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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십구년후(十九年後)> 괭! 괭! 어둑한 관도. 징소리가 들리는데

횃불과 등을 들고 걸어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다. 몇 명의 무사들이 등불과 횃불을 들고 앞장서고. 무사들 중 한명은 징을 치고 있다. 그 뒤를 상인들로 보이는 남녀들 십여명이 겁에 질려 따라온다. 여자들 중에는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도 한명 있다. 남편인 듯한 여자와 나이 든 여자가 임산부를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고. 맨 뒤에도 두 명의 무사가 따라온다.

무사1; [진보표국(珍寶鏢局)! 진보표국!] 괭! 괭! 징을 치며 걸어가고. 겁을 먹은 표정이고

무사1; [진보표국의 표행(鏢行)이오!] [녹림의 형제들에게 화친을 청하겠소!] 괭! 괭! 징을 치며 외치고

여자1; [정말... 정말 아무 일 없을까요?] 무사들 바로 뒤를 따라가는 여자가 겁에 질려 옆에 가는 남자에게 말하고. 방물장수 분위기의 여자. 이하의 대화를 배경으로고 괭! 괭! 하며 징소리가 들린다.

남자1; [걱정 마시오.] [아직 초저녁이고 강북에서도 이름난 표국인 진보표국의 표사들이 지켜주고 있지 않소?] 봇짐장사 분위기의 사내가 말하고. 억지로 웃지만 역시 겁에 질린 표정

남자1; [녹림의 산대왕(山大王;산적)들도 이름난 표국의 표행은 건드리지 않는 게 불문율이오.] [표국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기 때문이오.]

남자1; [별탈없이 아주 어두워지기 전에 다음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거요.]

여자1; [저... 저도 녹림의 산적들이 어지간해서는 표국의 행렬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

여자1; [하지만... 인간이 아닌 것들은 표국이건 뭐건 안중에도 없을 거 아니에요?] 겁에 질려 속삭이고

<인간이 아닌 것!> 주변 사람들의 얼굴도 겁에 질리고.

무사2; [어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앞서 가던 무사들 중 나이 든 중년무사가 돌아보며 눈을 흘긴다. 이 무사2가 무사들의 우두머리. 손에 횃불을 하나 들고 있다

무사2; [요즘 세상에 귀신이나 요괴같은 게 있을 리 없잖소.?] [괜히 말 지어내기 좋아하는 것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오.]

남자1; [하... 하지만 나도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 들은 게 있소.]

남자1; [몇몇이 함께 밤길을 가다가 이매망량인지 귀신인지를 만나 죽고 다친 인간이 나왔다고 하오.]

남자2; [언제부터인가 세상에 요괴들이 출몰하는 빈도가 높아졌다고 하던데...] 다른 자도 끼어들고. 사람들 겁에 질려 끄덕이고

무사2; [그만! 그만하시오!] 소리쳐서 사람들의 말을 막고

무사2; [난 지금까지 숱하게 밤길을 다녔지만 산적과 들짐승들 외에는 만나본 적이 없소!]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무사2; [정 겁이 나면 좀 더 빨리 걸으시오.] [앞으로 십리쯤만 더 가면 객잔이 있는 마을이 있소.]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가며 퉁명하게 말하고

여자1; [이게 다 저 여자 때문이라구요.] 대열 중간쯤에 걸어오는 임산부를 흘겨보며 남자1에게 말하고

여자1; [갑자기 산통(産痛)이 느껴졌다고 반 시진 가까이 쉬는 바람에 날이 어두워졌잖아요.] 유원망하고

남자1; [산달 앞둔 임산부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데 어쩌겠소?] [그렇다고 길가에 남겨두고 올 수도 없었고...]

여자1; [그렇긴 하지만...]

남자1; [표두 말대로라면 십리쯤 앞쪽에 마을이 있을 테니 힘을 냅시다.] 은근 슬쩍 여자의 어깨를 다독이고.

괭! 괭! [진보표국! 진보표국!] 괭! 괭! 그 사이에도 앞장 선 무사1이 징을 치며 걸어가고

무사2; (쓸데없는 소리라고 윽박지르긴 했지만...) 앞서 가는 무사1의 뒷모습 보며 긴장한 표정이 되고

무사2; (몇 년 전부터 이매망량이나 귀신을 보았다는 목격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내가 막 표국에 들어왔을 때는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게 귀신 소동이었는데...)

무사2; (마치 귀문(鬼門)이 갑자기 열려서 저승의 귀신과 요괴들이 세상으로 뛰쳐나온 것같은 분위기다.)

무사2; (실제로 우리 표국의 표사들 중에서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당한 희생자도 여럿 있고...)

무사2; (그나마 귀신이나 요괴들은 밤중에만 활동을 해서 낮에만 다니면 안전했었다.)

무사2; (그랬는데 일행에 끼어있는 임산부 때문에 밤길을 가게 되었다.)

무사2; (아무쪼록 다음 마을까지 아무 일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생각하는데

무사1; [진보...] 쾡! 징을 치다가 흠칫! 하며 앞을 보고

무사2; [왜 경고를 멈추는 거냐?] 눈 부라리며 무사1에게 다가가고

무사1; [누가... 앞에 누가 있습니다요.] 겁에 질려 징을 치던 북채로 앞을 가리키고

사람들 모두 놀라고 긴장해서 앞을 보는데

과연 길 중앙에 어떤 여자가 등을 보인 채 쭈그려 앉아있다. 무언가를 먹는 자세

무사2; (여자?) 긴장하며 앞으로 조심스럽게 나간다. 무사1이 따라가고. 다른 사람들은 걷는 속도를 줄이며 보고 있고

무사2; [부인! 여기서 뭐하는 거요?] 횃불을 높이 들어서 여자를 비추며 다가가고

우걱! 우걱! 여자는 등을 보인 채 앉아서 여전히 뭔가를 먹고 있고

무사2; [이 늦은 밤중에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요?] [지나가야 하니 길을 비켜주시오.] 허리에 찬 칼 손잡이에 손을 대면서 횃불을 높이 들고

<길을 비켜달라고?> 여자가 먹는 걸 중단하며 말하고

<그럼 대신 뭘 줄 건데?> 웃으며 돌아보는 여자. 피로 물든 입이 귀까지 쭉 찢어진 여자 귀신이다. 눈이 전체가 새카맣고. 그리고

쿵! 여자가 먹고 있었던 건 사람 시체다. 목이 깔끔하게 잘린 남자 시체가 누워있고. 여자는 그 남자의 배를 갈라서 간을 먹고 있던 중이다.

무사2; [헉!] 창! 기겁하며 칼을 뽑고

무사1; [나... 나왔다!] 비명 지르며 물러서고

[헉!] [꺄악!] [귀... 귀신...] 뒤쪽의 사람들과 무사들 비명 지르고

여자귀신; <네 간을 내놓겠느냐?> 화악!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난 피 묻은 양손을 쳐들고 무사2를 덮쳐온다

무사2; [무... 물러가라!] 쩍! 비명 지르며 칼을 휘둘러 여자귀신을 베며 물러서고. 하지만

슈욱! 무사2의 칼을 여자귀신의 몸을 안개인 듯이 통과해버리고. 반면

서걱! 여자귀신의 긴 손톱은 무사2의 목을 깊이 베고 지나간다.

무사2; [크악!] 목이 옆으로 갈라져 피를 뿜어내며 비명 지르고. 죽진 않았다.

비틀거리는 무사2를 지나쳐 사람들을 덮쳐오는 여자귀신

[장표두님!] [으아아!] [히익!] 무사들은 달아나거나 횃불을 휘두르거나 칼을 휘둘러 여자귀신을 공격하거나 한다. 하지만

화악! 스악! 횃불도 칼도 여자귀신의 몸을 스쳐지나가고. 반면

[컥!] [크악!] 서걱! 쩍! 여자귀신이 휘두르는 손톱에 몸이 갈라져 피를 뿌리는 무사들. 중상은 입지만 역시 죽은 자는 없다

[히익!] [안... 안돼!] [엄마야!]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무사들의 모습 배경으로 비명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

[!] 사람들을 추격하다가 눈 번뜩이는 여자귀신

남편에게 부축된 채 겁에 질려 어쩔 줄 몰라하는 임산부

임산부의 불룩한 아랫배

여자귀신; [싱싱하고 맛있는 걸 갖고 있구나!] 화악! 입맛 다시며 임산부를 덮쳐가고

[악!] [히익!] 임산부와 남편 기겁

여자귀신; [잘 먹겠어요!] 쩍! 임산부의 배를 손톱으로 베어가는 여자귀신의 날카로운 손톱.

절체절명. 사색이 되는 부부. 바로 그때

퍽! 갑자기 옆에 나타나 발길질로 여자귀신의 옆구리는 강하게 걷어차는 청풍. 죽립을 썼고 망토를 둘렀다. 망토 안에는 검을 차고 있고

[캥!] 콰당탕! 옆으로 나뒹굴며 여우 울음소리를 내는 여자귀신.

달아나던 사람들 깜짝 놀라 돌아보고. 임산부와 남편도 놀라 보는데

청풍; [캥?] 웃고

여자귀신; <어... 어떻게 인간이 내 몸에 손을 댈 수가...> 나뒹굴었다가 일어나려는 여자귀신

청풍; [울음소리만으로도 정체가 뭔지 대충 짐작이 가는군.] 슥! 여자귀신을 걷어찼던 발을 내리며 웃고

[저... 저 사람...] [표사들의 칼이 스치고 지나갔던 저 요괴를 걷어찼어!] 달아나려던 사람들 멈춰서며 돌아보고

여자귀신; <못 믿겠다!> 캥!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청풍을 공격해오는 여자귀신. 양손의 손톱이 아주 날카롭고. 하지만

청풍; [못 믿으면 어쩔 건 데?] 두 손을 태극권 하듯 모아 돌렸다가

펑! 다시 내치는 청풍의 손바닥에서 태극 형상이 일어나 여자귀신의 가슴을 때린다.

치치치! 여자귀신 가슴이 태극 모양으로 타들어가고

여자귀신; <캥!> 펑! 다시 짐승처럼 비명 지르며 날아갔다가

콰당탕! 나뒹구는 여자귀신

청픙; [도가(道家)의 태극번천인(太極翻天印)은 인간보다는 요사스러운 것들에게 더 효과적이지.] 웃으며 다가오고.

여자귀신; <흐윽...> 겁에 질려 벌벌 떨며 일어나려 하고

청풍; [이 근처에서 밤길 가던 여행객들이 여럿 간을 파 먹히고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나뒹굴어 벌벌 떠는 여자에게 다가가고. 망토 속에 손을 넣은 채

청풍; [울음소리도 그렇고...] [간을 파먹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청풍; [역시 네년은 호선(狐仙)이었구나!] 웃으며 멈춰서고

쿵! 가슴이 타들어가면서 일어나 앉는 여자귀신의 얼굴이 여우얼굴로 변해있다.

주저앉은 아랫도리 치마 속에도 꼬리가 세 개 보이고

[여... 여우!] [꼬리 셋 달린 여우였다!] 사람들 비로소 알아차리고 놀랄 때

청풍; [꼬리가 셋인 걸 보니 호선중에서도 아직은 하급(下級)의 호선이었구나.] 슥! 다시 꺼낸 청풍의 손에는 부적이 한 장 들려있다. 주변에 복잡한 문자가 새겨진 부적인데 중앙에는 <封>자가 새겨져 있다

여우귀신; [천사봉신부(天師封神符)!] 팟! 비명 지르며 날아오르고

청풍; [여우귀신 주제에 안목은 제법이로군!] 웃으면서 부적을 한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그 부적 쥔 손의 손목을 감싸며 주문을 외우고. 그러자

징! 부적에 새겨진 그림과 글자들이 빛을 발하고. 그러자

화악! 부적에서 일어난 강한 흡인력이 날아오른 여우귀신을 끌어들인다.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듯.

여우귀신; [안... 안돼!] 허공에서 두 손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허우적거리며 비명 지르지만

슈우! 아랫도리부터 연기로 변해서 부적으로 끌려들어가는 여우귀신

<제... 제발... 내가 잘못했다! 살려다오!> 화악! 부적으로 상체까지 끌려들어가며 애원하는 여우귀신. 하지만

청풍; [잘못한 줄 알았으면 순순히 벌을 받아라.] 징! 부적을 더 강하게 빛나게 만들고

<끼아아악!> 이제 머리와 두 손만 남은 채 비명 지르는 여우귀신.

<복수... 구미호선(九尾狐仙)께서 이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 완전히 끌려들어가며 악을 쓰지만

청풍; [예... 예!] 대수롭지 않게 웃고

펑! 완전히 부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우귀신

청풍; [아무쪼록 호선들의 여왕이라는 구미호선께서 날 찾아오길 바란다.] 화악! 부적이 불길에 휩싸이고

청풍; [그래야 귀찮은 여우귀신들의 씨를 말릴 수 있을 테니...] 화르르! 푸시시! 불에 타며 사라지는 부적을 보면서 말하고.

