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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正統魔敎의 武功을 익힌 登魔祭主

 

 

 

검은 사두마차의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잠을 자는 소일초……

그 얼굴은 오직 술에 절은 평범한 얼굴일 뿐이다.

하나, 그 얼굴을 주시하는 왕혜려는 내심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그 얼굴이 이끌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저자의 어디에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자신에게 묘한 회의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왕혜려……

과거 수 많은 무림의 청년을 보아 온 그녀가 아닌가?

그 중에는 북궁헌 같은 미남자도 상당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미남자들을 죽 보아오면서 아직까지 이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밤……

그녀의 마음은 이 어두움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정신없이 끌려들면서……

한데, 그녀의 생각을 홀연히 깨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스스스……

마차의 바닥에서 소리없이 꿈틀대며 일어나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흰 머리(白髮),

회색의 눈동자,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칙칙한 죽음의 기운……

절세미남자가 바로 소일초의 면전으로 솟아오르고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문득,

소일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눈은 천천히 그 백발의 절세미남자의 아름다운 손으로 향하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이 내미는 한 장의 서찰을 받아들었다.

순간,

그 절세미남자는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리없이 스물스물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한편,

그 백발의 미남자가 나타나자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그 에게서 풍겨지는 소름끼치는 사기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같은 가공할 사기는 그들이 일찌기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저런 엄청난 사기가 뿌려질 수 도 있다니……대체 그는 누구인가? 저 무적검이란 자의 손에 들린 서찰은 또 무엇인지?)

그들은 의혹과 경악의 표정으로 소일초를 주시했다.

이때, 소일초는 그 신비의 서찰을 천천히 읽어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천이기 중 원천기가 전한 것이었던 것이다.

 

<서략(序略)……등마제주에 대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그는 등마제를 주재하는 인물로 어떤 단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소이다. 그 단체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소이다……>

 

(등마제주……)

소일초는 그 이름을 나직이 되뇌이며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때, 그는 나직이 소리를 내어 읽고 있었으므로 주위의 인물들도 모두 서찰의 내용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신비하고 또한 엄청난 잠재력이 있소이다.……그리고……회주께서 타신 검은 사두마차는 등마제주를 제외한 삼십 육 명의 흑의복면인이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따르고 있으며……그들의 무공은 일파의 종주와 비견될 만큼 가공할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한데 놀랍게도 이 마차 외에도 수많은 마차들이 검은 포장을 한 채 대파산을 향해 질주하고 있소이다……>

 

(모두가 제물을 실은 마차겠지……)

소일초의 얼굴에 가볍게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마차들은 대파산의 중심으로 사방에서 사망림(死亡林)으로 향하고 있으며……그들을 포위한 채 정천보의 정천수호군이 따르고 있습니다.>

 

소일초는 손아귀속에 서찰을 움켜쥐었다.

파지직------

연기를 내면서 서찰은 사라져 버렸다.

더이상 아무 할 일이 그에겐 없다는 듯이……

소일초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그의 진실한 정체에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으니……

무적검……

이것이 그들이 소일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지만,

이 서찰을 전한 조금 전의 신비인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존재가 자신들의 짐작보다 엄청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신비인……

그는 등마제주와 삼십 육 인의 호위들의 포위망을 교묘히 뚫고 들어 올 수 있으리만큼 대단한 무공을 소유했다.

그 정도의 인물을 수하로 거느린 소일초……

그의 존재에 대해 그들은 새삼 다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파아아아……!

돌연 마차의 천정을 뚫고 떨어지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금빛 전서구(傳書鳩)였다.

그 전서구는 곧장 왕혜려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이제야 연락이 왔군……]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수호군의 인물과의 긴밀한 연락용이었던 것이다.

그 전서구의 발에는 죽통이 매달려 있었고 한 장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정천수호군의 군주인 왕혜려는 그 서찰을 빠르게 읽어 나간다.

소일초는 눈을 감은 채 생각한다.

(정천보의 정천수호군의 능력도 보통이 아니군……전서구를 이곳으로 전할 수가 있다니……대단한데……)

소일초 역시 정천수호군의 잠재력을 인식하지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의 뇌리에는 엉뚱한 생각도 있었으니……

(등마제주……그가 등마제를 주관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이라면……그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겠지……그럼에도 불구하고……그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자신있다는 말인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치밀하며 어떤 계획적인 신경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천수호군……

등마제주……

그리고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치의 빈틈도 찾아 볼 수 없는 계획 속에 움직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한편,

서찰을 읽고 난 다음 북궁헌과 왕혜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받은 서찰의 내용이 소일초가 받은 서찰의 내용과 완벽하리만큼 일치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차는 더욱 더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으며……

대파산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사망림(死亡林),

이곳은 죽음의 숲이다.

하늘이 외면하고 인간마저 외면한 죽음의 오지(奧地),

그 버려진 땅은 광대하다.

