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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八 章

 

       憂愁를 깨뜨리는 毒蟲

 

 

 

등천마세,

가을을 맞은 등천마세는 이미 지난 여름의 등천마세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시기적(時期的)으로는 소일초가 주소아를 안고 취풍녀와 함께 들어왔을 때부터이며,

내부적으로는 그들에게 몰래 묻어온 한천이기(恨天二奇)의 공작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변화는 취풍녀가 모든 것을 다 바치고 있는 소일초에게로 많은 고수들이 모여들어,

그는 등천마교 내의 가장 강한 세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삼교주인 취풍녀가 복종하는 소일초, 속을 알 수 없는 등천마세의 인물들은 그를 전혀 진정으로 무서운 인물로 생각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대교주 마저 밀고 일어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등천마세의 이교주 역시 나름대로 소일초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한 채 그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어떤 움직임이란 그의 제거를 위한 움직임 일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고……

소일초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소아와 더불어 술마시고 놀며 온 시간을 다 보내고 있는데 타인에 의해 그의 주변이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등천마세를 장악하는 것은 한천이기의 뜻이고,

등천마세를 이용하려는 것은 주소아의 뜻이다.

소일초의 뜻은 묵묵히 힘을 기르면서 모든 사실이 분명해질 때를 기다리고 싶은 것인데……

주변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어딘가에 쳐박혀 있을 사마귀는 아직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데……

 

× × ×

 

무적검(無敵劍),

이것이 현재의 소일초였다.

낙엽이 지는 정원의 나무 밑에서 침울한 시선으로 서천목산의 봉우리들을 올려보고 있다.

바람이 불때마다 낙엽의 그의 몸으로 떨어지며 날리는 데……

무딘 그의 감정은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 지고 있었다.

어딘가에 계실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가 부쩍 보고 싶어진 것이다.

주소아가 옆에 있으니 그가 신경쓰야 할 일은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취풍녀도 주소아에게 어떻게 혼이 났는지 소일초 앞에서는 전과는 달리 아주 몸을 사리고,

조심스럽게 대할 뿐 전과 같은 요구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지내는 한천이기는 때때로 자신의 전각에서 머물고 가고,

버젓이 드러내 놓고 주소아와 소일초가 사용하는 침상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

그들도 아무튼 조금 사람같아지기는 했는데……

소일초는 갑갑함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의 그의 신분으로는 전처럼 아무에게나 시비걸고 장난친다는 것도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 인 것이다.

도박을 하려가도 다른 놈들이 슬금슬금 피해버리고 상대를 해주지 않고,

술마시는 것만이 유일한 취미생활이었다.

주된 생활은 당연히 주소아와 더불은 그것이고……

소일초는 병이라도 날 것만 같다.

침울하게 일어서서 낙엽을 밟으며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온다.

그때,

윙윙윙--------

우웅웅--------

공기를 진동시키며 들려오는 소리에 주변의 나뭇가지들이 잘게 흔들리고 입들이 떨어졌다.

소일초의 검미가 보일 듯 말 듯 꿈틀거렸다.

(또 뭐야? 가만 있는 날 죽이려는 놈들이 왜 이리 많아……나쁜 년놈 한천이기……나쁜 놈들……날죽이려는 것들……)

심심하면 찾아오는 자객(刺客),

이제는 귀찮을 지경이다.

지금,

해는 뉘엇뉘엇 넘어가려고 하는데 까마득히 하늘의 한자락을 뒤덮으며 무엇인가가 그를 향해 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맙소사! 저게뭐야? 이젠 별 수단 다쓰는 구나.)

구름처럼 몰려오는 것, 그것은 바로 메뚜기 비슷하기도 하고 여치같기도 한 것들로 그가 남만에서 수도 없이 보았던 독충이 아닌가?

그에게 독은 통할 리 없지만 그것들은 눈앞을 가리고 무리를 지어 행동하기 때문에 얼마나 성가신 것인 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들에 이미 오래 전에 질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독충 떼는 몰려오고

소일초는 냅다 도망쳤다.

죽여도 끝을 보기 힘들고 냄새는 또 얼마나 역겨운가?

