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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吹風女가 主祭했다.

 

 

 

삘리리리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그것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 아름다왔다.

그러나,

소일초는 그 아름다운 소리에 내포되어 있는 무서운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잡아끄는 마력을 가진 피리소린 사람들을 엄청난 욕정의 바다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마장탑에서 본 바있는 다섯 번째 석실의 아홉 음공중의 하나와 비슷했다.

무엇인가 빠져 있는 듯 위력은 그곳의 오욕음(五慾音)보다 뒤쳐지는 것 같지만 틀림없이 같은 운율이었다.

 

오욕음,

마교칠십이절기의 하나인 오욕음은 인간에 존재하는 다섯가지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음공이다.

지금 피리로 연주되는 음은 오욕 중의 색욕을 증폭시키는 색욕음이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어버리고 미친 듯한 색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무공,

그리하여 마침내는 스스로 욕정에 몸부림치다가 정기의 고갈로 죽고마는……

 

그 소리에 접하자 소일초 조차도 욕념으로 가득 차오른다.

하나,

(저 등마제주가 속한 집단은 어떤 형태로 정통마교의 배반자들과 연관이 있을까? 마교칠십이절기의 부본으로 저 오욕음을 익혔겠지……)

이 생각은 어떤 확신이었다.

동선장의 침입자들 역시 이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먼저 한천이기의 존재를 알고 동선장으로 선공을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일초는 지금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었군, 칠십이기재의 두 사람인 한천이기가 굳이 등마제에 나를 참석하라했던 이유가?)

그의 생각은 일단 이곳에서 멎어야 했다.

등마제주……

그가 소일초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일초는 그 눈망울에서 극사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등마제주라는 인물을 마주 바라보았다.

주위에서는 비명과 뜨거운 열락의 신음이 터지고……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든다.

이곳은 인간의 세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정이 해일처럼 폭발하고 있는 신의 환락지(歡樂地)였다.

눈빛……

그 욕의 환락지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두 쌍의 눈망울……

하나는 극사의 아름다움을 차갑게 풍기고 있었고……

하나는 무덤덤하고 광채마저 느껴지지 않는 졸리운 듯 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등마들은 소일초를 스쳐가기는 해도 그를 덮쳐들지는 않는데……

문득, 등마제주의 면사에 가린 얼굴이 끄덕여 졌다.

순간,

스스스……

등마제주의 손이 천천히 들려져 소일초를 가리켰다.

그러자,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던 흑의복면인들의 얼굴에 언뜻 경악의 번져 흐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등마제주의 행동이 의외라는 듯 등마제주과 소일초를 번갈아 주시했다.

소일초는 자신을 가리키는 그의 손을 무심히 본 후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그때였다.

[나를 따르시오……]

소일초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음성이나 그것이 여인의 음성인지 사내의 음성인지는 구분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하나, 소일초는 그 음성의 주인이 바로 등마제주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이때,

등마제주는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우측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자로군……)

소일초는 그의 말을 음미하며 천천히 그를 따르기 시작한다.

걷는 그의 눈으로 왕혜려가 들어왔다.

그녀와 정천수호군들은 완전히 악마화 표기를 한 악인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녀의 용모가 중원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뛰어난 절색이었기에……

그녀는 많은 인물들로부터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눈으로 스쳐가는 갈등……

그녀는 정천수호군의 군주, 정천수호군이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 등마제를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한데,

등마제주라는 인물에게 자신들은 노출 되어버렸고, 때문에 그녀는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대로 감행할 것인가 철수할 것인가?

철수하기에는 참혹하게 죽어갈 무림의 젊은 남녀들이 안타깝고,

예정대로 감행하자니 노출된 지금 자기들마저 몰살당할 지도 모른다.

왕혜려는 갈등하고 북궁헌은 감행할 것을 계속 주장한다.

이때, 소일초의 전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들려왔다.

 

-----함께 다 죽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너만이라도 살겠는가……너는 이미 등마제주에게 졌다……깨끗이 물러나서 예쁜 얼굴이나 잘 다듬어라……

 

소일초의 전음을 들은 왕혜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눈에 굳은 빛이 떠올랐다.

그것이 어떤 의미의 것인지는 소일초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순간,

추우우------!

파란 불꽃이 그녀의 손에서 달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때였다.

사방에서 갑자기 참혹한 비명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정천수호군은 철수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면서도 말잘 듣는 여자야.)

아무도 소일초 만은 제지하지 않았고 그는 유유히 등마제주를 따라서 숲으로 갔다.

계속하여 사방에서 비명은 들려오고 있었고……

소일초는 잠시 후,

사망림의 한 황량한 잡초림에 이르렀다.

등마제주……

그는 잡초위에 앉아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피리소리는 끊임없이 비명소리를 뚫고 이곳까지 울려오고 있었다.

