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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다시 은행나무. 해가 서쪽 하늘로 떨어지기 직전이다.

서문숙; [받아라! 이제 이것은 네것이다!] 책을 권완에게 건네주고. 서문숙 앞에 서있던 권완이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공손대낭도 그 옆에 서있고

서문숙; [혹시 앞으로 의문에 부딪히게 되면 노부의 이 말을 기억하거라.] [세상의 이치는 다만 예순을 넘을 뿐, 일흔은 되지 못한다.]

서문숙; [두루 살펴보면 어떤 의문이든 그 안에서 다 풀 수 있을 것이다.]

권완; [명심하겠습니다.]

서문숙; [조화는 방해할 수 있을 뿐 깨뜨릴 수는 없다.] [하지만 술법은 얼마든지 깨뜨릴 수 있고 깨뜨려질 수있음도 잊지마라.]

서문숙; [저기 있는 저놈처럼 마음이 강철같은 사람이라면 어떤 술법도 그 앞에서 버티기가 어려울 것이다.]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누워있는 청풍을 돌아보고. 공손대낭도 돌아보지만 겁에 질린 표정이고

서문숙; [이런 즉, 너는 술법을 펼칠 때 무엇에든 마음이 눌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신기막측한 술법이라도 마음이 흔들리면 절로 다 깨어지는 법이므로....]

권완; [부족하고 어린 제가 노야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나 않을지 두렵습니다.]

서문숙; [그렇지 않다. 너는 노부의 분에 넘치는 제자였다.] 말하며 공손대낭을 보고.

서문숙; [이제 때가 되었소! 함께 갑시다 대낭!] 팔을 벌리고

공손대낭; [오늘 헤어지면 우리는 언제 다시 이 세상에서 상봉하게 될지요?] 울면서 죄대로 올라가고

서문숙; [아마도 사백년 후, 서호(西湖)에 가을 무지개가 뜨는 날 그대는 다시 나를 보게 될 것이오!] 말하며 팔을 벌리고

공손대낭; [사백년.... 제게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군요.] [기꺼이 기다리겠어요!] 눈물 어린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서문숙의 몸에 안기고. 순간

슈욱! 공손대낭의 몸이 서문숙의 몸으로 스며들어가고

권완; (승천하는 노야의 신(神)에 대낭의 정(精)이 섞이는구나!) 합장하고

서문숙; [이제 노부는 죽는다. 너는 법기로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해라.]

권완; [제가 다시 노야를 뵈올 수 있을지요?]

서문숙; [노부의 정과 혼은 당분간 이 신행목에 머물 것이다.]

서문숙; [지극한 마음으로 찾으면 목신(木神)이 된 노부를 볼 수 있을 터...!] 말하며 손가락을 세워 토실의 천장을 가리킨다.

슈욱! 직후 공손대낭의 몸이 완전히 서문숙의 몸 속으로 스며들어 가고

슈우! 천장을 가리킨 서문숙의 손가락에서 아지랑이같은 것이 피어올라 위로 올라간다

슥! 서문숙의 고개가 떨궈지고

권완; (돌아가셨구나!) 깨닫고 무릎을 꿇는다

권완; (천지신명이시여! 이 한쌍을 용납하고 보우하소서!) 좌대 위에 좌화한 서문숙의 시신을 향해 엎드려 절한다

 

#102>

밖에서 본 은행나무. 때는 황혼무렵

한 줄기 빛이 은행나무에서 치솟더니 붉은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뒤이어 이른 저녁 하늘을 밝은 별 하나가 가로지르더니 산너머로 사라진다.

 

#103>

노을 속에 강물을 떠가는 배 한척.

[!] 그 배의 갑판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가 눈 부릅 권일해. 권일해 앞에는 사마이극, 차불노, 부도신궁 양홍경이 앉아있다가 그런 권일해를 보며 흠칫한다. 그들이 둘러앉은 탁자에는 지도가 몇 장 널려있고

급히 고개를 드는 권일해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졸고 있던 천년호도 흠칫하며 눈을 뜨고

슈우! 노을이 아직 남아있는 서쪽 하늘을 가르며 한줄기 유성이 떨어지고

권일해; [아!] 탄식하며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고. 다른 사람들 흠칫

야옹! 천년호도 일어나고

사마이극; [대원수! 무슨 일이신지요?]

권일해; [그분이... 그분이 마침내 가셨구려.]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서문원수께서!] 놀라 눈 부릅뜨는 세 사람. 벌떡 일어난다

양홍경; [노야!] 울부짖으며 별이 떨어진 쪽으로 엎드리며 울고.

권일해와 사마이극, 차불노도 침통한 표정으로 하늘에 대고 포권을 하고

천년호도 별이 떨어진 곳으로 고개를 숙인다.

