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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같은 수법에 당하다.

 

 

여명,

아침의 여명 속에 화산의 옥녀봉은 그 장엄한 위엄을 드러냈다.

천야만야의 절벽이 억 년(億年) 이끼를 드리운 채 깔아 내리질러진 옥녀봉의 정상!

바로,

이 옥녀봉의 정상에 칼로 반듯이 자른 것 같은 방원 오십여 장의 석평(石平)이 놓여 있었다.

석평의 옆에는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산정호수(山頂湖水)가 이 추운 겨울에도 얼지 도 않은 채 시퍼렇게 넘실대고 있다.

스으으으……

짙은 운무가 허리를 휘감고 도는 데,

두 사람의 남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가 석평의 한 편에 서 있었다.

어제밤,

옥녀봉의 중턱에서 밤을 지새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정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지금, 소일초는 주소아의 가슴에 비스듬히 머리를 뭍고 서 있다.

결투는 아직 이틀이 남았다……

십 세의 어린 소년으로……

상대가 혈기자의 세 제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 단신으로 도전한 천하의 당돌한 꼬마 신행마동 소일초,

어른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에도 짖궂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던 소일초의 얼굴에,

지금은 진지한 표정이……

자욱한 안개마냥 드리워져 있었다.

하기야……

이 하늘 아래 어떤 자가 이 신행마동의 조그만 가슴에 담겨진 기상천외한 생각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희고 정기가 가득한 얼굴에 아주 다른 사람 인양, 진지함와 심각함을 어두움처럼 드리우고 있던 소일초……

문득,

[이젠 나도 준비를 해야지……]

무슨 준비를 말하는 가?

이 산정에서 그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소아의 성숙해진 몸을 격렬하게 포옹하며 입가에 찬연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불안한 기색으로 아무 말없이 그가 하는데로 다 내버려 두고 있던 주소아,

그녀가 면사속에서 씁쓸하게 웃으며 찬란히 움터오는 옥녀봉의 여명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점을 쳐 봤더니……그다지 좋지 않았어……재수 없이 소과괘(小過卦)가 나왔단 말이야……]

[소과괘? 그게 뭔데?]

 

소과괘(小過卦)!

이는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의 하나이다.

정식 명칭은 뇌산소과(雷山小過)인데 흔히 줄여서 소과괘라고만 부르고 있다.

간(艮)하 진(震)상의 형태로 간상(艮上)과 진하(震下)의 각 괘효만 양효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효이다.

이 소과괘는 원래 만사형통의 괘라고 한다.

하지만,

작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큰 일은 할 수 없으며,

올라가는 것은 효를 거슬리는 것으로 마땅치 않고 내려가면 대길(大吉)하다.

강한 기운이 자리를 잃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니, 이것은 큰일을 이룰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경(易經)의 상(象)에 기록돼 있다.

 

[지금 상황에선 가장 최악의 괘라고 할 수 있어……]

[책은 본래 부터 믿을 만 한 게 아니야……맹자라는 영감도 책이 오히려 사람을 헤치고 눈을 가린다고 했어. 그리고……]

[…………]

[공자도 언젠가 이르기를 바르면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거야……]

[공자 맹자의 말을 그렇게 잘 알면, 왜 다른 행동은 개찬반이야……공자 맹자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닌데……]

조소아가 갑자기 공자 맹자를 방패로 삼는 소일초의 귀에대고 낮은 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글은 대답이 궁할 때만 빌려오는 물건이야.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

소일초의 얼굴이 진지해 지고 몸을 옴기려 하나 주소아가 껴안은 손을 풀어주지 않는다.

츄르르르……

아침의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주렴소리를 따라,

그들의 가슴에 내려앉은 불안은 춤추듯 허공에 아름아름 흩어져 날아갈 것 만갔다.

화산 봉우리 마다 희눈이 융단처럼 깔려있는데……

소일초의 얼굴에 결연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결코 패하진 않겠다……내가 누군데……)

이내,

소일초의 얼굴에 강한 신념이 서려왔다.

