸은 풍선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삼노장(三老莊)의 주인들입니다. 삼노장, 하지만 삼노장은 작약장(芍藥莊)으로 더 유명하지요. 남쪽으로 십오리 정도 가면 야산 하나를 통채로 둘러싼 장원이 있는데 바로 그 곳입니다.]

왕노이는 신체의 위험을 느끼자 묻지도 않은 것까지 빠르게 말했다. 보신(保身)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자였다.

석두공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리고 땅으로 내려선 왕노이는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만했으면 난 도리는 지킨 거야.]

 

*****

 

휘이익!

석두공은 어둠 속에서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큰 장원을 발견했다.

왕노이가 말한 그 삼노장이었다.

석두공은 삼노장의 담벽을 연기처럼 타넘었다.

작약냄새가 그의 코를 찔렀다.

장원의 안은 전각들보다는 가지각색의 작약들로 뒤덮혀 있었다. 어째서 작약장이라고 하는지 알만했다.

석두공은 가장 커보이는 전각으로 소리없이 날아갔다.

삼노장은 아무도 경계를 서고 있는 것같지가 않았다. 그저 빗장만이 굳게 닫혀있을 뿐이었다.

얼핏 보아서 무림의 세력같지가 않았다.

석두공은 불이 켜져 있는 큰 전각의 지붕위에 날아내렸다.

전각 안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바로 찾았군.)

그 음성들은 석두공이 만났던 세 노인의 음성이었다.

그는 박쥐처럼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활짝 열린 창을 통해서 전각 안이 환히 보였다.

 

삼노(三老)는 모두가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그들은 형제와 같은 관계이면서도 위 아래가 없었다. 모든 일은 항상 서로 의논해서 해결해왔으며 어느 누구의 독단으로 일이 좌지우지된 일은 없었다.

언제나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인은 팽덕(彭德)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소림의 외가신공인 금강지(金剛指)를 잘 썼다.

약간 성미가 꼬인 것같은 노인은 조창(曺昌)으로 화염장(火焰掌)이라는 독문의 장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잘 웃는 노인은 하진(夏唇)이라하며 소매 속에 숨긴 비조(飛爪)를 쓰는 인물이었다.

이렇듯 삼노는 모두가 한 분야에 있어서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이곳 섬서성 일대에서만 활약하고 있지만 웬만한 무림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듣고 있었다.

 

조창이 분통이 터지는 듯 버럭 소리쳤다.

[오늘은 정말 재수 옴 붙은 날이군. 낚시를 망친 데다가 일하러 갔던 놈들은 물건마저 잃어버리고 돌아왔으니...]

[원래 복은 쌍으로 오지 않고 화는 단으로 오지 않는다고 했네. 좋지 않은 일은 늘 달아서 생기는 법일세.]

팽덕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창이 침을 튀기며 말했다.

[누가 그런 말을 몰라서 이러나? 내말은 화가 난단 말일세. 화가!]

[작약 이천근 정도 잃어버린 것은 큰 일이 아니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어쩌면 다른데 있는지도 모르네.]

팽덕의 말이었다.

하진이 팽덕의 말을 받았다.

[다른 데라면?]

조창도 입을 다물고 팽덕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팽덕은 생각이 깊은 인물이다. 그가 허튼 소리를 하는 경우란 전혀 없다. 그가 심각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면 그것은 분명히 심각한 것이다.

팽덕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까지 우리가 작약을 취급해온 이래로 이처럼 강도를 만났던 적이 있던가?]

그의 물음에 두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평덕이 말했다.

[작약이 이천근이면 돈으로 꽤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거금이라고는 할 수 없네. 또한, 당장 무엇으로 바꾸기도 어렵고 양이 많아서 어디 처분하기도 쉽지 않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작약을 훔쳤다면 이건 무엇을 뜻하겠는가?]

두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하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시며 음성이 탁하게 흘러나왔다.

[설마하니 우리를 노린단 말인가?]

팽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줄곧 생각해 보았지만 그렇게 밖에는 결론이 나지 않네. 또한 저녁 무렵에 우리가 만났던 두 젊은이도 그일과 무관한 것같지가 않아. 어쩌면 우리를 염탐하기 위해 왔던 자들일 수도 있지.]

[틀림없어. 틀림없이 그놈들은 염탐꾼들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뺨을 맞고도 그냥 갈리가 있는가?]

조창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팽덕은 염려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귀빈께서 와 계실 동안 만이라도 좀 조용했으면 좋으련만.....]

석두공은 속으로 말했다.

(성미 못된 영감이 있는 한 원수가 생기지 않을 리 없지.)

그는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았다.

 

문득 석두공은 누군가 장원의 담장을 넘어서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것을 알아차렸다.

휘익! 휙휙!

칠흑같이 검은 야행복을 입은 자들이 전각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한 두명이 아니었다. 적게 잡아도 이십 명은 넘을 것같았다. 그들의 등에는 상자같은 것이 얹혀있었다.

(기습(奇襲)이구나!)

석두공은 내심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처마 밑에 납작 붙었다.

쿵쿵쿵!

다가온 그들은 갑자기 등에 지고 있던 상자들을 전각을 향해 던졌다.

파앗!

휙휙휙!

조창과 팽덕, 그리고 하진이 대갈하며 뛰쳐나왔다.

[웬놈들이냐?]

이십 여명의 흑의복면인들은 이미 전각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흑의복면인들 중에서 노란 수실을 드리운 검을 맨 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물건을 돌려드리기 위해 왔소.]

번쩍!

그자는 검을 뽑아 상자를 반으로 잘랐다.

잘려진 상자에서 작약이 쏟아졌다.

우루루루...

장원의 일꾼들과 무사들이 달려왔다.

[저 저... ]

그들은 흑의인들을 보고 놀라며 소리쳤다.

[사부님! 강도들입니다!]

육백이 고함쳤다.

조창이 차갑게 응수했다.

[알고 있다.]

그때 팽덕이 나서며 말했다.

[귀하들은 아주 간이 크군. 밖에서 강도를 하고 집까지 쫓아오다니...]

[노인장들을 만나기 전에 선물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을 뿐이오.]

노란수실의 검을 가진 자가 말했다.

그가 말하기는 선물이었으나 실제로는 협박물이란 소리로 들렸다.

[무엇을 노리고 왔는가?]

조창이 눈에 살기를 뛰면서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잔혼각(殘魂閣)에 가입하시오.]

[...!]

[...!]

세 노인은 가슴을 망치로 맞기나 한 듯 둔탁한 충격을 느꼈다.

잔혼각...

결국 잔혼각의 힘이 이곳까지 뻗어온 것이다.

사십여 명이나 되는 장원의 무사들과 일꾼들도 잔혼각이라는 말에 파랗게 질리며 물러섰다. 잔혼각의 살수라면 그들로서는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하진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싸워야겠군.]

뱀의 머리는 되어도 용의 꼬리는 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파앗!

그 순간에 흑의인은 하진의 눈앞으로 쇄도하며 아래로부터 비스듬히 허리를 베어올렸다.

스팟!

하진의 몸이 팽이처럼 돌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의 소매속에서 은빛 손이 솟아나오며 흑의인을 쳐나갔다.

하진의 병기인 비조(飛爪)였다. 쇠로 만든 손모양의 물건에 은사가 달려있어 내공으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무기였다.

!

비조는 주먹으로 변해 흑의인의 검을 쳤다.

흑의인은 원래 반발하려는 그를 단숨에 죽여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협박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는 하진의 능력을 제대로 가름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격이 실패하자 그가 외쳤다.

[모두 죽여버려라!]

그때 조창이 그의 뒤로 돌아가면서 일장을 내밀었다.

[네놈부터 죽여야겠다.]

[으악!]

흑의인은 조창의 화염장에 격중되어 퍽 고꾸라졌다. 시체로 변해버린 그의 몸위로 파란 불꽃이 피어올랐다.

흑의인들은 흠칫하며 공격을 하지 못했다.

조창이 소리쳤다.

[장원을 불사르고 산속에 숨는 한이 있어도 잔혼각 따위에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놈들을 모두 죽여버려라.]

그의 서슬 퍼런 명령이 흑의인들이 한곳으로 모여들며 말했다.

[...후회할 것이다.]

[나는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네놈들은 그땐 죽었을 것이다.]

조창이 냉소했다.

바로 그때였다.

[후후후후...]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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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우울한 古今第一人 (1)

 

 

 

석상(石像)이 바닥으로 내려와 있었다!

아니 석상이 아닌, 석상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그곳에 서서 석상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침울한 표정, 대충 차려입은 듯 성의없는 옷차림,

석두공은 그를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언제 왔습니까?]

그는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추레한 백의를 입은 사람이 말했다.

[자네들 보다 조금 먼저...]

석두공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먼저 왔다면 자봉과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다 보았다는 말이 아닌가?

무림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석두공과 자봉이 전혀 기척조차 알 수 없었던 이 사람,

그는 자칭 고금제일인인 폭풍무존(暴風武尊)이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 흐르듯 폭풍같은 기도는 이미 씻은 듯이 사라지고 쓸쓸한 고독이 감돌고 있었다.

[사문으로 돌아가시지 않고 어째서 이곳 마중천에는...?]

석두공은 달아오른 얼굴을 빨리 지워버리려는 듯 물었다.

폭풍무존이 간단히 내뱉었다.

[여기가 바로 내 사문이었네.]

석두공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럼 저 석상이 정말로 노선배님...? ]

[아마도 그런 것같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

폭풍무존은 쓸쓸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석상의 뒤로 걸어왔다.

[이젠 나가세.]

석두공은 그의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폭풍무존의 모습에서 그는 인생의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 듯한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폭풍무존은 삼십대의 젊은이 모습이건만...

(없다. 천신폭풍탑을 만들고 이백 사십 년동안 무저갱 안에서 살면서도 죽지 않겠다고 생의 의지로 불타올랐던 그의 패기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석두공은 사람이 변해도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선배님의 석상이 그곳에 서기 전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조사이신 벽천검왕(劈天劍王)의 석상이 서있었다.]

[그럼 조사의 석상을 치우고 노선배님의 석상을 세웠단 말씀이십니까?]

[본좌도 이해할 수가 없다. 사부... 아니, 우리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후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곳은 은세정검회였는데 언제부터 마중천이란 게 되었단 말인가?]

폭풍무존의 음성엔 칼로 저미는 듯한 고통이 스며있었다.

[세월이... 너무 많이 지나 버렸어!]

 

× × ×

 

석두공은 출구를 은밀하게 가리운 엄청난 폭포를 보고 감탄하며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구당협(瞿唐峽)!]

구당협은 장강의 물줄기가 대파산(大巴山)을 지나면서 급류가 되어 흐르는 곳이었다.

물고기가 이곳까지 오면 흐르는 물살에 배가 터져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험하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은 장강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 × ×

 

수양버들이 강물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 곳에 작은 주점이 있었다.

주위에는 뙤악볕 아래서 낚시를 드리운 태공들이 여럿 보이고 우마차를 끌고 가는 소나 그 소의 고삐를 잡은 농부나 다같이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석두공은 주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쉬었다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폭풍무존은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였다.

휘익!

강가에 나란히 앉아서 낚시를 드리우던 세 사람의 노옹(老翁) 중의 한사람이 휘두른 낚시바늘이 공교롭게도 폭풍무존의 옷자락에 걸렸다.

그러나,

스슥!

폭풍무존은 낚시바늘을 손가락으로 비벼버렸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낚시바늘은 쇠부스러기가 변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바늘이 옷에 걸리자마자 가루로 변해 버린 것이다.

노옹은 바늘이 사라진 것도 모르고 다시 물속으로 낚시를 던져 넣었다.

 

주점 안은 네 개의 탁자가 있을 뿐이지만 아주 정갈했다.

석두공은 사람 좋은 이웃집 아저씨같은 주인에게 술과 고기를 달라고 했다.

[우리 집에는 비늘달린 고기와 발 달린 고기가 고루 갖추어져 있습니다.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주인이 허리를 굽신거리며 물었다.

석두공이 폭풍무존을 보며 눈으로 의향을 물었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묵묵히 있기만 했다.

[둘 다.]

석두공이 대답했다.

 

!

폭풍무존은 석두공이 따라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다시 잔을 내밀었다.

석두공은 다시 잔을 챘웠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게눈 감추듯이 입안에 들여부어버렸다.

석두공이 참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섰다.

[주인!]

[네네네... ]

[큰잔을 주시오. 그리고 술도 더 많이.]

술잔이 네배는 커졌다.

하지만 폭풍무존의 술을 마시는 속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술잔을 들이킬 뿐이었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이 앉은 자리에는 금방 빈 술통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폭풍무존이 폭음을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주인은 속으로 금방 넘어가겠구나 했었다.

하지만 빈 술통이 하나 둘 늘어나고 급기야는 아직 익지도 않은 술을 땅에서 파왔을 때 주인은 안절부절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아이구! 저거 오늘 아무래도 일 치고 말지.)

심각한 폭풍무존의 표정, 그리고 그와 마주 앉아 잔을 채워주고 있는 젊은 석두공...

마셔도 마셔도 술은 취하지 않는다.

성질을 풀려고 술을 마시는 게 보통인데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면 그 성질을 풀 방법은 성질을 부리는 것(?)밖에는 없다

주점의 주인만큼 이같은 진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과연 주인의 우려는 금방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재수가 없으려니 원... 제기랄! 낚시도 없는 바늘을 드리우고 고기를 잡겠다고 했으니 참내...]

강변에서 낚시를 드리웠던 세 노인이 들어오면서 그 중의 한 사람이 투덜거렸다. 폭풍무존의 옷자락에 겁도 없이 바늘을 걸었던 그 노인이었다.

[낄낄낄... 낚시도 없는 바늘을 드리웠다고? 바늘없는 낚시를 드리운게 아니고?]

다른 노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먼저 말했던 사람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뻔히 보았으면서도 말꼬리를 잡나? 대충 말하면 알아들을 거지...]

그러자 또 다른 노인이 말했다.

[화풀게, 낚시를 한지 벌써 오십 년이 넘었지만 오늘에야 진짜로 강태공이 되었잖은가?]

[! 나같은 필부야 팔십까지 살지도 못할 건데 무슨 강태공은...]

투덜거리던 사람이 그래도 화가 조금 풀리는지 수그러졌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이 앉아 있는 탁자의 뒤쪽에 있는 다른 탁자에 앉으며 그 노인이 소리쳤다.

[왕노이! 술을 갖다 주게.]

주인이 뛰쳐 나오며 말했다.

[... 나으리 술이 없습니다.]

[? 저 사람들이 마시는 건 술이 아니고 뭐야?]

!

탁자를 부술 듯 세차게 두드리며 노인이 일어섰다.

주인이 쩔쩔 매면서 말했다.

[나으리! 정말 현명하십니다. 실은 바로 저 술 때문에 나으리께서 마실 술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집에서 마지막 술입지요 저게...]

[당장 이리로 가져오시오. 아직 뜯지 않았으니 우리가 마시면 될 것 아니오.]

그 낚시꾼은 말하면서 털썩 앉았다. 주인이 자신의 말대로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태도였다.

그에게선 투덜거릴 때와는 또 다른 위엄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주인은 손을 비비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가뜩이나 분위기를 잡고있는 폭풍무존과 석두공의 면전에서 술통을 들고 뒤쪽의 탁자로 옮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낚시꾼의 신분이 범상치 않은 듯 주인은 손바닥만 서로 비빌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화난 노인을 달랬던 인자한 얼굴의 노인이 말했다.

[그럼 국수나 말아주게. ]

[아이구! 나으리 감사합니다요.]

주인이 허리를 꺾으며 절하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심술기가 있는 화났던 노인은 손바닥으로 탁자를 주룩주룩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륵스륵!

탁자의 한쪽이 평평하게 깎여나가고 있었다. 대패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석두공과 폭풍무존에 대한 은근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석두공에게만 위협이 되고 있었다.

석두공은 술을 조금 마시기는 했으나 주변의 상황을 손바닥 보듯이 환히 알고 있었다.

(이거 큰일이다. 저 노인들이 이분을 자극하지 말아야 할 텐데...)

석두공은 속이 타는 것같았다. 만약에 그들이 폭풍무존을 건드려서 폭풍무존이 분노하게 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석두공의 속을 모르는 노인은 이제 대패밥같은 깎여진 나무를 훅 하고 불어보냈다.

휘리리리리...

석두공은 날아드는 대패밥을 안주를 집는 척하면서 소매로 막았다.

노인은 석두공이 대패밥을 막는 것을 보고 콧웃음을 쳤다.

[젊은 놈이 제법 주먹질을 하는 모양이군. ]

[어허! 이사람!]

다른 노인이 황급히 그의 입을 막았다.

탕탕탕!

노인이 탁자를 세게 두드리면서 소리쳤다.

[내입으로 말도 내 맘대로 못하는가?]

공력을 실어서 탁자를 두드리는 바람에 바닥이 울렸고 앞쪽에 있는 석두공과 폭풍무존의 탁자도 덩달아서 진동했다.

술잔도 튀어 올랐다.

그러나 석두공도 폭풍무존도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술잔을 받아서 입으로 가져가버렸다.

노인들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폭풍무존과 석두공이 범상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다.

그때 그들의 귀로 석두공의 회성전음(廻聲傳音)이 들려왔다.

[화를 자초하지 마십시오. 저와 함께 있는 이분은 어르신들보다 연세가 많으십니다.]

[! 무슨 미친 소리! 그럼 반노환동(返老換童)이라도 했단 말인가?]

참으려던 노인이 그 말에 발끈하며 소리쳤다.

석두공은 크게 당황하여 폭풍무존을 보았다.

하지만 폭풍무존은 듣지도 못한 듯 술잔만 기울였다.

(휴우...)

석두공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밖에서 한명의 건장한 젊은이가 들어오며 노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사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글쎄 저놈이... ]

노인은 화가 난김이라 폭풍무존을 향해서 삿대질을 했다.

순간,

!

노인의 제자가 다짜고짜 폭풍무존에게 다가가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쨍그랑!

석두공은 너무 놀라서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노인들도 안색이 변했다. 그들은 젊은이가 그처럼 성급하게 행동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했다.

젊은이가 소리쳤다.

[사부님께 무례한 자는 본 화염장(火焰掌) 육백(陸白)이 용서하지 않는다.]

!

폭풍무존이 술잔을 놓고 일어섰다.

석두공은 주먹에 땀을 쥐며 말했다.

[사부...]

[사부? 내 무공을 배웠으니 그렇게 부를 수도 있겠군.]

폭풍무존의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폭풍무존은 아직 삼십이 되지 않은 듯이 보이며 오관은 반듯하고 몸은 건장하다. 석두공과 함께 있으면 형님과 동생 정도로 생각되는 정도이다.

폭풍무존은 등을 돌리고 나가며 말했다.

[가자!]

[...!]

[...?]

석두공은 일장의 피바람이 몰아치리라 생각했었다.

한데 폭풍무존이 처량한듯 말하며 주점을 나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석두공은 오히려 그 모습에서 진정으로 강한 자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의 가슴을 망치로 치는 듯한 충격이었다.

[! 사부...]

먼저는 폭풍무존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부른 사부였지만 이번에는 진정으로 감복하여 부르는 소리였다.

그는 폭풍무존을 뒤쫓아 나갔다.

그때 주인이 주방에서 소리쳤다.

[공자님! 술값을 주셔야지요.]

[저런 파렴치한 놈들은 혼을 내줘야 하오. 내가 받아주겠소.]

화염장 육백이 도망치듯 나가는 폭풍무존과 석두공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무례하지마라!]

노인 중의 한사람이 외쳤다.

하지만 성질 급한 육백의 손은 벌써 폭풍무존의 가슴을 향해 뻗어가고 있었다.

석두공은 육백의 손이 다시 폭풍무존의 몸에 닿을 새라 주머니를 던지며 말했다.

[술값은 여기 있소.]

주머니가 육백의 손바닥을 쳤다.

[!]

육백은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두걸음 물러섰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실제로 손의 뼈가 깨어져버린 것이었다.

휙휙휙!

노인들이 달려나오며 소리쳤다.

[상처가 심하냐?]

[, 이자가 암습을...]

육백이 다른 손으로 석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석두공은 속에서 불덩어리같은 것이 치밀어올랐다.

(암습은 누가 했는데...)

그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갔다.

폭풍무존이 다시 걸어가며 재촉했다.

[어서 가자.]

석두공은 주먹을 불끈 쥐고 세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주먹을 내리고 폭풍무존을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폭풍무존의 등에는 짙은 고독이 드리워져 있었다.

[실수를 한 것같네.]

강을 따라 황혼 속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노인이 탄식을 했다.

[...!]

[...!]

[범상한 자가 결코 아닐세. 무슨 사연으로 술을 그처럼 마시는 지는 몰라도 마음이 큰 사람임에 틀림없네.]

[겨우 암습 따위나 하는 자들...]

육백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두 노인이 그를 쏘아보았다.

육백은 움찔하며 입을 다물었다.

육백의 사부인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모두 내가 책임지겠네. 무슨 일이 있다면 내가 목숨으로 책임지면 될 게 아닌가?]

 

× × ×

 

강변의 단애위에 노을이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폭풍무존은 걸음을 멈추고 그 장엄하기 조차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단애는 오십 장 정도의 높이고 단애의 중간 중간에는 물새들이 집을 틀고 있었다. 둥지로 돌아오는 새들의 날개도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폭풍무존은 단애위로 올라갔다.

무협(巫峽)을 지나온 장강의 물살은 여전히 급했지만 표면에서는 잔잔함이 보였다.

폭풍무존이 석두공에게 물었다.

[자고 가겠느냐 아니면 그냥 떠나겠느냐?]

[사부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자고 가도록 해라.]

폭풍무존은 그렇게 말하고는 단애의 뒤쪽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자고 가도록 해라? 그렇다면 당신은 가지 않겠다는 말씀...!)

! !

폭풍무존은 숲에서 나무를 꺾고 있었다. 움막을 만들 생각인 모양이었다.

석두공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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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장

 

             마음을 가두는 기이한 성형진 (2)

 

 

땅속이 분명하지만 이곳의 모든 것은 마치 해가 뜨기 전의 여명처럼 훤하다.

복도와 대전의 천정 부근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형광(螢光)의 구름덩어리가 엷게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석두공은 지하에 이같은 건축물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만 놀라울 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마치 죽어버린 어둠의 성시(盛市)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대전들을 지났으며 무수한 석실들과 회랑을 지났다.

하지만 황폐한 마중천에는 사람의 그림자는 커녕 시체 하나 널려있지 않았다.

석두공은 마중천 안에서 숨쉬고 있는 것은 오직 자신, 그리고 함께 들어온 그 여인 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요...

음산...

그리고 죽음이 마중천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같았다.

(마중천은 오백 년 전에 무림을 독패하다 시피했던 절대적인 세력이다. 한데 그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입구에 쓰여있는 대로 그들이 자중지란을 당해 죽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시체는 있어야 하지 않은가?)

석두공에게는 이것이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점점 마중천의 중심부를 향해서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기물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문득 석두공은 걸음을 멈추었다.

막다른 곳이었다.

그의 앞을 악마의 형상이 생생하게 새겨진 황동으로 만들어진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어쩌면 있을 지도 모를 기관장치를 주의하면서 석두공은 공간을 격하고 황동의 문을 밀었다.

문은 그 육중함과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소리없이 열렸다.

스르르릉...

천정의 높이는 삼십여 장,

넓이가 족히 오천 평에 달할 것같은 원형의 둥근 광장이 문사이로 드러났다.

원형 광장의 가운데에는 이장 정도 높이의 석상(石像)이 하나 서있었다.

거인의 형상을 한 그 석상의 모습은 뜻밖에도 석두공이 알고 있는 그 누군가와 아주 닮아 있었다. 오연히 고개를 들고 천하를 좌시하듯이 서있는 석상...

(폭풍무존!)

석두공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석상의 모습은 영락없는 폭풍무존의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철봉을 이어서 만든 별모양의 기구가 들려있었다.

석두공은 천천히 석상을 향해서 다가갔다.

석상 앞에는 이미 선객(先客)이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멍하니 서서 석상의 손에 들려진 별모양의 기구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석두공은 석상을 뒤로 돌았다.

(아무리 보아도 폭풍무존이다. 그렇다면 폭풍무존은 마중천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그는 스스로 은세정검회라는 곳의 정통을 이어갈 제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는 천신폭풍탑에서 읽었던 것을 상기해 내고는 치밀어 오르는 의문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석두공은 소림사에서 만배선사에게서 정심신주를 배운 이후 점차 머리가 무엇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그의 기억력은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기억력을 십배 뛰어넘은 것이다.

매를 맞으며 죽음의 고통 속에서 살기 위해 기억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능력이다.

그때였다.

[아아아! ]

석상의 손에 들리워진 별모양의 기구를 바라보던 여인이 갑자기 나직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인의 무공은 이미 경지를 벗어난 것이기에 어떤 기관으로 해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같은 데 갑자기 혼자서 쓰러진다니...

석두공은 그녀가 쓰러진 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은 어떤 끈끈한 느낌을 통해서 알 수 있었지만 왜 갑자기 쓰러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은 완전히 정신을 잃지는 않고 있었다.

[풀어야 하는데... 저것을 풀어야만 하는데... ]

그녀는 혼수상태에서 손을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은 별모양의 기구를 향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생각했다.

(저 성형(星形)의 기구에 무슨 비밀이 있다는 말인가? 능히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곳는 마중천의 가장 중심지가 아닌가?)

스스로 그럴 것이란 결론을 내린 석두공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는 여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꿈을 꾸는 듯 몽롱한 여인의 아름다운 얼굴이 그의 심장을 풀쩍 뛰게했다.

석두공은 별모양을 보기도 전에 여인의 미모에 정신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그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여인의 얼굴로 손을 가져갔다.

살며시 여인의 도화꽃 같은 볼을 손가락 끝으로 건드려 보았다. 짜릿한 흥분이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

석두공은 고개를 들고 일어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행동이 그야말로 소인배의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고개를 든 그의 눈으로 성형의 기구가 가득 차서 들어왔다.

[...!]

석두공은 그 별모양이 마치 자신의 정신을 옭아매는 듯한 것을 느꼈다. 별모양은 눈을 통해 들어와서 그의 마음에 낙인처럼 찍혀지는 것같았다.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별이었다.

석두공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그의 정신에 납덩어리라도 올려놓은 듯 생각하기가 힘들어지는 것같았다.

정신에 이상이 생기는 것같자 석두공은 즉시 마음속으로 정심신주를 외우기 시작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 )

그의 정신에 파고들던 별모양의 낙인은 점차 흐려지며 사라져버렸다.

석두공의 이마에 식은 땀이 맺혔다.

어쩌면 자신도 여자처럼 당해버렸을 수도 있었다.

[만배선사님께서 나를 살려주셨구나!]

석두공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여인은 저 성형이 머리 속에 파고 든 후에 억지로 깨뜨리려다가 당했다. 어떻게 한사람의 절세고수를 이런 간단한 것이 제압할 수 있단 말인가?]

성형의 기구는 여전히 무서운 마력으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마중천의 힘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이었는가? 어떤 고수라도 옭아매는 간단한 도형의 힘... ]

석두공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가부좌를 틀었다.

성형의 기구가 마중천의 힘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든, 그 안에 있는 어떤 비밀을 풀어내야만 할 것같았다.

 

별은 석두공의 마음에 낙인되었다가 정심신주에 의해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갔다.

석두공의 옆에서 여인은 입을 굳게 다물고 화석처럼 누워있고 그는 온 정신을 모아서 별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릅뜬 눈에는 핏발이 섰으며 긴장으로 인해 그의 몸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변해있었다.

한데 어느 순간 석두공은 낙인되어다가 사라지는 별에 다른 별이 겹치는 것을 보았다.

별안간 그의 머리 속으로 섬전같은 깨달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석두공은 벌떡 일어서며 대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는 미친 말처럼 풀풀 뛰고 눈을 본 강아지처럼 뒹굴며 소리쳤다.

[그랬구나, 그랬어! 으하하하하...]

그리고 그는 정신을 잃고 있는 여인의 곁으로 다가가 세차게 뺨을 쳤다.

짝짝!

[!]

여인이 입가로 피를 흘리며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흐릿했으며 아주 피곤해 보였다.

[잘보시오! ...]

짝짝!

석두공은 다시 그녀의 뺨을 두대나 더 때리고 석상의 손에 들려있는 별모양의 기구를 가리켰다.

여인의 눈이 흐릿하나마 그곳으로 촛점을 모으고 있었다.

이미 신()과 지()가 혼돈된 것이 분명했다.

석두공은 별모양의 기구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슈우욱!

갑자기 별의 뿔들이 실에 걸린 듯이 석두공의 손을 향해서 휘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부분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한데 별의 모습이 변화함에 따라서 여인의 눈동자가 점점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별의 뿔들은 점점 더 딸려왔다.

그리고 마치 불가사리가 발을 오무리듯이 그것들은 한곳에 모였고 그 순간에 방향을 바꾸어 중심으로 쏘아져 들어갔다.

!

쿠르르르...

쿠르르릉...

별모양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갑자기 마중천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한 여인이 눈을 부릅뜨면서 덜덜 떨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그릉그릉...

마중천 전체에서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가 끝없이 터져나오고 어디에나 가득하던 먼지들이 날아올랐다.

그같은 상황에 석두공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방금 전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떠올랐다.

[이런 바보!]

석두공은 자신을 향해 소리쳤다.

별의 비밀을 깨닫게 되자 너무 기쁘서 자신도 모르게 여인에게 알려줘 버렸던 것이다.

하나...

[흑흑흑흑...]

여인은 갑자기 주저앉으며 무릎을 감싸안고 울기 시작했다.

얼음장 처럼 싸늘하던 그녀는 봄눈처럼 허물어져 버린 것같았다.

[엉엉... 으흑흑흑흑... ]

그녀는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방성대곡을 했다.

쿠쿠쿠!

사방에서는 아직도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석두공은 그녀의 울음소리에 자신의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울지 마시오. 왜 왜이러는 거요?]

[으왕!]

갑자기 여인은 석두공의 목을 와락 껴안으며 울부짖었다.

향긋한 지분냄새가 진한 체향과 함께 석두공의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석두공은 눈앞이 보라빛으로 아롱아롱해지는 것을 느끼며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황홀...

그는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속에서 이성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또 바보짓을... 금방 후회를 하고도...)

장미꽃 같은 여인의 입술이 그의 입을 덮어버렸다.

석두공은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달콤함과 함께 짭짤한 눈물의 맛이 느껴졌다.

여인의 농염한 몸에서 훅훅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석두공에게 전염되었다.

뼈가 없는 듯 여리고 보드라운 섬섬옥수가 석두공의 옷을 잡아벌렸고 석두공의 손도 어느덧 여인의 몸에서 껍질을 벗겨내고 있엇다.

마치 허물처럼 검은 섬유질이 벗겨지는 안쪽에서 너무도 싱그럽고 뽀얀 몸둥이가 들어난다.

여인의 알몸을 본 적은 있지만 만져보는 것은 처음이다.

단순히 보는 것이 직접 만져보는 것에 비하면 얼마나 싱겁고 하잘 것 없는 것인지를 석두공은 절감했다.

젊은 육체는 너무도 쉽게 달아올랐다.

거칠게 찍어누르는 석두공의 학대에 여인은 암코양이처럼 가릉거리며 다리를 벌린다.

떨리는 손이 여인의 가랑이 사이로 더듬어간다.

보드랍고 까실한 섬모가 만져지고 이내 뜨겁게 달아오른 상구(傷口)가 손 끝에 느껴졌다.

그곳은 열탕이고 늪이었다.

아니 용암을 머금은 채 들끓는 분화구(噴火口).

난생 처음 사내의 손길을 느낀 여인의 몸이 자지러진다.

그러면서도 여인은 복수라도 하듯 손을 뻗어 석두공의 하체를 더듬어왔다.

그녀의 뼈가 없는 듯한 손아귀에 쥐켜지며 석두공은 완벽하게 패배햇다.

그는 명줄이 여인에게 잡혔으며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엇다.

...어서....!”

석두공을 자신의 늪지 입구에 잇댄 여인이 간절하게 애원하며 둔부를 일렁인다.

첫경험인 숫총각의 어설픈 허리질이 이어졋다.

비록 어설픈 몸짓이었지만 여체는 너무도 뜨겁게 만개해잇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뜻을 이룰 수가 잇었다.

석두공은 여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갓다.

마치 기름칠이 되어있는 듯한 그 미끈덩한 점막은 단번에 석두공을 깊이 깊이 흡입해들었다.

도중에 진저리치는 여체의 경련이 있엇지만 석두공은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완전히 깊은 동굴 속으로 자신을 몰입시켰다.

그런 쾌감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햇다.

혼백이 육체와 괴리되고 몸의 모든 부분이 남김없이 여자의 몸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흐느끼며 벌벌 떠는 석두공의 몸을 미끈덩한 뱀같은 여체가 마구 휘감아온다.

자신을 머금은 주인의 그 재촉에 못 이겨 석두공은 불맞은 짐승처럼 펄쩍 펄쩍 뛰기 시작했다.

 

× × ×

 

여인은 몸을 돌리고 옷을 입었다.

석두공도 그녀도 입을 열지 않았다.

원형의 대전 바닥엔 붉은 핏자국이 남아있는데...

석두공은 일어서서 그녀를 살며시 끌어당겨 안았다.

여인은 못이기는 척 그의 품에 기댔다.

말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석두공은 여인의 볼에 얼룩진 눈물자국을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이윽고 석두공이 입을 열었다.

[... 석두공이오. 이름이 무엇이오?]

[흑봉... 아니 자봉... ]

서로가 적인 두사람, 정체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아 적이 분명했다.

하지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그 끈끈한 흐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름을 묻고 나자 물을 말도 없어져 버렸다. 서로가 밝힐 수 없는 것을 물을 수도 없는 일...

찌이익!

석두공은 돌연 소매를 길게 찢어내며 말했다.

[자봉... 뜻하지 않게 우리가 맺어졌지만,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사람이오. 영원토록...]

“....!”

자봉의 어깨가 가는 떨림을 보였다.

석두공의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혈풍강호에 던져진 몸... 내일을 기약할 수가 없소. 운명이... 운명이 기어코 당신과 나를 괴롭게 하여 서로가 검을 겨누게 되더라도, 난 난 영원히 당신을...]

그는 격정에 복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자봉이 그의 목을 힘껏 끌어안았다.

긴 입맞춤...

그리고 자봉은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이젠... 죽어도 아무 한이 없어요. 죽어도... ]

자봉은 물기어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석두공이 떨리는 음성으로 불렀다.

[자봉...]

석상의 뒤에는 기관이 움직이며 열려진 감춰져 있던 계단이 있었다.

자봉은 한떨기 백합처럼 처연한 웃음을 짓고는 그곳으로 다가갔다.

[고마워요.]

[자봉!]

석두공은 한달음에 자봉의 곁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

자봉은 연기처럼 꺼져버렸다.

석두공의 손에는 빈 허공만이 들어왔다.

[자봉...]

그는 망연한 눈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계단의 아래에서 찬바람만이 올라왔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석두공은 왠지 낯설지 않은 어떤 분위기를 느끼며 문득 고개를 돌렸다.

 

× × ×

 

! ... 또독...

계단이 끝난 곳에는 천연의 종류동굴이 어지럽게 뻗어있었다. 종류석들 끝에서는 석회암을 녹인 물방울이 떨어졌다.

자봉...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운명에 의해 자신을 잃어버렸던 그녀는 애써 눈물을 닦으려고 하지 않았다.

너무 성숙한 몸으로 인해 나이보다 더 많아보이는 그녀는 이제 이십세, 그녀를 위해 안배되었던 저주가 풀리는 그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그녀는 목이 잠긴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원망하진 않겠어요. 어차피 산다는 게 치열하기만 할 뿐 그리 즐거운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하지만... 이젠 두려워요. 두공... 그 사람곁에서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문득 그녀는 눈물을 닦고 중얼거렸다.

[제 한몸 희생하겠어요. 하지만... 석두공 그 사람은 아버지께서 안배하신 사람이 아니길 바래요. 만약... 그의 희생까지 요구한다면... 무림의 영원한 평화고 뭐고 다 팽개쳐 버리겠어요. 그것만은 결코 용서할 수 없어요.]

그녀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동굴 속으로 걸어갔다.

전에는 양심의 갈등 속에 괴로워 했으며 안배에 의해 기억을 되찾은 이제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사명에 괴로워하는 여인, 그녀는 자봉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출구가 표시되어 있는 미로같은 동굴을 빠져나간 그녀는 폭포수 밑으로 나왔다.

꾸워!

폭포수에는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데 묵령신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묵령신조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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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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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마음을 가두는 奇異星形陣 1

 

 

 

두 남녀가 망부석처럼 우뚝 서서 대치하는 동안 묵령신조는 계곡안의 좁은 골짜기로 날고 있었다.

휘이이이! 휘이이잉!

밑에서 불어오는 역풍이 석두공과 여인의 옷자락을 거꾸로 말아올렸다.

콰아아아!

이윽고 묵령신조는 거대한 날개를 접으며 절벽의 중간에 나있는 하나의 동굴 앞에 내려섰다.

동굴 주위의 작은 바위들이 날개바람에 휩쓸려 날아갔다.

그러나 석두공과 여인은 마주보고만 있었다.

그때 묵령신조가 귀잖다는 듯이 등을 털어버리는 바람에 두 남녀는 풍선처럼 땅으로 내려섰다.

하지만 묵령신조는 더이상 석두공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먹이를 찾기 위해서인지 묵령신조는 계곡 아래로 날아가 버렸다.

문득 석두공은 마주 선 그녀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어스름 저녁무렵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어둠속에 사르르 사라질 듯한 그녀의 모습이 그에겐 어떤 환상처럼 느껴졌다.

석두공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더 싸워야 겠소?]

[! 아주 제법이더군. 하나, 다음엔 쉽지 않을 것이다.]

여인이 싸늘한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묘한 음성이었다.

석두공은 빙그레 웃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땅위에 내려선 순간에 이미 소저는 졌소. 다음에 나를 이기기 위해서라면 아마 하늘에 장소를 잡아야 할 거요.]

[호호호호! 죽지 않은 자는 항상 입으로 살았다는 걸 표시하려 하지.]

[후후후! 서로의 실력을 파악한 후에 입싸움이라... 뭔가 순서가 바뀐 것같지 않소?]

[본녀를 자극하려 하지마라. 더이상 네놈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여인은 차갑게 말한 후 절벽 쪽에 나있는 동굴을 향해서 걸어갔다.

이 동굴 입구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었으나 인공(人工)이 가미된 흔적이 있었다.

석두공이 넌지시 물었다.

[이곳이 소저의 거처요?]

여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석두공은 느낌으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도 이곳은 생소한 곳이었던 것이다.

(묵령신조가 왜 이리로 와버렸을까?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실제로 그녀도 눈살을 찌푸리며 묵령신조의 이해못할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묵령신조가 지금은 먹이를 찾기 위해 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묵령신조가 돌아오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녀는 동굴 속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한데 그녀가 막 동굴 속으로 들어갈 때였다.

[조심하시오!]

석두공이 뒤에서 소리쳤다.

퍼엉!

하지만 그 순간엔 이미 그녀도 안으로 쌍장을 쳐내면서 뒤로 번개처럼 날아 나오고 있었다.

쿠쾅!

갑자기 굉음이 울리며 거대한 구슬같은 것이 동굴안에서 굴러나와 동굴을 막아버렸다.

아마도 그녀가 들어가면서 어떤 기관을 무의식 중에 움직였던 모양이었다.

여인이 튕겨지듯 날아 나오는 그 순간에 석두공은 반대로 그곳으로 날아갔었다.

두사람의 위치가 뒤바뀌어진 형세가 되었다.

석두공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석구에 음각된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마중천(魔重天)>

 

마중천-!

놀랍게도 석구에는 오백년전에 세상에서 사라졌던 마의 하늘이라는 마중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한때는 천하를 독패하다 시피했었던 마중천이...

스스슷!

여인은 환상처럼 날아와 석구(石球)앞에 섰다.

바로 옆에 석두공이 서있었지만 어떤 경계심도 품지 않은 듯했다.

그녀도 석두공도 석구에 온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녀가 타고 다니는 묵령신조가 바로 마중천의 전설적인 영물이 아니던가?

석구엔 마중천이라는 큰 글자 아래로 작은 글씨들이 적혀있었다.

 

<마중천은 불멸이다.

누가 있어 마중천을 멸할 수 있으랴?

그렇게 자부했었건만 마중천을 붕괴할 수 있는 힘은 있었다.

외부에 적이 없으면 그때부터는 자기 자신이 적이 된다는 사실을 조금만 일찍 알았어도 마중천이 이처럼 자중지란으로 멸망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하나 마중천의 모든 것은 힘,

힘이야말로 마중천의 모든 것,

힘은 여전히 존재하도다.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사용되는 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마중천의 힘이 천하를 질타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뿐이다.

야망이 있는자,

용기가 있는자,

또한 지혜가 있는자는 마중천으로 들라.

그대에게 천하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주리라.>

 

서명도 없었다.

언제 썼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오직 그 글자들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석두공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마치 선동하는 듯한 문구들이로군.]

여인은 그런 석두공을 한번 노려보고는 석구에 손을 댔다.

아마도 밀어버리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석구의 무게는 적게 잡아도 이십만 근은 나갈 것같았다.

간단히 밀어버릴 수 잇는 것이 아니다.

석두공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두두두두...

여인은 공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서 주변의 땅이 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여인이 석구를 밀었지만 밀리지 않았기에 그 충격이 다른 곳으로 전해진 때문이었다.

[기관이 설치됐군.]

여인은 손을 떼면서 중얼거렸다.

석구가 이십만 근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공력으로 움직이지 못할 무게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내가 한번 해보겠소.]

석두공이 나서며 말했다.

여인은 그를 힐끗 보고는 옆으로 비껴섰다.

그녀의 눈빛은 내가 못했는데 네까짓게 별 수 있을라고? 하는 듯했다.

그러나 석두공은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달려들고 있었다.

그는 석구를 비스듬히 밀면서 조금씩 돌렸다.

그그그긍!

거대한 석구가 제자리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석두공은 더욱 힘을 가해서 석구를 돌렸다.

그그그긍!

석구에 새겨졌던 글자는 완전히 옆으로 말려 들어가 버렸다.

한데 그 순간에 다른 쪽에서 작은 틈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점점 커졌다.

그것은 석구에 뚫어져 있는 작은 동굴이었다.

문을 막은 석구에 또 다른 입구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입구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크기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와 넓이였다.

여인의 눈에 반짝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석두공이 말했다.

[먼저 들어가시오.]

여인은 가볍게 콧웃음을 치고는 입구 옆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입구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마치 허깨비처럼 석구를 직접 스며들면서 파고 들어갔다.

스스스슷!

그녀가 지나가는 곳에 고운 모래로 변해버린 석구의 잔해가 남았다.

그녀의 형상을 닮은 구멍이 석구에 만들어졌다.

석두공의 안색이 미미하게 변했다.

그같은 무공이 무엇인지 그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천신폭풍보를 사용하지 않았듯이 그녀도 사용하지 않은 무공이 있었군. 엄청난 무공이다. 저런 정도라면 어떤 공격에도 견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고 들어 상대를 가루로 만들 수도 있겠구나.)

그녀의 무공은 정말 석두공이 경시하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어느새 그녀는 사라졌는지 보이지도 않고 석두공은 무엇이 있을지도 모르는 어두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 × ×

 

휘익!

푸드득!

한마리의 전서구가 방안까지 들어와 날개짓을 쳤다.

만박노조는 바둑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왼손만을 가볍게 움직여서 구리통을 떼어냈다.

장강의 대혈전에서 회심의 승리를 장담한 후에 처절하게 패한 그는 그날 이후로 웃음을 잃어버렸었다.

한데 무관심한 듯 전서를 펼쳐든 그는 갑자기 실소하기 시작했다.

[허허허허! 으허허허허!]

검성은 그의 웃음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려 물었다.

[무슨 일이오?]

직접 한번 보시게나.]

만박이 전서를 내밀었다.

한번 쓰윽 훑어보던 검성, 그도 갑자기 웃음을 흘렸다.

[허허허허... ]

허탈한 듯,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의 웃음은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만박노조가 말했다.

[무림에 실로 늙은 영웅이 탄생했네. 그려.]

검성은 잠시 실소하기는 했으나 만박의 조롱하는 듯한 말에는 맞장구를 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미소만 지었다.

만박노조가 말을 이었다.

[적룡혈운도의 대 선단을 단 일인이 깨뜨려버렸다는 사실을 과연 믿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

[더구나 그 장본인이 우유부단하고 무능하기조차한 해남검파의 진우백이라니...]

[전서구가 잘못 되었을리야 있겠소? 진우백의 본신 무공을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오.]

검성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쨌든 적룡혈운도가 큰 타격을 입었다니 우리로서는 다행이잖소.]

[그렇긴 하네만 이건 뭔가 이상하네. 어떤 흑막이 있을 것만 같은 데 분명히 잡히지 않는군.]

만박노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검성이 말했다.

[만약 이 전서가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큰 힘이 생긴 것이나 다름없지 않소?]

[결코 그렇진 않을 걸세.]

만박노조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의아하게 바라보는 검성에게 말했다.

[진우백은 아우같은 충의지사(忠義志士)가 아닐세. 한마디로 소인배에 가까운 인물이지. 함께 일을 도모할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이 우형이 직접 그의 관상을 본 일이 있으니 틀림없을 것일세.]

검성이 침중하게 말했다.

[소문이 모두 옳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없소이다. 진우백이 어떤 이유로든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사실일 것같소.]

[아마도 해남검파의 창시에 관한 전설을 풀었겠지. 해남검파에서는 그 이외에 숨겨진 무공이나 보물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만박은 옆에서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정확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어림짐작하는 것이 아닌 그야말로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한 가장 타당성 있는 결론인 것이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진우백은 이번 일을 기화로 삼아 곧 중원으로 들어올 것일세. 혼란의 와중에서 자신의 기틀을 닦으려 하겠지.]

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파의 종사라면 그런 야심도 가질 만하지요.]

[한데 그 인물이 문제지. 원래 바보가 욕심은 많은 법이라네.]

