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환락영웅(歡樂英雄)'에 해당되는 글 60건

  1. 2020.08.13 [환락영웅] 제 34장 엉뚱한 곳에서의 상봉
  2. 2020.08.12 [환락영웅] 제 33장 취풍녀가 주제했다.
  3. 2020.08.11 [환락영웅] 제 32장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등마제주
  4. 2020.08.10 [환락영웅] 제 31장 마차는 달린다
  5. 2020.08.08 [환락영웅] 제 30장 입 큰 놈이 먹히는가? 배 큰 놈이 먹히는가?
  6. 2020.08.06 [환락영웅] 제 29장 한 쌍이 시작하면 한 쌍이 끝을 본다.
  7. 2020.08.04 [환락영웅] 제 28장 술독 앞에서 낳지도 않은 아기로 협박하는 청탁
  8. 2020.08.03 [환락영웅] 제 27장 한천이기의 부활
  9. 2020.08.02 [환락영웅] 제 26장 마교칠십이절기
  10. 2020.08.01 [환락영웅] 제 25장 죽은 사부가 구해주다
  11. 2020.07.30 [환락영웅] 제 24장 마장탑의 붕괴
  12. 2020.07.29 [환락영웅] 제 23장 정통마교의 비사
  13. 2020.07.28 [환락영웅] 제 22장 전사후살
  14. 2020.07.27 [환락영웅] 제 21장 같은 수법에 당하다
  15. 2020.07.26 [환락영웅] 제 20장 철검으로 펼친 검공
  16. 2020.07.25 [환락영웅] 제 19장 백인장의 곡성
  17. 2020.07.24 [환락영웅] 제 18장 변신
  18. 2020.07.23 [환락영웅] 제 17장 기억의 단서를 잡다.
  19. 2020.07.22 [환락영웅] 제 16장 불타는 푸른 숲, 무너지는 계곡
  20. 2020.07.21 [환락영웅] 제 15장 건방진 구파일방
  21. 2020.07.20 [환락영웅] 제 14장 술 마시는 소녀
  22. 2020.07.18 [환락영웅] 제 13장 아도래영, 내가 왔다! 맞이 하라!
  23. 2020.07.17 [환락영웅] 제 12장 고찰에서의 밀고 당기기
  24. 2020.07.16 [환락영웅] 제 11장 꼬마의 포로가 된 두 미녀
  25. 2020.07.14 [환락영웅] 제 10장 신나는 무림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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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엉뚱한 곳에서의 相逢

 

 

 

연화정(蓮花亭),

이곳은 조그마한 연못안에 세워진 정자였다.

잔잔한 아침 여명에 반조되고 있는 호수의 수면은 신비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지금, 이 연화정에는 세사람의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

한 여자는 면사로 얼굴을 가린 취풍녀이며……

세 사람의 남자는 비슷한 또래의 중년인들이었다.

나이는 사십대 전반으로 보였으며 점잖은 사람들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형제들인지 그 모습이 그 모습 서로를 분간하기 힘들 만큼 닮았다.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머물고 있었으며 전신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잔잔하고 아늑하였다.

그들은 말없이 호수의 수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무엇인가 풀리지 않은 난제가 있는 듯 고심하는 것 처럼보였다.

문득,

취풍녀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대교주(大敎主)의 뜻이 그러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녀의 눈빛은 어두웠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으니……내 말을 들어줄 리가 없겠지……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지……]

[…………!]

[…………!]

또다시 네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때,

유삼중년인 중의 제일 우측에 앉은 사람이 신선을 더욱 깊숙이 내리깔며 입을 열었다.

[한가지만 묻겠습니다. 삼교주(三敎主)……]

[무엇인가?]

[삼교주께서 말씀하신 그가 그토록 뛰어난 인물입니까?]

그의 말은 부드러웠다.

마치 연인에게 속삭이는 밀어처럼 달콤했다.

취풍녀은 멀리 떠도는 구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그는……내가 본 가장 완벽한 인간이다.……무공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그정도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그는 요술장이처럼 신비한 사람이다.]

순간,

언뜻 세 사람의 눈에 놀라는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정도로……]

가운데의 중년인이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무엇이 그토록 뛰어나단 말입니까? 그의 얼굴입니까? 아니면 신분을 밝히지 않아서 신비하다는 것입니까?]

한기가 풀풀 날리는 음성을 뱉어내는 그의 안색은 여전히 부드러워 모순처럼 보였다.

제일 좌측에 앉은 중년인이 취풍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진정 그가 뛰어난 인물이라면 그 배후에 대해 왜 조사하지 않았습니까?]

그 역시 부드러운 얼굴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갈라져서 듣기에도 역겨웠다.

취풍녀가 대답했다.

[물론 조사해 보았다.……하나……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떻게 하는 지 모르지만 만지는 것만으로도 어떤 물건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능력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그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같이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직접 보신 적이 있습니까?]

[너희들은 물을 술로 술을 물로 만지기만 하여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손으로 만져서 익지않은 포도를 영글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

[그것은 무공과는 다른 힘이었다. 그런 그의 배후를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유삼중년인들의 입에서 동시에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결국……대교주께서는 그 일로 거부를 하신 것이로군요……]

우측의 중년인이 부드러운 속삭임으로 말을 이었다.

[그의 신분이 조금 더 확실하다면 대교주께서도 그의 신비한 능력을 고려하여서라도 허락하셨을 텐데……]

[…………!]

[아무튼 대교주의 결정은 내려졌으니……이제 더이상 그에 대해 거론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지요.]

좌측의 갈라지는 목소리의 중년인이 말했다.

대교주의 결정……

취풍녀는 무엇을 대교주에게 부탁했기에 기에 그렇게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단 말인가?

문득,

[그가 오고 있군……]

취풍녀은 연못에 걸쳐진 교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한 사람의 텁텁한 분위기의 사내 소일초와 그 뒤를 따라서 시비 국향이 오고있었다.

그를 주시하는 유삼중년인들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흘러갔다.

소일초는 도무지 자신을 돌보지 않는 사람같은데

취풍녀가 그렇게 극찬을 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없던 것이다.

게다가 고수에게서 느낄 수 있는 기도라고는 보이지도 않는 술주정뱅이 같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의혹이 점차 심화되어 갈 때,

소일초는 연화정의 가까이에 이르렀고 국향은 연못가에 기다리고 서 있었다.

순간,

소일초는 불규칙한 걸음으로 연화정으로 들어와 취풍녀의 곁에 주저없이 앉았다.

거동 하나하나가 도무지 교양있는 사람의 것이 아니다.

[으음……]

[음……]

네 사람은 소일초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굳어져 버린다.

(얼굴하나로 삼교주를 침상에서 휘어잡은 모양이로군……쯧쯧 ……삼교주가 그저 행동이 방정치 못해서……)

(대체 이자의 어디에 신비가 있단 말인가? 철부지 같은 삼교주……)

문득, 그들의 얼굴에 은은히 살기가 떠오른다.

소일초는 그 살기를 느낀 것인지 아니면 못 느낀 것인지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까지 한다.

[객이 있는 줄 몰랐는데 무슨 일로 불렀나?]

대뜸 하대로 취풍녀에게 묻는 말에 중년인들의 살기가 더욱 짙게 떠오른다.

하나, 취풍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에게 공대한다.

[당신이 만나야 할 사람들이에요.]

그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데……]

취풍녀은 눈짓으로 세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세 분을 소개하지요……]

[나는 무적검이다.]

세 중년인의 눈가에 비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별볼일 없을 것 같은 작자가 이름은 거창하게 쓰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무림의 삼류잡배였군……)

우측의 중년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들을 소개했다.

[반갑소, 우리는 은검삼형제요……]

그는 소일초를 별볼일 없는 인물이라 생각했기에 간단히 자기들의 밝혔다.

소일초는 시선을 취풍녀에게 돌렸다.

[한데……무슨 일이야?]

[은검삼형제는 당신을 죽일 거예요…]

취풍녀은 우울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겨우 이들이?]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은검삼형제를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가소롭기 그지없다는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진짜? 나를 죽인다고?]

그러자,

은검삼형제가 일제히 분노하며 소리쳤다.

[그렇다! 대교주의 지엄하신 명이다.]

[무슨 거지발싸개같은 소리야? 대교주는 무슨 놈의 대교주……]

도무지 아무것도 안중에 두지 않고 하는 말에 은검삼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허풍도 경계가 없이 큰 것같았기 때문이다.

[…………!]

[내가 왜 죽어야 하는 지나 빨리 말해……]

소일초는 시선을 취풍녀의 돌린 뒷머리에 고정시키며 말했다.

[평생같이 살자고? 미친년! 하는 대로 나뒀더니 술 뺏고 몸 뺏고 이제 목숨까지 뺏으려고 해?]

소일초는 진짜 화가 나있었다.

주소아곁을 떠나 있는 것으로만도 괴로워 미칠 지경인데 잘해줘도 있을까 말까한 판에 죽이겠다니……

소일초의 물음에 취풍녀는 어쩔 줄 모르면서 대답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과의 혼인을 승락해달라고 대교주에게 간청한 저예요.……한데……]

호수의 수면은 이때 핏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한데……대교주는 당신의 정체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허락할 수 없다고……이렇게 처형대를 보냈어요.]

[혼인은 무슨 혼인, 내 마누라가 알면 가만있을 줄 알고? 누구 맘대로 혼인이야 혼인이……]

그녀의 말을 듣고 소일초는 더욱 길길이 뛰었다.

혹시라도 주소아가 들을까 겁날 말이었다.

취풍녀는 그의 매정한 말에 망연한 눈초리로 보며 가슴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랬던가요? 우리 사이에 사랑이나 애정 그런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군요……당신은 나를 조금도 생각지 않았어요……내 몸이 이미 더럽혀져 있었기 때문인가요? 그래서 한 번도 범하려 하지 않았던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소일초에 대한 깊은 정이 배어있었다.

그녀는 난간을 잡으며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침 여명을 타고 흐르는 구름이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보였다.

소일초는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호수의 연꽃을 보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정을 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 기울리 도 없었다.

그런 그를 보며 취풍녀은 돌아보며 나직이 한숨을 토한다.

[대교주의 결정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어요……]

소일초는 단호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

[네 정도 그 정도에 불과 했어, 내 마누라라면 결코 그렇진 않을 거야. 차라리 함께 죽길 원했을 거라고.]

빙글……

그의 몸이 은검삼형제를 향해 돌려진다.

그러고 허공을 향해서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도 어쩔 수 없게 된 거야. 보고 있었으니 잘 알고 있겠지? 이제 네 부탁은 끝난 거야.]

은검삼형제와 눈물을 훔치던 취풍녀가 어리둥절했다.

[누구에게 한 말이오?]

은검삼형제 중 부드러운 목소리의 맏이가 살기를 억누르면서 물었다.

[하늘! 나는 하늘에서 왔거든.]

소일초는 고개를 내려서 그를 보며 짧게 대답했다.

순간,

[정말 하늘에서 내려왔나요? 아……아마 그럴 거예요. 당신의 모습, 당신의 신비한 능력……인간의 것이 아니었어요.]

취풍녀가 환상에 빠진 듯이 그를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취풍녀는 오랫동안 살인을 저지르며 무림에 횡행했었다.

그녀의 무공은 고강했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내에게 안기고 했지만 마음은 동심이 있었다.

소일초의 신비한 능력, 물론 백송균화에서 얻은 충만한 생명의 기운이었지만,

그리고 그의 천상의 선인 같은 용모에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하대하는 그 자연스런 태도로 말미암아 진짜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녀의 눈은 꿈꾸는 것 같았다.

몸에 서려있던 고독도 퇴폐적인 분위기도 일시에 걷히는 것 같았다.

[하늘……그곳은 이 무림과는 다르겠지요?]

은검삼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다르지, 다르고말고. 당신같은 사람은 결코 없는 곳이지……]

소일초는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그렇겠죠……저 같은 죄많은 사람이 어떻게 그곳으로 갈 수 있겠어요?]

취풍녀는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많은 비애와 고독을 가슴에 품었기에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말도 아닌 소리! 삼교주, 진정하시오. 이 자의 기만에 넘어가지 마시오.]

은검삼형제의 세째가 역겨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래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지. 너희들은 나를 죽이고 나는 너희들을 죽이는……]

말을 하면서,

소일초가 몸을 곧게 세우고 그들을 노려본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고 어떤 기도로 풍기지 않으며 단지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다.

[허풍장이! 대교주의 명은 곧 하늘의 명이다. 삼교주를 기만한 죄까지 물어서 죽여주마.]

은검삼형제의 둘째인 차가운 목소리가 자르듯이 내뱉었다.

 

창---촤창-----창-----!

 

그들의 어깨에서 은검이 뽑혀져 삼면에서 그를 노리고 공격해 왔다.

그들의 몸은 은검에서 발산되는 검기로 완전히 뒤덮혔으며 가까이 있던 소일초의 몸을 은막으로 뒤집어 씌웠다.

파아아아--------!

소일초의 검미가 꿈틀했다.

(은마환상검(銀魔幻想劍), 역시……)

그순간,

[죽이면 안돼……]

어디선가 들려온 전음,

아아……

그토록 보고싶었던 주소아의 음성이아닌가?

은검은 자기를 덮어씌우고 있는데 그의 얼굴이 환해졌다.

은검이 그의 전신을 할퀴듯이 꿰뚫고 지나갔다.

[악!]

취풍녀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은검삼형제는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검이 안개를 벤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소일초의 몸은 그자리에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당신은 정말 하늘에서 왔군요……내 그럴 줄 알았어요.]

취풍녀가 기쁘하며 소일초의 가슴으로 달려 들었다.

그러나 소일초의 몸은 미끄러지듯 슬쩍 그녀를 피했다.

은검삼형제는 멍청히 검을 든 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정말 삼교주의 말대로 하늘에서 오기라도 한 천인(天人)이란 말인가?

그들은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소일초의 눈은 연못가에 여전히 서있는 국향을 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어려 있었다.

국향은 생긋 웃어보이더니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기쁜 표정으로 소일초는 취풍녀와 은검삼형제를 둘러보았다.

그들은 소일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살수를 펼쳤는데 기쁘하며 웃고 있다니……

소일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를 죽였으니 이젠 내가 죽일 차롄데……]

그의 미소에 오히려 은검삼형제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허깨비처럼 검에 걸리지 않는 인간……

[…………!]

[운이 좋았어. 목숨은 살려주라는 부탁을 받았거든……우리 마누라한테서……]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손에 둔중한 검이 들려있었다.

붉은 색으로 은은히 빛나는 검은 어디에서 나와 그의 손에 쥐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그의 손에 있었던 것처럼……

은검삼형제와 취풍녀는 그 하나에 대경실색했다.

순간,

은은한 붉은 빛을 띄고 있는 소일초의 마황검은 순간적으로 일만개로 분리되어 은검삼형제를 향해 폭사되었다.

으악-----!

윽---윽--!

완연히 구분되는 세 마디의 비명과 함께 은검삼형제의 팔이 하나 씩 잘라져 연못에 떨어졌다.

소일초의 손 어디에도 다시 마황검은 보이지 않았다.

은검삼형제는 잘려진 팔을 지혈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넋이 빠져 있었다.

[으……대체 그런 무공이……정말 천인이란 말인가?]

[패배를……패배를 몰랐는데……]

그들은 아직도 소일초의 믿을 수 없는 경이의 무공에 불신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취풍녀는 소일초를 완전히 천인으로 믿어버렸다.

천하의 십이대 고수 중 하나로 알려진 그녀로서도 그런 무공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이 밝은 희망으로 가득 찼다.

(어쩌면 이 분이야말로 나의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분 일지도 몰라……나를 이 세상에서 구제해 주시기 위해……)

취풍녀의 잃어버린 행복……

이순간 그녀는 소일초를 천신과 같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때,

소일초가 은검삼형제를 주시하며 여태까지와는 달리 고르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한다.

[전하라……대교주라는 자에게……]

…………

[내가 직접 찾아가서 따지겠다고.]

은검삼형제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복수니 뭐니 하는 것이 이 인간같지 않은 인간에게는 말짱 헛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소일초는 기분이 유쾌해져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

그런 그의 모습은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고

네 사람은 그런 그의 모습에서 범할 수 없는 무한한 힘을 느끼고 있었으니……

마침내 그들 은검삼형제는 취풍녀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힌 후 몸을 날려 아득히 사라져 갔다.

소일초는 휘적휘적 정자 밖으로 걸어나갔다.

틀리없이 어딘가에서 주소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절로 몸에서 신바람이 나는 듯 유쾌하고 즐거웠다.

그는 취풍녀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자기가 보는 것은 어디선가 한천이기도 다 볼 것이다.

궁금한 것이 있어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고 생각할 것이 있어도 그들이 해결할 것이다.

그는 그냥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문득,

취풍녀가 교각을 지나가는 그를 뒤에서 안았다.

그녀의 봉긋한 젖가슴이 소일초의 등에 와 닿았고……

그녀 특유의 향기를 담은 입김이 소일초의 귓전에 전해진다.

[당신을……진정으로 사랑해요. 이 한 몸 바쳐서 사랑할 수 있어요.]

[놔! 지금 나는 가봐야 돼……귀찮게 하지마.]

[그렇게 말하지 마셔요. 우리는 이미 몸을……그리고 마음을 주고 받은 사이인데……]

[나는 그런 적없어 빨리 가봐야 돼……]

소일초는 달라붙는 그녀에게 짜증을 내었다.

어딘가에 주소아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안돼요. 그렇다 해도 안돼요. 나는 당신을 놓칠 수 없어요. 당신은 내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에요.]

소일초는 급한 마음에 그대로 걸음을 옮기고 취풍녀는 아예 질질 끌려간다.

그녀가 뭐라고 하든 그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다가는 어디까지 그녀를 달고 갈지 알 수 없었다.

소일초가 걸음을 멈추고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 희망이 돼 줄테니까 빨리 손이나 풀어.]

[떠나버리게요?]

[이러면 정말로 달아나버릴 거야. 빨리 풀어.]

취풍녀는 그가 진짜로 가려고 한다면 자기쯤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키지 않지만 그를 감았던 팔을 풀면서 신신당부한다.

[금방 오셔야 해요. 꼭……당신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죠?]

[그래 알았어.]

소일초의 몸은 벌써 앞으로로 쭉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한데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거예요?]

[우리 마누라한테……]

소일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헌데 소일초가 달려가는 곳은 뜻밖에도 취풍녀의 침실이었다.

소일초를 익히 아는 사람들이라 아무도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

취풍녀의 침전에 있는 시비들의 방 앞에 그가 찾던 국향이 서있었다.

다짜고짜 소일초는 그녀를 덥썩 안았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갑작스럽게 소일초의 품에 꽉 안겨버린 국향은 얼굴을 붉히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밤마다 주인인 취풍녀가 데리고 자는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남자가 미친 듯이 사랑을 고백하며 달려든 것이다.

그녀는 황홀한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지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저도 당신을 생각했어요……]

순간,

소일초가 그녀를 품에서 떼면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았다.

[아니, 너는 너잖아!]

그녀를 확 밀치고 다시 자기의 침전으로 달려갔다.

국향은 황당해져 있었다.

갑자기 달려와 사랑을 고백하던 왕자가 밀쳐버리고 떠나가 버린 것이다.

[쳇! 내 무슨 일인가 싶었어. 헛물만 들이켰잖아.]

소일초는 그의 침전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밀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자기가 마시다가 두고 간 술독 앞에서 등을 보이며 잔을 기울이는 또 한 명의 국향이 있었다.

이번에는 틀림없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려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가만있어. 술 엎질러.]

그러나 소일초는 무시하고 그녀를 번쩍 들어서 침상에 던졌다.

그리고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보고 싶어 죽을 뻔 했어. 어떻게 왔어? 언제 왔어? 왜 온 거야?]

대답을 들을 생각은 아예 없는 듯 질문하기에 바빴다.

[바보! 내가 어떻게 너 혼자만 보낼 수 있었겠어?]

소일초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래, 너 없이는 도무지 못살겠어. 밥도 넘어가지 않더라구……]

국향, 아니 주소아는 역근천골공을 풀었다.

환하게 주변을 밝힐 듯한 아름다운 얼굴이 소일초의 얼굴 밑에 있었다.

주소아는 소일초를 먼저 보낸 후 멀리서 그를 따라왔다.

소일초가 하는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습을 수십가지로 바꿔가며 그의 근처에서 지켜보았는데,

멍청한 소일초는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소일초가 취풍녀에게 옷을 벗기우고 깔렸을 땐 화가 나서 당장에 그녀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세를 생각하여 꾹 참았었다.

그러면서도 소일초가 어떻게 나오나 궁금해 하며 숨어서 지켜보았었다.

만약 소일초가 정말로 취풍녀와 늘 자기에게 원하던 깊은 관계를 맺어 버린다면 다시는 소일초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일초가 기특하게도 자신이 늘 사용하곤 하던 방법을 써서 취풍녀의 마수를 피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재미도 있었지만 기뻐 죽을 지경이었다.

그녀도 때로는 소일초가 저돌적으로 침입하고 할 때는 역근천골공으로 문을 좁히거나 아예 폐쇄해 버리곤 했던 것이다.

그런 방법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밤마다 같이 보내면서 마지막 처녀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소일초는 이곳에 와서도 취풍녀에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 자기의 몸을 지켜왔다.

며칠 동안 지켜본 그녀는 그 색마가 그처럼 자기를 생각하여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기쁘고도 자랑스러워 상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다시 정통마교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들과 대교주, 그리고 취풍녀가 삼교주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자 자기의 존재를 알렸던 것이다.

[취풍녀가 너에게 보통 빠진 것이 아니던데……]

[그런말 마. 나는 아무여자도 필요없어 너만 있으면 돼. 이젠 다른 여자는 보기도 싫어.]

[그럼 정천수호군주 왕혜려에게 했던 말은 뭐야?]

[그건……정말 장난이었어. 진짜야……]

소일초는 가슴이 뜨끔하면서 급히 변명했다.

왕혜려에게 묘한 암시를 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주소아는 귀신같이 그것도 놓치지 않고 들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잘한 것이 훨씬 많으니까 아무말 않겠어. 하지만 다음에 다시 그런 수작을 다른 여자한테 한다면 각오해야해.]

[맹세할게……]

 

아침부터 두 사람은 알몸이 되어 침상에 들어가 있었다.

[취풍녀하고 음……기분이 어땠어?]

[아무 생각 없었어. 나도 고역이었다구. 도무지 네가 머리를 꽉 채우는 데 취풍녀에게 무슨 감흥이 나겠어? 고기 먹던 사자(獅子)는 아무리 맛있는 풀이라도 고개도 돌리지 않는 거라구……]

[정말?]

[그럼!]

소일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제 그만 우리 술이나 마시자.]

[안돼! 좀더 있어야 해. 그동안 얼마나 쌓인 게 많은데……]

주소아가 픽 웃으며 말한다.

[네가 쌓일 게 어디 있니? 늘 장난뿐인데, 그저 주워들은 말은 있어가지고……]

[아무튼 안돼, 좀 더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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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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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吹風女가 主祭했다.

 

 

 

삘리리리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그것은 천상에서 들려오는 듯 아름다왔다.

그러나,

소일초는 그 아름다운 소리에 내포되어 있는 무서운 마력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영혼을 잡아끄는 마력을 가진 피리소린 사람들을 엄청난 욕정의 바다로 인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마장탑에서 본 바있는 다섯 번째 석실의 아홉 음공중의 하나와 비슷했다.

무엇인가 빠져 있는 듯 위력은 그곳의 오욕음(五慾音)보다 뒤쳐지는 것 같지만 틀림없이 같은 운율이었다.

 

오욕음,

마교칠십이절기의 하나인 오욕음은 인간에 존재하는 다섯가지 욕망을 극대화시키는 음공이다.

지금 피리로 연주되는 음은 오욕 중의 색욕을 증폭시키는 색욕음이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성을 잃어버리고 미친 듯한 색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무공,

그리하여 마침내는 스스로 욕정에 몸부림치다가 정기의 고갈로 죽고마는……

 

그 소리에 접하자 소일초 조차도 욕념으로 가득 차오른다.

하나,

(저 등마제주가 속한 집단은 어떤 형태로 정통마교의 배반자들과 연관이 있을까? 마교칠십이절기의 부본으로 저 오욕음을 익혔겠지……)

이 생각은 어떤 확신이었다.

동선장의 침입자들 역시 이들과 같은 집단에 속해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먼저 한천이기의 존재를 알고 동선장으로 선공을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일초는 지금 새롭게 발견한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이것이었군, 칠십이기재의 두 사람인 한천이기가 굳이 등마제에 나를 참석하라했던 이유가?)

그의 생각은 일단 이곳에서 멎어야 했다.

등마제주……

그가 소일초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일초는 그 눈망울에서 극사한 아름다움을 느끼며 등마제주라는 인물을 마주 바라보았다.

주위에서는 비명과 뜨거운 열락의 신음이 터지고……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든다.

이곳은 인간의 세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정이 해일처럼 폭발하고 있는 신의 환락지(歡樂地)였다.

눈빛……

그 욕의 환락지 사이에서 마주하고 있는 두 쌍의 눈망울……

하나는 극사의 아름다움을 차갑게 풍기고 있었고……

하나는 무덤덤하고 광채마저 느껴지지 않는 졸리운 듯 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등마들은 소일초를 스쳐가기는 해도 그를 덮쳐들지는 않는데……

문득, 등마제주의 면사에 가린 얼굴이 끄덕여 졌다.

순간,

스스스……

등마제주의 손이 천천히 들려져 소일초를 가리켰다.

그러자,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던 흑의복면인들의 얼굴에 언뜻 경악의 번져 흐르는 것이었다.

그들은 등마제주의 행동이 의외라는 듯 등마제주과 소일초를 번갈아 주시했다.

소일초는 자신을 가리키는 그의 손을 무심히 본 후 천천히 머리를 돌렸다.

그때였다.

[나를 따르시오……]

소일초의 영혼을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더없이 아름다운 음성이나 그것이 여인의 음성인지 사내의 음성인지는 구분하기가 힘든 것이었다.

하나, 소일초는 그 음성의 주인이 바로 등마제주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이때,

등마제주는 허공을 밟으며 천천히 우측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는 자로군……)

소일초는 그의 말을 음미하며 천천히 그를 따르기 시작한다.

걷는 그의 눈으로 왕혜려가 들어왔다.

그녀와 정천수호군들은 완전히 악마화 표기를 한 악인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그녀의 용모가 중원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뛰어난 절색이었기에……

그녀는 많은 인물들로부터 선호의 대상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녀의 눈으로 스쳐가는 갈등……

그녀는 정천수호군의 군주, 정천수호군이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이 등마제를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한데,

등마제주라는 인물에게 자신들은 노출 되어버렸고, 때문에 그녀는 갈등하고 있는 것이다.

예정대로 감행할 것인가 철수할 것인가?

철수하기에는 참혹하게 죽어갈 무림의 젊은 남녀들이 안타깝고,

예정대로 감행하자니 노출된 지금 자기들마저 몰살당할 지도 모른다.

왕혜려는 갈등하고 북궁헌은 감행할 것을 계속 주장한다.

이때, 소일초의 전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녀에게 들려왔다.

 

-----함께 다 죽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너만이라도 살겠는가……너는 이미 등마제주에게 졌다……깨끗이 물러나서 예쁜 얼굴이나 잘 다듬어라……

 

소일초의 전음을 들은 왕혜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눈에 굳은 빛이 떠올랐다.

그것이 어떤 의미의 것인지는 소일초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순간,

추우우------!

파란 불꽃이 그녀의 손에서 달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그때였다.

사방에서 갑자기 참혹한 비명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정천수호군은 철수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면서도 말잘 듣는 여자야.)

아무도 소일초 만은 제지하지 않았고 그는 유유히 등마제주를 따라서 숲으로 갔다.

계속하여 사방에서 비명은 들려오고 있었고……

소일초는 잠시 후,

사망림의 한 황량한 잡초림에 이르렀다.

등마제주……

그는 잡초위에 앉아 달을 쳐다보고 있었다.

피리소리는 끊임없이 비명소리를 뚫고 이곳까지 울려오고 있었다.

지금, 소일초는 등마제주의 전신에서 진한 고독과 우수, 그리고 퇴폐를 느낄 수가 있었다.

[너에게도 이런 감상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소일초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도,

여전히 등마제주의 침묵을 지킨 채 달을 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일초는 앉아있는 그를 보고 등마제주는 달을 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 침묵의 강이 한동안 흐른다.

등마제주는 사방에서 울려오는 비명과 소란을 이미 짐작이라도 했다는 듯이 태연하다.

어떤 동요의 빛도 그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문득, 그의 시선이 소일초에게 돌려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음성이 흘러나온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그대를 이곳에 부른 진정한 뜻을 아는가?]

소일초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네 마음까지 알겠는가]

순간,

등마제주의 눈에 언뜻 묘한 기광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대가 무슨 이유로 이곳에 올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주 중대한 일이 있기는 하겠지만……]

[중대한 일이 있지……한 시라도 급하지……]

[… 그 목적은 저 정천보의 인물과는 다른 것이겠지…?]

등마제주의 말은 어딘지 모르게 은근한 듯 했다.

소일초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스스스스……

한 줄기 야풍에 잡초림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소일초가 입을 열었다.

[취풍녀! 네가 등마제주라는 사실이 의외라면 의외지……]

갑작스런 소일초의 말,

취풍녀라니……

한데, 등마제주의 말투역시 갑자기 아주 부드러운 여인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비범하군요. 맞아요. 언제 부터 알고 있었죠?]

[등마제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등마제주, 아니 취풍녀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양양의 객점에서부터 소일초에게 관심이 있어서 접근했었다.

십이 인의 절세고수 중 일녀(一女)로서 자리하고 있는 그녀……

소일초는 그녀가 맞은편에 앉는 그 순간 이미 그녀의 몸에서 아주 미약하나마 낮은 소리가 나는 것을 알아차렸었다.

몸에서 휘파람 소리를 내는 여자,

주소아 아니면 취풍녀다.

주소아는 이미 소리가 완전히 없어져 버릴 정도로 무공이 깊어져 일부러가 아니면 소리를 내지 않았다.

취풍녀, 극마지경에 이른 그녀……

주소아와 어떤 형태로든 관련이 있을 거라고 조예진이 말했었다.

그리하여, 만사를 재쳐두고 취풍녀가 주는 미혼분을 넣은 술을 받아먹고 잠에 취해 주었던 것이다.

취풍녀는 소일초가 일부러 속아주던 진짜로 속아주던 개의치 않았다.

스스로 무적검 승취풍 이라고 부르는 그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낀 것이었다.

자기를 타겠다는 그의 말은 그녀의 의도와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던 것인데…

당연히 그로 인하여 등마제가 시작되어도 어느 누구도 소일초에게 손을 뻗치지 않았던 것이다.

취풍녀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고 싶나요?]

[당연히 알게 되겠지……]

[당신이 일부러 응해 주었던 어쨌던 나는 당신을 이곳에 데려 왔어요.]

소일초의 힘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래서……나를 재물로 다루길 원하나……]

취풍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그것이 이 등마제주로서의 제 뜻이죠……]

소일초는 얼굴가득 미소를 지었다.

[상당히 위험할 수 도 있을 텐데……]

취풍녀의 면사가 희미하게 날린다.

그녀는 웃고 있는 것이다.

[정천수호군의 소란도 무관심한 저예요……한데……당신 하나를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등마제주로서 애초부터 이곳에 나타나지도 않았겠죠……]

말을 한 후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소일초를 주시한다.

[아주 준수한 얼굴이군요……]

독백처럼 중얼거린 그녀는 천천히 소일초에게 다가온다.

소일초는 피식 웃는다.

[준수하다니……취풍녀……네 눈은 껍질 속의 알을 볼 수 있는 재주가 있기라도 한 모양이군………]

[호호호호……그래요. 나의 눈은 정상인데 당신 얼굴이 비정상이지요……]

[그리고 우리 둘 다 비정상인 것이 있지……]

[그게 뭐죠?]

취풍녀가 의아하게 물어온다.

[생각! 너나 나나 생각하는 것이 아주 삐뚤어져 있지.]

[맞아요, 내 마음은 삐뚤어져 있어요. 하지만 당신 역시 그렇다니 기뻐요.]

[내 마누라가 너의 그런 말을 좋아하지 않을 걸?]

[제가 당신의 부인이 아니었던 가요?]

취풍녀의 말은 은근하다.

[취풍녀는 세상에 너 혼자가 아니야!]

소일초는 단호하게 내뱉었다.

일순, 취풍녀의 몸이 흠칫했다.

[세상에 또 다른 취풍녀가 나타났는가요?]

[오래전에……]

말끝을 흐리면서 소일초는 역근천골공을 풀었다.

강한 매력으로 먼저 상대방의 관심을 모은 이후에 절세적인 용모를 보여준다…

이것이야 말로 여인을 사로잡는 색귀(色鬼)의 대표적인 수법이 아닌가?

소일초 그는 취풍녀를 상대로 지금까지 그 수법을 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

조용한 침묵 속에 서서히 변해가는 소일초의 모습……

시간이 흐르면서 등마제주의 면사는 가볍게 떨리기 시작한다.

달빛 아래……

새로운 소일초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본래의 소일초의 용모가 그곳에 있었던 것이다.

천지간에서 가장 굴강한 표정과 신비롭고 수려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여인의 방심을 흔들리게 하는 아름다운 얼굴……

순간,

[음……]

무엇인가를 물으려던 취풍녀의 입에서 신음인지 찬탄성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떨기까지 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발견한 듯……

그의 보석처럼 빛나는 눈망울은 희열의 빛마저 내포한 침묵으로 뿌리고 있었다.

[좋아요……아주 아름답군요……]

무슨 말인지……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한동안 되뇌이고 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더이상 소일초를 보기가 두렵다는 듯 시선을 허공으로 돌렸다.

[당신을 제물로 생각한 오늘의 등마제주는 어쩌면 이 땅에서 가장 큰 행운을 잡은 것 같군요……]

소일초는 자신의 역근천골공이 풀어지는 순간……

취풍녀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이한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여인의 몸에서 발해질 수 있는 강렬한 체향과 지분냄새였다.

취풍녀가 동요했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완벽하게 감추고 있던 그 여인의 향기를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는 허무와 퇴폐가 깊이 내재된 욕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소일초는 느낄 수 있었다.

주소아에게서와는 아주 다른 느낌,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그것은 오히려 때때로 한천녀에게서 나 보여지는 것 같던 그 느낌이 소일초에게 묘한 자극으로 전해져 왔다.

이때,

취풍녀는 드디어 몸을 일으켜 바짝 소일초에게 다가왔다.

[지금 이 시간은 육욕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시간……당신과 함께 이 축제를 만끽하고 싶어요.]

[내가 결국 제물이 되는건가? 너의 짝짓기 제물이……,이렇게 해서 몇 명의 사내와 관계를 가진 후 죽였나?]

[다른 곳에서는 몰라도 등마제에서는 세 사람 뿐이었어요……]

취풍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일초의 말에 대답한다.

(나쁜 년 그게 적어?)

[그럼 이제 네 사람이 되는 건가?]

[하지만 당신은 달라요. 영원히 곁에 두고 싶어요.]

[끔찍하게 들리는군……]

[당신은 내키지 않은가요?]

소일초는 등마제주을 뚜렷히 직시했다.

[나는 항상 여자의 신비에 감탄하고 있지. 여체에서 느껴지는 그 흥분을 즐기는 편이지……]

순간,

취풍녀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호……]

그러다,

[나도 그런 점은 마찬가지였어요……늘 나에게도 이런 우발적으로 사내를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이편이 아는 사람보다는 더 짜릿하죠.]

그녀는 소일초에대해 깊은 동질감을 느끼는 듯 했다.

달빛과 야풍 속에서……

그녀의 손은 은밀하게 소일초의 몸을 더듬고 있었다.

[오늘 밤……오늘 밤 나는 등마제주이고 당신은 내 짝이에요……그것이 우리가 만난 의미의 모든 것이죠.]

소일초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오늘 밤은 내가 거꾸로 여자의 장난감이 되는구나, 어디 소아의 흉내나 한번 내 보자.)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취풍녀에게 내맡기고 있었다.

소일초의 음모 속으로 그녀가 빨려드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가 미끼만 따먹고 도망치는 물고기가 될 것인가?

멀리서 아직도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는데……

취풍녀는 자신의 옷을 벗고 있었다.

 

× × ×

 

만월이 스러지고……

등마제는 마침내 그 막을 내렸다.

사망림에 내려진 그 저주가 그 잔인이 끝을 맺은 것이다.

여명은 찾아들고……

이 죽음의 땅은 인간들의 죽음으로 뒤덮혀 있었다.

오오……저 지천에 나뒹구는 수많은 시신들……

그들은 등마제에 제물로 바쳐진 인물들과 이 참혹한 악의 축제를 없애겠다는 원대한 뜻을 품고 들어왔던 두꺼비들,

정천수호군 역시 칠백 여 명이나 죽어 있었다.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은 불과 삼백 정도, 그나마도 가까스로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 등마제주의 힘은 가공할 수 밖에 없었다.

정천수호단의 출동으로 사라지리라 믿었던 등마제가 더 큰 공포의 실체로 무림에 부각된 것이다.

등마제……언제까지 십오야에 피를 뿌릴 것인가?

 

× × ×

 

금릉,

이 고도에 자리잡은 한 은밀한 무림세력이 있다.

소은(小隱)은 산에 숨고 대은(大隱)은 시장에 숨는다는 장주(壯周)의 말을 따랐기 때문인가?

이 집단은 금릉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전혀 무림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한데,

한 대의 사두마차가 소리없이 그 집단이 존재하는 장소로 은밀히 들어갔다.

 

× × ×

 

한 거대한 대전(大殿)이었다.

대전의 내부는 단아하였고 정갈했다.

몇 점의 고서화가 사면 벽에 장식이 되어 있었으며 중앙에는 하나의 태사의가 놓여 있었고……

그 태사의의 앞에는 하나의 차탁이 있었으며 그 위에는 술 독이 올려져 있었다.

아침의 여명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고 있었으며……

대전내부가 그 황금빛에 신비하게 물들어 있었다.

[술은 만들어 먹는 것보다 담아서 먹는 것이 더 좋은 것 같아. 기분이 영 나질 않거든……]

중얼거림과 함께 큰 잔으로 술을 들이키는 사람이 있다.

눈처럼 희고 고운 손……

그 손은 여인의 것처럼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흩어진 머리칼……수더분해 보이는데

백의 청년의 용모는 이 땅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아름다운 것이었다.

바로 소일초였다.

[취풍녀를 족치면 될 것도 같은데, 나쁜 년놈들……하고 싶으면 자기가 하지 나한테 곤욕을 치루게 해? 어쨌든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끝장을 봐버려야지……]

나쁜 년놈들,

바로 한천이기인 원천기와 한천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구석에 숨어서 끝없이 그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취풍녀를 족쳐서 알아낼 것 알아내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그에게 한천이기는 이 집단의 핵심부까지 직접 파헤쳐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주소아가 신신당부를 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완전히 코가 꿰였어……주소아 그 여우한테 난 잡아먹혀 버린 거야……천하의 소일초가 이따우 짓이나 하고 숨죽이고 있자니 속이 터져 버릴 것 같아……]

그의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주소아의 얼굴,

사라져 버린 백인장의 작은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이 주소아다.

헤어진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렇게 보고 싶은 것인지……

이렇게 술로서 지내고 있는 걸 주소아는 알기나 하려는지……

그리고, 백인장의 식구들……

대체 그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다. 이런 것은 다 주소아가 알아서 해줄 일이다.

지금도 한천이기는 눈썹이 빠져라 어디론가 쫓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사주를 받던 정통마교의 배신자 조천수가 만든 등천마교의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지도 모르는 잔당들 일 수도 있는 이 신비집단을 파악하기 위해 바쁜 것이다.

문득,

치미는 울화를 술로서 달래는 소일초의 앞으로 한 소녀가 다가왔다.

일신에 청의를 걸친 시비 차림의 소녀였다.

그녀는 소일초의 면전에 이르러 공손히 고개를 조아린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무적검 대협!]

[…………]

소일초는 눈도 돌리지 않고 술을 퍼부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나타난 소녀가 취풍녀의 네 명의 시비 중 하나인 국향(菊香)임을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자기에게 눈도 돌리지 않는 소일초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인? 취풍녀?]

[그렇사옵니다……그분은 연화정(蓮花亭)에 계십니다.]

소일초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금릉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예의 그 신비집단의 내부였다.

그는 취풍녀과 함께 이곳에 온 후 오일을 보냈다.

이곳은 등마제를 주최하는 비밀세력의 근거지 중의 하나였다.

금릉의 중심가에 자리잡은 이곳은 그 세력의 수뇌들 중 취풍녀의 거처였으며,

이곳의 인물들이 자신들의 신분을 숨긴 채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등마제에 참석한 인물들은 모두 피리소리에 심신을 제압당하여 어디론지 가버렸다.

아마도 그들은 다시 등마제를 주도하는 세력의 손발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 지난 보름,

대파산 사망림에서 취풍녀는 소일초에게 황당해져 버렸다.

그녀는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도 소일초와 결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몸은 한없이 달아올랐는데……

결정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 소일초의 남성이 사그라져 꼬마들 새끼손가락만큼 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허전함에 다시 보면 그것은 다시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것이었고……

취풍녀 그녀는 객점에서 소일초가 술로서 부렸던 요술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그래요? 그렇게 내가 싫어요?]

취풍녀가 절박하게 소리쳤을 때,

[나는 거기까지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어……오늘도 예외일 수 없고……]

처근덕스럽게 소일초가 말했다.

[당신은 아내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글쎄, 우리 마누라가 그걸 원하지 않아. 이 정도에서 싫증나면 멈추곤 하지……]

그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소일초의 몸은 여전히 그녀에게 강한 욕구를 일으키게 하는데,

빌어먹을 작자가 주겠다는 떡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한 번도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뭘? 늘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하여 그녀는 소일초를 끌어안고 몸부림치다가 결국 식고 말았다.

죽이고 싶도록 미웠지만 도무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든 말든 이 귀엽고 능청스러우며 우람한 사나이를 포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속상한 마음으로 소일초를 데리고 이곳으로 온 것이다.

그녀의 몸은 아름답다. 면사속의 얼굴도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주소아의 몸에 익숙해져 있는 소일초로서는 도무지 아무 감흥이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토록 많았던 호기심이고 뭐고간에 주소아를 떠나고 난 후에는 몽땅 없어져 버렸는지 여자에게 눈도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취풍녀는 이곳에 와서도 밤마다 소일초를 불렀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그 묘한 요술을 부려 그녀를 안타깝게 했을 뿐이다.

그러는 중에 그녀는 어느새 그런 식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소일초의 깎아 만든 듯한 육체미에 깊이 빠지고 그의 마음대로 줄었다 늘었다 커졌다 작았다 하는 물건에 빠져가는 것이었다.

해내든 못해내든 그녀는 밤마다 그걸 보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엉뚱한 놈을 만나 이상한 중독에 걸려버린 것이다.

중증이었다.

한데,

취풍녀가 낮에 그를 부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바쁜 듯 했었고 소일초에겐 충분한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침 시간에 소일초를 부른 것이다.

(그 얼빠진 여자가 아침부터 발작인가……)

소일초는 연못에 있는 연화정으로 아침공기를 마시며 걷기 시작했고……

국향은 그의 뒤를 따라 가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주 제법이야. 좋았어. 점점 더 마음에 들고 있어……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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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正統魔敎의 武功을 익힌 登魔祭主

 

 

 

검은 사두마차의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잠을 자는 소일초……

그 얼굴은 오직 술에 절은 평범한 얼굴일 뿐이다.

하나, 그 얼굴을 주시하는 왕혜려는 내심 알 수 없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보면 볼수록 그 얼굴이 이끌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알 수 없는 일이다. 대체 저자의 어디에 이렇게 마음이 끌리는 것일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자신에게 묘한 회의감을 느끼기까지 하는 왕혜려……

과거 수 많은 무림의 청년을 보아 온 그녀가 아닌가?

그 중에는 북궁헌 같은 미남자도 상당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미남자들을 죽 보아오면서 아직까지 이런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밤……

그녀의 마음은 이 어두움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 만난 남자에게 정신없이 끌려들면서……

한데, 그녀의 생각을 홀연히 깨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스스스……

마차의 바닥에서 소리없이 꿈틀대며 일어나는 그림자가 있었으니……

흰 머리(白髮),

회색의 눈동자,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칙칙한 죽음의 기운……

절세미남자가 바로 소일초의 면전으로 솟아오르고 있지 않은가?

모든 사람의 시선을 집중한 가운데……

문득,

소일초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 눈은 천천히 그 백발의 절세미남자의 아름다운 손으로 향하고 곧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이 내미는 한 장의 서찰을 받아들었다.

순간,

그 절세미남자는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리없이 스물스물 사라져 버리지 않는가?

한편,

그 백발의 미남자가 나타나자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그 에게서 풍겨지는 소름끼치는 사기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같은 가공할 사기는 그들이 일찌기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저런 엄청난 사기가 뿌려질 수 도 있다니……대체 그는 누구인가? 저 무적검이란 자의 손에 들린 서찰은 또 무엇인지?)

그들은 의혹과 경악의 표정으로 소일초를 주시했다.

이때, 소일초는 그 신비의 서찰을 천천히 읽어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천이기 중 원천기가 전한 것이었던 것이다.

 

<서략(序略)……등마제주에 대해 알아본 바에 의하면……그는 등마제를 주재하는 인물로 어떤 단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소이다. 그 단체에 대해서는 아직 알 수 없소이다……>

 

(등마제주……)

소일초는 그 이름을 나직이 되뇌이며 계속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때, 그는 나직이 소리를 내어 읽고 있었으므로 주위의 인물들도 모두 서찰의 내용을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신비하고 또한 엄청난 잠재력이 있소이다.……그리고……회주께서 타신 검은 사두마차는 등마제주를 제외한 삼십 육 명의 흑의복면인이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따르고 있으며……그들의 무공은 일파의 종주와 비견될 만큼 가공할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한데 놀랍게도 이 마차 외에도 수많은 마차들이 검은 포장을 한 채 대파산을 향해 질주하고 있소이다……>

 

(모두가 제물을 실은 마차겠지……)

소일초의 얼굴에 가볍게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가 나타날 때보다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 마차들은 대파산의 중심으로 사방에서 사망림(死亡林)으로 향하고 있으며……그들을 포위한 채 정천보의 정천수호군이 따르고 있습니다.>

 

소일초는 손아귀속에 서찰을 움켜쥐었다.

파지직------

연기를 내면서 서찰은 사라져 버렸다.

더이상 아무 할 일이 그에겐 없다는 듯이……

소일초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그의 진실한 정체에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으니……

무적검……

이것이 그들이 소일초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지만,

이 서찰을 전한 조금 전의 신비인 하나만 보더라도 그의 존재가 자신들의 짐작보다 엄청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신비인……

그는 등마제주와 삼십 육 인의 호위들의 포위망을 교묘히 뚫고 들어 올 수 있으리만큼 대단한 무공을 소유했다.

그 정도의 인물을 수하로 거느린 소일초……

그의 존재에 대해 그들은 새삼 다시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때였다.

파아아아……!

돌연 마차의 천정을 뚫고 떨어지는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한 마리의 금빛 전서구(傳書鳩)였다.

그 전서구는 곧장 왕혜려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이제야 연락이 왔군……]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수호군의 인물과의 긴밀한 연락용이었던 것이다.

그 전서구의 발에는 죽통이 매달려 있었고 한 장의 서찰이 들어 있었다.

정천수호군의 군주인 왕혜려는 그 서찰을 빠르게 읽어 나간다.

소일초는 눈을 감은 채 생각한다.

(정천보의 정천수호군의 능력도 보통이 아니군……전서구를 이곳으로 전할 수가 있다니……대단한데……)

소일초 역시 정천수호군의 잠재력을 인식하지않을 수가 없었다.

한데,

그의 뇌리에는 엉뚱한 생각도 있었으니……

(등마제주……그가 등마제를 주관하는 인물들 중 한 사람이라면……그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겠지……그럼에도 불구하고……그가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그에게 자신있다는 말인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치밀하며 어떤 계획적인 신경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정천수호군……

등마제주……

그리고 자신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 치의 빈틈도 찾아 볼 수 없는 계획 속에 움직이고 있음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한편,

서찰을 읽고 난 다음 북궁헌과 왕혜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받은 서찰의 내용이 소일초가 받은 서찰의 내용과 완벽하리만큼 일치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차는 더욱 더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으며……

대파산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사망림(死亡林),

이곳은 죽음의 숲이다.

하늘이 외면하고 인간마저 외면한 죽음의 오지(奧地),

그 버려진 땅은 광대하다.

방원 백여 리가 안개의 밭이요……

무성한 잡초만이 늘어진 황량한 광야이다.

황폐한 땅, 오직 가시덤불과 잡초들만 뒤덮혀 있다.

그리고,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사목들……

독충들이 우글거리며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었기에 언젠가 부터 버림 받은 땅……

그 위에도 십오야의 만월(滿月)은 떴다.

한데,

그 만월아래……

모여드는 이 일단의 무리들……그리고 검은 마차……

모여드는 무리들의 소매에 붉은 악마화가 그려져있고, 사망림은 마두들로 물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악마화을 그려넣고 사망림에 모여들고 있는 인물들……

오늘은 보름달이 뜬 날이다.

 

-등마제(登魔祭).

 

바로 이것이다.

이것이 이 죽음의 땅에 인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붉은 악마화를 그려넣고 나타난 인물들은 바로 이 등마제에 초대받은 악인들이고,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잠재된 온갖 악을 행할 수 있으리라는 강렬한 기대에 사로잡히면서……

그들의 수효는 어림잡아도 이 천여 명……

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사망림으로……사망림으로……

마차들도 사망림으로 다가들고,

그 가운데 한 대, 바로 소일초가 타고 있는 검은 사두마차 역시 이때 사망림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일초는 느끼고 있었다.

사망림의 전체를 뒤덮고 있는 엄청난 마의 기운을……

그 기운은 광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의 폭발이요, 욕망의 분출이었다.

(등마제주……등마제……과연 여기서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취풍녀가 관련이 있다는 외에는……)

소일초의 마음은 의욕보다는 회의가 더 많았다.

주소아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어 참석한 등마제,

하지만 일단 부딪쳤으니 닥치는 대로 일은 해보고 볼 일이다.

이때,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애써 긴장을 감추려 하는 태도가 역력하게 소일초의 눈에 들어왔다.

[긴장하고 있는가 흥분하고 있는가? 궂이 숨길 필요야 있나 다 사람마음에 있는 것인데.]

소일초의 말은 장난처럼 흘러나왔다.

그러나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눈빛을 빛내며 잠잠히 있었다.

밖에 있는 적들도 무섭지만, 마차 안에 있는 괴상한 청년 무적검도 종잡을 수 없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소일초는 마차 밖의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검은 사두마차가 사망림의 깊숙한 지점으로 진입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한천이기가 계속하여 그에게 전음으로 앞 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망림……

이곳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돌연, 검은 사두마차가 그 움직임을 멈춘다.

잡초가 파도처럼 출렁이는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리는 곳이었다.

소일초는 눈을 떴다.

그러자 왕혜려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그녀의 해맑은 동공이 가득 그를 담고 있었으며 그 어떤 기이한 감정을 풀어놓고 있지 않은가?

그런 왕혜려를 보며 소일초는 빙긋 웃음 지어 보였다.

그런 후 말했다.

[너무 늦었어……이미 임자있는 몸이야……]

순간, 왕혜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고개를 돌렸다.

마음을 들킨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의 매정한 말에 화가 나기도 했던 것이다.

소일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드디어 구렁이 뱃속이야. 두꺼비 친구들 잘해봐……]

왕혜려 역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어떻든 다시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겠어요……]

그녀의 말투에는 감출 수 없는 정이 깃들어 있었다.

소일초는 그런 그녀가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곳에서 만나게 되길……기왕이면 친구도 적도 아닌 사이로……]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한데,

그 말이 막 끝나자마자,

쿠르르르------!

마차의 철문이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열린다.

그리고,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한 명의 흑의복면인이었다.

눈빛이 회색빛을 띠고 있는 그 흑의복면인은 잠시 마차 안을 살핀 후 감정없는 억양으로 말했다.

[먼길을 오느라 수고들 했다……이제 그대들은 이곳에서 가장 안락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행운이요……다시 맛볼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죽음을 행운이라고 말하는 이 흑의복면인,

[내려와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흑의복면인의 말은 죽음의 기운을 강하게 담고 있었다.

사망림에 소용돌이치는 죽음의 기운 만큼이나 진하게……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아무 말없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어,

소일초 역시 검은 사두마차에서 천천히 내려갔다.

안개의 소용돌이가 무섭게 사위를 휘감고 있었다.

달빛에 물든 푸른 안개……

그것은 마치 지옥을 방불케 할 만큼 사망림을 음사하게 침잠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검은 사두마차를 중심으로 어둠 속 여기저기에 보이는 저 수 많은 붉은 악마화……

그것은 악마의 혓바닥처럼 사이하게 어둠 속에서 그 푸른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음……대단하군. 어떻게 되던 빨리 신나게 한판 붙어라, 어떻게 좀 정리가 되야 뭘 알아 내기도 쉽겠지……이 어르신은 어부지리를 취해주마……)

소일초의 마음은 야릇한 기대감에 차있었다.

이런 기분은 아마 마장탑에서 나온 뒤 처음으로 느껴본 것이리라.

스스스……

이 악마의 땅 위로 죽음의 기운을 뿌리며 스쳐 지나가는 일진 음풍……

소일초는 표표히 옷자락을 나부끼며 사방을 살폈다.

우선, 수십 대의 또 다른 마차 즉 검은 사두마차가 눈에 들어왔다.

그 검은 사두마차 역시 이 죽음의 제전에 쓰일 제물을 싣고 온 것이리라.

인간 제물들……

그들은 대부분이 청년들과 소녀들이었다.

용모가 준수한……

그래서 그들 대부분이 무림의 기재기녀(奇才奇女)들임을 느끼게 하는……

한데, 이때 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곧 전개될 이 죽음의 제전에 대해 엄청난 전율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의 공포는 무엇으로도 가다듬을 수 없는 것이다.

일단,

그들이 사망림에 들어 온 이상 그들은 체념 이외에 달리 어떤 행동을 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정천수호군의 인물들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소일초는 다시 시선을 돌려 방금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사두마차를 바라보았다.

붉은 악마화이 걸려 있는 검은 사두마차,

그 주위로는 정확히 삼십 육 명의 흑의인들이 마치 흔들리는 안개의 일부분인 양 희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즉,

그들은 검은 사두마차의 사방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일초는 생각했다.

(한천이기의 말대로 저들의 무공은 일파종사의 경지에 올라있다. 놀라운 일이로군……등마제의 일개 주구들인 저들의 무공이 저정도라니…정천수호군은 버겁겠는데……)

한데 이때,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의 표정은 완전히 경악에 질려 잇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바로 방금 그들이 타고 온 검은 사두마차의 지붕에……

한 마리의 독수리가 나래를 접은 채 고요히 앉아 있지 않은가?

한데 그 독수리의 날카로운 두 발 사이에 끼어있는 몇 마리의 날짐승,

그것은 바로 정천보의 인물 사이에 연락용으로 쓰이던 바로 그 금색 전서구들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정천보의 모든 기밀이 등마제주라는 인물에게 완전히 간파당하고 있었다는 결론을 말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정천수호군주 왕혜려와 나머지 정천보의 정천수호군 소속 인물들이 경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리라.

소일초는 혀를 찼다.

[그 정도는 짐작했어야지……등마제주도 합바지는 아닌데……머리나빠 고생들이 많겠어.]

그리고,소일초는 계속하여 등마제주라는 인물을 살폈다.

등마제주,

그는 쉽게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나 안광이 극도로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 인물이라면 그를 발견할 수가 있으리라.

그는 마차의 전면에 있는 붉은 악마화 앞에 앉아있었다.

악마화와 동화가 된듯 자연스럽게 어우려져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었다.

달빛은 다시 혈응의 핏빛 깃털에 반사되어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데……

신비롭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그야말로 극사한 것이었는데 발견하기는 어려워도 보는 이들에겐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노을처럼 환상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그 인물이 바로 등마제주이라는 사실은 주지의 일이었다.

그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면사의 사이로 드러난 눈망울은 유리알처럼 맑고 깨끗하였다.

그런 그의 눈망울을 보며 소일초는 느낄 수가 있었다.

(흔적을 다시 발견했군……한천이기가 좋아하고 있겠지……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자……)

그렇다.

극마의 경지에 이른 인물만이 지닐 수 있는 눈빛을 등마제주는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벌써 부터 소득이 있으니 빨리 동선장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등마제주의 배후 집단 만 알아내면……하지만, 그 세력을 경시해서는 안되겠는데……어쩌면……등마제주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아닐 텐데……극마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가 많이 있다면 옛날의 정통마교보다 오히려 더 강하다는 말……)

정통마교에서는 오직 구마존 중에 천마존 만이 극마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데,

등마제주 역시 극마의 경지에 이른 인물인 것이다.

소일초의 생각은 이즈음에 이르러 있었고……

다시 그의 생각이 이어질 즈음,

문득, 등마제주가 입을 열었다.

[시작하라!]

단 네 마디의 음성이었다.

어떤 인간의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무심무정한 음성이었다.

한데 그 음성이 막 떨어지는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소리……

삐리리리……삐리리리……

사람의 감정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그 소리……

어쩌면 이 피리소리는 등마제주의 음성과 동일한 시간에 터졌는지도 모른다.

한데,

그 피리소리에 이끌린듯 사방의 붉은 악마화들이 움직인다.

