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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四 章

 

          술 마시는 朱小阿

 

 

 

주소아(朱小阿),

그녀는 백인장에 있을 땐 결코 이렇지 않았다.

얌전하고도 영리하며, 신비했기 때문에 누구나 좋아하던 소녀였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어른을 꼭 알아보았고 행실이 발랐다.

그런데……

그런 주소아가 소일초와 함께 다니는 요 얼마동안 성격이 많이 변한 것이다.

마치 소일초를 닮아 가기나 하듯이 그녀의 심술도 늘고 무림인들을 아무렇게나 무시하고 했다.

어쩌면,

소일초와 맞서 싸우자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듯도 한데,

아직 그녀는 나이 말고는 소일초를 이길 만 한 것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고찰에서의 치욕적인 패배이후로 그를 정면으로 반박하기가 힘들었다.

또 싸우고 난 후에 무슨 짓을 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도 소일초의 행실이 미운 점이 있기는 했지만, 마냥 미운 것만은 아니었다.

소일초의 짖궂은 짓도 그렇게 싫지 많은 않았다.

더우기 전혀 장난을 받아 주지 않는다면 소일초는 또 사은상이나 사옥상에게 짖궂은 짓을 할 것이다.

그것은 정말 참을 수 없이 싫은 그녀다.

차라리 자기에게 하는 것이 낳지……

지금 주소아는 한 다발의 국화를 꺽어서 요생각 조생각 하면서 꽃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다.

이곳,

 

녹왕전(綠王殿),

 

사방 백여 장의 반경에 온갖 꽃들이 다투어 피어 있는 꽃의 천국(天國)……

바로 이 꽃의 바다에 날아갈 듯 서있는 한 채의 누각(樓閣)을 일컬음이다.

그리고,

전에는 녹림맹주 황녹천의 거처였으나,

지금에 이르러선 신행마동 소일초의 거처가 된 곳이기도 하다.

아니,

신행마동 소일초가 잠시 빌린 곳일 뿐 완전한 거의 거처는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자도 녹왕전의 이십 장 이내엔 접근이 불허되는,

절대금역(絶對禁域)이 되었다.

왜냐하면?

접근의 대가는 곧바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심지어는 죽음(死)으로 까지 지불되었으니까……

 

실내,

사방이 깨끗하게 정돈된 아담하고 고아하기 이를 데 없는 실내이다.

하나의 침상에……

자단피의 의자가 두 개 ……

바로 이 실내에서,

돌연,

 

낄낄낄------

 

듣기만 해도 고약한 악동의 웃음소리가 휘장을 진동시켰다.

그리고 부르르 온 몸을 떠는 탁자에 앉은 두 미녀,

장강 변에서 포로로 잡았던 바로 사은상,사옥상 자매였다.

또 소일초가 주소아가 없는 틈을 타서 무슨 장난을 한 것인가?

그 동안 얼마나 심하게 시달렸는지 사은상은 노을 빛 얼굴은 초췌하여 처음의 모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핼슥했다.

고민따위는 모르는 사옥상은 단지 소일초의 웃음이 또 무슨 짓을 하기 전의 전주곡이라는 것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뿐,

먹기도 잘 먹어서 건강해 보였다.

이때,

덜컥-----

방문이 열리면서 주소아가 한 아름의 국화를 들고 들어왔다.

[얌전히 침상에가서 잠이나 더 자……]

그녀를 보고 두 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소일초는 두손을 등뒤에 감추었다.

[지금 숨긴게 뭐야? 빨리 꺼내놓지 못해?]

[헤헤헤……이거?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없어.]

두 손을 앞으로 숙 내밀었는데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주소아는 분명히 소일초의 손에 뭔가가 들려 있는 것을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보았었다.

물증을 잡지 못하자 사은상 자매를 홱 돌아보았다.

