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24

 

                 대충 고른 게 신검(神劍)

 

 

간장과 막야는 춘추전국시대에 살았던 부부 장인의 이름이다.

()나라 왕 합려(闔閭)는 당대 최고의 장인들인 그들 부부에게 보검을 만들게 한 후 다른 사람에게 더 뛰어난 보검을 만들어 줄까봐 남편인 간장을 살해했었다.

다행히 아내인 막야는 구사일생했으며 아들인 미간척(眉間尺)으로 하여금 복수를 하게 했다는 야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두 부부는 마지막으로 만든 한 쌍의 보검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였었다.

자웅쌍검(雌雄雙劍)으로 불리는 두 자루의 보검 중 웅검(雄劍), 즉 남편 검이 간장이다.

 

검을 뽑아서 살펴보세요.”

그럼 실례를...”

스릉!

진상파의 권유에 강유는 천천히 간장을 칼집에서 뽑았다.

!

그러자 푸르스름한 빛과 함께 유리처럼 반짝이는 검신(劍身)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신 가운데에는 옛날 글자들이 문양처럼 길게 새겨져 있다.

끼이!

간장의 검신이 칼집에서 빠져나오자 섬전초가 겁에 질려 웅크렸다.

간장은 날카로울 뿐 아니라 척사(斥邪)의 힘까지 지니고 있어서 영물인 섬전초를 겁에 질리게 만드는 것이다.

(무시무시한 예기(銳氣)! 검신이 칼집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다.)

스릉!

강유는 극도로 긴장하며 간장의 검신을 완전히 칼집에서 뽑았다.

간장의 검신이 드러나자 밀실 전체가 푸르스름한 빛에 휩싸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검광(劍光)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혼절할 것이다.

그만큼 간장이 뿜어내는 검기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간장은 지금은 잊혀진 고대(古代)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신검이랍니다. 그 때문인지 만들어진 후 이천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날카로움을 유지하고 있지요.”

진상파는 두려움에 떠는 섬전초를 다시 품에 안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강유는 칼집에서 완전히 뽑아낸 간장의 검신을 얼굴 앞에 세운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유리같은 검신을 들여다보는 강유의 얼굴은 넋이 나간 듯 보였다.

얼마나 날카로운지 한번 시험해보세요.”

진상파가 한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유가 돌아보니 그곳에는 무기를 정비하기 위한 시설이 있었다.

강철제 탁자 위에 무기를 고치는 데 쓰는 도구들과 수리중인 병장기들이 놓여있다.

탁자 옆에는 커다란 모루도 하나 놓여있다. 강철제인 그 모루는 높이가 네 자 가량이나 되고 길이는 다섯 자가 넘는다.

(저 모루가 시험 대상으로 적당하겠군.)

모루로 다가간 강유는 두 손으로 쥔 간장을 가볍게 내리그었다.

성둥!

그러자 마치 오이가 잘리듯 모루의 앞 부분이 간단히 잘라졌다.

!

잘려진 모루 앞부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 경이로운 예리함이로군요. 슬쩍 그은 것만으로도 강철로 만들어진 모루를 잘라버리다니...”

강유는 매끈하게 잘린 강철모루의 단면을 보며 흥분을 금치 못했다.

간장의 날카로움에는 어떤 호신강기라도 종이처럼 베어진답니다. 제왕성의 추격을 뿌리치는 데 유용할 테니 사용하도록 하세요.”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스릉!

진상파가 권유했지만 강유는 간장을 다시 칼집에 꽂았다.

춘추오대신검중 하나인 간장은 선물로 받기에는 너무 과한 보물입니다. 소저의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강유는 칼집에 꽂은 간장을 원래 위치에 걸었다.

(둔한 사람...)

강유가 간장을 원위치 시키는 걸 보며 진상파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염치와 분수를 아는 강유의 심성을 확인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 역시 어쩔 수가 없다.

자웅쌍검인 간장과 막야는 부부의 금슬과 인연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리고 금릉의 황금성에는 자검(雌劍), 즉 아내쪽의 검인 막야가 있다.

진상파는 비록 검법을 익히진 않았지만 막야를 가까이 두고 아껴왔었다.

간장과 막야의 전설에 감명을 받는 그녀는 언제고 자신의 짝이 될 사람을 만나면 웅검인 간장을 줄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간장을 줄만한 상대를 만난 것인데...

눈치 없는 그 인간은 간장을 거절했다.

간장이 부담되신다면 다른 검으로 하나 가져가세요.”

진상파는 서운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이 곳에 있는 검들은 모두 전설적인 보검들인데...”

강유는 난감해졌다. 그게 어떤 검이든 황금성의 무고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호신을 위해서라도 검이 필요할 테니 사양하지 마세요.”

진상파가 새침한 표정이 되어 재차 권했다.

강유는 진상파가 왜 마음이 상했는지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끝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염치없지만...”

강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마 가치가 떨어지는 검으로 한 자루 고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간장에 의해 잘려진 모루 옆의 강철제 탁자였다.