방원 백여 리가 안개의 밭이요……

무성한 잡초만이 늘어진 황량한 광야이다.

황폐한 땅, 오직 가시덤불과 잡초들만 뒤덮혀 있다.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사목들……

독충들이 우글거리며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부터 버림 받은 땅……

그 위에도 십오야의 만월(滿月)은 떴다.

한데,

그 만월아래……

모여드는 이 일단의 무리들……그리고 검은 마차……

모여드는 무리들의 소매에 붉은 악마화가 그려져있고, 사망림은 마두들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악마화을 그려넣고 사망림에 모여들고 있는 인물들……

오늘은 보름달이 뜬 날이다.

 

-등마제(登魔祭).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이 죽음의 땅에 인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악마화를 그려넣고 나타난 인물들은 바로 이 등마제에 초대받은 악인들이고,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잠재된 온갖 악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기대에 사로잡히면서……

그들의 수효는 어림잡아도 이 천여 명……

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망림으로……사망림으로……

마차들도 사망림으로 다가들고,

그 가운데 한 대, 바로 소일초가 타고 있는 검은 사두마차 역시 이때 사망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일초는 느끼고 있었다.

사망림의 전체를 뒤덮고 있는 엄청난 마의 기운을……

그 기운은 광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의 폭발이요, 욕망의 분출이었다.

(등마제주……등마제……과연 여기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취풍녀가 관련이 있다는 외에는……)

소일초의 마음은 의욕보다는 회의가 더 많았다.

주소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어 참석한 등마제,

하지만 일단 부딪쳤으니 닥치는 대로 일은 해보고 볼 일이다.

이때,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애써 긴장을 감추려 하는 태도가 역력하게 소일초의 눈에 들어왔다.

[긴장하고 있는가 흥분하고 있는가? 궂이 숨길 필요야 있나 다 사람마음에 있는 것인데.]

소일초의 말은 장난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눈빛을 빛내며 잠잠히 있었다.

밖에 있는 적들도 무섭지만, 마차 안에 있는 괴상한 청년 무적검도 종잡을 수 없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소일초는 마차 밖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검은 사두마차가 사망림의 깊숙한 지점으로 진입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한천이기가 계속하여 그에게 전음으로 앞 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망림……

이곳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돌연, 검은 사두마차가 그 움직임을 멈춘다.

잡초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리는 곳이었다.

소일초는 눈을 떴다.

그러자 왕혜려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의 해맑은 동공이 가득 그를 담고 있었으며 그 어떤 기이한 감정을 풀어놓고 있지 않은가?

그런 왕혜려를 보며 소일초는 빙긋 웃음 지어 보였다.

그런 후 말했다.

[너무 늦었어……이미 임자있는 몸이야……]

순간, 왕혜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의 매정한 말에 화가 나기도 했던 것이다.

소일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드디어 구렁이 뱃속이야. 두꺼비 친구들 잘해봐……]

왕혜려 역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떻든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겠어요……]

그녀의 말투에는 감출 수 없는 정이 깃들어 있었다.

소일초는 그런 그녀가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곳에서 만나게 되길……기왕이면 친구도 적도 아닌 사이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한데,

그 말이 막 끝나자마자,

쿠르르르------!

마차의 철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한 명의 흑의복면인이었다.

눈빛이 회색빛을 띠고 있는 그 흑의복면인은 잠시 마차 안을 살핀 후 감정없는 억양으로 말했다.

[먼길을 오느라 수고들 했다……이제 그대들은 이곳에서 가장 안락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행운이요……다시 맛볼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죽음을 행운이라고 말하는 이 흑의복면인,

[내려와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흑의복면인의 말은 죽음의 기운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사망림에 소용돌이치는 죽음의 기운 만큼이나 진하게……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아무 말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어,

소일초 역시 검은 사두마차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안개의 소용돌이가 무섭게 사위를 휘감고 있었다.

달빛에 물든 푸른 안개……

그것은 마치 지옥을 방불케 할 만큼 사망림을 음사하게 침잠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은 사두마차를 중심으로 어둠 속 여기저기에 보이는 저 수 많은 붉은 악마화……

그것은 악마의 혓바닥처럼 사이하게 어둠 속에서 그 푸른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음……대단하군. 어떻게 되던 빨리 신나게 한판 붙어라, 어떻게 좀 정리가 되야 뭘 알아 내기도 쉽겠지……이 어르신은 어부지리를 취해주마……)

소일초의 마음은 야릇한 기대감에 차있었다.

이런 기분은 아마 마장탑에서 나온 뒤 처음으로 느껴본 것이리라.

스스스……

이 악마의 땅 위로 죽음의 기운을 뿌리며 스쳐 지나가는 일진 음풍……

소일초는 표표히 옷자락을 나부끼며 사방을 살폈다.

