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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녀들, 깨끗함을 남기기 위해 자결을 결심하다.

 

 

 

화독문은 하호성에서 남쪽으로 170리가량 떨어진 산기슭에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일대에 넓은 농토를 소유했으며 철을 녹이고 쇠를 치는 대장간도 하던 집안이었다.

그러다가 무공을 얻어 붉게 녹은 쇳물을 손으로 치면서 단련하는 독장을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그들의 장원이 있는 산에는 철을 캐내며 생긴 갱도가 많았다.

산의 뒷편에는 강이 접해서 생긴 갈대밭이 있다.

 

귀곡수재 양소는 추헌부 척살객 일곱 명과 함께 갈대밭에 숨어 있었다.

육연부의 여자들과 잠시 합류했으나 이내 적들의 공격에 의해 분리되어 이 상황에 몰렸다.

양소는 한 지역을 멀리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천안(天眼)과 공곡전성이라는 술법을 지녔다.

그 재주로 적들의 이목을 숨기고 피해왔지만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자기가 중상을 입으면서 탈출시킨 김혁이 육연부에 무사히 도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양소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도 김혁을 보냈을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 육연부에 상황을 알리러 갈 사람이 적들에게도 필요했다.

양소는 유언을 준비했다.

"날이 새기 전에 육연을 만나면 너희는 산다. 나를 두고 산으로 가서 육연부의 여자들과 합류해라. 어차피 육연이 오더라도 합류하지 못하면 죽는다.”

부하들이 거부했다.

"각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양소가 한숨을 쉬었다.

"술법을 다했으니 나는 곧 죽는다.”

그때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행관 각하, 우리가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내공으로 말을 전하는 전음이었다.

척살객들이 긴장하며 경계했다.

양소는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막으며 힘을 짜내 그 방향으로 전음을 보냈다.

"육연부의 큰 아가씨요?”

"셋째이지만 여기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아까 뵈었던 육연부의 감독입니다.”

양소는 쉽사리 의심을 풀지 못했다.

적들 중에는 요사한 술법을 쓰는 자들이 여럿 섞여 있었다.

양소가 다시 물었다.

"감독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소? 우리를 어떻게 찾았고?”

"저에게는 우리 나으리께 전수받은 작은 재주가 있어 적을 먼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여 이곳까지 들키지 않고 왔습니다.”

말소리와 함께 희야가 그들이 은신한 진흙 구덩이 앞에 나타났다.

양소는 그 수법이 전날 곽범이 자기를 찾아낸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

 

척살객들 중 하나가 양소를 엎고 여섯 명이 희야의 뒤를 따랐다.

희야는 어둠 속에서 적들과 함정을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갈대밭에는 크고 작은 뱀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희야는 뱀의 기척을 미리 알고 뱀이 없는 곳으로만 움직였다.

놀란 양소가 전음으로 물었다.

"감독 아가씨는 뱀의 소리도 미리 들을 수 있소?”

". 듣고자 하는 소리는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재주가 없었더라면 저희는 벌써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아쉽게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 재주가 없습니다.”

 

***

 

희야는 방향을 수도 없이 바꾸며 나아가 마침내 갈대밭을 벗어나 야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야산은 경계가 더욱 삼엄했다.

희야는 성동격서의 방법으로 적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에 돌파하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철 냄새가 나는 동굴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굴로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움직여 물이 흘러나오는 바위틈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광산 갱도에 고인 물이 빠져나가는 물길이었다.

일백 보 정도를 기어가자 넓은 동굴이 나왔다.

피 냄새와 분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육연부의 여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네 명이 다쳤으며 세 명이 그들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친 계집애들 중에는 단아도 있었다.

"네 말대로 집행관님을 모시고 왔다. 집행관님도 중상이시구나.”

희야가 단아에게 말하며 다친 애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었다.

단아가 누운 채 인사한 후 말했다.

"감독님, 장영의 말을 듣고 생각하니 적들 속에 광대산(狂大山)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옮겨도 계속 따라잡히는 건 술법으로 저희를 찾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장영이 정신을 잃기 전에 했던 말이었다.

양소가 말했다.

"광대산이라면 그럴 수 있소. 그들도 무공보다는 술법이 많은 자들이니. 아가씨들 부상은 어떠하오?”

희야가 울컥하며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양소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영단마저 다 소모했다.

희야가 양소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다른 은신처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곳도 발각되기 전에 움직이지 않으면 발이 묶입니다.”

희야는 필사적이었다.

계집애들의 목숨이 자신의 어깨위에 있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이안신통으로 숨을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양소가 단아를 보살피는 전옥에게 물었다.

"아가씨들은 어떤 독에 당했소?”

전옥이 고저가 전혀 없는 음성으로 냉담하게 대답했다.

"부끄러운 독이라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각하께서는 저희와 거리를 두십시오.”

사정을 짐작한 양소가 나직하게 탄식했다.

"강호의 사마들은 언제나 교활하니.”

희야가 눈을 떴다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여기도 들켰다. 숨을 자리는 가면서 찾아야겠구나. 여기는 좀 오래 갈 줄 알았더니.”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일이다.

희야와 다치지 않은 셋이 다친 넷을 등에 엎었다.

양소는 척살객과 육연부가 합류하여 인원이 16명이나 되었으니 운신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살 수 있는 방법은 함께 모여서 육연과 구양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는 척살객으로 강호에 몸을 던진 순간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 위급하면 나를 버리고 저들을 구하거라. 악인을 추살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고 위험에 처한 여자와 어린아이를 구하고 죽는 것 또한 우리가 추구하던 협이 아니냐.”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각하.”