[대... 대단하다.] [아직 젊은데 여우귀신을 저렇게 간단히 해치우다니...] [복장을 보면 도사(道士)는 아닌데...] 사람들 멀찍이에서 둘러보며 감탄하고

청풍; [다친 분들은 어떻소?] 무사한 무사들이 동료 무사들을 간병하는 걸 돌아보며 묻고

무사1; [상... 상처가 깊지만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닙니다요.] 무사2의 목을 눌러주며 말하고

청풍; [다행이로군.] 끄덕

청풍; [이 일대의 터주대감이던 삼미호선(三尾狐仙)이 소멸되는 걸 보았으니 잡스러운 요괴들은 더 이상 여러분들을 위협하지 못할 거요.] 돌아서고

청풍; [안심하고 갈길 가시오.] 휘익! 날아가고.

[감사합니다 공자님! 감사합니다!] [오늘 베푸신 은혜, 삼생에 걸쳐 갚도록 하겠습니다.] 임산부와 임산부 남편이 멀어지는 청풍을 향해 굽신. 그때

남자1; [알았다!] 주먹으로 손바닥을 치며 외치고. 모든 사람들 놀라 돌아보고

남자1; [저... 저분 공자님이 누군지 알았어!] 흥분하고

여자1; [누군데요? 유명한 분인가요?]

남자1; [퇴마신협(退魔神俠)!] [일 년 전쯤 나타나 숱한 이매망량과 요괴들을 퇴치해온 퇴마신협이 틀림없소!]

여자1; [퇴마신협!] [별호만으로도 저 공자님의 퇴마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가네요.] 홀린 표정으로 청풍이 날아간 쪽 보고

남자1; [대단하다 마다!] [퇴마신협께서는 이름난 도사들이나 고승들도 어쩌지 못한 강력한 요괴들을 수도 없이 봉인하고 불태워버린 것으로 유명하오.]

<마교와 배교, 신선부등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금 퇴마신협을 퇴마술(退魔術)로 능가하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어둠 속에 하늘을 새처럼 날아가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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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저녁 무렵. 해가 서쪽 하늘에 한 뼘쯤 남아있다.

은행나무 아래의 밀실. 청풍은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침대에 누워있고.

서문숙은 여전히 책을 쓰고 있다.

한쪽 옆에서 싱크로 수영을 하듯이 나란히 서서 검무를 추는 공손대낭과 권완. 권완은 곁눈질로 공손대낭의 동작을 보고 있다.

공손대낭; [검을 쓸 때는 눈빛마저도 그 법에 맞아야 한답니다.]

공손대낭; [그렇게 되어야만 검이 눈을 뜨고 검으로 사물을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설명하며 검무를 추는데

퍼덕! 청풍의 몸이 세차게 요동을 치고

츄학! 푸학! 온몸에서 피가 뿜어진다

권완; [공자!] 놀라 돌아보고. 공손대낭도 흠칫 멈추고

청풍은 온몸에서 피를 뿜으며 벌벌 떨고 있다.

권완; [출... 출혈이 너무 심해요! 이러다 잘못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청풍을 만지지는 못하고 발만 동동

공손대낭; [고정하세요 아가씨!]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고

공손대낭; [공공자는 꿈속에서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제 정(精)의 일부를 풀인 줄 알고 뜯어먹었어요!]

공손대낭; [제가 정을 나누어주어 혼백을 보호하고 있으니 심각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을 거예요.]

권완; [고마워요 대낭!] 눈시울을 닦고

공손대낭; [이제 저의 검법은 다 배우셨으니 몸이 익숙해지도록 연습만 하시면 되어요!] 말하며 옆의 벽을 향해 손을 쓸고

스스스! 벽의 일부가 커다란 거울로 변한다

공손대낭; [거울을 보면서 반복 연습을 하세요.] [서두르지 말고 동작 하나 하나를 주시해서 파탄이 일어나는 곳이 없는지 확인하세요!]

권완; [예!] 말하며 거울 속의 자기를 보고

이어 천천히 검을 휘둘러 검무를 추기 시작한다

곧 몰아지경에 들어가 검무를 추는 권완

공손대낭; (몰입이 정말 쉽고 빠른 아가씨야!) 그걸 보며 끄덕이고

공손대낭; (저런 자질이 천재들의 특성이기도 하겠지!) 돌아서고

서문숙에게로 간다

심력을 다해 글을 쓰고 있는 서문숙. 얼굴이 시체같다.

공손대낭; (막바지에 이르셨어!)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문숙이 앉은 좌대 앞에 서서 내려다 보고

공손대낭; (진보의 법기인 저 황금권(黃金券)이 완성되면 인간으로서의 진보의 여정도 끝이 나겠지!)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그때

<위대하신 제왕의 미욱한 신 서문숙은 오늘로 사람의 삶을 다하고 법기(法器)를 후인에게 물려 제왕의 뜻이 만세를 이어지도록 할 것입니다. 비록 신은 가나 신의 충성은 후인을 통하여 남을 것이며.......

-중략-

신 서문숙 이에 엎드려 제왕께 하직을 고하나이다.> 손가락을 휘저어 허공에 글을 쓰는 배경으로

스스스! 허공에 생겨난 한자들이 빈 책장에 내려앉고

두 손으로 책을 받쳐 드는 서문숙. 그러자

스스스! 책이 한 장 한 장 넘어가더니 그 속에 있는 글자들이 모두 책 밖으로 튀어나와 dna의 나선 구조처럼 꽈배기를 틀며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넘어간 책장들은 글자를 쏟아내고 나서는 한 장씩 한 장씩 사라져버린다.

긴장하며 보는 공손대낭

마지막 장까지 책이 넘겨지면서 글자들이 날아오르고 책장이 사라지며 이제 두툼한 책의 양쪽 표지만 남는다

탁! 책 표지를 두 손으로 합쳐 덮는 서문숙.

이어 책을 앞에 내려놓는다. 그러자

쏴아아아! 허공에 떠서 돌아가던 수많은 글자들이 황금색 빛을 뿌리는 가루로 변하더니 천천히 책의 표지로 내려와 스며든다.

잠시 후 모든 글자가 가루로 변해 책 표지에 스며들고. 오직 앞뒤의 두터운 표지만 남게 되었고, 표지들은 황금색으로 변했다.

긴 한숨을 쉬며 합장하는 서문숙.

공손대낭; [진보! 마침내 법기가 그대의 정(精)을 온전히 담아 완성되었군요.]

서문숙; [그렇소! 이제야...... 후인에게 전할 만한 법기가 된 듯하구려.] 억지로 웃고

공손대낭; [진보! 전 영원히 그 법기가 완성되지 않기를 바랐답니다.] 주르르 눈물

서문숙; [그대에게 이 늙고 상처 입은 몸을 주게 되었구려.] [그대는 내가 저 아이에게 술법을 전하는 대로 나의 신에 편승하여 승천하도록 하시오.]

공손대낭; [진보. 저는 천육백 년을 살았습니다.] [나무로서 사백 년을 살았고 정(精)이 되어 일천이백 년을 살았지요.] 울면서 죄대 앞에 무릎을 꿇고

공손대낭; [하지만 사람이 되어 그대와 단 하루라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그대를 만난 후부터 바라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승천을 하더라도 그대를 다시 볼 수 없다면, 그곳이 바로 저에겐 지옥입니다.] 좌대에 얼굴을 묻고 울고

서문숙; [나도 그대를 만난 후 내 자신이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되지 못함을 한탄했소.] 그런 공손대낭의 머리를 쓰다듬고

서문숙; [사월이면 그대가 꽃을 피우고 다른 은행나무의 가루를 받을 때면 내게는 오직 슬픔이 있었을 뿐이오!] [그대와 마주선 은행나무가 되지 못함에 하늘을 원망하며 슬퍼했소.]

공손대낭; [저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랍니다.] [봄이 되면 꽃을 피우지 않을 수 없고, 가루를 받으면 열매를 맺지 않을 수 없는 나무랍니다.]

공손대낭; [하지만 하늘이 허락하여 행여 사람으로 다시 날 수 있다면, 반드시 여자가 되어 오직 그대만을 따르다가 죽겠습니다.]

서문숙; [그대는 요정이지만 요정의 뒤를 알지 못하고 있구려.] 탄식

서문숙; [그대는 사람과 달라서 승천하지 못하면, 정은 천지간에 흩어지고 필생에 쌓았던 공덕도 그와 함께 흩어지게 되오.]

서문숙; [그대가 흩어지고 나면 우리가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겠소?] [우리가 우리의 약조대로 한다면, 몇 백의 세월이 지난 후에는 다시 볼 수 있을 거요.]

공손대낭; [진보!] 더 이상 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오열.

서문숙도 고개를 들어 천장을 주시하면서 손으로는 공손대낭의 머리를 쓸며 탄식하고

<七月七日長生殿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夜半無人私語時 인적 없는 깊은 밤에 둘이 서로 속삭이던 말

在天願作比翼鳥 원컨대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고

在地願爲連理枝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고져

天長地久有時盡 긴 하늘 오랜 땅도 다할 날이 있겠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내 슬픈 한은 끊일 때가 없으리...>

검무를 추는 권완과 그 옆에서 울고 있는 공손대낭과 서문숙의 모습 배경으로

 

#100>

구령의 집. 역시 저녁. 서쪽으로 해가 진다. 아직은 해가 서산에 걸린 건 아니고

구령과 함께 건물에서 나오는 공자무. 공자무는 상의 속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치료를 받은 모습이고. 구령은 허리에 가늘고 긴 검, 천궁을 차고 있다.

구령; [유모!] 정원으로 나서며 부르고

스슥! 검은 그림자가 번득하더니 유모가 나타난다.

유모; [아가씨! 불러계시옵니까?] 허리 숙이고

구령; [아이들 전부 모이라고 해!]

유모; [예!] 허리 숙이고

삐익!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날카롭게 불고

휙! 휙!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시녀들. 모두 무장을 했다. 모두 십여명

구령; [유모는 저애들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유모; [만마천으로 돌려보내실 작정이 아니신지요?] 안색 살피지만

구령; [모두 들어라!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날 것이다.]

시녀들 긴장하고

구령; [하지만 너희들을 데려가지 못한다.]

시녀들의 안색이 홱 변한다.

구령; [너희들도 이미 짐작했을 테지만... 나는 암흑철수를 잃었다.] [그로 인해 마도무림 전체와 적이 되어 버렸다.]

사색이 되는 시녀들. 구령을 보거나 서로의 얼굴을 본다. 겁에 질린 표정

구령; [마도에 속한 자들은 누구나 나를 죽이려고 할 것이다.] [물론 내가 천주라는 감투를 쓰고 있는 만마천도 예외는 아니다.]

시녀1; [마... 마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요?] 울먹이며 묻고

구령; [이곳엔 곧 적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들은 너희들을 죽이고 또 죽지 않은 사람은 사로잡아 겁탈하고 고문할 것이다.]

찡그리는 공자무.

사색이 되는 시녀들. 달달 떨고

구령; [나는 너희들이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 단호하게 말하고

공자무; [구령! 그 아이들을 위해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 말하는데. 그 직후

[마님! 만수무강하시옵소서!] [마신(魔神)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시녀들이 일제히 검이나 비수를 뽑아서

목을 찌르거나 가슴을 찔러 자결한다. 칼로 목을 돌리는 여자도 있고

공자무; [너희들....!] 다급히 외치지만

푸학! 털썩!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시녀들. 단번에 시녀들 전멸

공자무; [이.... 이런 무참한 일이...!] 안색이 굳어진다. 그때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리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구령. 그리고

슈우! 시녀들의 시체에서 검은 기운 같은 것들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나더니

슈하아악! 그 기운들이 구령의 몸으로 스며들어간다

구령의 옷과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몸이 칙칙한 빛을 발한다

공자무; (피와 죽음의 기운을 흡수하여 강해지는 혈사극마대법(血死極魔大法)!) 찡그리고

슈우! 그 사이에 아지랑이같은 기운들이 모두 구령의 몸으로 스며들어간다

구령; [잘 가라! 너희들의 육신은 죽었지만 혼백은 나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눈을 뜨며 팔을 내리고

구령; [이젠 안심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어요!] 공자무를 돌아보고

공자무; [옳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몸에 쌓이면 업보도 함께 쌓인다는 것을 모르느냐?]

구령; [죽음이라면 혈목재(血穆齊)에서 충분히 보았고 겪었어요!] [일곱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혈목재에 들어가 두 달후 처음 사람을 죽였으니까요!] 앞장 서서 건물 뒷족으로 걸어간다

구령;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를 손에 묻힌 그 순간부터 제 영혼에는 지워지지 않는 업보가 새겨졌어요!] [기왕의 업보에 몇 개의 죽음이 더해진들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앞쪽에 우물이 있다.

