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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교 구대마왕(九大魔王)의 등장

 

 

안탕산 일대는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저녁 무렵처럼 어둑하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무겁게 깔린 먹장구름으로 뒤덮여있기 때문이다.

!

문득 한 줄기 기화(旗火), 즉 불꽃 신호가 안탕산의 깊은 산중에서 허공으로 치솟았다.

기화가 쏘아진 곳은 물이 마른 계곡이다.

그곳에 제왕성의 철위사 다섯 명이 모여 있다.

철위사들은 모두 긴장된 표정인데 두 명은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살피고 있으며 두 명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마지막 한 명의 철위사는 빈 금속통을 든 채 허공을 보고 있다.

방금 전에 기화를 쏘아올린 것은 바로 그자였다.

허공에서는 어느덧 불꽃이 흩어지고 있다.

기화를 쏘아 올린 게 너희들이냐?”

휘익!

외침과 함께 누군가 계곡으로 날아 내려 철위사들은 급히 돌아보았다.

여기서도 일이 벌어진 것이냐?”

계곡에 내려서는 인물은 바로 제왕성의 외총관인 독검마유 궁무독이었다.

휘익! !

궁무독과 함께 두 명의 동위사들도 현장에 내려섰다.

총관님!”

어서 오십시오 총관님.”

궁무독을 본 철위사들은 비로소 안도한 표정이 되며 급히 포권을 했다.

형제들이 또 흉수에게 변을 당했습니다.”

철위사들이 급히 옆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

궁무독은 이마를 찡그리며 철위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두 명의 철위사가 시체가 되어 누워있는데 사인은 가슴에 난 사발만한 구멍이 었다.

마검칠식!”

이번에도 마검칠식에 당했습니다.”

궁무독을 따라온 두 명의 동위사가 급히 시체로 다가가며 이를 갈았다.

궁무독은 동위사들이 시체의 사인을 살피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틀림없습니다 총관님! 이 형제들을 죽인 무공은 천마의 구대절기중 마검칠식입니다.”

안탕산에 접어든 이래 벌써 스물세 명이나 당했습니다. 마검칠식을 쓰는 놈들이 우리 제왕성의 안탕산 진입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철위사들의 사인을 확인한 동위사들이 이를 갈며 분노했다.

이제 소요신군 강조가 십팔 년 전 참사의 원흉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소요신군이나 그자의 수하들이 본성에 적대하는 건 그렇게 밖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단정하지 마라. 진짜 범인이 소요신군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해 벌이는 짓일 수도 있으니...”

궁무독은 냉정한 어조로 철위사와 동위사들의 말을 막았다.

하지만 소요신군의 아들놈도 마검칠식을 구사하는 것이 확인되지 않았습니까?”

동위사 중 한명이 오만상을 쓰며 이의를 제기했다.

누명을 썼든 어쨌든 소요신군 강조가 십팔 년 전의 참사와 관련이 있다는 건 분명...”

불만을 토로하던 그자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궁무독이 한손을 들어 자신의 말을 막으며 다른 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궁무독이 보고 있는 쪽에는 철쭉이나 찔레같은 키 작은 관목들이 우거져 있는데 거리는 십장 남짓이었다.

(총관님이 왜 저러시지?)

(저곳에 무엇이 있다는 건가?)

(아무런 기척도 없는데...)

철위사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관목 숲을 보았다.

찌릿! 찌릿!

하지만 동위사들은 몸을 마비시키는 것같은 살기를 느끼고 숨을 멈췄다.

! 스릉!

동위사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뽑아들었다.

!

그때 궁무독은 오른발을 관목 숲 쪽으로 내딛으며 오른손으로는 왼쪽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 스릉!

궁무독은 내민 오른발로 세차게 발을 구르며 발검을 했다.

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왔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흔한 검기조차 궁무독의 검에서는 내뻗치지 않았다.

스악!

궁무독은 발검한 검으로 앞쪽을 수평으로 그어내었다가 다시 거둬들였다.

검기도 내뻗치지 않는 궁무독의 이 일초는 무공을 모르는 무지렁이가 허세를 부리는 칼부림처럼 느껴졌다.

(뭘 하신 거지?)

(아무런 기척도 없었는데...)

철위사들은 발검 했던 검을 거둬들인 궁무독이 다시 두 발을 모으며 서는 것을 보면서 어리둥절했다.

헌데 그 직후였다.

서걱!

관목 숲이 일제히 같은 높이에서 잘려 나갔다.

좌우로 이장(二丈;6미터), 앞뒤로 일장(一丈)쯤인 반달형으로 관목 숲이 매끈하게 잘린 것이다.

!”

!”

동위사들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철위사들은 놀라 입을 딱 벌렸다.