아니, 붉은 악마화를 새긴 마인들이 등마제에 바쳐진 제물들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소일초는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를 비롯한 정천보의 인물들을 쳐다보았다.

(왜 아직 움직이지 않는가? 시작하려면 지금 해야지……멍청하게 이미 들통난 판에 더 기다려서 전멸할 작정인가……)

기습과 암습은 철저히 비(秘)로 시작되고 비(秘)로 끝나야 하는 것이다.

한데, 바로 정천보의 이번 거사는 보안의 부족으로 완전히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주는 그것에 관해 한 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그가 정천보의 비밀을 파악했다는 말에 대해서……

하나……독수리의 발가락 사이에 죽어있는 그 몇 마디의 전서구는 그가 이미 정천보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보여 주는 것……

아무리 천하의 기재인 정천수호군주 왕혜려라 해도 이때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비명이 들린다.

붉은 악마화를 든 수백여 명의 인물들이 제물들을 덮쳐 들면서 일어난 비명이었다.

어둠 속에서 터져 오르는 신음……

그것은 욕정의 폭발이요, 광란이었다.

소용돌이 치는 안개……

뜨거운 신음과 공포에 질린 비명이 병행하여 들리고……

마침내 등마제의 제전 중 육욕(育慾)의 제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소일초를 향해 다가오는 그림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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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馬車는 달린다.

 

 

 

휘장이 드리워진 객점의 한 방,

소일초가 정신없이 침상에 골아떨어져 있다.

그리고……

침상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홍의면사녀,

취풍녀였다.

[정말 신비한 사람이야……마치 요술장이 같아……]

그녀는 손뼉을 딱딱 쳤다.

그러자,

그 방의 한쪽 귀퉁이에서 검은 복면인이 나타났다.

[여기에 있다가 시간이 되면 이 사람을 데리고 합류해라.]

말을 마친 후 취풍녀는 창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흑의인은 해가 저물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

 

밤(夜),

달빛도 별빛도 없는 칠흑의 밤을 가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일신에 흑의를 걸친 무심냉막한 눈빛의 복면인이었다.

한데,

그의 옷 소매을 보라!

하나의 붉은 꽃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지 않은가?

여섯 개의 꽃잎을 가진 섬찟한 혈화(血花),

그것의 심에는 끔찍하게도 작은 해골이 그려져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붉은 꽃잎 속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오오……그것은 악마화(惡魔花)……

바로 악마화가 아닌가?

등마제의 신물과 같은 그것은 등마제에 참석하는 인물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놀랍게도,

지금 그 악마화는 복면인 검은 소매에 새긴듯 그려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면인의 어깨에는 한 명의 청년이 축 늘어진 채 매어져 있었다.

바로 소일초였다.

이때,

소일초는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다.

객점에서 나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복면인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 자가 악마화의 표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아……등마제를 관장하는 무리와 연관이 있음이 분명하다.)

한데 복면인의 신법은 놀라우리만큼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발 끝이 지면에서 한 자 이상 뜬 채 허공을 부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절정의 내가고수가 아니면 전개할 수 없는 절정허보(絶頂虛步)였던 것이다.

(취풍녀……이자가 취풍녀의 일개 하수인이라면 등마제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인물들은 취풍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인데……)

한편,

복면인은 막 한 절곡에 이르고 있었다.

사방이 울창한 송림에 휩싸인 절곡이었다.

한데 그곳의 중앙,

한 대의 사두마차가 어둠 속에서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차 동체가 검은 빛인 마차,

그것은 얼마 전 양양의 한 대로상을 스쳐갔던 바로 그 마차였던 것이다.

(악마의 사두마차……)

소일초는 한천이기의 전음을 생각하며 복면인이 느끼지 못하게 마차를 살폈다.

이때 복면인은 마차에 바짝 접근한 후 공손히 부복했다.

[등마제주(登魔祭主)를 배알하옵니다.]

순간,

고오오------

천지사방이 일시에 멈추는 듯한 적막과 함께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어둠의 움직임은 바로 검은 사두마차로부터 시작이되고 있었으며……

어둠의 폭풍은 소일초를 휘감더니 곧장 마차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실로 놀라운 변화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송림을 울리고 차츰 어둠을 울리고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으니……

[수고했다.]

이 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오는지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인의 음성인지 사내의 음성인지조차도 구별이 안간다.

[이제 그대는 돌아가도 좋다.]

이 말이 떨어지자……

스스스……

하나의 핏빛이 사위에 진하게 뿌려지고……

어둠을 해치며 들려오던 그 신비한 음성은 이 마차의 전면에 그려진 악마화 속의 푸른 해골에서 부터 흘러나오고 있음이 드러났다.

이 흑의복면인은 더욱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더니 이내 몸을 날려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러자,

사두마차는 절곡을 빠져 나와 무서운 속도로 어디론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둠의 폭풍을 날리며……

 

× × ×

 

마차 안,

사두마차의 안은 넓었다.

사방은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철창으로 완전히 막혀 있었으며……

그것은 사방이 완전히 외부와 차단된 하나의 뇌옥을 연상하리만큼 음침했고 칙칙했다.

어둠의 공간은 질주하는 마차의 흔들림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에 떠있는 열 쌍의 눈동자가 있었으니……

그 눈빛은 모두 어둠속에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단 한 쌍의 눈동자를 제외하고는……

소일초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거무럭 거리고 있었다.

어둠을 대낯처럼 환하게 볼 수 있는 소일초……

그는 광채없는 눈으로도 마차의 내부를 선명하게 살필 수가 있었다.

마차 안에는 그를 포함하여 정확히 열 명의 남녀가 이리저리 쓰러져 있거나 눕혀져 있었다.

그들 중에는 양양의 대로상에서 납치당한 소녀도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무심하고 초연한 표정을 짓고 반짝이는 눈동자를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나이는 불과 약관 전후로 보였는데 그들의 용모는 천하에 짝을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수려한 것이었다.

남자가 넷, 그리고 여인이 넷……

소일초를 포함하여 열 명의 남녀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살피느라 애쓰고 있는 표정이 역력했다.

두두두-----

마차는 어디론가 질풍처럼 질주하고 있었고,

마차의 유리문을 통해서 흐릿한 달빛만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소일초는 생각했다.

이들 모두가 납치당한 인물들이며 일견하여 서생과 여염집 규수들인 것처럼 보이는 것 같지만 실로 절정의 고수들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군……저들에게는 제각기 가공할 무공이 있는 것 같은데……스스로의 무공을 애써 감추려 하고이다……아마도 다들 일부러 잡혔겠지……)

짧은 순간,

마차 내부의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를 살핀 소일초는 이곳의 대부분의 인물들이 어쩌면 자신과 같이 어떤 목적을 두고 계획적인 납치를 당한 것이라 짐작했다.

문득,

그는 마차 안에 감돌고 있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모두가 구렁이 입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두꺼비들 이었군, 같은데 몸을 두고 있으니 통성명이나 하지……]

그의 음성은 술이 들 깬 듯 일정한 높낮이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눈동자가 흠칫하면서 그를 주시했다.

하나,

그의 물음과는 상관없이 없다는 듯 마차 안은 여전히 눈을 빛내는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음……구렁이가 혹시 먹지 않을까 두려운 모양인데……]

그는 더욱 더 마차 안의 인물들에 대해서 호기심을 느꼈다.

(정천보 인가 뭔가 하는 데서 파견한 놈들이겠지? 신분이 드러날까 두려워 말도 못하는 겁장이들……)

이때,

그는 다시 불쾌한 듯 물었다.

[어차피 우리는 한 배를 탄 신세가 아니가? 사람이 통성명을 청했으면 무슨 말이라도 있어야 되지 않나?]

문득 소일초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그대는 이곳이 어디인지나 알고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가?]

전음이었다.

소일초는 대로상에서 납치당한 소녀를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대로에서 납치를 당한 소녀인지 침실에서 납치당한 소녀인지 알 수가 없지만……

그는 빙그레 웃었다.

[물론 알고 지껄이지……여기가 사두마차의 안이라는 걸 왜 모르겠나……우리를 편안히 목적지 까지 데려다 주려고 하는 마차를……]

이 말에 마차 안의 인물들은 침음성을 토했다.

은은히 그들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떠오른다.

소녀의 음성이 다시 무게를 담고 이어졌다.

[역시 이 마차가 등마제로 가는 것을 알고 있었군, 그런 것을 알면서도 통성명을 하자는 것은……어떤 의도인가?]

그녀의 전음은 서릿발처럼 차가왔다.

그는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겁장이들이야……큰 일하긴 힘들겠어, 너무 작아……]

순간,

마차 안의 인물들의 얼굴에 일제히 차가운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말을 함부로 하는군……그대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나……목숨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그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라.]

역시 전음으로 들려오는 이 말,

그것은 한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었다.

이때 청년의 눈빛은 하늘을 닮고 있었으며 일파종사의 위엄을 담고 있었다.

소일초는 다분히 놀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쓸만한 내공이군……단지 저 눈빛 하나만으로도 정천보에서 지위가 높은 인물이라는 걸 느끼겠는데……)

소일초는 시종일관 불규칙한 높낮이로 주사(酒邪)처럼 말했다.

[과연 정천보의 인물다운 면모가 있어 ……겁이 많은 것이 흠이지만……]

순간,

[죽으려고 환장했군……]

차가운 냉소와 함께……

파아아아------!

좌측 맨 끝에 있던 한 명의 청년이 한 손을 쭉 뻗어 소일초의 목을 노리고 덮쳐왔다.

아니,

그렇게 생각할 즈음 이미 청년의 투명한 손은 소일초의 목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감히 정천보라는 이름을 함부로 들먹이다니 죽어 마땅하다.]

검미를 찌푸린 채 냉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청년의 눈빛은 물처럼 고요하다.

소일초……

자신의 목을 잡아오는 상대방의 손힘에서 그는 가공할 내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는 내심은 가소로웠다.

순간,

그의 비웃음이 터지기도 전에 소일초의 목을 잡으려던 청년의 손이 딱 멈추어지고,

[으으……이럴 수가……]

그 청년의 얼굴 위로 식은 땀이 맺힌다.

그 식은 땀은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타고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손……

소일초의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손에 언제 뽑혀져 있었는지 둔중해 보이는 붉은 검이 그 청년의 가슴에 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황검(魔皇劍)이었다.

소일초 그의 몸 어디에도 검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 순간 그는 둔중해 보이는 붉은 마황검을 손에 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검에서 뻗어 나오는 미증유의 살기……

그것은 청년의 사지백해를 타고 흘러들며 무서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준다.

[으아악-----!]

비명이 그의 목젖을 울리며 참혹하게 터져 나왔다.

그러자,

마차 안의 나머지 인물들은 그만 경악하고 만다.

그들은 청년의 무공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가를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아무 기척도 흔적도 없이 검을 손에든 소일초의 무서운 쾌검에 그만 질려 버리고 있는 것이다.

소일초는 빙그레 웃었다.

[더 크게……등마제주에게는 아직 들리지 않은 모양이야…… 등마제주라는 인물이 아직까지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으니……]

역시 높낮이가 불규칙한 말을 하자,

청년의 비명은 더욱 크게 터져 나왔다.

청년은 아예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경악과 불신을 가득 담고 있었으며……

이런 고통 속에서도 자신이 어떤 항거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생애 최초의 회의를 뼈저리게 맛보아야 했다.

그때였다.

어둠의 신분처럼 앉아 있거나 누워있던 나머지 인물들이 만면가득 살기를 담고 소일초를 향해 밀려드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마차 안은 진한 살기에 휩싸이고……

그 속에서 소일초의 음성이 살기를 억누르며 터져 나왔다.

[이제 보니……나쁜 놈들이군, 동료가 나를 죽이려 할 때는 방관하더니 내가 고통을 줬을 뿐이데 나를 죽이려 하다니…… 정천보도 확실히 썩은 곳이야……]

몰려드는 인물들은 단지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그를 향해 다가설 뿐이었다.

소일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살수를 쓰려하다니……좋아……한 발작만 더 다가온다면……아마도 이 마차 안은 아홉 개의 머리가 뒹굴게 될 거야……]

순간,

소일초의 말에 자극을 받은 듯 그들의 동작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멈추었다.

소일초의 마황검이 일렁거렸다 싶은 순간 그들의 소매자락이 일제히 베어져 나갔다.

세상에 이처럼 빠른 검이 있을 수 있는가 싶어 경악하며 그들은 꼼작도 못하고 있었다.

[좋아……그렇게 가만히 있어……그래야 겁장이 정천보의 인물들이라 실감할 수 있지……]

소일초의 말은 결코 전음이 아니었다.

그의 말은 조용한 것이었으나 마차 밖에서도 들을 수 있으리만큼 큰 소리였다.

한데,

마차 밖은 고요하다.

마차 안의 동태가 어떻게 되어가는 지는 전혀 모르는 듯 다만 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등마제주라는 인물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의혹은 정천보의 인물들 역시 크게 의아해 하고 있었다.

문득,

이 의문에 답변이라도 하듯 소일초가 말했다.

[이곳은 외부와 차단이 돼 있어. 흡음판이 설치돼있어 비명소리하나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진 곳이야.]

그랬던가?

그래서 아직까지 등마제주라는 인물이 마차 안에서 일어나는 소요를 짐작하지 못한 것이란 말인가?

[이제 조용히 이름이나 밝혀 보시지……]

 

두두두------

마차는 어둠을 가르며 거침없이 달리고……

마차 안에서는 이제 통성명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강요에 의한 통성명……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의 이름과 무림의 위치를 밝혔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자신을 밝혔다.

그녀 바로 대로상에서 계획적으로 납치당한 소녀와 일파 종주와 같은 기도를 풍기던 청년이었다.

먼저 청년이 입을 열었다.

[본인은 정천수호군에 소속되어 있으며……북궁헌(北穹憲)이라 하오.]

소녀의 입을 열었다.

[역시 정천수호군에 소속이 되어 있으며……왕혜려(王慧黎)라 한다.]

북궁헌과 왕혜려……

비로소 그들의 이름 석자와 소속이 밝혀졌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의 소속 또한 정천수호군이라는 것도 드러났다.

소일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

[북궁헌과 왕혜려……지위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 동시에 떠오른 것은 망설임……

하나,

그들은 소일초의 검에 가슴을 갖다대고 고통에 떨고 있는 청년을 바라보며 나직이 탄식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많은 것을 알려 하는군……대체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훗날……그것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일지라도 후회하지 않겠는가?]

싸늘한 왕혜려의 말이었다.

그녀의 수정처럼 맑은 눈망울에 떠오른 분노의 빛은 어둠을 부르르 떨게 하고 있었다.

소일초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런 그의 평범한 얼굴에 사이한 아름다움이 햇살처럼 영롱하게 피어오른다.

[너무 정중한 협박이야……그러나 죽음은 나를 피해가지. 그러니 그런 걱정은 접어두고……신분이나 확실하게 밝혀.]

순간 그는 더 이상 청년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듯이 한쪽 벽으로 밀어붙였다.

어둠……

그리고 그 가운데의 소일초……

평범가운데 비범을 보이고 있는 소일초의 신색에 정천수호군의 인물들은 알 수 없는 경외감을 느꼈다.

특히,

여인이면서 만인지상의 권좌에 올라있는 왕혜려의 마음은 이 낯선 사내에게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느끼고 있었으니……

(언제 내가 이런 홀대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이 자는 추측할 수 없을 정도의 신비한 사람이다. 또한 고수……무림에 이같은 인물이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진정한 정체가 무엇이기에……)

그녀는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추스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는……정천수호군의 ……군주(軍主)다. 이만하면 됐는가?]

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왔다.

순간,

소일초는 의외라는 듯한 기색이 떠올랐다.

[군주? 당신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정천수호군의 군주-----

무림에 알려진 바 없는 인물이 아닌가?

그 정체가 처음으로 소일초에 의해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경이로운 일이었던 것이다.

정천수호군이 어떤 곳이던가?

정천보의 최고의 중추세력 중 하나가 아니던가?

한데,

불과 약관의 그녀가 그 신비의 정천수호군의 군주라는 엄청난 직위에 올라있는 것이니……

더이상 그녀의 뛰어남에 대해 가타부타 논할 필요가 없으리라……

 

북궁헌 또한 정천수호군의 부군주(副軍主)였다.

소일초는 새삼 두 사람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대단한 인물들이로군……이런 곳에서 정천보의 최고 인물들 중 두 사람을 대하게 될 줄이야……그다지 나쁘지 않군.]

그는 비스듬히 마차 벽에 기대며 계속 입을 열었다.

[이젠 됐어……그 정도면 어느 정도의 통성명은 이루어진 것 같으니……무슨 짓을 하든지 상관은 하지 않겠어……]

그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입을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때였다.

부군주 북궁헌이 검미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통성명을 했다는 말은 어딘지 모순이 있는 것 같군……그대는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자,

소일초는 조용히 눈을 떴다.

[나?]

그는 기이하게 웃으며 주위의 인물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나는……유명하지 않은 인물이야……말한다 해도 모를거야……]

[…………]

[하지만 그대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라도 말해야 겠지……나는……]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집중된다.

[……무적검(無敵劍)이라 부르지……]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자신의 성명 삼 자는 함구한 채……

한편,

소일초의 말을 듣고난 인물들의 표정에 진한 의혹의 빛이 흘렀다.

(무적검?)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 아닌가?)

그들의 의혹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쾌검으로 볼 때 적당한 이름 같기도 했다.

무적검(無敵劍)……

오직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인물은 그를 제외하고는 두 사람 뿐이다.

바로 주소아와 취풍녀……

아무튼,

이들의 만남은 우연한 것이었고……

한 배를 탄 듯한 마차를 타고 있는 이들의 목적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었지만……

마차는 달린다.

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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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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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입 큰 놈이 먹히는가? 배 큰 놈이 먹히는가?

 

 

 

한천녀와 원천기는 달빛아래 가득 흩어져 있는 이십여 구의 시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신을 응시하는 그들의 얼굴에 언뜻 놀라움의 빛이 떠올랐다.

(놀랍군……이들은 정확히 단 일초에 죽음을 당한 것이다……)

그들은 새삼 소일초의 가공할 무공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소일초와 주소아가 그들의 뒤에서 걸어왔다.

입가에 묘한 미소를 걸고서……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의 시선을 맞받지 않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침입자들의 정체에 대해 의혹을 금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원천기는 고개를 돌려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한천녀의 애써 외면하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차갑기만 하던 한천녀가 아까 그 여자였다니 신기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문득,

원천기을 향해 소일초는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건넸다.

[원천기……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짐작가는 점이라도 있나?]

천천히 원천기는 시선을 돌렸다.

돌려진 시선은 어느듯 무심하게 변해 한천녀을 응시하다가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옮겨진다.

한 줄기 야풍에 그의 백발은 표표히 휘날리고……

그의 입을 통해 감정없는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들의 정체를 알아내기엔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소이다.]

[오늘밤……침입자들은 참으로 행복한 죽음을 당한 것이지……고통없는 죽음이란……이 소일초가 내리는 최고의 선물이니……]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한천녀의 표정은 그 미소에 접하는 순간 차가운 빛을 되찾으며 무심하게 돌려졌다.

그러자,

소일초와 주소아는 몸을 돌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무심히 던지는 말……

[달빛에 취해 잠을 못이루고……사랑에 취한 사람을 위해 정적을 선물하고……좋은 구경을 위해 피를 뿌렸으니……소아 우린 잠이나 더 자자……]

휘적휘적 주소아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소일초의 등은 웬지 거대해 보였다.

한천녀와와 원천기는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었군……)

그녀는 잠시 원천기을 주시하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지금도 분명히 느끼고 있는 것은 원천기가 자기에게 사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그녀는 원천기의 손길을 영원히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달빛은 수수롭고……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다.

아직도 그녀의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한과 저주인데……

문득,

그녀의 어지러운 상념을 일깨우는 원천기의 음성이 있었다.

[으음……이들은 얼마 전 부터 장원 주변을 배회하던 그 신비인들이겠군……멀리서 돌기만 하더니 오늘은 이곳까지 들어왔군……]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시신들의 복면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히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서 이들은 모두 마공을 익혔어……]

그 어떤 잡히지 않는 사실을 찾아가며 원천기의 손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시신들의 얼구른 달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원천기와 한처녀의 눈에 경악의 빛이 점점 더 전해지고 있었으니……

[이럴 수가 이 자는 정통마교의 배신자들의 무공을 지녔다.]

[이 자 역시 마찬가지다.]

경악의 도를 넘어서 떨리기까지 하는 그의 음성은 한천녀에게도 경악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

오오……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달빛 아래 정황이 드러난 이 사건은 실로 그들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

한 밤의 침입자들……

그들은 놀랍게도 과거 정통마교를 배신하고 사라졌던 자들 처럼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었던 것이다.

등천마교는 혈기대종사의 겁으로 인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렸거니 했는데……

한데……한데……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오늘 밤 이 동선장에 나타난 것이다.

정통마교는 멸망했다.

그렇다면……

정통마교의 배신자였던 조천수 등이 만든 등천마교의 잔당이 남아 있다는 말인데……이럴 수도 있단 말인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전신은 가는 경련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마장탑을 나온 후 그들은,

옛날 자기들의 사주로 인해 정통마교를 멸망시키고 뛰쳐나온 조천수 등을 찾은 적이 있었다.

이미 조천수 등이 막강한 세력을 떨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등천마교는 그 꽃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혈기자와 네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흔적도 없이 멸망해 버렸다는 것을 알고 경악해 마지않았었다.

등천마교야 말로,

그들 칠십이기재들이 무림에 안배한 가장 큰 힘이었는데……

또한,

그들은 이름이 비슷한 등천마세의 소문을 듣고 찾았으나,

정사를 양분하고 있는 그들이건만 그 본거지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

정통마교의 무공을 쓰는 등천마교의 잔존자들인 듯한 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문득,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올랐다.

(또 다른 인물들이 주위에 있다.)

생각과 동시에 번쩍 원천기의 신형이 좌측 수림쪽으로 날아갔다.

한천녀의 신형도 한 줄기 안개처럼 흐릿하게 화하여 그의 뒤를 따른다.

한데 다음 순간,

또다시 터져 나오는 경악성……

[이들은……]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의 사방을 살피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림에도 수십여 구의 시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신들의 복장은 앞서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시신들과 동일한 점으로 보아 그들과 같은 일행임이 분명했다.

한데 이들이 소일초에게 죽음을 당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엿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수림에 은밀하게 죽어있는 시신들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기이하게도 이들 시신에서는 어떤 외부적 상처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내장도 손상을 입은 것 같지 않으니……

복면을 벗겨 본 원천기와 한천녀는 이들 시신도 역시 정통마교의 마공, 즉 구마존이 사용하던 마공을 익힌 자들의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수 없이 많은 마공을 훤히 꿰뚫고 있는 그들은 얼굴만 살피고도 알 수가 있었다.

정적,

슬프게 쏟아져 내리는 달빛 속에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때 문득,

오랫 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천녀이 입을 열었다.

[이들의 죽음은 곧 정통마교주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지요……]

원천기는 한천녀을 주시하며 물었다.

[소일초가 죽인 시신들과 관련이 있다니……무슨 말이오?]

한천녀는 잠시 시신을 주시하다가 원천기를 직시하며 말했다.

[내 말은 이들과 소일초가 죽인 인물들과는 영적으로 맺어져 있었다는 말이지요.]

[영적으로?]

[맞아요……이들은 영적으로 맺어져 있어 공포를 공유하게 되죠. 일단 공포를 느끼게 되면…… 이처럼 상처하나 없니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천녀……

그녀는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어 간다.

[즉……이들은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다수가 죽음으로써 소수가 영적인 공포를 느껴 ……그리하여 짧은 시간에 이처럼 소리없이 죽어갔던 것이지요……]

그녀의 말은 참으로 충격적인 말이었다.

 

아침에,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서,

소일초와 주소아는 비로소 수십 구의 시신들의 죽음의 실체를 알게 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서운 일인데……비밀을 지키기 위해……단지 비밀 하나를 위해 이토록 속절없이 죽음을 당하다니……누가 이렇게 겁나는 단체에 가입하려고나 할까?]

생각할수록 그것은 전율스러운 일이 아닌가?

잔인한 일이었다.

실로 무섭도록 철저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소일초에 의해 동료들이 죽음을 당하자,

공포를 느끼고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워 심맥을 단절하고 그대로 죽음을 택한 이 철저하도록 잔인한 인간들……

그들이 다름아닌 정통마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새삼 놀란다.

(대체 이들의 배후에 도사린 인물들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처럼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하려 한단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침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그들의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어떠한 각도에서 이 일을 생각하든 그것은 단지 풀리지 않는 의혹일 뿐이었다.

해는 높이 솟아 오르고……

한천녀는 멀어져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무심함 가운데 알 수없는 정이 깃든 눈빛으로 주시한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으로……

주소아는 자신들의 침상에서 아침부터 뒹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등천마교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고 들었는데……또 그들외에 정통마교의 무공을 익힌 인물들이 나타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 뿐이었다.

불가사의한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삼성무림청의 실종……

그녀는 거기에 더하여 또하나의 수수께끼를 가슴에 묻고 있었다.

힐끗,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책을 잡고 있는 소일초를 보았다.

도무지 이 작자는 고민하는 법이 없다.

아무리 곤혹스러운 일이더라도 금방 아무렇지도 않은 듯 딴 짓을 한다.

주소아 그녀는 머리를 짜면서 궁리를 하는 데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저 자식을 만난 것도 다 내 복(福)이지 복……박복(薄福)인지 행복(幸福)인지는 몰라도……)

하는 수 없이 자신이 머리를 굴릴 수 밖에 없다.

우선,

그녀는,

백인장과 삼성무림청,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진 다음 곧 출현한 등천마세와 정천보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고……

그 사라진 세력들이 혹시 탈을 바꾸어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더욱 더 정천보과 등천마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서 캐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면서 하나의 무림의 움직임에 신경을 쓴다.

바로 등마제(登魔祭)에 대해서……

(한천이기가 등마제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 제전이 현무림의 판도와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천이기는 보통 인물들이 아닌 것이다.

스스로 칠십이기재의 우두머리로 자부하는 그들의 두뇌는 어떤 분야에서는 그녀와 소일초를 앞지르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런 만큼,

그들이 등마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그 제전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일초를 등마제에 참석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첫번째 일이다.)

그녀는 잠을 설친 어젯밤 때문인지 깊이 생각하다가 깊이 잠이들고 있었다.

(그 후의 일은 그때 그때 알아서 하면 되겠지……)

소일초는 아침부터 침상에서 골아 떨어지는 주소아를 힐끗 본 후에도 신경도 쓰지않고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읽는다.

 

× × ×

 

무림은 술렁이고 있었다.

등마제가 또다시 무림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십오야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앞으로 오 일 후로 다가선 이 달 보름……

십오야 만월이 중천에 걸리는 그 때……

등마제는 대파산(大爬山) 사망림(死亡林)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마제에 초대받은 수많은 악인들이 대파산으로 향하고……

원인모를 실종사건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등마제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등마제에 참석하는 사람은 두 종류이다.

악인으로서 제물을 들고 찾아가는 부류와,

악인에게 제물로서 잡혀가는 부류!

참석자의 수 만큼이나 많은 제물의 수……

무림혼란 속에 몸을 떨고……

이에,

정천보는 등마제를 영원히 이땅에서 사라지게 하고자 일천 명의 정천수호군(正天守護軍)을 파견했다.

정천수호군……

이 위대한 이름,

뜻있는 이들이 정의의 기치(旗幟)아래에 모여 형성된 정파무림의 최고 무인조직을 뉘라서 모르겠는가.

정천수호군은 정천보의 핵을 이루는 중추세력 중 하나이다.

무림인들이 알고 있는 사실은 단지 이 정도일 뿐……

그 진정한 힘의 실체와 정천수호군주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신비였다.

다만……

정천수호군의 이름만은 더높고,

무림인들은 정천보을 믿고 있는 만큼 정천수호군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믿음과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천하무림인들은 정천수호군의 움직임과 등마제에 대해서 온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것이 최대의 관심사였으며……

그것이 무림의 장래 판도에 중요한 기로였으므로……

아무튼 난세는 더욱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다.

과연 무림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이지?

 

× × ×

 

찌는 듯한 폭염(暴炎),

유월의 태양은 그 맹위를 떨치고 머리를 덮지 않으면 골이라도 익혀버릴 작정인 것 같았다.

숨 막히는 더위, 이따금 부는 바람이 없었더라면 아마 길가는 사람은 몽땅 일사병으로 쓰러져 죽고 말았을 것이다.

 

양양(讓陽),

이곳 역시 태양은 콩깍지를 튀길 뜨거운 햇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황혼(黃昏)의 노을을 감상하며……

오래 전에서 부터 양양의 요로에 자리잡은 한 객점(客店)의 창가에 앉아 바쁘게 술잔을 기울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몸에는 백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문사건을 아무렇게나 두른 그는,

일견하기에도 지독한 술꾼같은데……

나이는 대략 이십 삼사 세 가량으로 보였고,

용모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객점에는 수십여 명의 주객들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이 청년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백의 청년은 바로 소일초였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역근천골공으로 바꾼 후 이곳 양양까지 온 것이다.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등마제에 참석하고자……

주소아에게 억지로 떠밀렸던 것이다.

자기가 가면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된다는 둥, 정말 가지 않겠다면 도망쳐 버리겠다는 둥,

오만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하는 수 없이 길을 나섰던 소일초,

주소아가 옆에 없으니 도무지 갈비라도 한대 빠진 듯 가슴이 허전해서 길을 나서자마자 술로 빈 가슴을 채우고 있는 그였다.

객점의 인물들은 대부분이 무림인들이었다.

정파무림인들보다 사파의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때, 그들의 화제는 모두 등마제였다.

소일초의 술먹는 귀도 그런 소리는 알아들어서,

그들 중 상당수의 인물들이 등마제에 초대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등마제가 이틀 남았던가……)

그는 술 한 모금을 삼키고 아예 눈을 감았다.

무림인들이 떠드는 소리를 더이상 듣고 싶지도 않았고 아무 것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나 뜨나 오락가락하는 것이 주소아의 얼굴인데……

옆에 있을 땐 당연했던 것들이 없으니 미칠 것 같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그래서 안 올려고 했는데……]

중얼거리며 오직 주소아의 환상만 잡고 있었다.

천하의 소일초,

결국 주소아와의 애정의 덪에 깊이 걸려들고 만 것인가?

오직 빈 속을 술로 채우기만 한다.

그때,

[함께 앉아도 되겠소?]

교태가 흐르는 듯한 여인의 음성이 그의 귀에 들려왔다.

성가신듯 눈을 떠 보니 면사로 얼굴을 가린 홍의의 여인이 맞은편에 서 있었다.

무관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술을 들이키면서 다시 소일초는 눈을 감아 버린다.

맞은 편에 앉은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연없이 마시는 주객(酒客)은 아닌 듯싶군요.]

[당신 역시 사연없는 사람은 아닌 듯 싶은데……취풍녀!]

아무렇지도 않게 주정처럼 내뱉는 소일초의 말,

취풍녀라니……

홍의의 여인의 두 눈에 경악의 빛이 지나갔다.

그러나 주위에서 떠들며 이야기 하는 소리에 소일초의 말은 거의 옆으로 퍼져나가지 않았다.

[부인할 수 없군요. 어떻게 나를 알아보았죠?]

소일초는 여전히 술을 들이킨다.

[제길 앞에 소아가 있어야 되는 건데……]

홍의 여인, 취풍녀는 무슨 소린 지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한다.

이내,

비워진 그의 술잔에 술을 따라부어 주면서 은근하게 말한다.

[당신은 무척 신비한 사람이군요. 제가 알 수 없을 까요?]

소일초의 눈이 부릅 떠졌다.

[알릴 것도 없고 알고 싶은 것도 없어. 단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

[집에 돌아가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어요?]

소일초의 태도에 아랑곳 없이 친근하게 취풍녀는 물어오고……

[마누라에게 쫓겨났어……]

[혼인을 하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일하러 가지 않으면 도망가 버리겠대………도망가 버리면 어떻게 나 혼자 살아……]

소일초의 목소리는 점점 처량해져 갔다.

[저런! 부인께서 무척 아름다우신 모양이죠?]

[아니 정반대야, 아무도 그녀를 쳐다보려하지 않아.]

취풍녀가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그런데도 부인이 그렇게 좋아요?]

[그래, 나는 모자라는 사람이라 그 여자 없으면 못 살아.]

[부인 성함이 무엇이지요?]

소일초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흘렸다.

[취풍녀……]

[네?]

취풍녀는 자신의 이름을 소일초가 부른 줄 알고 의아하게 대답한다.

[취풍녀야……]

소일초는 다시 술을 들이키기 시작했고

[호호호호……]

취풍녀는 그제서야 알아듣고 교소를 터뜨렸다.

[당신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군요. 농(弄)이 아주 재미있어요.]

그녀는 다시 소일초의 빈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당신 이름은 뭐죠?]

[무적검(無敵劍) 승취풍(承吹風)!]

취풍녀가 살짝 눈을 흘기면서 말한다.

[진짜 이름 말이에요.]

[무적검…………압취풍(壓吹風)!]

[못 말릴 분이시군요. 좋아요 더 묻지 않겠어요. 술이나 마셔요.]

그녀가 어느새 비워져 있는 소일초의 잔을 가득 채워주며 점소이를 불렀다.

[여기 술 좀더. 그리고 이 분이 지금까지 술을 얼마나 드셨지?]

[죽엽청 한 병 하고 구운 닭 한 마리입죠.]

[이 주담자는?]

[그건 물입니다. 손님께서 물을 많이 마시니까 아예 채로 갖다 달라고 하신 거죠. 벌써 두 주담자 째죠.]

[술이나 더 갖다 줘.]

점소이를 보낸 취풍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주담자에 가득 담겨져 있는 것은 분명히 소일초가 부어마시던 술이었다.

그런데 점소이는 물을 갖다 줬다고 하니……

(점소이가 물을 갖다 준다는 게 잘못해서 술을 갖고 왔나?)

자칭 무적검 압취풍이라고 밝힌 소일초는 여전히 주담자를 기울여 술을 마시고 있다.

[저도 한 잔 주세요.]

취풍녀가 잔을 들이 밀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직접 따라마셔. 나는 술을 남에게 따라주는 사람이 못돼.]

[너무 냉정하게 굴지 마세요. 잔은 주고받는 거라잖아요.]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직접 부어서 잔을 채웠는데,

아무리 봐도 죽엽청은 아니다.

향긋한, 이름도 모르는 술이었다.

맛도 착 감기는 것이 그녀는 아직 그처럼 좋은 술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단번에 마시고 다시 따라 부었다.

[대체 무슨 술이길래 이렇게 맛이 좋죠?]

그때 점소이가 그녀가 주문한 술을 가지고 왔다.

소일초의 몸이 건들거리면서 잔을 들이키고,

[술은 무슨 술……점소이가 맹물이라지 않았나……]

취풍녀는 술을 마시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향기도 맛도 사라지고 닝닝한 맹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왠 도깨비장난인가 싶어 다시 주담자를 따라보니 분명히 맹물이다.

그런데도,

소일초는 천연덕스럽게 주담자를 기울여 잔을 채워 마시는데,

그때보니 또한 영락없이 자기가 마셨던 술이다.

[당신은 정말 신기해요. 무슨 요술이죠?]

그녀는 주담자를 기울여 나오는 물을 부어버리며 소일초를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네 술이나 마셔……]

말을 끌면서 소일초는 푹석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취풍녀는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부축하여 객실(客室)로 데리고 올라갔다.

 

× × ×

 

 

객점에 있는 무림인들이 모두 사파의 인물들 만은 아니었다.

상당수의 정파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을 철저하게 감춘 채 말없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있는 인물들……

그들의 몸에서는 가공할 기도가 풍겨지고 있었으며 두 눈에 감도는 은은한 정광은 그들이 정파의 고수라는 사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정천보에서 파견한 정천수호군에 속한 일부 인물들,

원천기와 한천녀는 시선은 황혼에 두고 있었으나, 객점의 인물들을 빠짐없이 살피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보기에, 정파인들은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원천기와 한천녀의 눈망울에 언뜻 진한 호기심의 빛이 떠올랐다.

한데 그때였다.

원천기와 한천녀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인 것은……

그들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창 밖의 대로(大路)로 향했다.

대로,

그곳에 소녀(少女)가 나타남으로 인해서 객점의 많은 정천보의 인물들의 얼굴에 떠올라있던 초조의 빛이 사라짐을 느꼈던 것이다.

(보통 신분의 소녀가 아니겠군……)

원천기와 한천녀는 그 소녀를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이십여 세 안팎으로 보였으며……

녹의(綠衣)를 걸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소녀는 무림인이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하나, 원천기와 한천녀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소녀는 자신의 기도를 감추고 있을 뿐 분명히 가공할 무림의 고수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소녀의 용모는 또 어떠한가?

결코 한천녀에 뒤지지 않는 듯하지 않은가?

그 소녀는 빠른 걸음으로 객점을 향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한데 그때였다.

두두두두-----!

대로의 저쪽으로부터 뿌연 황진을 일으키며 다가서는 한 대의 사두마차가 있었으니……

시야에 들어왔다고 느낀 순간 마차는 이미 대로의 중앙을 거쳐 반대편으로 아득히 사라져 갔다.

한데 마차가 사라진 것은 문제가 아니었으나……

놀랍게도 그 엄청난 기도를 안으로 내포하고 있던 소녀가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원천기와 한천녀는 눈을 마주 보았다.

(납치?)

그것은 분명히 납치였다.

한데 객점 안의 고수들이 그것을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만,

정천보의 인물들의 표정은 마치 이런 일을 예견이라도 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일으켰다.

원천기와 한천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된 납치……!)

그 납치는 정천보의 인물들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군……)

그들은 묵묵히 객점의 계단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상인 차림을 한 한천이기 중 원천기가 무심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먹힐 것인가? 입 큰 놈인가 배 큰 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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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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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한 쌍이 시작하면 한 쌍은 끝을 본다.

 

 

 

소일초는 알몸으로 주소아의 몸위에 올라가 있었다.

침상에는 휘장이 드리워져 있고 주소아 역시 알몸이다.

이미 완전한 성인(成人)인 그들의 몸,

소일초의 나이는 이제 십육 세, 주소아는 십팔 세이니 백송균화의 신비한 효과가 아니라도 상당히 발육했을 나이다.

주소아의 몸은 완벽한 미의 여신의 것이었고,

소일초 역시 놀랄만큼 크고 강한 남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서로의 몸을 마찰하며 흥분에 젖어들고 있었다.

부드러운 살과 살이 미끌리듯 스치면서 짜릿한 흥분을 일으킨다.

이런 순간마다 주소아는 역설적으로 심한 고통에 빠지게 된다.

강한 육체적 욕망이 끌어올라 스스로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때문이다.

소일초의 몸을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뜨거워진 부분을 마찰했다.

소일초 역시 그러한 사정은 마찬가지,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며 주소아의 나신에 자신의 알몸을 비벼댄다.

 

주소아와 소일초의 침실에서 십 여장 떨어진 아늑한 규방,

은은한 황촉불 불빛 아래……

한천녀는 동경(銅鏡)을 넋나간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야심한 시각,

달빛도 조용히 나래를 접는 이 시각,

왜 이 여인은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하염없이 동경 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

문득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살포시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아름답다……)

요즘엔 부쩍 자주 보게되는 자신의 얼굴인가?

그녀는 새삼 자신의 아름다움에 스스로 심연의 충격마저 느꼈다.

자신이 느끼기에도 동경에 비추인 그 아름다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과거 얼마나 많은 사내들이 이 얼굴 하나에 울고 웃었던가?

그녀의 얼굴 자체가 슬픔이요,

환희였으며,

또한 절망이었기에……

하나, 이젠 과거의 일이다.

지금 그녀의 나이는 팔십 하고도 하나,

지나간 세월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월은 이미 가버렸다…… 나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이나 나는 너무나 많은 세월을 살아버린 것이다……한과 저주로……)

그녀의 길고 섬세하며 아름다운 손은 조용히 백발을 쓸고 내린다.

백발……

마장탑에 있을 당시에만도 그것은 흑발이었다.

하나 반 년 전……

마장탑의 붕괴와 더불어 밖으로 나서면서 그녀의 흑발은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오랜 세월 햇빛을 볼 수 없었던 생활에서 변화하자 그녀의 흑발은 백발로 화하고 말았던 것이다.

원천기 역시 이 경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무정무심한 여인에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다만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것 외에는 달리 의미가 있을리 없지 않은가?

한데 보라!

치렁치렁한 백발을 쓸어 내리는 그녀의 손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지 않은가?

(이해할 수가 없다. 팔십 하고도 하나인 살아온 그 긴 세월 동안 스스로 여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녀는 마장탑에 잡혀가기 전에는 남자를 우섭게 알았기에,

또한 그곳에서는 한과 저주로 세월을 보냈기에……

자신이 여자임을 느낄 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한데 마장탑을 나온 후 밤마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 친다.)

그녀의 눈빛이 황촉불빛 아래서 흐려진다.

(한천녀……이래야 하는가? 진정 이래야 하는가? 너는 이 땅 이 하늘을 파멸시킬 저주의 칠십이기재의 하나가 아닌가?)

그러나 그녀의 내심과는 달리……

온통 죽음의 기운으로 뭉쳐진 그녀의 회색빛 동공에 심한 고뇌의 빛이 떠올랐다.

한 사람……

여인이기를 거부하는 그녀의 내심에 끊임없이 여인을 깨우고 있는 사람……

바로 주소아다.

주소아가 청사무로 그들을 깨웠을 때 영혼의 깊은 연대가 구축되었다.

그리하여……

밤마다 소일초와 잠자리를 같이하며,

서로의 몸을 강렬히 애무하는 그녀로 인해,

수동적(受動的)인 영혼의 교감을 가진 한천녀는 고통스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능동적인 교감을 가지는 주소아는 한천녀가 느끼는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지 않지만,

한천녀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주소아와 함께 흥분하고 주소아와 함께 몸을 떤다.

지금,

동경과 씨름하며 백발을 바라보고 있지만……

소일초와 주소아……

그렇다.

거울 속에서 아니 그녀의 뇌리에서 화안히 맴돌아 영혼을 적셔오는 모습은 이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한 쌍인 소일초와 주소아의 끌어안고 있는 나신이었다.

한천녀는 몸을 세차게 떤다.

환상 속에 나타나 보이는 주소아와 소일초를 느끼면서 그녀의 몸은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전율하기 때문이다.

(하필이면……하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

황촉불이 흔들리고……

그녀의 마음 또한 몸처럼 무섭게 흔들린다.

몸으로 전해오는 흥분을 짓누르느라 고통스러운 것이다.

(정통마교주……그들은 우리 칠십이기재의 노예일 뿐인데…… 그는 단지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천지파멸을 대신할 이용물일 뿐인 데……)

이 밤도 소일초와 주소아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한천녀……

그녀의 아미가 무섭게 경련을 일으킨다.

(팔십이 넘은 몸으로……이렇게 육욕(肉慾)에 몸부림쳐야 하다니……)

순간,

쨍그랑……

그녀는 거칠게 동경을 집어던진다.

밤의 정적을 깨며 금속성이 여운처럼 길게 울렸고……

한천녀의 눈빛은 파도처럼 한동안이나 흔들렸다.

그녀는 다시 황촉불을 껐다.

순간 실내는 죽음과 같은 어둠에 휩싸였다.

어둠……

그녀는 밝음보다 어둠에 익숙해 있었다.

지난 세월을 그녀는 거의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 속에서 그녀는 정통마교에 의하여 파괴당한 육체를 되살리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는 수련을 쌓았고,

온갖 마공을 익혀 왔던 것이다.

또한 죽음과 저주, 한(恨)를 온통 그녀의 영혼에 채웠던 것이다.

그래서,

육욕이 몰아치는 밤마다,

그녀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되새기곤 했다.

이 밤도 그녀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

어둠 속에서 과연 그녀의 마음은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달빛은 무심하게 실내로 흘러들고……

그녀는 달빛 만큼 자욱하게 자신의 영혼 속에 가득 차오르는 죽음과 저주의 기운을 느끼고 진한 회색빛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죽음의 미소였다.

그리고 저주의 미소였다.

한데, 문득 그녀의 영혼을 조용히 적셔오는 기운이 하나 있었다.

그 기운은 오질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무심무적의 것이었다.

(이런 기운을 풍길 수 있는 인물은 천하에 오직 한 사람 뿐이다.)

바로,

원천기다.

한천녀는 지금 자신이 있는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이 바로 원천기라는 사실을 감지하고,

어둠에 동화되어 있는 그녀의 두 눈에 강한 의혹의 빛을 떠올랐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두 눈에 어떤 동요의 빛이 일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그녀는 한 장소만을 뚫어지게 주시할 뿐이었다.

한쌍의 눈망울……

유리처럼 투명하고 심연처럼 고요한 죽음을 담고있는 회색 눈망울,

바로 그 눈망울의 주인공은 원천기다.

한데 이게 웬 일인가?

그 죽음을 담은 회색 눈망울 깊숙한 곳에서 무섭게 꿈틀거리는 저 욕정(欲情)의 물결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의 전신에서 풍겨오는 뜨거운 유혹의 기운의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한천녀의 회색빛 눈동자에 언뜻 경멸의 빛이 떠올랐다.

(원천기…… 겨우 이 정도 였던가?)

다가선다.

뜨거운 음욕의 숨결을 토하며 원천기가 그녀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마장탑에서 인간이 지닐 수 있는 모든 한과 저주를 가졌던 원천기가 아닌가?

한데, 그런 원천기가 발정난 짐승처럼 어둠을 헤치며 소리없이 한천녀의 곁으로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저 자도 주소아와 수동적 교감을 갖기 때문에 정욕이 다시 되살아 난 것인가?가 아니면 나의 미에 현혹이 되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녀의 내심 깊숙한 곳으로부터 죽음의 기운이 무섭게 솟구쳐 오른다.

그녀가 생각한 원천기란 이런 정도의 인물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최소한 자신의 미에 현혹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완벽한 육욕의 한계를 넘은 인물이리라 생각했거늘……

그래서 자신에게 언제나 무심함을 보여왔던 그이거늘……

그리하여,

그녀의 가슴에 알 수 없는 실망과 분노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이때,

원천기의 숨결은 끈적끈적한 열기(熱氣)를 담고 가까와지고 있었다.

그에대한 대한 실망은 무서운 살기로 변해갔다.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최고 인물로 선택된 자가……이정도에 불과하다면……죽여야 한다……그것이 죽어간 칠십이기재들의 뜻일 것이다.)

살기……

그리고 그 속에서 뜨거운 숨결이 흐른다.

그리고 숨막히는 긴장이 흐른다.

 

× × ×

 

한데 언제부터인가?

한 그루의 청송(靑松)에 기대어 달빛을 벗삼아……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천녀의 방을 주시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눈보다 흰 백의에……

세상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한 쌍의 남녀,

소일초와 주소아였다.

언제 옷입고 나왔는가?

그들은 왜 이 밤은 그 장난(?)을 일찍 멈추고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하염없이 한천녀의 방을 주시하고 있는 것인가?

소일초가 긴장을 이기지 못하는 듯 꼴깍 침을 삼켰다.

그렇다.

그는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한천녀의 방에 불빛이 사라지면서 그는 급격하게 긴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불이 꺼졌다.)

씩----!

음흉한 웃음을 얼굴가득 띄면서 주소아를 힐끗 보았다.

주소아는 가만 있으라는 듯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불이 꺼진 방,

그 방에 원천기가 들어선다.

시간이 흐른다.

웬지 숨이 가빠져 오는 것이다.

그는 숨을 가다듬으며 주소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살그머니 그녀에게 몸을 밀착시킨다.

 

***

 

원천기,

그의 회색 눈동자는 욕정으로 번들거리면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우리가 최후의 두 사람으로 선택된……그때 이후로, 나는 단 한번도 그녀를 타인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그녀는 언제나 나의 일부분이라 생각했다……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이 밤……소일초와 주소아가 침상에 누웠던 순간부터 나는 처음으로 한천녀가 나에게서 너무 멀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비로소 그녀를 여인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오오……내가 얼마나 한천녀를 사랑하고 있는가를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쥔다.

(한천녀……한천녀……)

부서진다.

어둠이 부서지고……

그의 모든 쌓아 올렸던 한과 저주가 소리없이 무너지고 있다.

 

× × ×

 

원천기는 한천녀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불덩이였다.

턱 끝에 차오른 뜨거운 김처럼 더운 숨결이 한천녀의 얼굴에 자욱이 뿜어지고……

그의 눈빛은 더욱 혼탁하게 타오른다.

하나,

침묵으로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한천녀의 눈빛은 더욱 어둡게 가라 앉는다.

(이 자를 죽이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한과 안배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동공에 떠오르는 심한 갈등의 빛……

그때였다.

원천기가 거칠게 그녀의 몸을 끌어 아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합쳐진다.

수 십 년의 시공을 넘어서 두 개의 운명의 끈이 하나로 합쳐지고 있는 것이다.

입술이 하나가 되고……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합일된다.

하나 한천녀의 입술은 차갑다.

원천기의 몸은 뜨거웠건만 그녀의 몸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가……

이 악마의 그림자가 더욱 진하게 원천기의 전신을 짓누르기 시작한다.

(죽여야 한다……)

 

× × ×

 

[으……아아……악!]

비명이었다.

하나 그 비명은 죽은 자의 목에서만 감도는,

산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그런 비명이었다.

소일초……

그가 지금 막 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검은 복면인이었다.

한데 침입자는 단지 한 명 뿐이 아니었다.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나 그들의 무공은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그런 그들을 비명없이 죽여가는 소일초……

그는 얼굴에는 화가 나있었다.

(비명이 나면 안된다……저 방에서 일어나는 일이 멈춰져서는 재미적다. 그들은 그 일을 끝내야 한다.)

어둠을 적시며 자욱하게 뿌려지는 피……

벌써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소일초의 잔인한 손 속에 죽어갔다.

단 한 마디의 비명조차 남기지 못한 채……

(원천기 네가 바라는 것을……빨리 해라……한천녀 원천기 어서……)

불나비처럼……

침입자는 소리없이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덮쳐들었다.

하나,

소일초의 무공은 그들이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것이다.

주소아는 그의 허리에 손을 감고 머리를 기댄채 꼼작도 않는데……

원천기의 무공을 직접 대하는 복면인들의 두 눈에 경악과 공포의 빛이 진하게 떠오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소일초의 신경은 여전히 그들 보다는 어두운 방에 더 가있었다.

소일초는 파리떼를 쫓는 소꼬리 마냥 손을 휘둘러 그들을 소리없이 죽이고 있는 것이다.

허공에 가득 피어나는 혈화(血花)……

(합쳐져라……원천기 ……한천녀……)

소일초의 간절한 외침이 입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 × ×

 

[죽엇!]

한천녀의 좌수(左手)가 그대로 원천기의 백회혈(白會穴)로 내리쳐졌다.

실로 원천기의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문득,

원천기는 뜨거운 시선으로 아래에 누워있는 한천녀의 두 눈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한천녀의 귓전으로 뜨겁게 흘러드는 음성,

[한천녀……죽이시오……]

그 음성에……

한천녀의 좌수는 원천기의 백회혈 바로 위에서 굳어지고 만다.

[…………!]

한천녀는 볼 수 있었다.

원천기의 눈빛이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음을……

그리고 느낄 수가 있엇다.

죽음 앞에서도 원천기의 전신이 여전히 뜨겁게 피가 끓고 있음을……

한천녀에게 있어 그것은 충격이었다.

[죽어도 당신을 안고 싶소……]

그녀는 그렇게 뜨겁게 원천기가 구애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

(이런 변화가 어떻게……)

그녀는 조용히 떨리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녀 역시 내심에 피어오르는 기이한 욕정을 느끼며 그의 목을 휘감았다.

모든 장애가 깨끗이 제거되고……

원천기는 격렬하게 한천녀의 전신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격정이 지나고 난 자리에……

흩어진 침상 흩어진 옷가지,

두 사람은 수 십년 만에 가진 정사(情事)에 심한 허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이것이었어……늘 아슬아슬한 순간에서 끝나버려 사람의 간장을 태우는 그들과는 확실히 달라……)

주소아와 소일초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미진했던 사랑을 떠올린 것이다.

잠시후,

한천녀가 한쪽에 놓인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그녀는 그 곳 탁자에 놓인 싸늘히 식은 찻잔을 끌어다 입술에 대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의 시간을 침묵으로 보낸 두 사람 사이는 억겁처럼 긴 장막이 가로놓여져 있는 듯했다.

문득,

[미안하오……]

원천기는 탄식과 같은 중얼거림을 흘려냈다.

그도 한 모금의 차를 마신다.

[천요무(天妖舞)를 연성하던 도중이었소……깜박잊고 저녁이 되었다는 사실마저 생각지 못했소……한데……]

원천기는 달빛이 충일한 창문을 응시하며 말끝을 흐렸다.

[돌연 참을 수 없는 욕정이 생기는 것이었소……당신도 잘 알고 있겠지만 바로 그들 때문이었소……그리하여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당신에 대한 욕정이 폭발하고 만 것이오……]

한천녀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천요무,

이 무공은 깊은 곳에서 나체로 익히는 것이 아닌가?

이 무공은 난해와 심오의 극을 달리는 무공이었다.

원천기,

그는 이 밤에 그 가공할 무공을 수련하던 도중 주소아와 소일초로 말미암아 그 극음의 기운을 다스리지 못하고 엄청난 욕정을 느꼈던 것이니……

한천녀의 입에서 꿈결인 듯 말이 흐른다.

[육십 년 전…… 강제로 당한 이후, 처음이었어요……]

한천녀의 두 눈에 기이한 빛이 흐르고……

그녀의 방에 다시금 불이 꺼졌다.

 

× × ×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다시 침실로 돌아와 있었다.

주소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소일초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

[봤지? 그게 정석이야……]

[누가 그렇게 하는 건 줄 몰라서 안했나? 그것만은 도저히 내키지 않아서 그랬지……]

소일초가 자신의 옷을 벗으면서 주소아의 귀에 대고 이야기 했다.

[소아……오늘은 우리도 그렇게 해보는 거야……알았지?]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안돼……차라리 날 죽여……]

[그래 죽여줄께……아까 한천녀도 죽는다고 발버둥 쳤잖아…확실히 넌 배우는데 소질이 있어.]

[안된다니까……똑 같이 해……안그러면 도망쳐버릴 거야.]

그녀의 말에 소일초가 투덜거렸다.

[밤낮……그럼 언제 그렇게 할 거야…?]

[나도 몰라……하지만 때가 되면……]

주소아는 오늘도 최후의 방어선 만은 철저히 고수하고 있다.

[이제 그들도 조금 사람같아지겠지?]

[두고봐야 알겠지만 변하기야 하겠지……]

[시기를 적절하게 잘 맞췄기 때문에 성사시킬 수 있었어……]

 

***

 

어둠에 잠긴 한천녀의 방,

한천녀와 원천기는 다시 욕정에 빠져 들고 있었다.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로 인해 ……

그러나,

그들은 반드시 시작하면 끝을 보는데……

달빛은 교교로이 무더운 밤에 죽어있는 복면의 침입자들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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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술독 앞에서 낳지도 않은 아기로 협박하는 請託

 

 

 

유월(六月)……

때는 하늘에서는 찌는 듯한 태양이 천지를 가득채우고,

들판에는 뜨거운 열기를 식히는 바람이 이따금 분다.

산하(山河)는 짙푸른 색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동선장(童仙莊),

 

북경성 외곽에 얼마전 부터 자리잡고 있는 한 채의 아담한 장원이다.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이 동선장은 북경에 살고 있는 모든 아이들의 놀이터로 제공되고 있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고관대작의 자식들로 부터 빈민의 아이들 까지,

이곳에 오면 언제나 식사를 제공받고 단정한 옷을 입을 수 있다.

부모가 없는 고아들은 아예 그곳에서 숙식을 하기도 한다.

글을 가르치는 글 선생도 있고,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있다.

이곳은 아이들의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다.

일약,

동선장은 북경성의 명물로 자리 잡았고,

관민이 치하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도둑도 동선장에는 들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동선장은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는 곳이다.

하나,

그런 동선장의 주이니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어디 출신이며,

나이가 얼마나 되었으며,

무슨 이유로 동선장을 창설하게 되었는지……

모든 것이 철저한 신비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신비를 애써 밝히려 하는 인물도 없었다.

이 삭막한 현실에 동선장 같은 인정의 샘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인물들이 위안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깔깔깔……!]

[핫하하……!]

[히히히……!]

동선장을 울리는 이 천진무구한 웃음소리,

이 웃음소리 하나만으로 얼마나 평화스러운 곳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지금, 십여 명의 아이들과 한 명의 청년이 어우러져 뛰어놀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이 온묘롭게 부서져 내리는 넓다란 녹지(綠地)는 더위도 잊은 그들이 뱉어내는 환호성과 웃음소리에 뒤덮여 있었고……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한 화목(花木)에 비스듬이 기대어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소녀……

그들은 어딘지 부조화스러우 보이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가?

약관의 청년과 소녀……

그들의 모습은 기이했다.

용모는 기가 막히게 준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으나 웬지 사이한 냄새가 진하게 풍겨지는 까닳은 무엇일까?

또한 그들의 머리카락을 보면 더욱 기이한 느낌을 전해받는다.

백발(白髮)……

오오……

그들의 머리카락은 눈처럼 흰 백발이 아닌가?

그것은 보통의 백발이 아니라 죽음의 향기를 진하게 뿌리는 백발인 것이다.

문득, 소녀의 입술이 무겁게 떨어졌다.