지금, 소일초는 등마제주의 전신에서 진한 고독과 우수, 그리고 퇴폐를 느낄 수가 있었다.

[너에게도 이런 감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소일초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도,

여전히 등마제주의 침묵을 지킨 채 달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일초는 앉아있는 그를 보고 등마제주는 달을 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의 강이 한동안 흐른다.

등마제주는 사방에서 울려오는 비명과 소란을 이미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태연하다.

어떤 동요의 빛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소일초에게 돌려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대를 이곳에 부른 진정한 뜻을 아는가?]

소일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네 마음까지 알겠는가]

순간,

등마제주의 눈에 언뜻 묘한 기광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대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주 중대한 일이 있기는 하겠지만……]

[중대한 일이 있지……한 시라도 급하지……]

[… 그 목적은 저 정천보의 인물과는 다른 것이겠지…?]

등마제주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은근한 듯 했다.

소일초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스스스스……

한 줄기 야풍에 잡초림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소일초가 입을 열었다.

[취풍녀! 네가 등마제주라는 사실이 의외라면 의외지……]

갑작스런 소일초의 말,

취풍녀라니……

한데, 등마제주의 말투역시 갑자기 아주 부드러운 여인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비범하군요. 맞아요. 언제 부터 알고 있었죠?]

[등마제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등마제주, 아니 취풍녀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양양의 객점에서부터 소일초에게 관심이 있어서 접근했었다.

십이 인의 절세고수 중 일녀(一女)로서 자리하고 있는 그녀……

소일초는 그녀가 맞은편에 앉는 그 순간 이미 그녀의 몸에서 아주 미약하나마 낮은 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몸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는 여자,

주소아 아니면 취풍녀다.

주소아는 이미 소리가 완전히 없어져 버릴 정도로 무공이 깊어져 일부러가 아니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취풍녀, 극마지경에 이른 그녀……

주소아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을 거라고 조예진이 말했었다.

그리하여, 만사를 재쳐두고 취풍녀가 주는 미혼분을 넣은 술을 받아먹고 잠에 취해 주었던 것이다.

취풍녀는 소일초가 일부러 속아주던 진짜로 속아주던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 무적검 승취풍 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낀 것이었다.

자기를 타겠다는 그의 말은 그녀의 의도와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던 것인데…

당연히 그로 인하여 등마제가 시작되어도 어느 누구도 소일초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던 것이다.

취풍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나요?]

[당연히 알게 되겠지……]

[당신이 일부러 응해 주었던 어쨌던 나는 당신을 이곳에 데려 왔어요.]

소일초의 힘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나를 재물로 다루길 원하나……]

취풍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그것이 이 등마제주로서의 제 뜻이죠……]

소일초는 얼굴가득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위험할 수 도 있을 텐데……]

취풍녀의 면사가 희미하게 날린다.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다.

[정천수호군의 소란도 무관심한 저예요……한데……당신 하나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등마제주로서 애초부터 이곳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말을 한 후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소일초를 주시한다.

[아주 준수한 얼굴이군요……]

독백처럼 중얼거린 그녀는 천천히 소일초에게 다가온다.

소일초는 피식 웃는다.

[준수하다니……취풍녀……네 눈은 껍질 속의 알을 볼 수 있는 재주가 있기라도 한 모양이군………]

[호호호호……그래요. 나의 눈은 정상인데 당신 얼굴이 비정상이지요……]

[그리고 우리 둘 다 비정상인 것이 있지……]

[그게 뭐죠?]

취풍녀가 의아하게 물어온다.

[생각! 너나 나나 생각하는 것이 아주 삐뚤어져 있지.]

[맞아요, 내 마음은 삐뚤어져 있어요. 하지만 당신 역시 그렇다니 기뻐요.]

[내 마누라가 너의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을 걸?]

[제가 당신의 부인이 아니었던 가요?]

취풍녀의 말은 은근하다.

[취풍녀는 세상에 너 혼자가 아니야!]

소일초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일순, 취풍녀의 몸이 흠칫했다.

[세상에 또 다른 취풍녀가 나타났는가요?]

[오래전에……]

말끝을 흐리면서 소일초는 역근천골공을 풀었다.

강한 매력으로 먼저 상대방의 관심을 모은 이후에 절세적인 용모를 보여준다…

이것이야 말로 여인을 사로잡는 색귀(色鬼)의 대표적인 수법이 아닌가?

소일초 그는 취풍녀를 상대로 지금까지 그 수법을 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

조용한 침묵 속에 서서히 변해가는 소일초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서 등마제주의 면사는 가볍게 떨리기 시작한다.