그저 보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독충떼는 낙엽이고 나무가지고 스치는 순간에 앙상하게 만들어 버리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소일초를 알아보기라도 하듯 그것들은 소일초를 따라오는데……

소일초는 그의 전각을 향하여 날아가다가 딱 멈추어섰다.

(이렇게 되면 내 방이란 침대랑 모두 엉망이되고 말잖아. 저놈들은 어쩌면 전각까지 허물어 버릴지도 모르는데……)

멈추어 서는 바람에 독충들은 그에게 더욱 가까와 졌다.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방향을 틀어 무작정 달렸다.

흰그림자를 그리면서 그의 몸은 무수한 전각들 사이로 달려갔다.

 

윙윙윙------

 

그의 뒤를 따라서 독충들이 날고……

등천마세는 발칵 뒤집혔다.

 

독충이다----

누군가 독충을 풀었다-----

 

비명과 함께 고함이 터져 나오고 소일초가 지나가는 전각마다 죽어자빠지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가지각색이었다.

용감한 사람은 장력을 내치며 불로써 독충을 물리치려고 했고,

그 많은 독충떼에 질려서 대부분이 독충의 행로를 벗어나 도망치고 있었다.

문득,

소일초는 도망치면서 내심 속이 후련함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 지겨웠는데 신나게 달리면서 법석을 떠니까 힘이 펄펄 나는 것 같았다.

우울한 마음도 갑갑함도 바람처럼 날아가 버렸다.

그는 자기를 추종하는 무리나 대교주와 이교주를 추종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을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 수족이 아닌 그들인데 봐줄 것 없는 것이다.

(나쁜 놈들 잘 죽어봐라……날 죽이려다 등천마세 다 태울 것이다.낄낄낄……)

사방에서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그는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의 앞에 십여 명의 흑의인들이 나타났다.

[멈춰라! 이곳으로 오지마라.오……오……오지……]

소일초가 무시하고 달려들자 흑의인은 말을 하다말고 냅다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새까맣게 몰려오는 독충들을 오지 말라는 말로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 흑의인이 도망치자 나머지도 덩달아 도망쳤다.

소일초는 독충들을 조금 앞서서 이끌고 달리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흑의인들은 미친 듯이 도망치지만 여전히 소일초는 자기들의 뒤를 쫓아오고 있다.

[흩어져라, 흩어져.]

한 사람이 외치자 그제서야 방향을 달리하여 도망치기 시작했다.

소일초는 소리친 흑의인의 뒤를 끊질기게 쫓았다.

도망치는 흑의인은 미칠 지경이었다.

[왜 나를 쫓아 오시오? 다른 사람들도 많은 데……]

아무 대답없이 그의 뒤를 쫓기만 하자 다시 소리친다.

[오해가 있는 가 본데, 독충은 내가 풀은 것이 아니오.]

[…………]

[정말이요. 오독교(五毒敎)의 오독존자(五毒尊者)가 풀었소.]

[남만의 오독교 말인가?]

[그렇소. 빨리 그에게 가보시오. 그는 외당(外堂)에 있을 것이오.]

흑의인은 그를 떨쳐버리기 위해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대교주 휘하의 호위중의 하나요.]

[그럼 이 번에는 대교주의 수단이었군.]

소일초가 여전히 그를 바싹 쫓아가며 말하자,

[나는 말할 수 없소. 나는 그런 말 한 적은 없소.]

그는 말하면서 계속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소일초는 방향을 바꾸어 외당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오독존자 이놈 당장 나와라.]

그는 외당으로 뛰어 들면서 소리쳤다.

멀리서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곳으로 간다. 피해라……]

다른 사람들이 소일초의 행로를 동료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외당에서 키가 자그마한 노인 하나가 뛰쳐나오더니 허둥지둥 도망가고 있었다.

소일초는 그가 오독존자라고 생각하고 고함을 쳤다.

[이놈! 내가 너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네가 나를 건드려?]

대꾸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오독존자,

소일초는 순식간에 그의 뒤를 따라잡았다.

한데,

오독존자의 앞에 언제 왔는지 까맣게 독충들이 모여 있었다.

[으왓! 속았구나.]

오독존자는 원을 그리며 도망쳐 독충들의 꼬리부분에 당도한 것이다.

오독존자의 꾀임에 빠져 그는 앞뒤로 독충들을 맞이하게 되었다.

