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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장

 

              영물을 잡는 법

 

 

“제가 상처를 잘못 건드렸는가요?”

강유의 등에 약을 발라주던 진상파가 놀라서 물었다.

“아닙니다.”

강유는 고개를 조금 저으며 앞쪽을 살펴보는데 집중했다.

(왜 이러지?)

진상파는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들어서 강유와 함께 모닥불 너머의 어둠 속을 보았다.

반짝!

순간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을 띤 한 쌍의 빛이 반짝이는 게 진상파의 눈에도 들어왔다.

“흑...”

진상파가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작은 비명을 질렀을 때였다.

슥!

그 한 쌍의 붉은 빛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쪽 어둠 속에... 뭔가 있군요.”

진상파는 긴장하여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여자라 사람보다는 짐승이 더 무섭다.

“귀찮은 놈이 따라붙었습니다.”

강유는 한숨을 쉬며 누더기가 된 웃옷을 입기 시작했다.

“섬전초라는 그 담비인가요?”

진상파도 비로소 사라진 불빛이 유별나게 붉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에 겁을 주었던 게 별로 효과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강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옷을 조심스럽게 걸쳤다.

“그런 것같군요.”

진상파는 강유가 옷을 입는 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조금 뒤로 물러앉았다.

“저놈을 방치하면 우리가 어디로 가든 제왕성 측에서 알게 될 것입니다.”

상의를 걸친 강유는 허리띠를 매면서 일어났다.

“그럼...”

“잡아서 혼을 좀 내줘야겠지요. 더 이상 따라다니지 못하도록...”

강유는 싱긋 웃으며 일어났다.

모닥불 옆에는 밤새 불을 지피기 위해 강유가 주변에서 모아온 마른 나뭇가지들이 제법 많이 쌓여있었다.

강유는 그것들 중에서 가는 것만 한 아름을 추려내었다.

쿡! 쿡!

그리고는 그 나뭇가지들을 모닥불 앞쪽의 공터에 박기 시작했다.

(뭘 하는 걸까?)

진상파는 모닥불 뒤에 무릎 꿇고 앉아서 강유가 나뭇가지들을 바닥에 줄 지어 꽂는 것을 지켜보았다.

(번개같이 빨라서 섬전초라는 이름까지 붙은 그 영물을 나뭇가지 몇 개 꽂은 것으로 잡을 수 있다는 걸까?)

진상파가 의아해할 때였다.

“대충 완성되었습니다.”

이윽고 강유가 숙였던 허리를 펴며 웃었다.

어느덧 바닥에는 나뭇가지들이 깔때기 형태로 박혀있었다.

바깥쪽은 넓고 모닥불과 동굴 쪽은 좁아서 마치 물고기 잡는 통발 같이 보이는 울짱(담장)이다.

나뭇가지를 꽂아 설치한 그 울짱의 넓은 쪽의 폭은 이장 정도고 모닥불 앞의 좁은 쪽은 불과 한자 남짓이다.

또 울짱을 형성하는 나뭇가지들은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섬전초가 위로 튀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구조다.

“특이한 형태의 함정이로군요.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하는 어살(魚箭)같기도 하고...”

단정하게 앉아서 기다리던 진상파가 울짱을 살피면서 말했다.

“어릴 적에 저는 안탕산의 험한 산속을 누비며 산토끼들을 잡으러 다녔었습니다.”

모닥불 앞으로 돌아온 강유는 자신의 물건들 중 명주실을 꼬아 만든 가느다란 밧줄을 집어들며 말했다.

“하지만 산토끼란 놈은 워낙 빠르고 기민한 탓에 무작정 쫓아다녀서는 잡을 수가 없었지요.”

강유는 그 가느다란 밧줄로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이런 올가미였습니다.”

강유는 만든 올가미를 들고 통발 형태로 꽂아놓은 나뭇가지 울짱의 가장 좁은 곳에 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섬전초를 함정 안쪽으로 몰아와서 그 올가미로 잡으실 계획이시군요.”