공자무; [혈목재가 네 삶을 망쳤구나!] 탄식

구령; [맞아요! 하지만 전 혈목재를 원망하지 않아요!] 우물을 에워싼 1미터 높이의 돌벽 위로 올라서고

구령; [그곳에서 일찍 죽음을 경험했고.... 죽음이 쌓여가는 만큼 저도 강해졌으니까요!] 돌벽 위에 서서 공자무를 돌아보며 웃고

휘익! 이어 우물 안으로 뛰어 든다

공자무도 한숨 쉬며 우물 안으로 뛰어든다

유모가 뒤를 살피며 마지막으로 뛰어들고

아래로 떨어지면서 손을 위로 뻗어 무엇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는 유모

우두두둑! 그러자 우물 상단의 벽이 우물 안쪽으로 끌어당겨지듯이 무너지고

콰드드! 이어 우물 주변의 흙들도 끌어당겨져서 우물이 있던 자리를 덮어버린다.

완전히 평지처럼 변해버리는 우물이 있던 자리

 

어둑하고 습기가 많은 지하도. 그 지하도롤 걸어가는 구령과 공자무와 유모

구령; [오라버니! 저와 함께 이만 리를 갈 수 있으시겠어요?]

구령; [우리가 이만 리를 죽지 않고 갈 수 있다면 죽는 것은 추적하는 자들입니다.]

공자무; [누구의 피든 피는 모두 붉다.] 한숨

구령; [맞아요! 하지만 내가 흘리지 않는 한 그 붉은 피는 내 피가 아니랍니다.]

구령; [살기 위해서는 누구라도 죽여야하는 게 강호의 삶이 아니겠어요?]

공자무; [너는... 목숨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구나!]

구령; [덕분에 저는 스무살도 안되어서 혈목재 서열일위가 될 수 있었답니다.]

찡그리는 공자무

구령; [아시겠지만 혈목재는 마도무림이 정파무림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연맹체에요!]

구령; [혈목재에서는 문파나 출신을 가리지 않고 뛰어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놓고 경쟁하게 만들어요.]

구령; [아이들 중에는 저처럼 만마천 출신도 있지만 마교(魔敎)나 마교에서 갈라져 나온 집마천(集魔天), 여러 군소문파 출신들이 다 섞여 있었어요.]

구령; [문파나 부모가 마도무림 출신이면 누구든지 차별 받지 않고 혈목재에서 마공을 배울 수 있었죠.]

구령; [하지만 혈목재에서는 운이 나빠도 죽고 실력이 나빠도 죽어요.] [다행히 저는 혈목재의 생리에 누구보다도 빨리 적응했어요.]

구령; [그와 함께 저의 운이 살인과 함께 강해진다는 것도 깨달았죠.] [우리같은 마인(魔人)들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통해 강해진다는 사실도....!]

구령;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 마인들의 힘은 자신이 죽인 죽음에 비례해 강해져요.]

구령; [<죽음이 너희를 강하게 하리라!> 이것이 제가 혈목재에 들어가서 처음 들은 말이에요!]

공자무; [마도에서 혈목재의 서열이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이유가 있었구나.]

구령; [힘께 생사를 경험한 사람들 사이에는 핏줄 보다 더 강한 유대가 생기니까요.]

구령; [물론 이제는 제가 혈목재 서열일위였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자조의 미소

구령; [오히려 저를 죽이면 혈목재 서열 일위가 될 수 있으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겠지요.]

공자무;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한다.] 따라가서 구령의 어깨를 감싸안고

공자무; [내 복연을 다 포기해서라도 너를 지켜줄 것이다!] 구령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그런 공자무의 가슴에 얼굴을 대는 구령

우울하게 한숨 쉬며 그런 두 사람을 보는 유모

<네가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잊지 마라 마고!> 철와선이 협박하던 장면 떠올린다

유모; (아가씨!)

유모; (죄송해요 아가씨! 쇤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답니다!) 울고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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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같은 시간 구령의 집.

침실의 침대에 누워있는 공자무. 상체를 벗었다.

구령이 약병을 들고 다가온다.

구령; [오라버니는 복연이 많아서 누구도 해치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오라버니를 누가 상처 입혔는지 모르겠군요.] 침대에 걸터앉고

공자무; [복연이 많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한숨

공자무; [여기까지 오는 도중에 수십번 자객들의 암습을 받았다.] [대부분 별 볼일 없는 자들이었지만...] [반나절 전에 습격한 자객들 중에 절정고수가 한 명 섞여있었다.] 공자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침대에 약을 늘어놓는 구령

공자무; [자객들 사이에 숨어있던 그자는 내 심장을 노리고 혈정(血釘)을 던졌으나 마지막 순간에 방향이 틀어져서 오른쪽 가슴에 박혔다.] 자기 가슴에 박힌 못들을 보고

구령; [혈정!] [역시 오라버니를 상처 입힌 자는 천사련(千邪聯)의 구천사(九天師) 중 한 명인 혈정(血釘) 만칠태(曼七颱)였군요.] 눈 빛내면서 공자무의 가슴에 박힌 못들을 살피고

공자무; [천사련은 사파무림의 태두....!] [암흑철수의 원주인인 만마천이야 그렇다 쳐도 천사련까지 나를 노리는 이유를 알 수 없구나!] 한숨 쉬는 공자무의 가슴에 박힌 못 들 위로 손 바닥을 펼치는 구령

구령; [제가 오라버니에게 암흑철수를 보냈다는 사실이 어디선가 천사련으로 새어나갔을 거예요.] 징! 공자무의 가슴 위에 댄 구령의 손이 빛을 발하고

구령; [만마천과 천사련은 피차 상대방 고위층에 간세(奸細;첩자)를 심어놓고 있어서 만마천이 알고 있는 첩보는 그 즉시 천사련에도 흘러들어가니까요.] 손바닥을 위로 끌어올리는 시늉을 하고. 그러자

쑤욱! 세 개의 못이 쭉 빨려나온다. 마치 자석에 빨려나오듯. 못들의 길이는 한뼘 정도다. 못과 함께 피가 뿜어지고

공자무; [만마천만으로도 벅찬데 천사련까지 상대하게 생겼구나.] 웃고

구령; [말씀하지 마세요! 출혈이 심해요!] 파파팟! 손가락으로 공자무의 가슴에 난 상처 주위를 찍는다.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던 피가 잦아들고

구령; [제가 오라버니에게 암흑철수를 보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나요?]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공자무; [집사람 외엔 아무도 모른다.]

구령; [진군소가 비록 밉상이긴 하지만 어리석은 계집은 아니니 말실수를 했을 리는 없고....!]

구령; [도대체 비밀이 어디서 새어나갔는지 모르겠군요.] 한숨

공자무; [짐작이 가는 자가 있긴 하다.]

구령; [그게 누구죠?]

공자무; [난릉왕!]

공자무의 상처를 치료하던 구령의 손이 멈칫

공자무; [지금으로부터 십구년전.... 그자가 내 집으로 쳐들어왔던 적이 있다.]

구령; [제가.... 막 만마천의 천주가 되어서 암흑철수를 오라버니에게 보냈던 때로군요!] 입술 깨물고

공자무; [술법이 뛰어난 자이니 내 집에 죽음과 암흑의 권능을 품고 있는 강력한 법기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겠지!] 한숨

공자무; [그래도 확신을 못하고 감시하고 있었을 텐데.... 천둥벌거숭이같은 막내 놈이 암흑철수를 훔쳐 달아나는 일이 벌어졌다.]

공자무; [이에 난릉왕은 사실 여부를 확인해볼 요량으로 암흑철수가 네게 없다는 사실을 만마천이나 천사련에 말을 흘렸을 것이다.]

공자무; [천사련에서는 혹시 내가 암흑철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습격했을 태고....!]

구령; [결국... 오늘의 사단은 제가 자초한 셈이로군요!]

구령; [만마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암흑철수마저 보내면 오라버니가 혹시나 마음을 돌이킬까하는 욕심에....!]

공자무; [자책할 것 없다. 난 너를 원망해본 적 없다.]

구령; [집으로 돌아가세요. 제 곁에 있으면 오라버니도 위험해져요.]

구령; [오라버니를 추격해온 살수들은 유모가 모두 죽였으니 당분간 추격은 없을 거예요.]

공자무; [넌 어찌 할 작정이냐?]

구령; [제가 비록 만마천의 천주라지만 그저 허울뿐이고 실권은 육천마(六天魔)가 쥐고 있어요.]

구령; [암흑철수를 갖고 있다면 육천마도 절 두려워하겠지만... 이제 곧 고수들을 보내 절 치려고 하겠지요.]

공자무; [그럼 이제 내가 암흑철수 대신 네게 주었던 그 물건을 꺼내야 할 때다.]

구령;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해요. 오라버니는 더 이상 마음 쓰지 마세요!] 시선을 피하며 일어나려 하고

공자무; [나는 너를 지키러 왔다.] 그런 구령의 손목을 잡고

바르르르 떠는 구령

공자무; [너와 함께 죽기 위해 왔다는 말이다.]

구령; [너무... 너무 늦었어요!] 고개 젓고

구령; [저는 더 이상 살 자신도 없고 살아가야할 이유도 찾지 못하겠어요.] 공자무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며 눈물 흘리고

공자무; [네게는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일어나고

공자무; [그래서 내 삶은 온전히 아내에게 바쳐야하지만... 죽을 때만큼은 너와함께 하겠다고 맹세했었다.] 침대에서 내려서고

공자무에게 등을 돌린 채 충격 받는 구령

공자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너와 함께 해주는 것!] [그것이 네가 내게 마음을 바친 대 대한 나의 유일한 보답이다!] 뒤에서 구령을 안고. 순간

[흐윽!] 돌아서며 공자무의 품에 얼굴을 묻고 오열하는 구령

구령; [왜... 왜 좀 더 빨리 그런 마음을 제게 밝혀주지 않으셨나요?] [그럼 제 삶이 지금처럼 황폐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공자무의 가슴에 얼굴 부비며 울고

공자무; [미안하다.] 우울하게 한숨 쉬는 공자무

공자무; [하지만 나는 마음을 나누어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 구령의 머리를 쓰다듬고

구령; (알아요! 그래서 전 당신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당신이 내 곁을 떠났을 때도 당신의 목숨, 당신의 죽음만큼은 진군소가 아닌 내 것이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답니다!> 부둥켜안은 두 사람의 모습 멀어지고

 

#98>

청풍의 꿈속. 저승같은 분위기의 음침한 하늘 아래에서 악전고투를 치르는 청풍. 생사일보를 펼쳐서 이리저리 휘어지고 늘어나며 역시 생사일보를 펼치는 수많은 자기 분신들과 싸우고 있다. 분신들은 어둡고 검고. 반면 청풍은 밝은 형태라 차이가 난다.

필사적으로 피하고 공격하는 청풍

악귀같이 사방에서 죽죽 늘어나며 공격해오는 분신들

청풍; (젠장맞을!)

청풍; (내가 이렇게 무공에 능숙했던가?) (원래 우리 철궁의 무공은 상대를 겁주기 위한 허장성세일 뿐 실속은 없는데....!)

청풍; (무궁팔식(無窮八式), 조화삼초(造化三招), 절대일검(絶代一劒)...!)

청풍; (이름들은 그럴 듯하고 보기에는 번듯하지만 수수깡으로 지은 집처럼 실제 위력은 없는 무공들이었다.)

청풍; (헌데 이놈들이 구사하는 철궁의 무공은 하나같이 경천동지할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무시무시한 검기를 뿜어내며 검을 휘두르는 분신들

청풍; (내가 펼치는 무공 역시 더 이상 허장성세가 아니지만....!) 더 강력한 검기를 뿜어내 공격들을 물리치고

하지만 워낙 적이 많아서 여기저기 상처를 입는다

청풍; (철궁의 무공뿐만이 아니다!)

청풍; (완이 권씨세가의 족보에 복원해놓은 무공들까지 쓰고 있다!) 장풍을 날리고 발길질을 해대는 분신들. 간발의 차이로 피하는 청풍

청풍; (거기다가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무공까지....!) 부악! 갈쿠리같이 휘어진 손으로 그어오는 분신 한놈

청풍; (물론 나도 쓸 줄 안다!) 쩡! 왼손으로 역시 갈쿠리같이 웅크린 손으로 반격하고. 서로의 공격이 충돌하며 폭발이 일고

폭발의 충격으로 몸이 으깨져서 튕겨져 날아가는 분신

청풍; (이건 아마 서문원수의 무공일 것이다!) 비틀하고

사방에서 얇은 칼날처럼 변해서 날아드는 분신들

청풍; [까불지들 마라 가짜들아!] 부악! 더 빠르고 강하게 생사일보를 펼치며 분신들을 휩쓸어 버리는 청풍.

