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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4.27 [무림경영 2부] 107화 미녀의 몸을 건 비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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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미녀의 몸을 건 비무

 

 

 

희야가 나온 갱도는 아래쪽에 있는 화독문으로 길이 나있었다. 철광을 캐서 나르는 길이었다.

희야는 배후와 야산 위쪽에서 내려올 수도 있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우묵한 곳으로 옮겨갔다.

육연부가 있는 북쪽 방향으로 별도 잘 보였고 전망도 좋았다.

적들은 당장 희야를 공격할 뜻이 없는 듯 했다. 역시 곽범과 양설을 기다리는 것이다.

축릉사 하나가 말했다.

"흑귀면탈의 말은 뭣하나 맞는 게 없군. 칠접산에 중독되어 나뒹굴거라더니 멀쩡하기만 하니.”

독을 쓴 자들이 희야 등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희야는 저들이 기다리는 것이 곽범과 낭낭뿐만 아니라 육연부 여자들이 음약에 중독되어 발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희야와 단아 등은 잘 견디고 있었다.

육연부에서 성에 대해서 솔직하고 소탈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도를 하면서 하나의 마음을 붙잡고 다른 마음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법을 익혀왔던 덕분에 음약의 기운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와 같은 상태다.

언제 시위가 터지거나 손아귀를 벗어날지 몰랐다.

희야는 업고 있던 단아를 내려놓았다.

부상자들을 뒤로 모으고 싸울 수 있는 상태인 전옥과 두 계집애가 희야 뒤에 섰다.

척살객들은 양소의 명에 따라 희야 앞에서 횡진을 쳤다.

축릉사가 말했다.

"밤길 걷는 계집이 간음을 꿈꾸지 않을 리 없는데 얼굴 없는 사내들을 만났으면 얼굴만 가리면 꿈을 이루지 않겠는가? 우리는 너희 계집들의 목숨을 취할 생각이 없으니 치마들어 얼굴 가리고 죽을 자리를 면하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축릉사가 말했다.

"여자의 부끄러움은 얼굴에 있지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지. 얼굴을 가렸으니 이후에도 알아볼 사람이 없는데 늘 가린 치마 밑이야 부끄러울 일이 있나?”

은근한 말로 시작하는 노골적 유혹이었다.

말을 섞으면 오히려 말려들게 된다.

저런 말들이 계속되면 겨우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희야는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도 공력을 과도하게 쓰면 평정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다.

"칼 든 여자 하나도 상대하지 못하고 여럿이서 음탕한 소리만 늘어놓는다면 사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내가 아닌 짐승에게 희롱 당한다면 짐승이 수치스러우냐 희롱당한 여자가 수치스러우냐? 여자는 경멸할 뿐 수치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희야가 냉오하게 말했다.

축릉사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명가 등석자의 궤변을 여자 입에서 듣게 되는군. 말은 그래도 검으로 너를 꺾어야 사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너를 꺾으면 기꺼이 몸을 바치겠다는 말도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희야가 말했다.

"나는 약한 여자인데 천하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많겠나? 나는 단지 그대들이 사내인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상대가 사내라서 몸을 허락하는 거라면 네 처와 어미는 얼마나 많은 사내에게 몸을 허락하였느냐?”

원래부터 말이 왔다 갔다하는 경향이 있는 희야는 양설의 지도에 따라 명가의 궤변을 익혀오고 있었다.

따라서 희야는 옳다고 했다가도 그르다고 하고, 그 반대로 말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고 이치를 만들어 붙인다.

사업과 거래에서는 쓸 수 없지만 싸울 때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축릉사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내 처와 노모는 밤 걸음을 하지 않지. 종을 거느리지 않고는 바깥출입도 않는다.”

"너 같은 자가 사내라면 네 집 담장을 넘고 네 처와 어미의 치마를 걷는 사내도 있겠지.”

희야가 차갑게 웃으며 축릉사를 욕했다.