우선, 수십 대의 또 다른 마차 즉 검은 사두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검은 사두마차 역시 이 죽음의 제전에 쓰일 제물을 싣고 온 것이리라.

인간 제물들……

그들은 대부분이 청년들과 소녀들이었다.

용모가 준수한……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무림의 기재기녀(奇才奇女)들임을 느끼게 하는……

한데, 이때 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곧 전개될 이 죽음의 제전에 대해 엄청난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공포는 무엇으로도 가다듬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그들이 사망림에 들어 온 이상 그들은 체념 이외에 달리 어떤 행동을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정천수호군의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소일초는 다시 시선을 돌려 방금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사두마차를 바라보았다.

붉은 악마화이 걸려 있는 검은 사두마차,

그 주위로는 정확히 삼십 육 명의 흑의인들이 마치 흔들리는 안개의 일부분인 양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즉,

그들은 검은 사두마차의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일초는 생각했다.

(한천이기의 말대로 저들의 무공은 일파종사의 경지에 올라있다. 놀라운 일이로군……등마제의 일개 주구들인 저들의 무공이 저정도라니…정천수호군은 버겁겠는데……)

한데 이때,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의 표정은 완전히 경악에 질려 잇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방금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사두마차의 지붕에……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나래를 접은 채 고요히 앉아 있지 않은가?

한데 그 독수리의 날카로운 두 발 사이에 끼어있는 몇 마리의 날짐승,

그것은 바로 정천보의 인물 사이에 연락용으로 쓰이던 바로 그 금색 전서구들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정천보의 모든 기밀이 등마제주라는 인물에게 완전히 간파당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정천수호군주 왕혜려와 나머지 정천보의 정천수호군 소속 인물들이 경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소일초는 혀를 찼다.

[그 정도는 짐작했어야지……등마제주도 합바지는 아닌데……머리나빠 고생들이 많겠어.]

그리고,소일초는 계속하여 등마제주라는 인물을 살폈다.

등마제주,

그는 쉽게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나 안광이 극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인물이라면 그를 발견할 수가 있으리라.

그는 마차의 전면에 있는 붉은 악마화 앞에 앉아있었다.

악마화와 동화가 된듯 자연스럽게 어우려져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었다.

달빛은 다시 혈응의 핏빛 깃털에 반사되어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데……

신비롭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그야말로 극사한 것이었는데 발견하기는 어려워도 보는 이들에겐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을처럼 환상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그 인물이 바로 등마제주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일이었다.

그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면사의 사이로 드러난 눈망울은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그런 그의 눈망울을 보며 소일초는 느낄 수가 있었다.

(흔적을 다시 발견했군……한천이기가 좋아하고 있겠지……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자……)

그렇다.

극마의 경지에 이른 인물만이 지닐 수 있는 눈빛을 등마제주는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부터 소득이 있으니 빨리 동선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등마제주의 배후 집단 만 알아내면……하지만, 그 세력을 경시해서는 안되겠는데……어쩌면……등마제주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아닐 텐데……극마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많이 있다면 옛날의 정통마교보다 오히려 더 강하다는 말……)

정통마교에서는 오직 구마존 중에 천마존 만이 극마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

등마제주 역시 극마의 경지에 이른 인물인 것이다.

소일초의 생각은 이즈음에 이르러 있었고……

다시 그의 생각이 이어질 즈음,

문득, 등마제주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라!]

단 네 마디의 음성이었다.

어떤 인간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무심무정한 음성이었다.

한데 그 음성이 막 떨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삐리리리……삐리리리……

사람의 감정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그 소리……

어쩌면 이 피리소리는 등마제주의 음성과 동일한 시간에 터졌는지도 모른다.

한데,

그 피리소리에 이끌린듯 사방의 붉은 악마화들이 움직인다.

아니, 붉은 악마화를 새긴 마인들이 등마제에 바쳐진 제물들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소일초는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보의 인물들을 쳐다보았다.

(왜 아직 움직이지 않는가? 시작하려면 지금 해야지……멍청하게 이미 들통난 판에 더 기다려서 전멸할 작정인가……)

기습과 암습은 철저히 비(秘)로 시작되고 비(秘)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한데, 바로 정천보의 이번 거사는 보안의 부족으로 완전히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주는 그것에 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그가 정천보의 비밀을 파악했다는 말에 대해서……

하나……독수리의 발가락 사이에 죽어있는 그 몇 마디의 전서구는 그가 이미 정천보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보여 주는 것……

아무리 천하의 기재인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라 해도 이때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비명이 들린다.

붉은 악마화를 든 수백여 명의 인물들이 제물들을 덮쳐 들면서 일어난 비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터져 오르는 신음……

그것은 욕정의 폭발이요, 광란이었다.

소용돌이 치는 안개……

뜨거운 신음과 공포에 질린 비명이 병행하여 들리고……

마침내 등마제의 제전 중 육욕(育慾)의 제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소일초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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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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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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