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第 十八 章

 

         變身

 

 

 

무림(武林),

삼성무림청의 거대한 악(惡)의 발굽에 짓밟혀 가고 있던 무림엔……

희비(喜悲)……엄청난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정의 하늘엔 찬란한 영광이……

사(邪)의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한 사람……

단 한 사람이 출현하므로 중원 정사(正邪)의 판도는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푸른 계곡의 처참한 대혈전(大血戰)으로부터 무림에 폭탄을 터뜨린 신행마동 소일초……

기가 막힌 열 세 살 짜리 꼬마가 그 돌풍의 주역이었다.

그는 처음의 공언대로 과연 삼성무림청의 멸망시키는 전초단계로 그 주력인 삼혈단을 몰살시켜버렸다.

그리고,

전력의 팔할에 해당하는 삼혈단을 잃어버린 삼성무림청은,

그들이 벌여놓은 싸움의 곳곳에서 패하고 있었다.

파죽지세(破竹之勢),

삼성무림청의 가공하던 힘과 세력은 여기저기서 피를 뿌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행마동 소일초,

천하는 그 동안 그에게 주었던 눈총을 거두고 찬사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원어디에서나 신행마동의 이름은 높아 갔고,

잠자는 사자들의 숲, 백인장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백인장에는……

금족령을 당해서 밖으로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속 터지는 도객들이 한둘이 아닌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신행마동의 이름과 함께 시간은 쉬임없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다.

 

* * *

 

파양호가 멀리 보이는 여산의 백인장(百刃莊)

내전 깊은 곳의 침상에 한 사람의 중년인이 누워있고,

그 앞에서는 절색의 미부가 의자에 앉아서 따뜻하게 익힌 낙화생을 까서 중년인의 입에 넣어주고 있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년인은 정기 늠름하여 도저히 누워있을 사람같지는 않은데,

부드러운 눈길을 미부에게 주면서 말했다.

[요즘처럼 편안하게 살았던 적이 여태 없었던 것 같소. 말썽꾸러기 아들 녀석은 무림에서 이름을 더날리고 있고, 아름다운 부인이 장내의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해 주니……나는 다만 이렇게 누워서 음식만 받아먹으면 되는군……]

[그런 말씀만 마시고 당신도 빨리 일어나셔서 그 애를 도와주셔야죠……]

[하하하……그 녀석이 백인장의 모든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놨는데 나도 별 수 있소. 일어나 봤자 갑갑한 장원 안에서 칼질이나 하고 있겠지……]

눕고, 앉은 채 다정스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이 두 사람,

바로 백인장의 장주부부인 소선풍과 조예진이었다.

소선풍은 소일초가 보내준 불사환혼단을 복용한 후 신체의 회복이 급속도로 빨라져 이제는 말도 할 수 있고 음식을 받아먹을 수도 있었다.

그가 완전히 일어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아무튼, 파양호 안의 옛 장원에 당신이 일초를 데리고 들어온 날은 볼만 했지……]

[…………]

[멀쩡한 아이더러 사부니 뭐니 하면서 법석을 떨어대니 천하의 일초 그 놈도 울고 말더군. 그때 나는 속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지. 결과적으로 그게 복이 되기는 했지만……]

[대체 몇 번 이나 더 그 애길 해야 그만하겠어요. 쑥스럽게 자꾸 그때 이야기 하시면 더 이상 낙화생을 드리지 않겠어요.]

조예진이 은근히 먹는 것으로 남편을 협박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항상 즐거운 걸……]

[그래도 절 위해 이제 그만 하셔요.]

소선풍이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묻는다.

[정말 일초녀석의 무공이 그렇게 높아졌나?]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전설적인 검객인 검마의 진전을 물려받았다고요.]

조예진이 혀를 쏙 내밀면서 말한다.

[아마 당신도 이제 못당할 걸요?]

[글쎄……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설사 어르신이라고 해도……]

[아이구라……누워서 허풍만 세졌어요? 어떻게 사부님을 이길 수 있단 말이예요?]

조예진은 남편의 호기가 살아나는 것을 반가와 하면서도 자기 사부도 이길 수 있다는 말에 살짝 빈정댄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깨달은 무공이 있거든……마도구식을 바탕으로 한 건데……단 이초식의 도법으로 집약이 되지……]

[그렇게 그게 대단해요? 그럼 사부와 겨뤄보기 전에 먼저 나와 한번 겨루어 봐요.]

소선풍이 벌떡 일어서는 그녀를 보고 눈이 둥그레 지는데,

조예진의 몸이 그를 덮쳐서 눌러버렸다.

