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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正統魔敎의 秘史

 

 

 

[아아악!]

[아악!]

비명!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터지는 비명은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조금이나마 찾았다가 다시 고통의 나락속에 빠져들어가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그들의 몸은 전신 뼈마디가 수 없이 이동하고,

다시 수없이 근육과 오장(五臟)이 이그러졌다가 재위치를 찾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몸도 백색의 찬란한 광휘를 피워냈다.

잃었던 의식이 다시 찾아들었고 의식은 다시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혼절하기를 몇 번 인가?

헌데,

지금,

스스히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옷이 터져나가 버린 알몸에 돌연 지금까지의 백색 광채와는 다른 우유 빛 옥(玉)처럼 투명한 서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옥처럼 투명한 서기는 더욱 현란히 피어나더니……

급기야 그 서기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가지 않는가?

거기에는 오오……

언제 그쳤는가?

그들의 입은 부드럽게 다물어져 있고,

언제 변해 버렸는가?

그들은 완전한 성인(成人) 남녀의 모습이 되어,

고통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 되지 않는가?

급기야는,

그들의 나신에 강인한 서기마저 어려 신이 빚은 미녀와 미남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본시,

백송균화는 땅의 축복을 가진 영물이었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기를 지닌 것이었다.

축복이 큰 만큼 복용시의 고통 또한 컸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해 주면서……

두 사람의 전신을 엄청난 고통 속에서 재조립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설의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완전히 다른 체질과 모습으로 바꾸어 버리는 크나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두 사람……

비록 무공과는 상관이 없지만 가장 건강한 몸을 지니게 되어 그 수명을 추측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의 손에서 생명의 조화를 전할 수 있는 땅의 축복을 지녔으니……

 

× × ×

 

[으음……!]

소일초와 주소아가 동시에 천천히 의식을 회복한 것은 백송균화을 복용한 지 얼마가 지나서 인지 알 수 없다.

눈을 뜨고 옆을 돌아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쳤다.

[살았구나!]

[누구냐!]

두사람의 몸은 역근천골공으로 어른으로 변신했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그때는 억지로 만들어 낸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완전히 성숙해져 버린 것이다.

만약,

그들의 어리던 몸이 세월이 흘러 최전성기에 들게 된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몸은 변했지만,

여전히 어린 본모습이 남아있고 특히 목소리는 여전히 비슷했다.

[소아구나……]

[그래, 나야……]

주소아가 기뻐서 소일초를 안다가 뭉클 거리는 자기의 가슴을 인식하고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밀쳐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전에 봐왔던 소일초의 알몸과는 느낌이 달랐다.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듯 부끄러움이 밀려든 것이다.

몸을 돌리고 누워서 주소아가 말했다.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아……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역근천골공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 데도 몸이 커져 버렸어.]

[아마, 백송균화 때문일 거야……]

주소아는 지금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지송목의 갈라진 틈새에는 이제 은은하던 백광도 찬란하던 백광도 없어져 버렸지만 전혀 시력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이 석동안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고 지금 그들의 어둠의 장애를 느끼지 않는 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몸이 아주 편안해……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몸은 편하지만……마음은 조금 불안한데……]

소일초가 느긋하게 하는 말에 대한 주소아의 소감이다.

[왜?]

[잘 모르겠어……네가 옆에 있으니까 이상하게 자꾸 불안해……]

[…………]

[네가 다시 장난친다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아……지금도 자꾸 숨이 가빠져……]

여전히 소일초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주소아가 뛰엄 뛰엄 말했다.

[나도 숙쓰러운 것 같아……어른이 돼버렸나봐……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게 언제지?]

[잘모르겠어……백송균화를 먹기 전에는 한 칠일 쯤 지난 것 같았는데……]

[설마……한 십 년 정도 흘러버린 것은 아니겠지?]

돌아누운 채,

도란도란 속삭이는 그들의 전신(全身)에는 생명의 환희가 찬란히 용솟음치고 있었고,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위대한 평화와 아늑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도저히 느낄 수 없으리 만치 몸은 가벼워져 있었다.