“네 아비가 네 아비고 네 자식이 네 자식인 줄은 치마 들어 얼굴 덮었던 네 어미와 네 처가 아니면 누가 알까? 네 집 담장 안의 노복이 너와 닮고 어느 종놈이 네 자식과 닮지는 않았더냐?”

축릉사도 기본적으로는 유교를 신봉하는 자들이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집착과 처첩의 정절에 대한 강요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도 같았다.

마침내 축릉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방자한 년.”

희야는 처음과 같은 어조로 욕을 이어갔다.

"두 손이 있으면서 칼도 뽑지 못하고 혀끝만 놀리는 건 손 없어서 짓기만 하는 개보다 못한 자가 아니냐? 근본이 있다면 어찌 사람이 개보다 못하겠는가? 너는 네 아비를 종으로 부려먹은 놈이 틀림없구나.”

친아비를 종으로 부려먹었다는 것은 어미가 종과 사통하여 낳았다는 말이었다.

이에 더 나아가면 종놈의 자식을 적자로 키우고 자기 자식을 서자 종놈으로 키우는 놈도 나온다.

희야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래도 검을 뽑지 않는 자라면 벗은 여자 앞에서도 다가설 용기가 없을 것이다.”

"네 년의 입을 찢고 주리를 틀어서 보마.”

축릉사가 이를 갈았다.

그자는 소매 속에서 끝이 낫처럼 휘어지고 날카로운 갈고리 두개를 꺼내들었다. 단검보다는 길어 두 자 가량 되었고 찌르거나 걸거나 베는 데 쓸 수 있는 무기였다.

희야는 단공36검법의 첫번째 초식인 만천과해를 준비했다.

단공36검법은 수원의 아버지가 만든 것으로 모든 초식이 병법과 통해있어 단순한 초식 이상의 위력을 발하는 절기다.

근처로 희야와 양소를 나누어 수색하고 쫓던 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희야와 양소는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었다.

그들은 곽범과 양설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미녀를 보자! 하는 소리와 맛나겠다! 는 등 음탕한 소리들도 나왔다.

신분이 낮은 자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고수들이 아래에서 희야와 미녀들을 올려다보면서 노는 형세가 되었다.

"음약이 약했던가 보군. 누가 다른 음약 있으면 좀 더 써보는 게 어떻겠소?”

희롱하는 소리도 나왔다.

희야는 단아를 묶느라 이미 찢어진 겉옷을 조금 더 찢어서 면사 밑으로 눈을 가리며 축릉사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눈을 가렸으니 사내라면 10초 안에 나를 제압할 수 있을 테지. 10초 안에 제압할 수 없다면 스스로 모자람을 알고 물러나라.”

"응당 사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희야의 말에 찬성하는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상황은 미녀가 몸을 걸고 비무 하는 것과 비슷했다.

싸움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고 미녀라면 눈도 까뒤집히는 강호인들이 이 상황을 마다할리가 없었다.

누가 다시 소리쳤다.

"어서 싸워라! 누가 이기든 결과를 보고 싶다.”

희야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면사를 걷었다.

어차피 패하여 죽게 되면 다 드러날 얼굴이었다. 면사로 가려도 사내들의 음심은 끊어내지 못했다.

강호의 여검객 하나로 위기 속에서 검으로 싸우다가 죽어 이름을 남기는 것도 괜찮았다.

흰 천으로 눈을 가렸지만 그 아래 위로는 흰 천보다 더 희고 빛나는 백옥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비녀를 뒤에 받친 작은 귀바퀴에서 이어진 가녀린 턱선이 붉은 입술을 받치고, 오똑한 콧날이 좌우 얼굴의 정기를 모아 아름다움을 비추었다.

연한 분홍빛 두 볼은 입술을 매달았다.

적들이 희야의 미모에 잠시 말을 잃었다.

쌍검을 드리우고 단공36검법의 춤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니 눈 가리고 하강한 선녀 같았다.

누가 욕을 했다.

