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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四十四 章

 

           주소아의 一招劍功

 

 

 

한천이기,

원천기는 한천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앞 오장 정도의 거리에는 소일초가 서있으며 그 뒤에 조금 떨어져서 주소아가 서있다.

살기는 팽배해 있었고 앞에선 소일초보다 주소아가 더욱 긴장해 있었다.

순간,

원천기의 뒤에 서있던 한천녀가 회오리처럼 돌면서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원천기의 머리위로 서서히 내려왔다.

원천기의 두 손이 한천녀의 두 발을 받쳐 든 순간,

고오오오-------

그들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는 듯 하더니 한 마리 묵룡이 되었다.

바로,

그들이 천하제일의 무공이라고 자부하는 등천마룡(登天魔龍)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합격하여 펼쳐낸 등천마룡……

이는 한천녀와 원천기가 따로따로 펼쳐 보일 때와는 전혀 달라보였다.

사방 이십 장을 뒤덮는 거대한 묵룡(墨龍),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칠십이기개들이 자신의 꼭두각시인 정통마교주를 최후의 순간에 죽이기 위해 만든 비장의 무공이 바로 이것이다.

강기로 뭉쳐진 묵룡,

이것을 막아낼 수 있는 무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묵룡은 소일초는 물론 주소아까지 휘감아 갔다.

주소아의 안색이 변하며 소일초의 옆에가 섰다.

그러나,

소일초는 그녀의 어깨를 누르며 앉으라는 신호를 했다.

갈대와 광통거의 물결마저 묵룡의 위세에 흔들리고 있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순간,

소일초의 오른손이 다가오는 묵룡의 거대한 머리를 향해 죽 뻗어졌다.

뻗어짐과 동시에 그의 손에는 환상처럼 마황검이 치솟았다.

사부인 검마를 무적의 검객으로 만들었던 검공,

오직 일초로서 모든 무공을 파괴하고 적을 죽이는 공포의 검공이 펼쳐졌다.

마황검의 끝이 작은 원을 그리며 묵룡의 머리를 찔러갔다.

그 검의 끝에서 형성되는 기류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감아버릴 듯 하던 묵룡을 오히려 뒤집어 씌워버렸다.

그물 속에 갇힌 듯 묵룡은 발버둥 치고 소일초의 검은 묵룡을 가두고 있었다.

일초검공은 검으로서 공간을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검을 사용하는 수법은 한가지로 언제나 동일하지만, 그 똑같은 자세 속에 들어가는 요결에 따라서 수 많은 조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지금 소일초의 검은 묵룡이 움직일 공간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강기로 형성된 묵룡일지라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리고 강기로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이었다면 모두 가루가 되어서 흩어져 버렸을 것이다.

묵룡이 순간적으로 소일초의 검에 의해 제압되어버리자 한천이기는 경악했다.

자신들의 몸에서 일어난 묵룡은 자신들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소일초의 검을 쫓아 이리저리 춤을 출 뿐이다.

소일초가 검으로 한천이기를 가리켰다.

순간 묵룡이 어지럽게 비틀리면서 한천이기에게로 날아갔다.

[헉!]

[헉!]

한천이기는 헛바람을 삼키며 전력을 다해 묵룡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통제력을 잃어 버린 후이다.

그리고, 묵룡의 그들의 원신을 섞어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반항할 여력도 없다.

자신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한 정통마교주……

그리고 자신들이 만든 등천마룡……

이 모든 것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이미 늦었다.

묵룡은 날려서 오고 그들에겐 저지하거나 피할 힘이 없다.

원천기의 손바닥 위에 서있던 한천녀가 미끄러져 내려오며 원천기를 꽉 안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격렬한 입마춤을 하면서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묵룡이 땅을 스치며 지나갔다.

소일초의 검은 묵룡을 풀어주었고 묵룡은 다시 한천이기의 몸으로 스며들어갔다.

