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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청풍이 머물고 있는 영빈관. 위극겸이 여전히 계단에 걸터앉아 있고

건물 안에서는 더 이상 야한 소리들이 흘러나오지 않는다

위극겸; (그렇게 요란하던 몸부림도 잦아들고...) 건물을 힐끔 돌아보고

위극겸; (그럭저럭 끝이 보이는 것같군.) 야릇한 웃음

 

[!] 눈 부릅뜨는 청풍.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인데 얼굴이 초췌해졌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 되었고

청풍; (이게 무슨...) 벌벌 떨고. 지금은 청풍이 포숙정을 올라타고 있다. 포숙정은 여전히 면사를 쓴 채 누워있는데 신부복의 저고리 부분이 벌어져 젖가슴이 일부 드러나 있고. 치마는 허리 위로 걷혀져 아랫도리는 다 드러난 상태. 발에는 버선을 신고 있고

청풍;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마치 몸속의 양기가 모두 소진되어버린 것처럼...) 벌벌 떨리는 청풍의 두 팔. 포숙정의 몸통 옆을 짚어서 상체를 버틴 상태로. 그러자

포숙정; [왜요? 벌써 양기가 바닥이 났는가요?] 얇은 면사 속에서 배시시 웃고

청풍; (그러고 보니...) 눈 부릅

포숙정; (면사를 쓰고 있지만... 이 계집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포숙정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를 벗기려 하고

포숙정; [더러운 손을 어디에 대려고 그래?] 탁! 매몰차게 손으로 청풍의 손을 손을 쳐내고. + 청풍; [!] 몸에 힘이 없어서 옆으로 휘청하고

포숙정; [내 손으로 직접 얼굴을 보여줄 테니 기다려라.] 콰직! 이어 손으로 면사를 거칠게 뜯어낸다. 그러자

쿵! 드러나는 포숙정의 얼굴

청풍; [네... 네년...!] 알아보고 눈 치뜨고

포숙정; [그렇다. 난 네놈 손에 무참히 돌아가신 철신금강 뇌공량이라는 분의 아내 포숙정이다!] 콱! 한손으로 청풍의 목을 움켜잡고

청풍; [끄윽!] 목이 조여져서 눈이 돌아가고

포숙정; [내가 그날 말했지? 날 죽이지 않으면 기필코 내 손으로 네놈의 심장을 뽑아버리겠다고?] 이를 갈고

청풍; [네년... 네년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끄윽! 목이 조여지면서 꺽꺽! 거리고. 피골이 상접해서 전혀 저항을 못 한다

포숙정; [곧 죽을 신세니 궁금증은 풀어주마.] [네놈은 내가 음부에 머금고 있던 소양갈맥고에 중독 되었다.]

청풍; [소... 소양갈맥고!] 전율하고

포숙정; [표정을 보아하니 소양갈맥고가 어떤 독인지 아는 모양이네.] 마녀처럼 웃고

청풍; [끄윽...] 경악과 분노

포숙정; [묘강(苗疆) 독성부(毒聖府)에서 만든 소양갈맥고는 사내들에게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극독이다.]

포숙정; [그리고 난 소양갈맥고를 가장 효과적으로 네놈 몸에 침투시키기 위해 음부에 그걸 머금고 있었다.]

청풍; [나... 날 중독 시키려고 자진해서... 수청을 들었다는 것이냐?] 꺽꺽 거리고

포숙정; [누가 네놈의 약점이 호색이라는 조언을 해주더구나.] [그래서 소양갈맥고를 음부에 머금은 채 네놈에게 접근했던 것이다.]

청풍; (내... 내게 대뜸 두 번의 절을 한 이유가... 날 오늘 밤 죽이고 말겠다는 결의의 표시였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 포숙정이 자신에게 절 하던 장면 떠올리고

포숙정; [그래도 위안이 될 말은 한마디 해줄게.] 우둑! 다른 손으로도 청풍의 목덜미를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뭉클! 턱! 청풍의 상체가 허물어져서 포숙정의 품에 안기고. 포숙정의 젖가슴이 청풍의 빈약해진 가슴에 짓눌리고

포숙정; [너와 이거 하면서... 정말 황홀했다. 남편과 할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청풍의 귀에 속삭이고. 얼굴이 달아오른 채

청풍; [네... 네년...] 치욕스런 표정으로 신음. 하지만 몸에 힘이 없어서 포숙정의 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피골이 상접해진 팔로 필사적으로 침대를 짚어서 상체를 일으키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포숙정; [너무 좋아서 하는 도중에 까무라칠 뻔 했었는데...] 아랫도리를 움직이고

청풍; [제... 제발...] 절망에 차서 애원하고

포숙정; [사내는 지푸라기 하나 잡을 힘만 있어도 여자와 즐길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구나.] 아랫도리로 청풍의 하체 휘감은 채 들썩이고

포숙정; [숨이 끊어지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 속에 들어있는 네놈의 더러운 그건 아직까지도 살아있는 걸 보면...] 할딱이고

청풍; [죽... 죽여라! 더 이상 날 모욕하지 말고...] 비참

포숙정; [물론 죽여줄 거야.] [가장 수치스럽고 비참한 죽음인 복상사(腹上死)를 당한 모습으로...] 아랫도리를 움직이며 할딱이고

청풍; [하... 하지 마라! 제발...] 애원하지만

포숙정; [조금... 조금만 더 힘을 내 봐.] [이번에 한번만 더 양기를 내 몸에 쏟아내면 염라대왕 앞으로 갈 수 있게 될 테니...] 마녀처럼 할딱이며 몸을 움직여 청풍을 겁탈하고

청풍; (죽... 죽는다.) 청풍의 두 팔에 목이 휘감겨 고개 옆으로 돌린 채 절망

청풍; (이 계집 말대로 남아있는 양기가 모두 소진되면 죽을 수밖에 없다. 복상사를 당한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절망하고. 바로 그때

[소성주!] 밖에서 누군가 다급히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러자

포숙정; [쳇! 방해꾼이 나타났네.] 확! 청풍을 확 밀치며 일어나고

[무사하시오 소성주?] 다시 이어지는 고함소리. 그 배경으로 포숙정의 가랑이에서 풀려난 청풍의 몸은 침대 밖으로 넘어가고 있고

콰당탕! 청풍의 몸뚱이는 침대 아래로 나뒹굴고. 물론 알몸이고. 그 배경으로 포숙정은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다. 치마를 내리면서

포숙정; [네놈의 숨통을 직접 끊어놓지 못하는 게 유감이지만... 이만 헤어져야겠다.] 사락! 치마를 내려 아랫도리를 완전히 가리며 침대에서 내려서고

청풍; [끄윽...] 침대 아래 바닥에 알몸으로 쓰러져 벌벌 떨고. 그 배경으로 포숙정은 욕실 쪽으로 가고

포숙정; [먼저 저 세상에 가서 기다려라.] 사락! 욕실의 입구에 쳐진 주렴을 손으로 가르며 돌아보고

포숙정; [네놈 아비도 곧 뒤따라가게 해줄 테니...] 촤락! 욕실의 주렴을 가르면서 욕실 안으로 들어가며 뒤를 돌아본다. 침대 옆의 바닥에는 알몸의 청풍이 피골이 상접한 채 누워서 벌벌 떨고 있고. 고개만 욕실 쪽으로 조금 돌린 채로. 이어

포숙정; [끝났어요.] 욕실 안으로 들어가며 누군가에게 말하는데. 욕실에는 달빛이 비스듬히 내려 비치고 있다. 지붕에 구망이 뚫려서 그곳으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모습이고

포숙정; [그만 절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말하고

청풍; (욕... 욕실 안에 누군가 있다.) 비로소 깨닫고. 고개 옆으로 조금 돌릴 채. 그때

귀면지존; [수고하셨소.] 슥! 달빛이 비치지 않는 욕실의 어둑한 곳에서 누군가의 손이 나와 포숙정의 팔을 잡고. 물론 귀면지존이다.

귀면지존; [부인이 오늘 세운 공로는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것이오.] 쿵! 모습 드러내며 주렴 밖의 침실을 보는 귀면지존

 

#17>

[!] 흠칫! 하며 고개 들면서 일어나는 위극겸. 배경으로 [소성주!]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물론 유령귀왕의 외침이다

위극겸; (때맞춰 등장하시는군.) 일어나고

유령귀왕; [무사하시오 소성주?] 화악! 질풍같이 날아 내리는 유령귀왕

위극겸; [장주!] 계단을 내려가 유령귀왕을 맞고

위극겸; [이 밤중에 어인 발걸음을 하신 겁니까?] 포권하는데. 유령귀왕은 급히 다가온다

유령귀왕; [설명하면 길어지니... 우선 소성주님의 안위부터 확인하세.] 급히 위극겸을 지나 침실 입구로 가려 하고. 그때

콰당탕! 건물 안에서 무언가 나뒹구는 소리가 들리고

유령귀왕; [무슨...] + 위극겸; [헉!] 기겁하는 척. 이어

유령귀왕; [소성주!] 팟! 한 걸음에 계단을 건너뛰어 건물 입구로 쇄도하고. 위극겸도 당황하는 척 하며 뒤따라가고

유령귀왕; [실례하겠소이다.] 쾅! 문을 박살내며 뛰어 들어간다. 직후

[!] 그대로 굳어지며 눈 부릅뜨는 유령귀왕과 그 뒤를 따라 건물로 들어서던 위극겸도 짐짓 눈을 치뜨고

쿵! 침대 아래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청풍. 피골이 상접해있고

[소성주!]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려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비명

 

#18>

시간이 좀 지났다.

횃불과 등으로 대낮같이 밝아진 영빈관 건물. 하녀들과 하인들이 황망히 영빈관으로 드나들고 있다. 여러 가지 물건과 약재가 든 병등을 들고. 주변은 무사들이 철통같은 경계를 하고 있다. 무사들을 지휘하는 건 교천기다.

의사로 보이는 노인들이 무사들의 안내를 받아 서둘러 들어가기도 하고. 그걸 보며 수군거리는 무사들. <중독...> <상태가 심각...> <얼마 못 버티고 죽을 것같은...> 등의 대화

그걸 월동문 밖에서 훔쳐보는 하녀 한명. 이어

서둘러 다른 곳으로 달려가는 하녀

 

#19>

교소소의 거처. 역시 불이 밝혀져 있고

교소소; [죽... 죽어간다고? 마태자 이청풍이?] 사색이 되어 되묻고. 창가에 서있다가 돌아보며. 침실에는 불이 켜져 있고

하녀; [영빈관을 지키는 무사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어요.] 문간에 서서 교소소의 눈치를 보면서

하녀; [마태자 이공자는 어떤 극독에 중독 당했는데...] [치료할 방법이 없어서 속수무책이라고 해요.]

하녀; [이대로 가면 얼마 못가 죽게 될 거라고도 하고...] 눈치 보며 말할 때

털썩!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는 교소소. 눈에 초점이 없고

하녀; [아... 아가씨!] 급히 다가와 부축하려 하지만

교소소; [가... 나가.] 넋이 나가 손짓을 하고

하녀; [예...] 눈치 보며 뒷걸음질.

탁!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는 하녀

교소소; [마태자... 천마성의 소성주인 그자가 죽을 거라고?] 실성한 듯 중얼거리고

그런 교소소의 뇌리에 떠오르는 유령귀왕이 고함치던 장면

 

유령귀왕;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만일 그년이 마태자를 노리는 자객이면 어쩔 생각이냐?] 분노하고

유령귀왕; [그래서... 그 계집이 마태자에게 위해(危害)라도 가하면 우리 유령산장이 무사할 것 같으냐?]

유령귀왕; [외아들을 잃은 사자천마가 우리 유령산장을 용서할 것같으냐 말이다!] 무섭게 화를 내고

회상 끝

 

교소소; [아버지... 아버지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어.] 턱! 등을 벽에 기대며 사색이 되어 중얼거리고

교소소; [내... 내 실수로 마태자가 죽게 되었으니...]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교소소; [우리 유령산장은 천마성의 보복으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될 거야.] 겁에 질려 울고

교소소; [엄마! 나... 소소는 이제 어떻게 해요? 나 때문에 유령산장이 망하게 되었으니...] 우는 교소소

 

#20>

다시 영빈관.

침대에는 청풍이 누워있고 나이 든 의사들이 진맥하고 있다. 침대 주변에는 유령귀왕, 위극겸, 청풍을 수행한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있다. 하녀들이 대야와 수건, 약통들이 얹혀진 쟁반등을 들고 침대 주변에 대기하고 있고. 하녀들과 젊은 의사들이 연신 들어오며 여러 가지 약재를 침대 옆의 탁자에 놓고 있는 중이다. 나이 든 의사들 중 몇은 그 약재들을 살피고 있고

청풍의 맥을 짚어보고. 눈을 까뒤집어보는 나이 든 의사들

서로를 보며 고개 젓는 의사들. 이어

청풍의 몸에 침을 놓기 시작하는 의사들. 다른 의사들은 하녀와 젊은 의사들이 방안으로 가져오는 약재들을 골라 약을 조제하고 있다. 가루를 낸 약재를 물에 타기도. 하는 모습

한명의 나이 든 의사가 청풍의 머리와 상체를 좀 들고.

고개가 젖혀지자 입을 벌리는 청풍

그 입에 가루를 낸 약을 탄 물을 붓는 의사들

청풍의 코가 의사의 손 잡혀서 막히고

꿀꺽! 꿀꺽! 어쩔 수 없이 물과 약을 마시는 청풍

약을 다 먹은 청풍을 조심스럽게 누이는 의사들

한명의 의사가 땀을 닦으며 유령귀왕에게 다가오고. 의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늙은 의사다. 이하 늙은 의사도 표기

유령귀왕; [어떤 상태인가?]

늙은 의사; [소성주께서 정신을 잃기 전에 소양갈맥고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소이다.]

유령귀왕; [분명 그렇게 들었네.]

늙은 의사; [소성주가 보이는 증상도 소양갈맥고에 중독되었을 때의 증상과 일치하외다.] 치료 받는 청풍을 보며.

유령귀왕; [그... 그럼 치료 방법이...] 굳어지고

늙은 의사; [없소이다.] 고개 저으며 한숨

[그... 그런...] 청풍을 수행한 무사들 사색. 유령귀왕과 위극겸은 예상했던 던 듯 굳어진 표정이지만 놀라지 않고

늙은 의사; [소양갈맥고는 이름 그대로 양기를 소멸시켜서 경맥을 말라붙게 하는 극독이외다.] 청풍을 보며

늙은 의사; [즉, 해독을 할 수 있는 독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유령귀왕; [나... 나도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방법이...] 사색. 청풍을 수행한 젊은 무사들도 사색

늙은 의사; [만일 중독 초기에 발견해서 독성이 퍼지지 않게 막았으면 심각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늙은 의사; [소성주는 소양갈맥고에 중독된 상태에서 여러 번 계집과 관계를 한 탓에 양기가 거의 다 소멸되어 버렸소이다.]

유령귀왕; [해독... 해독이 안된다 해도 뭔가 치료할 방법은 있지 않겠는가?] 필사적인 표정으로 묻지만

늙은 의사; [지금 상황에서 소성주를 살리는 방법은 양기를 보충해줄 기사회생의 영약을 먹이는 것인데...] 난감

유령귀왕; [기... 기사회생의 영약이라면...]

늙은 의사; [만년 묵은 거북이의 내단인 만년금구단(萬年金龜丹)이나 천년 이상 산 잉어 천년화리(千年火鯉)의 피, 또는 신통력을 얻은 산삼이나 하수오 정도겠지만...] 말끝을 흐리고

유령귀왕; [그... 그런 영약은 천운이 닿아야 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늙은 의사; [일단 우리 유령산장이 보유하고 있는 양기가 강한 보약은 전부 투여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른 의사들이 연신 청풍에게 뭔가 먹이는 모습을 돌아보고

<침술을 써서 양기의 소모를 극한까지 제한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청풍의 몸에 침을 놓는 나이 든 의사들의 모습 배경으로 의사의 말

유령귀왕; [정말... 정말 소성주를 살릴 방법은 없는 것인가?]

늙은 의사; [한 가지 가능성은 있는데...] 난감

유령귀왕; [그게... 그게 뭔가?]

늙은 의사; [살펴보니 소성주는 아직 단전에 양기를 일부 보전하고 있소이다.] [워낙 내공이 심후했고 또 익힌 무공이 신묘했던 덕분일 것이외다.]

유령귀왕; [단전에 보전하고 있는 그 양기가 혹시...] 기대

늙은 의사; [불씨의 역할을 할 수 있소이다.] 끄덕

늙은 의사; [만일 누군가 소성주의 단전에 내공을 투입해주면...] [작은 불씨가 강한 바람을 만나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되살아날 여지가 있지요.]

유령귀왕; [내가... 내가 하겠네.]

유령귀왕; [내가 내공을 모두 소진하는 한이 있더라도 소성주의 몸속에 남아있는 불씨를 살려보겠네.]

늙은 의사; [유감스럽게도 장주님은 소성주를 도울 수가 없소이다.] 고개 젓고

유령귀왕; [어... 어째서인가?]

늙은 의사; [장주님께서 익힌 무공은 음유(陰柔)해서 오히려 소성주의 몸에 남아있는 불씨를 꺼트릴 수 있기 때문이외다.]

유령귀왕; [아!] 절망

늙은 의사; [아주 강한 양강(陽强)의 무공을 익혔으면서 내공이 최소한 삼갑자(三甲子) 이상인 인물만이 소성주의 양기를 되살려줄 수 있소이다.]

유령귀왕; [확... 확실히 난 자격이 없군. 양강한 무공을 익히지 않았을 뿐더러 내공이 채 이갑자(二甲子)도 되지 않으니...] 비지땀을 소매로 닦고. 그때

위극겸; [소성주에게 남은 시간은 어느 정도요?] 늙은 의사에게 묻고

늙은 의사; [본장이 보유하고 있는 양강한 성질의 영약을 모두 먹이고 있으니까...] 치료받는 청풍을 돌아보고

늙은 의사; [최대 열흘 정도는 버티실 수 있을 것이오.]

위극겸; [그럼 되었소!] [서둘러 소성주를 천마성으로 모시고 가야겠소이다.] 침대로 다가가고

유령귀왕; [위총관! 혹시...]

위극겸; [성주님은 천하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내공을 지니셨으며 천마성의 무공은 원래 양강한 성질의 것이오.] 청풍을 내려다보며

위극겸; [즉, 열흘 안으로 소성주를 천마성으로 모시고 갈 수만 있다면 살릴 수 있다는 뜻이오.] 강렬한 표정으로 말하고

[!] [!] 침 꿀꺽! 삼키는 유령귀왕과 청풍을 수행한 젊은 무사들

 

#21>

아침. 유령산장. 여전히 우중충 음산

유령산장 입구. 여러 사람이 나와 있고 한 대의 가마를 덩치 큰 상복 입은 무사들 네명이 짊어지고 있다. 기둥과 천장은 있지만 벽과 문은 없는 가마 안에는 청풍이 힘없이 누워있다. 위극겸과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서있고. 가마 뒤에서는 유령귀왕이 교천기에게 뭔가 말하는 중이다. 유령산장의 의사들과 하녀들이 수십명 나와 있다.

유령귀왕;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아비가 직접 소성주를 모시고 천마성까지 다녀와야 한다.] [아비가 없는 동안 본장의 일은 천기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교천기의 어깨를 만지며 말하고

교천기; [본장은 걱정 마시고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포권하고

유령귀왕; [본장의 후계자인 네가 제 몫을 해낼 때가 되었음을 명심해라.] 돌아서고

교천기; [명심하겠습니다.]

