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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입 큰 놈이 먹히는가? 배 큰 놈이 먹히는가?

 

 

 

한천녀와 원천기는 달빛아래 가득 흩어져 있는 이십여 구의 시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신을 응시하는 그들의 얼굴에 언뜻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놀랍군……이들은 정확히 단 일초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새삼 소일초의 가공할 무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소일초와 주소아가 그들의 뒤에서 걸어왔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걸고서……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의 시선을 맞받지 않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입자들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금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원천기는 고개를 돌려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천녀의 애써 외면하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차갑기만 하던 한천녀가 아까 그 여자였다니 신기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문득,

원천기을 향해 소일초는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원천기……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가는 점이라도 있나?]

천천히 원천기는 시선을 돌렸다.

돌려진 시선은 어느듯 무심하게 변해 한천녀을 응시하다가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옮겨진다.

한 줄기 야풍에 그의 백발은 표표히 휘날리고……

그의 입을 통해 감정없는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소이다.]

[오늘밤……침입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당한 것이지……고통없는 죽음이란……이 소일초가 내리는 최고의 선물이니……]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한천녀의 표정은 그 미소에 접하는 순간 차가운 빛을 되찾으며 무심하게 돌려졌다.

그러자,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심히 던지는 말……

[달빛에 취해 잠을 못이루고……사랑에 취한 사람을 위해 정적을 선물하고……좋은 구경을 위해 피를 뿌렸으니……소아 우린 잠이나 더 자자……]

휘적휘적 주소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소일초의 등은 웬지 거대해 보였다.

한천녀와와 원천기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었군……)

그녀는 잠시 원천기을 주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지금도 분명히 느끼고 있는 것은 원천기가 자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녀는 원천기의 손길을 영원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달빛은 수수롭고……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직도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과 저주인데……

문득,

그녀의 어지러운 상념을 일깨우는 원천기의 음성이 있었다.

[으음……이들은 얼마 전 부터 장원 주변을 배회하던 그 신비인들이겠군……멀리서 돌기만 하더니 오늘은 이곳까지 들어왔군……]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시신들의 복면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서 이들은 모두 마공을 익혔어……]

그 어떤 잡히지 않는 사실을 찾아가며 원천기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시신들의 얼구른 달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원천기와 한처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점점 더 전해지고 있었으니……

[이럴 수가 이 자는 정통마교의 배신자들의 무공을 지녔다.]

[이 자 역시 마찬가지다.]

경악의 도를 넘어서 떨리기까지 하는 그의 음성은 한천녀에게도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

오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달빛 아래 정황이 드러난 이 사건은 실로 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한 밤의 침입자들……

그들은 놀랍게도 과거 정통마교를 배신하고 사라졌던 자들 처럼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등천마교는 혈기대종사의 겁으로 인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거니 했는데……

한데……한데……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오늘 밤 이 동선장에 나타난 것이다.

정통마교는 멸망했다.

그렇다면……

정통마교의 배신자였던 조천수 등이 만든 등천마교의 잔당이 남아 있다는 말인데……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전신은 가는 경련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마장탑을 나온 후 그들은,

옛날 자기들의 사주로 인해 정통마교를 멸망시키고 뛰쳐나온 조천수 등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미 조천수 등이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등천마교는 그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혈기자와 네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멸망해 버렸다는 것을 알고 경악해 마지않았었다.

등천마교야 말로,

그들 칠십이기재들이 무림에 안배한 가장 큰 힘이었는데……

또한,

그들은 이름이 비슷한 등천마세의 소문을 듣고 찾았으나,

정사를 양분하고 있는 그들이건만 그 본거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정통마교의 무공을 쓰는 등천마교의 잔존자들인 듯한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문득,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올랐다.

(또 다른 인물들이 주위에 있다.)

생각과 동시에 번쩍 원천기의 신형이 좌측 수림쪽으로 날아갔다.

한천녀의 신형도 한 줄기 안개처럼 흐릿하게 화하여 그의 뒤를 따른다.

한데 다음 순간,

또다시 터져 나오는 경악성……

[이들은……]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의 사방을 살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림에도 수십여 구의 시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신들의 복장은 앞서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시신들과 동일한 점으로 보아 그들과 같은 일행임이 분명했다.

한데 이들이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엿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에 은밀하게 죽어있는 시신들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기이하게도 이들 시신에서는 어떤 외부적 상처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장도 손상을 입은 것 같지 않으니……

복면을 벗겨 본 원천기와 한천녀는 이들 시신도 역시 정통마교의 마공, 즉 구마존이 사용하던 마공을 익힌 자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 없이 많은 마공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들은 얼굴만 살피고도 알 수가 있었다.