[으하하하하-------]

오독존자는 득의만만하게 웃으며 작은 깃발을 움직여 그를 완전히 포위해 버렸다.

비릿한 독충의 냄새가 소일초에게 밀려왔다.

그 뒤를 독충들이 새까맣게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순간,

소일초의 몸이 흐릿해지면서 독충들 사이를 뚫고 오독존자의 목을 움켜쥐었다.

[끅……]

단숨에 그의 목을 꺽어버리며 깃발을 빼앗고 독충들에게 던져 버렸다.

 

오독존자는 자기가 키운 독충들에 의해 뼈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정말 자기 한 몸 팔아서 독충 배 불린 것인데……

소일초는 깃발을 아무렇게나 휘둘러 독충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깃발을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긴 하지만 어떻게 해야 수습할 수 있는지 몰랐다.

흔드는 것을 그만 두면 또다시 자기를 향해 달려 들테고……

마침내, 오독존자가 나왔던 전각 안으로 달려가 독충들을 들어오게 했다.

순식간에 전각안은 독충들로 꽉 차는 데……

소일초는 밖으로 빠져 나오면서 문을 닫고 전각에 불을 붙여버렸다.

더러 빠져 나오는 놈도 있었으나 몇 마리에 불과해서 힘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메뚜기 꿉는 냄새를 내면서 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곤충들은 원래 불 가까이도 못가는 것이니 크지 않은 불과 연기에도 몽땅 죽어버린 것이다.

 

× × ×

 

소일초는 오래간만에 침상에 뒹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저녁 무릅에 신나게 달리고 소동피우고 거기에 불까지 질러 불구경했으니 속이 후련하고 통쾌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눈은 여럿 있었다.

바로 주소아와 한천이기 였다.

[당신이 저지른 일로 인해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불만이 적지 않소. 왜 그들까지 괴롭혔소?]

원천기가 말했다.

[누가 나를 따른다는 건가? 나를 따르는 건 불과 두 사람 뿐일텐데……그리고 지금 자네가 나에게 따지는 것인가? 많이 컸다 원천기.]

[…………]

[전에는 그래도 정통마교주니 뭐니 꼬박꼬박 붙이더니 요즘은 아예 당신이라 부르며 따지기 까지 하는 구나.]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너무 핍박하지 마시오. 당신은 어차피 우리 칠십이기재들이 만든 안배에 따랐으니 우리의 뜻을 따라야 하오.]

원천기가 차갑게 말했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옆으로 다가서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원천기! 뚝하면 칠십이기재들의 뜻 이니 천지파멸의 저주니 하는데, 솔직히 네 마음에는 오히려 무림에 대한 욕망이 들끓고 있지 않느냐?]

한천녀가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야망을 가지만 안된다는 말이냐?]

소일초가 얼굴을 굳히고 일어나 앉았다.

[너희들이 무엇을 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절대로 내위에 군림하려 하지 마라. 지금 내가 너희들의 뜻대로 여기에 있는 것은 나에게도 그럴 필요가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자신하는 군!]

원천기가 말했다.

그들의 사이에 살기가 감돌면서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때 주소아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한천이기! 한 번은 양보해 주마. 그렇지만 다음에 우리가 받을 것은 양보가 아닌 너희들의 목이다.]

한천이기는 어디론가 나가버렸고 소일초가 불만스러운 듯 주소아에게 말했다.

[왜 물러섰어? 그들이 대단하기는 해도 전력을 다한다면 나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텐데……]

[그냥……이 번 만은 그러고 싶었어. 그리고 아무래도 며칠 내에 등천마세에 큰 변화가 생길 것 같아. 그들이 더욱 날뛰는 것으로 봐도 틀림없을 거야.]

[뭔 기미가 보여?]

[이미 전쟁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야. 취풍녀에게도 단단히 일러둬. 대교주와 대항할 때가 다 되었다고……]

소일초는 침상에 벌렁 누웠다.

[난 내키지 않아. 대교주보다 더 무서운 놈들에게 등천마세를 넘겨주어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주소아가 그의 귀에 입을 대었다.

[다 계획이 있어. 조금만 기다려봐.]

 

× × ×

 

소일초의 전각을 멀리서 주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일신에 백의를 걸치고 있었다.

