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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三 章

 

       아도래영(我到來迎), 내가 왔다! 맞이 하라!

 

 

 

성(城),

그것은 실로 거대하기 이를 데 없는 하나의 성이었다.

성 둘레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십여 리도 넘을 것 같고,

황혼의 노을 아래서 보자니 물빛보다 더 새파란 녹빛이 마치 세외선경(世外仙 景)을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성의 크기라든가 아름다운 경관 때문이 아니었다.

성은 놀랍게도 깊은 산속 계곡 속에 있었다.

만경창파(萬頃蒼波)의 바다에 떠다니는 낙엽처럼 ,

푸른 숲의 바다 속에 하나의 섬처럼 자리하고 있는 성(城).

호리병 처럼 입구가 좁은 계곡의 깊은 곳에 위치하고,

오오……그렇다.

그 거대한 산속의 녹색 성(城)은 바로 수천만 개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나……

그 위에는 수많은 고루거각과 전각은 물론이요,

인공호수도 있었고 울울창창한 과수림(果樹林)도 있으니……

이것은 성이 이토록 깊은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황혼 아래……

이는 바람으로 인해,

나무들의 만경창파를 유유히 헤치며 장엄히 떠다니는 듯한 녹색의 성,

 

<녹림맹(綠林盟)>

 

바로 이것이다.

장강 일대의 일천팔백대소 녹림채(綠林寨)를 관장해 왔으며……

십만 녹림도(綠林徒)들의 총 본산으로 우러러지는 푸른 숲의 제왕 녹림맹……

백인장과 청옥검궁, 삼성무림청이 땅의 지배자들이라면,

녹림맹은 숲을 지배하는 하늘 중의 하늘이다.

땅은 통일되어 있지 않았지만,

숲은 통일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림에서 손을 뻗친 적이 거의 없었던 녹림을 잠식해 오기 시작한 세력이 있었으니,

삼성무림청,

바로 그 악명 높은 장강 일대의 삼성무림청이다.

땅에서는 몰라도, 숲에서는 언제나 하늘은 오직 하나였다.

그런 만큼……

이 두 세력은 서로 숲을 빼앗고 지키기 위해 이미 수없이 전쟁을 벌여온 상태였고,

아직도 그 피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 부언해 둘 것은……

녹림맹의 대맹주(大盟主)인 황녹천(黃綠天)은 그 이름만 전해지고 있을 뿐……

일체가 비밀에 쌓인 중원제일의 신비인(神秘人)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누굴까?

아무리 그 의혹을 해결하려 해도 여전히 신비로 가려져 있는 장막의 인물 황녹천……

 

× × ×

 

녹왕전(綠王殿),

녹림맹의 심장부(心臟部)요,

핵심인 곳이다.

헌데 돌연,

슛……

삼엄한 경비(警備)와 무수한 기관장치(機關裝置)로 엄중히 지켜지고 있는 녹왕전으로……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바람처럼 스며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무슨 일,

바람인 양 검은 그림자가 스쳐지나간 사이로,

스스스……

몸서리치는 푸른 빛이 소리도 없이 폭사되는 것이었고,

일시에 녹왕전은 그 푸른 빛으로 인하여 밝게 변해버린 듯했다.

뿐인가?

그가 스쳐 지나는 뒤로,

녹왕전의 곳곳에서 우수수 낙엽이 지듯이 떨어져 나뒹구는 경비고수(警備高手)들……

문득,

스________ 슷!

한 줄기 바람처럼 유령과 같은 흑영(黑影)은 녹왕전 가장 깊숙한 내전에 소리없이 스며들었다.

 

내전(內戰),

능라휘장,

상아빛 침상,

용봉촛대와 백옥탁자,

내전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화려했고 넓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아찔아찔한 광택을 내고 있어 지고한 기운(氣運)과 귀풍이 물살처럼 쇄도하고 있었다.

바로 이 화려의 극(極)을 치달리는 내전의 한편에 드리워진 능라휘장,

소리없이 스며든 흑영은 그 능라휘장을 향해 불꽃 같은 시선을 쏟아내고 있는데……

오오……이런 일이라니?