그리고 그의 온 몸에 투지가 불타올랐고,

주소아의 손을 풀면서 그의 두 눈은 옥녀봉의 사방을 헤아리듯 살폈다.

그리고 중얼거림,

[비성성을 불러야겠어……여기에 준비 해야 할 게 있어……]

주소아가 허공을 향해가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를 보낸다.

휘이익----휘익-----

화산 절봉들 사이에 끝없이 메아리 치면서 멀리 멀리 소리가 퍼져나가자,

문득,

어느 산봉을 돌아서 새까맣게 날아오는 비행체들이 있었다.

휘파람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멈추고,

소일초의 손바닥에 있는 수정검우가 비성성들을 인도했다.

[이곳의 지형을 바꿔야겠어……]

[……?]

[바위! 바위 알지? 돌말이야. 그래 그걸 주변에서 얼마든지 날라와. 많이 많이 그럼 나중에 술과 고기는 물론 여자까지 하나 씩 붙여줄게……]

돌을 직접 들어 보이면서 비성성들을 향해서 소일초가 소리친다

비성성들에게 무슨 여자가 필요하겠냐 마는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다시 옥녀봉에 두 사람만 남았는데 주소아가 물었다.

[바위들로 뭘 하려는 거지?]

소일초가 그녀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소근거리자 주소아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 바보 나한테는 미리 귀뜸을 해줬어야지……사람 속을 그렇게 태워?]

소일초가 씨익 웃는 순간,

[너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소리,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무심일체의 소리,

그 소리는 어느 새 듣는 이의 영혼을 먹물 같은 마기로 적셔내고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무감정함 속에 형언할 수 없는 마기를 담은 음성의 방향을 따라 재빨리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나 없다.

아침의 여명을 받은 채 한개의 거대한 바위가 죽음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을 뿐……

이때 다시,

[부럽구나……도왕 소선풍이……]

이번의 무심한 음성은 정 반대편의 눈덮힌 거대한 노송이 있는 쪽에서 흘러 나왔으나,

여전히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음성이 순식간에 천지사방에 방향을 바꾸며 잇달아 흘러나오는 것이니……

[…………]

소일초는 얼굴에 긴장을 돋구며 사방을 예리하게 주시할 뿐이었다.

[후훗……놀라운 자질……상상할 수 없는 지혜……]

[…………]

[도왕 소선풍 대신할 수 있음에 결코 부족함이 없도다……하나 애석하게도……네 생명의 끈은 결코 오래 가지 않을 듯하다.]

문득, 소일초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스승을 배신한 추악한 삼수인가?]

이순간,

주소아의 면사에 가려진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당돌한 녀석이군…………!]

소일초는 그의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고 차분한 음성을 흘려냈다.

[혼자만 왔는가?]

[후훗……물론……우리 삼수가 함께 상대해야 할 존재는 없다………]

[내 아버지 도왕 소선풍을 공격할 때도 그 말을 했겠지?]

[…………!]

[이틀 후가 예정된 날이지만 당신이 이렇게 왔으니……아버지의 복수를 신행마동 소일초의 이름으로 하겠다.]

실로 당차고 오만한 말!

돌연,

[후후후훗……건방진 녀석이로군……이 땅에 본좌 사진성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영원히 존재치 않음을 본좌는 스스로 단언하거늘……]

동시에,

그 섬뜩한 무심 속에 담긴 마소와 함께,

오오……보라!

푸석푸석……

전면의 바윗덩이가 거미줄처럼 균열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바윗덩이는 가공할 용암(熔巖)의 분출처럼 이글이글 화염을 폭출시키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후후후훗……!]

싸늘한 괴소에 이어 엄청나게 치솟던 화염은 가공할 청백귀화(靑白鬼火)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화스스스------!