정적,

슬프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 속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때 문득,

오랫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천녀이 입을 열었다.

[이들의 죽음은 곧 정통마교주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지요……]

원천기는 한천녀을 주시하며 물었다.

[소일초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다니……무슨 말이오?]

한천녀는 잠시 시신을 주시하다가 원천기를 직시하며 말했다.

[내 말은 이들과 소일초가 죽인 인물들과는 영적으로 맺어져 있었다는 말이지요.]

[영적으로?]

[맞아요……이들은 영적으로 맺어져 있어 공포를 공유하게 되죠. 일단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이처럼 상처하나 없니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천녀……

그녀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어 간다.

[즉……이들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가 죽음으로써 소수가 영적인 공포를 느껴 ……그리하여 짧은 시간에 이처럼 소리없이 죽어갔던 것이지요……]

그녀의 말은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침에,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소일초와 주소아는 비로소 수십 구의 시신들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일인데……비밀을 지키기 위해……단지 비밀 하나를 위해 이토록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다니……누가 이렇게 겁나는 단체에 가입하려고나 할까?]

생각할수록 그것은 전율스러운 일이 아닌가?

잔인한 일이었다.

실로 무섭도록 철저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일초에 의해 동료들이 죽음을 당하자,

공포를 느끼고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심맥을 단절하고 그대로 죽음을 택한 이 철저하도록 잔인한 인간들……

그들이 다름아닌 정통마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새삼 놀란다.

(대체 이들의 배후에 도사린 인물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려 한단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침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그들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어떠한 각도에서 이 일을 생각하든 그것은 단지 풀리지 않는 의혹일 뿐이었다.

해는 높이 솟아 오르고……

한천녀는 멀어져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무심함 가운데 알 수없는 정이 깃든 눈빛으로 주시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으로……

주소아는 자신들의 침상에서 아침부터 뒹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등천마교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고 들었는데……또 그들외에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나타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뿐이었다.

불가사의한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삼성무림청의 실종……

그녀는 거기에 더하여 또하나의 수수께끼를 가슴에 묻고 있었다.

힐끗,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잡고 있는 소일초를 보았다.

도무지 이 작자는 고민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일이더라도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딴 짓을 한다.

주소아 그녀는 머리를 짜면서 궁리를 하는 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저 자식을 만난 것도 다 내 복(福)이지 복……박복(薄福)인지 행복(幸福)인지는 몰라도……)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다.

우선,

그녀는,

백인장과 삼성무림청,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진 다음 곧 출현한 등천마세와 정천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고……

그 사라진 세력들이 혹시 탈을 바꾸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정천보과 등천마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캐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하나의 무림의 움직임에 신경을 쓴다.

바로 등마제(登魔祭)에 대해서……

(한천이기가 등마제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제전이 현무림의 판도와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천이기는 보통 인물들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 칠십이기재의 우두머리로 자부하는 그들의 두뇌는 어떤 분야에서는 그녀와 소일초를 앞지르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그들이 등마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 제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일초를 등마제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그녀는 잠을 설친 어젯밤 때문인지 깊이 생각하다가 깊이 잠이들고 있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그때 알아서 하면 되겠지……)

소일초는 아침부터 침상에서 골아 떨어지는 주소아를 힐끗 본 후에도 신경도 쓰지않고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읽는다.

 

× × ×

 

무림은 술렁이고 있었다.

등마제가 또다시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십오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오 일 후로 다가선 이 달 보름……

십오야 만월이 중천에 걸리는 그 때……

등마제는 대파산(大爬山) 사망림(死亡林)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마제에 초대받은 수많은 악인들이 대파산으로 향하고……

원인모를 실종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등마제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에 참석하는 사람은 두 종류이다.

악인으로서 제물을 들고 찾아가는 부류와,

악인에게 제물로서 잡혀가는 부류!

참석자의 수 만큼이나 많은 제물의 수……

무림혼란 속에 몸을 떨고……

이에,

정천보는 등마제를 영원히 이땅에서 사라지게 하고자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正天守護軍)을 파견했다.

정천수호군……

이 위대한 이름,

뜻있는 이들이 정의의 기치(旗幟)아래에 모여 형성된 정파무림의 최고 무인조직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정천수호군은 정천보의 핵을 이루는 중추세력 중 하나이다.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단지 이 정도일 뿐……

그 진정한 힘의 실체와 정천수호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신비였다.

다만……

정천수호군의 이름만은 더높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을 믿고 있는 만큼 정천수호군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천하무림인들은 정천수호군의 움직임과 등마제에 대해서 온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것이 무림의 장래 판도에 중요한 기로였으므로……

아무튼 난세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과연 무림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이지?

