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第 十九 章

 

         百刃莊의 哭聲

 

 

 

손(手),

떨리는 손이다.

더할 나위없이 희고 아름다왔으며……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 이 손에는 짤막한 서찰(書札)이 들려있는데……

이 손의 임자는 조예진였다.

굵은 황촉불이 사방을 밝히는 이곳은,

백인장 중에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도왕 소선풍의 침실이다.

그녀의 앞에는,

영문을 모르고 그녀의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도왕 소선풍이 침상에 누워있다.

한 순간,

서찰을 바라보던 조예진의 동공에,

애써 참으려하던 고통스러운 눈물이 솟아났다.

그리고 뚝뚝……

두 방울의 눈물이 서찰에 떨어졌다.

[여보……무슨 일이오?]

아내의 눈물을 보고 불길함을 느낀 소선풍이 고개만을 움직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서찰,

서찰을 보낸 사람은 주소아였다.

그리고,

그 서찰의 내용은 바로 소일초가 삼성무림청의 수뇌부인 삼수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눈……

조예진의 그 아름다운 두 눈은 솟은 눈물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소아가 보낸 것이에요.]

그리고,

그 눈물로 가득한 시선으로 서찰을 소선풍에게 읽어 주었다.

 

<고모부!

이제는 말씀도 잘 하신다고요? 고모도 잘 계시겠지요?

일초와 나도 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초가 삼수에게 직접 도전을 했답니다.

일초는 자신있으니까 아무 염려 마시라고 하는 군요.

제가 말렸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 말로는 검마의 제자는 일초무적이라나요?

빨리 나으셔요.

주소아 올림 >

 

조예진의 두 눈에 동글동글 솟아 오는 눈물은 닦을 틈도 없이 두 볼을 타고 흐르고……

소선풍은 아무말 없이 묵묵히 있다.

조예진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터뜨리는 오열은 더욱 짙어지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서찰의 위를 힘겹게 움직인다.

그리고,

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조예진을 부른다.

[여보……삼수의 무공이 가공할 것이기는 하지만 일초역시 그다지 뒤질 것은 없지 않소? 일초가 검마의 진전을 완전히 이었다면 승산도 점칠 수 있고……]

[흑흑……우리 일초는 아직 어린 말썽꾸러기 라구요.흑…… 어떻게 진짜로 사형들 같은 고수들과 싸울수 있겠어요?흑흑……]

흐느끼면서 조예진이 말했다.

[어쨌든, 백인장을 나가 삼성무림청을 상대한 다고 할 때부터 예정되어진 일이 아니겠소?]

[누가……흑…… 직접 그들과 싸우랬나요? 단지……삼성무림청이 정말 사형들이 만든 것인가만 ……흑흑……확인해 주길 바랐죠……]

조예진의 말이 모순됨을 그녀도 알고 있다.

소일초가 무림에서 승승장구할 때는 아무 걱정도 없다가 갑자기 진짜 고수인 그녀의 사형들과 결투하기로 했다니까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가슴은 부풀어 터질 것처럼 안타까운 연민에 가슴이 아렸다.

이 백인장에 오직 소선풍만 바라보고 들어와서……

그의 전처였던 이주용이 낳은 두 살 박이 괴물같은 아기……

온갖 저질을 다 해대는 그 천하의 말썽꾸러기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던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그녀였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서 길렀는데……

이제는 자기가 낳은 아기나 조금도 다름없는 일초인데,

그 아들이 수 천리 타향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직접 계획하고 있다.

그의 적이 얼마나 고강한 고수인지도 모르면서 겁없이 직접 겨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위가 모두 잠든 것 같은 깊은 밤,

소선풍은 시선을 천정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도대체

조예진은 지금까지 주소아의 서찰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서른 번……

적어도 서른 번은 읽었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터뜨린 눈물과 오열은 또 얼마나 했던가?

그러나 지금도……

그녀는 또다시 서찰을 읽기 시작했고,

새롭게 솟구치는 눈물로 오열한다.