모두 뎅뎅 뎅강 잘라져서 나뒹구는 분신들. 하지만

퍼퍽! 쩍! 청풍 역시 잘라진 분신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흔적에 몸의 여기저기가 스쳐서 갈라져 피가 치솟고

청풍; [큭!] 나뒹구는 청풍

털썩! 쿵! 잘라진 분신들의 몸뚱이들도 바닥에 나뒹굴고

스스스! 츠츠츠! 땅으로 녹아들어가면서 히죽 웃는 분신들

청풍; [니기미 조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이를 갈고

청풍;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고..... 이놈의 악몽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헉헉 대며 손으로 근처의 풀을 잡아뜯는다

꼬르르! 배에서 소리가 나고

청풍; [벌써 몇날 며칠을 싸운 것 같은데... 싸우다 죽는 것보다 먼저 배고파 뒈지시겠다!] 헉헉 대며 뜯은 풀을 입에 틀어넣는다. 그러다가 흠칫

슈욱! 츠츠츠! 사방에서 다시 솟아나는 분신들의 대가리

청풍; [하아!]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터트리고

슈욱! 그 사이에 수십명으로 늘어난 분신들이 완전히 땅 바닥에서 솟아난다

청풍; [오냐 오냐! 어디 끝까지 가보자!] 비틀대며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고. 입으로는 풀을 질겅질겅

청풍; [한꺼번에 덤벼 이 가짜들아!] 외치고

부악! 그런 청풍을 사방에서 새카맣게 달려드는 분신들

청풍; [크아!] 악을 쓰며 검을 휘두르고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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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아주 음침한 벌판. 먹장구름이 낮게 깔려 있고 바람도 스산하다. 마치 지옥의 한 부분 같은 을씨년스러운 풍경

청풍이 어리둥절해서 둘러보고 있다.

청풍; [여기가 어디지?] 갸웃

청풍; [극기마환신단인가 뭔가를 먹고 잠이 들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한 곳에 와있잖아!]

청풍;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중인가?] 자기 손등을 꼬집어본다

청풍; [아얏!] 비명 지르며 꼬집은 손을 놓고

청풍;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아픈 걸 보면 꿈은 아니야!]

청풍; [꿈이 아니라면 여긴 어디지? 난 또 어떻게 여기 와있게 된 걸까?] 생각하는데

[!] 오싹! 갑자기 오한이 들어 눈 부릅 청풍. 바로 뒤에 누군가 서서 어깨 너머에서 쌔액 웃고 있다. 입과 눈만 보인다

청풍; (누가 뒤에 있다!) 스팟! 벼락같이 생사일보를 펼쳐서 앞으로 나갔다가 돌아선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쿵! 청풍의 앞에는 아무도 없다

청풍; [분명 바로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었는데....!] 당혹

청풍; [너무 과로해서 기가 허해졌나?] 머리 긁적이며 돌아서고

쿵! 헌데 바로 앞에 또 한 명의 청풍이 씨익 웃고 있다. 검은 옷을 입었고 틀린 점은 인상이 아주 사악하다는 점이다. 눈꼬리도 치켜 올라갔고. 하지만 분명 청풍 자신이다. 이놈은 청풍의 또 다른 자아. 이하 분신으로 표기

청풍; [헉!] 팟! 뒤로 물러서고

청풍; [너 이 자식! 언제 거기에....!] 삿대질 하려다가 입 딱

다시 한 번 분신의 얼굴을 보여주고

청풍; [너.... 너.....!] 버벅 대다가

청풍; [바로 나잖아!] 고함 빽 지른다. 순간

분신; [흐흐흐!] 창!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잡아뽑는다.

청풍; [야 이 기막히게 잘 생긴 자식아!] [넌 누군데 본 공자의 잘 생긴 얼굴을 무단도용....!] 외치며 허리춤에 찬 검을 뽑으려다가 멈칫

청풍; (어라! 내가 언제 검을 차고 있었지?) 생각하는데

슈칵! 벼락같이 검을 찔러오는 분신

청풍; [이크!] 차창! 다급히 검을 뽑아서 분신의 공격을 받아낸다

현란하게 이어지는 분신의 공격

창! 차차창! 물러서며 분신의 공격을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청풍

청풍; (이 자식!) 비지땀을 흘리고

청풍; (얼굴만 비슷한 게 아니라 무공도 다 내가 아는 걸로 공격해오잖아!) 필사적으로 방어를 하고

청풍; (문제는... 내가 알기만 하는 무공도 능숙하게 펼친다는 사실이다!)

청풍; (이러다가 죽는 수가 있다! 비장의 한 수를 펼쳐서 반격하자!) 부악! 몸이 얇아지며 뒤로 휙 날아가고. 생사일보다. 하지만

슈학!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분신. 역시 생사일보를 써서 따라온다

[!] 확 다가오는 얇아진 분신을 보며 눈 부릅 청풍

청풍; [젠장할! 생사일보까지 알다니...!] 사력을 다해 피하지만

퍽! 생사일보를 펼치며 따라붙은 분신이 내지른 검이 청풍의 어깨를 관통한다. 눈 부릅 청풍

 

#94>

한 낮. 거대한 은행나무

은행나무 아래의 밀실에서 공손대낭과 함께 짝을 이루어 검무를 추는 권완. 공손대낭과 나란히 서서 옆으로 곁눈질을 하며 마치 싱크로수영을 하듯이 춘다. 공손대낭은 검을 쓰고 권완은 곤오용봉채를 쓴다.

한쪽 침대에는 청풍이 누워있고.

좌대에 앉은 서문숙은 손가락으로 허공에 휘저어 책에 글을 쓰고 있다. 헌데

[컥!] 잠들어있던 청풍의 몸이 세차게 퍼덕이고

푸학! 어깨에서 피가 뿜어진다

권완; [악!] 그걸 보고 비명 지르고. 공손대낭도 흠칫하는데

서문숙도 고개를 들고

침대에 누워 벌벌 떠는 청풍. 푸식! 츄우! 어깨에서 피가 뿜어진다

권완; [공자!] 달려가는데

서문숙; [건드리지 마라!] 급히 외치고

청풍을 끌어안으려던 권완 흠칫 멈춰서고

권완; [노... 노야! 이 사람 몸에 왜 갑자기 상처가 난 거죠?] 서문숙을 돌아보고

서문숙; [꿈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권완; [극... 극기마환신단으로 만들어진 환각 속에서 패하면 실제로 상처가 난단 말인가요?]

서문숙; [자신의 몸이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다.]

권완; [이... 이러다가 혹시 잘못 되는 건 아닌지요?] 청풍을 건드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서문숙; [그 사이에 정이 많이 든 모양이구나.] 그런 권완을 보고 웃고

권완; [저를 위해 손가락을 뽑고 평생 보살피겠다는 맹세를 한 장부(丈夫)입니다.]

권완; [소녀 아직 어리지만 마음을 의탁할 장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는 들어 알고 있습니다.]

서문숙; [권가주는 복이 많구나. 너 같은 재녀를 딸로 두었을 뿐 아니라 철골장부(鐵骨丈夫)를 반자(半子:사위)로 얻게 되었으니....]

수줍어하는 권완

서문숙; [어쨌거나 안심해도 된다.] [그 아이는 난릉왕의 술법도 간단히 깨뜨린 괴물이다. 고초를 겪기는 하겠지만 실패하진 않을 것이다.]

권완; [그렇게 말씀하시니 다행이옵니다만...!]

서문숙; [그 아이는 생각이 완고하고 통제가 불가능한 것 같더니 너는 벌써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는 것 같더구나.]

서문숙; [그 아이가 장차 큰일을 이룬다면 그건 오로지 네가 곁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권완의 얼굴을 더 붉어지고.

공손대낭; [진보! 이 아가씨는 대단히 총명합니다.]

공손대낭; [벌써 천강삼십육초(天罡三十六抄)와 지살칠십이초(地煞七十二抄) 중 아홉 초식만을 남겨 놓고 다 배웠답니다.]

서문숙; [허허! 정말 총명하구나. 범인이라면 천강삼십육초 한 가지만 배우는데도 평생이 걸릴 터인데....!]

권완; [기억력이 조금 좋아 그저 보는 대로 흉내낼 수 있을 뿐입니다.]

서문숙;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대단한 능력인 것이다.]

공손대낭; [실제로 이 아가씨는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판박이처럼 재현해내는 능력이 있답니다.]

서문숙; [무림을 위해선 다행한 일이고 홍복(洪福)이지!] 끄덕

서문숙; [시간이 많지 않으니 나머지도 가르치고 배우도록 하게!] 다시 손가락으로 책 위의 허공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손가락을 젓는 대로 글이 생겨나 책 속으로 스며들고

권완은 걱정하는 눈으로 청풍을 보면서도 다시 공손대낭에게 다가가고

권완; (아무쪼록 힘내세요!) 청풍에게

권완; (노야 말씀대로 스스로를 이기고 깨어나면 당신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을 거예요!) 다시 공손대낭과 마주 서서 검법을 펼치기 시작하고

 

#95>

다시 청풍의 환각 속. 분신이 내지른 검에 어깨가 관통당한 청풍. 얼굴이 고통으로 이지러져 있고. 검을 떨어트렸다.

검을 내지른 채 사악하게 웃는 분신. 하지만

청풍; [크아!] 어깨가 검에 관통당한 것은 무시하고 앞으로 확 달려들며 오른손으로 분신의 이마를 움켜잡는 청풍. 왼손으로는 어깨를 잡고

그대로 분신의 목을 돌려버리는 청풍

목이 부러져서 죽는 분신.

청풍; [*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분신을 집어던지고

청풍; [날 빡 돌게 하면 골로 간다는 걸 알아야지!] 어깨를 관통한 검을 잡아뽑고

그러다가 흠칫

스스스! 바닥에 던져진 분신이 녹듯이 바닥으로 스며들고 있다

청풍; [시... 시체가 바닥으로 녹아들어가잖아!] 놀라고

청풍; [젠장할! 대체 여긴 뭐 하는 동네야?] 이를 부득 갈고

[!] 그러다가 눈 부릅 청풍. 슈욱! 뒤에 누군가 있다

청풍; [설마!] 홱 돌아서고

쿵! 앞쪽에 다시 사악하게 웃고 있는 분신. 한 놈이 아니고 두 놈이다.

청풍; [하하하하! 이거야 원....!] 억지로 웃고

청풍; [네놈들! 이 지랄 맞을 공간에서는 불사신이라 이거냐?]

청풍; [오냐! 어디 얼마나 잘난 놈인지 놀아보자!] 퉤! 침을 뱉고

슈악! 그런 청풍을 향해 유령처럼 달려들며 검을 휘두르는 분신들

청풍; [크아!] 마주 달려가며 검을 휘두르는 청풍

파캉! 서로의 검이 부딪히며 불꽃을 튀긴다

 

#96>

한낮. 구령의 집. 검을 찬 시녀들이 집 주변을 순찰하고 있다. 모두 긴장한 모습

구령의 집 근처의 숲.

숲속을 소리없이 움직여 구령의 집으로 다가오는 십여명의 복면인들. 하지만

슈욱! 유령같은 그림자가 스치자 저항도 못하고 죽는다.

스스스! 쓰러지는 자객들 옆으로 나타나는 구령의 유모

유모; [버러지같은 것들!] 냉소하고

유모; [살수 나부랭이들이 주제를 모르고 감히 어딜 기웃거려?] 냉소하며 돌아선다. 헌데

<흐흐흐! 솜씨가 더 매워졌군 마고!> 갑자기 어디선가 음성이 들리고. 눈 부릅 유모

<젊어지기도 했고... 천주의 곁에 머물면서 천주가 내뿜는 마기를 숨을 쉰 덕분이냐?> 다시 들리는 음성

유모; (개... 개구리가 우는 듯한 음성! 설마!) 긴장하며 물러서고. 그때

쿠쿠쿠! 갑자기 땅이 구렁이가 기어오는 것처럼 이리 저리 휘어지며 유모 앞으로 일어난다. 긴장하며 급히 물러서는 유모. 직후

콰드드! 땅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괴인. 두꺼비 인간이다. 아주 흉측한 모습이고

유모; (혈목재 서열오위 철와선(鐵蛙蟬)!) 공포에 질리고. 그때

철와선; [흐흐흐! 간덩이가 부었군! 감히 종년 따위가 혈목십성(血穆十聖)의 강림을 접하고도 뻣뻣하게 서있다니....!] 긴 혀를 내밀어 콧잔등을 핥으며 웃고.

충격받는 유모. 다음 순간

유모; [천비 마고가 존귀하신 철와선 님을 뵈옵니다!] 한 무릎 꿇으며 포권하고

철와선; [크크크! 당연히 그래야지!] [마도무림에 속한 인간은 마도의 연맹체인 혈목재의 서열에 굴복하는 것이 숙명!]

철와선; [하지만 기왕에 지은 죄를 사함 받으려면 네가 알고 있는 걸 숨김없이 고해야할 것이다 마고!]

[!] 절망하는 마고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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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낮. 산 속의 장원. 아담하다. 사람들이 기척이 없고

[호호호호!] 장원의 뒤쪽 잘 가꿔진 정원의 울창한 꽃나무 그늘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서 온 몸을 흔들면서 요란하게 웃고 있는 여자. 만마천의 천주인 마서시 구령이다. 마도무림의 하늘인 만마천은 육천마라는 여섯 명의 늙은 마두들이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천주인 구령은 명목상의 천주다. 30대 초반으로 보이지만 실제 나이는 마흔살을 넘겼다. 여전히 젊고 절세미녀. 하지만 아주 차가운 인상이고 몸도 병약해 보인다. 잘 벼린 칼날같은 인상. 공자무를 짝사랑했다.

