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25. 10:13 박스본 무협지의 추억/환락영웅(歡樂英雄)
[환락영웅] 제 42장 백인장의 다섯 도객
第 四十二 章
百刃莊의 다섯 刀客
얼마 전부터 무림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들이 천하의 각 세력들 사이를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무공의 깊이는 강호에서 흔히 볼 수 없을 정도 였으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들 중의 수 명은 이미 등천마세에도 잠입해 있었다.
어깨에는 비스듬히 걸린 도(刀)……
그들은 군중 속에 숨어서 등천마세의 주인이 바뀌는 대 역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공천의 처참한 죽음도 목격했고 미쳐버린 마금석도 보았다.
그러다 한 흑의인이 분해되어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도 보았다.
그런데……
한천이기가 무적검이라고 알려진 젊은 고수를 향해서 무심코 불렀던 이름,
그 이름이 그들을 일제히 한 곳으로 모이게 했다.
그곳은 등천마세의 인적이 끊긴 곳, 바로 미쳐서 떠나버린 마금석의 전각이었다.
[틀림없이 소일초라고 불렀소. 그리고 무적검 역시 부인하지 않았소.]
여섯 명의 인물 중 한 명이 눈을 빛내면서 말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보기에는 우선 나이가 맞지 않지않습니까?]
다른 한 명이 말했다.
[이건,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오. 비록 장주께서 우리에게 많은 재량을 주셨지만, 일단 먼저 보고하도록 합시다. ]
[좋습니다. 그럼 대정(大鼎)형께서 보고 하십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계속 그를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잠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때는 무심히 흘려들었는데, 그 원천기란 청년이 주소아란 이름도 부른 것 같소. 바로 무적검의 부인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은데, 그것은 바로 작은 주모님의 사질녀(師姪女)분의 이름과 같은 거요. 이건 보통 이상한 문제가 아닌 것 같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소일초라는 이름은 아주 이상해서 보통사람이 지을 이름이 아닙니다.]
숙의를 거듭한 그들 중 한 사람이 빛살처럼 빠르게 등천마세를 빠져나갔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일제히 각기 다른 방향으로해서 소일초의 전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 × ×
[한천이기의 충성수를 어떻게 상대하시겠어요?]
취풍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소일초가 대답 않고 덥석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런 그의 태도에 취풍녀가 당황하며 주소아를 보았다.
주소아는 못본 척 가만히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잠자던 취풍녀의 욕구가 손 잡힌 것 하나에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사마귀는 마금석이 미치는 것을 본 터라 소일초의 갑작스런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제기랄……! 정말이야, 너도 몸 속에 충성수를 가지고 있어.]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순간 취풍녀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얼마 전에 본 그 처참한 광경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그럼……어……어떻게……하죠?]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일초는 다시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사마귀들의 손을 차례로 짚었다.
사마귀 역시 충성수를 마신 흔적이 있었다.
[이건 생각도 못했어. 그들은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을 잘 이용한 거야. 멋지게 당했어.]
주소아가 말했다.
사마귀와 취풍녀는 조심스럽게 주소아와 소일초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일초는 천천히 방안을 걸어 다니며 골몰히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소아! 등천마세의 모든 놈들이 죽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나 아니면 구해주어야 하나?]
사마귀와 취풍녀는 의아했다.
자기들이 중독되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소일초는 등천마세 모든 사람들의 생사를 거론하는 것이다.
역시 주소아도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주소아는 그의 눈을 빤히 보았다.
두 사람의 눈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듯 한 번 깜짝이지도 않고 있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살려주도록 하자……하지만 잘하는 지는 결정이 서지 않아……]
소일초는 주소아의 눈에서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은 죽이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 왠지 나는 자꾸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두려워 져. 네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그다지 좋게 생각되지는 않아……무공은 좋지만 피와 죽음은 싫어.]
주소아는 눈에 눈물을 담고 있었다.
소일초가 고개를 저었다.
[소아 너도 많이 변했어……나 역시,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문제로 고민할 우리가 아니었는데……]
[우린 많이 자랐잖아. 변하는 것이 당연한 거야……]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주소아……
그녀는 지금 가장 감상이 풍부할 나이에 이른 것이다.