주소아가 일어서며 소일초를 뒤에서 꼭 안고 그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무서운 정적이 감돌았다.

소일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별들을 바라보았다.

한천이기가 서로의 포옹을 풀면서 소일초를 쳐다보았다.

마지막 순간에 함께 죽고자 포옹했던 그들의 표정은 이미 다른 사람인 듯 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먼저 원천기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왜 우리를 죽이지 않았소?]

이것이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의혹이었다.

소일초는 그를 바라보지 않았다.

[죽이려고 했었지만 너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소아가 죽이지 않길 원할 것 같아서……]

한천녀이 역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인간의 무공으로 어떻게 등천마룡을 단 일초에 제압할 수가 있었습니까? 세상에 어떻게 그런 무공이……]

쉴 새없이 그들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주소아가 소일초를 안은 채 말했다.

[이 사람은 소일초지 소일초……오직 일초(一招)면 어느 누구도 죽일 수 있는 ……]

소일초는 그녀에게 팔을 두른 후 광통거 물가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한천이기에게 더 이상 다른 것이 필요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이 높다는 것을 보여 주었으니 다시는 사닥다리로 올라가려고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원천기가 가만히 한천녀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두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소일초……]

[징벌장(懲罰掌)을 실험해 보고 싶어서 그러나?]

소일초가 걸어가면서 말했다.

[아니……다시는 너 앞에서 무공을 쓰고 싶지 않다.]

[잘 생각했어.]

[우리를 살려주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최근에 우리 일생중 가장 행복한 날을 보냈다. 오늘……]

원천기는 한천녀의 손을 꼭 잡았다.

[나는 너로 하여금 하늘에 정의가 있음을 느꼈다. 너희 정통마교주도 우리 손에서 만들어졌고 등천마룡도 우리에게서 나왔는데 오히려 모두가 우리를 죽이려 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소일초가 말했다.

[그렇다. 우리가 천지파멸의 악을 뿌리려 했기에 하늘이 우리 손으로 우리가 죽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행복을 찾겠다.]

[…………]

[한(恨)도 저주보다도 지금의 행복을 지키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됐군, 그럼 등천마세나 잘지켜, 몽땅 죽이지 말고……]

한천이기는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다정한 모습을 언제까지나 바라 보았다.

진정으로 지키고 가꾸어야 할 것은 인간의 사랑이고 평화스러운 환경이라는 것을 느끼며……

 

× × ×

 

[동선장(童仙莊)의 꼬마들은 잘있을까 모르겠네……]

[집사가 잘 돌보고 있겠지……]

[그 애들에겐 내가 엄마처럼 생각되겠지?]

[얘들하고 별로 놀아주지도 않았으면서……아……]

주소아가 소일초의 코를 잡았다.

[엄마가 바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어두운 광통거변을 나란히 걸어가며 도란도란 하는 얘기에 지칠 줄 몰랐다.

[동선장에 들러본 후엔 곧장 정천보로 들어갈 거지?]

[그래야지, 정천보에 삼수가 숨어있는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소일초가 말했다.

[백인장에 통보했으니까 동선장에 들렀다 가면 정천보로 집결하는 날짜와 대충 비슷해질 거야.]

그렇다.

그들은 백인장에 그들의 무사함을 알리고 삼수가 숨어있을 정천보로 모든 고수들을 집결 시켜 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어쩌면, 소선풍을 위시한 백인장의 모든 고수들이 지금 달려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

삼수(三手)……

그들을 찾아서 복수를 해야만 한다.

그들 사부의 손녀인 주소아의 천재적인 재질을 탐내어 그들을 위한 살인병기로 만들려고 했던 그들을 벌해야 한다.

소일초는 그들을 반드시 제거해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소아를 위해서 일망타진 해야 하는 것이다.

동선장을 찾아가는 것은 삼수와의 마지막 결전을 하기전에 주소아는 자기 손으로 모았던 아이들을 한 번 더 보려고 하는 것이다.