그러자,

사은장은 질끈 눈을 감을 버렸고,

사옥상이 자기의 가슴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내게서 이걸 가지고 갔어. 그리고 언니에게서는 이걸……]

사옥상의 한 손은 사은상의 하체를 가리켰다.

말로하지 않아도,

주소아는 소일초가 두 여자에게서 무엇을 훔쳤는 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당장 돌려줘……아무튼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해……어휴 골치야……!]

[벌써 돌려줬어, 발 옆에 다 놓여 있을 거야.]

소일초가 어느새 도둑질 솜씨를 발휘한 것이다.

[흑흑……]

이 세상에 존재하여,

미(美)란 이름의 굴레를 쓴 그 어떤 것에도 비유를 해낼 수 없는 노을 빛 피부를 가진 미녀,

바로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안타까운 흐느낌이었다.

분노와 수치로 죽고만 싶은 그녀였다.

주소아는 도끼눈을 뜨고서 소일초를 한 번 노려보았다.

이어,

사은상의 가슴에 그녀가 꺽어온 국화를 한 아름 안겨주면서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주었다.

[미안해요. 이번 일 만 끝나면 풀어드릴께요. 이제 내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저 말썽꾸러기를 지킬께요.]

본래,

심성이 고왔던 주소아다.

비록 요즘들어 많이 악랄해 지기는 했어도, 사은상의 눈물과 사옥상의 자신의 처지마저 깨닫지 못하는 천진함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도 순진한 감상적인 소녀였기에……

찰랑……찰랑……

세상의 온갖 비리(非理)와 추악함을 잊어 버린 동공에 눈물이 솟아났다.

여인의 감정이라고는 오직 색귀에게서 들었던 육체적 반응 외에는 모르는 소일초는 이러한 사정을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것을 지켜보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또 한쌍의 눈빛이 있었다.

천진한 아기같은 심성의 사옥상, 바로 그녀가 아니고 누구겠는가?

 

× × ×

 

 

[내 말 잘들어. 오늘 낮에 백인장에서 고모가 편지를 보냈어.]

[나는 못 봤는데……]

휘장이 드리워진 침상에서 소일초와 주소아 마주보고 있었다.

[내가 치웠어. 고모부의 상세가 지난 번에 사옥상에게서 받은 약을 복용한 이후로 급속도로 나아지고 있데……]

[그럼 언제 쯤 다 나을 수 있는데?]

[그건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너는 아무래도 지금 행동을 좀 고쳐야 해.]

[또 잔소리……]

[고모부는 사옥상에게 받은 약으로 빨리 치료되고 있는데 너는 그들 남매를 괴롭히기만 한잖아. 그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거라고……]

소일초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내가 그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아? 그 여자들은 녹림맹도들을 무수하게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틀림없이 삼성무림청의 요인들이야.]

[…………]

[아버지가 그렇게 다친 건 삼성무림청때문일 가능성이 십중 팔구고. 그렇다면 네가 인질로 잡혀있었다는 곳도 그곳이라는 이야기야.]

[…………]

[그런데도 그 여자들에게 관대해지라고? 흥, 더 잔인해 질 수 도 있어.]

[하지만, 그녀들이 고모부를 해친 것은 아니잖아? 또 더우기 여자로서 치욕을 주지는 않을 수도 있잖아?]

주소아도 마주 소리쳤다.

소일초는 잠시 입을 다물고 주소아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럼, 더 이상 그 여자들을 건드리지 않겠어. 대신, 그들에게서 삼성무림청이 사수 중의 삼수(三手)와 관련이 있다는 자백을 책임지고 받아내.]

[알았어.]

 

침상에서의 두 어린 남녀의 어린 것 같지 않은,

장난기라고는 전혀 들어있지않은 어른스러운 대화,

그들은 어리지만 무섭도록 치밀한 계획하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 × ×

 

소일초와 주소아가 같은 침상을 쓰는 방에서 멀지 않은 다른 방,

무공을 폐쇄당한 사은상 자매가 침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녁이 오면,

그녀는 문에 빗장을 걸고 철저하게 문단속을 하지만,

소일초는 도둑고양이 처럼 스며들어와 두 자매를 만지고 쓰다듬고 짖궂은 장난을 하다가 가곤 했다.