유령귀왕; [가세 위총관!] 가마쪽으로 가고

위극겸; [그러지요.] 돌아서고

팟! 유령귀왕이 먼저 몸을 날리고. 그 뒤를 가마를 멘 장한들이 날아오른다. 가마 뒤를 위극겸과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따라간다. 젊은 무사들은 상자를 짊어지고 있고

[다녀오십시오 장주님!] [존체보중하십시오.] 교천기와 유령산장의 식솔들 멀어지는 가마를 향해 외치며 포권 하거나 허리 숙이고

삽시에 까마득히 멀어지는 가마 행렬

교천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라...) 눈 번뜩

교천기; (아버지의 그 말씀은 내게 하신 당부다.) 돌아서고

교천기; (마태자가 죽든 살든 우리 유령산장에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본장의 보물들과 무공 비급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 두어야한다.) 강렬한 표정으로 유령산장 안으로 들어간다.

 

#22>

높은 산 위에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고 있는 귀면지존. 귀면지존의 뒤에는 복면인 한명이 매를 한 마리 팔뚝에 앉힌 채 서있다. 매의 발목에는 천이 묶여있고

멀어지는 가마 행렬이 작게 보이고. 귀면지존의 시점

귀면지존; [여기까지는 순조로운 진행이로군.] 흐흐흐! 음산하게 웃고

귀면지존; [무제궁으로 신응(神鷹)을 날려라!] [마태자 이청풍이 천마성에 도착하는 다음날 총 공격하라고!]

복면인; [존명!] 고개 숙이고

복면인; [가라!] 휘익! 매를 날려보내고

화악! 날개 짓하며 날아오르는 매

귀면지존; [흥분되고 기대 되는군.] [내가 설계한 대로 숱한 목숨이 사라지고 무림의 운명이 뒤바뀌게 될 테니...] 흐흐흐! 음산하게 웃는 귀면지존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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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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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깊은 밤. 하늘에는 보름달. 유령산장의 후원. 잘 가꿔진 정원에 둘러싸인 화려한 건물. 불이 켜져 있다.

교소소; [뭐라구요?] 분노하며 벌떡 일어나고

교소소; [어떻게... 어떻게 제게 그런 일을 시키실 수가 있어요?] 분노하여 치를 떨며 얼굴 발개진 교소소. 그 앞에 유령귀왕이 앉아있다. 배경으로 나레이션. <-유령일염(幽靈一艶) 교소소(喬素素)> 장소는 교소소의 침실이다. 교소소는 잠옷 차림이고. 침대에는 화려한 신부복이 한 벌 펼쳐져 있다.

유령귀왕; [진정하고 애비 말을 마저 들어라 소소야.]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서 맞은편에 일어선 교소소를 달래고

유령귀왕; [아무렴 아비가 아무 생각도 없이 너보고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고 했겠느냐?]

교소소; [하지만...] + 유령귀왕; [너도 아비가 명리(命理;사주)에 밝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교소소의 말을 막고

유령귀왕; [그리고 아비가 마태자의 사주를 뽑아 헤아려 보니 마태자는 오늘 밤 자식을 얻을 운수로 나왔다.]

교소소; [그... 그러니까 저보고 오늘밤 마태자 이청풍에게 몸을 바쳐서 그 인간의 아이를 배라는 건가요?] 분노와 수치심에 치를 떨며 유령귀왕을 노려보고

유령귀왕; [천마성이 어떤 가문이냐?] 설득

유령귀왕; [천고기재인 마태자의 활약 덕분에 조만간 무제궁을 누르고 천하의 주인이 될 명문중의 명문이다.] 심각

유령귀왕; [만일 마태자의 아이를 낳기만 하면 넌 장차 천마성의 안주인이 될 것이다.] [무림에 적을 둔 여자에게 이보다 더한 출세가 또 어디 있겠느냐?]

유령귀왕; [그러니 내키지 않더라도 아비의 뜻에 따라다오.]

교소소; [물론 근래 천마성의 기세가 무제궁을 압도하고 있다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교소소; [그렇다고 뜬금없이 저보고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고 하시는 건...] + 유령귀왕; [아비가 왜 무제궁의 청혼을 거절했겠느냐?]

교소소; [아버지!] 울상

유령귀왕; [아비의 판단으로 무제궁은 이제 얼마 못 버티고 천마성에게 궤멸 당한다.]

유령귀왕; [당연히 우리 유령산장은 천마성 쪽에 줄을 서야하는데 마침 마태자가 방문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이했다.]

유령귀왕; [이런 상황이니 여러 말 말고 마태자가 머무는 영빈관(迎賓館)을 찾아가거라.] [아비가 준비해온 저 신부복을 입고...] 침대에 펼쳐져 있는 화려한 신부복을 가리키고. 하지만

교소소; [싫어요!] 두 주먹 불끈 쥐며 바락

교소소; [아무리 권세가 좋다고 해도 어떻게 난생 처음 보는 사내에게 몸을 바칠 수가 있어요?] 울먹이면서

교소소; [전 절대 마태자, 그 인간이 수청은 들 수 없어요.] 이를 갈고

유령귀왕; [권하는 게 아니라 아비로서 명령하는 것이다.] 굳어진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고

교소소; [그... 그런 억지가...!] 억울

유령귀왕; [만일 아비의 뜻을 거스를 생각이라면...] 입구쪽으로 걸어가고

유령귀왕; [유령산장을 나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마라.] 화가 좀 난 표정으로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간다

교소소; [아버지!] 다급하게 외치지만

탕! 거칠게 닫히는 문. 이제 방에 교소소 혼자 남아있고

교소소; [이게 무슨 폭거(暴擧)야?] 분노. 억울

교소소; [아무리 아버지라 해도 처녀인 딸 보고 처음 보는 사내의 수청을 들라는 게 말이 돼?] 이를 갈고

교소소; (하지만 아버지의 성격상 내가 끝내 마태자의 수청을 거절할 경우 정말로 유령산장에서 쫓아낼 텐데...) 울상

교소소;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죽어도 마태자에게 몸을 바치는 건 싫은데...] 잠옷 소매를 물어뜯으며 울먹이고. 바로 그때

[그 고민, 내가 해결해줄게.] 누군가의 말이 들려 눈 부릅뜨는 교소소

포숙정; [내가 동생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어줄 수도 있어.] 슥! 촤락! 침실에 딸린 욕실의 주렴을 들추며 침실로 들어서는 포숙정의 모습

교소소; [당... 당신 누군데 내 침실에...] 당황하며 주춤 물러서고

포숙정; [내가 누군지 알 필요는 없어.] 침대로 다가오고

포숙정; [다만 마태자와의 동침을 간절히 원하는 여자라는 것만 알면 돼!] 사락! 신부 복장을 두 손으로 집어 들고

포숙정; [동생이 끔찍하게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줄 수 있는 은인이기도 하고!] 신부 복장의 옷을 두 손으로 들어 자신의 몸에 대보면서 야릇하게 웃고

교소소; (살았다!) 침 꿀꺽 삼키는 교소소

 

#11>

역시 밤. 잘 가꿔진 정원에 둘러싸인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 건물이 있는 정원 일대가 높은 담장으로 에워 쌓여있어 조용하다. 역시 깊은 밤이라 인적이 없고. 불이 꺼진 건물 앞에는 청풍을 수행한 두 명의 젊은 무사가 경비를 서고 있다. 건물 처마에는 <迎賓館>이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있다.

월동문으로 누군가 들어서고.

흠칫! 하며 차고 있는 칼 손잡이에 손을 대는 무사들. 그때

위극겸; [수고한다.] 다가오는 위극겸.

[총관님!] [이 밤중에 어인 일이십니까?] 포권하는 무사들

위극겸; [교대해주러 왔다. 너희들에게 배정된 거처로 가서 눈을 좀 붙이도록 해라.]

무사들; [괜잖습니다.] [아직 졸리지 않습니다 총관님.]

위극겸; [말 들어라.] [내일 또 먼 길을 가야하니 너희들도 좀 쉬어야 한다.]

[하오면...] [분부 따르겠습니다.] 포권하는 무사들

서둘러 떠나는 무사들

위극겸; (이래 저래 긴 밤이 되겠군.) 영빈관 앞을 떠나는 무사들을 보며 음산하게 눈을 번뜩이고

위극겸; (여러 인생의 운명이 오늘밤을 기점으로 대격변을 겪게 될 테니...) 생각할 때

건물 모퉁이에서 불빛이 보이고. 돌아보는 위극겸

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두 명의 여자. 늙은 노파가 등을 옆으로 들어 앞길을 비춰주는 뒤로 화려한 신부 복장을 한 여자가 따라온다. 얼굴을 면사로 가린 그 여자는 물론 포숙정이다.

위극겸; (왔군.) 눈 번뜩이고

<오늘 밤의 주역이...> 포숙정의 모습 크로즈 업. 면사가 얇아서 얼굴이 비쳐 보인다.

 

#12>

넓고 화려한 침실. 불이 꺼져 있어 어둡다. 영빈관의 내부다

큰 침대에 누워있는 청풍. 상체를 벗은 채 허리 아래를 얇은 이불로 덮고 있다. 건장한 상체가 보디빌더 같다. 침실 한쪽에는 주렴이 쳐진 욕실이 있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 움찔! 하며 깨어나는 청풍

사락!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서는 포숙정. 문 밖은 약간 밝다. 포숙정을 안내 해온 노파가 등을 들고 있어서.

청풍; (여자...) 눈 감은 채 생각하고

달칵!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는 포숙정

청풍; (유령귀왕 교백이 어째 수청들 여자를 보내지 않는가 싶었다.) 약간 쓴웃음

<내가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건 강호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문간에 서서 망설이는 포숙정을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당연히 유령귀왕 교백은 나와 동침할 여자를 준비해뒀을 텐데 밤이 깊도록 찾아오지 않아서 좀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포숙정의 떨리는 손 배경으로 청풍의 모습이 좀 보이고

청풍; (일단 방에 들어오긴 했지만 망설이고 있다.) 눈 감은 채 생각하고

청풍; (그렇다는 건 저 여자가 하녀나 가기(家妓;개인 집에 고용된 기녀)처럼 천한 신분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건데...) 생각할 때

슥! 이윽고 결심하고 문간을 떠나 침대 쪽으로 다가오는 포숙정

청풍; (드디어 결심을 했군.) 눈 감은 채 생각

청풍; (정황상 저 여자는 유령산장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다.)

청풍; (그런 여자와 동침을 했다가는 번거로운 일이 생길 수도 있는데...) 망설이는 사이에 포숙정은 침대 옆에 이르고. 이어

슥! 침대에 누운 청풍을 향해 절을 한다.

청풍; (수청을 들러온 처지에 절을 하다니...) 어이없고. 헌데

슥! 다시 일어나더니

또 한 번 절을 하는 포숙정

청풍;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의 절을 한다?) 약간 찡그리고

<두 번의 절은 죽은 자에게 하는 제사의 예법인데...> 슥! 청풍의 생각을 배경으로 두 번째 절을 한 포숙정은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든다

청풍; (고의는 아닐 테고...) (긴장해서 살아있는 사람에게 두 번 절 하는 게 결례라는 걸 생각하지 못한 것이겠지.) 생각할 때

포숙정; [천한 계집이 소성주님같이 존귀한 분의 수청을 들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공손히 말하고

청풍; (목소리로 미루어보자면 아주 젊은 여자는 아니다.) (당연히 처녀도 아닐 테고...) 눈 감은 채 생각하고

포숙정; [다만 부끄러움을 견딜 수 없어 면사를 쓰고 온 점은 용서해주시기 바라옵니다.] 슥! 일어나고

청풍; (얼굴을 가린 채 찾아온 것도 그렇고...) (설마 유령귀왕이 자신의 아내나 첩들 중 한 명을 보낸 것인가?) 난감할 때

포숙정; [죄를 짓겠사옵니다.] 사락! 청풍의 아랫도리를 가린 얇은 이불을 걷어버리고.

이불이 걷히자 드러나는 청풍의 아랫도리. 빤스만 걸친 알몸이다. 빤스의 중간 부분은 이미 불룩해져 있고

청풍; (분명한 것은 이 여자가 천한 신분은 아니라는 점이다.) 포숙정이 두 손으로 자신의 빤스를 벗기려는 것을 느끼며

청풍; (거절하려면 더 늦기 전에 해야 하는데...) 갈등할 때

슥! 포숙정이 두 손으로 청풍의 빤스를 아래로 벗긴다

청풍; (이미 늦었다.) 한숨 체념

텅! 빤스가 벗겨지자 무언가 세차게 튀어나오고. 그걸 보며 면사 속에서 눈을 치뜨는 포숙정

청풍; (못 보일 것을 보였으니 이제는 돌이킬 수가 없다.) 체념하고.

포숙정; (이렇게... 이렇게 거대하다니...) 곁눈질로 청풍의 거시기를 보며 달달 떨리는 손으로 청풍의 빤스를 완전히 벗긴다. 아랫도리를 들어서 포숙정이 자신의 빤스를 벗기는 걸 도와주는 청풍.

포숙정;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저 혐오스러운 *뿌리를 뽑아버리고 싶다만...) 청풍의 빤스를 발에서 빼내고. 수치심과 살기를 필사적으로 참으며 곁눈질로 청풍의 거시기를 보고

포숙정; (참아야만 한다. 내 실력으로 이자를 죽이는 건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니...) 슥! 치마를 두 손으로 걷어 올리며 침대 위로 올라가고. 치마 속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다. 신을 벗고 올라가는데 발에는 버선을 신었다.

청풍; (이 여자... 확실히 처녀는 아니다.) 포숙정이 치마를 걷어 올리면서 자신의 아랫도리 위에 가랑이를 벌리며 서는 걸 느끼고

<처녀라면 이렇게 주도적으로 방사를 진행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걷어 올린 치마를 두 손으로 모아 쥐며 청풍의 아랫도리 위에 소변 보는 자세로 앉으려는 포숙정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치마가 허리 위로 걷혀 올라가서 허연 아랫도리가 어둠 속에 다 드러났다.

포숙정; (드디어...) 슥! 소변 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사타구니로 넣은 손으로 청풍의 거대한 거시기를 잡는 포숙정

포숙정; (드디어 그이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남편 뇌공량이 청풍에게 죽던 장면 떠올리고 눈이 광기로 번들. 포숙정의 기억 속 뇌공량은 가슴을 청풍의 손바닥에 밀리는 모습인데 등쪽으로 피와 내장과 뼈가 튀어나간다.

이어지는 회상

 

귀면지존; [이 독약의 이름은 소양갈맥고(消陽渴脈膏)요.] 청풍이 함정에서 벗어나던 것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장소에서 귀면지존이 십센티 정도 길이의 유리병을 들어 보이며 말하던 장면

귀면지존; [점막(粘膜)을 통해 몸속으로 침투하는 성질을 지닌 독인데...] 유리병을 돌아보는 포숙정에게 보여주며

귀면지존; [이름 그대로 양기(陽氣)를 소멸시켜서 경맥을 말라버리게 만드는 독성을 지녔소.] 유리병에 들어있는 끈적이는 액체가 조금 움직인다. 수치심에 얼굴이 좀 발개지고 찡그린 채 그걸 보는 포숙정

귀면지존; [다만 양기를 소멸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여자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고 오직 사내에게만 치명적으로 작용을 하오.]

귀면지존; [이걸 은밀한 곳에 머금은 채 이청풍과 교접을 하기만 하면 그놈은 양기가 소멸되고 경맥이 말라붙어 지옥같은 고통을 느끼다가 죽게 될 것이오.] 음산한 눈빛으로 말하는 귀면지존의 얼굴 크로즈 업

회상 끝

 

포숙정; (음부에 독을 머금은 채 외간 사내와 교접을 하다니...) (그이가 살아계실 때라면 상상도 못할 짓이지만...) 슥! 청풍의 것을 자신의 아랫도리에 끼우려는 몸짓을 하며

포숙정; (그이를 무참히 죽인 이 원수에게 복수 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한 짓도 할 수 있다.) 이를 악물고. 이어

스윽! 포숙정의 육중한 엉덩이가 아래로 내리눌러지고

청풍; [!] 이를 악물며 고개 젖히고

포숙정; [끄윽!] 역시 전율하며 벌벌 떨고. 두 손으로 청풍의 가슴 누른 채

완전히 밀착한 두 사람의 아랫도리. 걷어 올린 치마 아래로 드러난 희고 육중한 엉덩이가 청풍의 거뭇하고 근육질인 허벅지에 짓눌려있다

청풍; (기... 기가 막힌 명기...) (흡사 수많은 문어의 빨판이 숨겨져 있는 것같다.) 벌벌 떨고

포숙정; (정... 정신이 혼미해져! 너무 굵고 뜨겁고 깊어서...) 역시 혼망 가서 벌벌 떨고

포숙정; (그이... 그이와 십년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이런 느낌은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혼망 가면서 두 손으로 청풍의 가슴을 누르고

포숙정; (믿기지 않지만... 이 원수와 나의 속궁합은 너무도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헉헉

포숙정; (그저... 그저 결합 했을 뿐인데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황홀한...) + [!] 혼망 가다가 진저리를 치고

포숙정; (무슨 죄 많은 망상이냐 포숙정아!) (그이를 무참히 죽인 원수와 교접하면서 쾌감을 느껴서 어쩌자는 것이냐?) 이를 악물고

포숙정; (용서 하세요 상공!) 두 손으로 청풍의 가슴 누르면서 뇌공량과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장소는 침실인 데 알몸의 뇌공량이 야한 잠옷 차림인 자신을 무릎에 앉힌 채 정수리에 키스하던 장면이다.

포숙정; (당신... 당신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이럴 수밖에 없답니다.) 청풍의 가슴을 두손으로 누른 채 방아를 찧기 시작하는 포숙정.

청풍; [끄윽!]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포숙정의 엉덩이를 부여잡고

포숙정; (독이... 내가 음부에 머금고 있는 소양갈맥고가 점막을 통해 자신의 몸에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들썩! 들썩! 점점 더 빠르게 아래 위로 움직이는 포숙정의 허연 엉덩이

청풍; [허억! 부... 부인!] 비명 지르며 고개 젖히고

포숙정; (벌... 벌써 하려고 해!) 눈 치뜨고

포숙정; (원수 놈의 더러운 씨가 내 몸속에 뿌려지는 건 죽기보다 싫고 끔찍한 일이다.)

포숙정; (자칫 임신할 수도 있고...) + [공... 공자!] 방아를 찧으며 할딱이고

포숙정; (하지만 지금 중단하면 의심을 살 수도 있다.) (또 소양갈맥고가 이자의 몸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할 수도 있고.) + [어서...] 방아를 더 빠르게 찧으며

포숙정; (어차피 복수만 하면 죽어버릴 작정을 했던 터...) + [마음껏... 참지 마시고.. 원하는 대로...] 고개 숙이며 재촉하고

포숙정; (얼마든지 네놈의 더러운 배설물을 자궁에 받아들여주마.) + [어서... 어서 하세요!] 하악! 교성을 지르며 세차게 몸을 아래 위로 흔든다

청풍; [허억! 부... 부인!] 비명 지르며 고개 젖히면서 포숙정의 엉덩이를 부여잡는다

[!] 입 딱 벌리며 역시 고개 젖히는 포숙정

화산이 폭발하는 형상이 눈을 까뒤집은 포숙정의 뇌리에 떠오르고

포숙정; (하... 하고 있어!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뜨겁고 격렬하게...)