[아까 그 일초검공 말이야……]

주소아가 소일초의 눈치를 보면서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왜?]

[나한테 가르쳐 주면 안돼? 그건 도저히 보기만 해서는 배울 도리가 없어.]

소일초는 그녀에게 혀를 찼다.

[또 병이 도졌군, 사마귀한테 사백자요결(四百字要訣)배웠으면 이제 그만 만족해!]

[그것만 가르쳐 주면 더 배우려 하지 않을게, 응.]

주소아는 교태를 부린다.

[그래도 소용없어, 무공을 배우기만 배우고 이 핑게 저 핑게로 한 번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아기 못 가질 까봐서 그런 거지……그 일초검공 말이야……사실……내가 비슷하게 한 번 만들어 보기는 했는데……도무지 같은 위력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소일초의 눈치를 보면서도 주소아는 오직 무공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한다.

소일초는 그녀가 일초검공을 비슷하게 만들었다니 어리둥절했다.

일초검공은 드러난 것과는 달리 깊은 변화와 위력을 간직하여 아무리 많이 본다고 해도 요결을 모르면 배울 수 없는 것이다.

[무슨 말이야, 일초검공을 혼자서 만들었다고?]

주소아의 뛰어난 머리를 알고 있는 소일초지만 잘 믿기지 않았다.

일초검공이 어떤 것인데……

[만들긴 했어도 네 것과는 같이 되지는 않아. 보고 지적좀 해줘……]

[그걸 어떻게 만들었어? 그렇다면 보통 큰 일이 아닌데……]

소일초의 표정은 심각했다.

일초검공을 보기만 하고도 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초검공을 절학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늘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음……먼저 겉을 꾸미고, 그 겉을 만들 수 있는 속을 꾸며나가는 방법으로 연역해서 만든 것인데……음……그 속을 만드는 모든 요결들은 내가 아는 무공들을 종합해서 만들다 보니 비슷하면 서도 네 것과는 아주 다른 것 같아져 버렸어……아직은……연결도 잘 되지 않고……]

주소아가 말했다.

그녀가 만든 일초검공이란 결과에서 원인과 수단을 유추해 들어간 방법으로 만든 것이니 검마가 수단과 방법을 종합해서 만들어낸 귀납적인 검공과 같을 리가 없는 것이다.

중간에서 조금만 달라도 아주 달라지는 것이 절정 무공에서 드러나는 특징들인 것이다.

소일초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이거……이렇게 되면 정말 내가 영원히 밑에서 깔릴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은데……한 번 해봐……]

주소아가 불숙 손을 내밀었다.

[……?]

[난 검이 없잖아!]

소일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역시 불숙 손을 내밀었는데 그 손에는 마황검이 들려져 있었다.

[그것도 신기한데……언젠가 그 비밀을 밝히고야 말겠어.]

주소아는 소일초의 손에서 솟아오르듯이 튀어나오는 마황검을 손으로 받아들었다.

마황검은 아주 둔중하다, 족히 칠십 근은 될 것이다.

주소아는 처음 들어본 마황검이다.

신중하게 별빛이 내려있는 광통거 물결을 향해서 검을 뻗었다.

소일초도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주소아의 검을 쓰는 수법은 소일초의 일초검공과 완전히 동일했다.

뻗어나가면서 원을 그렸다.

순간,

십여 장 밖의 물에서 회오리가 일어나며 물기둥이 치솟았다.

물기둥은 주소아가 검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서 위로 올라가더니 둥글게 모이면서 터져버렸다.

팡------!

쏴아아아-------!

물은 그들의 머리로 폭우가 되어 쏟아졌다.

[엇차! 이게 무슨 짓이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이게 지금까지의 한계란 말이야.]

그들은 비맞은 새앙쥐 꼴이 되어버렸다.

온몸이 흠뻑 젖어서 옷이 몸에 착 달라붙었다.