[이런 무료한 생활은 일찍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그녀의 허무적인 중얼거림……

[육십 년의 세월을 한과 저주의 일념으로 살아온 우리 한천이기 아닌가? 한데 무엇이지? 이 땅에 잔혹한 저주를 뿌려야 할 우리들이 그 자들의 농간에 놀아나 천지파멸의 뜻을 점차 잃어 가고 있으니……]

그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건 말도 안된다. 이건 완전히 계획적이다……그 자는 우리의 가공할 저주를 이런 식으로 스러지게 하려는 것이다. 저 아이들을 끌어들임으로써 우리 한천이기의 잔인과 저주의 심성을 없애고 있으며 우리를 자신의 완전한 수족으로 부리려 하는 것이다……무서운 사람……]

한천이기……!

그렇다.

이들 백발청년과 소녀가 바로 마장탑의 칠십이기재들 중 두 명인 한천이기인 것이다.

이들이 마장탑의 붕괴와 더불어 사라진 후 반 년 만에 북경에 나타난 것이다.

[원천기……저자는 철저하게 한으로 점철된 인간이 아닌 저주의 화신이 아닌가? 한데……불과 반 년만에 저렇듯 타락해 버린 것이다.]

그녀는 다분히 회의적인 시선으로 원천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단 일푼도 지니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원천기……

그가 충격적이리만큼 변해 버린 것이다.

[원천기 만을 탓할 수 없다. 나 역시 칠십이기재의 한과 야망 망각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그녀의 회색 동공에 천진한 아이들의 뛰노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렇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우리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다는 것은……죽음을 의미하는 것……더이상 이런 식의 삶을 지속할 수는 없다.]

돌연, 한천녀의 얼굴에 어떤 결연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직 죽음이라는 말 외에는 할 줄 모르던 그녀의 얼굴에……

[때가 된 것이다. 등마제가 벌어지려고 하는 지금……예정대로 우리 한천이기는 정통마교주를 이끌고 무림에 우리의 복수와 한을 펼쳐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결단(決斷)을 누구에겐가 전하고자 화원을 가로질러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백발이 허허롭게 날리우고……

문득,

아이들과 노닐고 있던 원천기의 얼굴에 기이한 미소가 어린다.

[때가 되었는가? 이 땅에 나의 저주를 뿌릴 때가……]

이 말은 너무 나직하여 그의 몸에 매달려 있는 어린아이들도 듣지 못한다.

[정통마교주……그는 이 원천기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 이런 식의 장난으로 이 원천기를 지옥에서 끌어내리려 했다면 어리석은 짓이지……]

원천기는 아이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웃었다.

[까르르……아저씨는 바보다. 혼자 중얼거리다가 혼자 웃는다.]

천진하게 웃는 아이들……

원천기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나는 바보다.…그러나 세상에서 바보는 살아남아도 똑똑한 척 정의로운 척 하는 자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어둡게 그의 몸에서 부서진다.

아이들이 목소리를 맞추어서 물었다.

[왜?]

[내 뜻 이거든……]

 

-----까르르

 

다시 터지는 귀여운 웃음들……

원천기……칠십이기재 중 가장 무서운 지혜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뛰어남을 철저하게 감추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칠십이기재 중 살아남을 수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신을 잃어 버린 것처럼 행동하며……

은밀한 가운데 자신의 뜻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다.

……

멀리서……

원천기를 주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일신에 눈부시게 흰 백의(白衣)를 걸치고……

그 옷자락이 표표히 날리는 가운데 만상에 자욱이 내면의 신비로운 기운을 풍겨내고 있는 인물……

문사건을 단아하게 두른 그 용모는 탈속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투명하도록 맑은 동공에 가득 머금고 있는 어두운 그늘……

그는 다름 아닌 소일초였다.

그는 한천이기의 가공할 잠재력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나,

천하에 두려운 것이 없는 소일초다.

까짓 놈들 정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리면 그만 인 것이다.

 

***

 

<정통마교주이시여……

칠십이기재의 이름으로 이제 당신에게 첫번째 임무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 임무는 바로 등마제에 참석하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첫번째 저주를 내리는 것입니다.

지난 반 년의 세월을 당신들의 뜻대로 따랐으니, 이제 우리 한천이기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주소아는 서탁에 놓인 한 장의 밀지를 읽은 후 조용히 시선을 황촉불에 두었다.

서실(書室)의 창 밖은 어둠에 잠겨 있었고,

황촉불만이 은은히 서실을 밝히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주소아의 아름다운 얼굴은 타는 듯 붉게 물들어 있었다.

(때가 되었는가? 일초는 어떻게 하길 원할까?)

그녀는 밀지를 들어 황촉불에 태운다.

(등마제와 함께 시작되는 칠십이기재의 첫번째 안배라……)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하나 그녀의 마음은 어둡기 이를 데 없었다.

지난 반 년의 세월……

그녀가 이 동선장에서 보내며 한 일은,

소일초와의 어른스런 장난도 있지만,

환상처럼 사라진 백인장의 종적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그동안에 알아 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소아와 소일초가 세상에 다시 나왔을 때는 이미 백인장은 사라진지 이 년이 지난 때였다.

짐작이 가는 곳은 다 뒤졌다.

백인장의 파양호 고장(古莊)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파양호를 이 잡듯이 뒤졌건만 부주(浮舟)마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한천이기의 협력을 얻어 그들은 북경에 동선장을 세웠다.

사라진 세력들을 찾기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무사들을 고용할 작정을 소일초가 했으나,

주소아가 고집을 부렸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만들자고……

그녀의 의견인 즉,

백인장이 사라진 것은 스스로의 뜻에 따른 것 같으니 궂이 힘들게 찾지 않아도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었다.

며칠을 소일초를 못살게 굴며 떼를 썼다.

침상에서도 한잠도 자지 못하게 괴롭히고,

울고 불고 하였기에 마침내 소일초가 항복하고 말았던 것이다.

불쌍한 아이들을 꼭 도와주어야겠다는 것이 그녀의 신념에 가까웠던 것이다.

 

황촉불은 그녀의 마음처럼 고요히 흔들리고……

(문제는 등천마세와 정천보다……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이 신비롭다. 백인장과 삼성무림청, 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지고 그 두 세력이 출현한 것이 어찌 우연일 리가 있겠는가?)

이때,

문이 열리면서 소일초가 들어왔다.

[그들이 움직였지?]

주소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떻게 하면 좋겠어?]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을 것 같은데 한번 미친 척 하고 시키는 대로 해줘보지……]

[그래도 될까?]

[그러다 수틀리면!]

소일초가 자신의 목을 손으로 치는 흉내를 낸다.

[등마제에 참석하라고 했어.]

[우리한테 딱 맞는 역할인데 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착한 사람은 아니야.]

갑자기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바싹 다가앉는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우리 술이나 마실까?]

[또 갑자기 왜 이럴까? 불안하게……전 번에 시달린 이후로 난 너한테 학을 뗐어.]

[그러지 말고 우리 술이나 마시자. 응? 내가 가지고 올께, 잠깐만 기다려……]

소일초와 주소아는 침상 한가운데 술독을 놓고 마주 앉았다.

그들의 몸이 작지 않아서 침상이 꽉 차는 것 같았다.

술이 몇 순 배 돌고 나자 주소아가 침울한 표정으로 소일초에게 말했다.

[나……이젠 예쁜 아기를 낳겠다는 꿈은 포기해야 할까봐……]

[……?]

[네가 전에 이야기 했잖아, 고모가 말했다면서……]

[아……! 그거……]

[그래, 실은 내가 그 말을 들은 후에 불안해서 내공을 세 군데 분산시켜 놓았거든……]

[…………!]

[그러니까……내가 전력을 하려고하면 그걸 다시 단전으로 되돌려야 할 거란 말이야……]

[…………]

[그래서 말인데……너는 내가 아기를 못갖는 걸 택하겠니? 아니며 혼자서 등마제에 참석하는 걸 택하겠니?]

은근하게 물어오는 주소아의 말을 들으며 소일초의 안색이 홱 변했다.

[결국 그 소리였구나. 나 혼자 등마제에 가라고? 싫어. 절대 혼자는 안가.]

[이 바보야! 거기서 삼수 같은 고수를 만날 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돼서 내가 아기를 못 낳게 되는 게 그렇게 좋아?]

소일초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꼭 그렇다고 도 할 수 없잖아……]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주소아는 강경하게 나왔다.

이제 소일초는 주소아 없이는 어디에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주소아가 옆에 없으면 도무지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다 싸우면 되잖아……같이 가자, 응?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되게 해줄께…… ]

[흥, 난전이 벌어지면 어떻게 나를 지킬 수 있단 말이야. 어쩌면 한 몸 지키기도 바쁠 텐데.]

갑자기 소일초가 술잔을 바닥에 팽개쳤다.

[좋아, 그럼 나도 등마제에 가지 않겠어. 까짓 년놈, 뭐라 하면 죽여 버리겠어.]

[그러지마……우리도 등마제에 가볼 필요는 있어. 그곳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단 말이야. 꼭 그들의 말이 아니라도 나도 생각 중이었어.]

주소아가 달랬다.

[그리고……거기 가면 무림의 여자악인들도 많이 올 거야. 너 여자 좋아하잖니?]

[그래도 너만큼 예쁜 여자는 없을 거야.]

소일초의 시무룩하게 하는 말에 주소아가 픽 웃었다.

[알긴 아는구나.]

[난, 못가겠어……어떻게 너도 없이 혼자가?]

[어린애 같은 소리말구, 네가 돌아 올 때까지 나는 아예 지하실에 들어가서 혼자서 책만 볼께……]

[좋아, 그럼 빨리 갔다 올 테니까, 아예 얼굴에 면사를 가리고 있어, 아무도 못보게……]

겨우, 소일초가 마지못해 승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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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恨天二奇의 復活

  

 

 

세월은 변했다.

그리고 무림도 변했다.

변해도 엄청나게 변한 것이다.

무림사대세력의 주역들 이었던……

백인장과 청옥검궁, 그리고 삼성무림청은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것은 이미 중인들의 아득한 기억의 망각 속에으로 침몰하고 마는가?

불과 일년이 지났을 뿐인데……

전설……

삼성무림청의 전설!

백인장의 전설!

청옥검궁의 전설!

오오……그렇다.

불과 일 년 전만 하여도 무림의 지배자였던 이들 세 세력이 이제는 전설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뉘라서……

대저 뉘라서 백인장을 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뉘라서 백인장주 소선풍을 전설 속에 넣을 수가 있단 말인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삼성무림청과 백인장, 그리고 청옥검궁이 전설의 주인공이 되어 현무림에 떠돌게 된 것을 누가 해석하고 설명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것은 고금 최고의 신비요, 불가사의인 것을……

그들은……

아침 안개가 따사로운 양광(陽光)아래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린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것을……

누구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런 경악과 전율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고……

그 무서운 시간이란 악마 속에서 탄생한 또 하나의 충격!

삼성무림청과 백인장, 그리고 청옥검궁이 사라진 후……

백가장(白家莊)과 혈군자가 이끄는 취현성이 남북을 갈랐는데,

또다시,

중원의 땅 위에 또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세력이 출현한 것이다.

 

-----등천마세(登天魔勢),

-----정천보(正天堡),

 

오오……무림인들은 말한다.

등천마세와 정천보이야말로 무림사상 완벽한 잠재력을 지닌 세력이라고……

그리고 이 두 개의 세력을 기존의 두 세력과 함께 칭하여 또다시 사대세력이라 하니……

등천마세는 사마(邪魔)의 지배자로 등장했으며,

정천보은 백도의 하늘이라……

곧,

천지간에 존재하는 온갖 사마요악(邪魔妖惡)의 기운을 중심으로 하여 거대한 마풍을 잃으키며 무림에 출현한 등천마세는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흩어진 사마의 무리들을 하나로 일통했다.

급기야 혈군자의 취현성마저 잡아먹어 버렸다.

그리고,

정파무림에 부상한 정천보……

자비와 선과 인의를 근원으로 탄생한 정천보은 이제 모든 정파무림인들의 성역(聖域)이 되어 있었다.

정파무림인들은 정천보을 중심으로 뭉쳤고,

정천보은 급기야는 정파연합체로 완성이 되었다.

구파일방도 정천보의 지지세력이 되었다.

오직 백가장만이 흡수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어느날 살라져 버렸다.

그럼에도,

이 격동의 시대에 그것은 있은 듯 없은 듯 사그라져 버린 것이다.

마침내,

정사이세는 마치 환상의 신기루처럼 솟아나……

불과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무림을 이분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무림사에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거대한 괴변이었던 것이다.

한데,

천하무림인들은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정사이세의 진정한 내력에 대해서……

아니 굳이 무림인들은 정사이세의 신비를 풀지 않으려 하는지도 몰랐다.

신비를 푼다는 그 자체가 무림인들에게는 또 다른 공포와 전율이 될 수도 있었기에……

바람처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존재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엄청나게 강한 힘을 보유했다는 사실 뿐이었다.

그 힘……

그 가공할 잠재력!

과연 그것은 어디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그리고, 정사이세의 공존과 함께 무림은 근래 볼 수 없었던 평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폭풍전야의 정적이 바로 이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림은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겨 있었는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비릿한 피의 바람이……

그 바람은 등마제(登魔祭)의 소문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

 

-------등마제……

그것은 악마들의 축제다.

그것은 죽음의 제전이다.

모든 살인(殺人)이 허용이 되고……

어떠한 형태의 악(惡)도 용납이 되는,

그리하여,

더이상 잔인할 수도, 더이상 악랄할 수도 없는 저주의 축제가 바로 이 등마제였던 것이다.

십오야(十五夜) 만월이 뜨는 밤이면,

이 땅은 어디선가 죽음의 축제에 악마들이 혼탁한 숨결을 토해낸다.

살인과 방화……

간음, 간통, 난륜……

이런 패륜의 축제가 난무하는 등마제!

누구도 그곳에는 접근하지 말라!

접근하면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며,

어떻게 마인들의 재물로 변할 지 모른다.

 

이제,

천하의 모든 정파무림인들은 등마제을 두려워 하기에 이르렀고,

울던 아이들도 등마제라는 말만 들어도 혀가 굳어져 울음을 그쳐야 했다.

십오야 만월은 이제 무림인들에게 죽음의 대명사 같은 존재가 되었으며,

만악(萬惡)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하나, 사파의 마두들에게는 등마제야 말로 꿈의 제전인 것이니……

잠재된 그들의 욕망의 유일한 분출구이며,

인간의 탈을 벗고 짐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축제이기에,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들은 등마제의 초대장이 날아 들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림의 짧은 평화는 무참하게 깨어지고……

등마제라는 피의 폭풍과 함께 난세는 그 거추장스런 허울을 벗어던지니……

바야흐로,

무림은 난세지난세였다.

 

× × ×

 

쿠르르르……

일성 굉음과 함께 하나의 석문이 열렸다.

바로 마장탑 내의 여덟 개의 석실 중 마지막 여덟 번째의 석실……

즉,

마교칠십이절기라는 저주의 무학 중 마지막 아홉 절기가 비장된 석실이 열린 것이다.

그러자,

우선 사이한 운무가 해일처럼 뿜어져 나왔으며……

더불어 두 사람의 남녀가 천천히 그 최후의 석실로부터 걸어나오고 있었다.

여인의 황홀하리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사나이의 긴 장발(長髮)이 다음……

그들의 헤어질대로 헤어진 옷이 세 번째로 눈에 들어왔다.

더불어,

사악한 기운이 몰아치는 곳에서,

그들의 부드러운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고……

이어 서기(瑞氣)가 은은히 그들을 사악한 마기 속에서 감싸 보호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의 몸에서는 도저히 발산될 수 없는 것……

그 두 사람의 손에서 부터 일어나는 것이었으니……

장엄한 서기를 전신에 뒤덮고 있는 그들은 대체 누구이겠는가?

남자……

세월 저 너머 아득한 세월……

그 세월에 존재하던 그 어떤 미남자 보다도 준수한 얼굴의 남자,

한데 문제는 그 얼굴에 함유된 고집과 심술에 있었다.

도대체 이 인물의 얼굴에 어린 저 끼(?)는 어떻게 저토록 매력을 발산하고 있단 말인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한 매력을 지닌 이 인물,

그리고,

여인……

틀어올린 머리 밑으로 보이는 뽀얀 얼굴에는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서기보다 더 강렬히 발해지고,

부드러워 꺼져버릴 것 같은 가날픈 몸은 오히려 사람의 영혼을 앗아갈 듯 하다.

누구겠는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지……

어린 꼬마에서 청년과 숙녀의 몸으로 완전히 변화된 그들의 모습은 물처럼 고요하고 심유한 것이었다.

물끄러미 닫히는 마지막 석실의 문을 응시하는 그들의 아름다운 동공에 반짝 감회의 빛이 스쳤다.

[익힐 게 뭐 있다고 그 고생이람. 알고 있으면 자연히 할 줄도 알게 되지……]

소일초가 지독한 무공광(武功狂)인 주소아에게 투덜거린다.

구경만 하고 말자는 그를 억지로 붙잡고 익혀보자고 졸라대던 그녀였다.

[그래도 잘만 익히드라……]

이제……

그들은 마교칠십이절기가 남겨져 있던 여덟 개의 석실을 모두 통과했다.

뿐만 아니라 몸으로 익히기 까지 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른다.

어떻게 생각하면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얼마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단 한가지만 익혀도 인간 마물이 되어버린 다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히고도 그들은 전혀 마성(魔性)에 물들지 않은 듯 했다.

아마 언제나 손에 쥐고 있는 검마의 사리(舍利) 때문일 것이다.

사르르……

소일초와 주소아는 통로를 따라 미끌어지듯 걸음을 옮겨갔다.

걸음을 옮기는 소일초의 등을 덮고 있는 그의 긴 흑발은 아름다운 포말을 일으켰다.

걸음을 옮겨가매,

주소아의 가날픈 몸은 바람에 날려가기라도 할 듯 하늘거리고 있어 위태로워 보이기 까지 했다.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여덟 개의 석실은 다 지났는데……]

[걱정할 것 없어, 그 미친 작자들이 다 알아서 챙겨 놨을 거야……침상은 하나 뿐이겠지만!]

조소아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잘난 척하는 칠십이기재들은 두 사람이 들어오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뭐든지 하나 씩 만 준비되어 있었다.

당연히 침상도……

성숙한 몸으로 소일초에게 짖궂은 장난을 받는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욕망에 그녀도 부르르 몸을 떤적이 한 두 번도 아니었다.

소일초 역시 마찬가지,

워낙 완강하게 주소아가 최후의 선을 지키고 있어서 그렇지 다른 장난은 해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 였다.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주소아의 몸을 끌어안고 몸부림친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조차 없었다.

몸이 완전히 성인으로 변해 버리기 이전에도 장난을 했지만,

그것들은 호기심과 기분이 좋다는 정도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들은 이미 육체적인 욕망을 느껴오고 있었던 것이다.

몸의 성장과 더불어 그들의 마음에도 빠른 변화가 왔지만,

그들은 애써 그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여전히 본연의 행동을 하고자 노력해 왔다.

 

소일초의 말은 사실이었다.

칠십이기재들은 지금까지 치밀한 안배로 그들로 하여금 따르기만 하면 되도록 해놓았었다.

사르르르……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겨가는 소일초와 주소아,

돌연 그들의 발길이 한 곳에 우뚝 멈추어졌다.

[정말 이곳에 또 다른 석실이 있네……]

주소아가 말했다.

보라!

소일초와 주소아의 면전에 또 하나의 석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이곳이야 말로 마장탑의 최후 비밀이 숨어있는 것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석실은 지금까지의 석실에 비해 실로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그 속에……

스스스스……

핏빛의 운무가 기이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넓다란 공간을 자욱이 메우고 있었다.

한데 이 넓은 석실의 공간에……

한 개의 석대(石臺)……

그리고 석대 위에는 두 개의 관(棺)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핏빛이 진하게 풍겨지는 혈옥관(血玉棺)이었으며……

또 하나는 눈보다 흰 백옥관(白玉棺)이었다.

자욱이 푸른 기운과……

붉은 빛과 흰 빛이 교차하는 광경은 실로 형용할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두 개의 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기이하다. 여덟 개의 석실과 거의 흡사한 분위기를 풍기는데 ……저 관(棺)들은 ……)

문득, 주소아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아…… 여덟 번째 석실에서 보이지 않았던 두 명의 기재들의 관(棺)이야!]

소일초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여덟 번째의 석실……

이곳은 먼저의 일곱 개의 석실과 다른 점이 하나가 있었다.

그곳에는 유독 일곱 명의 기재들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두 개의 관을 보자마자 남은 두 기재의 관(棺)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사방을 둘러본 후 바짝 석대 앞에 다가섰다.

사방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손에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르는 극악한 마기를 물리치기 위해 검마의 사리가 꼭 쥐어져 있었다.

[이 두 개의 관속에 최후의 비밀이 있단 말인가?]

침중하게 내뱉는 소일초였다.

이 생각 역시 확신으로 그들의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으음……)

잠시 동안 관을 살폈지만 더이상의 것은 발견하지 못했고 어떤 변화도 찾을 수가 없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나 보다.

돌연 두 개의 관으로부터 여운처럼 영혼의 울림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아아아…… 정통마교주이시여……

그대는 우리의 뜻에 따라 창조된 위대한 인간……

우리들 한천이기(恨天二奇)는 육십 년의 세월……오직 그대 만을 기다려 왔소이다.

우리는 칠십이기재들 중 두 명……

당신에게 천지파멸의 길을 열어드리기 위해 살아온 삶……

정통마교주이시여……

그대에게 진정으로 바라노니…… 마교칠십이절기 중 청사무(靑邪霧)를 펼쳐서 우리들의 관을 열어주기……

 

영혼의 소리……

[그 귀신같은 소리가 바로 이 관에서 나왔었군, 어째 귀신소리 같더라니……]

소일초가 중얼거렸다.

[보고싶지 않은 귀신들이지만 여기서 나가자면 하는 수 없겠지……제길……귀신을 만나게 되다니……]

관 속에서 울려나온 그 영혼의 소리가 말하는,

 

청사무(靑邪霧)--------

 

이것은 마교칠십이절기 중 하나이다.

아홉 가지의 사악한 기공이 기록되 있던 여섯 번째의 석실에 있던 절기이다.

전신을 푸른 유형의 사기(邪氣)로 두르고 인간의 악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파괴하게 하는 극사의 마공……

그것은 죽은 시신(屍身)을 일시에 깨워 강시(疆屍)로 부릴 수 있다는 ……

그야말로,

천지간에서 가장 사이한 마공 중의 하나인 것이다.

 

지금,

그 무서운 청사무는 관 속의 기재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니……

소일초와 주소아는 망설여 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육십 년 전의 기재들이 아직 생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었다.

이미 모두 오래 전에 죽었으리라고만 생각했던 칠십이기재들이 아닌가?

[나가자면 하는 수 없지……]

주소아도 침음성을 흘리며 소일초와 같은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천천히……

그녀는 청사무를 양팔에 끌어 올리고 있었다.

순간,

스스스스……

놀랍게도 그녀의 양 손에서 푸른 안개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빨리해! 보기에 좋지 않아!]

소일초가 마공을 쓰는 것에 불만인지 한마디 한다.

주소아의 눈은 그를 흘기고,

손에서 무럭무럭 일어난 푸른 안개는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감싸버렸다.

그리고,

쏴아아아아……

그 푸른 안개는 그대로 두 개의 관으로 몰려갔다.

순간……

덜컹----!

덜커덩--------

석실을 울리는 진동음과 함께 두 개의 관 뚜껑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관은 청사무에 완전히 뒤덮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잠시 동안 허공에서 풍차처럼 돌던 두 개의 관 뚜껑은 바닥에 떨어지고,

녹색의 푸르스름한 기운이 소름끼치도록 살벌하게 두 개의 열려진 관에서 뿌려지고 있었다.

다음 순간,

두 사람……

붉고, 흰 두 사람이 관으로부터 한 줄기 연기처럼 솟아나오는 것이었다.

환상처럼……

허공을 부유하는 두 사람……

일신에 붉은 홍의(紅衣)를 걸친 청년과 백의(白衣)를 걸친 소녀였다.

나이는 대략 이십여 세 가량,

백납처럼 창백한 얼굴……

냉막무심한 얼굴의 눈동자에서 폭사되어 나오는 안광은 기이하게도 칙칙한 잿빛이었다.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극치의 미(美)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신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바로 한천이기(恨天二奇)이다.

이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들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육십 년 씩이나……관 속에 있었을 텐데 상당히 젊었네……)

면전에 소리없이 내려선 한천이기을 보며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단지 무심하고……비정하며……

잔혹한 것 뿐이었다.

특히 여인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은 더욱 패도적이며 전율스러운 것이었다.

문득,

무심비정한 눈빛을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번갈아 두고 있던 청년이 경악의 음성으로 침묵을 깼다.

[어……어떻게 두 사람이……이럴 수가……]

그는 두 사람을 처음에 보았을 때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했었다.

그러나,

정말 두 사람이 그들의 앞에 서있자 경악하고 만 것이다.

[이럴 수가 있지!]

소일초가 단호하게 못을 박는다.

[…………]

[…………]

잠시의 침묵 속에서 두 쌍의 남녀는 서로를 노려 보았다.

[어느 분이 정통마교주이시오?]

홍의의 청년이 침중한 음색으로 묻는다.

[우리 두 사람 다!]

주소아가 소일초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대답했다.

다시 얼마의 침묵 뒤에 홍의 청년이 천천히 말했다.

[두 분의 정통마교주이시여……당신은 우리 한천이기를 인간으로 보지 마시오……]

그의 음성에는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담겨져 있었다.

[우린 이미 마장탑이 봉쇄 된 육십 년 전에도,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버린 몸이오……]

그의 입술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한데도 기이하게 그 음성은 그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엇던 것이다.

마치 영혼으로 속삭이듯……

[재미있는 복화술(腹話術)이야, 전혀 표가 나지 않아!]

그런 기이함을 주소아는 태연하게 받아들이며 입을 열지않고 말했다.

그녀 역시 복화술을 펼쳐 온 몸으로 소리를 울려 낸 것이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서두가 길어?]

청년이 그녀의 당돌한 물음에 개의치 않고 계속 말했다.

[정통마교주께서는 지금까지 여덟 개의 석실에 존재한 칠십이기재 중 두 명이 빠져 있음을 기억하실 것이오?]

[알아, 그게 당신 두 사람이라는 걸……]

소일초가 말했다.

[그 두 명이 바로 우리들이며 본인은 원천기(怨天奇)이고 ……이 여인은 한천녀(恨天女)라 하오.]

(원천기……한천녀……)

면전의 두 사람 한천이기……

소일초와 주소아가 그들의 한맺힌 이름을 되뇌였다.

이때 다시,

원천기의 음성이 이어졌다.

[우선……두 분 정통마교주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드리는 바이오……당신들이 선택된 인간이 아니었고 절대의 자질이 없었다면 결코 이곳까지 이를 수 없었을 것이오.]

[…………]

[우린 그대들이 연성한 청사무를 대하지 못하면……영원한 잠 속에 빠져 있어야 할 운명이었소.]

원천기은 계속 입을 열었고 한천녀은 침묵을 지켰다.

얼음처럼 냉오한 그녀는 마치 말을 잃어 버린 듯했다.

[헌데 당신들은 우리의 뜻을 외면하지 않고 그 청사무를 극으로 연성한 것이오. 그리하여 우리 한천이기는 육십 년의 안배된 잠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오.]

[…………]

[그것은 곧 당신들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뜻대로 마장탑의 모든 안배를 무사히 마쳤음을 말함이고……또한 당신들과 우리 한천이기는 청사무로 완전하게 영적인 합일을 이루었음을 말하는 것……]

원천기의 음성이 여기까지 이르자,

소일초가 안색을 굳히며 말을 끊었다.

[나는 아니야. 나는 너같은 귀신과 영적인 합일 따위 한 적이 없어. 내 마누라하고 따져 봐.]

[…………]

도무지 신비하기 그지없는 자기들을 발가락 새 때만치도 여기지 않는 소일초를 원천기와 한천녀가 어이없어 하며 바라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궂은 일 시킬 때는 언제고 의리없이 귀찮다고 혼자서 뒤로 빠질 궁리를 해? 치사하게스리……]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핍박했다.

[난 몰라 아무튼 네가 시작했으니 끝도 네가 맺어.]

[좋아, 두고보자……]

주소아는 눈을 흘기고는 원천기를 돌아보았다.

[한데……먼저 이것부터 물어보자. 우리가 여기 얼마나 있었는데?]

[이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이오.]

[음……내 계산이 틀리진 않았군……]

주소아는 어떻게 날짜를 계산했단 말인가?

소일초가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쳐다보았다.

사실,

그녀는 여인만이 가진 시계로 달 수를 헤아렸던 것이다.

그녀가 소일초에게 입을 삐죽해 보이고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이유로 육십 년 동안이나 죽지 않고 우릴 기다렸지? 그러지 않아도 웬만한 부탁은 들어 줄 텐데……]

순간 원천기의 몸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대로 하여금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천지파멸(天地破滅)의 뜻을 계속 행하게 하기 위함이었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한천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죽음, 그 자체의 침묵을 고수하고……

원천기는 주소아의 물음에 일일이 대답했다.

[우린……우리 칠십이기재들은 그대를 계속하여 우리들의 안배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오.]

일순,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싸늘한 분노가 어렸다.

[그 천지파멸인가 하는 것 말인가?]

원천기은 다소 느리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대가 정통마교주로서 이 땅을……이 하늘을 파멸시키려면……]

[그러려면?]

[절대적으로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안배가 더 필요한 것이오.]

[말하자면 너는 나를 너희 칠십이기재들의 꼭두각시로 계속 부리기 위해 육십 년의 잠을 잔 것이란 말이로군.]

주소아의 음성이 서릿발처럼 차갑게 가라앉았다.

원천기의 말에 약간의 충격과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리라.

무서운 일이었다.

그들 칠십이기재들은 실로 완벽하게 소일초와 주소아를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즉,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욕망과 저주와 한(恨)을 그들을 통해 무림에 뿌리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

원천기의 음성이 다시 울렸다.

[이후……당신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 한천이기의 안배에 따라야 하는 것이오.]

[…………!]

[그것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율법이기 때문이오……누구도 거역해서는 아니되는……]

소일초의 몸에서 거대한 폭풍같은 기도가 일었다.

[잡혀왔던 주재에 간만컸군……누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가!]

[우리를 거스르지 마시오……]

[쓸데 없는 소리, 내가 거스르겠다면?]

순간 단호히 떨어지는 음성……

[죽음!]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천녀을 응시했다.

방금의 대답은 최초로 한천녀의 입에서 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죽음이라는 말 한 마디가 그대로 죽음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만큼 잔혹비정한 음성……

그것은 철저하게 모순이었다.

이 절색의 미녀 입에서 최초로 흘러나온 음성이 이토록 잔인한 말이란는 사실이……

그리고,

그녀의 몸에서 죽음보다도 더욱 칙칙한 기운이 풍겨나오다는 사실이……

하나,

소일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음성 또한 진하게 죽음의 냄새를 풍겼다.

[대단해……단단히 미친 년놈이야.]

 

--------으핫하하하!

--------호호호호호!

 

소일초와 주소아는 석실이 떠나가라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그들의 몸에서 터져나오는 강인하고도 당당한 절대의 위엄……

그 위엄으로,

한천이기의 신형이 그 광소가 계속이 되는 동안 거의 육안으로는 판별할 수 없으리만큼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말하면 믿을까?]

소일초는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지금의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순간,

원천기의 입가에 차가운 냉소가 피어올랐다.

[자만을 하지 마시오. 정통마교주……]

[…………]

[우리의 안배는 한치의 틈도 있을 수 없고, 하여……그대를 죽이는 안배 또한 완벽하게 내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

[믿지 못하시겠다면 지금이라도 시험해 보도록 하시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두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이곳까지 오는 중간의 헛점은 이루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았다.]

[…………]

무서운 긴장감이 세 사람 사이에 숨막히게 흘렀다.

하나 곧,

주소아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 시험은 차후해……]

[…………]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그대들의 안배가 절실하니까……]

더 이상의 말의 필요없었다.

원천기의 말 또한 어떤 안배처럼 생각없이 흘러나왔다.

[좋소……적어도 그 정도의 크기는 있어야 정통마교주로서의 자격을 갖춘 것……]

다음 순간,

그의 손이 그들이 나왔던 관 속을 가격했다.

돌연,

쿠쿠쿠------!

천지를 울리는 엄청난 굉음과 함께 석실의 내부가 무겁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이었다.

화산 옥녀봉 정상의 산정호수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그리고 천지파멸의 욕망과 저주와 한의 시작이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한천이기의 인도를 받아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칠십이기재들의 안배……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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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魔敎七十二絶技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소일초와 주소아는 여덟 개의 석실 중 첫번째 석실에서 아홉 가지의 무공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 아홉 가지의 무공은 모두가 손바닥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두 번째 석옥에 이르러 있었다.

사실 그들이 여덟 개의 석실에 차례로 들게 되는 것은 칠십이기재들의 안배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의 손에 꼭 쥐어져 있는 일백오십여 년 참선했던 검마의 사리는 그들의 뜻이 아니었다.

칠십이기재들은 소일초가 단 한 걸음을 옮기는 것조차 계산에 넣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두 가지의 아주 엉뚱한 변수가 그들의 모든 계획을 무위로 만들고 있다는 것은 계산하지 못했으리라.

 

두번 째의 석실,

이곳 역시 장방형이었다.

또한 전신을 회색빛으로 표백시킬 것 같은 가공할 마기가 흐르는 것 역시 첫번 째 석실과 같았다.

그리고,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처럼 생생한 아홉 명의 기재들의 시신이 사면 벽에 정좌하고 있는 것까지……

다른 점은,

이곳의 모든 분위기가 첫번 째의 석실에 비해 훨씬 강렬하다는 것 뿐이었다.

이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또 다른 호기심을 담고 석옥을 살피고 있었다.

한데,

이 석옥의 사면 벽과 천정에는 첫번째 석실에서 보았던 손의 조각 대신……

권(拳)……

수만 개의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의 주먹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오오……

그 주먹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을 담고 있는 것처럼……

형용할 수 없는 꿈틀거림을 보이고 있었다.

때문에,

이 사방 십여장의 석실은 이 신비로운 생동감으로 꽉 차있는 형태였으니……

허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 일 뿐,

그것을 대하고 느끼는 소일초와 주소아는 어떠한가?

생동감 만큼이나 파괴적으로 보이는 주먹들……

꿈틀거림 만큼이나 잔인해 보이는 주먹들……

[살심(殺心)을 돋우는 주먹들이야……]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전신으로 해일처럼 밀려드는 엄청나게 사악한 기운을 검마의 사리로물리치고 있었다.

하나,

주먹들을 살피고 있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망울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물들어 있었다.

강해보였다.

무엇이나 부수어 버릴 것 같았다.

그 주먹들을 보면서 자신이 나약해 지는 감을 느끼는 두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 주먹들은 모두 강인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기이한 매혹을 느끼며 그 주먹들을 살펴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때였다.

고오오오---------!

돌연 석실의 사면 벽을 아득히 울리며 들려오는 이 소리는 또 무엇인가?

그 소리는 순간적으로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일깨웠다.

 

------아아아아……정통마교주여……

이 땅에 남아날 수 잇는 것은 오직 우리의 뜻으로 이룩된 한……저주……

오오……!

이제 이 땅은 우리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우리의 주먹에 따라 부서지……

우리의 주먹에 따라 삶이 결정되리니……

기뻐하라, 정통마교주여……

기억하라……

마교칠십이절기 중 아수라권(阿修羅拳)을……

아수라권을……

아……수……라……권……을……

 

이 영혼을 울리는 소리는 점차 흐려가고……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은 점차 맑은 상태로 회복되고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고오오오-----

권영(拳影)……

무어라 형용해 낼 수 없는 수 만 개의 권영이 석벽으로부터 폭출되는 것이 아닌가?

그 저주의 아수라권의 그림자들이……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시작하여 소용돌이치듯 일어나며 석실의 허공에서 하나로 합일되는 것이 아닌가?

오오……보라!

이 세상의 모든 강함과……

이 세상의 모든 파괴가……

아수라권의 권영이 만들어낸 하나의 주먹에 넘실거리지 않는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넋을 잃고 말았다.

헌데 그렇게 느낄 그 순간이었다.

파아아아-------!

그 강렬한 힘을 가진 듯한 주먹……

아수라권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꿰뚫고 거대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니……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의 손에 쥐어져 있던 검마의 사리에서 서기가 뻗어나오고,

그토록 강인할 것 같던 아수라권의 권영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미 이러한 경험은 수 차 겪었던 것!

그들은 놀라거나 불안해 하지도 않았다.

일백오십년 참수(參修)한 검마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시간은 흘러갔다.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흘러갔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석실의 아홉가지 권법을 머리 속에 담고 있었다.

그리고,

없었다.

석벽과 천정에 가득했던 그 수 만 개의 주먹 조각들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으며……

그 권법들의 창조자인 아홉 기재들의 시신 역시 한줌의 가루로 흩어져 있었다.

허나 그것도 잠깐……

이미 한 번 그와 같은 변화를 겪은 소일초와 주소아는 곧 침착을 되찾고 얼마간의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진정 마교칠십이절기의 무공은 하나하나가 지독하리만큼 가공했다.

그 가공함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끝없이 놀라고 있었다.

과연,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마교칠십이절기가 풍기는 사악함에서 어느 정도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지……

 

× × ×

 

제삼의 석실,

이 석실의 크기라든가 형태면에서는 처음 두 석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

이 석실이 풍기고 있는 분위기만은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으니……

보라!

사면의 벽과,

천정과 공간이 온통 붉은 검으로 꽉 차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분명한 검이다.

달려있거나……

붙어있거나……

허공에 부유하고 있는 붉은 검은 실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스스스스……

투명하면서도 은은한 자광을 뿌려내고 있는 검(劍)……

소일초와 주소아는 생각했다.

(저 검들은 어떻게 해서 공중에 그냥 떠다니고 있을까? 정말 교묘하게 만들어 진 것 같은데……)

수천 개의 붉은 검……

그것의 정확한 숫자는 헤아릴 수 도 없었다.

[석실 속에 떠다니는 검이라니…… ?]

주소아는 그 신비한 검에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물끄러미 사면 벽에 빙 둘러 앉은 채 죽어있는 아홉 기재들을 응시했다.

헌데 돌연,

소일초와 주소아의 아름답고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눈망울에 가는 경련이 일었다.

지금,

슈슈슈슈슛-------!

은은한 붉은 빛을 자욱이 뿌리면 내렸다가……

물보라처럼 일어나며 자신을 향해 몰려드는 검들을 주시하는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이 검들이 하나하나가 서로 다름을 느꼈던 것이다.

놀랍게도……

그 검 하나하나에 가공할 극사, 극마의 기운이 물살처럼 퍼져오고 있었다.

뿐인가?

그 검에 실린 그 기운들은 곧 무서운 기세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밀려드는 것이었으니……

순간,

[잘못하면 가루가 돼버리겠다.]

소일초의 외침이 들리고,

스르르르……

휘스스스……

미풍처럼 가벼운 붉은 검들은 일시에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으로 폭풍처럼 밀려드는 것이니……

(……피해야 한다……)

하나 그것은 단지 그들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 어떤 것으로도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검들을 피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소일초와 주소아가 한 곳에 있을 때는 그토록 조용히 날던 검들이……

일단,

소일초와 주소아가 빠르게 움직이자 그 검들은 그들의 움직임 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들의 몸을 가격해 왔던 것이다.

그것도 정확히……

소일초와 주소아의 십대사혈을 향해 수백의 무리를 지어 날아드는 검……

돌연,

[마왕수……]

주소아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순간,

슈우우우-------!

시리도록 투명한 하나의 손 그림자가 그녀의 우수(右手)로부터 환상처럼 솟아나는 것이 아니가?

그 손은 저주의 마왕수,

찰나, 석실의 모든 대기가 일시에 그 마왕수에 응축되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무서운 폭발음과 함께 그 마왕수는 그대로 수천 개로 분리 확산되면서 생명을 사멸시켜버릴 수만은 변화를 담고……

그대로 저 수많은 검을 향해 터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오오……그 가공할 위력이여……!

그것을 어지 필설로 형용할 수 있겠는가?

한데 이게 웬일인가?

스스스르르……

거센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사방으로 흩어지던 검들이 한 순간 더욱 빠른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 삼백 육십 혈을 노리고 짓쳐드는 것이 아닌가?

[마왕수로는 막을 수가 없다.]

소일초의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서 여덟 가지의 서로다른 수법이 잇달아 펼쳐졌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검은 다시 더욱 빠른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노리고 파고 들었다.

여덟가지의 권법도 소용이 없고……

생사보록의 무공들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 왔으며,

오히려 검의 기세만 더 흉폭하게 했을 뿐이다.

소일초는 주소아의 몸을 낮추어 바닥을 앉도록했다.

그의 손에는 언제 꺼냈는지 새파란 소도(小刀)가 들려있었다.

바로 백인장의 최고 신물이랄 수 있는 청옥소도(靑玉小刀)였다.

청옥소도가 검처럼 사방으로 원을 그리며 뻗어나갔다.

소일초 최후의 절초,

일초무적의 검공이 펼쳐진 것이다.

청옥소도의 끝에서 형성된 무형의 기류는 사방팔방에서 몰려오는 붉은 검들을 휘감았고……

붉은 검들은 일제히 기류속으로 휘말리며 천정으로 몰려갔다.

그러나……

천정에 부딪치기도 전에 검들은 다시 변화를 일으키며 강렬한 저항을 했고,

소일초는 청옥소도를 이리저리 흔들어서 붉은 검들의 저항을 일소시키고 있었다.

일단,

힘이 들기는 하지만 그의 검공에 붉은 검들이 더이상 두 사람에게 접근해 오지는 못하자 긴 안도감이 생겼다.

[부수어 버리자. 가루가 돼도 움직이는가 보자!]

소일초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한데,

그 순간에서도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아득히 적시며 흘러드는 소리가 있었으니……

 

------오오…… 정통마교주여……

만마검(萬魔劍)을 거역치 말라.

만마검은 어떤 것으로도 피할 수 없으며……막을 수도 없는 것……

우리의 뜻으로 인세의 모든 사악과 패륜과 부덕을 담아 만든 만마검이로다.

 

[갈갈이 찢게 죽으란 말인냐?]

소일초의 분통터지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영혼을 텅비어 가듯이 떨어지던 마의 음성은 다시,

으스스한 한기를 뿌리며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 속으로 밀려들었다.

 

------만마검은 모두 일만 개이나 그것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는 천지간에서 가장 뛰어난 검이 되나니……

그를 일컬어 마황검(魔皇劍)이라 하나니……

마황검은 그 어떤 호신강기로도 막을 수가 없으며……

그 어떤 뛰어난 보법으로도 피할 수 없고……

그 어떤 무공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아아……마황검……천지간에서 가장 뛰어난 검이라……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일만 개의 검이 합쳐져 하나의 검을 형성하고 그것을 마황검이라고 명명(命名)한다니……

마황검……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마주보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무엇으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그 만마검이 지금 소일초의 청옥소검에 휘말려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화가 더 나면 가루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데……

그 음성은 사기(詐欺)치고 있는 것이니……

아무튼,

음성은 자화자찬 속에 계속되고,

 

------오오…… 그리하여……우리 아홉 기재들은 마황검이 고금제일지검(古今第一之劍)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황검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아홉 가지의 검식(劍式)을 창조하였으니……

이름하여 마검구식(魔劍九式)……

마황검과 더불어 이 고금제일의 검법을 마교칠십이절기 중 하나로 전하나니…

마검구식은 오직 마황검으로만 펼칠 수 있는 것으로써……

우리의 뜻에 따라……

일만 변의 검리(劍理)를 합쳐 모두 아홉 가지의 변환을 이루노라……

 

그로부터……소일초와 주소아는 마검구식의 검법요결을 들어야 했고……

소일초는와 주소아는 그 마검구식이 어쩐지 백인장의 마도구식(魔刀九式)을 의식하고 만들어 진 것 같다는 것을 느꼈다..

음성이 마검구식의 구결을 다 설명하고 났을 때,

일만 개의 가볍고 붉은 검이 서로 모이며 강렬의 빛을 뿜어내고 하나가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마황검(魔皇劍)이 된 것이다.

검을 집어 들면서 소일초가 말했다.

[재미있는 곳이야……조금도 심심할 틈이 없으니……]

[이제 겨우 이십칠절기를 구경했을 뿐이야……]

그들의 뇌리 속에서 마검구식이 완벽하게 기억이 되었고……

또한 소일초는 일만 개의 검이 합쳐져 완성된 이 땅에서 가장 완벽한 검……마황검을 얻었다.

무겁고 둔중함 마저 어린도를 닮은 듯한 마황검……

마황검은 이렇게 소일초와 운명의 만남을 이루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후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다시 네 번째의 석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손엔 여전히 검마의 사리(舍利)가 들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세월을 느낄 수 없는 곳에서,

기상천외한 마공들을 익혀가고 있었다.

바깥세상에는 해가 바뀌었는데……

 

× × ×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

이 광세의 살인마학(殺人魔學)들은 아무리 하늘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선인(善人)이라 하더라도,

이 무학을 연성하노라면……

인세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 없는 혼세의 마물(魔物)이 되어버리고 만다.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인성(人性)을 모두 상실해 버리고……

오직,

피와 죽음과 저주와 증오의 심성(心性)만이 가득 채워지는 마교칠십이절기……

누구라도,

그 마교칠십이절기 중 한가지만 연성한다 해도 완전히 인성을 잃어버린 마물이 되어 버리고 말리라,

그런데,

칠십이기재의 한과 저주가 깃들어 있는 마교칠십이절기를 익혀가는 소일초와 주소아……

과연 그들은……

어떻게 변했을까?

칠십이기재들의 주문대로 인성(人性)이라고는 모를 피의 마물이 되어 버린 것인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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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죽은 師父가 求해주다

 

 

 

북경(北京),

연왕(燕王) 이후로 명(明)의 황제가 거쳐하는 곳이 된 곳,

밤이 되어도 거리에는 불이 꺼질 줄 모르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어지럽다.

이 곳 북경에서도 고관대작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주작로……

높은 담장의 거대한 저택은 조용하기만 한데,

깊은 곳의 서재에서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황촉불을 받아서 어른거린다.

이 저택!

혜성처럼 나타나 여러 단계의 과거를 모두 장원으로 합격하고,

절세의 총명을 드날리며 관계(官界)에 진출해 불과 사 년 만에 한림원 시강에 오른 인물의 저택이다.

황제의 신임을 철저히 받아 어느 누구도 그의 앞에서 세도를 부릴 수 없는 그 이름은 주하운(朱河雲)이다.

지금,

그 주하운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서재에서 소요하고 있다.

[그놈들의 야심이 그렇게 컸단 말인가? 진정으로 나를 배신한 것이었던가? 자식과 다름없이 키웠건만……]

그의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정말, 그 귀여운 녀석을 처참하게 죽여 버렸단 말인가? 아니……결코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녀석은 어떤 경우에도 쉽게 죽을 놈이 아니야. 나마저 골탕먹인 녀석인데……]

그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혈기자는 죽었다……지금 있는 것은 한림원 시강인 주하운일 뿐이다. 그녀석의 일은 그녀석이 해결해야한다……물론 나와의 약속도 지켜야 하고 ……]

 

× ×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거대한 흡인력에 이끌려 마장탑에 빨려 들어선 소일초와 주소아……

그는 기괴한 분위기에 전신을 으스스 떨며 눈을 떴다.

(이곳은 동굴……)

그렇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도대체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아득한 동굴이었다.

이 지하통로의 사면 벽은……

온갖 마기가 응집된 것처럼 암회색을 띠고 있었으며,

천정에 듬성듬성 박힌 야명주(夜明珠)는 피처럼 붉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뿐인가?

바닥에 낮게 깔린 붉은 안개는 스물스물 움직이고 있었고,

통로는 죽은 듯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그 정적을 깨는 것은 천정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소리……

그 청아한 소리는 이 극사한 분위기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길게 울리고 있었다.

(으음……이 소름 끼치는군……)

소일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주소아와 함께 몸을 일으켜 보려고 하는 순간 사지로부터 얼얼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어?)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외의 외침과 함께 다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상한데? 이렇게 다리가 풀리다니……나도 모르는 새 첩을 뒀나?)

말도 아닌 소리를 내뱉는 소일초를 흘겨보며 주소아는 운공을 하여 근육을 풀며 좀전의 흡인력의 가공함에 혀를 내둘렀다.

잠시 후,

그들은 운공의 전신이 쾌청해짐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한데 그때였다.

고오오오-------!

통로 전체를 울리는 기이한 소리가 그들의 전신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오오……그 소리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정신을 맑게 흔들어 깨우고……

그의 팔만사천모공으로 알 수 없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환영하노라!

이 땅의 축복과 하늘의 자비 속에 탄생한 천지간에 가장 완벽한 인간이여……!

 

이 소리는……

이 영혼의 속삭임은 대체 어디서 들려오는 것이란 말인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청력을 있는데로 끌어올렸다.

하나, 그 음성의 출처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단지 그 소리는 천만 가지의 음성이 한데 어우러져 들려온다는 것만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이때, 그의 의혹을 헤아린 듯 들려오는 그 영혼의 속삭임……

 

------그대여……!

나를 찾으려 하지 말라……

나는 하나가 아니고 칠십이기재 모두이며……

단지 우리 영혼의 음성을 남겼을 뿐이노라……

따라서 내 몸의 형체는 없노라……

 

고오오오---------!

음성은 멀어져 갔다가 다시 몰려들었다.

 

----그대는 우리 칠십이기재들에 의해 선택된 인간……

그대만이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욕망(慾望)과 한(恨)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노라……

하여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오직 그대를 위해 일생을 살았고 오직 그대를 위해 마지막 생의 종지부를 찍어가노라.

 

순간,

소일초와 주소아는 눈을 마주 보았다.

그들의 입가에는 참기어려운 웃음을 참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을 아는 척하며 들려오는 음성은 그들이 오직 한 사람인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를 아는 척 하지마라……우리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며 둘이되 하나이니라……]

소일초가 처음으로 전음을 사용하여 주소아에게 그 신비한 음성을 흉내내며 말했다.

주소아의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나올 듯 했다.

그러나,

그 신비한 속삭임 소리에 소일초와 주소아는,

웃음 이전에 의혹이 느껴졌고……

의혹 이전에 경이로움이 가슴 저 밑바닥으로부터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한편,

그 영혼을 울리는 속삭임은 다시 울려오고 있었다.

 

-------의심하지 말라……

거역하려 들지도 말라……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하늘의 낸 인간으로 하늘에 도전하는 두뇌를 지녔던 절대의 천재들,

어찌 그대가 이곳에 나타날 것을 예견하지 못했겠는가?

아는가?

정통마교란 이단의 집단에 의해 바로 우리 칠십이기재들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우리 칠십이기재의 손에 의해 최초로 정통마교주라는 존재가 탄생되게됨을……

어리석은 인간들인 구마존은……

죽어서도 우리들에 의해 정통마교가 새로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모르고 오직 자신들이 정통마교를 이어왔으며 이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정통의 무공을 우리가 계승하였는데 누가 과연 정통이란 말인가?

 

여기까지 듣고 있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무……무엇이?]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소리가 아닌가?

[이들……칠십이기재들이 정통마교를 이었다는 소리아니야? 뭔소리야 이게……잡혀왔던 주재에……몽땅 미쳤군……]

소일초가 거짓말 마라는 씩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이때, 소일초로 하여금 더이상 소리를 치지 못하게 하는 영혼의 울림이 가득히 전해져 나왔다.

 

-------선택된 인간이여, 놀라지 말라!

그리고 우리들의 처절한 한을 마음에 새기라.

인간이었으나……인간들에 의해 잡혀와 하늘에게마저 외면 당한 채 죽어간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응어리진 한……한……한……

그 증오와 저주 어찌 작다 할 손가?

어찌 그저 묻어 두라고 말하겠는가?

오오……저주하노라.

이 땅의 모든 정의(正義)를 증오하노라.

마의 손에서 우리를 지키지 못했던 정의를 저주하노라,

그리하여,

우리는 정통마교를 저주하고 하늘을 저주하여 우리의 뜻을 세웠노라.

우리는 악의 추종자들을 이용하여 정통마교를 배반하게 했으며……

그들을 이용하여 우리를 잡아왔던 모든 인물들을 주살하게 했으며……

이제 우리의 뜻으로 칠십이기재들인 우리는 세상을 멸망시켜버릴 인물을 선택했노라……

 

소일초와 주소아의 놀라움은 갈수록 심화되어 갔고,

이 칠십이기재들의 가공한 능력과 비틀린 욕망에 몸서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만든 마교칠십이종절기(魔敎七十二種絶技)……

알지어다.

마교칠십이종절기는 우리 칠십이기재의 모든 것임을……

역사에는 다시 없을 광세의 역천마공임을……

아아……마교칠십이종절기를 창안한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만족했노라.

하나, 우리의 생명은 다했노라……

우리는 이 무학을 만들기 위해 죽음마저 던져버린 것이다.

후회는 없노라.

향후 이 하늘……이 땅엔 선(善)이라 정(正)이라 이름할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부정되고 마(魔)라는 이름마저 영원히 사라진 후 우리의 저주인 역천의 무공 마교칠십이절기만이 영원히 찬란할 진저……

우리 칠십이기재들은 이제 마교칠십이종절기의 주인으로 선택한 그대를 정통마교주로 봉하노라.

그리고 이제 그대에게 이 미증유의 마공절예를 전하노니……

정통마교주여! 이제 그대는 모든 자비를 버려라.

남아 있는 모든 인정의 샘물도 버려라.

그리하여 오직 마(魔) 만이 충일한 마음으로 마교칠십이종절기를 받도록 하여라.

우리는 믿노라.

그대가 선을 버리고 마의 길을 가줄 것을……

그리고 마(魔) 마저 없애버릴 것을……

그대는 결코 우리의 뜻을 거역하지 않을 것을……

아니, 결코 외면하지 못하리라……

외면은 필연처럼 죽음으로 지불되리니……

이제……

그대는 우리 뜻으로 여덟 개의 석실에 들 것이고……

그석실들에서 그대는 마교칠십이종절기를 받으리라……아아아……

 

소일초는 모든 소리를 다 듣고 싸늘히 냉소를 쳤다.

[불쌍하게 미친 놈들이 자부심하나는 대단하군……아무리 저주가 깊다하나 세상을 뒤엎을 수 있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인가……]

소일초의 얼굴에 피어오른 냉소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뭐 익히지 않으면 어쩌고 말듣지 않으면 어쩐다고? 감히 나 신행마동을 협박해……]

[꼭 그렇게 만은 생각할 것 없어……주는 건 받고 시키는 건 않하는 게 너잖아.]

주소아가 그에게 달콤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교칠십이절기가 익히기 싫으면 익히지 않아도 돼. 내가 익힐께……]

소일초는 천천히 통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좋아, 그들 뜻대로 모든 무공을 연성해봐……하나 결코 그 무공들로 나를 이길수는 없을 걸?]

[…………!]

[네 심보 다 알아. 어떻게 해서라도 무공이 강해져서 내위에 올라가 볼려고 하는거지. 어림없다. 나는 일초무적이야……]

한데 그의 중얼거림이 막 끝났을 때였다.

돌연,

쿠르르르------!

굉렬한 폭음이 통로의 사방을 두드리는가 했더니……

급작스레 소일초와 주소아가 서 있던 부위가 쑥 꺼져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나락……

끝없이 부침하는 나락 속으로 소일초와 주소아는 전신의 공력을 돋구고 몸을 보호하며 손을 잡고 꺼져들어갔다.

그들이 말한 여덟 개의 석실로……

그래서 또 다른 기연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 ×

 

석실(石室),

사방 십여 장 크기의 장방형 석실이었다.

아무것도 없고, 도대체 아무런 기운도 느낄 수 없는 너무도 평범한 석실이었으나……

누구든 이 석실에 들면 소리없이 젖어드는 소름끼치는 마기에 의해 전신이 오그라드는 충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엉겁결에 이 석실에 들어선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당혹함이 스치고 있었다.

(이곳이……바로 여덟 석실 중 한곳인가?)

각기 내심으로 짐작하며 석실의 사방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석실에는 아홉 명의 흑의 장발인들이 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석실 사면 벽에 빙 둘러 있었으며,

도대체, 형용할 수 없으리만큼 가공할 마기와 사기와 악기를 뿌리고 있지 않은가?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기운에 접하자 숨이 막힘을 느꼈다.

(으음……가공하다. 저들 역시 죽은 지 오래된 시신이 분명하건만……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하고……뿐만이 아니라……저 극사극악한 기운은 가히 폭발적인 살인의 미학을 내포하고 있다. 분명히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몸을 파괴당했다고 했는데……)

소일초와 주소아는 생각을 하며 아홉 구의 시체 가까이 접근했다.

(이들은 칠십이기재들 중 아홉 명이 분명하리라.)

가까이 접근하자 그들 시신의 몸에서 풍겨지는 기운은 더욱 가공하게 그의 전신을 향해 밀려왔다.

[으음……조심해……조심하지 않으면…… 이들의 몸에서 풍기는 마기에 감염되어 영혼이 마의 기운에 사로잡히게 될거야.]

소일초가 주소아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정통마교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부였던 검마 역시 무림의 대기재 였고 젊었을 때 정통마교의 손길이 뻗쳐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납치하기 위해 나왔던 정통마교의 마두들은 오히려 모조리 그에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비밀까지 털어놓으면서……

이것이 소일초가 칠십이기재를 우섭게 보는 이유의 하나였다.