(안돼……일초는 내 아들이야……! 비록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났지만 분명히 내 아들이야. 일초도 자기 생모보다는 나를 훨씬 더 좋아 할 거야. 내가 결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돌연,

서찰을 읽다 말고 조예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와락 서찰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서찰이 소일초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침상에 누워있는 남편 소선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절규처럼 터지는 처절한 음성,

[제가 가겠어요……차라리 제가 사형들과 싸우겠어요……]

하나,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사형들의 상대가 될 수 없어……삼년 전에 그들은 두 사람이 합공을 해서야 나를 이길 수 있었지……당시에 어린도만 손에 있었어도 내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저 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이대로 일초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으란 말이에요?]

그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태도로 소선풍에게 반박했다.

[원로십팔도객을 모두 동원해. 정뇌(井牢) 따위는 팽개쳐 버리라구. 당신 사형들의 무공은 그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었어.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 지 짐작할 수 도 없어.]

소선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고마와요. 그리고 미안해요……당신한테 화를 내서……]

조예진이 소선풍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아들인걸……오히려 내가 고맙지……두 달, 두 달 만 더있어도 내가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원로십팔도객 중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 × ×

 

이튿날 아침,

백인장은 발칵 뒤집혀 버렸다.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미친 듯이 소리쳐 소선풍을 부르면서 백영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소선풍! 소선풍……이 미친 작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놈아……]

어슴푸레한 가운 백영이 소리치며 백인장을 날아들자,

파수보던 젊은 도객이 깜짝 놀라며 가로막았으나 일검에 튕겨 나가 떨어지고…

잇따라 연무장에서 새벽 연무를 하던 도객들이 고함치면서 백영을 막았으나,

이 검을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이다!]

[적이다!]

휘이익------휘이익-------

길고 날카로운 휘파람 경보와 아우성으로 백인장은 떠들썩해졌다.

[소선풍! 이 나쁜 놈……어디 있느냐……당장 기나와라……]

마구 욕을 해대며 검을 떨쳐내는 그 백영은 얼마나 빠른지 모습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때,

[모두 손을 멈춰라!]

우렁찬 고함이 울려퍼지며 두 노인이 연무장에 내려섰다.

[좌우봉공이 주모(主母)님을 뵙습니다.]

[흥, 수혼도객, 무심군자!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 구나. 잔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소선풍을 나오라해라.]

백영이 멈추어 서자 그때서야 다른 도객들도 백영을 알아보았다.

바로,

소선풍의 전처인 이주용(李珠蓉)이었던 것이다.

[주모를 뵙습니다.]

일제히 우렁찬 소리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시끄럽다. 당장 소선풍, 그 파름치한 놈이나 나오라고 해라.]

[주군께서는 나오실 수 없습니다. 자중하십시오 주모……]

수혼도객은 음성이 침중하게 흘렀다.

[뭐라고? 자식은 죽도록 밖에 내보내 놓고 아직도 여우같은 계집이나 끼고 누웠단 말이냐?]

이주용이 서릿발처럼 얼굴을 굳히며 거친 음성을 칼날처럼 내뱉었다.

[주모!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수혼도객이 고개를 바로 들면서 소선풍을 욕하는 이주용을 쳐다보았다.

[수혼도객! 네가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간덩이가 부었구나. 에잇!]

이주용의 검이 수혼도객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윽!]

그러나 수혼도객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심군자와 다른 도객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이주용이 검을 뽑자 수혼도객의 오른쪽 가슴에서 피가 샘솟듯이 쏟아지며 그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좋다. 소선풍이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비켜라……]

[못들어가십니다. 주모.]

무심군자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고,

다른 도객들도 일제히 도를 뽑아들고 그녀를 포위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이것들이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 좋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

[…………]

[네 놈들을 몽땅 죽이면 설마 소선풍이 기나오지 않고는 못배기겠지……]

[…………]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소선풍과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이주용,

그녀는 강북의 제일 세력인 청옥검궁의 공주(公主)다.