달빛 아래……

새로운 소일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본래의 소일초의 용모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천지간에서 가장 굴강한 표정과 신비롭고 수려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방심을 흔들리게 하는 아름다운 얼굴……

순간,

[음……]

무엇인가를 물으려던 취풍녀의 입에서 신음인지 찬탄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떨기까지 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한 듯……

그의 보석처럼 빛나는 눈망울은 희열의 빛마저 내포한 침묵으로 뿌리고 있었다.

[좋아요……아주 아름답군요……]

무슨 말인지……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한동안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더이상 소일초를 보기가 두렵다는 듯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당신을 제물로 생각한 오늘의 등마제주는 어쩌면 이 땅에서 가장 큰 행운을 잡은 것 같군요……]

소일초는 자신의 역근천골공이 풀어지는 순간……

취풍녀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이한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여인의 몸에서 발해질 수 있는 강렬한 체향과 지분냄새였다.

취풍녀가 동요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감추고 있던 그 여인의 향기를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는 허무와 퇴폐가 깊이 내재된 욕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소일초는 느낄 수 있었다.

주소아에게서와는 아주 다른 느낌,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그것은 오히려 때때로 한천녀에게서 나 보여지는 것 같던 그 느낌이 소일초에게 묘한 자극으로 전해져 왔다.

이때,

취풍녀는 드디어 몸을 일으켜 바짝 소일초에게 다가왔다.

[지금 이 시간은 육욕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시간……당신과 함께 이 축제를 만끽하고 싶어요.]

[내가 결국 제물이 되는건가? 너의 짝짓기 제물이……,이렇게 해서 몇 명의 사내와 관계를 가진 후 죽였나?]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등마제에서는 세 사람 뿐이었어요……]

취풍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일초의 말에 대답한다.

(나쁜 년 그게 적어?)

[그럼 이제 네 사람이 되는 건가?]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요.]

[끔찍하게 들리는군……]

[당신은 내키지 않은가요?]

소일초는 등마제주을 뚜렷히 직시했다.

[나는 항상 여자의 신비에 감탄하고 있지. 여체에서 느껴지는 그 흥분을 즐기는 편이지……]

순간,

취풍녀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

그러다,

[나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였어요……늘 나에게도 이런 우발적으로 사내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이편이 아는 사람보다는 더 짜릿하죠.]

그녀는 소일초에대해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다.

달빛과 야풍 속에서……

그녀의 손은 은밀하게 소일초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오늘 밤……오늘 밤 나는 등마제주이고 당신은 내 짝이에요……그것이 우리가 만난 의미의 모든 것이죠.]

소일초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늘 밤은 내가 거꾸로 여자의 장난감이 되는구나, 어디 소아의 흉내나 한번 내 보자.)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취풍녀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소일초의 음모 속으로 그녀가 빨려드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미끼만 따먹고 도망치는 물고기가 될 것인가?

멀리서 아직도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취풍녀는 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

 

× × ×

 

만월이 스러지고……

등마제는 마침내 그 막을 내렸다.

사망림에 내려진 그 저주가 그 잔인이 끝을 맺은 것이다.

여명은 찾아들고……

이 죽음의 땅은 인간들의 죽음으로 뒤덮혀 있었다.

오오……저 지천에 나뒹구는 수많은 시신들……

그들은 등마제에 제물로 바쳐진 인물들과 이 참혹한 악의 축제를 없애겠다는 원대한 뜻을 품고 들어왔던 두꺼비들,

정천수호군 역시 칠백 여 명이나 죽어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불과 삼백 정도, 그나마도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 등마제주의 힘은 가공할 수 밖에 없었다.

정천수호단의 출동으로 사라지리라 믿었던 등마제가 더 큰 공포의 실체로 무림에 부각된 것이다.

등마제……언제까지 십오야에 피를 뿌릴 것인가?

 

× × ×

 

금릉,

이 고도에 자리잡은 한 은밀한 무림세력이 있다.

소은(小隱)은 산에 숨고 대은(大隱)은 시장에 숨는다는 장주(壯周)의 말을 따랐기 때문인가?

이 집단은 금릉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전혀 무림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한데,

한 대의 사두마차가 소리없이 그 집단이 존재하는 장소로 은밀히 들어갔다.

 

× × ×

 

한 거대한 대전(大殿)이었다.

대전의 내부는 단아하였고 정갈했다.

몇 점의 고서화가 사면 벽에 장식이 되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하나의 태사의가 놓여 있었고……

그 태사의의 앞에는 하나의 차탁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술 독이 올려져 있었다.

아침의 여명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으며……

대전내부가 그 황금빛에 신비하게 물들어 있었다.

[술은 만들어 먹는 것보다 담아서 먹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기분이 영 나질 않거든……]

중얼거림과 함께 큰 잔으로 술을 들이키는 사람이 있다.