그 거대한 바윗덩이는 한 줌의 물로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속에,

스으으으……

뽀얀 검은 빛 수증기를 일으키며 나타난 한 사람……

그 수증기가 너무 짙어서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헤아릴 수 없으되……

아련히 투영되는 먹물 같은 흑의에 흑포……

모든 것이 검은 빛으로 치장된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무형 중에 사위를 검은 빛 마기로 지배해 가는 저 가공할 기도!

(윽!)

소일초는 어느 새 뻗어나온 무형마기가 자신을 휘감는 것을 느끼며 경악하고 있었다.

(지금 까지 보았던 고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렇다.

나타난 사람은 혈기자의 네 제자 중 셋째인 사진성이었다.

황혼 속에 화산의 옥녀봉으로 사라져간 소일초와 주소를 지켜보던 수증기 속의 인물……

바로 그였던 것이다.

(어떻게 혈기자의 제자가 마공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혈기자의 무공은 기이하기는 해도 광명정대한 것임을 나도 익히 알고 있건만……)

이때,

너울 너울……

뽀얀 수증기에 가려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무형마기의 사진성,

그의 날카로운 신광(神光)인가?

소일초는 이따금씩 실처럼 가는 안광이 주소아의 면사를 꿰뚫어 보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그녀의 몸 구석구석마저 더듬어가는 듯한 눈빛!

(소아를 알아보았구나……)

주소아는 마기가 철철 넘치는 사진성의 눈빛을 받고 몸을 떨고 있었다.

소일초의 놀라움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소아도 알아보고 있다……)

그는 주소아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사진성의 마안을 마주 대항했다.

이 순간,

소일초의 마음에는 짙은 불안이 깔려들었다.

(저 사진성의 무공은 사부께서 전에 말한 바 있는 정통마교의 극마(極魔)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어쩌면……사부님의 일초검공만이 유일한 수단일지 모르겠다……)

이때 돌연,

뽀얀 수증막 속에서 사진성의 음성이 울려나왔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도왕 소선풍이었다.]

[…………]

[그를 완전히 죽임으로 백인장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현재의 정세를 뒤바꿀 수 있음은 물론 강남을 우리 수중에 넣을 수 있 없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

[사실……네가 아무리 날뛰어도 무림의 고수들은 애들로 밖에 생각지 않거든……]

[하지만 오늘 당신은 여기서 죽게돼.]

너울 너울……

먹빛 일색의 사진성을 삼키고 있는 수증기가 한 바탕 어지럽게 흔들렸다.

[이틀 후에는 아마 소선풍과 조예진도 여기에 나타나겠지……오늘은 너를! 그리고 그때는 그들을 죽이겠다.]

[당신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사부인 혈기자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수 도 있어…………]

사진성의 몸이 움찔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내 무공은 이미 그를 넘어섰다. 천하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하물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 정도야……]

너울 너울……

무형마기의 수증기에 둘러싸인 희뿌연 사진성의 몸이,

안개가 확산되어 오듯 소일초의 몸에 가까와졌다.

이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인가?

소일초의 뒤에있는 주소아의 가느다란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래……바로 사숙부(史叔父)였어……나에게 여러 가지 비급들을 주던……이제 기억나……그 마공들……아아……고모부와 싸울 때도 저 마공을……이제 기억나……이제……)

주소아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혼절해버렸다.

황급히 그녀를 안으면서 소일초는 다가오는 사진성의 몸을 향해 검을 뽑아들었다.

(하필……이런 때……)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을 지 자신할 수 없는 상태인데,

주소아까지 짐으로 맡게 되었으니……

하나, 소일초는 피처럼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쨌던……죽여주겠다! 사진성……!)

동시에, 소일초는 가까이 접근한 사진성을 향해 어제밤 그토록 놀라운 신위를 보였던 철검이 뻗어나갔다.

순간,

쉬이잇-----

철검에서 백색 검기가 엄청난 기세로 뻗어나오며 백룡이 하늘로 올라가듯 사진성을 휘감아갔다.

사진성의 눈동자가 잠시 어지럽게 흔들리고,

오오……이런 일이라니?