[윽-----]

소선풍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비명도 크게 못 지르는데 조예진의 팔은 그의 목을 휘감고 눈섭을 깜짝거려 소선풍의 귀를 간지럽혔다.

[나를 이길 수 있어요? 없어요? 빨리 대답해요. 안 그러면 더 잔인한 고문을 할 거예요.]

소선풍은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직 입만 살아있는 그가 어떻게 피할 도리도 없다.

[항복! 항복! 당신이 천하제일고수요.항복……하하하하하……]

참다참다 말하는 바람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조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소선풍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보……사부께서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실까요?]

[전번에 만났을 때 느낀 것이지만, 그 어르신께서는 인생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실 작정인 것 같았어.]

[…………]

[어쩌면 무림인이 아닌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살고 계실 지도 모르지……]

[휴……저는 사부님을 뵙고도 몰라봤으니……]

[빨리 소아와 어르신께서 만날 수 있도록 해야겠는데……사형들이 그렇게 변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들은 사악한 무공을 섞어서 사용했어……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마교(魔敎)의 마공(魔功)들인 것 같아……]

[어디서 그런 마공들을 익혔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 그때 소아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철저히 그들의 병기로 화해버렸겠지……그때도 이미 삼갑자의 내공을 주입한 상태였으니까……]

[여보……정말 소아의 무공에 대한 재질은 사부님을 그대로 닮았어요. 우리 일초보다 결코 재질에 있어서 뒤지지 않아요.]

[한데……일초와 소아가 잘지내고 있을까?]

[그야 모르죠. 애들이니까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겠죠……]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우리도 함께 무림에 나가 유람이나 합시다. 얼마나 통쾌하겠소.]

소선풍은 벌써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제발 빨리 일어나기나 해요. 생과부 삼 년에 당신 몸무게까지 잊어버렸어요.]

조예진의 투정에 소선풍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요즘은 내가 당신 몸무게를 알고 있잖아……]

 

× × ×

 

섬,

차가운 서북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장강의 물결이 금방이라도 덮쳐버릴 듯한 조그만 섬,

갈대숲이 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데……

무성한 갈대를 헤치고 걸어 나오며 차가운 장강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소년,

허리에는 이가 빠진 시커먼 철검,

소일초였다.

그 옆에는 주소아가 따르고 있었고……

…………

[틀렸어……이곳도 전혀 기억에 없어. 다른 곳으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주소아가 낙담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이때,

살짝 주소아의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입술을 주시하던 소일초가 장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과……한 달 도 지나지 않았어……]

[…………]

[성급하게 서두를 것은 없어…… 그리고 천천히 기다리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잊어버린 샘 치면되지뭐……지금이 행복한데 까짓 옛날 생각나지 않으면 어때……]

그렇게 말하는 주소아의 표정에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소일초는 녹림맹에서 이후로 주소아를 아주 존중해 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주소아의 미모에 넋을 잃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강한 질투심이 생겼던 것이다.

자연히 주소아를 더 잘 대해주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소아에 대한 장난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장난은 점점 도를 더해가서,

요즘에는 아예 잠잘 때에는 주소아를 알몸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아슬아슬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소일초는 여체의 신비를 여기저기 엿보았고,

눈을 감고도 주소아의 몸을 훤히 상상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짖궂은 장난만 아니라면 주소아는 소일초에게 최고대접을 받고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의 아름다운 동공은 소일초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넋 잃은 듯 바라보고 있으니……

자기보다 작은 소일초의 어깨를 손으로 감고 머리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 금시,

그 아름다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며시 소일초의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이제……어떻게 따돌리지?]

[직접 부딪쳐 볼까?]

[상대방도 엄청난 고수야……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는 것 같아……혹시 정말 할아버지가 우릴 따라 다니시는게 아닐까?]

대체 이들은 또 전혀 그런 척 하지 않으면서 또 무슨 말을 주고 받는 것인가?

따돌린다니……

엄청난 고수라니……

[절대 아니야. 그 형씨……아니 네 할아버지는 아무런 기도가 없어. 그리고 나를 보셨으면 납작 잡아서 혼을 내려고 드실 걸?]

[왜?]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물어보는 주소아다.

[실은……내가 사기를 조금 친 적이 있거든……전에도 조금은 말했지……내가 배운 무공 중 일초검공 말고 다른 절기들은 다 젊은 할아버지한테 사기 쳐서 배운 거란 말이야……]

[그럼, 우리 다시 따돌려 보자. 그리고 우리가 역으로 한 번 정체를 파헤쳐 보는게 어때?]