하나의 깃털보다 가벼워 입김만 <호> 하고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여기서 누워만 있지 말고 한 번 돌아보자……]

[혼자 갖다와……나는 근처는 대충 돌아봤어……]

주소아는 돌린 몸을 웅크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소일초는 일어서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 성숙한 아름다움에 묘한 기분이 들어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전에처럼 마음대로 그녀를 주무르고 누르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혼자간다. 여긴 완전히 지옥이군, 어디서 귀신이 나올지 모르겠어……]

밖으로 나가며 소일초가 중얼거린다.

순간,

누워있던 주소아는 부쩍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귀신이 나오기라도 할 듯 주변은 침침했고 안개마저 깔려있었다.

[같이가……]

벌떡 일어서서 소일초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녀의 백색 나신이 눈부시게 안개를 가로질렀다.

 

밖으로 나온 소일초는 의아심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허나,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와……

소용돌이치는 미증유의 사기와……

거대한 석순처럼 끝없이 늘어 선 지송목의 숲……

소일초는 흠칫 몸을 떨었다.

(호……혹시 여긴 진짜 지옥이 아닐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죽었다면 분명히 지옥인데……)

소일초는 급히 자신의 오른 편에 있는 주소아의 손등을 힘주어 꼬집어 보았다.

[아얏! 왜그래?]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원망스런 듯이 쳐다보았다.

소일초의 꼬집는 솜씨는 여자 못지 않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픈 감촉이 전해진 것이다.

[음……분명 죽은 건 아니야……]

[기가막혀서……내가 살아있다고 말했잖아!]

고개를 들이대면서 소리를 지르는 주소아다.

그러나 못들은 척하며……

[음……그렇다면……이곳은 산정호수 속이란 말이지?]

주소아는 소일초가 자기를 무시하는 듯 하자 다시 대들려고 했다.

그때,

[평생 여기서 살거야?]

소이리가 들리자 마자 성질을 죽이고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일단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우선 이곳을 살펴보자. 꼼꼼히 둘이서 살펴보면 어딘가 밖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거야.]

그들 두 사람은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기이한 안개의 소용돌이를 헤치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

이 지송목의 숲을 헤매었을까?

문득,

걸음을 옮겨가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발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굳어진 곳……

더이상 커질 수 없도록 크게 떠진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못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와아……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옥과 같은 이곳에 저토록 큰 두개의 석탑(石塔)이 있다니……!)

놀랍다.

두 시간을 이 주위를 헤맨 동안 그가 본 것은 오직 지송목의 숲 뿐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사방이 완전히 막힌 것 같은 이곳에,

도대체,

그 크기가 수 만년을 지냈을 지송목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두 개의 석탑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언뜻 보면 석탑과 석순같은 지송목이 분간이 가지 않을 듯 했다.

그리고,

불과 이십여 장쯤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석탑은 쌍둥이 마냥 모양과 크기가 똑 같았다.

오오……

그 탑과 탑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사이한 안개,

실로 귀기롭다.

그리고 몸서리쳐지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헌데,

그 탑과 묘의 주위에 나뒹굴고 있는 저 수 많은 백골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것……

[여…… 여기도 인간이 살았던 때가 있었나봐……]

주소아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그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혹을 참지 못하고 급히 우측에 있는 검은 석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통마교(正統魔敎)>

 

석탑에 핏빛으로 쓰여진 단 네 글자……

(정통마교?)

소일초와 주소아는 들은 듯도 만듯도 한, 하지만 생소한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소일초는 엄청난 악의 기운을 토한는 석탑의 문을 열었다.

쿠르르르르……

기분 나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층 석탑의 내부,

쿠쿠쿠……

싸싸싸……

엄청난 무형의 기운이 악마의 입김처럼 이동하고 있을 뿐……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석전은 텅 비어 있었다.