척살객들이 전음으로 양소에게 대답했다.

 

희야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줄을 일행 모두가 잡도록 했다. 허리띠를 이어서 만든 줄이 없다면 빛 한 점 없는 동굴속에서 희야를 따라가지 못한다.

피신함에 있어서 왔던 곳으로 직접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희야는 동굴의 넓은 쪽으로 나아가며 빠져 나가지 못한다면 옥쇄하리라 결심했다.

막힌 곳으로 들어가 입구를 지키며 결사항전 하다가 버틸 수 없으면 자결하여 맑음을 지킬 것이다.

희야는 전옥에게 몰래 지시했다.

"내가 만약 자결하면 너는 다친 애들을 베고 그들이 더럽혀지지 않게 해주어라.”

", 감독님.”

대답하며 전옥이 눈물을 흘렸다.

전옥이 엎고 있는 장영은 중상으로 의식조차 없었다.

희야의 등에서 단아가 전음으로 물었다.

"감독님, 우리와 같이 온 새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는가요?”

"다 죽거나 잡혔을 것이다. 누가 빠져나가 상황을 알렸더라면 나으리께서 벌써 오셨겠지.”

"사로잡혀 있는 새가 있다면 감독님이 찾아서 탈출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희야는 그 말에 힘이 났다.

"찾아보마.”

단아가 말했다.

"새를 찾으면 우리를 두고 척살객들과 감독님만 빠져 나가세요. 새에게 나으리와 낭낭이 오지 말라고 전하도록 해요. 지금 여기는 용담호혈이에요. 우리가 아니라 나으리를 잡으려는 함정이라서 아직 우리를 살려두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가 담담히 말했다.

"함정에 들지만 않으면 나으리와 낭낭께서 천천히 우리 복수를 해주시겠지요. 저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공이 우리보다 높으니 감독님이 새한테 갈 때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어차피 저분들이나 우리는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요.”

희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으리와 낭낭께선 오지 말라고 해도 오셔. 절대로 우릴 두고 물러나지 않아.”

계집애 하나가 모두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 여기서 죽으면 전부 처녀귀신이네. 처녀귀신 돼서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리자.”

"그런 소리말고 마음에 평정이나 유지해. 무슨 추한 꼴 보이려고.”

희야가 듣고 꾸짖었다.

 

***

 

동굴의 갈림길은 위로 향하는 것도 있고 아래로 향하는 것도 있으며 양쪽으로 벌어진 곳도 있다.

두 세 사람이 겨우 지나갈 좁은 갱도는 물이 흘러 바위가 미끄러운 데도 있고, 깨진 암석이 칼날처럼 돌출된 곳들이 있었다.

희야는 그런 위험한 곳만 골라서 걸었다.

코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로지 희야의 이안신통만이 지형을 읽게 해주었다.

희야가 끄는 줄을 잡고 일행은 서로의 보폭을 감지하며 나아갔다.

이렇게 하면 추적자들은 동굴속의 위험을 쉽게 간파하지 못해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야는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을 느꼈다.

빠져 나갈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희야는 여러 길 중에서 갱도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잡았다.

이제 끝이 가깝다.

적이 막고 있는 곳이지만 희야는 그들을 뚫고 나갈 작정이었다.

죽게 된다면 수원과 동진, 그리고 양설과 곽범이 시체를 찾아 거두기가 용이한 곳이 낫다.

갱도의 출구로 가면서 희야는 옷을 베어 등에 엎은 단아를 단단히 몸에 묶었다.

그 기척을 알고 바로 뒤에 따르는 전옥이 따라했고 이는 뒤로 이어졌다.

희야는 쌍검을 나누어 쥐고 갱도를 나섰다.

 

갱도 밖은 여전한 어둠 속에 흰옷을 입은 서생 차림의 남자들이 서있었다.

양소가 탄식하고 말했다.

"축릉사(築陵社), 무덤을 만드는 자들까지 왔군. 육연부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손을 잡았단 말인가?”

단아가 물었다.

"각하, 축릉사가 무엇인가요?”

"고대 유교의 이단자들이오. 무덤을 만들어주고 도굴하며 사는 자들인데, 제왕과 부호, 강호의 절대자들 무덤도 저들이 만드오.”

단아는 의아해했다.

"도굴 될 걸 알면서도 제왕들이 축릉사에게 무덤을 만들게 하는가요?”

"제왕들은 알 수 없소.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 저들은 슬그머니 끼어들어가오. 무덤을 완공하고 비밀을 감추기 위해 모두 죽여도 저들은 빠져나갈 수 있소.”

양소가 힘겹게 대답했다.

저들은 무공도 괴이하고 술법과 기관에도 능하오. 세상의 절대자들을 상대하니 일반 강호인은 안중에도 없는 자들인데 저들이 여기서 육연부를 잡을 덫을 놓은 모양이오.”

흰옷을 입고 유생건을 쓴 축릉사들 중 한 명이 오만하게 말했다.

"집행관 양소 아니시오? 삼존청은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는데 왜 끼어들었소?”

양소가 힘을 모아서 대답했다.

"삼존청이 축릉사를 내버려둔 이유는 강호의 살겁을 일으키거나 도리를 무너뜨리지 않았기 때문이오. 귀하들은 왜 귀하들의 일이 아닌 음모에 끼어들어 삼존청에 맞서려하시오?”

축릉사가 말했다.

"왕을 묻는 일이 우리 일이지. 우리는 염왕(閻王) 육연을 묻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소. 집행관은 여기가 무덤 속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소?”

곽범이 목장에서 염왕현신을 사용한 이후 강호에서는 염왕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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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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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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