 

× × ×

 

찌는 듯한 폭염(暴炎),

유월의 태양은 그 맹위를 떨치고 머리를 덮지 않으면 골이라도 익혀버릴 작정인 것 같았다.

숨 막히는 더위, 이따금 부는 바람이 없었더라면 아마 길가는 사람은 몽땅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양양(讓陽),

이곳 역시 태양은 콩깍지를 튀길 뜨거운 햇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황혼(黃昏)의 노을을 감상하며……

오래 전에서 부터 양양의 요로에 자리잡은 한 객점(客店)의 창가에 앉아 바쁘게 술잔을 기울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몸에는 백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문사건을 아무렇게나 두른 그는,

일견하기에도 지독한 술꾼같은데……

나이는 대략 이십 삼사 세 가량으로 보였고,

용모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객점에는 수십여 명의 주객들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이 청년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의 청년은 바로 소일초였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역근천골공으로 바꾼 후 이곳 양양까지 온 것이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등마제에 참석하고자……

주소아에게 억지로 떠밀렸던 것이다.

자기가 가면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된다는 둥, 정말 가지 않겠다면 도망쳐 버리겠다는 둥,

오만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하는 수 없이 길을 나섰던 소일초,

주소아가 옆에 없으니 도무지 갈비라도 한대 빠진 듯 가슴이 허전해서 길을 나서자마자 술로 빈 가슴을 채우고 있는 그였다.

객점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정파무림인들보다 사파의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때, 그들의 화제는 모두 등마제였다.

소일초의 술먹는 귀도 그런 소리는 알아들어서,

그들 중 상당수의 인물들이 등마제에 초대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등마제가 이틀 남았던가……)

그는 술 한 모금을 삼키고 아예 눈을 감았다.

무림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더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오락가락하는 것이 주소아의 얼굴인데……

옆에 있을 땐 당연했던 것들이 없으니 미칠 것 같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그래서 안 올려고 했는데……]

중얼거리며 오직 주소아의 환상만 잡고 있었다.

천하의 소일초,

결국 주소아와의 애정의 덪에 깊이 걸려들고 만 것인가?

오직 빈 속을 술로 채우기만 한다.

그때,

[함께 앉아도 되겠소?]

교태가 흐르는 듯한 여인의 음성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성가신듯 눈을 떠 보니 면사로 얼굴을 가린 홍의의 여인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무관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술을 들이키면서 다시 소일초는 눈을 감아 버린다.

맞은 편에 앉은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연없이 마시는 주객(酒客)은 아닌 듯싶군요.]

[당신 역시 사연없는 사람은 아닌 듯 싶은데……취풍녀!]

아무렇지도 않게 주정처럼 내뱉는 소일초의 말,

취풍녀라니……

홍의의 여인의 두 눈에 경악의 빛이 지나갔다.

그러나 주위에서 떠들며 이야기 하는 소리에 소일초의 말은 거의 옆으로 퍼져나가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군요.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죠?]

소일초는 여전히 술을 들이킨다.

[제길 앞에 소아가 있어야 되는 건데……]

홍의 여인, 취풍녀는 무슨 소린 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다.

이내,

비워진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부어 주면서 은근하게 말한다.

[당신은 무척 신비한 사람이군요. 제가 알 수 없을 까요?]

소일초의 눈이 부릅 떠졌다.

[알릴 것도 없고 알고 싶은 것도 없어.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

[집에 돌아가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어요?]

소일초의 태도에 아랑곳 없이 친근하게 취풍녀는 물어오고……

[마누라에게 쫓겨났어……]

[혼인을 하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일하러 가지 않으면 도망가 버리겠대………도망가 버리면 어떻게 나 혼자 살아……]

소일초의 목소리는 점점 처량해져 갔다.

[저런! 부인께서 무척 아름다우신 모양이죠?]

[아니 정반대야, 아무도 그녀를 쳐다보려하지 않아.]

취풍녀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도 부인이 그렇게 좋아요?]

[그래, 나는 모자라는 사람이라 그 여자 없으면 못 살아.]

[부인 성함이 무엇이지요?]

소일초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흘렸다.

[취풍녀……]

[네?]

취풍녀는 자신의 이름을 소일초가 부른 줄 알고 의아하게 대답한다.

[취풍녀야……]

소일초는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고

[호호호호……]

취풍녀는 그제서야 알아듣고 교소를 터뜨렸다.

[당신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농(弄)이 아주 재미있어요.]

그녀는 다시 소일초의 빈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당신 이름은 뭐죠?]

[무적검(無敵劍) 승취풍(承吹風)!]