"육연은 저런 미녀가 열도 넘는다는 거지!”

희야가 당당하게 외쳤다.

"덤벼라.”

축릉자는 조롱당하고 분노하였지만 눈을 가리고 서있는 미녀에게 칼을 휘두를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고리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내가 졌다. 눈 가린 여자와 싸워 이긴들 내가 사내라 할 수는 없을 터.”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도전하지. 내 눈을 가리고 도전하지.”

음심이 동해서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이 소리쳤다.

눈 가리개와 가슴가리개를 베어라는 말과 치마를 베서 다리를 보자는 소리가 연이었다.

희야는 자기가 푸줏간의 고기와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을 알고 시선을 견뎌야 했다.

"말만 많은 것들.”

그저 나직하게 욕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육연부의 감독 희! 누가 나와 검을 겨루겠느냐?”

희야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음성과 태도에 모두 당당한 기상이 서려있었다.

아쉬운 듯이 상대할 수 없다고 물러나버리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말했다.

"여걸이군. 오늘 죽어도 이름을 크게 남기겠어.”

적이지만 희야에게 감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희야의 미모에 현혹되어 광기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장미원 계집들 보다 더 낫다는 소리며 온갖 평과 추잡한 소리가 이어졌다.

윗쪽에서 단아를 비롯한 계집애들이 눈물을 흘렸다.

양소가 그들에게 말했다.

"경동하지 마시오. 큰아가씨께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부끄럽지만 변고를 만들지 않아야하오. 육연대인은 지금도 달려오고 있을 것이오.”

전옥이 고개를 저었다.

"감독님은 조금도 쉬지 못했어요. 공력도 많이 써서 독을 누르고 있기도 힘들어요. 저러다가 정신을 놓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에요.”

전옥이 단아를 보자 단아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면서 말했다.

"가! 가서 방법이 없을 때는 감독님을 깨끗하게 보내드려.”

전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육연부에는 미녀호걸이 아닌 이가 없구나.”

술법도 깨어지고 내공도 잃어버린 양소는 안타까워서 탄식만 했다.

"저 무리들은 장차 자기들에게 닥칠 죄과를 모르겠지. 이들 하나라도 잃는다면 육연이 삼족을 멸하고도 남을 것을.”

아래쪽에서는 누군가 검으로 희야와 맞서기 시작했다.

전옥이 내려가자 시선이 분산되고 소란스러워졌지만 시작된 싸움이 그치진 않았다.

희야의 검법은 병법의 묘리를 갖추었다.

초식이 절묘하여 내공을 동원하지 않고 초식으로만 맞선다면 절세고수라 할지라도 쉽게 상대하지 못한다.

도전하고 나선 자는 주위의 눈이 있으니 눈 가린 미녀를 내공으로 찍어 내누르는 방법을 쓰지 못했다.

때로는 검이 흔들리고 때로는 몸이 움직이는 희야의 검법 앞에 10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도전했던 자는 처음에는 약하게 공격했다.

그러다가 희야가 눈을 가리고도 전혀 불편 없는 것을 보고 제대로 공격하다.

그랬음에도 그자는 희야의 검법을 깨뜨리지 못했다.

걷어내고 끌어들이며 파고들어 흐트리는 매 초수의 절묘함이 보는 이들을 감탄시켰다.

칭찬소리와 함께 희야를 욕심내는 자들의 욕심은 더 높아졌다.

이 자리에서 희야를 탐하고 말게 아니라 굴복시켜 데려가서 첩으로 삼으려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희야의 검술이 대단한 줄 알자 도전할 고수들이 순서를 정했다.

하지만 희야는 내리 일곱 번 모두 눈을 가린 채 10초를 버텼고 도전자들이 부끄러워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도전자들 때문에 억지를 부리거나 분풀이하지도 못했다.

희야는 독을 누르는 것이 한계에 달해서 입도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도전자가 나서면 조용히 검법을 펼쳐 버텼지만 몸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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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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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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