만박노조는 뚱하게 말했다.

!

그리고는 좌변의 사삼(四三)에 흰돌을 놓으며 말을 더했다.

[뒤통수를 맞지 않으려면 그자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만 할거네.]

[이런! 뒤통수는 만박형이 치는구료.]

검성은 한웅큼의 흑석을 바둑돌 위에 얹었다. 만박노조가 놓았던 곳은 그가 생각도 못했던 곳이었던 것이다.

 

× × ×

 

묵령신조,

이 전설상의 거조는 대파산을 벗어나 어디론지 날아갔다.

묵령신조는 그 주인의 짐작과는 달리 먹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향해서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경(二更) 무렵,

섬서성의 남쪽에 있는 태백산(太白山)의 상공에 묵령신조가 나타났다.

고오오오...

그것은 태백산의 중턱에 있는 침엽수림 속으로 내려갔다.

침엽수림 속에는 돌로 지어진 한채의 석옥(石屋)이 있었다.

푸드드득!

묵령신조는 마치 자신의 집을 찾아들기라도 하듯이 그 석옥의 지붕위에 내려앉았다.

집보다 커보이는 묵령신조가 내려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석옥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석옥에서 사람이 나왔다.

붉은 얼굴에 배꼽어림까지 늘어뜨린 검은 수염은 그를 미염공(美髥公)이라 칭할수 있을 만큼 기품있어보이는 노인이었다.

꾸꾸!

묵령신조가 그에게 부리를 가져갔다.

[오오! 묵아! 네가 돌아왔구나. 이제 때가 되었구나.]

노인은 격정어린 목소리로 말하며 묵령신조의 부리를 쓰다듬었다.

꾸꾸!

묵령신조가 기쁜 듯이 소리를 냈다.

잠시 후, 노인은 묵령신조의 부리를 두드리며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내 말을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줘서 고맙구나. 그럼 이만 돌아가도록해라. 우리가 다시 만날 날도 멀지 않았느니라. ]

꾸에!

묵령신조는 한바탕의 긴 울음소리를 남기고 암천으로 날아올랐다.

묵령신조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가에 물기가 번져나왔다.

[자봉(紫鳳)! 불쌍한 녀석... 이제야 기억을 되찾겠구나. 이 할아비를 원망해라.]

노인은 왜소해진 것같은 등을 뒤로 하고 석문을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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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검룡난무 (3)

 

 

 

 

카아아아!

묵령신조가 괴성을 지르며 석두공이 있는 곳을 향해 내려꽂혔다.

그 가공할 기세에 바다물이 밀렸다.

(엄청난 고수다!)

석두공은 무림에 재출도한 이후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묵령신조보다도 묵령신조를 타고 온 천상의 선녀같은 여인이 그의 마음에 은은한 두려움을 주고 있었다.

석두공은 검룡을 팽개치며 번개처럼 천왕저를 뽑아들었다.

(금강일타(金剛一打)!)

파아앗!

그의 몸이 묵령신조를 마주쳐가면서 빗살처럼 치솟아 올랐다.

크아아아!

묵령신조가 괴성을 지르며 강철같은 검은 발톱을 휘둘렀다.

휘우우웅!

발톱사이에서 일어나는 경풍만으로도 철판을 갈가리 찢어버릴 듯했다.

카카캉!

석두공의 천왕저는 묵령신조의 발톱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천왕저는 과연 천고의 보물,

끼아아악!

묵령신조가 돌연 흉폭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올랐다.

천왕저에 의해 그의 쇠기둥 같은 발톱 두개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

묵령신조 위의 여인은 석두공의 그같은 행동에 상당히 놀란 듯했다.

묵령신조로 말하면 도검불침의 영물일 뿐만 아니라 직접 초식을 배워서 그 강함에 있어 인간이 대적하기 힘들었다.

한데 단 한번의 충돌에 묵령신조의 발톱이 부려질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묵령신조가 갑자기 날아오름으로 인해 하마터면 그녀는 자칫 떨어질 뻔 했다.

석두공은 묵령신조를 뒤쫓아오르면서 고함쳤다.

[노도파암(怒濤破岩)! ]

천왕저가 노도장(怒濤杖)의 수법으로 휘둘러졌다.

고오오오!

파형(波形)의 강기가 묵령신조를 향해 뻗어갔다.

꽤액!

묵령신조는 위기를 느꼈으나 미쳐 피할 수 없는 듯 괴성을 질렀다.

바로 그 순간 묵령신조위의 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명공강(冥空罡)!]

파츠츠츠!

그녀의 손바닥에서 어둠처럼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석두공은 천지가 암흑속에 뒤덥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팟!

헌데 검은 기운이 그의 몸을 덮어씨우는 순간 석두공의 몸은 두개로 나뉘어졌다.

분신둔형술(分身遁形術),

동호천이 고대에 존재했었다는 전설상의 무공을 본 따서 스스로 복원시켜 만든 바로 그 무공이었다.

그 놀라운 위력은 이미 석두공이 몇 번이나 펼쳐봄으로써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여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어둠같은 검은 기운도 그의 갈라진 몸을 스쳐지나갔다.

쐐액!

여인이 놀라는 사이에 분신은 다시 합쳐지며 순식간에 그녀의 눈앞에 다다랐다.

그곳은 바로 묵령신조의 등이었다.

파직!

여인의 손가락이 부채살처럼 펴지면서 열줄기의 백광이 석두공을 향해 뻗어갔다.

석두공은 그녀의 공격을 마주 치지 않고 묵령신조의 깃털을 움켜쥐며 돌아서 피했다.

묵령신조는 수직으로 치솟고 있었다.

새애애앵!

하루에 만리를 난다는 묵령신조는 하늘을 향해 똑 바로 솟구쳤다.

석두공은 숨이 가빠옴을 느꼈다.

여인은 묵령신조의 등에서도 마치 평지처럼 움직이며 석두공을 공격해왔다.

석두공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다라는 말이 있다.

달팽이의 한쪽 뿔에 있는 나라가 있는데 영토에 욕심을 가져 다른 쪽 뿔 위에 있는 나라를 공격하여 수십 만이 죽고 수백 만이 부상을 당했으며 말과 전차가 들판에 나뒹굴었다는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물론 이것은 전국책(戰國冊)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로 한갓 비유에 불과하다.

한데 그와 비슷한 상황이 땅에서 수십리나 높이 날아오른 묵령신조의 등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다만 전쟁터는 달팽이가 아니라 묵령신조의 등이었으며 적은 서로가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실로 수십 만 수백 만이 죽고 부상하는 전장에 비하여 오히려 더했으면 더했다.

펑펑!

꾸에에엑!

두 남녀의 장력이 서로 부딪힐 때마다 묵령신조는 고통에 겨운 비명소리를 지르며 허공에서 몸을 비틀었다.

석두공과 여인은 평지에서 싸우듯이 묵령신조의 날개위와 등위를 날아다니며 싸웠다.

팽팽한 접전이었다.

활시위를 당긴 듯이 팽팽하면서도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치열한 접전 속에서 두 사람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온 정신을 싸움에 쏟느라 두 남녀는 자신들을 태운 묵령신조가 어디로 날아가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석두공은 삼권칠각(三拳七脚)을 날리며 생각했다.

(천왕저를 가지고도 이 여인을 제압할 수가 없다. 이 여인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 이미 초식의 제한을 벗어난 자...)

여인은 양강음유(陽剛陰柔)의 모든 종류의 수법을 전혀 충돌없이 펼쳐내며 석두공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는 현문정종의 무공과 함께 마공도 흘러나왔으며 그것들은 그녀의 손에서 절묘한 배합을 이루어 원래의 힘보다 몇 배나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공방에 있어서 석두공도 그 여인도 한치의 빈틈이 없었다.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 것도 모두가 간발의 차이이상 되지 않았으며 공격을 함에도 치밀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전혀 힘의 손실 없이 뻗을 만큼 뻗고 거둘만큼 거둘 뿐이었다.

상대를 묵령신조의 등에서 밀어낼 수만 있어도 이기는 반면에 조금이라도 밀렸다간 아득한 지상으로 곤두박질 치고 만다.

손가락 하나의 움직임도 긴장으로 인해 땀이 배어져 나올 정도였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움직임이 천천히 둔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느리게 움직이며 춤을 추듯이 무공을 펼쳐냈다.

하지만 그 흉흉함은 빠를 때에 비해서 십배는 더했다.

서릿발 같은 여인의 얼굴엔 장엄한 노을빛 기운이 서려있었고 석두공의 몸에서는 천신같은 기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츠으으!

여인이 일장을 천천히 밀었다.

석두공은 그 일장을 받는 자신의 초식이나 내공, 그 무엇에 있어서나 조금의 틈만 있어도 여인은 가공할 빠르기로 공격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처하는 방법은 자신도 여인처럼 전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장력을 밀어내는 것 뿐이었다.

장풍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

석두공과 여인의 손바닥이 직접 마주쳤다.

그렇지만 석두공도 여인도 상대방의 손바닥에 실린 힘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힘을 완전히 안으로 갈무리 한 상태이기 때문에 발해지기 전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공기가 서로 부딪힌다 하더라도 그들의 일장이 부딪힌 것보다는 격렬하다.

두사람의 허깨비같은 쌍장은 점차 빨라지다가 다시 느려졌다.

그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솟고 있었다.

고수들은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석두공도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끼려 하고 그녀 또한 마음을 비우고 석두공의 마음을 읽고자 한다.

한데 이 와중에서 아주 기이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단지 느낌으로 상대의 생각을 짐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무공의 정점에 거의 달해 있는 두 사람이 진정한 적수를 만남으로 인해서 얻을 수 있는 복연(復緣)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로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읽혀지고 있었다.

서로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다가 마침내 멈춰버렸다.

“....!”

“....!”

말없이 묵령신조의 등에서 마주보며 입을 다물고 화석처럼 되어갔다.

서로가 상대방을 죽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이한 공감대의 형성이었다.

쏴아아!

그 사이에도 쉬지 않고 날아가던 묵령신조는 바람을 타고 어느 깊은 산곡(山谷)으로 날아내리고 있었다.

천고의 영물이라는 그놈으로서도 너무도 피곤한 비행이었기에 잠시 쉬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덧 해도 서산너머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부터 시작해서 하루 낮을 꼬박 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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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검룡난무 (2)

 

 

 

풍덩!

석두공은 무엇인가가 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잠잠해져 버려 경각심을 갖지도 않았다.

뇌주탄은 안개에 휩싸여 있고 그 안개를 뚫고 해남검파의 범선은 소리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를 가노라니 배에 걸린 등불들이 하나둘 반딧불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적룡혈운도의 선단이오.]

진우백이 석두공의 곁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백금으로 만들어진 검룡이 들리워져 있었다.

석두공은 점차 가까워지는 선단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어디로 가시려오?]

[선실에... 그녀를 깨워야 겠소.]

석두공은 진우백의 물음에 그렇게 대답했다.

진우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필요없소.]

[...?]

[그녀는 이미 배에서 내렸소.]

[배에서 내리다니? 이 바다 한가운데서 말이오? ]

석두공이 놀라며 물었다.

진우백이 끄덕였다.

[그렇소. 그녀는 내게 이런말을 전해주라고 했소. 적룡혈운도를 철저히 쳐부수라고... ]

[...!]

석두공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어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분노같은 것이 그의 가슴속에서 타올랐다.

누구를 향한 분노인지도 알 수 없었다.

입을 열기만 하면 불길이 토해질 것만 같았다.

(!)

진우백은 그에게서 주체하지 못할 힘을 느끼며 몇 걸음 떨어졌다.

석두공은 칼로 자르듯이 내뱉었다.

[검룡을... 검룡을 잠시 빌려주시겠소?]

진우백은 흠칫했으나 검룡을 그에게로 내밀었다.

검룡을 움켜진 석두공은 분노에 가득한 눈초리로 적룡혈운도의 선단을 노려보았다.

배는 점점 가까이 접근하고 있었다.

삐익! 삐익!

갑자기 사방에서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네척의 작은 쾌속선이 진우백의 범선을 포위하고 있었다.

앞쪽에 막아선 배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디서 온 배냐? 이곳이 적룡혈운도의 선단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진우백과 그의 제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같은 안개속의 새벽인데도 적룡혈운도에서는 삼엄한 경계를 풀지않고 있었던 것이다.

진우백의 눈이 석두공의 얼굴에 머물렀다.

석두공이 말했다.

[공격을 명하시오. 문주만 내 곁에 남아있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물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시오. 닥치는 대로 배를 부수고 위에서 내려오는 자들을 베라고 하시오.]

진우백은 나직한 음성으로 곁에 있는 수하에게 말했다.

[모두에게 전해라. 즉시 공격한다. 물속으로 뛰어들어라.]

그의 명령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때였다. 범선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다시 쾌속선에서 소리쳤다.

[당장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격침시켜버리겠다.]

그 말은 엄포가 아니었다.

쾌속선들 위에는 각기 십명 남짓 되는 궁수들이 있었고 그들의 손에는 푸른 기름불이 타오르는 화살들이 장전되어 있었다.

그때였다.

!

그들의 배가 기우뚱하면서 궁수들의 몸이 흐트러졌다.

그리고 동시에 해남검파의 제자들이 물속에서 튀어오르며 그들을 벴다.

번쩍!

[크악!]

[크윽!]

촤아아아!

진우백의 배는 멈추지 않고 바람을 받은 속도 그대로 선단을 향해서 돌진해 갔고 그 배에는 오직 진우백과 석두공만이 타고 있었다.

뿌우! !

선단에서 경계의 나팔이 울리고,

둥둥둥!

배의 방향과 움직임을 지시하는 북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 북소리에 따라서 적룡혈운도의 범선들은 대오를 형성하며 진우백의 배를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이백 여 척의 범선들...

안개속에서 물살을 가르며 전진하는 그것들의 위용은 과연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보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어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장관이었다.

[배를 조종하시오. 저들은 한가운데로 돌진하시오.]

석두공이 진우백에게 명령했다.

진우백이 놀라며 소리쳤다.

[그건 불가하오. 저들은 솔연진(率然陣)을 치고 있소.]

그의 음성은 완강했다.

 

솔연진...

솔연이란 원래 특이한 습성을 가진 한마리의 뱀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뱀은 공격과 수비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머리를 치면 꼬리가 반격하고 허리를 치면 머리와 꼬리가 반격한다고 한다.

머리와 허리, 그리고 꼬리가 자연스럽게 일체가 되어 움직이기 때문에 솔연이라고 한다.

이것을 후세 사람들이 병진(兵陣)을 구축하는 기본으로 삶고 있었다.

이렇듯 적룡혈운도의 선단은 솔연진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가운데를 치고 들어간다면 필연적으로 양쪽에서 진우백의 배를 포위하며 격침시켜 버릴 것이다.

진우백이 말했다.

[솔연진을 공략하는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 뿐이오. 그것도 걸려들어야만 가능하지만... ]

[...!]

석두공은 그가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자 못마땅한 듯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진우백의 자신의 생사와 해남검파의 운명이 이 일전에 걸려있음을 아는지라 물러서지 않았다.

[먼저 공격해 나오게 유도해야 하오. 그리하여 먼저나오는 부분을 치고 물러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흐물어뜨리는 것이 정법이오.]

[나는 솔연이 뭔지는 모르오. 하지만 이것은 알고 있소.]

석두공이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지금 진문주의 제자들은 이 배를 중심으로 해서 물속으로 퍼져나가고 있소. 그렇지 않소?]

[그렇소.]

진우백이 끄덕였다.

석두공이 차갑게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의 중간을 치는 것이 옳지 않소?]

[...?]

[진문주는 욕심만 있었지 보기보단 어리석군.]

석두공은 그가 자신의 말귀를 알아 듣지 못하는 듯하자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진우백의 눈썹이 꿈틀거리며 눈에서 흉광이 뿜어져 나왔다.

[만약! 실패한다면 당신의 목숨으로 보상하시오.]

[배를 조종하시오.]

석두공은 다시 소리쳤다.

진우백은 굳은 표정으로 배를 움직였고 석두공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겉과 속이 다른 자였군! 사람을 잘못 봤어!]

불현듯 그의 뇌리 속으로 번개불같이 생각이 스쳐갔다.

(혹시 저자가 그녀를...)

강한 불안이 그의 심장을 조여왔다.

하지만 그는 강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녀의 무공은 진우백보다 훨씬 강하다. 또한 그녀가 어떤 술수에 당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안감은 떨쳐지지 않았다.

그때 불덩어리들이 유성처럼 배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쉬이이이이...

적룡혈운도의 선단에서 불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쐐애애액!

불화살들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요란하게 귀청을 뒤흔들었다.

화르르르...

불화살이 돛에 꽂히자 불이 붙으며 불길이 크게 솟았다.

그러나 배는 달려오던 힘에 의하여 여전히 선단의 중앙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쉬이이이이...

쉬이이이이...

불화살들은 새벽바다를 대낮같이 밝히면서 진우백의 배로 날아왔다.

석두공과 진우백이 탄 배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된 채 달려들고 있었다.

[미친 놈들이다! 피해라!]

[아무도 없는 빈배다! 속았다.]

적룡혈운도 측에서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둥둥둥둥...

북소리가 급박하게 들리며 배들이 방향을 틀었다.

돌진해 오는 진우백의 배와 충돌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선단은 좌우로 갈라지며 진우백의 배에 길을 열었다.

그때 선단의 외곽에 있던 배들이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배에 물이 샌다. 놈들은 물속에 있다!]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잠수조는 물속으로 들어가 놈들을 죽여라!]

분수자(分水刺)를 가진 자들이 물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바다속에서 핏물이 번져나기 시작했다.

물속에서 해남도의 검수들과 적룡혈운도의 수하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석두공의 주위는 불길로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마치 하늘을 받치기라도 한듯이 우뚝 서있는 석두공의 곁으로는 불길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강기에 가로막힌 것이다.

진우백은 검풍을 일으켜 불길을 다가오지 못하게 하며 소리쳤다.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오?]

[계속 저들에게 부딪혀 가시오. 배는 금방 가라앉지 않소.]

석두공은 냉정하게 말했다.

진우백은 이제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산더미같은 거대한 불덩어리가 된 자신의 배가 다가갈 때마다 적룡혈운도의 배들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우왕좌왕하면서 대오를 잃어버리는 것을 그는 직접 목격했던 것이다.

이같이 전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말면 반드시 패한다.

혼란이란 지휘체계밑 명령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말한다.

저돌적이고 무식하게도 보이는 석두공의 전법이지만 그는 단 한척의 배로써 이백 여 척의 배들을 혼란으로 몰아넣어버렸던 것이다.

그가 탄 배의 윗부분은 거대한 불꽃과 함께 연기도 사방으로 뿜어낸다.

안개, 그리고 연기, 무섭게 다가오는 화염선,

이백 여 척의 배들은 시야가 가로막히고 달려드는 화염선으로 인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와중에 속속 가라앉고 있었다.

해남검파의 제자들은 수공(水功)에 있어서 어느 문파에도 뒤지지 않는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진우백이 견디기 어려운 것은 피부를 익혀버릴 듯한 열기로 인해 옷자락이 계속 불에 붙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연이어 옷을 털어 불을 끄고 있었다.

쿵쿵!

쿠르르릉!

[으아악!]

적룡혈운도의 배들끼리 안개와 연기 속에서 방향을 부딪히며 가라앉았다.

배들은 벌써 반이 가라앉아 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일백 척 정도, 그들은 공격할 대상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불타는 배를 무엇으로 공격한단 말인가?

? 말도 안되는 소리다.

끼이이끽!

그러나 진우백과 석두공이 타고 있던 화염선도 드디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미 불이 갑판아래로 들어가 배가 깨어지고 있었다.

배가 크게 흔들렸다.

[이대로 있을 것이오?]

진우백이 석두공을 향해 큰소리로 외쳐 물었다.

바로 그때 석두공의 오른손이 높히 들려졌다.

쩌어엉!

그의 오른손에 있던 검룡이 불빛을 받아 빛났다.

 

[검룡풍운뇌섬(劒龍風雲雷閃)!]

 

석두공의 입에서 웅혼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 외침은 아수라장이 된 바다위의 대기를 찢으며 퍼져나갔다.

동시에 백금으로 만들어진 검룡이 한줄기 빛이 되어 나르며 뇌전처럼 적룡혈운도의 배위로 떨어졌다.

쿠아아앙!

콰아아아...

천지개벽하는 듯한 음향과 함께 거대한 범선이 파괴되었다.

쿠아아아!

검룡은 다시 물속에서 승천하여 올랐고, 그것은 실을 꿴 바늘이 옷을 깁듯이 배들위로 차례차례 떨어져 내렸다.

꽈장창!

크악!”

케엑!

천지는 온통 깨어져 나가는 배들이 내는 굉음과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지르는 인간들의 비명으로 가득차는 듯했다.

진우백은 넋을 잃고 있다가 자신의 옷자락에 붙은 불을 황급히 두드려 껐다.

(검룡의 진정한 위력이다! 저것이었다!)

그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석두공은 손을 저어 검룡을 조정하면서 악마처럼 섬뜩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머리 속으로는 소령이 진우백을 통해서 전했다는 한마디가 맴돌고 있었다.

(적룡혈운도를 철저히 부수라고? 그래, 그렇게 해주지!)

쿠오오오오...

다시 한척의 배가 산산조각이 났다.

뇌주탄의 여기저기엔 가라앉는 배들이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가 생겨났고 그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는 자들의 비명이 귀청을 찢을 듯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멈춰라!]

돌연 허공에서 마치 여신의 속삭임인듯 들리는 음성이 있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싸늘한 한기가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그것은 귓전에서 속삭이는 듯 뇌주탄 전역에 조용히 퍼져나갔다.

석두공은 흠칫 놀라며 손을 거두었다.

고오오오!

검룡이 그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순간적으로 시간마저 여인의 음성을 따라서 멈춰버린 듯하였다.

사방이 더 이상 고요할 수 없을 만큼 고요해졌다.

고오오오오...

허공에 어둠보다 검은 묵빛의 거조가 나타났다.

 

-묵령신조(墨靈神鳥)!

 

바로 묵령신조였다.

석두공은 그처럼 거대한 새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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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劒龍亂舞 (1)

 

 

촤악! 촤악!

해남검파의 정예고수들을 실은 배가 불도 켜지 않은 채 물결을 해치며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었다.

물결은 잔잔했으며 바람은 순풍이라 배는 뇌주탄을 향해서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진우백은 선실에서 검룡을 오른팔에 끼고서 그 비늘에 적혀있는 초식들을 연구하고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한가지라도 익혀두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주님! 어떤 배가 우리 해남도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적룡혈운도의 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몇 척인가?]

진우백은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척 뿐입니다.]

진우백은 밖으로 달려나가 제자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과연 한척의 범선이 동산령의 선착장을 향해서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해천월이 본파를 칠 모양이다.]

진우백은 입술을 깨물면서 말했다.

승부는 항상 비정한 것, 이긴다 하더라도 온전히 이기는 것은 없으며 진다고 완전히 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뇌주탄으로 적룡혈운도의 선단을 기습하기 위해 가고 있는 지금 적들도 해남검파이 본거지를 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돌아간다면 피해만 입을 뿐 성과는 조금도 거두지 못한다.

남아있는 제자들의 무공은 약하고 가족들이 염려되기는 했지만 돌아갈 순 없다.

진우백은 무겁게 내뱉었다.

[빠른 속도로 항진해라. 우리는 이 일전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살아서 돌아갈 수도 없다. 가족들을 구할 수 있는가 없는가도 오직 이 일전에 달려있다.]

해남검파의 제자들의 얼굴에 비장한 결심이 흘렀다.

그때 돌연 다른 선실에서 소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남검파는 무사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되요. 의심스러우면 잠시 배를 멈추도록 하세요.]

[...?]

[...?]

적룡혈운도의 고수들이 탄 배가 해남검파의 본거지가 코앞인 동산령으로 접근하고 있는 데도 무사할 거라니...

해남도의 제자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배는 멈추어서고 해남도로 접근하는 적룡혈운도의 배를 보기 위해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질 만큼 제자들이 쏠렸다.

적룡혈운도의 배는 점차 동산령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꿀꺽!

누군가가 긴장을 참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가슴이 타는 것같은 심정을 어쩔 수 없었으리라.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 저저... ]

쿠오오오!

적룡혈운도의 배가 한자리에서 맴도는 것같더니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만세!]

[만세!]

해남도의 제자들이 만세를 부르며 환희의 함성을 질렀다.

적룡혈운도의 배는 그 사이에 완전히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 × ×

 

[그 늙은 스님은 물재주도 뛰어나신 모양이군.]

석두공은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웃으며 말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재주가 뛰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명한 사람이라면 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거예요. 발 달린 짐승이 땅위에 오른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을 테니까요.]

[아마도 해변으로 하나씩 나올 때 마다 늙은 스님에게 제압당하겠군. 오지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말이야.]

석두공의 말에 소령이 웃었다.

[오지산보다 염라국이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죠.]

[그렇게 웃을 때는 도무지 저승사자 같지가 않소.]

석두공이 갑자기 심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소령은 몸이 굳어지며 물었다.

[왜 제가 저승사자지요?]

[당신이 가는 곳마다 죽음이 널려있으니 저승사자가 아니고 뭐겠소?]

석두공은 침상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소령은 마른 손을 씻으며 불안스러운 듯이 선실 안을 거닐었다.

[....제가 당신을 끌고 다니면서 사람을 많이 죽이는게 싫은 거죠? 그렇죠?]

소령의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에 석두공은 내심 당황하며 말햇다.

[그렇다고는 말하지 않았소.]

[무림인으로서 어지러운 때에 살며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무림이라는 게 어차피 그렇고 그런게 아니예요?]

소령의 어투에는 어떤 비애같은 것이 진하게 배여있었다.

석두공은 무어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다는 생각은 들었으나 그말이 틀린 것이라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소령의 신분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용의주도하게 살인을 하고 있다. 비록 석두공이나 늙은 승려가 그녀의 수족처럼 움직였다고 하더라도...

소령은 석두공의 맞은 편에 있는 침상에 가서 몸을 돌려 누웠다.

흐느끼는지 그녀의 어깨가 가는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석두공의 마음에 후회가 밀려왔다.

여자가 우는 것을 지켜본다는 것은 남자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라는 것을 석두공은 그때 처음 알았다.

또한 여인의 눈물은 용광로의 쇳물보다 뜨거워서 남자의 철석같은 마음도 녹여버린다는 것도 알았다.

[말이 과했다면 용서하시오.]

석두공은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

소령은 여전히 어깨의 잔 떨림만을 보일 뿐이었다.

석두공은 다시 말했다.

[앞으로 소저에게 실례가 되는 말은 결코 하지 않도록하겠소. 무례를 용서하시오.]

[...!]

소령의 등을 바라보며 석두공은 선실의 문을 나섰다.

이상하게도 가슴속이 저리듯이 아파왔다.

찢어지는 듯하면서도 공허한 것하기도 하고 텅 빈 무엇이 있는가 하며 무거운 것이 가슴 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같기도 했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는데 석두공은 중요한 무언가가 물살 속으로 흘러서 영원히 뒤로 사라져버리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해(情海)는 깊고 깊어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산란해지는 것은 오로지 정에 발을 딛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나도 어느새 정해에 깊숙히 빠져 있었구나.]

그는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탄식했다.

눈앞으로 다가온 뇌주탄의 결전도 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무심해졌다.

석두공은 자신의 마음에서 무엇인가가 비워진 듯하자 모든 것이 들어차기를 거부하고 있는 듯한 것을 느꼈다.

 

한편 소령은 선실의 자기 침상에 돌아누운채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음모만 깨뜨리면 될 것을 지금까지 사람도 많이 죽였으니... 나는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을 뿐인데... 이젠 나를 좋아하지 않겠지... )

그녀의 면사가 눈물로 촉촉히 젖어들고 있었다.

하나 다음 순간 그녀는 손바닥으로 눌러서 눈물을 훔친 후 발딱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된 것... 이렇게 된 것... 이렇게 된 것... ]

그녀는 다부지게 입술을 깨물었다. 정의 사슬을 매몰차게 끊어버리는 이빨의 마주침이 있었다.

비애가 밀려온 때문일까?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 그녀를 휘청이게 했다.

갑작스런 그 현기증이 의아하긴 했지만 그렇잖아도 상심해있던 그녀인지라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으로써 모든 것을 잊으버리려 했다.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이 꿈속으로 침잠하는가?

소령은 아득히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의식의 끈을 놓아버리고 나락으로 떨어져 내려갔다.

 

      ***

 

[호오! 이거 아주 아름다운 계집이군 그래. 이런 물건을 우리가 그냥 보내면 사람이 아니지. 암 사람이 아니야.]

귀두도(鬼頭刀)를 든 장한이 가슴에 무성하게 난 털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그러자 서생차림을 한 자가 백옥선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말했다.

[하하하! 이를 말인가? 우리야 절에 시주는 못해는 여인들에게 육보시(肉布施)는 잘 해주는 사람들이 아닌가? 더구나 이 계집은 성질이 못되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으니 우리가 안아주지 않으면 평생 처녀귀신이 되어 죽을 거야.]

[낄낄낄! 아무튼 계집들의 재주란 게 참으로 묘해, 자기 말을 하는 줄 알면서도 못들은 척하고 시치미를 뚝 떼는 건 보통 공력이 아니란 말이야. 저기 저 표정 좀봐. 아예 우리의 존재를 인정하지도 않으려고 애쓰는 표정이 역력하잖아.]

몸을 흔들흔들 하며 건달같은 사나이가 말했다.

그러자 귀두도를 든 장한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어디 그뿐인가? 원래 계집들에겐 그것 말고도 절묘한 신공이 있는데 그건 망원망신공(忘爰忘神功)이라고 하네.]

서생이 섭선을 살랑이며 짐짓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망원망신공? 그게 뭔가 처음 듣는 거네.]

[말 그대로 잊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잊어버리는 기술이라네. 계집들로서 잘먹고 잘 사는 것들은 다 이 신공을 깊이 터득했지. 일부 그렇지 않은 여자들만 평생 괴롭게 살 뿐이네.]

귀두도의 장한이 건달 대신 대답했다.

서생이 부채를 접어 자신의 손바닥을 치면서 대소했다.

[정말 그렇네. 여자들은 정말 그런 신공을 익히고 있지. 여자에 대해선 난 우습게 보는 사람이네만 그 신공에는 정말 감탄하고 있지. 심지어는 동시에 여러 사내에게 윤간(輪姦)을 당한 일 같은 것도 그저 상상속에서 잃어난 것인 듯 간단히 잊어버리거든.]

[여자에게 뭔가를 기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야. 특히, 그 여자에게 자신이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많다면 말이야.]

건달이 입을 찢을 듯이 벙글벙글하면서 말했다.

소령은 순간 소름이 쫘악 끼쳤다.

(저들이 지금 내말을 하고 있었나? 여긴 대체 어디지?)

몸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천근만근인 듯 손가락하나 까닥할 수가 없었다.

소령은 속으로 소리쳤다.

(석두공! 석두공은 대체 어디 간 거야?)

하지만 그녀의 소리는 목구멍에 걸려서 입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그녀의 인형처럼 굳어진 눈으로 다가오는 건달같은 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번들거리는 눈빛이 소령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 했다.

소령은 그자가 어떤 상상을 하고 있는지 직감으로 알았다.

(! 이건 꿈이야. 꿈이 틀림없어.)

그녀는 부르짖었으나 눈앞의 것들은 너무도 선명했다.

귀두도의 장한이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푸하하! 저 놀란 토끼 눈 좀 보라구. 난 그일 보다도 그 전에 이렇게 구경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네.]

[난 입술이 더 좋아, 살짝 벌어진 빨간 입술이 고혹적이지 않은가? ]

서생이 입가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령은 그가 격고 있는 일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해서 자신이 이 세놈의 음적들과 함께 있게 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누워있는 곳은 작은 배의 갑판이었다.

마치 건져올려진 물고기처럼 그녀는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것이었다.

건달이 소령의 발목을 잡으며 말했다.

[흐흐흐! 너는 우리가 건져올렸어.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으니 죽더라도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죽는 게 이승에서의 죄를 조금이라도 더는 것이야.]

소령은 내심 절망감에 소리쳤다.

(아 한 줌의 진기만 있어도...)

건달의 손은 그녀의 물에 젖은 흑색치마를 걷어올리고 있는데 소령은 조금의 반항조차 할 수가 없었다.

[히야! 기가 막히는군! 아직까지 이런 계집은 구경도 못해봤어. 이 허벅지 하나만 하더라도 숨이 막히게 만드는군. 꿀꺽! ]

건달이 그녀의 허벅지로 얼굴을 가져가며 소리쳤다.

허벅지 사이의 깊은 곳을 보려고 몸을 업드리는 바람에 그자의 팔꿈치가 소령의 허벅지에 눌러졌다.

(아얏!)

소령은 심한 통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한가닥의 빛이었다.

굳어져 있던 그녀의 몸으로 가해진 건달의 작은 압박은 그녀의 몸이 깨어나게끔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소령은 자신의 혀끝을 깨물었다.

한입 가득 피가 머금어지면서 전신의 기가 순환하기 시작했다.

건달은 이제 막 그녀의 은밀한 곳을 가린 손바닥만한 작은 천을 떼어내려 하고 있었다.

푸악!

순간 소령의 입에서 피안개가 뿜어졌다.

[!]

건달이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퍼억!

그때 소령의 발이 그자의 허리를 찼다.

하지만 내력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건달은 비틀거렸을 뿐이었다.

귀두도의 장한과 서생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곱게 죽지 못할 계집이로군... 육시를... ]

소령은 자신이 그들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몸속의 내공은 아직도 밑바닥 상태이다.

그녀는 뇌려타곤의 수법으로 몸을 떼굴 굴러 물속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풍덩!

[이런! 계집이 물로 들어가 버렸어. 반쯤 죽었거나 실성한 것같기에 혈도를 누르지 않았더니... 에잇! ]

건달이 벗겨들었던 소령의 신발을 팽개치며 분을 터뜨렸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설마 내가 자고 있는 사이에 해남도의 배가 파괴되어 버렸단 말인가? 하지만... 어떻게 내가 조금도 모를 수가 있었을까?)

소령은 물속에 드러누워 오로지 호흡에 의지하여 해류를 따라 흘러가며 생각했다.

방금 전에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실로 눈앞이 아찔해졌다. 자칫했으면 짐승같은 자들에게 능욕당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생각은 두서를 잡을 수 없을 만치 혼란스러웠다.

앞의 생각과 뒤의 생각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없었다.

분명히 그녀는 석두공과 다투고 나서 갑작스럽게 현기증이 나서 침대에 누웠다가 잠이 든 것까지는 기억해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 자신이 그 세 음적의 배에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들의 말로 미루어 생각해 볼때 그들이 자신을 바다에서 건져올린 것같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소령은 물결에 몸을 맡긴채 흘러가면서 자신의 공력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무엇인가가 자신의 공력을 크게 해친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몸의 다른 곳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한데도 그녀의 공력은 심한 손상을 입어있었다.

(회복하려면 한달은 걸리겠어... 한데 그는 어떻게 됐을까?)

소령은 석두공을 생각하곤 마음이 심란해졌다.

얼굴의 면사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남쪽바다의 뜨거운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까맣게 조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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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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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七 章

 

               海南島寶物

 

 

오지산 중턱에 해남파는 자리잡고 있었다.

 

-해남파(海南派)!

 

비록 해외의 변방에 있기는 하지만 그 규모에 있어서나 명성에 있어서나 여느 중원의 명문대파에 뒤지지 않았다.

오지산 중에 우뚝 서서 멀리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남파의 성곽과 전각들은 해왕(海王)의 풍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검룡전(劒龍殿)>

 

해남파 장문인 진우백(晉祐伯)의 거처이자 해남파 창설의 전설이 서려있는 곳,

밤이 늦도록 켜져 있는 불빛에 그림자가 일렁이고 있다.

오십을 바라보는 중년인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얼굴이 너무 희어 약간 음침해보이기까지 하는 인상을 지닌 이 인물이 바로 해남파의 당대 장문인인 진우백이다.

[진정 그들을 상대할 힘은 어디에도 없단 말인가?]

진우백은 고뇌에 어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뚜벅뚜벅!

뱅글뱅글 맴도는 탁자의 주위엔 그가 일으킨 바람을 따라 촛불이 길게 늘어지고 진우백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날...]

그는 나직하게 내뱉었다. 그의 눈길이 잠시 탁자위에 펼쳐진 피빛 서찰에 머물렀다.

혈운(血雲)속에서 적룡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 그려진 서찰에 검은 글씨로 몇 자 적혀있었다.

 

<...준걸(俊傑)은 시류(時流)를 알며 현명한 자는 허리를 숙이기 마다하지 않는다했다.

우리 해외의 세력이 중원에서 소외되어 온지 벌써 기 백년, 그동안 쌓여온 억압된 분노를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천운이 돌아 우리에게 천년의 대운이 돌아왔으니 마땅히 해외의 우리는 함께 힘을 모아...

... 중략...

해남도에 우리 적룡혈운도의 제자들을 보내는 바이니 진도주께서 익히 양해해 주시리라 믿소.

하나 이것은 모두 본 도주의 생각일 뿐, 만에 하나 진도주의 뜻이 본인과 다르다면 뇌주탄(雷州灘)에서 자웅을 결하길 원하오.

금월 초닷새까지 소식이 없으면 본인의 제의를 승락한 것으로 알겠소.>

 

[내일까지다.]

진우백은 침침하게 내뱉었다.

[놈의 의도를 빤히 알면서도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해남도를 수중에 넣고자 마음먹은 놈이다. 단지, 그것을 조용하게 하고 싶을 뿐...]

바로 그때였다.

[그들이 당신을 노리는 것이 겨우 해남도를 탐낸 때문이었을까요?]

어디선가 여인의 영롱한 음성이 들려왔다.

진우백이 몸이 반사적으로 돌아섰다.

그의 눈앞에 흑의를 입은 면사여인이 서있었다.

[누구요?]

진우백은 무거운 음성으로 내뱉었다.

면사여인이 말했다.

[지금 급한 것은 내가 누군지 묻는게 아닐 텐데요? 적룡혈운도의 해천월이 당신을 노리는 진정한 이유를 알고 싶지 않으셔요?]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지 진우백은 잠시 벙어리가 되었다.

적룡혈운도가 세력을 확장하는 와중에서 같은 해양의 세력인 해남파로도 손을 뻗었다고만 생각한 진우백이었던 것이다.

면사여인이 다시 말했다.

[만약에 당신이 뇌주탄으로 가게 되면 그땐 해남파가 세상에서 없어지겠지요. 그리고 가지 않는다면 무림에서 당신의 존재는 무의미한 것이 되겠죠. 선택은 당신이 하는 거예요. 하지만...]

문득 진우백은 그녀가 자신을 도와 줄 수도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신음을 삼키며 말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주시겠소?]

[호호호! 어째서 장로들과 의논하지 않고 정체도 모르는 제게 묻는 거죠? ]

면사여인이 은구슬이 부딪히는 듯한 음성으로 웃었다.

진우백은 나직하게 탄식했다.

[장로들의 생각은 들을 필요가 없소. 부끄러운 말이오만 그들은 이미 해남파를 생각지 않고 있소.]

갑자기 면사녀가 눈가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도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군요. 하지만 실행력이 부족해요. 돌아선 자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당신을 죽일 거라는 것을 어째서 모르죠? 한번 망설이면 때를 잃게 되는 법이죠.]

진우백의 낯빛이 확 변했다.

[혹시 장로들이 모반을...!]

[그래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두릅에 꿰어진 물고기가 되었으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면사여인은 진우백에게로 다가서며 말했다.

진우백은 그녀가 다가섬에 따라서 똑 같은 거리를 유지하며 물러섰다.

면사여인에게서 어떤 강한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면사여인이 말했다.

[이곳이 해남검파의 창설에 관한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 맞는가요?]

진우백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에 대한 경외심같은 것이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여인이 들어선 순간에 이미 자신이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면사여인이 밖을 향해서 말했다.

[이곳이 확실해요. 진우백 문주가 그렇다고 했으니까요.]

[대체 그곳에 뭐가 있다고 그러시오? 아직 적룡혈운도의 놈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석두공이 투덜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진우백은 비상시라서 경계가 엄중한 해남파를 마치 자기집 안방처럼 드나들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대체 제자들을 뭘하기에... )

그때 면사여인, 즉 소령이 말했다.

[해천월이 노리는 것이 여기에 있어요. 그에겐 해남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죠.]

[어디? 어디 있소?]

석두공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소령은 말했다.

[이제 찾아봐야죠. 하지만 그전에 먼저 진문주로부터 해남파의 개파에 얽힌 전설을 들어야겠어요.]

진우백이 물었다.

[대체 해천월이 내게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말해주시오.]

[당신에겐 그게 없어요. 만약에 당신이 그걸 가졌더라면 해천월에게 꿀릴 게 없을 테니까요. 개파(改派)에 얽힌 전설이나 말하세요.]

소령은 차갑게 말했다.

무시당했다고 여긴 진우백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잠시 소령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어떤 분노의 표시도 아무런 위안조차 될 수 없을 것같았다.

그는 탄식을 하고 말했다.

[우리 해남검파를 처음 세우신 분은 동은검객(憧恩劍客)이라는 분이셨소. 그분은 당시 중원에서 명망을 크게 떨치던 분이셨으나 다섯 명의 원수를 상대하다가 패해 이곳까지 도망쳐 오셨소.]

[우린 그 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예요.]

소령이 말했다.

진우백은 못들은 척하며 계속 말했다.

[그때부터 이곳 오지산에 숨어 사시면서 더욱 검술을 닦았는데, 잠은 항시 이곳 대전 자리에 서있었던 한 그루 천년거목 아래에서 주무셨다 하오. 그러던 어느날 밤 갑자기 나무 속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리기에 잠결에 놀라 검을 휘두르셨고 그 바람에 그 천년 거목이 베어져버렸다 하오. 이 탁자가 바로 그 나무의 그루터기요.]

진우백은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것같은 탁자를 가리켰다.

나무 그루터기를 다듬어 만든 그 탁자의 면은 대패질을 한듯이 매끄러웠다. 석년의 동은검객의 검법이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것이었다.

[한데, 천년거목이 베어지는 순간 나무 속에서 갑자기 한 마리의 백룡이 튀어나왔소. 조사께서는 놀라 검으로 용의 입을 찔렀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백금(白金)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하오. 어느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비늘 하나하나에는 한 가지 씩의 검초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로 말미암아 우리 해남검파가 창설되었다고 하오.]

진우백이 자부심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 백금으로 만들어진 용은 어디 있소?]

석두공이 물었다.

진우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알 수가 없소. 그것은 검룡(劒龍)이라고 불렀는데 언젠가 부터 사라져 버렸다고 하오. 노부가 사부님께 들은 바로는, 검룡은 생명이 있는 물건이라 스스로 모습을 감추었을 것이라 했소.]

[더 말할 것도 없어요. 검룡은 이곳 검룡전 내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거예요.]

소령이 말하며 옥퉁소를 뽑아들었다.

진우백과 석두공이 동시에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검룡이 있을 당시엔 천하의 어느 누가 해남검파를 노릴 수 있었겠어요? 아무도 검룡을 훔쳐갈 수 없었을 거예요.]

소령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해남파의 장문인이나 제자들 중 누군가가 숨겼다는 뜻인데, 그것이 악의에서는 결코 아니었을 거예요. 결국 선의로 숨겨진 검룡은 후세의 제자들이 어느 정도 생각만 하면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을 거란 말이죠.”

[검룡이니 검룡전에 있다... 능히 그럴 수 있겠구료.]

진우백이 눈을 감은 채 나직하게 말했다.

그때 석두공이 불쑥 나서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찾아보겠소.]

[...?]

[저 탁자를 부수려는 것이죠?]

소령이 퉁소로 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탁자는 검룡이 나왔다는 거목의 둥치를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만든 것이었다.

석두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로 다가갔다.

[...!]

[...!]

소령과 진우백은 긴장된 시선으로 석두공의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석두공은 탁자에 쌍장을 놓더니 공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엄청난 내공이 탁자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탕퉁!

탁자위의 찻잔과 주전자가 튕겨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석두공의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소령이 재빨리 물었다.

[느낌이 있어요?]

[뭔가가 내 공력에 반응하기 시작했소.]

석두공이 대답하며 더욱 공력을 돋우었다.

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발산되는 힘으로 인해 방안에도 어떤 기류가 형성되는 듯했다.

진우백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석두공은 약관이 될듯말듯 보이는데 그 무공의 강인함은 그가 상상할 수도 없는 정도인 것같았기 때문이다.

진우백에게는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소녀 소령과 석두공이 신비하고 두렵게만 느껴지고 있었다.

이때 석두공이 말했다.

[움직인다.]

순간,

파앗!

탁자가 벌어지며 그 속에서 은빛 빛 덩어리가 치솟았다.

그 기세는 실로 놀라워서 용이 구름을 뚫고 승천하는 듯했다.

!

빛 덩어리는 검룡각의 지붕을 뚫고 높이 날아올랐다.

[검룡이다!]

[검룡!]

파앗! 쐐애액!

진우백과 소령이 소리치며 몸을 날렸다.

그들은 승천하는 빛을 향해 날아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은빛 덩어리는 석두공의 손짓에 따라 그의 손으로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번쩍!

엄청난 빠르기였다.

진우백과 소령이 방향을 틀기도 전에 그것은 석두공의 손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오오!]

석두공은 검룡을 손에 쥐고 놀라움에 찬 탄성을 터뜨렸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검룡, 그것은 백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삼척이고 굵기는 사람의 허벅지만큼 굵었다.

머리는 생생하게 날아오를 듯한 용의 모습이며 눈에는 붉은 빛을 발하는 주먹만한 홍보석이 박혀 있다.

입에는 수정으로 만들어진 듯한 투명한 여의주(如意珠)를 물었으며 뿔은 사슴의 그것마냥 갈래져 있고, 비늘 하나하나는 살아있는듯 생동감이 있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한마리의 용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용의 머리부분만 있을 따름이었다.

한데 그것의 끝부분에는 속이 비어 있어서 사람의 손이 들어갈 수 있을 것같았다.