탁자 위에는 수선 도구들과 함께 망가지거나 낡은 병장기들이 쌓여있다.

(망가진 도검 중 하나를 가져가면 그나마 부담이 덜하겠군.)

강유는 탁자로 다가갔다.

(혹시...)

철문 밖에서 보고 있던 철관음의 눈이 번뜩 이채로 빛났다.

“...!”

섬전초를 품에 안고 있는 진상파도 유심히 강유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좋겠는데...)

철컹! 철컹!

두 여자가 심상치 않은 눈길로 자신을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 없는 강유는 탁자 위의 병장기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 , , 도끼, 극등의 병장기들은 열 자루가 넘는데 대부분 녹이 슬었거나 일부가 훼손된 상태였다.

(사용해본 적이 없는 무기들은 제외하고...)

강유는 무기들 중 창, 도끼, 극등은 옆으로 치워 버렸다.

그러자 대여섯 자루의 칼과 검들만 남았다.

(이것들 중에서 한 자루를 가져가면 되겠지.)

강유는 분류된 칼과 검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을 먼저 집어 들었다.

금은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칼집에 들어있는 검인데 손잡이에도 몇 개의 보석이 박혀있다.

푸스스!

하지만 검신을 칼집에서 뽑는 순간 검붉은 녹이 함께 빠져나와 흩어진다.

(이건 도저히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로군.)

검붉게 녹이 쓸었을 뿐 아니라 이빨까지 빠진 검신을 확인한 강유는 쓴웃음을 지었다.

화려한 꾸밈으로 보아 역사적으로는 이름이 높았겠지만 실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검은 아니었을 것이다.

화려한 보검을 내려놓은 강유는 다른 도검들을 살펴보았다.

나머지 칼과 검들도 대부분 보존상태가 좋지 않았다. 도저히 실전에서는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었다.

그 도검들에게는 수선 대상이 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헌데 난감해하던 강유의 눈이 조금 치떠졌다.

꾸밈새가 화려한 칼과 검들 사이에 칼집도 없는 검이 한 자루 섞여있는 것을 발견한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검의 형태를 한 쇳덩이였다.

손잡이와 칼날이 일체형인 모습인데 먹칠을 한 듯 검은 색이고 표면도 우둘투둘하다.

(이 검...)

덜커덕!

강유는 다른 칼과 검들 사이에서 그 검은색의 검, 쇳덩이를 집어 들었다.

“...!”

“...!”

순간 섬전초를 안은 진상파의 팔에 힘이 들어가고 철관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물론 강유는 두 여자의 심상치 않은 반응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겁다.)

쇳덩이같은 검을 집어든 강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믿어지지 않게도 길이가 네 자 남짓인 그 검의 무게는 무려 열관(38kg) 이상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들고 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한 엄청난 무게인 것이다.

(대체 재질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무겁단 말인가? 같은 분량의 납보다도 몇 배 더 무거운 것같은데...)

강유는 놀라면서도 두 손으로 검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았다.

전체가 한 덩이로 되어있는 형태의 이 검은 만들다 만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끝은 뾰족하고 손잡이 위의 호수(護手), 즉 검격(劍格)까지 삐져나와 있어서 일단 검의 모습은 갖추고 있다.

다만 검의 날이 아주 투박해서 무엇을 베거나 자를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것으로 하시겠어요?”

쇳덩이같은 검을 살펴보는 강유에게 진상파가 말을 건넸다.

이 검... 아니 쇳덩이에도 사연이 있겠습니다.”

강유는 두 손으로 검을 든 채 살펴보며 물었다.

이름은 극맹인데... 극맹(劇猛;몹시 사나움)으로도 쓰고 극맹(劇孟;전설 속의 협객)으로도 쓴답니다.”

진상파는 대답하며 탁자로 가서 그곳에 쌓여있는 여러 권의 낡은 책들 중 한 권을 집어들었다.

극맹(劇猛)과 극맹(劇孟)... 둘 다 무서운 이름이로군요.”

미완의 검이며 완성시켜줄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이기도 하지요.”

진상파는 낡은 책을 들고 다시 강유에게 돌아왔다.

완성되지 않은 탓에 제 몫을 못하므로 불출검(不出劍)이라고도 불리는 그 검에 대한 내력은 이 책에 적혀있어요. 시간 나실 때 읽어보도록 하세요.”

진상파는 탁자에서 가져온 낡은 책을 강유에게 내밀었다.

책 표지에는 <劒經>이라는 제목이 적혀있다.

고맙습니다.”

강유는 불출검 극맹을 왼손에 든 채 오른손으로 검경(劍經)이라는 제목의 그 책을 받았다.

이제 불출검 극맹의 주인은 강소협이에요. 아무쪼록 귀하게 대해주시기 바라겠어요.”

책을 건네준 진상파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불출검 극맹... 아무래도 난 지나치게 중요한 물건을 선물로 받은 것같구나.)

진상파의 사뭇 진지한 태도에서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는 강유였다.

 

* * *

 

밤은 더 깊어졌다.