칠십이기재가 진정한 기재로 강자들이었다면 결코 잡혀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그의 사부인 검마가 실례(實例)지 않은가?

 

소일초는 심호흡을 하며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미 주소아가 온 정신을 모으고 있는 석실의 사면 벽과 천정을 자세히 살폈다.

한데, 오오……이럴 수가 있는가?

이 극사극악한 기운은 단지 아홉 구의 시신에게서만 풍기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사면 벽이며 천정에서도 그 가공할 기운은 몸서리치도록 끔찍하게 풍겨지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전율,

그것은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서는 항거할 수 없는 절사(絶死)의 기운이었다.

한편,

사면 벽의 한 곳에는 무수히 많은 손(手)의 형태가 조각되어 있었다.

하늘을 움켜쥐는 듯……

대해를 가로지르려는 듯……

억겁의 한의 부피가 실린 듯 무거운 동작……등등……

그 수인(手印)은 수천 수만의 손이 일시에 움직이는 듯 생생했고……

엄청나게 사악한 기운이 바로 그 수인(手印)들에 의해 폭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뿐인가!

그 수 많은 손의 조각들은 기이하게도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시작되고 종결되는 듯하니……

가히, 아홉 기재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의 가공함과 사악함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문득, 소일초와 주소아의 수려한 동공이 믿을 수 없는 경악으로 치켜떠졌다.

(이 손조각들은 인간이 표출할 수 있는 모든 손의 행동을 묘사했다…… 거기다가……인간의 몸에서 흐르는 생명의 기를 완전하게 끊어버리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들의 놀라움은 갈수록 커졌다.

(그리고……생명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듯한 죽음의 동작들……진정 가공하다. 무섭다. 두렵다.)

하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런 것들에 놀랄 여유가 없었다.

스르르……

그들의 심연한 동공이 순간적으로 풀려가는가 싶더니……

스스스……

벽의 한 쪽에 가득히 찍혀 있는 손의 움직임이 그들을 무섭게 찍어오는 것이 아닌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소스라치게 놀라는 순간 수 많은 변화를 보이며 찍어오던 손그림자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벽은 원래대로 였다.

[묘한데……]

소일초의 말처럼 그 손 조각들은 묘했다.

조금 응시 했다 싶으면 눈 앞으로 뛰쳐 나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아무렇지도 않았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묘한 흥미를 가지고 손 조각들을 들여다보며 그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오오…… 장강의 대하(大河)가 송두리째 그의 머리 속으로 밀려 들어오듯……

천지간의 온갖 저주와 한이 그의 머리 속에 폭포수처럼 내리 퍼부어지듯……

그 엄청난 수영(手影)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뇌리로 차곡차곡 파고들기 시작했다.

보면볼수록……

그것은 더욱 선명하게 그들의 뇌리에 깊이 기억되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돌연, 그들의 영혼을 촉촉히 적시며 소낙비처럼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으니……

 

------아는가! 정통마교주여……

우리 아홉 기재들의 이 잔인수(殘忍手)가 그려내는 황홀함은 우리 아홉 기재들의 모든 영혼이 서로 통하고 또 통하여……

세월의 아득한 시공을 초월하여 완성한 역천의 무공임을……

그리고 또 아는가?

그 잔인수가 하나로 합쳐질 때 비로소 마왕수(魔王手)는 완성되는 것을……

기억하라!

마왕수는 마교칠십이종절기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아……절묘하다.이 모든 수영들이 저주의 마교칠십이종절기 중 하나란 말인가?]

주소아가 탄성을 질렀다.

짐작은 했지만 이것은 너무 엄청난 무공이었다.

아니, 무공보다는 저주의 손짓이요……

살의 손짓이었으며……

한의 손짓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 수영(手影)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잔인수가 하나로 점차 합쳐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영혼을 저미는 소리……

 

-----정통마교주여……!

우리 아홉 기재들은 세상의 모든 생명을 끊을 수 있는 하나의 수공(手功)을 그대에게 주겠노라……

그리하여 그대에게 주어진 그 위대한 마왕수는……

하늘을 거역하리라……

땅을 거역하리라……

정을 외면하고 선을 부정하리라.

자비를 거부하고 인정을 짓밟아 가리라.

오오……

이제부터 위대한 마왕수는 그대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게 될지니……

이후,

마왕수는 이 하늘……이 땅 사이의 공간을 다스리는 죽음의 심판자(審判者)가 되리라.

 

죽음의 심판자,

마왕수,

그것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머릿속 깊이 새겨 졌다.

그 손은 아름다웠다.

하나이면서도 수없이 갈라지는 듯 하고 그러면서도 종내는 하나로 귀일되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손이었다.

하나,

그 속에 내포된 그 가공할 마기와 사기……

오오, 그것은 끔찍한 것이었고 가히 폭발적인 공포를 자아내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 마왕수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무섭도록 균열시키며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순간,

[으으-------악-------]

소일초와 주소아는 느닷없이 터지는 고통에 머리를 감싸며 나뒹굴었다.

바로 그때,

소일초의 품에서 은은한 서기가 뻗어나와 두 사람을 감쌌다.

두 사람의 영혼을 파괴할 것 같던 끔찍한 사기(邪氣)와 마기(魔氣)는 그 서기(瑞氣)로 인해 절로 사그라져 버렸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사부님께서 돌보셨다.]

소일초는 품속을 빠르게 헤치고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한시도 몸에서 떼놓지 않았던---빨가벗었을 때는 빼고----사부 검마의 몸에서 나온 사리(舍利),

그 사리가 마성(魔性)에 빠져들뻔 했던 두 사람을 구해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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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魔章塔의 崩壞

 

 

 

마장탑(魔藏塔)------

 

이 엄청난 석탑……

그 끝이 이 지하공동의 천정에 닿아있으며,

주위로는 오직 백골들이 흩어져 있다.

시간과 주야(晝夜)……

그리고 계절을 모르고 사이한 푸른 안개에 휩싸인 채 부유하듯 떠있는 이 마장탑은 세월의 무심한 흐름 속에서도 말없이 서있다.

전체가 푸른 이끼로 가득차 있었으며……

으스스한 마기(魔氣)를 끊임없이 삼켰다가 끊임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바로 이 마장탑 앞의 두 사람……

언제부터인가?

굳어진 석상처럼 빤히 마장탑을 바라보면서 책상다리를 한 채 앉아 있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전신에는 헤어질 대로 헤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으며……

치렁치렁한 장발은 허리를 넘었는데 낡은 천으로 질끈 묵여져 있는 청년,

그리고 헐렁한 낡은 옷을 걸치고 단정하게 머리를 틀고 있는 여인,

스스스……

한 줄기 음풍이 청년의 장발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름다운 얼굴……강인한 기상……그리고 눈에 맺혀져 있는 것 같은 고집……

이 사내는 소일초다.

당연히,

그의 옆에서 도대체 인간의 몸으로 이토록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풍겨내는 이 여인……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소일초와 주소아,

이때 그들의 심연처럼 맑고 그윽하게 가라앉은 눈망울은 마장탑에 고정되어 있었다.

문득 꺼질듯이 새어나오는 소일초의 한숨……

[아……틀렸어…… 도무지 이 마장탑에 들어갈 방법이 없어!]

[…………]

[제기랄, 우리가 들어왔다던 연못은 꽉 막혀있고 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그저 이 마장탑에 매달린 것이 벌써 언제야……]

소일초가 갑갑함을 참지 못하고 또 발작을 한다.

[여긴 남만의 검마동보다 더 지독해……그땐 그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곳인줄 알았는데……]

[가만있어봐……떠들어도 아무 소용없어. 나갈려면 오직 저 마장탑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을 거야……]

소일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해. 너무도 완벽하게 폐쇄되어……!]

그들은 벌써 자고 일어나면 마장탑에 매달리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처음엔 수월하게 생각했던 이 지하공동에서의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 후에 더욱 그랬다.

마장탑과 정통마교,

어느 탑도 부술 수 없었다.

기이하게도 그 두 탑만이 지하공동의 천정에 닿아 있는 기둥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

희망이 있다면 오직 마장탑을 열고 그 속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이곳의 탈출 방법을 알아내는 것 뿐이었다.

그동안 그들의 식사는 오직 이끼와 물이었다.

이제,

인간의 상상력의 한계를 벗어난 미증유의 신비로운 체질과 생명력을 지닌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의 손은 이끼를 신선한 음식으로 만들 수 도 있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을 지닌 것이라면 그들의 손에서 맛있는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독과 물마저 그 성질을 바꿀 수 있으니,

그들의 손은 기적의 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지난 얼마동안 이 지하공동을 빠져 나가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으되……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는 헛수고에 불과했으니……

석탑을 감싸고 있는 것들은 오직 독균들 뿐이었으며……

이곳은 사방이 밀폐되어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이곳은 절지이고……

원래부터 이 곳의 출구는 연못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그 출구는 정통마교의 제구대 구마존이 완전히 붕괴시켜 버린 것이었다.

허나,

지금 소일초가 투덜거리고 있어도 다시 마장탑을 들여다 볼 것이고,

주소아는 눈 도 깜빡이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 있다.

(어떻게 해야 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저 안 어딘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밀이 있을 텐데.)

하염없이……

그녀의 신비로운 동공은 석탑의 부분부분을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어느 부분은 튀어오르고……

어느 부분은 꺼졌으며……

어느 부분은 각이 졌는가……

기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눈을 감고도 석탑의 형상을 훤히 머리 속에 그릴 수 있었다.

하기는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그들이 그토록 열심히 살펴봤으니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허나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의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도,

세월모르고 마장탑를 뒤지고 또 뒤졌지만 결코 마장탑의 출구를 찾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 마장탑가 얼마만큼 완벽하게 폐쇠되어 있는 지 짐작이 가리라!

주소아 그녀의 심사도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에 가득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헌데 그때였다.

지하공동의 아득한 천정으로 연결된 마장탑의 제일 윗 부분이……

순식간에 지하공동 전체를 붉은 마광으로 물들이는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소일초와 주소아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서로 손을 잡고 태양처럼 빛을 발하는 그곳을 바라보았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수려한 몸이 가늘게 떨린다.

(변화……이 시간마저 멈춰버린 공간에서 처음 있는 변화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헌데 그때였다.

돌연,

쿠르르르……!

마장탑이 엄청난 소용돌이와 함께 무섭게 뒤틀리는 것이 아닌가?

수천만 가닥의 끔찍한 마광(魔光)이 솟아 오르고……

그 마광은 기이하게 제일 윗 부분의 태양같은 붉은 빛과 어우러져 전율스럽게 뿌려지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현상……

(우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느닷없는 상황에 당혹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런 일이 갑자기?)

쿠르르르……

그 순간 무너진다.

마장탑이 핏빛 먼지를 사방으로 뿌리며 아래에서 부터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서운 흡인력이 마장탑에서 뿜어져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휘감아 올렸다.

(으윽……이런 엄청난 힘이……!)

막을 수가 없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가공할 무공으로도 그 엄청난 흡인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그들의 몸은 서로 껴안의 채 붕괴되는 마장탑의 제일 위,

붉은 광채가 쏟아지는 속으로 끌려 올라가고……

그 와중에서,

소일초와 주소아의 영혼을 울리는 듯한 소리가 있었으니……

그 소리는 아름답고……전율스러웠으며……사이했고……공포스러운 것이었다.

 

---놀라지 말라……

우리는 불우했던 칠십이기재들……

그대를 위해 안배했나니……

 

그랬던가?

이 모든 것이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위해 안배한 것이었던 것인가?

(오……이 기막힌 조화가 칠십이기재들의 안배라니……)

 

----……그대의 출현은 우리 칠십이기재들의 뜻……

자, 들라……이 마장탑로 들라……아아아아……

 

이 여운과 같은 영혼의 속삭임을 들으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아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쿠쿠쿠-----!

지하공동의 기둥역할을 하던 마장탑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그리고 기둥이 무너진 그 곳 역시……

 

× × ×

 

무림은 다시 경악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무림을 강타한 소문,

 

-----천하제일의 힘을 가졌다는 백인장이 무림에서 다시 자취를 감추었다.

삼수로 밝혀진 삼성무림청의 수뇌들과 싸우다 죽은 원로도객들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백인장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

 

-----강북의 청옥검궁도 무림활동 중지를 선언했다.

소속된 일반 검사(劍士)들을 일제히 내보내고, 검왕과 검왕자를 비롯한 핵심 고수들이 어디론가 은거해 버렸다.

 

이제,

무림사대세력 중 삼성무림청과 청옥검궁, 그리고 백인장이 종적을 감추면서 오직 구파일방만이 남게 되었다.

강자들이 사라진 무림에 이를 기회로,

군소방파들이 빠른 속도로 세력을 키우고 팽창해 가고 있었으니……

무림은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도대체……

백인장의 사람들과 청옥검궁의 고수들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들과 친분을 나누었던 수 많은 무림인들이 의혹속에 잠기는데……

 

무림에는 새로이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력으로서 가장 강대하게 부상한 것은 삼현(三賢) 중의 일 인인 백대선생(白大先生)이 이끄는 백가장(白家莊)이다.

그리고 무시 못할 세력이 역시 삼현 중의 한 사람인 혈군자(血君子) 지장행(智長行)이 이끄는 취현성(翠賢城)며,

개인으로서는 취풍녀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특히 취풍녀는 휘파람을 몰고 다니면서 피바람을 일으키고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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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正統魔敎의 秘史

 

 

 

[아아악!]

[아악!]

비명!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에서 터지는 비명은 얼마나 계속되었는지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사실,

그들은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

의식을 조금이나마 찾았다가 다시 고통의 나락속에 빠져들어가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그들의 몸은 전신 뼈마디가 수 없이 이동하고,

다시 수없이 근육과 오장(五臟)이 이그러졌다가 재위치를 찾았다.

그에 따라,

그들의 몸도 백색의 찬란한 광휘를 피워냈다.

잃었던 의식이 다시 찾아들었고 의식은 다시 엄청난 고통으로 인해 혼절하기를 몇 번 인가?

헌데,

지금,

스스히 그러한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옷이 터져나가 버린 알몸에 돌연 지금까지의 백색 광채와는 다른 우유 빛 옥(玉)처럼 투명한 서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옥처럼 투명한 서기는 더욱 현란히 피어나더니……

급기야 그 서기들은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게 만들어가지 않는가?

거기에는 오오……

언제 그쳤는가?

그들의 입은 부드럽게 다물어져 있고,

언제 변해 버렸는가?

그들은 완전한 성인(成人) 남녀의 모습이 되어,

고통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평화로운 얼굴이 되지 않는가?

급기야는,

그들의 나신에 강인한 서기마저 어려 신이 빚은 미녀와 미남을 보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기적과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본시,

백송균화는 땅의 축복을 가진 영물이었으나,

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기를 지닌 것이었다.

축복이 큰 만큼 복용시의 고통 또한 컸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다시한번 증명해 주면서……

두 사람의 전신을 엄청난 고통 속에서 재조립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전설의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몸을 완전히 다른 체질과 모습으로 바꾸어 버리는 크나큰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두 사람……

비록 무공과는 상관이 없지만 가장 건강한 몸을 지니게 되어 그 수명을 추측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의 손에서 생명의 조화를 전할 수 있는 땅의 축복을 지녔으니……

 

× × ×

 

[으음……!]

소일초와 주소아가 동시에 천천히 의식을 회복한 것은 백송균화을 복용한 지 얼마가 지나서 인지 알 수 없다.

눈을 뜨고 옆을 돌아보던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쳤다.

[살았구나!]

[누구냐!]

두사람의 몸은 역근천골공으로 어른으로 변신했을 때와는 완연히 달랐다.

그때는 억지로 만들어 낸 모습이었지만 지금의 모습은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 완전히 성숙해져 버린 것이다.

만약,

그들의 어리던 몸이 세월이 흘러 최전성기에 들게 된다면 아마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몸은 변했지만,

여전히 어린 본모습이 남아있고 특히 목소리는 여전히 비슷했다.

[소아구나……]

[그래, 나야……]

주소아가 기뻐서 소일초를 안다가 뭉클 거리는 자기의 가슴을 인식하고 얼굴이 화끈해 지면서 밀쳐버렸다.

그리고 몸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전에 봐왔던 소일초의 알몸과는 느낌이 달랐다.

전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듯 부끄러움이 밀려든 것이다.

몸을 돌리고 누워서 주소아가 말했다.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아……그런데 어떻게 된 거지? 역근천골공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 데도 몸이 커져 버렸어.]

[아마, 백송균화 때문일 거야……]

주소아는 지금까지의 일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지송목의 갈라진 틈새에는 이제 은은하던 백광도 찬란하던 백광도 없어져 버렸지만 전혀 시력에 지장을 받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이 석동안은 이상하게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고 지금 그들의 어둠의 장애를 느끼지 않는 시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몸이 아주 편안해……마음도 아주 편안하고……]

[몸은 편하지만……마음은 조금 불안한데……]

소일초가 느긋하게 하는 말에 대한 주소아의 소감이다.

[왜?]

[잘 모르겠어……네가 옆에 있으니까 이상하게 자꾸 불안해……]

[…………]

[네가 다시 장난친다면 나는 숨도 쉬지 못할 것 같아……지금도 자꾸 숨이 가빠져……]

여전히 소일초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주소아가 뛰엄 뛰엄 말했다.

[나도 숙쓰러운 것 같아……어른이 돼버렸나봐……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게 언제지?]

[잘모르겠어……백송균화를 먹기 전에는 한 칠일 쯤 지난 것 같았는데……]

[설마……한 십 년 정도 흘러버린 것은 아니겠지?]

돌아누운 채,

도란도란 속삭이는 그들의 전신(全身)에는 생명의 환희가 찬란히 용솟음치고 있었고,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위대한 평화와 아늑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도저히 느낄 수 없으리 만치 몸은 가벼워져 있었다.

하나의 깃털보다 가벼워 입김만 <호> 하고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여기서 누워만 있지 말고 한 번 돌아보자……]

[혼자 갖다와……나는 근처는 대충 돌아봤어……]

주소아는 돌린 몸을 웅크린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소일초는 일어서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 성숙한 아름다움에 묘한 기분이 들어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전에처럼 마음대로 그녀를 주무르고 누르고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혼자간다. 여긴 완전히 지옥이군, 어디서 귀신이 나올지 모르겠어……]

밖으로 나가며 소일초가 중얼거린다.

순간,

누워있던 주소아는 부쩍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귀신이 나오기라도 할 듯 주변은 침침했고 안개마저 깔려있었다.

[같이가……]

벌떡 일어서서 소일초의 뒤를 쫓아 나갔다.

그녀의 백색 나신이 눈부시게 안개를 가로질렀다.

 

밖으로 나온 소일초는 의아심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휘둘러 보았다.

허나,

보이는 것은 짙은 안개와……

소용돌이치는 미증유의 사기와……

거대한 석순처럼 끝없이 늘어 선 지송목의 숲……

소일초는 흠칫 몸을 떨었다.

(호……혹시 여긴 진짜 지옥이 아닐까? 나쁜 짓을 많이 했으니까 죽었다면 분명히 지옥인데……)

소일초는 급히 자신의 오른 편에 있는 주소아의 손등을 힘주어 꼬집어 보았다.

[아얏! 왜그래?]

뾰족한 비명을 지르며 원망스런 듯이 쳐다보았다.

소일초의 꼬집는 솜씨는 여자 못지 않아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아픈 감촉이 전해진 것이다.

[음……분명 죽은 건 아니야……]

[기가막혀서……내가 살아있다고 말했잖아!]

고개를 들이대면서 소리를 지르는 주소아다.

그러나 못들은 척하며……

[음……그렇다면……이곳은 산정호수 속이란 말이지?]

주소아는 소일초가 자기를 무시하는 듯 하자 다시 대들려고 했다.

그때,

[평생 여기서 살거야?]

소이리가 들리자 마자 성질을 죽이고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소일초는 일단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우선 이곳을 살펴보자. 꼼꼼히 둘이서 살펴보면 어딘가 밖으로 통하는 길이 있을 거야.]

그들 두 사람은 새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기이한 안개의 소용돌이를 헤치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

이 지송목의 숲을 헤매었을까?

문득,

걸음을 옮겨가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발길이 우뚝 멈추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굳어진 곳……

더이상 커질 수 없도록 크게 떠진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못박힌 듯 고정되어 있었다.

[와아……살아 있는 생명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지옥과 같은 이곳에 저토록 큰 두개의 석탑(石塔)이 있다니……!)

놀랍다.

두 시간을 이 주위를 헤맨 동안 그가 본 것은 오직 지송목의 숲 뿐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사방이 완전히 막힌 것 같은 이곳에,

도대체,

그 크기가 수 만년을 지냈을 지송목에 뒤지지 않는 거대한 두 개의 석탑이 웅크리고 있었으니……

언뜻 보면 석탑과 석순같은 지송목이 분간이 가지 않을 듯 했다.

그리고,

불과 이십여 장쯤 떨어져 있는 두 개의 석탑은 쌍둥이 마냥 모양과 크기가 똑 같았다.

오오……

그 탑과 탑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는 사이한 안개,

실로 귀기롭다.

그리고 몸서리쳐지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헌데,

그 탑과 묘의 주위에 나뒹굴고 있는 저 수 많은 백골은 또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것……

[여…… 여기도 인간이 살았던 때가 있었나봐……]

주소아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며 소일초에게 말했다.

그리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의혹을 참지 못하고 급히 우측에 있는 검은 석탑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통마교(正統魔敎)>

 

석탑에 핏빛으로 쓰여진 단 네 글자……

(정통마교?)

소일초와 주소아는 들은 듯도 만듯도 한, 하지만 생소한 그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이내,

소일초는 엄청난 악의 기운을 토한는 석탑의 문을 열었다.

쿠르르르르……

기분 나쁜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층 석탑의 내부,

쿠쿠쿠……

싸싸싸……

엄청난 무형의 기운이 악마의 입김처럼 이동하고 있을 뿐……

한 눈에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석전은 텅 비어 있었다.

허나,

석전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핀 소일초와 주소아는 실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석전의 바닥,

오오…… 그곳에 가득 널브러진 저 수 많은 백골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헉……!)

소일초와 주소아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들의 발 끝에 닿는 백골의 섬뜩한 감촉,

그리고 밟자마자 부스스 먼지로 화하여 날리는 백골들을 보며 마음만은 아직 어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찔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으음……오래 전에 이곳에서 큰 혈전(血戰)이 벌어진 것 같구나……)

생각하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석전을 살펴나갔다.

헌데 문득,

석전을 살피던 주소아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무엇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저……저것은?)

가슴에 검이 박힌 채 나뒹굴어져 있는 한 구의 백골,

기이하게도,

그 백골의 한 손은 썩지 않은 채 본래 그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은은히 혈광(血光)을 뿌리는 손……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 손을 봄으로써 알 수 없는 가공할 살기와 잔인한 무정을 느끼고 전율했다.

어느 새,

그들은 그 손 가까이에 접근해 있었다.

그리고,

그 손 주위를 살피던 중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바로 그 손 옆의 바닥에 새겨진 몇 글자를 발견했던 것이다.

 

<부……분하도다……정통마교(魔宗會)의 처…… 천년야망(千年野望)이 배신자들에 의해 물거품……되다니……>

 

백골의 주인은 마지막 순간에 이 글씨를 새긴 듯 손끝이 마지막 글자에 얹혀져 있었다.

[히유……천년 이래……천년이 얼마나 긴지나 알고 썼을까?]

바람 빠지는 소리를 터뜨린 소일초와 주소아는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통마교란 이름도 생소하지만……

천년야망이란 가공할 욕망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의혹을 느끼며 또 다른 흔적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주소아와 소일초는 이내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안고 석탑의 위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층 석전의 구조도 일층의 석전과 구조가 비슷했다.

수 많은 백골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역시 기이하게도 한 구의 백골 만이 글을 남기고 있었다.

그 마지막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해 새겨놓은 듯한 글자들에서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석전에 백골로 나뒹굴고 있는 자들이 거의 정통마교(正統魔敎)란 신비단체의 인물들이며……

글자를 남긴 인물들이 구마존(九魔尊)의 일 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정통마교의 주인인 구마존……

그들은 각층마다 한 명씩 죽어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계속 사층……육층……팔층의 석전으로 올라갔고,

석탑의 그 팔층까지도 상황은 똑같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의 사실 외에는 소일초와 주소아가 알 수 있는 사실 또한 없었다.

마지막 십층,

쿠우우우-------!

기이한 소용돌이 만 가득찬 텅빈 석전의 내부 역시 수 많은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다.

유심히 사방을 살피던 소일초의 눈에 언뜻 경악의 빛이 스치면서 주소아를 자기의 등뒤로 끌어당겼다.

[저기……사……살아있는 사람이……]

주소아도 그 것을 보았는지 손가락을 가르쳐 보였다.

오오……

석전의 한쪽 석벽에 반듯이 기대어 앉아있는 한 사람……

백골이 아닌 완전히 살아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죽은 시신이야……]

소일초가 먼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내 주소아도 그 중년인이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시신임을 알 수 있었다.

한데,

시신은 시신이었으되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시신이었다.

차고 냉혹하며……

수려하기 이를 데 없는 중년인의 모습을 한 시신,

그의 맑고 깊은 눈에는 지금도 은은한 자광이 폭사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니……

이 자가 살아 있었을 때 얼마나 가공스러운 무공을 지녔는지 가히 상상키 어려웠다.

순간,

[정통마교……정통마교……정통마교……]

딱!

소일초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중얼거리다가 자신의 이마를 쳤다.

[이런 멍청이……그새 정통마교를 잊어버리다니. 사부께서 그렇게 당부했는데……에잇. 폭발로 머리가 어떻게 됐나봐!]

[정통마교를 알아?]

주소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시체를 봐! 죽은 후에도 오랜 세월 동안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잖아……이게 바로 극마의 경지야……그 나쁜 놈 사진성 역시 극마의 경지였어……참 기억은 찾았어?]

[응! 별 것 없었어. 나중에 이야기 해 줄께……]

소일초와 주소아는 한동안 경이로운 시선으로 중년인의 유체를 살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는 중년인이 기댄 석벽에 피로 쓰여진 글씨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았다.

 

<본인은 구마존 중 천마존(天魔尊)이다.

아아……그 어느 세월에 있어 본인의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날지 모르지만……나는 이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었노라……

영원히 이 글을 읽어 줄 자 나타나지 않는다 하여도……

이 원통……이 한……이 증오를 달랠 수 없기에 이 글을 적지 않을 수 없노라……

내 이제 여기에 정통마교(正統魔敎)의 탄생과 종말을 적으리니……

우선 이 글을 적을 때가 대명(大明) X 년 X 월 X 일 임을 밝히는 바이다.>

 

[대명 X 년이라고? 그렇다면 언제란 소리야?]

 

소일초의 맑은 동공에 놀라움의 빛이 가득 넘쳐났다.

허나 곧,

가슴을 추스리고 주소아와 함께 한과 원이 절절이 배인 처저란 비사(秘事)를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정통마교는, 본시 천 년 전에 탄생한 마의 기본이며 본산인 십만마교의 본류이다.

이 땅에 마(魔)란 이름을 정착시킨 마의 주창자(主唱者)들……

본 정통마교에서 그분들을 제일대(第一代) 구마존이라 칭한다.

그 분들은 영원히 마가 정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부정해 왔던 인물들이었다.

그분들은 드디어 천년대계(千年大計)를 세우기에 이르셨다.

마로써 정을 제압하려는 천 년의 대 계획……

그 위대한 계획 아래 탄생한 것이 정통마교였다.

그 분들은 천 년의 원대한 계획으로 정통마교주를 탄생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준비의 첫 단계는 천하에 산재한 모든 마공절예(魔功絶藝)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단계는 이 땅에 위대한 정통마교주가 탄생할 때까지 자신들의 역할을 계속 수행할 제이대의 구마존을 점지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잃은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 글의 광오함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얼마나 산다고 좋은 일 다 제쳐두고 이런 쓸모없는 짓을 천년 씩이나 할려고 했을까? 도무지 제정신이 아닌 미친놈들이야……]

소일초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 글의 광오함을 탓하면서 도 그들은 계속 읽어갔다.

 

<……이런 방법으로 구마존은 그 시대 가장 뛰어난 마공절예를 모았고……

또 그 후임자 즉 차대 구마존을 찾아 그들의 역할을 물려주는 이 장엄한 진행은 제팔대에 이르도록 철저하게 이행되었다.

헌데 제팔대에 이르러선 약간의 변화가 발생했다.

제팔대에 구마존은 마공절예들을 더 이상 모으기만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공절예들을 체계화하고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천하에 산재하는 기재들을 납치해 오게 되었다.

그들은 마장탑(魔章塔)에서 거쳐하며 오직 마공을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으니……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그들의 몸은 전혀 무공을 익힐 수 없도록 파괴되어져 있었다……>

 

여기까지 석벽의 비사(秘史)를 읽어 내리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입이 딱 벌어졌다.

천하에 산재한 기재(奇才)들을 납치하여 몸을 망가뜨리고 사악한 일에 동원하다니……

[무림에 때때로 있어왔다는 어린 기재들의 실종사건이 이들에 의한 것이었다니……기가 막히는데?]

주소아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튼……대단한 놈들이 대단한 짓을 하는군 그래. 그래봤자 자기들에게 고물도 떨어지지 않을 텐데……]

소일초도 서늘해 지는 가슴을 느끼면서 말했다.

허나, 그의 시선은 다시 석벽의 비사를 자세히 더듬기 시작했다.

 

<그들 기재들의 능력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총 칠십이 명의 이들 기재들……

그들은 우리 제팔대에 이르는 구마존이 마장탑에서 무려 팔백 년(八百年)의 세월에 걸쳐 수집된 수백 종의 마공들………이 엄청난 마공들을 그들은 자신들이 지닌 바 천재적인 두뇌로 새롭고 고강한 전혀 새로운 마공으로 통합해 가며 만들어가니……

그것은 실로 엄청나고도 거대한 작업이었다. 무림에 언제 이토록 많은 기재들의 힘이 한곳에 집결된 적이 있었던가?

무려 팔백 년의 세월에 걸쳐 난세마다 탄생한 최고의 무학들을 수집한 것에 그들의 두뇌가 결합되어……

그 작업은 무려 백 년의 세월에 걸쳐 진행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리 제팔대 구마존은 제구대 구마존을 점지하고 우리들의 모든 것을 넘겨 주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을 전하고……우리의 모든 무학마저 그들에게 전한 뒤의 그때……

오오……배반……배반이 이루어졌다.

불과 약관의 나이로 구마존으로 점지된 새로운 구마존이 일시에 배반을 한 것이다.

그 배반자들은 정통마교의 칠백 고수를 죽이고……그들을 동조한 정통마교의 삼백고수들을 이끌고 거기에 기재들이 만들고 있던 마교칠십이절기(魔敎七十二絶技)의 부본을 지닌 채……

오오……이 마의 성역(聖域)을 떠나니……

오오……이 어찌 분하지 않겠는가?

조천수(趙千手)……제구대 천마존 조천수……에게 정통마교의 모든 정령들이 저주를 내린다……저주를……>

 

소일초와 주소아의 낯빛이 무겁게 일그러졌다.

[조천수가 정통마교의 제구대 천마존이었다니……제기랄 칭찬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소일초가 주소아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조천수……

바로 등천마교주(登天魔敎主)로 주소아의 부모를 살해한 원수의 이름이 아닌가?

비록 그 대가로 처참하게 목숨을 바치고 등천마교의 멸망까지 가지고 왔지만……

그렇다면,

등천마교는 이곳을 배반하고 떠난 제구대 구마존의 무리들에 의해 탄생된 것이란 말인가?

그리고 분노한 천하제일인 혈기자의 손에 일제히 때죽음을 당했는가?

참으로 기가막힐 일이다.

배신을 하고 나간 그들이 불과 몇 십 년 되지도 않아서 시신조차 건사하지 못한채 처참하게 죽고 말았으니……

진정,

하늘은 인간의 모든 선악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있단 말인가?

주소아는 망연한 표정인데……

소일초는 도무지 끝을 짐작할 수 없는 혈기자의 무공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정통마교의 배신자인 조천수 등의 등천마교 본단을,

혈기자는 단장(短杖) 하나로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몰살시켜 버렸던 것이다.

무려 이천칠백여 등천마교 본단의 인물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일제히 머리가 터져나갔다는 것을,

소일초는 수없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약했던가……아니면 혈기자의 무공이 진정 신과 같단 말인가? 무림사에 유래가 없는 진짜 반로환동을 한 분이니…… )

소일초는 자기의 무공에 자만할 수 없었다.

자기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구마존같은 고수들을 단 한 수에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설사 일초무적의 검공으로 죽인다고 하더라도 어찌 조금의 반항조차 못하게 할 수 있겠는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주소아를 보았다.

[조천수……그가 우리 집안의 모든 행복을 앗아간 장본인이야……그자만 아니었으면……부모님도 돌아가시지 않으셨을 테고……할아버지도 숙백부들에게 혈겁을 일으키게 하지 않았겠지……그럼 그들도 할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을 테고……나는 할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

주소아는 <조천수>라는 이름을 보면서 원한에 찬 중얼거림을 내뱉었다.

소일초가 그녀의 어깨를 당겨안으며,

점점 희미해져가는 글자를 다시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아아……이로써 정통마교의 천 년 안배는 모두 깨졌다.

허나 불행 중 다행히 배신자들은 마장탑에 들어 기재들의 손에 의해 완성됐을 마교칠십이절기를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미 그들의 배반을 예감했음인가?

칠십이기재들은 미리 마장탑의 모든 통로를 완벽하게 폐쇄해 버린 것이다.

결국 마장탑은 칠십이기재들의 무덤이 되고 말았으니……

어느 세월엔가……

그 어느 세월엔가……

누구든 마장탑에 드는 자 마교칠십이절기를 얻어 진정한 정통마교주가 되리니……

바라건데……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정통마교주로서 무림 위에 군림(君臨)하기 바라노라……>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더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글이 끝난 때문이다.

[친구 미안하게 됐네……이미 배신자들은 씨도 남기지 않고 다 자네 곁에 갔다네……혈기자 그 젊은 형씨께 감사하게……]

소일초는 주소아를 웃기려는 듯 해학적으로 말했다.

주소아는 그의 말에 웃음을 띄면서 그를 밀쳤다.

[비켜봐! 어딘가에 옷이 있을 거야!]

[그대로가 더 좋은데……]

풍만하고 탄력있으며 우유빛이 어려있는 주소아의 알몸 아래위를 스윽 훑어보며 소일초가 말한다.

[색마……덩치가 클 때나 작을 때나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구나……]

과연,

주소아는 석전의 이구석 저구석으로 알몸으로 뛰어다니더니 두 벌을 옷을 찾아냈다.

[쳇, 여자건 없어. 기분이 찜찜하기는 해도 별 수 없지. 우리 이제 마장탑인가 하는 데나 가보자.]

옷을 재빨리 걸쳐입으며 주소아의 얼굴에 강려한 호기심이 피어올랐다.

그녀의 무공에 대한 관심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무림에서 잡혀온 칠십이 명의 기재가 창안했다는 마교칠십이절기가 몹시 궁금한 것이다.

소림칠십이절기라면 몰라도 마교칠십이절기라니……

그녀의 관심은 이제 조천수 따위는 잊어 버리고 온통 마교칠십이절기로 가 있었다.

이때,

[우리 밖에 없는 데 옷은 무슨 옷이야. 지금이 가볍고 좋지……]

소일초가 이미 그녀의 성숙한 나신에 익숙해져 투덜거린다.

[너 때문에 옷을 입는 거야. 혹시 무슨 짓 하자고 달려들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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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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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前死後殺

 

 

 

항산(恒山),

눈덮힌 항산의 산줄기를 탄 조그만 야산을 둘러싼 거대한 성(城),

대소전각의 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을 만큼 많은데……

눈으로 뒤덮혀 천지는 하얗게 빛나고 있다.

 

<청옥검궁(靑玉劍宮)>

 

성은 바로 청옥검궁이었다.

강북 무림을 장악하고 있는 검으로 우뚝 선 문파.

이곳은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산에서 결전을 치룬 백인장과 청옥검궁의 최고수들이 이곳으로 함께 몰려든 것이다.

대전 앞에는 십여 개의 관이 놓여져 있고 비장한 신색의 사람들이 둘러서 있었다.

일순,

[피해가 얼마나 되느냐?]

창노한 음성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머리에는 관(冠)을 쓰고 몸에는 금포를 두른 노인(老人),

말에서 풍기는 위압감이 사위를 짓누른다.

바로 중원의 검신(劍神)이자 청옥검궁의 궁주인 검왕 이극송(李克宋)이었다.

[…………]

중년의 호쾌한 인상의 문사, 검왕자 이수군(李秀君)은 침중한 안색으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이극송이 답답함을 느끼면서 말을 바꾸어 물었다.

[데려간 호법들은 모두 죽었느냐?]

[……네……아버님……]

[무사(武士)가 피 속에서 죽는 것은 영광인데 무얼 그리 주저한단 말이냐? 천하의 검왕 이극송은 태산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을 쉬게 해라.]

이극송은 소매를 떨치며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그의 노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고 이빨을 굳게 악물고 있었다.

(삼수(三手) 이 놈들!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감히 본 검왕을 건드리다니……)

분노로 인해 몸이 부르르 떨고 있었다.

대전에서 팔을 싸안고 있던 이주용(李珠蓉)이 이수군에게 말했다.

[오라버니……저 때문에……미안해요. 저는 항상 집에 피해만 끼치군요……]

[너는 내 하나뿐인 여동생이고 나는 일초의 외삼촌이다. 아무말 말고들어가서 쉬어라.]

그가 이주용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백인장의 여러분께서도 내집처럼 편히 쉬십시오.]

살아남은 원로도객들이 읍하며 감사했다.

 

두 문파의 피해……

 

소일초를 살리겠다는 한가지 마음으로 이주용과 조예진,

그리고 이주용의 연락을 받은 검왕자 이수군이 일제히 고수들을 거느리고 화산 옥녀봉에 올라갔을 때,

결투 약속에 늦지 않았건만,

소일초는 보이지 않고 삼수가 진을 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일초는 이틀전에 이미 변을 당했던 것이다.

삼수는 그들의 무공에 자신이 있었는지,

또한 두 문파의 고수가 함께 올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지 몇 명의 호위만 거느리고 있었다.

삼수의 가공할 무공……

그들은 소선풍을 기다렸으나 전혀 다른 일단을 고수를 상대로 끝없이 마공을 펼쳐냈고……

여태까지 한꺼번에 출동한 유래가 없는 백인장의 최고수들인 원로십팔도객,

그들의 가공할 도법만이 그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조예진, 이주용, 이수군, 어느 누구 고수 아닌 자 없었으나,

그들의 싸움에 끼어들 틈을 갖지 못하고 호위들만 처치했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 싸움의 주역은 원로십팔도객이었던 것이다.

수백년을 이어온 백인장의 최고 원로들……

평소 백인장 내에서 잔소리만 할 때와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한사람 한사람의 도가 강함과 빠름과 변화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서로가 전혀 다른 도법을 구사함에도 어떤 일관성을 갖고 있어서 마치 절묘한 절진처럼 삼수를 가두고 공격했다.

도광이 하늘을 충천하고 일도 일도에 바위가 쪼개지고 땅이 갈라졌다.

삼수의 마공또한 몰아치는 폭풍처럼 원로십팔도객을 공격했고……

호위들을 다 처치한 청옥검궁의 팔대호법(八大護法)과 이주용, 조예진, 이수군은 간담이 서늘했다.

특히,

이주용과 조예진의 놀람은 지대했으니……

잔소리 쟁이 영감들의 무공이 저렇게 가공할 줄이야……

그렇다.

백인장의 저력이야 말로 바로 그들이었던 것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한 삼수(三手),

혈기자의 무공을 배웠고 기이한 마공을 보탠 그들도 십팔명의 도객들이 합공에 갇혀 당황하고 있었다.

예전의 소선풍과 대결할 때도 그랬다.

처음엔 경시했다가 도도 들지 않은 그를 합공을 하여서야 부상을 입힐 수 있었다.

백인장의 무공들은 마공과는 상극(相剋)인듯 했다.

그들의 강맹하기 짝이 없던 마공도 원로십팔도객의 도에는 종이짝처럼 찢겨나가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삼수는 과연 강했다.

결국은 원로십팔도객의 합격을 꿰뚫고 말았다.

연로한 원로도객들은 근력에서 딸렸고……

그 틈이 오랫동안의 결투에서 은연중에 드러났던 것이다.

그들이 빈틈을 보이자 삼수는,

순식간에 십팔도객의 일부를 무너뜨리며 그들의 포위를 벗어났고……

그때부터 참혹한 살인이 다시 자행되었다.

먼저 청옥검궁의 팔대호법들이 제대로 반항도 해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고,

조예진과 이주용, 이수군 세 사람은 등을 맺대고 싸웠다.

삼수는 그들을 공격하고……

다시 그 밖에서 살아남은 원로도객들이 그들을 공격했다.

마침내,

시간이 더 길어 질수록 남는 것은 그들의 전멸이라는 것을 깨달은 원로도객들은 젊은 여주인들을 위하여 최후의 절초를 펼쳤다.

백인장의 도객들이 최후의 순간에 펼치는 마지막 도법……

 

<전사후살(前死後殺)>

 

그렇다 이름도 기괴한 전사후살이라는 도법이다.

말 그대로,

이 도법은 자기를 먼저 죽이고 후에 적을 죽이는 필사필살의 도법이다.

눈을 마주친 원로도객들 중 세 노인이 먼저 각기 삼수를 향해서 몸을 던졌다.

그런데 그들의 몸이 삼수에게 접근하자 빙글돌면서 오히려 등을 보였다.

전혀 엉뚱한 공격에 삼수가 흠칫하며 그들을 공격하는 순간,

팡------

팡------팡------

그들의 몸이 허공에서 폭발하면서 자욱한 피보라를 사위에 뿌렸다.

그 속에서 몸을 잃은 한 팔 들려진 세 자루의 도가 도저히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기이한 마기를 뿌려내는 삼수를 찍었다.

윽---윽----

세 번의 비명이 들리며 삼수의 어깨와 다리가 도에 관통당하거나 스치면서 피가 튀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경실색하면서 비명만을 터뜨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어느새 다시 세 개의 던져져 오는 노인의 등……

똑같은 수법이나 피할 틈도 없다.

원로도객들은 등을 보였다 싶은 순간에 폭발하고 무서운 도가 다시 그들의 몸을 할퀴었다.

이렇게 자신을 먼저 죽이고 공격해 오는 것을 삼수는 본적이 없었다.

강호의 일반적이 동패구상의 무공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삼수가 급기야 몸을 빼어 치를 떨면서 도주했을 때,

백인장의 최고수들인 원로십팔도객은 어느새 원로칠도객으로 변해버렸다.

그들의 장렬한 최후에 아무도 말을 할 수 조차 없었다.

묵묵히 그들의 흩어진 살점을 분간없이 수습하며 주인잃은 도 만을 소중하게 챙길 뿐이었다.

시신을 보전한 두 원로의 모습도 조금도 낫지 않았다.

삼수의 극악한 마공에 격중되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들이었다.

힘 한 번 쓰보지 못하고 죽어버린 청옥검궁의 팔대호법의 허망한 죽음과는 함께 생각할 수 없는 원로도객들의 죽음……

상처를 싸매고 그들은 좀 더 가까운 청옥검궁으로 올 수 밖에 없었다.

 

삼성무림청은 그 정예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삼수마저 극심한 부상을 당하자 어디론지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무림에서 삼성무림청의 흔적은 다시 발견할 수 없었다.

소일초의 시신은 찾지도 못한 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는데……

 

× × ×

 

절지(絶地),

이곳은 완벽히 차단된 지하의 어느 곳이었다.

보이느니 사방은 물론 위까지 가로막은 검은 석벽이요,

자욱하게 깔려있는 구름같은 안개뿐이었다.

아니 그 지하의 공동(空洞) 한 곳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 마치 거대한 석순처럼 솟아있는 기이한 나무!

가지도 줄기도 입도 보이지 않고 마치 기둥처럼 위로 곧게만 자란 이상한 나무!

이 나무들의 굵기로 보아 족히 일천 년 이상은 자란 것이리라……

바로,

이 석순같은 나무의 숲에,

스스스스……

파도처럼 출렁이는 안개와 사기(邪氣)와 마기(魔氣)……

이것들은 마치 지옥의 한부분을 형성하는 귀화(鬼火)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도대체,

이곳은 어디란 말인가?

사방이 밀폐되었기에 인간이 근접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분명한데……

한데 돌연,

이 기괴한 나무의 숲 한 곳에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미약한 신음과 낮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으으……으……]

[흑흑흑----]

신음과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곳,

그곳은 어느 나무의 뒤였다.

일견하기에,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확연히 틀린 것이었으니……

우선, 그 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엄청나게 컸다.

거기에다,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어둠속에서도 은은한 백색의 광채가 피어나고 있는 데다가……

마치 천상의 향기(香氣)인 양 신비롭기 이를 데 없는 향기마저 뿌려지고 있었다.

또한,

그 나무의 주위에는 무수한 작은 나무들이 땅에서 돋아있는 것이니……

바로,

그 신음과 울음소리는 이 나무의 벌어진 틈에서 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안에……

그렇다.

인간(人間),

두 명의 인간이 흰색으로 빛나는 나무 틈에 몸을 눕히고 있지 않은가?

한 사람,

전신(全身)은 피투성이였으며……

작고 탄탄한 몸에 귀엽기 그지없는 얼굴의……

소일초,

화산 옥녀봉에서 폭발과 함꼐 사라진 소일초가 바로 그가 아닌가?

그렇다면,

신음을 흘러내고 있는 그의 옆에 엎드려 울고있는 또 한 사람은……

하늘아래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어떻게……

어떻게 그들이 여기에 와 있단 말인가?

주소아가 눈물을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이미 변신이 풀려 다시 어린 계집애의 몸으로 돌아간 그녀의 몸은,

산산히 찢어져 속이 여기저기 들여다보이는 풍덩한 옷 속에 파무쳐 있었다.

그녀는 소일초의 이마를 짚어보곤 안개가 자욱한 석동으로 나가 작은 연못으로 갔다.

한 입가득 물을 머금고 돌아와 다시 소일초의 입에 넣어주었다.

소일초의 낮은 신음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비틀거리는 그녀 역시 정상의 몸은 아닌 듯 했다.

[벌써 칠일 은 지나갔을 거야……그런데 일초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는 소일초의 얼굴을 닦아 손으로 쓸어주면서 폭발당시를 회상했다.

 

철검을 던져버린 소일초가 그녀를 안고 허공으로 몸을 뽑았지만 이미 늦었었다.

그들은 강렬한 폭발에 휘말려 석평과 함께 산정호수로 빠져들고 만 것이다.

폭발의 충격에 주소아는 칠공으로 피를 쏟았지만,

육척의 소일초가 안고서 보호하는 바람에 다른 외상은 그다지 입지 않았다.

그러나……

소일초는 온몸으로 바위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냈으니……

금강지체인 그의 몸도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드디어 수중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소일초는 정신을 잃었지만 반대로 주소아는 물 속에서 더욱 정신이 맑아졌다.

그녀는 신기하게도 호흡의 지장을 전혀 받지 않았던 것이다.

물 밖에는 틀림없이 사진성,

그녀를 길렀던 세 사람 중의 사진성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빠르게 판단한 그녀는 소일초의 몸을 안고 가라앉는 거대한 바위를 잡고 물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다,

한 줄기 수중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바로 이 석동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폭발 때의 충격 때문인지 그녀의 내공은 산산히 흩어져 버리고 평범한 여자아이,

그것도 상처입은 여자 아이에 불과해져 있었다.

그녀에게 안겨있는 소일초도 다시 어린 소년이 되어 신음하고 있고……

그녀는 깨어났지만 소일초는 여전히 혼수상태에서 신음만을 내뱉고 있다.

몸은 한기를 느끼는지 덜덜 떨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 역시 물에서 강렬한 한기를 느끼고 손마저 담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에게는 소일초의 입으로 물을 옮겨주는 것도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녀가 숲을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희미하게 빛나는 이곳을 발견했을 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극심한 허기로 인해 무엇이든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녀였다.

생각에 잠겨있던 그녀……

한데,

향기……

지상의 향기가 아닌 듯 청아한 향기가 돌연 그녀 우울한 정신을 맑게 하며 어디선가 퍼져 나오는 것이 었으니……

오오……

이 향기는 나무의 머리 갈라진 틈, 바로 그들이 있는 곳의 한 쪽 구석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에서 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상에,

조금 전에도 볼 수 없었던 이상한 꽃,

도대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 신비로운 꽃은 마치 버섯의 줄기를 가진 오직 한송이의 꽃이었다.

한데, 꽃은 아주 작은 버섯에 꽃을 꽂아놓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감히 눈이 부셔 마주 대할 수 없는 백색의 광휘!

오오……

보라!

이 거대한 나무의 몸체를 감싸고 돌던 은은한 백색 광휘는 바로 이 조그만 꽃에서 피어난 광채가 전해졌던 결과였던 것이다.

이 조그만 꽃에서 피어난 광채로 인하여 그 어마어마한 나무의 갈라진 틈이 은은한 광채를 뛰고 있었던 것이니……

지금, 꽃이 땅위에 올라온 지금,

희미한 어둠 속에 있던 석동의 주위 오십여 장이 이 광채의 영향권에 들었다면 그 광채가 얼마나 극렬한 것인지 짐작이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이 꽃은……

이 신비한 백광을 발하는 꽃은 분명 아득한 옛날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도 전에 존재 했다는 지송목(地松木)이라는 거목에 기생한다는 그 백송균화(白松菌花)가 분명하다.

다만 전설일 뿐이어서……

인간이 세상에 출현한 후에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영원히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다고 이야기 되어져 왔던 백송균화……

전설이 말하는,

 

-백송균화(白松菌花)!

 

이것은 땅의 정기를 빨아서 자라는 지송목(地松木)이란 고대에 존재했던 괴목에서 다시 그 정기를 훔치면서 자란다.

오직 만년(萬年) 이상을 자란 지송목에서만 서식하며……

또한,

이것은 평소에는 그 모습이 흙속에 존재하고 오직 은은한 백색 광채만 주위에 뿌려내고 있다가,

수 만 년에 한 번 모습을 바깥의 바람에 쐬일 뿐이었다.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불과 일각(一刻),

그 일각이 지나면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어 버리고 그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완전히 성장하여 꽃을 피우게 되면,

찬란한 백색 광채를 향기와 함께 사위에 뿌린 후,

먼지로 화해 사라지면서 사방으로 그 씨를 퍼떠린다.

이 백송균화의 영험함은 땅의 모든 축복을 훔친 것이다.

무공과는 전혀 상관없이 생명체의 본질을 전해주는 백송균화……

그러나,

신체의 구성을 생명의 영기로 가득차 주게 하는 것이니 땅위의 모든 생물들에게는 최고의 보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소아의 온 몸이 백송균화를 보면서 덜덜 떨렸다.

그녀가 백송균화를 알아본 것이다.

인간으로서 백송균화를 본 최초이자 마지막 사람이 될 그녀였으니……

그 장엄한 광경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향기,

이 백송균화의 향기가 더욱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백송균화에서 발산되는 백색 광휘가 더불어 찬란해지니……

천지만물은 일시에 이 향기와 광채로 젖어 들어갔다.

그런데 ,

그 향기에 따라 여태 혼수상태에 빠져 들어 있던 소일초의 정신도 그만큼 맑고 뚜렷해지고 있었으니……

지금 이 순간, 소일초는 최초의 의식이 찾아들기 시작했고,

그 의식은 극심한 허기로 이어졌다.

[소아……배가 고파……]

주소아가 백송균화에 넋이 빠져 있다가 펏득 정신이 들었다.

소일초가 신음을 멈추고 힘없이 눈을 뜨고 있지 않은가?

그녀가 격동을 감추지 못하고 소일초를 얼싸안았다.

[우린 살았어……우린 살았어……]

 

세상 인간에게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백송균화는 나오자마자 두 남녀의 입으로 나누어져 들어가고 말았다.

순식간에 땅의 축복을 훔친 꽃 백송균화는 소일초와 주소아의 전신에 빠르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남녀는 서서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하늘은 어쩔려고 이 골치 아픈 소년소녀에게 백송균화를 안배했단 말인가?

어쩌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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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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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같은 수법에 당하다.

 

 

여명,

아침의 여명 속에 화산의 옥녀봉은 그 장엄한 위엄을 드러냈다.

천야만야의 절벽이 억 년(億年) 이끼를 드리운 채 깔아 내리질러진 옥녀봉의 정상!

바로,

이 옥녀봉의 정상에 칼로 반듯이 자른 것 같은 방원 오십여 장의 석평(石平)이 놓여 있었다.

석평의 옆에는 깊이를 알 수 없다는 산정호수(山頂湖水)가 이 추운 겨울에도 얼지 도 않은 채 시퍼렇게 넘실대고 있다.

스으으으……

짙은 운무가 허리를 휘감고 도는 데,

두 사람의 남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가 석평의 한 편에 서 있었다.

어제밤,

옥녀봉의 중턱에서 밤을 지새고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정상으로 올라온 것이다.

지금, 소일초는 주소아의 가슴에 비스듬히 머리를 뭍고 서 있다.

결투는 아직 이틀이 남았다……

십 세의 어린 소년으로……

상대가 혈기자의 세 제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 단신으로 도전한 천하의 당돌한 꼬마 신행마동 소일초,

어른의 모습으로 변신한 후에도 짖궂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던 소일초의 얼굴에,

지금은 진지한 표정이……

자욱한 안개마냥 드리워져 있었다.

하기야……

이 하늘 아래 어떤 자가 이 신행마동의 조그만 가슴에 담겨진 기상천외한 생각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희고 정기가 가득한 얼굴에 아주 다른 사람 인양, 진지함와 심각함을 어두움처럼 드리우고 있던 소일초……

문득,

[이젠 나도 준비를 해야지……]

무슨 준비를 말하는 가?

이 산정에서 그가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소아의 성숙해진 몸을 격렬하게 포옹하며 입가에 찬연한 미소를 피워올렸다.

불안한 기색으로 아무 말없이 그가 하는데로 다 내버려 두고 있던 주소아,

그녀가 면사속에서 씁쓸하게 웃으며 찬란히 움터오는 옥녀봉의 여명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점을 쳐 봤더니……그다지 좋지 않았어……재수 없이 소과괘(小過卦)가 나왔단 말이야……]

[소과괘? 그게 뭔데?]

 

소과괘(小過卦)!

이는 주역(周易)의 육십사괘(六十四卦) 중의 하나이다.

정식 명칭은 뇌산소과(雷山小過)인데 흔히 줄여서 소과괘라고만 부르고 있다.

간(艮)하 진(震)상의 형태로 간상(艮上)과 진하(震下)의 각 괘효만 양효이고 나머지는 모두 음효이다.

이 소과괘는 원래 만사형통의 괘라고 한다.

하지만,

작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큰 일은 할 수 없으며,

올라가는 것은 효를 거슬리는 것으로 마땅치 않고 내려가면 대길(大吉)하다.

강한 기운이 자리를 잃어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니, 이것은 큰일을 이룰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고,

역경(易經)의 상(象)에 기록돼 있다.

 

[지금 상황에선 가장 최악의 괘라고 할 수 있어……]

[책은 본래 부터 믿을 만 한 게 아니야……맹자라는 영감도 책이 오히려 사람을 헤치고 눈을 가린다고 했어. 그리고……]

[…………]

[공자도 언젠가 이르기를 바르면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을 거야……]

[공자 맹자의 말을 그렇게 잘 알면, 왜 다른 행동은 개찬반이야……공자 맹자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은 아닌데……]

조소아가 갑자기 공자 맹자를 방패로 삼는 소일초의 귀에대고 낮은 소리로 핀잔을 주었다.

[글은 대답이 궁할 때만 빌려오는 물건이야.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다시,

소일초의 얼굴이 진지해 지고 몸을 옴기려 하나 주소아가 껴안은 손을 풀어주지 않는다.

츄르르르……

아침의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주렴소리를 따라,

그들의 가슴에 내려앉은 불안은 춤추듯 허공에 아름아름 흩어져 날아갈 것 만갔다.

화산 봉우리 마다 희눈이 융단처럼 깔려있는데……

소일초의 얼굴에 결연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결코 패하진 않겠다……내가 누군데……)

이내,

소일초의 얼굴에 강한 신념이 서려왔다.

그리고 그의 온 몸에 투지가 불타올랐고,

주소아의 손을 풀면서 그의 두 눈은 옥녀봉의 사방을 헤아리듯 살폈다.

그리고 중얼거림,

[비성성을 불러야겠어……여기에 준비 해야 할 게 있어……]

주소아가 허공을 향해가 날카로운 휘파람소리를 보낸다.

휘이익----휘익-----

화산 절봉들 사이에 끝없이 메아리 치면서 멀리 멀리 소리가 퍼져나가자,

문득,

어느 산봉을 돌아서 새까맣게 날아오는 비행체들이 있었다.

휘파람소리는 여운을 남기며 멈추고,

소일초의 손바닥에 있는 수정검우가 비성성들을 인도했다.

[이곳의 지형을 바꿔야겠어……]

[……?]

[바위! 바위 알지? 돌말이야. 그래 그걸 주변에서 얼마든지 날라와. 많이 많이 그럼 나중에 술과 고기는 물론 여자까지 하나 씩 붙여줄게……]

돌을 직접 들어 보이면서 비성성들을 향해서 소일초가 소리친다

비성성들에게 무슨 여자가 필요하겠냐 마는 말이 그렇다는 소리다.