사옥상은 그냥 두면서도 자기는 꼭 아혈(啞穴)을 집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였다.

지금,

사은상은

한(韓)과 증오의 눈빛을 가닥가닥 실어내면서……

(천하의 사은상이……이런 초라한 몰골로 잡혀있어야 한다니……저……젖비린내 나는 꼬마에게……성(性)적인 수모까지 당해가면서……)

문득,

자조의 새파란 광망이 그녀의 두 눈에서 불을 뿜고,

그녀는 하얀 이가 바스러지도록 이빨을 가라붙였다.

(되돌려 준다……오늘의 이 수모에 천배 만배를 더하여 되돌려 준다……한데, 도대체 저 꼬마놈의 의도는 무엇일까?)

소일초를 생각하던 사은상의 눈빛이 파릇한 경련을 일으켰다.

사실,

그녀는 며칠 동안 소일초를 지켜보면서 한두 번 놀란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철부지 장난꾸러기라고하나 세상의 어떤 빙심(氷心)의 여인도 흔들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귀여운 얼굴……

그얼굴의 아름다움을 타고 도도히 대하처럼 흐르는 신비한 기질은 타인으로 하여금 절로 적대감을 느낄 수 없게 한다.

거기에다,

그와 함께 있는 주소아라는 계집아이……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품을 지녔으면서도 사악할 정도의 기괴한 무공을 구사하는 그녀……

천상의 선동들인 듯 한 두 어린 남녀의 의도는 아무래도 무림에 알려진 것 처럼

삼성무림청과 무림정벌이라는 것과는 다른 무엇이 있는 것같았다.

아무리 무공이 고강하기로서니,

절세고수로 알려진 백인장의 장주 소선풍이 있는데,

백인장에서 두 어린 아이가 밖에나와서 마음대로 날뛰게 하는 것도 이상했다.

들리는 바로는 여태까지 신행마동 소일초가 집에서 도망쳐 나왔을 때마다,

백인장의 여주인인 그의 어머니가 직접 무림에 나와서 잡아갔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오기도 전에 정식으로 출두를 선언하고 나왔지 않은가?

사은상, 그녀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기들과 꾸준히 싸워오던 녹림맹의 맹주마저 소일초에게 그토록 쉽게 안방을 내주었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그녀였다.

이때,

[아직 자지 않으면 문좀 열어줘요.]

문이 덜컹거리며 주소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은상은 바짝 긴장했다가 문을 열어주었다.

주소아의 손에는 쟁반이 들려 있었고, 그기에는 탐스럽게 구워진 닭고기와 음식들이 놓여져 있었다.

한 순간,

사은상의 눈이 의아심에서 크졌다.

[이제 괜찬아요. 언니……!]

주소아가 빛이 날 정도로 흰 얼굴을 갖다대면서 말했다.

[이제 그 꼬마가 더이상 언니들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주소아의 말투는 낮에 이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한이 골수에 사무친 사은상은 살살맞게 돌아서 사옥상이 누워있는 침상으로 걸어가 버렸다.

천천히 주소아는 사은상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어,

사은상의 앞에 준비된 음식을 한 숟갈 떠 사은상의 입에 들이 밀었다.

[먹어요……]

순간,

사은상의 그 차가운 눈빛에 강한 욕구가 배어났다.

들이 밀어진 음식을 삼키고 싶은 짐승 같은 욕구가……

그러나 끝내,

사은상은 찬바람이 들도록 싸늘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주소아는 숟갈은 내릴 생각도 하지 않고 부드러운 음성을 흘려냈다.