진상파의 눈이 반짝 빛났다.

“토끼나 사슴처럼 빠르게 달리는 게 장기인 짐승들은 부상당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합니다. 그래서 늘 다니던 길로만 다니고 장애물은 어떻게든 피하려는 습성이 있지요.”

강유는 올가미와 연결된 밧줄 끝을 바닥에 깊이 꽂아놓은 굵은 나뭇가지에 묶었다.

“어떤 짐승보다 빨리 달리는 섬전초 역시 비슷한 습성을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강유는 올가미를 원형으로 펴서 좌우의 나뭇가지에 살짝 걸쳐놓았다.

“섬전초도 일단 함정 안으로 들어오면 울짱을 뛰어넘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내달리겠군요.”

“비록 급조한 함정이긴 해도 효과는 있을 겁니다.”

웃으며 일어나는 강유의 손에는 방책을 만들고 남은 두 개의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

“이제 그놈을 이 울짱 안쪽으로 몰아넣기만 하면 됩니다.”

강유는 나뭇가지를 양손에 나눠들고 어둠 속을 향해 돌아섰다.

“그럼 숨바꼭질을 시작해볼까?”

딱! 딱!

이어 강유는 나뭇가지들을 부딪혀 소리를 내며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재미있어하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강유의 뒷모습을 보며 진상파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늠름한 어른처럼 보이지만 아직 순진한 소년의 면모도 지니고 있는 사내야.)

강유에게 한층 더 호감이 생기는 진상파였다.

 

계곡 입구 쪽의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섬전초는 움찔했다

딱! 딱!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호기심을 느낀 섬전초는 숨어있던 바위 위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역시 떠나지 않고 근처에 머물러 있었구나.”

딱! 딱!

어둠 속에서 나뭇가지 두개를 부딪혀 소리를 내며 강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유는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섬전초의 붉은 눈을 단번에 찾아낸 것이다.

카아!

휘릭!

섬전초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숨어있던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내가 내는 소리에 호기심을 참지 못해 숨어있던 곳에서 머리를 내밀어 들키기도 하고... 짐승은 어쩔 수 없는 짐승이로구나.”

강유는 웃으며 섬전초쪽으로 다가왔다.

끼이! 팟!

섬전초는 재빨리 튀어 올라서 계곡 입구쪽으로 달아나려고 했다.

“어림없다.”

동시에 강유가 나뭇가지 하나를 강하게 던졌다.

패앵!

나뭇가지는 풍차처럼 돌면서 섬전초를 노리고 날아갔다.

스팟!

앞으로 달려가던 섬전초는 몸을 옆으로 홱 틀어서 그 나뭇가지를 피했다.

빠각!

섬전초를 스쳐 지나간 나뭇가지는 앞쪽의 바위에 부딪혀 박살이 났다.

휘익!

나뭇가지를 피한 섬전초는 방향을 틀어 바람같이 달려갔다.

그 때문에 이제 놈이 달려가는 쪽은 계곡 입구가 아니라 계곡 안쪽이었다.

“서라 이놈아!”

강유는 짐짓 사납게 고함을 지르며 몸을 날려 섬전초를 따라갔다.

휘익!

섬전초는 절벽 아래쪽을 따라 한줄기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놈의 앞쪽 이십여 장 쯤에 모닥불이 타고 있고 강유가 급조해놓은 울짱도 보인다.

진상파는 모닥불 뒤쪽에 앉아있어서 그 모습이 섬전초에게는 안보였다.

하지만 섬전초가 달리는 방향은 절벽 바로 아래쪽이라 울짱 안으로는 들어갈 것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맞아랏!”

그때 섬전초를 쫓아오던 강유가 두 번째 나뭇가지를 던졌다.

파캉!

이번에도 빠르고 강하게 회전하며 날아간 나뭇가지는 섬전초가 달려가는 앞쪽 절벽에 부딪혀서 박살난다.

팟!