슈슈슈슈……

그 흑영은 전신에 검은 기운을 가득 피워올린 채 자신의 한몸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닌가?

동시에,

이 검은 인영(人影)의 몸에서 쏟아지는 기운이 너무도 가공해서인가?

돌연,

능라휘장 속에서 하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가 싶더니……

그림자의 호흡소리가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한 순간,

눈을 새파랗게 빛내며 휘장을 향해 바라보던 흑영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흘려냈다.

[……황녹천……나와라!]

아름다운 목소리……

흑영은 여자였던가?

아무튼,

그가 부른 이름 황녹천!

황녹천이라니?

그렇다면 중원제일의 신비인인 황녹천이 저 휘장 속의 그림자란 말인가?

어쨌든,

휘장 속의 그림자은 일체의 대답도 해오지 않았다.

그러자,

더욱 가공할 검은 기운을 일으키며 흑영은 제삼 아름답기 그지없는 옥성(玉聲)을 소곤거리듯 내뱉었다.

[이곳을 비워라………이제부터 이 녹림맹은 잠시간 내 처소가 되어야 한다. 황녹천! 빨리 나와라.]

이때 돌연, 지금껏 침묵만을 고수하던 휘장 속의 그림자가 최초의 음성을 터뜨렸다.

[그대는 누구인가? 남자도 아닌 것 같고 나이가 많은 것 같지도 않군……]

소리,

더할 수 없이 청아하고 맑으나,

어디서도 느껴보기 힘든 위엄이 서린 음성이 최초로 터져나왔다.

그런데, 그 음성은 도저히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었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신비로움 그 자체일 뿐이었다.

사방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아니 어쩌면 자신의 영혼에서 들려오는 듯하기도 한……

이때,

섬뜩한 검은 안개에 휩싸인 채,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침입자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면서 옥성을 흘려냈다.

[흥! 시시한 육합전성(六合傳聲)이군, 스스로 신비인을 자처하는 황녹천이 남의 이름을 묻다니 웃기는 노릇이군.]

[본좌는 당신의 신분을 물었다.]

[호호호……궁금하면 직접 한 번 맞추어 보지 그래……하나……]

[…………]

[황녹천……당신에게 그다지 해를 끼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려주도록 하지……]

순간, 청아하고 아름다우나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음성이 신음인양 새어나왔다.

[그대의 몸에서 휘파람 소리가 끊이지 않는 군!]

[호호……맞았네……그렇다면 그대는 내가 누군지 알았나?]

[취풍녀…………]

[틀렸어……나는 취풍녀가 누군지도 몰라. 한 가지 더 알려 주지……우리 집은 여산에 있어……완전히 우리집이라고는 말하기 좀 뭣하지만……]

[백인장(百刃莊)!]

또다시 예의 그 맑고 청아한 음성이 비명처럼 튀어나왔다.

[맞았어……잘도 알고 있네 ……]

[…………]

[하지만……그렇다고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을까?]

[혹시……신행마동?]

[천만에……당신은 설마 내가 징그러운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

[신행마동은 남자애란 말이야!]

순간,

또다시 예의 그 음성이 비명과 신음을 섞어 터져나왔다.

[혹……조부인?]

[쯧쯔 틀렸어……중원제일의 신비인을 자처하는 자가 상당히 머리가 나쁘군 그래, 그분이 어떤 분이 신데 한 밤 중에 당신같은 자의 침전에 뛰어들겠어……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렇지……]

[…………]

[백인장에 또 다른 절세고수가 한 사람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는 모양이지……]

[으음……]

[다시 말해 봐……]

[백인도객 중의 한 사람인가?]

[또 틀렸군……그 들은 분명 고수들이지만……호호호……나한테는 늘 한 수 양보하는 처지야……]

그 소리를 들은 황녹천은 더욱 혼란스러운 듯 했다.

세상에 그런 고수가 백인장에 있었나?

[우리 녹림맹은 백인장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 같은 데……]

[나를 모른다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어.]

순간,

녹왕전의 일편에서 분노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는……본 황녹천을 너무 무시하는 군……]

찰라,

검은 안개막을 치고 있던 인영의 몸이 세차게 요동쳤다.