[호호호호!]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을 보며 미친년처럼 웃고 있는 구령. 주변에는 십칠팔세쯤 되어 보이는 어린 시녀 두 명. 검을 차고 있다. 한 명은 늘씬하고 한 명은 통통하다.

[콜록! 콜록!] 웃다가 지쳐 몸을 숙이고 거칠게 기침을 하는 구령

[마님!] 놀라서 구령을 부축하는 늘씬한 체격의 시녀1.

구령; [독한 사람! 냉정한 사람!] [꽃 같은 시절을 홀로 보내게 해놓고 이제야 찾아온다니....] 이를 바득 바득 갈고

구령; [시들고 병든 날 찾아와서 뭘 하려고?] [진군소 그년과 알콩달콩 살아온 날을 자랑하려고?] 콜록 콜록! 거칠게 기침을 하고

시녀1; [마님! 제발 그만 안으로 드세요, 네?] 구령을 부축하면서 안타깝게.

시녀1; [바깥 공기는 마님께 좋지 않다고 의원도 말하지 않았는지요?]

구령; [의원들 따위가 뭘 안다고! 그것들 말 믿을 것 없어!] 시녀의 손을 뿌리치고

구령; [거울!] 손 내밀고

시녀2; [예 마님!] 통통한 시녀가 작은 손거울을 내민다.

시녀1은 화장품이 들어있는 작은 합을 두 개 꺼내 들고.

구령; [너무 하얘! 이런 얼굴을 그 사람에게 보이면 안돼!] 거울로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보고

구령; [내가 속병을 알았다는 걸 진군소 그년이 알게 할 수는 없어!] 시녀1이 내민 화장품 합 중에서 손가락에 끼는 볼 터치 패드를 집어들고

구령; [진가년이 좋아죽는 꼴은 절대 못 봐!] 볼에 패드를 톡톡 쳐서 윤기가 돌게 만들고

구령; [아무렴. 그렇고 말고!] 입술 연지도 손가락으로 찍어서 입술에 바르고. 그때

정원을 장원의 다른 곳과 구분 짓는 높은 담장에 뚫린 월동문으로 머리는 하얗게 세었지만 얼굴은 사십대처럼 젊게 보이는 노파가 걸어온다. 좀 후덕한 몸을 지녔지만 표정은 차갑고 살벌하다. 이 노파는 구령의 유모이면서 무서운 고수다.

유모; [아가씨! 그만 쉬셔야 해요. 무리하지 마세요!] 한숨

구령; [유모! 나 아직 이뻐?] 여전히 화장하며

유모; [그럼요. 아가씨는 아름다워요.]

구령; [정말?] 환하게 웃으며 유모를 보고

유모; [마서시(魔西施)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괜히 붙었겠어요? 아가씨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답니다.] 말하며 구령의 손에서 거울을 뺐고

구령; [들었어 유모? 그 사람이 오고 있대.] 거울을 빼앗기면서도 발그레 웃고

구령; [내가 여전히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걸 거야. 그렇지?] 유모를 올려다보며 말하지만

유모는 한숨만 쉬며 거울을 시녀2에게 준다. 그러자.

구령; [유모! 사실은 내가 이제는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 울상을 짓고

유모; [아니에요! 아가씨가 천하제일미인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구령의 머리 쓰다듬고

구령; [아니야! 나도 알아! 난... 난 더 이상 예쁘지 않아!] 어린애처럼 울고

구령; [마흔살도 넘은 년을 누가 예쁘게 봐주겠어?] [난.... 난 이제 너무 늙었어! 누가 봐도 전혀 예쁘지 않을 거야!] 얼굴을 손으로 갈며 펑펑 울고

유모; [진정하세요! 이제 그만 약을 드시고 쉬어야만 해요.] 구령을 두 팔로 안아들고. 키가 크지만 가녀린 구령의 몸이 가쁜하게 들린다

유모; [한숨 푹 자고 나서 그를 만나세요. 자고나면 훨씬 아름다워져 있을 거예요.] 구령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여전히 질질 짜고 있는 구령

유모; [아가씨가 쉬시는 동안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라!] 시녀들에게 말하고

[예 파파!] 대답하는 시녀들

훌쩍이는 구령을 안고 건물로 가는 유모

시녀들은 뒤돌아보며 월동문 쪽으로 가고

건물로 들어서는 유모

구령; [유모....] 울음 그치며 입을 열고

유모; [말씀 하세요 아가씨.] 침실로 들어서고

구령; [그가... 그가 또 날 때리지는 않을까? 전에도 툭하면 때렸는데......] 겁먹은 얼굴

유모; [그는 무례한 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감히 아가씨께 그런 짓을 못할 겁니다.] 침대로 가고

유모; [마도무림의 하늘 만마천(萬魔天)의 천주이신 아가씨에게 누가 감히 손찌검을 할 수 있겠어요?] 침대에 구령을 내려놓고

구령; [그렇지?] 반색하고

구령; [호호호! 그 사람도 이젠 날 때리지 않을 거야.] 좋아하며 웃는다.

구령; [나같이 예쁜 여자를 누가 때릴 수 있겠어?] 말하면서 눈을 감고

이내 잠이 든다

한숨 쉬며 침대에 걸터앉아 그런 구령의 머리를 쓰다듬는 유모

유모; [공자무! 박정하고도 박정한 인간!] 이를 바득 갈고

유모; [이십오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찾아와서 뭘 어쩌자는 거냐?]

유모; [꿈 많던 소녀의 가슴에 못을 박아 기억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놓은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보상하려고!]

유모; [아가씨는 널 용서하실지 모르나 나 마고(魔姑)는 결코 용서할 수 없다!] 이를 바득 갈 때

시녀2; [파파! 큰일 났어요!] 헐레벌떡이며 달려들어온다

유모; <조용히 해라! 아가씨께서 막 잠이 드셨다!> 노려보며 전음으로 말하고

시녀2; [그... 그게....] 겁에 질려 급히 손으로 입을 막고

시녀2; <공..... 공대인께서 예정보다 빨리 도착하셨어요. 막무가내로 들이닥쳐서 소녀들로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입을 막은 채 역시 전음으로 말하고

유모; <그 작자가 감히!> 분노하며 벌떡 일어나고

시녀2; <빨리 마님을 다른 곳으로 모셔야하지 않을런지요?> 잠이 든 구령을 곁눈질

유모; <그럴 것 없다! 내 손으로 처리하겠다!>

유모; <공자무! 네가 기어코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나.> 이를 갈며 문으로 가고. 그때

[더 이상은 안돼요!] [멈춰요!] 밖에서 소란이 일고. 이어

[구령(瞿玲)! 어디 있느냐? 나 공자무가 왔다.] 우렁찬 소리가 들린다. 순간

번쩍! 잠이 들었던 구령의 눈이 치떠지고

아차 하며 돌아보는 유모와 시녀2

구령; [공오라버니!] 벌떡 일어나고

구령; [오라버니가 오셨군요!] 반색하며 침대에서 내려선다

유모; [아가씨! 무리하지 마세요! 제가 그자를 처리하겠습니다!] 급히 막으려 하지만

구령; [비켜!] 도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며 밖으로 나간다. 어쩔 수 없이 비켜서는 유모

건물 밖으로 나서는 구령. 그때

[멈춰요!] [더 이상 들어올 수 없어요!] 검을 빼든 시녀1과 몇 명의 시녀들이 뒷걸음질치며 월동문으로 들어오고. 시녀들을 양 몰 듯이 몰며 성큼 성큼 걸어들어오는 공자무.

공자무; [구령!] 건물을 나서는 구령을 발견하며 손을 젓고. 그러자

[아!] [흑!] 보이지 않는 힘에 좌우로 흩어지는 시녀들

공자무; [역시 여기 있었구나 구령!] 성큼 성큼 걸어오고. 건물 앞에 서서 그런 공자무를 노려보는 구령

구령의 뇌리에 떠오르는 장면들. 아직 십대 소녀일 때 이십대중반이던 공자무와 즐겁게 산책하던 장면. 공자무가 두 팔로 자신을 안고 빙글 빙글 돌던 장면. 공자무가 자신의 뺨에 뽀뽀를 해주던 장면 등등

구령의 주먹 바르르. 입술 깨물고

뭐라 말하며 앞으로 다가오는 공자무.

그런 공자무의 뒤로 젊은 시절의 진군소가 오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깔아보던 모습이 부각 되고. 순간

구령; [유모! 저 자를 죽여버려!] 손으로 공자무를 가리키며 바락 고함을 지른다. 온몸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터져나오고. 순간

유모; [존명!] 팟! 외치며 날아오르고

유모; [죽어라!] 부악! 허공에서 공자무를 덮쳐가며 강력한 장풍을 날린다. 하지만

눈 부릅뜨고 유모를 노려보는 공자무

[!] 허공에 뜬 채 장풍을 날린 자세로 충격 받는 유모. 직후

부악! 날아가던 장풍이 옆으로 휘어진다

펑! 옆쪽으로 휘어져 정원의 나무와 바위들을 박살내는 유모의 장풍

유모; (장력이 제멋대로 방향을 틀다니....) 휘릭! 놀라며 몸을 허공에서 뒤집고

시녀들도 놀라고

유모; (호신공부 때문이 아니라 저자가 지닌 이력(異力)일 일으키는 현상이다!) 휘릭! 다시 구령 앞으로 내려서고

공자무; [구령. 안색이 안 좋구나.] 탄식하며 다가서고

구령; [유모! 뭘 하고 있어? 그를 죽이라니까!] 이를 악물며 외치고

유모; [예 아가씨!] 대답하며 소매 속에서 뭔가를 꺼낸다. 한 줄기의 시냇물이 그녀의 손에서 대리석 바닥까지 드리워진 것 같다. 물처럼 투명한 색깔의 아주 가는 실로 만들어진 그물이다.

유모; [공공자! 노신을 다시 보게 되면 반드시 죽일 거라고 했었소.] 그물을 들고 앞으로 나서고. 하지만 공자무는 그러거나 말거나 구령만 보며 다가온다

공자무; [어찌하여 몸을 돌보지 않은 것이냐? 무엇이 네게 이리도 깊은 상처를 준 것이냐?] 탄식하며 구령에게 다가오고

유모; [경고는 했소!] 촥! 외치며 그물을 휘두르고. 순간

하늘에서 거대한 물방울같은 그물이 공자무를 덮어씌워온다. 노파가 던진 그물이다. 직경 10미터가 넘어 피할 수가 없다

<끝났어!> <물의 정으로 이루어진 은하살망(銀河撒網)은 무엇으로도 쳐내지 못해!> 시녀들 주먹 불끈 쥐고. 하지만

슈욱! 공자무의 몸이 얇은 종이처럼 변해서 유모의 옆을 지나간다. 몸이 길게 늘어나는 모습. 바로 생사일보다.

풀썩! 그물은 헛되이 바닥에 떨어지고. 물론 그물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 [!] 시녀와 유모가 놀라 눈 부릅

유모; (이런 신법이....!) 경악하며 급히 돌아본다

그때는 이미 공자무가 구령 앞에 서있다.

유모; [감히!] 이를 갈며 다시 그물을 던지려 하지만

구령 앞으로 바짝 다가서서 마주 선 공자무

구령은 필사적으로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 반짝 쳐들고 공자무를 올려다보고

공자무; [꽃같이 곱던 얼굴이 어쩌다가...] 탄식하며 손으로 구령의 뺨을 만지고

구령; <몰라서 물어요? 당신! 당신의 박정함이 날 이렇게 병들고 시들게 만들었잖아요!> 이를 악물지만 말이 안 나온다. 억울해서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모습이고

유모; [아가씨. 지금 그 자를 죽이지 않으면 영영 죽일 수가 없습니다.] 뒤에서 그물을 움켜쥔 채 외치고. 하지만

공자무; [유모! 그만둬!] 한숨 쉬며 조금 물러서서 공자무의 손이 뺨에서 떨어지게 하고

움찔 유모

권완; [어쨌건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야. 모두들 나가 봐!] 시선은 여전히 공자무를 올려다 본다. 촉촉이 젖은 눈길

유모; [예....!] 내키지 않지만 고개 숙이고

이어 시녀들을 거느리고 정원을 가로질러가는 유모. 시녀들도 뒤를 돌아보며 따라가고.