다시 옥녀봉에 두 사람만 남았는데 주소아가 물었다.

[바위들로 뭘 하려는 거지?]

소일초가 그녀의 귀에 대고 뭔가를 소근거리자 주소아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 바보 나한테는 미리 귀뜸을 해줬어야지……사람 속을 그렇게 태워?]

소일초가 씨익 웃는 순간,

[너는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다.]

소리,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무심일체의 소리,

그 소리는 어느 새 듣는 이의 영혼을 먹물 같은 마기로 적셔내고 있었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들은 무감정함 속에 형언할 수 없는 마기를 담은 음성의 방향을 따라 재빨리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나 없다.

아침의 여명을 받은 채 한개의 거대한 바위가 죽음 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을 뿐……

이때 다시,

[부럽구나……도왕 소선풍이……]

이번의 무심한 음성은 정 반대편의 눈덮힌 거대한 노송이 있는 쪽에서 흘러 나왔으나,

여전히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을 수 없다.

그런 음성이 순식간에 천지사방에 방향을 바꾸며 잇달아 흘러나오는 것이니……

[…………]

소일초는 얼굴에 긴장을 돋구며 사방을 예리하게 주시할 뿐이었다.

[후훗……놀라운 자질……상상할 수 없는 지혜……]

[…………]

[도왕 소선풍 대신할 수 있음에 결코 부족함이 없도다……하나 애석하게도……네 생명의 끈은 결코 오래 가지 않을 듯하다.]

문득, 소일초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신이 스승을 배신한 추악한 삼수인가?]

이순간,

주소아의 면사에 가려진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당돌한 녀석이군…………!]

소일초는 그의 감정을 억누르며 담담하고 차분한 음성을 흘려냈다.

[혼자만 왔는가?]

[후훗……물론……우리 삼수가 함께 상대해야 할 존재는 없다………]

[내 아버지 도왕 소선풍을 공격할 때도 그 말을 했겠지?]

[…………!]

[이틀 후가 예정된 날이지만 당신이 이렇게 왔으니……아버지의 복수를 신행마동 소일초의 이름으로 하겠다.]

실로 당차고 오만한 말!

돌연,

[후후후훗……건방진 녀석이로군……이 땅에 본좌 사진성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영원히 존재치 않음을 본좌는 스스로 단언하거늘……]

동시에,

그 섬뜩한 무심 속에 담긴 마소와 함께,

오오……보라!

푸석푸석……

전면의 바윗덩이가 거미줄처럼 균열을 일으키는 게 아닌가?

뿐만 아니라,

그 거대한 바윗덩이는 가공할 용암(熔巖)의 분출처럼 이글이글 화염을 폭출시키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후후후훗……!]

싸늘한 괴소에 이어 엄청나게 치솟던 화염은 가공할 청백귀화(靑白鬼火)의 회오리를 일으키고,

화스스스------!

그 거대한 바윗덩이는 한 줌의 물로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속에,

스으으으……

뽀얀 검은 빛 수증기를 일으키며 나타난 한 사람……

그 수증기가 너무 짙어서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헤아릴 수 없으되……

아련히 투영되는 먹물 같은 흑의에 흑포……

모든 것이 검은 빛으로 치장된 사람이었다.

거기에다, 무형 중에 사위를 검은 빛 마기로 지배해 가는 저 가공할 기도!

(윽!)

소일초는 어느 새 뻗어나온 무형마기가 자신을 휘감는 것을 느끼며 경악하고 있었다.

(지금 까지 보았던 고수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렇다.

나타난 사람은 혈기자의 네 제자 중 셋째인 사진성이었다.

황혼 속에 화산의 옥녀봉으로 사라져간 소일초와 주소를 지켜보던 수증기 속의 인물……

바로 그였던 것이다.

(어떻게 혈기자의 제자가 마공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혈기자의 무공은 기이하기는 해도 광명정대한 것임을 나도 익히 알고 있건만……)

이때,

너울 너울……

뽀얀 수증기에 가려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무형마기의 사진성,

그의 날카로운 신광(神光)인가?

소일초는 이따금씩 실처럼 가는 안광이 주소아의 면사를 꿰뚫어 보고 있음을 느꼈다.

동시에, 그녀의 몸 구석구석마저 더듬어가는 듯한 눈빛!

(소아를 알아보았구나……)

주소아는 마기가 철철 넘치는 사진성의 눈빛을 받고 몸을 떨고 있었다.

소일초의 놀라움은 가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소아도 알아보고 있다……)

그는 주소아를 자신의 뒤로 숨기며 사진성의 마안을 마주 대항했다.

이 순간,

소일초의 마음에는 짙은 불안이 깔려들었다.

(저 사진성의 무공은 사부께서 전에 말한 바 있는 정통마교의 극마(極魔)의 경지에 이른 것 같다……어쩌면……사부님의 일초검공만이 유일한 수단일지 모르겠다……)

이때 돌연,

뽀얀 수증막 속에서 사진성의 음성이 울려나왔다.

[내게 있어 중요한 것은 네가 아니라 도왕 소선풍이었다.]

[…………]

[그를 완전히 죽임으로 백인장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고……현재의 정세를 뒤바꿀 수 있음은 물론 강남을 우리 수중에 넣을 수 있 없으리라는 계산에서였다.]

[…………!]

[사실……네가 아무리 날뛰어도 무림의 고수들은 애들로 밖에 생각지 않거든……]

[하지만 오늘 당신은 여기서 죽게돼.]

너울 너울……

먹빛 일색의 사진성을 삼키고 있는 수증기가 한 바탕 어지럽게 흔들렸다.

[이틀 후에는 아마 소선풍과 조예진도 여기에 나타나겠지……오늘은 너를! 그리고 그때는 그들을 죽이겠다.]

[당신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어!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사부인 혈기자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수 도 있어…………]

사진성의 몸이 움찔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내,

[내 무공은 이미 그를 넘어섰다. 천하의 어느 누구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하물며 죽을 날을 기다리는 노인 정도야……]

너울 너울……

무형마기의 수증기에 둘러싸인 희뿌연 사진성의 몸이,

안개가 확산되어 오듯 소일초의 몸에 가까와졌다.

이 순간,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인가?

소일초의 뒤에있는 주소아의 가느다란 몸이 부르르 떨었다.

(그래……바로 사숙부(史叔父)였어……나에게 여러 가지 비급들을 주던……이제 기억나……그 마공들……아아……고모부와 싸울 때도 저 마공을……이제 기억나……이제……)

주소아가 기억을 되찾으면서 혼절해버렸다.

황급히 그녀를 안으면서 소일초는 다가오는 사진성의 몸을 향해 검을 뽑아들었다.

(하필……이런 때……)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을 지 자신할 수 없는 상태인데,

주소아까지 짐으로 맡게 되었으니……

하나, 소일초는 피처럼 붉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쨌던……죽여주겠다! 사진성……!)

동시에, 소일초는 가까이 접근한 사진성을 향해 어제밤 그토록 놀라운 신위를 보였던 철검이 뻗어나갔다.

순간,

쉬이잇-----

철검에서 백색 검기가 엄청난 기세로 뻗어나오며 백룡이 하늘로 올라가듯 사진성을 휘감아갔다.

사진성의 눈동자가 잠시 어지럽게 흔들리고,

오오……이런 일이라니?

슈우우우……

번------쩍-------

철검에서 나온 백룡은 살아있는 듯이 사진성을 유린하려 했다.

백색의 용형(龍形)검기가,

사진성의 몸앞에서 폭발하듯 흩어지며 그를 뒤덮는데……

오오……그렇다……

백룡승천(白龍承天)!

이것은 바로 혈기자에게 배운 용형삼도(龍形三刀) 중 제일초인 백룡승천을 검으로 펼쳐낸 것이다.

이 백룡승천의 백색검기는 일단 스치기만 해도 그 무엇이건 한줌의 가루로 바수어 버리고 만다.

스치는 물체가 돌덩이든 쇳덩이든 아무래도 좋다.

스치는 순간 강한 파열음과 함께 바수어 버리는 백룡승천!

그러나,

사진성의 무심한 시선은 힐끗 그것을 바라만 볼 뿐 조금도 피할 생각을 않는다.

[후후훗……백룡승천! 과연 일세를 주름잡을 가공할 도법이지!]

이어,

휘스스스……

사진성을 휘감고 도는 기이한 수증기가 상하좌우 팔십 방위에 싸늘한 빛을 흘려내는 게 아닌가?

순간,

콰콰콰……

콰스스스……

주위 방원 삼십여 장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가 싶더니……

오오……

무수한 백색검기가 용의 비늘처럼 힘을 잃고 흩어져내리는 것이니……

[크크큿……꼬마야……그 백룡승천은 과거엔 힘을 발휘했을지 모르나 현세에 이르러선 무용지물!]

이때,

[음!]

소일초는 허파가 타는 듯한 침음성을 내뱉으며,

재빨리 또다시 검을 휘둘러 하나의 초식을 구사했다.

동시에,

슈-----우-------웃------슈슈슝--------

기이한 음향을 흘려내며 철검이 날카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곧바로,

휘이이이……

찬란한 아침의 여명 속에 그의 형체가 소멸되는가 싶더니……

스읏……스스스……

살을 에일듯한 찬바람이 사진성을 갈갈이 찢어버릴 듯 사방에서 흉폭하게 몰려갔다.

우르릉---------!

은은한 뇌성마저 동반한 엄청난 강기의 폭풍(暴風),

그것은 천지사방을 가득히 메우는가 싶더니 일시에 사진성의 전신요혈(全身要血)을 무섭게 파고들었다.

하나, 사진성은 예의 그 자리에서 다시 그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의 가닥을 소리없이 움직일 뿐이다.

[육풍장인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는데……]

곧 바로,

피시시시싯------!

수증기와 검으로 펼쳐진 육풍장의 폭풍이 부딪침과 함께 매케한 냄새가 사위를 진동하는가 싶더니,

허공에 가득히 난무하던 북풍한빙의 강기는 흔적도 없이 소멸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이어,

주춤주춤 물러나는 소일초!

[음!]

(사진성, 저 놈도 역시 내가 혈기자에게서 배운 무공에 대하여 철저히 알고 있어! 하나……그것으로 말미암아 너는 죽게 될 것이다……)

소일초의 땀으로 흥건한 얼굴에 무서운 광망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차례로 혈기자에게서 배운 무공을 숨쉴 틈을 주지 않고 펼쳐냈다.

이미 극마의 경지에 접어든 일대(一代)의 거마(巨魔) 사진성과,

혈기자에게 배운 무공들을 무서운 검력(劍力)에 실어서 펼치는 소일초와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처음에,

사진성은 담담하고 여유롭기만 했다.

그러나,

초식이 거듭될 수록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환히 아는 초식들 임에도 불구하고 시꺼먼 철검으로 펼쳐지는 그 무공들은 자신을 위협할 만큼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실로 무서운 놈이다. 당년의 도왕 소선풍에 전혀 못지않은 실력이다.)

수증기에 휩싸여 있던 그의 눈에서 차가운 살기가 일었다.

순간,

소일초의 검이 물러나며 그의 왼손에서 새파란 빛이 그물처럼 뻗어나와 순식간에 희뿌연 수증기 속의 사진성의 두 손을 휘감아 버리는 것이니……

[음!]

처음으로 경악에 찬 사진성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때,

소일초의 득의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하하핫……이번의 한 수는 이 소일초가 마누라에게 훔쳐 배운 무슨 환상도라는 수법이다.]

[…………]

[당신은 내 철검을 너무 의식하고 있었어……]

[…………]

[그 방심 때문에 내가 왼손으로 펼친 체대에 당한 거야.]

파란 빛,

그것은 주소아의 체대였다.

그것은 천잠사로 만들어져 있어,

그 어떤 도검(刀劍)으로도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데 바로 이때였다.

희뿌연 수증기 속에서 사진성의 웃음이 섬뜩하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크하하핫……훌륭하다! 꼬마……]

[…………]

[하나 그럴수록 살려둘 수 없는 놈……]

슈우우우……

오오 환상인가?

사진성의 몸이 연기가 빨려들 듯이 소일초를 향해 부딛쳐 오는가 싶더니……

슈---슛------슈------슛------

묶여진 두 손이 사르르 흩어지면서 풀려나왔다.

[헉……또 저 손이……!]

소일초 품에서 막 정신을 차린 주소아가 경악에 찬 외침을 발하고,

[기다렸다! 사진성.]

주소아를 몸 뒤로 보내며 소일초의 철검이 무서운 기세로 뻗어나갔다.

바로 비장의 절초 일초검공이었다.

순간,

사진성의 몸이 까마득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꽈꽈꽝-------

 

장렬한 폭음과 함께 석평이 폭발해버렸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느낄 것도 없었다.

눈 앞에서 번쩍 하는 순간,

일초검공을 펼치던 소일초는 미처 검을 다 뻗기도 전에,

(앗차! 똑 같이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바로 온 힘을 다해서 철검을 던져버렸다.

그리고,

생각보다 앞서서 주소아의 몸을 안고 땅을 박찼다.

 

쿠르르르--------

옥녀봉의 석평은 통채로 부서져 깊이를 알 수 없는 산정호수로 무너져 내렸다.

소일초와 주소아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강렬한 폭발과 함께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화산 봉우리마다 폭음의 여운이 남아서 여기저기 눈사태를 일으켰다.

그리고,

정적!

이제 정적만이 가득 남아도는 옥녀봉의 정상,

한 순간,

너울 너울……

기이한 수증기에 쌓여있던 사진성의 입에서 무감정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무서운 녀석…그토록 뛰어난 ……놈은 처음이었다……어쩌면 도왕 소선풍를 처치한 것보다 저 놈을 처치한 것이 훨씬 행운이었을지도……]

이어,

푸스스스스……

사진성을 둘러싸고 있는 수증기가 더욱 짙어졌다.

[놈은 비장의 절초를 숨기고 나를 유인했었다……선수를 쳐서 어제밤에 미리 설치한 화탄을 터뜨리지 않았더라면 어찌되었을까?]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너울너울……

푸스스스……

[어쨌던, 그놈은 죽었고 나는 살았다.]

바로,

이것이 무림이다.

비열한 수단이니 뭐니 하는 것은 결국 잠시에 불과하다.

그러나,

승리는 영원히 남는다.

너울너울……

사진성의 몸은 하늘 아득히 솟구쳐 오르는가 싶더니……

저 천공에 가득한 햇살에 섞여 흔적도 사라져버렸다.

이제 죽음 같은 정적 만이 가득한 이곳,

휘이이이잉--------!

한 바탕 북풍이 옥녀봉의 정상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리고……

주인을 찾아서 작은 바위들을 안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끽끽 대는 비성성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외침만 옥녀봉을 감돌았다.

 

× × ×

 

충격!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중원의 이대 방파인 백인장과 청옥검궁의 분노한 최고수들,

그리고,

신흥방파인 삼성무림청의 세 주인인 천하제일인의 제자였던 혈기자의 제자 삼수(三手)와의,

하늘이 놀라고 땅이 일어날 대 결투……!

절경을 자랑하던 화산 옥녀봉 정상은 황폐하게 어지럽혀졌다.

서로가 처참한 피해를 당한 상황에서 삼수는 도망쳐버렸고……

중원최강을 자랑하던 이대문파의 최고수들은 대부분이 죽거나 다쳤다.

 

중원을 완전히 돌덩이처럼 무겁게 내려앉았다.

신행마동 소일초의 죽음,

그리고 그 이틀 후의 대 격돌,

무림은 어디로 갈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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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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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鐵劍으로 펼친 劍功

 

 

 

은파하(銀波河),

서안의 교외(郊外)를 감싸고 흐르는 그리 크다고 말할 수 없는 강이다.

이 은파하의 맑은 물 위로……

휘영청 밝은 만월이 은가루처럼 부서져 내리는 밤이었다.

바로 이 아름다운 은파의 강변을 따라……

훤칠한 키에 영준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소일초와 달빛이 무색할 아름다운 자태의 주소아가 거닐고 있었다.

이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돌연,

영롱한 주소아의 음성이 소일초의 귓전에 울려퍼졌다.

[어떻게 아침의 그 거진 우리를 한 눈에 알아봤을까?]

[그 기분나쁜 자식 애기는 꺼내지도 마!]

[그 거지 애기를 하자는게 아니고……]

소일초가 몸을 돌려 주소아를 바로 응시했다.

[너도 참 멍청해 졌구나.]

[……?]

[이 바보야! 네 귀를 잠시 막았다가 열어봐.]

[바로 이것 때문이었구나.]

주소아는 손을 귀로 가져가다가 소리쳤다.

[너나 나나……계속 같이 있다 보니까 네 몸에서 나는 소리에 익숙해져서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거야……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다르겠지, 소리가 갈 수 록 약해지고는 있지만 고수들이라면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어……]

[쳇, 소리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진 변신해도 말짱 헛고생이겠군, 그래도 얼마 전에 기가 막힌 미행자는 따돌렸었는데……]

주소아가 돌멩이를 발로 차면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지?]

[이제 다왔어……]

소일초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 거렸지만 강변의 갈대만 보일 뿐 색다른 것은 눈에 뛰지 않는다.

[설마……여기서 이상한 장난이나 치자고 온 것은 아니겠지?]

그러면서도 불안한 듯이 소일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주소아가 화석처럼 굳었다.

허공,

달빛이 찬란히 쏟아져 내리는 휘황한 허공,

일렁일렁……

무엇일까?

몹시 완만하게 선회하며 네 곳의 방위에서 맴돌고 있는 네 개의 물체,

그것도 피빛 광휘를 사위로 흩뿌리는 소름이 끼치는 등(燈)이 아닌가?

일렁일렁……

이 네 개의 핏빛 등은 언제 나타났는지 두 사람을 중심으로 네 방위를 좁혀오고 있기까지 했다.

지금 이 순간,

[죽음의 살수(殺手)……사등객(死燈客)! 인간의 영혼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사등을 부리는 자야.]

소일초의 음성이 담담하게 흘러나왔다.

사등……

사등객이라니?

그렇다면 핏빛 혈등(血燈)을 이끌고 다닌다는 팔십 년 전의 대환상 살수인 사등객이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그저 세상을 조롱하는 한 살수로 남고 싶었노라……그리하여 나는 네 개의 등을 이끌고 천하를 뒤지는 살수가 되었노니……울어라……울어라……피야……짖어라……짖어라……내 싸늘한 검날아……

 

그렇다.

바로 이 초유의 살수인 사등객(死燈客),

그가 바로 네 개의 등을 이끌고 소일초와 주소아를 목표로 팔십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 순간,

스스스스……

네 개의 등이 허공에서 찬란한 이동을 하는가 싶더니,

콰아아아……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하나로 합쳐지는 게 아닌가?

아니 합쳐졌다 싶을 순간 이미,

고오오오……

번쩍!

분명히 장엄한 빛이었되 육안으로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속도로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꽂혀갔다.

이 엄청난 빛!

그것이 하나의 검광이라는 것을 느꼈을 때는 이미,

검은 두 사람을 목표로 하여 일 장 앞을 꿰뚫고 있는 중이었으니……

이제,

주소아와 소일초의 몸은 그대로 두 동강이 나고 말 판국이었다.

한데,

이때 돌연,

주소아의 교갈이 터져나왔다.

[천풍환상도!]

순간,

그녀의 손에서 파란 빛줄기가 어지럽게 뻗쳐나갔다.

치익-----칙------!

두사람을 향해서 무서운 기세로 날아오던 검은 둥실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고,

주소아의 손에 있던 파란 빛줄기가 변화를 계속했다.

다시,

[작열광풍(灼熱狂風)……!]

그녀의 짤막한 음성이 터졌다 싶을 순간,

쏴아아아……

그녀의 손에서 변화를 계속하던 파란 빛줄기가 허공으로 그물처럼 뻗어나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핏빛 혈등에 싸인 검광을 휘몰아쳤다.

[크흑……!]

핏빛 혈등 속에 목젖이 타는 신음이 터지는가 싶더니……

그 엄청난 사등의 광휘가 급작스럽게 흩어졌다.

그리고 그 속에,

파팍-----

섬연한 피보라와 함께 박살난 검이 허공에 흩어지고……

동시에,

파아아……

핏빛 기류가 완전히 흩어지고 피의 비와 분해된 살점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급기야,

팍!

사등 마저 가루가 되어 흩어져 버리고,

희대의 대살수는 이렇게 주소아의 기괴한 초식에 의해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때,

[이름을 불패도라기 보다는 필살도(必殺刀)라고 해야겠는데……그처럼 잔인한 무공은 처음이야.]

[내가 마음대로 만든 것 중의 하나일 뿐이야……]

주소아의 낮은 음성이 사위를 때리고,

[볼 일 끝났으면 가서 잠이나 자자……한데 너 아는 것도 많다. 어떻게 너같이 어린애가 사등객 같은 살수를 다 알지?]

[신행마동이 그 정도도 몰라서야……알고 있다는 걸 남들이 알아버리면 귀찮은 일이 상당이 많이 생겨서 아예 모른 척 할 뿐이지……]

스스스……

두 사람은 갈대를 헤지고 객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성가신 미행자를 처치해 버린 개운함을 가지고……

 

× × ×

 

화산,

그 화산에 퍼부어지는 황혼은 아름다웠다.

그 황혼빛 속에서……

화산과 인접해 있는 넓다란 평야에 두 사람이 나타났다.

주소아와 소일초,

바로 이들이었다.

[나도 같이 싸울까?]

[그럴 필요없어. 넌 그 삼수나 눈여겨 봐. 그래야 빨리 기억을 되찾지……]

[이제 그딴 것은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럼? 내 몸이 깊이 알고 싶어?]

[또 엉뚱한 소리……남은 심각한데……]

[오늘은 아무래도 산에서 자게 될것 같은데……흠흠……]

소일초는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흥, 아무리 졸라대도 오늘은 안돼……오늘 부터 칠 일간은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어……]

[왜?]

[여자가 이렇게 말하며 안된다고 하면 그대로 들어주는 법이야.]

[법 네맘대로 잘도 만드네. 내겐 내가 법이야.]

[꼭 이유를 말해야 알아 듣는다면 넌 아직도 남자자격이 없다는 말 밖에 안돼.]

짝-----!

소일초가 손뼉을 쳤다.

[월경(月經)이구나……]

[바보같이……더크게 소리치지 그래……]

주소아가 화를 내면서 톡 쏘아부쳤다.

[그런데 너 앞으로 큰 일이다.]

[왜?]

소일초가 염려스러운 듯이 하는 말에 주소아도 불안한 듯 물었다.

[우리 작은 어머니가 그러시던데……]

[…………]

[여자는 아기를 낳기 전에 무공이 너무 고강해져 버리면 아기를 낳을 수 없데……무가(武家)에 자식이 귀한 이유가 다 그 때문이래……]

[…………!]

[우리 작은 어머니를 봐! 얼마나 예쁘고 무공도 고강해? 그런데도 아기를 못 낳잖아……]

[…………!]

[너도 무공이 나이답지 않게 고강하니까 어쩌면 앞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다분해……]

[그럼……어떻게 해야 되지?]

주소아가 심각하게 물었다.

아기가 얼마나 귀여운데……그 아기를 낳을 수 없다면 무척 슬플 것 같았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

[……?]

[하나는 더 이상 무공을 연마하지 않고 있다가 후에 아기를 낳은 다음에 다시 연마하는 거야……]

[그건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한 가지는 좀 쉬운 방법이긴 하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울 거야.]

[뭔데? 난 다 할 수 있어.]

[음……그건……]

[빨리 말해. 속 태우지 말고……]

[무공이 더 강해지기 전에 아기를 낳아버리는 거야.]

[너……또 나를 놀렸구나……]

주소아가 손을 들어 소일초를 때리려 했다.

[아니야, 모두 사실이라구……의심나면 우리 작은 어머니한테 물어보면 될 거 아냐?]

소일초는 짐짓 진지한 척 말을 했고,

주소아는 진짜이면 어떡하나 싶어 불안해 졌다.

[네 무공은 날마다 달라지니까 내일이면 늦을 지도 몰라……]

오늘 당장 뭐 달라는 식의 소일초의 말에도 주소아는 여전히 불안해하면서 반박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돌연,

겨울 들판에 가득한 갈대꽃 속에서……

순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보……]

동시에,

스슷……

갈대꽃 속에서 솟아난 소녀(少女),

뼈가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피부를 지녔으며……

눈보다 흰 백의를 걸친……

마치 순수와 아름다움의 요정을 연상케 하는 소녀,

그렇다.

장강의 강변에서 시체 위를 누비고 다녔던 사옥상,

바로 그녀였다.

찰랑찰랑……

그 아름다운 사옥상의 몽롱한 동공에 눈물이 가득했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리고 안타까움이 배인 음성,

[바보……가면 안돼……]

순간,

얼굴……

기이할 정도로 순수하고 깨끗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사옥상의 얼굴에 동그란 눈물이 보석처럼 부서져 내렸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그녀를 발견하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었다.

[바보……]

[…………]

[네가 아무리 모습을 바꿔도 나를 속이지는 못해……]

[…………]

[내가 주었던 의정패는 언니가 가지고 있던 의정패와 서로 교감을 가지는 것이야. 아무리 네 모습이 바뀌어도 의정패를 버리지 않는 한 소용없어.]

소일초가 나직한 침음성을 터뜨렸다.

[음!]

하나 이내,

[오랬만이다. 사옥상……네 말이 맞아 나는 바보야!]

[바보, 가지마. 가서는 안된단 말이야.]

[사옥상 너는 지금 적으로서 내 앞에 서 있는 거야…아니면 친구로서 서있는 거야? 설마 전에 푸른 계곡에서 했던 우리 경고를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그런 어려운 말은 몰라. 내가 아는 건 저 옥녀봉을 올라가면 안된다는 거야.]

소일초의 음성이 싸늘하게 변했다.

[약속……이것은 내 이름으로 한 약속이다. 그리고, 나는 어느 누구도 내 일에 간섭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설사 내 결정이 잘못되어 죽는다고 하더라도……]

[…………]

[남의 결정에 따라서 사는 것 보다는 낫다.]

하자,

더욱 안타까움으로 일그러지는 사옥상의 얼굴-----

[바보……가지 말아, 제발……지금 언니 은상도 병이 들었어……마음의 병이야……네게 인질로 잡혔다가 돌아온 후부터……]

[…………]

[한데……그 언니가 더욱 더 심한 병을 앓고 있어 ……그런 언니가 나를 붙들고 울었어……그리고 말했어……]

[…………]

[너를 살려야 한대……너를 화산의 옥녀봉에 오르는 것을 막아야 한대……]

[옥상언니……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어요. 얘는 결코 듣지 않아요. 대신 내가 감사할게요.]

문득,

사옥상의 얼굴에 조급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엇엔가 쫓기고 있는 것처럼……

이어,

쉴새없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입을 여는 사옥상,

[어서 도망가……우리 사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

[…………]

[설사 하늘의 신이라도 우리 사부를 이길 수는 없을 거야……]

이때였다.

돌연,

무엇을 느낀 것인가?

사옥상의 얼굴이 무서운 두려움에 떨었다.

동시에,

화르륵……!

허공으로 솟구쳐 섬광처럼 사라지는 사옥상,

[어서 가……어서 도망가란 말이야……바보야……그렇지 않으면 넌 죽는단 말이야……]

소일초는 멀어지는 그녀의 음성에서 눈물을 읽을 수 있었다.

[흥, 옛날의 첫 여자를 만나서 기분이 좋겠네.]

주소아가 분위기를 바꾸려는 것 같았다.

이때,

이번엔 아득한 곳에서 천리전음(千里傳音)이 소일초의 귀에 흘러들었다.

[죽어……이 바보야……지금 네가 있는 곳도 완전히 포위되었단 말이야!]

[…………]

[본 삼성무림청의 살수각(殺手閣)의 삼십 육 명의 살수(殺手)들이 내리는 죽음은 중원천하가 함께 덤빈다 해도 피해낼 수 없단 말이야……피해…… 어서 피하란 말이야!]

(살수각의 삼십 육명의 살수!)

[계집애가 쓸데없는 걱정까지 다해주네……제길……전에는 몸도 편하게 해주더니……]

소일초의 얼굴은 그다지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살수 따위 때문이 아니었다.

바보같이 구는 사옥상 때문에 느껴진 이상한 기분 탓이었다.

이제 더이상 사옥상의 애절한 전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소아는 그의 안색 만 살피고 있었다.

황혼,

황혼만이 무성한 갈대숲에 어지럽게 쏟아져 내리고 있을 뿐……

한데 돌연,

흑의인,

흑두건에 강철처럼 차갑고 냉혹한 기운 속에 음충맞도록 꿈틀거리는 가공할 사기를 동반한 여섯 명의 흑의인들이 맞은편의 갈대숲에서 소리없이 솟아났다.

여섯 명의 소름끼치는 살기를 동반한 흑의인,

이들은 분명 사옥상이 말한 살수각의 삼십 육 살수들 중 일부이리라!

일순,

[크크……]

흑두건 속에 휩싸인 공포스런 시선이 소일초와 주소아를 꿰뚫었다 싶을 순간 그들의 몸은 이미 허공을 날았다.

번쩍------------!

콰아아……

여섯 줄기 벼락불 같은 검광이 수 천 가닥의 검망을 치며 공간과 공간을 잇는 최단거리로 덮쳐들자,

소일초의 얼굴에 맹렬한 전의가 용솟음쳐 올랐다.

이어,

옷자락을 헤치고 철검을 잡았다.

동시에,

[호흡을 죽여!]

주소아에게 낮은 목소리로 외치면서 철검을 떨쳤다.

슛!

소일초의 철검에서는 한 가닥의 기류가 형성되어 덮쳐오는 여섯 명의 살수들을 휘감았고,

크아악-----!

참혹한 비명과 함께 기류에 휘말렸던 여섯 살수들이 칠공에서 피를 쏟으며 떨어져 내렸다.

이때 다시,

슈우숫------!

갈대숲의 여섯 방향에서 시퍼런 검날을 폭출시키며 여섯 명의 흑의인이 뛰어올랐고,

이 여섯 명의 흑의인은 최초의 흑의인들이 쓰러지는 틈을 타서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덮쳐들었다.

일검에 천지를 박살낼 듯한 가공할 검광!

순간,

슈웃------!

주소아가 미처 그녀의 체대를 발출하기도 전에,

소일초의 빠른 철검이 회오리를 일으켰다.

찰나,

오오……

슈우웃------!

철검의 끝에서 여섯 줄기의 회오리가 흑의인들을 향해 각기 하나씩 몰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 크기가 철검의 끝을 떠나는 순간부터 무서운 속도로 자라면서……

다음 순간,

[으----악!]

[크-------아악!]

황혼빛 속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리고 정확히 여섯 개의 시체가 회오리를 타고 허공에 솟구쳐 올랐다.

소일초는 주소아의 손을 잡고 미끌어뜨리듯 신형을 옆으로 이동시켰다.

스스스스……

순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서 있던 곳을 비롯하여 열두 곳에서 열두 명의 흑의인이 벼락처럼 솟구쳐 올랐다.

번----쩍------번---------쩍-------!

천지폭멸의 가공할 검세가 십자로 비켜 소일초와 주소아를 천참만륙할 찰나,

슈아아앙--------!

소일초의 철검이 다시 빠르게 그들을 찔러나갔고,

시꺼먼 철검의 끝에서 하얀 실같은 검기가 가늘게 뻗어나오며 파도처럼 밀려갔다.

콰아아앙-------!

퓨퓨퓨------퓨----!

우주를 통째로 꿰뚫는 것 같은 엄청난 열두 개의 가공할 섬륜이 일었다 싶을 순간,

[크아아악!]

[크------악!]

흑의인들의 검은 산산히 박살난 채 그 주인들의 몸과 함께 처참히 허공에 비산(飛散)되어야 했다.

오오……

직접 보지 않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일초의 철검의 위력!

순간,

푸----퓨슈슈슈----슛-----

주변에 있는갈대들이 허공을 가득 메우면서 창살처럼 소일초와 주소아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웅웅웅------

이번엔 땅 위를 완전히 점거하면서 무서운 바람소리와 함께 철추들이 그들의 몸을 짓이갤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과 땅……

가히 완벽한 공격,

그러나, 소일초의 철검은 다시 허공을 가리켰고 철검의 끝에서 형성된 기류 속으로 갈대들이 빠르게 빨려들어 갔고,

이내 철검이 휘둘러지자 사방으로 비산되었다.

쇄애액!

츠츠------촤……!

크아악------

크악--------

비명이 팔방에서 터져 나오는데……

오오……이 처참함……

여덟 명의 겸(鎌)과 철추를 쥔 흑의인들이 전신에 갈대를 꽂은 채 참혹하게 으깨져 있지 않은가?

[네 명!]

소일초가 소리를 지르며 이 번에는 먼저 공격해 들어갔다.

슈욱-----!

소일초의 몸이 주소아를 안은 채 허공으로 떠오르고 동시에 그의 철검이 네 개의 원을 그렸다.

순간,

캐액------

큭--------

허공에서 네 마디의 비명이 터져 나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그곳에서 네 개의 검은 시체가 떨어졌다.

그들의 가슴은 일제히 동그랗게 뚫려져 내장을 쏟아내고 있었다.

쿵! 꽈당!

정확히 서른 여섯 명의 목이 떨어져 나간 이 황혼의 갈대숲!

천천히 주소아를 안은 소일초가 기괴한 정적처럼 내려섰다.

한 순간,

[이젠 끝났어……굉장한 검공이야……그 무시무시한 자들을 단 네 초식으로 몰살시켜 버리다니……]

주소아의 놀람이 가시지 않은 음성이 들렸다.

[늦었어……오늘은 화산에서 자기로 했잖아……]

슈우우-------

자욱한 안개에 파뭍치며 소일초와 주소아의 신형이 아득한 화산의 옥녀봉으로 멀어졌다.

바로 이때,

너울너울……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돌연,

기괴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한데 오오……

그 기괴한 운무가 뽀얀 수증기가 되는 가 싶자,

주이는 온통 마의 기운으로 표백되어 버리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음성,

[살려둬서는 안될 놈이야!]

한 올의 감정도……한 올의 인간적인 냄새도 느낄 수 없는 무색인간의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스으으으……

그 뽀얀 수증기 속에 환상처럼 나타나는 한 사람……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너무 짙어서인가?

그의 용모를 자세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흑포(黑袍)에 흑의(黑衣)가 환상처럼 어른거리는 사이로,

섬뜩하리만큼 가공할 무심일색의 기운과 삼라만상을 순식간에 표백시켜 버리는 무형마기가 물살처럼 터지는 것이니……

문득,

그 수증기 속의 무감정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소선풍의 자식이 저토록 뛰어나다니……저런 아이가 이 땅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기재는 우리가 길렀던 주소아 뿐인 줄 알았는데……]

아아……

이 무슨 소린가?

주소아를 직접 길렀다니……

그렇다면 이 마기가 풀풀 흘러넘치는 인물이 바로 삼수 중의 하나란 말인가?

어째거나,

그 짙은 수증기 속에 쌓인 인영은 사위를 무형마기로 표백시키며,

오랫동안……

참으로 오랫 동안 소일초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했다.

그렇게 일다경이 흘렀을까?

돌연, 무심한 음성이 흘렀다.

[모두 가서 준비하라……!]

순간,

오오……

스스스스……

아무것도 헤아릴 수 없었던 허공에서 돌연 수백 가닥의 검은 기운들이 밀물처럼 삼백 육십 방위로 흩어져 나가는 게 아닌가?

형체도 없는 그림자들로 존재했다가……

환상의 너울처럼 사라져 버린 수백의 무리들……

실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때,

수수수수수……

그 마기에 뒤덮인 인영이 허공에 치솟는가 싶더니……

슈--------슈웃----

화산의 옥녀봉을 향해 빛처럼 날았다.

그리고,

그가 나는 뒤로 뿌려지는 죽어버린 음성,

[반드시…… 죽여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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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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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百刃莊의 哭聲

 

 

 

손(手),

떨리는 손이다.

더할 나위없이 희고 아름다왔으며……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 이 손에는 짤막한 서찰(書札)이 들려있는데……

이 손의 임자는 조예진였다.

굵은 황촉불이 사방을 밝히는 이곳은,

백인장 중에도 좀더 정확히 말하면 도왕 소선풍의 침실이다.

그녀의 앞에는,

영문을 모르고 그녀의 얼굴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도왕 소선풍이 침상에 누워있다.

한 순간,

서찰을 바라보던 조예진의 동공에,

애써 참으려하던 고통스러운 눈물이 솟아났다.

그리고 뚝뚝……

두 방울의 눈물이 서찰에 떨어졌다.

[여보……무슨 일이오?]

아내의 눈물을 보고 불길함을 느낀 소선풍이 고개만을 움직이며 그녀에게 물었다.

서찰,

서찰을 보낸 사람은 주소아였다.

그리고,

그 서찰의 내용은 바로 소일초가 삼성무림청의 수뇌부인 삼수에게 도전장을 냈다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눈……

조예진의 그 아름다운 두 눈은 솟은 눈물을 감추려하지 않는다.

[소아가 보낸 것이에요.]

그리고,

그 눈물로 가득한 시선으로 서찰을 소선풍에게 읽어 주었다.

 

<고모부!

이제는 말씀도 잘 하신다고요? 고모도 잘 계시겠지요?

일초와 나도 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일초가 삼수에게 직접 도전을 했답니다.

일초는 자신있으니까 아무 염려 마시라고 하는 군요.

제가 말렸지만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 말로는 검마의 제자는 일초무적이라나요?

빨리 나으셔요.

주소아 올림 >

 

조예진의 두 눈에 동글동글 솟아 오는 눈물은 닦을 틈도 없이 두 볼을 타고 흐르고……

소선풍은 아무말 없이 묵묵히 있다.

조예진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터뜨리는 오열은 더욱 짙어지고,

손가락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의 시선이 바닥에 떨어진 서찰의 위를 힘겹게 움직인다.

그리고,

깊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조예진을 부른다.

[여보……삼수의 무공이 가공할 것이기는 하지만 일초역시 그다지 뒤질 것은 없지 않소? 일초가 검마의 진전을 완전히 이었다면 승산도 점칠 수 있고……]

[흑흑……우리 일초는 아직 어린 말썽꾸러기 라구요.흑…… 어떻게 진짜로 사형들 같은 고수들과 싸울수 있겠어요?흑흑……]

흐느끼면서 조예진이 말했다.

[어쨌든, 백인장을 나가 삼성무림청을 상대한 다고 할 때부터 예정되어진 일이 아니겠소?]

[누가……흑…… 직접 그들과 싸우랬나요? 단지……삼성무림청이 정말 사형들이 만든 것인가만 ……흑흑……확인해 주길 바랐죠……]

조예진의 말이 모순됨을 그녀도 알고 있다.

소일초가 무림에서 승승장구할 때는 아무 걱정도 없다가 갑자기 진짜 고수인 그녀의 사형들과 결투하기로 했다니까 걱정이 되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그녀였다.

그녀의 가슴은 부풀어 터질 것처럼 안타까운 연민에 가슴이 아렸다.

이 백인장에 오직 소선풍만 바라보고 들어와서……

그의 전처였던 이주용이 낳은 두 살 박이 괴물같은 아기……

온갖 저질을 다 해대는 그 천하의 말썽꾸러기 때문에 얼마나 속상했던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그녀였기에 온갖 정성을 다해서 길렀는데……

이제는 자기가 낳은 아기나 조금도 다름없는 일초인데,

그 아들이 수 천리 타향에서 아버지의 복수를 직접 계획하고 있다.

그의 적이 얼마나 고강한 고수인지도 모르면서 겁없이 직접 겨루려 하고 있는 것이다.

 

사위가 모두 잠든 것 같은 깊은 밤,

소선풍은 시선을 천정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도대체

조예진은 지금까지 주소아의 서찰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서른 번……

적어도 서른 번은 읽었으리라.

그리고 그녀가 터뜨린 눈물과 오열은 또 얼마나 했던가?

그러나 지금도……

그녀는 또다시 서찰을 읽기 시작했고,

새롭게 솟구치는 눈물로 오열한다.

(안돼……일초는 내 아들이야……! 비록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났지만 분명히 내 아들이야. 일초도 자기 생모보다는 나를 훨씬 더 좋아 할 거야. 내가 결코 이대로 있을 수 없어……)

돌연,

서찰을 읽다 말고 조예진은 전신을 부르르 떨면서 와락 서찰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마치 그 서찰이 소일초이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침상에 누워있는 남편 소선풍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

절규처럼 터지는 처절한 음성,

[제가 가겠어요……차라리 제가 사형들과 싸우겠어요……]

하나,

[당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당신 사형들의 상대가 될 수 없어……삼년 전에 그들은 두 사람이 합공을 해서야 나를 이길 수 있었지……당시에 어린도만 손에 있었어도 내가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럼 저 보고 어쩌란 말이에요? 이대로 일초가 위험에 빠지는 것을 보고만 있으란 말이에요?]

그녀는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태도로 소선풍에게 반박했다.

[원로십팔도객을 모두 동원해. 정뇌(井牢) 따위는 팽개쳐 버리라구. 당신 사형들의 무공은 그때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었어. 지금은 얼마나 강해졌을 지 짐작할 수 도 없어.]

소선풍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고마와요. 그리고 미안해요……당신한테 화를 내서……]

조예진이 소선풍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내 아들인걸……오히려 내가 고맙지……두 달, 두 달 만 더있어도 내가 일어날 수 있을 텐데……]

그의 목소리에는 진한 안타까움이 배어있었다.

(원로십팔도객 중 아무도 살아서 돌아오지는 못하겠지……)

 

× × ×

 

이튿날 아침,

백인장은 발칵 뒤집혀 버렸다.

날이 채 밝지도 않았는데 미친 듯이 소리쳐 소선풍을 부르면서 백영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소선풍! 소선풍……이 미친 작자……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놈아……]

어슴푸레한 가운 백영이 소리치며 백인장을 날아들자,

파수보던 젊은 도객이 깜짝 놀라며 가로막았으나 일검에 튕겨 나가 떨어지고…

잇따라 연무장에서 새벽 연무를 하던 도객들이 고함치면서 백영을 막았으나,

이 검을 받아내지 못하고 쓰러졌다.

[적이다!]

[적이다!]

휘이익------휘이익-------

길고 날카로운 휘파람 경보와 아우성으로 백인장은 떠들썩해졌다.

[소선풍! 이 나쁜 놈……어디 있느냐……당장 기나와라……]

마구 욕을 해대며 검을 떨쳐내는 그 백영은 얼마나 빠른지 모습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그때,

[모두 손을 멈춰라!]

우렁찬 고함이 울려퍼지며 두 노인이 연무장에 내려섰다.

[좌우봉공이 주모(主母)님을 뵙습니다.]

[흥, 수혼도객, 무심군자! 나를 알아보기는 하는 구나. 잔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소선풍을 나오라해라.]

백영이 멈추어 서자 그때서야 다른 도객들도 백영을 알아보았다.

바로,

소선풍의 전처인 이주용(李珠蓉)이었던 것이다.

[주모를 뵙습니다.]

일제히 우렁찬 소리로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시끄럽다. 당장 소선풍, 그 파름치한 놈이나 나오라고 해라.]

[주군께서는 나오실 수 없습니다. 자중하십시오 주모……]

수혼도객은 음성이 침중하게 흘렀다.

[뭐라고? 자식은 죽도록 밖에 내보내 놓고 아직도 여우같은 계집이나 끼고 누웠단 말이냐?]

이주용이 서릿발처럼 얼굴을 굳히며 거친 음성을 칼날처럼 내뱉었다.

[주모!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수혼도객이 고개를 바로 들면서 소선풍을 욕하는 이주용을 쳐다보았다.

[수혼도객! 네가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간덩이가 부었구나. 에잇!]

이주용의 검이 수혼도객의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다.

[윽!]

그러나 수혼도객은 눈을 감고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으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무심군자와 다른 도객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이주용이 검을 뽑자 수혼도객의 오른쪽 가슴에서 피가 샘솟듯이 쏟아지며 그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좋다. 소선풍이 나오지 않겠다면 내가 직접 들어가겠다. 비켜라……]

[못들어가십니다. 주모.]

무심군자가 다시 그녀의 앞을 막았고,

다른 도객들도 일제히 도를 뽑아들고 그녀를 포위했다.

그들의 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어려있었다.

[이것들이 죽고싶어서 환장했구나. 좋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

[…………]

[네 놈들을 몽땅 죽이면 설마 소선풍이 기나오지 않고는 못배기겠지……]

[…………]

[오늘 무슨 수가 있어도 소선풍과 사생결단을 내야겠다.]

이주용,

그녀는 강북의 제일 세력인 청옥검궁의 공주(公主)다.

그녀의 검 역시 적수를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다.

 

이야압------!

 

날카로운 기합을 지르면서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심군자를 찔러갔다.

무심군자의 소매속에서 파란 도가 튀어나오며 그녀의 검을 가로막는 순간,

이주용은 벌써 몸을 돌려 그 옆의 젊은 도객을 찌르고 있었다.

으악------!

젊은 도객이 그녀의 빠른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깨에 검을 맞으며 쓰러졌다.

무심군자가 재빨리 이주용을 공격해 갔으나 그녀는 그와 마주치지 않고 다른 도객을 공격하면서 양떼속의 이리처럼 날뛰었다.

여기저기서 젊은 도객들의 비명이 터져나오고……

무심군자는 초조해서 어쩔 줄 모른 채 이주용을 쫓아다녔다.

이주용은 백인장의 도법들의 대부분 초식들에 대해서 훤히 알고 있다.

그야말로 백인장 도객들의 천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자신들의 주모인지라 마음대로 공격도 펴지 못하는 백인장의 도객들은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때,

[멈춰라!]

나지막 하면서도 깊은 공력이 깃든 목소리가 연무장을 가득 메아리쳤다.

조예진이었다.

[언니께서 오신 줄은 몰랐습니다. 들어오시지요.]

말을 하면서 연무장에 쓰러져 나뒹구는 도객들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흥, 소선풍. 그 매정한 놈은 어디있는가?]

[꼭……만나보시겠습니까?]

조예진이 손짓을 하여 도객들을 물러가게 하면서 주저하듯이 말했다.

[나는 오늘 그 작자와 사생결단을 내려왔다.]

조예진은 그녀를 판히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정 그렇다면 따라오십시오.]

이주용은 검을 공중으로 휙 집어던졌다.

그리고 조예진을 따라 걸음을 옮겼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결연한 빛이 어려 있었다.

철컥-----!

검은 아슬아슬하게 검집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고……

연무장은 부상자들을 메고 가는 도객들로 부산해졌다.

 

× × ×

 

소선풍의 침실 앞에서,

[여보! 이(李)언니께서 오셨어요.]

조예진이 안으로 전갈했다.

[비키게. 바로 들어가겠네……]

차갑게 말하며 이주용이 문을 밀쳤다.

창-------!

그녀의 청강검은 어느새 손에 쥐어졌고,

[소선풍! 나와 사생결단을 내자.]

흉악하게 소리치며 침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찾은 소선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흥, 상당히 게을러 졌군. 아직도 일어나지 않다니……]

쏴악-----!

침상의 휘장이 그녀의 일검에 베어져 나갔다.

이주용의 청강검이 누워있는 소선풍의 목을 겨누었다.

[소선풍! 일어나라. 나 따위는 누워서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이냐?]

[부인, 오랬만이요.]

소선풍의 목소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부드럽게 울려나왔다.

[닥쳐라! 누가 네 부인이란 말이냐?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그대로 찌르겠다.]

서릿발 처럼 차가운 눈빛을 쏘아내며 이주용이 소리쳤다.

[나는……나는…… 나흘 밤낯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네놈을 죽이겠다는 심정하나로……어떻게……어떻게! 하나뿐인 어린 자식을 사지로 내몰고 편안히 누워있을 수 있단 말이냐?]

그녀의 눈에서는 주루루 눈물이 쉬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다 용서할 수 있다. 네가 열 처(妻)를 거느리든 백 첩(妾)을 거느리든 상관하지 않겠다.……그러나, 어떻게 하나 뿐인 아들을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이냐?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누가 삼성무림청의 수뇌가 수 만명을 쳐죽였던 사수(四手)라는 걸 모를 줄아느냐? 이놈아……]

그녀의 마지막 말은 차라리 절규였다.

소선풍은 입을 굳게 다물고 천정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강인한 그의 두 눈에도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할 말을 다했는데……네놈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대로 죽여주마.]

이주용은 실성한 듯이 낮게 중얼거리며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때,

[언니! 그분은 삼 년 전부터 일어날 수 없었어요.]

조예진 역시 쌍장을 치켜올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빠르게 말했다.

순간,

[뭐? 뭐라고?]

[그분은 침상에서 일어날 수 없는 몸이라구요.]

그녀는 참을 수 없는 듯 울먹이는 목소리는 겨우 말했다.

소선풍의 두 눈에도 마침내 구슬같은 눈물이 뚜르르 굴러내리고……

이주용은 넋을 잃고 바닥에 검을 떨어뜨렸다.

[천하에……누가……누가……이 사람을……이길 수……있단 말인가? 그토록 강한 사람을?]

목소리가 덜덜떨려 나왔다.

이주용의 눈이 누워있는 소선풍을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정말……어떻게 그럴 수가?]

누구도 대답이 없다.

[아니라고……아니라고 말해요. 벌떡 일어나 보란 말이에요. 벌떡 일어나서 옛날처럼 못된 계집이라고 뺨이라도 쳐보란 말이에요!]

그녀는 소선풍의 목을 끌어안고 소리쳤다.

한순간,

어린 마음에 다른 여자를 맞이하겠다는데 화가나서 집을 나간 그녀였지만,

어찌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지 않았겠는가?

야속하고 무정하여 원망한 날이 더 많았던 지난 세월이지만,

한 시도 잊을 수 없었던 남편이고 아들이었다.

너무도 강하여 절대로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남편이 전신불구가 되어 병상이나 지키고 있을 줄 어찌 알았으랴?

지금,

소선풍의 침실 안팎에는 때아닌 울음소리는 가득찼다.

소선풍을 염려하여 원로십팔도객들과 백인장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백인도객이 일제히 연락을 받는 즉시 몰려와 있었던 것이다.

주군의 비참한 신세가, 울부짖는 주모들……

울지 않을 수 없는 정경이었던 것이다.

그들 중에는 아예 목을 놓아 큰 소리로 엉엉 우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백인장의 모든 식구들이 이 소리를 듣고 소선풍이 사망하기라도 한 줄 알고 일제히 땅을 치고 통곡하여 백인장은,

울부짖는 곡성으로 아무 말도 주고 받을 수 없을 지경이 되어버렸다.

떠났던 큰 주모가 왔다는 소식이 들리자 마자 곡성이 터졌으니 틀림없이 소선풍이 죽었다고 단정지은 것인데……

한 두 사람, 앞에 왔던 사람들로 부터 사실을 전해 듣고 다른 사람에게 입에서 입으로 사실이 모두 전해지자,

천지를 진동시킬 것 같던 곡성은 스르르 잦아지고……

괜한 호들갑을 떨었다 싶어 숙스러워 하면서 슬금슬금 자기들 처소로 돌아가고 말았다.

 

[동생! 동생이 말해보게. 대체 누가 이사람을 이렇게 만들 수 있었단 말인가?]

눈물을 씻어내며 이주용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훌쩍! 다 저 때문이랍니다. 제가 박복해서…… 훌쩍…… 그분을 다치게 한 것입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그때,

[누구 탓도 아니야. 내 몸을 부수어 놓은 것은 바로 자네가 말한 삼수고…… 다 내 무공이 모자란 때문이지……]

속이 후련하다는 듯이 소선풍의 말이 흘러나왔다.

 

× × ×

 

백인장에서 피가 튀고 눈물이 쏟아지고 급기야 응어리졌던 한(恨)이 풀리고 있는 이 아침,

그 커다란 말썽의 원인이었던 소일초와 주소아는 서안(西安)에서 객점을 찾고 있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사람보다 멋진 용모와 훤칠한 키의 무적검으로 변신한 소일초,

그리고, 소일초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얼굴에 면사를 쓰게 됐으나,

그 몸 맵시만으로도 천하 사내들의 넋을 빼버릴 것같은 미녀인 주소아,

지난밤에도 몇 번이고 다듬고 다듬어 창출한 그녀의 최고 걸작이 지금의 몸매였다.

 

<풍운루(風雲樓)>

 

서안의 대로변에 자리한 거대한 객점(客店),

바로 이 객점의 문을 밀치고 막 그들이 들어서는 순간,

시선!

수십 쌍의 시선이 일제히 소일초의 얼굴에 꽂혔다.

[오……!]

[아름다운 젊은이……]

[천상(天上)의 선인(仙人)같지 않은가?]

객점에서 술이나 음식을 들고 있던 객손들은 아예 두 눈이 부신 듯 치켜뜬 눈을 도대체 거둘 줄 몰랐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이 다시 경악으로 부풀고 또 다른 탄성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아……!]

[저 여인의 자태……]

[넋……넋이 빨려드는군……!]

[오오……저런……!]

한데 이때였다.

돌연,

비틀비틀……

경악으로 굳은 객손들의 사이를 뚫고 갈지자걸음을 바람처럼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아니, 움직였다 싶을 순간 주소아의 곁에 이르러 있더니……

[이리와……빌어먹을……아무리 둔갑해도 너희들인 줄 알고 있다고……이 무슨 꼴인가……제기랄……]

확!

술기운을 풍겨내며 소일초와 주소아를 이끌고 가는 사람,

홍건개……

개방 일천 년 사상 가장 뛰어난 기재(奇才)인 바로 그였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변신한 자기들의 모습을 아무도 알아보리라 생각지 못했다.

한데,

홍건개가 대뜸 알아차리자 내심 크게 놀랐다.

벌컥벌컥……

이어,

비틀비틀……

객석을 누비던 홍건개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하나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턱!

[자……한 잔 받아……]

순간,

[엇……저런……!]

[저 거지는 누구야……!]

객석의 손님들은 이 광경이 흥미진진한 듯 숨소리마저 죽이며 이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데?

이것은 또 무슨 기변인가?

무어라 화를 낼 줄 알았던 저 젊은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는 아무 말 않고 주는 술을 받아서 단숨에 마셔 버리는 것이 아닌가?

(별일……)

(별……희안한 일도 다 있군……!)

[그 잔은 본 홍건개가 타인(他人)에게 주는 최초의 술……제기랄……운도 좋군……!]

홍건개,

이 개방 천 년의 기재는 오늘 무슨 일로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내고 술을 권하는가?

[…………!]

[술이란 말이야……마시면 마실수록 느는 거라구……그러니 앞으로 영웅행세를 하자면 남 부끄럽지 않게 술 실력을 키워야 한다구……]

[…………!]

[어이 친구………빌어먹을 무슨 표정이 그래……아름다운 부인을 얻었으면 기뻐해야 할 게 아냐……우라질……]

소일초의 표정은 더욱 어이없게 변했다.

술잔을 손에 쥐자 주소아가 한 잔 가득 부어주었다.

[아무튼 좋아, 이 홍건개가 염려해서 하는 말인데……화산 옥녀봉의 약속은 취소해 버려……]

[…………]

[어린 네가……빌어먹을 ……그를 상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일……]

이때,

어이없는 표정이로 술을 들이키던 소일초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천천히 피어올랐다.

이어, 술잔 가득히 술을 부어 주소아에게 건네주며,

[너는 남의 일에 무조건 간섭하는 악취미가 있군……]

순간, 홍건개의 두 눈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벌컥벌컥……

[끄윽……빌어먹을……저놈의 고집……제기랄……제기랄……]

[그리고……우리를 어떻게 알아 보았는지는 묻지 않게다.그러나……]

벌컥벌컥……

[우라질……빌어먹을……]

[나의 일에 이번에도 귀찮게 간섭하고 나선 다면, 먼저 네놈의 목을 베겠다.]

벌떡,

소일초는 몸을 일으켰다.

[…가자……!]

순간, 주소아는 손에든 잔을 재빨리 비우고 소일초를 따라 몸을 일으켰다.

벌컥벌컥……

[바보……끄윽……멍청……이 같은 자식……!]

소일초의 귀에 꽂히는 홍건개의 음성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자비감(自卑感)이 느껴졌다.

[미친 놈!]

순간, 홍건개의 몸이 격렬한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타깝게 터지는 전음,

[충고한다……화산에 가게 되면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다……내가 건방진 애송이 네가 좋아서 이런 줄 아느냐? 다 네 녀석의 약혼녀라는 주소저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순간, 주소아와 함께 객점을 나서던 소일초의 얼굴에 무서운 기색이 피어났다.

그의 손이 어느새 백의장삼 속의 철검을 거머잡는데,

주소아가 눈치를 채고 그의 소매를 잡아서 저지시킨다.

[마지막 경고다……다시는 우리들 앞에 보이기만 해도 죽여버리겠다.]

차가운 음성이 전음으로 홍건개의 귓속을 파고들고……

홍건개는 목에서 흘러내리는 선혈을 닦아내고 있었다.

귀신도 곡할 솜씨로 소일초가 수정검우를 발출하여 그의 목에 상처만 낸 것이었다.

객점에서 멀어지는 소일초와 주소아를 보면서 홍건개는 몸을 떨었다.

(죽이려는 마음만 있었으면……죽고도 남았다. 저 꼬마의 무공은 이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경지를 넘어섰다……)

홍건개는 주소아의 아름다운 모습이 꿈결처럼 멀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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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變身

 

 

 

무림(武林),

삼성무림청의 거대한 악(惡)의 발굽에 짓밟혀 가고 있던 무림엔……

희비(喜悲)……엄청난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했다.