[좋아, 오늘 밤에……]

소일초는 주소아의 손을 잡으며 안개속에 파묻혔다.

그리고,

안개가 흩어졌을 때 이미 그는 주소아와 손을 마주잡은 체 까마득히 장강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사르르르……

소일초와 주소아가 사라진 갈대숲에 백의를 단정히 차려입은 젊은 부인이 나타났다.

머리는 옥잠을 꽂고 어깨에는 고색창연한 장검이 걸려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수심이 어려 있는데……

[태봉아……많이 자랐구나……]

오오……

태봉……

바로 소일초의 원래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백의미부는?

[이 어미가 무정한 네 아버지는 잊을 수 있겠지만, 어찌 너를 잊을 수 있었겠느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여인,

바람에 갈대는 날리고, 바람에 검병(劍柄)의 수술도 날리고……

고독이 배어나는 목소리는 짙은 처량함이 감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남몰래 백인장을 찾아 갔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한데……그 여자는 정말 너와 네 아버지에게 너무 잘 해주더구나. 나는 부끄러워서 그때마다 도망치듯이 돌아오고 말았단다……너는 이 어미는 생각도 않고 자라는 것 같더구나……]

그녀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넘쳐 두 볼을 타고 내렸다.

소일초의 생모(生母) 이주용(李珠蓉),

그녀는 소일초가 두 살 되던 해에 백인장을 떠나가 버렸다.

소선풍과 심한 말다툼을 한 후에……

[네 아버진 무정한 사람이었어. 몇 년 동안 백인장을 찾아가지 않았으니 그 사람도 많이 변했겠지……그러나, 무슨 이유로 어린 너를 혼자서 험한 강호에 내보냈는지 모르겠구나……]

 

***

 

이주용이 갈대 섬에서 깊은 감회에 빠져 있을 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주루(酒樓)를 들어서고 있었다.

별원에 방을 얻어 들어간 두 사람은 국수를 먹은 후 침상에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저녁 마다 있는 그들의 일과 중 하나였다.

[전에 색귀한테 들은 애긴데……여자는 억눌려 있을 때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하더군……]

술단지를 놓고 마주 앉자 마자 흘러나오는 소일초의 막되먹은 소리였다.

[말도 안돼는 소리하지마……내가 겪어보니까 답답하기만 하더라……]

[색귀말이 틀렸을 리가 없어……네가 잘못됐으면 잘못됐지……]

고개를 내두르는 소일초다.

[그럼 네가 한 번 눌려볼래? 갑갑한가 아닌가?]

[싫어. 계집애한테 눌린다는 것은 꼭 지는 것 같아서 싫어.]

[나도 마찬가지야. 역지사지(易之思之)라는 말을 잊지마.]

[그래도 내가 위에 있을 땐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던데……]

[그 기분도 없으면 힘들게 일해서 마누라 먹여 살릴 골빈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다 상부상조하는 거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일초가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럼, 나는 당연히 네 위에 올라갈 권한이 있는 거네. 네가 먹고 자는 모든 것이 내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니까……]

주소아가 코웃음을 친다.

[그런 소리마, 그렇게 따진다면 나에게 물이라도 한 잔 준 놈은 몽땅 다 한 번 씩 태워줘야 잖아. 그럼 네 기분이 좋겠어?]

[그건 절대 안되지. 절대로……만약 그런 꿈이라도 꾸는 놈이 있으면 껍질을 홀랑 벗겨서 죽여버릴 거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듯이 소일초가 흥분하면서 소리친다.

[거봐. 겨우 몇 푼 안되는 돈 좀 썼다고 내 몸을 아예 말등처럼 오르내릴 생각을 하면 안된다구. 요즘은 내가 너한테 지니까 할 수 없이 봐주는 거지만……]

[…………]

[다음에 내가 좀 더 강해지면 그땐 내가 올라가서 네 그 하늘을 나르는 것 같다는 기분을 좀 느껴봐야겠어……]

끝없이 술을 퍼부어면서 계속되는 대화이기에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술이 올라 빨갛게 되었고,

입에서는 혀 꼬부라진 소리가 연방 나왔다.

소일초는 술단지를 내려놓았다.

[그만 자자……]

주소아가 휙 하니 술잔을 던져 탁자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게 놓으며 뒤로 벌렁 누웠다.

[이리와……]

주소아의 말에 따라 소일초가 그녀의 몸에 자기의 몸을 얹었다.