그러자 섬전초는 본능적으로 몸을 옆으로 틀어서 부러진 나뭇가지 파편을 피했다.

휘릭!

그리고 그놈이 다시 바닥에 내려섰을 때는 어느덧 강유가 설치한 울짱의 안쪽에 들어가 있었다.

 

(대단하네.)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본 진상파의 눈이 감탄으로 물들었다.

(나뭇가지 두 개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짐승이라는 섬전초를 함정으로 몰아넣었어.)

감탄하는 진상파의 눈에 건너편 어둠 속에서 섬전초가 나타나 울짱 안으로 뛰어드는 게 보인다.

그리고 그 놈 뒤에서 따라오는 강유의 모습도 흐릿하게 보였다.

쐐애액!

울짱 안쪽으로 들어선 섬전초는 좌우는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날 듯이 달려왔다.

울짱의 좁은 끝 부분이 섬전초 앞으로 확 다가왔다.

그곳에 올가미가 설치되어 있지만 물론 섬전초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촤악!

그리하여 나뭇가지로 만든 울짱 밖으로 튀어나가려던 섬전초의 목에 올가미가 확 걸렸다

“캥!”

팽!

올가미가 목에 걸린 섬전초의 몸이 허공에서 한 바퀴 홱 뒤집어졌다.

(걸렸네.)

진상파가 눈을 치뜰 때였다.

퍼억!

허공으로 튕겨졌던 섬전초의 몸이 바닥에 세차게 패대기쳐졌다.

달려온 속도가 빨라서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것도 아주 세찼다

“맛이 어떠냐 이놈아?”

휙!

강유가 껄껄 웃으며 섬전초 옆으로 내려섰다.

팟!

동시에 바닥에 패대기쳐졌던 섬전초의 몸이 용수철 튀듯이 일어났다.

까득!

이어 그놈은 자기 목을 묶은 올가미와 연결된 밧줄을 입으로 물어뜯고 앞발로 눌렀다.

“그렇게는 안되지.”

콱!

강유는 재빨리 섬전초의 목을 뒤에서 움켜쥐었다.

“카악!”

목이 강유의 강철같은 손아귀에 조여지자 섬전초는 비명을 지르며 입을 벌렸다.

자연스럽게 그놈은 물고 있던 밧줄도 토해내게 되었다.

“못된 말썽장이 같으니... 다시는 허튼 짓을 못하게 만들어주마.”

휘릭! 휙!

강유는 오른손으로 섬전초의 목을 움켜쥔 채 왼손으로는 밧줄을 재빨리 움직여서 그놈의 네 발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섬전초는 칵칵 거리며 몸부림쳤지만 꼼짝 못하고 네 개의 발목이 하나로 묶여버렸다.

그 때문에 그놈의 긴 허리가 활처럼 아래로 휘어졌다.

“분명 경고를 했는데 따라와서 알짱거린 대가를...”

말하던 강유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콱!

섬전초가 고개를 필사적으로 뒤로 돌려서 자기 목을 쥐고 있는 강유의 팔뚝을 물어버린 것이다.

다만 목을 억지로 돌려서 문 탓에 그리 깊이 물지는 못했으며 입의 한쪽으로만 문 상태였다.

그래도 섬전초의 날카로운 이빨이 강유의 팔뚝에 상처를 내서 피가 배어나온다.

“흑!”

그걸 본 진상파가 놀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가르르!

섬전초는 강유의 팔뚝을 문 채 물지 않은 쪽의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하지만 그 직후 섬전초의 눈이 위로 흡 떠졌다. 눈을 부라리며 내려다보는 강유의 표정이 아주 살벌했기 때문이다

끼이...

주눅이 든 섬전초는 곁눈질로 강유의 눈치를 살폈다. 입으로는 여전히 강유의 팔뚝을 문 채...

“날 물었다 이거지? 대충 혼내주고 풀어줄 생각이었다만 마음이 바뀌었다.”

강유는 자기 팔을 물고 있는 섬전초를 들고 모닥불로 다가갔다.

