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第 三十四 章

 

         엉뚱한 곳에서의 相逢

 

 

 

연화정(蓮花亭),

이곳은 조그마한 연못안에 세워진 정자였다.

잔잔한 아침 여명에 반조되고 있는 호수의 수면은 신비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지금, 이 연화정에는 세사람의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취풍녀이며……

세 사람의 남자는 비슷한 또래의 중년인들이었다.

나이는 사십대 전반으로 보였으며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형제들인지 그 모습이 그 모습 서로를 분간하기 힘들 만큼 닮았다.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고 있었으며 전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잔잔하고 아늑하였다.

그들은 말없이 호수의 수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풀리지 않은 난제가 있는 듯 고심하는 것 처럼보였다.

문득,

취풍녀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대교주(大敎主)의 뜻이 그러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녀의 눈빛은 어두웠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으니……내 말을 들어줄 리가 없겠지……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지……]

[…………!]

[…………!]

또다시 네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때,

유삼중년인 중의 제일 우측에 앉은 사람이 신선을 더욱 깊숙이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삼교주(三敎主)……]

[무엇인가?]

[삼교주께서 말씀하신 그가 그토록 뛰어난 인물입니까?]

그의 말은 부드러웠다.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밀어처럼 달콤했다.

취풍녀은 멀리 떠도는 구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는……내가 본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무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정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그는 요술장이처럼 신비한 사람이다.]

순간,

언뜻 세 사람의 눈에 놀라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정도로……]

가운데의 중년인이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무엇이 그토록 뛰어나단 말입니까? 그의 얼굴입니까? 아니면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신비하다는 것입니까?]

한기가 풀풀 날리는 음성을 뱉어내는 그의 안색은 여전히 부드러워 모순처럼 보였다.

제일 좌측에 앉은 중년인이 취풍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진정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면 그 배후에 대해 왜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그 역시 부드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갈라져서 듣기에도 역겨웠다.

취풍녀가 대답했다.

[물론 조사해 보았다.……하나……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떻게 하는 지 모르지만 만지는 것만으로도 어떤 물건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같이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직접 보신 적이 있습니까?]

[너희들은 물을 술로 술을 물로 만지기만 하여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손으로 만져서 익지않은 포도를 영글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그것은 무공과는 다른 힘이었다. 그런 그의 배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유삼중년인들의 입에서 동시에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결국……대교주께서는 그 일로 거부를 하신 것이로군요……]

우측의 중년인이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신분이 조금 더 확실하다면 대교주께서도 그의 신비한 능력을 고려하여서라도 허락하셨을 텐데……]

[…………!]

[아무튼 대교주의 결정은 내려졌으니……이제 더이상 그에 대해 거론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요.]

좌측의 갈라지는 목소리의 중년인이 말했다.

대교주의 결정……

취풍녀는 무엇을 대교주에게 부탁했기에 기에 그렇게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문득,

[그가 오고 있군……]

취풍녀은 연못에 걸쳐진 교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한 사람의 텁텁한 분위기의 사내 소일초와 그 뒤를 따라서 시비 국향이 오고있었다.

그를 주시하는 유삼중년인들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흘러갔다.

소일초는 도무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같은데

취풍녀가 그렇게 극찬을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없던 것이다.

게다가 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기도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술주정뱅이 같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의혹이 점차 심화되어 갈 때,

소일초는 연화정의 가까이에 이르렀고 국향은 연못가에 기다리고 서 있었다.

순간,

소일초는 불규칙한 걸음으로 연화정으로 들어와 취풍녀의 곁에 주저없이 앉았다.

거동 하나하나가 도무지 교양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으음……]

[음……]

네 사람은 소일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굳어져 버린다.

(얼굴하나로 삼교주를 침상에서 휘어잡은 모양이로군……쯧쯧 ……삼교주가 그저 행동이 방정치 못해서……)

(대체 이자의 어디에 신비가 있단 말인가? 철부지 같은 삼교주……)

문득, 그들의 얼굴에 은은히 살기가 떠오른다.