몸의 굴곡이 옷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소일초가 공력을 움직여서 옷을 말리며 주소아를 안았다.

주소아 역시 옷을 말리느라 그들의 몸에서는 김이 연기처럼 솟아올랐다.

[이상하게 공력을 더 많이 써서 검의 기운을 움직이려고 하면 그것이 터져버린단 말이야……도무지 방법이 없어.]

주소아가 그의 품에서 하는 말이다.

[그건……음……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소아의 눈이 반짝 뜨였다.

[빨리 말해봐! 궁금해 죽겠어.]

[뭐줄래?]

[선물, 좋은 것! 이 번엔 진짜야. 진짜로 허락할게.]

주소아는 다급했다.

그녀의 최후의 무기가 나온 것이다.

전에도 사용했지만 소일초는 얻지 못했다.

주소아가 아무래도 안되겠다면서 후에 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럼 또 두 말 하기 전에 먼저 받고 가르쳐 줄께.]

소일초도 이번에는 만만히 넘어가지 않았다.

[그건 안돼! 그럼 내가 몸 파는 여자같잖아.]

[나한테 파는 건데 어때. 그럼 나도 안돼!]

순간,

그들의 대화가 뚝 끊어졌다. 눈을 마주 본 후 몸을 날렸다.

미세한 호흡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사사사사……

광통거 변의 갈대가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었다.

어둠의 공간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갈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았다.

문득,

갈대를 헤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곳에서 붉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분명 사람의 그림자였다.

어둠 속이었기에 그 그림자는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었지만……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신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심하게 피를 흘리고 있었다.

[헉헉……]

날카롭고 거친 호흡소리가 적막한 어둠을 가늘게 울리고 있었고……

피투성이 붉은 여인의 아름다운 손이 다급하게 갈대를 헤치고 있었다.

붉은 그림자는 여인이었던 것이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드러난 홍의 여인의 얼굴은 붉으스레한 노을 빛이 었다.

하나, 그 얼굴은 이때 심하게 창백해져 있었고 피에 젖어 있었다.

그 얼굴……

바로 사은상이 아닌가?

차가운 얼굴의 얼음처럼 풀려나는 한기를 지녔던 그녀, 삼수 중의 하나인 사진성의 제자가 아니었던가?

[헉헉……사 ……살아야 한다.]

처연한 독백이 갈대에 떨어지고 있는 피만큼이나 처절해 보였다.

[아아……이대로……내가 ……주……죽을 수는 없다.……백인장으로 가야한다……아니 최소한 백인장의 사람이라도 만나야 한다.]

그녀가 무슨 일로 이렇게 쫓기면서 백인장으로 가려고 하는가?

이미 백인장은 무림에서 종적을 감추고 보이지 않는데……

모를 일이다.

한데, 그녀가 백여 장이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돌연,

삐이익------!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성(簫聲)이 어둠을 가르며 들려왔다.

칼날처럼 인간의 몸을 후벼버릴 듯 울리는 이 소리는 분명 광통거의 물결을 타고 들려오고 있었다.

순간,

[아아……저들이 어느 새 이곳까지……]

사은상의 얼굴에 창연한 절망이 가닥가닥 풀어져 떠오른다.

[무……무서운 자들……이곳까지 이르렀거늘……끝까지 추격해 오다니……]

하나 사은상은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는 더욱 빠른 몸놀림으로 무성한 갈대를 헤치고 있었다.

그녀의 가여린 체구는 여전히 빨랐다.

한데 그 순간,

또다시 그의 전면의 갈대밭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무량수불……]

사은상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미 틀렸어……]

울컥 한모금의 선혈이 토해졌다.

[아미타불……]

이번에는 불호가 좌측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젠장할……이 밤중에 이게 무슨 고생이람……]

이번에는 우측에서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심하게 취해 있는 듯 혀가 뒤틀린 소리였다.