밤늦도록 소란스럽던 황금성 개봉분점 주변의 번화가도 이제는 한산해져 있다.

고독모모는 장원의 중앙에 자리한 인공호수 가의 정자에 앉아있었다.

흔들!

문득 고독모모가 올려다보고 있는 하늘 전체가 한번 휘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기가 어지럽구먼.)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고독모모의의 미간이 모아졌다.

(깊은 사연과 은원이 서린 물건이 이곳을 떠나려 한다.)

고독모모의 입에서 소리 없는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 물건이 세상으로 나가면 하늘과 땅이 자리를 뒤바꿀 것처럼 격한 요동을 한 번 일어나겠지.)

늙었어도 곱던 고독모모의 이마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

 

* * *

 

진상파와 철관음은 복도 끝의 철문 앞에 서있었다.

철문 안쪽은 다듬지 않은 비밀통로인데 지금까지의 복도와 달리 불빛이 전혀 없다.

그 밀로를 십리쯤 가면 개봉성에서 상당히 떨어진 산 속의 낡은 사당이 나올 것이다.

어둠 속으로 멀어지던 강유가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손을 흔든다.

강유는 튼튼한 칼집에 넣은 불출검 극맹을 등에 짊어지고 있다. 너무 무거워서 허리에 차고 다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진상파와 철관음은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강유는 곧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가 두 여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버렸네.)

진상파는 섬전초를 품에 안은 채 어둠 속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불과 사흘 남짓 함께 있었을 뿐인데 저 사람이 안 보이자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다.)

소리없는 한숨이 진상파의 입가로 흘렀다.

끼이...

영물답게 주인의 상심한 마음을 알아차린 섬전초가 올려다보며 위로한다.

그만 닫아.”

섬전초에게 들킨 마음을 숨기려고 진상파는 짐짓 차갑게 철관음에게 지시했다.

예 아가씨!”

철컹! 그그긍!

철관음은 육중한 철문을 서둘러 닫았다.

(지금까지의 나는 황금성의 막대한 재산을 관리하고 백만 명이 넘는 식솔들을 보살피기 위해 철저하게 이성적이 되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진상파는 철관음에 의해 닫히는 철문을 보면서 섬전초를 쓰다듬었다.

(그 결과 여자로서의 감정은 완전히 소멸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심마(心魔)가 스며든 것같구나.)

강유를 떠올리자 저절로 얼굴에 열이 오르는 진상파였다.

정말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요?”

철컹!

그 사이에 철문을 완전히 닫은 철관음이 진상파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불출검 극맹의 비밀이 밝혀지면 세상이 피바람에 잠길 우려도 있는데... 유출될 것을 대비하여 일부러 망가진 병기들에 섞어 방치한 그것을 용케 찾아낼 줄은 몰랐어요.”

무공을 익혀야겠어.”

철관음의 우려 섞인 말에 진상파는 엉뚱한 대답을 하며 돌아섰다.

... 무공을 말인가요?”

철관음은 흥분에 휩싸인 표정이 되어 진상파를 따라갔다.

지금까지는 황금성을 경영하기 위해 필요한 수리(數理)와 학문을 배우느라 무공을 수련할 여유가 없었어. 그 때문에 지난 며칠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고...”

저희들 백팔금차가 무능해서 벌어진 일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진상파의 말에 철관음은 송구한 표정이 되었다.

언니가 미안해할 거 없어. 몸 하나 스스로 지킬 능력을 기르지 못한 내 탓도 있으니...”

아가씨께서 무공을 익히시면 무림의 역사가 새로 쓰여질 것입니다. 자질과 지혜로는 천하제일이시고 태어나신 직후 벌모세수(伐貌洗髓)를 받으셔서 생사현관(生死玄關)이 타통되어 있으시기까지 하잖아요.”

흥분한 철관음이 평소와 달리 수다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진상파는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영약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내공은 단시일 내에 극한까지 쌓으실 수 있으며 본성이 사들인 무공비급 중에는 절세적인 것도 부지기수... 늦어도 몇 달 안에 아가씨는 신주이십팔숙중 어지간한 인간들은 간단히 이길 수 있는 고수가 되실 거예요.”

기왕 무공을 익힐 거라면 만인부당(萬人不當)의 경지를 노려야겠지.”

진상파는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렴요! 머잖아 우리 황금성은 부()뿐 아니라 무()로도 천하제일 소리를 듣게 되겠어요.”

철관음은 자기 일인 듯 기뻐했다.

진상파가 무공에 관심이 없었을 뿐이지 자질로는 세상에 둘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철관음이다.

지금까지는 학문을 닦는 데만 열중하던 진상파가 무공을 수련하면 무림의 정세는 일거에 뒤집힐 것이다.

(언니는 몰라. 내가 무공을 본격적으로 배우려는 진짜 이유를...)

진상파는 철관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소리없이 한숨을 쉬었다.

(난 두 번 다시 그 사람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거야.)

강유를 떠올리며 가슴이 거칠게 뛰어노는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진상파였다.

728x90
Posted by 와룡강입니다

블로그 이미지
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와룡강입니다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