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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장

 

                   밀실의 기계인간 (2)

 

 

 

한데 석두공이 현장에서 사라진 직후의 일이다.

스윽!

무너진 연화봉의 단애에 마치 유령같은 인물이 나타났다.

어둠속에서 백의를 날리며 서있는 그는 스무 두세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인이었다.

천상의 선녀를 연상시키게 하는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얼음장보다 싸늘한 한기를 풍기는 그런 여인이었다.

그녀는 연화봉을 내려가고 있는 석두공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본녀가 한발 늦었군. 한데 이곳에서 저런 엄청난 고수를 만날 줄이야! 만만치 않겠어. 직접 겨룬다해도 이길 것같지가 않아! 대체 어디서 저런 고수가 툭 튀어 나왔는지 모르겠군.]

그녀는 석두공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자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잔혼각의 비밀장소로 들어갔다.

스스슥!

그녀의 몸은 유령처럼 바위를 뚫고 들어갔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바위는 그녀의 모습같은 구멍이 뚫리는 것이었다.

석두공에 대해서 만만치 않은 자라고 이야기한 이 여인, 그녀의 무공 또한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가공했다.

 

땅속으로 깊숙히 뚫고 들어간 그녀는 석두공과 소령이 기계인간을 처음 보았던 그곳에 이르렀다.

석문을 뚫고 들어가 석실로 들어갔다.

한데 놀랍게도 기계인간은 여전히 새파란 눈빛을 발하며 꼿꼿이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에는 무너진 천정을 이고 있었다.

여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이것들은 부수지 않았구나.]

그녀는 석실마다 뚫고 들어가 열개의 기계인간을 들고 나왔다.

기계인간들은 불상처럼 앉아 있는데 한곳에 그것들을 모아놓은 그녀가 쌍장을 펴고 공력을 일으켰다.

두둥실,

순간 기계인간들이 가부좌를 튼 채 날아올라 하나하나 밖으로 날아갔다.

여인은 쌍장을 펼친 채 그 뒤를 따라서 날아갔다.

휘이이잉!

단애아래에서 돌연 거대한 새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마중천(魔重天)의 상징이라는 전설적인 영물 묵령신조(墨靈神鳥)였다.

쏴아아아!

열 개의 기계인간과 여인을 태운 묵령신조는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 × ×

 

[흐흐흐...]

금포(錦袍)노인은 음산하게 웃었다.

[고수가... 세 놈의 종보다 더욱 강한 고수들이 속출하고 있단 말이지? 은세정검회(恩世正劍會)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로 들리는군. 세상에 그들 이외에 고수를 키워낼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는가?]

[단연코 없습니다.]

서릿발 같은 표정의 여인이 무릎을 꿇고 대답했다.

그녀는 바로 황산 연화봉에서 묵령신조를 타고 사라진 그 여인이었다.

금포노인이 말했다.

[너는 그 세 놈들이 더욱 날뛰게 해라. 크흐흐흐... 천하를 더욱 어지럽게 해야만 놈들이 나타난다.]

[존명!]

스스스!

여인은 연기처럼 그자리에서 사라졌다.

금포노인은 다시 몸을 비스듬히 눕히며 말했다.

[미사!]

[네 궁주님... ]

[그녀가 아름답지 않느냐?]

미사가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되물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흑봉(黑鳳) 외에 아름답단 말을 들을 수 있는 여자가 또 있느냐?]

금포노인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미사의 눈까풀이 가는 떨림을 보였다.

흑봉...!

그것은 방금 전에 복명한 얼음장처럼 싸늘한 여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녀 때문이었어!)

미사는 속으로 말하고 있었다.

(궁주가 한달에 한번씩은 방사를 금하고 있는 것도 그녀 때문이었어! 오직 그녀를 만나는 그날 만이...!)

미사는 참담한 표정으로 물러앉았다.

흑봉...

그녀는 궁주의 무공을 직접 전수받은 제자이다.

들리는 말로는 그녀의 고강함은 궁주에 필적할 정도라고 했다.

또한 그녀의 아름다움은 미사가 도저히 미치지 못할 바였다.