권일해; [난릉왕도 그분이 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는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난릉왕의 발 밑에 엎드릴 수밖에 없소.] 천년호를 안아들고

사마이극; [대원수께선 속히 군기(軍旗)와 부월(斧鉞)을 가져오십시오.] [사마이극, 비록 부족한 사람이오만 대원수께서 군기와 부월을 가지고 돌아오실 때까지 힘을 다해 싸우겠소이다.]

권일해; [고맙소 사마가주!] 끄덕이고

권일해; [난릉왕이 다시 힘을 찾기 전에 돌아오겠소!] 휘익! 천년호를 안고 날아올라

강을 건너 사라지는 권일해

사마이극; (서문원수께서 돌아가셨지만 정세는 오히려 난릉왕에게 불리해졌다고 할 수 있다!) 멀어지는 권일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하고

사마이극; (위대하신 제왕의 신하들과 장군들은 십대수호가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마이극; (십대수호가문은 그저 드러난 신하들일 뿐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대원수의 명을 기다리는 장수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사마이극; (심지어 역대 원수들께서도 얼마나 많은 위대하신 제왕의 신하들이 세상에 퍼져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마이극; (다만 대원수의 기치(旗幟)가 높이 들려지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장수들이 구름같이 일어나 달려온다는 것만을 알 뿐....!)

<난릉왕은 원수함과 함께 대원수의 전통을 끊어놓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패배한 것이다!> 사마이극등을 태운 배가 멀어진다.

 

#104>

황혼 무렵. 하늘에 구름이 많이 끼었다.

어느 산중의 다 허물어져 가는 낡은 절

그 절 앞으로 걸어오는 세 사람. 공자무와 구령. 유모

구령; [곧 비가 올 것같군요.] 먹장구름이 덮인 하늘을 보고

구령; [아직 백리도 못 왔지만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겠어요. 밤길을 걷다가 비를 맞긴 싫어요.] 절로 들어가고

공자무; [그러자꾸나.] 따라 들어간다

절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구령. 부서지고 금박이 벗겨진 불상들과 부서진 불단들이 어지럽게 널린 내부.

구령; [지붕은 성하니 비는 피할 수 있겠어요!] 천장을 올려다보고. 천장은 성하다.

유모가 서둘러 대웅전 끝쪽의 바닥에 그물을 편다. 물같이 흐르는 그물이 바닥에 깔리고 구령; [유모! 불 좀 피워줘! 밤이 되면 제법 쌀쌀할 거야!] 그물 위에 앉고

유모; [예 아가씨! 땔감을 모아 오겠습니다!] 대답하고

서둘러 나가는 유모. 표정이 어둡다.

그런 유모를 유심히 보는 공자무

구령; [왜 그러세요?] 검을 뽑아 옆에 놓으며

공자무; [아니다. 유모의 발걸음이 어지럽구나.] 구령 옆에 앉고

구령; [어찌 안 그러겠어요?] [절 따라 나선 길은 죽음의 길로 들어선 것이나 다름없는데....!] 말하다가 흠칫

공자무의 가슴에 두른 붕대가 피로 젖었다

구령; [상처가 도졌군요. 이리 누우세요 오라버니!] 공자무를 부축해서 바닥에 누이고

공자무; [혈정 만칠태의 대못은 확실히 다르구나. 상처가 아물 생각을 하질 않으니...!] 웃으며 눕고

구령; [저로 하여금 오라버니의 피를 보게 했으니 만칠태는 제놈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도 보게 될 거예요!] 공자무의 옷을 젖히며 이를 바득 갈고

 

바깥의 풍경을 보여주고. 하늘에는 먹장구름이 점점 더 짙어진다

절의 대웅전 바닥에 나란히 누운 공자무와 구령. 구령이 공자무의 팔을 베고 있다. 공자무의 옷은 다시 여며진 상태고

구령; [아직도 꿈만 같아요. 이렇게 오라버니의 팔을 베고 누울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줄이야!] 수줍고

말없이 웃으며 구령의 등을 쓰다듬고.

구령; [오라버니는 무슨 생각 하세요?]

공자무; [세월이 덧없고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

구령; [그러고 보니 우리도 어느덧 살아온 날을 회고할 나이가 되었네요.] 한숨

공자무; [그래도 살 날은 아직 아득하다. 부디 네 몸을 함부로 험한 곳에 내놓지 말거라.]

구령은 쓸쓸하게 웃고

공자무; [그나저나 유모가 늦는구나.] 문간을 흘깃 보고

공자무; [다른 건물에서 기둥이나 서까래를 빼 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구령;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에요.] 찡그리며 고개를 들고

공자무; [추적자들이 그새 따라붙은 것 같으냐?]

구령; [우리가 이곳으로 온 것을 아는 자는 없는데....!]