소일초는 그 살기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못 느낀 것인지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까지 한다.

[객이 있는 줄 몰랐는데 무슨 일로 불렀나?]

대뜸 하대로 취풍녀에게 묻는 말에 중년인들의 살기가 더욱 짙게 떠오른다.

하나, 취풍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공대한다.

[당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이에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데……]

취풍녀은 눈짓으로 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 분을 소개하지요……]

[나는 무적검이다.]

세 중년인의 눈가에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별볼일 없을 것 같은 작자가 이름은 거창하게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무림의 삼류잡배였군……)

우측의 중년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을 소개했다.

[반갑소, 우리는 은검삼형제요……]

그는 소일초를 별볼일 없는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간단히 자기들의 밝혔다.

소일초는 시선을 취풍녀에게 돌렸다.

[한데……무슨 일이야?]

[은검삼형제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취풍녀은 우울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겨우 이들이?]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은검삼형제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가소롭기 그지없다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진짜? 나를 죽인다고?]

그러자,

은검삼형제가 일제히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렇다! 대교주의 지엄하신 명이다.]

[무슨 거지발싸개같은 소리야? 대교주는 무슨 놈의 대교주……]

도무지 아무것도 안중에 두지 않고 하는 말에 은검삼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허풍도 경계가 없이 큰 것같았기 때문이다.

[…………!]

[내가 왜 죽어야 하는 지나 빨리 말해……]

소일초는 시선을 취풍녀의 돌린 뒷머리에 고정시키며 말했다.

[평생같이 살자고? 미친년! 하는 대로 나뒀더니 술 뺏고 몸 뺏고 이제 목숨까지 뺏으려고 해?]

소일초는 진짜 화가 나있었다.

주소아곁을 떠나 있는 것으로만도 괴로워 미칠 지경인데 잘해줘도 있을까 말까한 판에 죽이겠다니……

소일초의 물음에 취풍녀는 어쩔 줄 모르면서 대답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과의 혼인을 승락해달라고 대교주에게 간청한 저예요.……한데……]

호수의 수면은 이때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데……대교주는 당신의 정체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이렇게 처형대를 보냈어요.]

[혼인은 무슨 혼인, 내 마누라가 알면 가만있을 줄 알고? 누구 맘대로 혼인이야 혼인이……]

그녀의 말을 듣고 소일초는 더욱 길길이 뛰었다.

혹시라도 주소아가 들을까 겁날 말이었다.

취풍녀는 그의 매정한 말에 망연한 눈초리로 보며 가슴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던가요? 우리 사이에 사랑이나 애정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군요……당신은 나를 조금도 생각지 않았어요……내 몸이 이미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인가요? 그래서 한 번도 범하려 하지 않았던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소일초에 대한 깊은 정이 배어있었다.

그녀는 난간을 잡으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침 여명을 타고 흐르는 구름이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보였다.

소일초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호수의 연꽃을 보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정을 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기울리 도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취풍녀은 돌아보며 나직이 한숨을 토한다.

[대교주의 결정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어요……]

소일초는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 정도 그 정도에 불과 했어, 내 마누라라면 결코 그렇진 않을 거야. 차라리 함께 죽길 원했을 거라고.]

빙글……

그의 몸이 은검삼형제를 향해 돌려진다.

그러고 허공을 향해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도 어쩔 수 없게 된 거야. 보고 있었으니 잘 알고 있겠지? 이제 네 부탁은 끝난 거야.]

은검삼형제와 눈물을 훔치던 취풍녀가 어리둥절했다.

[누구에게 한 말이오?]

은검삼형제 중 부드러운 목소리의 맏이가 살기를 억누르면서 물었다.

[하늘! 나는 하늘에서 왔거든.]

소일초는 고개를 내려서 그를 보며 짧게 대답했다.