얼음장처럼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그럴 진데, 만약 그녀가 웃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모든 사람들의 혼을 빼놓을 것이다.

궁주의 마음속에 그녀가 있음을 안 미사가 절망속으로 굴러떨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 ×

 

석두공과 소령은 뇌주반도(雷州半島)에서 배를 탔다.

이제 물길로 삼백리 남짓이면 해남도에 도착하는 것이다.

석두공은 동정호에서 놀았지만 바다는 처음이었다.

그는 손으로 바닷물을 적셔 혀를 대 보았다.

[뭐하는 거예요?]

소령이 물었다.

석두공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바다물이 진짜 짠가 하고 시험해 보는 중이오.]

[차라리 한번 들이켜 보지 그러세요? 그럼 바다물이 얼마나 많은지도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소령이 웃으며 말했다.

[옛날에 황하를 들이켰다는 사람 이야긴 들어보았지만 바다물을 들이켰다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키를 움직이던 사공이 말했다.

소령은 석두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바닷물을 들이킨 사람도 보게 될 거예요. 이사람은 배가 바다보다 더 크거든요.]

[어이쿠! 제발 그렇게 하진 마십시오. 그러면 저는 어디가서 밥벌어 먹습니까?]

사공이 엄살을 부렸다.

[하하하하... ]

[호호호호... ]

석두공과 소령은 배를 잡고 웃었다.

소령의 웃음소리가 방울소리처럼 영롱했다.

 

여름이라 바람이 남쪽에서 불어왔다.

사공은 돛을 내리고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배에는 두 명의 사공이 있었다.

한 사람은 배 주인이었으며 다른 사람은 그에게 고용된 젊은이였다.

두 사람의 물질은 아주 익숙하여 배는 역풍에도 불구하고 남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해가 바다로 떨어지면서 물결이 황금빛으로 출렁거렸다.

석두공은 눈을 지그시 감고 일몰을 바라보았다.

소령이 그의 어깨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며 낮게 말했다.

[금방 어두워지겠죠?]

[해남도도 멀지 않았을 것이오.]

[...]

소령은 그의 어깨에 기댄 채 가만히 있었다.

석두공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해가 가라앉은 곳에서는 마지막 비명처럼 적광이 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소령이 말을 꺼냈다.

[만약에... 만약에 말예요.]

[말해보시오.]

[제가 당신을 속였다면 절 용서하실 수 있겠어요?]

소령은 입술을 꼭 깨물면서 물었다.

석두공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용서할 수 없을 거요. 어쩌면 당신을... 할지도 모르겠소.]

[어떻게 한다구요?]

소령은 흠칫 놀라며 물었다.

석두공은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답하지 않았다.

멀리 남쪽으로 해남도가 구름처럼 수평선 위로 보이기 시작했다.

소령의 눈이 반짝이며 빛을 발했다.

뭇 별들이 해남도의 하늘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바다는 숨을 죽인듯 고요했다.

촤아촤아!

배가 나아가는 소리만 밤바다에 울려퍼지고 해남도는 점점 거대한 모습으로 석두공과 소령의 앞으로 다가왔다.

해안에서 하나둘 불이 보였다. 밤에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어선이었다.

소령이 말했다.

[등불을 꺼요.]

해가 지면서부터 배에는 두개의 등을 달았었다.

헌데 사공은 소령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등불을 껐다.

[동쪽으로 돌아서 내려가요.]

소령은 다시 명령을 내렸고 배는 해남도의 해안선을 따라서 동으로 내려갔다.

 

***

 

해남도는 보도(寶島)라고 불린다.

그만큼 해남도가 모든 것에 있어서 풍족하다는 것이다.

해남도를 동으로 돌아서 섬의 중동부에는 산수가 수려한 야트막한 구릉이 하나 있다.

이곳이 해남도의 명소 중의 하나인 동산령(東山嶺)이다.

석두공과 소령은 동산령을 넘어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논들 사이를 지나 오지산(五指山)의 기슭에 이르렀다.

군데군데 파초(巴草)와 야자(椰子)나무가 푸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석두공이 물었다.