정의 하늘엔 찬란한 영광이……

사(邪)의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한 사람……

단 한 사람이 출현하므로 중원 정사(正邪)의 판도는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푸른 계곡의 처참한 대혈전(大血戰)으로부터 무림에 폭탄을 터뜨린 신행마동 소일초……

기가 막힌 열 세 살 짜리 꼬마가 그 돌풍의 주역이었다.

그는 처음의 공언대로 과연 삼성무림청의 멸망시키는 전초단계로 그 주력인 삼혈단을 몰살시켜버렸다.

그리고,

전력의 팔할에 해당하는 삼혈단을 잃어버린 삼성무림청은,

그들이 벌여놓은 싸움의 곳곳에서 패하고 있었다.

파죽지세(破竹之勢),

삼성무림청의 가공하던 힘과 세력은 여기저기서 피를 뿌리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행마동 소일초,

천하는 그 동안 그에게 주었던 눈총을 거두고 찬사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중원어디에서나 신행마동의 이름은 높아 갔고,

잠자는 사자들의 숲, 백인장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백인장에는……

금족령을 당해서 밖으로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속 터지는 도객들이 한둘이 아닌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신행마동의 이름과 함께 시간은 쉬임없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이다.

 

* * *

 

파양호가 멀리 보이는 여산의 백인장(百刃莊)

내전 깊은 곳의 침상에 한 사람의 중년인이 누워있고,

그 앞에서는 절색의 미부가 의자에 앉아서 따뜻하게 익힌 낙화생을 까서 중년인의 입에 넣어주고 있다.

침상에 누워있는 중년인은 정기 늠름하여 도저히 누워있을 사람같지는 않은데,

부드러운 눈길을 미부에게 주면서 말했다.

[요즘처럼 편안하게 살았던 적이 여태 없었던 것 같소. 말썽꾸러기 아들 녀석은 무림에서 이름을 더날리고 있고, 아름다운 부인이 장내의 모든 일을 대신 처리해 주니……나는 다만 이렇게 누워서 음식만 받아먹으면 되는군……]

[그런 말씀만 마시고 당신도 빨리 일어나셔서 그 애를 도와주셔야죠……]

[하하하……그 녀석이 백인장의 모든 사람들의 발을 묶어 놨는데 나도 별 수 있소. 일어나 봤자 갑갑한 장원 안에서 칼질이나 하고 있겠지……]

눕고, 앉은 채 다정스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이 두 사람,

바로 백인장의 장주부부인 소선풍과 조예진이었다.

소선풍은 소일초가 보내준 불사환혼단을 복용한 후 신체의 회복이 급속도로 빨라져 이제는 말도 할 수 있고 음식을 받아먹을 수도 있었다.

그가 완전히 일어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아무튼, 파양호 안의 옛 장원에 당신이 일초를 데리고 들어온 날은 볼만 했지……]

[…………]

[멀쩡한 아이더러 사부니 뭐니 하면서 법석을 떨어대니 천하의 일초 그 놈도 울고 말더군. 그때 나는 속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지. 결과적으로 그게 복이 되기는 했지만……]

[대체 몇 번 이나 더 그 애길 해야 그만하겠어요. 쑥스럽게 자꾸 그때 이야기 하시면 더 이상 낙화생을 드리지 않겠어요.]

조예진이 은근히 먹는 것으로 남편을 협박한다.

[그때만 생각하면 항상 즐거운 걸……]

[그래도 절 위해 이제 그만 하셔요.]

소선풍이 먹는 것을 포기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묻는다.

[정말 일초녀석의 무공이 그렇게 높아졌나?]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전설적인 검객인 검마의 진전을 물려받았다고요.]

조예진이 혀를 쏙 내밀면서 말한다.

[아마 당신도 이제 못당할 걸요?]

[글쎄……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나는 다시는 누구에게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설사 어르신이라고 해도……]

[아이구라……누워서 허풍만 세졌어요? 어떻게 사부님을 이길 수 있단 말이예요?]

조예진은 남편의 호기가 살아나는 것을 반가와 하면서도 자기 사부도 이길 수 있다는 말에 살짝 빈정댄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깨달은 무공이 있거든……마도구식을 바탕으로 한 건데……단 이초식의 도법으로 집약이 되지……]

[그렇게 그게 대단해요? 그럼 사부와 겨뤄보기 전에 먼저 나와 한번 겨루어 봐요.]

소선풍이 벌떡 일어서는 그녀를 보고 눈이 둥그레 지는데,

조예진의 몸이 그를 덮쳐서 눌러버렸다.

[윽-----]

소선풍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비명도 크게 못 지르는데 조예진의 팔은 그의 목을 휘감고 눈섭을 깜짝거려 소선풍의 귀를 간지럽혔다.

[나를 이길 수 있어요? 없어요? 빨리 대답해요. 안 그러면 더 잔인한 고문을 할 거예요.]

소선풍은 간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아직 입만 살아있는 그가 어떻게 피할 도리도 없다.

[항복! 항복! 당신이 천하제일고수요.항복……하하하하하……]

참다참다 말하는 바람에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조예진은 미소를 지으며 소선풍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잔잔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보……사부께서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실까요?]

[전번에 만났을 때 느낀 것이지만, 그 어르신께서는 인생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실 작정인 것 같았어.]

[…………]

[어쩌면 무림인이 아닌 아주 다른 모습으로 살고 계실 지도 모르지……]

[휴……저는 사부님을 뵙고도 몰라봤으니……]

[빨리 소아와 어르신께서 만날 수 있도록 해야겠는데……사형들이 그렇게 변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그들은 사악한 무공을 섞어서 사용했어……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마교(魔敎)의 마공(魔功)들인 것 같아……]

[어디서 그런 마공들을 익혔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 그때 소아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면 아마 지금쯤 철저히 그들의 병기로 화해버렸겠지……그때도 이미 삼갑자의 내공을 주입한 상태였으니까……]

[여보……정말 소아의 무공에 대한 재질은 사부님을 그대로 닮았어요. 우리 일초보다 결코 재질에 있어서 뒤지지 않아요.]

[한데……일초와 소아가 잘지내고 있을까?]

[그야 모르죠. 애들이니까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겠죠……]

[내가 일어나기만 하면, 우리도 함께 무림에 나가 유람이나 합시다. 얼마나 통쾌하겠소.]

소선풍은 벌써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제발 빨리 일어나기나 해요. 생과부 삼 년에 당신 몸무게까지 잊어버렸어요.]

조예진의 투정에 소선풍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그리고……

[요즘은 내가 당신 몸무게를 알고 있잖아……]

 

× × ×

 

섬,

차가운 서북풍이 매섭게 몰아치는 장강의 물결이 금방이라도 덮쳐버릴 듯한 조그만 섬,

갈대숲이 섬 전체를 뒤덮고 있는데……

무성한 갈대를 헤치고 걸어 나오며 차가운 장강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소년,

허리에는 이가 빠진 시커먼 철검,

소일초였다.

그 옆에는 주소아가 따르고 있었고……

…………

[틀렸어……이곳도 전혀 기억에 없어. 다른 곳으로 가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주소아가 낙담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이때,

살짝 주소아의 신비롭도록 아름다운 입술을 주시하던 소일초가 장강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불과……한 달 도 지나지 않았어……]

[…………]

[성급하게 서두를 것은 없어…… 그리고 천천히 기다리면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잊어버린 샘 치면되지뭐……지금이 행복한데 까짓 옛날 생각나지 않으면 어때……]

그렇게 말하는 주소아의 표정에는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소일초는 녹림맹에서 이후로 주소아를 아주 존중해 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주소아의 미모에 넋을 잃는 것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강한 질투심이 생겼던 것이다.

자연히 주소아를 더 잘 대해주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소아에 대한 장난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장난은 점점 도를 더해가서,

요즘에는 아예 잠잘 때에는 주소아를 알몸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아슬아슬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소일초는 여체의 신비를 여기저기 엿보았고,

눈을 감고도 주소아의 몸을 훤히 상상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짖궂은 장난만 아니라면 주소아는 소일초에게 최고대접을 받고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의 아름다운 동공은 소일초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를 넋 잃은 듯 바라보고 있으니……

자기보다 작은 소일초의 어깨를 손으로 감고 머리를 푹 수그렸다.

그리고 금시,

그 아름다운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며시 소일초의 귀에 대고 이야기했다.

[이제……어떻게 따돌리지?]

[직접 부딪쳐 볼까?]

[상대방도 엄청난 고수야……일부러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리는 것 같아……혹시 정말 할아버지가 우릴 따라 다니시는게 아닐까?]

대체 이들은 또 전혀 그런 척 하지 않으면서 또 무슨 말을 주고 받는 것인가?

따돌린다니……

엄청난 고수라니……

[절대 아니야. 그 형씨……아니 네 할아버지는 아무런 기도가 없어. 그리고 나를 보셨으면 납작 잡아서 혼을 내려고 드실 걸?]

[왜?]

들릴락말락한 소리로 물어보는 주소아다.

[실은……내가 사기를 조금 친 적이 있거든……전에도 조금은 말했지……내가 배운 무공 중 일초검공 말고 다른 절기들은 다 젊은 할아버지한테 사기 쳐서 배운 거란 말이야……]

[그럼, 우리 다시 따돌려 보자. 그리고 우리가 역으로 한 번 정체를 파헤쳐 보는게 어때?]

[좋아, 오늘 밤에……]

소일초는 주소아의 손을 잡으며 안개속에 파묻혔다.

그리고,

안개가 흩어졌을 때 이미 그는 주소아와 손을 마주잡은 체 까마득히 장강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사르르르……

소일초와 주소아가 사라진 갈대숲에 백의를 단정히 차려입은 젊은 부인이 나타났다.

머리는 옥잠을 꽂고 어깨에는 고색창연한 장검이 걸려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어딘지 모르게 수심이 어려 있는데……

[태봉아……많이 자랐구나……]

오오……

태봉……

바로 소일초의 원래 이름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백의미부는?

[이 어미가 무정한 네 아버지는 잊을 수 있겠지만, 어찌 너를 잊을 수 있었겠느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여인,

바람에 갈대는 날리고, 바람에 검병(劍柄)의 수술도 날리고……

고독이 배어나는 목소리는 짙은 처량함이 감돈다.

[네가 보고 싶어서 남몰래 백인장을 찾아 갔던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한데……그 여자는 정말 너와 네 아버지에게 너무 잘 해주더구나. 나는 부끄러워서 그때마다 도망치듯이 돌아오고 말았단다……너는 이 어미는 생각도 않고 자라는 것 같더구나……]

그녀의 눈에서 맑은 눈물이 넘쳐 두 볼을 타고 내렸다.

소일초의 생모(生母) 이주용(李珠蓉),

그녀는 소일초가 두 살 되던 해에 백인장을 떠나가 버렸다.

소선풍과 심한 말다툼을 한 후에……

[네 아버진 무정한 사람이었어. 몇 년 동안 백인장을 찾아가지 않았으니 그 사람도 많이 변했겠지……그러나, 무슨 이유로 어린 너를 혼자서 험한 강호에 내보냈는지 모르겠구나……]

 

***

 

이주용이 갈대 섬에서 깊은 감회에 빠져 있을 때,

소일초와 주소아는 주루(酒樓)를 들어서고 있었다.

별원에 방을 얻어 들어간 두 사람은 국수를 먹은 후 침상에 마주 앉아 술을 마셨다.

저녁 마다 있는 그들의 일과 중 하나였다.

[전에 색귀한테 들은 애긴데……여자는 억눌려 있을 때 오히려 더 좋아한다고 하더군……]

술단지를 놓고 마주 앉자 마자 흘러나오는 소일초의 막되먹은 소리였다.

[말도 안돼는 소리하지마……내가 겪어보니까 답답하기만 하더라……]

[색귀말이 틀렸을 리가 없어……네가 잘못됐으면 잘못됐지……]

고개를 내두르는 소일초다.

[그럼 네가 한 번 눌려볼래? 갑갑한가 아닌가?]

[싫어. 계집애한테 눌린다는 것은 꼭 지는 것 같아서 싫어.]

[나도 마찬가지야. 역지사지(易之思之)라는 말을 잊지마.]

[그래도 내가 위에 있을 땐 마치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던데……]

[그 기분도 없으면 힘들게 일해서 마누라 먹여 살릴 골빈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다 상부상조하는 거지……]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일초가 술을 들이키며 말했다.

[그럼, 나는 당연히 네 위에 올라갈 권한이 있는 거네. 네가 먹고 자는 모든 것이 내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니까……]

주소아가 코웃음을 친다.

[그런 소리마, 그렇게 따진다면 나에게 물이라도 한 잔 준 놈은 몽땅 다 한 번 씩 태워줘야 잖아. 그럼 네 기분이 좋겠어?]

[그건 절대 안되지. 절대로……만약 그런 꿈이라도 꾸는 놈이 있으면 껍질을 홀랑 벗겨서 죽여버릴 거야.]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듯이 소일초가 흥분하면서 소리친다.

[거봐. 겨우 몇 푼 안되는 돈 좀 썼다고 내 몸을 아예 말등처럼 오르내릴 생각을 하면 안된다구. 요즘은 내가 너한테 지니까 할 수 없이 봐주는 거지만……]

[…………]

[다음에 내가 좀 더 강해지면 그땐 내가 올라가서 네 그 하늘을 나르는 것 같다는 기분을 좀 느껴봐야겠어……]

끝없이 술을 퍼부어면서 계속되는 대화이기에 어느새 그녀의 얼굴은 술이 올라 빨갛게 되었고,

입에서는 혀 꼬부라진 소리가 연방 나왔다.

소일초는 술단지를 내려놓았다.

[그만 자자……]

주소아가 휙 하니 술잔을 던져 탁자위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게 놓으며 뒤로 벌렁 누웠다.

[이리와……]

주소아의 말에 따라 소일초가 그녀의 몸에 자기의 몸을 얹었다.

그의 얼굴이 주소아의 얼굴을 마주 보는데,

[단번에 외워. 정말 취한 것 같다구……]

주소아가 낮은 소리로 말한다.

[이건 내가 역근천골공(易筋遷骨功)이라고 이름을 붙여봤는데……]

주소아……

그녀는 정말,

조부인 혈기자의 혈통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엄청난 무학의 기재였다.

생사보록의 무공을 깊이 터득했을 뿐만 아니라 거의 어떤 절학도 한 번 보기만 하면 그 근본 원리까지 파악해 내곤 했다.

그리하여, 벌써 몇 가지의 괴상한 무공을 만들어 냈는데……

역근천골공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근육을 마음대로 바꾸고 뼈마저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는 괴상한 무공으로,

축골공이 있다는 말을 듣고 며칠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다.

소일초는 가만히 그녀의 입을 주시하면서 한 자도 빠뜨리지 않고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겨우 그거야? 아주 간단한 것 같은데?]

주소아의 말을 다 듣고서 그녀의 귀에다 대고 소일초가 소근거렸다.

[그건 네가 이미 무공의 큰 줄기를 꿰뚫고 있어서 그런 거야……이게 시시한 게 아니라구……]

[지금 한 번 해볼까?]

[응.]

소일초는 잠시 역근천골공을 운용하다가 뚝 멈추었다.

[큰일 날 뻔 했다.]

[왜?]

[옷이 다 찢어질 뻔 했잖아. 더 어둡기 전에 미리 큰 옷을 사다놓아야겠어.]

[안돼! 지금 밖으로 나가면 들통이 날 수도 있어. 점소이를 불러 시켜. 가장 좋고 예쁜 옷으로 두 벌 사오라고……]

그녀는 말을 다 끝 맺지 못하고 잠이 들고 말았다.

 

***

 

깊은 밤,

이상한 느낌에 주소아는 또 소일초의 장난이거니 하면서 눈을 부시시 떴다가 비명을 질렀다.

[끼악----!]

자기의 몸에는 여느 밤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쳐져 있지 않은데……

굵직한 팔 하나는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고,

다른 커다란 손 하나가 자신의 전신을 더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은 육척은 좋이 될 거한이 아닌가?

그것도 알몸으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비명은 채 다나오기도 전에 커다란 손에 의해 막혀버렸다.

[쉿! 나야, 나.]

맑은 눈에 덩치는 크다랗지만 얼굴은 여전히 수염하나 없는 동안(童顔)이다.

바로 소일초인 것이다.

[휴……깜짝 놀랐네. 이 바보야! 미리 말이라도 해야지.]

손톱을 세워서 소일초의 가슴을 팍 긁어버렸다.

그러나,

날 때부터 금강체(金剛體)인 소일초의 몸이 그 정도로 손상이 갈 리가 없다.

[어때? 감쪽같지?]

[시꺼. 사람 간 떨어지게 해놓고……]

소일초의 몸을 슥 훑어보는 주소아가 눈을 크게 떴다.

[응……여기? 여기는 본래 그대로야. 아무리 해도 더 커지지 않던데……]

[아차……나한테는 그게 없어서 미처 그걸 크게 만드는 법문은 만들지 못했어……내건 다 되는 데……]

주소아가 실수했다는 듯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럼 네가 한 번 해봐!]

[그래, 잘 봐……]

정말 잘보고 배워놓으라는 듯이 눈길을 준 후 주소아는 소일초를 한쪽으로 밀쳐놓으며 누운 자세를 반듯이 했다.

젖빛으로 뽀얀 주소아의 알몸은 아직 완전히 발육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봉긋한 가슴 밑으로 펼쳐진 나신은 매일 보는 것이지만 소일초의 숨을 막히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일순간,

그녀의 조그마한 발이 다리와는 불균형을 이루면서 커졌다.

다리가 쭉 가늘게 늘어나더니 다시 살이 오르며 정상적으로 되어 가는데,

이번에는 잘록하던 허리가 스물스물 길어지며 상체가 한꺼번에 커지고 있었다.

목도 더 자라고 머리(頭)도 더 굵어졌으며 마지막으로 손과 팔이 늘어나고 커졌다.

[이건 얼마만큼 하면 좋을까?]

[크게……무조건 크게……]

조그마한 유방을 보면서 주소아가 하는 말에 소일초의 주문은 무조건 크게이다.

[바보야, 적당한 게 더 이뻐.]

직접 손으로 크기를 갸름하면서 유방의 크기를 조절했다.

어느새 그녀는 완전히 성숙한 여인이 되어버렸다.

침상에서 커다랗게 자라버린 소일초를 보면서 성숙하게 변해버린 주소아는 조금 부끄러움을 느끼는데……

[내 것도 크게 해줘……빨리……이건 불공평해.]

[안돼. 네 건 본래부터 나이에 맞지 않게 큰 거였어. 더 크면 여자가 견디지 못해.]

[그런 법이 어디 있어? 흥.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아마 괴로울 걸?]

주소아……

그녀도 뭘 알기나 하고 하는 소린지……

 

아무튼,

아침에 주루를 나가는 한 쌍의 젊은 부부를 보고 점소이는 언제 저 손님들을 맞았을까 생각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는 그 부부가 맨발인 것을 보고 더 이상하게 생각했다.

 

***

 

소일초와 주소아는 여유만만하게 북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벌써 신을 사 신었다.

서로의 변한 모습에 킥킥대며 장난을 치면서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소일초의 그것도 과연 커졌을까?

안보니까 모르는 일이고……

 

[지금 쯤, 그 미행자는 사라진 우리를 찾느라고 허둥대고 있겠지?]

[히히……어쩌면 우리한테 와서 어린 꼬마 둘 못봤냐고 물어볼지도 모르지……]

소일초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누가 우리 이름을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그냥 주소아, 소일초 하고 대답할 수는 없잖아.]

[물론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지. 소일초, 주소아라고 해야지……윽!]

주소아가 소일초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꽉 친 것이다.

[좀 진지해 질 수 없어? 덩치는 뭐 만해가지고……]

[좋아. 씨……그럼 나는 무적검(無敵劍)이다.]

[그럼 난 승무적(勝無敵)이야.]

[그럼 난 무적검 안해. 승소아(承小阿)라고 할 테다.]

다시 주소아의 주먹이 그의 옆구리를 쳤지만 허공인 듯 아무 감각이 없었다.

소일초가 이환공을 일으키고 미리 준비한 것이다.

[제길……무적검을 이기는 승무적이나 주소아를 밤마다 올라타는 승소아나 그게 그거지……]

[알았어, 무적검(無敵劍)해. 나는 불패도(不敗刀)할 테니까. 대신……]

[…………]

[내가 양보했으니까, 다시는 승소아니 뭐니 하는 소린 꺼내지도 마! 남이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주소아의 말투가 약간은 달래는 듯하다.

[그래도 사실인데……]

[그래도 안돼!]

주소아는 소리를 꽥 지르고 소일초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었다.

[삼성무림청을 뿌리 채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일침!]

[무슨 계획인데?]

주소아의 음성도 들릴락 말락 낮아졌고,

[이번엔 직접 삼수(三手)를 상대하겠어.]

순간,

자기보다 커져 버린 소일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걷고 있던 주소아의 몸이 제자리에 딱 멈췄다.

[무……무슨 말을……]

하나,

오히려 어른의 얼굴 만큼 커진 얼굴에 빙긋이 미소를 짓는 소일초……

[그 정도로 놀라긴 뭘 놀래. 이제 삼수와 직접 붙어 볼 때도 됐지.]

우뚝!

석상처럼 한 곳에 멈춰버린 주소아,

[좋은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소일초의 눈을 염려스러운 듯이 빤히 쳐다보며 물어본다.

[없어. 그냥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무식하게 대결해 보는 거지.]

[말도…안돼……!]

주소아의 떨리는 외침이,

휘이이이……

차가운의 북서풍에 휩쓸려 사라졌다.

그리고,

한 곳에 굳은 주소아는 도대체 움직일 줄 모른다.

다만 별빛을 향한 그녀의 두 눈에,

반짝반짝……

눈물이 고여 넘친다.

그녀의 몸에서 겨우 들릴 정도로 낮은 휘파람소리마저 잠잠해 진 듯 한데,

(이렇게 하는 말은 장난이 아니야……정말로 싸우려고 하는 거야.)

소일초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무적검이잖아……]

[바보야……내 생사보록 원래 주인이 누군지 알아? 바로 그들, 할아버지의 못된 제자들인 삼수(三手)란 말이야……고모부도 당해내지 못하고 부상을 입으셨단 말이야.]

[나는 검마의 진전을 이은 유일한 제자야. 일초무적이라구.]

이어,

그녀를 안은 채 걸음을 옮겨가는 그의 등에 희미한 겨울 햇빛이 내렸다.

 

***

 

그리고,

소문……

무림에 전례없던 소문의 바람이 몰아닥치기 시작했다.

 

------신행마동이 삼성무림청의 수뇌부에 도전장(挑戰章)을 냈다……

------일대일(一對一)의 결투를 원했다……누구도 참여할 수 없는……

------장소는 화산(華山)의 옥녀봉(玉女峰)이나 날짜와 시간은 알 수 없다……

 

소문,

이처럼 무림에 전례(前例)없던 열 세 살 짜리 꼬마와 한 문파의 수뇌와의 결투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이다.

중원천하의 모든 시선은 이들의 대결에 초점이 모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휘이이잉……

대지(大地)는 부는 차가운 북풍(北風) 도 일었다 자는데……

무림인의 사이에 분 이 소문의 바람은 자는 법도 없이 더욱 거세져 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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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七 章

 

          記憶의 端緖를 잡다.

 

 

 

정적(靜寂),

소름이 끼치는 정적의 소용돌이였다.

간간히 솟는 불길도 더하여 스러지고……

처절히 터지던 비명과 신음도 밤의 정적에 휩싸여 갔다.

푸른 숲의 계곡,

이곳에 몰아닥친 처절한 피의 혈전은 일단 그 끝을 맺은 셈이다.

바로 이 푸른 숲, 푸른 성의 녹왕전에,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울 소년과 소녀……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조용히 서있는 검고 흰 날개달린 괴물들……

그렇다.

소일초와 주소아, 그리고 비성성들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금,

그들의 앞에는 녹림맹의 맹주인 황녹천을 비롯하여 삼혈단과 싸웠던 녹림인들이 희열이 감도는 낯빛으로 서있다.

피투성이의 처참한 이들 옆으로……

도봉과 홍건개가 처참했던 혈전에 치를 떨면서 서있었다.

시신(屍身)의 숲이되고……

피의 혈하(血河)가 불에타 말라버린 이 푸른 숲……

그 장엄한 푸른 숨은 화약과 축융화탄으로 말미암아 그 아름다웠던 흔적을 찾아볼 수 조차 없다.

그리고,

개방의 일천 인물들과 소림백팔나한 또한 벌써 철수시킨 듯,

그들의 존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짙은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이 정밀한 정적의 푸른 계곡……

휘이이잉---------!

잠시 고개를 숙이던 바람이 다시 힘을 더해 불고 있을 뿐이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시신의 숲으로 변한 처참한 푸른계곡을 주시하고 있는 이들의 귀에는 오직,

[휘이이 휘이……]

바람소리에 섞여 주소아의 몸에서 나는 휘파람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리고,

뜨거운 불덩이를 내뱉는 듯한 음성이 소일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모두들 수고했다.]

[…………]

[…………]

[당신들의 투쟁으로 이제 장강의 삼성무림청은 지닌 힘의 팔할은 잃게 되었을 것이다.]

죽어간 자들의 처참한 운명에 가슴이 아파서인가? 아니면 부서진 푸른 계곡이 아까워서인가?

파르르르……

황녹천의 푸른 면사속의 눈이 무섭게 떨고 있었다.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비록 대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그의 심적인 고통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리라.

[신행마동께서 그와 같은 계책을 가지고 있을 줄은 미처 몰랐소이다. 늦게나마 감사드리오……]

핏물이라도 쏟아내는 듯한 육합전승의 신비한 음성이 다시 정적을 깼을 때,

부르르르……

한 편에 서 있던 주소아의 아름다운 몸이 강풍에 나부끼는 낙엽처럼 떨었다.

그리고 말……

[이처럼 사방에서 회오리치듯 들리는 말……핏물이 떨어지는 듯한……차가운 어투……언젠가 들어본 것 같아……아아 머리야……!]

찰랑……찰랑……

그 어떤 여인보다 고결하고,

그 어떤 여인보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주소아의 두 눈에 괴로운 신음과 함께 맺혀오는 눈물……

[아아……생각이 안나……아무래도 생각이 안나………]

실로,

떨고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도리질 하는 는 주소아의 태도는 애처롭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순간,

도봉과 홍건개의 얼굴에 경악에 찬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벌컥벌컥……

[끄윽……저 여자는……갑자기 세상이 거꾸로 보이기라도 한 것인가……젠장……갑자기 웬 발작은?]

홍건개는 단숨에 한 홉 가량의 술을 목구멍에 붓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들이 놀란 것은 소일초에서 부터였다.

[너……이제 막 기억을 찾기 시작했구나……황녹천의 말 때문이지……그렇지?]

[아…몰라……비슷한 소리를 언젠가 들은 것 같아……]

음성과 동시,

소일초의 몸이 번뜩이더니 어느새 황녹천의 맥문을 쥐고 있었다.

오오……

도대체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주소아가 삼 년 동안 잃었던 기억을 일부나마 희미하게 되살리려 하다니……

중인들은 갑작스런 두 사람의 태도에 당황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황녹천은 주소아가 원래 알고 있던 신분(身分)이었단 말인가?

주소아가 어떻게 황녹천의 육합전성에서 과거의 기억을 엿보았단 말인가?

어쨌거나,

갑자기 소일초에게 맥문을 잡혀 전신을 솜뭉치처럼 늘어트리는 황녹천,

이때 돌연,

슷……!

[맹주께 무례하지 말라!]

흰 빛 그림자를 빛살처럼 그려내며 소일초의 몸을 공격해 가는 녹림사존자와 녹림맹의 고수들……

[물러서!……난 지금 급해!]

소일초의 음성에는 다급함이 있었고, 그의 철검이 말과 함께 발출되었다.

순간,

그의 철검에서 기이한 기류가 흘러나와 덮쳐드는 녹림사존자와 다른 녹림인을 일제히 휘감아버렸다.

이가 빠져 검은 쇠몽둥이 같은 검이 빙글 돌면서 한 방향을 가리키자 검의 기류에 휘말려 있던 그들은 가랑잎처럼 그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다급한 가운데 소름이 끼치도록 싸늘한 신행마동 소일초 음성,

[누구든 더 이상의 접근은 용서치 않는다!]

그의 철검이 이 장 앞의 대리석 바닥에 긴 금을 그었다.

[…………!]

[그길 넘어오는 즉시 목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순간,

소일초의 눈을 마주하고 황녹천의 전신이 싸늘하게 굳었다.

하나,

어쩔 수 없는 듯 무겁게 고개를 내젖던 황녹천이 입을 열었다.

[본 맹주가 대체 무슨 잘못을 또 저질렀다는 것이요?]

황녹천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는 속에 퍼부어지자,

[그 소리 말고……아까 그 소리로……]

소일초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황녹천은 기가 막혀 몸을 떨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늦게나마 감사드리오……]

[아니야, 그게 아니야, 아까하고 똑 같이 해! 빨리……]

믿지 못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홍건개와 도봉의 표정이었다.

하기야,

중원제일의 신비인이자 녹림맹주인 황녹천이 소일초의 단 일초를 피하지 못하고 제압당하여 그가 시키는 대로 앵무새처럼 말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감사드리오……

……감사드리오……

……몰랐소이다 감사드리오……

 

소일초는 괴로움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아름다운 주소아의 반응만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됐어……이제 그만해……더 이상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

[이제 반응이 있었으니까 곧 기억을 되찾게 되겠지……]

[정말 괜찮겠어?]

소일초가 염려스러운 듯이 물어본다.

[응……]

찰나,

황녹천의 섬약한 몸이 또 한 번 격렬히 떨고,

[비키시오……]

[…………]

[아직도 내가 더 필요하오?]

황녹천은 자신의 맥문을 쥐고 산악인 양 버티고 서 있는 자그마한 신행마동 소일초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마자,

[그래……고마왔어……손목이 부드럽군……]

마른나무가 타는 듯 메마른 음성으로 말하며 소일초가 휘적휘적 주소아의 옆으로 돌아가버렸다.

녹림맹의 상하가 모두 치욕에 몸을 떠는데……

갑자기,

짝------!

하는 맑은 소리가 울렸다.

[아이쿠……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주소아로 부터 뺨을 맞은 소일초가 소리쳤다.

[꼭 그렇게 떠들어서 내가 골빈 여자라는 걸 온데다 선전해야 해?]

[나는 다만 네가 걱정이 돼서……]

그리나,

[다시 한 번 이따위로 하기만 해보라……]

주소아는 씩씩거리며 분통을 터뜨렸다.

[…………]

홍건개와 도봉의 시선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동시에,

그들의 눈에 피어나는 회의와 불신-------

[아미타불……아미타불……]

도봉은 연이어 불호를 터뜨리고……

[제기랄……이런 제기랄……]

홍건개는 개소리를 내뱉다가는 벌컥벌컥 호로병을 거꾸로 처박는다……

무림이 언제부터 이렇게 애들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주소아……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은 듯 숨을 씩씩대고 있는 소녀,

백옥처럼 하얀 얼굴에……

건강한 붉은 혈색이 감돌고 있고 별빛보다 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어디에선가 가늘고 맑은 휘파람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소일초로 말미암아 중인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 아름다움과 환상적인 분위기……

인간의 영혼을 빼앗는 극치의 아름다움이 환한 아침 창문의 햇살처럼 드리워져 있다.

[아미타불……아미타불……]

[우라질……여우일 테지……빌어먹을 ……정신은 말짱한데 헛것이 보이다니……제기랄……]

도봉과 홍건개의 시선은 더 이상 치켜떠질 수 없을 만큼 치켜떠져 주소아의 한 몸에 굳어 있었다.

아니, 그들의 몸조차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니……

이 순간……

[당신들은 부상자의 치료도 하지 않을 작정이야!]

중인들이 주소아를 바라보며 넋을 빼고 있자 영문을 모르는 화가 치밀어 오른 소일초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의 고함에 도봉 등이 펏득 자신들의 실태를 깨닫기는 했으나 여전히 주소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주소아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어찌할 바를 몰라 소일초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약간의 놀라움과 당황을 섞어내던 주소아의 얼굴빛이 다시 침착하게 고요로 치장되었다.

그리고,

홍건개와 도봉을 향한 힘이 가득 실린 음성,

[이 따위 인물들이니까 황녹천 따위의 꼬리질에 죽을둥 살둥 정신없이 쫓아왔겠지……내 말이 틀렸어?]

원래의 음성으로 되돌아온 주소아의 말에도,

도봉이 얼이 빠진 표정으로 두 손을 합장하여 물었다.

[아미타불……소시주는 대체 누구시오?]

[…………]

[그리고 대체 조금 전에는 어찌된 일이시오?]

순간,

소일초가 불쾌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주소아에 대한 것은 나를 거쳐서 물어야 돼……!]

[아미타불………]

[우라질……중 놈이 별걸 다 알려고……제기랄……]

[아미타불……]

[이름은 주소아고 천하제일인의 손녀이시며 장차 내 마누라가 될 사람이라구…]

소일초는 화가 나서 생각도 않았던 말까지 해버렸다.

그러나,

그 말의 파장은 아주 컸다.

먼저 주소아의 얼굴이 발개져서

[너……너……]

소리를 연발했으며,

도봉과 홍건개, 그리고 황녹천을 비롯한 녹림인들은 천하제일인의 손녀란 말에 눈이 둥그레 질 정도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럼 혈기대종사의……]

술이 확 깨는지 홍건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래! 알았으면 이제 눈 돌려. 확 뽑아버리기 전에……]

주소아는 소일초의 행동에 기가 막히는지 아무소리도 않고 쳐다만 보았다.

[…………]

[…………]

[지금은 그분이 이 근처에 와 계실지도 몰라. 아마 이 꼴을 본다면 내일쯤 소림사에서 맨대가리는 하나도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르지……]

펏득,

홍건개와 도봉의 얼굴이 더욱 새파랗게 질렀다.

혈기자라면 그러고도 남는다.

바로 장강 변에 있던 무림사대 세력 중의 하나였던 등천마교가 그의 손에 의해 닭 한마리 남지 않고 몰살당한 일이 불과 얼마 전인가?

[아미타불……무슨 소리를 ……]

벌컥벌컥……

[우라질……눈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빌어먹을……]

이때,

소일초의 진짜같은 거짓말이 다시 흘러나왔다.

[백인장에 고수가 없어서 우리끼리만 내보낸 줄 알아?]

[……?]

[다 천하제일인이 암중에 지켜봐 주시니까 안심하고 내보낸 거지……어떤 부모가 애 혼자서 무림에 돌아다니게 하겠어.]

진짜, 진짜같은 거짓말이다.

혈기자는 소일초도 다시 마주칠까 싶어 겁나는 젊은 형씨다.

혈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사부인 검마도 얼마나 극찬을 했던가?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로 혈기자에게 감탄하지 않았던가?

단지 소일초가 그에게서 배운 몇 가지 무공만 보고서도……

천하의 소일초도 그 젊은 형씨한테는 도저히 자신이 생기지 않는 터였다.

그러나,

거짓말인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조리가 있었다.

소일초가 도법을 쓰지도 않으면서 무공이 극강한 것과 주소아 또한 신비하기 짝이 없는 무공을 구사하는 것이 모두 혈기자에게 직접 배워서 인 것 같이 생각되었다.

혈기자와 관련 있다면 개미 한 마리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보신(保身)의 최고 술법이다.

[대종사께서는 아직도 정정하신지……]

[너보다 더 젊어지셨어. 너들 둘 특히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소일초가 도봉과 홍건개를 가리키면서 톡 쏘듯이 말하자 그들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소아! 이제 가자. 제기랄……좋은 일 하고도 기분이 나빠서 이거 원……성질나는데 녹림맹이고 구파일방이고 확 엎어버릴까 보다.]

주소아의 손을 야무지게 쥐고서 뿌연 안개에 휩싸이며 어느덧 까마득히 사라지고 있었다.

음성,

소일초의 입에서 대는 대로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던 음성,

사람은 가버렸지만 그 음성이 남긴 여운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울리고 있었다.

혈기자……

그의 이름을 들고 나오는 데야 모욕을 당했던 수치를 당했던 더 이상 따질 수 없다.

달마와 장삼풍에 비견되는 무학의 절대종사 혈기자,

홍건개와 도봉의 몸이 가늘게 떠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오……아미타불……단지 백인장의 말썽꾸러기인 줄만 알았던 신행마동이……혈기자와 깊은 관련이 있다니……)

(빌어먹을……어리기는 하지만 용(龍)새끼가 아닌가……그것도……인간세상에서는 다시 찾아볼 수 없는 막강한 배경을 지닌……)

참담하게 꾸겨진 얼굴로 생각을 되씹는 그들이었다.

(으으……정말로 혈기자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다니……고수가 암암리에 보호를 하리라 예상하기도 했었지만……전혀 발견할 수 없었는데……혈기자였다니……)

황녹천의 면사에 가려진 얼굴에서 식은땀이 팎팎 쏟아지고 있었다.

(우라질……어처구니없는 계획으로 그 어마어마한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을 몰살시켜버린 놈……빌어먹을 왜 내 가슴이 이렇게 타는 듯하지? 왜 내 가슴이 이리도 뛰는 거지……제기랄……제기랄… 그 계집애가 너무 이뻤어…)

벌컥벌컥……

홍건개는 반은 입으로……

나머지 반은 온몸으로 마셔대면서 붉게 물든 동공을 주소아가 서있던 곳에 퍼부어 댔다.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꼬마 계집애가 아닌가……빌어먹을……그런데 왜 가슴이 두근거려…? 빌어먹을……)

어떤 대답도 없이……

그저 놀란 눈빛으로 바라만 보고 있던 도봉과 홍건개 두 사람,

돌연,

그들은 황녹천을 향해 신중한 낯빛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당신의 비밀 중 일부는 그들의 눈에 드러났소……우리도 만약을 대비하여 당신과의 거래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소…당신도 조심하시오…우리들은 영원히 당신을 모르는 것이오.]

[…………]

벌컥벌컥……

[젠장할……소림의 망나니……네놈도 나처럼 취해버리고 말았군……젠장할……]

[아미타불…… 당신을 믿고 떠나겠소……]

짙은 감정의 빛을 던지던 도봉이,

돌연, 선 그 자세로 길게 몸을 뽑아 올렸다.

수수수수……

멀리 서 터오는 여명에 섞이듯 순식간에 연대구품으로 날아가는 도봉……

순간,

홍건개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그 눈빛은 한동안 황녹천을 지켜보더니……

벌컥벌컥……

술을 미친 듯이 들이마셨다.

[빌어먹을……이 놈의 가슴……우라질……이 놈의 심장……끄윽……할 수 없지……할 수없지……]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슈슈슈슈--------!

그의 몸 역시 저 황혼구만리에 섞여 날았다.

순간,

[울컥……울컥……!]

황녹천이 입에서 핏덩이를 토해냈다.

[맹주! 맹주……]

녹림사존자와 녹림인들이 놀라 달려들 때,

황녹천은 이미 힘겨운 걸음으로 녹왕전 안으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섞여나는 선혈과 함께 흐르는 음성,

[괜찮아요……나는……]

[…………!]

그는 소일초에게서 받은 감당할 수 없는 수모로 인해 심맥의 손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런데다,

도봉과 홍건개의 매정한 태도에 더욱 충격을 받아 피를 토하고 만 것이다.

중원제일의 신비인,

대체 그와 구파일방의 젊은 기재들과는 어떤 거래가 있는 것일까?

모를 일이다.

 

<제1권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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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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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불타는 푸른 숲, 무너지는 계곡

 

 

 

소일초의 그 말에 득도한 고승같은 청년승 도봉의 얼굴마저 무참히 구겨졌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당금 무림의 십이대고수 중의 한 사람이고, 사문(師門)으로 따지자면 무림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은 눈이 둥그레 졌다.

[너희들 중에 누가 내 사문과 스승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소일초의 목소리는 또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데……

[우라질……네 사문이야 백인장이라는 걸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끅……]

[젊은 거지! 백인장은 내 집이다. 모르면 아예 입 닥쳐라.]

소일초는 허리에 걸려있는 시꺼먼 철검을 손에 잡았다.

[백 육십년 전,이 철검을 사용하신 분께서 바로 나의 스승이시다. 그 분은 소림사의 기재라 불렸던 우광대사 보다도 배분이 높았으며 천하제일인이라는 혈기자 보다도 배분이 앞선다.]

[…………]

[누가 나보다 배분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무림의 밥을 먹는 사람으로서 사승과 배분이 나이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땡초와 거지는 도무지 모른단 말이냐?]

그의 말은 준엄했다.

그른 말 한 마디 없었다.

짝짝짝-------!

[정말 훌륭한 일장연설(一場演說)이었어. 저 중 얼굴표정 좀 봐……]

주소아가 손뼉을 치면서 칭찬한다.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중인들의 가슴이 울렁거릴 정도인데……

도봉이 입을 열었다.

[대체 그 스승이라는 분이 누구시오? 우리 소림사와도 관련이 있소?]

[관련? 물론 있지. 자 여기 와서 공손히 받아가라구. 안 그래도 언젠가 소림사에 들르려고 생각했는데 잘됐군.]

소일초는 품에 손을 넣어 작은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내 생각이지만, 이건 던져서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야. 공손히 절하고 받으라구.]

도봉이 반신반의 하면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소일초의 앞에 가서 합장을 하면서 주머니를 건네 받았다.

물러서서 주머니를 열어본 도봉은 깜짝 놀랐다.

고승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는 선종의 본산 소림사에서 자란 그도 주머니 속에 있는 것 처럼 굵고 큰 사리(舍利)를 본 적이 없었다.

주머니 안에는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사리들이 은은한 서기를 발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이 것은 어느 분의 사리입니까?]

도봉의 말투가 바뀌었다.

소일초는 빙그레 웃었다.

[우광대사, 전 소림사의 장경각주였던 분. 그분은 큰 깨닳음을 얻으신 후 남황에서 입적하셨지……내가 그분을 화장시켰고. 한데 그분이 깨닫도록 이끌어 주신 분이 바로 내 스승님이셨지……]

[그분도 불가에 몸을 담으신 분입니까?]

[장장 일백오십 년을 참선과 고행으로 지내신 분이지……]

사부의 처참했던 모습을 떠올리자 소일초의 눈에서 주루루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싹 바꾸었다.

[그건 그렇고, 나는 황녹천이 어떤 재주가 있기에 소림사와 개방을 이처럼 떡 주무르듯 하는 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군.]

황녹천, 청년승 도봉, 그리고 홍건개의 안색이 확 변했다.

[당신들은 지난 삼 년동안 삼성무림청을 방관만 해 왔는데 어째서 내가 나서자마자 녹림맹을 도와 그들과 싸우겠다고 일제히 나섰을까?]

[그……그건……]

도봉이 말을 더듬으며 황녹천을 바라보았다.

[뻔한 걸 뭘 물어봐……]

주소아가 얼굴을 돌려 황녹천을 쳐다보았다.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은 아무렇게 몸이나 굴리는 계집이야!]

꽝-------!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중원제일의 신비인 녹림맹주 황녹천이 아무렇게나 몸을 굴리는 계집이라니?

중인들은 가슴이 뻥 뚫린 듯 놀랐고,

황녹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신분이 높은 젊은 중놈이나 거지가 아쉬운 게 뭐가 있겠어? 오직 하나밖에……]

도무지 어린계집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같지가 않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사씨 자매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주소아의 신분을 모른다.

단지,

소일초와 동행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신분일 거라는 정도로 짐작할 뿐이었다.

[설마 그럴리야 있겠어? 구파일방이 어떤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오직 자기들만 잘났다고 콧대 세우는 그들인데 여자때문에 움직이겠어?]

소일초의 반문이었다.

[가장 나쁜 자들은 원래부터 선한 자들의 탈을 쓰고 있지. 진정 정의로운 사람은 입으로 떠들지 않고 묵묵히 행동하는 고모부같은 사람이야!]

주소아는 말을 빙돌렸다.

[내 말이 완전히 옳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구파일방과 황녹천 사이에 남에게 밝히지 못하는 은밀한 거래가 있겠지……]

[다른 말은 몰라도 이번에는 네 말을 못 믿겠어. 너는 어제밤에 마신 술이 아직 덜 깬거야.]

소일초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도봉 등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어린애 말에 너무 신경쓰지 마. 하지만, 오늘 당신들도 더 이상 나를 번거롭게 하지 않도록 해. 어쩌면 다음 공격목표로 구파일방이 될 수 도 있어.]

소일초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자들의 귀에는 더욱 우뢰와 같은 힘을 담고 들려오는 충격을 느낀다.

그런 소일초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나는 적지 않은 수고를 해서 일을 이만큼 꾸몄어. 한데 지금에 와서 당신들이 본인이 하는 일에 관여하려 든다면……또한 그것을 용납한다면, 그것은 곧 내 신념을 깨고 믿음을 깨는 일이 아니겠어?]

순간,

벌컥벌컥……

홍건개가 호로병의 술을 한꺼번에 쏟아넣듯 거칠게 들이켰다.

[제기랄……지금 이 자리에 화산(華山)의 그 놈 주둥아리가 왔어야 말 상대가 되는 것인데……]

벌컥벌컥……

[우라질……이 소화자 술만 먹지 않았어도 반박할 수 있는 말을 찾아낼 것인데……빌어먹을……에이 빌어먹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홍건개의 호로병을 감싸며,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별빛은 더욱 영글고 있었다.

쿠르르르……

쿠쿠쿠쿠……

계곡으로 불어오는 싸늘한 가을 바람은 걷잡을 수 없이 휘몰아 치는데……

청년승 도봉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그 신념과 믿음은 신행마동께서만 지닌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그대들은 그대들의 믿음대로 해보겠다는 말인가? 그것이 본인의 산통을 다깨뜨리던지 말든지?]

[흥, 황녹천도 무엇으로 구파일방을 구워삼았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구파일방이 녹림맹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 같군.]

주소아가 쏘듯이 하는 말이다.

[아미타불……좀더 신중한 판단을 바라오……]

[에이……끄윽……제기랄……]

이 순간,

소일초의 묵직한 음성이 달빛을 뚫고 다시 흘러나왔다.

[우스운 일이야……]

[…………]

[근본적으로는 황녹천이 삼성무림청을 멸망시키겠다는 내 능력을 불신하고 있는 것이 문제겠지. 그래서 그들의 주력이 몰려오자 부랴부랴 최후의 수단으로 당신들을 불렀을 테고……]

정확한 추리였다.

[…………]

[그것이 어찌 우스운 일이 아니겠어?]

[아미타불………]

[끄윽……빌어먹을……]

소일초의 뼈가 맺힌 말에 청년승 도봉과 홍건개의 안면에 가는 분노가 서려났다.

하나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쏟아져 나오는 소일초의 음성,

[너희들은 우선 나의 일에 훼방을 놓았다. 나이 살 몇 더 있다고 감히 나 신행마동을 우습게 대했다.……기회다 싶어서 나를 핍박하려 했다.]

문득,

청년승 도봉의 깊은 동공에 파릇한 분노의 광망이 일었다.

[지금 억지를 부리고 있소.]

[억지라…… 언제나 곤란할 때는 모든 것을 억지라고 돌려버리는 것이 소림사의 신공인가?]

그리고 한 순간,

청년승 도봉이 단정짓듯이 음성을 흘려냈다.

[아미타불……분명히 말하겠소만 마동……]

[…………]

[아무 대책 없이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을 끌어들인 처사는 명백한 잘못이었소.]

[…………]

[그리고 빈승과 홍시주는 오늘밤 구파일방의 힘으로 그들을 녹림맹에서 조용히 물러가도록 할 것이오.]

홍건개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탄식하듯,

[꺼억……끅……더군다나 오늘밤의 격전은 절대……없소……]

[…………!]

[우라질…… 이 승산도 없는 싸움에……꼭 피를 흘리겠다는 것이오……우라질……구파일방의 이름때문에 적들은 물러나게 될 것인데……]

순간, 소일초의 눈에서 파르르 불꽃이 분노로 일었다.

[구파일방의 온 건 바로 그 때문이었군.]

소일초는 격분하는 내심에 또 한 바탕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또한, 그의 입에서 터져나오는 분노를 토하는 듯한 음성……

[그대들이 나에게 이토록 친절히 충고하는 것도 백인장주인 아버지의 체면을 보아서 인듯하군……]

소일초는 피가 맺혀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언제라도 발출 될 듯이 쥐어진 철검,

[좋아……더이상 본인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

터질 듯 긴장해 가던 분위기가 소일초의 양보로 다소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하나……]

[아미타불……무엇이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들은 꼼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시가 지난 다음에는 구파일방의 이름으로 협상을 하든 위엄을 보이든 마음대로 해라.]

음성은 낮고 들릴락 말락 했으나,

소일초의 그 음성엔 그 누구도 거역치 못할 굳강한 기세가 어려 있었다.

홍건개와 청년승 도봉은 어쩔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우라질……어쩔 수 없군……좋소……좋아……제기랄……그때가지 기다려 주지……]

 

× × ×

 

 

어둠이 꺼꾸로 부침하는 심야,

드디어 자시였다.

휘이이잉!

밤바람이 미친듯이 푸른 숲의 계곡 사방 질타하고,

솨아아아아……

휘르르르릉……

숲은 성난 파도처럼 미친 듯이 울렁대기 시작했다.

바로 이 미친 듯한 자시의 야공(夜空)을 찢어발기며……

똑똑똑------!

마치 뇌성벽력과 같은 목탁소리가 천지를 질타했다.

동시에,

이 목탁음이 신호라도 되는 것인가?

번뻑……번쩍……

막막한 어둠 뿐이던 푸른 계곡의 호로병같은 골짜기 여기저기서 현란한 불꽃이 일어나더니……

꽝--------꽈꽝-------

쿠꽝---------

오오……

엄청난 폭발음이 하늘을 무너뜨릴 정도로 터져 나오고,

그 현란하던 불꽃은 조만간 엄청난 불길로 화해 푸른 계곡을 통째로 태워버릴 것처럼 엄청나게 치솟지 않는가?

그리고 그 속에 드러난 장엄한 광경을 보라!

혈의인(血衣人),

녹림맹 푸른 계곡을 까마득히 메우며 바람처럼 날아들어 오든 수백 수천 척의 혈의인들,

불의 방벽……

그 충천하여 터지는 화기(火氣),

일시에,

이 거대한 녹림맹은 이 엄청난 화광에 타고 메말라 한줌의 잿가루만 남아날 것 같았다.

한데 일순간,

슛슛슛______ !

혈의인들이 일제히 장력을 격출하여 화염의 완전포위를 뚫고서,

마치 화살이 꽂혀 오듯 녹림맹을 향해 질풍처럼 쇄도해 오는 것이었으니……

만일, 이대로 이 어마어마한 혈의인의 무리가 녹림맹의 본체인 푸른 성에 접근한다면……

이 녹림맹은 그대로 시산혈해로 가득차고 말리라.

그러나,

이런, 염려는 즉시에 사라졌다.

슈_____슛!

꽈꽈꽝_________!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녹림맹의 입구인 호리병 같은 계곡은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으아아악------

으아악--------

화르르륵……!

화아아확!

이 푸른 숲의 입구는 참혹한 비명과 무너져 내리는 바위절벽,

그리고 마른 장작에 기름을 부어놓은 것처럼 엄청난 화광을 내뿜고 타기 시작했다.

녹림맹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오던 혈의인들,

그리고 번지는 화광, 새까맣게 타서 재가 되어 흩어지는 시체들……

일시에 녹림맹은 염부의 불꽃지옥의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불길과……솟아오르는 검은 연기와……

화약냄새와 시신이 타는 노린내……

이 모든 것에 녹림맹의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안 쪽의 절벽위에서 이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소일초와 주소아의 아리따운 얼굴에,

씨익!

검은 빛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고 말,

[됐어……본인은 이제 당신들 모두가 이곳에서 무얼하든지 상관하지 않겠어.]

순간,

흠칫!

그를 향한 수백 쌍의 눈빛이 가는 떨림을 일으켰다.

그러나,

황녹천을 비롯한 그 밖의 인물들은 이미 삼혈단의 몰락을 보고 있는지라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음을 느꼈다.

동시에,

슈슈슛!

그들은 벼락같이 몸을 날려 미리 준비해 둔 연들을 이용하여 푸른 성으로 날아내렸다.

바로 이 순간,

쿠쿠쿵!

계곡이 통째로 뒤집히는 엄청난 진동을 겪는가 싶더니……

오오……

도저히 그 크기를 한눈에 담아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불꽃이 계곡의 입구에서 부터 계곡 절반을 장악하며 치솟지 않은가?

동시에,

우르르릉……

꽈꽝----쿵쿵쿵---------

계곡의 입구는 완전히 무너져 막히고 수 백 수 천의 혈의인들이 생매장을 당했다.

그들은 다름아닌 삼성무림청의 삼혈단들이었으니……

혈향단-!

붉디붉은 혈의에 흰색 복면을 하고 있는 자들이었으며……

복면에 그려진 한 송이 붉은 매화(梅花)는 섬뜩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더불어……

향기…… 매화의 향기가 가득히 피워오는 듯한 착각이 들고……

그 속에 소름이 끼치는 살기를 피워내는 인물들이었다.

혈살단-!

그들은 혈의에 검은 복면을 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검은 복면에 그려진 아수라상(阿修羅像),

피와 검은 지옥의 음기와……

냉혹비정한 기운을 광휘처럼 피워올리는 자들이었다.

혈혼단-!

이들은 혈의에 얼굴 또한 혈의복면을 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혼(魂),

혼을 부르는 저주의 악령들인가?

피리리……피리리리리……

삐리리리……삐리리리리……

그들은 피리가 아닌 기이한 악기를 쉴 새 없이 불어대고 있었는데,

그 악기 소리를 듣는 순간 영혼이 한꺼번에 달아나는 듯한 엄청난 충격을 느낄 정도였다.

그들은 혈의복면에 소름이 끼치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니……

마(魔),

바로 이 한 자였다.

수수수수……

슷스스스……

소리없이 밀려들던 이 악령의 피그림자들……

그들은 하나같이 절정고수(絶頂高手)인 듯 몸놀림이 흐르는 바람처럼 날렵했다.

그러나……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화약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당한 후에,

연이어 떨어져 내린 축융화탄으로 말미암아 계곡의 앞부분이 무너지면서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폭발과, 화염……

그 와중에서도 삼혈단의 일부고수들은 살아서 악령처럼 녹림맹으로 돌진했으니……

파츠츠츠____츳츳_____ 츳츳!

쌔애애______액!

충천하는 화광 속에 난무하기 시작하는 검장도권(劍掌刀拳)의 소용돌이!

[크아아악!]

[크_____악!]

비명이 천지(天地)를 진동하기 시작했다.

후리리리_____릭!

시퍼런 살광(殺光)과……

검은 살기(殺氣)와……

핏빛 잔광(殘光)이 엄청나게 소용돌이 치는 속에,

간혹 천지번복의 굉음이 잇달아 터지고,

달빛아래 희미한 어둠은 부르르르 전율을 일으켰다.

거기에다,

하늘로 치솟아 난비(亂飛)하는 무수한 나무들과 불타는 숲……

콰아아아아……쾅……

바람도 불을 만나 더욱 미친듯이 불어대는……

이곳은 녹림맹이 아닌 아수라 광천귀역!

번________쩍!

콰콰콰______쾅!

천지가 갈가리 찢어지는 듯한 파공성을 타고,

[으아아아아_________악!]

[크아아아아_________악!]

참담한 비명은 끝없는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마침내 폭음이 잦아들고 대신 허공에서 까마득히 몰려 내리는 구파일방과 녹림맹의 고수들……

조용하고 은밀한 계곡에 위치해 있던 아름다운 푸른 숲의 푸른 성(城),

이제 이것은 충천하는 화광과……

난비하는 검장도권의 소용돌이와……

그 속에 사비팔산(四飛八散)되어 나가 떨어지는 시신(屍身)들 만이……

어지럽게 움직이는 아수라 귀역으로 변했을 뿐이다.

한편,

이미 장강의 강변으로 피신한 황녹천과 그 수천 수하(수河),

그리고,

청년승 도봉과 홍건개가 이끄는 대소림의 인물들과 개방의 일천인물들……

그들은 하나같이 경악에 찬 시선으로 이 처참한 혈전(血戰)에 동참하고 있었다.

문득,

덮쳐드는 혈의인을 향해 일 장을 퍼부으며,

하늘처럼 맑은 시선에 침울한 기운을 피워올리던 청년승 도봉이 중얼거리듯 말을 흘려냈다.

[아미타불……어찌……이런 처참한 살겁을……]

[끄억……컥……일찍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할 손가……우라질……!]

이 순간,

황녹천의 눈빛은 남다르다.

하기야 그가 얼마나 정성을 기울여 왔던……

그의손에 의해 더욱 키워지고 다듬어진 푸른 성인가?

그것이 황폐하게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는 이 마당에 어찌 만감(萬感)이 교차하지 않으랴?

(아아……본인의 푸른 숲과 푸른 성이 이렇게 …!)

그러나,

황녹천의 참담한 기분이 어찌 죽어가는 수하들을 지켜보는 사은상의 심정에 비길손가?

사은상……

절벽위에서 소일초 등과 함께 이 참혹한 혈전을 지켜보는 그의 두 눈에는 쉬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느새 깨물었던가?

그녀의 파리한 입술에 선혈이 가득하다.

파츠츠……츳츳……츠츠……

[크아아아악!]

무모할 정도로 장렬히(?) 아니면 흉악히(?) 몸을 던진 혈의인하나가 형체도 없이 녹림인들의 손에 찢겨 날아간다.

[으아______악!]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사은상의 몸이 부르르르 떠는가 싶더니,

[쿨룩……쿨룩……]

그녀는 한덩어리의 피를 쏟아냈다.