그의 얼굴이 주소아의 얼굴을 마주 보는데,

[단번에 외워. 정말 취한 것 같다구……]

주소아가 낮은 소리로 말한다.

[이건 내가 역근천골공(易筋遷骨功)이라고 이름을 붙여봤는데……]

주소아……

그녀는 정말,

조부인 혈기자의 혈통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엄청난 무학의 기재였다.

생사보록의 무공을 깊이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어떤 절학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근본 원리까지 파악해 내곤 했다.

그리하여, 벌써 몇 가지의 괴상한 무공을 만들어 냈는데……

역근천골공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근육을 마음대로 바꾸고 뼈마저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는 괴상한 무공으로,

축골공이 있다는 말을 듣고 며칠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다.

소일초는 가만히 그녀의 입을 주시하면서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겨우 그거야? 아주 간단한 것 같은데?]

주소아의 말을 다 듣고서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소일초가 소근거렸다.

[그건 네가 이미 무공의 큰 줄기를 꿰뚫고 있어서 그런 거야……이게 시시한 게 아니라구……]

[지금 한 번 해볼까?]

[응.]

소일초는 잠시 역근천골공을 운용하다가 뚝 멈추었다.

[큰일 날 뻔 했다.]

[왜?]

[옷이 다 찢어질 뻔 했잖아. 더 어둡기 전에 미리 큰 옷을 사다놓아야겠어.]

[안돼! 지금 밖으로 나가면 들통이 날 수도 있어. 점소이를 불러 시켜. 가장 좋고 예쁜 옷으로 두 벌 사오라고……]

그녀는 말을 다 끝 맺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

 

깊은 밤,

이상한 느낌에 주소아는 또 소일초의 장난이거니 하면서 눈을 부시시 떴다가 비명을 질렀다.

[끼악----!]

자기의 몸에는 여느 밤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은데……

굵직한 팔 하나는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고,

다른 커다란 손 하나가 자신의 전신을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육척은 좋이 될 거한이 아닌가?

그것도 알몸으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비명은 채 다나오기도 전에 커다란 손에 의해 막혀버렸다.

[쉿! 나야, 나.]

맑은 눈에 덩치는 크다랗지만 얼굴은 여전히 수염하나 없는 동안(童顔)이다.

바로 소일초인 것이다.

[휴……깜짝 놀랐네. 이 바보야! 미리 말이라도 해야지.]

손톱을 세워서 소일초의 가슴을 팍 긁어버렸다.

그러나,

날 때부터 금강체(金剛體)인 소일초의 몸이 그 정도로 손상이 갈 리가 없다.

[어때? 감쪽같지?]

[시꺼. 사람 간 떨어지게 해놓고……]

소일초의 몸을 슥 훑어보는 주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응……여기? 여기는 본래 그대로야. 아무리 해도 더 커지지 않던데……]

[아차……나한테는 그게 없어서 미처 그걸 크게 만드는 법문은 만들지 못했어……내건 다 되는 데……]

주소아가 실수했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럼 네가 한 번 해봐!]

[그래, 잘 봐……]

정말 잘보고 배워놓으라는 듯이 눈길을 준 후 주소아는 소일초를 한쪽으로 밀쳐놓으며 누운 자세를 반듯이 했다.

젖빛으로 뽀얀 주소아의 알몸은 아직 완전히 발육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봉긋한 가슴 밑으로 펼쳐진 나신은 매일 보는 것이지만 소일초의 숨을 막히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일순간,

그녀의 조그마한 발이 다리와는 불균형을 이루면서 커졌다.

다리가 쭉 가늘게 늘어나더니 다시 살이 오르며 정상적으로 되어 가는데,

이번에는 잘록하던 허리가 스물스물 길어지며 상체가 한꺼번에 커지고 있었다.

목도 더 자라고 머리(頭)도 더 굵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손과 팔이 늘어나고 커졌다.

[이건 얼마만큼 하면 좋을까?]

[크게……무조건 크게……]

조그마한 유방을 보면서 주소아가 하는 말에 소일초의 주문은 무조건 크게이다.

[바보야, 적당한 게 더 이뻐.]

직접 손으로 크기를 갸름하면서 유방의 크기를 조절했다.

어느새 그녀는 완전히 성숙한 여인이 되어버렸다.

침상에서 커다랗게 자라버린 소일초를 보면서 성숙하게 변해버린 주소아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내 것도 크게 해줘……빨리……이건 불공평해.]

[안돼. 네 건 본래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큰 거였어. 더 크면 여자가 견디지 못해.]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흥.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아마 괴로울 걸?]