철위사들은 자신들의 외총관인 궁무독이 무공을 쓰는 것을 오늘 처음 보는 것이다.

퍼억! 푸스스!

그때 똑같은 높이로 갈라진 관목들의 잘려진 부분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 가공!)

(족히 십장은 되는 거리를 두고 관목 숲을 무형의 검기로 베어버렸다.)

(과연 우리 제왕성의 총관다운 솜씨다.)

철위사들은 감탄과 흠모의 표정으로 궁무독을 보았다.

독검마유 궁무독은 몇 대째 제왕성을 섬겨온 충신 가문 출신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무독이 가문과 출신을 배경으로 제왕성의 총관이 되었다 여겨왔다.

하지만 사실 궁무독은 은위사나 금위사들에 못지않은 무공의 소유자였다.

방금 전 소리없이 관목 숲을 베어버린 일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

그러나 검을 거둔 궁무독의 이마는 심각하게 찡그려져 있었다.

동위사들 역시 긴장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왜들 저러시지?)

(총관님 뿐 아니라 동위사들도 여전히 긴장한 표정이잖은가?)

철위사들이 어리둥절할 때였다.

놀랍군. 마교의 몰영만안대법(沒影瞞眼大法)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하는 자가 당대에 존재할 줄이야.”

궁무독이 앞쪽을 노려보며 누군가에게 말했다.

(몰영만안대법!)

(그건 빛을 반사하거나 흘려보내서 상대방의 눈에 모습이 보이지 않게 만드는 마교의 은신술 아닌가?)

(저곳에 누가 있단 말인가?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철위사들은 관목 숲이 반달형으로 갈라진 곳을 보며 놀라워했다.

 

<흐흐흐! 역시 만만치 않아!>

 

그때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젊은 사내의 음성인데 어디서 들리는지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다.

 

<독검마유 궁무독! 당신이 제왕성에서 총관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게 단지 운이 좋았거나 출신 배경 덕분이 아니라는 걸 방금 전의 일격으로 알게 되었다.>

 

츠으! 지이!

말소리와 함께 반달형으로 잘려나간 관목 숲 뒤쪽의 허공이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아지랑이같은 그 현상은 곧 사람의 모습을 갖춰갔다.

... 저기에 사람이 있다.”

무언가 움직인다.”

! 차창!

철위사들도 비로소 알아차리고 다급히 무기를 뽑아들며 뒷걸음질을 쳤다.

 

<늦었다!>

 

!

음산한 외침과 함께 섬뜩한 섬광이 철위사 한명에게 날아들었다

!”

표적이 된 철위사는 다급히 칼을 들어 그 섬광을 막으려 했다.

콰창!

하지만 날아든 섬광에 닿는 순간 철위사의 칼은 유리처럼 깨졌다.

그 섬광은 마검칠식으로 발휘된 검기였던 것이다.

가강!

일거에 검을 깨트린 섬광은 철위사의 가슴으로 독사처럼 파고들었다.

(죽었다!)

철위사는 자기 가슴으로 파고 드는 차가운 섬광을 내려다보며 절망했다.

!

절체절명의 순간 옆에서 불쑥 내밀어진 누군가의 검이 철위사의 가슴으로 파고들던 섬광을 쳐냈다.

그 검의 주인은 물론 독검마유 궁무독이었다.

... 감사합니다 총관님!”

스팟!

구사일생한 철위사는 뒤로 휙 날아 피하며 외쳤다.

스악!

철위사를 구한 궁무독은 몸을 홱 돌리며 허공에 대고 다시 검을 그었다.

이번에도 검에서 검기가 내뻗치는 흔적은 없었다.

 

<멸적살검(滅跡殺劍)!>

 

!

하지만 누군가의 긴장한 외침과 함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꽃이 튀었다.

후두둑!

뒤이어 허공에서 피가 한줄기 확 뿌려졌다.

모습이 보이지 않는 어떤 자가 궁무독이 발휘한 기척 없는 검기에 상처를 입은 것이다.

베었다!”

그렇지!”

보고 있던 철위사들이 안도하며 환호성을 터트렸다.

휘청!

허공에서 사람의 흐릿한 형상이 휘청하고 있는데 그 형상의 어깨 쪽에서 피가 뿜어지고 있다.

스악! !

철위사들이 환호할 때 동위사들은 이미 소리없이 쇄도하여 그 사람 형상에게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아주 빠르고 격렬한 공격이다.

카캉! !

그들의 무기는 보이지 않는 무엇과 충돌하며 시퍼런 불꽃을 일으켰다.

파캉! !

하지만 그 직후 동위사들의 무기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딪혀 그대로 부러져버렸다.

역시 마검칠식에 당한 것이다.

“...!”

“...!”

스팟! 휘익!

무기가 부러진 동위사들은 벼락같이 뒤로 물러섰다.