[언니! 언니는 바보야……]

[…………]

[언닌 벌써 나흘 째 굶었어……이대로 계속 굶는다면 무공도 폐쇄된 그몸으로는 죽게 돼……]

[…………]

[언닌 죽는 것이 억울하지도 않아……이렇게 초라하게 말이야? 그 꼬마에게 온갖 수모를 다 당하고……]

주소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언니, 아니 삼성무림청의 소공녀……어서 이 음식을 먹어요……그리고 사는 거야……!]

순간,

냉엄히 고개를 돌리고 있던 사은상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치워!]

[…………]

[더 이상 추근대면 그 음식에 침을 뱉겠다.]

주소아는 얼굴에 핀 미소를 지우지 않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사은상……나나 일초에 대한 저주가 크다면 왜 더이상 발악을 해보지 않는 거지?]

그녀의 어투는 다시 달라졌다.

[…………]

[삶을 체념하지 않았다면 먹는 거야……더구나 이곳은……]

[……?]

[녹림맹……!]

[…………!]

[나는 몰라도 그 꼬마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변하면 당장이라도 당신을 이 녹림맹의 사람들에게 넘겨 버릴 지도 몰라……]

[…………!]

[그럼, 녹림맹에서는 우리에게 크게 감사하겠지? 무수한 녹림인들을 살해한 당신들을 잡아주었다고……그들이 당신들을 어떻게 할지는 아마 쉽게 상상할 수 있겠지?]

사은상은 도무지 어린애 같지 않은 주소아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일초 등은 자기들의 정체를 녹림맹에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미 당신들은 우리에게도 이용할 가치가 없는 몸이 되었어.]

찰나,

사은상은 싸늘히 소일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따위 꼬마들에게 죽을 이 사은상이라면?]

[사은상이라면?]

[이 땅에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문득,

그녀의 싸늘한 냉음에 주소아는 얼굴에 핀 미소를 거두어 들였다.

[말해 두겠는데……우리 아니 그 꼬마의 목적은 당신들을 이용하여 삼성무림청의 주력을 이곳에 끌어 들이는 것이었어.]

[…………]

[그리고 그 계획대로 오일 만에 삼성무림청의 정예고수들을 이곳으로 끌어 들이게 됐어.]

찰나, 사은상의 두 눈에서 파릇한 광망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끝장이다.]

[왜?]

[삼성무림청의 정예인 삼혈단이 힘을 합치면 천하에 당해낼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사은상의 득의와 싸늘함이 풀려나는 음성에,

주소아는 지웠던 웃음을 피워올렸다.

[호호……그것은 두고 보면 알 일이지……더구나 내 일이 아니고 소일초가 처리할 일이니까. 허나 분명한 것은 당신들은 우리게 이미 이용가치가 없어졌다는 거야.]

[…………!]

[게다가 난 일초가 당신들을 집적거리는 것이 영 싫어……]

[…………]

[정 그렇게 버틴다면 아무 쓸모도 없는 당신들을 한 시라도 빨리 죽일 수 밖에 없는 일이지.]

순간,

사은상의 싸늘한 얼굴에 가는 놀람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주……죽일지도……모른다……저 계집애의 아름다운 웃음 속에 무서운 살심이 숨어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꼬마놈은 ……소름이 끼치는 괴물들을 끌고 다니는 무림에 악명이 자자했던 신행마동이 아닌가?)

그녀의 등줄기를 후벼파는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걷잡을 수 없이 치달렸다.

생명,

단 하나 뿐인 생명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엄청나다.

더구나 독기와 원한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라면 어떤 방법으로든 생명을 얻고자 할 것이다.

사은상,

아무리 차가운 빙심의 그녀라 해도 역시 인간임에는 틀림없다.

일단,그녀는 생명의 애착이 가슴에 피어오르자,

그녀는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자신의 팔만사천모공에 팽만하여 터지는 충격을 느꼈다.

이런 그녀의 가슴을 더욱 서늘하게 만드는 주소아의 미소,

어쩌면, 이 계집애도 그 꼬마 못지않은 독심의 소유자 일 것이다.