검룡은 비늘하나하나에 초식이 적혀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병기로서 모양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석두공은 그 검룡을 통해서 전해지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천왕저에 비해 손색없는 힘을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해천월이 노릴 만도 하군.]

석두공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했다.

소령과 진우백이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렸다.

석두공은 검룡을 세세히 살핀 후에 진우백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잘 간직하시오. 그 안에는 숨겨진 비밀이 무척 많을 것같소.]

진우백의 입이 딱 벌어졌다.

검룡이 자신의 거처에서 나왔고 또한 해남검파의 보물이라고는 하지만 찾아낸 사람은 석두공과 소령이라고 할 수 있다.

헌데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자신에게 넘겨주자 그 떨리는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받아도 되 되겠소?]

[이제 뇌주탄으로 가서 적룡혈운도의 세력을 분쇄시키는 것이 중요해요. 진문주께서도 도와주시겠죠?]

소령은 아쉬운 듯이 검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우백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해천월의 손에 가루가 된다고 해도 가겠소이다.]

[당신의 장로들은 모두 혈도가 제압당한 채 꽁꽁 묶여 있어요. 믿을 수 있는 부하들과 함께 한 척의 배만 가지고 뇌주탄으로 가도록해요.]

소령이 명령하듯 말했다.

진우백은 단 한 척의 배만 가지고 간다는 말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우리도 함께 가요.]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소령의 음성을 듣는 순간 모든 경각심을 풀어버렸다.

소령과 석두공이 있는 한 무엇이든 잘 될 것만 같았다.

이유없는 복종심과 신뢰감이 그의 가슴에 싹트고 있었다.

[당장 배를 준비시키겠소.]

그는 두 사람을 검룡전 안에 남겨두고 밖으로 나갔다.

진우백이 나가자 소령이 구석진 한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나오세요.]

순간 키가 작달막하며 까무잡잡한 것이 용화사의 그 중과 흡사한 중이 나왔다.

단지 그는 나이가 훨씬 많아 구십 세 정도로 보인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그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머리를 간단히 조아리자 소령이 말했다.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제 편안히 쉬시라는 말씀이 계셨어요. 그동안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늙은 중은 입가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납은 오래 전부터 쉬고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요. 또한, 천하를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 했을 뿐이니 노고라고도 할 것이 없소이다. 노납은 여전히 건강하다고 전해주시오.]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어요. ,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가지 부탁을 드려야 겠군요.]

[말해 보시오.]

[이곳으로 오는 적룡혈운도의 무리들을 혼내주세요. 고수들이긴 해도 수가 많진 않을 거예요.]

[그렇게 하리다.]

스스스!

소령의 말이 끝나자 늙은 중은 안개가 흩어지듯이 사라져 버렸다.

석두공이 나직하게 말했다.

[소소저보다 더욱 뛰어난 고수였군. 저 정도라면 무림에서 십대고수에 능히 들고도 남음이 있을 것같은데...]

소령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빙산의 일각이죠.]

[...?]

흠칫하는 석두공을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엇다.

[십대고수는 겉으로 드러난 자들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이에요. 실제로 제가 아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십대고수와 무공이 엇비슷하거나 더욱 강한 자들이에요.]

[십대고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들리는군.]

[사실이 그래요.]

소령은 눈을 깜짝이며 말했다.

석두공이 말했다.

[피곤한 모양이군! 하긴 쉬지도 못하고 달려왔으니...]

[괜찮아요. 뇌주탄에 갈때까지 푹 쉴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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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장

 

                   밀실의 기계인간 (2)

 

 

 

한데 석두공이 현장에서 사라진 직후의 일이다.

스윽!

무너진 연화봉의 단애에 마치 유령같은 인물이 나타났다.

어둠속에서 백의를 날리며 서있는 그는 스무 두세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인이었다.

천상의 선녀를 연상시키게 하는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얼음장보다 싸늘한 한기를 풍기는 그런 여인이었다.

그녀는 연화봉을 내려가고 있는 석두공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본녀가 한발 늦었군. 한데 이곳에서 저런 엄청난 고수를 만날 줄이야! 만만치 않겠어. 직접 겨룬다해도 이길 것같지가 않아! 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가 툭 튀어 나왔는지 모르겠군.]

그녀는 석두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잔혼각의 비밀장소로 들어갔다.

스스슥!

그녀의 몸은 유령처럼 바위를 뚫고 들어갔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위는 그녀의 모습같은 구멍이 뚫리는 것이었다.

석두공에 대해서 만만치 않은 자라고 이야기한 이 여인, 그녀의 무공 또한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했다.

 

땅속으로 깊숙히 뚫고 들어간 그녀는 석두공과 소령이 기계인간을 처음 보았던 그곳에 이르렀다.

석문을 뚫고 들어가 석실로 들어갔다.

한데 놀랍게도 기계인간은 여전히 새파란 눈빛을 발하며 꼿꼿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는 무너진 천정을 이고 있었다.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것들은 부수지 않았구나.]

그녀는 석실마다 뚫고 들어가 열개의 기계인간을 들고 나왔다.

기계인간들은 불상처럼 앉아 있는데 한곳에 그것들을 모아놓은 그녀가 쌍장을 펴고 공력을 일으켰다.

두둥실,

순간 기계인간들이 가부좌를 튼 채 날아올라 하나하나 밖으로 날아갔다.

여인은 쌍장을 펼친 채 그 뒤를 따라서 날아갔다.

휘이이잉!

단애아래에서 돌연 거대한 새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마중천(魔重天)의 상징이라는 전설적인 영물 묵령신조(墨靈神鳥)였다.

쏴아아아!

열 개의 기계인간과 여인을 태운 묵령신조는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 × ×

 

[흐흐흐...]

금포(錦袍)노인은 음산하게 웃었다.

[고수가... 세 놈의 종보다 더욱 강한 고수들이 속출하고 있단 말이지? 은세정검회(恩世正劍會)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로 들리는군. 세상에 그들 이외에 고수를 키워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단연코 없습니다.]

서릿발 같은 표정의 여인이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그녀는 바로 황산 연화봉에서 묵령신조를 타고 사라진 그 여인이었다.

금포노인이 말했다.

[너는 그 세 놈들이 더욱 날뛰게 해라. 크흐흐흐... 천하를 더욱 어지럽게 해야만 놈들이 나타난다.]

[존명!]

스스스!

여인은 연기처럼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금포노인은 다시 몸을 비스듬히 눕히며 말했다.

[미사!]

[네 궁주님... ]

[그녀가 아름답지 않느냐?]

미사가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되물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흑봉(黑鳳) 외에 아름답단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자가 또 있느냐?]

금포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미사의 눈까풀이 가는 떨림을 보였다.

흑봉...!

그것은 방금 전에 복명한 얼음장처럼 싸늘한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녀 때문이었어!)

미사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궁주가 한달에 한번씩은 방사를 금하고 있는 것도 그녀 때문이었어! 오직 그녀를 만나는 그날 만이...!)

미사는 참담한 표정으로 물러앉았다.

흑봉...

그녀는 궁주의 무공을 직접 전수받은 제자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녀의 고강함은 궁주에 필적할 정도라고 했다.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은 미사가 도저히 미치지 못할 바였다.

얼음장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그럴 진데, 만약 그녀가 웃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모든 사람들의 혼을 빼놓을 것이다.

궁주의 마음속에 그녀가 있음을 안 미사가 절망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석두공과 소령은 뇌주반도(雷州半島)에서 배를 탔다.

이제 물길로 삼백리 남짓이면 해남도에 도착하는 것이다.

석두공은 동정호에서 놀았지만 바다는 처음이었다.

그는 손으로 바닷물을 적셔 혀를 대 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소령이 물었다.

석두공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바다물이 진짜 짠가 하고 시험해 보는 중이오.]

[차라리 한번 들이켜 보지 그러세요? 그럼 바다물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소령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황하를 들이켰다는 사람 이야긴 들어보았지만 바다물을 들이켰다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키를 움직이던 사공이 말했다.

소령은 석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바닷물을 들이킨 사람도 보게 될 거예요. 이사람은 배가 바다보다 더 크거든요.]

[어이쿠! 제발 그렇게 하진 마십시오. 그러면 저는 어디가서 밥벌어 먹습니까?]

사공이 엄살을 부렸다.

[하하하하... ]

[호호호호... ]

석두공과 소령은 배를 잡고 웃었다.

소령의 웃음소리가 방울소리처럼 영롱했다.

 

여름이라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왔다.

사공은 돛을 내리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에는 두 명의 사공이 있었다.

한 사람은 배 주인이었으며 다른 사람은 그에게 고용된 젊은이였다.

두 사람의 물질은 아주 익숙하여 배는 역풍에도 불구하고 남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해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물결이 황금빛으로 출렁거렸다.

석두공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일몰을 바라보았다.

소령이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며 낮게 말했다.

[금방 어두워지겠죠?]

[해남도도 멀지 않았을 것이오.]

[...]

소령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가만히 있었다.

석두공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해가 가라앉은 곳에서는 마지막 비명처럼 적광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소령이 말을 꺼냈다.

[만약에... 만약에 말예요.]

[말해보시오.]

[제가 당신을 속였다면 절 용서하실 수 있겠어요?]

소령은 입술을 꼭 깨물면서 물었다.

석두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용서할 수 없을 거요. 어쩌면 당신을... 할지도 모르겠소.]

[어떻게 한다구요?]

소령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석두공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답하지 않았다.

멀리 남쪽으로 해남도가 구름처럼 수평선 위로 보이기 시작했다.

소령의 눈이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뭇 별들이 해남도의 하늘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바다는 숨을 죽인듯 고요했다.

촤아촤아!

배가 나아가는 소리만 밤바다에 울려퍼지고 해남도는 점점 거대한 모습으로 석두공과 소령의 앞으로 다가왔다.

해안에서 하나둘 불이 보였다. 밤에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어선이었다.

소령이 말했다.

[등불을 꺼요.]

해가 지면서부터 배에는 두개의 등을 달았었다.

헌데 사공은 소령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등불을 껐다.

[동쪽으로 돌아서 내려가요.]

소령은 다시 명령을 내렸고 배는 해남도의 해안선을 따라서 동으로 내려갔다.

 

***

 

해남도는 보도(寶島)라고 불린다.

그만큼 해남도가 모든 것에 있어서 풍족하다는 것이다.

해남도를 동으로 돌아서 섬의 중동부에는 산수가 수려한 야트막한 구릉이 하나 있다.

이곳이 해남도의 명소 중의 하나인 동산령(東山嶺)이다.

석두공과 소령은 동산령을 넘어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논들 사이를 지나 오지산(五指山)의 기슭에 이르렀다.

군데군데 파초(巴草)와 야자(椰子)나무가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석두공이 물었다.

[저 박처럼 생긴 열매는 먹을 수 있소?]

[엿보다 달콤하죠.]

소령이 발로 야자나무를 차면서 말했다.

! 툭툭!

야자열매가 그들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소령은 재주를 부려 먼저 하나의 야자를 손으로 받은 위에 또 다른 야자를 받았다.

그녀의 손위에 둥근 야자가 다섯 개나 쌓여 있었다.

!

그녀는 제일 밑에 있는 야자를 석두공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다시 받쳐들었다.

석두공은 야자를 한번 베어물더니 던져버리며 말했다.

[맛도 없고 단단하기만 하군.]

순간 소령이 야자를 놓아버리며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호호호호...]

실컷 웃은 그녀는 퉁소를 뽑아 야자의 가운데를 툭 쳤다.

야자열매가 마치 예리한 검에 베인듯 잘렸다.

윗부분이 날아간 푸른 열매 속에는 맑은 물이 찰랑이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했다.

[마셔보세요.]

소령은 석두공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석두공이 겸면쩍게 웃으며 받았다.

 

해남도에는 해남검파(海南劍派)가 있다.

해남검파는 한때 중원의 일각을 차지하기도 했던 검의 명문이다.

화산파와 무당파에 비견될 정도로 해남파의 검술은 유명한데 그 해남파의 검술은 모두 오지산에서 나왔다.

오지산은 해남파의 발상지이면서 지금까지 해남파가 존속해오는 곳이기도 했다.

해남도는 비록 섬이기는 하지만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대륙에 속한 섬으로서는 대만(臺灣)을 제외하고는 두번 째로 큰 섬이니 일개 성 만큼 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반은 되는 크기다.

한마디로 말해서 해남도에는 해남검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산도 있고 들도 있으며 밀림도 있는데, 오지산의 자락에는 민간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작은 산사(山寺)가 있다.

석두공과 소령은 각기 네가지의 글자로 쓰여진 간판이 있는 산사로 올라갔다.

 

<용화사(龍華寺)>

 

절이름은 용화사였지만 간판은 한자로 쓰여진 외에도 회족(回族)의 글자와 묘족(苗族) 및 장족(藏族)의 글자로 쓰여져 있었다.

이곳 해남도에는 민족의 분포가 그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탕탕탕!

소령은 닫혀진 절문을 두드렸다.

[아미타불... ]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중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여기서 용화사가 먼가요?]

소령이 물었다.

석두공은 암호로 구나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용화사의 간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용화사를 묻는다는 것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실수가 아닌가?

중이 합장하며 말했다.

[문안에 있으니 들어오시죠. 하루밤 유하고 가실 방은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가 용화사라면 점을 치고 돌아가겠습니다. 물 한잔만 먹게해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소령이 재빨리 대답했다.

중은 따라오라고 말한 후에 앞서들어갔다.

 

차락차락!

차락차락차락!

엿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무통 속에서 울렸다.

석두공은 속으로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밤중에 점을 친다는 것도 별난 짓인데 그것도 엿으로 한다니... )

!

중은 눈을 감고 한참 나무통을 흔들더니 소령 앞에 놓았다.

[뽑으시오. ]

소령은 두손으로 하나씩 뽑았다.

그러자 중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빨리 도로 꽂으시오. 점은 오직 한번 만 치는 것이오. 그렇게 하면 아무 소용도 없소.]

!

소령은 두개의 엿을 젓가락처럼 나란히 놓으며 말했다.

[명을 받아라!]

순간 중이 넙죽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사부께서 기다리신지 오래입니다.]

[어디에 있소?]

소령의 물음에 중은 대답했고 석두공과 소령은 그 중의 사부라는 자를 식별하는 방법을 전해듣자 마자 몸을 날려 오지산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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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章

 

                密室機械人間 (1)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지하광장 바닥에 내려선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지하광장에서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들이 십 여개나 있었다.

소령은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그 비도에 적혀 있지 않았소?]

석두공이 물었다.

소령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비도에 적힌 것은 우리가 지나온 미로(迷路)뿐이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도 삼십 명의 고수가 죽어갔어요.]

석두공은 내심 섬득해짐을 느꼈다.

소령의 뒤에 있는 힘은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수십 명의 고수들을 희생시키며 비밀을 캐왔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떤 전율같은 것이 느껴졌다.

소령은 자신이 무심결에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석두공은 횃불이 꽂혀있지 않은 문쪽으로 다가가 슬며시 밀어보았다.

그러나 석문은 안쪽에 빗장이라도 걸려있는 듯 꼼작도 하지 않았다.

그때 소령이 다가와 석문의 아래부분을 발로 살짝 밀었다.

그그긍!

그러자 석문은 가벼운 소음과 함께 열렸다. 기관이 설치된 문이었던 것이다.

문을 지나자 긴 복도가 나왔다. 습기가 차있었으며 횃불에도 불구하고 어두침침했다.

석두공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말했다.

[이곳은 위험하오. 아주... 조심해야 할거요. 내 뒤에서 한발짝도 떨어지지 마시오. ]

석두공에게는 어려서부터 이상한 힘이 있었다.

어떤 위기를 재빨리 감지하는 능력이 그것이다.

심지어는 자연의 재해(災害)에 대해서도 동물처럼 알아차리는 힘이 있었다.

동정호에서 큰 바람이 불어올 것을 미리 알고 경고를 해준 넉분에 풍래동자(風來童子)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도 그같은 타고난 위험감지의 능력덕분이었다.

그의 그런 본능이 지금 이 순간 위험을 말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경각심을 가지고 허리에서 천왕저를 뽑아들었다.

소령은 그의 신중한 모습을 보고는 덩달아 긴장하여 등뒤에 바싹 붙어 있었다.

한데 석두공이 딱 한걸음 내딛는 순간이엇다.

쿠앙!

그의 뒤에서 굉음이 들리며 긴 철판같은 칼날이 횡()으로 복도를 가득 채우며 날아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지나온 문에서 튀어나온 것이었다.

앞을 방비하던 석두공은 그것이 움직이는 순간 즉시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엎드렸다.

슈앙!

등뒤에 있던 소령은 혼이 반쯤 달아난 상태에서 그의 몸위에 엎드려 있었는데 그녀의 쪽을 지어 올린 머리카락이 베어져 나가 맨머리가 드러났다.

하나 위험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횡으로 복도를 매운 칼날이 지나가자 마자 다시 종으로 그와 비슷한 칼날이 석두공을 뒤에서 베어왔다.

쿠앙!

엄청난 빠르기, 또한 엎드리거나 굴러서 피할 수 있는 공격도 아니었다.

석두공은 벽으로 거미처럼 착 달라붙었다.

소령은 그의 뒤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힘대로 그를 끌어안고 있었다.

스팟!

칼날은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의 등쪽 옷자락이 베어져 앞으로 사라지는 검을 따라 날았다.

차앗!

석두공은 번개처럼 앞으로 내달으며 칼날을 잡고 따라가려 했다.

한데 그 기관을 만든 자는 정말이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예측한 자였다.

슈캉!

갑자기 그 칼날이 우뚝 멈추어 서고 양쪽 벽에서 두개의 칼날이 튀어나오며 석두공을 종으로 베어내렸다.

석두공의 형세로 말하자면 그는 칼날을 향해 뛰어든 꼴이 되고 말았다.

앗차했으나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절대절명의 순간,

부웅! !

그의 천왕저가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퍼펑!

천왕저의 위력은 한마디로 절대! 그것은 칼날들은 모두 박살내버리고 말았다.

쐐애액!

석두공은 식은 땀을 흘리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한데 그 복도는 문이 없었다.

막다른 석벽이 그의 눈앞으로 달려들었다.

석두공은 눈을 부릅뜨고 멈추려 했다.

순간 그의 귓전에 등에 매달린 소령이 짧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

석두공은 그녀의 말에 따라 기계적으로 몸을 솟구쳤다.

그 직후였다.

파아앗!

그의 눈앞에 있던 석벽에서 수십 개의 예리한 칼날이 튀어나와 그의 발밑으로 지나갔다.

길은 소령의 말처럼 석두공의 머리위로 뚫어져 있었다.

머리 위로 부터는 계단이 있고 오르막이었다.

휴우!”

석두공은 그곳에서 일단 멈추어서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기관이었다.

그는 마치 지옥에서 빠져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등에 꼭 붙은 소령도 그제서야 공포가 밀려드는지 몸을 덜덜 떨었다.

진정 악마같은 기관이었다.

[우리가 오기는 바로 온 모양이오. 그렇지 않다면 길이 이토록 험할리 있겠소?]

석두공은 씽긋 웃으며 말했다.

그의 웃음은 소령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헌데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머리와 등이 쓸렁함을 느끼고 재빨리 손을 가져갔다.

뒷통수에선 머리카락이 만져지지 않았다.

또한 뒷 등의 옷이 넙적하게 베여져 나가 앞으로 벌어져 있었다.

[내머리! 내옷!]

소령은 기겁하며 비명을 질렀다.

석두공은 겉옷을 벗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소령은 면사로 가려진 얼굴뒤로 흐느끼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잘려나간 것이 그렇게도 서러운 모양이다.

석두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목이 날아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계단을 오르자 다시 삼십여 평 정도 되는 곳이 나왔다.

그곳에는 열한 개의 문이 있었다.

석두공은 방금 전과 같은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경각심을 돋우고 제일 왼쪽에 있는 문을 발로 밀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소령은 손으로 그 문을 당겼다.

스르릉!

[!]

석두공은 입맛을 다셨다. 이번은 미는 문이 아닌 당기는 문이었던 것이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

문을 열던 소령이 빽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

츠으으으!

열려진 그 문의 안쪽에서 새파란 눈동자 두개가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물러서시오!”

석두공은 소령의 앞으로 썩 나서면서 문안을 노려보았다.

그곳은 작은 석실이었다.

“....!”

석실 안에는 돌로 된 침상이 하나 놓여있는데 그 위에는 새파란 눈빛을 발하는 괴물같은 인간이 앉아있었다.

이 인물은 머리카락 한올없는 대머리이며 몸에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몸의 군데군데에 철판을 붙여놓은 것같은 실로 괴이하기 이를데 없는 자였다.

그자는 석두공을 파릇파릇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석두공도 그자를 마주 노려 보았다.

엄청난 살기가 그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도무지 살아있는 사람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파파파팟!

불똥이 튈듯이 눈빛이 서로 마주친지 반각이 지났음에도 그 괴인은 조금도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소령이 살그머니 석두공의 등뒤에서 나와 문을 밀어버렸다.

스르릉!

문이 닫혔다. 하지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그자가 기계인간인 모양이에요. 다른 석실도 한번 보기로 해요.]

소령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열 개의 석실, 그곳엔 모두 새파란 눈빛을 발하는 기계인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남은 문을 석두공이 열었을 때 그곳에 있는 자는 새파란 눈빛을 가졌지만 기계인간이 아니었다.

그자는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 누구냐?]

얼굴이 세모꼴로 생긴 칠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하지만,

!

번개처럼 뻗혀진 석두공의 천왕저가 노인의 머리에 닿았고 노인의 두개골은 항아리처럼 깨져 흩어졌다.

[이곳을 관리하던 자인 모양이에요.]

소령이 석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곳은 다른 석실들과는 달리 여러 가지 기괴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또한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도 있었다.

소령은 사람의 팔 모양으로 생긴 물건을 줏어들어 석두공에게 보여주었다.

[이 속에 절명화골침(絶命化骨針)이 장치되어 있어요. 다른 석실에 있는 열명의 괴인들이 모두 이런 팔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무서운 일이에요.]

소령은 노인의 시체를 향해 그것을 겨냥하고 어느 부위를 건드렸다.

!

은빛 섬광이 손가락으로 부터 쏘아져나가 노인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츠츠츠츠!

한데 그 순간부터 시체가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소령이 그 팔모양의 물건을 내려놓을 때는 이미 시체는 백골만이 남아있었다.

진정 무시무시한 독이었다.

석두공이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이 문뒤엔 무엇이 있는지 한번 봅시다.]

석실에서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을 소령이 당겨 열었다.

 

좁은 회랑(回廊),

돌로 된 석벽들에 마치 장식물처럼 새파란 눈빛을 발하는 괴인들이 도열하고 있었다.

양쪽 벽면에 등을 붙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그들의 숫자는 정확하게 구십 개였다.

소령이 긴장된 음성으로 말했다.

[이것들은 완성된 것인 모양이에요. 모두 깨뜨려 버리세요.]

헌데 그때였다.

그그긍!

회랑의 끝부분의 석벽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 누구냐!]

들어선 자는 석두공과 소령을 발견하고는 놀라 소리쳤다.

동시에 석두공의 손에서 흰 백광이 날았다.

!

그자의 머리에 구멍이 뚫리며 나동그라졌다.

그러나,

드드드드...

고이한 소리가 갑자기 회랑을 울리더니 석벽에 붙어있던 괴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명이 더 있었어요. ]

소령이 소리쳤다.

과연 열려진 석문의 뒤에서 누군가가 작은 깃발을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기계인간들은 그것에 의해 조종되는 것같았다.

 

기계인간들의 처음 동작은 상당히 느렸다.

하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갑자기 빨라졌다.

쏴아아아!

기계인간들은 새파란 눈으로 흉폭한 살기를 발하며 석두공과 소령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아아!]

키이이!”

사람의 소리인지 짐승의 소리인지 모를 괴이한 소리가 그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석두공은 벼락같이 천왕저를 뻗어내며 소리쳤다.

[금강일타(金剛一打)!]

소림사의 칠십이절기 중의 하나인 금강저의 수법이었다.

!

그의 좌측에서 덮쳐들던 자의 어깨가 완전히 부서졌다.

피가 금속조각과 함께 터져나왔다.

파앗!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그 기계인간의 왼손은 석두공의 목을 찔러오고 있었다.

석두공은 고개를 돌려 피하며 그자를 젓혀두고 다른 자를 공격했다.

!

그의 천왕저에 배를 맞은 자가 등이 터져나가며 고꾸라졌다.

원래 이들은 금강불괴나 다름없는 도검불침의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석두공의 천왕저는 상고시대의 병기로 깨뜨리지 못할 것이 없었다.

천왕저에 격중된 것은 무엇이든 간에 폭죽이 터지듯이 터져버렸다.

지금 그가 상대하고 있는 기계인간들은 인간의 몸에 특이한 장치들을 단 것들이었다.

극악한 마공을 주입하여 그 마공으로 하여금 쇠붙이를 몸속에 박아넣고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완전한 기계가 아니고 인간을 도구로 만든 것에 불과한 것이다.

더욱이 그들은 마공으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린 지라 지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었으니,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물러서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령도 퉁소를 뽑아서 자신을 방비하고 있었다.

석두공이 기계인간들을 상대하고는 있었지만 그 기계인간들의 공격은 예측불허였다.

석두공은 그 특유의 임기응변으로 그들을 상대할 뿐 몇 초식을 펼친 후부터는 제대로 수법조차 펼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기계인간들은 전신으로 공격해왔다.

그 때문에 몸의 어느 한 곳을 공격해서는 소용이 없었다.

팔은 팔대로 뻗어오고 주먹은 주먹대로 휘둘러지면서도 손가락으로는 절명화골침을 발사했다.

배가 터져나갔는데도 입안에서 예리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다다다다닥!

석두공은 철판위에서 콩이 튀듯이 빠르게 움직이며 공방을 했다.

정신이 하나도 없고 무의식중에 천왕저를 휘두를 뿐이었다.

그런 형편이니 소령은 자신을 스스로 방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석두공이 대부분을 막아주고는 있지만 어느 구석에서 그녀를 향해 기계인간이 덮쳐들지 모를 일이었다.

그녀는 날아들지도 모를 독침을 대비하여 퉁소로 무형의 강막을 만들며 소리쳤다.

[계속 이러고 있을 거예요?]

[난들 어쩌겠소? 이들은 괴물들이오.]

석두공이 그 다급한 중에도 대답했다.

소령이 다시 소리쳤다.

[정말 몰라서 그래요? 그 천신폭풍본가 하는 것은 어디 써먹으려고 아껴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붕떠는 것을 느꼈다.

석두공이 어느새 그녀를 안아들고 있었다.

[진작 말하지 그랬소?]

우우우우웅!

그의 몸에서 폭풍같은 강기가 일어났다.

파파파팍!

그에게로 다가들던 기계인간의 몸이 가루가 되어버리며 혈무가 자욱하게 뿌려졌다.

쿠아아아앙!

화약이 폭발하기라도 한 듯이 석두공의 좌우에 있던 석벽이 터져나갔다.

콰아아아--󰠏󰠏!

석두공은 천신폭풍보를 펼쳐서 그대로 달렸다.

콰드드드!

기계인간들이 산산조각이 되어 흩어졌다.

석벽이 터져나가고 천정이 무너져내렸다.

쿠르르르릉!

소령이 석두공의 품에서 소리쳤다.

[내친 김에 모두 부셔버려요!]

콰르르릉!

석벽들은 종이조각 처럼 찢겨나가고 석두공은 무인지경으로 석벽이고 어디고간에 무작정 뚫고 나갔다.

그의 몸 주위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터져서 가루가 되어버렸다.

다른 문에서 몇 명의 흑의인들이 뛰쳐나오다가 천신폭풍보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마침내는 지하의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가공할 천신폭풍보의 위력!

그것을 어찌 인간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어째서 그 무공이 천신폭풍보인지를 절감하게 했다.

석두공의 품에 안겼던 소령마저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콰아아아!

석두공은 수직으로 솟구치며 땅을 뚫고 올라왔다.

드드드드...

연하봉의 단애가 허물어져 버렸다.

스스스!

땅을 뚫고 날라오른 후에도 어두운 암천(暗天)으로 수십장을 치솟아 올랐던 석두공은 천천히 땅으로 내려섰다.

그의 몸에는 자신이 다스리기 힘들 정도의 거력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석두공은 천신폭풍보의 위력에 스스로 두려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펼칠 때 마다 위력이 가공해지고 있다. 이 무공은 정말로 천신(天神)의 힘을 빌리기라도 한 듯 엄청나다. 결코 내 능력이 아니다.]

석두공은 가늘게 몸을 떨었다.

천신폭풍보라면 세상을 송두리채 파괴할 수도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으로 이 천신폭풍보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석두공은 소령을 안고 연화봉을 내려갔다.

천신폭풍보를 다시 펼친다는 것이 두려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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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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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장

 

                   가공, 천신폭풍보 (2)

 

 

 

해남도(海南島)까지 며칠이면 갈 수 있겠어요?”

동백산(桐栢山) 아래에 있는 작은 마을의 야산, 큰 소나무 아래에 한쌍의 남녀가 등을 마주 기댄 채 앉아있다.

그들은 석두공과 소령이었다.

소령의 물음에 석두공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

[하루 밤낮으로 곧장 달려간다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오.]

소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호... 농담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보셔요. 이건 중요한 일이에요.]

[그럼 이틀이라고 합시다.]

석두공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소령이 눈썹을 상큼 치켜뜨고 나직하게 말했다.

[정말 이러기예요? 중요한 일이라고 했잖아요.]

[왜 내말을 못 믿소? 내가 언제 농담을 한 적이 있소 거짓말을 한 적이 있소?]

석두공은 가슴을 치면서 말했다.

소령의 눈이 다시 크게 떠졌다.

[그럼 정말 그 먼길을 이틀에 갈 수 있단 말이에요? 설마 날아가기라도 한단 말이에요?]

[나도 잘은 모르오. 그만큼 달려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아마 그 비슷할 거요.]

석두공은 풀잎을 씹으며 말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동백산의 동백파(冬柏派)를 방문하고 내려온 길이었다.

석두공은 소령에게 홀린 듯이 끌려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는 어떻게 아는 것인지 부운청풍객 등이 손을 뻗치는 곳을 신통하게 찾아가는 것이었다.

물론 석두공은 그러한 계획을 세우기는 했었지만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은 소령 그녀였으며 석두공의 역할은 현재 그녀의 수족이나 다름 없는 신세였다.

그녀는 묘한 마력(魔力)으로 석두공을 사로잡아 버렸으며 석두공은 그녀의 손아귀에서 마음대로 놀아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그것은 하나의 기쁨이기도 했지만...

소령이 발딱 일어서면서 말했다.

[동백파에서 그들을 죽인 건 정말 잘했어요. 피곤하겠지만 우리 해남도로 가요.]

[해남도에도 그들이 손을 뻗친단 말이오? ]

석두공은 설마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소령은 신비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가보면 알일 아녀요? 빨리 일어서요.]

옷깃을 잡고 일으키는 그녀에게 끄질려서 석두공은 하는 수 없이 일어섰다.

등에 전해지던 뜨뜻한 감촉이 사라지고 나니 썰렁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서 가요.]

소령은 석두공의 왼팔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

향긋한 그녀의 냄새가 석두공의 심장을 빠르게 뛰게했다.

그 순간 소령은 그의 허리를 꼬집으면서 따끔하게 말했다.

[엉뚱한 상상은 하지도 말아요. 당신은 여자에게 약해서 큰일이에요. 영웅의 무덤 오직 미녀의 가슴이란 것을 잊지 말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소. ... 당신을 만나고나선 내가 어디갔는지 없어져 버린 느낌이오.]

석두공이 탄식하며 말했다.

소령은 코웃음을 쳤다.

[제가 미인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한번도 본적이 없을 텐데...]

석두공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신은 틀림없이 미인일 것이오. 남을 배려하는 그 마음씨와 영롱한 음성, 그리고...]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소령은 석두공의 말을 끊었다.

석두공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있었다.

정작 석두공이 말을 멈추자 소령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석두공의 표정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으며 또한 석상처럼 굳어있었다.

소령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제 제 말에 화가... 났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나 석두공은 화석이 된듯 표정이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몸에서 어떤 무시무시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휘루루루룽!

쏴아아아아!

강한 바람이 일어나면서 그의 옷깃이 떨리기 시작했다.

소령은 그의 팔을 꽉 잡으며 소리쳤다.

[미안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

그녀의 음성은 울음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휘루루룽!

파라라락!

석두공의 몸에서는 더욱 강한 기운이 발산되면서 그녀의 옷자락마저 찢어버릴 듯이 펄럭이게 했다.

그녀는 석두공의 화석같은 표정도, 그리고 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폭풍같은 기운도, 그 모두가 두려워지면서 석두공을 꽉 껴안으며 소리쳤다.

[그만하세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슈아아아앙!

그녀는 자신의 발이 땅을 딛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자신의 팔뿐만 아니라 석두공의 팔도 자신을 꽉 껴안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바람소리가 귀청을 찢을 듯이 들려왔다.

소령은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석두공과 자신이 날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석두공은 강호에 출도해서 처음으로 천신폭풍보(天神暴風步)를 펼친 것이었다.

고오오오!

한마리의 천룡(天龍)이 날아가듯 그의 몸 주위에는 강기의 막이 길게 펼쳐져있었다.

자칭 고금제일인인 폭풍무존의 모든 것이 집결되어 있는 천신폭풍보다.

그것은 결코 범상한 고수가 아닌 소령조차도 눈을 떠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 × ×

 

(이거야 정말 폭풍 그대로군. 두번째 펼치는 것이지만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달리면 달릴 수록 더욱 달리고 싶다. 그리고, 몸속에서는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을 것같은 힘이 꿈틀거린다.)

석두공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

그의 품에는 소령이 눈을 꼭 감은채 그의 목을 틀어안고 있었다.

석두공은 작은 산도 그냥 날아 넘고 강도 그냥 날아 넘었다.

무엇 하나 그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가 낮게 날아가면 그 주위의 모든 것이 파괴되어버렸다.

바위도 가루가 되었으며 나무도 가루가 되어버렸다.

실로 엄청난 천신폭풍보의 위력이었다.

 

얼마를 달리자 산중으로 접어들었는데 해가 졌다.

산은 그들의 앞을 거대한 담장처럼 가로막고 있었다.

휘루루루룽...

석두공은 큰 바위위로 신룡처럼 날아내렸다.

콰우우우우...

그가 내려선 주변의 바위와 나무들이 깨어지고 날아가며 황폐하게 변해버렸다.

소령이 눈을 꼭 감은 채 물었다.

[벌써 해남도에 도착한 건가요? ]

[아니오. 아마도 형산(衡山)인 듯 한데 해가 졌소.]

석두공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했다.

소령은 얼른 그를 밀치고 품속에서 빠져나오며 토라진 소리를 했다.

[형산이라구요? 아직 반도 못 왔군요. 그건 그렇고, 제 간을 반쯤 오그라들게 한 건 어떻게 할 거예요? 세상에 이런 무식한 신법이 어디 있어요?]

[내가 만든 게 아니오. 나도 배웠을 뿐이니 나를 탓할 것은 없소. 그분이 아직 살아계시니까 따지고 싶으면 그분에게 따지시오.]

석두공은 웃음을 실실 흘리며 말했다.

그녀에게 통쾌한 복수를 한 것같은 승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자신이 겨우 여자를 놀라게 하고서 그런 마음을 갖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깜짝 놀랐다.

(... 졸장부 중에서도 졸장부구나. 내가 겨우 이렇게 밖엔 안된단 말인가?)

한데 소령이 놀라움이 가시지 않은 음성으로 떠듬떠듬 물었다.

[... 그 신법을 만든 분이 아...아직 살아계시다고요? 대체 어 어떤 분이 그런 신법을 만 만드셨어요?]

[말해도 아마 믿지 않을 거요. 하지만 언젠가 한번 만날 지도 모르겠소.]

석두공은 폭풍무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천 년 전의 사람이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한다면 누가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말해봤자 자신만 놀림감이 될 것같아서 아예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필 이런 곳에서 멈췄어요? 산사나 암자 근처에서 내렸더라면 밤도 편하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

소령은 주위를 둘러보고 투덜거렸다.

석두공이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소? 적당한 동굴이나 찾아서 쉬고 갑시다.]

소령은 고개를 저었다.

[이곳이 형산이라면 당신이 또 해야할 일이 있어요. 해남도에 갔다 오면서 들르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먼저 이곳의 일부터 보게 됐군요.]

석두공은 생각했다.

(도무지 이 소저는 모르는 게 없다. 어떻게 해서 형산에도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을 안단 말인가? 지금까지 나를 데리고 돌아다닌 곳이 모두 삼마경을 익힌 자들의 공격이 있는 곳이거나 음모가 있는 곳이었다. 항상 나와 같이 있어 떨어질 때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사실들을 알 수 있는 것일까?)

그때 소령이 주위를 살펴보고 말했다.

[이곳은 아마도 망월대(望月臺) 근처인 것같아요. 연하봉(煙霞峰)으로 가도록 해요. 저쪽이에요.]

스읏!

석두공은 그녀의 손을 잡아쥐고 훌쩍 몸을 날렸다.

어쩌면 그녀에게 이용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쨌든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가 원하던 일들을 그녀의 도움으로 편하게 해왔었다.

뒤의 일은 뒤에 생각할 일이었다.

 

잠시 후 석두공은 소령과 함께 운무 자욱한 연하봉 아래에 도착했다.

소령은 정상을 유심히 보고 그 후에 부용봉(芙蓉峰)의 정상을 살펴보더니 먼저 몸을 날렸다.

휘이익!

석두공은 유유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소령은 그가 바로 뒤에서 들으리라고 생각하고 말했다.

[혹시 기둥처럼 생긴 바위를 보면 말씀하세요. 그곳이 우리가 목적지예요. ]

[그럼 더 갈것도 없소. 저 바위가 기둥같이 보이오.]

석두공은 그녀 앞에 훌쩍 날아내리면서 말했다. 그의 손이 앞을 가리킨다.

헌데 소령은 석두공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고는 화가 난 듯이 말했다.

[저게 어떻게 기둥같이 생겼어요? 저건 꼭... ]

하지만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버무렀다.

석두공이 가리킨 바위는 일장 정도 높이의 남근석(男根石)이었다.

소령은 와락 석두공을 밀쳐버리려다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다음부턴 이러지 마세요.]

“...!”

그녀의 은근한 속삭임에 석두공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미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닿을 듯 말듯 그의 손이 떨렸다.

하지만 소령은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재빨리 빠져나가 달려가 버렸다.

석두공은 허전해지는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자신도 왜 그런지 몰라서 고개를 흔들고는 소령의 뒤를 따라갔다.

소령은 자신을 유혹하는 듯하면서도 그런가 하면 또 그런 것 같지가 않았다.

휘이이익!

연하봉을 올라가던 소령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길이 끊어지고 단애가 양쪽으로 있는 곳이었다.

건너가자면 날아넘어야만 했다.

석두공은 그녀의 곁에 내려서며 물었다.

[여기가 거기요?]

[아마도 그런 것같아요. 하지만 그 기둥같은 바위를 찾을 수가 없네요.]

소령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석두공은 오른손을 들어 맞은 편 단애의 중간 정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흰기운이 단애를 어슴푸레하게 가리고 있는 곳이었다.

[혹시 저것 아니오?]

밤은 어두운 밤이다.

더구나 석두공이 가리킨 곳은 짙은 운무(雲霧)가 깔려 있어 대낮에도 보기가 힘든 데였다.

소령은 안력을 모았으나 분명하게 볼 수가 없었다.

[바위가 어떤 모양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소령이 아미를 모으며 말했다.

[... 정말 기둥같이 생겼소. 밑에는 주춧돌이 있는 것같고 위에는 상량을 얹기 위한 받침이 있는 것같소. 한데 기둥이 손가락 같이 세 마디로 된 것같구려.]

석두공은 보이는 데로 설명했다.

그러자 소령은 낮게 외쳤다.

[바로 그곳이에요.]

스읏!

그녀는 먼저 몸을 날려 운무 속으로 뛰어들었다.

앞이 분명하게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조심하시오!”

석두공은 깜짝 놀라며 그녀 곁으로 날아갔다.

화라라라락!

하지만 석두공의 근심과는 달리 소령은 두 소매를 새처럼 펼치며 바람을 받아 부드럽게 떨어지고 있었다.

(봉황비(鳳凰飛)의 신법... )

석두공은 내심 중얼거리며 똑같이 봉황비를 펼쳤다.

그렇게 하자 자신과 소령이 한쌍의 봉황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슷!

소령은 운무속에서 기둥바위를 발견하고 소리없이 그 곁으로 날아내렸다.

그녀는 행여나 석두공이 무슨 말이라도 할까봐 입가에 손을 갖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했다.

(이곳 어딘가에 있을 텐데... )

소령은 바위틈 새를 살피다가 횡으로 가늘게 그어진 두 선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그것은 마치 도()자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소령은 그 글자가 씌여져 있는 아래의 돌멩이를 치우더니 작은 옥병(玉甁)을 하나 찾았다.

!

옥병이 그녀의 손에서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손바닥에는 한장의 비도(秘圖)가 남게 되었다.

석두공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소령이 그런 것이 있을 줄 알았을까?

아마도 소령의 배후에는 거대한 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소령은 기둥바위의 뒤쪽에서 일장 높이 정도 되는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을 힘껏 미세요. ]

석두공은 가만히 서서 장력을 움직여 그곳을 밀었다.

그긍!

순간 절벽의 한틈이 쏙 밀려들어가며 한사람이 기어서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스읏!

소령은 재빨리 몸을 날려 그곳으로 들어갔다.

비좁아서 무릎으로 기어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석두공은 그녀의 뒤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따라가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눈앞에는 탱탱하기 이를데 없는 그녀의 둔부만 보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기어갔다.

좁고 긴 동굴은 이리저리 휘어지고 내리막도 있었으며 오르막도 있었고 또한 미로처럼 갈림길도 있었다.

그러나 소령은 한번도 망설이지 않고 한 방향을 택해서 나아갔다.

석두공이 전음으로 물었다.

[이곳은 누가 만든 것이오?]

[원래는 천연동굴이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만들기까진 적지 않은 노력이 들었죠.]

소령의 대답이 역시 전음으로 들려왔다.

석두공은 다시 물었다.

[여기엔 뭐가 있소?]

[알게 되면 천하의 당신이라 해도 깜짝 놀랄걸요.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직접 보세요.]

스팟!

갑자기 소령이 눈앞에서 사라지며 말했다.

동굴은 갑가기 끝이 나면서 아랫쪽으로 뻥뚫려 있었고 소령은 그 아랫쪽으로 거미같이 달라붙어 내려가고 있었다.

석두공도 급히 동굴을 빠져나왔다.

석두공과 소령이 동굴을 통해 이른 곳은 거대한 지하광장의 천정 부분이었다.

소령이 두손과 두 발로 거미처럼 천정에 달라붙은 자세로 석두공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곳 어딘가엔 잔혼살객이 만들고 있는 기계인간(機械人間)이 숨겨져 있어요. 그것을 파괴하지 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될 거예요.]

[기계인간?]

석두공도 두손과 두발로 엉금엉금 광장의 천정에 달라붙어 이동하며 반문했다.

[자세한 것은 저도 몰라요. 다만, 그것들은 끔찍한 살상력을 지녔다는 것 정도밖에... ]

소령은 빠르게 말하고는 능숙한 벽호공(壁虎功)을 펼쳐서 천장에서 아래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스읏!

석두공은 천정에 자신의 몸을 달라붙여 놓았던 두손과 두발을 놓았다.

그러자 그의 몸이 무게 없는 깃털처럼 천천히 아랫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로 천신폭풍보의 한 묘용이다.

소리없이 날아내리는 석두공의 모습은 마치 신선처럼 신비했다.

하지만 이미 한번 천신폭풍보를 경험해보았던 탓인지 소령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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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五 章

 

               可恐! 天神暴風步!

 

 

 

-호조산(虎爪山)!

 

산의 생김새가 일단은 넙적하면서도 날카로운 호랑이의 발톱을 닮아서 그런지 이곳은 옛날부터 유달리 호랑이가 많았다.

한 산에는 한 마리의 호랑이만 산다는 말도 이곳에서는 통하지 않은 듯했다.

그리하여 이 일대에서는 호환(虎患)이 끊이지 않았다.

()에서 많은 고수들을 동원해서 사냥하곤 했으나 번번이 별 소득을 올리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한 두 마리의 호랑이라면 그렇게 해서 사냥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호조산에는 토끼보다 흔한 것이 호랑이였다.

그 엄청난 수의 호랑이들과 싸운다는 것은 실로 일국(一國)을 상대로 전쟁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한데 사십여 년 전에 한 청년이 호조산에 들어오면서 모든 것은 변해버렸다.

어깨에 긴 칼을 비끌어 맨 그 사나이는 어떤 사냥꾼도 군침만 삼킬 뿐 들어가지 못했던 호조산으로 들어갔다.

인근 마을의 주민들은 아까운 젊은이가 또 하나 죽었다고 애석해 했다.

헌데 그가 호조산으로 들어간 후 호환이 점점 줄어들더니 세달 째 되던 날에는 호환이 뚝 그치고 말았다.

밤마다 호랑이의 울음소리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마을 사람들은 밤이 되어도 고요하자 오히려 불안을 느꼈다.

며칠 후에 설곽(薛藿)이란 이름의 그 청년이 다시 호조산을 내려왔을 때, 그의 뒤에는 거대한 백호(白虎) 한 쌍이 따르고 있었다.

설곽은 마을의 청년들을 데리고 산으로 들어갔고 호조산중에 호표장(虎豹莊)이란 장원을 세웠다.

무수한 인명을 살상하던 호랑이들과 표범들은 그의 앞에서 순한 양처럼 길들여진 뒤였다.

이 공으로 인해 설곽은 황실에 호피를 독점적으로 납품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다.

호표장의 명성은 널리 퍼져나갔으며 설곽은 호피를 팔아서 엄청난 재물을 얻었다.