사은상……

그녀는 완전히 포위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래…………허허……틀렸어……]

사은상은 마지막 희망이 사라짐을 느끼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헉헉……주……중원의 어디에도……백인장의 사람들은 찾을 수 없으니……]

달빛이 그녀의 눈에 아리게 파고 들었다.

[……하늘은……하늘마저……꼬마 너의 복수를 바라지 않는구나……귀여운 악동(惡童)……이제야 나도 네 곁으로 가는 구나……]

한데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한줄기 나직한 음성이 조용히 어둠 속에서 솟아 나와 사은상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그 소리는 사은상을 편안하게 하는 힘을 담고 있었지만, 사은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누구……)

중상을 입은 몸이지만 아직은 백 장 밖의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청력이 그녀에겐 있었다.

한데,

음성의 주인공은 기척도 없이 사은상의 가까이에 접근해 있는 것이다.

자기의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 무공의 소유자이리라……

사은상은 힘없는 시선으로 한 곳을 주시했다.

언제 어떻게 나타났는지……

그녀의 면전에는 한쌍의 남녀가 고요하게 서 있었다.

손을 서로 잡고 있는 그들은 결코 약관은 넘지 않은 듯 한 인물이었다.

희미한 달빛과 초롱한 별빛이 그자의 몸에 은가루처럼 부서지고 있는 가운데……

사은상은 아득한 심연의 충격을 맛보았다.

(아아……이 세상에 저토록 수려한 남녀가 있었다니……)

그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다.

한 쌍의 남녀……그들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였던 것이다.

(한데……저 모습들은 어디선가 많이 대한 듯……)

사은상은 흐릿한 의식 저 건너편에서 부터 솟아 오르는 또 한 가지의 충격을 느낀다.

이번의 충격은 전율을 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자신의 앞에 선 이 생면부지의 남녀가 왜 이리 낯이 익단 말인가?

하나,

아무리 의식 저 편을 뒤져 보아도 그들을 어디서 보았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녀를 알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그녀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쫓기고 있단 말인가?

[상처가 심하군……우선 상처부터 치료해줘……]

소일초의 말에 주소아가 사은상의 곁으로 가까이 접근했다.

그러자,

[이봐요……가……가까이 오지 말아요……그리고……어서 이곳을 떠나……]

[그 사람은 마음씨가 착해서……아마 죽어가는 당신을 이대로 둘 수 없을 텐데……]

소일초의 말이다.

[아……안돼요……그러면 당신들도 죽음을 당해요……]

진심으로 사은상은 소일초와 주소아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주소아가 소일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사은상도 많이 변한 듯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소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더욱 가까이 접근해 왔다.

[천하의 누구도 우릴 죽일 수는 없어요. 걱정 말고 상처나 치료해요……]

[헉헉……그럴 수는……없어요. 당신들은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요…]

사은상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녀는 자신을 추적하는 무리들이 얼마나 가공할 인물들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주소아의 말을 단지 만용으로 받아 들이고있는 것이다.

이때,

[헉……]

사은상은 주소아가 어느새 자신의 팔을 잡는 것을 느끼고 경악했다.

(이런 수법은……전에 그 꼬마의……)

그녀는 소일초를 처음 만났을 때 그의 손에 제압되던 그때를 생각해 내고 놀랐던 것이다.

주소아의 수법도 바로 그 수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삼 주소아의 얼굴을 주시하며 불가사의함을 느꼈다.

주소아는 천천히 사은상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주소아의 손이 그녀의 상처를 쓰다듬으면서 지나가자 그칠 줄 모르고 흐르던 피가 사르르 멈추었다.

그녀의 손이 스쳐지나는 곳마다 마치 얼룩을 닦아내듯 사은상의 상처가 없어져 버렸다.

사은상은 주소아의 기적의 손을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주소아와 소일초의 백송균화에서 얻었던 신비한 능력은 다른 사람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한데 그때,

[멈추시오……]

우렁찬 외침이 저멀리서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면전에서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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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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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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