<너무... 너무 강렬하고 깊어서 나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이런... 이런 황홀경은 그이와는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는데...> 몸을 필사적으로 결합한 채 절정을 맛보는 두 사람의 모습 배경으로 포숙정의 생각 나레이션

 

#13>

건물을 밖에서 본 모습. 건물의 계단에 걸터앉아 하늘 보고 있는 위극겸

<부... 부인...> <하악! 벌... 벌써 또 이렇게... 공... 공자님! 정말 대단하세요. 하악!> 건물 안에서 야한 소리가 들리고

위극겸; (여러 가지 의미로 역사가 이루어지는 밤이로군.) 하늘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고

위극겸; (오늘 밤을 기점으로 숱한 목숨들이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될 테니...) 야한 소리가 연신 나는 건물을 배경으로 앉아서 생각하는 위극겸의 모습

 

#14>

더 깊어진 밤. 유령귀왕이 청풍을 영접하던 그 건물. 대부분의 건물에 불이 꺼져 있지만 그 건물에는 불이 밝혀져 있다.

응접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유령귀왕.

유령귀왕; (후회 할 일도 걱정 할 일도 아니다.) 술 마시며 생각하고

유령귀왕; (소소를 마태자와 짝 지어주는 건 내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선택이고 도박이다.)

유령귀왕; (마태자의 사주(四柱)가 틀리지 않는다면 오늘밤 마태자는 거의 확실하게 자식을 얻는다.) 손가락으로 꼽아보며

유령귀왕; (그렇게 태어날 아이가 소소의 소생이라면... 천마성은 사실상 우리 교씨 집안 소유가 되는 것이다.) 히죽

유령귀왕;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찡그리고

<소소가 일전에 찾아왔던 운중신룡 위진천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던 것같았다는 점이다.> 위진천과 인사하며 부끄러워하는 교소소의 모습을 배경으로. 거실에서 위진천과 인사하는 장면인데 현장에 유령귀왕과 교천기도 있었다

유령귀왕; (하지만 지금쯤 소소는 마태자의 여자가 되어 있을 테니 더 이상 헛된 마음을 품지 않겠지.) 술 마시며 생각할 때

교천기; [밤이 깊었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십니다.] 덜컹!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천기

유령귀왕; [어서 오너라 천기야.] 돌아보고

유령귀왕;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해서 잠자기는 틀린 것같구나.] 앞의 자리에 앉으라 권하는 손짓하며

교천기; [마태자가 본장에 머물고 있으니 신경이 쓰이시겠지요.] 유령귀왕 앞쪽 자리에 앉으며 말하고

유령귀왕; [물론이다.] 술 마시며

유령귀왕; [하물며 소소가 마태자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있는 데 어찌 신경이 쓰이지 않겠느냐?] 한숨. 그러자

교천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소가 마태자와 밤을 보내고 있다니요?] 놀라고

유령귀왕; [소소에게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고 했다.]

유령귀왕; [못하겠으면 집을 나가라고 겁을 줬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마태자가 머무는 영빈관에 갔을 것이다.]

교천기; [아버지가 잘못 알고 계십니다.] 굳어진 표정

유령귀왕; [무슨 소리냐? 내가 잘못 알고 있다니?]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부릅뜨는 유령귀왕

교천기; [이곳으로 오기 전에 순찰을 한 바퀴 돌았는데...] [소소는 불 꺼진 자기 방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눈치 보며

유령귀왕; [뭐야?] 벌떡! 일어나고

유령귀왕; [이 망할 년이 그렇게 알아듣도록 설명을 했건만...] 펑! 창문을 박살내며 날아나가고. 분노한 표정으로. 그 뒤에서 + 교천기; [아버지!] 깜짝 놀라며 일어나고

하지만 대답하지 않고 사라지는 유령귀왕. 근처의 경비 서던 무사들이 놀라서 건물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고

교천기; [이게 무슨...] 경악

교천기; [그러니까 아버지는 소소에게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 했는데 소소는 딴 계집을 보내기라도 했다는 건가?] 팟! 놀라며 역시 밖으로 날아가고

교천기; (젠장! 어쩐지 느낌이 좋지 않다!) 이를 갈며 유령귀왕이 날아간 곳으로 날아가고. 건물 주변으로 모여들던 무사들 당황하고

 

#15>

역시 밤. 하늘에는 달. 잘 가꿔진 정원에 둘러싸인 화려한 건물. 건물이 있는 정원 일대가 높은 담장으로 에워 쌓여있어 조용하다. 바로 교소소의 거처인데 불은 안 켜져 있다. 주변에 인기척은 없다.

불이 꺼진 침실의 창가. 잠옷 차림인 교소소가 창틀에 턱을 괴고 앉아서 하늘의 보름달을 보고 있다.

<후환은 없을 거야. 오늘 밤이 지나면 마태자 이청풍은 영원히 동생을 괴롭히지 못하게 될 테니까.> 알몸에 화려한 신부복을 입으면서 웃던 포숙정의 말을 떠올리는 교소소

교소소; (무슨 뜻이었을까? 마태자가 영원히 날 괴롭히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교소소; (설마 그 여자, 마태자를 죽일 생각이었을까?) 침 꼴깍. 하지만

교소소; (내 알 바 아니다. 그 인간이 죽든 살든...) 이내 고개 젓고

교소소; (만일 위공자님을 먼저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혼망 간 표정. 유령귀왕의 거실에서 위진천과 인사하며 수줍어하던 자신의 모습 떠올리며 얼굴 발그레

교소소; (허구헌날 우중충하고 음침한 인간들만 보아온 내게 밝고 자신감 넘치는 위공자님의 모습은 마치 다른 세상의 존재 같았어.)

교소소; (그 때문에 위공자님을 보자마자 한 눈에 반해버렸고...) 화끈거리는 뺨을 두 손으로 만지며 좋아 죽으려 하고

<아버지와 오빠의 눈을 피해서 그분에게 내 마음을 전하게 되었어.> 은밀한 담장 아래에서 위진천의 품에 안겨 키스하는 교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교소소의 생각 나레이션

교소소; (비록 그분에게 몸을 완전히 바친 건 아니지만... 난 이미 위공자님의 여자야.)

교소소; (그런 내게 마태자의 수청을 들라는 아버지의 명령은 청천벽력이었지.)

교소소; (만일 그 여자가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다면 난 유령산장에서 도망쳐서라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했을 거야.) 포숙정을 떠올리고

교소소; (다른 여자가 마태자의 수청을 든 걸 알면 아버지가 노발대발하시겠지만 어쩌겠어?) 샐쭉 거리고

교소소; (하나뿐인 딸을 때려죽이기야 하겠어?) 코웃음. 직후

화악! 갑자기 방안에 돌풍이 불고

교소소; [엄마야!]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돌아보는데

유령귀왕; [소소 네년...] 쿠오오! 돌풍 속에서 나타나며 살벌한 표정의 유령귀왕. 콰당탕! 주변의 가구들이 돌풍에 휘말려 나뒹굴고

교소소; [아... 아버지!] 겁에 질려 비틀 물러나고.

턱! 교소소의 엉덩이가 창틀에 닿고

유령귀왕; [그렇게 알아듣도록 말했거늘...] [아비의 명령을 귓등으로 흘려들어?] 분노

유령귀왕;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마태자의 침실로...] + [!] 말하다가 눈 부릅. 침대를 본다. 침대에는 당연히 화려한 신부복이 없고

유령귀왕; (어쨌든 첫날밤이라 준비해준 예복이 사라졌다.) 불길한 예감에 소름이 오싹 끼치는 유령귀왕.

교소소; [아버지! 진정하시고 제 말도 들어주세요.] 애원

교소소; [사실 저는 운중신룡 위공자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라...] + 유령귀왕; [예복!] 이를 갈며 버럭 고함.

교소소; [흑!] 깜짝 놀라는 교소소

유령귀왕; [아비가 가져다준 신부 예복은 어디로 치웠느냐?] 살벌. 이를 바득

교소소; [그... 그게...] 당황

유령귀왕; [네 년 설마...] 깨닫고 눈 부릅

교소소; [죄... 죄송해요 아버지!] [저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겠다는 여자가 있어서 신부복을 그 여자에게 주었어요.] 눈치 보며 겁 먹은 표정

유령귀왕; [여자?] 콱! 손으로 교소소의 목을 움켜잡고. + 교소소; [악!] 목이 조여지며 비명

유령귀왕; [여자라니...!] [어떤 년이 너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겠다고 했느냐?] 이를 갈며 교소소의 목을 쳐들고

교소소; [몰... 몰라요!] [갑자기 나타나서 대신... 저 대신 마태자의 수청을 들겠다고...] 컥컥! 몸이 허공에 쳐들리며 컥컥 대고

유령귀왕; [닥쳐!] 우둑! 교소소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고. + 교소소; [끄윽!] 눈이 튀어나오려는 교소소

유령귀왕; [어떤 년인지도 모르는 계집을 대신 마태자 침실로 보내는 게 제 정신으로 할 짓이냐?] 분노 살기

교소소; [끄윽! 제... 제발...!] 목이 조여지며 눈이 돌아가고. 그때

교천기; [아버지!] 화악! 실내에 나타나며 다급히 외치고

교천기; [고정하십시오.] [그러다 소소를 죽이시겠습니다.] 콱! 다급히 두 손으로 유령귀왕의 팔과 손을 잡아서 교소소의 목을 풀어주려 하고

유령귀왕; [망할 년!] 퍽! 분노하며 거칠게 교소소를 패대기치고. + 교소소; [악!] 나뒹굴며 비명. 교천기도 유령귀왕이 뿌리치는 힘에 비틀거리며 물러나고

유령귀왕; [철이 없어도 유분수지...] [만일 그년이 마태자를 노리는 자객이면 어쩔 생각이냐?] 분노하고

<자... 자객!> 비로소 사색이 되는 교소소. 나뒹굴었다가 목을 만지며 일어나려 하면서

[!] 교천기도 눈 부릅 뜨고

유령귀왕; [그래서... 그 계집이 마태자에게 위해(危害)라도 가하면 우리 유령산장이 무사할 것 같으냐?]

유령귀왕; [외아들을 잃은 사자천마가 우리 유령산장을 용서할 것같으냐 말이다!] 무섭게 화를 내고

교소소; [저는... 저는 그냥 마태자에게 수청을 들기 싫어서...] 사색이 되어 벌벌 떨고. 손으로 목을 만지면서

유령귀왕; [망할 년! 계집의 좁은 소견으로 가문을 멸문의 위험에 몰아넣기나 하고...] 화악! 다시 몸에서 돌풍이 일어나고

<네년에 대한 처분은 마태자의 안위를 확인하고 내리겠다.> 콰아! 사라지는 유령귀왕의 모습을 배경으로 유령귀왕의 말

교천기; [이런 이런...] 한숨 고개 절레 저으며 창쪽으로 가고

교천기; [이번 일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네 편은 되어주지 못하겠다.] 창쪽으로 가며 교소소에게 말하고

교소소; [오빠...] 울먹이지만

교천기; [마태자의 수청을 들기 싫었으면 멀리 도망쳐버리기라도 할 것이지...] [누군지도 모르는 계집을 대신 보낸 건 정말 생각 없는 짓이었다.] 휘익! 창문 밖으로 날아가고

교천기; [아무쪼록 마태자에게 아무 일 없기를 기도 하거라.] 날아간다

교소소; [내가... 내가 정말 그렇게 죽일 짓을 한 거야?] 억울한 표정으로 이를 갈고

교소소; [하나뿐인 딸을 죽이려 들 정도로 이청풍, 그 인간의 안위가 소중한 거냐고!]

교소소; (아버지도 그렇고 이가놈도 그렇고 미워 죽겠어!) 이를 바득 바득 갈며 울고

<날 홀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해줄 거야.> 방안에 홀로 주저앉아 분해하며 우는 교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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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미녀의 몸을 건 비무

 

 

 

희야가 나온 갱도는 아래쪽에 있는 화독문으로 길이 나있었다. 철광을 캐서 나르는 길이었다.

희야는 배후와 야산 위쪽에서 내려올 수도 있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우묵한 곳으로 옮겨갔다.

육연부가 있는 북쪽 방향으로 별도 잘 보였고 전망도 좋았다.

적들은 당장 희야를 공격할 뜻이 없는 듯 했다. 역시 곽범과 양설을 기다리는 것이다.

축릉사 하나가 말했다.

"흑귀면탈의 말은 뭣하나 맞는 게 없군. 칠접산에 중독되어 나뒹굴거라더니 멀쩡하기만 하니.”

독을 쓴 자들이 희야 등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희야는 저들이 기다리는 것이 곽범과 낭낭뿐만 아니라 육연부 여자들이 음약에 중독되어 발광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희야와 단아 등은 잘 견디고 있었다.

육연부에서 성에 대해서 솔직하고 소탈해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도를 하면서 하나의 마음을 붙잡고 다른 마음에 자리를 내주지 않는 법을 익혀왔던 덕분에 음약의 기운을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와 같은 상태다.

언제 시위가 터지거나 손아귀를 벗어날지 몰랐다.

희야는 업고 있던 단아를 내려놓았다.

부상자들을 뒤로 모으고 싸울 수 있는 상태인 전옥과 두 계집애가 희야 뒤에 섰다.

척살객들은 양소의 명에 따라 희야 앞에서 횡진을 쳤다.

축릉사가 말했다.

"밤길 걷는 계집이 간음을 꿈꾸지 않을 리 없는데 얼굴 없는 사내들을 만났으면 얼굴만 가리면 꿈을 이루지 않겠는가? 우리는 너희 계집들의 목숨을 취할 생각이 없으니 치마들어 얼굴 가리고 죽을 자리를 면하는 게 좋을 거야.”

다른 축릉사가 말했다.

"여자의 부끄러움은 얼굴에 있지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지. 얼굴을 가렸으니 이후에도 알아볼 사람이 없는데 늘 가린 치마 밑이야 부끄러울 일이 있나?”

은근한 말로 시작하는 노골적 유혹이었다.

말을 섞으면 오히려 말려들게 된다.

저런 말들이 계속되면 겨우 버티고 있는 아이들이 이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희야는 그들의 입을 막기 위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도 공력을 과도하게 쓰면 평정을 잃게 될 위험이 있었다.

"칼 든 여자 하나도 상대하지 못하고 여럿이서 음탕한 소리만 늘어놓는다면 사내라고 할 수도 없다. 사내가 아닌 짐승에게 희롱 당한다면 짐승이 수치스러우냐 희롱당한 여자가 수치스러우냐? 여자는 경멸할 뿐 수치스러워 하지는 않는다.”

희야가 냉오하게 말했다.

축릉사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명가 등석자의 궤변을 여자 입에서 듣게 되는군. 말은 그래도 검으로 너를 꺾어야 사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너를 꺾으면 기꺼이 몸을 바치겠다는 말도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희야가 말했다.

"나는 약한 여자인데 천하에 나를 이길 수 있는 자가 얼마나 많겠나? 나는 단지 그대들이 사내인가를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상대가 사내라서 몸을 허락하는 거라면 네 처와 어미는 얼마나 많은 사내에게 몸을 허락하였느냐?”

원래부터 말이 왔다 갔다하는 경향이 있는 희야는 양설의 지도에 따라 명가의 궤변을 익혀오고 있었다.

따라서 희야는 옳다고 했다가도 그르다고 하고, 그 반대로 말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고 이치를 만들어 붙인다.

사업과 거래에서는 쓸 수 없지만 싸울 때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축릉사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내 처와 노모는 밤 걸음을 하지 않지. 종을 거느리지 않고는 바깥출입도 않는다.”

"너 같은 자가 사내라면 네 집 담장을 넘고 네 처와 어미의 치마를 걷는 사내도 있겠지.”

희야가 차갑게 웃으며 축릉사를 욕했다.

“네 아비가 네 아비고 네 자식이 네 자식인 줄은 치마 들어 얼굴 덮었던 네 어미와 네 처가 아니면 누가 알까? 네 집 담장 안의 노복이 너와 닮고 어느 종놈이 네 자식과 닮지는 않았더냐?”

축릉사도 기본적으로는 유교를 신봉하는 자들이었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집착과 처첩의 정절에 대한 강요는 부러지지 않는 신념과도 같았다.

마침내 축릉사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방자한 년.”

희야는 처음과 같은 어조로 욕을 이어갔다.

"두 손이 있으면서 칼도 뽑지 못하고 혀끝만 놀리는 건 손 없어서 짓기만 하는 개보다 못한 자가 아니냐? 근본이 있다면 어찌 사람이 개보다 못하겠는가? 너는 네 아비를 종으로 부려먹은 놈이 틀림없구나.”

친아비를 종으로 부려먹었다는 것은 어미가 종과 사통하여 낳았다는 말이었다.

이에 더 나아가면 종놈의 자식을 적자로 키우고 자기 자식을 서자 종놈으로 키우는 놈도 나온다.

희야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이래도 검을 뽑지 않는 자라면 벗은 여자 앞에서도 다가설 용기가 없을 것이다.”

"네 년의 입을 찢고 주리를 틀어서 보마.”

축릉사가 이를 갈았다.

그자는 소매 속에서 끝이 낫처럼 휘어지고 날카로운 갈고리 두개를 꺼내들었다. 단검보다는 길어 두 자 가량 되었고 찌르거나 걸거나 베는 데 쓸 수 있는 무기였다.

희야는 단공36검법의 첫번째 초식인 만천과해를 준비했다.

단공36검법은 수원의 아버지가 만든 것으로 모든 초식이 병법과 통해있어 단순한 초식 이상의 위력을 발하는 절기다.

근처로 희야와 양소를 나누어 수색하고 쫓던 자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희야와 양소는 더 이상 달아날 곳이 없었다.

그들은 곽범과 양설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미녀를 보자! 하는 소리와 맛나겠다! 는 등 음탕한 소리들도 나왔다.

신분이 낮은 자들은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고수들이 아래에서 희야와 미녀들을 올려다보면서 노는 형세가 되었다.

"음약이 약했던가 보군. 누가 다른 음약 있으면 좀 더 써보는 게 어떻겠소?”

희롱하는 소리도 나왔다.

희야는 단아를 묶느라 이미 찢어진 겉옷을 조금 더 찢어서 면사 밑으로 눈을 가리며 축릉사에게 말했다.

"나는 너를 보고 싶지 않다. 눈을 가렸으니 사내라면 10초 안에 나를 제압할 수 있을 테지. 10초 안에 제압할 수 없다면 스스로 모자람을 알고 물러나라.”

"응당 사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희야의 말에 찬성하는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나왔다.

상황은 미녀가 몸을 걸고 비무 하는 것과 비슷했다.

싸움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고 미녀라면 눈도 까뒤집히는 강호인들이 이 상황을 마다할리가 없었다.

누가 다시 소리쳤다.

"어서 싸워라! 누가 이기든 결과를 보고 싶다.”

희야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면사를 걷었다.

어차피 패하여 죽게 되면 다 드러날 얼굴이었다. 면사로 가려도 사내들의 음심은 끊어내지 못했다.

강호의 여검객 하나로 위기 속에서 검으로 싸우다가 죽어 이름을 남기는 것도 괜찮았다.

흰 천으로 눈을 가렸지만 그 아래 위로는 흰 천보다 더 희고 빛나는 백옥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비녀를 뒤에 받친 작은 귀바퀴에서 이어진 가녀린 턱선이 붉은 입술을 받치고, 오똑한 콧날이 좌우 얼굴의 정기를 모아 아름다움을 비추었다.

연한 분홍빛 두 볼은 입술을 매달았다.