슈우우우……

번------쩍-------

철검에서 나온 백룡은 살아있는 듯이 사진성을 유린하려 했다.

백색의 용형(龍形)검기가,

사진성의 몸앞에서 폭발하듯 흩어지며 그를 뒤덮는데……

오오……그렇다……

백룡승천(白龍承天)!

이것은 바로 혈기자에게 배운 용형삼도(龍形三刀) 중 제일초인 백룡승천을 검으로 펼쳐낸 것이다.

이 백룡승천의 백색검기는 일단 스치기만 해도 그 무엇이건 한줌의 가루로 바수어 버리고 만다.

스치는 물체가 돌덩이든 쇳덩이든 아무래도 좋다.

스치는 순간 강한 파열음과 함께 바수어 버리는 백룡승천!

그러나,

사진성의 무심한 시선은 힐끗 그것을 바라만 볼 뿐 조금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

[후후훗……백룡승천! 과연 일세를 주름잡을 가공할 도법이지!]

이어,

휘스스스……

사진성을 휘감고 도는 기이한 수증기가 상하좌우 팔십 방위에 싸늘한 빛을 흘려내는 게 아닌가?

순간,

콰콰콰……

콰스스스……

주위 방원 삼십여 장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오오……

무수한 백색검기가 용의 비늘처럼 힘을 잃고 흩어져내리는 것이니……

[크크큿……꼬마야……그 백룡승천은 과거엔 힘을 발휘했을지 모르나 현세에 이르러선 무용지물!]

이때,

[음!]

소일초는 허파가 타는 듯한 침음성을 내뱉으며,

재빨리 또다시 검을 휘둘러 하나의 초식을 구사했다.

동시에,

슈-----우-------웃------슈슈슝--------

기이한 음향을 흘려내며 철검이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곧바로,

휘이이이……

찬란한 아침의 여명 속에 그의 형체가 소멸되는가 싶더니……

스읏……스스스……

살을 에일듯한 찬바람이 사진성을 갈갈이 찢어버릴 듯 사방에서 흉폭하게 몰려갔다.

우르릉---------!

은은한 뇌성마저 동반한 엄청난 강기의 폭풍(暴風),

그것은 천지사방을 가득히 메우는가 싶더니 일시에 사진성의 전신요혈(全身要血)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하나, 사진성은 예의 그 자리에서 다시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의 가닥을 소리없이 움직일 뿐이다.

[육풍장인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는데……]

곧 바로,

피시시시싯------!

수증기와 검으로 펼쳐진 육풍장의 폭풍이 부딪침과 함께 매케한 냄새가 사위를 진동하는가 싶더니,

허공에 가득히 난무하던 북풍한빙의 강기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이어,

주춤주춤 물러나는 소일초!

[음!]

(사진성, 저 놈도 역시 내가 혈기자에게서 배운 무공에 대하여 철저히 알고 있어! 하나……그것으로 말미암아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소일초의 땀으로 흥건한 얼굴에 무서운 광망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차례로 혈기자에게서 배운 무공을 숨쉴 틈을 주지 않고 펼쳐냈다.

이미 극마의 경지에 접어든 일대(一代)의 거마(巨魔) 사진성과,

혈기자에게 배운 무공들을 무서운 검력(劍力)에 실어서 펼치는 소일초와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처음에,

사진성은 담담하고 여유롭기만 했다.

그러나,

초식이 거듭될 수록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환히 아는 초식들 임에도 불구하고 시꺼먼 철검으로 펼쳐지는 그 무공들은 자신을 위협할 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무서운 놈이다. 당년의 도왕 소선풍에 전혀 못지않은 실력이다.)

수증기에 휩싸여 있던 그의 눈에서 차가운 살기가 일었다.

순간,

소일초의 검이 물러나며 그의 왼손에서 새파란 빛이 그물처럼 뻗어나와 순식간에 희뿌연 수증기 속의 사진성의 두 손을 휘감아 버리는 것이니……

[음!]