취풍녀가 살짝 눈을 흘기면서 말한다.

[진짜 이름 말이에요.]

[무적검…………압취풍(壓吹風)!]

[못 말릴 분이시군요. 좋아요 더 묻지 않겠어요. 술이나 마셔요.]

그녀가 어느새 비워져 있는 소일초의 잔을 가득 채워주며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술 좀더. 그리고 이 분이 지금까지 술을 얼마나 드셨지?]

[죽엽청 한 병 하고 구운 닭 한 마리입죠.]

[이 주담자는?]

[그건 물입니다. 손님께서 물을 많이 마시니까 아예 채로 갖다 달라고 하신 거죠. 벌써 두 주담자 째죠.]

[술이나 더 갖다 줘.]

점소이를 보낸 취풍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주담자에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은 분명히 소일초가 부어마시던 술이었다.

그런데 점소이는 물을 갖다 줬다고 하니……

(점소이가 물을 갖다 준다는 게 잘못해서 술을 갖고 왔나?)

자칭 무적검 압취풍이라고 밝힌 소일초는 여전히 주담자를 기울여 술을 마시고 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취풍녀가 잔을 들이 밀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직접 따라마셔. 나는 술을 남에게 따라주는 사람이 못돼.]

[너무 냉정하게 굴지 마세요. 잔은 주고받는 거라잖아요.]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직접 부어서 잔을 채웠는데,

아무리 봐도 죽엽청은 아니다.

향긋한, 이름도 모르는 술이었다.

맛도 착 감기는 것이 그녀는 아직 그처럼 좋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단번에 마시고 다시 따라 부었다.

[대체 무슨 술이길래 이렇게 맛이 좋죠?]

그때 점소이가 그녀가 주문한 술을 가지고 왔다.

소일초의 몸이 건들거리면서 잔을 들이키고,

[술은 무슨 술……점소이가 맹물이라지 않았나……]

취풍녀는 술을 마시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향기도 맛도 사라지고 닝닝한 맹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왠 도깨비장난인가 싶어 다시 주담자를 따라보니 분명히 맹물이다.

그런데도,

소일초는 천연덕스럽게 주담자를 기울여 잔을 채워 마시는데,

그때보니 또한 영락없이 자기가 마셨던 술이다.

[당신은 정말 신기해요. 무슨 요술이죠?]

그녀는 주담자를 기울여 나오는 물을 부어버리며 소일초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네 술이나 마셔……]

말을 끌면서 소일초는 푹석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취풍녀는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부축하여 객실(客室)로 데리고 올라갔다.

 

× × ×

 

 

객점에 있는 무림인들이 모두 사파의 인물들 만은 아니었다.

상당수의 정파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감춘 채 말없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있는 인물들……

그들의 몸에서는 가공할 기도가 풍겨지고 있었으며 두 눈에 감도는 은은한 정광은 그들이 정파의 고수라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정천보에서 파견한 정천수호군에 속한 일부 인물들,

원천기와 한천녀는 시선은 황혼에 두고 있었으나, 객점의 인물들을 빠짐없이 살피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보기에, 정파인들은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망울에 언뜻 진한 호기심의 빛이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인 것은……

그들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창 밖의 대로(大路)로 향했다.

대로,

그곳에 소녀(少女)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객점의 많은 정천보의 인물들의 얼굴에 떠올라있던 초조의 빛이 사라짐을 느꼈던 것이다.

(보통 신분의 소녀가 아니겠군……)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이십여 세 안팎으로 보였으며……

녹의(綠衣)를 걸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소녀는 무림인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하나, 원천기와 한천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자신의 기도를 감추고 있을 뿐 분명히 가공할 무림의 고수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소녀의 용모는 또 어떠한가?

결코 한천녀에 뒤지지 않는 듯하지 않은가?

그 소녀는 빠른 걸음으로 객점을 향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두두두두-----!

대로의 저쪽으로부터 뿌연 황진을 일으키며 다가서는 한 대의 사두마차가 있었으니……

시야에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마차는 이미 대로의 중앙을 거쳐 반대편으로 아득히 사라져 갔다.

한데 마차가 사라진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놀랍게도 그 엄청난 기도를 안으로 내포하고 있던 소녀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원천기와 한천녀는 눈을 마주 보았다.

(납치?)

그것은 분명히 납치였다.

한데 객점 안의 고수들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만,

정천보의 인물들의 표정은 마치 이런 일을 예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일으켰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된 납치……!)

그 납치는 정천보의 인물들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그들은 묵묵히 객점의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상인 차림을 한 한천이기 중 원천기가 무심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먹힐 것인가? 입 큰 놈인가 배 큰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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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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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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