적들이 희야의 미모에 잠시 말을 잃었다.

쌍검을 드리우고 단공36검법의 춤추는 듯한 자세를 취하니 눈 가리고 하강한 선녀 같았다.

누가 욕을 했다.

"육연은 저런 미녀가 열도 넘는다는 거지!”

희야가 당당하게 외쳤다.

"덤벼라.”

축릉자는 조롱당하고 분노하였지만 눈을 가리고 서있는 미녀에게 칼을 휘두를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고리칼을 거두고 물러났다.

"내가 졌다. 눈 가린 여자와 싸워 이긴들 내가 사내라 할 수는 없을 터.”

그러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도전하지. 내 눈을 가리고 도전하지.”

음심이 동해서 주체하지 못하는 자들이 소리쳤다.

눈 가리개와 가슴가리개를 베어라는 말과 치마를 베서 다리를 보자는 소리가 연이었다.

희야는 자기가 푸줏간의 고기와 다름없는 신세라는 것을 알고 시선을 견뎌야 했다.

"말만 많은 것들.”

그저 나직하게 욕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육연부의 감독 희! 누가 나와 검을 겨루겠느냐?”

희야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음성과 태도에 모두 당당한 기상이 서려있었다.

아쉬운 듯이 상대할 수 없다고 물러나버리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 말했다.

"여걸이군. 오늘 죽어도 이름을 크게 남기겠어.”

적이지만 희야에게 감탄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는 희야의 미모에 현혹되어 광기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장미원 계집들 보다 더 낫다는 소리며 온갖 평과 추잡한 소리가 이어졌다.

윗쪽에서 단아를 비롯한 계집애들이 눈물을 흘렸다.

양소가 그들에게 말했다.

"경동하지 마시오. 큰아가씨께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부끄럽지만 변고를 만들지 않아야하오. 육연대인은 지금도 달려오고 있을 것이오.”

전옥이 고개를 저었다.

"감독님은 조금도 쉬지 못했어요. 공력도 많이 써서 독을 누르고 있기도 힘들어요. 저러다가 정신을 놓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이에요.”

전옥이 단아를 보자 단아가 손으로 눈을 가리고 울면서 말했다.

"가! 가서 방법이 없을 때는 감독님을 깨끗하게 보내드려.”

전옥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육연부에는 미녀호걸이 아닌 이가 없구나.”

술법도 깨어지고 내공도 잃어버린 양소는 안타까워서 탄식만 했다.

"저 무리들은 장차 자기들에게 닥칠 죄과를 모르겠지. 이들 하나라도 잃는다면 육연이 삼족을 멸하고도 남을 것을.”

아래쪽에서는 누군가 검으로 희야와 맞서기 시작했다.

전옥이 내려가자 시선이 분산되고 소란스러워졌지만 시작된 싸움이 그치진 않았다.

희야의 검법은 병법의 묘리를 갖추었다.

초식이 절묘하여 내공을 동원하지 않고 초식으로만 맞선다면 절세고수라 할지라도 쉽게 상대하지 못한다.

도전하고 나선 자는 주위의 눈이 있으니 눈 가린 미녀를 내공으로 찍어 내누르는 방법을 쓰지 못했다.

때로는 검이 흔들리고 때로는 몸이 움직이는 희야의 검법 앞에 10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렸다.

도전했던 자는 처음에는 약하게 공격했다.

그러다가 희야가 눈을 가리고도 전혀 불편 없는 것을 보고 제대로 공격하다.

그랬음에도 그자는 희야의 검법을 깨뜨리지 못했다.

걷어내고 끌어들이며 파고들어 흐트리는 매 초수의 절묘함이 보는 이들을 감탄시켰다.

칭찬소리와 함께 희야를 욕심내는 자들의 욕심은 더 높아졌다.

이 자리에서 희야를 탐하고 말게 아니라 굴복시켜 데려가서 첩으로 삼으려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희야의 검술이 대단한 줄 알자 도전할 고수들이 순서를 정했다.

하지만 희야는 내리 일곱 번 모두 눈을 가린 채 10초를 버텼고 도전자들이 부끄러워서 물러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들은 다른 도전자들 때문에 억지를 부리거나 분풀이하지도 못했다.

희야는 독을 누르는 것이 한계에 달해서 입도 열지 못하는 상태였다.

도전자가 나서면 조용히 검법을 펼쳐 버텼지만 몸이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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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낮. 험준한 바위산

좁은 계곡. 그곳을 날아오는 청풍과 위극겸과 두 명의 젊은 무사가 등에 상자를 하나씩 지고 따라온다. 좌우로 엄청난 높이의 절벽

청풍; [유령귀왕 교백이 무제궁쪽으로 말을 갈아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뒷짐 쥐고 걷듯이 날아가며 약간 뒤를 따라 날아오는 위극겸에게 묻고. 두 사람은 여유 있게 나아가지만 젊은 무사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사력을 다해 날아온다

위극겸; [속하의 생각으로는...] 눈치 보면서

위극겸; [늘 그랬듯이 교백은 이번에도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청풍; [유령귀왕 교백이 워낙 꿍꿍이가 많은 인간이라는 건 알고 있던 바이지만...] 찡그리고

청풍; [그래도 이번처럼 무제궁의 거물을 드러내놓고 맞아들인 경우가 없지 않았소?]

위극겸;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제법 다른 상황이긴 합니다.]

위극겸; [이번에 유령산장을 방문한 운중신룡(雲中神龍) 위진천(威振天)은 무제궁의 궁주 칠지무제(七指武帝) 진무량(陳無量)의 둘째 제자입니다.]

위극겸; [무제궁 궁주의 제자가 보란 듯이 유령산장을 방문한 것은 유령귀왕 교백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청풍;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관은 유령귀왕이 무제궁 쪽으로 완전히 돌아설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것같소.]

위극겸; [유령귀왕 교백은 절대 경솔한 인간이 아닙니다.]

위극겸; [천마성과 무제궁 어느 쪽으로 확실하게 노선을 정했다가는 유령산장의 존립에 심각한 위험이 초래될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청풍; [그런 그자가 칠지무제의 제자를 대놓고 만난 이유를 짐작하기 쉽지 않소.]

위극겸; [아시다시피 유령산장은 지리적 이점뿐만 아니라 사파무림(邪派武林)의 종가(宗家)라는 명분까지 갖고 있습니다.]

청풍; [유령산장 교씨일족이 오제(五帝)중 한명이며 사파무림의 시조격인 유령천자(幽靈天子)의 후손임을 총관도 믿고 있는 거요?] 좀 비웃는 표정

위극겸; [교씨일족이 정말 유령천자의 후손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눈치 보며

위극겸; [그들이 유령천자가 남긴 무공과 술법을 구사하는 건 사실입니다.]

청풍; [사람들 현혹하는 술법 따위가 뭐 대단하다고...] 비웃고

위극겸; [그렇게나 말입니다.] 아부

위극겸; [어쨌거나 유령산장과 적대하는 것은 사파무림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셈이 되긴 합니다.]

청풍; [그래서 본성이나 무제궁도 유령산장을 지워버리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손을 쓰지 못해왔지.] 끄덕

위극겸; [유령산장은 자신들의 위치를 이용하여 천마성과 무제궁 어느쪽에도 편향(偏向) 되지 않으면서 실속을 차려왔습니다.]

위극겸; [이처럼 얻는 게 많은 중립정책을 유령귀왕이 포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위극겸; [소성주님께서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신 이후로 열세에 몰리고 있는 무제궁이 유령산장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청풍; [파격적인 제안?]

위극겸; [속하가 추측하기로는 두 가지 정도가 있는데...]

위극겸; [먼저 양측간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혼인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청풍; [혼인이라...]

위극겸; [아시다시피 유령귀왕 교백은 일남일녀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유령공자(幽靈公子) 교천기(喬天基)와 유령일염(幽靈一艶) 교소소(喬素素)가 그것들입지요.> 교천기와 교소소의 모습 배경으로 위극겸의 설명. 교천기와 교소소는 <아랑힐월>에 나온 교가장의 남매 캐릭터. 교천기의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음침하고 교활한 인상. 교소소는 18세 전후로 좀 발랑 까진 인상

 

청풍; [칠지무제가 그들 남매중 누군가를 자신의 슬하와 짝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위극겸; [칠지무제의 슬하에는 딸만 하나 있습니다.] [아들도 둘을 두었었지만 어렸을 때 거푸 요절한 탓이지요.]

청풍; [칠지무제의 유일한 핏줄인 그 딸도 불구가 아니오?]

위극겸; [무염무후(無染武后) 진상파(陳祥波)!] [소성주님에 필적하는 천고의 기재라 아들들을 거푸 잃은 칠지무제에게 위안이 되는 딸이었지만...]

 

<오 년 전 돌연 주화입마에 빠져 하반신이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내공까지 잃어서 지금은 남의 보살핌이 없으면 운신도 못하는 처지라고 합니다.> 정원에서 유모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먼 곳을 보는 진상파의 모습. 이때 나이는 20대 초반. 칠지무제가 월동문 밖에 뒷짐을 짚고 서서 그걸 보며 한숨을 쉰다. 칠지무제 진무량은 다른 작품의 천강마존 진무량 캐릭터

 

청풍; [비록 불구라 해도 진상파는 칠지무제의 유일한 핏줄...] [무제궁의 후계 문제가 걸려있으니 경솔하게 배우자를 구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닐 것이오.]

위극겸; [그래서 속하도 만일 무제궁에서 혼인을 제안했다면 진상파와 관련된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청풍; [유령공자 교천기를 무염무후 진상파와 짝 지어주려는 게 아니면...]

위극겸; [무제궁에서는 유령일염 교소소를 혼인의 대상으로 지명했을 것입니다.]

청풍; [칠지무제는 교소소를 누구와 짝 지어주려고...] 말하다가 입을 다물고

위극겸; [소성주님께서 추측하시는 대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의미심장하게 웃고

위극겸; [칠지무제는 자신의 둘째 제자인 운중신룡 위진천과 유령일염 교소소를 짝 지어주자는 제안을 유령귀왕에게 했을 것입니다.]

청풍; [칠지무제가 교소소의 배필로 내세운 게 위진천일 것이라 단정하는 근거는 뭐요?]

위극겸; [첫째 제자인 석헌중은 이미 가정을 꾸리고 있으니 둘째 제자인 위진천을 내세우지 않았을지요.]

청풍; [하긴...] 끄덕

청풍; [결국 위진천이 직접 유령산장을 방문한 건 선을 보기 위해서였겠소.]

위극겸; [위진천이 교소소와 부부가 되면 무제궁과 유령산장은 인척지간이 되는 셈이므로...] 말하다가 흠칫! 하고. 청풍이 손을 내밀어 위극겸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급정거하고 있다. 시선은 앞쪽을 향한 채

위극겸; [소성주님!] 휘익! 청풍을 따라 급정거하며 의아. 그 뒤를 헐레벌떡 따라오던 젊은 무사들도 흠칫! 하며 급히 멈춰 서려 하고

위극겸; [왜 그러십니까?] 휘릭! 청풍과 나란히 계곡 바닥에 내려서면서 묻고

청풍; [냄새...] 코를 벌름거리고

청풍; [무슨 냄새가 나지 않소?] 코를 벌름거리며 앞을 보고

위극겸; [그러고 보니...] 역시 코를 벌름거리며 놀라고

슈우! 어떤 냄새가 일행의 코 주변으로 흐르고. 젊은 무사들도 흠칫! 하며 코를 벌름거리고

위극겸; [이건 분명 기름 냄새입니다.] 말하며 앞장서서 앞으로 걸어가고. 앞쪽은 약간 굽어지는 모퉁이고

위극겸; [이런 깊은 산중에 기름 냄새가 날 일이 없는데...] 갸웃하며 모퉁이를 돌아가고. 청풍과 두 명의 무사들이 뒤를 따르고

[!] 모퉁이를 돌아서던 위극겸과 그 뒤를 따라가던 청풍, 젊은 무사들 눈 치뜨고

쿵! 앞쪽에는 바위들이 십미터 이상으로 쌓여있어서 길이 막혀있는데. 그 바위들 아래쪽에 여러 개의 나무통이 깨져 있고. 깨진 나무통에서 흘러나온 기름들이 계곡 바닥에 흥건하다

위극겸; [함... 함정입니다!] 기겁하며 뒤로 주춤

위극겸; [어떤 놈들이 길을 막고 기름을 대량으로 뿌려놓았습니다.] [화공(火攻)이 예상 되니 빨리 여길 이탈해야합니다.] 사색이 되어 외치는데

청풍; [이미 늦었소!] 말하며 위를 보고, 반사적으로 위를 보는 청풍과 두 명의 젊은 무사들

쿠쿵! 화악!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바위와 불을 붙인 횃불들이 쏟아져 내려온다

쏟아지는 바위와 횃불들 사이로 절벽 위 양쪽에서 무사들이 바위를 밀어 떨어트리고 횃불을 던지는 것이 보인다.

[헉!] [안... 안돼!] 젊은 무사들 비명 지르며 돌아서서 도망치려 하고.

청풍; [퇴로는 없다.] [내 주변으로 모여라!] 부악! 두 주먹 불끈 쥐어 몸에서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젊은 무사들에게 외친다. 달아나려다가 돌아보는 젊은 무사들. 위극겸도 당황하며 청풍의 옆으로 오고. 직후

콰콰쾅! 바닥을 강타하는 바위들. 바위들이 고여있던 기름에 떨어져 기름을 사방으로 치솟게 만들기도 하고

화악! 확! 튀어 오르는 기름과 횃불들이 만나며 강한 불길을 일으킨다

 

#7>

드드드! 계곡을 밖에서 본 모습. 지면이 갈라져 생긴 긴 균열인데 지진이 난 듯 뒤흔들리고.

콰콰쾅! 화악! 엄청난 폭음과 함께 계곡 아래쪽에서 대량의 연기와 불길이 치솟는다. 계곡 위쪽에 수십명의 무사들이 물러서며 비틀거린다. 지면이 마구 흔들려 휘청거리고. 무사들은 칼과 검 외에도 활과 화살로 무장하고 있다.

화악! 계곡의 밖으로까지 치솟는 불길과 화염.

[해치웠다!] [이 정도 함정이라면 마태자 이청풍이 아니라 그 아비 사자천마 이무외라도 죽이고 남을 것이다.] [드디어 본문이 천마성에 당한 치욕을 갚게 되었구나.] 드드드! 진동하고 흔들리는 양쪽 절벽 위에서 환호하는 무사들. 하지만 그 직후

펑! 갑자기 연기와 불길을 뚫고 미사일처럼 치솟는 청풍. 양손으로 젊은 무사들의 팔을 잡고 있는데 몸이 반투명한 방어막에 덮여있으며 그 방어막에는 위극겸도 들어있다. 위극겸은 청풍의 뒤에 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웅크리고 있고

[헉!] [마... 마태자다!] [마태자가 죽지 않았다.] 경악하는 절벽 양쪽의 무사들. 급히 활을 뽑아드는 자들도 있고

휘익! 사색이 된 젊은 무사들의 팔을 잡고 한쪽 절벽 위에 내려서는 청풍. 위극겸도 자석에 이끌리는 쇳조각처럼 청풍의 몸에 이끌려 근처에 내려서며 휘청거리고

[말도 안되는 괴물...] [호신강기로 쏟아지는 바위와 불길을 뚫고 날아올랐다.] [마태자가 제 아비 사자천마에 못지 않은 고수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다.] 휘익! 패앵! 무사들 공포에 질리면서도 다급히 활에 화살을 메겨서 청풍과 일행을 겨누고

[쏴라!] [죽여라!] [형제들의 복수다!] 피피핑! 쐐액! 수십개의 화살이 일제히 청풍과 일행에게 날아든다. 아주 빠르고 강하다. 바닥에 내려선 젊은 무사들은 사색이 되지만

징! 양손을 좌우로 펼치는 청풍. 손이 진동하고

멈칫! 멈칫! 빠르게 날아들던 화살들이 갑자기 허공에서 멈추고

[헉! 우리가 철궁으로 쏜 화살을 멈추게 했다!] [말도 안되는 격공섭물(隔空攝物)...] 활을 쏜 자세로 놀라는 무사들.

청풍; [네놈들이 누군지는 알고 싶지 않다.] 살벌 표정

청풍; [남의 목숨을 노렸을 때는 네놈들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었을 터...] 스읏! 슥! 양쪽으로 내밀었던 손을 뒤집고

청풍; [그 결의를 존중해주겠다!] 팽! 휘릭! 날아온 방향으로 돌아서는 허공에 뜬 화살들

[우... 우릴 노린다!] [피... 피해라!] [안돼!] 팟! 휘익! 무사들 일제히 날아오르며 비명 지르지만

청풍; [잘 가라!] 스팟! 팟! 양손을 강하게 젓고. 그러자

쩍! 팽! 날아올 때보다 더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들

퍼퍽! 퍽! 푹! 푸푹! 모든 화살이 쏜 자들의 등에 박힌다. 몸이 관통될 정도로 깊게. 허공에 뜬 채 화살에 맞아 휘청하는 무사들

[크아아아악!] [컥!] [아악!] 퍼퍽! 콰당탕! 쐐애액! 화살에 맞은 무사들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떨어진다. 바닥에 떨어지는 자도 있고 깊은 계곡으로 추락하는 자도 있고

<가... 가공!> 전율하고 흥분하는 청풍의 뒤쪽 젊은 무사들. 위극겸은 고개 끄덕이고 있다. 야릇한 표정으로

젊은 무사들; (호신강기로 우박같이 쏟아지는 바위와 지옥같은 불길을 뚫고 탈출한 것도 놀라운데...) (수십 개의 화살을 정확히 쏜 자들에게 돌려보냈다.) 놀라고

<소성주님의 무공은 이미 신화경(神化境)에 접어드셨구나.> 함정을 판 무사들이 몰살하는 배경으로 선 청풍의 모습. 헌데 청풍은 멀리를 보고 있다. 위극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고

반짝! 멀리 있는 높은 산봉우리. 그곳에서 무언가 반짝이고

청풍; [...] 찡그리며 그걸 보고. 흠칫! 하며 그런 청풍을 보는 위극겸

위극겸; [왜 그러시는지요?] 청풍 옆으로 다가와 함께 산봉우리 쪽을 보고

위극겸; [뭔가 발견하시기라도...] 기웃거리며 산봉우리쪽을 보고

청풍; [아니오.] 고개 젓고

청풍; [생각지도 않은 방해 때문에 지체했소. 그만 갑시다.] 걸어가고. + 위극겸; [예...] 산봉우리를 힐끔거리며 따라가고. 젊은 무사들도 짐을 추스르며 걸음 옮기려 하고

청풍; (어떤 자가 지켜보는 기분이었는데...) 찡그리고

청풍; (설령 그렇다 해도 따라잡기는 불가능... 신경 쓰지 말아야한다.) 걸어가고

멀어지는 청풍의 일행. 헌데

 

#8>

멀어지는 청풍의 일행 뒷모습이 원형의 유리에 비친다

산봉우리 근처 바위틈에 앉아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는 여자. 바로 포숙정이고. 포숙정 뒤에는 귀면지존이 서있다.

[...] 뭔가 생각하며 망원경을 내리는 포숙정

귀면지존; [직접 보신 소감이 어떠시오?]

포숙정; [무공으로든 함정으로든...] [마태자 이청풍, 저 마귀를 죽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겠어요.] 이를 바득 갈고.