처음으로 경악에 찬 사진성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때,

소일초의 득의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하핫……이번의 한 수는 이 소일초가 마누라에게 훔쳐 배운 무슨 환상도라는 수법이다.]

[…………]

[당신은 내 철검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어……]

[…………]

[그 방심 때문에 내가 왼손으로 펼친 체대에 당한 거야.]

파란 빛,

그것은 주소아의 체대였다.

그것은 천잠사로 만들어져 있어,

그 어떤 도검(刀劍)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데 바로 이때였다.

희뿌연 수증기 속에서 사진성의 웃음이 섬뜩하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크하하핫……훌륭하다! 꼬마……]

[…………]

[하나 그럴수록 살려둘 수 없는 놈……]

슈우우우……

오오 환상인가?

사진성의 몸이 연기가 빨려들 듯이 소일초를 향해 부딛쳐 오는가 싶더니……

슈---슛------슈------슛------

묶여진 두 손이 사르르 흩어지면서 풀려나왔다.

[헉……또 저 손이……!]

소일초 품에서 막 정신을 차린 주소아가 경악에 찬 외침을 발하고,

[기다렸다! 사진성.]

주소아를 몸 뒤로 보내며 소일초의 철검이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바로 비장의 절초 일초검공이었다.

순간,

사진성의 몸이 까마득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꽈꽈꽝-------

 

장렬한 폭음과 함께 석평이 폭발해버렸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느낄 것도 없었다.

눈 앞에서 번쩍 하는 순간,

일초검공을 펼치던 소일초는 미처 검을 다 뻗기도 전에,

(앗차! 똑 같이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바로 온 힘을 다해서 철검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앞서서 주소아의 몸을 안고 땅을 박찼다.

 

쿠르르르--------

옥녀봉의 석평은 통채로 부서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산정호수로 무너져 내렸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화산 봉우리마다 폭음의 여운이 남아서 여기저기 눈사태를 일으켰다.

그리고,

정적!

이제 정적만이 가득 남아도는 옥녀봉의 정상,

한 순간,

너울 너울……

기이한 수증기에 쌓여있던 사진성의 입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무서운 녀석…그토록 뛰어난 ……놈은 처음이었다……어쩌면 도왕 소선풍를 처치한 것보다 저 놈을 처치한 것이 훨씬 행운이었을지도……]

이어,

푸스스스스……

사진성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가 더욱 짙어졌다.

[놈은 비장의 절초를 숨기고 나를 유인했었다……선수를 쳐서 어제밤에 미리 설치한 화탄을 터뜨리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너울너울……

푸스스스……

[어쨌던, 그놈은 죽었고 나는 살았다.]

바로,

이것이 무림이다.

비열한 수단이니 뭐니 하는 것은 결국 잠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승리는 영원히 남는다.

너울너울……

사진성의 몸은 하늘 아득히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저 천공에 가득한 햇살에 섞여 흔적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죽음 같은 정적 만이 가득한 이곳,

휘이이이잉--------!

한 바탕 북풍이 옥녀봉의 정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주인을 찾아서 작은 바위들을 안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끽끽 대는 비성성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외침만 옥녀봉을 감돌았다.

 

× × ×

 

충격!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중원의 이대 방파인 백인장과 청옥검궁의 분노한 최고수들,

그리고,

신흥방파인 삼성무림청의 세 주인인 천하제일인의 제자였던 혈기자의 제자 삼수(三手)와의,

하늘이 놀라고 땅이 일어날 대 결투……!

절경을 자랑하던 화산 옥녀봉 정상은 황폐하게 어지럽혀졌다.

서로가 처참한 피해를 당한 상황에서 삼수는 도망쳐버렸고……

중원최강을 자랑하던 이대문파의 최고수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

 

중원을 완전히 돌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신행마동 소일초의 죽음,

그리고 그 이틀 후의 대 격돌,

무림은 어디로 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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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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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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