한마디로 설곽은 무림인이면서도 상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

 

호표장(虎豹莊)은 호조산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호표장은 지금 청의를 입은 검객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십 마리의 호랑이와 표범들의 시체가 그 청의검객들의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런 청의검객들을 눈에서 불을 뿜는 듯한 호랑이와 표범들 수천 마리가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호표장의 대전,

호피가 드리워진 태사의에 앉은 한 노인이 분노한 표정으로 소리치고 있다.

[노부는 무림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한데도 부운청풍객이 먼저 나를 건드리고 이제 와서는 복종을 맹세하라고? 크하하하하... 정말 개가 웃을 일이다. ]

광소가 터져 나오고 그의 앞에 선 세명의 청의인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세 청의인들 중 키가 작고 몸이 약간 똥똥한 자가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일갈했다.

[설곽! 거역하면 죽음뿐이다!]

헌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크렁!

크왕!

설곽의 양쪽에서 마치 대리석으로 깎아세운 석상같이 앉아있던 두 마리의 백호(白虎)가 포효하며 벌떡 일어섰다.

[!]

검을 잡았던 청의인은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백호의 포효성은 산을 무너뜨릴 정도로 우렁찼다.

그 뒤를 이어,

크왕!

으으릉!

호표장의 주위에 있는 모든 호랑이들과 표범들이 포효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

호표장을 포위하고 있던 청의검객들 중 몇 명이 덜덜 떨면서 바지에 오줌을 쌌다.

또 어떤 자는 근육이 녹신해오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똥을 싸기도 했다.

수천마리의 호랑이와 표범들이 발하는 위세는 실로 가공한 것이었다.

설곽은 만족스러운 듯 백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놈들은 사람을 잘못 봤다. 노부는 결코 부운청풍객 따위에게 머리를 숙일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또한, 노부를 먼저 건드린 자는 결코 살려두지 않는다는 사실까지도...]

세명의 청의검객 중 깡마르고 키가 큰자가 검을 뽑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그런 말은 죽어서나 하시지!]

파앗!

그는 발검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백호를 막아라!]

다른 두명의 검객도 날아오르며 각기 한마리의 백호를 향해 날아갔다.

번쩍!

[!]

설곽은 악마의 혓바닥처럼 자신을 찔러오는 검광에 눈을 부릅떴다.

(겨우 심제을의 수하에 불과한 자의 검술이 이렇게 뛰어나다니...)

하지만 설곽의 몸은 그 경악의 순간에도 동물같이 반응하며 허공으로 치솟고 있었다.

!

그가 앉아있던 태사의가 반듯하게 둘러 나눠졌다.

설곽은 허공에서 도를 뽑아 깡마른 청의검객을 겨누며 소리쳤다.

[오호도장강(五虎渡長江)!]

쩌러렁!

순간 설곽의 도에서 다섯 줄기의 흐릿한 안개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희미하나마 호랑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청의검객은 돌연 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검막을 형성하며 소리쳤다.

[피해라! 도강(刀罡)이다.]

설곽의 무공은 강호에 알려진 그 정도만이 아니었다.

비록 아직까지 뚜렷한 형체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한번 도를 휘둘러 다섯 줄기의 도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자는 무림에서도 찾아내기 힘들었다.

파악!

청의검객은 가까스로 도강을 피하기는 했지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우웃!]

백호와 싸우던 두 사람도 도강을 설곽이 펼쳐낸 도강을 보고는 혼비백산했다.

[일단 이곳을 뜨도록 하자.]

청의검객은 벽을 넘어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크왕!]

두마리의 백호가 벼락처럼 그를 덮쳤다.

[으아아악!]

퍼퍼퍽!

청의검객의 몸은 순식간에 백호의 발톱에 갈가리 찢어지고 말았다.

오호단혼도 설곽이 바닥에 내려섰다.

동료의 몸둥이가 걸레쪽처럼 찢어지는 것을 본 다른 두명은 너무 놀라서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설곽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그 정도의 무공을 지닌 인물이 단지 일개 방파의 방주로 지내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설곽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부운청풍객, 그놈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겠다.]

[존명!]

그의 부하들이 재빨리 움직여 청의검객들의 혈도를 찍었다.

이미 우두머리의 죽음을 목격한 그들인지라 아무도 반항하지 못하고 순순히 혈도가 찍혔다.

설곽은 오만하게 말했다.

[당했던 만큼의 모욕은 천천히 갚아준다. 부운청풍객!]

그는 뒤돌아서 대전으로 들어갔다.

그의 곁으로 어슬렁거리며 두 마리의 백호가 따랐다.

 

“....!”

“....!”

호표장의 전각 들 중의 하나의 지붕에는 언젠가부터 흑의를 입은 두 남녀가 서있었다.

그들은 호표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았었다.

두 남녀는 석두공과 소령이었다.

[설곽이란 저 노인은 천산백호사(天山白虎寺)의 무공을 익혔군.]

석두공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소림사에서 만배선사에게 죽도록 얻어맞아 기억력을 회복한 그는 무림에 전해지는 거의 모든 무공과 수법에 대해서 훤히 궤뚫고 있었다.

덕분에 설곽이 시전한 도법의 내력도 한눈에 간파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무림에 흔히 알려진 그런 오호단혼도가 아닌, 진짜 오호단혼도(五虎斷魂刀)를 익혔군요. 화후가 거의 구성(九成)에 달했어요.]

소령이 대꾸했다.

석두공은 그녀 역시 천산백호사에 대해서 아는 듯하자 내심 놀랐다.

천산백호사는 머나먼 서쪽의 천산에 자리한 탓에 중원무림에는 잘 알려져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새삼스레 소령을 한번 더 바라보고는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헛걸음을 한 것같소. 저 노인의 실력이면 혼자서도 저들을 다 죽일 수 있을 것이오. 더구나 이미 검종맹의 수하들은 모두 제압되고 말았소.]

[글쎄요. 그건 두고 봐야 아는 일이죠. 원래 무너지는 것은 안이 먼저고 그 다음이 밖이죠. 내우외환(內憂外患)은 항상 동시에 일어나니까요.]

소령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석두공이 물었다.

[그럼 내부에 배신자가 있단 말이오?]

[가서 직접 보시면 아실 것 아녀요?]

소령은 그의 손을 잡아 끌면서 말했다.

석두공은 흠칫하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

소령은 석두공의 수줍어하는 반응에 입을 가리며 웃엇다.

스스스!

그리고는 연기처럼 전각 밑으로 내려갔다.

귀신같이 재빠르면서도 기척이 없는 신법이었다.

석두공은 혀를 내두르면서 그녀의 뒤를 따랐다.

[대체 사문이 어디기에 번번히 다른 무공을 사용한단 말인가? 하나같이 익히기 쉽지 않은 절학들을... ]

석두공 자신과 금사종 이외에 또 천하의 각종 무공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그에겐 놀라운 일이었다.

 

× × ×

 

스슷!

석두공과 소령은 천정에 붙어서 설곽이 있는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들보에 모습을 숨기고 내부를 살폈다.

아래쪽에 설곽과 한 쌍의 남녀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한 쌍의 남녀중 남자쪽은 마치 곰처럼 덩치가 컸으며 여자는 반대로 호리호리하면서도 요염한 듯보였다.

설곽의 성난 음성이 석두공의 귀로 들려왔다.

[정양(鄭陽)! 당장 가까운 검종맹의 지부로 달려가서 일백 명의 목을 베어오너라. 빚은 즉시 즉시 갚아야 한다.]

석두공은 내심 생각했다.

(저 사람의 말은 앞뒤가 다르구나. 밖에선 분명히 천천히 갚아준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는 즉시 갚아야 한다고 말하니... )

그때 그의 귓속으로 소령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의 말은 천천히, 오랫동안 갚아주겠다는 말이었어요. 아마 저런 식으로 해서 수백배는 갚아주겠죠.]

그녀는 또 다시 석두공의 마음을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래에서 정양이라고 불린 거한이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종맹에 대항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사부.]

[뭐라고? 감히 내 명을 거역하겠단 말인가?]

설곽이 버럭 고함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 호표장을 보전하기 위해선 검종맹에 가입해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말이 그말 아닌가?]

설곽은 분노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정양은 고개를 꼿꼿히 들면서 말했다.

[사부께선 이미 검종맹에 패했습니다. 더이상 재고할 것도 없습니다.]

닥쳐랏!”

추릿!

설곽은 도를 뽑아들면서 정양의 가슴에 갖다대며 말했다.

[네놈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무림에 관여하고 싶었다면 왜 호표장을 세우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겠느냐.]

추상같은 설곽의 기세에도 정양은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사부께선 그것때문에 패했습니다.]

[이놈이... ]

설곽은 도를 정양의 가슴으로 더욱 바싹 밀어부쳤다.

그의 수염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순간 설곽의 다른 제자인 황시연(黃翅燕), 즉 가날픈 몸매의 여인이 설곽의 뒤로 돌아가면서 말했다.

[우린 사부처럼 숨어서 살긴 싫어요.]

[!]

설곽은 등줄기가 화끈해지는 것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그때 눈앞에서도 백색의 도광이 치솟고 있었다.

파앗!

곰같이 생긴 정양의 손이 번개처럼 도를 뽑으며 설곽의 목을 베어오고 있었다.

[크으악!]

콰당탕!

설곽은 바닥을 뒹굴었다.

그의 오른쪽 어깨가 베어지며 오른팔이 성둥 잘려서 떨어졌다.

그런 그의 등에는 예리한 비수가 깊숙이 박혀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찰라지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 네놈들이... ]

원한에 찬 눈동자로 설곽은 두 남녀를 노려보았다.

정양은 피묻은 도를 설곽의 목에 갖다 댔다.

[잘 가시오 사부!]

[마무리는 내가 하겠어요.]

황시연이 설곽의 가슴을 밟았다.

[내가 네 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배신을!]

설곽은 피에 젖어 분노로 떨며 말했다.

황시연이 발로 정양의 도를 내리 밟았다.

!

예리한 칼날이 설곽의 목으로 파고들어갔다.

한데 바로 그 절체절명의 순간,

! 카가각!

예리한 파공음이 들리며 설곽 목으로 파고들던 칼날이 허공으로 튕겨나갔다.

허억!”

[누구냐?]

정양과 황시연은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스스슷!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며 차갑게 내뱉었다.

[스승을 해치는 자들이 여기도 있었군.]

정양과 황시연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

그들의 앞에도 검은 옷을 입은 면사여인이 떨어지면서 설곽의 몇 군데 혈도를 짚었다.

황시연이 물었다.

[... 당신들은 누구냐?]

너무 놀라 말을 앞으로 하는지 뒤로 하는지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면사여인, 즉 소령이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석두공에게 말했다.

[이들은 기사멸조(欺師蔑祖)의 대죄를 범했어요. 그래도 살려두실 건가요?]

[무슨 허튼 수작이냐?]

쩌러러렁!

정신을 차린 정양이 도를 벼락처럼 휘두르며 소리쳤다.

설곽의 무공을 거의 전수받았는지 정양의 도법도 가공한 데가 있었다.

하기사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암습이기는 했지만 설곽을 벨 수 있었겠는가?

소령은 덮쳐드는 정양에게 차갑게 소리쳤다.

[짐승같은 놈!]

파앗!

다음순간 그녀의 예쁜 손바닥이 도의 숲을 헤치고 정양의 눈앞으로 쇄도하고 있었다.

실로 귀신을 방불케하는 쾌속한 솜씨였다.

!

정양의 몸이 기우뚱 하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몸위로 정양의 머리가 떨어져 나뒹굴었다.

부릅뜬 그의 눈은 도무지 믿지 못한다는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다.

소령의 일장에 정양의 머리가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일섬단주장법(一閃斷柱掌法)!]

석두공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이 순간 황시연은 혼이 반쯤 달아나 버렸다.

끔찍한 정양의 죽음에 그녀는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그녀의 치마가 축축하게 젖었다. 그만 오줌을 싸고 만 것이었다.

소령이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더 추한 꼴을 보고 싶어요?]

[제발 목숨만...]

황시연은 얼어붙은 혀를 간신히 놀렸지만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석두공의 손가락이 그녀의 미간에 닿아있었다.

!

황시연은 핏물속에 쓰러졌다.

설곽이 겨우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두분은 누구신가? 검종맹에서 온 것같진 않은데...]

소령은 석두공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말했다.

[몸이나 잘 돌보세요. 우린 지나는 길에 우연히 들렸을 뿐이니까요.]

[....잠깐... ]

석두공은 그녀에게 끌려가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귓속으로 파고든 소령의 전음은 그를 꼼짝 못하게 했다.

[아무리 배신한 제자지만 수십 년 키운 그 제자를 죽인 자를 좋아할 사람은 없어요. 또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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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始作된 곳에서 始作

               

 

 

동쪽 능선이 붉게 물들고 하늘 높은 곳에서 부터 세상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어둠은 사라지고 붉은 수레바퀴가 동쪽에서 부터 불끈불끈 치솟아올랐다.

눈부신 빛이 석두공의 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발이 우뚝 멈추어섰다.

긴 꿈이 끝나고 드디어 눈을 뜬 아침같았다.

석두공은 마치 새로 태어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부는 내게 십대고수들끼리의 충돌을 막아야 한다고 했었지. 그런데 중간에 모든 것이 바뀌어버렸다. 부운청풍객 등이 삼마경을 익혔기 때문이었다. 이젠 그들을 죽이는 것이 내 임무다.]

중얼거리며 걸어가는 그의 앞으로 작은 마을이 보였다.

석두공의 모습은 그 마을로 사라져갔다.

 

* * *

 

동정호(洞定湖)!

맑은 물결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수양버들을 흔들어 놓는다.

여느 때나 다름없이 뱃놀이 나온 유람객들의 유람선과 어부들의 고깃배가 한가롭게 물위를 오가는데,

“....!”

언젠가부터 물위를 미끌어지는 작은 배의 선수(船首)에 서서 멀리 호면을 바라보고 서있는 청년이 있었다.

훤칠한 키에 균형잡힌 몸매, 눈부신 백의는 그 청년의 수려한 얼굴을 돋보이게 해주는데 그는 약간은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사부...!]

명문세가의 귀공자처럼 보이는 청년,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지난 한달 동안 그는 발빠른 행보로 천하의 동정을 두루 살피고 다시 동정호로 돌아왔다.

그가 본 바로는 천하는 이미 부운청풍객 등 삼인의 손에 넘어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대항할 힘은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런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석두공도 그러하거니와 자칭 고금제일인인 폭풍무존 또한 있지 않은가?

석두공은 고검장의 폐허에도 가보았지만 고검장주 섭군천은 어디론지 떠나고 찾을 수 없었다.

동정호로 돌아온 석두공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이미 천하는 그 혼자의 힘으로 돌이킬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세상은 극도로 혼란스러우며 옳바른 뜻을 세우고 정의를 숭상하던 자들은 오직 두가지의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있었다.

굴복하느냐 아니면 잠적하느냐...

바야흐로 사마의 창궐은 극에 달했으며 무림에서 도의는 완전히 사라지고 약육강식의 짐승같은 속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제자가 뜻이 같지 않은 사부를 죽이는 일이 그다지 기문(奇聞)이 아니게 되었고 수십 년을 사귀었던 친구지간이 원수로 돌변하여 죽고 죽이는 것도 더문일이 아니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사람들의 가치관도 파괴되어 그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석두공은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무림은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무림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주어야만 한다.]

그렇다. 누군가가 이 혼란스런 무림에 혼란을 걷어내고 새 질서를 부여해 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당금 무림에서의 지각있는 모든 인사들의 바람이고 뜻이기도 했다.

석두공은 스스로 그 일을 떠맡으려고 하는 것이다.

촤아! 촤아!

배는 점점 호수 가운데로 다가가며 오년 전 석두공이 사부인 동호천을 모시고 살았던 부주가 있었던 곳 근처로 향했다.

그때 노를 젓던 늙은 사공이 말했다.

[공자님! 우리 배는 지금 몇 해전만 해도 결코 갈 수 없었던 곳을 지나고 있읍지요.]

석두공은 미소를 지었다.

사공은 그가 흥미를 갖는 것같자 이야기를 술술 풀어놓기 시작했다.

[객지에서 오신 분들 중에서 이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만 이 늙은이의 말은 오로지 진실입니다. 이곳엔 한때 북을 쳐서 바람을 부르는 어린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치는 북소리가 동정호 곳곳에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지요.]

사공은 눈앞의 청년이 바로 그 소년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대체로 북소리가 끝나기 전에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해서 물속에 빠져죽은 사람들의 수만도 수십 명에 이르지요. 한데, 그 소년에게 구원을 받은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이곳에는 그 소년을 모시는 사당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소년을 마귀라고 두려워 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 소년이 혹시 어디 있는지 아시오?]

석두공은 짐짓 전혀 모르는 이야기를 듣는 척하며 물었다.

사공이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곳에 있던 부주는 불타서 가라앉아 버리고 그 소년은 사라져 버렸지요. 들리는 말로는 그 악행이 하늘에 달해서 벼락이 떨어졌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의 말로는 그 소년은 천상에서 도망친 풍신(風神)이었는데, 함부로 바람을 일으켜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하늘에서 신선들이 신장들을 거느리고 내려와서 죽였다고도 하지요. 그때 떠도는 말로는 소년이 하도 무서운 힘을 지녀서 신장들이 모조리 죽고 신선들도 도망쳤다고 하더군요. 동정호의 물이 신장들이 흘린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고 전해지지요.]

석두공은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에 대한 평이 아주 상반될 뿐만 아니라 아주 과장된 면도 있었다.

무림인이 아닌 세상의 속인들의 말이니 새겨들을 것은 없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으로 보이고 귀로 들리는 것이 모두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어떤 것이든 눈으로 보이지 않는 측면과 말로 떠돌 수 없는 사연들이 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니...

대성인 공자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눈으로 직접 본 것도 믿기 어렵거늘 하물며 세상의 떠도는 말을 믿을 손가?

 

사공의 이야기는 석두공에게 모든 것은 그 이면을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문득 석두공이 말했다.

[노인장, 그만 여기에 멈추시오.]

배는 부주가 있던 곳에서 맴돌았다.

석두공은 보자기를 풀어서 챙겨왔던 술과 고기를 뱃전에 놓았다.

그리고 향을 피우고 잔에 가득 술을 따른 후 호수를 향해서 두번 절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번져나오고 있었다.

이날 석두공이 기억하는 바로는 그의 사부 동호천의 기일(忌日)이었다.

늙은 사공은 그를 바라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풍래동자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럼 혹시 이 공자도 하늘의 천신?)

사공의 손과 다리가 달달 떨렸다.

풍래동자가 풍신이었으니 만큼 그의 눈앞에 있는 청년은 어쩌면 뇌신(雷神)이나 우신(雨神)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두공은 호수에 술을 붓고 있었다.

오년 만에 돌아온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집이었다.

석두공은 나직하게 말했다.

[사부... 이곳에서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를 지켜봐 주십시오. 난세가 여기서 시작되었듯이... 저도 여기서부터 천하를 평정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인가?

난세가 시작된 곳에서 천하의 평정도 시작해 나가겠다는 석두공의 맹세...

석두공은 자기의 잔에도 한잔의 술을 따라 들이키고는 적어왔던 제문을 읽지도 않고 태웠다. 두 손가락 사이에 끼어있던 제문이 절로 불붙으며 사그라져 버렸다.

(...뇌신(雷神)이었구나!)

늙은 사공은 내심 비명을 지르며 덜덜 떨었다.

[노인장, 돌아갑시다.]

제사를 마친 석두공이 사공에게 말했다.

하지만 사공은 너무 놀라서 석두공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듣지도 못했다.

그는 석두공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와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를 보고는 그만 갑판에 넙죽 업드리며 두손을 싹싹 빌었다.

[이 김과삼이 눈이 있어도 신이 제 배에 왕림하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 나이 칠십이나 집에는 구십된 노모가 계십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석두공은 어이가 없어 풋소리를 내며 웃었다.

[노인장, 신이라니 무슨 말이오? 어서 돌아가기나 합시다.]

그렇지만 사공은 주절주절하면서 목숨만 살려달라고 빌었다. 자신의 목소리 때문에 석두공의 말은 듣지도 못하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강도가 겨우 늙은 사공을 협박하는가?]

[멈춰라!]

두가지의 음성이 동시에 석두공의 귓전을 때렸다. 하나는 내공이 충일한 남자의 웅혼한 음성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뾰쪽한 여인의 음성이었다.

석두공이 고개를 돌려보니 두 척의 배가 각기 서쪽과 남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서쪽 배의 선상에는 죽립을 선 건장한 사나이가 뒷짐을 지고서서 석두공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남쪽에서 다가오는 배에는 백의를 입은 면사녀(面紗女)가 긴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우뚝 서있었다.

[...!]

석두공은 굳이 설명하려고하지 않았다.

자신이 강도가 아닌데 그렇게 해야할 필요는 어디있는가? 어쩌면 말을 함으로써 오히려 강도가 변명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안은가?

석두공은 그들을 개의치 않고 노인을 재촉했다.

[노인장, 그만하고 갑시다. 사람들이 나를 강도로 오인하고 있소.]

그러나 늙은 사공은 일어나지 않고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을 뿐이고,

화라라락!

남쪽의 배로 부터 백의 면사녀가 표표히 날아왔다. 펄럭이는 옷자락이 흰 나비를 연상시켰다.

백의면사녀는 허공에서 한바퀴 맴돌며 선상에 가볍게 내려섰다.

석두공은 담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미 사공을 어떻게 하여 이곳을 떠나기는 틀렸다.

[신법이 대단하군.]

석두공은 나직하게 말했다.

백의면사녀는 그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란 것같았다.

그때 늙은 사공이 석두공의 다리에 매달리며 말했다.

[만약, 이 개같은 늙은 목숨을 살려만 주신다면 호변에 사당을 지어 뇌신님을 모시겠습니다. 제발... ]

[...?]

백의면사녀의 눈이 둥그레졌다.

[!]

그녀가 대충 사태를 파악하고 실소했다.

석두공은 그제서야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되었소이다. 가져오신 배로 호변으로 건네다 주시면 감사하겠소.]

[그렇게 하세요.]

백의면사녀가 눈에 반짝 빛을 발하며 말했다.

석두공은 어딘지 모르게 그녀가 한번 만난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생각해 보았으나 알 수가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고 사공의 손아귀에서 발을 뽑았다.

그때였다.

스슷!

그의 눈앞으로 죽립객이 내려섰다.

[칠성추운신법(七星追雲身法)!]

석두공이 짧게 내뱉었다.

죽립객의 죽립속에서 안광이 백열했다.

[소협은 누구시오? 칠성추운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텐데...]

[당신도 잊지 않고 왔군요.]

석두공의 목소리가 격하게 울려나왔다.

죽립객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이 부르르 떨렸다.

[석두공! 석형제이시오? ! 아직 그 모습이 남아있구려.]

그는 덥썩 석두공을 껴안으며 죽립을 벗어던져 버렸다.

그는 요사이 일초진천수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금사종이었다. 혼자서 무림의 운명을 떠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또 하나의 젊은이였다.

동호천의 기일을 맞아 그는 먼길도 아랑곳하지 않고 동정호로 찾아왔던 것이다.

 

금사종이 탄식을 하면서 말했다.

[동노선배께서 돌아가신지 불과 오년 만에 천하가 이런 꼴이 되었으니, 지금에 와서야 그분이 무림을 떠받친 기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오.]

[...!]

[...!]

석두공은 망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는 마음속으로 약간 괴팍스러웠던 동호천을 떠올리며 그 정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의 맞은 편에서 백의면사녀는 퉁소를 꺼내들고 앉아 그를 훔쳐보았다.

배는 호변으로 나오고 있었다.

 

× × ×

 

석두공은 이상하다는 듯이 백의면사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와는 아무런 볼일이 없을 것같은데 자꾸만 그녀는 석두공과 금사종을 따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따라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혹시 금사종과 관련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따라오겠느냐 하는 추측이 그 생각을 확신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금사종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호수에서 백의면사녀가 석두공의 배로 먼저 건너간 후 아무런 충돌도 일지 않고 배를 빌려주기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으랴싶어 석두공과 백의면사녀가 아는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은 객점의 방에 들어섰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악양제일루(岳陽第一樓)!

 

금사종은 들어서자마자 점소이에게 방을 달라고 했다.

[몇 개가 필요하신지요?]

금사종은 석두공과 백의 면사녀를 힐긋 보고 말했다.

[두개!]

점소이는 삼층의 객실로 그들을 데리고 올라갔다.

복도의 끝에 마주보고 있는 두개의 방문을 열어 보이며 말했다.

[이 두곳을 사용하십시오. 삼층에서는 제일 좋은 방들입니다. 물론 전망도 아주 좋지요.]

[술과 음식을 가져다 주게. 되도록 많이.]

금사종의 말에 점소이는 인사를 하고 내려갔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좌측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뒤로 백의면사녀가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들어갔다.

그리고 두 남자가 동시에 자리를 권하는 탁자에 냉큼 먼저앉았다.

[고마워요.]

은쟁반에 옥구슬을 굴리는 음성이란 그녀의 음성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듣는 사람의 심신을 상쾌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음성이었다.

금사종이 먼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석형제! 석형제가 무사한 것을 보니 난 아무 할 일도 없을 것같소. 정말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지는 것같소.]

[금형! 아니, 금아저씨! 약속했던 오년은 이미 지났으니 나를 편안하게 대해주십시오.]

석두공이 함께 웃으며 말했다.

지금에 와서 그 자신과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금사종과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동복신과 동적선 외에는 꼽을래야 꼽을 사람이 없다. 금사종은 석두공에게 있어서 핏줄같이 느껴지는 사람인 것이다.

금사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나는 석형제를 아우라고 부르겠네. 나 또한 동호천 노선배님으로 부터 무공을 전해받았으니 따지자면 우린 사형제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형님이 생겨 마음이 든든합니다.]

석두공은 벌떡 일어서 절하며 말했다.

금사종도 마주 절했다.

문득 백의면사녀가 말했다.

[두분이 서로 형제가 되신 것을 경하드려요. 함께 있는 제가 선물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녀는 소매속에서 작은 비단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고 비단주머니를 열어 비취색이 감도는 두개의 구슬을 탁자에 놓았다.

[이건 비취피독주(翡翠避毒珠)라는 물건으로 자웅이 한쌍이예요. 웅주(雄珠)는 몸밖에서 침투하는 만독을 물리칠 수 있고, 자주(雌珠)는 몸속으로 스며든 독을 흡수하는 공능이 있어요. 제 성의이니 두분이서 하나씩 가지도록 하세요.]

[정말 감사하오.]

금사종이 포권하며 말했다.

[내가 이미 만독불침이니 아우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 하지만 서로의 정표이니 하나씩 갖도록 하세.]

석두공과 금사종은 비취피독주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

백의면사여인의 눈에 서운한 빛이 잠시 감돌다 사라졌다.

원래 이 비취피독주는 부부가 나누어 갖는 물건이었다.

비취피독주에는 단순한 피독의 효력 말고도 공력을 증진시키는 능력이 있는데 그것은 부부가 서로 하나씩 나누어 가져야만이 발휘되는 능력이었다.

비취피독주의 웅주는 백의면사녀의 남편이 될 사람에게 주었져야 하는 물건이었던 것이니...

금사종이 말했다.

[고금문주이신 섭군천 노선배를 기억하겠는가?]

석두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사종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얼마전에 장강에서 그분을 만났네. 이 우형이 죽을 뻔 한 것을 구해주신 것이지. 한데 그분의 무공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신 고강했다네. 삼마경을 익힌 삼인의 손에서 나를 간단히 빼내셨을 정도였으니까.]

[부운청풍객 등의 손에서 말입니까?]

석두공이 놀라며 물었다.

[그렇네. 한데 휴... ]

금사종은 나직한 탄식을 터뜨렸다.

[...?]

석두공과 백의면사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

[그분이 무림에 나오셨다면 다행이지 않습니까? 특히 부운청풍객은 그분의 제자이기도 하니...]

석두공의 물음에 금사종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삼마경을 익힌 그자들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네. 앞으로 내 무공이 좀더 높아진다면 그들중의 하나 정도는 능히 대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금사종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내뱉었다.

[내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오히려 고검문주이신 섭군천 노선배라네.]

[...?]

[...?]

금사종의 말에 석두공과 백의면사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분은 지금 천도(天道)를 시험하고 계시는 중이네. 삼마를 죽일 능력이 없어서 가만히 계시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

그는 목이 타는 듯 찻물을 들이키고는 말을 이었다.

그분은 그때 내게 이렇게 말했다네. 부운청풍객이 일년 이내에 죽는다면 하늘의 도리가 행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니 가만히 있겠지만, 만약에 부운청풍객이 일년안에 죽지 않는다면, 그분 스스로 무림을 피로써 씻어내겠다고. 말씀하시기를 그때가 되면 검을 든 자도 주먹을 쥔 자도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하시더군.”

금사종은 숨을 들이 쉬지도 않고 다 말해버렸다.

백의면사녀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같았다.

그녀는 금사종에게 물었다.

[고검문이란 문파는 처음 듣는데 그렇게 고강한가요?]

금사종이 엄숙하게 말했다.

[검성도 고검문의 제자이고 부운청풍객도 고검문의 제자요. 하지만, 그들은 고검문의 무공을 완전히 잇지도 못했소. 고검문주이신 섭군천 그분의 무공은 이미 신인(神人)의 경지에 달했다고 할 수 있소.]

“....!”

금사종의 말을 들은 백의면사녀는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에 잠긴듯했다.

석두공은 눈을 감고 있다가 나직하게 내뱉었다.

[그럼 죽여야겠군요.]

[누굴? 섭군천 노선배를 말인가?]

금사종이 놀라 물었다.

석두공이 고개를 저었다.

[부운청풍객을 죽여야지요.]

그때 점소이가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왔다.

백의면사녀는 직접 술잔에 술을 따라 금사종과 석두공의 앞에 놓았다.

금사종은 석두공이 보통사람과 조금도 차이 없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을 보고 놀라며 말했다.

[자네! 고질이 완치된 모양이군! 축하하네. 축하해.]

석두공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정말 빠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

[소림사에서 만배노선사님을 만나 죽도록 두들겨 맞고 나니까 머리가 트이더군요. 하하... 그저 돌머리는 두둘겨서 깨야하는 모양입니다. ]

그 순간에 백의면사녀의 눈이 찰라적으로 반짝 빛을 발했으나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잔을 주고 받으면서 지난 날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지 몇 시간 이미 밤은 깊어 이경이었다.

금사종이 말했다.

[구대문파를 찾아가 자네가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그들의 힘을 빌릴 준비를 해놨네. 이제 어떻게 할 텐가?]

[이곳에서 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듯이, 이곳에서 부터 그 끝도 시작될 것입니다.]

석두공이 그답지 않게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무엇이든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쇠하는 법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부운청풍객 등의 세사람은 지금 한계에 달해 있습니다. 그들이 능력으로 달할 수 있는데 까진 다 달한 것이지요. 하나, 참새가 죽을 때 짹 소리를 내고 죽듯이 그들의 행동은 더욱 격해지리라는 것이 제 짐작입니다.”

금사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그렇네. 그들은 자신들의 분수를 모르고 너무 설쳐되고 있네. 결국 그들이 성하는 것은 일시적일 뿐이라는 애기지.]

석두공이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그들 삼인을 제거한다면 오히려 혼란은 가중됩니다. 그들이 거느리고 있던 마졸(魔卒)들이 흩어진다면 무림은 전혀 수습할 길이 없게되고 맙니다. 우선은 그들의 야욕을 꺾어서 수하들이 머리를 감추고 숨어들도록 해야만 합니다.]

[그 후에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순서로군.]

석두공의 무림을 통찰한 계획에 금사종은 찬탄을 금치 못했다.

석두공은 다시 말했다.

[형님께서는 잔혼각과 적룡혈운도의 세력을 유심히 관찰하십시오. 아마 서로 경쟁적으로 세력을 확대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들의 야욕을 분쇄시켜주십시오. 벌써 그들간의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왜 형님을 따라가지 않고 있소?]

석두공은 백의면사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금사종은 이미 떠나갔다.

그런데도 백의면사녀가 그대로 자리에 남아있자 석두공이 물은 것이다.

백의면사녀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살짝 걷은 면사 아래로 앵도같은 입술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제가 왜 그를 따라 가야 하나요? 저는 그와 초면인데... ]

[...?]

석두공은 그제서야 사실은 그녀가 자신들과는 아무 면식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실수했구나. 무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말을 이 여인이 모두 들었으니 이걸 어떻게 한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선 죽여야만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백의면사녀가 말했다.

[한잔 드시지 않겠어요? 저를 죽이시려면 술기운을 빌려야죠.]

석두공은 속마음을 들킨 것같아 흠칫했다.

쪼르르르...

백의면사녀가 술잔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염려마세요. 비밀을 옅듣기 위해 왔다며 제가 아무리 간이 크기로서니 당신들 면전에서 들을 수 있겠어요?]

[소저가 어떤 분인지 알고 싶소.]

석두공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면사녀가 말했다.

[스스로의 실수를 인정하세요. 그리고, 그 실수를 저를 죽이거나 다른 외부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만회하려고 하지 말아요. 만약 당신이 저를 믿고 덮어두기로 하신다면 당신에게 득이 있을 뿐 해는 없을 거예요. 그러나, 조금이라도 저를 괴롭히려고 한다면... 당신은 일생에서 가장 강한 적을 만날 수도 있을 거예요.]

단호한 말이었다.

조리가 아주 정연한 말이어서 석두공은 일시 반박할 수가 없었다.

백의면사녀는 일어서면서 돌연 침상으로 가더니 침구를 바르게 했다.

그리고 문을 밀고 나가면서 말했다.

[건너편 방에서 자겠어요. 내일 다시 이야기하기로 해요.]

!

문이 닫히고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석두공은 무슨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듯한 기분이 들었다.

협박을 당한 것같기도 한데 또한 침상을 봐주고 가는 의도는 또 무엇인가?

석두공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나를 만나기 위해 온 여인?)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서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래야 열 손가락에 다 꼽히고도 손가락이 남을 것인데 어떤 사람이 그를 알고 찾아온단 말인가?

뛰어난 머리를 가진 석두공으로서도 도무지 그녀에 대해서는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도망가거나 어떤 술수를 부릴 것같지는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녀에 대해서 염려하는 마음이 가셔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석두공은 깜짝 놀랐다.

비밀을 옅들은 의문의 여자, 죽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최소한 경계심이 크게 일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일었던 살심마저 백의면사녀의 말과 간단한 몇가지 행동으로 인해 사그라져 버린 것이다.

 

× × ×

 

석두공은 인기척을 느끼고 슬며시 눈을 떴다.

!

창문을 가렸던 휘장이 걷혀지면서 눈부신 햇살이 방안으로 비춰들었다.

그는 손으로 눈을 반쯤 가리고 얼굴을 찌푸렸다.

창문가에 누군가가 서있었다.

[그만 일어나셔야죠. 해가 떴는데도 등을 붙이고 있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면사녀...!)

그랬다. 그의 방으로 들어와 휘장을 걷고 창문을 열어젓힌 사람은 바로 백의면사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백의를 입고 있지 않았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흑의를 입고있었다.

긴치마는 발끝을 덮고 늘어져 있으며 은장식이 붙은 요대를 했으며 머리는 쪽을 진 후에 금봉채(金鳳釵)를 꽂았다.

또한 요대에는 백옥퉁소가 단정하게 꽂혀있었다.

겉모습은 간밤과 아주 다른 모습이었으나 석두공은 한눈에 그녀가 백의면사녀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탁자로 걸어가서 찻주전자를 기울였다.

은은한 다향이 석두공의 폐부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리와서 차를 마셔요. 하지만 그전에 세수를 하는게 좋을 것같군요. 얼굴이 말이아니예요.]

[난 아직 옷도 입지 않았소.]

석두공은 홑이불을 덮은 채 말했다.

도무지 그녀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무릎위에 손을 놓고 다소곳이 앉아서 말했다.

[기다릴테니 염려마세요.]

그리곤 고개를 살짝 돌려 발치를 바라보았다.

석두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인의 태도는 그대로 옷을 입으라는 말로 보였다.

도깨비에게 홀린 사람처럼 그는 여인을 힐끗힐긋 훔쳐보면서 옷을 집어들었다.

그때 그녀가 말했다.

[그 옷은 입지 마세요. 침상아래에 옷을 가져다 놓았어요.]

과연 눈을 돌리니 침상아래에 단정하게 개여져 있는 묵빛 흑의가 보였다.

[이걸 입으란 말이오? 이건 내옷이 아니오. 소저께서 내게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소.]

석두공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가 말했다.

[원래부터 당신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당신의 몸은 당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아마 없을 거예요. 그것도 부모님께서 주신 것이니까요. 당신의 옷도 당신 것이라고 할 수 없어요. 그 무엇이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것들은 당신 손에 들어갔고, 당신은 그것을 당신 것이라고 말하겠죠? 그렇다면 그 옷이 당신 것이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아니예요?]

석두공은 한숨을 내쉬엇다.

[휴우! 소저의 말은 정말 이상하오. 소저는 유자(儒子)? 말로써 사람을 혼돈 시키는 자는 유자라고 했는데, 소저가 바로 그런 것같소.]

여인이 눈꼬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제 말을 듣지 마세요. 하지만, 대장부가 한낱 여인의 성의를 두려워한다면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어요? 사람들이 알면 당신을 비웃을까 두렵군요.]

말로는 도저히 못당할 여인이었다. 교묘한 언변이 석두공을 꽁꽁 묶어버리는 것같았다.

석두공은 자신이 도망치지 않는한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 도망치기는 싫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그녀가 자신에게 베푸는 성의가 그렇게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속으로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흑의를 입었다.

(어떤 고수보다도 무서운 것은 여인이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한 것은 말이라...)

 

[차를 다마셨으면 일어나야 해요. 우린 바빠요.]

면사녀가 일어서면서 말했다.

석두공은 화가난 듯이 말했다.

[나는 아직 당신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고 있소.]

면사녀가 눈웃음을 지었다.

[그냥 당신이라고 하세요.]

[...!]

석두공은 가슴이 화끈해지는 기분이었다. 만난지 얼마나 되었다고 당신이란 다정한 말로 부르라니....

[호호... 그게 어색하면 제 이름을 부르세요. 제 부모님은 절 소령(笑鈴)이라고 부르시니까요.]

석두공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정말로 방울소리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부모가 소령이라고 이름을 지을 만 한 것같았다.

소령은 밖으로 나가면서 말했다.

[빨리 오세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대체 어딜 가자는 거요.]

석두공은 자신이 하기로 생각한 일이 있기에 못마땅한 음성으로 말했다.

밖에서 소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검종맹(劒宗盟)에서 호표장(虎彪莊)을 흡수하려고 하는데 가만있을 거예요?]

석두공은 벌떡 일어서섰다.

 

호표장은 이곳 악양에서 동쪽으로 이백리 정도 떨어진 호조산(虎爪山)이라고 하는 암산(巖山)에 자리잡고 있는 방파이다.

호표장의 제자들은 불과 백여 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그들은 그 열배가 넘는 대호(大虎)와 표범들을 기르고 있다.

지금 세상에 나오는 호피(虎皮)들 중의 열에 아홉은 호표장에서 나온다고 할 정도로 호표장은 많은 호랑이와 표범을 사육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지 그들의 생계수단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였다.

호표장의 장주인 오호단혼도(五虎斷魂刀) 설곽(薛藿)은 어떤 짐승이던지 간단하게 길들이는 신기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상당히 독불장군격인 인물로 남에게 결코 머리를 숙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십대고수에 끼지는 못했지만 그의 무공은 그들에 비해 그렇게 처지는 편이 아니라는 풍문이 돌았다.

한데 만약에 호표장의 오호단혼도 설곽이 검종맹에 가입하게 된다면 그의 무공도 무공이려니와 그가 키우고 있는 엄청난 수의 호랑이와 표범들로 인해 검종맹의 힘은 말할 수 없이 강해지게 될 것이다.

 

석두공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령의 뒷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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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장

 

                  깨어진 돌 머리 (2)

 

 

 

하루이틀사흘...

지옥같은 고통속에서 날들이 지나갔다.

먹는 것은 물론이고 잠도 잘 수 없었다.

석두공은 사람의 형체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터진 그의 몸은 그래도 살아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만배선사는 원래의 그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앉아있다.

그는 기계적으로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그 주문이 끝나면 석두공을 노려보고, 석두공의 입이 떨어지지 않으면 천왕저를 뻗어서 아무곳이나 쳤다.

소림사의 칠십이종절기 중의 하나인 금강저의 수법은 고승의 손에서 사람패기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한 석두공의 노력은 처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별 쓸모도 없는 금강저의 수법만 환히 터득했을 뿐, 정작 외워야할 주문은 한마디도 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지쳤다.

자신의 돌머리에 대해선 자신마저도 지쳐버렸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눈앞의 만배선사는 그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어떤 말 못할 위엄이 있어 그에게 항거할 수도 없었다.

오직 그가 살아나는 방법은 주문을 외우는 길 밖에는 없었다.

조금도 외우지는 못하고 있었을 지라도...

 

그러나 이레째 되는 날부터는 석두공은 머리속에서 몽롱한 안개같은 것이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준극봉 아래 무저갱 속에서의 경험과 비슷했다.

다만 그것은 외부적인 것이었는데 이번엔 자신의 머리속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때 이후 석두공은 어렴풋이 조금씩이나마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만배선사의 주문을 외우지 못하는 벌로 맞는 천왕저는 신기하게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그 안개를 몰아내는 것같았다.

아니, 실제로는 석두공의 의지가 그의 몽매를 깨고 있는 것이었다.

매에 의해서 강요된 의지가...

 

만배선사는 주문을 다 암송한 후에 다시 천왕저를 들고 석두공을 노려보았다.

석두공은 바짝 긴장하면서 처음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

오직 단 한마디였다.

그이상은 마치 백지처럼 하얗게 되어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만배선사의 손이 순간적으로 멈칫해졌다.

그의 진물 고인 눈으로 반짝 이채가 스쳤다.

그것은 어떤 격동의 억눌러진 모습이었다.

!

그래도 석두공은 천왕저를 맞고 나가떨어졌다.

하나 그는 이번엔 조금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성취감이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오직 한마디이지만 기억했다는 것, 그것이 그로 하여금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

다음 차례에 석두공은 두마디를 내뱉을 수 있었다.

[태상!]

그리고, 그때부터는 그에게도 만배선사에게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석두공이 그 단단한 돌머리가 암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태라는 한 마디를 내뱉고 다섯 대를 더 맞았을 때 석두공은 주문의 반을 외워버렸다.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다시 두대를 더 맞았을 때는 완벽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웠으며,

거기에 한대를 더 보탰을 때는 앞으로도 뒤로도 줄줄 욀 수 있게 되었다.

토굴속에 들어온 후 칠일 째 되는 날이었다.

잠 한 숨 자지 못하고 물 한 모금 먹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낸 기적이었다.

 

!

만배선사는 천왕저를 던졌다.

[!]

석두공은 머리를 세차게 얻어맞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머리속은 더욱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이젠 다 되었다. 아니, 노납이 사명만이 끝이 났다. 마지막 남은 너의 돌조각을 깨고 못 깨고는 오로지 네게 달린 일이다.]

만배선사는 손을 저어 물러가라는 신호를 하며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파아앗!

퍼펑펑!

폐쇄된 토굴의 벽이 갈라지며 날카로운 검기가 솟아져 들어왔다.

석두공은 천왕저를 가볍게 흔들어 그 검기들을 흡수해버렸다.

실로 귀신처럼 빠른 임기응변이었다.

토굴은 구멍이 나있었다.

뭉게뭉게...

자욱한 흙먼지 사이로 한사람이 보치도 당당히 걸어들어왔다.

석두공은 그 사람보다 먼저 향긋한 지분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감지하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가온 사람은 스스로를 종횡선녀라고 한 백란이었다.

그녀가 콧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 멍청이, 네가 도망쳐 봤자 내 손바닥 안이라구. 어랍쇼? 딴에 변장까지 했어? 꼴같지 않게.]

석두공의 모습은 도무지 사람같은 형용이 아니다.

두들겨 맞아서 형체를 잃어버리다 시피한 것이다.

한데도 백란은 그가 들고 있는 천왕저만 보고서 그가 석두공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석두공이 변장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만배선사가 석두공에게 말했다.

[어서 가라. 나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의 손이 좌우의 벽을 쳤다.

쿠쿠쿵!

풀썩!

순간 토굴은 그대로 내려앉고 말았다.

스읏!

석두공은 흠칫했으나 그대로 몸을 빼어 밖으로 나왔다.

백란도 가까스로 빠져나와 그의 앞으로 날아내리고 있었다.

다짜고짜 백란은 소리치며 그의 뺨을 쳤다.

[이 멍청이! 빨리 돌아가야 하는데 늦어졌잖아!]

!

갑자기 석두공은 고요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백란이 흠칫 놀라며 물러섰다.

석두공의 몸에서는 분노가 뿜어지고 있는 듯했다.

백란은 더욱 물러서며 품에서 손가락만한 정검령을 뽑아들었다.

[감히 정검령에 항거하겠단 말이냐?]

석두공은 매썹게 그녀를 노려본 후에 등을 돌리고 걸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만배선사가 억지로 암기시킨 주문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그것은 정심신주(淨心神呪)라고 하는 것으로 밀종(密宗)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주문이었다.

오랫동안 외우게 되면 절로 머리가 트이는 묘한 힘이 있는 것이었다.

백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서있었다.

[사부의 말씀이 틀렸단 말인가? 그는 분명히 정검령에 복종해야만 하는데... 이건 뭔가 잘못됐다.]

 

***

 

석두공은 숲속으로 난 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샘물이 솟아나듯 잊혀졌던 생각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급기야 그것들은 봇물이 터진 듯 그의 머리를 꽉 채워버렸다.

석두공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는 다만 걸음만 옮겼다.

하지만 풀린 실타래처럼 생각들은 스스로 끝없이 떠올라 오면서 그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지나온 그의 행적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으로 사부인 동호천과 만났던 독왕동,

독왕동주 갈천상의 모습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또한 동정호에서 부주를 띄워놓고 지냈던 사부와의 생활들이 작은 것하나 빠지지 않고 떠올랐으며, 동호천이 직접 손과 발로써 무공을 가르쳐 주던 일들도 떠올랐다.