[저 박처럼 생긴 열매는 먹을 수 있소?]

[엿보다 달콤하죠.]

소령이 발로 야자나무를 차면서 말했다.

! 툭툭!

야자열매가 그들의 머리위로 떨어졌다.

소령은 재주를 부려 먼저 하나의 야자를 손으로 받은 위에 또 다른 야자를 받았다.

그녀의 손위에 둥근 야자가 다섯 개나 쌓여 있었다.

!

그녀는 제일 밑에 있는 야자를 석두공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다른 열매가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다시 받쳐들었다.

석두공은 야자를 한번 베어물더니 던져버리며 말했다.

[맛도 없고 단단하기만 하군.]

순간 소령이 야자를 놓아버리며 배를 잡고 깔깔 웃었다.

[호호호호...]

실컷 웃은 그녀는 퉁소를 뽑아 야자의 가운데를 툭 쳤다.

야자열매가 마치 예리한 검에 베인듯 잘렸다.

윗부분이 날아간 푸른 열매 속에는 맑은 물이 찰랑이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군침을 돌게했다.

[마셔보세요.]

소령은 석두공에게 건네주면서 말했다.

석두공이 겸면쩍게 웃으며 받았다.

 

해남도에는 해남검파(海南劍派)가 있다.

해남검파는 한때 중원의 일각을 차지하기도 했던 검의 명문이다.

화산파와 무당파에 비견될 정도로 해남파의 검술은 유명한데 그 해남파의 검술은 모두 오지산에서 나왔다.

오지산은 해남파의 발상지이면서 지금까지 해남파가 존속해오는 곳이기도 했다.

해남도는 비록 섬이기는 하지만 결코 작은 섬이 아니다.

대륙에 속한 섬으로서는 대만(臺灣)을 제외하고는 두번 째로 큰 섬이니 일개 성 만큼 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반은 되는 크기다.

한마디로 말해서 해남도에는 해남검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산도 있고 들도 있으며 밀림도 있는데, 오지산의 자락에는 민간인들에게 점을 쳐주는 작은 산사(山寺)가 있다.

석두공과 소령은 각기 네가지의 글자로 쓰여진 간판이 있는 산사로 올라갔다.

 

<용화사(龍華寺)>

 

절이름은 용화사였지만 간판은 한자로 쓰여진 외에도 회족(回族)의 글자와 묘족(苗族) 및 장족(藏族)의 글자로 쓰여져 있었다.

이곳 해남도에는 민족의 분포가 그처럼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탕탕탕!

소령은 닫혀진 절문을 두드렸다.

[아미타불... ]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중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여기서 용화사가 먼가요?]

소령이 물었다.

석두공은 암호로 구나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다.

용화사의 간판을 보고 들어왔는데 용화사를 묻는다는 것은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실수가 아닌가?

중이 합장하며 말했다.

[문안에 있으니 들어오시죠. 하루밤 유하고 가실 방은 있습니다.]

[아닙니다. 여기가 용화사라면 점을 치고 돌아가겠습니다. 물 한잔만 먹게해주시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소령이 재빨리 대답했다.

중은 따라오라고 말한 후에 앞서들어갔다.

 

차락차락!

차락차락차락!

엿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나무통 속에서 울렸다.

석두공은 속으로 말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밤중에 점을 친다는 것도 별난 짓인데 그것도 엿으로 한다니... )

!

중은 눈을 감고 한참 나무통을 흔들더니 소령 앞에 놓았다.

[뽑으시오. ]

소령은 두손으로 하나씩 뽑았다.

그러자 중이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빨리 도로 꽂으시오. 점은 오직 한번 만 치는 것이오. 그렇게 하면 아무 소용도 없소.]

!

소령은 두개의 엿을 젓가락처럼 나란히 놓으며 말했다.

[명을 받아라!]

순간 중이 넙죽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사부께서 기다리신지 오래입니다.]

[어디에 있소?]

소령의 물음에 중은 대답했고 석두공과 소령은 그 중의 사부라는 자를 식별하는 방법을 전해듣자 마자 몸을 날려 오지산을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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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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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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