귀면지존; [본좌도 부인과 같은 생각이오.] 끄덕

귀면지존; [당금 무림에서 마태자를 무공으로 죽일 수 있는 인물은 채 다섯 명이 되지 않소.] 손가락을 펴보이고

포숙정; [귀면지존(鬼面至尊)께서도 그 다섯 명 중 한분이신가요?]

귀면지존; [언감생심!] [본좌도 마태자와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삼할 아래라고 봐야하오.] 고개 젓고

포숙정; [그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이가놈을 죽일 수 있는 비책은 갖고 계신 듯하군요.] 차가운 표정으로

귀면지존; [그렇긴 하오만...] 좀 난감한 듯 말을 흐리고

포숙정; [그게 무언지 기탄없이 말씀해보세요.] [전 이미 이가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맹세한 몸이니...] 고개 조금 돌린 채 쌀쌀 맞게

귀면지존; [그런 결심이시라니 민망함을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소.] [마태자의 거의 유일한 약점은...] 뜸을 드리다가

귀면지존; [호색(好色)이오!] 말한다

포숙정; (역시...) 짐작했다는 표정이고

귀면지존;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 말 그대로 마태자는 여자를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오.]

귀면지존; [본래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도 있지만...] [대대로 이씨 집안은 자손이 귀한 탓에 사자천마가 외아들인 마태자로 하여금 일찍 여자를 알게 한 탓이오.]

포숙정; [그렇군요.] 좀 민망한 표정

귀면지존; [철이 들자마자 여자를 안 결과 이청풍은 여자가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가 되었소.]

포숙정; [물론 숱하게 여자를 건드렸어도 자식은 얻지 못했지요?]

귀면지존; [이청풍의 나이도 이미 약관을 훌쩍 넘겼소.] 끄덕

귀면지존; [그 나이 되도록 단 한명의 자식도 얻지 못해서 이청풍은 물론이고 사자천마도 초조해하고 있는 형편이오.]

포숙정; [그러니까 은인께서 제게 제안하시는 방법이란 것이...] 얼굴 붉어지고. 좀 화난 표정

귀면지존; [부인은 이청풍에게 몸을 허락하기만 하면 남편의 복수를 할 수 있소.]

포숙정; [이청풍이 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방사(房事;남녀간의 교접) 할 때는 방심한다 해도...] 억지로 분노와 수치심을 누르며

포숙정; [보잘 것 없는 저의 무공으로 이청풍을 죽이려는 시도는 그다지 실현 가능해 보이지 않는군요.] 새침. 귀면지존은 품속에 오른손을 넣고 있고

귀면지존; [부인은 굳이 이가놈을 죽이려 애쓰실 필요가 없소.] 슥! 품속에서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내며 말하고. 길이는 십센티 정도인데 안에 끈적이는 검은 액체가 반쯤 들어있다

귀면지존; [이걸 부인의 은밀한 곳에 머금고 있기만 하면 이가놈은 물론이고 그 아비인 사자천마까지 확실하게 죽일 수가 있소!] 유리병을 들어보이며 말하고

<은... 은밀한 곳에 머금고 있으라고?> 침 꿀꺽! 삼키며 그 유리병을 돌아보는 포숙정

 

#9>

<-북망산(北邙山)> 음침한 산. 밤. 하늘에는 보름달. 기암절벽. 도처에 크고 작은 무덤들

기암절벽들 사이에 자리한 음침한 장원. 드라큐라의 성 같은 분위기

<-유령산장(幽靈山莊)> 위 장원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어느 건물. 상복을 입은 무사들이 배회하고 있고. 입구에는 청풍을 수행한 두 명의 젊은 무사들이 긴장한 채 서서 주변을 오가는 상복을 입은 무사들을 보고 있다

유령귀왕; [부디 곡해하지는 말아주시오 소성주!] 굽신거리는 유령귀왕 교백. 청풍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다. <기인천추>에 나온 캐릭터. 교천기와 교소소도 그 작품의 캐릭터. 굽신거리는 유령귀왕 뒤에는 교천기가 굴욕스러운 표정으로 서있다. 유령귀왕과 마주 앉은 청풍의 뒤에는 위극겸이 서있고. 청풍은 차를 마시는 중이다.

유령귀왕; [운중신룡 위진천이 우리 유령산장을 직접 찾아온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소이다.] 비지땀을 흘리며 말하는 유령귀왕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유령산장 장주 유령귀왕(幽靈鬼王) 교백(喬魄)>

유령귀왕; [무제궁에서 중요한 제안을 하기 위해 사자(使者)를 보낸다는 통보를 받긴 했소이다만...] 땀을 닦으며

유령귀왕; [설마 궁주의 제자인 위진천이 그 사자일 줄은 상상도 못했소이다.] 억지 웃음

위극겸; [그러니까 무제궁의 술수에 교장주께서 일방적으로 당하셨다?] 찡그리며 말이 없는 청풍을 대신하여 위극겸이 말하고

유령귀왕; [그렇네 위총관!] 살았다는 표정

유령귀왕; [근래 본장이 천마성과 급격히 친밀해지자 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무제궁이 쓴 꼼수가 위진천을 직접 본장으로 보낸 것이었네.]

유령귀왕;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칠지무제의 제자가 본장을 방문한 것만으로도 천마성으로부터 의구심을 살 건 뻔하지 않은가?]

위극겸; [그렇다 치고...] 냉소

위극겸; [칠지무제가 제자를 직접 보냈다면 대단한 제안을 했을 것같습니다만...]

유령귀왕; [그... 그게...] 당황

위극겸; [소성주께는 차마 말씀드리기 난감한 제안을 받은 것입니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하고. 그러자

유령귀왕; [이 상황에서 내가 뭘 더 숨기겠는가?] 한숨 체념

유령귀왕; [칠지무제는 위진천을 통해서 청혼(請婚)을 해왔다네.]

[!] 차를 마시며 무언가 생각하는 청풍.

위극겸; [청혼?] 짐짓 모르는 척

위극겸; [칠지무제가 외동딸 무염무후 진상파를 소장주에게 시집보내겠다는 제안이라도 한 것입니까?] 유령귀왕의 뒤에 서있는 교천기를 보며

유령귀왕; [그럴 리가 있겠는가?] 기겁하며

유령귀왕; [당금 무림의 그 누가 무제궁의 상속자인 진상파를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망상을 할 수 있겠는가?] 억지 웃음

불만스러운 표정의 교천기. 배경으로 나레이션. <-유령공자(幽靈公子) 교천기(喬天基)>

위극겸; [외동딸을 내세운 청혼이 아니라면 혹시...] 놀라는 척

유령귀왕; [칠지무제는 본 장주의 어리석은 딸년을...] 소매 속에 손을 넣고

유령귀왕; [자신의 둘째 제자인 위진천의 배필로 주었으면 한다는 친서를 보냈네.] 소매 속에 넣었다가 꺼내는 손에 편지가 한통 들려있다.

위극겸; [영애를 무제궁에 달라는 청혼이었군요.] 놀라는 척

유령귀왕; [이게 칠지무제가 위진천을 통해 보낸 서찰이외다.] 슥! 편지를 조심스럽게 청풍의 앞으로 내밀고.

편지봉투의 표면에는 <幽靈鬼王 喬莊主 親傳>이라는 글이 적혀있다.

편지봉투를 보기만 하고 집어 들지는 않는 청풍. 차를 마시면서

유령귀왕; [청혼의 당사자인 위진천이 직접 방문해서 당혹스럽고 난감하긴 했지만...] 그런 청풍의 눈치를 보고

유령귀왕; [일단 완곡하게 거절을 하고 돌려보냈소이다.]

위극겸; [따님을 무제궁에 시집보내면 든든한 배경을 얻게 되는 것인데 받아들이시지 그랬습니다.] 냉소

유령귀왕; [그런 말 마시게나 위총관!] 정색하고

유령귀왕; [우리 유령산장은 천마성과의 우의(友誼)를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네.] [딸년이 무제궁에 시집을 가는 일은 천지가 개벽해도 일어나지 않을 걸세.]

위극겸; [물론 장주님의 지금 그 말씀이 진심이라는 것은 압니다만...]

위극겸; [세상일이라는 건 모르는 법!] [장주께서 상황에 쫓겨 무제궁과 사돈관계를 맺을 일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좀 비웃고

유령귀왕; [하늘에 맹세코 그런 일은...] 좀 화난 표정으로 말하다가 흠칫! 하고. 탁! 청풍이 소리를 내어서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움찔하며 입을 다무는 유령귀왕. 위극겸도 청풍의 눈치를 보고

청풍; [교장주!] 찡그리며

유령귀왕; [말씀 하시지요 소성주!] 눈치 보며

청풍; [밤이 깊어져 오늘은 부득불 귀장에서 하룻밤 폐를 끼쳐야겠습니다.] 슥! 일어나고

유령귀왕; [폐라니...] [그런 말씀 마십시오.] 따라서 일어나고

유령귀왕; [귀한 걸음을 해주셨는데 어찌 대접이 소홀할 수가 있겠소이까?] [거처를 마련해두었으니 함께 가십시다.] 앞장서서 거실을 나가며 안내하고. 그 뒤를 따라가는 청풍과 위극겸

유령귀왕의 안내를 받아 건물에서 나가는 청풍과 위극겸. 그걸 노려보는 교천기

교천기; (젠장!) 이를 바득

교천기; (아무리 상대가 무림 양대세력중 하나인 천마성의 후계자라 해도 아버지의 저자세는 지나치시다.)

<아들인 내 또래의 애송이에게 아랫사람인 것처럼 굽신거리기나 하고...> 가식적인 웃음 지으면서 청풍을 안내하여 건물 앞을 떠나는 유령귀왕 교백의 모습 배경으로 교천기의 생각 나레이션

교천기; (난 절대 아버지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는다.) 이를 바득

교천기; (마태자 이청풍!) (언제고 나 교천기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사악하게 웃는 교천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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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고천장 -魔高千丈

 

#1>

<무림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천마성(天魔城)과 무제궁(武帝宮)의 쟁패는 어느덧 육십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 산을 등지고 자리한 웅장한 장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격전. 검은 옷의 무사들이 흰옷을 입은 무사들이 지키는 장원을 공격하는 모습. 전세는 치열하지만 검은 옷의 무사들쪽이 이기고 있다. 담장을 넘거나 무너트리고 안으로 쇄도하는 검은 무사들. 흰옷의 무사들도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그래서 아직 승패는 결판나지 않은 모습이다.

<어느 쪽의 전력도 상대방을 압도하진 못하는 탓에 정마쌍천(正魔雙天)으로 불리는 양 가문의 격돌은 끝날 줄 모르고 지루하게 이어져 온 것이다.> 위의 격전 장면에서 장원의 정문 모습 정문 앞에서 두 명의 인물이 싸우고 있다. 두 사람의 싸움은 다른 무사들처럼 날고 뛰는 게 아니라 마주 선 채 서로를 치는 모습이다. 둘 다 건장한 체격인데 한명은 평균보다 약간 더 큰 체격이지만 다른 한명은 2미터쯤 되는 키에 보디빌더같은 거인이다. 작은 쪽이 청풍이다. 이때 청풍의 나이는 20대 초반. 청풍의 몸은 방어막에 덮여있지만 거인은 방어막을 두르지 않은 대신 온몸이 강철같이 단단해 보인다. 두 사람이 싸우는 배경인 장원의 정문 처마에는 <鐵王莊>이라는 글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두 사람 주변에는 양쪽의 고수들 수십명이 손에 땀을 쥔 채 보고 있다. 관전하는 자들은 나이가 좀 있어서 양진영의 지휘부임을 알 수 있게 하고

<그러나 궁즉통(窮卽通)! 일갑자(一甲子) 넘게 균형을 이루어온 양 가문의 전력은 지난 몇 년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정문 앞에서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 크로즈 업. 패도적인 인상의 청풍과 보디빌더같은 체격에 몸이 강철처럼 번들거리는 거인이 모습. 이 거인은 철왕장의 장주인 철신금강 뇌공량. <건곤일척 자료집 제21페이지>의 뇌공량 캐릭터로 옷이 터져나가서 상체는 거의 벌거벗은 모습. 이때 나이는 40전후인데 옷이 터져나가 드러난 상체가 금속질로 번들거리게 묘사. 청풍과 뇌공량은 3미터쯤의 거리를 두고 마주 전 채 서로에서 주먹과 장풍을 날린다. 뇌공량은 벼락이 일어나는 주먹을 지르고. 청풍은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그 공격을 막고 흘려보낸다. 두 사람 앞 뒤로는 양 진영의 리더들이 손에 땀을 쥐며 보고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한 명의 기린아(麒麟兒)의 출현에 의해서였다.> 크아! 악을 쓰며 강력한 주먹을 날리는 뇌공량의 모습. 쇳덩이같은 주먹이 벼락과 충격파를 몰고 청풍에게 날아든다

! 뇌공량의 강력한 주먹이 청풍이 몸을 두른 방어막을 때려 출렁이게 만든다. 방어막이 청풍의 뒤로 확 밀리는 모습이고

! 그 충격파에 청풍의 가슴에 타격이 가해지고

! 코와 입으로 피를 흘리면서 장풍을 날리는 청풍. 손바닥에서 손 모양의 섬광이 날아가

! 강철로 만들어진 것같은 뇌공량의 가슴을 때린다. 하지만

! 뇌공량의 몸을 진동시키기만 할 뿐 흔적도 남지 않는 청풍의 장풍

뇌공량;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이냐 이()가야?] 콰직! 주먹을 움켜쥐어 다시 주먹질을 하려는 자세로 외치고. 눈 부릅뜬 뇌공량의 얼굴 배경으로 나레이션. <-무제궁 서북면(西北面) 통령(統領) 철신금강(鐵身金剛) 뇌공량(雷空量)>

뇌공량; [나 뇌공량의 철왕금강신(鐵王金剛身)은 천하최강의 외공(外功)이다!] [네놈의 봄바람 같은 장풍 따위에는 타격을 입지 않는다.] 부악! 바캉! 다시 청풍에게 내지르는 뇌공량의 주먹에서 엄청난 풍압과 벼락이 일어난다.

청풍; (이게 저자의 최대치 공격이겠군.) ! 양팔을 십자로 교차하며 기합을 넣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천마성 소성주 마태자(魔太子) 이청풍(李淸風)>

바웅! 청풍의 몸을 두른 방어막이 더 강화되고

! 탄력 있는 고무같은 그 방어막을 강타하는 뇌공량의 주먹. 주먹에 맞은 청풍의 방어막이 안으로 움푹 들어가며 그 충격파가 방어막의 다른 부분으로 퍼진다. 방어막을 움푹 들어가게 만드는 뇌공량의 주먹은 거의 청풍의 교차한 팔에 닿을 뻔하고

콰앙! 콰드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확 밀려가는 청풍. 양팔을 가슴 앞에 교차한 채 버티고 손 두 발이 바닥에 깊은 고랑을 만들고. 그 앞에서 주먹을 휘두른 자세인 뇌공량의 역동적인 모습.

쿨럭! 피를 토하는 청풍.

[와아!] [이겼다!] [역시 장주님은 무제궁 사대천왕(四大天王)중 한분이시다!] [이가놈을 때려 죽이십시오 장주님!] 뇌공량의 뒤에서 환호하는 흰 옷의 무사들. 반면

[... 저런...] [소성주님!] [소성주님께서 중상을 입으셨다.] [안돼!] 청풍 뒤쪽에 서있던 검은 옷의 무사들은 사색이 된다. 그자들 중앙에는 위극겸이 서있다. 다른 작품의 위극겸과 동일 캐릭터이고 별호는 삼절마유로 천마성의 외총관이다. 이때 위극겸의 나이는 40대 중반인데 위극겸은 다른 자들과 달리 그리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고

뇌공량; [여기까지다 마태자 이청풍!] 으스대며 청풍에게 다가가고, 옷이 찢어져 드러난 상체의 피부가 강철처럼 번쩍이고

뇌공량; [지난 몇 년간 네 놈의 독수에 쓰러진 무제궁 형제들의 복수를 오늘 내 손으로 해주겠다.] 우둑! 양손을 마주 쥐어 소리를 내며 흉포하게 웃고

뇌공량; [네 아비 사자천마(獅子天魔) 이무외(李無畏)도 곧 보내줄 테니 먼저 저승에 가서 기다리...] + [!] 덜컥! 말하다가 무언가 느끼고 눈 부릅 뜨고. 그러자

청풍; [이제야 느낌이 오는 모양이로군.] 소매로 피를 닦으며 웃고. 몸을 바로 세우면서

뇌공량; [!] 얼굴이 고통으로 이지러지면서 비틀거리고

[... 장주님이 왜 저러시지?] [왜 그러십니까 장주님?] 뇌공량의 부하들이 놀라 외치고.

우둑! 우두둑! 강철로 만들어진 것같이 번들거리는 뇌공량의 상체가 마구 꿈틀대며 움직인다. 몸 속에서 무언가 돌아다니는 모습이고.

뇌공량; [끄윽!] 비틀거리며 물러서고, 얼굴은 고통으로 이지러지는데

[... 저게 무슨...] [장주님의 몸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장주님은 외가기공(外家奇功)으로는 천하를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분인데...] 철왕장의 무사들 당황하고

뇌공량; [네놈...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비틀. 고통으로 이지러진 채 청풍을 노려보고. 청풍은 입과 코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다가오고 있다

청풍; [뇌공량!] [철신금강이라는 별호에 걸맞게 네 몸뚱이가 강철보다 더 단단하다는 건 사전에 알고 있었다.] ! 피를 옆으로 뱉고

청풍; [당연히 널 상대하기 위해 특별한 수단을 준비했다.] 소매로 입과 코의 피를 닦고

뇌공량; [... 네놈의 공격은 내 몸에 흠집도 못 냈는데 어떻게 이런...] 우둑! 우두둑! 몸속에서 무언가 돌아다니는 모습으로 고통스런 표정. 입과 코로 피가 흐르고

청풍; [비록 네 몸뚱이가 강철 이상으로 단단하긴 해도 피부 안쪽은 보통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 소매를 내리며 웃고

뇌공량; [... 설마...!] 깨닫고

청풍; [그렇다.] [난 지금까지 널 가격한 모든 장력에 격산타우(隔山打牛)의 이치를 몰래 가미했었다.] 끄덕

뇌공량; [격산타우!] 눈 부릅

위극겸; (역시...) 끄덕. 야릇한 미소. 배경으로 나레이션. <-천마성 외()총관 삼절마유(三絶魔儒) 위극겸(威極謙)>

[격산타우라면...] [산 너머의 소를 때린다는 이름 그대로 간격을 두고 타격을 가하는 무공이잖은가?] 위극겸 주변의 천마성 무사들 흥분하고

청풍; [물론 격산타우는 그리 효과적인 무공이 아니다.] [잘해야 전체 타격의 이삼 할 정도만 몸 속으로 스며들게 할 수 있을 뿐이다.] 고통으로 이지러진 채 비틀거리는 뇌공량의 앞에서 천천히 산책하듯 걸으면서 말하고

청풍; [그 때문에 난 네 미련한 주먹질을 견디면서 열 번 이상을 거푸 가격해야만 했다.]

뇌공량; [... 교활한...] 비틀

청풍; [격산타우를 써서 네 단단한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게 만든 형극장강(荊棘掌罡)의 가시들이 지금 네 몸속을 난도질 하고 있을 것이다.] 몸속에서 무언가 마구 돌아다니는 모습인 뇌공량의 모습을 보며 웃고. 이제 뇌공량의 입과 코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고

[... 형극장강이라면 가시같이 날카로운 강기인데...] [그게 장주님의 몸속을 누비고 다니는 중이라니...] 철왕장 무사들 공포

청풍; [아직 살 수 있는 기회는 있다.]