또한 펼칠 수는 있고 꼬투리가 잡혀야만 말할 수 있었던 무공의 구결들도 저절로 모두 환하게 떠올랐다.

석두공은 산길을 밟아 내려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지나온 기억들을 밟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는 산도 보이지 않고 길도 보이지 않았으며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부는 바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는 귀를 스치고 지나갔던 지난 날의 음성들이 들려왔고 보고는 잊어버렸던 일들이 눈을 가리고 있었다.

 

석두공은 그렇게 망연히 걸어갔다.

숭산을 내려와 등봉현을 지나고 관도로 접어들었건만 그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여름의 긴 해도 지고 달이 은빛을 뿌리며 별이 총총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한데 정신이 나간 듯 걸어가고 있는 석두공의 뒤를 백란도 모습을 숨겨가면서 따르고 있었다.

백란에게는 사부의 명령이 있었다.

그것은 무저갱에서 기다리다가 나온 사람에게 정검령을 보이고 데라오라는 것이었는데, 당부하기를 그 사람은 보통사람과는 좀 다르니 신경써야한다고 했었다.

백란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데려가야만 한다. 사부께서 그토록 이일에 마음을 쓰는 것을 보면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한데, 저 멍청이가 갑자기 딴사람이 되어 버린것 같단 말이야. 허수룩한데 가 하나도 없어져 버렸잖아. 하루종일 따라왔는데도 내가 파고들 틈을 주지않으니... )

그녀의 눈에 처음과 똑같은 속도, 똑같은 보폭, 똑같은 자세로 걸어가고 있는 석두공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관도를 지나는 행인도 없었다.

근처엔 마을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녀의 지분냄새를 맡은 날파리들만이 왕왕거리며 그녀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백란은 한손을 들고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봐!]

그러나 석두공의 귀에는 그녀의 음성이 파고들 공간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과거의 기억속에 묻혀서 걸을 뿐이었다.

백란이 야무지게 눈을 빛냈다.

(좋아! 한번 혼이 나봐라!)

석두공의 뒤에 이르른 그녀는 갑자기 일장을 내리쳤다.

한데 석두공의 몸이 슬쩍 흔들리며 한걸음 나아가는 바람에 그녀의 손은 허공을 치고 말았다.

(우연인가? 아니면... )

백란은 당황했다.

(그럼 어디... )

하지만 그녀는 이내 빠르게 보법을 밟아 석두공의 앞을 가로 막았다.

오만하게 허리에 팔을 걸치며 그녀가 소리쳤다.

[정말 이럴테야?]

스읏!

그러나 이번에도 석두공은 가볍게 몸을 흔들며 그녀의 뒤로 돌아가 걷고 있었다.

도무지 어떻게 몸을 움직였는지도 알아볼 수 없었다.

또한 그 자신도 자신이 장애물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같았다.

백란이 갖가지 수법을 다 동원하여 그를 가로막거나 공격을 했지만 석두공의 옷자락 하나도 건드릴 수 없었고 석두공을 과거의 기억으로 부터 현재로 불러올 수도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삼경이 지나버렸다.

백란은 제풀에 지쳐서 털썩 주저앉으며 소리쳤다.

[이 나쁜 놈아! 기면기다 아니면 아니다. 무슨 말이라도 한번하면 병신이 되기라도 하냐? 내가 다시 너를 쫓아다니면 네 마누라다 네 마누라.]

씩씩 거리며 소리치는 그녀를 뒤로하고 석두공은 지나쳐 버렸다.

잠시 후 어두운 관도엔 오직 그녀 한사람 만이 주저앉아 있었다.

그녀는 땅이 꺼져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없지. 사부껜 거짓말하는 수밖에. 무저갱엔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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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깨어진 돌머리 (1)

 

 

 

숭산(崇山),

준극봉(峻極峰) 아래의 만장단애의 아래쪽에는 사람이고 짐승이고 모두 피해가는 무저갱(無底坑)이 하나 입을 벌리고 있다.

바닥이 얼마나 되는 지 측량할 수 조차 없는 이 무저갱은 다행히 입구가 별로 크지 않다.

또한 자비를 우선하는 소림사에서 이 무저갱의 둘레에 우물처럼 담을 쌓아놓았다.

그 때문에 스스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는 한 사람이나 짐승이나 이곳에 빠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드높은 위쪽의 만장단애에서 그대로 무저갱안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햇살이 거북이 등딱지를 떼어버릴 정도로 뜨겁게 내리 쪼이는데,

에고 더워라! 헥헥헥!”

엷은 백의를 입은 한 소녀가 무저갱을 둘러싼 담장가에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보석같이 초랑한 눈망울을 가진 그 소녀는 야무지게 다문 입매가 극히 지적으로 보였다.

허리에는 한 자루의 옥퉁소가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발이 아픈지 가죽신 위로 발을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사부님께서도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기는 됐어. 시키는 대로 준극봉을 이 잡듯이 뒤져서 무저갱을 찾아내기는 했지만, 이게 뭐 어떻다는 거야? 무저갱에서 뭐 사람이 올라와? 그럼 그게 어디 무저갱이야? 웅덩이지.]

쫑알쫑알 거리는 그녀는 장난기가 다분했으며, 틀에 얽매이지 못하는 그런 성미가 옅보였다.

그녀는 돌연 벌렁 드러누우면서 소리쳤다.

[애고, 난 모르겠다. 사람이 나오든 도깨비가 나오든 나오면 나오는 거고 난 낮잠이나 한숨자야겠다.]

나른해지는 여름날의 오후다.

소녀는 눕자마자 새근새근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저갱에서 금방이라도 삭아서 녹아버릴 것같은 백의를 걸친 인물이 한명 쑤욱 떠올랐다.

바로 천년만에 부활한 폭풍무존이었다.

그러나 잠이 든 소녀는 그의 존재를 전혀 알지 못했다.

스읏!

폭풍무존은 그녀를 힐끗 본 후에 준극봉을 날아서 넘어가 버렸다.

그리고 한참 후 무저갱을 둘러싼 담장위로 더부룩한 검은 머리가 수욱 올라왔다.

피로에 지친 듯한 그 인물은 가까스로 담장을 손으로 잡고 밖으로 기어나왔다.

알몸에 방망이를 든 석두공이었다.

“....!”

순간 그의 기척에 백의소녀가 눈을 번쩍떴다.

그녀의 눈에 석두공의 알몸이 그대로 들어왔다.

석두공은 그녀를 보고서야 이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나왔구나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데 소녀는 석두공을 보고도 처음에 잠시 당황한 눈빛을 보였을 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말했다.

[척보니 무저갱에서 나왔군요.]

[무저갱? 여기를 말하는 거요?]

석두공이 반문했다.

소녀가 그의 하체를 잠시 보았다가 눈을 슬쩍 돌리며 말했다.

[그럼 깊은 구멍이 거기 말고 또 있나요?]

무의식중에 구멍이란 말을 한 그녀는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석두공의 나신도 점잖케 훔쳐본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러나 석두공은 아무것도 모른채 심지어 자신이 발가벗었다는 사실도 모른채 말했다.

[아무튼 나는 이곳으로 올라왔소. 한데 내게 무슨 볼일이 있소?]

[물론이예요. 그 때문에 나는 수천리를 달려왔어요. 이 가죽신 보이죠? 이게 길을 떠나고 나서 세번째로 사서 신은 거예요.]

백의소녀는 자신의 발을 번쩍 들어보이며 말했다.

치마가 훌렁 올라갔다.

하지만, 그녀는 기가 막히게 다리를 살짝 돌려 치마속이 보일 듯 말듯 하게 했다.

석두공은 자신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켰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얼른 말했다.

[무슨 일이오?]

질문부터가 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수천리 밖에서 어떻게 자신이 오늘 무저갱에서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일을 보러 왔단 말인가?

그에 대한 질문은 조금도 없고 생각이 건너뛰어 그렇게 묻고 말았다.

[이것을 아시겠어요?]

백의소녀는 품속에서 손가락 만한 은검(銀劒)을 꺼내들면서 말했다.

그것은 크기만 작았지 모양은 완전한 검이었다.

[아주 작은 검이군요.]

석두공이 말했다.

백의소녀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장난치지 말고 말해요. 나를 만만하게 보다간 큰코다칠 거예요.]

[그럼 검이 아니란 말이오?]

석두공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순간 백의소녀의 눈에서 서릿발같은 한기가 감돌았다.

쉬익!

손가락만한 검이 섬짓한 소리를 내면서 뽑혔다.

번쩍!

강렬한 백광이 그 검으로 부터 발해졌다.

소녀가 준엄하게 소리쳤다.

[정검령(正劍令)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겠단 말인가?]

석두공은 소녀가 살기를 돋우고 소리치자 저으기 당황했다.

[정검령? 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아니오? 나는 정검령이 무엇인지 모르오.]

[!]

소녀가 혀를 차면서 작은 검을 거두었다.

[사부말이 이번에도 맞기는 맞았군. 상대하려면 골치 아픈 자라고 하더니만, 이런 돌머리를 어디다 쓰려고 데려오라는건지 원... 그래도 명령이니 듣기는 들어야지.]

그녀는 자신의 뒤에서 작은 보따리를 풀더니 석두공에게 휙 던졌다.

[우선 옷이나 걸치고 보시지. 아무리 대책없는 사람이라 해도 상대를 잘못 만났어. 난 백란이란 말이야. 종횡선녀(縱橫仙女) 백란(白蘭)이라구.]

석두공은 속으로 뜨끔했다.

(어떻게 내가 돌머리인줄 알았을까? 무슨 멍청한 짓을 한 것같지도 않은데... , 한데 옷이라니... !)

그는 그때서야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란 사실을 알아채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 훌쩍 뛰어 바위뒤로 숨어버렸다.

[호호호호... 멍청이! 이미 다 봤는데 숨기는 또 뭘 숨어? 사내대장부가 숫기 없기는..... 어서 옷이나 입어.]

백란이라는 소녀가 깔깔 웃으면서 옷이든 보따리를 발로 차서 바위 뒤로 보냈다.

석두공은 옷을 받아들고 풋! 하고 웃었다.

(남자가 몸을 한번 보인게 뭐 대단하다고 이런 호들갑인가? 여자인 그녀는 내 알몸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

석두공은 소녀가 준 옷을 입고 허리까지 드리워진 긴 머리를 뒤로 묶었다.

그리고 바위뒤에서 나오자 백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아주 잘생겼잖아. 조금 전과는 아주 딴판인데.)

방금 전의 모습이 연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석두공은 멋진 사나이로 둔갑해버렸다.

[음음, 가자!]

그녀는 마치 하인을 대하듯 석두공에게 명령하곤 앞서 걸었다.

석두공은 어이가 없었다.

(옷이 고맙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친 여자인 모양이군. 내가 궂이 따라갈 이유가 어디 있겠나?)

내심 속으로 생각한 그는 슬그머니 돌아서서 숲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한편 백란은 그가 따라오리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보치도 당당히 걸어갔다.

한데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싹 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빽 소리쳤다.

[튀다니! 내 허락도 없이. , 감히 이 종횡선녀를 우섭게 봐? 별 떨거지같은 놈이... ]

그녀는 번개같은 신법으로 석두공이 사라진 곳을 향해 날아갔다.

 

* * *

 

석두공은 생각했다.

(내가 비록 무공이 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하지만 이것으로 그 끝에 달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폭풍무존의 경우를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폭풍무존의 무공수준에 달하려면 아직도 나는 멀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에 의하면 나는 소림사로 가는 길이었다. 무슨 이유로 가던 중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먼저 소림사로 가고 볼 일이다.)

석두공은 또 생각했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절곡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에 내 몸이 훨씬 자란 것같으니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것같은데...)

그는 혼자라는데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밀려왔다.

그것은 세상천지에 오직 자기뿐이라는 고독감이었다.

 

***

 

마침내 소림사에 도착했다.

석두공은 산문으로 들어서서 무작정 걸었다.

딱히 지리를 아는 바가 없기에 그저 다른 참배객들의 뒤만 졸졸 따라갔다.

그를 저지하는 사람도 없었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사찰다운 사찰을 처음으로 구경하는 석두공에게 소림사의 웅장한 건축은 상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기둥과 벽면에 화려한 단청과 울굿불굿한 물감으로 그려진 탱화들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서 대웅보전으로 갔다.

한데 대웅보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그는 낮게 속삭이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저분이 바로 만배선사(萬拜禪師)라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번 씩 부처님께 절을 한다는 그 스님말인가?]

[그렇네. 저분의 절하는 신공은 고금무적이라서 한시간이면 만배를 다하고 나오신다고 하더만.]

[!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내가 만약에 만배를 하자면 열흘은 몰라도 닷새는 걸릴 것인데... ]

[한데 만배선사께선 좀처럼 본사로 내려오시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

 

석두공의 앞쪽에서 걸어가는 두사람이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말이었다.

석두공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기인은 참으로 많구나. 하루에 만배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공력일 텐데... )

그의 눈에도 대웅전 안에서 걸어나오는 한 노승이 보였다.

한데 하루에 만배씩 한다는 사람의 몸이 저럴 수도 있는가?

허리는 보통 사람의 두배나 굵었으며 목은 짧고 손과 발은 자그만 했으며 팔다리는 통나무를 연상시킬 만큼 굵었다.

얼굴에는 주름살이 흘러내릴 만큼 쳐져있었고 눈에는 진물이 고여있으며, 수염과 눈썹은 허리까지 늘어져있었다.

너무도 기괴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에겐 그 모습이 부처님의 화신으로 보이는지 앞을 다투어 합장하며 입속으로 나직히 소원을 빌고 있었다.

(저 스님의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

석두공이 속으로 생각하는 찰라에 만배선사는 그의 앞까지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스쳐지나가면서 혀를 찼다.

[끌끌... 천왕저(天王杵)가 주인을 잘못 만나 울고 있군.]

[...?]

석두공은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금방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만배선사는 그를 지나 조금 걸어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소리쳤다.

[!]

석두공의 귀가 얼얼했다.

그리고 순간적이나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냥 지나치려 해도 도무지 화가 나서 못참겠다. 이놈!]

만배선사는 선장을 들어 석두공의 머리를 내려쳤다.

슈앙!

[으악!]

다른 참배객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머리속에는 두개골이 깨어져 즉사하는 석두공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하나 석두공은 이상하게 만배선사에게 저항감이 일어나지 않았다.

피하려면 피하고 막으려면 막고 반격하여 일초에 죽이려면 죽일 수도 있을 그였지만 가만히 두들겨 맞고 말았다.

!

!

선장이 그의 머리에 부딪히며 반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껄껄껄껄... 그놈 머리 하난 단단하구나!]

돌연 만배선사는 선장을 휙 던져버리고 대소를 터뜨렸다.

석두공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서있었다.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부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모든 것은 스스로 밝혀지는 것이니...

참배객들이 석두공을 귀신보듯 하면서 그 근처를 피했다.

약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강한 자 보다 더욱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그것은 스스로 몸을 사리고 물러선다는, 강한자가 결코 익힐 수 없는 호신책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만배선사는 곰처럼 걸어가며 말했다.

[따라오너라! 선장으로는 네놈의 머리를 깨지 못했지만 불력(佛力)으로 깨뜨리고 말겠노라.]

 

× × ×

 

소실산의 중턱,

입구에 울타리가 쳐져있는 토굴(土窟)이 있었다.

토굴의 앞에는 몇 가지 야생의 꽃들이 피어있었고 흰 토끼가 울타리의 틈사이로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보였다.

문득 숲 사이로 난 소로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앞장 선 사람은 사람인지 아니면 옷입은 늙은 곰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뚱뚱한 괴물같은 중이었으며, 그 뒤를 따라오는 젊은이는 창백한 얼굴에 긴 머리를 땋지도 않고 뒤로 묶어 넘긴 자였다.

젊음이 발산되는 듯한 그런 싱그러운 맛이 젊은이에겐 있었다.

또한 그의 얼굴은 세상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준수한 것이었다.

그는 바로 석두공이었다.

만배선사는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하늘이 모든 것을 모아주는데도 여전히 바보멍청이라니... 노납이 네놈의 머리를 깨지 못한다면 내 머리라도 깨고 말겠다.]

토굴의 안은 좁았다.

만배선사가 안쪽으로 들어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빈틈이 없는 것같았다.

석두공은 앉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했다.

그때 만배선사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내놔라!]

(이 몽둥이를 말하는 모양이로군.)

석두공은 허리에 매어두었던 몽둥이를 끌러서 주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 놈이군. 이놈아! 이게 무엇인지 아느냐?]

[전 모릅니다.]

석두공은 자신에게 욕을 하는 만배선사에 대해서 조금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또한 만배선사는 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같기도 했다.

만배선사는 몽둥이를 들어서 바닥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건 천왕저(天王杵)라고 하는 물건으로 상고시대(上古時代)의 기물이다. 우리 소림사의 금강저(金剛杵)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천왕저를 흉내 낸 것에 불과하지.]

바닥이 천왕저에 닿을 때마다 푹푹 꺼졌다.

천왕저...

석두공이 무당파의 해검지에서 주어왔던 몽둥이는 천왕저라는 이름을 가진 상고시대의 병기였던 것이다.

만배선사는 갑자기 주문같은 몇 마디를 외우기 시작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보명호신지혜명정삼혼영구... ]

분명히 그것은 불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슨 무공구결같지도 않았다.

석두공은 그 주문이 천왕저와 어떤 연관을 가진 것인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 순간 만배선사가 돌연 석두공을 향해 천왕저를 휘둘렀다.

[!]

석두공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한데 그의 등뒤에는 출구가 아니었다.

언제 막혀있었는지 그것은 만배선사의 뒤나 다름없는 흙벽이었다.

!

그의 몸이 석벽을 두자깊이나 파고들어갔다.

그때였다.

!

만배선사가 휘두른 천왕저가 그의 가슴에 격중되었다.

[!]

석두공은 한사발의 피를 토해냈다.

천왕저의 힘은 진정 두려운 것이었다.

이미 도검이 불침하게 된 석두공의 몸이건만 천왕저에 맞아 그의 갈비뼈가 두대나 부러져 버렸다.

또한 천왕저에 서린 힘은 그의 몸에서 고통이 되어 번져갔다.

석두공은 까무라치고 싶었다.

그때 만배선사가 호통쳤다.

[이놈! 열심히 듣고 따라 욀 생각은 않고 정신을 어디에 빼놓는 거냐?]

그가 맞은 이유는 그때문이었다.

만배선사는 다시 태상태성하고 외우기 시작했고 석두공은 피를 머금은 입으로 웅얼웅얼 따라했다.

[태상태성응변무정구사박매보명호신... ]

만배선사는 다시 한번 들려준 후에 말했다.

[혼자서 외워봐라!]

[...!]

석두공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외는 것도 하는 사람이나 하지...

!

천왕저가 그의 어깨로 떨어졌다.

석두공은 너무도 심한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입을 딱 벌렸다.

그의 어깨가 능충 내려앉았다.

아무래도 뼈가 바스라진 것같았다.

만배선사는 눈을 감고 못본척하며 다시 괴이한 주문을 한번 외웠다.

그리고 턱으로 한번 외워보라는 시늉을 했다.

하나 이번에도 석두공은 삼혼영군가 하는 말 밖엔 떠오르지 않았다.

!

천왕저는 그의 머리에 떨어졌다.

천하의 석두공도 입과 코로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갔다.

한데 그의 몸은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포연신공이 절로 일어나면서 밖의 손상입은 공력이 잠복하고 잠복하고 있던 공력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만배선사는 또 다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석두공은 평생 이처럼 정신을 집중시킨 적이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천왕저를 맞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만배선사는 겨우 중간정도 외웠을 뿐인데 벌써 앞의 구절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석두공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또다시 맞을 것을 생각하니 다리가 후들후들떨려왔다.

매에는 진정 장사가 없는 법인 모양이다.

더욱이 석두공을 때리고 있는 천왕저는 원래 때리기 위한 전문도구인 몽둥이였으니...

검으로 베인 상처는 싸늘한 느낌에 따가울 뿐이다.

주먹으로 맞았을 때는 둔중한 느낌이기는 하지만 금방 그 충격이 사라진다.

하지만 몽둥이라는 놈은 그 고통을 뼛속에 저장해서 두고두고 괴롭히는 괴물같은 놈이다.

한 대 한대 맞을 때마다 석두공은 천왕저가 더욱 더 두려워졌다.

처음 맞는 한대보다는 열번째 맞는 한대가 그 고통에 있어선 처음 한대의 열배도 더 될 것같았다.

[...]

니라니라하고 다 왼 만배선사의 눈초리가 다시 석두공을 노려보았다.

석두공은 눈을 찔끔 감았다.

달달달...

무슨 말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입술은 달짝이고 있었으나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머리속에도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천왕저는 그의 옆구리를 두드리고 돌아갔다.

고통! 그 고통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석두공은 그 고통을 만끽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만배선사가 또다시 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 한구절이라도 외워야 한다!)

장렬한 결심을 했건만 석두공의 돌머리는 아직까지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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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暴風武尊, 千年만의 復活

 

 

 

(제길... 틀렸다.)

자신의 진로를 가로막은 잔혼살객을 발견한 죽립객은 입술을 악물었다.

하지만 그는 추호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퍼엉!

맹렬히 앞으로 내달으면서 잔혼살객에게 일장을 가하고 몸을 홱 돌려 바로 뒤에까지 쫓아온 부운청풍객을 향해 쌍장을 날렸다.

그럼에도 그의 몸은 여전히 앞으로 날아가는 중이었다.

퓨아아앗!

부운청풍객은 벼락같이 검을 휘둘러 날아든 장력을 양단하며 죽립인에게로 날아들었다.

장력은 파죽지세로 쪼개지고 부운청풍객의 검은 죽립인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에 잔혼살객의 손에서 청월천인혈(靑月千人血)이라는 공포의 수법도 펼쳐지고 있었다.

앞 뒤에서 펼쳐진 그 두가지 살초는 죽립객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죽립객은 동귀어진을 생각했다.

기왕 죽어야한다면 이 악종들 중 한놈이라도 저 세상으로 데려가야만 한다!

한데 바로 그 순간에 기적이 일어났다.

촤악!

물속에서 불쑥 솟아오른 손이 회오리를 일으키며 죽립객의 발을 끌어당겼고,

그와 동시에 한 자루의 검이 손을 따라 치솟아 오르며 부운청풍객의 검과 잔혼살객의 청월천인혈을 풀어버렸다.

번쩍!

스파팟!

그리고, 돌연 유령같은 흰 그림자가 두둥실 떠올라서는 유유히 장강위로 날아가 버렸다.

그 그림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조각 구름처럼 자연스럽고 부드러워 보였다.

“...!”

“...!”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 그리고 해천월은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 그들로부터 말을 앗아간 것이다.

잠시 후, 부운청풍객 심제을이 암천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무공... 그끝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는 자신이 천하의 십대고수 중의 일인으로 오객에 속했을 때만 해도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데 그 후에 동호천이라는 서열에서 제외된 절대고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부운청풍객은 단혼곡주 하삼풍의 큰소리치기 좋아하는 아들을 자극하여 동호천을 암습하게 했었다.

결과는 어처구니없게도 호신강기에 진탕되어 그가 죽음으로써 증명되었다.

자신의 무공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부운청풍객은 잔혹한 수법을 동원하여 삼마경을 얻었다.

그 중에서 구가천마검법을 익히고 난 후에 이번에는 정말 적수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역시 동호천이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물론 잔혼살객과 적룡혈운도주 해천월마저 합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상을 입고 도망쳤어야 했다.

물론 동호천은 그때 죽었지만 그에 대한 공포심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부상을 겨우 치료하고 다시 무림으로 나왔을 때 동호천의 제자와 맞부딪혔다.

더 자라기 전에 제거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는데 동호천의 제자 석두공은 동호천과는 또다른 종류의 고수였다.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괴하면서도 귀신같이 빠른 공격에 당해 손목이 부러지는 치욕을 당했다.

석두공을 제거한 것은 잔혼살객의 술수에 의하지 않았으면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후 부운청풍객은 절치부심 각고의 수련으로 드디어 구가천마검법을 팔성(八成) 수준까지 익혔다.

그의 무공은 오년전 석두공과 싸울 때에 비해서 다섯 배 이상 강해졌으며 이제야말로 하늘 아래 더 이상 자신의 적수는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잔혼살객과 해천월마저도 그의 무공은 인정했고 은연 중에 부운청풍객은 그들의 우두머리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데...

한데 이게 또 뭐란 말인가?

자신의 눈앞에서 이렇게 쉽게 사람을 빼갈 수 있는 자가 또 있었단 말인가?

구가천마검법을 막고 잔혼살객의 청월천인혈을 깨뜨리고 말이다.

극심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검성과 만박노조 등이 더이상 자신의 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고수들은 아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뒤에 서있는 검종맹의 수하들을 보면서 말했다.

[돌아가자!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잔혼살객과 해천월도 고개를 끄덕였다.

 

× × ×

 

[노선배님!]

장강의 남쪽에 있는 작은 야산의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곳엔 용왕묘(龍王廟)가 한채 서있다.

그리고 놀람에 찬 음성이 그 안에서 터져 나왔다.

“...!”

용왕묘의 안에는 한 노인이 뒷짐을 지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죽립객이 엉거주춤 서있고...

노인이 입을 열었다.

[오랫만이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가? 네 주인인가 하는 그 아이는 어디로 갔는가?]

[그는 소림사로 가던 중에 실종됐습니다. 아마 부운청풍객이나 잔혼살객을 만났던 것같습니다.]

죽립객은 이제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다는 듯이 죽립을 벗었다.

그는 바로 복우파(伏牛派)의 기재인 혼장서생(渾掌書生) 금사종이었다.

노인이 준엄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는 뭘 했기에?]

[전 그때 백검보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을 만나 그자의 검에 가슴을 맞고 정신을 잃었습니다. 깨어나 보니 그는 제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떠나버린 뒤였습니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공력이 극히 미미하게 변한 지라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혼장서생 금사종,

그가 바로 요즈음 신비의 고수로 이름을 날리는 일초진천수(一招震天手)였다.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노인은 그와 석두공이 구해주었던 고검문의 문주인 섭군천이다.

금사종은 그에게서 포연신공을 전수받은 적이 있기에 해천월의 일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고검문주 섭군천이 냉소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심제을 그놈을 죽이기는커녕 도로 죽을 뻔 하다니... 창피하지도 않느냐?]

[...!]

금사종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에게 섭군천의 추궁이 이어졌다.

[놈이 삼마경을 익혔다고 해도, 아직 팔성을 넘지 않은 수준인데 그 정도라면 포연신공으로 능히 겨루어 볼 수 있는 것이건만...]

금사종은 암담했다.

지금도 그를 죽일 수 없는데 앞으로 만약 그가 검마경을 십이성까지 수련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죽일 수 있을 것인가?

금사종은 무치무요를 거의 다 익혀보았지만 그중의 어느 무공도 대성(大成)하지는 못했다.

기기묘묘한 수법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그의 머리속에 있었으나 아직 그것들은 엉킨 실타래처럼 술술 풀려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섭군천이 나직하게 말했다.

[노부는 굳게 마음먹은 것이 있다. 만약 일년 안에 심제을 그놈이 죽는다면 천하에 공도(公道)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천하에 공도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

[만약, 천하에 공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섭군천의 두눈에서 무시무시한 광망이 번져나왔다.

[노부는 거리낌없이 천하를 피로써 씻어버리겠다. 그때는 검을 들거나 주먹을 쥔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

부르르르...

금사종은 극심한 추위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천하제일의 검문이라는 고검문의 문주!

그라면 능히 그럴 힘이 있을 것같았다.

부운청풍객 등 삼인의 손에서 주머니의 물건을 꺼내듯이 자신을 빼내온 그가 아닌가?

 

-천하를 피로써 씻어버린다!

-검을 들거나 주먹을 쥔자는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실로 무시무시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자는 몰라도 부운청풍객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를 죽이지 못한다면... 무림이 깡그리 사라질 지도 모른다!)

금사종의 가슴은 심하게 떨렸다.

심제을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속을 꽉 채웠다.

제자의 배신에 가족을 잃고 이십 년을 감금당해 있었던 고검문주!

그는 언제든지 피를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었다.

 

× × ×

 

이정(二正)과 일사이객(一邪二客)이 부운청풍객등에게 당한 패배는 무림에 엄청난 반향(反響)을 불러왔다.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던 검성등이 어이없이 패해 도망쳤다는 소문은 모든 무림인들에게 커나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눈치를 보면서 검종맹과 잔혼각등에 붙지 않고 있던 많은 군소문파들이 스스로 장문령부를 그들에게 갖다 바쳤다.

백검보가 패했는데 누가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백검보의 분위기는 침통했고 모였던 고수들은 다시금 뿔뿔이 흩어져 떠나갔다.

뭉쳐도 패배,

흩어져도 패배,

어차피 그럴 바에야 그들의 성격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쪽을 택한 것이다.

 

* * *

 

[뜻밖의 인물이라!]

금포(錦袍)노인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뜻밖의 인물이 아니라 본좌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인물일 수도 있지. 그가 만약에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고수였다면 말이야!]

금포노인의 입가로 미묘한 웃음이 흘렀다.

[이제서야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하는가? 흐흐흐!]

그는 갑자기 소리쳤다.

[미사(美邪)! 둔부를 뒤로 하고 엎드려라!]

명을 받은 미사가 금포노인의 앞에서 둔부를 내밀며 개처럼 엎드렸다.

금포노인의 눈앞에 그녀의 희멀건 둔부가 산등성이처럼 보였다.

그리고 둔부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사이에 붉은 꽃잎이 보였고, 꽃잎에는 깊고도 검은 동굴이 수초들에 가로막혀 있었다.

노인은 손가락을 뻗었다.

[!]

미사가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노인의 중지가 그녀의 붉은 꽃잎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촉촉한 물기가 손가락을 타고 흘렀다.

노인은 손가락으로 실을 감듯이 뱅글뱅글 돌렸다.

미사의 은밀한 곳이 옴찔옴찔 움직이며 맑은 물이 음모를 타고 흘렀다.

[아아아! 헉헉헉!]

노인은 쥐구멍에 빠뜨린 동전을 꺼집어 내기라도 할 듯이 손가락을 더욱 깊이,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미사의 둔부는 그의 손을 마중하러 나왔으며 질척이는 소리가 침상에 있는 모든 여인들의 귀속으로 파고들며 음욕을 돋구었다.

[아아아!]

미사의 신음소리는 절정을 향해서 치닫고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다가 자신의 둔부를 끌어당기며 은밀한 부분을 더욱 크게 벌리려 했다.

그때 노인이 손을 뽑았다.

[이정도까지, 흐흐흐...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거지.]

미사가 돌아서서 그의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달아오른 얼굴은 노인에게도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었다.

[웁웁]

노인의 손가락을 입에 넣은 미사는 혀를 오물거리며 빨았다.

스윽!

노인의 금포가 젓혀지고 그의 배꼽어림에서 거대한 물건이 서서히 일어서고 있었다.

꿈틀거리며 일어서는 그것은 마침내 완전히 모양을 갖추었고 노인은 미사의 머리를 잡고 그곳으로 끌어당겼다.

[헉헉!]

미사의 혀가 노인의 남성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한입에 들어가기에 그것은 너무도 컸다.

오직 자신의 은밀한 곳으로 밖에는 받을 수 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비스듬히 드러누운 노인에게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아래서부터 접근했다.

앉은 채 조금 씩 몸을 밀착시켜 노인의 남성을 자기의 꽃잎에 맞추었다.

순간 노인이 와락 그녀의 둔부를 끌어당겼다.

[아악!]

미사가 비명을 질렀다. 천지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노인이 흥분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천하는! 이렇게 갑자기 취하는 것... ]

마치 천하를 취하기라도 하는 듯이 미사를 힘껏 끌어당기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아아악! ! !... ... ]

침상위에선 광란의 난교가 벌어지고 있었다.

 

× × ×

 

[천신폭풍보...]

석두공은 그말을 중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 미친듯이 폭풍처럼 달리고 싶다... )

천신폭풍보를 펼쳐보고 싶은 충동으로 그의 가슴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한 기분은 명마(名馬)를 얻은 사람이 타보고 싶어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석두공은 다리가 달달 떨렸다. 절로 달리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두두두!

마침내 석두공은 달리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거대한 폭풍인양 그의 몸은 흐릿해지면서 천신폭풍탑을 이층 내부를 돌기 시작했다.

콰르르르릉!

진정 말 그대로 그는 천신(天神)의 폭풍(暴風)이 되었으며 그 여파에 석탑은 여지없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콰드드드!

석벽이 터져나갔으며 바닥이 무너져 버렸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탑의 삼층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고오오오!

그는 더욱 빠르게 맴돌았다.

콰콰쾅!

마침내 어느 순간 천신폭풍탑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린듯 송두리채 터져서 날아올라갔다.

콰아아아아!

휘이이이잉!

 

그것도 분명 인간의 힘이었다.

그러나 도저히 인간의 힘이었다고는 믿을 수 없는 힘이었다.

천신폭풍보-!

그것은 대자연의 거력이었으며 신의 힘이었다.

투두두둑!

천신폭풍탑을 이루고 있던 것들이 모두 작은 모래가 되어서 떨어져 내렸다.

천신폭풍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또한 항아리같은 그 절곡의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버렸다.

석두공은 허탈한 심정으로 우두커니 멈추어섰다.

그가 선곳은 처음 석두공이 이 절곡에 떨어져 정신을 차렸던 그 대리석바닥위였다.

자신이 한 일이건만 그는 도저히 자신이 했다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 어떤 악마가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데 이럴 수가...!

“....!”

석두공의 머리위 이십여 장 정도의 허공, 그곳에 한사람이 허공을 평지처럼 밟고서 손바닥만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가만히 떠있는 그의 몸에서는 진정 천신도 범할 수 없을 것같은 엄청난 기도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석두공의 머리에 벼락같이 생각이 지나갔다.

 

-본좌 폭풍무존은 부활하리라!

 

(정말 폭풍무존이 부활했단 말인가? 저 사람이 폭풍무존이란 말인가?)

석두공은 아연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 보았다.

이곳에서 알같이 생긴 공간을 빠져나오면서 상당한 기억력을 회복한 석두공이었다.

아직도 여전히 보통사람의 십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조금씩은 기억력이 늘고 있었다.

그는 폭풍무존의 글에서 떠오르는 구절을 상기해 내고는 부르르 진저리쳤다.

대체 몇년 전의 인물이란 말인가?

신이 아닌 인간이 어떻게 그처럼 오랫동안 살 수 있단 말인가?

폭풍무존은 이미 이 절곡에서만도 이백사십년을 살았다고 했는데...

그때 폭풍무존이 옷깃을 날리며 서서히 밑으로 내려왔다.

이미 무공이 거의 완성단계에 들어선 석두공이건만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는 것을 느꼈다.

폭풍무존,

그의 모습은 불과 삼십을 넘지 않은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오관은 반듯했으며 패도적인 기운이 물씬 풍겨나고 있었다.

아니, 그의 몸에서 풍겨나는 기운을 패도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패도적인 것마저 초월한, 말 그대로 강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았다.

석두공은 그의 모습에서 부터 폭풍무존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와 닿았다.

그의 손짓 하나에 산이 날아가고 그의 입김에 숲의 나무들이 모두 뽑힐 것만 같았다.

석두공은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의 사부가 당신을 이곳에서 탑이나 깍게한 이유를 알만도 하군. 어쩌면 나라도 그랬을 것...)

석두공과 폭풍무존의 눈이 마주쳤다.

파파파팟!

석두공은 눈알이 뽑히는 것같았다.

그러나 그는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응시했다.

그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폭풍무존의 얼굴이 실룩실룩거렸다.

그리고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흘러나왔다.

[너가 나르 깨우 자리가?]

석두공은 기억력은 형편없지만 순간적인 이해력은 누구보다도 뛰어나다.

그는 그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자신에 대해서 묻는 것이라 생각했다.

[제가 깨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탑은 제가 부순 것같습니다.]

폭풍무존은 계속 입을 실룩거렸다.

아마도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서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가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상당히 정확한 발음이 나왔다.

[본좌의 천신폭풍보를 익힐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군. 너는 누구냐? 본좌는 폭풍무존이다.]

하지만 여전히 말의 두서는 없었다.

그저 생각나는 순서대로 말을 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부터 말이 저런가 아니면 너무 오랫만에 말을 해서 그런가?)

여하튼, 그는 즉시 대답했다.

[전 석두공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천신폭풍보를 익히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본좌가 살았던 때로 부터 얼마나 세월이 흘렀느냐? 본좌는 당()의 고종(高宗) 삼년에 태어났는데...]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태어난 지는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는 이야기인데,

안타깝게도 그가 최초로 만난 상대는 석두공이었다.

석두공은 역사에 대해서 문외한 일뿐 아니라 무공을 제외한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기억하지 못하는 돌머리다.

폭풍무존의 질문은 하나마나 한 것이 되었다.

석두공은 간단히 대답했다.

[상당히 오랜 세월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이백 년 정도 되었는가?]

[아마 그 정도 됐을 것입니다.]

석두공은 아마라는 말을 붙혀서 답했다.

그래야 틀리더라도 발뺌할 여지는 남을 테니까...

하지만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폭풍무존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본좌는 혹시 한 천 년이나 지났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 세상이 너무 많이 달라져 버리면 곤란하지.]

[여기서 나갈 방법은 있습니까?]

석두공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폭풍무존이 씨익 웃었다.

[천신폭풍보를 익힌 놈이 겨우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아마도 네 녀석은 바보인 모양이군. 이미 이곳을 폐쇄하고 있던 진도 깨어졌다. 못나갈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밖으로 나가시면 뭘 할 작정입니까?]

석두공이 빠르게 물었다.

그는 폭풍무존이 세상으로 나가기만 하면 꼭 무슨 일을 저지르고 말듯한 기분이 들어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폭풍무존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 일단은 본 은세정검회의 숙적인 독존패왕궁, 그놈들이 아직도 발톱을 다듬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지. 그리고 은세정검회로 돌아가서 어떤 녀석이 회주가 되었는지도 알아보고, 사부께서 내게 혹시 남긴 말은 없는지도 알아봐야겠지.]

[그 다음에는요?]

[글쎄... , 아무래도 무림에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놀아봐야겠지. 평생 가까이 못했던 여자들도 한번 만나보고... ]

폭풍무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석두공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폭풍무존은 천천히 허공으로 올라가면서 말했다.

[그럼 무림에서 보게나.]

그의 몸은 구름처럼 두둥실두둥실 떠올라서 손바닥만한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것이지 신법을 펼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공답허니 허공답보는 하는 경공술도 비록 허공을 밟고 오를 수는 있는 것이지만 이처럼 날아가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폭풍무존의 모습을 만약에 도가(道家)의 제자가 보았다면 신선(神仙)이라고 엎드려 절하고 그 자리에 도관이라도 세웠을 것이다.

그처럼 폭풍무존의 모습은 우화등선(羽化登仙) 그 자체였다.

석두공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폭풍무존에게 뭔가가 모자라는 것같은데 그걸 알 수가 없군. 틀림없이 그도 나처럼 뭔가 하나는 빵통인데...]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포기하고 자신의 방망이를 손에 들고 폭풍무존의 흉내를 내어 날아올랐다.

하지만 흉내뿐인 무공은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몸은 떨어질듯 말듯 위태위태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 순간 석두공은 폭풍무존에게 뭔가가 빠진 것같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설마 자신에게도 기억이외에 다른 그 무엇이 빠져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그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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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長江大血戰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다.

개발다닥에도 땀이 날 정도로 무더운 여름밤인데,

깃발,

붉은 비단에 피빛 구름(血雲)을 타고 오르는 적룡(赤龍)이 수놓여진 깃발 하나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마차는 그 깃발을 단 채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마른 땅에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스스스!

그리고 달려가는 사두마차의 주위로 그림자인 듯 청의무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뿌옇게 일어나는 먼지,

그리고 푸른물결을 이루고 달려가는 청의무사들...

청의무사들의 수효는 일천 명이 넘을 것같았다.

두두두두-!

마차는 지축을 뒤흔들었지만 청의무사들은 옷자락 날리는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들은 순식간에 관도 저 멀리 아스라히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어둠이 일렁이는 듯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것은 어둠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너무도 검어서 어둠과 구분이 가지 않는 옷을 입은 자들이었다.

흑의에 검은 복면을 했으며 눈동자는 썩었는 듯 죽었는듯 빛이 없었다.

모두가 어둠 그 자체인듯한 자들은 조용히 땅위를 미끌어지듯 달려갔다.

그들의 모습도 관도 멀리 사라졌다.

 

그 직후 이번에는 붉은 옷을 입고 검과 도를 비껴맨 자들이 어깨에 무엇인가 기다란 물건들을 메고 달려왔다.

다섯 명이 한 조가 되어서 움직이는 그들의 어깨에 매여있는 것은 놀랍게도 좁고 긴 배였다.

홍의를 입은 그들은 개미들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배를 들고 달려갔다.

배들의 숫자는 무려 이백개에 달하고 있었다.

 

[백검보를 노리는가?]

세무리의 인물들이 지나간 관도 옆 숲속에서 한사람이 걸어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머리에는 죽립을 섰으며 검붉은 장삼을 입은 자였다.

얼굴은 죽립에 반쯤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서른이 넘은 사람같진 않았다.

[백검보로 가는 심부름이 이렇게 늦어 버렸군. 어쨌든 지금이라도 심부름을 하지 않을 수야 없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성큼걸음을 옮겼다.

스읏!

순간 그의 몸은 고무줄처럼 쭉 늘어지는 듯하면서 이십장 밖에 서있었다.

다시 한걸음을 옮겼을 때는 사십장 밖이었다.

천천히 한걸음씩을 옮기고 있을 뿐이지만 죽립인의 그 한걸음은 한번에 이십장 씩을 돌파하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빠르기였다.

여유가 있으면서도 그 가공할 속도는 경악, 그 자체였다.

 

× × ×

 

-장강(長江)!

 

수백리에 걸쳐 뻗어있는 푸른 갈대밭에 괴이한 무리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먼저 사두마차와 청의무사들이 도착했으며, 연이어 흑의복면인들이 도착했다.

그리고 잠시후 좁고 긴 배를 짊어진 홍의인들이 갈대밭에 내려섰다.

사두마차 속에서 돌연 싸늘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제 장강이오. 장강을 건너 세시간이면 우리는 백검보에 도착할 것이오. 그때는 아직 날이 밝기도 전, 우리의 기습으로 백검보는 힘도 한번 쓰지 못하고 무너질 것이오.]

[백검보에는 만박늙은이도 있다는 소문이오. 그 늙은이의 교활한 머리는 조심해야 할거요.]

어둠속에서 나직하면서도 칙칙한, 죽음같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때였다.

[물론 조심은 해야지. 그러나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 지금은 조심할 때보다는 진격할 때이다.]

어디선가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

마차속의 인물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

[그럼 도하합시다. 시간을 지체할 건 없소.]

스스스스슷!

배를 짊어진 홍의인들이 강가로 나가며 힘껏 배를 던졌다.

휘이이!

휘이익!

바람소리를 내며 날아간 배들은 장강에 첨벙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 순간 배를 던진 홍의인들은 이미 몸을 날려 배위에 올라서고 있었다.

흑의인들과 청의인들도 귀신처럼 날아갔다.

곧 강변에는 사두마차 하나만이 남게되었다.

그 직후였다.

덜컹! !

드르륵!

마차의 벽이 옆으로 갈라지면서 마차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방 하나의 배같은 모습을 갖추었고 말은 둥근 통나무위에 서게 되었다.

다각다각닥각!

말들은 그런 상태에서도 달렸고 통나무들이 구르면서 마차는 앞으로 나아갔다.

 

마차가 강변에서 제법 멀어졌을 때,

스윽!

죽립의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운청풍객 심제을! 용서받지 못할 배덕자! 네놈부터 없애주마!]

죽립인은 나직하게 살기어린 음성을 내뱉고 강물위에 발을 얹었다.

놀랍게도 그는 물을 밟았음에도 가라앉지 않았다.

한데 그는 한걸음 옮기려다가 발을 번쩍 들어올렸다.

발밑의 감각이 조금 이상했던 것이다.

가죽으로 만든 신발에 미끈미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기름()! 기름이다!)

죽립은 내심 크게 외쳤다.

(그렇다면 백검보에선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설마하니 백검보가 아니고서야 이곳에 기름을 부어놓은 자기 있을까?)

죽립인은 즉시 강변으로 나와버렸다.

바로 그때였다.

피유우우웅!

피유우우웅!

칡흑같은 암천(暗天)에 유성(流星)이 거꾸로 흐르듯 불빛들이 솟아올랐다.

불화살들이었다.

불화살들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강상으로 떨어져내렸다.

! 화르르르!

그와 동시에 강물위로 무서운 속도로 불길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강상(江上)이 삽시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이백 척의 배들은 삽시간에 불길에 휩싸여 버렸다.

화마(火魔)의 무서움은 진정 엄청났다.

하나같이 고수들 같아 보였던 자들은 아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재가 되어 사라져갔다.

“....!”

보고 있던 죽립인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삼천 명의 인명이 순식간에 불에타고 물속으로 가라앉는 장면...

그 참혹함을 어찌 말로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거리가 멀어서 비록 불빛만 보이고 비명소리 하나 들려오지 않았지만 들리지 않는 아우성은 사람의 심장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죽립인이 중얼거렸다.

[삼마경을 익힌 그자들이 이렇듯 간단하게 끝을 맺고마는가?]

 

불은 두시간에 걸쳐서 타오르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마지막으로 불길이 한번 치솟으며 환히 밝힌 강상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강의 여기저기에서 작은 불빛들이 나타나더니 삼천 명이 화장(火葬) 또는 수장(水葬)되었을 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

죽립인도 강물위로 걸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작은 불빛들은 배들에 달린 횃불들이었다.

불빛들 사이에 어슴푸레하게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중에는 만박노조도 있었고 검성도 있었다.

 

[허허허허...]

만박노조가 통쾌한 듯 웃음을 터뜨렸다.

[병법에 이르기를 적이 오는 길은 언제나 세곳 뿐이라 했지. 길목을 지키면 적은 막히기 마련...]