그녀의 검 역시 적수를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이야압------!

 

날카로운 기합을 지르면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심군자를 찔러갔다.

무심군자의 소매속에서 파란 도가 튀어나오며 그녀의 검을 가로막는 순간,

이주용은 벌써 몸을 돌려 그 옆의 젊은 도객을 찌르고 있었다.

으악------!

젊은 도객이 그녀의 빠른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검을 맞으며 쓰러졌다.

무심군자가 재빨리 이주용을 공격해 갔으나 그녀는 그와 마주치지 않고 다른 도객을 공격하면서 양떼속의 이리처럼 날뛰었다.

여기저기서 젊은 도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무심군자는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른 채 이주용을 쫓아다녔다.

이주용은 백인장의 도법들의 대부분 초식들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다.

그야말로 백인장 도객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주모인지라 마음대로 공격도 펴지 못하는 백인장의 도객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때,

[멈춰라!]

나지막 하면서도 깊은 공력이 깃든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아리쳤다.

조예진이었다.

[언니께서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말을 하면서 연무장에 쓰러져 나뒹구는 도객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흥, 소선풍. 그 매정한 놈은 어디있는가?]

[꼭……만나보시겠습니까?]

조예진이 손짓을 하여 도객들을 물러가게 하면서 주저하듯이 말했다.

[나는 오늘 그 작자와 사생결단을 내려왔다.]

조예진은 그녀를 판히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 그렇다면 따라오십시오.]

이주용은 검을 공중으로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조예진을 따라 걸음을 옮겼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결연한 빛이 어려 있었다.

철컥-----!

검은 아슬아슬하게 검집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고……

연무장은 부상자들을 메고 가는 도객들로 부산해졌다.

 

× × ×

 

소선풍의 침실 앞에서,

[여보! 이(李)언니께서 오셨어요.]

조예진이 안으로 전갈했다.

[비키게. 바로 들어가겠네……]

차갑게 말하며 이주용이 문을 밀쳤다.

창-------!

그녀의 청강검은 어느새 손에 쥐어졌고,

[소선풍! 나와 사생결단을 내자.]

흉악하게 소리치며 침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소선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흥, 상당히 게을러 졌군. 아직도 일어나지 않다니……]

쏴악-----!

침상의 휘장이 그녀의 일검에 베어져 나갔다.

이주용의 청강검이 누워있는 소선풍의 목을 겨누었다.

[소선풍! 일어나라. 나 따위는 누워서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냐?]

[부인, 오랬만이요.]

소선풍의 목소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부드럽게 울려나왔다.

[닥쳐라! 누가 네 부인이란 말이냐?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찌르겠다.]

서릿발 처럼 차가운 눈빛을 쏘아내며 이주용이 소리쳤다.

[나는……나는…… 나흘 밤낯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네놈을 죽이겠다는 심정하나로……어떻게……어떻게! 하나뿐인 어린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 편안히 누워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녀의 눈에서는 주루루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할 수 있다. 네가 열 처(妻)를 거느리든 백 첩(妾)을 거느리든 상관하지 않겠다.……그러나, 어떻게 하나 뿐인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누가 삼성무림청의 수뇌가 수 만명을 쳐죽였던 사수(四手)라는 걸 모를 줄아느냐? 이놈아……]

그녀의 마지막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소선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천정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인한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할 말을 다했는데……네놈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대로 죽여주마.]

이주용은 실성한 듯이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언니! 그분은 삼 년 전부터 일어날 수 없었어요.]

조예진 역시 쌍장을 치켜올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순간,

[뭐? 뭐라고?]

[그분은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몸이라구요.]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는 겨우 말했다.

소선풍의 두 눈에도 마침내 구슬같은 눈물이 뚜르르 굴러내리고……

이주용은 넋을 잃고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다.