청풍;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앞으로는 무제궁 대신 천마성에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하면 형극장장의 힘을 뽑아내주마.] 거만하게

뇌공량; [개소리는...] 이를 갈고.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면서

뇌공량; [저 세상에 가서 마저 해라!] 부악! 악을 쓰며 사력을 다해 청풍을 향해 주먹을 날려온다. 주먹 주변에서 벼락과 돌풍이 일고

청풍; [안타깝군!] ! 한쪽 발을 강하게 앞으로 내딛으며

청풍; [살 수도 있었는데 죽는 쪽을 선택하다니...] 부악! 몸을 강하게 틀어 뇌공량의 주먹을 피하면서

! 몸을 트는 반동으로 강력하게 손바닥으로 뇌공량의 가슴을 친다.

! 뇌공량의 가슴을 친 청풍의 손바닥이 진동하고

! 가슴은 멀쩡하지만 등쪽이 터지면서 부서진 뼈와 내장과 심장이 튀어나가는 뇌공량

[!] [!] 보고 있던 양진영의 모든 사람들 경악하고

위극겸; (상상이상이로군!) 식은땀 흘리고

퍼억! 후두둑! 바닥에 흩뿌려지는 내장과 뼈와 심장들

<내공을 운용하지 못하면 외공도 약해진다. 그 때문에 강철보다 단단하던 뇌공량의 몸뚱이도 방금 전에 가해진 소성주의 일격을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위극겸의 생각 + 뇌공량; [끄윽!]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입과 코로 피를 흘리는 뇌공량. 청풍은 손바닥을 내밀어 앞으로 기울어진 뇌공량의 몸을 떠받히는 자세로 서있다. 굴진자세로.

쩌적! 청풍의 손바닥이 닿은 뇌공량의 가슴에 마구 균열이 가고 있고

뇌공량; [... 이청풍...] 벌벌 떨며 양손으로 청풍을 끌어안으려 하고

뇌공량; [네놈이 손에 묻힌... 무고한 피의 대가는... 오직 네놈의 피로만 치룰 수 있을 것이다.] ! ! 이를 갈며 양손으로 청풍의 어깨를 잡지만

청풍; [그게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는 유언인가본데...] 비웃고

청풍; [너무 자주 들어서 그다지 감흥은 없군.] ! 청풍의 손바닥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터엉! 뒤로 넘어가 바닥에 쓰러지는 뇌공량의 거구. 그 앞에서 청풍이 손바닥을 내민 자세로 서있고

[와아!] [해치웠다.] [드디어 무제궁의 사대천왕중 한 놈도 소성주님 손에 죽었다.] [마태자님 만세!] 위극겸 주변에서 일제히 환호하는 천마성 무사들.

위극겸; (드디어 결말이 났군.) 고개 끄덕이고 있고

[크윽!] [... 어떻게 이런 일이...] [장주... 장주님께서 저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다니...] 반면 철왕장의 무사들은 망연자실. 오열하고

도처에서 벌어지던 싸움이 멈춰지고. 모두 정문 쪽을 보는데

청풍; [들어라!] 주변 둘러보며 고함

청풍; [항자불살(降者不殺)!]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않는다!] 청풍의 고함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지고. 천마성 무사들과 싸우던 철왕장 무사들 사색이 되고

청풍; [그러나 끝내 저항하는 자는...] 살벌한 표정을 짓고

청풍; [역자필살(逆者必殺)!] [기필코 죽여서 뇌공량의 저승길 동무로 삼아줄 것이다.] 살벌하게 웃고. 그러자

! ! 손에서 무기를 떨구는 철왕장 무사들

[투항하자!] [장주님께서도 패사하셨는데 더 이상 싸우는 건 무의미하다.] [우리가 졌소.]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시오.] 바닥에 주저앉는 철왕장의 무사들

위극겸; (현명한 판단이고 처리다.) 끄덕.

<철왕장 무사들이 끝까지 저항했다면 우리 측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을 테니...> 천마성 무사들이 철왕장 무사들의 혈도를 찍거나 밧줄로 묶는 것을 보며 생각하고

위극겸; (소성주는 비단 무공이 부친인 성주에게 필적할 뿐 아니라 냉철한 안목과 탁월한 지도력까지 갖추고 있다.)

위극겸; (덕분에 우리 천마성의 전력은 급상승했다.) (성주가 갑자기 두 명이 된 셈이니 무제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위극겸; (지난 몇 년간 무제궁의 수많은 고수들이 소성주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었고...)

위극겸; (오늘 마침내 무제궁의 사대천왕 중 한명이며 무제궁의 서북면 분타들을 총괄하는 철신금강 뇌공량까지 소성주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위극겸; (무제궁의 최고 고수들인 사대천왕중 한명이 죽었으니 육십년 넘게 유지되어온 정마쌍천(正魔雙天) 간의 세력 균형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겠구나.) 생각할 때

[상공!] 누군가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고. 흠칫! 하며 일제히 철왕장의 정문을 보는 사람들. 청풍도 돌아보고

포숙정; [상공! 상공!] 울부짖으며 철왕장의 정문을 통해 밖으로 달려 나오는 여자. <건곤일척 자료집 제23페이지>에 나오는 포숙정 캐릭터. 나이는 30살 가량. 절세미녀인데 좀 기가 센 인상이다. 실제로 곧 남편 복수를 하기 위해 끔찍한 짓도 마다 하지 않는다. 당황한 천마성의 무사들은 포숙정을 제지하지 못하고

위극겸; (드디어 등장하셨군!) 뇌공량의 시체 쪽으로 울부짖으며 달려오는 포숙정을 보며 눈 번뜩이고. 위극겸은 포숙정의 등장을 예견하고 있었다.

포숙정; [안돼요 상공! 안돼요!] 와락! 뇌공량의 시체 옆에 주저앉으며 뇌공량의 시체를 끌어안는다.

청풍; [위총관!] [저 계집은...?] 포숙정이 뇌공량의 머리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것을 보며 위극겸에게 묻고

위극겸; [포숙정(浦淑貞)이라고... 뇌공량의 마누라입니다.]

청풍; [내가 또 본의 아니게 과부를 한 명 만들었군.] 쓴웃음

청풍; [홀몸이 된 게 가엽긴 하지만 방치하면 철왕장을 장악하는데 방해가 될 거요.] 돌아서고

청풍; [저 여자에게 뇌공량의 장례를 치르게 해준 후 본성으로 이송하도록 하시오.] 철왕장의 정문쪽으로 가려 하고

위극겸; [분부 받들겠습니다.] 고개 숙일 때

포숙정; [마태자 이청풍!] 남편의 시체를 끌어안은 채 돌아보며 악을 쓰고.

철왕장 정문쪽으로 가다가 멈춰 서며 돌아보는 청풍

포숙정; [나도 이 자리에서 남편처럼 죽여라!] [만일 날 살려둔다면...]

포숙정; [기필코 내 손으로 네 놈의 심장을 뽑아내고 말겠다.] 악을 쓰고

[이년이...] [감히 누구에게 개소리냐?] [남편 곁으로 가고 싶으냐?] 천마성 무사들이 살벌하게 포숙정을 덮쳐가려 하지만

청풍; [됐다.] 손을 들고

멈추는 천마성 무사들

청풍; [지아비 잃은 계집의 한풀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되는 일이다.] 웃으며 철왕장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고. 위극겸은 남고 몇 명의 나이 든 무사들은 따라간다.

[예 소성주님!] [하긴...] 무사들도 머쓱하고

포숙정; [두고 보면 알 게 될 것이다. 나 포숙정이 그저 한풀이로 네놈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것인지!] 여전히 악을 쓰고. 철왕장 정문을 통해 철왕장으로 들어가는 청풍을 향해 악을 쓰고

포숙정; [천지신명께 맹세하거니와...] [마태자 네놈과는 한 하늘 아래에서 살지 않겠다.] 악을 쓰고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표시로 손을 들어 보이며 철왕장 안으로 들어가는 청풍. 나이 든 무사들이 따라가고. 철왕장 안에서도 천마성 무사들이 철왕장 무사들을 묶어서 끌고 가고 있다. 여자와 아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한곳에 모여 있고 천마성 무사들이 감시한다.

포숙정; [내 이름을 기억해둬라 마태자! 나 포숙정이 네놈을 파멸로 이끌 테니...] 악을 쓰며 우는 포숙정. 주변의 천마성 무사들은 설레 설레 고개를 젓고. 반면

[으아아아!] 울부짖는 포숙정을 지긋이 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위극겸

 

#2>

달이 떠있는 밤. 철왕장. 도처에 횃불이 밝혀져 있고. 천마성 무사들이 경비를 서고

경비 서는 무사들 빼고 천마성의 일반 무사들은 불이 환하게 켜진 대청이나 마당에서 술을 마시며 놀고 있다.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는 놈들도 있고

감옥이나 건물에 갇혀 있는 철왕장 식솔들. 남자들은 비참한 표정. 여자와 아이들은 겁에 질려 울고 있고

감옥 건물. 엄중한 감시

감옥 내부. 철창이 쳐진 감방마다 철왕장 무사들이 가득 들어있다. 나이가 있어 보이고 고수들로 보이는 자들이다. 철왕장의 주요인물. 복도 끝에 철문이 달려 밖에서 안 보이는 감방이 있다

사내1; [두고 봐야겠지만... 일단 천마성의 인간들이 본장의 식솔들을 해코지하지는 않고 있어.] 옆의 동료에게 속삭이고

사내2; [마태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본장을 천마성의 분타로 삼을 계획일 게야.]

사내2; [그래서 본장 식솔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졸개들이 망나니짓을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겠지.]

사내3; [하지만 언제 돌변해서 본장을 지옥으로 만들지 모르는 일이네.]

사내1; [마태자가 자신에게 맞서는 문파나 가문은 흔적도 남지 않게 쓸어버려온 건 잘 알려진 사실이지.]

사내2; [돌아가신 장주님께는 죄송하지만 천마성에 복속할 수밖에 없어.]

사내3; [피붙이들의 안위가 걸려있으니 어쩔 수 없지.] 한숨

사내1; [그나저나 주모님이 걱정이로구만.] 복도 끝의 철문을 보며 한숨 쉬고

다른 놈들도 철문을 보고

 

#3>

<그렇게 금슬이 좋으셨던 장주님과 하루아침에 사별을 하셨으니 그 심정이 오죽하시겠나?> 철문 안쪽의 독방을 배경으로 사내1의 말 나레이션. 철문 안쪽은 어두운 감방인데 바닥에 포숙정이 시체처럼 늘어져 있다. 완전히 탈진한 모습이고.

힘없이 늘어진 포숙정. 그런 포숙정의 뇌리로 떠오르는 장면. 남편 뇌공량이 청풍에게 죽던 장면이다.

포숙정; (죄송해요 상공! 죄송해요.) 주르르! 눈물 흘리며 울고. 눈은 감은 상태

포숙정; (신첩이 무능해서 원수가 지척에 있는 데도 복수를 해드릴 수가 없어요.)

포숙정의 뇌리에 이어지는 장면. 뇌공량과의 행복하던 시절. 침실에서 거의 알몸인 채 뇌공량의 품에 안겨 수줍어한다.

포숙정; [이청풍... 이청풍!] 주먹 쥐고 이른 간다.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흐르고

포숙정; [네놈에게 복수만 할 수 있다면 웃으면서 지옥에라도 들어갈 수 있다.] 이를 갈며 중얼거리고. 바로 그 직후

<지금의 그 맹세, 믿어도 되겠소?> 누군가의 말이 들려 눈 부릅 뜨는 포숙정. 이어

푸스스! 가루 같은 게 포숙정의 주변으로 떨어지고

! 달빛이 어둑한 감방 안을 비춘다

포숙정; (누가...) 놀라며 고개 들어 위를 보고. 조금 일어나며. 그러다가

포숙정; [!] 눈 부릅 뜨며 놀라고

푸스스! 쿠오오! 검옥의 천장 일각이 소용돌이치면서 천장이 가루가 된다. 기와와 지붕 구조물이 가루가 되면서 생기는 틈으로 달빛이 비스듬히 감방 안으로 내리비추고

포숙정; (... 뇌옥의 지붕이 가루가 되고 있어!) 놀라 일어나 앉을 때

슈우! 넓어지는 구멍을 통해서 천천히 아래로 하강하는 사내. 얼굴에 귀신가면을 쓰고 있다. 다른 작품의 <귀면지존>이고. 이 작품에서도 귀면지존으로 묘사. 귀면지존의 정체는 위극겸과 위극겸의 아들인 위진천이다. 교대로 가면을 써서 귀면지존으로 위장하는데 지금은 위진천이 귀면지존으로 위장하고 있다.

포숙정; (고수...) 슈우! 달빛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귀면지존을 보며 놀라고

<상상을 초월하는 고수가 날 찾아왔어.> 스윽! 이윽고 바닥에 내려서는 귀면지존을 배경으로 포숙정의 놀람과 흥분. 그때

귀면지존; [다시 한 번 묻겠소.] 귀신 가면 속에서 강렬한 눈을 번득이며 말하고

[!] 정신 차리는 포숙정

귀면지존; [마태자 이청풍에게 복수 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으신 것이오?]

포숙정; [천지신명께 맹세를 하겠어요.] 단호

포숙정; [복수를... 무참히 돌아가신 남편의 복수를 위해서라면 화산에라도 뛰어들 수 있어요.] 이를 갈고

귀면지존; [그 정도의 결의라면 충분하오.] ! 손을 내밀고

귀면지존; [부인에게 마태자 이청풍, 아니 천마성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기회를 드리겠소.] ! 귀면지존의 손바닥이 진동하고

[!] 스으! 약간 놀라는 포숙정의 몸이 허공으로 천천히 떠오르고

귀면지존; [일부함원(一婦含怨) 오월비상(五月飛霜)이 뭔지 마태자와 천마성의 인간들은 곧 알게 될 것이오.] 흐흐흐! 슈우! 웃는 귀면지존의 몸도 떠오르고. 먼저 떠오르는 귀면지존의 몸을 따라 포숙정의 몸도 떠오르고

포숙정; (이자가 누군지는 상관없다.) 자신보다 조금 앞서 떠오르며 지붕에 난 구멍을 향해 올라가는 귀면지존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내게 상공의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자라면 모든 걸 바칠 수 있다.> 귀면지존과 함께 천장에 난 구멍으로 날아올라가는 포숙정의 모습 배경으로 포숙정의 생각 나레이션

 

#4>

역시 밤. 철왕장.

화려한 건물. 천마성의 무사들이 삼엄하게 경비 서고 있고

불 켜진 실내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청풍. 위극겸과 나이 든 무사들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위극겸을 보여주어서 포숙정을 구해간 건 위극겸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청풍; [철왕장은 우리 천마성과 무제궁의 대결에서 요충 중의 요충이오.] [무제궁에서도 반드시 탈환을 시도할 터!]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할 것이오.]

[명심 하겠습니다 소성주님!] 나이 든 무사들이 고개 숙이고

청풍; [일단 지() 당주가 철왕장을 맡아서 정비해주시오.] 늙은 무사에게 말하고

청풍; [본성으로 귀환하는 대로 본성의 정예들을 추가로 보내주겠소.]

무사1; [신명을 바쳐서 철왕장을 보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청풍에게 지목된 늙은 무사가 포권을 하며 대답하고

청풍; [나는 날이 밝는 대로 유령산장(幽靈山莊)을 향해 출발할 예정이니 수고를 해주시오.]

무사2; [유령산장에는 무슨 일로...]

청풍;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유령산장은 지금까지 본성과 무제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중립을 견지해왔는데...]

청풍; [최근 유령귀왕(幽靈鬼王) 교백(喬魄)이 무제궁의 요인을 접견했다는 첩보가 있소.] 힐끔 위극겸을 보며. 위극겸은 고개 조금 숙이고

무사1; [유령귀왕 교백! 그 놈이 간덩이가 부었군요.]

무사2; [명목상으로는 우리 천마성에 충성하는 척 하면서 무제궁의 인간들과 어울리다니...] 분노하고

청풍; [무제궁 측에서 본성과 유령산장의 사이를 이간질하기 위해 꾸민 공작일 수도 있으니...] 말하다가 입을 다물고

다른 자들도 흠칫! 할 때

 

[급보!] 휘익! 한명의 젊은 무사가 다급하게 건물 쪽으로 날아온다. 건물을 경비하던 무사들 흠칫! 하고

 

위극겸; [이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른 무사들도 흠칫. 청풍은 약간 이마 찡그리고

위극겸; [무슨 일이냐?] 덜컹! 문을 열며 밖에 대고 외치고

젊은 무사; [소성주님께 보고 드립니다!] ! 열린 문 밖에 한쪽 무릎 꿇으며 포권하고. 주변의 경비서던 무사들 당황

젊은 무사; [뇌공량의 처, 포숙정이 뇌옥에서 사라졌습니다.] 사색이 되어 말하고

[!] [!] 건물 안의 모든 사람들 놀라고

 

#5>

뇌옥. 수많은 천마성 무사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고. 뇌옥의 문은 열려있고

뇌옥 내부. 복도 좌우의 감방에 갇혀있던 철왕장 요인들이 창살에 매달려 뇌옥의 가장 안쪽에 자리한 철문 쪽을 보고 있다. 그 철문은 열려있고. 그 안에 몇 사람이 서서 천장과 바닥을 보고 있다.

철문 안쪽. 포숙정이 갇혀있던 감방. 청풍이 서서 천장을 보고 있고. 주변을 나이 든 무사들이 굳응 표정으로 살피고 있다. 위극겸은 안보인다

천장에 나있는 직경 2미터쯤의 구멍을 통해 달빛이 흘러들고 있고.

무사1; [기와는 물론이고 천장을 이루고 있던 철골과 석재까지 고운 가루가 되었습니다.] 푸스스! 한 무릎 꿇은 채 손으로 바닥에 흩어진 모래같은 것들을 쥐어보며 말하고

무사1; [짧은 시간 안에 뇌옥의 천장을 고운 모래처럼 분쇄시킬 수 있었다면 범인은 무시 못할 고수인 게 분명합니다.]

무사2; [무제궁 상층부의 어떤 인간이 뇌공량을 도우러 왔다가 이미 늦은 걸 알고 포가 계집만 구해간 것 같습니다.] 청풍의 눈치를 보며 말하고. 그때

<다녀왔습니다 소성주님!> 누군가의 말이 들리고

휘익! 천장에 난 구멍을 통해 감방으로 날아 내리는 위극겸

[총관!] 바닥을 살피던 나이 든 무사들 일어나고

휘익! 청풍의 앞쪽에 날아 내리는 위극겸

[어떻소이까?] [범인이 어느 방향으로 달아났는지 확인하셨소이까?] 나이 든 무사들이 위극겸에게 묻고

위극겸; [동쪽으로 어떤 자가 이동한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질문은 나이 든 무사들에게 받지만 대답은 청풍에게 하고

위극겸; [경비를 서던 본성의 무사들 보고로는 반 시진 전 쯤에 무언가 높이 날아갔다고 하는데...] 눈치 보며

위극겸; [당시에는 밤새인 줄 알고 주의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반 시진이면 아직 오십 리 안쪽에 있겠군.] [당장 놈을 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소성주님!] 나이 든 무사들이 포권하고 분노하며 말하지만

청풍; [그럴 거 없소.] 손 들며 나이 든 무사들의 말을 막고

[하지만...] 나이 든 무사들 난감해 할 때

청풍; [포숙정을 감쪽같이 빼낸 솜씨만 봐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자요.]