[자! 먹어……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일순 한기로 뭉쳐진 사은상의 얼굴에 단호한 결심의 빛이 흘렀다.

(그래 좋아……먹자……그리고 살자……그리하여……받은 것에 천만배를 되돌려 주자…… 이 악마같은 계집애……꼬마놈…… 애송이 꼬마놈…… 이 어린 마물들……!)

사은상은 그녀의 입에 들이밀어진 음식을 덥석 삼키기 시작했다.

주소아의 미소 띈 얼굴이 끄덕여지고,

또 한 숟갈의 음식을 떠 사은상의 입으로 가져가니……

이것은 마치 어미가 새끼에게 밥을 떠먹이는 광경이었다.

한 순간, 또 한 숟갈의 음식을 떠먹이던 주소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언니……저 사옥상 언니와는 쌍둥이야?]

사은상은 음식을 삼키며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삼성무림청의 주인이 언니 아버지야?]

[사부……]

(이 계집애가 나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하는 군, 또 말투를 바꿨어……)

[하면 어니의 사부는 삼수 중 세째인 사진성(史震聲)이겠네?]

단정짓듯 말하는 주소아의 음성에 사은상의 고개가 다시 무심코 끄덕여졌다.

동시에 주소아의 얼굴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미소가 피어났다.

[언니,고마워!]

단 세 마디의 음성과 더불어 주소아가 몸을 일으키자,

돌연,

무엇인가를 깨달은 듯 사은상의 전신이 부르르 떨었다.

거기에다,

[우욱……!]

씹어 삼키던 음식까지 토해내는 것이니……

[아니다……나의 사부은 사진성이 아니다……!]

사은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고개를 내저었다.

허나,

더이상 주소아는 그녀를 상대로 말을 하지 않았고,

사박사박 걸음을 옮겨 방을 나갔다.

[문단속 잘하고 자요. 혹시 모르니까……]

문밖에서 주소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소아는 소일초의 침실로 들어섰다.

소일초는 침상의 휘장을 걷어젖힌 채 술병을 들이키고 있었다.

[술맛 괜찮아?]

[녹림맹의 술은 기가 막히는 데가 있어. 차라리 도둑질 집어치우고 주루를 하면은 더 편히 살것 같은데……]

[나도 조금만 줘볼래?]

주소아가 침상에 걸터 앉으면서 말했다.

소일초가 두 말 않고 술병을 건네주었다.

꿀꺽꿀꺽-----

[커----- 혀가 착 감기는 것이 술도 괜찬은 물건이네……]

[정말 그렇지? 야……우리 더 잘 통할 수 있겠는데……]

소일초가 반색을 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새 술을 더 갖고 올테니까……]

[어디가서?]

주소아가 사과처럼 발개진 얼굴로 의아해하며 물었다.

[어디긴 어디야. 술창고에 가서 슬쩍 해오면 되는 거지……배운 도둑질 이때 써먹어야지.]

주소아는 피식 웃었다.

과연,

신행마동이란 이름에 어울리게 소일초는 나가자마자 몸통 만큼이나 굵은 단지를 들고 들어왔다.

막고있던 소가죽을 벗기고 나자 향긋한 술냄새가 방안에 가득 퍼졌다.

침상 한가운데다 술독을 놓고 두 꼬마는 찻잔으로 떠마셨다.

[기가막히다……이렇게 신나게 술마신 적은 없었는데……]

[나도 술이 이렇게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벌개진 얼굴로 연신 술을 떠마시며 주소아가 말했다.

[확실히 술은 여자를 곁에 두고 마셔야 한다더니……어른들 말이 그른 게 없군.]

[그 뜻을 알기나 하고 하는 말이야?]

[뭔데?]