순간,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나요? 아……아마 그럴 거예요. 당신의 모습, 당신의 신비한 능력……인간의 것이 아니었어요.]

취풍녀가 환상에 빠진 듯이 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취풍녀는 오랫동안 살인을 저지르며 무림에 횡행했었다.

그녀의 무공은 고강했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내에게 안기고 했지만 마음은 동심이 있었다.

소일초의 신비한 능력, 물론 백송균화에서 얻은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었지만,

그리고 그의 천상의 선인 같은 용모에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하대하는 그 자연스런 태도로 말미암아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은 꿈꾸는 것 같았다.

몸에 서려있던 고독도 퇴폐적인 분위기도 일시에 걷히는 것 같았다.

[하늘……그곳은 이 무림과는 다르겠지요?]

은검삼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다르지, 다르고말고. 당신같은 사람은 결코 없는 곳이지……]

소일초는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그렇겠죠……저 같은 죄많은 사람이 어떻게 그곳으로 갈 수 있겠어요?]

취풍녀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많은 비애와 고독을 가슴에 품었기에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말도 아닌 소리! 삼교주, 진정하시오. 이 자의 기만에 넘어가지 마시오.]

은검삼형제의 세째가 역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지. 너희들은 나를 죽이고 나는 너희들을 죽이는……]

말을 하면서,

소일초가 몸을 곧게 세우고 그들을 노려본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고 어떤 기도로 풍기지 않으며 단지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허풍장이! 대교주의 명은 곧 하늘의 명이다. 삼교주를 기만한 죄까지 물어서 죽여주마.]

은검삼형제의 둘째인 차가운 목소리가 자르듯이 내뱉었다.

 

창---촤창-----창-----!

 

그들의 어깨에서 은검이 뽑혀져 삼면에서 그를 노리고 공격해 왔다.

그들의 몸은 은검에서 발산되는 검기로 완전히 뒤덮혔으며 가까이 있던 소일초의 몸을 은막으로 뒤집어 씌웠다.

파아아아--------!

소일초의 검미가 꿈틀했다.

(은마환상검(銀魔幻想劍), 역시……)

그순간,

[죽이면 안돼……]

어디선가 들려온 전음,

아아……

그토록 보고싶었던 주소아의 음성이아닌가?

은검은 자기를 덮어씌우고 있는데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은검이 그의 전신을 할퀴듯이 꿰뚫고 지나갔다.

[악!]

취풍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은검삼형제는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검이 안개를 벤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일초의 몸은 그자리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당신은 정말 하늘에서 왔군요……내 그럴 줄 알았어요.]

취풍녀가 기쁘하며 소일초의 가슴으로 달려 들었다.

그러나 소일초의 몸은 미끄러지듯 슬쩍 그녀를 피했다.

은검삼형제는 멍청히 검을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정말 삼교주의 말대로 하늘에서 오기라도 한 천인(天人)이란 말인가?

그들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일초의 눈은 연못가에 여전히 서있는 국향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국향은 생긋 웃어보이더니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기쁜 표정으로 소일초는 취풍녀와 은검삼형제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소일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살수를 펼쳤는데 기쁘하며 웃고 있다니……

소일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죽였으니 이젠 내가 죽일 차롄데……]

그의 미소에 오히려 은검삼형제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검에 걸리지 않는 인간……

[…………!]

[운이 좋았어. 목숨은 살려주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우리 마누라한테서……]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에 둔중한 검이 들려있었다.

붉은 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검은 어디에서 나와 그의 손에 쥐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의 손에 있었던 것처럼……

은검삼형제와 취풍녀는 그 하나에 대경실색했다.

순간,

은은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소일초의 마황검은 순간적으로 일만개로 분리되어 은검삼형제를 향해 폭사되었다.

으악-----!

윽---윽--!

완연히 구분되는 세 마디의 비명과 함께 은검삼형제의 팔이 하나 씩 잘라져 연못에 떨어졌다.