[호호호호……그렇군……이제 보니……내가 당신을 너무 무시했어……중원제일의 신비인인 귀하를……호호호……]

맑고 아름다우며 건방지기 짝이 없는 듯한 어린 여자의 웃음소리가 묵빛 기류 속에서 한동안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따라,

휘이이휘휘휘------

높은 음으로 울려퍼지는 휘파람 소리!

한데 바로 이때였다.

돌연,

[어쨌던 반갑소. 당신이 누구이든!]

지금껏 혼란속에서 흑영의 정체를 알기위해 커졌던 음성이 조용히 가라앉는가 싶더니……

급기야는 비웃는 듯한 음성을 흘러내는 게 아닌가?

[본좌보다 더 신비한 척하는 귀하와 조용한 해후는 잠시 후에 하도록 하겠소……]

[뭐…?]

흑영이 뾰족한 음성으로 반문을 화살처럼 퍼부을 때,

[흥분하지 말기 바라오. 귀하! 내가 마련한 곳에서 잠깐만 기다리면 될 게요.]

황녹천의 음성이 은근한 어조로 가라앉았다 싶을 순간!

쩍!

[헉!]

흑영이 밟고 있던 대리석 바닥이 지각할 수 없는 사이에 갈라지고,

흑영은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흡입력이 무섭도록 빨아들이고 있음을 느끼고 다급한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나 곧바로,

[호호…… 황녹천 당신 따위가 감히 ……]

한 소리 간드러진 소성과 함께 흑영은 길게 몸을 뽑아올렸다.

하나 이것은 또 웬일인가?

[아악……!]

흑영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몸이 더욱 깊숙이 빨려든 것이니……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는 대신에 다급한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동시에,

꽝_____!

둔착한 소리와 함께 대리석 바닥은 다시 원위치를 회복해 버렸고……

이때,

휘장 속의 그림자가 다시 심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경악을 가라앉히는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서운 고수였다……백인장에서 무슨 일로 우리 녹림맹에 고수를 파견했을까? 그것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고수를……]

휘장이 다시 흔들렸다.

[또다시……누군가가 오고 있다.……한 둘이 아닌 것 같은데……이들이 정말 백인장의 고수들일까?]

곧바로,

끅끅-------!

끽---끅------!

한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섬뜩한 괴성과 함께,

스스슷……!

네 개의 흑영이 성광처럼 날아들었고……

푸스스스스……

휘장 속의 그림자가 형체도 없이 소멸된 것은 동시였다.

찰나간,

[캑!]

[끅……캐객……!]

두 흑영이 입에서 헛바람을 삼키는 듯한 비명이 터지나왔다.

동시에,

털썩털썩 짚단처럼 나뒹구는 네 흑영……

한데,

오오……

섬뜩하리만큼 검은 털이 전신에 돋아있고 겨드랑이에는 박쥐처럼 날개가 달려있는 인간을 닮은 괴물(怪物)들이아닌가?

이 순간,

스스스스……

흩어졌다 모이는 휘장 속의 그림자,

그리고 침통하게 터지는 경악성,

[믿을 수 없는 일……어떻게 남만에서 멸종했다고 전해지는 비성성(飛猩猩)들이 이곳에 나타났단 말인가……음……]

쓰러져 있는 비성성들은 털북숭이 손에 각기 한 장씩의 종이를 펼쳐든 채였다.

 

------아도래영(我到來迎)

 

[내가왔다 맞이해라?]

대체 누가 왔다는 말인가?

도대체……

믿을 수 없는 경악에 찬 음성이 내전에 울려퍼질 때,

돌연,

고오오오오……

기이한 영혼의 울림과 같은 소리가 사위를 진동하는가 싶더니……

스스스스으……

내전에 신비롭고 상서로운 광휘가 천신의 하강을 기다리는 것처럼 자욱히 피어오르지 않는가?

그리고,

어느 순간 어떻게 나타났는지 모를 희미한 광휘에 휩싸인 인영 하나,

그 뒤에는 두 마리의 하얀 비성성이 각기 아름다운 미녀를 한 사람 씩 지키고 있었다.

물빛옷의 미녀와 피처럼 붉은 노을빛 옷의 미녀……

물론 이 미녀들은 인질이 되어 잡힌 사은상과 사옥상이었다.