유모; (정이란 게 뭔지....) (그렇게 미워하다가도 막상 다시 보니 순식간에 옛 정이 되살아나신 것인가?) 입술 깨물며 한숨

유모와 시녀들 모두 사라지고 장내에는 공자무와 구령만 남고

구령; [무슨 일로... 무슨 일로 절 찾아오셨나요?] 기대에 차서 올려다보지만

공자무;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대답을 피하고

공자무;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어린 소녀였었는데 어느덧 완숙한 숙녀가 되었고...!] 다시 구령의 뺨을 만지며 감회에 잠기고

구령; [벌써 이십오 년이 지났답니다. 그동안 오라버니도 많이 늙으셨네요.] 억지로 웃고

공자무; [늙었지. 살 수 있는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지 않을 정도로...!] 끄덕

구령; [들어오세요.] 돌아서고

구령; [먼 길 오셨는데 잠시라도 쉬셔야죠.] 안으로 들어가고. 따라들어가는 공자무

 

잠시후. 탁자에 마주 앉은 두 사람. 구령이 공자무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주고 있다. 손이 떨린다.

구령; [오라버니 눈엔 여전히 제가 어린아이로 보일 테죠?] 달달 떨며 차를 따르고

공자무;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는 법이다.]

구령; [하지만 저는 변했어요.] [옛날처럼 건강하지도 않고 행복하지도 않아요!] 자조

구령; [오라버니와 헤어진 후 미친 듯이 무공에 매달려 혈목재(血穆齊) 서열 일위에 오르고 만마천의 천주라는 감투까지 썼지만 행복은 제게 먼 세상의 것이었어요!] 차를 따르는 것을 마치고

공자무; [너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병이 깊구나.] 그런 구령을 유심히 보고

구령; [사랑이란 병이 마음에 들고나니 어떤 약으로도 고칠 수가 없더군요.] [오라버니가 준 독한 병은 달콤한 꿀 같아서 거부할 수도 없었죠.] 차 주전자를 내려놓고

공자무; [사랑이라....] 우울

공자무; [너는 이십오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철 없던 시절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냐?]

공자무; [현실을 외면하고 그 망령에 너를 맡기고 그 지경이 되었단 말이냐?]

구령; [오라버니는 총명한 대장부라서 세상의 바른 것만 기쁨으로 아시겠지요.]

구령; [하지만 저는 광포한 마도(魔道)에 속한 사람이라 오라버니가 모르는 기쁨도 알고 있답니다.] 싸늘하게 웃고

구령; [남을 속여서 그로 하여금 믿게 하는 큰 기쁨을 오라버니는 모르시겠지요.] [음모를 꾸며 상대방을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하거나 죽어가게 할 때 느끼는 쾌감도 아마 모르실 거예요.] 광기에 젖어 말하고

구령; [더구나 상대방이 내가 그랬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때는 더욱 짜릿해지지요.] [너무 짜릿해서 상대방에게 알려주고 싶을 정도죠.]

공자무; [아무런 이문도 없는 장사를 좋아하는구나.] 한숨 쉬며 찻잔을 들고

구령; [하지만 이런 것들에 비할 수 없이 큰 기쁨이 있답니다.]

구령; [바로 자기 파괴의 기쁨이지요.] 배시시 웃고

[!] 차를 마시려다가 눈 부릅 굳어지는 공자무.

구령; [누군가를 원망하며 나를 파괴할 때, 이 극렬한 기쁨은......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가 없답니다.] 호호호! 광기에 사로 잡혀서 웃고

구령; [그것은 잠든 오라버니 몰래 입을 맞췄던 그 떨림보다도, 오라버니를 상상하며 가졌던 은밀한 흥분보다도 더 강렬한 기쁨이랍니다.] 마녀처럼 웃는다

쨍그랑! 공자무는 손에 들었던 찻잔을 떨어뜨린다.

공자무; [구령! 너는...... 너는 그래선 안 된다.] 연민

구령; [남이 만류하면 할수록 이 기쁨은 더 커진답니다.] 자기 앞의 빈 찻잔을 집어들고

구령; [결국은 자기도 멈출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 찻잔을 다시 공자무 앞에 놓고

구령; [우사독상심(憂思獨傷心)!] [저는 오라버니가 떠난 후 이 한 구절을 되새기고 되새기다가 그 말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답니다.] 다시 차를 따라준다

구령; [시름으로 홀로 타는 마음! 그것이 주는 기쁨마저 없었다면 제가 무엇으로 살 수 있었겠어요.] 차 따르는 걸 멈추며 싸늘하게 웃고

공자무; [네가... 네가....!] 안색이 굳어져서 말을 잇지 못하고

구령; [오라버니는 제게 죽음에 이르는 병을 주고 갔지만, 저는 <우사독상심> 이 한 구절을 의지해 지금까지 살아왔답니다.] 차 주전자를 내려놓고

구령; [이제 오라버니의 놀라고 당황하는 모습이 제게 또 다른 기쁨과 위안이 되는군요.] 깔깔 웃고. 순간

공자무; [그만해라!] 손을 쓸어서 앞에 놓인 찻잔을 옆으로 날려버리고

쨍그랑! 바닥에 떨어져 박살 나는 찻잔

공자무; [너는 정말 소중한 게 아무것도 없더란 말이냐?] 구령을 노려보고. 순간

구령; [오라버니와 지냈던 그 짧은 순간보다 더 중요한 게 제게 어디 있겠어요?] 갑자기 정색을 한다. 자세도 단정히 하고

공자무; [어리석은 것!] [내 마음엔들 왜 네가 없었겠느냐?] 준엄하게 호통을 치고

공자무; [네가 어린 것이 문제였다면 십 년 아니라 수십 년이라도 기다릴 수 있었다.]

공자무; [네가 마도(魔道)에 속한 것이 문제였다면 내 무공을 버리거나 마도를 버리게 하고서라도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을 것이다.]

공자무; [그럼에도 내가 너를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이유 때문에 내 마음에서는 너에 대한 애정이 싹틀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구령; [오라버니는...... 오라버니는 진군소, 왈패 같은 년을 사랑했던 게 아닌가요?] 안색이 창백해져서 울려 하고

공자무; [함부로 말하지 마라!] [네가 그렇게 부를 사람이 아니다!] 손을 칼날처럼 반들어 끊는 시늉하며 엄숙하게

구령; [오라버니!] 어깨가 떨리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고. 필사적으로 분을 참는 표정

공자무; [이십 여 성상(星霜) 동안 고락을 함께한 내 아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숙하게 말을 잇고

공자무; [정으로 말하면 바닷물이 마르기 전에는 다하지 않을 것이고, 서로의 존경으로 따지자면 해가 뜨는 것만큼이나 변함없을 것이다.]

구령; [역시 그년을 사랑했군요. 나보다도 그년을 더 사랑했군요.] 이를 바득 바득 간다

구령; [난 그년을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구령; [창피도 모르는 년이 우리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어......] + [악!] 짝! 공자무의 손이 뺨을 후려쳤다. 얼굴에 손 자욱이 생기며 고개가 홱 돌아가는 구령

구령; [오... 오라버니!] 억울하고 분한 표정으로 눈물 글썽이며 공자무를 본다. 손으로 뺨을 만지며

공자무;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너의 이런 점 때문이었다.] 노려보고

공자무; [너를 사랑하게 되면 내 자신마저 태워버릴까 두려워 나는 너를 사랑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분하고 억울해서 달달 떨며 뺨을 손으로 만지는 구령. 눈물이 주르르

공자무; [애정은 젊은이들의 일이다.] [그리고 내 나이는 이미 쉰을 넘겼다.] 한숨

공자무; [사람이 그 나이에 맞는 일을 하지 않으면 추한 법이다.] 타이르지만

구령은 이를 바득 바득 갈며 울고

공자무; [마음을 가라앉혀라. 우리는 해야 할 일이 있다.] 한숨 쉬고

구령이 말없이 일어서더니 휘청이며 벽을 향해 걸어간다.

벽에는 서양의 펜싱 비슷한 검이 한 자루 걸려있다. 엄지 손가락 정도 넓이의 폭이 가늘고 긴 검이다.

그 검을 집어드는 구령

싸악! 칼집에서 흰 무지개가 피어오르는가 했는데 어느새 구령의 손에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가늘고 긴 장검이 들려 있었다. 검날이 낭창 낭청 댄다.

구령; [오라버니! 이십오년전 그날 당신을 죽였어야 했어요.] 검을 들고 다가서고.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구령; [날 버리신 그날 당신을 죽였더라면...... 난 미쳤겠지만 그래도 행복했을 거예요.]

구령; [마존지검(魔尊之劒) 천궁(天弓;무지개)으로...... 오라버니의 심장을 쏘겠어요.] 검을 공자무의 심장에 댄다.

공자무; [천궁으론 부족하다.] [이제 내가 네게 맡겼던 그 물건을 꺼내야 할 때다.] 엄숙하게 말하고

[!] 구령이 충격을 받아 눈을 부릅뜨고

공자무; [암흑철수를 노리는 자들이 있다.] 말을 하면서 윗옷을 쫙 찢는다.

쿵! 드러난 공자무의 오른쪽 가슴에는 세 개의 못이 삼각형을 이루며 박혀 있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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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숙; [대낭! 내가 죽으러 왔는데 그대를 해하려 했을 리가 있겠소?] [하늘의 뜻은 정녕 종잡을 수 없구려.] 천장에 대고 말하는데

청풍; [노야!] 그런 서문숙을 꾸짖고

청풍; [원래 없는 것을 헛것이라 부르는 게 아니라 있더라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을 헛것이라 부르는 법입니다.] 엄숙하게 말하고. 눈빛이 아주 강하고 몸에서 기운이 넘실 거린다

서문숙; [네.... 네놈....!] 분노하고 놀라 사색이 되고.

권완도 청풍의 기도에 두려움을 느끼고 청풍에게서 떨어지며 일어난다

청풍; [그런 헛것과 교통하고 정을 주고받는 사람은 바른 길을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손을 칼처럼 만들어 그으며 고함을 치고. 순간

드드드! 방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린다. 그리고

<아아악!> 방 바깥에서 들리는 여자의 비명소리.

서문숙; [대낭! 괜잖소?] 천장을 향해 다급히 외치고. 하지만

청풍; [헛된 것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마음을 바로 세우고 단호히 눈앞의 것만을 보아야만 합니다.] 눈을 부라리고. 부악! 엄청난 기운이 청풍의 몸에서 터져나가고.

[큭!] 숨이 막혀서 가슴을 누르며 비틀하는 서문숙.

권완도 충격을 받아 벌떡 일어나 물러선다. 그리고

<아아아악!> 다시 천장에서 들리는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소리

청풍; [헛된 것이 감히 어떻게 사람을 먼저 바라볼 수가 있겠습니까?] 호통을 치고

청풍; [노야의 마음이 바라는 바가 있기에 헛것이 다가온 것일 뿐입니다!] + 권완; [그... 그만해요!] 숨이 막혀 가슴을 누르며 비명을 지르고

권완; [제발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노려보고. 청풍은 찔끔하여 입을 다물고. 하지만

쩌엉! 청풍의 두 눈에서는 벼락같은 기운이 흘러넘치고

권완; (이... 이 사람의 말에는 생각하는 바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이한 힘이 깃들어 있어!) 겁에 질려 청풍을 보고

권완; (이것도 일종의 술법인가?) 침 삼킬 때

슈욱! 천장에서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스며나온다. 등이 바닥을 향하는 자세인데 몸이 축 늘어져 있다. 공손대낭이다. 공손대낭은 천장에서 물처럼 스며 나오는 것이라 천장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청풍; [어!] 놀라고

권완; (천장에서 사람이....!) 역시 놀라 올려다본다.

서문숙; [대낭!] 역시 외치며 올려다보는데

혼수상태로 바닥으로 떨어지는 공손대낭. 마치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천천히 떨어지고

권완; [조심하세요!] 급히 달려가 두 손으로 공손대낭을 받아 안는다

권완; (구름처럼 가벼워!) 공손대낭을 두 팔로 안고 무릎을 꿇고

권완; (이 여자가 바로 수천년을 살아온 신행목의 정령 공손대낭이로구나!) 바닥에 누인다. 으으으! 사색이 되어 신음하는 공손대낭. 입가로는 피를 흘리고

권완; (귀신을 부정하고 헛된 것이라고 단언한 저 사람의 말이 비수가 되어 상처를 입혔어!) 공손대낭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누인다. 그때

청풍; [요망한 것이 감히 사람의 탈을 뒤집어썼구나!] 벌떡 일어나며 공손대낭을 향해 삿대질 하려는데

권완; [한 마디만 더 하면 오늘 누군가의 눈에서 피눈물이 날 거예요!]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 [읍!]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공손대낭은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그런 청풍을 쳐다보며 상체를 일으키고.

공손대낭; [진보.... 그대는, 그대는 정말 너무 합니다.] 울면서 서문숙을 보고

공손대낭; [오늘 그대를 다시 보았을 때 처음에는 반가워서 기뻤고, 또 그대의 죽음이 멀지 않았기에 슬펐습니다.] 애절하게 울고

공손대낭; [그대를 직접 맞이하고 싶었지만 그대 옆에 법기를 지닌 사람이 셋이나 있어서 피했거늘.....] 청풍을 두려워하며 물러나 앉고. 스스스! 그런 공손대낭의 모습이 점차 투명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권완; (모습이 흐려지고 있어!) (인간이 아닌 정령은 이런 식으로 죽음을 맞는구나!)