소일초의 손 어디에도 다시 마황검은 보이지 않았다.

은검삼형제는 잘려진 팔을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넋이 빠져 있었다.

[으……대체 그런 무공이……정말 천인이란 말인가?]

[패배를……패배를 몰랐는데……]

그들은 아직도 소일초의 믿을 수 없는 경이의 무공에 불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취풍녀는 소일초를 완전히 천인으로 믿어버렸다.

천하의 십이대 고수 중 하나로 알려진 그녀로서도 그런 무공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이 밝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어쩌면 이 분이야말로 나의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분 일지도 몰라……나를 이 세상에서 구제해 주시기 위해……)

취풍녀의 잃어버린 행복……

이순간 그녀는 소일초를 천신과 같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때,

소일초가 은검삼형제를 주시하며 여태까지와는 달리 고르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한다.

[전하라……대교주라는 자에게……]

…………

[내가 직접 찾아가서 따지겠다고.]

은검삼형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수니 뭐니 하는 것이 이 인간같지 않은 인간에게는 말짱 헛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일초는 기분이 유쾌해져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그런 그의 모습은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고

네 사람은 그런 그의 모습에서 범할 수 없는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었으니……

마침내 그들 은검삼형제는 취풍녀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힌 후 몸을 날려 아득히 사라져 갔다.

소일초는 휘적휘적 정자 밖으로 걸어나갔다.

틀리없이 어딘가에서 주소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절로 몸에서 신바람이 나는 듯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는 취풍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자기가 보는 것은 어디선가 한천이기도 다 볼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고 생각할 것이 있어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다.

그는 그냥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득,

취풍녀가 교각을 지나가는 그를 뒤에서 안았다.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이 소일초의 등에 와 닿았고……

그녀 특유의 향기를 담은 입김이 소일초의 귓전에 전해진다.

[당신을……진정으로 사랑해요. 이 한 몸 바쳐서 사랑할 수 있어요.]

[놔! 지금 나는 가봐야 돼……귀찮게 하지마.]

[그렇게 말하지 마셔요. 우리는 이미 몸을……그리고 마음을 주고 받은 사이인데……]

[나는 그런 적없어 빨리 가봐야 돼……]

소일초는 달라붙는 그녀에게 짜증을 내었다.

어딘가에 주소아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안돼요. 그렇다 해도 안돼요. 나는 당신을 놓칠 수 없어요. 당신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에요.]

소일초는 급한 마음에 그대로 걸음을 옮기고 취풍녀는 아예 질질 끌려간다.

그녀가 뭐라고 하든 그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다가는 어디까지 그녀를 달고 갈지 알 수 없었다.

소일초가 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 희망이 돼 줄테니까 빨리 손이나 풀어.]

[떠나버리게요?]

[이러면 정말로 달아나버릴 거야. 빨리 풀어.]

취풍녀는 그가 진짜로 가려고 한다면 자기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키지 않지만 그를 감았던 팔을 풀면서 신신당부한다.

[금방 오셔야 해요. 꼭……당신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죠?]

[그래 알았어.]

소일초의 몸은 벌써 앞으로로 쭉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한데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거예요?]

[우리 마누라한테……]

소일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헌데 소일초가 달려가는 곳은 뜻밖에도 취풍녀의 침실이었다.

소일초를 익히 아는 사람들이라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취풍녀의 침전에 있는 시비들의 방 앞에 그가 찾던 국향이 서있었다.

다짜고짜 소일초는 그녀를 덥썩 안았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갑작스럽게 소일초의 품에 꽉 안겨버린 국향은 얼굴을 붉히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밤마다 주인인 취풍녀가 데리고 자는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가 미친 듯이 사랑을 고백하며 달려든 것이다.

그녀는 황홀한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저도 당신을 생각했어요……]

순간,

소일초가 그녀를 품에서 떼면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아니, 너는 너잖아!]