[본인은 쉽게 믿어지지가 않소. 그들의 무공을 목격한 자라면 누구나 다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오. 이정도의 불길이라면 보통 고수들은 태워죽일 수 있겠지만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을 것이오.]

붉은 옷을 입은 자가 말했다.

그는 언제나 단독으로 행동한다는 혈포단객(血袍單客)이었다.

만박노조가 냉소하며 말했다.

[자네는 그 기름이 보통 보통 기름이었을 것같은가? 이곳의 물을 잘 보게.]

그가 가리키는 물, 그것은 가마솥에서 처럼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그 기름은 휘공열유(揮空熱油)란 것으로 쇠는 물론 바위까지도 녹이는 것이네. 그 속에서 살아날 수 있다면 그건 신이거나 악마, 둘 중하나일 것일세.]

헌데 만박노조의 말이 끝나는 그 순간이엇다.

[흐흐흐! 그럼 본좌는 신인가 악마인가? 만박...]

촤아아!

물속에서 공기방울처럼 누군가 불쑥 떠오르면서 말했다.

그자는 물을 밟고 뒷짐을 진채 우뚝 서있었다.

“....!”

만박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검성이 차갑게 말했다.

[해천월! 스스로 악마가 되었다고 생각하는구나. 노부의 벽린검(碧燐劒)을 받아라!]

스파앗!

말이 끝남과 동시에 푸른 빛이 대기를 갈랐다.

물속에서 올라온 자는 바로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의 도주인 해천월이었다.

그는 여유있게 웃으며 말했다.

[검성! 당신은 내 적수가 못돼!]

해천월의 우검이 번개불처럼 섬광을 발했다.

파앙!

두가닥의 검기가 충돌하며 그파장으로 인해 물결이 높이 솟았다.

해천월은 그 물결을 밟고서 높이 솟았다 떨어졌다.

그런 그의 모습은 파도를 탄 해신(海神)같이 보였다.

반면 검성은 충격을 받고 배위에서 튕겨나가 물위로 내려섰다.

그의 얼굴은 해천월의 무공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촤촤촤촤촤...

물결이 돌연 파랑을 이루며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돌연 물속에서 좁고 긴 배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또한 그 배위에는 타서 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 자들이 버티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 중에는 심하게 화상을 입은 자들도 있었지만 멀쩡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다.

최소한 이천 명은 넘게 살아있는 것같았다.

만박노조는 갑판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럴 수가...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일백 수십 척에 달하는 배들이 오히려 검성 등을 포위해버린 행세였다.

그들은 좁고 긴 배를 뒤집어서 화마를 피했던 것이다.

츄앙! 츄앙!

잉어가 물밖으로 튀쳐나오듯이 물속에서 두개의 그림자가 뛰어올랐다.

그리고 허공에 우뚝 멈추서는 것이었다.

그들 두사람... 바로 부운청풍객 심제을과 잔혼살객이었다.

[하하하하... 고수란 고수는 모두 장강에 모였군.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철사보주까지 이곳에서 본좌등을 마중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걸?]

부운청풍객이 광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부르르르르...

강물이 진동을 일으키고 배들이 다르르 떨었다. 엄청난 공력이 깃들어 있는 웃음소리였다.

검성을 비롯한 자들은 공력을 황급히 끌어올려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엄청난 광소에 그들은 치를 떨었다.

잔혼살객이 음산하게 말했다.

[이들만 처치하면 하삼풍 혼자만 남게 되는군. 흐흐흐흐... 강위에 무림이 놓여있을 줄이야... 흐하하하하... ]

나직하게 웃었지만 잔혼살객의 웃음소리는 무서운 공포를 담고 있었다.

검성과 만박노조, 그리고 혈포단객과 무형검객 및 철사보주는 무거운 표정으로 병기를 잡았다.

잔혼살객등 삼인이 보인 무공으로 보아 그들이 살아날 가망은 거의 없을 것같았다.

 

× × ×

 

죽립인은 천천히 강중간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에 이미 부운청풍객 등의 모습이 보였다.

싸움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승패는 결정난 것으로 보였다.

[저들이 죽는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것... 어떻게든 구하고 봐야겠군.]

나직히 중얼거린 그는 은밀하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 촤촹! 카가각!

물위에서는 격전이 벌어졌는지 그 진동과 소음이 물속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슈우우우...

물고기처럼 잠수하여 나아간 그는 좁고 긴 배들의 밑을 지나 검성 등이 타고 있는 배밑까지 다가갔다.

 

펑펑!

[허억! 이 이렇게 강하다니... !]

철사보주 맹호산이 피를 토하며 뒹굴었다.

적룡혈운도주 해천월의 도에서 뿜어진 강기에 부딪혔을 뿐이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똑 같이 삼사(三邪)의 일인이었건만 그같은 무공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검성과 만박노조는 함께 힘을 합쳐서 부운청풍객을 상대함에도 수없이 생사의 위기를 맞는 것과는 큰 차이였다.

한데 십대고수 중에서 가장 어린 무형도객의 무공은 기이하도록 놀라웠다.

비록 잔혼살객에게 밀리고는 있었지만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형도객의 몸에서 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몸을 움직일때마다 사지의 어느 곳에서든, 심지어는 가슴 한가운데서도 백색 도기(刀氣)가 뻗어나오고 있었다.

카가가강!

잔혼살객의 연기처럼 흐릿한 몸에서 발출된 다섯 줄기의 섬전이 모두 무형도객의 몸 근처에서 가로막혀 떨어졌다.

그렇지만 무형도객의 몸은 그 충격만으로도 뒤로 주르르 밀려갔다.

잔혼살객이 나직하게 소리쳤다.

[혈월단천(血月斷天)!]

쩌어어엉!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붉은 초생달 같은 것이 떠올랐다.

혈월은 미끌어지듯 무형도객을 향해 날아갔다.

그것은 강기가 응축된 것으로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무형도객은 몸을 비스듬히 돌리며 손가락으로 혈월을 가리켰다.

푸앗!

그의 손가락에서 백색의 도기가 강렬하게 발출되었다.

두가닥의 강력한 기운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피직!

헌데 그 순간 혈월은 백색도기를 흡수해버리며 그대로 무형도객을 향해서 날아들었다.

(... 피할 수 없다!)

무형도객은 이를 악물었다. 혈월은 너무도 빨리 그의 얼굴을 반으로 갈라오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츄앙!

물속에서 용이 솟구치듯 솟아오르며 흰그림자가 혈월을 휩쓸어갔다.

!

엄청난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콰아아아아-!

주변의 배들이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고 물길이 수십 장이나 치솟았다.

잔혼살객은 분노하여 소리쳤다.

[웬놈이냐!]

꽈르르릉!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다시 한번 밀어닥친 폭풍같은 강기였다.

잔혼살객은 다시 한번 혈월단천을 시전했고, 진정되지 않은 강상에서는 또다시 강기의 폭풍이 소용돌이 쳤다.

콰아아아아-!

(! 이놈 보통이 아니다. 본좌에 그다지 약하지 않다.)

잔혼살객은 보이지 않는 상대방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강상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솟아오른 자는 바로 죽립객이었다.

그는 잔혼살객에게 이장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적룡혈운도주 해천월과 부운청풍객에게도 각기 은밀한 일장을 날려 강상을 뒤집어버렸던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그의 전음이 천둥처럼 검성등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스팟! 쐐애액!

죽립인의 말뜻을 알아차린 검성등은 혼란의 와중에서 몸을 빼어 탈출하기 시작했다.

부운청풍객 등 삼인의 무공은 오히려 죽립객보다 높았다.

하지만 창졸간에 당한 일이나 검성등을 놓치고 말았다.

죽립객은 그들이 떠나자 자신도 즉시 몸을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마저 놓칠 만큼 부운청풍객은 어리석지 않았다.

네번의 장력을 발출했을 뿐이지만 그의 위치는 부운청풍객에게 완전히 노출되었던 것이다.

죽립객은 어느 틈에 자신의 뒤에 부운청풍객이 다가옴을 느끼고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돌아서는 것도 늦고 피하는 것도 늦다.

방법은 오직하나 그대로 앞으로 달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이미 잔혼살객이 회색눈을 치켜뜨고 노려보고 있었다.

희롱을 당한 듯한 그에게서 미칠 듯한 분노가 죽립객에게로 전해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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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風雲大陸

 

 

 

! !

수십 명이 뒹굴 수 있는 거대한 침상에 비스듬히 누운 금포(錦袍)노인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무릎을 두번 쳤다.

스스스슷!

그러자 정갈한 백의를 입은 미소년들이 들어와 즉시 침상주위에 늘어섰다.

그리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소년의 손짓에 따라서 침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화정지(花精池)로 가자.]

금포노인은 나직하게 말했다.

금포노인과 삼십 명 정도 되는 여인들을 태운 둥근 침상은 밖으로 운반되어 나갔다.

오십 명이나 되는 소년들이 침상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둥근지붕의 건물을 빠져나가 마천루처럼 솟아있는 전각들 사이로 지나갔다.

움직이던 자들은 즉시 땅바닥에 엎드리며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금포노인은 그들을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전각들의 뒤에 푸른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넓게 뚫어진 길은 시원스러워 보였고 나무들 사이사이에 공들여 손을 본 흔적이 역력한 꽃들이 짙은 향기를 발하고 있었다.

벌과 나비는 미녀들의 몸위로도 날아다녔으며, 새소리는 인간이 세상을 잊게하는 힘이 있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인공으로 만들어진 연못이 있었다.

연꽃과 수국이 만발하고 있었으며 물위로 자라있는 나무들에도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있었고 연못의 주위도 수백가지의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금포노인은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말했다.

[환요(幻妖)는 옷을 벗고 그곳에 누워라.]

사라락! 사락!

환요는 허리 숙여 절하고는 일어서 자신의 타는 듯이 붉은 홍의(紅衣)를 벗어 옆에 놓았다.

그녀의 머리위로 파란 하늘이 눈부신데 그녀는 우유빛 나신으로 금포노인 앞에 섰다.

얼굴에는 농염한 미소가 뜨거움을 담고 금포노인을 향해 피워지고 있었다.

잘 구워진 도자기의 흐름선 보다 더욱 유연해보이는 허리는 위로 터질듯 풍만한 유방을 받치고 있었고 아래로는 어떤 충격이든 다 무마시킬 수 있을 정도로 탄력있는 둔부를 요사스럽게 조금씩 흔들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가 뒤로 누웠다.

모로 세워진 무릎은 오무려져 있었으나 은밀한 비궁은 오히려 금포노인을 향해 뚜렷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금포노인은 눈을 지그시 감으며 감상하다가 눈을 사르르 감으며 말했다.

[초훼(草卉)도 옷을 벗어라.]

노인의 뒷쪽에서 한 여인이 일어섰다.

나이는 십팔구세 정도, 아직 이십세가 되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홍색 나삼으로 감싸고 있는 그녀의 나신은 터질듯 풍만했으며 허무한 듯 보이는 그녀의 퇴폐적인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기에 족했다.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둔부에까지 치렁치렁늘어져 있는데...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몇 번 흔들었다.

사라라락!

그러자 홍색 나삼이 오무라진 어깨에서 흘러내리며 가슴에 잠시 걸렸다.

초훼는 다시 몸을 꼬듯이 흔들었고 나삼은 그녀의 둔부를 타고 발등으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나삼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다리는 옥으로 깎아서 만든듯 미려하고도 가늘었으며 희디흰 허벅지는 둔부로 이어지면서 그 사이에 검은 수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초훼는 자신의 손바닥으로 치골의 앞쪽을 살짝 눌려서 밀어내렸다.

부드러운 수풀이 그녀의 손을 따라 풀잎처럼 누웠다.

그때 노인의 권태로운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환요의 몸위로 올라가라.]

초훼는 누워있는 환요의 곁으로 걸어갔다. 둔부가 살랑살랑 꽃대처럼 흔들렸다.

환요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면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오십 명의 미소년들에게 들리워진 침상은 이제 연못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소년들은 평지를 걷듯이 길이 끝난 곳에서도 멈추지 않고 물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머리위로 물이 완전히 잠겼을 때야 침상을 잡고 헤엄치며 연못의 가운데로 가고 있었다.

침상은 배처럼 물위에서 움직였다.

 

초훼는 환요의 배위에 걸터앉았다.

두 여인의 음모가 마주치면서 작은 소음을 냈다.

금포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말고!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란 말이야.]

그말을 듣는 순간 초훼는 환요의 허벅지를 타고 자신의 음부로 밀어내리면서 자벌레 처럼 몸을 뻗었다.

그녀의 두손이 환요의 복숭아같은 유방을 밀어올렸다.

붉은 혓바닥은 환요의 배꼽을 핥으며 그녀의 배꼽은 환요의 은밀한 곳에 있는 민감한 부분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아... ... ]

환요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초훼는 손과 입으로 그녀의 전신을 애무했다.

그녀의 혀는 환요를 타액으로 목욕시켰으며 그녀의 손가락은 환요의 모든 성감대를 빠뜨리지 않고 자극시켰다.

초훼는 마치 남자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고 환요의 흥분을 참지 못해 발하는 신음소린 높아만 갔다.

침상위의 다른 여인들이 몸을 꼬며 손을 그녀들의 소중한 곳으로 가져갔고 허벅지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눈을 꼭 감고 있는 여인도 있었다.

짝짝!

문득 노인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침상이 멈추어지고 헤엄치던 미소년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금포노인이 우두머리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올라오라!]

퓨웃!

소년은 물속에서 높이 뛰어올라 허공에서 옷의 물을 털어버리며 침상위에 내려섰다.

그는 마치 나무로 깍아서 만든 사람인듯 표정이 없었다.

노인이 말했다.

[환요를 강간해라. 단 무공을 사용하지 말고! 성공한다면 네게 환요를 주겠다.]

소년은 허리를 깊숙이 숙여보이고는 즉시 옷을 벗었다.

침상위의 여인들에게 그러한 일은 자주 있어온 일인 듯 그녀들은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초훼는 한쪽으로 물러섰고 당사자인 환요는 더욱 요염하게 웃어보였을 뿐이다.

초훼의 애무로 달아오를대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잘익은 홍시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손으로 소중한 곳을 만지고 있었다.

휘익!

소년은 병아리를 덮치는 매처럼 환요의 몸위로 날아들었다.

그의 남성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것은 하나의 흉기가 되어 그녀를 찔러가고 있었다.

환요는 무방비 상태인 것처럼 다리를 활짝 벌리고 손으로 자신의 가장 예민한 곳을 만졌다.

[!]

소년이 자신의 위에 올라오자 환요는 거친 숨소리를 냈다.

소년이 그녀의 비부를 겨냥하고 급하게 허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환요는 아주 가볍게 둔부를 살짝 움직이며 소년의 남성을 피해버렸다.

간발의 차이였다. 환요의 은밀한 곳에서 흘러나온 촉촉한 음액이 소년의 남성에 묻었을 정도였다.

[헉헉헉!]

소년은 연이어 허리를 흔들었으나 모두 허공이거나 살짝 건들리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

미친듯이 그는 허리를 흔들었고, 또한 환요가 피하지 못하도록 둔부를 꽉 움켜쥐기도 했다.

그러나 환요의 절묘한 방어 기술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아아아아... 아아!]

그러나 환요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신음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참기 힘든 욕정으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으헝!]

갑자기 소년이 짐승처럼 소리치며 환요의 두 다리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그제서야 다리를 밀어서 환요가 둔부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

다른 여인들의 입에서 짧은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환요와 소년은 단순한 정사가 아닌 치열한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소년에게 환요가 강간당하게 된다면 그녀는 이제 이 화려한 침상을 떠나서 수 많은 남자들을 상대해야만 하는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금포노인을 모시는 몸에서 하루아침에의 신분하락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니...

위기의 순간, 환요는 갑자기 두손으로 소년의 어깨를 힘껏 밀어버렸다.

그것은 둔부를 움직인 것이나 다름 없는 효과를 냈다.

[!]

다른 여인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때였다.

[그만, 그만!]

금포노인이 소리쳤다.

소년은 기계처럼 우뚝 일어섰다.

[내려가라.]

소년은 자신의 옷가지를 집어들고 침상을 내려갔다.

순간 노인의 좌수가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도저히 믿기 어려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푸스스스!

침상을 내려가던 소년의 몸이 먼지로 분해되어 물속으로 스며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어떤 기척도 없었으며 피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년은 흙으로 변해 물에 녹아버린 것이었다.

진정 이처럼 마법같은 무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명을 완수하지 못한 자에겐 죽음만이 있을 뿐이지.]

금포노인의 말이었다. 소년은 환요를 강간하라는 명을 완수하지 못한 때문에 죽은 것이었다.

금포노인은 미사를 소리쳐 불렀다.

[미사! 내 옷을 벗겨라!]

은빛 나삼을 입은 미사가 노인의 옷을 벗겼고 노인은 침상위에서 우뚝 일어섰다.

노인의 키는 누워있을 땐 몰랐지만 육척이 넘어보이는 거한이었다.

그는 여전히 누워있는 환요에게로 걸어가서 그녀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리고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흐흐흐흐... 삼마경을 얻은 그 세 놈은 방금 전의 그놈과 똑같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가지지 못할 것을... 노부를 위해 달구어 놓기만 할 뿐...]

금포노인은 환요의 두 발을 어깨에 걸치며 그의 남성위에 그녀를 얹어 놓았다.

[!]

환요가 비명을 질렀다.

그렇지만 그 비명은 한번의 위기를 넘긴 후의 행복한 비명이었다.

나무가지에 바가지를 걸어놓은 모양으로 환요의 은밀한 곳은 위로 뻗은 금포노인의 남성에 깊히 꿰어있었다.

금포노인은 환요의 몸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아아! !]

환요의 얼굴이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일그러지고, 이를 악다문 노인은 오랫만에 자신이 힘으로 여인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무림 자체이기라도 하듯이...

다른 여인들은 그의 주변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란 하늘 파란 물...

오색 만발한 꽃들이 있는 곳에서 불꽃보다 뜨거운 육체의 향연이 벌어진 것이다.

 

× × ×

 

황산(黃山)!

서하객(徐霞客)은 삼십 년에 걸쳐 대륙의 산하를 편력한 후에 이렇게 말했다.

 

-태산, 형산, 항산, 숭산, 화산의 오악(五岳)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멋으로 인해 다른 보통의 산 따위는 성에 차지도 않는다.

그러나 황산에서 돌아온 사람은 그 오악조차도 눈에 차지않는다!

 

이렇게 세인들의 칭송을 받는 황산에는 사절(四絶)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기송(奇松), 즉 기이한 모습을 한 소나무들,

기암(奇岩), 괴상하게 생긴 바위들,

운해(雲海), 넓게 펼쳐진 구름의 바다,

그리고 마지막은 온천(溫泉)이 그 사절이다.

 

이렇게 경관이 뛰어난 황산은 칠십 두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것은 연화봉(蓮花峰)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곳은 연화봉이 아닌 천도봉(天都峰)으로 이곳에는 당금 무림에서 결코 넘보지 못하는 하나의 거대한 힘이 웅크리고 있다.

 

<백검보(百劒堡)>

 

천도봉 남쪽 산록에 장엄하게 벌려 서있는 한채의 보루!

그것은 바로 이정(二正)중 한명인 검성(劒聖) 당이정(唐利貞)의 백검보였다.

원래 백검보는 이곳에 있지 않았다.

몇 십년 전만 하더라도 백검보는 홍택호(洪澤湖) 옆에서 오가는 배들을 수적(水賊)들로부터 막아주는 역할 따위나 하던 보잘 것없는 방파에 불과했었다.

백검보라는 명칭도 원래는 무사들의 수가 백명이 넘지 않았기에 붙은 것이었다.

한데 이 백검보는 현재 천하제일검(天下第一劒)이라고 추앙되는 검성 당이정이 보주가 되면서부터 그 기세가 엄청나게 팽창했다.

물론 무사들의 숫자가 불어난 것은 아니었다.

무사들의 수효는 여전히 정확하게 일백명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무공은 모두가 무림의 일개 방파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가공해져버렸다.

당이정은 단신으로 공포의 살인마이던 천산구혈마(天山九血魔)를 삼십초가 되기 전에 모두 죽여버리는 위엄을 보였으며, 장강의 칠십이수로채의 채주 흑수신마(黑手神魔)와 대결에서는 이초만에 그의 두 팔과 머리를 베어버렸다.

이 쾌거로써 당이정은 무림에서 검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천산구혈마가 어떤 인물이었던가?

전통의 도가(刀家)인 하북팽가(河北彭家)에 뛰어들어 가주이하 일백구십 인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빼앗아 갔으며, 오대산(五臺山) 청량사(淸涼寺)에서는 다섯 채의 불전을 불사르고 청량사의 주지 이하 사십칠인의 고수들을 찢어죽인 공포의 마두들이 아니던가?

그들의 살인행각을 막기위해 소림에서 파견했던 십이무승(十二武僧)들은 그들에게 눈알을 파이고 간을 뽑아주었어야 했고, 그들을 뒤쫓던 정파의 고수 일백여 인을 황하에서 수장시켜버린 인물들이었다.

또한 흑수신마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욱 무서운 인물이었으니... 장강에 빌붙어 사는 칠십 두개의 수적(水賊)의 무리들을 통합하여 그 수좌로 올라선 인물이었다.

휘하에 거느린 고수들의 수효는 무려 일만육천에 이르렀고 그의 가공할 흑수(黑手)는 어느 누구도 이장을 받아내지 못했었다.

고수를 두려워 하지 않는 흑수신마!

하지만 그도 검성 당이정의 명성만을 높혀주었을 뿐이었다.

또한 당이정의 명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것은 그의 수하들인 백검(百劒)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당이정의 명성만이 풍문처럼 떠돌던 어느날 백검 중의 육십세번 째 서열에 있는 함사전(咸四箭)이라는 인물이 소주(蘇州)에 들렀다가 파렴치한 무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도화방(桃花幇)이라는 곳의 인물들인데 도화방은 원래 기녀들을 양성하여 기루에 팔아넘기는 흑도의 방파였다.

도화방의 수하들은 소주의 대로에서 버젓이 드러내 놓고 여인을 납치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은 그들의 횡포와 보복이 두려워서 아무도 못본 체하고 지나갔다.

함사전은 그자리에서는 가만히 있었지만 암암리에 그들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그들이 숲속으로 들어가 여인의 몸을 망치려 하는 순간에 그들을 덮쳐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도화방의 본거지로 쳐들어갔다.

도화방의 사대호법이 그의 일검에 쓰러졌으며, 도화방주인 색골요희(色骨妖姬) 음자영(陰姿瓔)은 옷을 홀랑 벗어던지는 둥 온갖 수법을 동원하여 그의 살수를 피하고자 했으나 이십사초만에 머리는 머리대로 떨어지고 몸은 몸대로 세토막으로 잘려진 고깃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

무림인들은 함사전 개인의 무공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가 백검보내에서 단지 육십삼위의 보잘 것 없는 서열에 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비록 도화방이 작고 약한 방파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문을 연 일개방파인데 한 개인의 손으로 멸망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한데도 백검보의 최고수인 보주가 아닌 그의 수하들 중의 일인이 완전히 궤멸시켜버렸다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백검보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어느 문파를 공격한다면...?

무림인들은 백검보주 당이정을 십대고수의 우두머리 격인 이정(二正)의 일인으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렇듯이 백검보는 그 활약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웅크린 사자였다.

 

백검보의 전각들 사이사이로는 제거되지 않은 천연의 거대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다.

그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두 노인이 있었다.

한데 그들의 모습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한사람은 오척의 단구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그보다 머리 두개는 더 큰 것같은 장신이었다.

앉아 있는 모습 만으로도 어른과 아이가 앉아 있는 듯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한데 백()을 잡고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을 노려보고 있는 단구의 노인, 그는 바로 만박노조가 아닌가?

검성과 함께 이정의 일인인 그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백검보 내에 와있었다.

바둑판에는 오직 두개의 돌만이 놓여있었다.

[검성아우께서 이 우형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만박노조는 돌연 돌을 던지며 물었다.

그와 마주앉은 노인, 학창의를 걸쳤으며 검객의 분위기는 조금도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시골 서당의 글선생같은 모습으로 수염을 반자가량 기르고 있다. 눈매는 부드러우며 얼굴또한 온화하다.

한데 이러한 노인이 바로 백검보의 보주인 검성 당이정이란 말인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박노조의 눈빛은 예리했다.

그와 검성은 함께 이정으로서, 우형우제하는 사이였다.

이따금씩 만나는 그들은 종종 바둑을 두곤 했는데, 그때마다 검성은 두점을 깔고 두어야만 했다.

한데 오늘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검성은 만박노조가 접어준 두점을 귀의 모서리에 둘다 붙여버렸던 것이다.

이것은 바둑을 두자는 것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검성이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무림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해본 것이오. 이제는 무림에 이정이사이객(二正二邪二客)이 있을 뿐 일사삼객(一邪三客)은 사라지고 없소이다. 독비신검객(獨臂神劍客)의 행적은 묘연하지만 나머지 세사람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으니...]

온화했지만 천하에 대한 우려가 가득한 음성이었다.

만박노조가 탄식을 했다.

[이미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등 세놈의 손에 천하의 반이 들어갔네. 군소방파들은 대부분 그들에게 복속했고 버티고 있는 것이라곤 자네의 그늘에 있는 문파들과 단혼곡의 하삼풍, 그리고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정도일세.]

[대체 놈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이길래 이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이요? 소제는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그들과 맞서보고 싶은 생각뿐이오.]

검성은 침통하게 말했다.

무림에는 이미 이정삼사오객이 평화를 유지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그것은 오년 전 동정호에 은거하고 있던 천하제일고수인 동호천이 죽음과 동시에 끝나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작년까지는 무림에 이상한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이처럼 혼란스럽진 않았다.

그런데 부운청풍객이 검종맹(劒宗盟)이라는 세력을 거느리고 무림에 재등장함으로써 상황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부운청풍객의 검종맹에 속한 인물들은 모두가 극악신랄한 검법을 가졌으며 그들은 거의 어떤 상대이든 단 일초에 목숨을 빼앗곤 했다.

무림의 이백삼십 여개 방파가 검종맹에 복종을 맹세했으며 굴복하지 않은 사십일 개의 방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검종맹은 삽시간에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해버렸다.

한데 검종맹이 보이는 곳에서 무림을 장악해나간 반면에 잔혼각(殘魂閣)으로 알려진 살수세력은 은밀하게 문파의 수뇌들을 흡수하는 방법을 취했다.

거부하는 자에겐 죽음을, 그리고 그 가짜를 만들어 그 문파를 장악했다.

강남과 강북에서 일어난 이런 세력으로 인해 천하는 피로써 들끓었고,

남해로부터는 적룡혈운도(赤龍血雲島)의 도주인 초천풍이 붉은 그림자를 해안일대에 드리우고 점점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만박노조가 말했다.

[... 동호천 노선배께선 사후대책을 마련해 놓았을 줄 알았는데... 그 소년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

검성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소년의 무공이 고강했다면 혹시 요즘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일초진천수(一招震天手)라는 그 인물일 수도 있지 않소? 그도 신분 내력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 인물이니... ]

[노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네. 하지만 그 일초진천수는 그 소년은 결코 아니네.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 소년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그때였다.

스스슷!

갑자기 만박노조의 뒤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섬쾌! 무슨일이냐?]

만박노조가 물었다.

섬쾌라는 대꼬챙이처럼 바싹 마른 인물이 대답했다.

[그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

만박노조는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그들이 누군지 몰라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섬쾌는 만박노조가 검종맹을 감시하기 위해 파견했었기 때문이다.

만박노조의 물음은 무엇때문에라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섬쾌가 말했다.

[부운청풍객, 잔혼살객, 그리고 적룡혈운도주가 검종맹에서 회합을 가졌습니다.]

갑자기 만박노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검성아우! 그들은 자네를 노리고 있네.]

긴박한 만박노조의 말에도 검성은 덤덤한 표정이엇다.

저를 말입니까?”

만박노조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른다.

틀림없네! 고수이면서도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당금무림에서 자네와 단혼곡주 하삼풍, 철사보주 맹호산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네. 아마도 그들의 첫번째 상대는 자넬걸세. 그들이 백검보를 공격한다면 우리 두사람 만으로는 그들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네.”

[우리가 꼭 패한다고는 생각지는 않소. 다른 자들은 몰라도 부운청풍객에 대해서는 소제도 조금 알고 있소이다.]

검성이 여전히 초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순간 만박노조가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부운청풍객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금시초문이군. 그의 내력은 아무도 모르는데.]

[그는 내 사제요. 비록 그가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검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박노조가 소리쳤다.

[그럼 그가 백검보 출신이란 말인가?]

[그렇진 않소. 소제에겐 사문이 따로 있소이다. 아마 만박형도 들어보았을 것이오. 고검문이라고... ]

[고검문!]

만박노조가 비명을 질렀다.

천하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그인지라 전설적인 세외의 문파 고검문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었군. 그래서 자네의 검법이 그토록 뛰어난 것이었군. 부운청풍객 그자도 고검문의 제자란 말인가?]

만박노조가 탄식하며 물엇다.

검성은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소. 한데 그는 나를 모른척 하고 있소. 내가 사문에서 수련을 끝내고 무림에 나온 후에 사부께서 그를 제자로 맞기는 했지만 서로 안면은 있는 사이임에는 틀림없소.]

[한데 그가 왜 자네를 사형으로 인정하지 않는가?]

이어진 만박노조의 물음에 검성은 처연하게 웃었다.

[소제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르지만 사문에서 폐출당한 몸이오. 그래서 사문이 있는 일천리 이내에도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소. 그가 나를 사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오.]

[...!]

만박노조는 묵묵히 있다가 돌연 섬쾌에게 말했다.

[혈포단객과 무형도객, 그리고 철사보주를 찾아서 이곳으로 오게 하라. 뭉치지 않고서는 그들을 대항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 보아 그들은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존명!”

스스스!

섬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만박노조는 심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검성의 어깨를 치면서 말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말게. 지금은 그들을 방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네.]

검성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맹호산과 혈포단객이 와줄지가 염려스럽소.]

[생각할 줄 아는 자들이니 그들도 오게될 걸세.]

만박노조가 다부진 음성으로 말했다.

검성의 어깨는 무척 왜소해진 것같았다.

사문에서 폐출당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무림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그가 무림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은 그 휴유증 때문일 수도 있었다. 백검보가 무림일에 거의 관여하지 않게 된 것조차도 같은 원인일 것이고...

그러나 언젠가는, 언젠가는 불붙게 될 것이다.

천하제일 검문인 고검문의 대제자로서 검성의 혼은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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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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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九 章

 

                 絶陣 속의 復活

 

 

 

!

석두공은 자신의 몸이 기묘한 물체에 부딪혔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 그가 극렬한 고통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알게된 것은 자신이 차가운 대리석 바닥위에 눕혀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리석 바닥 외에는 어떤 특이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있는 곳은 불과 백평도 되지 않는 작은 폐쇄된 공간이라는 것이 특기할 만했다.

똑바로 보이는 위쪽에는 유리로 만들어진 것같은 푸른공간이었다.

석두공은 자신이 어떤 큰 짐승의 알속으로 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었다.

가슴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격렬한 통증은 그가 아직도 살아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힘이 없을 수가 있을까?)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눈까풀은 겨우 움직일 수 있었지만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의 단전에서 넘칠듯 찰랑거리던 진기는 한줌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리고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고통속에서도 잠은 찾아왔다.

잠들면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속에서도 석두공은 잠들고 말았다.

 

두번 째로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몸이 훨씬 가뿐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통도 상당히 가셔서 이제 극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동자만 굴려서 사방을 바라보았지만 그가 있는 공간엔 그 하나 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상한 곳이구나. 이곳엔 밖으로 통하는 곳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이곳에 와 있지?)

의문을 던져보지만 그 의문을 풀어줄 사람도 오직 그 하나뿐이었다.

그의 가슴과 어깨에 깊히 박혀있던 사신겸과 두 자루의 못이 원래보다 훨씬 밖으로 밀려나와 있었지만 그는 느끼지 못했다.

아무 것도 없는 공간, 그곳에서 석두공은 시간마저 느낄 수가 없었다.

그곳은 이 세상과는 완전히 분리된 그 만의 정지된 공간인 것같았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그는 졸려왔고 눈까풀은 의지의 힘을 배신하여 내리덮혔다.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음 처럼 깊은 잠이어서 그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니 꾸었겠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원래 그는 무엇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았던가?

어쨌거나 세번째로 그가 눈을 떴을 땐 그의 몸 옆에 사신겸과 혈정(血錠)이라고 불리는 못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가뿐하게 치료되어 있었으며 미약하나마 공력이 다시 단전으로 뭉쳐들고 있었다.

심한 기갈이 느껴졌다.

피를 많이 흘려서 아무래도 물과 영양을 보충해야만 할 것같았다.

그렇지만 시간은 멎어버리고 공간은 제한된 듯한 이 공간에는 그가 먹을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꼬로록! 꾸룩!

뱃속에서 염치없이 내장이 아우성을 쳤다.

[이곳은 누가 만들었을까?]

석두공은 뱃속의 민생고는 젓혀두고 잘 닦여진 대리석 바닥을 유심히 보면서 중얼거렸다.

자신의 방망이를 줏어들고는 대리석 바닥을 두드려 보았다.

!!

한데 무엇이나 부수어 버리는 괴력을 가지고 있던 그의 방망이는 대리석에 대해서는 조금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방망이는 평범한 보통 방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석두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한쪽에 떨어져 있는 사신겸을 두드렸다.

그순간,

쨍그랑!

유리조각이 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사신겸이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사신겸도 잔혼살객의 독문병기인 만큼 보통 쇠로 만들어진 고철덩어리가 아니었다.

평범한 도검은 사신겸에 스치기만 해도 무토막처럼 잘려나가는 신병인 것이다.

한데 그 사신겸은 방망이에 박살이 났건만 대리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석두공은 혈정을 두드려 다시 실험해 보았다.

혈정도 가루로 변해 버렸다.

알 껍질같이 생겨 벽과 천정을 동시에 잇고 있는 푸른벽을 두드렸다.

!

이번에도 그의 방망이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도무지 그 벽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몇 가지의 시도를 쉬지않고 해보았으나 석두공이 얻은 것은 낙담뿐이었다.

상처는 그럭저럭 치유가 되었지만 공력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

그가 살아있는 것도 석두공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은 두가지의 힘 때문이었다.

그 하나는 오독패혼공을 갈천상에게서 이어받았음으로 인해서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된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고검문의 문주인 섭군천에게서 전수받은 포연신공의 위력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잔혼살객의 공격에 그의 공력이 모두 흩어져 버렸을 때, 다른 한줄기의 공력이 그의 심장과 내장을 보호하여 그가 죽지 않게끔 했었다.

오독패혼공만이 있었어도 그가 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고, 포연신공만 익혔어도 그가 살아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의 몸속을 돌고 있는 공력은 포연신공을 익힘으로 해서 형성된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본래 안쪽에 존재하던 것이었다.

그의 고강하던 내공과 자리바꿈을 하여 그의 그 뛰어난 공력들은 모두 그의 몸속 깊히 숨어버린 뒤였다.

그것이 다시 밖으로 나오자면 큰 충격을 받아 지금의 공력이 흩어져야만 가능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석두공은 백평 남짓한 그 공간을 맴돌다가 드러누워 버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눈앞이 노랗게 보였다.

문득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품속을 뒤졌다.

피에 젖은 종이뭉치가 두개, 그리고 얼마의 돈이 나왔다.

찌이익!

그는 종이를 조금 뜯어서 입안에 넣고 씹었다.

무엇이나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같았다.

연거푸 종이를 세장이나 씹어먹고 나자 배가 불러나오는 것같았다.

이렇게 하여 기이한 공간에서의 석두공의 기이한 삶은 시작되었다.

종이를 뜯어먹고 그리고는 옷도 조금씩 조금씩 먹었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다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그곳은 밤도 없고 낮도 없으며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문득 어느 순간에 석두공은 그 공간이 자신의 머리속과 꼭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지?)

그는 자신의 머리가 점점 맑아지는 것같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머리속도 그 공간을 닮아 더욱 텅비어 갔다.

그에 따라서 그의 머리속은 안개가 걷히는 것같이 조금씩 맑아지면서 그때까지는 기억할 수 없었던 사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운청풍객의 얼굴과 이름이 떠올랐으며 잔혼살객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혼장서생 금사종이 생각나기 시작했으며 고검문주 섭군천도 생각났다.

한데 석두공에게서 그런 변화가 일어남과 동시에 그가 있는 그 공간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푸른 벽이 점점 엷어지는 것이었다.

석두공은 중얼거렸다.

[이것은 어쩌면 내 자신이 만든 것인지도 몰라.]

그는 방망이를 들고서 눈을 감은 채 벽으로 다가갔다.

한걸음 두걸음...

슈웃!

그는 벽에 다다랐고 아무 것도 의식하지 못한 것처럼 벽을 뚫고 나갔다.

그의 몸은 벽을 그냥 투과해 버린 것이었다.

석두공은 자신의 걸음수를 계산하고 있었기에 눈을 감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가슴에 터질듯한 기쁨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또 어떤 것이 눈앞에 펼쳐질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도 밀려왔다.

 

× × ×

 

항아리처럼 생긴 곳이었다.

아무래도 그곳은 큰 항아리 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정은 뚫려있어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러나 밑쪽은 사방이 완전히 막힌 절지였다.

풀도 있고 샘도 있었으며 나무들도 있었다.

풀은 당연히 땅에 깔리는 것이겠지만 아름드리 나무들도 위로 자라지 않고 옆으로 누워있었다.

그 나무들에는 황금색 과일들이 주렁주렁 달렸고,

[뾰롱뾰롱!]

소리를 내면서 과일을 쪼는 새들도 있었다.

손바닥만하게 보이는 하늘로 빛은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곳은 늘 환했다.

석두공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다만 대리석으로 깔려진 바닥만 있을 뿐, 이미 벽도 존재하지 않았고 기이하게 보이지도 않았다.

자신이 먹다가 남겨놓은 옷이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샘물을 마시고...

과일을 따먹고...

새를 잡아서 구워먹었다.

이제 먹을 것에 대한 걱정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항아리 같은 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전혀 없었다.

벽을 파고 올라가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벽은 너무도 물렀다. 억지로 판다면 그곳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석두공은 어느 날, 풀을 헤치고 돌아다니며 칡덩쿨과 등나무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벽가로 옮겨 심어 놓았다.

그것들이 벽의 바깥쪽에 이르도록 자라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멀리 내다보고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느 날 석두공은 샘물에서 세수를 하다가 낯선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샘물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보다 훨씬 커보였다.

[내가 이렇게 컸는가?]

석두공은 그제서야 자신의 손발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자그마했던 주먹도, 작았던 발도 이젠 제번 큰 것같았다.

또 어느 날, 석두공은 자신의 턱이 까칠까칠한 것을 느꼈다.

수염이 살을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그는 그 속에서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뼈마디는 굵어지고 강해졌으며, 키는 육척에 달할 정도로 훤칠해졌다.

옷을 뜯어먹어버린 후로 알몸이 된 그의 몸에도 사나이의 성징(性徵)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또한 종종 가슴속이 답답해 오며 원인모를 열기가 불끈불끈 치솟곤 했다.

그는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의 정신도 점점 성숙되어 치기어린 생각들이 가시고 의젓하고 당당하면서도 강렬한 패혼(覇魂)을 보였다.

이따금씩 머리속에 떠오르는 동작들을 몸으로 펼쳐 보이는 가운데 그의 무공도 점점 완성으로 치닫고 있었으며 미약했던 포연신공의 내공도 점점 웅대해지고 있었다.

 

흙벽 아래 심었던 칡덩쿨이 십 수 장이나 올라가 있는 어느 날 곤히 잠들어 있던 석두공은 몸을 흔드는 진동에 눈을 번쩍 떴다.

드르르르...

대리석 바닥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이쿠! 무너지면 어떡하나?)

석두공은 나무위로 몸을 피한 후에 대리석 바닥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방망이로도 어쩔 수 없었던 바닥이었다.

한데,

드르르르르...!

타타타타탁...!

진동하던 대리석 바닥이 급기야 가운데서 부터 일어나면 접혀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거대한 손이 깔아놓은 멍석을 마는 것처럼 보였다.

타타타탁!

대리석 바닥이 접혀지는 곳에서는 그에 따라서 무엇인가가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드르르르...!

기관이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강해지고 대리석 바닥이 완전히 걷혀졌을 때,

우르르릉... 쩌저적...!

지면이 갈라지면서 무엇인가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

그것은 탑()!

묵광이 흐르는 거대할 석탑(石塔)이 아닌가?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거수(巨獸)가 몸을 일으키듯, 굉음을 울리며 웅장무비하게 솟아나는 석탑!

총 삼층(三層)으로 된 그것은 거대한 하나의 돌을 깎아서 만든 정교한 예술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석두공은 긴장된 표정으로 석탑을 주시했다.

어떤 강렬한 힘으로 석탑은 석두공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쿠르르릉...

그 사이에 철탑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냈고 진동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석탑은 총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일층의 문은 활짝 열려져 있었다.

일층 문위에 양각으로 부조된 웅휘무쌍한 글씨가 보인다.

 

<천신폭풍탑(天神暴風塔).>

 

[천신폭풍탑...!]

석두공은 격동에 찬 일성을 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신폭풍탑이 어떤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천신폭풍탑이 자신의 단조로운 생활에 극적인 변화를 줄 그 무엇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

석두공은 격동을 억누르며 천천히 일층의 문안으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그것은 숙명에로의 이끌림이었다.

 

일층,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한쪽 벽면에 이러한 글귀가 새겨져 있을 따름이었다.

 

<본좌 폭풍무존(暴風武尊)은 천신폭풍탑을 만든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무엇때문에 본좌가 이 천신폭풍탑을 만들어야 했는가?

대체 사부의 뜻은 무엇이었는가?

본좌는 스물여덟 살 되던 해에 이 절곡으로 들어와 이백사십 년을 보냈다.

천신폭풍탑을 만든 것도 사부의 뜻,

이곳에 들어오게 된 것도 사부의 뜻,

본좌의 인생은 오로지 사부의 뜻에 의해서 결정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비단 본좌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둘째 사제는 포연신공을 가지고 어느 곳인가로 갔다.

셋째 사제는 천하의 모든 기학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고는 본회에서 익혔던 일신의 무공을 폐쇄당한 채 강호에 내쳐졌다.

본좌는 폭풍무존다.

본좌의 무공은 사부를 앞 지른지 오래였으며, 석년의 달마조사나 본 은세정검회(恩世正劒會)의 창시자인 벽천검왕(劈天劒王)마저도 본좌보다 강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강철골신(天剛鐵骨身)을 타고난 나 폭풍무존,

능히 고금제일을 자부하건만 사부는 어이하여 내 인생을 절곡속에 묻어버렸는가?

은세정검회의 정통후계자인 나는 이렇게 절곡 속에 스스로 힘을 분출하지 못해 죽어가는데 은세정검회는 아마도 넷째 사제가 이었겠지.

사부가 천년을 꿰뚫어보는 혜안이 있음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게 어떻단 말인가?

그 훗날을 위해서 본좌의 젊음이, 본좌의 패기가 이 절곡속에서 시들어가도 좋단 말인가?

본좌는 분개한다.

본좌는 사부의 뜻을 단 한번만 거스르기로 작정했다.

이것은 이백사십 년을 이곳에서 보낸 데 대한 보상이든 댓가이든 상관이 없다.

본좌는 죽지 않을 것이다.

사부의 모든 안배가 우리 은세정검회의 숙적인 독존패왕궁의 야심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사부는 너무 소심했던 것이 된다.

본좌는 결코 이대로 죽지 않는다.

이대로는...

...>

 

폭풍무존이라는 사람은 학문에는 그다지 뜻이 없었는지 문장이 두서가 없고 어지러웠다.

스스로 고금제일인임을 주장하고 있는 은세정검회의 정통후계자 였다는 폭풍무존,

그가 남긴 글의 내용은 석두공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은세정검회... 패왕독존궁... ]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같기도 하고 없는 것같기도 했다.

폭풍무존의 한이 맺힌 글을 뒤로하고 석두공은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가 이층에 막 올라서는 순간,

그그긍...

이층의 석문이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 둔중한 기음과 함께 열렸다.

[...!]

석두공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석문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드넓은 공간이었는데 역시 일층과 마찬가지로 공간 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석두공는 의아로운 눈빛으로 사면을 휘둘러 보았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사방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운 빽빽한 그림과 글씨 뿐이다.

하지만 그 글씨를 보는 순간 석두공은 다시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폭풍무존의 무공은 정말 고금제일이라 할만하구나. 저 모든 것이 석벽을 두부처럼 주물러서 양각시켜 만든 그림과 글이라니...!)

그렇다.

당금의 천하를 통틀어도 이와 같은 공력을 지닌 인물은 없는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돌을 부스러뜨리지도 않고 용암처럼 녹여서 글자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진정한 경이,

석두공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부의 뜻이 미치는 곳은 이곳까지 뿐이다.

사부의 명에 따라 본좌 폭풍무존은 이곳에 본좌의 최고 무공인 천신폭풍보(天神暴風步) 단 한가지만을 적어놓는다.

하지만 스스로도 본좌의 실없는 행동에 어이가 없다.

천신폭풍보는 본좌가 아닌 그 누구도 익힐 수 없는 것을...

설마하니 사부는 본좌가 이것을 적으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말인가?

그러나 어찌되었든 후세의 누군가가 이곳에 오게 된다면 그는 알게 되리라. 세상에 본좌의 천신폭풍보같은 무공도 존재했었음을...>

 

폭풍무존은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자신하는 만큼이나 사부를 냉소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의 시각은 상당히 삐뚤어져 있다는 것이 석두공의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두공은 인간적으로 폭풍무존에게 강한 동질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석두공은 온순하며 사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제자였다.

 

석두공은 눈은 폭풍무존이 기록해놓은 천신폭풍보를 보고 있었다.

한데 그는 그것을 읽어가면서 점점 가슴이 떨려오고 머리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인간의 무공이 아니다. 어떻게 이게 인간의 무공일 수가 있는가?]

떨리는 음성이 석두공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천신폭풍보의 구결들은 석두공의 눈을 도무지 뗄 수없도록 끌어당기고 있었다.