[천하에……누가……누가……이 사람을……이길 수……있단 말인가? 그토록 강한 사람을?]

목소리가 덜덜떨려 나왔다.

이주용의 눈이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정말……어떻게 그럴 수가?]

누구도 대답이 없다.

[아니라고……아니라고 말해요. 벌떡 일어나 보란 말이에요. 벌떡 일어나서 옛날처럼 못된 계집이라고 뺨이라도 쳐보란 말이에요!]

그녀는 소선풍의 목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한순간,

어린 마음에 다른 여자를 맞이하겠다는데 화가나서 집을 나간 그녀였지만,

어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 않았겠는가?

야속하고 무정하여 원망한 날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이지만,

한 시도 잊을 수 없었던 남편이고 아들이었다.

너무도 강하여 절대로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남편이 전신불구가 되어 병상이나 지키고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지금,

소선풍의 침실 안팎에는 때아닌 울음소리는 가득찼다.

소선풍을 염려하여 원로십팔도객들과 백인장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백인도객이 일제히 연락을 받는 즉시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의 비참한 신세가, 울부짖는 주모들……

울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아예 목을 놓아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인장의 모든 식구들이 이 소리를 듣고 소선풍이 사망하기라도 한 줄 알고 일제히 땅을 치고 통곡하여 백인장은,

울부짖는 곡성으로 아무 말도 주고 받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떠났던 큰 주모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자 곡성이 터졌으니 틀림없이 소선풍이 죽었다고 단정지은 것인데……

한 두 사람, 앞에 왔던 사람들로 부터 사실을 전해 듣고 다른 사람에게 입에서 입으로 사실이 모두 전해지자,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던 곡성은 스르르 잦아지고……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싶어 숙스러워 하면서 슬금슬금 자기들 처소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생! 동생이 말해보게. 대체 누가 이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눈물을 씻어내며 이주용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훌쩍! 다 저 때문이랍니다. 제가 박복해서…… 훌쩍…… 그분을 다치게 한 것입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그때,

[누구 탓도 아니야. 내 몸을 부수어 놓은 것은 바로 자네가 말한 삼수고…… 다 내 무공이 모자란 때문이지……]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소선풍의 말이 흘러나왔다.

 

× × ×

 

백인장에서 피가 튀고 눈물이 쏟아지고 급기야 응어리졌던 한(恨)이 풀리고 있는 이 아침,

그 커다란 말썽의 원인이었던 소일초와 주소아는 서안(西安)에서 객점을 찾고 있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사람보다 멋진 용모와 훤칠한 키의 무적검으로 변신한 소일초,

그리고, 소일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면사를 쓰게 됐으나,

그 몸 맵시만으로도 천하 사내들의 넋을 빼버릴 것같은 미녀인 주소아,

지난밤에도 몇 번이고 다듬고 다듬어 창출한 그녀의 최고 걸작이 지금의 몸매였다.

 

<풍운루(風雲樓)>

 

서안의 대로변에 자리한 거대한 객점(客店),

바로 이 객점의 문을 밀치고 막 그들이 들어서는 순간,

시선!

수십 쌍의 시선이 일제히 소일초의 얼굴에 꽂혔다.

[오……!]

[아름다운 젊은이……]

[천상(天上)의 선인(仙人)같지 않은가?]

객점에서 술이나 음식을 들고 있던 객손들은 아예 두 눈이 부신 듯 치켜뜬 눈을 도대체 거둘 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다시 경악으로 부풀고 또 다른 탄성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아……!]

[저 여인의 자태……]

[넋……넋이 빨려드는군……!]

[오오……저런……!]

한데 이때였다.

돌연,

비틀비틀……

경악으로 굳은 객손들의 사이를 뚫고 갈지자걸음을 바람처럼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움직였다 싶을 순간 주소아의 곁에 이르러 있더니……

[이리와……빌어먹을……아무리 둔갑해도 너희들인 줄 알고 있다고……이 무슨 꼴인가……제기랄……]

확!