비록 몸은 완전한 발육을 했지만, 한 조각 낙엽을 보고도 감상에 젖어들고 작은 일에도 울고 웃는 열여덟인 것이다.
이 점은 소일초 역시 마찬가지 였다.
생각이 많아지고 깊이 생각하는 일이 요즘 들어서는 부쩍 많아졌다.
동선장에서 그가 보던 책도 원대(元代)의 희곡인 고칙성의 비파기(琵琶記)였다.
그 비파기를 읽으면서 깊이 빠져 주인공의 행동과 처지 하나하나에 자신이 희비를 경험했던 것이다.
스스로 호걸로 자처하던 그 인지라 주소아에게 책을 보고 눈물을 흘렀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던 것이다.
[충성수를 해독할 수는 있는 건가?]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투귀가 참지 못하고 그들의 감상을 깨뜨렸다.
[네……간단히요. 세째 아저씨……]
주소아가 눈물을 지우며 방긋 웃었다.
와아-------!
사마귀와 추풍녀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소일초가 원천기의 말을 잘 들을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등천마세의 모든 인물들의 생사를 거론하자 아예 다 죽이고 함께 죽으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털석털석------
사마귀는 의자에서 내려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죽었구나 하다가 긴장이 다 풀린 것이다.
그때,
주소아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러자면 배를 가르고 오장을 뒤집어서 깨끗한 물로 씻어야 해요.]
그말에 취풍녀와 사마귀는 넋이 나가 버렸다.
오장을 뒤집어서 물로 씻는다니……
그냥 죽인다는 이야기 아닌가?
정말인가 싶어서 모두 소일초를 바라본다.
소일초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있다.
[언니! 우릴 속였군요.]
취풍녀가 자기보다 열살은 더 적은 주소아를 언니라고 부르며 달려들어 겨드랑이를 간질렀다.
사마귀는 긴박한 상황에서 깜찍스럽게 속이는 그녀가 기가 막히는지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큰아저씨한테서 배웠을 뿐이에요.]
[하하하하……]
방안가득 웃음이 흘러넘치면서 침울하던 분위기는 완전히 가셔버렸다.
× × ×
다섯 명의 신비한 도객들은 갑작스럽게 안으로 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당황했다.
지금, 무적검의 처소는 그들의 생각대로라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의 긴장과 분노로 가득 차 있어야 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들은 누구의 저지도 받지 않았다.
등천마세의 삼대금역이라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이미 이곳에 운집해 있던 고수들은 한천이기의 거처로 된 등룡각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들어가서 부딪쳐 보자. 적의를 가지지 않은 이상 다른 변고는 없을 것이다.]
한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왔군! 안으로 들어오시지……]
도귀가 웃음을 그치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다섯 도객들은 흠칫 놀라며 어깨에 걸린 도를 한 번 잡아본 후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무적검을 만나러 왔소.]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대표로 말했다.
소일초와 주소아 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서로 담소하고 있었다.
단지 도귀만이 일어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무적검을 만나려는 사람이 상당히 많군, 앞서 만나고자 했던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걸 알고 있을 지 모르겠군.]
[우리는 단지 무적검을 한 번 만나려는 뜻 밖에 다른 의도는 없소.]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이 마주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제히 소리쳤다.
[장충보(張充寶)!]
[장아저씨!]
도귀와 말하고 있던 도객은 망연히 그 두 사람을 보았다.
[조아저씨와 진아저씨,두 분 권아저씨도 오셨군요.]
주소아가 기뻐하며 달려가는 데 다섯 도객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어깨의 도를 끌러들었다.
사마귀의 안색이 확 변했다.
[백인장(百刃莊)!]
대뜸 투귀는 도망부터 치려고 했다.
백인장의 도객들의 도(刀)는 여러 가지 였으나 그 도신(刀身)에 새겨진 문장만은 동일했다.
바로 그 도를 사용한 초대 백인도객의 초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어린도를 포함하여 백인장에는 초상이 새겨진 백자루의 도(刀)가 있고,
그 도 하나하나 마다 고유의 전래 도법이 있었다.
백인장의 수 백 명의 사람들 중에서 백인도객은 오직 백 명 뿐,
백인도객은 백인장의 자랑이고 자부심이며 모든 것이었다.