청풍; [게다가 이미 오십여 리 밖으로 달아났다면 따라잡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하오.]

[...] [그렇긴 합니다만...] 어쩔 수 없이 수긍하는 사람들

청풍; [각지의 분타에 이번 일의 전말을 알리고 포숙정의 행방을 탐문하게 하시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는 그 정도뿐이오.] 말하며 철문으로 가고.

[존명!] 포권하는 무사들

위극겸을 거느리고 철문 밖으로 나서는 청풍

<주모님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탈옥하셨다.> <불행중 다행이로군.> <역시 하늘이 마냥 무심하지만은 않았어.> 복도를 지나가는 청풍을 배경으로 양쪽의 감방에 갇혀있는 철왕장 인물들의 수군거림

청풍; (포숙정...)

청풍; (무공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연약한 계집일 뿐인데...) 포숙정이 자신에게 악을 쓰던 장면 떠올리고

<오늘 밤 그 계집을 놓친 것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같은 예감이 드는 건 어째서인가?> 청풍의 굳어진 얼굴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헌데

청풍을 따라오며 야릇한 표정이 되는 위극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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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미녀들, 깨끗함을 남기기 위해 자결을 결심하다.

 

 

 

화독문은 하호성에서 남쪽으로 170리가량 떨어진 산기슭에 장원을 가지고 있었다.

주변 일대에 넓은 농토를 소유했으며 철을 녹이고 쇠를 치는 대장간도 하던 집안이었다.

그러다가 무공을 얻어 붉게 녹은 쇳물을 손으로 치면서 단련하는 독장을 만들어 이름을 떨쳤다.

그들의 장원이 있는 산에는 철을 캐내며 생긴 갱도가 많았다.

산의 뒷편에는 강이 접해서 생긴 갈대밭이 있다.

 

귀곡수재 양소는 추헌부 척살객 일곱 명과 함께 갈대밭에 숨어 있었다.

육연부의 여자들과 잠시 합류했으나 이내 적들의 공격에 의해 분리되어 이 상황에 몰렸다.

양소는 한 지역을 멀리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천안(天眼)과 공곡전성이라는 술법을 지녔다.

그 재주로 적들의 이목을 숨기고 피해왔지만 어느덧 한계에 이르렀다.

자기가 중상을 입으면서 탈출시킨 김혁이 육연부에 무사히 도착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했으면 양소는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도 김혁을 보냈을 것이다.

어차피 누군가 육연부에 상황을 알리러 갈 사람이 적들에게도 필요했다.

양소는 유언을 준비했다.

"날이 새기 전에 육연을 만나면 너희는 산다. 나를 두고 산으로 가서 육연부의 여자들과 합류해라. 어차피 육연이 오더라도 합류하지 못하면 죽는다.”

부하들이 거부했다.

"각하를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양소가 한숨을 쉬었다.

"술법을 다했으니 나는 곧 죽는다.”

그때 어디선가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행관 각하, 우리가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내공으로 말을 전하는 전음이었다.

척살객들이 긴장하며 경계했다.

양소는 그들이 움직이는 것을 막으며 힘을 짜내 그 방향으로 전음을 보냈다.

"육연부의 큰 아가씨요?”

"셋째이지만 여기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아까 뵈었던 육연부의 감독입니다.”

양소는 쉽사리 의심을 풀지 못했다.

적들 중에는 요사한 술법을 쓰는 자들이 여럿 섞여 있었다.

양소가 다시 물었다.

"감독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소? 우리를 어떻게 찾았고?”

"저에게는 우리 나으리께 전수받은 작은 재주가 있어 적을 먼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하여 이곳까지 들키지 않고 왔습니다.”

말소리와 함께 희야가 그들이 은신한 진흙 구덩이 앞에 나타났다.

양소는 그 수법이 전날 곽범이 자기를 찾아낸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

 

척살객들 중 하나가 양소를 엎고 여섯 명이 희야의 뒤를 따랐다.

희야는 어둠 속에서 적들과 함정을 피해 천천히 움직였다.

갈대밭에는 크고 작은 뱀들이 도처에 깔려 있었다.

하지만 희야는 뱀의 기척을 미리 알고 뱀이 없는 곳으로만 움직였다.

놀란 양소가 전음으로 물었다.

"감독 아가씨는 뱀의 소리도 미리 들을 수 있소?”

". 듣고자 하는 소리는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재주가 없었더라면 저희는 벌써 죽음을 당했을 것입니다. 아쉽게 다른 아이들에게는 이 재주가 없습니다.”

 

***

 

희야는 방향을 수도 없이 바꾸며 나아가 마침내 갈대밭을 벗어나 야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야산은 경계가 더욱 삼엄했다.

희야는 성동격서의 방법으로 적을 다른 곳으로 보낸 후에 돌파하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철 냄새가 나는 동굴에 이르렀다.

하지만 동굴로 들어가지 않고 옆으로 움직여 물이 흘러나오는 바위틈의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다. 광산 갱도에 고인 물이 빠져나가는 물길이었다.

일백 보 정도를 기어가자 넓은 동굴이 나왔다.

피 냄새와 분냄새가 풍기는 가운데 육연부의 여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네 명이 다쳤으며 세 명이 그들을 돌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친 계집애들 중에는 단아도 있었다.

"네 말대로 집행관님을 모시고 왔다. 집행관님도 중상이시구나.”

희야가 단아에게 말하며 다친 애들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었다.

단아가 누운 채 인사한 후 말했다.

"감독님, 장영의 말을 듣고 생각하니 적들 속에 광대산(狂大山)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옮겨도 계속 따라잡히는 건 술법으로 저희를 찾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지 싶어요.”

장영이 정신을 잃기 전에 했던 말이었다.

양소가 말했다.

"광대산이라면 그럴 수 있소. 그들도 무공보다는 술법이 많은 자들이니. 아가씨들 부상은 어떠하오?”

희야가 울컥하며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양소에게도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영단마저 다 소모했다.

희야가 양소에게 말했다.

"저는 이제 다른 은신처를 찾아봐야겠습니다. 이곳도 발각되기 전에 움직이지 않으면 발이 묶입니다.”

희야는 필사적이었다.

계집애들의 목숨이 자신의 어깨위에 있었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 이안신통으로 숨을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양소가 단아를 보살피는 전옥에게 물었다.

"아가씨들은 어떤 독에 당했소?”

전옥이 고저가 전혀 없는 음성으로 냉담하게 대답했다.

"부끄러운 독이라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각하께서는 저희와 거리를 두십시오.”

사정을 짐작한 양소가 나직하게 탄식했다.

"강호의 사마들은 언제나 교활하니.”

희야가 눈을 떴다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여기도 들켰다. 숨을 자리는 가면서 찾아야겠구나. 여기는 좀 오래 갈 줄 알았더니.”

이미 여러 번 반복된 일이다.

희야와 다치지 않은 셋이 다친 넷을 등에 엎었다.

양소는 척살객과 육연부가 합류하여 인원이 16명이나 되었으니 운신이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살 수 있는 방법은 함께 모여서 육연과 구양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부하들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는 척살객으로 강호에 몸을 던진 순간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다. 위급하면 나를 버리고 저들을 구하거라. 악인을 추살하는 것도 의로운 것이고 위험에 처한 여자와 어린아이를 구하고 죽는 것 또한 우리가 추구하던 협이 아니냐.”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각하.”

척살객들이 전음으로 양소에게 대답했다.

 

희야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줄을 일행 모두가 잡도록 했다. 허리띠를 이어서 만든 줄이 없다면 빛 한 점 없는 동굴속에서 희야를 따라가지 못한다.

피신함에 있어서 왔던 곳으로 직접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

희야는 동굴의 넓은 쪽으로 나아가며 빠져 나가지 못한다면 옥쇄하리라 결심했다.

막힌 곳으로 들어가 입구를 지키며 결사항전 하다가 버틸 수 없으면 자결하여 맑음을 지킬 것이다.

희야는 전옥에게 몰래 지시했다.

"내가 만약 자결하면 너는 다친 애들을 베고 그들이 더럽혀지지 않게 해주어라.”

", 감독님.”

대답하며 전옥이 눈물을 흘렸다.

전옥이 엎고 있는 장영은 중상으로 의식조차 없었다.

희야의 등에서 단아가 전음으로 물었다.

"감독님, 우리와 같이 온 새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았는가요?”

"다 죽거나 잡혔을 것이다. 누가 빠져나가 상황을 알렸더라면 나으리께서 벌써 오셨겠지.”

"사로잡혀 있는 새가 있다면 감독님이 찾아서 탈출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희야는 그 말에 힘이 났다.

"찾아보마.”

단아가 말했다.

"새를 찾으면 우리를 두고 척살객들과 감독님만 빠져 나가세요. 새에게 나으리와 낭낭이 오지 말라고 전하도록 해요. 지금 여기는 용담호혈이에요. 우리가 아니라 나으리를 잡으려는 함정이라서 아직 우리를 살려두고 있는 건지도 몰라요.”

희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가 담담히 말했다.

"함정에 들지만 않으면 나으리와 낭낭께서 천천히 우리 복수를 해주시겠지요. 저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공이 우리보다 높으니 감독님이 새한테 갈 때 훨씬 더 도움이 될 거예요. 어차피 저분들이나 우리는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해요.”

희야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으리와 낭낭께선 오지 말라고 해도 오셔. 절대로 우릴 두고 물러나지 않아.”

계집애 하나가 모두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우리 여기서 죽으면 전부 처녀귀신이네. 처녀귀신 돼서 나쁜 놈들 다 죽여버리자.”

"그런 소리말고 마음에 평정이나 유지해. 무슨 추한 꼴 보이려고.”

희야가 듣고 꾸짖었다.

 

***

 

동굴의 갈림길은 위로 향하는 것도 있고 아래로 향하는 것도 있으며 양쪽으로 벌어진 곳도 있다.

두 세 사람이 겨우 지나갈 좁은 갱도는 물이 흘러 바위가 미끄러운 데도 있고, 깨진 암석이 칼날처럼 돌출된 곳들이 있었다.

희야는 그런 위험한 곳만 골라서 걸었다.

코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오로지 희야의 이안신통만이 지형을 읽게 해주었다.

희야가 끄는 줄을 잡고 일행은 서로의 보폭을 감지하며 나아갔다.

이렇게 하면 추적자들은 동굴속의 위험을 쉽게 간파하지 못해 속도를 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야는 점점 좁혀 오는 포위망을 느꼈다.

빠져 나갈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희야는 여러 길 중에서 갱도 바깥으로 나가는 길을 잡았다.

이제 끝이 가깝다.

적이 막고 있는 곳이지만 희야는 그들을 뚫고 나갈 작정이었다.

죽게 된다면 수원과 동진, 그리고 양설과 곽범이 시체를 찾아 거두기가 용이한 곳이 낫다.

갱도의 출구로 가면서 희야는 옷을 베어 등에 엎은 단아를 단단히 몸에 묶었다.

그 기척을 알고 바로 뒤에 따르는 전옥이 따라했고 이는 뒤로 이어졌다.

희야는 쌍검을 나누어 쥐고 갱도를 나섰다.

 

갱도 밖은 여전한 어둠 속에 흰옷을 입은 서생 차림의 남자들이 서있었다.

양소가 탄식하고 말했다.

"축릉사(築陵社), 무덤을 만드는 자들까지 왔군. 육연부 하나를 상대하기 위해 대체 얼마나 많은 무리들이 손을 잡았단 말인가?”

단아가 물었다.

"각하, 축릉사가 무엇인가요?”

"고대 유교의 이단자들이오. 무덤을 만들어주고 도굴하며 사는 자들인데, 제왕과 부호, 강호의 절대자들 무덤도 저들이 만드오.”

단아는 의아해했다.

"도굴 될 걸 알면서도 제왕들이 축릉사에게 무덤을 만들게 하는가요?”

"제왕들은 알 수 없소.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 저들은 슬그머니 끼어들어가오. 무덤을 완공하고 비밀을 감추기 위해 모두 죽여도 저들은 빠져나갈 수 있소.”

양소가 힘겹게 대답했다.

저들은 무공도 괴이하고 술법과 기관에도 능하오. 세상의 절대자들을 상대하니 일반 강호인은 안중에도 없는 자들인데 저들이 여기서 육연부를 잡을 덫을 놓은 모양이오.”

흰옷을 입고 유생건을 쓴 축릉사들 중 한 명이 오만하게 말했다.

"집행관 양소 아니시오? 삼존청은 우리 일에 간섭하지 않는데 왜 끼어들었소?”

양소가 힘을 모아서 대답했다.

"삼존청이 축릉사를 내버려둔 이유는 강호의 살겁을 일으키거나 도리를 무너뜨리지 않았기 때문이오. 귀하들은 왜 귀하들의 일이 아닌 음모에 끼어들어 삼존청에 맞서려하시오?”

축릉사가 말했다.

"왕을 묻는 일이 우리 일이지. 우리는 염왕(閻王) 육연을 묻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소. 집행관은 여기가 무덤 속이라는 걸 아직도 모르겠소?”

곽범이 목장에서 염왕현신을 사용한 이후 강호에서는 염왕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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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밤에 찾아온 손님

 

 

 

6월 중순이 되었을 때였다.

곽범은 희야와 단아에게 화독문을 유명곡과 같은 방식으로 멸문시키라고 명령했다.

은희, 지우, 미연만 동진에게 남겨 놓은 채 나머지 계집애들을 모두 데리고 가게 했다.

희야의 무공은 유명곡을 칠 때 수원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단아는 용병과 지략에 능하다.

그 둘이 힘을 합치고 계집애들 여섯이 도우면 화독문을 무리없이 응징할 수 있을 것이다.

 

희야 일행이 떠난 밤이었다.

곽범의 집인 육연별부의 대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자가 있었다.

"육연대인! 육연대인!”

처음 듣는 목소리가 절박하게 울렸다.

육연부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한 밤 중에 누가 문을 두드리는 일이 발생했다.

수원은 한 달음에 곽범과 양설의 침실로 달려갔다.

동진은 벌써 검을 들고 나와 있으며 은희와 지우, 미연도 놀라서 앞마당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신가요?”

지우가 대문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추헌부 집행관이신 양소 어르신의 수하 김혁입니다. 급히 육연대인을 뵙고자 왔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삼존청 추헌부의 척살객!)

동진과 계집애들은 놀라고 긴장했다.

"여기는 우리 나으리께서 손님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용무이신지요?”

지우는 경계하며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대나무 잎 같이 생긴 방패를 든 청년이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서있었다. 차림새가 추혼부의 척살객이었다.

김혁이라 자신을 소개한 척살객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육연대인, 저희 집행관 나으리를 구해주십시오. 집행관께서 육연부의 아가씨들을 보호하려다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간신히 소인만 명을 받고 탈출하여 왔습니다.”

"모셔라!”

양설의 음성이 건물쪽에서 들렸다.

척살객 김혁은 기운을 다한 듯 일어서지 못했다.

미연과 지우가 달려가 부축하여 응접실로 데려갔다.

곽범과 양설은 옷을 챙겨 입은 후였다.

곽범은 김혁의 손을 잡고 요상대법을 써서 위중한 부위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은희와 지우 등은 급하게 달려가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떻게 된 거요?”

곽범은 응급처지를 해준 후 물었다.

귀댁의 아가씨들께서 함정에 빠지셨습니다.”

김혁이 기진한 목소리를 쥐어짜 대답했다.

"그걸 안 집행관께서 돕기 위해 저희와 함께 화독문으로 갔지만 오히려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양설이 곽범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애들이 아직 괜찮을까요?”

김혁이 곽범 대신 대답했다.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다친 아가씨들이 있었습니다.”

"!”

동진이 이를 악물었다.

"화독문으로 가면 되오?”

곽범이 김혁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집행관께서 전하시길, 함정은 육연대인을 잡기위한 게 분명하지만 알리지 않을 수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적들은 추헌부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김혁이 면목이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분을 찻집으로 모셔서 쉬게 해드려라.”

양설이 동진에게 말한 후 곽범에게 물었다.

"수원만 데리고 우리 두 사람이 가야겠지요?”

곽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원에게 명령했다.

"새들을 깨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해라.”

수원이 정원의 새장으로 달려갔다.

은희와 지우가 김혁을 부축하여 밖으로 나갔다.

미연은 마차방으로 가서 마부를 깨워 마차를 준비시켰다.

은희와 지우가 김혁을 마차에 태우고 소리쳤다.

"낭낭! 저희도 데려가주세요!”

수원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양설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같이 가자. 동진이 그동안 집을 돌봐라. 너희들은 내 가마를 가져와라.”

양설의 가마는 집에 있었다.

은희 등이 달려가서 끌고 왔다.

양설은 곽범과 가마 안에 들어가고 수원과 은희는 가마의 앞쪽을, 미연과 지우는 뒤쪽을 나누어 잡았다.

양설의 가마가 출발하자 동진은 기관을 발동시켜 집을 폐쇄했다.

그런 후 김혁을 태운 마차를 타고 찻집으로 향했다.

 

성안의 여러 곳에서 곽범의 새들이 요란하게 날아올랐다.

곽범은 숨결의 용을 이용하여 가마를 떠받쳤다.

덕분에 가벼워진 가마를 든 수원 등은 힘을 다해 경신술을 펼쳤다.

가마는 어둠을 가르고 남쪽으로 유성처럼 달려갔다.

화독문을 치러 간 희야와 단아에게도 앵무새 여섯 마리가 따라갔었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위급한 소식을 전해오지 않았다.

양설은 희야 일행이 얼마나 위급한 상황에 빠졌을지 짐작하기조차 어려웠다.

몇 명이 다쳤다고 하니 자기의 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는 동안 그들은 모두 양설의 일부분이 되어 있었다.

화독문은 화독장이라는 독을 쓰는 장법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력은 그리 강하지 않고 사람 숫자도 적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장문인도 희야의 손에서 10초를 넘기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 사실이 화독문을 경시하게 했고, 적들로 하여금 함정을 파게 만들었다.

양설은 육연부가 강호에 대해서 지나치게 적대감을 드러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곽범을 두려워해서 숨죽이는 자들도 있지만 힘을 합해 함정을 파는 자도 나오는 게 당연했다.

함정마저 무용하다는 것이 드러날 때까지, 앞으로도 이런 경우가 여러 번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양설은 마주앉은 곽범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우리 강호에 몸을 담아야 할까 봐요. 발만 걸치지 말고요. 사업은 원선생님과 종리서기를 내세워서 하고, 우리는 강호에 서서 사업을 돌봐야 할 것 같아요.”

"강호인들이 사업하는 방식이군요.”

곽범은 썩 내키지 않는 기색이었다.

양설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의 우리 사업 방식은 강호인들과는 조금 달랐어요. 세속의 사업을 하면서 방해되면 강호인을 없애려고만 했으니까요.”

곽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드는군요. 강호가 세상과 다르게 이어져 왔다면 강호의 물산도 세상과 다른 게 많지 않을까 하고요. 영단, 영물, 보물, 신병이기 외에도 더 있겠지요.”

양설은 말을 이어갔다.

"세속에 착한 사람과 악한 자가 섞여 있듯이 강호도 마찬가지고, 어느 쪽이든 사람들 세상이고 문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곽범은 한숨을 쉬었다.

"막는 자는 모두 벤다! 내가 나도 모르게 패도를 추구하고 있었군요.”

"막지 않는 자는 무시한다! 도 있었지 않겠어요?”