한데 놀라운 것은,

희미한 광휘가 감사인 인영은 뒤에있는 비성성들과는 달리,

허공을 땅처럼 밟고 있으니……

이때,

능라휘장 속의 그림자가 심하게 떨고 있음을 그곳에 있는 사람 누구나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 그림자를 향한 안개속에 휩싸인 인영의 음성,

[내가 왔다.]

음성,

더할 수 없이 장중하고 사람을 내리누르는 위엄이 깃든,

나직한 음성이었다.

[음……귀하는 누구시오?]

휘장 속의 그림자가 다소 경악한 음색으로 물었다.

[그대 황녹천의 녹림맹을 잠시 빌리고 싶어하는 사람!]

순간,

휘장 속의 그림자,

아니, 정확히 말해,

황녹천의 의혹 서린 음성이 다시 터지고 있었다.

[빌린다?]

[그래, 잠시……]

[후훗……대체 당신은 누구이길래, 그리고 무엇때문에 본좌가 당신에게 이곳을 빌려주겠소?]

황녹천의 물음에,

안개 속에서 만인을 압도하는 음성이 항거할 수 없는 힘을 담고 흘러나왔다.

[투귀(偸鬼)는 요즘 어디에 있는가?]

[투……투귀?]

투귀!

신행마동 소일초에게 백인장의 정뇌(井牢) 속에서 도둑질의 온갖 수법과 매화지를 가르쳤던 사마귀 중의 하나……

이 이름을 중원에 살고 죽는 사람이라면 그 누가 모를손가?

중원의 도둑들의 우상이며 신이고 절대자이며 모든 보물의 주인인 이 이름,

황녹천의 경악 서린 음성이 반문하듯 튀어나온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이때 안개 속에서 이어지는 음성,

[그대가 투귀와 관련이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아무말 말고 본인에게 이곳을 빌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게 바로 녹림맹을 살리는 길이기도 할 것……]

[…………]

[투귀는 백인장에서 탈출했다. 천하에 숨을 곳이 이곳이 아니고 어디겠는가? 나는 백인장의 전권을 지닌 사람, 사마귀를 죽이고 살리고는 오직 그대의 결정하나에 달려있다.]

[…………]

[빨리 사마귀에게 연락을 취하고 바로 이 곳을 잠시 동안만 넘겨라.]

[…………]

[그러면……]

[그러면…?]

[빌리는 기간은 단 열흘, 그 후에는……그대들의 녹림맹이 삼성무림청을 물리치고 영원히 녹림맹 단독으로 숲을 장악하도록 해 주겠다.]

안개속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

바로 천하의 말썽꾸러기 신행마동 소일초가 아니고 또 누구이겠는가?

하나 지금,

만인을 잡아끄는 위엄과 힘을 지니고 흘러나오는 음성,

그것은 절대 소일초의 음성이 아니었다.

과거의 어떤 자가,

신행마동 소일초의 음성을 들어보았던 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필경 저 안개 속의 음성이 죽었다 깨어나도 신행마동 소일초의 음성이 될수 없다고 단언하리라!

[…………!]

침묵,

황녹천은 이 엄청난 제안에 한 동안 침묵을 지켰다.

하나 이 순간,

그는 자신의 수하들과 취할 수 있는 모든 연락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그 정교한 기관장치에 의한 연락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곧,

녹림맹의 모든 기능이 바로 저들에 의해 이미 장악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음……]

능라휘장 속의 황녹천의 입에서 침음성이 튀어나왔다.

바로 이때,

슈_____ 슛……!

오오……

안개속에서 번쩍이는 소일초의 한 손,

그리고 백색의 광채가 네 줄기……바로 화산파의 절기인 매화지(梅花指)가 아닌가?

아도래영이라 적혀진 종이를 한 장씩 들고 쓰러져 있는 네마리의 비성성의 몸에백색 매화지가 소리없이 가격되었다.

동시에,

혈이 타동된 듯 벌떡 몸을 일으킨 네 마리의 검은 비성성!

그들의 눈에 흉악한 광망이 폭출되었다 싶은 순간 소멸되고,

슬금슬금……

그들은 소일초의 안개에 가려진 몸 뒤로가서 조심스럽게 시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슈_______ 슛________!