어떻게 인간의 무공이 이처럼 구결만으로도 사람을 떨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석두공이 어떠한 인물이었던가?

동호천의 제자로 어떤 무공이든지 암기는 할 수 없어도 펼칠 수는 있는 기괴한 천재였지 않은가?

그런 그를 놀라게하는 천신폭풍보는 대체 어떤 것이란 말인가?

 

× × ×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든 절학의 하나의 권법(拳法)속에 응축시킨다.

또 어떤 사람은 검법(劍法)이나 도법(刀法) 속에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별난, 정말 별난 사람은 남들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것에 자신의 혼을 담기도 하는 것이다.

폭풍무존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천신폭풍보라른 하나의 보법(步法)에 자신의 모든 무학을 담았다.

검을 익힌 사람에게 검이 모든 것이듯, 폭풍무존에겐 천신폭풍보가 그의 모든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절대신공(絶對神功)이며, 또한 초식이기도 하고, 빛을 방불케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신법이기도 하며, 부딪히는 것은 무엇이나 깨뜨릴 수 있는 패도적인 강기신공이기도 했다.

천신폭풍보가 있는 한 폭풍무존을 죽일 수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그에게 천신폭풍보가 있는 한 죽일 수 없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천신폭풍보는 진정 그가 스스로 고금무적임을 자부하게 해줄 만한 것이었다.

천신폭풍보는 잊어먹는 데는 도사인 석두공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것으로 낙인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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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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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八 章

 

                  驅駕天魔劒法殺魔經武功

 

 

 

[필요한 것은 생각나는대로 여기에 다 적었소. 하지만 그래도 난 염려가 가시질 않소이다.]

금사종은 염려스러운 듯이 말하며 새까맣게 글을 적은 종이를 석두공에게 넘겨주었다.

이곳은 무당산 아래에 자리한 작은 마을의 객점이다.

[서생이 해야 할 것도 급한 일이니 할 수 없어요. 실수를 하더라도 자꾸 이걸 보면서 하는 수 밖에요.]

석두공은 금사종이 적어준 종이를 둘둘 말면서 말했다.

금사종은 먼저 일어섰다.

[조심하시오. 그리고 다시 만날 곳은 태산(泰山) 일천각(壹天閣)이오. 잊지 마시오.]

석두공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종이는 잊지 않겠어요. 그럼 어서 가보세요.]

 

***

 

석두공은 금사종을 어디론가 보내고 혼자서 숭산을 향했다.

이제 혼자가 되었으니 기억력에는 조금도 의존할 수 없다.

크게 의지가 되던 금사종 떠나버리자 막연한 불안감이 그를 엄습했다.

하지만 석두공은 자기는 원래 그랬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꼭 필요한 것은 금사종이 적어준 종이에 적혀 있겠지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임기응변으로 해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빨리 움직인다고 해서 모든 일이 빠르게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

 

중악(中岳) 숭산(嵩山)을 오르기 위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치는 곳이 있다.

바로 숭산 아래 자리한 시진인 등봉현(登封縣)이다.

이곳 등봉현에서는 소림사로 올라가는 참배객들이 머물기 위한 객점들이 다수 있다.

 

-여래객잔(如來客棧),

 

등봉현에서 가장 큰 객점인 이곳의 후원에는 며칠 전 부터 여러 개의 방을 잡아놓고 한 인물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그의 일행으로 생각되는 듯한 한 인물이 찾아왔다.

그들은 함께 방안을 들어서자마자 앉지도 않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먼저 숭산으로 올라간 것은 아니었소.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소.]

[소림사로 가는 건 분명하오?]

등에 고색창연한 보검을 맨 청수한 중년인이 물었다.

틀림없소!”

마치 죽음이 번져나는 듯한 외팔이 흑의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외팔이는 바로 잔혼살객(殘魂殺客)이었다.

그리고 보검을 맨 중년인은 바로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이었다.

사부를 배신하고 감금했던 인면수심의 야망에 찬 사나이 부운청풍객은 살기어린 어눌한 음성으로 말했다.

[준극봉(峻極峰)으로 유인하여 죽이도록 합시다.]

 

***

 

석두공은 무당산에서 숭산 아래의 등봉현에 닿는 데 사흘이란 시간을 허비했다.

어린아이 혼자서 먼길을 가는 것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마차를 태워주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천천히 걸어서 왔다.

등봉현에 닿았을 때 그는 겨울이 오기 전에 소림사에 한 번 더 참배하려는 사람들로 객점들이 가득 채워져 있음을 알았다.

객점에서 제대로 된 밥을 사먹는 걸 포기한 석두공은 길거리에서 만두를 사먹고는 그대로 산을 올랐다.

 

정오가 막 지난 때였다.

[공자님! 소림사로 가시는 길인가요?]

느릿느릿 숭산을 올라가는 석두공의 뒤쪽에서 참배객으로 보이는 한 여인이 쫓아오면서 소리쳤다.

늘씬한 몸매에 꽃이 수 놓여진 청의를 입은, 도무지 절에 다닐 만한 그런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머리에는 금비녀를 꽂았으며 허리에는 은빛 채대가 화려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

석두공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 길은 소림사로 가는 길, 그 길을 가면서 소림사에 가지 않는다면 어딜 가겠는가?

청의미녀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했다.

[어머 잘됐네요. 적적해서 혼자 어떻게 소림사까지 올라가나 하고 걱정했는데... ]

[저기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요.]

석두공은 앞쪽에 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청의미녀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남자들은 여자만 보면 엉뚱한 생각을 해서 함께 있기가 거북해요. 공자님도 뒤에 알게 되겠죠.]

[전 머리가 나빠서 아마 뒤에도 모를 거예요.]

석두공이 입을 헤 벌리고 웃으며 말했다.

청의미녀가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머리가 나쁘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내가 본 어떤 사람보다도 총명해 보이는데....]

석두공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멍청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는데 왠 쓸데없는 참견일까? 여자는 말이 많다고 하더니 아무 말이나 막 하는 모양이구나.)

그는 앞서서 걸었고 청의미녀는 그의 옆에 바싹 붙으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디 사는 누구냐는 질문에서 부터 시작해서 뭣 하러 소림사에 가느냐까지,

질문과 또 자신이 스스로 만든 대답해 가면서 석두공의 혼을 빼놓았다.

그리고 묻지도 않았던 말을 이제는 하고 있었다.

[산동(山東)의 곡부(曲阜)를 아세요? 공자 맹자 할때 그 공자님께서 나신 곳 말예요. 내 고향도 거기죠. 어렸을 때 공자가묘에도 한 번 가봤는데 뭐 그저 그랬어요. 하지만 한번 가보는 것도 좋을 거에요.]

하지만 석두공은 담담히 웃기만 했다.

그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실컷 말해 봐요. 난 사부님도 마이동풍인가 서풍인가 했을 정도로 무슨 말이든 다 잊어버리니까. 그리고 보니 당신 입니나 내 귀나 비슷한 데가 있군요. 이럴 때 쓰는 말이 천생연분이라든가?)

청의미녀의 말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여자는 함부로 돌아다닐 게 못되어요. 내 이웃에 소향이란 계집애가 있었는데 싸돌아다니기 좋아하더니 그만 난봉꾼들에게 몸을 뺏겨서 배가 불렀지 뭐예요. 참 수치심도 없는 계집애죠?]

[그렇군요.]

석두공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렇든 말든 청의미녀의 수다는 쉴새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예요. 소향이의 동생은 월향인데, 그 게집애는 숫제 사내들을 집으로 끌어들인다지 뭐예요. 누가 봤는데 어떤 밤에는 사내 셋이 한꺼번에 그 계집애의 방에서 나오더래요 글쎄.]

[그래요?]

석두공은 그저 그래요, 그렇군요, 등의 말만을 연발하며 그녀의 말을 귓전으로 모조리 흘려버렸다.

 

한데 그들이 중악묘(中岳廟)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산에서 내려오던 중년 사내가 갑자기 재잘거리는 청의미녀와 어깨를 툭 부딪혔다.

청의미녀가 빽 소리쳤다.

[조심하셔야죠. 길도 넓은데... ]

그러자 그녀와 어깨를 마주친 중년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소리쳤다.

[! 넌 율아(栗兒) 아니냐? 이곳에서야 너를 만났구나.]

[당신은 누구죠? 날더러 율아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청의미녀가 화난 듯이 소리쳤다.

중년 사내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네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외삼촌도 모른 척하는 구나. 당장 잡아가야겠다.]

그는 번개같이 덮쳐들더니 청의미녀의 허리를 껴안고 날아올랐다.

[아악! 살려줘요. 강도야 강도!]

청의미녀가 비명을 질렀다.

쏴아아아!

그자는 경신술을 발휘하여 나무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석두공은 이같은 사태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중년 사내의 말이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 같았다.

그런데도 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하지만 그래도 근 십리에 가까운 길을 함께 걸은 일행인데 그냥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앗!

그는 몸을 날려 중년 사내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익!

석두공이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갔지만 중년 사내의 경공 또한 놀랄 만큼 빨랐다.

청의미녀를 안고서 달림에도 불구하고 석두공과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아아악! 살려줘요. 이 치한! 강도야 강도!]

청의미녀는 계속 비명을 질러댔다.

석두공은 공력을 끌어올렸다.

피유우우우!

순간 그의 몸은 빛살처럼 가는 선을 그리며 날아가 중년 사내와의 간격을 급속도로 좁혔다.

거리를 좁혀가며 석두공은 버럭 소리쳤다.

[멈춰요!]

하지만 중년 사내는 들은 척도 않고 앞으로 내달린다.

어느새 그들은 몇 개의 계곡을 건너뛰어 높은 봉우리로 치닫고 있었다.

한데 그 봉우리의 정상으로 사나이와 두공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을 때였다.

그곳에는 이미 여섯 명의 인물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석두공의 눈에 들어왔다.

(함정(陷穽)!)

석두공 내심 소리쳤다.

기다리고 있던 여섯 사내들은 모두가 흑의를 입었으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청의미녀는 정신을 잃었는지 납치해온 중년 사내의 허리에 축 늘어져 있었다.

[후후후...!]

중년 사내는 음산한 웃음을 터뜨리며 청의미녀를 복면인들 중의 한사람에게 던졌다.

화라라락!

화려하게 치장한 그녀가 마치 한 송이의 꽃처럼 날아갔다.

석두공은 그것을 빤히 보면서도 어떻게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강한 적!

그의 눈앞에는 지금까지 그가 만나본 고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진정 강한 적수들이 서있었다.

비록 그들이 아직 무공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석두공은 몸으로 전해지는 느낌만으로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전신의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왼쪽 소매가 헐렁하여 외팔이임을 알아볼 수 있는 흑의복면인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죽어줘야겠다.]

 

-죽어줘야겠다.

 

바람의 속삭임인 듯 전해지는 외팔이 흑의인의 그 말속엔 주체할 수 없는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청의미녀를 안고 온 중년 사내는 이미 석두공의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석두공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어떤 질문도 의미가 없을 것같았다.

그들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자신은 그들에게 죽지 않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남아있을 뿐, 이미 청의미녀의 존재까지도 그는 잊고 있었다.

단순한 만큼 석두공의 집중력의 뛰어났고 그 순간적인 정신력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허리에 걸려있는 방망이로 손을 가져갔다.

순간 그의 몸에서 나이를 초월한 강렬한 기운이 일어났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웅혼하며 또한 패도적(覇道的)인 기운이었다.

석두공을 앞뒤로 포위하고 있던 외팔이 흑의인과 중년 사내의 눈에 놀람과 동시에 살기가 폭발하듯 줄기줄기 뻗어나왔다.

그것은 반드시 죽여야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문득 석두공은 그들의 이런 느낌을 어디선가 경험했던 것을 떠올리며 소리쳤다.

[삼마경(三魔經)!]

[크하하하하... ! 결국 우리를 알아보았구나!]

청의여인을 납치해왔던 중년 사내가 광소를 터뜨렸다.

츠츠츠!

한데 득의하여 웃고 있는 그자의 얼굴이 스믈 스믈 모습을 바꾸는 것이 아닌가?

웃음이 끝났을 때는 얼굴의 윤곽전체가 다 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드러난 얼굴은 아주 청수한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 심제을의 얼굴이었다.

흑의의 외팔이도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버렸다.

그는 죽음보다 짙은 살기를 드리우고 있는 잔혼살객(殘魂殺客)이었다.

부운청풍객과 잔혼살객이 함정을 파고 석두공을 기다리고 있엇던 것이다.

석두공은 그들 두 사람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하지 못하고 단지 삼마경이라는 말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동정호에서 석두공이 죽이겠다고 맹세한 세사람 중의 둘이었다.

츠읏!

석두공의 눈에서 새파란 살광이 파릇파릇 일어났다.

그것은 방금 전의 패도적인 기운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바늘로 쏘는 듯한 살기다,

무공이 아니건만 심약한 사람은 그 살기만으로도 심장이 멎어버릴 것이다.

[당신을 죽이겠어요.]

석두공은 잔혼살객을 젖혀두고 뒤로 빙글 돌아 부운청풍객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부운청풍객은 그의 가공할 살기에 몸을 흠칫하면서도 음침한 살소를 흘렸다.

[후후후후... 동호천도 우리 손에 죽었다. 어린 녀석이 기고만장하구나.]

말은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운청풍객의 얼굴은 웃음이 어색할 정도로 굳어있었다.

또한 그는 옷자락 속에 숨겨두었던 보검을 꺼내들고 있었다.

석두공은 끓어오르는 살기를 침묵으로 대신하며 방망이를 뻗었다.

치익!

순간 방망이에서 번개불같은 푸른 빛이 쏘아져 나갔다.

!”

부운청풍객 심제을은 안개처럼 몸을 일렁이며 옆으로 두 걸음이나 피하며 검을 뽑았다.

파앗!

검은 뽑힘과 동시에 석두공을 베고 있었다.

극쾌(極快)!

심제을의 검은 떨어지는 빗방울을 수십 토막으로 쪼갤 수 있을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베었다!)

심제을은 내심 외쳤다.

스르릉!

그러나 석두공의 몸은 그 찰나의 순간에 방망이로 비스듬히 검을 막으며 심제을을 날아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도 빨랐기에 오히려 환상적으로 느려보였다.

부운청풍객은 눈을 부릅떴다.

그러한 동작은 무공을 익힘으로 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선천적인 반응, 오로지 선천적으로 그처럼 빠른 신경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 한 아무리 무공이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차압!]

부운청풍객의 입에서 분노에 찬 일갈이 터져나왔다.

촤아아아!

그와 동시에 부운청풍객의 검이 하늘 가득 수천 개의 검기를 뿌렸다.

함박꽃의 꽃잎이 벌어지는 듯 화려한 검기의 폭출이었다.

[천마폭멸참(天魔爆滅斬)!]

석두공의 허공에 뜬 몸은 부운청풍객의 검에서 발출된 검기에 완전히 가려져 버렸다.

부운청풍객은 처음의 일초가 실패하자 바로 구가천마검법(驅駕天魔劒法)을 펼친 것이다.

석두공의 정신은 맑은 호수의 물결처럼 깨끗했다.

그는 자신의 본능이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일 뿐이었다.

! !

방망이가 석두공의 손가락 사이에서 풍차처럼 돌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옥허도인의 태극어검술을 상대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 다시 일어났다.

치치칙!

천마폭멸참의 검기는 석두공의 손에 있는 방망이에 닿자 흔적도 없이 흡수되어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땅위에 어지럽게 해놓은 낙서가 비질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었다.

!

그리고 검과 방망이가 부딪히면서 부운청풍객의 고검이 여지없이 부러져 나갔다.

[!]

부운청풍객은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고개를 돌려 검의 파편을 피했다.

[검이 부러지다니...]

검이 부러진다는 것은 극히 불길한 징조였다.

또한 무림에서 검을 사용하는 자는 스승에게 처음 진검을 받으면서 전해듣는 말이 검이 있으면 산 것이고 검이 없으면 죽은 것이라는 것이었다.

삼마경 중의 검마경에 기록된 구가천마검법을 펼치고도 검이 부러졌다...

부운청풍객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 얼굴에는 형언할 수도 없는 살기가 깊은 곳에서 부터 우러나오고 있었다.

슈욱!

석두공의 방망이는 소리도 없이 부운청풍객의 목을 노리고 짓쳐들어왔다.

부운청풍객은 찬바람을 들이키며 부러진 검으로 동시에 삼초의 마검식을 펼쳐냈다.

[천마진천살(天魔震天殺), 천마파연옥(天魔破煉獄), 천마탈혼벽(天魔奪魂劈)!]

쩌저저정! 콰르르릉!

하늘이 갈라지고 준극봉의 정상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십여 장이나 높이 검기가 솟구쳤으며 구가천마검법이 만들어내는 천마의 호곡성같은 괴음이 십여리 까지 퍼져나갔다.

우우우우우우웅...

구우우우후후후후...

심혼을 표백(漂白)시켜버릴 듯한 천마(天魔)의 호곡성(號哭聲)이었다.

석두공은 어느덧 자신을 잊고 있었다. 완전한 무아지경에서 본능적으로 지금까지 익혔던 무공을 펼쳐내어 구가천마검법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는 자신이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으나 천하의 수많은 기학들이 살아있었다.

그것들의 대부분이 개개로서는 구가천마검법에 미치지 못하는 무공들이지만 합쳐지면서 임기응변적으로 보완되어 펼쳐지는 것은 능히 구가천마검법을 대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가천마검법의 진정 무서운 점은 그 천마의 호곡성에 있었다.

잠시 듣는 동안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몸도 따라 둔해지는 것이었다.

!

검기가 그 틈을 비집고 석두공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를 빨아먹는 괴물처럼 구가천마검법이 스치고 간 곳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았다.

석두공은 이를 악물고 폭풍처럼 밀려드는 검기속을 파고 들었다.

피웃!

그의 몸이 두개로 갈라지면서 검기들이 그의 몸을 투과하여 흘러갔다.

직후 방망이가 부운청풍객의 손목을 쳤다.

파삭!

괴이한 음향과 함께 부운청풍객의 손목이 축 늘어졌다. 뼈가 산산히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부운청풍객도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가랏!]

그의 토막난 보검이 독사의 이빨처럼 석두공의 가슴으로 벼락처럼 쇄도해들고 있었다.

촤아악!

석두공은 급히 몸을 비틀었으나 앞가슴이 길게 베어지며 피가 쏟아졌다.

석두공이 비칠거리며 물러섰으나 부운청풍객은 추격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창백한 안색으로 망연히 서있었다.

석두공의 무공이 강하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토록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부운청풍객은 씁쓸하게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모든 웅지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겨우 사척이 조금 넘는 어린소년...

당금 무림의 십대고수 중의 한 사람인 부운청풍객을 상대로 해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석두공은 손가락으로 혈도를 짚어 지혈을 했다.

그리고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며 부운청풍객에게 다가섰다.

그때였다.

[네 상대는 그가 아니다.]

관전하고 있던 잔혼살객이 칙칙한 음성을 내뱉었다.

[심형! 낙담할 것없소. 이놈은 동호천이 심혈을 기울인 제자요. 나는 처음부터 이놈이 동호천보다 쉬운 상대가 아닐 것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소.]

잔혼살객은 부운청풍객에게 싸늘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는 자신의 무기인 사신겸, 시퍼런 낫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그의 부하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시작해라!]

순간,

[아악!]

청의미녀가 뾰쪽한 비명을 질렀다.

복면인들이 그녀의 팔다리를 움켜쥐고 옷을 벗기려 하는 것이 석두공의 눈에 들어왔다.

“....!”

그것을 본 석두공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아악! 안돼! 살려줘!]

우악스러운 복면인들의 손에 사로잡힌 청의미녀는 소리치며 발버둥쳤다.

찌익! !

그러나 그녀의 푸른 옷은 두명의 복면인에 의해 거침없이 찢어지고 있었다.

쫘악!

가슴께로부터 길게 찢어져 버린 옷자락 사이로 청의미녀의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녀의 살결은 껍질을 벗긴 삶은 계란 처럼 희고 깨끗하다.

그리고 날씬해보이던 겉모습과는 달리 젖가슴은 아주 투실투실하여 중량감이 느껴진다. 그 탄력 넘치는 젖가슴이 몸부림칠 때마다 너무도 육감적으로 출렁거린다.

“....!”

잔혼살객은 자신의 뒤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른 척하며 석두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자와 마주선 석두공의 눈에는 겁탈당하며 발버둥치는 여인의 모습이 마치 그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면인것처럼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였다.

여인의 마침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바위위에 눕혀졌다.

네명의 복면인이 그녀의 사지를 하나씩 붙잡아 고정시키고 있었다.

태양은 눈부시게 그녀의 나신을 내리비추는데 다른 한명의 복면인이 자신의 손을 여인의 벌려진 다리 사이로 거침없이 들이밀었다.

[아악!]

여인이 고개를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석두공이 서있는 곳을 향해서 그녀의 두 다리는 활짝 벌려져 있었다.

그 때문에 석두공은 본의 아니게 난생 처음 여자의 구조를 속속들이 보게 되었다.

벌려진 허벅지는 만지면 묻어날 듯이 뽀얀데 그 안쪽에는 아주 짙고 검은 체모가 무성하게 나있다.

그 체모는 도독히 살이 오른 둔덕 정상에 집중적으로 나있고 둔덕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급격히 옅어졌다.

그 옅은 체모 사이로 충격적인 형상을 한 깊이 갈라진 틈바구니가 보였다.

하얀 피부가 둘로 갈라져 생긴 그 균열은 살짝 벌려져 있어서 내부의 원색의 오묘한 살점을 수줍게 들어내고 잇엇다.

마치 잘 익은 석류가 갈라진 것같은 여인의 그 부분의 형상은 순진무구한 석두공에게 숨이 막히는 듯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석두공은 이러한 연출이 잔혼살객이 자신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벌이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빠르게 뛰었으며 숨이 가빠왔다.

평정이 흔들리고 깨끗한 마음에 잡념이 들어차고 있었다.

정신이 점점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위기를 감지한 본능은 그의 정신을 긴장시키려 하고 있었고 또 다른 본능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 하고 있었다.

여인의 비부에 손가락을 가져간 복면인은 장난질치듯이 여체의 그 균열을 벌렸다 오무렸다하면서 자극하고 있었다.

비명을 질러대던 여인은 이제 지쳤는지 미약한 신음만을 내뱉을 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있었다.

[! ... ... ... ]

다른 복면인들이 그녀의 팽팽히 부푼 유방과 배꼽을 어루만지다가 혀를 갖다댔다.

!”

여인의 몸이 순간적으로 부르르 떨렸다.

또 다른 손은 여인의 둔부를 쓰다듬고, 또 다른 입은 여인의 귓바퀴속에 혀를 밀어넣고 있었다.

여인의 몸이 꿈틀거렸다.

[으음... ... 허억... ]

그리고 마침내 여인은 기묘한 숨소리를 내면서 둔부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은밀한 곳에 손을 부비고 있던 흑의인이 일어서면서 자신의 하의를 벗어버렸다.

붉게 충혈된 흉물스런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워있는 여인의 눈에도 그것은 선명하게 보였다.

[아아... 안돼!]

그러나 비명소린 전처럼 크지 못했다.

아무런 준비과정도 없이 흑의인이 그녀의 몸위에 엎드리며 힘껏 자신의 남성을 여인의 살이 갈라진 틈으로 밀어넣었다.

커흑!”

여인은 마치 창에 궤뚫리기라도 한 듯 눈은 까뒤집으면서 실신하듯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그녀의 은밀한 곳으로는 흉물스런 남성이 뿌리까지 일거에 깊숙히 삽입되어 있었다.

사내의 꿈틀대는 그 흉칙한 살덩이를 머금은 여인의 붉은 속살이 파들파들떨고 있었다.

두개의 몸이 결합된 모습은 석두공의 망막을 가득채웠다.

석두공의 입술이 달싹달싹 떨려왔다.

잔혼살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석두공의 힘의 비밀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순수한 마음, 아무런 잡념이 없는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펼쳐지는 무공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흡흡... 아아아! ! 아아!]

흑의인이 몸을 아래 위로 움직임에 따라 여인의 입에선 달뜬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물기에 젖은 채 여인의 살 속으로 박혔다가 빠져나오곤 하는 사내의 흉물은 너무도 강인해보였다.

석두공은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잔혼살객을 공격할 수도 몸을 돌려 도망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남녀의 정사(情事)장면을 목격함으로 인하여 심적으로 크나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스읏!

바로 그 순간 잔혼살객의 손에서 새파란 낫이 아무 기척도 없이 땅위에 깔리면서 석두공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석두공의 눈은 여전히 두 남녀의 성기가 움직이는 장면에 못박혀 있었다.

그가 위험을 느끼고 움찔하는 순간 물고기가 튀듯이 솟아오른 사신겸은 그의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

[!]

석두공은 그 충격에 의해서 이장이나 뒤로 날려갔다.

낫의 끝은 그의 등으로 삐죽이 빠져나와 있었다.

!

석두공은 뒤로 모질게 떨어졌다가 비칠비칠 일어섰다.

쐐애애액!

그순간에는 이미 두개의 붉은 빛이 마치 독사의 이빨처럼 그의 눈앞으로 쇄도해 들고 있었다.

파팟!

잔혼살객의 헐렁한 소매속에서 발출된 그것들은 찰라적인 순간에 석두공의 양쪽 견정혈(肩井穴)에 꽂혀버렸다.

콰앙!

그리고 잔혼살객은 질풍처럼 달려들면서 그의 가슴에 일퇴를 가했다.

[크윽!]

석두공의 가슴에 박힌 사신겸이 더욱 깊이 박히며 몇개의 가슴뼈가 끊어지고,

화라락!

석두공은 실 끊어진 연처럼 준극봉 아래의 단애(斷崖)로 떨어졌다.

“...!”

“...!”

여인을 강간하던 흑의인들이 우뚝 손을 멈추고, 그녀의 몸을 출입하던 사내도 흉물을 여체에서 뽑아내며 일어섰다.

그러자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던 여인도 바위에서 일어서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여인은 마치 언제 그런 일을 당했으며 무슨 일을 했느냐고 되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운청풍객의 시선도 잔혼살객에게 쏠렸다.

[죽었소?]

[사신겸이 심장을 반쯤 갈라놓았소.]

잔혼살객은 감정이 섞이지 않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부운청풍객은 즉시 그곳을 떠나버렸다.

그는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심한 회의를 느낀 것이었다.

구가천마검법을 익혔음에도 어린소년에게 패한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그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꺾어놓았다.

(구가천마겁법은 대성하지 않으면 본래 위력의 이할도 채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었다. 무슨 수가 있어도 구가천마검법을 완성하리라.)

부운청풍객은 내심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구가천마검법을 십이성 연성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잔혼살객은 떠나가는 부운청풍객의 뒷모습을 보면서 섬찟한 살소(殺笑)를 피워올렸다.

[크흐흐흐... 심제을... 누가 천하의 진정한 주인인지는 아무도 모르지. 무공만으로 모든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흐흐흐... ]

그의 뒤에는 네 명의 흑의복면인과 나체의 미녀가 부복하고 있었다.

잔혼살객은 그들을 힐끗 본 후에 말했다.

[흐흐흐... 너희들은 돌아가도 좋다. 아니, 여기서 잠시 쉬어가도 좋다.]

[각주! 감사합니다.]

네 명의 흑의복면인이 머리를 땅에 찧으면서 소리쳤다.

이어 고개를 드는 그들의 눈에는 욕정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슈아아아앙--!

잔혼살객은 허공속의 한점이 되어 날아가버렸고,

하의를 벗고 있던 복면인이 먼저 여인을 덮쳤다.

여인이 뾰족하게 소리쳤다.

[대형! 대형은 조금 전에 했잖아요. 둘째 사형부터 들어오세요.]

그녀 또한 잔혼각의 절대칠살 중의 하나로 일곱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형이라고 불린 복면인이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흐흐... 그럼 이렇게 하자구나.]

그는 여인의 몸에서 일어서며 여인을 엎드리게 했다.

그의 남성이 여인의 뒤쪽에 자리한 또 다른 부분을 공략하며 밀려들어갔다.

여인은 말처럼 고개를 높이 들며 조심스럽게 그를 받아들였다.

[...!]

칠살의 첫째는 완전히 결합되자 그녀의 허리를 안고 뒹굴었다. 그 때문에 여인의 몸은 그자의 배위에 등을 대고 드러누운 꼴이 되었다.

어서 와요!”

첫째의 배 위에 등을 대고 누운 여인은 가랑이를 활짝 벌려보였다.

그녀의 은밀한 부분은 방금전의 행위의 흔적으로 흥건히 젖은 채 벌름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달아오른 그곳을 벌려보이며 이살을 재촉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이살은 즉시 첫째와 하나가 되어있는 여인의 배 위로 올라갓다. 그리고는 자신의 남성을 그녀의 벌려진 다리사이로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두팔로 상체를 버팅긴 채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랫쪽의 첫째도 여인의 허리를 움켜쥐고 하체를 꿈틀거렸다.

....당신들도 어서 와요! 좋게 해줄께!”

몸의 두 부분으로 사내를 받아들인 여인은 희열에 몸을 떨며 나머지 두명을 손짓으로 불럿다.

그러자 다른 두 명은 즉시 하의를 까내리고 그녀의 양쪽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의 젖가슴을 주물렀다.

여인의 양손은 그들의 남성을 움켜쥐고 움직였으니...

[아아악! !! 흐윽! 흐악!]

동시에 네명의 사내를 상대하는 그녀의 입에선 기묘한 신음이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미쳐... 더 세게... ! 주 죽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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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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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七 章

 

                古劒門門主

 

 

 

 

 

달은 산 한쪽에 걸려 있었다.

찌륵찌륵!

풀벌레 소리가 요란한 작은 소로를 따라서 내려가던 석두공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숲으로 들어갔다.

길도 없는 곳으로 나뭇가지를 부르뜨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그는 연기처럼 스며들었다.

금사종은 영문을 모르지만 따라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소로에서 십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들어오자 석두공은 자신의 소매자락을 조금 뜯어냈다.

찌이익!

[...?]

금사종이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그는 아무 설명도 하려고 하지않고 손바닥으로 그것을 몇 번 문지른 후 입으로 훅 불었다.

뜯어진 소매자락은 바람을 타고 나비처러 너울너울 날아서 소로의 가운데에 떨어졌다.

[가요.]

소리친 석두공은 징검다리 건너듯 바위들 위로 폴짝폴짝 뛰면서 점점 숲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슈우우우!

금사종의 한걸음은 거의 오장씩이나 된다. 그의 무공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느리게 한걸음씩 내딛어 석두공의 뒤를 따라갔다.

 

얼마 후, 석두공과 금사종의 앞에 황폐한 장원이 나타났다.

밀림처럼 우거진 숲속에 덩쿨과 풀로 뒤덮힌 황폐한 장원의 존재는 두 사람에게 아주 의외였다.

장원은 크지는 않았지만 천평 정도는 되어 보였다.

담장은 허물어져 있었으며 전각들의 기와는 벗겨지고 깨어졌고, 한때는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길에는 풀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굵은 나무뿌리가 벽을 파고들어 전각을 넘어떠렸고 산 짐승들이 군데군데 굴을 파놓고 집으로 삼고 있었다.

[을시년스럽군. 무당산 중에 어떻게 이런 장원이 있을까? 그것도 무당파에서 그다지 먼 곳도 아닌데... ]

금사종이 장원의 문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그때 문앞의 풀숲에서 달빛을 받아 무언가가 반짝였다.

스윽!

금사종은 습물진기(拾物眞氣)를 일으켜 그것을 끌어당겼다.

그것은 금색으로 도금된 헌판(軒板)이었다.

 

<고검문(古劒門)>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날아갈 듯한 글씨였다.

[고검문? 어떤 문파죠?]

석두공이 옆에서 물었다.

금사종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처음 듣는 문파요. 아마도 무림에 거의 드러나지 않은 작은 방파였던 모양이오. 이미 사라져 버린 문팔인 것같소.]

[이 안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오늘밤은 여기서 자는 것이 좋겠어요.]

그들은 황폐한 고검문의 무너질 듯한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숲속에는 함부로 건물을 지을 일이 아니다.

또한 만약에 짓는다면 관리를 철저히 해야할 것이다. 근처의 나무 뿌리들이 건물밑과 속으로 파고들어 마구 허물어버리지 않도록 잘 방비해야 할 것이다.

금사종은 속으로 자신은 결코 숲안에 집을 짓지는 않겠다고 맹세했다.

고검문에는 수십 채의 전각들이 있었지만 원래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벽에서도 나무가 자라는 판이니 어떤 건물이 남아나겠는가?

석두공은 그래도 지붕 아래에서 자고 싶은지 지붕이 남아있는 곳을 골랐다.

벽은 허물어지고 지붕도 반쯤 무너져서 한쪽으로는 별이 보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아래에 몸을 눕혔다.

[잘자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깊은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어버렸다.

(어린아이...)

금사종은 그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가 볼때 석두공은 정말 괴물같은 꼬마였다.

장소에 따라서 석두공의 행동은 완전히 달랐다.

지금같은 때는 또 영락없는 어린아이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몇 사람의 지략가가 한참동안 생각해서 짜내야할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금방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언제든지 금사종에게 말해준다.

그렇게 총명한 그도 기억만은 도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날이 새려면 아직 멀었지만 금사종은 잠자는 대신에 무공을 익힐 요량으로 품속에서 무치무요를 꺼내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리고 한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읽어본 후 낮은 소리로 암송하기 시작했다.

[중극신공(中極神功), 하늘의 도리는 어느 곳에도 치우쳐 있지 않으니...]

중극신공이란 것은 사서삼경(四書三經) 중의 중용(中庸)에 그 근본을 두고 창안된 무공이었다.

양강(陽剛)과 열화(烈火)의 무공에서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며,

음유(陰柔)와 한빙(寒氷)의 공력에 대해서도 능히 저항할 수 있는 특이한 공력이었다.

이 중극신공은 이러한 이점으로 인해 평범한 것으로도 어떤 기이한 공력도 상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굳건히 자신을 지키는 데는 이 중극신공만한 무공이 거의 없을 것이다.

헌데 금사종이 막 한차레 구결을 되읊었을 때였다.

[지키어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동신공이나 무엇이 다르랴? ()을 깊히 고수해야 하니 조금도 기이한 점이 없고 고리타분하다. 또한 기이하려고 하면 저절로 공력이 깨어질 것이니 그런 엉터리 무공이 또 어디 있겠는가?]

돌연 어디선가 웅혼한 음성이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온 사람의 목소리에 금사종은 간이 떨어질 정도로 놀랏다.

누구냐? 누가 감히 남의 연공을 엿본단 말이냐?”

금사종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무림에서 남이 연공하는 것을 본다면 눈을 뽑히게 되고,

구결을 옅듣게 된다면 혀를 짤리고 귀를 파게 되며,

남의 무공을 도둑질하여 사용한다면 죽음이 아니면 손과 발을 잘리게 된다.

동호천이 남의 무공을 펼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은 그가 펼치는 무공이 상대편이 익힌 것보다 더욱 훌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도 동호천이 훔친 것으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금사종의 일갈에 놀란 석두공도 자던 자세 그대로 일자(一字)로 벌떡 일어서서 형형한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또 다시 어디선가 사람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엉터리 무공도 무공이라고 나를 탓하려 하는가? 무림인들의 단점은 그들이 항상 남의 말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있지.]

스팟!

순간 석두공의 몸이 번쩍하면서 벽의 뚫려진 구멍을 통하여 전각의 뒤로 날아갔다.

스읏!

금사종도 연기처럼 몸을 움직여 그의 뒤를 따랐다.

 

전각 뒤에는 몇 아름이나 되는 고목나무옆에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을 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스읏!

그러나 석두공은 멈추지 않고 우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으하하하하... 대단한 아이들이로군. 노부가 있는 곳을 이렇게 쉽게 찾아내다니!]

우물 속에서 광소가 터져나왔다.

금사종이 우물 속으로 들어갔을 때는 석두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토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물은 마른 바닥을 보이고 있을 뿐, 석두공도 광소를 터뜨린 사람도 흔적이 없었다.

[비밀통로가 있는 모양이군!]

금사종은 공력을 돋구어 천시지청술(天示地聽術)을 펼쳤다.

그때 우물을 이루는 석벽의 한쪽에서 석두공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었나요?]

 

× × ×

 

[잠깐!]

절대칠살 중의 하나가 멈춰서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그자의 냄새가 끊어졌소.]

[여기에 흔적이 남아있다.]

다른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있는 천조각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먼저 말했던 자가 그것을 받아 코로 가져갔다.

한데 바로 그 직후였다.

!

갑자기 냄새를 맡던 자는 뒷머리를 둔기에 맞은 듯이 쓰러지고 말았다. 복면으로 가려진 그의 입과 코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다른 자가 소리쳤다.

[독이다!]

또 다른자는 오구검(烏口劒)을 뽑아들며 처음에 천조각을 집어들었던 자를 베어갔다.

번쩍!

파앗!

천조각을 집어들었던 그자의 팔이 어깨어림으로 부터 뭉텅 베어져 나갔다.

그러나 그자는 신음소리 하나 내뱉지 않았다. 스스로 혈도를 눌러 지혈할 뿐이었다.

살수로서의 얼마나 강인한 수업을 쌓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정도였다.

그때 다른 자가 역시 오구검을 뽑아들며 외팔이가 된 그자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번쩍!

실로 번개와 같은 일검이었다. 검이 지나가고 외팔이의 몸이 상하로 분리되어 쓰러졌다.

[대형(大兄) ...?]

상 하체가 분리된 외팔이가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채 불신의 눈으로 자길 벤 자를 올려다 보았다.

철컥!

검을 다시 꼽으면서 외팔이를 벤 자가 말했다.

[셋째 너의 불찰로 네째가 죽었다. 목숨으로 갚는 것은 당연한 일.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절대칠살의 셋째의 고개가 힘없이 떨구어졌다.

잘린 두토막의 시체에서 내장이 와르르 쏟아졌다.

칠살의 또 한 사람이 옥병을 꺼내 넷째와 셋째의 몸에 몇 방울의 약을 떨어뜨렸다.

푸쉬쉬쉬...

시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녹아버렸다.

다른 자가 말했다.

[우리도 독이라면 일가견이 있습니다. 한데도 셋째와 넷째가 당했습니다. 놈은 우리가 방비할 수 없는 독을 가지고 있는 것같습니다.]

대형이라고 불린 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즉시 무당산을 벗어나도록 하자. 놈들은 이번엔 아마 소림으로 갈 것이다.]

스스스!

그들은 즉시 몸을 날려 희미한 달빛 사이로 사라졌다.

석두공이 잘라서 던졌던 소매자락은 나풀거리며 숲으로 날려갔다.

독왕동주인 독왕(毒王) 갈천상에게서 오독패혼공(五毒覇魂功)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바 있는 석두공의 몸속엔 천하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다섯 가지 절독이 균형을 이룬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 ×

 

철거렁! 철거렁!

신경을 거슬리는 쇠사슬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그곳은 완전히 철()로 된 항아리같은 감옥이었다.

석두공은 온몸이 쇠사슬에 감겨있는 한 노인을 보면서 측은한 듯이 말했다.

[대소변은 어떻게 봐요? 참 안됐군요.]

[크하하하하...!]

쇠사슬에 감겨있는 노인이 만감이 서린 광소를 터트렷다.

이 노인의 형상은 실로 기괴하다.

다듬지 못한 백발과 수염은 가시덤불처럼 뻗어있고, 걸치고 있는 옷은 다 헤어져서 쇠사슬이 살에 까지 파고들고 있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그렇지만 광채가 폭사하는 눈빛은 노인을 귀신처럼 보이게 하고 있었다.

천정에 붙어있는 한알의 야명주(夜明珠)보다 더 밝았다.

쨍쨍쨍...

노인의 웃음소리가 철로 된 벽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만들었다.

석두공은 얼굴을 심하게 찌푸렸다.

노인의 공력은 무당파의 장문인인 옥허도인보다도 훨씬 뛰어났다.

노인은 웃음을 뚝 그치며 말했다.

[흐흐흐... 먹는 것이 있어야 싸는 것도 있지 않겠느냐 이 꼬마야. 노부는 음식 냄새도 못맡아본 지가 벌써 이십 년이 넘었다.]

석두공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럼 뭘 먹고 지금까지 살았어요?]

그때였다.

!

장력에 바위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철옥(鐵獄) 안으로 금사종이 들어왔다.

노인은 그를 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우보다 못한 형이군 그래.]

금사종은 그를 보고 흠칫했으나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는 내 아우가 아니오. 솔찍히 말하면 내 주인이라고도 할 수 있소.]

[그런가? 하지만 너도 남 밑에서 심부름이나 할 자는 아닌 것 같은데?]

[세월이 변하면 선비도 붓을 놓고 검을 잡는 법이오. 또 태평성대가 오면 무사도 검을 버리고 괭이를 들게되어. 해야만 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소?]

금사종은 노인을 바라보며 늠늠하게 말했다.

노인의 눈에 은근한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석두공이 약간 화가 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왜 내가 묻는 말에는 답하지 않아요?]

노인은 그에게 눈을 돌리며 대꾸했다.

[노부가 네게 꼭 대답해야할 이유라도 있느냐?]

[그럼 나도 당신을 쇠사슬에서 풀어줄 이유가 없군요.]

석두공은 차갑게 응수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나를 풀어준다고? 네녀석은 만년한철(萬年寒鐵)과 천잠사(天蠶絲)를 자를 수 있단 말이냐?]

[대답하지 않겠어요. 최소한 내 물음에 답해줄 때까지는.]

석두공은 매몰차게 말했다.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제법 흥정할 줄도 아는군. 무림에서 손해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어.]

금사종이 말했다.

[노인장께서 사연을 말씀해 주신다면 우리가 풀어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 너희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단 말이지? 좋아. 마음에 들었으니 말해주지.]

노인의 선심을 크게 써는 듯이 말했다.

[노부는 이 장원의 주인이다. 최소한 이십년 전까지는 말이야. 검문(劒門)으로서 우리 고검문을 능가할 수 있는 문파가 없다는 그 고검문의 문주가 바로 나지.]

[죄송합니다만 고검문이란 이름은 생소합니다. 후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본 고검문은 어린 제자를 고수로 키워내는 문파는 아니니까 소문이 잘 나지 않지.]

금사종의 질문에 노인이 답했다.

석두공이 물었다.

[그럼 늙은 제자를 키워냅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석두공의 어리석은 질문에 노인은 빙긋 웃엇다.

[이미 무림에서 고수가 된 인물을 받아들여 절정고수로 키워내는 것이 바로 고검문다. 고검문의 제자는 대부분이 자신의 출신문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지. 그러나 고검문주인 내 명령에는 절대복종해야만 하지. 허허허허...]

고금문주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석두공은 팔짱을 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꼴이예요?]

[휴우...]

갑자기 고금문주가 땅이 꺼져라고 탄식했다.

[노부도 이게 무슨 꼴인가 싶다. 이게 다 제자를 잘못기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노인은 석두공과 금사종에게 자신의 한맺힌 사연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본래 고검문은 그의 말대로 무림의 고수들을 제자로 맞아들여 절정고수로 키워내는 특이한 문파였다.

문주인 이 노인의 이름은 섭군천(葉君天),

그의 검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났다.

노검객들의 평생 소원은 고검문에 한번 몸을 담아 보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고검문의 명성은 검호들 사이에 늘리 알려져 있었으며, 고검문의 제자가 되면 그 장래는 완벽하게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문파는 두 스승을 섬기는 것을 금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문파를 가진 자가 또 다른 문파에 몸을 담는 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하여 누구도 자신이 고검문의 제자라는 사실을 발설하지 않았으며 고검문이라는 말조차 쉬쉬하는 것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검문은 모든 검객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신화의 영역이었다.

 

고검문주 섭군천은 기억을 더듬는지 암울한 눈빛으로 천정을 올려다 보며 말했다.

[노부는 평생 단 두명의 제자를 받아들였다. 큰제자의 이름은 당이정(唐利貞)이라고 하고 둘째 제자의 이름은 심제을(深帝乙)이었지. 둘 다 무림에서 이름을 떨칠 때 내 제자가 되었어.]

[당이정? 정말 당이정이라고 했습니까?]

순간 금사종이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네.]

섭군천이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사종은 경이의 표정으로 이 괴물같은 노인을 다시 보았다.

[그럼 백검보(百劒堡)의 보주이며 이정(二正)중 한명인 검성(劒聖) 당이정 대협이 바로 노인장의 제자란 말씀입니까?]

[그렇네.]

노인은 이번에도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시엔 백검보가 보잘 것 없는 문파의 하나였었지. 그리고 둘째 제자놈도 어쩌면 들어보았을 게야. 그놈의 외호가 부운청풍객(浮雲淸風客)인가 뭔가 했으니까.]

!

그것은 충격이었다.

이정삼사오객 중의 이정에 속했으며 검성으로 추앙되는 백검보주 당이정이 노인의 제자일 뿐만 아니라, 오객 중의 한사람으로 정체가 신비에 가려져 있던 부운청풍객까지도 노인의 제자라는 것은 경악 그 자체였다.

금사종이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노인장께선 이런 모습으로... ]

[그런데는 뭐가 그런덴가? 심제을 그 배은망덕(背恩忘德)한 놈이 노부의 가족을 살해하고 증손녀를 납치한 후에 노부를 협박하여 이곳에 감금한 것이지.]

섭군천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원한에 대해서 달관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심한 고통에 시달렸을 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석두공과 금사종은 콧날이 시큰해옴을 느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부운청풍객의 행동은 그렇게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금사종이 입을 열었다.

[부운청풍객은 삼마경(三魔經)이라는 가공할 마공을 익혔습니다.]

[삼마경!]

섭군천이 돌연 비명처럼 외쳤다.

웅웅웅!

철옥에 오랫동안 삼마경이라는 말이 메아리쳤다.

[우욱!]

섭군천은 돌연 입으로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석두공은 번개처럼 허리의 방망이를 꺼내어 노인을 묶고 있는 사슬을 쳤다.

팡팡!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사슬이건만 방망이에 맞는 순간 불똥을 튕기며 산산히 깨어졌다. 그가 우연히 얻은 이 방망이는 정말 대단한 보물이었다.