그녀를 확 밀치고 다시 자기의 침전으로 달려갔다.

국향은 황당해져 있었다.

갑자기 달려와 사랑을 고백하던 왕자가 밀쳐버리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쳇! 내 무슨 일인가 싶었어. 헛물만 들이켰잖아.]

소일초는 그의 침전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밀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자기가 마시다가 두고 간 술독 앞에서 등을 보이며 잔을 기울이는 또 한 명의 국향이 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려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가만있어. 술 엎질러.]

그러나 소일초는 무시하고 그녀를 번쩍 들어서 침상에 던졌다.

그리고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어떻게 왔어? 언제 왔어? 왜 온 거야?]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예 없는 듯 질문하기에 바빴다.

[바보! 내가 어떻게 너 혼자만 보낼 수 있었겠어?]

소일초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래, 너 없이는 도무지 못살겠어. 밥도 넘어가지 않더라구……]

국향, 아니 주소아는 역근천골공을 풀었다.

환하게 주변을 밝힐 듯한 아름다운 얼굴이 소일초의 얼굴 밑에 있었다.

주소아는 소일초를 먼저 보낸 후 멀리서 그를 따라왔다.

소일초가 하는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습을 수십가지로 바꿔가며 그의 근처에서 지켜보았는데,

멍청한 소일초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소일초가 취풍녀에게 옷을 벗기우고 깔렸을 땐 화가 나서 당장에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세를 생각하여 꾹 참았었다.

그러면서도 소일초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해 하며 숨어서 지켜보았었다.

만약 소일초가 정말로 취풍녀와 늘 자기에게 원하던 깊은 관계를 맺어 버린다면 다시는 소일초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일초가 기특하게도 자신이 늘 사용하곤 하던 방법을 써서 취풍녀의 마수를 피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재미도 있었지만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도 때로는 소일초가 저돌적으로 침입하고 할 때는 역근천골공으로 문을 좁히거나 아예 폐쇄해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밤마다 같이 보내면서 마지막 처녀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소일초는 이곳에 와서도 취풍녀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자기의 몸을 지켜왔다.

며칠 동안 지켜본 그녀는 그 색마가 그처럼 자기를 생각하여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기쁘고도 자랑스러워 상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다시 정통마교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과 대교주, 그리고 취풍녀가 삼교주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자 자기의 존재를 알렸던 것이다.

[취풍녀가 너에게 보통 빠진 것이 아니던데……]

[그런말 마. 나는 아무여자도 필요없어 너만 있으면 돼. 이젠 다른 여자는 보기도 싫어.]

[그럼 정천수호군주 왕혜려에게 했던 말은 뭐야?]

[그건……정말 장난이었어. 진짜야……]

소일초는 가슴이 뜨끔하면서 급히 변명했다.

왕혜려에게 묘한 암시를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주소아는 귀신같이 그것도 놓치지 않고 들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잘한 것이 훨씬 많으니까 아무말 않겠어. 하지만 다음에 다시 그런 수작을 다른 여자한테 한다면 각오해야해.]

[맹세할게……]

 

아침부터 두 사람은 알몸이 되어 침상에 들어가 있었다.

[취풍녀하고 음……기분이 어땠어?]

[아무 생각 없었어. 나도 고역이었다구. 도무지 네가 머리를 꽉 채우는 데 취풍녀에게 무슨 감흥이 나겠어? 고기 먹던 사자(獅子)는 아무리 맛있는 풀이라도 고개도 돌리지 않는 거라구……]

[정말?]

[그럼!]

소일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그만 우리 술이나 마시자.]

[안돼! 좀더 있어야 해. 그동안 얼마나 쌓인 게 많은데……]

주소아가 픽 웃으며 말한다.

[네가 쌓일 게 어디 있니? 늘 장난뿐인데, 그저 주워들은 말은 있어가지고……]

[아무튼 안돼, 좀 더 있어야 해!]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