등에는 한 자루의 장검이 걸려있고 몸에는 달인 인양 조용한 기도를 뿌리고 있다.

바로 등천마세의 이교주 마금석이었다.

이때 그는 허공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린다.

[사형이 오독존자를 동원하고도 대실패를 하고 말았다. 오히려 수많은 수하들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는 가볍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어째서……그는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까지도 그런 방법으로 죽거나 다치게 했을까? 불안하다. 대체 이 불안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무적검인가? 그가 나를 이렇게 불안하게 하고 있단 말인가?]

그의 안색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문득 낙엽을 밟고 싶다는 충동이 생긴다.

그 낙엽에 소일초의 우울하던 모습이 진하게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는 다시 독백하듯 중얼거린다.

[하나……이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이 되든……그것은 상관이 없다. 이미 그의 세력은 강대하다. 그를 끌어들일 수 있다면 등천마세는 물론 천하도 장악할 수 있다.]

천하……

그렇다.

이 사나이 또한 그 무공 만큼이나 야망또한 강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등천마세의 이교주이므로……

[무적검……반드시 너를 내 아래에 두리라……비록 네가 강하다 해도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수수수……

낙엽은 어둠 속에서 짙붉은 빛을 뿌리며 떨어져 내리고……

마금석 눈 역시 야망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너를 굴복시키는 것이……등천마세를 장악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면……어떤 수단이라도……]

순간,

그는 주위에 감도는 진한 살기를 느꼈다.

그것은 한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최소한 열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가공한 살기……

그것은 마금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때마다 더욱 진해지고 있었다.

(음……엄청나다. 이 정도의 살기를 뿜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등천마세의 인물가운데서도 사십위 이내의 무공을 지닌 인물들……)

마금석의 눈빛이 어둡게 변했다.

(무적검……그가 벌써 이 정도의 인물을 포섭했단 말인가?)

소일초가 언제 고수를 포섭할 생각이나 했던가?

단지 한천이기가 보내온 인물들일 뿐이지……

하나 어쨌든, 그에게 살기를 뿜어내는 인물들은 단지 열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 수록 잠시간에 그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상대들에 대해 새삼 경각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분명히 등천마세의 인물들이다.

아니, 어쩌면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의 휘하에서 고개를 조아리던 인물일런지도 모른다.

살기는 점점 진해진다.

이대로 앞으로 나아가다가는 그들은 급기야는 자신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마금석의 얼굴에 경악과 분노가 넘치고 있었다.

언제 이런 경우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

몸에서 폭풍같은 신형검기를 일으켰다.

(이대로 걸음을 돌릴 수는 없다. 무적검, 그 자에게 나의 존재를 인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베어야 한다.)

그렇다.

그가 이런 모욕을 받고도 참는다면 등천마교내에서 어떤 소문이 나돌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이곳에서 죽음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는 어두운 하늘을 주시했다.

검을 펼치기 전에 기를 순수하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

순간,

[사형! 그냥 가세요.]

소리……

영혼을 촉촉히 적시는 여인의 음성이 있었다.

한때는 그가 수시로 몸을 탐하기도 했던 여인,

바로 그의 사매인 취풍녀의 음성이었다.

순간,

환상이었듯이 사라져 버리는 살기, 순식간에 마금석을 감싸고 있던 그 무서운 살기가 걷혀져 버린 것이다.

어둠의 한 편에서 취풍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러자,

감도는 죽음보다 정막한 정적……

마금석의 눈에 진한 패배의 그늘이 드리워 졌다.

취풍녀는 손을 저어 어둠속에 있는 인물들을 흩어버렸다.

[사형! 내 행복을 깨려고 하지 말아요.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내 사랑 내 행복을 지킬 준비가 되어있어요.]

마금석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취풍녀는 옛날의 취풍녀가 아니었고 등천마세는 옛날의 등천마세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두려워졌다.

야망은 아득히 멀어지고 영원히 잡을 수 없는 무지개처럼 소일초도 멀리있었다.

사형이 범하기 전에는 그도 진정으로 취풍녀를 사랑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은 몰라도 몸은 언제나 가까이 있다고 믿었던 그녀마저 꿈결처럼 날아가버렸다.

마금석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고 있었다.

일순간에 그는 노인이 되어버린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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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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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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