그리고, 입술에 저미는 선혈과,

안타까워서……

너무도 안타까워서 흘리는 저 눈물과……

문득, 그런 그녀의 시선이 한 곳에 꽂혔다.

후휘휘……

희디흰 백의를 바람에 표표히 날리고 있는 천상의 옥동옥녀 같은 두 사람,

소일초와 주소아,

오늘의 참극을 계획한 치가 떨릴 정도로 무서운 꼬마들이다.

이때 돌연,

참담함과 눈물로 젖어 있던 사은상의 동공에 뽀얀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회상(回想),

며칠 전, 사옥상과 함께 주소아의 손에 어처구니없이 잡히고, 다시 고찰에서 도망쳤다가 소일초의 저녁값으로 잡혀온 일들이 이 참혹한 순간에 회상의 수증기로 피어오른 것이다.

(그때 옥상이가 저 꼬마들에게 가까이 가지 않았어도 우리가 이 꼴이 되었을 까? ……아니 우리가 아니었더라도 저 꼬마들은 다른 수단으로 똑 같은 결론을 만들어 냈을 거야………)

지금,

타오르는 불꽃을 보면서,

소일초도 사부 구멍뚫린 시신을 화장하던 때를 회상하고 있었다.

소일초,

그의 남만 오지에서의 삼 년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비록 다시 돌아갈지 안돌아갈지 기약 할 수는 없지만,

때때로 그의 마음은 거목의 숲에 있는 검마의 동굴에 머물곤 할 것이다.

삼 년……

사부와 함께 보냈던 힘겨웠던 세월,

의미도 모르는 참선을 강요당하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던 것이 몇 날이며 해도 해도 깨우쳐 지지 않는 검마의 독문 무공 일초검공을 반복하며 얼마나 많은 꾸지람과 구박을 맞았던가?

그리고,

그곳에서의 지리한 생활동안에 친구가 되어주었던 비성성들,

그들이 오늘 삼혈단을 초토화 시킨 주역들이다.

소일초의 두 눈에 굳은 기개가 구름처럼 피어났다.

그리고,

막 돌아와 그의 곁으로 내려서있는 그 비성성들을 주시했다.

한데,

문득, 소일초가 나직한 음성을 흘려냈다.

[모두 수고 많았다. 술과 고기를 실컷 먹게 해주마……]

순간,

십 수 마리의 비성성들이 끽끽 거리며 환성을 질렀다.

그들은 난생처음 보는 엄청난 불꽃, 폭음, 그리고 인간들의 잔인하기 짝이 없는 모습들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가늘게 떨고 있던 중이었던 것이다.

주소아가 소일초에게 술병을 건네 주었다.

[두려우면 멀리가서 놀다가 나중에 우릴 찾아와.]

동시에, 회색동공의 비성성들이 소리를 지르며 허공으로 날개를 펴고 올라갔다.

[이제 대충 끝난거지? 정말 무시무시한 싸움이야. 아마도 다시는 이런 처참한 장면을 볼 일이 없겠지……]

[어쩌면 지금이 시작일지도 모르지. 삼성무림청이 삼수가 만든 집단이라는 것이 분명해진 이상 뿌리를 뽑아버리겠어.]

소일초가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난 약속이나 지켜야 겠어.]

주소아가 눈물과 자신이 흘린 피로 범벅이 되어있는 사은상과 사옥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제 언니들은 가도 좋아요. 하지만, 오늘 보셨듯이 삼성무림청은 우리 손에 멸망하고 말거예요. 아마도 죽은 것 처럼 위장하고 깊이 숨어서 사는 것이 좋을 거예요. 이건 그 동안의 정리로 하는 말이니까 잘 생각해 보셔요.]

[…………]

[다음에 다시 우리가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내가 먼저 언니들을 살려두지 않을 거예요.]

주소아는 손가락을 튕겨서 사은상과 사백상의 막힌 혈도를 풀어주었다.

그녀들은 잠시 앉아서 운기행공을 한 다음 원망의 눈초리를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보낸 후 몸을 날려 떠나갔다.

[흥, 이제 심심해서 어떡할까? 천하의 색마께서……]

[낄낄낄……네가 밤새 내옆에 있을 텐데 뭐가 걱정이야……히히……]

소일초는 술을 들이키면서 요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쳇, 오늘 밤에는 쥐덫을 설치하던가 해야지 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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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五 章

 

         건방진(?) 九派一幇

 

 

 

콰아아아아아…………

달빛과 별빛과……

그리고,

불어닥치는 거센 늦가을 바람을 맞이하며 깊은 계곡 속의 거대한 푸른 성(城)은 우뚝 그 견고함을 자랑하며 서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호리병 같은 그 계곡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천상에서 내려온 옥동옥녀(玉童玉女)인양 어깨를 맞대고 서있는 소일초와 주소아……

그 들의 주변에는 비성성들이 날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뒤에 초조한 눈빛으로 서있는,

똑 같은 생김새의 아름다운 두 미녀 사은상과 사옥상,

맞부딪치는 쌀쌀한 가을바람에 그녀들은 표연한 자세로 서 있다.

지금,

그녀들의 앞에서……

소일초와 주소아는 비성성들에게서 끊임없이 끽꽥 되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휘황한 달 빛에 멀리 장강이 은하수처럼 보이는데……

사은상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우리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은 백인장이나 청옥검궁과도 비견될 정도로 막강하다고 사부가 말했다.……)

문득,

사은상의 수려한 검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사부의 말에 의하면 백인장의 주력은 백인도객(百刃刀客)이고 최고수들은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원로십팔도객들 이라고 했다.)

그녀는 멀리 풍경을 감상하고 있는 사옥상을 힐끗 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들은 전면적으로 무림에 활동한 적이 없는데도 은연중에 최강의 문파로 공인되어 있다고도 했다.)

이 순간,

생각을 헤아리고 있던 사은상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한데 오늘 우리측에서는 최정예인 삼혈단이 나섰다.그만큼……우리 삼성무림청도 백인장을 두려워하고 있다!)

사실,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은 지금껏 무림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었다.

 

혈향단(血香團),

혈살단(血殺團),

혈혼단(血魂團),

 

물씬 피냄새를 느끼게 하는 이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은,

그 존재만 알려져 왔을 뿐 완전한 비밀과 신비 속에서 따로 행동해 왔던 것이다.

사은상 그녀의 파리한 입술이 단호하게 깨물어졌다.

(한데……저 귀신같은 꼬마들은 어떻게 삼혈단을 상대하려는 것일까? 어떤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는 고수들도 저 괴물들 외에는 볼 수가 없었는데……아무튼 이번 격전에 승리만 할 수 있다면 녹림맹 마저 완전히 장악할 수 있겠지……참 그리고 보니 녹림맹에서 돕기는 하겠구나. 자신들의 사활이 걸렸으니.)

사은상,

그녀의 내심이 이번 결전에서는 삼성무림청의 승리가 확고하다고 굳혀지고 있을 때,

돌연,

[승리할 확신이있소?]

맑고 청아하며……

듣는 이로 하여금 무한한 위엄을 느끼게 하는 음성이 울려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음성은 육합전성으로 울려진 모호한 음성이었다는 것과,

때문에 이 음성의 주인은 황녹천의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어느 새……

소일초와 주소아 옆에 소리없이 솟아난 한 사람……

청의면사인이었다.

모습도 헤아릴 수 없고 사내인지 여자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청의 면사인,

한데,

이 청의면사인이 지닌 수려한 몸매는 바람만 조금 세게 불어도 휘영청 꺽일 것처럼 심약해 보였다.

거기에다,

청의면사 사이로 드러난 푸른 벽옥색의 동공,

그 동공은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신비감을 조성하고 있으니……

바로,

이 청의면사인의 뒤로 금의(錦衣)를 걸친 기도가 비범한 네 명의 노인이 정중히 시립하고 있었다.

금빛 수염에……

금빛 안광을 폭출시키며 사해를 떨어울리는 듯 한 이 네 노인,

이들은 다름 아닌 황녹천의 수족과 같은 녹림사존자(綠林四尊者)였다.

소일초와 주소아는 이미 청의면사인 황녹천이 나타남을 알고 있었는지 별 변화가 없었다.

이때, 소일초의 입에서는 어느 새 또다시 그 답지 않게 무량한 무게를 실은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마귀에게 연락은 되었소?]

[그들은 천산으로 갔다고 하오. 그래서 연락이 불가하외다.]

[천산? 연락불가? 그럼 당신은 벌써 내 조건 중에서 한 가지를 어겠군.]

소일초의 말은 단호했다.

그의 조건,

그것은 사마귀에게의 연락과 녹림맹의 임차가 아니었던가?

청의면사인은 벽옥색 동공을 살짝 빛내며 말했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소. 천산까지 가자면 그 기간만도 몇 달이 걸릴 것이오.]

[첫번째 조건에 기한은 없었어. 무조건 가장 빠른 시간내에 사마귀를 이곳으로 불러.]

소일초의 얼굴이 치켜들리면서 무서운 안광을 발하며 황녹천을 바라보았다.

[녹림을 지켜주는 댓가로는 비싸지 않은 조건이야. 만약……우리가 여기서 그만두고 물러나버린다면 녹림맹의 전멸은 불을 보듯이 빤한 일이지.]

황녹천과 녹림사존자의 몸이 부르르 떨었다.

[신행마동……맹세코……당신들이 삼성무림청의 주력인 삼혈단을 멸망시킬수 있소?]

[물론 당신이 한 가지 협조는 해야겠지……]

청의면사인의 섬연한 몸이 가는 진동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이어, 곧바로 되물어 오는 음성,

[……대체 그 한 가지 협조하는 게 무엇이오?]

소일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황 맹주(黃盟主)……이곳 녹림맹의 총인원은 얼마나 되오?]

[이곳에만 삼천(三千)!]

[음……삼천이라……]

[…………!]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소일초의 음성은 한동안 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소일초의 음성이 다시 이어졌다.

[…오늘밤 자시를 기하여 그 인원들 모두에게 싸울 준비를 시키시오.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을 쳐부셔야 하니까…… ]

[우리 녹림인들 만으로……!]

비명처럼 내뱉는 음성과 함께 황녹천의 섬연한 몸이 부르를 진동을 일으켰다.

그만큼 그의 벽옥색 아름다운 동공이 크게 흔들렸음은 말할 것도 없고……

하나 이때,

황녹천은 다소 싸늘하게 궅은 음성을 흘려냈다.

[신행마동, 당신은 본좌더러 이 녹림맹을 포기하고 도망치라는 것 같소.]

[반쯤은 맞았어.]

순간, 그림처럼 서 있기만 하던 녹림사존자의 몸에서 칼날 같은 분노가 터져 올랐다.

[무슨 소릴!]

[얼토당토하지 않는 말을!]

이때,

황녹천의 전신에서도 분노가 물보라처럼 피어올랐다.

[신행마동, 당신은 우리 녹림의 안위 따위는 아예 관심도 없었군.]

[…………!]

[본맹으로 적의 주력을 끌어들여 놓은 후에 우리끼리 싸우라고?]

[나는 당신 말이 반쯤 맞았다고 했어! 도망칠 필요는 없어. 단지 이 푸른 성을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 말도 마찬가지요. 이곳은 우리 모든 형제들의 수 백 년 삶의 터전이오.]

[…………!]

[귀하가 바라는 것은 곧 우리더러 삶은 터전을 버리고 죽으라는 말이 아니오?]

준렬한 황녹천의 말,

어느 새 소일초의 낯빛은 푸른 청동빛으로 일그러졌고……

그의 이마엔 굵은 힘줄이 돋아났다.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 그의 전신에서 폭풍과 같은 기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옆에서 주소아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황녹천! 그대야 말로 우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약속대로 삼성무림청의 삼혈단을 멸망시킬 충분한 대비가 되어있다.]

[…………]

[그런데, 그대들 녹림에서 그 정도, 만약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태를 가지고 그렇게 짜게 나오는가? 우리가 어리다고 토닥거리기만해서 그야말로 녹림을 너무 쉽게 지키려 하는 속셈이 아니냐?]

신랄한 어조였다.

삼혈단이 오기도 전에 녹림맹과 일전이라도 불사할 듯이 보이는 소일초,

그리고 황녹천의 속셈을 간파하고 있는 듯한 주소아의 말,

사실,

황녹천은 설마 소일초등이 혼자서 움직이랴 싶었다.

어디선가 백인장의 고수들이 암암리에 보호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삼성무림청과 싸울 생각이 없지 않았기에 선뜻 안방까지 제공했던 것이다.

그의 얼굴에 감도는 씁쓸한 미소,

주소아의 몸에서 나는 낮은 휘파람소리를 뒤로 하고 폭풍같은 기도를 뿜어내는 조그마한 체구의 소일초에 압도당한 듯,

그는 꿋꿋이 서있기도 힘이드는 듯 천천히 녹림사존자에게로 몸을 기댄다.

연하여 흘려내는 음성,

[신행마동……이 점을 생각해 주기를 바라겠소.]

[……?]

[당신들은 떠나면 그만이겠지만……이 녹림맹은 수십만 녹림도의 터전이라는 것을……]

[…………!]

[만일 당신들이 그점을 생각해 준다면 우리도 기꺼이 당신의 요구를 수락해 주겠소……]

[너는 더이상 나에게 어떤 결정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여전히 딱딱하게 무서운 눈빛을 발하는 소일초였다.

[이곳이 아니라도 삼성무림청을 쳐부술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다시 한번 내 성미를 건드린다면 그대로 철수해버리겠다.]

[…………]

[물론, 그전에 네 몸에 먼저 땅에 영원히 눕게 되겠지만……]

살기(殺氣)!

인간이 이처럼 무서운 살기를 발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모든 사람은 물론 소일초의 충천하는 살기에 주변을 날고있던 비성성마저 두려움에 날개를 접고 내려앉았다.

직접 그 살기를 마주대하고 있는 황녹천과 녹림사존자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못하고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소일초의 살기는 서서히 걷혀졌다.

(무서운……너무나 무서운 살기였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심맥이 파열되었을 것이다……)

황녹천과 녹림사존자는 그에 대한 두려움에 치를 떨었다.

이때 돌연,

[황녹천! 아직도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

주소아의 싸늘하고 냉오한 음성이었다.

[…………]

[이 밤이 새기전에 당신은 믿지 않으려 해도 우리의 말을 믿게 될 것다.]

[이 밤이 새기전에?]

[그래.분명히……!]

약간 말끝을 흐리던 주소아가 더불어 말을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마당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다.]

[…………]

[당신의 목숨은 하나이지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철저히 깨달아라.]

순간

[…………!]

황녹천의 섬약한 몸이 기이로운 떨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몸만큼이나 파문을 이르키고 있는 눈빛!

황녹천은 자신의 내면에서 치미는 어떤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는 것 같았다.

하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공은 더욱 큰 벽옥빛의 파장을 일으킨다.

(……나는 지금 저들의 말을 모두 따라야 하지 않는가?)

황녹천은 자신의 생각이 생각만 해도 무서운 듯,

쉴 새 없이 떨림의 전율을 일으키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즉시 부하들에게 자시(子時)까지 싸울 준비를 갖추게 하라.]

주소아의 음성이 소일초의 분노한 목소리 보다 부드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냉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황녹천은 그 두사람을 주시하며 참열한 선택의 고통에 젖었다.

한데 돌연,

[아미타불……]

소리,

한 가닥 장중하고 청아하여,

세상의 모든 번뇌를 말끔히 씻어주는 듯한 불호성이 사위를 때리며 들려오지 않는가?

그런데 그 불호성은,

소일초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팔방에서 동시에 울려왔고……

그리고 녹림사존자의 바로 뒤에서 울려왔던 것이니……

오오……보라……!

스스스스……

부서지는 달빛인가?

아니면 내리는 별빛인가?

사방 백 여덟 방위에서 소리없이 솟아난 고월창송(孤月蒼松)한 풍모의 노승들을……

그들은 하나같이 황색가사(黃色袈裟)를 걸쳤고,

위엄이 충만하여 흐르는 고매함을 지닌 노승들이었다.

그리고,

교자의 바로 앞에 소리없이 솟아난 한 명의 젊은 승려,

십 팔구 세가 되었을까?

수려한 눈빛은 하늘을 닮았고……

그의 전체적인 얼굴은 온화함과 따사로움이 불존처럼 성스럽게 빛나기조차 하다.

거기에다,

귀족인양 고귀롭게 피어오르는 저 기질……

한데 보라!

연화(蓮花),

활짝 만개한 연화가 허공에 떠있고……

이 청년승은 바로 이 연화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소림의 최상승 경공절기인 연대구품(蓮臺九品)이다.

칠십이종 절기의 하나인……

그런 청년승은 나타나서 지금껏 그 하늘 같은 시선을 소일초와 주소아에게 던지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을 향하고만 있던 청년승의 입이 열렸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조금전 까지 분노를 터뜨렸던 소일초가 합장을 하면서 똑같이 청년승의 불호를 흉내냈다.

청년승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행마동……소승은 소림의 도봉(渡峰)이외다.]

[소동(小童)은 백인장의 소일초외다.]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의 할 말 만 하는 청년승 도봉이었다.

[소승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녹림맹주의 청을 받아서 이외다. 녹림마저 삼성무림맹에 흡수된다면 무림의 전체 균형이 깨어지는 것이기에……]

시종 침묵,

청년승이 나타난 이후로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주소아의 눈빛이 그 말을 듣는 순간 서늘한 기운을 뿌려냈다.

녹림맹주인 황녹천은 어떤 수단으로 소림을 끓어들였단 말인가?

자신들과 황녹천등이 아웅다웅 다투느라고 그들이 다가선다는 비성성들의 보고 마저 받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

[끄윽……취한 세상……취한 눈으로 바라보니……크윽……끅……오락가락 할 수 밖에……]

확!

술트림의 역겨운 냄새를 싣고 어둠의 일편에서 취한 음성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비틀비틀……

한 명의 거지소년이 갈지자로 걸어왔다.

봉두난발(蓬頭難髮)에 ……

헤어질대로 헤어진 악취 풍기는 의복(衣服)은 기우지 않은 곳이 더물었고……

얼마나 세수를 하지 않았음인가?

얼굴에 낀 때는 아예 새까만 빛이어서 소년의 얼굴을 헤아려 볼 수 조차 없다.

거기에다,

볼품사납게 산발한 머리에 아무렇게나 둘러진 붉은 머리띠,

그리고, 오른손에 치켜든 항아리 만한 호로병……

이쯤되면,

과히 이 소년거지의 형상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비틀비틀……

[커억……끅……이놈의 술버러지……천하의 개방의 홍건(紅巾)개를 울리누나……울리누나……에이……오늘의 술버러지……]

벌컥벌컥……

혀 꼬부라진 소리와 함께 거대한 호로병을 거꾸로 처박는 소년거지,

아니,

스스로 홍건개라 했던가?

한데 오오……

개방의 신분(身分)을 나타내는 허리에 늘어진 여덟 개의 매듭이라니?

그렇다면 이 거지소년은 아홉매듭의 개방 방주(幇主)보다 겨우 한 배분 낮은 신분을 지니고 있다는 애기인데……

[꺼억……우라질 삼성무림청인지 뭔지……한 번 싸워보지……그러면 내가 죽던지 지가 죽던지 결단이 나겠지……꺼억……끅……뒤집힌 세상……]

혀꼬부라진 소리를 내며 히죽 웃기까지 하는 홍건개,

한데,

그의 두 눈만은 그 어떤 것보다 맑고 빛나며 지혜로움이 넘실거리지 않는가?

어쨌거나,

지금 이 자리에,

무림천년 뿌리인 전설의 구파일방 중 소림과 개방의 인물들이 나타난 것이니……

지금,

백팔 방위에서 빈틈없는 포위의 원진을 이루고 있는 황색가사의 노승들은 바로 소림의 백팔나한(百八羅漢)들이다.

한 번도 무림에 거취를 드러낸 적은 없으나……

거은 일백 오십 년 동안이나 소림의 신화를 창출하고 있는 소림 백팔나한……

이 미증유의 힘을 지닌 소림의 거력 뒤로,

홍건개로 미루어 보아 개방의 고수들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듯 하니……

이때, 청년승 도봉과 홍건개가 번갈아 가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미타불……신행마동께선 큰 실수를 하셨소이다.]

[꺼억……큭……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보였기로서니……삼성무림청의 주력을 아무 대책없이 녹림맹으로 유인해내다니……우라질……꼬마야 너는 구파일방 보다 오히려 더 강하다는 것이냐?아무리 세상이 미쳤기로……커억끅……]

소일초의 입이 열려지기도 전에 주소아의 말이 먼저 떨어졌다.

[술병을 들었기에 괜찮은 놈인가 싶었더니, 입으로는 개소리만 하는군,]

[뭐……빌어먹을……끄윽……계집애가……뭐라고?]

벌컥벌컥……

호로병을 거꾸로 처박으며 술을 들이키는 홍건개,

이때, 청년승 도봉이 심해처럼 맑은 눈빛을 굴리며 입을 열었다.

[신행마동……빈승은 구파일방과 천하정파인의 이름으로 녹림맹을 도와 삼성무림청과 싸우고자 하오……]

이때, 지금까지 그들의 떠드는 말을 들으며 이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기만 하던 소일초,

문득,

그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더할 나위없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낮빛,

[그러니까 당신들은 내가 너무 녹림맹을 핍박하지 말아라고 이야기 하는 듯 한데……건방지기 짝이없는 자식들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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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술 마시는 朱小阿

 

 

 

주소아(朱小阿),

그녀는 백인장에 있을 땐 결코 이렇지 않았다.

얌전하고도 영리하며, 신비했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던 소녀였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어른을 꼭 알아보았고 행실이 발랐다.

그런데……

그런 주소아가 소일초와 함께 다니는 요 얼마동안 성격이 많이 변한 것이다.

마치 소일초를 닮아 가기나 하듯이 그녀의 심술도 늘고 무림인들을 아무렇게나 무시하고 했다.

어쩌면,

소일초와 맞서 싸우자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듯도 한데,

아직 그녀는 나이 말고는 소일초를 이길 만 한 것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고찰에서의 치욕적인 패배이후로 그를 정면으로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또 싸우고 난 후에 무슨 짓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도 소일초의 행실이 미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마냥 미운 것만은 아니었다.

소일초의 짖궂은 짓도 그렇게 싫지 많은 않았다.

더우기 전혀 장난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소일초는 또 사은상이나 사옥상에게 짖궂은 짓을 할 것이다.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이 싫은 그녀다.

차라리 자기에게 하는 것이 낳지……

지금 주소아는 한 다발의 국화를 꺽어서 요생각 조생각 하면서 꽃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이곳,

 

녹왕전(綠王殿),

 

사방 백여 장의 반경에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는 꽃의 천국(天國)……

바로 이 꽃의 바다에 날아갈 듯 서있는 한 채의 누각(樓閣)을 일컬음이다.

그리고,

전에는 녹림맹주 황녹천의 거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신행마동 소일초의 거처가 된 곳이기도 하다.

아니,

신행마동 소일초가 잠시 빌린 곳일 뿐 완전한 거의 거처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자도 녹왕전의 이십 장 이내엔 접근이 불허되는,

절대금역(絶對禁域)이 되었다.

왜냐하면?

접근의 대가는 곧바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심지어는 죽음(死)으로 까지 지불되었으니까……

 

실내,

사방이 깨끗하게 정돈된 아담하고 고아하기 이를 데 없는 실내이다.

하나의 침상에……

자단피의 의자가 두 개 ……

바로 이 실내에서,

돌연,

 

낄낄낄------

 

듣기만 해도 고약한 악동의 웃음소리가 휘장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부르르 온 몸을 떠는 탁자에 앉은 두 미녀,

장강 변에서 포로로 잡았던 바로 사은상,사옥상 자매였다.

또 소일초가 주소아가 없는 틈을 타서 무슨 장난을 한 것인가?

그 동안 얼마나 심하게 시달렸는지 사은상은 노을 빛 얼굴은 초췌하여 처음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핼슥했다.

고민따위는 모르는 사옥상은 단지 소일초의 웃음이 또 무슨 짓을 하기 전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뿐,

먹기도 잘 먹어서 건강해 보였다.

이때,

덜컥-----

방문이 열리면서 주소아가 한 아름의 국화를 들고 들어왔다.

[얌전히 침상에가서 잠이나 더 자……]

그녀를 보고 두 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소일초는 두손을 등뒤에 감추었다.

[지금 숨긴게 뭐야? 빨리 꺼내놓지 못해?]

[헤헤헤……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없어.]

두 손을 앞으로 숙 내밀었는데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주소아는 분명히 소일초의 손에 뭔가가 들려 있는 것을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보았었다.

물증을 잡지 못하자 사은상 자매를 홱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은장은 질끈 눈을 감을 버렸고,

사옥상이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게서 이걸 가지고 갔어. 그리고 언니에게서는 이걸……]

사옥상의 한 손은 사은상의 하체를 가리켰다.

말로하지 않아도,

주소아는 소일초가 두 여자에게서 무엇을 훔쳤는 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당장 돌려줘……아무튼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해……어휴 골치야……!]

[벌써 돌려줬어, 발 옆에 다 놓여 있을 거야.]

소일초가 어느새 도둑질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흑흑……]

이 세상에 존재하여,

미(美)란 이름의 굴레를 쓴 그 어떤 것에도 비유를 해낼 수 없는 노을 빛 피부를 가진 미녀,

바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안타까운 흐느낌이었다.

분노와 수치로 죽고만 싶은 그녀였다.

주소아는 도끼눈을 뜨고서 소일초를 한 번 노려보았다.

이어,

사은상의 가슴에 그녀가 꺽어온 국화를 한 아름 안겨주면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주었다.

[미안해요. 이번 일 만 끝나면 풀어드릴께요. 이제 내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저 말썽꾸러기를 지킬께요.]

본래,

심성이 고왔던 주소아다.

비록 요즘들어 많이 악랄해 지기는 했어도, 사은상의 눈물과 사옥상의 자신의 처지마저 깨닫지 못하는 천진함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도 순진한 감상적인 소녀였기에……

찰랑……찰랑……

세상의 온갖 비리(非理)와 추악함을 잊어 버린 동공에 눈물이 솟아났다.

여인의 감정이라고는 오직 색귀에게서 들었던 육체적 반응 외에는 모르는 소일초는 이러한 사정을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또 한쌍의 눈빛이 있었다.

천진한 아기같은 심성의 사옥상, 바로 그녀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 × ×

 

 

[내 말 잘들어. 오늘 낮에 백인장에서 고모가 편지를 보냈어.]

[나는 못 봤는데……]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에서 소일초와 주소아 마주보고 있었다.

[내가 치웠어. 고모부의 상세가 지난 번에 사옥상에게서 받은 약을 복용한 이후로 급속도로 나아지고 있데……]

[그럼 언제 쯤 다 나을 수 있는데?]

[그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너는 아무래도 지금 행동을 좀 고쳐야 해.]

[또 잔소리……]

[고모부는 사옥상에게 받은 약으로 빨리 치료되고 있는데 너는 그들 남매를 괴롭히기만 한잖아. 그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라고……]

소일초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아? 그 여자들은 녹림맹도들을 무수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삼성무림청의 요인들이야.]

[…………]

[아버지가 그렇게 다친 건 삼성무림청때문일 가능성이 십중 팔구고. 그렇다면 네가 인질로 잡혀있었다는 곳도 그곳이라는 이야기야.]

[…………]

[그런데도 그 여자들에게 관대해지라고? 흥, 더 잔인해 질 수 도 있어.]

[하지만, 그녀들이 고모부를 해친 것은 아니잖아? 또 더우기 여자로서 치욕을 주지는 않을 수도 있잖아?]

주소아도 마주 소리쳤다.

소일초는 잠시 입을 다물고 주소아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더 이상 그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겠어. 대신, 그들에게서 삼성무림청이 사수 중의 삼수(三手)와 관련이 있다는 자백을 책임지고 받아내.]

[알았어.]

 

침상에서의 두 어린 남녀의 어린 것 같지 않은,

장난기라고는 전혀 들어있지않은 어른스러운 대화,

그들은 어리지만 무섭도록 치밀한 계획하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소일초와 주소아가 같은 침상을 쓰는 방에서 멀지 않은 다른 방,

무공을 폐쇄당한 사은상 자매가 침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녁이 오면,

그녀는 문에 빗장을 걸고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지만,

소일초는 도둑고양이 처럼 스며들어와 두 자매를 만지고 쓰다듬고 짖궂은 장난을 하다가 가곤 했다.

사옥상은 그냥 두면서도 자기는 꼭 아혈(啞穴)을 집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였다.

지금,

사은상은

한(韓)과 증오의 눈빛을 가닥가닥 실어내면서……

(천하의 사은상이……이런 초라한 몰골로 잡혀있어야 한다니……저……젖비린내 나는 꼬마에게……성(性)적인 수모까지 당해가면서……)

문득,

자조의 새파란 광망이 그녀의 두 눈에서 불을 뿜고,

그녀는 하얀 이가 바스러지도록 이빨을 가라붙였다.

(되돌려 준다……오늘의 이 수모에 천배 만배를 더하여 되돌려 준다……한데, 도대체 저 꼬마놈의 의도는 무엇일까?)

소일초를 생각하던 사은상의 눈빛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켰다.

사실,

그녀는 며칠 동안 소일초를 지켜보면서 한두 번 놀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철부지 장난꾸러기라고하나 세상의 어떤 빙심(氷心)의 여인도 흔들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귀여운 얼굴……

그얼굴의 아름다움을 타고 도도히 대하처럼 흐르는 신비한 기질은 타인으로 하여금 절로 적대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거기에다,

그와 함께 있는 주소아라는 계집아이……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을 지녔으면서도 사악할 정도의 기괴한 무공을 구사하는 그녀……

천상의 선동들인 듯 한 두 어린 남녀의 의도는 아무래도 무림에 알려진 것 처럼

삼성무림청과 무림정벌이라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같았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기로서니,

절세고수로 알려진 백인장의 장주 소선풍이 있는데,

백인장에서 두 어린 아이가 밖에나와서 마음대로 날뛰게 하는 것도 이상했다.

들리는 바로는 여태까지 신행마동 소일초가 집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마다,

백인장의 여주인인 그의 어머니가 직접 무림에 나와서 잡아갔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오기도 전에 정식으로 출두를 선언하고 나왔지 않은가?

사은상, 그녀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들과 꾸준히 싸워오던 녹림맹의 맹주마저 소일초에게 그토록 쉽게 안방을 내주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그녀였다.

이때,

[아직 자지 않으면 문좀 열어줘요.]

문이 덜컹거리며 주소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은상은 바짝 긴장했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주소아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기에는 탐스럽게 구워진 닭고기와 음식들이 놓여져 있었다.

한 순간,

사은상의 눈이 의아심에서 크졌다.

[이제 괜찬아요. 언니……!]

주소아가 빛이 날 정도로 흰 얼굴을 갖다대면서 말했다.

[이제 그 꼬마가 더이상 언니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주소아의 말투는 낮에 이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한이 골수에 사무친 사은상은 살살맞게 돌아서 사옥상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걸어가 버렸다.

천천히 주소아는 사은상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사은상의 앞에 준비된 음식을 한 숟갈 떠 사은상의 입에 들이 밀었다.

[먹어요……]

순간,

사은상의 그 차가운 눈빛에 강한 욕구가 배어났다.

들이 밀어진 음식을 삼키고 싶은 짐승 같은 욕구가……

그러나 끝내,

사은상은 찬바람이 들도록 싸늘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소아는 숟갈은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을 흘려냈다.

[언니! 언니는 바보야……]

[…………]

[언닌 벌써 나흘 째 굶었어……이대로 계속 굶는다면 무공도 폐쇄된 그몸으로는 죽게 돼……]

[…………]

[언닌 죽는 것이 억울하지도 않아……이렇게 초라하게 말이야? 그 꼬마에게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주소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니, 아니 삼성무림청의 소공녀……어서 이 음식을 먹어요……그리고 사는 거야……!]

순간,

냉엄히 고개를 돌리고 있던 사은상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치워!]

[…………]

[더 이상 추근대면 그 음식에 침을 뱉겠다.]

주소아는 얼굴에 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사은상……나나 일초에 대한 저주가 크다면 왜 더이상 발악을 해보지 않는 거지?]

그녀의 어투는 다시 달라졌다.

[…………]

[삶을 체념하지 않았다면 먹는 거야……더구나 이곳은……]

[……?]

[녹림맹……!]

[…………!]

[나는 몰라도 그 꼬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당장이라도 당신을 이 녹림맹의 사람들에게 넘겨 버릴 지도 몰라……]

[…………!]

[그럼, 녹림맹에서는 우리에게 크게 감사하겠지? 무수한 녹림인들을 살해한 당신들을 잡아주었다고……그들이 당신들을 어떻게 할지는 아마 쉽게 상상할 수 있겠지?]

사은상은 도무지 어린애 같지 않은 주소아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일초 등은 자기들의 정체를 녹림맹에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당신들은 우리에게도 이용할 가치가 없는 몸이 되었어.]

찰나,

사은상은 싸늘히 소일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따위 꼬마들에게 죽을 이 사은상이라면?]

[사은상이라면?]

[이 땅에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문득,

그녀의 싸늘한 냉음에 주소아는 얼굴에 핀 미소를 거두어 들였다.

[말해 두겠는데……우리 아니 그 꼬마의 목적은 당신들을 이용하여 삼성무림청의 주력을 이곳에 끌어 들이는 것이었어.]

[…………]

[그리고 그 계획대로 오일 만에 삼성무림청의 정예고수들을 이곳으로 끌어 들이게 됐어.]

찰나, 사은상의 두 눈에서 파릇한 광망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끝장이다.]

[왜?]

[삼성무림청의 정예인 삼혈단이 힘을 합치면 천하에 당해낼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은상의 득의와 싸늘함이 풀려나는 음성에,

주소아는 지웠던 웃음을 피워올렸다.

[호호……그것은 두고 보면 알 일이지……더구나 내 일이 아니고 소일초가 처리할 일이니까. 허나 분명한 것은 당신들은 우리게 이미 이용가치가 없어졌다는 거야.]

[…………!]

[게다가 난 일초가 당신들을 집적거리는 것이 영 싫어……]

[…………]

[정 그렇게 버틴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당신들을 한 시라도 빨리 죽일 수 밖에 없는 일이지.]

순간,

사은상의 싸늘한 얼굴에 가는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죽일지도……모른다……저 계집애의 아름다운 웃음 속에 무서운 살심이 숨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꼬마놈은 ……소름이 끼치는 괴물들을 끌고 다니는 무림에 악명이 자자했던 신행마동이 아닌가?)

그녀의 등줄기를 후벼파는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걷잡을 수 없이 치달렸다.

생명,

단 하나 뿐인 생명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엄청나다.

더구나 독기와 원한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생명을 얻고자 할 것이다.

사은상,

아무리 차가운 빙심의 그녀라 해도 역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일단,그녀는 생명의 애착이 가슴에 피어오르자,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자신의 팔만사천모공에 팽만하여 터지는 충격을 느꼈다.

이런 그녀의 가슴을 더욱 서늘하게 만드는 주소아의 미소,

어쩌면, 이 계집애도 그 꼬마 못지않은 독심의 소유자 일 것이다.

[자! 먹어……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일순 한기로 뭉쳐진 사은상의 얼굴에 단호한 결심의 빛이 흘렀다.

(그래 좋아……먹자……그리고 살자……그리하여……받은 것에 천만배를 되돌려 주자…… 이 악마같은 계집애……꼬마놈…… 애송이 꼬마놈…… 이 어린 마물들……!)

사은상은 그녀의 입에 들이밀어진 음식을 덥석 삼키기 시작했다.

주소아의 미소 띈 얼굴이 끄덕여지고,

또 한 숟갈의 음식을 떠 사은상의 입으로 가져가니……

이것은 마치 어미가 새끼에게 밥을 떠먹이는 광경이었다.

한 순간, 또 한 숟갈의 음식을 떠먹이던 주소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니……저 사옥상 언니와는 쌍둥이야?]

사은상은 음식을 삼키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삼성무림청의 주인이 언니 아버지야?]

[사부……]

(이 계집애가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하는 군, 또 말투를 바꿨어……)

[하면 어니의 사부는 삼수 중 세째인 사진성(史震聲)이겠네?]

단정짓듯 말하는 주소아의 음성에 사은상의 고개가 다시 무심코 끄덕여졌다.

동시에 주소아의 얼굴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미소가 피어났다.

[언니,고마워!]

단 세 마디의 음성과 더불어 주소아가 몸을 일으키자,

돌연,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사은상의 전신이 부르르 떨었다.

거기에다,

[우욱……!]

씹어 삼키던 음식까지 토해내는 것이니……

[아니다……나의 사부은 사진성이 아니다……!]

사은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더이상 주소아는 그녀를 상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사박사박 걸음을 옮겨 방을 나갔다.

[문단속 잘하고 자요. 혹시 모르니까……]

문밖에서 주소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소아는 소일초의 침실로 들어섰다.

소일초는 침상의 휘장을 걷어젖힌 채 술병을 들이키고 있었다.

[술맛 괜찮아?]

[녹림맹의 술은 기가 막히는 데가 있어. 차라리 도둑질 집어치우고 주루를 하면은 더 편히 살것 같은데……]

[나도 조금만 줘볼래?]

주소아가 침상에 걸터 앉으면서 말했다.

소일초가 두 말 않고 술병을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커----- 혀가 착 감기는 것이 술도 괜찬은 물건이네……]

[정말 그렇지? 야……우리 더 잘 통할 수 있겠는데……]

소일초가 반색을 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새 술을 더 갖고 올테니까……]

[어디가서?]

주소아가 사과처럼 발개진 얼굴로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디긴 어디야. 술창고에 가서 슬쩍 해오면 되는 거지……배운 도둑질 이때 써먹어야지.]

주소아는 피식 웃었다.

과연,

신행마동이란 이름에 어울리게 소일초는 나가자마자 몸통 만큼이나 굵은 단지를 들고 들어왔다.

막고있던 소가죽을 벗기고 나자 향긋한 술냄새가 방안에 가득 퍼졌다.

침상 한가운데다 술독을 놓고 두 꼬마는 찻잔으로 떠마셨다.

[기가막히다……이렇게 신나게 술마신 적은 없었는데……]

[나도 술이 이렇게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벌개진 얼굴로 연신 술을 떠마시며 주소아가 말했다.

[확실히 술은 여자를 곁에 두고 마셔야 한다더니……어른들 말이 그른 게 없군.]

[그 뜻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야?]

[뭔데?]

[원래부터 주색(酒色)이라고 했잖아. 당연히 술 다음에는 여자를 찾는 거라구……]

주소아는 이미 취기가 돌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말을 잘 아는 척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난, 주색투도(酒色偸賭)에 모두 통달했어. 사마귀로부터 직접배웠거든.]

[까불지마. 주투도라면 몰라도……아직 꼬마가……난 이래도 이미 이 년 전에 초조(初潮)를 치른 여자란 말이야……]

[내가 재미나는 것을 한 가지 보여주지……]

그말을 마치자 마자 소일초의 입에서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풀린 눈동자로 주소아가 말했다.

[별 것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소일초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는 전혀 흩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공처럼 빙빙돌며 뭉쳐졌다.

그기에서 강렬한 주향이 풍겨나오고 있었다.

[주정(酒酊)이구나!]

주소아가 손뼉을 쳤다.

소일초는 입을 다물고 공중에 떠있는 주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구름같은 주정은 점점 작아지면서 조그마한 구슬로 변해버렸다.

다시 소일초가 공중으로 던지자 구슬이 퍽 흩어지며 구름같은 주정이 용(龍)의 모습을 만들어 냈고 스르르 바뀌며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사람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주소아는 연신 재미있어하며 박수를 쳐댔다.

이 기술은 소일초가 주귀(酒鬼)에게 배운 주전신공(酒箭神功)을 응용한 것이었다.

소일초가 입을 벌리자 여인의 형상을 이루고 있던 주정은 후루룩 빨려들어가 버렸다.

소일초의 얼굴이 더욱 벌개졌다.

주정을 한꺼번에 흡입한 때문이었다.

한 동안 횡설수설하면서 술을 퍼마신 소일초와 주소아는 술독을 내려 놓은 후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어땠어?]

소일초의 말이다.

[예상대로 였어. 사진성의 제자래. 같은 성씨라서 딸인줄 알았는데……]

주소아는 완전히 취해서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이 순간,

소일초는 곁에 퍼질러진 주소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주소아의 빨간 얼굴이 희미한 황촉불에 비쳐 소일초를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그녀가 몸을 돌려 소일초의 몸에 다리를 걸쳤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여 그녀의 뺨 위를 타고 흘러내릴 것 같다.

[왜……나는 삼 년 전에 일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을까?]

[…………]

[몇 달 만……몇 달 만 지나면……고모부 상처가 완쾌되겠지. 그럼 고모부는 내 기억을 돌려 주실 수 있을 지도 몰라……]

[내 말만 잘들으면 내가 기억을 치료해 줄께……]

[사기치지마……네가 무슨 수로……괜히 수작이나 걸어보려는 거지……]

[어떻게 알아.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나 말해.]

[말했잖아. 내 목탁이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목탁으로 펼치는 무공도 있어? 잘못되면 녹림맹이 폭삭 망하는 수도 있어……일부러 이곳의 위치까지 그쪽에 몰래 알렸는데……]

주소아의 혀 꼬부라진 소리에는 염려가 들어있었다.

[목탁 속에 축융화탄이 가득들었어.]

[뭐?]

호호호------

히히히------

두 가지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웃음이 잦아지자 소일초의 음성이 다시 흘렀다.

[삼성무림청……그들이 언제쯤 이 녹림맹을 공격할까?]

[아마 다가오는 새벽이 아니면 내일 밤이겠지. 물론 새벽일 가능성이 더 많지만……]

[뭐? 그럼 얼마 남지 않았을텐데……]

놀라면서 벌떡 일어서려는 소일초의 목을 주소아가 천연덕스럽게 휘감았다.

[괜찮아. 비성성들이 교대로 하늘에서 지키고 있어. 때가 되면 와서 깨울거야……]

주소아는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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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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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아도래영(我到來迎), 내가 왔다! 맞이 하라!

 

 

 

성(城),

그것은 실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하나의 성이었다.

성 둘레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십여 리도 넘을 것 같고,

황혼의 노을 아래서 보자니 물빛보다 더 새파란 녹빛이 마치 세외선경(世外仙 景)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성의 크기라든가 아름다운 경관 때문이 아니었다.

성은 놀랍게도 깊은 산속 계곡 속에 있었다.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바다에 떠다니는 낙엽처럼 ,

푸른 숲의 바다 속에 하나의 섬처럼 자리하고 있는 성(城).

호리병 처럼 입구가 좁은 계곡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오오……그렇다.

그 거대한 산속의 녹색 성(城)은 바로 수천만 개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그 위에는 수많은 고루거각과 전각은 물론이요,

인공호수도 있었고 울울창창한 과수림(果樹林)도 있으니……

이것은 성이 이토록 깊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황혼 아래……

이는 바람으로 인해,

나무들의 만경창파를 유유히 헤치며 장엄히 떠다니는 듯한 녹색의 성,

 

<녹림맹(綠林盟)>

 

바로 이것이다.

장강 일대의 일천팔백대소 녹림채(綠林寨)를 관장해 왔으며……

십만 녹림도(綠林徒)들의 총 본산으로 우러러지는 푸른 숲의 제왕 녹림맹……

백인장과 청옥검궁, 삼성무림청이 땅의 지배자들이라면,

녹림맹은 숲을 지배하는 하늘 중의 하늘이다.

땅은 통일되어 있지 않았지만,

숲은 통일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림에서 손을 뻗친 적이 거의 없었던 녹림을 잠식해 오기 시작한 세력이 있었으니,

삼성무림청,

바로 그 악명 높은 장강 일대의 삼성무림청이다.

땅에서는 몰라도, 숲에서는 언제나 하늘은 오직 하나였다.

그런 만큼……

이 두 세력은 서로 숲을 빼앗고 지키기 위해 이미 수없이 전쟁을 벌여온 상태였고,

아직도 그 피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부언해 둘 것은……

녹림맹의 대맹주(大盟主)인 황녹천(黃綠天)은 그 이름만 전해지고 있을 뿐……

일체가 비밀에 쌓인 중원제일의 신비인(神秘人)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누굴까?

아무리 그 의혹을 해결하려 해도 여전히 신비로 가려져 있는 장막의 인물 황녹천……

 

× × ×

 

녹왕전(綠王殿),

녹림맹의 심장부(心臟部)요,

핵심인 곳이다.

헌데 돌연,

슛……

삼엄한 경비(警備)와 무수한 기관장치(機關裝置)로 엄중히 지켜지고 있는 녹왕전으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일,

바람인 양 검은 그림자가 스쳐지나간 사이로,

스스스……

몸서리치는 푸른 빛이 소리도 없이 폭사되는 것이었고,

일시에 녹왕전은 그 푸른 빛으로 인하여 밝게 변해버린 듯했다.

뿐인가?

그가 스쳐 지나는 뒤로,

녹왕전의 곳곳에서 우수수 낙엽이 지듯이 떨어져 나뒹구는 경비고수(警備高手)들……

문득,

스________ 슷!

한 줄기 바람처럼 유령과 같은 흑영(黑影)은 녹왕전 가장 깊숙한 내전에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내전(內戰),

능라휘장,

상아빛 침상,

용봉촛대와 백옥탁자,

내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고 넓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아찔아찔한 광택을 내고 있어 지고한 기운(氣運)과 귀풍이 물살처럼 쇄도하고 있었다.

바로 이 화려의 극(極)을 치달리는 내전의 한편에 드리워진 능라휘장,

소리없이 스며든 흑영은 그 능라휘장을 향해 불꽃 같은 시선을 쏟아내고 있는데……

오오……이런 일이라니?

슈슈슈슈……

그 흑영은 전신에 검은 기운을 가득 피워올린 채 자신의 한몸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동시에,

이 검은 인영(人影)의 몸에서 쏟아지는 기운이 너무도 가공해서인가?

돌연,

능라휘장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그림자의 호흡소리가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한 순간,

눈을 새파랗게 빛내며 휘장을 향해 바라보던 흑영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흘려냈다.

[……황녹천……나와라!]

아름다운 목소리……

흑영은 여자였던가?

아무튼,

그가 부른 이름 황녹천!

황녹천이라니?

그렇다면 중원제일의 신비인인 황녹천이 저 휘장 속의 그림자란 말인가?

어쨌든,

휘장 속의 그림자은 일체의 대답도 해오지 않았다.

그러자,

더욱 가공할 검은 기운을 일으키며 흑영은 제삼 아름답기 그지없는 옥성(玉聲)을 소곤거리듯 내뱉었다.

[이곳을 비워라………이제부터 이 녹림맹은 잠시간 내 처소가 되어야 한다. 황녹천! 빨리 나와라.]

이때 돌연, 지금껏 침묵만을 고수하던 휘장 속의 그림자가 최초의 음성을 터뜨렸다.

[그대는 누구인가? 남자도 아닌 것 같고 나이가 많은 것 같지도 않군……]

소리,

더할 수 없이 청아하고 맑으나,

어디서도 느껴보기 힘든 위엄이 서린 음성이 최초로 터져나왔다.

그런데, 그 음성은 도저히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비로움 그 자체일 뿐이었다.

사방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아니 어쩌면 자신의 영혼에서 들려오는 듯하기도 한……

이때,

섬뜩한 검은 안개에 휩싸인 채,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침입자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옥성을 흘려냈다.

[흥! 시시한 육합전성(六合傳聲)이군, 스스로 신비인을 자처하는 황녹천이 남의 이름을 묻다니 웃기는 노릇이군.]

[본좌는 당신의 신분을 물었다.]

[호호호……궁금하면 직접 한 번 맞추어 보지 그래……하나……]

[…………]

[황녹천……당신에게 그다지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도록 하지……]

순간, 청아하고 아름다우나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음성이 신음인양 새어나왔다.

[그대의 몸에서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는 군!]

[호호……맞았네……그렇다면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알았나?]

[취풍녀…………]

[틀렸어……나는 취풍녀가 누군지도 몰라. 한 가지 더 알려 주지……우리 집은 여산에 있어……완전히 우리집이라고는 말하기 좀 뭣하지만……]

[백인장(百刃莊)!]

또다시 예의 그 맑고 청아한 음성이 비명처럼 튀어나왔다.

[맞았어……잘도 알고 있네 ……]

[…………]

[하지만……그렇다고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혹시……신행마동?]

[천만에……당신은 설마 내가 징그러운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신행마동은 남자애란 말이야!]

순간,

또다시 예의 그 음성이 비명과 신음을 섞어 터져나왔다.

[혹……조부인?]

[쯧쯔 틀렸어……중원제일의 신비인을 자처하는 자가 상당히 머리가 나쁘군 그래, 그분이 어떤 분이 신데 한 밤 중에 당신같은 자의 침전에 뛰어들겠어……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렇지……]

[…………]

[백인장에 또 다른 절세고수가 한 사람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

[으음……]

[다시 말해 봐……]

[백인도객 중의 한 사람인가?]

[또 틀렸군……그 들은 분명 고수들이지만……호호호……나한테는 늘 한 수 양보하는 처지야……]

그 소리를 들은 황녹천은 더욱 혼란스러운 듯 했다.

세상에 그런 고수가 백인장에 있었나?

[우리 녹림맹은 백인장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데……]

[나를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어.]

순간,

녹왕전의 일편에서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본 황녹천을 너무 무시하는 군……]

찰라,

검은 안개막을 치고 있던 인영의 몸이 세차게 요동쳤다.

[호호호호……그렇군……이제 보니……내가 당신을 너무 무시했어……중원제일의 신비인인 귀하를……호호호……]

맑고 아름다우며 건방지기 짝이 없는 듯한 어린 여자의 웃음소리가 묵빛 기류 속에서 한동안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따라,

휘이이휘휘휘------

높은 음으로 울려퍼지는 휘파람 소리!

한데 바로 이때였다.

돌연,

[어쨌던 반갑소. 당신이 누구이든!]

지금껏 혼란속에서 흑영의 정체를 알기위해 커졌던 음성이 조용히 가라앉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비웃는 듯한 음성을 흘러내는 게 아닌가?

[본좌보다 더 신비한 척하는 귀하와 조용한 해후는 잠시 후에 하도록 하겠소……]

[뭐…?]

흑영이 뾰족한 음성으로 반문을 화살처럼 퍼부을 때,

[흥분하지 말기 바라오. 귀하! 내가 마련한 곳에서 잠깐만 기다리면 될 게요.]

황녹천의 음성이 은근한 어조로 가라앉았다 싶을 순간!

쩍!

[헉!]

흑영이 밟고 있던 대리석 바닥이 지각할 수 없는 사이에 갈라지고,

흑영은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흡입력이 무섭도록 빨아들이고 있음을 느끼고 다급한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곧바로,

[호호…… 황녹천 당신 따위가 감히 ……]

한 소리 간드러진 소성과 함께 흑영은 길게 몸을 뽑아올렸다.

하나 이것은 또 웬일인가?

[아악……!]

흑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몸이 더욱 깊숙이 빨려든 것이니……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는 대신에 다급한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동시에,

꽝_____!

둔착한 소리와 함께 대리석 바닥은 다시 원위치를 회복해 버렸고……

이때,

휘장 속의 그림자가 다시 심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경악을 가라앉히는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서운 고수였다……백인장에서 무슨 일로 우리 녹림맹에 고수를 파견했을까? 그것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수를……]

휘장이 다시 흔들렸다.

[또다시……누군가가 오고 있다.……한 둘이 아닌 것 같은데……이들이 정말 백인장의 고수들일까?]

곧바로,

끅끅-------!

끽---끅------!

한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괴성과 함께,

스스슷……!

네 개의 흑영이 성광처럼 날아들었고……

푸스스스스……

휘장 속의 그림자가 형체도 없이 소멸된 것은 동시였다.

찰나간,

[캑!]

[끅……캐객……!]

두 흑영이 입에서 헛바람을 삼키는 듯한 비명이 터지나왔다.

동시에,

털썩털썩 짚단처럼 나뒹구는 네 흑영……

한데,

오오……

섬뜩하리만큼 검은 털이 전신에 돋아있고 겨드랑이에는 박쥐처럼 날개가 달려있는 인간을 닮은 괴물(怪物)들이아닌가?

이 순간,

스스스스……

흩어졌다 모이는 휘장 속의 그림자,

그리고 침통하게 터지는 경악성,

[믿을 수 없는 일……어떻게 남만에서 멸종했다고 전해지는 비성성(飛猩猩)들이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음……]

쓰러져 있는 비성성들은 털북숭이 손에 각기 한 장씩의 종이를 펼쳐든 채였다.

 

------아도래영(我到來迎)

 

[내가왔다 맞이해라?]

대체 누가 왔다는 말인가?

도대체……

믿을 수 없는 경악에 찬 음성이 내전에 울려퍼질 때,

돌연,

고오오오오……

기이한 영혼의 울림과 같은 소리가 사위를 진동하는가 싶더니……

스스스스으……

내전에 신비롭고 상서로운 광휘가 천신의 하강을 기다리는 것처럼 자욱히 피어오르지 않는가?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를 희미한 광휘에 휩싸인 인영 하나,

그 뒤에는 두 마리의 하얀 비성성이 각기 아름다운 미녀를 한 사람 씩 지키고 있었다.

물빛옷의 미녀와 피처럼 붉은 노을빛 옷의 미녀……

물론 이 미녀들은 인질이 되어 잡힌 사은상과 사옥상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희미한 광휘가 감사인 인영은 뒤에있는 비성성들과는 달리,

허공을 땅처럼 밟고 있으니……

이때,

능라휘장 속의 그림자가 심하게 떨고 있음을 그곳에 있는 사람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 그림자를 향한 안개속에 휩싸인 인영의 음성,

[내가 왔다.]

음성,

더할 수 없이 장중하고 사람을 내리누르는 위엄이 깃든,

나직한 음성이었다.

[음……귀하는 누구시오?]

휘장 속의 그림자가 다소 경악한 음색으로 물었다.

[그대 황녹천의 녹림맹을 잠시 빌리고 싶어하는 사람!]

순간,

휘장 속의 그림자,

아니, 정확히 말해,

황녹천의 의혹 서린 음성이 다시 터지고 있었다.

[빌린다?]

[그래, 잠시……]

[후훗……대체 당신은 누구이길래, 그리고 무엇때문에 본좌가 당신에게 이곳을 빌려주겠소?]

황녹천의 물음에,

안개 속에서 만인을 압도하는 음성이 항거할 수 없는 힘을 담고 흘러나왔다.

[투귀(偸鬼)는 요즘 어디에 있는가?]

[투……투귀?]

투귀!

신행마동 소일초에게 백인장의 정뇌(井牢) 속에서 도둑질의 온갖 수법과 매화지를 가르쳤던 사마귀 중의 하나……

이 이름을 중원에 살고 죽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모를손가?

중원의 도둑들의 우상이며 신이고 절대자이며 모든 보물의 주인인 이 이름,

황녹천의 경악 서린 음성이 반문하듯 튀어나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이때 안개 속에서 이어지는 음성,

[그대가 투귀와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말 말고 본인에게 이곳을 빌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게 바로 녹림맹을 살리는 길이기도 할 것……]

[…………]

[투귀는 백인장에서 탈출했다. 천하에 숨을 곳이 이곳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나는 백인장의 전권을 지닌 사람, 사마귀를 죽이고 살리고는 오직 그대의 결정하나에 달려있다.]

[…………]

[빨리 사마귀에게 연락을 취하고 바로 이 곳을 잠시 동안만 넘겨라.]

[…………]

[그러면……]

[그러면…?]

[빌리는 기간은 단 열흘, 그 후에는……그대들의 녹림맹이 삼성무림청을 물리치고 영원히 녹림맹 단독으로 숲을 장악하도록 해 주겠다.]

안개속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

바로 천하의 말썽꾸러기 신행마동 소일초가 아니고 또 누구이겠는가?

하나 지금,

만인을 잡아끄는 위엄과 힘을 지니고 흘러나오는 음성,

그것은 절대 소일초의 음성이 아니었다.

과거의 어떤 자가,

신행마동 소일초의 음성을 들어보았던 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필경 저 안개 속의 음성이 죽었다 깨어나도 신행마동 소일초의 음성이 될수 없다고 단언하리라!

[…………!]

침묵,

황녹천은 이 엄청난 제안에 한 동안 침묵을 지켰다.

하나 이 순간,

그는 자신의 수하들과 취할 수 있는 모든 연락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그 정교한 기관장치에 의한 연락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곧,

녹림맹의 모든 기능이 바로 저들에 의해 이미 장악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음……]

능라휘장 속의 황녹천의 입에서 침음성이 튀어나왔다.

바로 이때,

슈_____ 슛……!

오오……

안개속에서 번쩍이는 소일초의 한 손,

그리고 백색의 광채가 네 줄기……바로 화산파의 절기인 매화지(梅花指)가 아닌가?

아도래영이라 적혀진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쓰러져 있는 네마리의 비성성의 몸에백색 매화지가 소리없이 가격되었다.

동시에,

혈이 타동된 듯 벌떡 몸을 일으킨 네 마리의 검은 비성성!

그들의 눈에 흉악한 광망이 폭출되었다 싶은 순간 소멸되고,

슬금슬금……

그들은 소일초의 안개에 가려진 몸 뒤로가서 조심스럽게 시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슈_______ 슛________!

안개속의 소일초의 손에서 어느새 맑은 빛이 반짝하며 폭출되어 대리석 바닥을 쩡쩡 때리고 있었다.