구령; [그렇다고 해도 유모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는 다른 이유를 생각해낼 수가 없군요.] 한숨 쉬며 일어나고

구령; [유모가 대단한 고수긴 해도 혈목재 서열 십위 안의 고수나 천사련의 구천사등과 만났다면 죽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 가늘고 긴 검을 집어들고.

공자무; [마도무림이야 그렇다 쳐도 암흑철수와는 관련도 없는 천사련의 인간들까지 내게 억하심정을 품은 이유를 모르겠구나!] 한숨 쉬고. 그때

<그거야 나도 모르지!> 갑자기 천장에서 음성이 들리더니

<난 그냥 당신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을 뿐이오 공장주!> 슈욱! 천장에서 물방울이 맺히듯이 사람의 형상이 스며나오더니

휘익! 소리없이 구령과 공자무의 3-4미터 앞쪽으로 뛰어내리는 인물. 얼룩말 무늬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키가 2미터는 될 정도 크고 말 같이 긴 얼굴에 광대뼈가 툭툭 튀어나와 있었으며, 눈은 동그랗고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빠져 몇 올 남아있지 않다. 나이는 공자무와 비슷하거나 많은 정도. 이자가 천사련 구천사 중의 혈정 만칠태

공자무; [하하하! 살수들 틈에 숨어 있다가 내 가슴에 못질을 하고 달아났던 친구로군!] 천천히 일어나 앉으며 웃고

구령; [혈정(血釘) 만칠태(曼七颱)!] 검을 들고 일어서고. 하지만 혈정은 구령이 누군지 아직 알아보지 못하고 공자무만 본다

혈정; [흐흐흐! 제법 명줄이 길다만.... 이제 그만 목을 내놔야겠소 공장주!]

공자무; [내 목숨을 살 만큼 지불할 것이 귀하한테 있는지 모르겠군.] 웃고

혈정; [내 혈정에는 학정홍(鶴頂紅)이 묻어있다. 해독약이 없는 극독이지.] 살벌하게 웃고

공자무; [그랬군, 덕분에 별로 아프지도 않았어.] 붕대로 감싼 가슴을 어루만지고

혈정; [공자무! 장사꾼이면 장사꾼답게 굴 것이지 무림의 일에 너무 깊이 끼어들었다!] 말하며 양손을 움켜잡았다가 편다

순간 그자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어느덧 굵은 못들이 끼워져 있다. 공자무의 가슴에 박혔던 혈정이다.

구령; [혈정 만칠태! 만마천과 거래가 있었느냐?] 검을 왼손에 들고 혈정 만칠태 앞으로 걸어가고

혈정; [혈정 만칠태? 크카카카!] 어이없어 웃고

혈정; [새파란 계집이 감히 본좌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구령; [만마천과 거래가 있었는지 물었다!] 오른손을 왼손에 든 검의 손잡이를 잡고

슈우! 구령의 몸에서 칙칙한 살기가 안개처럼 퍼지고

혈정; [헉!] 기겁하며 펄쩍 뛰어 입구쪽으로 물러선다.

혈정; (숨... 숨통을 조이는 듯한 살기!) (련주도 이 정도는 아닌데....!) 눈 부릅뜨고 식은땀 흘리며 양손 손가락에 낀 대못들로 앞을 가린다

온몸에서 촉수같은 살기를 일으키며 천천히 다가오는 구령

혈정; [너.... 넌 누구냐?] 비지땀을 흘리고

구령; [혈목재 서열 일위가 바로 본녀다!] 차갑게 말하며 다가온다. 오른손은 검 손잡이를 가볍게 잡은 자세로

혈정; [마... 마서시 구령!] 경악하고

구령; [대답하지 않으면 벤다.]

혈정; [클클클! 그대가... 그대가 바로 스무살 이전에 극마지경(極魔之境)에 이르렀다는 혈목재의 전설 마서시였군.] 억지로 웃으며 뒷걸음질. 거의 문간에 이르렀다.

혈정; [본좌가 그대를 못 알아본 것은 실례였소만…!] 말하다가 눈 부릅, 스악! 무언가가 목을 스친다. 직후

푸학! 혈정의 목에서 옆으로 피가 분수처럼 확 뿜어진다. 목이 이미 반 넘게 베어졌다

혈정; [큭!] 잘라진 목을 움켜잡고

이미 검을 다시 검집에 꽂고 있는 구령

혈정; [마... 마존지검 천궁!] [이런 말도 안되는...!] 목을 움켜잡고 비틀 거리다가

퍼억! 다음 순간 문 밖으로 나뒹구는 혈정 만칠태의 시체. 목이 반 넘게 베어져 덜렁거리고 베어진 상처에서 피가 축축 거리며 뿜어진다.

한숨 쉬는 공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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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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