허나,

석전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핀 소일초와 주소아는 실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석전의 바닥,

오오…… 그곳에 가득 널브러진 저 수 많은 백골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발 끝에 닿는 백골의 섬뜩한 감촉,

그리고 밟자마자 부스스 먼지로 화하여 날리는 백골들을 보며 마음만은 아직 어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찔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으음……오래 전에 이곳에서 큰 혈전(血戰)이 벌어진 것 같구나……)

생각하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석전을 살펴나갔다.

헌데 문득,

석전을 살피던 주소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저것은?)

가슴에 검이 박힌 채 나뒹굴어져 있는 한 구의 백골,

기이하게도,

그 백골의 한 손은 썩지 않은 채 본래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은히 혈광(血光)을 뿌리는 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손을 봄으로써 알 수 없는 가공할 살기와 잔인한 무정을 느끼고 전율했다.

어느 새,

그들은 그 손 가까이에 접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손 주위를 살피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그 손 옆의 바닥에 새겨진 몇 글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부……분하도다……정통마교(魔宗會)의 처…… 천년야망(千年野望)이 배신자들에 의해 물거품……되다니……>

 

백골의 주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 글씨를 새긴 듯 손끝이 마지막 글자에 얹혀져 있었다.

[히유……천년 이래……천년이 얼마나 긴지나 알고 썼을까?]

바람 빠지는 소리를 터뜨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통마교란 이름도 생소하지만……

천년야망이란 가공할 욕망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의혹을 느끼며 또 다른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주소아와 소일초는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석탑의 위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층 석전의 구조도 일층의 석전과 구조가 비슷했다.

수 많은 백골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역시 기이하게도 한 구의 백골 만이 글을 남기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새겨놓은 듯한 글자들에서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석전에 백골로 나뒹굴고 있는 자들이 거의 정통마교(正統魔敎)란 신비단체의 인물들이며……

글자를 남긴 인물들이 구마존(九魔尊)의 일 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정통마교의 주인인 구마존……

그들은 각층마다 한 명씩 죽어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사층……육층……팔층의 석전으로 올라갔고,

석탑의 그 팔층까지도 상황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의 사실 외에는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없었다.

마지막 십층,

쿠우우우-------!

기이한 소용돌이 만 가득찬 텅빈 석전의 내부 역시 수 많은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다.

유심히 사방을 살피던 소일초의 눈에 언뜻 경악의 빛이 스치면서 주소아를 자기의 등뒤로 끌어당겼다.

[저기……사……살아있는 사람이……]

주소아도 그 것을 보았는지 손가락을 가르쳐 보였다.

오오……

석전의 한쪽 석벽에 반듯이 기대어 앉아있는 한 사람……

백골이 아닌 완전히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은 시신이야……]

소일초가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주소아도 그 중년인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신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시신은 시신이었으되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시신이었다.

차고 냉혹하며……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인의 모습을 한 시신,

그의 맑고 깊은 눈에는 지금도 은은한 자광이 폭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니……

이 자가 살아 있었을 때 얼마나 가공스러운 무공을 지녔는지 가히 상상키 어려웠다.

순간,

[정통마교……정통마교……정통마교……]

딱!

소일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이런 멍청이……그새 정통마교를 잊어버리다니. 사부께서 그렇게 당부했는데……에잇. 폭발로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정통마교를 알아?]

주소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체를 봐! 죽은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잖아……이게 바로 극마의 경지야……그 나쁜 놈 사진성 역시 극마의 경지였어……참 기억은 찾았어?]

[응! 별 것 없었어. 나중에 이야기 해 줄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동안 경이로운 시선으로 중년인의 유체를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는 중년인이 기댄 석벽에 피로 쓰여진 글씨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구마존 중 천마존(天魔尊)이다.

아아……그 어느 세월에 있어 본인의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날지 모르지만……나는 이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노라……

영원히 이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도……

이 원통……이 한……이 증오를 달랠 수 없기에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노라……

내 이제 여기에 정통마교(正統魔敎)의 탄생과 종말을 적으리니……

우선 이 글을 적을 때가 대명(大明) X 년 X 월 X 일 임을 밝히는 바이다.>

 

[대명 X 년이라고? 그렇다면 언제란 소리야?]