[원래부터 주색(酒色)이라고 했잖아. 당연히 술 다음에는 여자를 찾는 거라구……]

주소아는 이미 취기가 돌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말을 잘 아는 척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난, 주색투도(酒色偸賭)에 모두 통달했어. 사마귀로부터 직접배웠거든.]

[까불지마. 주투도라면 몰라도……아직 꼬마가……난 이래도 이미 이 년 전에 초조(初潮)를 치른 여자란 말이야……]

[내가 재미나는 것을 한 가지 보여주지……]

그말을 마치자 마자 소일초의 입에서 뿌연 연기가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풀린 눈동자로 주소아가 말했다.

[별 것아닌 것 같은데……]

그러나,

소일초의 입에서 나오는 연기는 전혀 흩어지지 않고 공중에서 공처럼 빙빙돌며 뭉쳐졌다.

그기에서 강렬한 주향이 풍겨나오고 있었다.

[주정(酒酊)이구나!]

주소아가 손뼉을 쳤다.

소일초는 입을 다물고 공중에 떠있는 주정을 향해 손을 뻗었다.

구름같은 주정은 점점 작아지면서 조그마한 구슬로 변해버렸다.

다시 소일초가 공중으로 던지자 구슬이 퍽 흩어지며 구름같은 주정이 용(龍)의 모습을 만들어 냈고 스르르 바뀌며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사람모습으로 변하기도 했다.

주소아는 연신 재미있어하며 박수를 쳐댔다.

이 기술은 소일초가 주귀(酒鬼)에게 배운 주전신공(酒箭神功)을 응용한 것이었다.

소일초가 입을 벌리자 여인의 형상을 이루고 있던 주정은 후루룩 빨려들어가 버렸다.

소일초의 얼굴이 더욱 벌개졌다.

주정을 한꺼번에 흡입한 때문이었다.

한 동안 횡설수설하면서 술을 퍼마신 소일초와 주소아는 술독을 내려 놓은 후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어땠어?]

소일초의 말이다.

[예상대로 였어. 사진성의 제자래. 같은 성씨라서 딸인줄 알았는데……]

주소아는 완전히 취해서 혀 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이 순간,

소일초는 곁에 퍼질러진 주소아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주소아의 빨간 얼굴이 희미한 황촉불에 비쳐 소일초를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그녀가 몸을 돌려 소일초의 몸에 다리를 걸쳤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여 그녀의 뺨 위를 타고 흘러내릴 것 같다.

[왜……나는 삼 년 전에 일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을까?]

[…………]

[몇 달 만……몇 달 만 지나면……고모부 상처가 완쾌되겠지. 그럼 고모부는 내 기억을 돌려 주실 수 있을 지도 몰라……]

[내 말만 잘들으면 내가 기억을 치료해 줄께……]

[사기치지마……네가 무슨 수로……괜히 수작이나 걸어보려는 거지……]

[어떻게 알아.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나 말해.]

[말했잖아. 내 목탁이면 간단히 해결된다고……]

[목탁으로 펼치는 무공도 있어? 잘못되면 녹림맹이 폭삭 망하는 수도 있어……일부러 이곳의 위치까지 그쪽에 몰래 알렸는데……]

주소아의 혀 꼬부라진 소리에는 염려가 들어있었다.

[목탁 속에 축융화탄이 가득들었어.]

[뭐?]

호호호------

히히히------

두 가지의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웃음이 잦아지자 소일초의 음성이 다시 흘렀다.

[삼성무림청……그들이 언제쯤 이 녹림맹을 공격할까?]

[아마 다가오는 새벽이 아니면 내일 밤이겠지. 물론 새벽일 가능성이 더 많지만……]

[뭐? 그럼 얼마 남지 않았을텐데……]

놀라면서 벌떡 일어서려는 소일초의 목을 주소아가 천연덕스럽게 휘감았다.

[괜찮아. 비성성들이 교대로 하늘에서 지키고 있어. 때가 되면 와서 깨울거야……]

주소아는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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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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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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