찰나,

쿠르르릉……!

흔적도 없이 닫혔던 대리석 바닥이 열리고,

[이 간교한 놈……가만 두지 않겠다……!]

한 마디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숫______ !

하나의 인영이 치솟아 올랐다.

소녀(少女),

도저히 인간이라 여길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소녀였다.

그 몸을 가리고 있던 검은 안개는 어딘지 사라져 버리고 백의가 선명하게 드러난 주소아였다.

그녀 한 몸에서 서려나오는 살기는 일시에 휘장을 펄럭거리게 하며 황녹천을 조각내 버릴 것처럼 엄청났다.

이 순간,

그녀의 눈이 한 쪽에 서있는 소일초와 두 포로를 발견하고,

[응……왔어? 재수가 조금 없었어……]

이때,

안개가 스르르 사그라지면서 소일초의 모습이 나타났다.

[킥…! 허풍 잘 떨던데……나보다 먼저 무림에 나왔으면 신행마녀라는 호칭은 따고도 남았을 거야……]

본래의 장난꾸러기 목소리였다.

황녹천은 그 모습을 보고 얼떨떨 해 져 버렸다.

그는 백인장주인 도왕 소선풍이 아닌가 의심했었던 것이다.

주소아는 함정에 빠졌던 지라 자존심이 상당히 상해있었다.

[황녹천! 대체 어떻게 할 거야? 우리에게 녹림맹을 빌려주겠다는 거야 아니야?]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에게 고함을 치면서 분풀이를 했다.

[이런 꼬마들이었다니……기가막힐 노릇이군.]

황녹천이 중얼거렸다.

[이봐! 황녹천, 괜히 신비한 척 하지마. 나도 네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야. 설마 내 입으로 밝혀야만 믿는 것은 아니겠지?]

소일초가 친구에게 하듯이 말했다.

[어떻게 해서 사마귀를 잘 알고 있지?]

[하하하……한때 사마귀와 내가 서로 교류한 적이 있었지.]

[……?]

[사마귀는 나에게 자신들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나는 그들에게 정뇌를 탈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

[…………]

[한데, 나는 교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사부라고 부르라고 하더군, 제기랄……가르쳐 주는 것은 똑같았는데……자기들이 가르친 것은 무공이라고……]

[…………]

[쯥, 그때는 따로 사부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어서 불러줬지, 하지만 이제는 안돼, 물려야 되겠어, 그 후로 훌륭하신 분을 사부로 모시게 됬거든……]

사부를 무른다?

한 번 사부면 영원한 사부지 무르는 법이 세상에 어디있단 말인가?

황녹천은 어이가 없었다.

[자, 그럼 이제 사마귀에게도 연락을 좀 해주실까? 할 것이 있으면 빨리 하는 것이 좋은 습관이거든,]

[사마귀는 지금 이곳에 없다. 그러나 연락은 해 주지……]

이때,

주소아가 소리를 질렀다.

[사마귀진 당랑인지 엉뚱한 소린 그만 두고 당장 내 물음에 대한 답변부터 해!]

잠시의 긴장과 침묵이 흘렸고 이윽고 알 수 없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도대체 성별조차 구별할 수 없는 황녹천의 음성이 떨렸다.

[좋소……대신 그 기간은 열흘 뿐이오.]

[흥, 그 대답이 당신을 살렸어, 그럼 빨리 다른 곳에가서 잠이나 마저 자라구……]

차갑게 흘러나오는 주소아의 음성,

휘장속의 황녹천의 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너무 기분나빠 하지마. 사귀다 보면 그 여자도 좋은 여자야.]

소일초의 달래는 듯한 말이 나오자 황녹천은 더욱 어처구니 없어지고……

아뭏든 이 밤은 기이한 의미를 함축한 채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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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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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二 章

 

         고찰에서의 밀고 당기기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 깔리고,

장강을 굽어 보고 있는 크지 않은 산,

황페한 고찰(古刹)의 대웅전 안에선 연기가 모락모락 오르고 있었다.

검고 흰 짐승들이 십여 마리……

그리고,

초췌한 모습이지만 아름다운 두 처녀와, 마주 앉은 두 소년소녀……

불전(佛殿)에 불(火)을 피우고 산돼지 한 마리를 통채로 굽고있는 이들은,

바로 소일초와 주소아 일행이었다.

재치있는 주소아는 요리에도 일가견있었다.

내장을 긁어내고 솔가지로 배속을 채운 돼지를 슬슬 돌려가며 굽는 품이 여간 솜씨가 아니다.

---꼴깍……꼴깍……

누군가의 목으로 침이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주소아는 다 굽힌 돼지의 살점을 이리저리 발라내더니,

먼저 비성성들에게 똑같은 양으로 배분해 주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잘 챙겨주는 것이 비성성들의 인기를 얻는 비결이 아닐까 싶은데……

[자……이건 두 푼수 언니들……]

사옥상과 사은상 남매에게 한 덩어리의 갈비를 휙 던져 주었다.

그녀들은 이미 혈도가 풀렸지만 감히 달아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옥상은 고마워하면서 당장 입으로 가지고 갔으나,

사은상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흥! 좋을 대로……]

주소아는 코웃음을 치면서 돼지의 꼬리를 잘라냈다.

[자……이건 네 것……]

[안돼! 그게 뭐야……]

[이게 돼지꼬린지 알긴 아는구나. 그럼 네가 오늘 한 것도 돼지꼬리보다 많지 않다는 것도 알텐데……]

[안주겠다는 거야?]

[고기를 먹을 값은 해야지……설마 뭔 말인지 모르는 것은 아니겠지?]

[알았어.]

소일초가 번쩍 일어나며 소리쳤다.

[그기 숨어있는 놈들 빨리 나오는게 시체라도 온전히 보전하는 길이야……]

낭랑한 그의 목소리가 대웅전을 메아리치고……

고찰 주변에 널리 울려퍼졌다.

순간,

[으하하하하-------!]

긴 웃음소리를 더날리며 대웅전 건너편의 지붕위에서 검은 인영이 대웅전 앞으로 날아왔다.

[꼬마의 눈치가 보통이 아니군. 모두 나오너라……]

그가 손을 높이 쳐들자 여기저기서 수십 명의 흑의인들이 대웅전을 포위하고 쏟아져 나왔다.

이때,

은근히 주소아와 소일초의 눈치를 살피고 있던 사은상이 사옥상의 손을 잡고 대웅전 밖으로 몸을 날렸다.

[총순찰님!]

[으하하……두 분 공녀(公女)께서는 더 이상 아무 염려 마십시오. 이 총순찰 독장수사(毒掌秀士)가 왔지 않습니까?]

흑의인들에게 날아가는 그녀들을 주소아도 소일초도 저지하지 않았다.

주소아는 단지 비성성들에게 하늘을 가리키며 올라가라고 했을 뿐이다.

[너희들이 내 저녁값이다.]

소일초는 오척도 되지 않는 몸을 당당히 세우며 독장수사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이때 사은상이 소리쳤다.

[조심해요……그가 바로 신행마동이예요……]

그 말에 독장수사가 잠시 움찔했으나 이내 소일초를 깔보는 듯이 말했다.

[나는 무림에 떠도는 소문을 잘 믿지 않는다. 본좌와 일 장을 마주쳐보겠느냐?]

[나는 무림의 허풍장이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 어디 본좌의 일 검을 받아보겠느냐?]

소일초는 그의 어조를 흉내 내어 그대로 말했다.

[이놈! 어디 내 일 장을 받아라……]

독장수사는 큰소리로 분노를 터뜨리며 허공에 무수한 장영(掌影)을 만들었다.

비릿한 냄새가 그의 독장에서 가득 공기중으로 스며들고……

그것들은 오장의 거리는 두고 있던 소일초의 가득 에워쌌다.

갑자기 손그림자와 독향기를 뚫고 검은 기운이 치솟아 오르는 순간,

털석-----

손 그림자도……

독향기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불신의 표정을 지은 그대로 독장수사의 몸이 뒤로 무너져 버렸다.

그의 몸에서 남아있는 것은 꼭지가 날아가고 얼굴만 남은 머리와……

팔꿈치에서 잘려져 나간 양팔……

그리고 무릎어림에서 잘려져 버린 두 다리……

그러나, 결정적인 사인(死因)은 위쪽이 날아가 버린 두개골이었다.

독장수사……

삼성무림청의 총순찰을 맡을 정도로 대단했던 악독한 마음과 악독한 무공의 소유자……

독장 이외에도 은밀히 사용하는 암기로 인해 사파무림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

소일초의 너무나 강맹한 무공에 아무런 심계도 수단도 사용해 보지 못하고 그대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독장은 백독불침, 만독불침이라 자부하는 고수들의 목숨마저 어이없게 앗아가곤 했었는데……

사옥상과 사은상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토록 참혹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그녀들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었다.

[모두 한꺼번에 공격해라……]

사은상이 대웅전을 포위한 흑의인들에게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며 사옥상의 손을 잡고 허공으로 솟구쳐 도망쳤다.

이때,

[또 놓아줄 작정이야?]

주소아의 뾰루퉁한 목소리가 들리고,

소일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절대 안되지……]

번쩍------

그의 손에서 일순 맑은 광채가 번쩍이자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악-------!

윽---------!

캑---------!

수정검우가 빛살처럼 빠르게 날면서 흑의인들을 거의 동시에 쓰러트려버렸다.

그리고,

길게 휘파람을 불면서 사라지고 있는 사씨 자매의 뒤를 쫓았다.

[정말 무서운 무공이야……특히 독장수사를 죽인 그 검법은 생사보록에 있는 어떤 무공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어……]

주소아는 소일초가 펼쳤던 일초의 검공을 생각하며 감탄했다.

[이랬던가? 아니……이랬던가? 눈으로 보고도 모르겠네……]

소일초가 펼친 일초의 검법,

그가 사부인 검마에게서 삼 년동안 갖은 고생을 하면서 익힌 것이다.

이초가 필요없는,

그래서 소일초의 이름과 더욱 잘 맞아떨어지는 검법이라는 것을 주소아는 알리가 없다.

손으로 흉내만이라도 내보려 했지만 그마저 잘 되지 않았다.

 

× × ×

 

소일초는 저녁 값을 톡톡히 치르고 산돼지 고기를 포식했다.

그가 다시 붙잡아온 사씨 자매는 대웅전 한쪽 구석에 곱게 모셔져 있다.

물론, 이제는 혈도가 단단히 집힌 채……

비성성 중의 하나가 가져다 놓은 모포 두장은 소일초와 주소아가 각기 한 장씩 차지하고 누웠다.

배는 불러서 만사가 귀찮은데……

소일초의 머릿속으로는 끝없는 상상이 나래를 펴고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모포를 돌돌 말고 있는 주소아를 힐끗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구석에서 그냥 맨바닥에 몸을 누이고 있는 사씨 자매를 보았다.

(일단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색귀사부의 말을 검증(檢證)해 봐야지……)

글쎄……

주소아는 몰라도 사씨 자매가 이 열 살 짜리 꼬마의 음흉한 속을 알기나 하고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누워있을까?

어둠이 가득한 대웅전에는 주소아의 몸에서 나는 낮은 휘파람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데……

 

…………

여전히 낮은 휘파람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는 대웅전,

소일초의 몸이 살그머니 모포속에서 빠져나와, 누운자세 그대로 둥둥 허공을 가로질렀다.

대웅전 한 켠 구석에 웅크리고 몸을 뉘고 있는 여자 냄새 물씬 풍기는 두 여인은 포로의 몸이 건만,

얼마나 피곤했는지 선연한 굴곡을 드러낸 채 잠자고 있는 중이었다.

(주소아는 한동안 같이 있을 테니까 기회가 계속 있겠지만, 이 냄새나는 여자들은 인질가치만 없어지면 작별이니 더 급하지……)

소일초는 둥둥 떠 있는 상태에서 슬며시 손을 뻗어 사옥상의 가슴을 더듬었다.

도둑질을 사사받았던 소일초의 손이다.

사옥상의 가슴을 흔적도 없이 파고들어가 그녀의 큼직한 유방을 만졌다.

짜릿한 전율과 훔친다는 흥분으로 소일초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우히히히……이건 작은 어머니 가슴만질 때와는 아주 다르잖아?)

사옥상의 부드러운 살결위로 손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전신을 쓰다듬었다.

순간,

그의 손이 막 그녀의 배꼽을 지나서 밑으로 내려갈 때였다.

[으응……]

사옥상이 낮은 콧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녀는 잠이든 상태에서도 자신의 몸을 스물스물 하는 손길을 느끼며 은근히 기분이 좋아지는 중이었다.

신지(神智)가 조금 부족한 그녀는 어떤 가식이나 윤리관도 존재하지 않아서,

좋으면 좋은 거고 싫으면 싫은 것이었다.

소일초의 은밀한 손에 전혀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자기도 모르게 편안한 자세로 몸을 내맡겼다.

(이 여잔 내 마음에 쏙 드는데……내가 편하게 해주고 있잖아?)

기분이 더욱 좋아지면서 슬금슬금 그녀의 배꼽 밑,

마지막 탐사지 일 지도 모르는 그곳으로 손을 내렸다.

(응? 이거 요대(腰帶)가 가로막고 있잖아? 하는 수 없지……)

그의 손은 다시 그녀의 유방으로 가서 이번에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다른 손으로 슬며시 사옥상의 흰 치마를 걷어 올리며 허벅지를 쓰다듬어 올라갔다.

소일초의 신체 한 부분이 어떤 흥분으로 인해서 경직되었다.

그것은 오줌 누기 전과 비슷한 것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것 같기도 했다.

사옥상의 치마 밑으로 파고들었던 소일초의 손이 두 다리가 나누어지는 곳에서 새로운 장애를 만나고……

얇고 보드라우며 조그마한 마지막 천을 밀치며 손을 들이미는 순간,

[그곳은 안돼……]

사옥상의 나지막한 그러면서도 기대에 찬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렸다.

움찔하면서……

소일초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흥분으로 상기되어 있는 사옥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자기를 꿈꾸는 듯 영롱한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었다.

거칠어진 그의 손길에 깨어난 것 같았다.

[그곳은 안돼……]

다시 그녀가 중얼거리듯 말했고 소일초의 얼굴이 빨개졌다.

[기분은 아주 좋아……하지만 그곳은 어쩐지 이상해……]

(기분이 좋다고? 나도 이상하면서도 기분이 좋은데……)

그때까지 공중에 떠있던 그의 몸이 사옥상의 몸위로 내려앉았다.

푸근하고 안락한 느낌……

그리고 주체하지 못할 짜릿한 기쁨……

그녀의 얼굴에서는 소일초를 자극하는 향기가 있었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로 소일초의 몸 밑에 누워있었다.

그녀의 배꼽에는 지금,

그의 무공만큼이나 나이와는 전혀 걸맞지 않는 소일초의 경직된 물건이 묵직하게 내리누르고 있었다.

오십근도 되지 않는 그의 몸에서 그것의 무게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양이다.

소일초는 강렬한 흥분을 느끼면서 색귀가 가르쳐 주었던 것을 생각해내고는 그녀의 몸 위에서 바지를 내리려 했다.

그순간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데……

툭툭-----

그의 어깨를 두드리는 손이 있었다.

(앗불싸……깨어진 산통……)

[이 꼬마 색마……!]

독이 잔뜩 오른 목소리로 주소아가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모든 흥분이 사그라들어 버리고 그녀에게 질질 끌려가는 소일초였다.

(내가 너한테 그런 것도 아닌데……웬 성화야……)

그러나 그의 입에서 그 말은 나오지 못하고 쑥 들어가고 말았다.

사옥상은 단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려버렸지만,

그 옆에 누워있는 사은상의 감고 있는 두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기사,

옆에서 공사를 하려는 데야 아무리 둔한 사람도 깨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사은상은 모자라는 동생의 어치구니 없는 치정과 포로가 된 여인의 신세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감추지 못한 것이다.

소일초는 일말의 죄책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유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사옥상은 분명히 기분이 아주 좋다고 했는데……)

[이 색마(色魔)! 나하고 아무래도 결판을 내야겠어……]

주소아는 그의 귀를 당겨서 대웅전 밖으로 나갔다.

휘파람소리가 귀속으로 생생하게 들려왔다.

소일초는 주소아의 손에 끌려서 역시 대웅전 못지않게 황폐한 나한당으로 들어갔다.

 

[…………]

[…………]

주소아는 새파랗게 빛을 내면서 소일초를 노려보고 소일초는 찔리는 바가 있어서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눈을 피했다.

[똑바로 들어둬! 네가 도둑질을 하거나 도박을 하고 술을 먹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봐줄 수 있어……]

[…………]

[그런데, 내가 한 쪽에서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항도 하지 못하는 여자를 건드린다는 건 절대로 용납할 수 없어.]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소일초가 화를 내면서 한마디 내뱉었다.

[제길……그럼 너를 건드리란 소리야 뭐야?]

[이게 그래도……]

 

짝------!

 

소일초의 뺨을 갈겨버리는 주소아였다.

[좋다! 어디 한 번 싸워보자. 이 계집애가 봐줬더니 천지를 모르고 설쳐?]

소일초는 펄쩍 뛰면서 뒤로 물러났다.

주소아가 코웃음을 쳤다.

[흥, 검만 쓰지 않는다면 너 따위 색마에게 내가 질줄 알고?]

두 팔을 벌려 몸 앞으로 늘어뜨리며 독특한 자세를 취했다.

[계집애 따위에겐 검을 쓸 필요도 없지…… 자 덤벼……]

[이 색마! 하늘이 얼마나 넓은 지 보여주마……]

주소아의 몸이 두 팔을 벌린 상태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몸이 한 번 씩 도는 순간 마다 하나 씩의 분신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원신(原身)에서 분리된 분신들은 분리되자마자 나한당을 가득 메우면서 소일초를 공격해 왔다.

소일초는 그녀의 기이한 술법에도 불구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는 이미 검마의 진전을 이어서 오직 일초로서 어떤 무공이던 제압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무심코 검으로 손이 가다가 멈칫 했다.

검을 쓰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주소아의 분신들은 코 앞으로 다가왔는데……

검결을 묶어서 두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어냈다.

검마의 일초검공이 손으로 펼쳐진 것이다.

그의 손가락에서 발출된 기운이 환영들을 휘감아 버리자……

놀랍게도 그 많던 환영이 봄 눈처럼 사그라져 버렸다.

(저 색마의 그 검법은 확실히 이상한 것이네……분신들 하나하나에 강기가 주입되어 있는데 소리도 없이 사그라져 버리다니……)

[검을 쓰지 않겠다고 했으면 검법도 쓰지 말아야지……치사하게……]

주소아가 첫 공격이 무위로 끝나자 빈정거렸다.

그러나 이미 바닥을 차고 올라 허공 가득히 발그림자를 만들며 소일초를 공격해 오고 있었다.

 

쓔-----슈앙-------!

 

나한당 안의 대기는 무섭게 파동치고,

빈정거림을 받은 소일초는 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팔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주소아에겐 소일초가 그 이상한 검법만 사용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싸워 볼만 하다는 계산이 있었다.

내공이 딸리기는 하지만 초식으로 얼마든지 보완할 수도 있다.

생사보록상의 무공들은 절학이 아닌 것이 없다.

소일초가 아무리 많은 무공을 알아도 생사보록에 있는 무공들은 모를 것이다.

게다가 소일초는 백인장에서는 어떤 도법도 정식으로 배우지 못했다.

주소아는 무방비 상태로 서있는 소일초를 보면서 자기의 승리를 점쳤다.

그녀의 무서운 팔황각(八荒却)이 소일초의 전신 십이 대혈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당연히 있어야할 발끝에서 전해오는 감각이 없어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소일초의 몸을 발이 그냥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일초가 혈기자에게 처음에 배웠던 이환공의 위력이었다.

이 무공은 내공이 상대방 보다 고강하기만 하면,

어떤 피신 무공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혈기자가 천축에서 온 어떤 수행자를 만난 이후에 깨달은 바가 있어서 만든 독특한 무공이었다.

그 수행자는 유가술(逾伽術)의 달인 이었는데 손이 다리의 중간을 통과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소일초는 공격이 무위로 끝나자 재빨리 뒤로 빠져 나가려는 주소아의 허리를 두 팔로 휘감아버렸다.

주소아의 일 장이 다급하게 소일초의 천정혈로 떨어지는데……

[아예 날 죽일 작정이구나……이 못된 계집애……]

머리를 숙여 주소아의 가슴을 받으며 뒤로 넘어뜨렸다.

주소아는 묵직한 충격을 느끼면서 정신이 가물거리는데,

소일초는 그녀의 몸위에서 허리를 꼭 잡고 엎드려 씩씩 거리고 있었다.

(이 색마는 도저히 내가 못당할 무공을 지니고 있구……어떻게 하지……)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그녀는 몸 위에 있는 자기보다 조금 작은 소일초의 무게를 느끼고 있었다.

(고모가 이 자식을 잘 돌봐 달라고 했는데 나 보다 무공도 더 고강한 걸……)

그녀의 공격이 시작된 후 부터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며 날카롭게 울리던 휘파람 소리는 다시 나지막해져 있었다.

소일초는 그녀의 몸위에서 다시 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다음 기회를 볼 것도 없이 당장 휘파람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조사해 봐야겠어……]

주소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일초가 정말로 그러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상기되어 빨갛게 되었다.

[잠깐!]

[할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해……]

[지금 뭐 하려는 거지?]

[옷을 다 벗겨보아야 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알 수 있을 거잖아……대충 짐작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바보야! 휘파람 소리는 내 피부에서 나는 거야. 이건 특이한 내공을 익혀서 그런 거라고……]

[못 믿겠어. 어떻게 사람피부가 휘파람을 불 수 있어? 직접 봐야겠어.]

소일초는 주소아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었다.

주소아는 소일초의 손을 꽉 잡았다.

[안돼……!]

[너 나하고 싸워서 이겠어?]

[아니……]

[그럼 나는 소득도 없이 싸운 줄 알아? 언제나 싸움에서 진 쪽은 이긴 쪽이 하자는 대로 하는 해왔어. 이건 역사가 시작된 이후로 계속되어온 만고의 진리라고……]

[…………]

 

………………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소일초는 휘파람을 불면서 대웅전으로 유유히 들어왔다.

그의 뒤에는 풀이 죽은 주소아가 따라 들어와 자기의 모포 속으로 들어갔다.

사은상은 잠들지 않고 있다가 그들의 표정을 보고,

자기들의 신세가 저 어린 색마로 인해서 더욱 처량해 질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웅전에서 그들이 나간 후에도 무공이 폐쇄된 지라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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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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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一 章

 

        꼬마의 捕虜가 된 두 美女

 

 

 

-장강(長江)!

 

파란만장한 중원의 역사와 함께,

그 흥망성쇠를 같이해 온 대 장강(大長江),

광활한 중원대륙을 남북으로 갈라 놓은 채……

중원의 젖줄기로,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날로 그 중요성이 더해가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 장강을 장악한 무림의 신흥세력 삼성무림청의……

세력팽창을 위한 무수한 혈겁이 자행되고 있었다.

보이는 곳에서……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군소방파들과의 치열한 전쟁이 소선풍이 병상에 누운 후 삼 년동안 계속되어 왔다.

이미,

장강 주변의 수백리는 삼성무림청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려서 강북의 청옥검궁,

그리고 강남의 백인장, 이렇게 천하를 삼분하고 있는 세력이 된 그들……

지금,

장강은 그야말로 시산혈하(屍山血河)와 아수라지옥도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게 되었다.

삼성무림청의 힘은 강대하고……

무인(武人)의 자존심을 잃지 않고 끝없이 저항하는 군소방파들……

 

황혼(黃昏),

금빛의 황혼이 서편 하늘에서 아름답게 타고 있었다.

바로 그 황혼 아래,

오오……

피!피!피!

겹으로 쌓여 떠내려 가는 시신(屍身)!

이 피와 시신으로 인해 장강의 수위(水位)는 무려 한 자나 불어난 듯했다.

실로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대참상의 현장,

어느 방파가 또다시 멸문의 참극을 격었나?

바로 이 처참한 황혼의 장강이 내려다보이는 한 야산(野山),

한 천년노송(千年老松)의 그늘 아래……

한 소년과 소녀가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희디흰 백의에 고아하고 고결한 귀풍이 아득한 대양 너머의 햇살처럼 넘실거리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대범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짖궂은 데가 있는 것 같은 깜찍하기 그지없는 소년,

오른쪽 옆구리에는 그의 백의(白衣) 때문에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짙은 묵빛의 목탁,

왼쪽에는 날이라고는 거의 남아있지 않는 집도 없는 시꺼먼 장검,

이런 모습……

무림 하늘 아래 이런 모습을 지닌 소년은 오직 하나,

소일초……

백인장의 소장주인 소일초를 제외하고 또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의 옆에 있는 소녀……

소일초보다 몇 살 더 많은 듯하나 맑은 눈동자는 지혜로 가득 차있다.

넋이라도 빼앗겨 버릴 듯 예쁜 얼굴에는 어엿한 기품이 어려있는데……

그 가날픈 허리는 저 황혼의 금빛 노을보다 사람의 눈을 더욱 부시게 했다.

[휘이……휘이이……휘……]

붉은 입술은 벌어지지도 않는데……

그녀의 어느 곳에선가 휘파람소리가 울려나오고……

백옥처럼 흰 그녀의 손에는 큼직한 술병이 들려있었다.

주소아……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소일초와 함께 백인장을 나온 주소아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소일초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져 있었다.

[이거 장난이 아니잖아. 사람도 무더기로 죽어있으니 이토록 잔인, 처참할 수 있구나……!]

소일초는 아주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속으로 그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어리기는 하지만 무림에 뛰쳐 나왔을 때마다 시체를 보기 예사였고,

직접 협행을 한답시고 살인을 한 적도 있는 그였지만,

이렇듯 처참한 광경을 보자 그 충격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아직은 그가 세상의 비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저 죽은 인물들은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대부분이 본 녹림맹에 소속된 인물들인 것 같은데……]

옆에 있던 주소아가 말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고있어……괜한 아는 척은……]

불퉁한 소일초의 말에 주소아는 피식 웃었다.

[삼성무림청의 힘은 듣는 것 이상으로 엄청날 지도 모르겠는데……]

그녀는 얼마나 강심장인지 그 피가되어 흐르는 강을 보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야……내 손에서 삼성무림청은 끝장이 나게 되어있어……]

[어떻게…?]

소일초가 오른쪽 허리에 걸려있는 검은 목탁을 툭툭 두드렸다.

[이거면 만사형통이지……]

그는 주소아의 손에 들려있는 술병을 받아서 한 모금 들이켰다.

[목탁만 두들기면 금강역사(金剛力士)라도 나타나서 싸워주기라도 하니……]

[나중에 다 알게 돼……너는 구경만 하면 돼.]

술병을 건네주면서 소일초는 그녀의 왼손을 끌어당겨 손가락을 빨았다.

그러나,

이미 그동안에 그런데 익숙해졌는지 그녀는 궁금하게만 여길 뿐 그의 행동에 개의치 않았다.

주소아는 소일초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소일초, 그 역시 마다하지 않고 호수처럼 맑은 주소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언젠가 시간을 내어 네 머리통을 한 번 열어봐야 되는데……그 속에 얼마나 황당한 것들이 들었는지……]

[언젠가 네 몸을 샅샅이 조사해 봐야 하는데……그 몸 어디에서 휘파람소리가 나오는지……]

한마디도지지 않는 소일초의 말에,

주소아가 술병으로 그의 머리를 막 후려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잠깐, 주소아……]

소일초의 시선이 재빨리 돌아가 한곳에 고정되었다.

시신(屍身),

장강을 떠내려가고 있는 시신의 위를 밟고……

쑷……슛……슛……슛……

날렵한 인영(인英)하나가 그림자처럼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여인(女人),

날렵한 인영은 이십 세 가량의 성숙한 소녀였다.

백옥(白玉)처럼 희고 투명하며……

눈부실 만큼 흰 빛의 발광체(發光體)를 뿌려내는 피부를 지닌 소녀,

그 피부는 너무 맑고 투명하여 핏줄 하나하나까지 투영되어 보일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가 걸치고 있는 옷마저도 물빛이어서……

그녀의 신비로운 피부와 은은하게 투영되는 물빛 옷은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속에……

소녀의 용모 또한 천상(天上)의 선녀처럼 아름다우니……

감히 그 어떤 자가 이 소녀를 하계의 인간이라 여기랴?

[휴……아직도 많이 멀었어……]

슈슈……슈슈슈슈……

시체를 이리저리 밟고 다니며 무엇인가를 유심히 살피던 그 소녀는 쉴 새 없이 흥얼거렸고,

간간이 그 속에서 실망에 찬 음성을 흘려내고 있었다.

[이건 아예 동공이 파열되지 않았잖아………]

슈……슈……슈슈……슛……

문득, 한꺼번에 십여 장을 날며 이리저리 시체를 살피던 그 소녀가,

힐끗 소일초와 주소아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주소아의 곁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소일초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는가 싶더니……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허나 곧,

생긋……

소녀의 얼굴에 수초(水草)처럼 해맑은 웃음이 피어오르고,

[꼬마…뭘봐…]

그녀는 소일초를 향해 낼름 혀를 내밀었다.

동시에,

번____ 쩍_____

삼십여 장의 거리를 단숨에 날아 소일초의 면전에 내려서는 것이니……

그 모습은 마치 선녀처럼 천진하고 귀염성이 있었으며 아름다웠다.

[어머……웬 애가 이렇게 귀엽게 생겼니? 너도 아주 예쁜 계집애구나……]

소일초와 주소아를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며 바쁘게 재잘거렸다.

그러나, 소일초는 일체 입을 열지 않은 채 소녀를 지켜보기만 했고,

주소아가 한마디 톡 쏘았다.

[그래, 나는 예쁜 계집애다. 이 경박한 계집애야!]

한 순간, 물빛 옷의 소녀의 얼굴에 멈칫하는 기색이 있었다.

[애, 나는 열 아홉 살이야……나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돼. 이곳은 지금 위험하니까 내가 집에 데려다 줄께……]

그녀는 친절하게 말했지만 주소아는 조금도 뉘우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집에 가기만 하면 살아서 나오지 못할 걸? 물론 가지 않아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는 물론 소일초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소일초와 그 소녀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그렇게 머리가 돌이니? 이 여자가 바로 저 녹림맹의 사람들을 죽인 흉수란 말이야……]

주소아는 소일초를 째려보면서 말했다.

[설마?]

[맞아……나는 사옥상(史玉翔)이라고 해……저기 저 사람들은 내가 다 죽였는데……내 혈옥수(血玉手)가 얼마나 강해졌나를 보려고 죽은 사람들의 상처를 살피고 있었어……]

(뭐……뭣이라고…… ?)

소일초는 분노 이전에 아예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이 사옥상이라는 아름다운 소녀가 저 많은 사람을 해쳤다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려니와,

그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 저토록 태연히,

그리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소녀,

그녀의 얼굴에는 부드럽고 맑은 웃음만 가득하니……

이때 사옥상이라는 소녀의 은근한 음성이 다시 흘러나왔다.

[한데 아직은 멀었어……혈옥수가 십이성에 이르면 동공과 뇌가 파열되고 혈맥이 갈라져야 하는데……동공은 아직도 파열되지 않고 있으니……]

이때,

소일초는 주소아와 그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주소아가 공력을 가득실어 그의 발을 꾹 눌러 밟았다.

[아야……아아……]

사옥상의 얼굴에 화들짝 놀람의 빛이 일었다.

[애, 너 어디 아프니……안됐구나……너처럼 예쁜 아이가……]

그녀의 좀 모자란 것 같은 언행(言行)에 주소아도 눈이 둥그레졌다.

(아무래도 이 여잔 좀 모자라는 것 같은데, 무공만 강한 모양이군……저 말썽꾸러기처럼……)

[…………]

이때, 사옥상은 한동안 무엇인가를 열심히 생각하는 표정이더니……

[좋아……이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특별히 내게만 준 것인데……불사환혼단(不死還魂丹)이라고 하지……먹으면 만병이 치유될 수 있는 것이야. 특히 혈맥을 이어주는데 특효가 있지]

사옥상은 품속에서 한 알의 향기(香氣)로운 알약을 꺼내들었다.

소일초는 귀가 번쩍 뛰는 것 같았다.

(혈맥을 이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그런데,

그 알약에 엉켜 한 개의 오색영롱한 명패까지 달려 나오자,

[에이……이것도 가져……이것은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

[우리 언니가 말하기를……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주어야 하는 것이래……]

[…………]

[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애이니……이것을 주어도 되겠지 뭐.]

불쑥!

한 개의 알약과 명패를 내밀자,

소일초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냉큼 그것들을 받았다.

바로 이때였다.

돌연,

[철부지 사옥상!]

심장까지 얼어붙게 할 차가운 음성이 하늘 저 끝에서 울려왔다.

순간,

[크……큰일났어……우리 무서운 언니인 사은상(史銀翔)이야……]

[……?]

[절대 그것들을 내가 주었다는 것을 비밀로 해야 해……]

화라락……

사옥상은 말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늘씬한 신형을 허공으로 뽑아 나비처럼 날아올랐다.

그러나,

[그건 안돼! 너는 여기 남아 있어야 해!]

슉----!

주소아의 손이 벼락처럼 떨쳐지자,

한 줄기 파란 빛이 그녀의 손에서 뻗어나가 사옥상의 몸을 휘감아 버렸다.

턱석-----!

미처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기습을 받은 사옥상의 몸은 추락했고 다시 주소아 앞에 끌려왔다.

사옥상은 경악한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으나 언제 아혈이 찍혔는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일초는 단지 주소아를 쳐다 볼 뿐인데,

그녀는 체대(體帶)를 회수하며 사옥상의 몸을 노송의 옆에 밀쳐놓았다.

[째끄만 게……벌써 이쁜 여자만 보면 넋이 빠져 가지고……옛다 무림정벌 여기 있다.]

소일초의 얼굴이 벌개졌다.

[게다가 이건 왜 나이 값도 못하고 아무한테나 꼬리를 쳐? 뭐 제일 예쁜 사람 만나면 주는 거라고?]

[너……]

소일초가 막 반박을 하려고 할 때였다.

돌연,

캬아아욱______!

동시에,

스스스슷……

소일초의 면전에 일자로 날아 내려선 다섯 명의 혈의노파(血衣老婆),

하나같이 차고 싸늘한 눈빛에,

섬뜩한 핏빛 기운을 느끼게 하는 노파들이었다.

그들 피빛 마기의 다섯 노파를 헤아린 소일초의 가슴은 절로 서늘한 한기가 치밀어 오름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한데,

[내놔! 두 가지 모두다.]

어디선가 한 가닥 북극한빙(北極寒氷)처럼 차가운 음성이 소일초의 지척에서 터지는 것이 아닌가?

[멍청한 계집애 결국 일을 내고야 마는구나……]

소일초와 주소아의 눈빛에 언뜻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분명,

다섯 명의 노파는 일자로 늘어선 채 돌부처처럼 서 있으나……

소일초와 주소아는 벌써부터 다섯 노파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했던 얼음장처럼 싸늘한 한기가 바로 자신의 지척에서 뻗어 나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리 보아도 텅 빈 허공뿐인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한기가 풀리는 음성까지 들어야 했으니……

그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음……무서운 고수가 특이한 내가기공으로 자신의 몸을 투명체(透明體)하게 숨기고 있는 모양이다.)

(음성으로 미루어 보아 젊은 여자인 것 같은데……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여자가 바로 사은상(史銀翔)……)

일단,

두 사람의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두 가지라니?]

소일초가 능청스럽게 되물었다.

[불사환혼단과 의정패(依情牌)!]

심장을 얼리는 듯한 차가운 음성이 또다시 소일초의 지척에서 울려나왔다.

(음……의정패라……조금 전 그 옥패를 일컫는 모양인데……이건 필요없지만 이걸 주면 그 약까지 달라고 하겠지?)

소일초는 태연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은 모르는 것인데……]

[흥, 사람을 옆에 잡아 놓고도 시치미를 뗄 작정이냐?]

[무슨 사람? 아무도 안보이는데…………]

주소아 역시 뻔뻔스럽게 사옥상을 빤히 보면서도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했다.

[그럴 리 없어……너의 눈이 착각을 일으킨 것일 거야. 네 몸도 착각을 일으켜 보일 것이 보이지 않는 데, 눈은 거꾸로 된 게지……]

보이지 않는 것이 눈이 잘못되어 보이는 것 아니냐는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말이었다.

찰나 소일초는,

푸스스스스……

심장을 얼릴 것 같은 한기가 자신의 몸에 소용돌이쳐 옴을 느꼈다.

그리고 이번에 자신의 왼편에서 흘러나오는 한음,

[말로해서는 도저히 안될 녀석이군……사옥상이 네게 준 의정패는 본녀가 지닌 의정패와 서로 교감을 가지는 것이니 아무리 부인해도 소용이 없을 터……]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안,

다섯 노파는 멀리서 주소아의 솜씨를 목격했는지 신중한 자세로 천년노송 곁에 쓰러져 있는 사옥상을 향해 다가갔다.

[한 발자국만 더 다가오면 아마 목 위의 물건을 잃어버리게 될 걸?]

주소아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이 경고를 던졌다.

[…………]

노파들이 냉소를 터뜨리면서 다시 한 걸음 내딛는 것과 동시에,

스스스……

소일초는 자신의 왼편 가슴을 헤집고 들어오는 서늘한 손의 감촉을 느꼈다.

(음……손……)

투명인간이 된 상태로 소일초의 왼편 가슴을 뒤지고 있는 손은 비록 싸늘하고 차가웠으나,

한 편으로는 매우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을 전하고 있었다.

주소아의 손에서 다시 파란 빛줄기가 벼락처럼 폭출되고,

소일초의 가슴을 헤집던 손이 왼편 가슴에서 오른편 가슴으로 옮겨지고 있는 순간,

[크악-----!]

[큭---크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노파들의 머리만 허공으로 솟구치며 붉디붉은 선혈을 공중에 뿌렸다.

또한,

소일초의 작고 흰 손이 바람처럼 움직여 가슴편에서 무엇인가를 낚아채는 시늉을 하자,

[헉!]

차가운 비명이 허공에서 울리는 가 싶더니,

스슷……

피처럼 붉은 노을빛 광채를 드리운 아름다운 손(手) 하나가 형체를 나타내는 게 아닌가?

오오, 그리고……

스슷……

팔뚝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스슷……스슷……

몸체와 다리와 눈, 코, 입, 귀가 불쑥불쑥 형체를 드러내는 것이니……

마침내 완전한 한 명의 인영이 소일초의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피빛 적의(赤衣)를 입은 소녀,

사옥상과 생김새는 놀라울 정도로 완전히 같았으나 또한 완전히 상이한 기질을 지닌 소녀였다.

피처럼 붉은 적의(赤衣)에……노을빛 붉은 서기를 뿌려내는 붉은 피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붉은 기운만 느끼게 하는 소녀였다.

그 속에 은은히 풀려나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한기(寒氣),

그러나 그녀의 옥용은 그 어떤 여인에게도 뒤지지 않을 살인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으니……

한데 지금,

싸늘한 한기가 가닥가닥 터지는 아름다운 옥용은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다.

지금 그녀의 오른손 맥문(脈門)은 소일초의 작지만 다부진 손에 잡혀 있었던 것이다.

얼음조각을 토해내는 듯한 혈의 소녀의 눈빛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키고……

(이 꼬마도 이처럼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니……어떻게 나 사은상의 무형혈수(無形血手)를 이토록 간단히 제압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사은상은 도저히 소일초의 조그만 손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느끼고,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더욱 참담한 기분에 젖어갔다.

몸뚱이를 잃은 노파들의 다섯 개의 목이 저만큼 날다 떨어졌다.

사은상의 싸늘한 동공은 더이상 경악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졌다.

(헉……이들은 누구이기에……혈파파(血婆婆)들마저 일 수(一手)에 ……!)

바로 이때였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인가?

사은상은 자신의 맥문을 잡고 있던 소일초의 손에서 힘이 풀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와 더불어 그녀의 뇌리를 스치는 빠른 생각,

(우선……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생각과 동시에,

사은상은 소일초의 손에서 번개처럼 손을 회수했다.

이어,

푸스스스……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희미하게 화해 허공에 솟구치는 것이니……

실로,

그 빠름과 민첩함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어째 여자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까?]

한 마디 퉁명스러운 목소리,그리고 날카로운 휘파람소리와 함께,

번쩍______ !

한 줄기 흰 빛이 날카로운 섬광을 그렸다 싶은 순간,

사은상은 원래의 그 자리에서 주소아의 손에 맥문이 잡힌 채 경악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는가?

너무도 놀라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사은상의 노을빛 얼굴은 두려움마저 깔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일초를 향한 음성,

[너……너희들은 누구지?]

[신행마동! 그리고 너를 인질로 잡은 주소아!]

말을 하는 주소아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신행마동? 인질?]

경악으로 되물어 오는 사은상,

신행마동……

바로 삼성무림청을 정벌해 버리겠다고 큰 소리친 백인장의 악동이 아닌가?

무공은 날 때부터 고강했다고 전설처럼 전해지는……

[너는 삼성무림청에서 아주 중요한 신분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지?]

주소아는 비웃듯이 말꼬리를 흐리며 그녀의 혈도를 찍었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서 이번에는 정말로 긴 휘파람을 입으로 불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휘파람 소리도 덩달아 높이 울렸고……

허공에 높이 떠있던 비성성들이 일제히 내려왔다.

사은상은 비성성들의 기괴한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의 영혼이 한없이 탈수되어가는 충격과 함께 아득히 정신을 잃었다.

소일초는 한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사옥상을 잡은 것도 사은상을 잡은 것도 주소아였으며,

혈파파들을 처치한 것도 주소아였다.

게다가,

비성성들을 불러서 마무리하는 것 까지 그녀가 했다.

백인장에서 부터 순진한 비성성을 여러 가지 물건들과 맛난 음식으로 꼬드긴 주소아는 비성성을 마음대로 부리고 있었다.

소일초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지금은 네가 나서서 어디 마음대로 설쳐봐라……지금 이 도련님께서는 오직 여인의 신비에 눈뜨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마……)

주소아는 소일초에게서 빼앗듯이 불사환혼단을 받아서 비성성 중의 한 마리에게 편지와 함께 넘겨주었다.

[이 천박한 계집애들은 허공에 띄워 놓으면 아무데도 도망치지 못하겠지?]

그녀는 두 미인포로들 마저 비성성에게 맡겨버렸다.

혈도를 찍히긴 했으나 정신을 잃지 않고 있는 사옥상의 얼굴이 두려움으로 파랗게 질렸다.

그녀들과 비성성들이 허공으로 올라가 버리자 소일초는 입맛을 다셨다.

(옆에 두고 있으면 더 깊이 연구할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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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章

 

          신나는 武林出道

 

 

 

백인장,

이곳의 정예 백인도객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새롭게 정비하기 시작했다.

신행마동 소일초의 출현과 함께……

그 동안 발뒤꿈치를 들고 장주의 흉수와 소일초를 찾아다니던 그들이,

준동(駿動),

준동의 거대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새벽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백인장의 동녁 하늘에 고스란히 동이 터오고 있었다.

이 힘의 여명은……

소일초와 장주인 도왕 소선풍의 해후가 있었던 그날로부터 열흘 후,

그리고,

정식으로 신행마동 소일초의 무림정벌(武林征伐)을 선언한 칠일 후의 여명이었다.

 

이 아침의 싱그러운 여명에 쌓인 백인장 깊숙한 국화원(菊花園)에는,

사방이 온통 국화의 천국이었다.

화향이 천지를 진동하고,

온갖 국화의 색깔이 다투어 핀 이 국화의 바다……

이 화원에서 이른 아침부터 듬성듬성 솟아난 잡초를 손수 제거해 가던 백인장 원로 십팔도객의 제일 원로인 동평선생(東平先生),

은은히 흐르는 비범한 기질도 기질이려니와……

절정의 도객답지 않게 지혜로 충만하여 고요로운 눈빛……

돌아온 소장주로 말미암아 모든 근심이 다 사라져 버렸는가?

그의 한몸에 여유가 충일하여 넘친다.

[봄에는 매화……가을엔 국화…… 이 어찌 꽃 중의 으뜸이 아니겠는가……]

한데 돌연,

무심히 국화에 취해 잡초를 제거해 가던 동평선생의 손이 빠르게 허공에 휘저어졌다.

동시에,

어느 곳, 어느 방향에서 날아든지 모를 하나의 비찰이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이니……

동평선생은 조용히 그 비찰을 펼쳐 읽었다.

순간,

동평선생의 무처럼 잔잔한 얼굴에 빠른 경악이 스치고 지나갔다.

 

<오늘 부로 백인장은 일체 강호활동을 중지함. 단 본인은 제외. 불복자는 처단할 것임. 외부에서 활동하는 백인장의 가족들도 조속히 귀환조치 할 것. 특히 십팔원로는 일체 잔소리하지 말 것. 이상.

신행마동 소일초.>

 

[이런……이런……]

동평선생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서찰의 내용을 읽어내렸다.

이어,

제거해 가던 잡초를 내던지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말썽꾸러기……이제 철 좀 들었나 했더니 고작 며칠 만에 본색을 드러내? 무림에 혼자 나가서 뭘 어쩌겠다고……그리고 나보고 일체 잔소리 말라고?]

여명 아래 그의 신형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원로십팔도객의 우두머리이다. 소일초가 날 때부터 손자처럼 귀여워 했던 그였다.

[안될 소리……안될 소리……]

그의 심해처럼 맑은 눈은 떨림 속에 다시 비찰의 내용을 더듬었다.

분명,

비찰의 마지막에 찍힌 것은 패도구룡인(覇刀九龍刃)의 흔적이다.

[이……무슨 얼토당토 않은 짓……]

이어,

동평선생은 국화원의 한곳으로 다급한 음성을 던졌다.

[사호동(四護童)은 즉각 다른 원로들에게 알려라……직접 소장주께 확인할 것이다.……]

동시에,

스스스슷……

짙은 화향이 밀려오듯이 국화밭의 한 편에서 황색(黃色)의 작은 그림자들이 소리없이 솟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마도 그들이 사호동인 모양이었다.

동평선생도 첩지를 재빨리 품속에 넣고 손에 묻은 흙을 털었다.

동시에,

스스………스슷……

사호동보다 더욱 빠르게 허공을 땅처럼 밟고,

순식간에 국화원 저편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정실,

정실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소박하면서도 성결한……

그리고도 귀풍에 흠뻑 젖어 있다.

이 정실은 바로 소선풍이 병상에 누운 이후로 조예진이 거처하는 곳이다.

지금,

조예진은 치렁치렁한 소일초의 흑발을 가지런히 빗겨주고 있는 중이었다.

더 없이 자상한 손길과……

더없이 자애로운 눈빛이 하나의 동경(銅鏡)속에 비치고 있다.

한데 문득,

조예진의 따사롭고 자애로운 눈빛에 가득한 염려의 빛이 피어올랐다.

[……그래 꼭 혼자 떠나겠단 말이냐?]

[예……저 혼자 그들을 상대하고 싶어요. 작은 어머니……]

소일초의 음성엔 묵직한 의지가 흐르고 있었다.

비록 그의 악동같은 얼굴은 변함이 없으나……

지금 내뱉는 소일초의 음성은 옛날과 확연히 틀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말썽만 부리던 그 음성도 아니었고……

옛날처럼 대소구분 없이 마음내키는 대로 내뱉던 음성도 아니었다.

굳은 의지가 살아 끔틀거리고 있는 당당한 어린 장부(丈夫)의 음성 바로 그것이었다.

검마에게서 받았던 삼 년의 수행은 그를 조금은 진지한 아이로 만들었던 것이다.

이 순간,

소중히 소일초의 머리를 빗겨가던 조예진의 입에서 가득 염려가 깃든 음성이 흘러나왔다.

[애야…… 지극히 위험할 텐데……]

[…………]

[더구나 지금 삼성무림청은 장강 일대를 장악하고 끝없이 팽창하고 있는 실정이라……우리 백인성의 힘이 아니라면 막기 힘든 상대야……그런데……]

순간,

소일초의 얼굴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래서 더욱 혼자 가야하는 것이지요.]

[아……네 뜻을 나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구나……]

[작은 어머니……나는 소일초가 아닙니까?중원을 지켜야 할 신행마동 소일초입니다.]

[…………]

[당연히.삼성무림청 정도는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그래야 우리 백인장의 위세도 더욱 높아 질 것입니다.]

[우리 말썽꾸러기가 삼 년 만에 정말 협객이 되어버렸구나……이제 신행마동이 아니라 신행협동(神行俠童)이라고 불러야 겠는걸……]

조예진이 걱정스럽던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건 좀 어색하고……아무튼 앞으로 최소한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 앞에서는 장난 치지 않겠어요. 지난 번에 작은 어머니가 막 울때 얼마나 놀랐다구요……]

[그럼………우리가 없을 때나 밖에서는 여전히 장난치겠다는 말이구나…]

[그건 작은 어머니도 이해해주셔야죠. 나는 아직 어린애니까 당연히……]

[그래! 우리 말썽꾸러기야. 그건 그렇고 원로들이 풀쩍 뛸텐데 어떻게 하지?]

조예진은 백인장 옛터전에서 소일초의 무공이 혈기자로 오해될 만큼 고강했던 것을 직접 격었으므로 혼자 나가겠다는 데 대해서 크게 염려하고 있지는 않았다.

다만, 어린애를 혼자 보내는 안스러움이 조금있을 뿐이었다.

[제가 첩지에 원로들은 찍소리 말라고 했으니 괜찮을 겠죠뭐……]

[맙소사……정말로 그렇게 썼단 말이냐?]

조예진의 아름다운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

[거기에다 백인장의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고 했죠……]

소일초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조예진은 어쩔 수 없는 말썽꾸러기를 보면서 한숨을 지었다.

[네가 가만있으라고 가만있을 원로들이냐? 벌써 내 귀가 따가운 것 같구나……정중하게 알려도 듣지 않을 원로들인데……]

[어? 정말 그럴까요?]

소일초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그리고,

[그럼, 이러다 원로들이 몰려오면 야단이잖아요.]

조예진은 머리를 끄덕였다.

[아이쿠, 작은 어머니. 저 이만 갈래요.]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애야! 행장은 갖고가야지……그리고, 소아도 데려가거라……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르니까……]

[네! 그렇게 할께요……]

벌써 소일초는 자기 방문 앞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묶지도 않은 머리가 어지럽게 날리고 있었다.

[내가 따라가지 않아도 될까?]

조예진은 덤벙대는 소일초를 염려하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직한 탄식과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녀석……어쨌거나 커기는 커버렸구나……]

 

× × ×

 

십팔원로도객이 일제히 내전으로 몰려들었다.

갑작스런 무림활동금지령의 부당성과……

혼자서의 무림행보는 단지 만용에 불과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간언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언을 하러왔던 잔소리를 하기위해 왔던지 간에,

조예진의 말로 그들은 입도 떼지 못하고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리며 돌아가야만 했다.

 

____ 소장주는 벌써 떠났습니다……

원로들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소장주가 돌아온 후 그에게 하십시오. 설마 그 전에 이미 패도구룡인으로 내려진 명(命)를 어길 생각은 아니겠지요?

 

이때는……

소일초는 이미 주소아와 함께 아침 햇살에 머리카락을 빛내며 백인장에서 이백여리 떨어진 곳에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허리에는 머리통 만큼이나 큰 검은 목탁이 매달려 있고,

왼쪽에는 집도 없이 걸려있는 날이 빠져 쇠몽둥이에 가까운 시커먼 철검이 걸려있었다.

어린도는 꺼림직해서 아버지의 병상옆에 살그머니 갖다놓았던 것이다.

붉은 띠로 질근 묶은 머리칼은 말꼬리같았다.

[야! 주소아, 네 젊은 할아버지 만나면 내 이야기 잘해줘야 해. 전에는 내가 어려서 장난이 좀 심했었다고……]

주소아는 입을 삐쭉했다.

[누나라고 부르지도 않으면서 말은……]

[이 년 먼저 났다고 너무 그러지마. 남자 여자는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귀는 거야……]

[네가 남자니? 말썽꾸러기 꼬마지……나도 백인장에 있으면서 네 악명을 충분히 들었다고……]

[내가 꼬마라고? 웃기는 말씀. 그리고 나는 내 악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구.]

[뭐?]

[먼저 내가 꼬마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지……]

갑자기,

소일초는 자기보다 한뼘은 더 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매달려 강하게 몸을 밀착시켰다.

주소아의 안색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그녀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낮은 휘파람소리도 갑자기 높아졌다.

[어때, 이래도 꼬마라고 할거야?]

주소아는 자기의 배꼽어림에 와닿은 무엇을 느끼고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두팔을 돌려서 소일초의 허리를 움켜쥐고는 홱소리가 나도록 뒤로 집어던져버렸다.

그러나……

소일초는 기분이 좋은지 연방 콧노래를 부르며 가랑입처럼 날아갔다가 그녀의 옆으로 다시 너울너울 날아와 내려섰다.

주소아는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올라서 몸으로 연방 높은 휘파람소리를 냈다.

상당히 어울리지 않는 분노의 표시방법임에 틀림없다.

[내 사부 중의 하나가 색귀였다구. 여자에 관한한 나는 모르는 게 별로 없어……]

주소아는 입을 꼭 다물고 자기 몸에서 나는 휘파람 소리가 싫은 듯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일초의 말은 분명했다.

이론상이기는 하지만 색귀는 어리지만 당돌한 그에게 여자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해 주었고,

그것들을 소일초는 한 마디도 빠뜨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적당한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 그 지식들이 그의 몸에서 썩고있었지만,

지금, 아름답기 그지없는 주소아가 나타난 이상 그의 장난기와 더불어 그 지식들이 슬슬 몸으로 구현되려고 하는 것이었다.

주소아는 이미 열 다섯 살,

총명한 그녀는 이미 알 만한 것은 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소일초와 말도 하기 싫었다.

(이 나쁜 놈하고 언제까지 같이 있어야 하나? 확 집으로 돌아가 버릴까?)

집이란 물론 백인장이다.

삼 년 동안 지냈으니 자기집이나 다름없었다.

(아니야……이 자식이 자기집이라고 우기면 나는 곤란하지……아무래도 나에게는 고모집일 뿐이니까 내가 밀리지……)

소일초의 작은 어머니인 조예진이 사승(師承)으로 본다면 주소아의 고모가 된다.

그녀는 이미 조예진이 자신의 할아버지라는 분의 제자라는 것을 알고있었다.

주소아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소일초는 소일초대로 그녀의 뒤에 따라걸으면서 신나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색귀사부의 말이 정말인것 같은데……기분이 묘했어. 이히히히……이제 적어도 몇 달은 같이 먹고 자고 할텐데……철저한 실험정신을 발휘해야겠지……)

신행마동 소일초……

그의 생각은 멋대로 가고 있었다.

생각에 도취되어 자기도 모르게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앞서가던 주소아는 그가 뒤에서 이상한 소리로 웃자 더욱 속이 끓었다.

그자리에 딱 멈추며 소리를 질렀다.

[이봐! 네가 앞에가, 엉큼한 꼬마같으니……]

[싫다. 네가 앞에 있으니 그대로 가.]

소일초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기위해서라도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다.

[흥, 저런 막대먹은 꼬마가 뭐 삼성무림청을 쳐부수고 아버지 복술해? 고모 말도 웃기는 소리지……]

[그러면 내가 넘어갈 줄 알고……잔소리 말고 앞에서 걸어. 누군가 지켜봐준다는 것은 즐거운 일아니겠어?]

그의 무덤덤한 말에 주소아의 얼굴이 발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휘파람소리는 다시금 높아지고 있었다.

[그 휘파람소리도 어디서 나는지 궁금하고……]

소일초의 그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소아 빽 소리를 질렀다.

[너 정말 나하고 싸워볼래? 조그만 녀석이……]

두 팔을 쫙 벌리며 공격자세를 취하는 그녀를 보면서 소일초는 자기가 너무 심했나 싶었다.

그는 뭐가뭔지도 모르는 철부지로 무엇이 적당한 정도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그러나 이내 그도 태도를 바꾸었다.

정말 화가나서 집으로 돌아가버리기라도 하면 좋은날은 다가버린 것이다.

[누나……정말 화난 거야? 난 어린애 잖아,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한테 그렇게 화내면 어떡해……]

그의 돌변한 태도에 화가 꼭지까지 올라갔던 주소아는 어이가 없었다.

일부러 가련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에게 기대오는 소일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깜직하게 귀여운 모습에 화가 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가막혀 하면서도 이미 화는 풀려 그를 노려보며 한마디 했다.

[다시는 까불지마……]

영악한 소일초는 이미 자기의 수단이 성공한 줄 알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주소아…이렇게 있으니 기분좋은데……]

주소아는 그를 확 밀쳐버리려 했다.

그러나,

오히려 소일초가 어깨위에 그녀를 들어 올리고는 무중일전의 신법을 펼쳐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이 나쁜 놈……그냥 두나봐라……]

주소아의 외침은 귓전을 스치는 바람소리에 흩어져 버리고 소일초는 신나게 달려갔다.

뿌연 안개에 휘감긴 채 한덩어리의 구름처럼 날아가는 그들을 보고 관도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일초의 어깨에 얹혀가고 있는 주소아는 이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달려가고 있는 중에 소일초가 그녀를 다시 앞으로 안고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리……그냥 편하게 지내자……우리가 가릴게 뭐 있겠어? 기분내키는 대로 행동하면 되지……]

주소아는 아무말도 하지 않다가 심각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어디가서 아침이나 먹자.]

그리고……

소일초의 귀를 잡아당겨 버렸다.

[아아……귀떨어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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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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