공손대낭; [진보, 그대는 왜 저분을 제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오셨나요?] [저분이 저를 죽이게 될 줄을 모르셨습니까?] 청풍을 곁눈질하며 울고.

서문숙; [믿어주시오 대낭! 나는 정말 몰랐소.]

서문숙; [이 아이에게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진언(眞言)의 힘을 지닌 줄은 정말 몰랐소.]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말을 좀 험하게 했기로서니 저 나무의 정령이 죽게 되었다고?)

공손대낭; [이제 저는 죽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진보, 당신이 저를 죽이는군요.] 다시 힘없이 다시 바닥에 눕고.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서문숙; [미안하오 대낭!] [나로 인해 그대의 정이 승천할 기회도 놓치고 흩어지게 되었으니 천추지한일 뿐이오!] 한숨

권완; [노야! 이분을 다시 살게 할 방법은 없는지요?] 공손대낭의 옆에 무릎 꿇고 앉아서 돌아보고

서문숙; [없네! 없어!] 절망하며 고개를 젓고.

서문숙; [이 아이가 내뱉은 말의 칼이 대낭의 정을 난도질 해버렸어!] 청풍을 노려보고. 그때

공손대낭; [우... 우미인초(虞美人草:개양귀비) 잎사귀 끝에 달린 이슬에 초목의 정기를 더하여 만든 법기의 힘을 빌린다면 살 수 있답니다.] 권완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반지를 보며 말하고. 그런 공손대낭을 흘겨보는 청풍

권완; [이 급박한 상황에 그같은 법기를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지요?] 난감할 때

청풍; [내숭떨지 말고 간단하게 말해!] [완이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빌려달라고!] 공손대낭을 노려보며 코웃음을 치고

권완; [아! 이 반지에 그런 묘용이 있었군요!] 깨닫고 자기 손에 끼어진 반지를 보고

권완; [이건 본래 제 것이 아니었는데...!] 생각하다가 깨닫고

청풍을 보니 청풍의 왼손에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네 개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고 손목에는 신령환이 채워져 있다.

권완; [혹시 그대가...!]

청풍; [맞아! 자기가 무리하게 내공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내가 끼워줬어!]

청풍; [청목지환(靑木之環)이란 건데 초목의 생명력이 깃들어 있어!]

권완; [이분을 살리기에는 안성맞춤인 묘용을 지녔군요.] 공손대낭을 보고

권완; [헌데 이 반지로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되겠는지요?] 공손대낭에게 묻지만

서문숙; [반지를 낀 손으로 그녀의 손과 발을 쓸어주면 된단다.] 안도하며 말하고

권완; [그리하겠습니다!] 반지 낀 손으로 공손대낭의 팔 다리를 쓰다듬어 주기 시작하고. 그러자

스으으! 흐릿해져가던 공손대낭의 모습이 다시 뚜렷해지기 시작하고

권완; (휴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 안도하고

공손대낭의 입에서도 긴 한숨이 흘러나온다.

청풍; (사람도 아니고 나무도 아닌 도깨비 하나가 없어질 뻔한 건데 뭔 호들갑들이람!) 팔짱 끼고 코웃음

청풍; (생각해봐! 벼락이 왜 높은 나무만 골라서 때리겠어?)

청풍; (나무는 음기(陰氣)의 정화라 헛된 것들이 잘 달라붙고 그것들이 세상에 해를 끼칠까 싶어 태워 죽이려는 게 아니겠어?) 연신 코웃음만 치고. 그때

서문숙; [휴우! 너란 아이를 정녕 모르겠구나.]

청풍; (나도 나를 모르겠수다!) 코웃음.

서문숙; [지난밤에는 마기를 뿜어내어 난릉왕의 술법을 깨뜨리더니 오늘은 또 몇 마디 말로써 대낭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서문숙; [너를 가르쳐 난릉왕을 막으려 했지만 넌 술법과 거리가 먼 운명이구나.] [앞으로 난릉왕을 어찌 막을꼬.]

청풍; (가면 쓴 변태 따위가 뭐 대단하다고...!) 코웃음치며 난릉왕을 떠올리고.

그때 되살아난 공손대낭이 권완의 부축을 받아 일어나 앉는다

서문숙; [대낭! 그대의 검술을 이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겠소?] 그런 공손대낭에게 묻고

공손대낭; [진보, 저는 그분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청풍을 겁에 질린 눈으로 보고

공손대낭; [그분의 숨결에 닿은 것만으로도 제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데다가...] [무엇보다도 제 검술은 그분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습니다.]

공손대낭; [대신 이 소저에게는 전할 수 있습니다.] 권완을 보고

서문숙; [이리 된 것도 운명이니 대낭은 그 아이에게 검술을 전수해주시오.] 끄덕이고

서문숙; [이놈은 내가 맡겠소!]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 (맡긴 뭘 맡아? 그 몸으로 날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 킁킁 코웃음치고

이하 장면을 공손대낭과 권완이 구석에 앉아 보고 있다.

서문숙; [술법을 가르칠 수 없으니 네게 노부의 무공을 물려주마!] 소매 속에서 호두알만한 약을 한 알 꺼내고

청풍; [곧 돌아가신다면서 뭘 얼마나 가르쳐주실 건데요?] 뚱하고

서문숙; [네가 이 약을 삼키기만 하면 노부의 평생 심득을 다 네것으로 만들 수 있다!] 약을 왼손 바닥에 올려놓고 오른 손을 주먹을 수직으로 세워 쥐어 위에서 덮는 시늉을 한다. 마치 오른손으로 왼손 바닥의 환약을 찧으려는 듯

청풍; [약을 한 알 먹기만 하면 절세고수가 된다는 말을 믿으라구요?]

서문숙; [이 약은 극기마환신단(克己魔幻神丹)이라는 것이다.] 환약 위에 위치한 오른쪽 주먹을 꾸욱 쥐고. 그러자

서문숙; [이름 그대로 자신과 마귀를 이겨 신처럼 되게 해주는 약이다.] 쥐어짠 손아귀 안에서 피가 한 방울 흘러나오고

서문숙; [물론 이 약을 만드는 데는 술법이 동원되었다.] 환약으로 떨어진다

서문숙; [어떠냐? 극기마환신단을 먹고 운명을 시험해볼 용기가 있느냐?] 약을 내밀고

청풍; [내가 왜 이약을 먹어야하는데요?]

서문숙; [안 그러면 난릉왕에게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풍; [나한테 한 번 진 인간이 뭐 무섭다고...!] 코웃음

서문숙; [난릉왕은 너에게 한번 졌기 때문에 다음번에는 반드시 널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서문숙; [방심하지 않고 전력과 전심을 기울여 널 죽이려 들테니까!]

청풍; (그건 말이 되네!)

서문숙; [어찌 하겠느냐?] [난릉왕이 너와 네 소중한 사람들의 목숨과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허락할 테냐?]

청풍; [쳇! 못된 영감탱이같으니라고!] 삐쭉

권완; [노야께 무슨 말버릇이에요?] 째려보고

청풍; [내 약점을 정확히 찔러오니 피할 방도가 없네.] [좋아요! 어디 한 번 얼마나 대단한 약인지 먹어봅시다!] 서문숙이 내민 약을 집어들고

서문숙; [침대로 가서 먹어라! 극기마환신단을 복용하면 몇날 며칠은 꿈속을 헤매야할 것이다.] 웃고

청풍; [예예!] 약을 들고 일어난다

청풍이 걸어가자 공손대낭은 겁에 질려 권완의 뒤에 숨고

청풍; (수천년을 살았다면서 겁은...!) 공손대낭을 흘겨보며 침대로 간다

이어 침대에 눕고.

청풍; [그럼 나중에 봅시다!] 약을 입에 넣고

긴장해서 보는 다른 사람들

청풍; [되게 맛없네.] [술법으로 만들었다면서 좀 달콤하고 맛있게 못 만들어?] 우적 우적 씹어먹으면서 궁시렁. 그러다가

청풍; [그래도 수면제는 탄 것 같네!] 눈을 감고 잠이 든다.

드르렁 쿨! 코를 골며 잠이 드는 청풍. 그러자

공손대낭; [휴우! 이제야 좀 살 것같아요!] 가슴을 쓸어내리고

공손대낭; [그런데 정말 괜잖은 건가요?] 곁눈질로 청풍을 보고

공손대낭; [극기마환신단을 복용한 이상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

권완;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놀라서 서문숙과 공손대낭을 보고

서문숙; [대낭의 말 대로 저놈은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끄덕

권완; [그... 그렇게 위험한 약을 어떻게...!] 안색이 창백해져서 부르르 떨고

서문숙; [걱정하지 말거라.] [노부가 배운 명리(命理)대로라면 네 낭군이 될 놈은 백수를 하고도 한참을 더 산 후에야 세상과 하직을 할 운세다.]

권완; [네...!] 얼굴을 붉히고

서문숙; [이제 저놈은 꿈속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지닌 바 잠재력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지!]

권완; [극기라는 말이 그래서 붙었군요.]

서문숙; [뿐만 아니라 저놈이 꿈속에서 싸워야하는 상대는 노부의 능력까지 지니고 있다.] 소매 속에서 책을 한권 꺼낸다. 크지 않은 책이지만 두툼해서 마치 다이어리 같다.

서문숙; [상식적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지만 마침내 극복하고 나면 세상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게 될 것이다!]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고

서문숙; [인간에게 있어 가장 이기기 힘든 적은 자기 자신이므로...!]

서문숙; [이제부터 너는 대낭에게 검술을 배우도록 해라.] [대낭의 검술은 고금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니 후일 크게 쓸모가 있을 것이다.]

서문숙; [그동안 나는 내 법기에 술법을 익히는 법을 적어 놓으마.]

권완; [예!] 고개 숙이고. 이어

권완; [자질이 부족하지만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손 모으며 공손대낭에게 절하고

공손대낭; [소저께서는 겸손해하실 것 없어요!] [수많은 제자를 길러보았지만 소저를 능가할 재원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없었답니다!] 마주 절하고

곧 공손대낭의 가르침을 받아 검술을 연마하는 권완. 공손대낭이 쌍검을 뽑아 검무를 추고. 그것을 보며 권완도 곤오용봉채로 따라한다

두 여자가 춤을 추는 것을 잠시 지켜본 서문숙

책을 펼쳐서 그 위에 손가락으로 허공에 글을 쓴다

<위대하신 제왕의 미욱한 신 서문숙이 마지막 장계(狀啓)를 올리나이다!> 스스스! 허공에 생겨난 글들이 차례로 책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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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노부는 스물네 살 때 이 신행목(神杏木)을 발견했다. 그 무렵의 나는 술법을 부리기 위한 법기(法器)를 닦을 장소를 찾아다니다가 우연히 이 신행목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서문숙이 뒷짐을 짚고 서서 거대한 은행나무를 올려다 보고 있다. 절세미남이고 허리에는 긴 검을 차고 있고.

<술법에는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그냥 쓸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매개체가 있어야하거나 있으면 훨씬 편리한 술법들도 있다. 크고 강력한 술법이나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술법의 경우 법기의 힘을 빌리는 것이 필수적이다.> 각가지 이상한 물건들. 그릇, 책, 북, 비파, 팔찌 등등

<술법자(術法者)들은 일반적으로 스승에게서 법기를 물려받아 사용한다. 그러나 제자의 술법이 스승을 넘어서게 된다면, 스승의 법기에 그 능력을 모두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법기만 망치게 될 뿐이다. 결국 그때는 법기를 새로 만들어 닦아야 한다.> 노인으로부터 거문고를 받는 청년.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받는다.

<천하제일가인 서문세가(西門世家)의 소가주였던 나는 선친으로부터 술법을 배웠다. 그리고 황송하게도 젊은 나이에 술법으로는 선친을 능가해버렸다. 즉 본가의 가주에게 대대로 전승되어 오던 법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西門世家라는 현판이 걸린 웅장한 대문 앞에서 포권하며 작별을 고하는 젊은 시절의 서문숙, 문앞에는 노인과 노부인이 서있다. 노부인은 눈물을 닦고 있고. 두 부부 뒤로는 많은 하인들이 허리를 숙이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가전의 법기를 포기하고 나만의 법기를 닦기 위해 세가를 나서게 되었다. 명산대천을 배회하며 술법을 연마하고 법기를 닦기에 마땅한 장소를 찾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곳엔 이미 주인이 있었고, 주인이 없는 곳은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꼭 나타났기 때문이다.> 산수화같은 바위 산 산봉우리에 서서 산을 보고 있는 서문숙.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 위에 어떤 도사같은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폭포 아래에서 명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장을 지나다가 은은한 흰색 옷을 입은 한 처녀를 보게 되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나는 그녀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시장통을 걸어가다가 흠칫하는 서문숙. 앞쪽에서 공손대낭이 다가온다. 절세미녀인데 서문숙과 비슷할 정도로 훤칠한 키에 선녀 옷처럼 하늘거리는 옷을 입었고 양 옆구리에는 짧은 검을 두 자루 차고 있다. 한쪽 팔에는 꽃이 가득 든 바구니를 걸고 두리번거리며 서문숙 쪽으로 다가온다

<그 처녀는 광주리에 여러 가지 꽃을 담아 팔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웠으며, 키는 보통사람보다 더 컸고 허리가 곧고 발라 오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서문숙을 보고 흠칫하는 공손대낭.