섭군천은 사슬이 떨어져 나간 것도 모르고 넋이 빠진 듯 중얼거렸다.

[막내인 영소(瑩宵)마저 놈의 마수를 피하지 못했단 말인가? 오직 그 아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살았거늘...]

석두공은 섭군천의 몸을 뒤에서 묶고 있는 천잠사를 두가지의 공력을 사용해서 끊었다.

그가 사용한 공력중 하나는 빙백신공(氷魄神功)이고 다른 하나는 축융신공(祝融神功)이었다.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다는 천잠사지만 차갑고 뜨거운 두가지의 상반된 공력의 동시에 가해지자 썩은 새끼줄 처럼 끊어지고 말았다.

금사종이 내심 감탄하면서 섭군천의 몸을 안았다.

섭군천이 중얼거렸다.

[이젠 다 틀렸다. 다 틀렸어. 섭씨의 고검문은 이로서 끝이 나는 구나.]

그는 순식간에 수십년은 더 늙어 버린 듯했다.

비록 사슬에 묶여있기는 했지만 넘쳐나는 듯한 힘은 이제 깡그리 사라져 버린 듯했다.

석두공은 섭군천의 그같은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도 가슴속이 울렁거리는 것같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이 끌린 듯 섭군천에게 절하며 말했다.

[그럼 제가 제자가 되어 고검문을 잇게 해주세요.]

섭군천은 힘없는 눈빛으로 그런 석두공을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 자질은 제자가 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고검문을 이을 순 없다.]

[...?]

[...?]

석두공 뿐만 아니라 금사종도 의아한 표정으로 섭군천을 바라보았다.

섭군천이 탄식하며 말했다.

[고검문은 오직 섭가의 자식만이 이을 수 있다. 제자는 오직 무공을 배우고 문주의 명을 따르기만 할 뿐이다.]

석두공이 이마를 모으며 물었다.

[영소란 분이 할아버지의 아드님이셨어요?]

[그렇다. 내 막내아들이었지. 그 아이만은 따로 나가 살았기에 화를 피한 줄 알았는데... 놈은 그 아이마저 죽이고 삼마경을 뺏았구나.]

섭군천은 허탈하게 대답했다.

금사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삼마경은 원래 노선배님 것이었습니까? ]

[그렇진 않아. 영소가 우연히 얻었던 것이지.]

섭군천은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석두공은 그의 등에 있는 명문혈(命門穴)을 통해서 진기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섭군천의 명문혈에서 강한 반탄력이 일어나면서 그의 진기를 돌려보내버렸다.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던 섭군천이 돌연 눈을 빛내며 말했다.

[내 부탁을 들어주겠느냐?]

석두공과 금사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웬지 들어주지 않으면 안될 것같았다.

심제을! 그 배은망덕한 놈을 죽여다오.”

섭군천이 형형한 눈빛으로 말했다.

[놈이 비록 삼마경을 익혔다지만 당이정과 힘을 합하면 해치우지 못할 것도 없다.]

이어 그는 이를 부득 갈며 말했다.

가증스럽게도 놈은 노부로 변장하고 당이정을 본문에서 파문하여 돌아오지 못하게 한 후에 내 가족을 암습하여 죽여버렸다. 그리고 손녀를 납치한 뒤 노부를 협박하여 이곳에 감금하고는 내 무공을 뺏으려고 했다.”

[...!]

[...!]

석두공과 금사종은 숨을 죽인 채 무림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검문의 비극에 대해서 경청했다.

[놈은 노부에게 산공독을 먹였다. 그러나 노부는 포연신공(包延神功)이라는 무공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놈은 두려워 하고 있었지. 놈이 내게서 얻고자 한것도 포연신공의 구결... ]

 

포연신공은 아주 특이한 무공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두가지의 공력을 쌓는 것이었다.

두가지의 공력 중 하나는 드러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러난 공력이 없어지기 전에는 잠복하여 흐를 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드러난 공력이 소진하거나 사라지게 되면 즉시로 잠복하고 있던 것이 드러나게 되고 손상을 입은 공력은 잠복하게 되어 위치를 바꾼다.

이런 이치로써 포연신공을 익힌 자는 공력을 무한한 것이나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부운청풍객 심제을은 이 포연신공을 섭군천으로부터 뺏고자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그러나 섭군천이 갑자기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려서 그의 말을 전혀 듣지않고 공격함으로 인해 겁을 먹고 도망쳐버리고 말았엇다.

사부인 섭군천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심제을인지라 손녀라는 좋은 인질을 갖고서도 다만 섭군천을 이곳에 감금하기만 했을 뿐 자신이 갖고자 했던 것을 얻지는 못했다.

 

섭군천이 말했다.

[노부는 너희들에게 그 포연신공의 구결을 전해주겠다. 대신 그놈을 죽여다오.]

[할아버지께서 직접 죽이면 되잖아요?]

석두공의 말에 섭군천이 쓸쓸히 웃었다.

[놈을 죽여도 내 아들은 살아나지 않지. 그러나 놈이 숨쉬는 것도 보고 싶지 않다. 부디 내 부탁을 저버리지 말아다오.]

 

× × ×

 

날이 훤히 밝았을때 석두공과 금사종, 그리고 섭군천은 고정(古井)을 빠져나왔다.

포연신공의 전수가 끝난 후였다.

섭군천은 자신의 손으로 흩어져 있는 가족의 유골을 찾아서 묻기 시작했고, 석두공은 이상하게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끼며 고검문을 떠나갔다.

금사종은 섭군천과 석두공 이 두사람이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한 사람은 천하제일 검문이라는 고검문의 문주,

다른 한 사람은 작고한 천하제일인 동호천의 유일한 제자,

같은 점이라면 모두가 천하제일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는 정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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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六 章

 

                流浪歲月

 

 

 

넓직한 관도(官途),

[이제는 무당(武當)으로 갈 생각이오?]

금사종이 앞서 걸으면서 말했다.

석두공은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았어요.]

[설마 구파일방의 힘으로 삼마경을 익힌 그자들을 대항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어쨌든 뭔가를 하기는 해야잖아요.]

석두공은 뛰어가며 말했다.

확트인 관도다. 답답한 가슴마저 확 트이게 하고 길가에 넘실거리는 곡식의 황금물결은 무릉도원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게 해준다.

[야아아아!]

소리치며 달려가는 석두공은 모습은 여느 꼬마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후루루루!

참새떼들이 먹구름이되어 어지럽게 날아올랐다.

금사종은 나직하게 말했다.

[저 천진난만한 소년이 무림의 운명을 떠맡고 있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무당산으로 가까워 질수록 날은 어두워지는데, 희미하게 떠있던 낮달이 점점 환하게 빛을 발했다.

너른 들판에 어둠이 내리면 천지는 완전히 암흑으로 덮힌 것만 같다.

어디로 보아도 어둠...

멀어진 시야로 바라보는 어둠이기에 두려움은 어쩌면 더 클 수도 있었다.

무당산이 가까워 올수록 금사종은 점점 어떤 불안감에 사로잡혀 들었다. 누군가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동호천이 남긴 무치무요(武痴武要)를 조금씩 익혀가면서 이미 두어달 전과는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 있는 금사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불안감에 그는 자꾸만 석두공의 곁으로 바싹 붙었다.

석두공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대범한 것인지 여전히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달랑달랑 걸어가고 있었다.

 

헌데 그들이 지나가고 난 후,

스스스슷!

마치 검은 안개가 뭉치는 듯하면서 사람의 형체가 만들어졌다.

[무당산... 네놈이 무슨 이유로 무당산에 가는 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은 바로 네놈의 무덤이다.]

칙칙한 살기에 젖은 음성을 내뱉은 그 인물은 한쪽 팔이 없었다.

죽음의 신을 연상시키는 듯한 회색 눈동자를 지닌 자, 바로 잔혼살객(殘魂殺客)이었다.

그는 손을 스윽 들어올렸다.

스스슥! 스슷!

그러자 그의 뒤에 검은 야행복을 입은 복면인들이 나타나면서 무릎을 꿇었다.

모두 일곱 명이었다.

잔혼살객의 입에서 얼음장같이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당산에서 내려올 때를 노려라. 운제(雲梯)에서 잠복했다가 반드시 죽여라.]

[존명!]

복면인들은 나직하게 외치고는 사라져갔다.

스스슷!

[놈은 어리지만 신룡이나 마찬가지다. 어쩌면 동호천의 공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대책없이 그런 일을 벌일 동호천은 아니니, 놈에겐 분명히 어떤 숨겨진 힘이 있을 것이다.]

잔혼살객은 중얼거리면서 석두공과 금사종이 밟아간 길을 따라갔다.

그 중얼거림이 그가 직접 나서서 금사종과 석두공을 제거하지 않는 이유였다.

 

* * *

 

석두공과 금사종이 무당파의 해검지(解劒地)에 다다른 것은 밤이 깊은 이경 무렵이었다.

해검지에는 무당산에 오르면서 무당파의 조사(祖師)인 장삼봉(張三峰)도인을 기리는 뜻에서 방문객들이 두고간 수 백 개의 병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주인이 무당파에 올라간 후에 그곳에서 출가하여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음으로 말미암은 것들이었다.

소림과 나란히 명성을 떨쳐온 무당파다.

비록 수십 년 동안 무림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당파의 검객들이 하나같이 고수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금사종은 해검지에 놓여있는 녹슨 장검을 보면서 말했다.

[저 주인도 오를 땐 아마 다시는 잡지 못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을 것이오.]

그러나 석두공은 그 장검에는 눈을 두지도 않고 먼지가 가득 쌓인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뿌연 먼지에 뒤덮힌 작은 저()가 있었다.

크기는 한자반 정도인데 곤봉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으면서도 앙증맞게 보였다.

갑자기 석두공이 물었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어요?]

금사종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법은 없소. 다만, 이곳에 있는 무기의 주인들이 대부분 무당파의 사람이 되었으니까, 무당파의 성명을 생각해서 아무도 손대지 않는 것이오.]

[무당파에 오르기 전에 두고 갔으니 버렸다고 할 수 있지 않아요? 나는 저것을 갖겠어요.]

석두공은 그것을 잡아들면서 말했다.

금사종은 눈쌀을 찌푸렸다.

[그건 단지 장난감같은 조그만 방망이에 불과한데 염두에 두시오? 무당파의 협력을 얻어야 할 입장인데 괜한 일을 벌이지 않는 것이 좋을 것같소.]

금사종의 말마따나 그것은 단지 하나의 방망이에 불과해 보였다.

병기로 사용되려면 최소한 이래야만 한다.

크기가 작다면 무겁기나 하든가, 그것도 아니라면 예리하기라도 해야한다.

그러나 석두공이 쥐고 있는 방망이는 작은데다가 예리하지도 않고 재질이 무언인지는 몰라도 무거워 보이지도 않았다.

병기로 사용하기에는 가장 부적절한 것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탕탕!

두공은 방망이로 다른 검을 두드렸다.

한데,

쩡쩡!

방망이에 맞은 검이 갑자기 두 토막으로 깨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유리를 돌로 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방망이에서는 먼지가 떨어져 나갔다.

돌을 쪼아서 만든 것같기도 한 회색을 뛰고 있는 방망이는 약간 투박한 느낌을 주었다.

금사종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석두공이 방망이를 두드릴 때 공력을 운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금사종은 절로 신음을 발했다.

[보물이었군. 한데 조금도 보물같아 보이지 않는군.]

[그게 내손에까지 들어오게 된 이유가 아니겠어요?]

석두공은 씨익 웃었다.

아마도 해검지에 놓여진 후 얼마나 오랜 세월이 흘렀는지 몰라도, 그 방망이를 유심히 보거나 만져본 사람은 오직 석두공 하나 뿐일 것이다.

석두공은 방망이를 허리에 걸었다.

아직 키가 작은 그에게 방망이는 아주 적당하게 어울렸다.

 

운제(雲梯)를 지나가면 바로 무당파의 삼청관(三靑館)에 이르게 된다.

그곳에서는 기다리고 있은 듯이 두사람의 도인이 나타나며 석두공과 금사종의 앞을 막았다.

[무량수불(無量壽佛)!]

도호를 외우며 나타난 그들은 중년의 도인(道人)들이었다.

복우파의 못난 제자 금사종입니다!”

금사종이 포권을 하고 신분을 밝혔다.

[옥허자(玉虛子) 장문인을 뵙고자 왔습니다.]

그리고 금사종이 장문인을 뵙기를 청하자 도인들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장문인께서는 오래 전부터 폐관 중이시라 만날 수 없소이다. 다른 때를 택해서 방문해 주시기 바라오.]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석두공은 고개를 저었다.

금사종은 어쩐 일인가 싶어서 석두공을 바라보았다.

그때 석두공이 갑자기 손을 뻗어 두 도인의 소매를 잡으며 나직하게 소리쳤다.

[당장 출관하면 되지요.]

쿵쿵!

말이 끝났을때는 두 도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날아올랐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폐관하는 곳을 알고 있죠? 빨리 가요.]

그는 금사종을 다그치듯 소리쳤다.

휘이이익!

 

상청관 뒤,

절벽을 모로 돌아 역대로 장문인들이 폐관수련을 해왔던 곳인 등선동(登仙洞)이 있었다.

[이곳이오. 하지만 안에서 문을 열지 않는한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오.]

금사종은 등선동의 석문 앞에 멈춰서면서 말했다.

석두공은 허리에서 방망이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부수고 들어가야죠.]

그는 이상하게도 서둘고 있었다.

등선동이라면 무당파의 중지(重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등선동을 파괴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당파와 영원한 원수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금사종은 석두공의 말에 복종한다는 약속을 한바가 있으니 그가 하는 대로 두고 볼 수 밖에 없었다.

!

방망이가 석문에 강하게 부딪혔다.

쩌저적!

석문은 길게 금이 가면서 갈라졌다.

쿠르르릉!

석문이 우르르 무너지고 돌먼지 사이로 등선동의 내부가 검게 보였다.

!”

스팟!

순간 금사종은 안쪽에서 쏘아지는 가공할 검기에 흠칫하며 몸을 피했다.

그러나, 석두공은 방망이를 흔들며 웃었다.

[하하하... 무당파에 사람이 있기는 하군요. 무당파 장문인이 누구라 그랬죠?]

[옥허도인이오.]

금사종이 대꾸했다.

돌먼지가 가라앉으면서 등선동 안의 모습이 보였다.

“....!”

석실에는 옥허도인으로 생각되는 노인이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반쯤 떠있었다.

[부공삼매(浮空三昧)!]

금사종이 놀라 외쳤다.

석두공은 감탄하며 말했다.

[묘한 재주군요. 신선이 되려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요.]

쩌어어엉!

옥허도인의 눈에서 횃불같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석두공을 노려보면서 물었다.

[누구이길래 성지(聖地)를 범하느냐?]

[나는 석두공이예요. 도사할아버지께는 미안하지만 무당파는 좀더 봉문을 해야 겠어요. 무공이 약해요.]

석두공은 가슴을 펴고 옥허도인을 향해 걸어갔다.

그순간 옥허도인의 몸에서 밝은 금광(金光)이 원형으로 퍼져나왔다.

그것은 장삼봉으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태극금단신공(太極金丹神功)의 흔적이었다.

장삼봉 이후에는 아무도 익힌 사람이 없다는 전설적인 무공이 태극금단신공이다.

석두공을 유심히 본 옥허도인은 크게 놀랐다. 겨우 열두엇쯤으로 보이는 석두공임에도 그 공력의 깊이를 측정할 수 없을 것같았다.

그는 오른손 검지와 중지로 검결을 맺어 가슴앞에 세웠다.

수우우우!

순간 좌측 석벽에 걸려있던 그의 진무검(眞武劒)이 살아있는 듯 움직이며 석두공의 앞을 가로막았다.

들어난 검신에서 새파란 검광이 줄기줄기 흐르고 있었다.

[죽음을 달고온 아이야. 노도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옥허도인이 준엄한 어조로 물었다.

[도사할아버진 정말 다르군요.]

석두공은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그의 천진난만한 행동은 도무지 적인지 친구인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을 정도로 두서가 없는 것같았다.

석두공이 말했다.

[나는 들어오면서 두사람을 다치게 했어요. 무당파와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요.]

옥허도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말은 우리가 좋은 관계라는 거냐?]

[최소한 무당파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은 했잖아요.]

석두공은 이상한 말을 하면서 옥허도인에게 다가갔다.

옥허도인이 다시 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도사할아버지의 무공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는군요. 하지만 좀더 폐관하셔야겠어요. 할아버지의 무공은 상당하지만 극에 달하진 못했어요. 아마도 그 무공의 삼성(三成) 정도 터득하신 모양이죠?]

석두공의 말에 옥호도인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참으로 영특하구나.]

[오늘은 아무부탁도 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언젠가 저 사람이 와서 부탁할 거예요. 그때는 거절하지 말아주세요.]

석두공은 금사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옥허도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그러나 그전에 내 삼초를 받아야만 한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석두공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 일초!]

옥허도인은 반공에 뜬 채 소리쳤다.

슈아앙!

석두공의 앞에 떠있던 그의 진무검은 벼락처럼 뒤로 물러나더니 그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다.

번쩍! 번쩍!

검이 이르기 전에 수십 줄기의 검기가 먼저 발출되었다.

두공은 가슴앞에서 방망이를 둥글게 돌렸다. 방망이의 수많은 그림자가 방패를 만들었다.

티티티티틱!

검기가 방망이에 부딪히며 괴이한 음향이 울려퍼졌다. 석두공의 손에 있는 작은 방망이에 부딪힌 검기는 흩어지지도 않고 방망이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그것은 석두공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 듯했다.

[?]

이어 그는 방망이를 검을 쓰듯이 찔러내 날아오는 진무검을 막았다.

!

진무검은 방망이에 가로막히며 위로 솟아올랐다.

그때 옥허도인이 다시 소리쳤다.

[제이초! 태극어검(太極馭劒)!]

고오오오오!

순간 검의 주위에 공기가 응축되면서 태극(太極)의 문양이 생겨났다.

우우우웅!

진무검은 석두공을 향해서 둥글게 베어왔고, 그 진무검의 주위에 형성된 태극의 문양은 점점 거대해지면서 석두공을 뒤덮었다.

석두공은 자신의 몸이 쇠사슬에 묶인듯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순간에 석두공은 자신의 근육을 기묘하게 수축시키며 오른손의 방망이를 팔을 타고 흐르게 했다.

방망이는 그의 왼손끝에서 튕겨나가고, 그것은 진무검과 다시 한번 부딪혔다.

!

진무검은 주춤 멈춰섰지만 태극의 문양은 석두공을 뒤집어쒸우고 말았다.

[멈추시오!]

금사종이 쌍장을 날리며 뛰어들었다.

화르르르!

그의 쌍장에서 새파란 불꽃들이 수백개가 터져나와 어지럽게 날았다.

무치무요에 기록된 무공들 중에서 그가 가장 먼저 익힌 상화장(翔火掌)의 공력이었다.

파파파파팟!

태극문양과 상화장이 부딪히면서 둘 다 소멸해 버렸다.

옥허도인이 소리쳤다.

[훌륭한 무공이군!]

석두공은 옷이 갈갈이 찢어져 버렸다.

그는 태극문양을 몸으로 받은데다 금사종의 공격까지 한몸에 받은 꼴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아무런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상을 입은 것같지도 않았다.

금사종과 옥허도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그 나이에 금강불괴체(金剛不壞體)라니... 실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로군. 그럼 이제 마지막 일초를 받아보게.]

옥허도인이 잠시 있다가 침묵을 깨뜨리며 말했다.

휘익!

그는 손을 흔들어 진무검을 다시 왼쪽 석벽으로 보내버렸다.

꽈르르릉!

그리고는 그 손을 뒤집으며 일장을 밀어냈다. 그의 손바닥에는 몸에서와 마찬가지로 금광이 어려있었다.

석두공의 표정은 신중했다.

금사종은 석두공의 그처럼 진지한 모습을 그다지 본 적이 없었다.

석두공은 방망이를 허리에 걸고는 두손을 가슴앞에서 교차하며 팔꿈치를 앞으로 밀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스스슷!

석두공은 분명히 그자리에 서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몸이 분리되면서 또 하나의 석두공이 옥허도인의 쌍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옥허도인의 장력이 밀려가는 속도나, 또하나의 석두공이 나아가는 속도나 조금도 차이가 없이 똑같았다.

[분신둔형술(分身遁形術)...]

금사종이 나직하게 내뱉었다.

이미 동정호의 부주에서 석두공은 철사보주 맹호산의 판관필을 피하기 위해서 이 분신둔형술을 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피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공격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신둔형으로는 공격까지도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푸쉬쉭!

옥허도인의 장력과 석두공의 분신이 격돌하면서 불꽃이 타오르듯 함께 타올랐다.

“....!”

반공에 뜬 옥허도인의 몸이 일장가량 밀려갔다.

그리고 석두공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엿보였다.

그러나 그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도사할아버지, 약속을 잊지 마세요.]

[석두공이라고 했느냐?]

옥허도인은 포단에 내려앉으며 말했다.

[갈때는 뒤쪽의 소로(小路)를 이용하도록 해라.]

[가르쳐 주실 줄 알았어요.]

석두공이 피곤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금사종과 그는 옥허도인이 가르쳐준 소로를 따라서 삼청관을 벗어났다.

옥허도인은 눈을 감은채 중얼거렸다.

[동노선배... 제자가 못마땅하다고 그토록 투들거리더니 노선배보다 오히려 나을 듯싶소.]

옥허도인,

그는 진정 기인이었다.

석두공이 동호천의 제자라는 것을 무공을 펼치는 순간에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그가 석두공의 행동에 대해서 그다지 질책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한데 석두공과 금사종이 등선동을 떠난지 한시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스스스! 화라라락!

이미 삼경이 넘었는데 일곱명의 흑의인이 등선동 앞에 나타났다.

옥허도인은 석두공을 보고 죽음을 몰고온 아이라고 불렀지만 그 일곱명의 흑의인들이야 말로 죽음 그 자체인듯했다.

그들은 깨어져 있는 등선동의 문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그자들은 어디로 갔소?]

옥허도인은 쇠잔한 노인처럼 힘없이 손을 들어 소로가 있는 방향으로 가리켰다.

두눈 가득 살광을 담고 있던 자들은 나타날때 그랬던 것처럼 소리없이 사라졌다.

[잔혼각(殘魂閣)의 절대칠살(絶對七殺)... ]

옥허도인의 입에서 무겁게 새어나온 말이었다.

잔혼각...

그것은 가장 공포스러운 살수(殺手)들의 집단이었다.

어느 곳에 존재하는지, 누가 그 단체의 주인인지, 그 모든 것이 비밀 속에 가려진 살수들의 집단,

그들은 돈을 받기만 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척살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절대칠살은 그 잔혼각 내에서가 가장 뛰어난 일곱 명의 살수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들이 석두공과 금사종을 쫓고 있었다.

석두공은 자신들을 뒤쫓는 자들이 있음을 알았기에 무당파의 고수 두사람을 상하게 함으로써 무당파가 자신과 좋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표시했고,

또한 무당파의 중지인 등선동을 깨뜨림으로써 화가 무당파에 미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절대칠살은 원래 운제에서 기다리다가 나오는 석두공 등을 요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그들은 직접 삼청관으로 쳐들어갔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남들이 바보라고 부르던 한 소년에 의해서 이미 정확하게 예측되었던 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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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3)

 

 

-서악(西岳) 화산(華山)!

 

밤새 내린 서리가 아직 햇살에 녹으면서 은구슬이 되어 풀위에 굴렀다.

지난 여름 검푸르던 푸른 숲의 잎들은 이제는 불타는 홍엽(紅葉)이 되어 떨어져 뒹굴고, 성마른 놈들은 벌써부터 바싹바싹 소리를 내고있다.

서리에 눅눅해졌을 만도 하건만 메마른 가을날씨라 속까지 그렇진 않은가 보다.

천년을 이어온 무림(武林)의 정통(正統) 명문(名門)인 화산파로 올라가는 산길은 구비구비 돌고돌아 어지럽기조차 한데,

물러가지 않은 안개속에 걸어올라가는 희끄무레한 두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한사람은 당당한 장부이고 그옆에 선 사람은 불과 십삼사세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년이었다.

그들이 말없이 산길을 오르는 동안 햇살은 안개를 녹이며 점점 그들의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햇빛 받은 두 얼굴,

그들은 동정호를 떠났던 석두공과 혼장서생 금사종이었다.

완전히 굽은 길을 접어들면서 문득 금사종이 말했다.

[여기서 부터는 화산파가 직접 경계를 서고 있는 곳이오. 원래 생각대로 그대로 지나칠 것이오?]

그는 자기보다 열살은 어려 보이는 석두공이지만 함부로 대하지 않고 반 경어를 사용했다.

어떻게 되었든 간에 명목상으로 금사종은 석두공에게 오년 동안 머리를 빌려주기로 한 하인에 불과한 신세가 아닌가?

두공이 물었다.

[내가 그렇게 한다고 했었요?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죠.]

그는 자신이 한말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듯했다.

금사종은 앞서 걸으면서 다시 물었다.

[대체 화산파에는 무슨 볼일이 있는 것이오?]

[장문인을 만나러 왔어요.]

[삼비철검자(三臂鐵劒子)?]

금사종의 의문에 대해 두공은 씨익 웃었다. 더이상 물어도 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도무지 속을 짐작할 수가 없단 말이야. 자신이 했던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틀림없는 바보인데, 또 그런가 하면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데는 도저히 귀신도 따를 수 없을 것같으니...)

금사종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멈추시오!]

휙휙!

갑자기 그들의 앞으로 두사람의 검객이 날아서 떨어졌다.

짙은 검미에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불툭 솟아오른 관자놀이는 그들의 내공이 얕지 않음을 말해주는데, 각기 등에는 청과 홍의 수실이 늘어져 있는 고검(古劒)을 매고 있었다.

[두분은 그만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곳은 속인이 함부로 오는 데가 아니오.]

왼쪽에 선 약간 마른듯한 검객이 말했다.

금사종은 포권을 취하고 말했다.

[소생은 복우파의 금사종이라 하오. 화산파의 위명은 끊임없이 들었소이다.]

복우파의 제자가 화산파의 위명을 거론하자 두 검객의 얼굴이 약간 부드럽게 변했다.

방금 전에 말했던 검객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화산오검(華山五劒)의 셋째인 장간위(張干韋),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넷째인 연주국(燕珠菊)이오. 복우파의 형제가 우리 화산파엔 어쩐 일이시오?]

[귀파에 용무가 있는 사람은 소생이 아니라 소생이 모시고 있는 사람이외다.]

금사종은 석두공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장간위와 연주국은 이상한 듯이 석두공과 금사종을 번갈아 보았다.

연주국이 물었다.

[소형제가 본파에 용무가 있는가?]

[그렇소. 나는 삼비철... 뭐더라?]

옆에서 금사종이 재빨리 말했다.

[철검자!]

[삼비철검자! 그 삼비철검자를 만나러 왔소. 이곳으로 좀 불러주실 수 있소?]

석두공은 어른들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했다.

그것은 어이없다기 보다는 우스광스러웠다.

연주국이 금사종에게 물었다.

[금형제! 대체 이 소년은 누구신가? 어느 고인의 자제분이신가?]

[그는...]

금사종이 막 입을 열려는 찰라,

[말하지 말아요. 함부로 내게 대해서 말한다면 용서하지 않겠어요.]

석두공이 준엄하게 소리쳤다.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에는 범접하지 못할 위엄이 서려있었다.

화산오검의 두사람인 장간위와 연주국은 그 소리하나 만으로 석두공을 다시 보았다. 순간적이나마 그들은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꼈던 것이다.

장간위가 연주국에게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두분을 모시고 있게. 내가 사부님께 알려드리겠네.]

장간위는 이미 석두공이 범상한 소년은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잠시 후, 장간위는 삼비철검자를 대동하고 석두공 등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왔다.

삼비철검자는 매화꽃 문양이 그려진 장삼을 입은 팔십에 가까운 노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매는 칼날처럼 매서웠고 몸은 전혀 무게가 없는듯이 가벼워보였다.

또한 전신에서 풍겨나오는 조용하면서도 파도같은 무형의 기도는 화산파라는 검문을 수십 년 동안 맡아온 일대검호(一代劒毫)로서 모자람이 없었다.

장간위로 부터 말을 들었는지 그는 대뜸 석두공에게 물었다.

[존사(尊師)가 뉘신가?]

[노인께서 삼비철검자이십니까?]

석두공은 마주 질문을 했다.

삼비철검자의 눈썹이 꿈틀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렇게 나를 부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건만...)

그러나 상대가 어린아이라는 생각에 그는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억눌렀다.

그때 석두공이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표정으로 보아서 삼비철검자가 맞는 모양이네요. 난 비무를 하기 위해 왔어요.]

멍청...

삼비철검자뿐만이 아니었다.

삼비철검자의 뒤를 따라 도착한 화산오검의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멍청해져 버렸다.

다만 금사종만은 그들과 약간 다른 각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는 석두공의 무공이 대단함을 알고 있었다.

단지 그가 비무를 하겠다고 화산까지 왔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기에 놀란 것 뿐이었다.

[허허허허...]

삼비철검자가 어이가 없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화산오검도 덩달아 웃었다.

방금 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같던 분위기가 갑자기 늘어져 버렸다.

한데,

[하하하... ]

석두공도 함께 웃으며 손가락으로 삼비철검자의 코를 가리켰다.

그의 무례한 행동에 금사종이 당황하여 외쳤다.

[그러면 않되네.]

하지만 그 순간에 삼비철검자는 깜짝 놀라며 뒤로 훌쩍 뛰어 물러났다. 마치 예리한 검이 날아들기라도 하듯이...

화산오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버렸고,

[하하하...]

석두공은 하늘을 보면서 웃어젖혔다.

삼비철검자는 신중한 어조로 물었다.

[방금 전의 것은 혹시 본파의 매화검지(梅花劒指)가 아닌가?]

[그게 매화검지였습니까?]

석두공은 싱글벙글웃으며 말했다.

[아마도 연관이 있을 것같아 해본 것인데 용케 맞아떨어졌군요.]

운래 매화검지는 화산파에서도 실전된 무공이었다.

한가닥으로 뻗어진 지풍이 상대방의 몸에 이르러서는 다섯줄기로 나뉘어 격중되면서 매화문양을 새기고 마는 것으로, 화산파의 진산(鎭山)의 절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삼비철검자는 무겁게 말했다.

[매화검지를 어떻게 익혔는가?]

[그냥요. 그런 쓸모없는 말보단 이제 비무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은데요.]

석두공은 말꼬리를 돌렸다.

삼비철검자는 잠시 생각했다.

(쉽게 대답하진 않을 것이다. 먼저 무공으로 제압하고 물어보는 것이 좋겠구나.)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비무를 수락하지. 대신 조건이 있다.]

[당연히 그래야죠.]

석두공은 얼굴가득 웃음을 피워올리며 말했다.

삼비철검자는 준엄하게 말했다.

[만약에 네가 진다면 매화검지를 돌려다오. 어떻게 해서 익혔는가는 추궁하지 않겠다.]

[그렇게 하지요. 그렇지만 내가 이길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석두공의 말에 삼비철검자는 말문이 막혔다. 증손자뻘은 될 꼬마녀석이 화산파의 장문인인 자신에게 도전하고, 게다가 이길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다.

삼비철검자는 냉소하며 말했다.

[그때는 네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목숨을 달라면 목숨을 주고 종이 되라고 하면 종이 되지.]

[사부님!]

화산오검이 놀라 외쳤으나 이미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이었다.

두공이 금사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사람이 증인입니다.]

 

화산파의 장문인 삼비철검자는 열세살의 어린 소년을 상대로 검을 뽑았다.

소년은 적수공권(赤手空拳)...

강호의 뭇 고수들이 알면 실소할 일이었으나 그의 표정은 엄숙하기만 했다.

석두공은 오른손의 검지로 삼비철검자의 발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데도 삼비철검자는 검으로 자신을 방비하기만 할뿐 움직일 줄 몰랐다.

어린 석두공에게서는 벌써부터 절세고수의 풍모가 엿보이고 있었다.

(이런 꼬마가 어찌... 남들은 이나이에 겨우 무학에 입문할 때거늘...)

삼비철검자는 믿어지지 않는 사실 앞에 몸을 떨었다.

눈앞의 석두공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삼비철검자는 내심 탄식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추한 꼴을 보일 순 없다. 차라리 자결하는 것이...)

그때 돌연 석두공이 손을 거두고 물러서면서 말했다.

매화검지는 돌려드리겠어요. 그리고 이것도 돌려드리죠. 아마 알만 한 것일 거예요.”

화산오검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의 사부가 이겼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삼비철검자의 안색은 무참하게 구겨져 있었다. 아예 새까맣게 보였다.

 

두공은 손가락으로 검결을 형성한 뒤에 한가지 검법을 천천히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동을 가리키고 서를 가리키며, 날아올랐다가 물러서고, 물러서는가 하면서 옆으로 돌아가는 기이막측한 검법이었다.

화산파의 무공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화산파의 것인 모양인데도, 삼비철검자는 그것이 어떤 검법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두 열일곱 초식으로 이루어진 그 검법을 펼침에 있어서 왼손은 항상 자유로웠다.

두공이 연거푸 세번이나 초식을 세밀하게 펼쳐보인 후에 말했다.

[매화검지와 병행해서 펼칠 수 있는 검법이예요. 모든 제자들에게 동시에 전수하세요. 그리고...]

두공은 갑자기 손을 뻗어 석벽을 가리켰다.

순간,

파파파파팍!

뭉게뭉게!

석벽에서 돌먼지가 날아오르며 그사이에 용비봉무와도 같은 글씨가 나타났다.

매화검지의 구결이었다.

삼비철검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네 의도가 대체 무엇이냐?]

[내말을 듣기만 하세요!]

석두공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두가지를 완전히 익힐 때까지 봉문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후에 단 한번만 나를 위해 그 무공들을 사용해 주시면 되요. 다른 조건은 없어요. 증인이 있는데 스스로 맹세한 것을 어기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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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천하제일인의 죽음 (2)

 

 

안개가 악령처럼 떠다니고 어둠이 안개 사이에 칙칙하게 가라앉아 있는 깊은 절곡,

천연의 석주(石柱) 두개가 관문처럼 서있다.

그리고 그 석주의 뒤에는 마차 두대가 나란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잘 닦여진 동굴이 있고, 인간세상에서는 모르는 세외의 진경이 그 속에 있었다.

어디선지 빛이 들어와 은은하게 밝혀주는 지하의 세계...

무수하게 늘어서 있는 전각들,

그리고 웅장한 대전들,

그 모든 것이 둥근 지붕을 가진 거대한 건물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다.

 

[미사(美邪)! 다리를 벌려라.]

화려한 금포(錦袍)를 입은 노인이 침상에서 한쪽 팔을 고인채 옆으로 누워 말했다.

이 금포노인이 누워있는 침상은 엄청나게 컸다.

이십 명이 누워도 서로 어깨가 닿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원형의 침상이었다.

노인은 그 침상의 중간에 누워있고 그의 주위엔 전라의 미녀들이 여러가지 자세로 앉거나 누워있었다.

금포노인의 바로 앞에는 갈색 눈동자의 미녀가 폭포수같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무릎을 오무리고 서있었다.

배시시 웃는 얼굴에는 요사스런 아름다움이 안개처럼 서려있어 보는 사람의 정욕을 불러일으킬 듯하고,

팔꿈치에 살짝 가려진 두 가슴은 터질듯이 부풀었으며, 부드럽게 흘러내린 허리선은 남자의 손을 한없이 유혹하는 듯하다.

옥으로 깎아만든 기둥인 듯 희고 미끈한 두 다리는 동그스럼한 둔부에서 이어지고, 두 다리가 시작되는 삼각주에는 검은 수림이 은밀하게 자리잡고 있다.

미사라 불린 그녀의 붉은 입술은 육감적으로 벌어져 있는데, 금포노인의 재촉을 받은 그녀는 둔부를 낮추며 무릎을 활짝 벌렸다.

마치 춤을 추는 듯한 자세였다.

금포노인의 눈에는 그녀의 은밀한 부위의 붉은 속살까지 보였다.

미사의 갈색 눈동자는 어떤 종류의 갈망으로 젖어 있었다.

[됐다. 지금의 일은 꼭 그정도 까지만 진행되었다.]

금포노인은 만족스러운듯 말하고는 미사의 옆에 있는 여인을 불렀다.

[환요(幻夭)! 이리 오도록 해라.]

환요라는 여인이 살포시 일어나 금포노인 앞에와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미사와는 또 달랐다.

그녀는 마치 한덩어리의 구름같은 여인이었다. 부드러운 살결이 그랬으며 머리카락이 또한 그랬다.

붉은 입술과 검은 눈동자, 그리고 검붉은 유실은 구름위에 꽃이 놓여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내 옷을 벗겨라.]

[영광이옵니다.]

환요는 얼굴 가득 음탕한 빛을 떠올리며 말했다.

금포노인은 금포속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겉옷을 벗기자 그 즉시 들어나는 그의 탄탄한 알몸은 도무지 노인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인해보였다.

노인은 여전히 비스듬히 드러누운 상태이고 환요는 엎드려서 노인의 가슴에 혀를 갖다댔다.

[하아!]

뜨거운 숨결이 노인의 살결위로 흘러갔다.

다른 여인들이 다리사이로 손을 넣으며 몸을 꼬았다.

[오랫동안 기다렸겠지?]

[... ... 아아!]

환요의 뜨거운 음성이었다. 그녀의 손은 노인의 등과 둔부를 쓸어내리고 있었다.

노인이 중얼거렸다.

[본좌도 오래동안 기다렸다. 너무도 오랫동안... ]

하지만 환요는 그 말을 듣지 못했다. 욕정에 몸이 달아오른 그녀는 뜨거운 행위에 몰두하고 있엇기 때문이다.

노인의 가슴을 핥던 환요의 혀는 탄탄한 배를 지나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더욱 고조됨에 따라 노인의 양물(陽物)이 꿈틀대며 일어서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 아하!]

[... ...]

침상의 여기저기에서 흥분을 못이겨 발하는 여인들의 탄생이 새어나왔다.

노인의 양물은 점점 커졌다.

그리고 마침내 환요의 입술이 그곳에 닿았을 때 그것은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졌으며, 더이상 단단해 질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고, 또한 더이상 뜨거워 질수 없을 만큼 뜨거워졌다.

환요는 그것을 보듬어쥔 자신의 손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노인의 양물은 그가 거느리는 많은 여인들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하고 또 컸다.

환요가 두손으로 겨우 감아쥘 수 있을 정도로 굵었으며 한자는 넘을 정도의 길이였다.

노인은 편안히 누웠다.

환요는 두손으로 그의 양물을 흔들며 혀로서 끝부분을 쓰다듬었다.

주위의 여인들은 자신의 몸을 쓰다듬다가 참지못하고 다른 여인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한 여인은 쪼그리고 앉아서 손가락을 자신의 소중한 곳에 깊이 넣고 둔부를 움직이고 있었으며, 마주 보고 누워서 서로가 서로를 만져주는 여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사만은 요염한 자세로 앉아서 노인과 환요를 주시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잇었다.

환요의 애무가 도를 더해갈수록 노인의 얼굴은 점점 붉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는 환요의 머리를 당겨서 앉게 했다.

[하아! 하아!]

환요가 그의 몸위에 걸터 앉으면서 가쁜숨을 몰아쉬었다.

말을 매는 말뚝만큼이나 거대한 노인의 남성이 환요의 붉고도 은밀한 곳으로 천천히 밀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움찔움찔!

환요는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며 노인의 남성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환요의 숨소리가 달라졌다.

그리고 서로 부둥켜 앉고 뒹굴던 여인들도 서로를 꽉 틀어안으며 몸을 비벼댔다.

돌연,

[하악!]

환요가 비명을 지르며 아찔한듯 휘청였다. 노인이 그의 남성을 완전히 환요의 몸속에 삽입한 것이었다.

비명도 잠시, 환요는 머리까지 뚫어버릴 듯한 쩌릿한 쾌감에 몸을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그녀의 입에서는 고통과 쾌감이 함께 어우려진 묘한 소리가 터져나왓다.

환요의 몸은 마치 뼈가 없는 듯이 부드럽다.

노인은 그녀를 몸위에 올리고도 전혀 무게를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두손이 그녀의 둔부를 꽉 비틀어 잡았다.

[! 아파!]

순간 노인은 힘차게 자신의 남성을 들어올려 그녀의 몸속 깊숙히까지 밀어넣었다.

순간 환요는 자지러질 듯 비명을 질렀고, 그 비명은 다른 여인들과 노인의 욕정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악!”

연이어 비명을 지르던 환요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면서 혼절해버렸다.

쾌락의 끝에 다다랐던 것이다.

바로 그때 미사가 벌떡 일어서며 환요의 몸을 끌어내렸다.

!

노인의 남성이 환요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환요대신 노인의 하체 위에 쪼그려앉은 미사는 두손으로 노인의 남성을 감아쥐어 자신의 중심부에 잇대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

그녀는 노인의 거대한 남성을 받아들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단번에 깊은 결합을 한 그녀는 맷돌을 돌리듯이 자신의 둔부를 돌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활짝 벌린 그녀는 동작을 크게 해서 움직였다.

부드럽고도 격렬한 파도가 일었다.

물결치듯 둔부가 일렁일 때마다 검붉은 육주가 모습을 들어냇다 사라지곤 한다.

요동치는 한쌍의 젖무덤은 노인의 눈을 어지럽힌다.

그러던 어느 순간 격한 신음이 미사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골수를 관통하며 치솟는 짜릿한 전율에 미사는 다리를 오무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동시에 노인의 다리도 잔뜩 긴장되었다.

미사는 맹렬한 분출이 자신의 내부를 강타하는 것을 느끼며 진저리를 쳤다. 마치 화산이 터진 듯 뜨거운 용암이 아랫배 깊은 곳에서 불끈불끈 용출한다.

후우...!”

노인이 긴 한숨을 쉬며 긴장으로 굳혔던 두 다리를 풀었다. 거푸 전신을 누비던 분출의 희열이 갈아앉은 것이다.

노인이 만족한 것을 알아차린 미사는 그의 얼굴에 뺨을 비비며 떨어져 나왔다.

그러자 다른 여인들이 앞다투어 노인에게 달려들며 그의 남성에 묻어있는 것을 핥았다.

노인이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국 모든 것이 이렇게 될거야. 모든 것이...]

 

***

 

소문은 잔잔히, 그러나 아주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무치 동호천이 죽었다.

--그의 제자가 동호천의 모든 진전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열세살 짜리 꼬마에다 바보 멍청이다.

--그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동호천이 남긴 무치무요(武痴武要)라는 절세적인 비급을 차지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동호천의 죽음에 대해서는 미리 예견되어 있었던 바였다.

또한 그것으로 인해 이미 많은 무림인들이 동정호로 갔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돌아온 자는 오십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동호천에 대한 소문은 믿도 끝도 없이 일어나서 전 무림에 퍼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문보다도 더욱 빠르게 소문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도 있는 동호천의 제자는 모습을 감춰버렸다.

무림인들은 그를 찾고자 눈에 쌍심지를 돋구었으나 여기저기서 봤다느니, 나타났다느니 하는 풍문만 나돌 뿐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데 동호천의 제자인 석두공의 잠적으로 말미암아, 그들 무림인보다도 더욱 당황해하는 인물들이 있었다.

그것은 두명의 외모가 똑같이 생긴 노인들이었다.

 

-낙양(洛陽)!

 

흔히 구조(九朝), 즉 아홉 왕조(王朝)의 도()라고 불리는 천녀고도다.

낙양은 특히 당대(唐代)에 두보와 이백, 백낙천 등 많은 문인 예술가가 활약했던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 낙양이라고 하면 쇠붙이를 만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이름을 떠올린다.

 

<만금장(萬金莊)>

 

바로 만금장을 떠올리는 것이다.

만금장의 주인이 누군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만금장의 재력이 얼마나 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금장의 재력(財力)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만금장의 주된 사업은 보석을 비롯한 귀금속과 골동품, 고서화 등으로, 주된 고객들은 부호(富豪)들과 높은 벼슬아치들이었다.

한마디로 부자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온 만금장이다.

이러한 만금장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황하는 해마다 범람하는데 그때마다 수십 만에 달하는 수재민이 발생하고 황하의 물이 완전히 빠지자면 보통 삼개월이 걸리게 된다.

그 재해는 너무도 엄청나서 조정에서도 손을 잘 대지 못할 정도이다.

그런데 만금장은 그러한 수재민들을 위해서 해마다 수만 섬의 미곡과 금은을 풀어서 직접 구제사업을 벌인다.

개인으로서 이같은 일을 한 자는 역대에 없었다.

심지어 만금장의 장주를 조정에서는 반란을 위해서 민심을 모으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이 만금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두노인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군.]

이렇게 말하며 벌떡 일어서는 사람은 놀랍게도 동호천의 두 아우 중 한사람인 주치(酒痴) 동복신이었다.

그렇다면 그의 맞은 편에 있는 사람은 두말할 것도 없이 보치(寶痴) 동적선이다.

동적선은 묵묵부답, 동복신이 혼자서 소리쳤다.

[이렇게 되면 형님의 희생은 아무 의미도 없어지지 않는가? 그 돌대가리 놈이 이것마저 잊어버렸나? 지금쯤은 무림인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도망쳐 다녀야 옳은데 잠적이라니...]

동적선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두공이가 기억을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해력은 아무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있는 것이 틀림없는것 같소.]

동복신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내뱉았다.

[그 도깨비같은 놈은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변수가 있을 리도 없지만 있다면 바로 그놈일거야.]

동적선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할 건 아니오. 두공이는 믿을 만하오. 어쩌면 모든 것을 그녀석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좋을 것같소. 또 원래 그럴 생각이 아니었소?]

[아무튼, 나는 혼자서라도 그놈을 찾아야 겠다.]

동복신은 술병을 집어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동적선이 소리쳤다.

[형님!]

[넌 여기서 만금장주 노릇이나 잘하고 있거라. 자주 연락하마.]

동복신은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데 만금장주라니...

보치 동적선이 바로 만금장주란 말인가?

능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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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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