스악!

물러서는 동위사들 뒤에서 궁무독이 다시 소리없이 검을 그어냈다.

다만 이번에는 수평으로 긋는 게 아니라 수직으로 그었는데 역시 아무런 기척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크!>

 

!

아지랑이 같은 사람의 형상이 피를 허공에 뿌리면서 차가운 섬광을 아래에서 비스듬히 위로 그어 올렸다.

빠캉! 카앙!

궁무독이 발휘한 보이지 않는 검기가 그 섬광에 부딪혀 불꽃을 튀겼다.

“...!”

궁무독은 이마를 찡그리면서 검을 거둬들였다.

그만 합시다 궁총관! 오늘은 내가 진 것으로 할 테니...”

츠츠츠!

그 직후 젊은 사내의 음성과 함께 궁무독의 오장쯤 앞쪽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났다.

모습을 드러내는 자는 일신에 은박처럼 번쩍이는 옷을 입고 있다.

머리에도 은박 재질에 눈 부위에만 구멍이 나있는 자루 모양의 복면을 쓰고 있다.

양손에는 같은 재질의 장갑을 끼었으며 발에 신은 신발도 같은 은박처럼 보인다.

아마도 그자의 일신을 뒤덮고 있는 그 은박 재질의 천이 사람 눈에 모습이 드러나지 않게 해주는 효과를 발휘한 듯 했다.

무림에 나온 이래 본좌의 몸에 상처를 낸 건 궁총관이 처음이었소.”

말하는 복면인의 오른쪽 어깨에는 제법 길게 갈라진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고 있다.

궁무독이 두 번째로 그어낸 무형의 검기에 베어진 것이다.

마교의 인간이냐?”

철컥!

궁무독은 검을 다시 칼집에 꽂으며 복면인에게 다가갔다.

그렇소이다. 본좌는 마교 구대마왕(九大魔王)의 막내인 검마(劍魔) 비무강(非无姜)이라고 하외다.”

복면인이 과장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는 시늉을 했다.

(마교!)

(구대마왕은 대대로 마교가 세상에 내보내는 최강의 고수들 호칭 아닌가?)

(목소리로 보아 아직 젊은 저자가 구대마왕의 일인이었구나.)

철위사들과 동위사들은 아연긴장하며 복면인, 검마를 노려보았다.

마교가 소요신군 강조를 비호하는 이유를 들어볼까?”

검마 비무강에게 걸어서 다가가는 궁무독의 두 눈이 차갑게 갈아 앉았다.

유감이지만 오늘은 이만 작별을 고해야겠소이다. 궁총관과 더 교분을 나누고 싶어도 혹시 정들까봐 겁이 나니...”

스스스!

검마 비무강의 모습이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구든 내 앞에서 마음대로 오고가지는 못한다.”

! !

거의 동시에 궁무독은 칼집에 꽂았던 검을 다시 발검하여 허공을 종횡으로 긋고 갈랐다.

콰쾅! 투쾅!

그러자 검마가 서있던 곳 뒤쪽에서 두 번의 폭발이 일어난다. 궁무독이 발휘한 무형의 검기가 그 부분의 바닥을 박살낸 것이다.

 

<첫인사 치고는 대접을 제대로 받았소이다. 기억해두리다. 흐흐흐!>

 

하지만 어디선가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검마 비무강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놓쳤구나.)

동위사와 철위사들은 상황을 깨닫고 분노하여 이를 갈았다.

궁무독은 말없이 검을 다시 칼집에 꽂으며 무언가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오늘 진 피 빚은 가급적 빨리 갚아드릴 테니 기대하시구려. 흐흐흐!>

 

검마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죽일 놈!”

서라!”

! 휘익!

분노한 동위사들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날아올랐다.

쫓지 마라.”

궁무독이 그런 그들을 저지했다.

총관님!”

하지만 저놈 손에 스무명이 넘는 형제들이 당했는데...”

! 휘익!

동위사들은 분개하면서도 궁무독의 명령에 따라 도로 날아내렸다.

저자가 정말 구대마왕중 한명이라면 섣불리 상대해선 안된다.”

궁무독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연락해서 반드시 네 명 이상이 조를 짜서 움직이라고 전하라. 일단 놈과 조우하면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귀로 찾아내도록 시도하라 전하고...”

존명!”

분부 거행하겠습니다.”

! !

동위사들은 복창한 후 왔던 길로 도로 날아갔다.

(마교의 최고 고수들인 구대마왕중 한 놈이 안탕산에 진을 치고 있다 이거지?)

날아가는 동위사들의 뒷모습을 보며 궁무독의 두 눈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소요신군 강조! 점점 더 당신의 정체가 궁금해지는군.)

궁무독의 얼굴에는 어느덧 서릿발같은 살의가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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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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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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