안개속의 소일초의 손에서 어느새 맑은 빛이 반짝하며 폭출되어 대리석 바닥을 쩡쩡 때리고 있었다.

찰나,

쿠르르릉……!

흔적도 없이 닫혔던 대리석 바닥이 열리고,

[이 간교한 놈……가만 두지 않겠다……!]

한 마디 날카로운 음성과 함께,

숫______ !

하나의 인영이 치솟아 올랐다.

소녀(少女),

도저히 인간이라 여길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소녀였다.

그 몸을 가리고 있던 검은 안개는 어딘지 사라져 버리고 백의가 선명하게 드러난 주소아였다.

그녀 한 몸에서 서려나오는 살기는 일시에 휘장을 펄럭거리게 하며 황녹천을 조각내 버릴 것처럼 엄청났다.

이 순간,

그녀의 눈이 한 쪽에 서있는 소일초와 두 포로를 발견하고,

[응……왔어? 재수가 조금 없었어……]

이때,

안개가 스르르 사그라지면서 소일초의 모습이 나타났다.

[킥…! 허풍 잘 떨던데……나보다 먼저 무림에 나왔으면 신행마녀라는 호칭은 따고도 남았을 거야……]

본래의 장난꾸러기 목소리였다.

황녹천은 그 모습을 보고 얼떨떨 해 져 버렸다.

그는 백인장주인 도왕 소선풍이 아닌가 의심했었던 것이다.

주소아는 함정에 빠졌던 지라 자존심이 상당히 상해있었다.

[황녹천! 대체 어떻게 할 거야? 우리에게 녹림맹을 빌려주겠다는 거야 아니야?]

중원제일의 신비인 황녹천에게 고함을 치면서 분풀이를 했다.

[이런 꼬마들이었다니……기가막힐 노릇이군.]

황녹천이 중얼거렸다.

[이봐! 황녹천, 괜히 신비한 척 하지마. 나도 네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에 하나야. 설마 내 입으로 밝혀야만 믿는 것은 아니겠지?]

소일초가 친구에게 하듯이 말했다.

[어떻게 해서 사마귀를 잘 알고 있지?]

[하하하……한때 사마귀와 내가 서로 교류한 적이 있었지.]

[……?]

[사마귀는 나에게 자신들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고 나는 그들에게 정뇌를 탈출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지……]

[…………]

[한데, 나는 교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사부라고 부르라고 하더군, 제기랄……가르쳐 주는 것은 똑같았는데……자기들이 가르친 것은 무공이라고……]

[…………]

[쯥, 그때는 따로 사부라고 부르는 사람도 없어서 불러줬지, 하지만 이제는 안돼, 물려야 되겠어, 그 후로 훌륭하신 분을 사부로 모시게 됬거든……]

사부를 무른다?

한 번 사부면 영원한 사부지 무르는 법이 세상에 어디있단 말인가?

황녹천은 어이가 없었다.

[자, 그럼 이제 사마귀에게도 연락을 좀 해주실까? 할 것이 있으면 빨리 하는 것이 좋은 습관이거든,]

[사마귀는 지금 이곳에 없다. 그러나 연락은 해 주지……]

이때,

주소아가 소리를 질렀다.

[사마귀진 당랑인지 엉뚱한 소린 그만 두고 당장 내 물음에 대한 답변부터 해!]

잠시의 긴장과 침묵이 흘렸고 이윽고 알 수 없는 탄식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도대체 성별조차 구별할 수 없는 황녹천의 음성이 떨렸다.

[좋소……대신 그 기간은 열흘 뿐이오.]

[흥, 그 대답이 당신을 살렸어, 그럼 빨리 다른 곳에가서 잠이나 마저 자라구……]

차갑게 흘러나오는 주소아의 음성,

휘장속의 황녹천의 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렸다.

[너무 기분나빠 하지마. 사귀다 보면 그 여자도 좋은 여자야.]

소일초의 달래는 듯한 말이 나오자 황녹천은 더욱 어처구니 없어지고……

아뭏든 이 밤은 기이한 의미를 함축한 채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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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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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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