술기운을 풍겨내며 소일초와 주소아를 이끌고 가는 사람,

홍건개……

개방 일천 년 사상 가장 뛰어난 기재(奇才)인 바로 그였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변신한 자기들의 모습을 아무도 알아보리라 생각지 못했다.

한데,

홍건개가 대뜸 알아차리자 내심 크게 놀랐다.

벌컥벌컥……

이어,

비틀비틀……

객석을 누비던 홍건개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하나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턱!

[자……한 잔 받아……]

순간,

[엇……저런……!]

[저 거지는 누구야……!]

객석의 손님들은 이 광경이 흥미진진한 듯 숨소리마저 죽이며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데?

이것은 또 무슨 기변인가?

무어라 화를 낼 줄 알았던 저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는 아무 말 않고 주는 술을 받아서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것이 아닌가?

(별일……)

(별……희안한 일도 다 있군……!)

[그 잔은 본 홍건개가 타인(他人)에게 주는 최초의 술……제기랄……운도 좋군……!]

홍건개,

이 개방 천 년의 기재는 오늘 무슨 일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술을 권하는가?

[…………!]

[술이란 말이야……마시면 마실수록 느는 거라구……그러니 앞으로 영웅행세를 하자면 남 부끄럽지 않게 술 실력을 키워야 한다구……]

[…………!]

[어이 친구………빌어먹을 무슨 표정이 그래……아름다운 부인을 얻었으면 기뻐해야 할 게 아냐……우라질……]

소일초의 표정은 더욱 어이없게 변했다.

술잔을 손에 쥐자 주소아가 한 잔 가득 부어주었다.

[아무튼 좋아, 이 홍건개가 염려해서 하는 말인데……화산 옥녀봉의 약속은 취소해 버려……]

[…………]

[어린 네가……빌어먹을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

이때,

어이없는 표정이로 술을 들이키던 소일초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이어, 술잔 가득히 술을 부어 주소아에게 건네주며,

[너는 남의 일에 무조건 간섭하는 악취미가 있군……]

순간, 홍건개의 두 눈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벌컥벌컥……

[끄윽……빌어먹을……저놈의 고집……제기랄……제기랄……]

[그리고……우리를 어떻게 알아 보았는지는 묻지 않게다.그러나……]

벌컥벌컥……

[우라질……빌어먹을……]

[나의 일에 이번에도 귀찮게 간섭하고 나선 다면, 먼저 네놈의 목을 베겠다.]

벌떡,

소일초는 몸을 일으켰다.

[…가자……!]

순간, 주소아는 손에든 잔을 재빨리 비우고 소일초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벌컥벌컥……

[바보……끄윽……멍청……이 같은 자식……!]

소일초의 귀에 꽂히는 홍건개의 음성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자비감(自卑感)이 느껴졌다.

[미친 놈!]

순간, 홍건개의 몸이 격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타깝게 터지는 전음,

[충고한다……화산에 가게 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내가 건방진 애송이 네가 좋아서 이런 줄 아느냐? 다 네 녀석의 약혼녀라는 주소저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순간, 주소아와 함께 객점을 나서던 소일초의 얼굴에 무서운 기색이 피어났다.

그의 손이 어느새 백의장삼 속의 철검을 거머잡는데,

주소아가 눈치를 채고 그의 소매를 잡아서 저지시킨다.

[마지막 경고다……다시는 우리들 앞에 보이기만 해도 죽여버리겠다.]

차가운 음성이 전음으로 홍건개의 귓속을 파고들고……

홍건개는 목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닦아내고 있었다.

귀신도 곡할 솜씨로 소일초가 수정검우를 발출하여 그의 목에 상처만 낸 것이었다.

객점에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보면서 홍건개는 몸을 떨었다.

(죽이려는 마음만 있었으면……죽고도 남았다. 저 꼬마의 무공은 이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다……)

홍건개는 주소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꿈결처럼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