초상이 새겨진 도는 원로들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전에는 가졌겠지만 후손에게 물러주고 자기는 다른 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백인도객들을 본 사마귀는 자신들의 무공이 높다고 하지만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망치려는 투귀의 덜미를 주귀가 잡아당겼다.
[우리는 백인장의 새로운 실력자를 믿으면 돼.]
그가 다른 세 사람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소아는 달려가다가 그들이 도를 뽑아 들자 딱 멈추어 섰다.
[우리는 당신들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알고자 합니다. 가능하면 숨기지 말고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장충보가 도를 옆으로 비켜들고 신중하게 물었다.
그들은 지금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다.
자신들의 추측이 사실로 나타나기를……
소일초가 그들의 앞으로 격동된 모습으로 다가갔다.
[장충보, 아니, 이제는 장도객이라고 불러야겠지? 오랫만이오. 신물을 보여드리겠소.]
그는 신중하게 말하며 품에서 청옥소도, 즉 패도구룡인을 꺼내어 높이 들었다.
청옥소도에서 맑은 푸른 빛이 어른 거리며 실내를 환하게 만들었다.
[오오……]
[오…………]
다섯 명의 백인도객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외쳤다.
[백인무적(百刃無敵) 수신호정(修身護正)!]
소일초가 청옥소도를 장충보의 앞에서 보였다.
[확인해 보시오.]
무릎을 꿇고 장충보가 두 손으로 받으며 말했다.
[관례에 따라 장충보가 확인합니다.]
그는 신중히 청옥소도를 살펴보았다.
과연, 아홉마리의 용이 휘감고 있는 청옥소도는 진품이었다.
정중히 두 손으로 받쳐서 소일초에게 돌려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 긴장된 눈으로 장충보를 바라보던 네 도객이 일제히 외쳤다.
[조영후가 소장주님을 뵙습니다.]
[진관평이 소장주님의 무사하심을 ……]
…………
소일초는 청옥소도를 회수하여 품속에 넣었다.
그러자 다섯도객이 일어섰다.
[소장주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곳에서 만나다니 이게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진관평이 일어나자마자 물었다.
[소아! 이제 인사하도록 해.]
[장아저씨, 진아저씨, 조아저씨……저는 주소아예요. 안녕하셨어요?]
다섯 명의 백인도객,
장충보, 진관평, 조영후, 그리고 권일화와 권일수 형제……
그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이야기를 듣고 기뻐마지 않았다.
그리고, 소일초와 주소아는 백인장이 파양호 밑으로 숨어 있다가 이제서야 다시 일부 선발대가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백인장을 찾을 수 없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소선풍 도 건강을 되찾은 지 오래로 무공은 그전 보다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한다.
사마귀도 멋쩍게 다섯 도객들과 인사를 하고 거듭거듭 잘 부탁한다고 했다.
진관평이 색귀를 보고 입을 열었다.
[색……]
[그냥 색귀라 부르시오.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터인데 서로 편안하게 부르도록 하시오.]
소일초가 진관평에게 말했다. 그는 이제 백인장의 도객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어 어투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 역시 백인장의 장주가 지켜야 할 율법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터에,
이렇게 성장한 지금도 어린애처럼 막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사마귀도 고개를 끄덕였다.
[색귀! 그래 우리 나이도 비슷한 듯하니 모두 친구처럼 지내세. 그런데, 자네 아정(阿貞)을 기억하나?]
색귀의 얼굴이 확 변했다.
어떻게 그녀를 모를 수 있는가?
백인장에 잡혀가 갇혀 있었던 것도 모두 그녀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서 인데……
[아직 잊지 않고 있는 모양이군, 그녀는 아직도 자네 부인이라면서 수절하고 있다네……]
색귀의 중후한 얼굴은 바닥을 향해 수그려졌다.
모두 조용히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색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둘째야! 이젠 너도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마침 그녀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다하니 정착을 하려무나……]
주귀는 술을 들이켰다.
이런 남녀간의 문제는 누구도 개입하기 힘든 것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은 단지 색귀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진도객! 그녀가 나를 용서할 수 있겠소?]
색귀가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그럼! 용서하고 말고……자네같이 멋진 남자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진관평이 그의 손을 잡았다.
주소아가 웃었다.
[이제는 멋지게 술이나 마셔요. 제가 솜씨를 부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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