 

소일초의 맑은 동공에 놀라움의 빛이 가득 넘쳐났다.

허나 곧,

가슴을 추스리고 주소아와 함께 한과 원이 절절이 배인 처저란 비사(秘事)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정통마교는, 본시 천 년 전에 탄생한 마의 기본이며 본산인 십만마교의 본류이다.

이 땅에 마(魔)란 이름을 정착시킨 마의 주창자(主唱者)들……

본 정통마교에서 그분들을 제일대(第一代) 구마존이라 칭한다.

그 분들은 영원히 마가 정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부정해 왔던 인물들이었다.

그분들은 드디어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세우기에 이르셨다.

마로써 정을 제압하려는 천 년의 대 계획……

그 위대한 계획 아래 탄생한 것이 정통마교였다.

그 분들은 천 년의 원대한 계획으로 정통마교주를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준비의 첫 단계는 천하에 산재한 모든 마공절예(魔功絶藝)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이 땅에 위대한 정통마교주가 탄생할 때까지 자신들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제이대의 구마존을 점지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잃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글의 광오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일 다 제쳐두고 이런 쓸모없는 짓을 천년 씩이나 할려고 했을까?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들이야……]

소일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 글의 광오함을 탓하면서 도 그들은 계속 읽어갔다.

 

<……이런 방법으로 구마존은 그 시대 가장 뛰어난 마공절예를 모았고……

또 그 후임자 즉 차대 구마존을 찾아 그들의 역할을 물려주는 이 장엄한 진행은 제팔대에 이르도록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헌데 제팔대에 이르러선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다.

제팔대에 구마존은 마공절예들을 더 이상 모으기만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공절예들을 체계화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천하에 산재하는 기재들을 납치해 오게 되었다.

그들은 마장탑(魔章塔)에서 거쳐하며 오직 마공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의 몸은 전혀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파괴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석벽의 비사(秘史)를 읽어 내리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하에 산재한 기재(奇才)들을 납치하여 몸을 망가뜨리고 사악한 일에 동원하다니……

[무림에 때때로 있어왔다는 어린 기재들의 실종사건이 이들에 의한 것이었다니……기가 막히는데?]

주소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대단한 놈들이 대단한 짓을 하는군 그래. 그래봤자 자기들에게 고물도 떨어지지 않을 텐데……]

소일초도 서늘해 지는 가슴을 느끼면서 말했다.

허나, 그의 시선은 다시 석벽의 비사를 자세히 더듬기 시작했다.

 

<그들 기재들의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총 칠십이 명의 이들 기재들……

그들은 우리 제팔대에 이르는 구마존이 마장탑에서 무려 팔백 년(八百年)의 세월에 걸쳐 수집된 수백 종의 마공들………이 엄청난 마공들을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바 천재적인 두뇌로 새롭고 고강한 전혀 새로운 마공으로 통합해 가며 만들어가니……

그것은 실로 엄청나고도 거대한 작업이었다. 무림에 언제 이토록 많은 기재들의 힘이 한곳에 집결된 적이 있었던가?

무려 팔백 년의 세월에 걸쳐 난세마다 탄생한 최고의 무학들을 수집한 것에 그들의 두뇌가 결합되어……

그 작업은 무려 백 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 제팔대 구마존은 제구대 구마존을 점지하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넘겨 주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을 전하고……우리의 모든 무학마저 그들에게 전한 뒤의 그때……

오오……배반……배반이 이루어졌다.

불과 약관의 나이로 구마존으로 점지된 새로운 구마존이 일시에 배반을 한 것이다.

그 배반자들은 정통마교의 칠백 고수를 죽이고……그들을 동조한 정통마교의 삼백고수들을 이끌고 거기에 기재들이 만들고 있던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의 부본을 지닌 채……

오오……이 마의 성역(聖域)을 떠나니……

오오……이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조천수(趙千手)……제구대 천마존 조천수……에게 정통마교의 모든 정령들이 저주를 내린다……저주를……>

 

소일초와 주소아의 낯빛이 무겁게 일그러졌다.

