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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찾아온 손님

 

 

 

6월 중순이 되었을 때였다.

곽범은 희야와 단아에게 화독문을 유명곡과 같은 방식으로 멸문시키라고 명령했다.

은희, 지우, 미연만 동진에게 남겨 놓은 채 나머지 계집애들을 모두 데리고 가게 했다.

희야의 무공은 유명곡을 칠 때 수원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단아는 용병과 지략에 능하다.

그 둘이 힘을 합치고 계집애들 여섯이 도우면 화독문을 무리없이 응징할 수 있을 것이다.

 

희야 일행이 떠난 밤이었다.

곽범의 집인 육연별부의 대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자가 있었다.

"육연대인! 육연대인!”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절박하게 울렸다.

육연부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한 밤 중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수원은 한 달음에 곽범과 양설의 침실로 달려갔다.

동진은 벌써 검을 들고 나와 있으며 은희와 지우, 미연도 놀라서 앞마당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신가요?”

지우가 대문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추헌부 집행관이신 양소 어르신의 수하 김혁입니다. 급히 육연대인을 뵙고자 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삼존청 추헌부의 척살객!)

동진과 계집애들은 놀라고 긴장했다.

"여기는 우리 나으리께서 손님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용무이신지요?”

지우는 경계하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대나무 잎 같이 생긴 방패를 든 청년이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서있었다. 차림새가 추혼부의 척살객이었다.

김혁이라 자신을 소개한 척살객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육연대인, 저희 집행관 나으리를 구해주십시오. 집행관께서 육연부의 아가씨들을 보호하려다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간신히 소인만 명을 받고 탈출하여 왔습니다.”

"모셔라!”

양설의 음성이 건물쪽에서 들렸다.

척살객 김혁은 기운을 다한 듯 일어서지 못했다.

미연과 지우가 달려가 부축하여 응접실로 데려갔다.

곽범과 양설은 옷을 챙겨 입은 후였다.

곽범은 김혁의 손을 잡고 요상대법을 써서 위중한 부위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은희와 지우 등은 급하게 달려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떻게 된 거요?”

곽범은 응급처지를 해준 후 물었다.

귀댁의 아가씨들께서 함정에 빠지셨습니다.”

김혁이 기진한 목소리를 쥐어짜 대답했다.

"그걸 안 집행관께서 돕기 위해 저희와 함께 화독문으로 갔지만 오히려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양설이 곽범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애들이 아직 괜찮을까요?”

김혁이 곽범 대신 대답했다.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다친 아가씨들이 있었습니다.”

"!”

동진이 이를 악물었다.

"화독문으로 가면 되오?”

곽범이 김혁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집행관께서 전하시길, 함정은 육연대인을 잡기위한 게 분명하지만 알리지 않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적들은 추헌부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김혁이 면목이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분을 찻집으로 모셔서 쉬게 해드려라.”

양설이 동진에게 말한 후 곽범에게 물었다.

"수원만 데리고 우리 두 사람이 가야겠지요?”

곽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원에게 명령했다.

"새들을 깨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라.”

수원이 정원의 새장으로 달려갔다.

은희와 지우가 김혁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

미연은 마차방으로 가서 마부를 깨워 마차를 준비시켰다.

은희와 지우가 김혁을 마차에 태우고 소리쳤다.

"낭낭! 저희도 데려가주세요!”

수원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양설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같이 가자. 동진이 그동안 집을 돌봐라. 너희들은 내 가마를 가져와라.”

양설의 가마는 집에 있었다.

은희 등이 달려가서 끌고 왔다.

양설은 곽범과 가마 안에 들어가고 수원과 은희는 가마의 앞쪽을, 미연과 지우는 뒤쪽을 나누어 잡았다.

양설의 가마가 출발하자 동진은 기관을 발동시켜 집을 폐쇄했다.

그런 후 김혁을 태운 마차를 타고 찻집으로 향했다.

 

성안의 여러 곳에서 곽범의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곽범은 숨결의 용을 이용하여 가마를 떠받쳤다.

덕분에 가벼워진 가마를 든 수원 등은 힘을 다해 경신술을 펼쳤다.

가마는 어둠을 가르고 남쪽으로 유성처럼 달려갔다.

화독문을 치러 간 희야와 단아에게도 앵무새 여섯 마리가 따라갔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위급한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양설은 희야 일행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몇 명이 다쳤다고 하니 자기의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모두 양설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화독문은 화독장이라는 독을 쓰는 장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력은 그리 강하지 않고 사람 숫자도 적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장문인도 희야의 손에서 10초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 사실이 화독문을 경시하게 했고, 적들로 하여금 함정을 파게 만들었다.

양설은 육연부가 강호에 대해서 지나치게 적대감을 드러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곽범을 두려워해서 숨죽이는 자들도 있지만 힘을 합해 함정을 파는 자도 나오는 게 당연했다.

함정마저 무용하다는 것이 드러날 때까지, 앞으로도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양설은 마주앉은 곽범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강호에 몸을 담아야 할까 봐요. 발만 걸치지 말고요. 사업은 원선생님과 종리서기를 내세워서 하고, 우리는 강호에 서서 사업을 돌봐야 할 것 같아요.”

"강호인들이 사업하는 방식이군요.”

곽범은 썩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양설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업 방식은 강호인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세속의 사업을 하면서 방해되면 강호인을 없애려고만 했으니까요.”

곽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드는군요. 강호가 세상과 다르게 이어져 왔다면 강호의 물산도 세상과 다른 게 많지 않을까 하고요. 영단, 영물, 보물, 신병이기 외에도 더 있겠지요.”

양설은 말을 이어갔다.

"세속에 착한 사람과 악한 자가 섞여 있듯이 강호도 마찬가지고, 어느 쪽이든 사람들 세상이고 문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곽범은 한숨을 쉬었다.

"막는 자는 모두 벤다! 내가 나도 모르게 패도를 추구하고 있었군요.”

"막지 않는 자는 무시한다! 도 있었지 않겠어요?”

양설이 미소를 머금었다. 곽범의 생각이 바뀌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양설은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곽범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제 무공이 조금 늘게 되니 강호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감히 거스르려는 게 아니랍니다.”

곽범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강호에 들어가도 벗을 사귀지 못해요.”

양설은 손을 뻗어 곽범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럼 또 어떤가요?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어떤 게 있는지 보고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면 되지요. 제 생각으로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 강호를 열었고 강호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곽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구들을 구하고 봅시다.”

양설은 곽범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을 달랬다.

양설도 곽범도 화가 나있고 식구들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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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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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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