<처녀도 나를 보았다. 순간 그녀는 움찔 놀라며 도망가려 했다. 그러나 도망가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어서인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행(道行)이 깊으신 분이군요. 제 꽃을 하나 사주시겠어요?]> 배시시 웃으며 서문숙에서 귀엣말을 하는 공손대낭

<나는 처녀가 하는 수작이 가소로웠지만,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그냥 꽃 한 송이를 사주었다.> 동전을 주고 꽃 한송이를 공손대낭에게서 받는 서문숙. 이하 회상에서 대화체로

공손대낭; [당신은 백만 번째로 제 꽃을 사신 분입니다.] [그리고 저는 해와 달에게 맹세했답니다.] [백만 번째로 제 꽃을 사시는 분이 남자라면 그분에게 저를 의탁하겠다고.] 서문숙을 올려다보며 배시시 교태롭게 웃는 공손대낭

서문숙; [너는 사람이 아니거늘 어찌 감히 그런 말을 하느냐?] 준엄하게

공손대낭; [사람은 아니라도 좋은 스승들께 배워 인간의 도리를 깊이 깨우쳤는데, 사람보다 못할 게 있겠는지요?] 서문숙의 팔짱을 끼며 배시시 웃고

공손대낭; [멀지 않은 곳에 저의 거처가 있으니 함께 가주세요!] 서문숙의 팔짱을 낀 채 끌고 간다. 못 이기는 척 끌려가는 서문숙

서문숙; (선녀나 관음보살은 아닐 테고.... 햇빛에 이지러지지도 않고 대낮에 이렇게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는 게 뭘까?)

서문숙; (그러고 보면...!) 주위를 둘러본다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

서문숙;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 여자의 모습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서문숙; [네 이름이 무엇이냐?]

공손대낭; [남들은 소녀를 공손대낭(公孫大娘)이라 부른답니다.]

 

#89>

청풍; [엥!] [공손대낭?] 눈이 띠용. 권완도 흠칫. 다시 현실

권완; [검무(劍舞)를 잘 추기로 유명해서 두보(杜甫)가 <관공손대낭제자무검기행병서(觀公孫大娘弟子舞劍器行幷序)>라는 시까지 지었다는 그 공손대낭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서문숙; [그렇다. 바로 그 공손대낭이다.]

청풍; [하하하! 꽃 팔던 처녀가 공손대낭이면 노야는 신선 이팔백(李八百)이군요.]

청풍; [공손대낭은 당나라 사람인데 노야가 만났으면 무려 팔백 년이나 살아오셨을 테니까!] 깐죽대며 웃고 + 서문숙; [맹랑한 녀석같으니!] 눈 부라리고

서문숙; [언제 노부가 팔백 살이나 되었다고 했느냐? 공손대낭을 만났다고만 했지.]

청풍; [그럼 공손대낭이 팔백년을 살았단 말입니까?] 띠용

서문숙; [어디 팔백년뿐이겠느냐?]

서문숙; [공손대낭은 자신이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일천육백번 이상의 해를 넘겼다고 했다!]

[!] [!] 놀라는 청풍과 권완.

권완; [혹시... 공손대낭은 여자신선이었는지요?]

서문숙; [너는 은행나무를 부르는 다른 이름을 아느냐?] 청풍에게

청풍; (이 영감탱이가 날 무시하는구만!) + [잎이 오리발 같다고 해서 압각수(鴨脚樹). 열매가 어린 살구같다고 해서 행자목(杏子木),]

청풍; [심으면 손자 대에나 열매를 볼 수 있다고 해서 공손수(公孫樹)!] 뚱하게 대답

서문숙; [공손대낭은 바로 공손수의 정(精)이다.]

권완; [아!] 놀라고

서문숙; [은행나무의 정령이기에 성을 공손씨로 했고.... 바로 이 신목이 공손대낭이다.]

청풍; [그러니까 나무의 요괴 아니 요정이 있단 말이지요?] [어, 어디 있어요?] 침 꼴깍 삼키며 둘러보고

서문숙; [그녀가 원하지 않으면 너희들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술법을 익히고 난 후 정과 혼을 부릴 수 있게 되었을 때야 보게 될 것이다.]

권완; [대원수님께선 공손대낭과 혼인하셨나요?]

서문숙; [그녀는 나무의 정이고 나는 사람인데 어떻게 혼인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좋은 친구는 될 수 있었지.] 빙그레 웃고. 다시 회상

 

#90>

<노부 역시 공손대낭이 처음 이름을 밝혔을 때는 너희들과 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공손대낭은 놀라고 당황하는 나를 데리고 이곳으로 왔다.> 키는 낮지만 아주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 서서 올려다보는 서문숙과 공손대낭

<그리고는 나를 돌아보며 한 번 웃고는 나무 속으로 스며들어가버렸다. 그때서야 나는 공손대낭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아니면서 햇살이 따가운 대낮에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나무의 정(精)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놀라는 서문숙을 돌아보는 자세로 반쯤 몸이 거대한 은행나무로 스며들어가는 공손대낭

<나무속에서 공손대낭이 하는 말을 따라서 이곳으로 들어왔는데 벽에는 검무를 추는 공손대낭의 모습이 그려진 족자가 걸려있었다. 바로 그 족자에서 공손대낭이 미소를 지으며 걸어 나왔다.> 벽에 걸린 족자에서 걸어 나오는 공손대낭의 모습. 지금 청풍과 권완이 있는 그곳이지만 여자의 방처럼 꾸며져 있다. 침재와 화장대도 있고

서문숙; [만나 뵙게 되어 영광스러울 뿐입니다.] [팔백 년 전에 이미 아름다운 이름을 사해에 떨치셨던 공손대낭께서 여전히 하계(下界)에 계실 줄을 누가 알겠습니까?] 포권하고

공손대낭; [이곳은 제 몸속이자 제 정(精)이 머무르는 곳입니다. 귀인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많습니다.] 교태롭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마주 인사하고

<공손대낭이 사람이 아니라고 해서 경시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당(唐)의 현종(玄宗) 앞에서 검무를 추어 천하제일검기무(天下第一劒器舞)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수많은 제자를 두었던 바도 있었으니 다른 요괴나 요정처럼 대할 수 없었다.> 공손대낭과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서문숙

서문숙; [시장에서 소생을 피하려했던 것도 두려워서가 아니었겠습니다.] [천지를 뒤흔드는 검기를 지니신 대낭께서 아직 배움이 일천한 소생을 두려워할 리 없겠지요.] [소생의 교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두 손으로 술잔을 들고

공손대낭; [소녀가 익힌 검기는 보통 사람을 놀래킬 정도이지 귀인을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닙니다.] 역시 두 손으로 술잔을 들어 답례하며

공손대낭; [일찍이 소녀는 무료함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에 나가 한바탕 노닐었지요.] [그때 한 분께 은혜를 입어 검술을 배웠답니다..]

서문숙; [대낭께서도 고인으로부터 검을 받으셨군요. 아마 보통 분은 아니었겠습니다.]

공손대낭; [확실히 보통 분은 아니셨습니다. 배민(裴旻)이라는 분인데 아실런지요?]

서문숙; [배민?] [이백(李白), 장욱(張旭)과 함께 당삼절(唐三絶)로 불리시던 천검(天劒) 배민 장군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놀라고

공손대낭; [바로 그 분이랍니다.] 고개 끄덕.

서문숙; [배장군께서는 당조(唐朝) 삼백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검객이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분의 검술은 끊어져 전해지지 않는 줄 알았더니 바로 대낭께서 이으셨군요.]

공손대낭; [그분을 배장군이라 부르시는 걸 보니 귀인께서도 그분처럼 <왕들의 왕>을 섬기시는군요.]

서문숙; [그렇습니다.] 술잔을 내려놓고 엄숙한 표정

서문숙; [소생 서문숙 역시 위대하신 제왕의 미욱한 신(臣)입니다.] 일어나서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우러르고

공손대낭;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과연......] 역시 엄숙한 표정. 술잔을 내려놓고

공손대낭; [천하의 기인이 되시는 분들은 모두 한결같이 그 한 분만을 섬기는군요.] 한숨

서문숙; [배장군께선 <왕들의 왕>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던 분입니다.] 다시 자리에 앉고

공손대낭; [소녀에게는 부모 같은 분이기도 하지요.]

<저의 높은 가지를 잘라 벽력진군의 칼을 맞지 앉게 해준 분이시니까요.> 허공에 뜬 채 검을 휘둘러서 거대한 은행나무를 버섯 모양으로 다듬고 있는 신선같은 노인의 모습

 

#91>

권완; [공손대낭은 왜 꽃을 팔았고 또 백만 번째 꽃을 사는 남자에게 몸의 의탁하겠다고 맹세했는지요?]

서문숙; [공손대낭은 술법을 닦아 승천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 꽃을 팔면서 수행이 뛰어난 사람의 공덕을 얻어 모으고 있는 중이었지.]

서문숙; [백만 번째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려 한 것은 나무나 꽃의 정의 경우 움직이는 몸을 가진 존재에게 의탁해야만 승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문숙; [노부는 그녀의 처지를 이해했고 그녀는 노부의 처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린 한 가지 약조를 하게 되었다.]

청풍; [어떤 약조요?] 멀뚱

서문숙; [그녀는 내가 이곳에서 법기를 닦는 것을 도와주고, 나는 죽을 때가 되면 이곳에 와서 그녀의 정(精)을 맡아주기로 한 것이다.]

권완; [정을 맡아준다는 건 무슨 뜻인지요?]

서문숙; [내 몸이 죽어 신(神)과 정(精)과 혼(魂)이 흩어질 때, 공손대낭의 정은 나의 신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대신 나의 정과 혼이 이곳에 남아 목신(木神)이 되는 거란다.]

청풍; [목신이 된다구요?]

서문숙; [쉽게 말해서 죽은 뒤 이 나무에 붙은 귀신이 된다는 말이다.] 웃고. 순간

청풍; [으하하하!] 갑자기 배를 잡고 웃고.

권완; [공자!] 서문숙의 눈치를 보며 말리고

서문숙도 불쾌한 미소를 짓는데.

청풍; [말도 안되는 소릴랑 그만 하십쇼! 천지간에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단호하게

서문숙; [뭐라고?] 화를 내려는데

청풍; [술법도 대충 뭔지 알겠고 요괴란 것도 있을 법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서 나무귀신이 되니 뭐니 하는 건 말 같지도 않습니다.] 엄숙. 온몸에서 삼엄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이후로 청풍의 몸에서는 아지랑이같은 기운이 넘실거린다. 고함을 치면 그 기운이 화살처럼 사방으로 날아가기도 하고

서문숙; (무슨 이런 놈이....!) 눈 부릅뜨며 놀라고

서문숙; (뜬금없이 혼백을 비수처럼 가르는 예기를 온몸에서 흘려내다니...!)

청풍; [한 인간이 죽으면 그 삶도 깨끗이 끝나는 법인데 무슨 귀신 나부랭이가 된다는 겁니까?] 코웃음 치는데

슈우! 갑자기 오싹한 한기가 실내를 감돌고

권완; (뭐... 뭐지? 갑자기 실내의 공기가 차가워졌어!) 놀랄 때

서문숙; <아차!> 아차하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서문숙; (위험하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단호한 확신과 부정은 대낭같은 요정들에게는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청풍; [무엇이든 이상하게 보려면 자꾸 이상하게 보이는 겁니다.] [구름이나 바위들도 이것 닮았다 저것 닮았다 하고 보면 자꾸 그렇게 보입니다.]

청풍; [하지만 눈이 밝고 마음에 잣대가 정확하다면 세상에는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이것저것 짓지 마세요.]

서문숙; [말... 말을 삼가지 못할까!] + (이놈처럼 명백하게 자신의 의지를 말로 구현하는 인간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당황하여 청풍을 노려보지만

청풍; [은혜를 입긴 했으나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다 죽어가는 분이 무슨 할 짓이 없어 귀신 운운하시는 겁니까?] 코웃음치고.

서문숙; [네놈이 그래도...!] 다급히 외칠 때

갑자기 천장 쪽에서 쿵! 하고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

서문숙; [이런...!] 놀라며 올려다보고.

권완; [공손대낭인가요?]

서문숙; [잘못 되었구나! 잘못 되었어!] 안타까운 표정으로 탄식하고. 그때

<진보(塵甫;서문숙의 호)! 그대는.... 그대는 왜 저 사람을 데려와서 저를 죽이려 하십니까?> 갑자기 어디선가 우는 소리가 들리고

권완; (여자의 울음소리!) 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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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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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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