[조천수가 정통마교의 제구대 천마존이었다니……제기랄 칭찬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일초가 주소아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조천수……

바로 등천마교주(登天魔敎主)로 주소아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의 이름이 아닌가?

비록 그 대가로 처참하게 목숨을 바치고 등천마교의 멸망까지 가지고 왔지만……

그렇다면,

등천마교는 이곳을 배반하고 떠난 제구대 구마존의 무리들에 의해 탄생된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분노한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손에 일제히 때죽음을 당했는가?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다.

배신을 하고 나간 그들이 불과 몇 십 년 되지도 않아서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한채 처참하게 죽고 말았으니……

진정,

하늘은 인간의 모든 선악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있단 말인가?

주소아는 망연한 표정인데……

소일초는 도무지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혈기자의 무공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정통마교의 배신자인 조천수 등의 등천마교 본단을,

혈기자는 단장(短杖) 하나로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몰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무려 이천칠백여 등천마교 본단의 인물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일제히 머리가 터져나갔다는 것을,

소일초는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약했던가……아니면 혈기자의 무공이 진정 신과 같단 말인가?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진짜 반로환동을 한 분이니…… )

소일초는 자기의 무공에 자만할 수 없었다.

자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구마존같은 고수들을 단 한 수에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일초무적의 검공으로 죽인다고 하더라도 어찌 조금의 반항조차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소아를 보았다.

[조천수……그가 우리 집안의 모든 행복을 앗아간 장본인이야……그자만 아니었으면……부모님도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테고……할아버지도 숙백부들에게 혈겁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겠지……그럼 그들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테고……나는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주소아는 <조천수>라는 이름을 보면서 원한에 찬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소일초가 그녀의 어깨를 당겨안으며,

점점 희미해져가는 글자를 다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이로써 정통마교의 천 년 안배는 모두 깨졌다.

허나 불행 중 다행히 배신자들은 마장탑에 들어 기재들의 손에 의해 완성됐을 마교칠십이절기를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미 그들의 배반을 예감했음인가?

칠십이기재들은 미리 마장탑의 모든 통로를 완벽하게 폐쇄해 버린 것이다.

결국 마장탑은 칠십이기재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으니……

어느 세월엔가……

그 어느 세월엔가……

누구든 마장탑에 드는 자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어 진정한 정통마교주가 되리니……

바라건데……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정통마교주로서 무림 위에 군림(君臨)하기 바라노라……>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더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이 끝난 때문이다.

[친구 미안하게 됐네……이미 배신자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자네 곁에 갔다네……혈기자 그 젊은 형씨께 감사하게……]

소일초는 주소아를 웃기려는 듯 해학적으로 말했다.

주소아는 그의 말에 웃음을 띄면서 그를 밀쳤다.

[비켜봐! 어딘가에 옷이 있을 거야!]

[그대로가 더 좋은데……]

풍만하고 탄력있으며 우유빛이 어려있는 주소아의 알몸 아래위를 스윽 훑어보며 소일초가 말한다.

[색마……덩치가 클 때나 작을 때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구나……]

과연,

주소아는 석전의 이구석 저구석으로 알몸으로 뛰어다니더니 두 벌을 옷을 찾아냈다.

[쳇, 여자건 없어. 기분이 찜찜하기는 해도 별 수 없지. 우리 이제 마장탑인가 하는 데나 가보자.]

옷을 재빨리 걸쳐입으며 주소아의 얼굴에 강려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무공에 대한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무림에서 잡혀온 칠십이 명의 기재가 창안했다는 마교칠십이절기가 몹시 궁금한 것이다.

소림칠십이절기라면 몰라도 마교칠십이절기라니……

그녀의 관심은 이제 조천수 따위는 잊어 버리고 온통 마교칠십이절기로 가 있었다.

이때,

[우리 밖에 없는 데 옷은 무슨 옷이야. 지금이 가볍고 좋지……]

소일초가 이미 그녀의 성숙한 나신에 익숙해져 투덜거린다.

[너 때문에 옷을 입는 거야. 혹시 무슨 짓 하자고 달려들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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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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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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