카아!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이 가까워지자 섬전초는 깜짝 놀라 강유의 팔뚝을 물고 있던 이빨을 뽑았다.

“강소협! 설마...”

진상파도 깜짝 놀랄 때였다.

“살려두면 사람을 해칠 놈입니다. 마침 출출하기도 하니 이놈을 구워서 야식으로 먹어야겠습니다”

강유는 냉혹하게 웃으며 섬전초를 모닥불 위쪽에 드리웠다.

까아! 까아!

섬전초는 등쪽이 모닥불 위로 드리워지며 겁에 질려 몸부림쳤다.

치치치!

끼잉! 낑!

등쪽 털이 모닥불의 열기에 그슬려지기 시작하자 섬전초는 강유를 돌아보며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애원해봤자 늦었다 이놈아. 마침 배도 고프던 참이니 맛있게 먹어주마.”

강유는 섬전초의 애원을 무시하며 입맛까지 쩝쩝 다셨다.

끼이이!

강유의 그 표정을 본 섬전초는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구워볼까?”

강유는 히죽 웃으며 섬전초를 모닥불에 더 가까이 내려 보냈다.

치치치!

그러자 섬전초의 털이 더 많이 그슬려졌고..

카아! 카!

섬전초는 겁에 질려 몸부림치며 울어대었다.

“벌써부터 맛있는 냄새가 나는 걸!”

강유가 그런 섬전초를 보며 또 입맛을 다실 때였다.

“그만 하세요!”

팟!

보고 있던 진상파가 급히 일어나 강유의 손에서 섬전초를 낚아챘다.

“조금 귀찮게 굴었다고 태워죽일 것까지는 없잖아요.”

진상파는 털이 제법 많이 그슬린 섬전초를 품에 안고 다시 바닥에 앉으며 눈을 흘겼다.

끼이!

구사일생(?)한 섬전초는 애처롭게 울면서 진상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소저, 조심하시오. 언제 표변해서 물지 모르는 사나운 놈이오.”

“걱정해주실 거 없어요.”

강유의 경고에 진상파는 섬전초를 보듬어 안은 채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해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법이 어디 있...”

강유에게 화를 내던 진상파는 흠칫했다. 그제서야 강유가 실실 웃고 있는 것을 본 때문이다

(그렇게 된 거였구나!)

진상파는 비로소 강유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요 녀석을 순치(馴致;짐승을 길들임)시키려고 구워 먹을 것처럼 겁을 줬던 거야.)

진상파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안고 있는 섬전초를 쓰다듬었다.

“불쌍한 것! 많이 놀랐지?”

이어 그녀는 섬전초의 네 발을 묶은 밧줄을 풀어주었다.

다만 만일을 대비해서 목에 걸린 올가미는 풀어주지 않았다.

끼잉! 끼잉!

함께 묶여있던 네 개의 발이 풀리자 섬전초는 겁에 질려 진상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본능적으로 자길 보호해줄 수 있는 존재가 나뿐이라는 걸 알고 안겨드네.)

진상파는 미소를 지으며 섬전초를 쓰다듬었다.

“이거 참 아쉽구만.”

강유는 모닥불을 사이에 두고 진상파 건너편에 책상 다리를 하며 주저앉았다.

“그놈을 노릇노릇 구워서 뜯어먹으면 아주 맛났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는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들쑤셔서 불길이 확 일어나게 만들었다.

불길이 세차게 치솟자 섬전초는 기함을 했다.

낑! 낑!

그놈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 필사적으로 진상파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적당히 하세요.”

진상파는 모닥불을 위협적으로 들쑤시는 강유에게 눈을 흘기면서 웃었다.

“이 애도 이제 소협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깨달았을 거예요. 그렇지?”

그녀는 자신의 품으로 파고드는 섬전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끼잉!

섬전초는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엾기도 하지. 언니 말만 잘 들으면 별일 없을 테니 안심하렴.”

어느덧 섬전초가 너무도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진상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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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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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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