눈처럼 희고 고운 손……

그 손은 여인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흩어진 머리칼……수더분해 보이는데

백의 청년의 용모는 이 땅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바로 소일초였다.

[취풍녀를 족치면 될 것도 같은데, 나쁜 년놈들……하고 싶으면 자기가 하지 나한테 곤욕을 치루게 해? 어쨌든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끝장을 봐버려야지……]

나쁜 년놈들,

바로 한천이기인 원천기와 한천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구석에 숨어서 끝없이 그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취풍녀를 족쳐서 알아낼 것 알아내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그에게 한천이기는 이 집단의 핵심부까지 직접 파헤쳐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소아가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완전히 코가 꿰였어……주소아 그 여우한테 난 잡아먹혀 버린 거야……천하의 소일초가 이따우 짓이나 하고 숨죽이고 있자니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

그의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주소아의 얼굴,

사라져 버린 백인장의 작은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주소아다.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인지……

이렇게 술로서 지내고 있는 걸 주소아는 알기나 하려는지……

그리고, 백인장의 식구들……

대체 그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다. 이런 것은 다 주소아가 알아서 해줄 일이다.

지금도 한천이기는 눈썹이 빠져라 어디론가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사주를 받던 정통마교의 배신자 조천수가 만든 등천마교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지도 모르는 잔당들 일 수도 있는 이 신비집단을 파악하기 위해 바쁜 것이다.

문득,

치미는 울화를 술로서 달래는 소일초의 앞으로 한 소녀가 다가왔다.

일신에 청의를 걸친 시비 차림의 소녀였다.

그녀는 소일초의 면전에 이르러 공손히 고개를 조아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무적검 대협!]

[…………]

소일초는 눈도 돌리지 않고 술을 퍼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나타난 소녀가 취풍녀의 네 명의 시비 중 하나인 국향(菊香)임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기에게 눈도 돌리지 않는 소일초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인? 취풍녀?]

[그렇사옵니다……그분은 연화정(蓮花亭)에 계십니다.]

소일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금릉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예의 그 신비집단의 내부였다.

그는 취풍녀과 함께 이곳에 온 후 오일을 보냈다.

이곳은 등마제를 주최하는 비밀세력의 근거지 중의 하나였다.

금릉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이곳은 그 세력의 수뇌들 중 취풍녀의 거처였으며,

이곳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등마제에 참석한 인물들은 모두 피리소리에 심신을 제압당하여 어디론지 가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등마제를 주도하는 세력의 손발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 지난 보름,

대파산 사망림에서 취풍녀는 소일초에게 황당해져 버렸다.

그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도 소일초와 결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한없이 달아올랐는데……

결정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소일초의 남성이 사그라져 꼬마들 새끼손가락만큼 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허전함에 다시 보면 그것은 다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것이었고……

취풍녀 그녀는 객점에서 소일초가 술로서 부렸던 요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래요? 그렇게 내가 싫어요?]

취풍녀가 절박하게 소리쳤을 때,

[나는 거기까지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어……오늘도 예외일 수 없고……]

처근덕스럽게 소일초가 말했다.

[당신은 아내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글쎄, 우리 마누라가 그걸 원하지 않아. 이 정도에서 싫증나면 멈추곤 하지……]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일초의 몸은 여전히 그녀에게 강한 욕구를 일으키게 하는데,

빌어먹을 작자가 주겠다는 떡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한 번도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뭘? 늘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하여 그녀는 소일초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식고 말았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도무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든 말든 이 귀엽고 능청스러우며 우람한 사나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속상한 마음으로 소일초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녀의 몸은 아름답다. 면사속의 얼굴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주소아의 몸에 익숙해져 있는 소일초로서는 도무지 아무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토록 많았던 호기심이고 뭐고간에 주소아를 떠나고 난 후에는 몽땅 없어져 버렸는지 여자에게 눈도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취풍녀는 이곳에 와서도 밤마다 소일초를 불렀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그 묘한 요술을 부려 그녀를 안타깝게 했을 뿐이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어느새 그런 식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의 깎아 만든 듯한 육체미에 깊이 빠지고 그의 마음대로 줄었다 늘었다 커졌다 작았다 하는 물건에 빠져가는 것이었다.

해내든 못해내든 그녀는 밤마다 그걸 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엉뚱한 놈을 만나 이상한 중독에 걸려버린 것이다.

중증이었다.

한데,

취풍녀가 낮에 그를 부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바쁜 듯 했었고 소일초에겐 충분한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침 시간에 소일초를 부른 것이다.

(그 얼빠진 여자가 아침부터 발작인가……)

소일초는 연못에 있는 연화정으로 아침공기를 마시며 걷기 시작했고……

국향은 그의 뒤를 따라 가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제법이야. 좋았어. 점점 더 마음에 들고 있어……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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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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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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