주소아……

그녀도 뭘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린지……

 

아무튼,

아침에 주루를 나가는 한 쌍의 젊은 부부를 보고 점소이는 언제 저 손님들을 맞았을까 생각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는 그 부부가 맨발인 것을 보고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

 

소일초와 주소아는 여유만만하게 북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벌써 신을 사 신었다.

서로의 변한 모습에 킥킥대며 장난을 치면서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소일초의 그것도 과연 커졌을까?

안보니까 모르는 일이고……

 

[지금 쯤, 그 미행자는 사라진 우리를 찾느라고 허둥대고 있겠지?]

[히히……어쩌면 우리한테 와서 어린 꼬마 둘 못봤냐고 물어볼지도 모르지……]

소일초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누가 우리 이름을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그냥 주소아, 소일초 하고 대답할 수는 없잖아.]

[물론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지. 소일초, 주소아라고 해야지……윽!]

주소아가 소일초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꽉 친 것이다.

[좀 진지해 질 수 없어? 덩치는 뭐 만해가지고……]

[좋아. 씨……그럼 나는 무적검(無敵劍)이다.]

[그럼 난 승무적(勝無敵)이야.]

[그럼 난 무적검 안해. 승소아(承小阿)라고 할 테다.]

다시 주소아의 주먹이 그의 옆구리를 쳤지만 허공인 듯 아무 감각이 없었다.

소일초가 이환공을 일으키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제길……무적검을 이기는 승무적이나 주소아를 밤마다 올라타는 승소아나 그게 그거지……]

[알았어, 무적검(無敵劍)해. 나는 불패도(不敗刀)할 테니까. 대신……]

[…………]

[내가 양보했으니까, 다시는 승소아니 뭐니 하는 소린 꺼내지도 마! 남이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주소아의 말투가 약간은 달래는 듯하다.

[그래도 사실인데……]

[그래도 안돼!]

주소아는 소리를 꽥 지르고 소일초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삼성무림청을 뿌리 채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일침!]

[무슨 계획인데?]

주소아의 음성도 들릴락 말락 낮아졌고,

[이번엔 직접 삼수(三手)를 상대하겠어.]

순간,

자기보다 커져 버린 소일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걷고 있던 주소아의 몸이 제자리에 딱 멈췄다.

[무……무슨 말을……]

하나,

오히려 어른의 얼굴 만큼 커진 얼굴에 빙긋이 미소를 짓는 소일초……

[그 정도로 놀라긴 뭘 놀래. 이제 삼수와 직접 붙어 볼 때도 됐지.]

우뚝!

석상처럼 한 곳에 멈춰버린 주소아,

[좋은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소일초의 눈을 염려스러운 듯이 빤히 쳐다보며 물어본다.

[없어. 그냥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무식하게 대결해 보는 거지.]

[말도…안돼……!]

주소아의 떨리는 외침이,

휘이이이……

차가운의 북서풍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한 곳에 굳은 주소아는 도대체 움직일 줄 모른다.

다만 별빛을 향한 그녀의 두 눈에,

반짝반짝……

눈물이 고여 넘친다.

그녀의 몸에서 겨우 들릴 정도로 낮은 휘파람소리마저 잠잠해 진 듯 한데,

(이렇게 하는 말은 장난이 아니야……정말로 싸우려고 하는 거야.)

소일초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무적검이잖아……]

[바보야……내 생사보록 원래 주인이 누군지 알아? 바로 그들, 할아버지의 못된 제자들인 삼수(三手)란 말이야……고모부도 당해내지 못하고 부상을 입으셨단 말이야.]

[나는 검마의 진전을 이은 유일한 제자야. 일초무적이라구.]

이어,

그녀를 안은 채 걸음을 옮겨가는 그의 등에 희미한 겨울 햇빛이 내렸다.

 

***

 

그리고,

소문……

무림에 전례없던 소문의 바람이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신행마동이 삼성무림청의 수뇌부에 도전장(挑戰章)을 냈다……

------일대일(一對一)의 결투를 원했다……누구도 참여할 수 없는……

------장소는 화산(華山)의 옥녀봉(玉女峰)이나 날짜와 시간은 알 수 없다……

 

소문,

이처럼 무림에 전례(前例)없던 열 세 살 짜리 꼬마와 한 문파의 수뇌와의 결투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중원천하의 모든 시선은 이들의 대결에 초점이 모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휘이이잉……

대지(大地)는 부는 차가운 북풍(北風) 도 일었다 자는데……

무림인의 사이에 분 이 소문의 바람은 자는 법도 없이 더욱 거세져 가기만 한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