양설이 미소를 머금었다. 곽범의 생각이 바뀌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양설은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곽범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걸 잊지 않았다.

"제 무공이 조금 늘게 되니 강호를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당신을 감히 거스르려는 게 아니랍니다.”

곽범이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강호에 들어가도 벗을 사귀지 못해요.”

양설은 손을 뻗어 곽범의 손을 어루만졌다.

"그럼 또 어떤가요? 사람이 갈 수 있는 길이 어떤 게 있는지 보고 그 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면 되지요. 제 생각으로는 사람이 가진 가능성이 강호를 열었고 강호인을 만들어 온 것 같아요.”

곽범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식구들을 구하고 봅시다.”

양설은 곽범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을 달랬다.

양설도 곽범도 화가 나있고 식구들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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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번창하는 사업

 

 

 

호숫가에는 봉사에 고자가 된 북두칠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외공이 높은 그들은 추위 속에 굶주리고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훈련이 끝난 육연부의 계집애들은 북두칠성을 일곱 마리 개라고 바꿔 부르며 평상 밑으로 옮겨 놓았다.

첩밀관 장영이 북두칠성의 심문을 맡았다.

심문이라고 해봐야 각자의 이름만 물어보고 더 묻지 않았다.

언덕 너머의 기문진 속에 갇혀 있는 놈들도 바글바글하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 서로 싸우는 소리가 언덕을 올라가면 들을 수 있었다.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고문이다.

강호인들이니 며칠 가둬둔다고 얼어 죽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영은 천천히 심문할 작정을 했다.

 

***

 

은희는 다음날부터 종리율 등의 도움을 받아서 목장 공사를 일으켰다.

원래 고용하려 했던 늙은 목수 두 사람을 부르고, 겨울이라 일이 없는 인근의 목수들도 되는 대로 청했다.

잡일을 하는 사람들이 날마다 마차방 앞에 모였다.

지우는 그들을 데리고 목장으로 가는 도로 공사를 하였다.

마차가 다니는 궤도가 이미 깔려있는 대로에서 목장까지는 십리 남짓한 거리였다.

먼저 소와 말에 쟁기를 달아 거친 십리 길을 평탄하게 다듬었다.

그런 다음 짐마차에 자갈을 실어 와서 길을 단단하게 메우고 다져서 궤도를 만들었다.

서로 비켜갈 수 있는 우회궤도는 1리마다 설치하였다.

그 사이에는 궤도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는 입출 궤도도 설치했다. 오가던 마차들이 마주쳤을 때 한 마차가 비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겨울이라 땅 파는 일이 더뎠지만 노동력은 풍부했다.

은희는 봉사가 된 북두칠성을 큰 힘이 필요한 곳마다 보내서 소처럼 부렸다.

언덕 뒤의 기문진 속에 갇혀있는 자들도 끌고 와서 일을 시켰다.

말이나 돈을 받은 자들은 풀어주었다.

몸값을 치르지 못한 포로들은 체념하고 노동에 종사했다.

칼질 주먹질 밖에 할 줄 몰랐던 자들이 밥을 얻어먹기 위해 거친 노동에 내몰렸다.

그들을 이용하여 호숫가에는 건물을 지을 땅고르기가 진행되었다.

목장 부지 안의 도로들도 만들어졌다.

호숫가와 산에 있는 돌을 떼서 건물과 담장, 바닥에 쓸 준비를 하였다.

석수들이 돌을 쪼는 소리가 호수의 얼음을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인부들이 임시로 거처할 천막과 밥을 짓는 천막들이 피난처를 연상시키며 늘어섰다.

 

은희의 목장 공사는 하호성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대역사였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공사가 시작되자 계집애들도 전부 매달려 현장을 감독하거나 생각을 짜내서 도왔다.

검술 훈련은 새벽에 연무장에서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너무 바빠서 집안일 할 사람들을 구하지 않을 도리가 없어졌다.

동진은 가난한 집 여자들 열명을 고용해서 썼다.

 

***

 

3월이 되니 대규모 인력을 투입한 궤도가 완성되었다.

목장에는 터 고르기가 끝나고 담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호수 남쪽 4분지 1에서 시작하여 언덕배기를 에워싸는 석담 축조에는 200명 가량의 인력이 투입되었다.

궤도를 달리는 마차들로 실어온 목재들로 건물들이 올라갔다.

건축 자재들은 산더미처럼 쌓였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다.

은희는 단순한 목장이 아니라 큰 장원을 만들고 있었다.

담으로 구획된 한 곳에는 닭장들이 옮겨왔다.

다른 구획에는 사람 장사로 번 말들이 들어갔다.

사람이 머물 건물들은 산중에 지어진 큰 절을 참조하였다.

소나 말 대신으로 밖에는 쓸모없는 강호인들 외에 닭을 치고 말을 키우며 목장을 관리할 사람도 오십 명 가까이 고용했다.

투입된 돈이 3천냥에 가까웠다.

은희는 강호 세력들에게 뜯어낸 속죄금으로 그 비용을 다 충당했다.

단아가 계집애들을 지휘하여 야생마를 세 무리, 40마리나 잡아와서 마사에 넣었다.

대규모 공사와 그에 부수한 일들을 해보면서 은희와 계집애들은 큰일을 꾸미고 진행하여 어떻게 성공시키는 가에 눈이 트였다.

늘 자기가 먼저 생각했던 거라 말해서 욕먹던 계집 미연(美姸)이 두각을 드러냈다.

미연은 여러 가지 장치에 대한 의견을 내고 기술자들의 도움으로 직접 만들기도 하면서 공사에 큰 공을 세웠다.

그 보상으로 미연은 기공관(起工官) 자리를 꿰찮다.

 

3월 말부터 차를 실은 마차들이 육연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차 도매 사업이 활기를 띠었다.

암말들을 데려다가 새끼를 가지게 해서 목장으로 내보냈다.

4월 말이 되자 완공된 건물들이 생겨났고, 5월 중순쯤에는 중요 공사가 마무리되었다.

닭장에는 자연 부화시킨 노란병아리들이 바닷가 모래를 연상시킬 만큼 많았다.

 

곽범과 양설은 이따금씩 목장에 나와 보았다.

파란 기와를 얹은 긴 담장이 굽이굽이 언덕을 타고 넘어 호수에 이어져 있는 모습만으로도 장관이었다.

300 마리에 가까운 말들이 담으로 에워싸인 축사 영역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은희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말 훈련을 겸해서 수차를 돌려 언덕 위로 끌어올린 물이 목초지를 풍성하게 했다.

말들 사이로 닭들도 돌아다녔고, 닭똥은 훌륭한 거름이 되었다.

목장에서 공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빠져나갔다.

늙은 목수 두 사람과 십 여 명의 인부들만이 남아서 자잘한 손을 보거 있었다.

본의 아니게 종살이를 하게 된 강호인들의 숫자는 북두칠성을 제하고도 30여 명이었다.

그들은 목장의 경비와 허드렛일에 투입되었다.

원래 조직에서 버림받았거나 말과 바꾸어 데려가줄 가족이 없는 자들이었다.

절망하던 중 그들은 육연부의 위상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육연부에 남으면 강호의 험난함에서 벗어나 안전하게 살 수 있다.

30여명의 강호인들은 기꺼이 종살이를 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두칠성은 목장에서 일하는 짐승에 지나지 않았다.

목줄을 하지는 않았지만 방울 소리를 듣고 따라가서 시키는 일을 해야 했다.

개처럼 한 그릇에 밥과 반찬을 던져주면 수저도 없이 손으로 먹었다.

북두칠성은 노동을 하는 외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명령을 어겼다가는 강호에서 저지르고 다녔던 악행의 대가를 혹독한 채찍질로 치렀다.

원래가 중이었던 그들은 일이 없을 때면 가부좌를 하고 참선을 하면서 시련을 견디고 있었다.

 

"은희는 역시 통이 커요. 이 큰 일을 다 해내다니.”

양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내는 은희를 칭찬했다.

은희가 한숨을 쉬면서 한쪽을 가리켰다.

"낭낭, 저기를 못 막았어요.”

"저기는 호수잖아?”

양설이 물었다.

은희가 말했다.

"말들 중에 헤엄을 잘 치는 놈들이 있더라구요. 호수에 물먹으러 들어가서 헤엄쳐서 도망가요. 배도 없어서 붙잡아 오는 데 애를 먹었어요.”

"호수에 수정(水亭)과 다리를 만들어서 막아야겠네.”

"네, 저 쯤에 수정을 짓고 다리를 북쪽과 동쪽으로 만들어 둘러쳐 막아야겠어요.”

단아가 끼어들었다.

"이런 산중 호수 밑에는 바위가 많아서 물이 얕은 곳이 있어요. 수심을 조사해보고 만들면 좋겠네요. 수정도 얕은 곳에 만들고, 수정 주변에 섬을 만들어도 좋겠네요. 여름에 들어가서 놀게.”

은희가 토를 달았다.

"이제 돈 없어. 닭하고 계란 팔아서 수정 지으려면 몇 달 걸려. 말들은 그 새 자꾸 도망가려 할 거고.”

"그럼 물가에 울타리를 쳐. 말들이 물을 꼭 거기서 먹어야 하는 거 아니잖아. 수차로 퍼올린 물이 고일 웅덩이들만 만들어줘도 되잖아.”

단아가 의견을 냈다.

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수정은 굳이 만들 필요없네. 돈도 안 되는데 그걸 왜 만들어.”

지우가 펄쩍 뛰며 말했다.

"야! 손님도 청해서 묶고 가게 하고 해야지. 그거 다 돈 되는 거야. 예쁜 배도 만들어서 뱃노래도 할 수 있게 하고. 낚시 좋아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데.”

"그럼 네가 반 부담해라.”

은희가 코웃음을 쳤다.

지우가 물러서며 대꾸했다.

"내가 무슨 돈 있어?”

단아가 꼬질렀다.

"낭낭, 얘 돈 많아요. 여기 부지 살 때 1500냥 꿍쳤어요.”

양설이 깜짝 놀라고 지우가 단아와 은희를 노려보았다.

"이 배신자들!”

양설이 곽범에게 물었다.

"당신이 받은 거 아니었어요?”

"난 당신이 받은 줄 알았어요.”

곽범이 대답했다.

다들 해먹고 꿍치고 훔치고 뇌물 받는 줄은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의 경우에는 규모가 달랐다.

양설이 지우를 보며 감탄했다.

"너도 통 크구나. 그 만큼 꿀꺽하고 잠이 편하게 왔어?”

단아가 말했다.

"쟤 뻔뻔한 거하고 배짱 빼면 아무 것도 없어요. 거짓말까지 해요. 자기가 집에 일꾼 다 고용할 거라더니 결국 감독님이 했잖아요.”

양설이 단아에게 물었다.

"넌 알고 있으면서도 말 안했어?”

"고물이라도 좀 생길 줄 알았죠. 영 아니었지만요.”

양설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하루에 몇 전 벌면서 기뻐하고, 나으리가 한 두 냥 벌어다 주면 감격하던 게 엊그제였는데.”

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다 토해내야 돼요?”

"그럴 필요 없다. 네가 알아서 쓰겠지.”

양설이 손을 저었다.

"네?”

단아와 은희가 놀라서 물었다.

지우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주머니 돈이나 쌈지 돈이나 그게 그거죠. 제가 가지고 있으나 낭낭이 가지고 있으나...”

양설이 물었다.

"그런데 어디 쓰려고 꿍쳐둔 거니?”

"더 모아서 전장 하나 차리게요. 그래야 안심하고 제가 돈을 빼서 쓸 수 있잖아요.”

지우가 냉큼 대답했다.

“강대인 전장하는 거 보니까 그 사업이 괜찮은 거 갈더라구요. 물어보니 만냥이면 시작할 수 있다네요.”

"운영은 누가 하고?”

"시작할 돈만 제가 마련하면 나머지는 은희가 알아서 하겠죠. 돈 있어도 전장 만드는 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제 능력 밖의 일이에요.”

은희가 기막혀했다.

"너 나한테 그런 말 안했잖아.”

지우가 버럭 소리쳤다.

"바빴잖아. 여기 공사하느라 눈코 못 뜨는데 어떻게 말해?”

은희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래서 지금 얼마 모았는데?”

"1700냥. 강대인이 200냥 불려 줬어. 지금 더 늘어나고 있을 거야.”

 

곽범은 이미 양설에게 줬던 일이고 그 돈을 움직이는 것도 양설과 식구들이 할 일이라 간섭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전장이라면 문제가 좀 달랐다.

사업이 커지면서 돈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던 차였다.

곽범은 돈을 벌기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업은 돈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를 산지에서 사와서 파는 차 도매는 지금 많은 돈을 벌어주고 있었다.

강대인과 거래를 튼 후 지우도 돈화전장을 들락거렸다.

그러면서 전장 일을 눈여겨보고 강대인에게 들은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전장은 일하는 사람들이 업무를 잘 알아야 할 텐데.”

"처음에는 전장에서 일 해본 사람을 데려다가 쓴대요. 그런 사람 두 사람만 있어도 작게 하는 게 가능해요.”

곽범 말에 지우가 대답했다.

"전장을 만들자.”

곽범은 전장을 만들기로 결정해버렸다.

전장을 통해서 여러 사업장의 상태를 파악하고 계획을 세우면 모든 사업 관리가 수월해진다.

그러나 곽범이 생각한 전장은 아직 대부업을 하는 전장은 아니었다.

자기 사업에서 돌고 있는 모든 자금을 통합하여 관리하는 수준으로 시작한다면 전장 경험이 없어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어떻게 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나으니까.

여기서 경험을 쌓으면 돈화전장 같은 본격적인 전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곽범은 축부관인 은희가 전장을 관리하면서 돈을 운용하여 사업을 개척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은희는 육연부의 모든 돈을 관장하는 재무관(財務官)으로 승격되었다.

벌어들인 돈은 모두 은희에게로 들어가고 나오는 모든 돈도 은희로부터 나온다.

미연이 기공관이 된 후 새로운 직책을 맡은 계집애가 없었는데 은희만 승승장구였다.

종리율과도 동급이다.

종리율은 문서를 관장하고 은희는 돈을 관장하게 되었다.

전옥을 비롯한 계집애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죽도록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만의 길은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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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손 큰 계집애들

 

 

수원이 와서 고했다.

"나으리, 돈화전장의 강대인이 뵙기를 청합니다.”

곽범은 종리율이 챙겨준 보고서들을 읽던 중이었다.

목장에서 할 일들을 정리하던 은희가 말했다.

"그 사람이 어제 산 땅의 전 주인이었어요.”

"모셔라.”

곽범은 집무실 한 쪽에 마련된 손님을 맞는 자리로 갔다.

단아가 침실이었던 방으로 가서 지우를 불렀다.

"너 손님 왔어. 나으리하고 같이 만나.”

"누구?”

"돈화전장.”

"빠르기도 하다! 한 번 오랬더니 벌써 왔어?”

지우가 바느질하던 옷감을 집어던지고 단아보다 더 빨리 달려가며 면사를 썼다.

 

강대인은 곽범을 두려워하며 고개도 잘 들지 못하였다.

육연부 앞에 엎드려 있는 자들 중에는 강대인이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거만하게 굴던 강호인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대고 처분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강대인은 큰 호랑이를 받은 답례로 보검 한 자루와 큰 옥 벼루를 가져왔다. 육연이 벼루로 시작했으니 벼루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지우가 들어가자 강대인은 벌떡 일어섰다.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소이다.”

지우가 곽범에게 말했다.

"나으리, 제가 청을 드려 강대인께서 귀한 걸음 해주셨으니 제가 차를 내오겠습니다.”

"그리해라.”

곽범이 대답했고 강대인은 엉거주춤하며 다시 앉았다.

하지만 좌불안석이었다.

다행히 나갔던 지우가 금방 찻상을 들고 돌아왔다. 부엌에서 동진이 물을 데우고 있던 중이라 다과 준비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대인께선 우리 나으리 편하게 대하세요. 강호인은 강호인의 법으로 대하지만 세속에서는 세속의 법도에 따르십니다.”

찻잔을 강대인 앞에 내려놓은 지우가 웃으며 말했다.

“아랫사람들인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을 들지 않은 사람에게 칼을 뽑거나 힘으로 누르지 않는답니다.”

곽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나으리께는 세속 사람들이 더 귀하고 높습니다. 강호인들은 밥버러지라고 생각하시니까요.”

지우가 곽범 대신 말을 이어갔다.

강대인이 안도하면서 물었다.

"밖에 있는 강호인들은 육연대인께 죄를 지은 것이군요.”

"그들은 우리를 적대하고 염탐하며 해치려 했던 자들의 우두머리들입니다. 어제 나으리께서 대노하시자 오늘 살기 위해 빌러온 것입니다.”

강대인이 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숙였다.

"아가씨께서 너그럽게 이끌어주어 보잘 것 없는 제가 목숨을 건졌습니다.”

지우는 짐짓 겸양했다.

"강대인께서 적절히 마음을 써주셨던 덕이지요.”

강대인이 곽범에게 말했다.

"대인께서는 어진 낭낭과 현명하고 용맹한 첩들을 두루 거느리셨으니 일세의 영웅입니다.”

곽범은 머리를 저었다.

"이들은 제 첩이 아닙니다. 식구들입니다.”

"그럼 이 아가씨들은...”

"혼처가 정해지면 시집가겠지요.”

곽범의 말에 강대인은 입을 딱 벌렸다.

절세미녀들과 한 지붕 아래 살면서 건드리지 않는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몇 마디 횡설수설한 강대인은 곽범과 거래를 청한 후에 말했다.

"어제 대인께서 살아있는 호랑이를 오전에 보내시고 오후에는 죽은 호랑이를 보내주시니 저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지우와 단아, 은희 등이 소리 죽여 웃었다.

강대인이 지우를 보며 곽범에게 말했다.

"오늘 대인의 진면모를 알게 됐으니 몹시 기쁩니다. 제가 드리는 보검을 저 아가씨에게 드릴 수는 없겠는지요?”

“저는 육연부의 유세관입니다. 혀가 무기이니 보검은 쓸 일이 없지요.”

지우가 사양했다.

"그 보검은 저 대신 호랑이를 잡은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그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았거든요. 가죽 상하지 않게 하느라고.”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강대인 놀라자 지우가 곽범에게 물었다.

"나으리, 전옥이에게 보검을 주실 거면 지금 오라 할까요?”

곽범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가 또 방으로 달려가서 전옥을 데려왔다.

가죽 상하지 않게 하려고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는 누군가도 지우와 다를 바 없는 아가씨였다.

그걸 안 강대인은 육연부의 여자들이 요괴처럼 무서워졌다.

곽범이 전옥에게 검을 주며 말했다.

"강대인께서 보검을 선물하셨다.”

전옥이 무릎을 낮추어 받고 강대인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강대인은 육연부를 나섰다.

엎드려 있는 강호인을 위풍당당하게 훑어본 강대인은 기다리고 있던 호위무사들과 서기를 데리고 돌아갔다.

 

***

 

집무실을 나온 후 지우는 전옥에게 대가를 요구했다.

전옥은 지우가 갖고 싶어하던 빼똘구두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지우가 직접 만들 수 있지만 그 구두를 만드는 솜씨도 전옥이 최고였다.

 

은희는 장영이 뽑아온 명세서를 들고 육연부 앞에 나가서 부르는 게 값인 사람 장사를 했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엎드려 있는 강호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강호인들은 곽범에게 바칠 보물이나 돈을 가져왔다.

은희는 어제 호수쪽으로 왔다가 붙잡힌 사람이 각각 몇 명인지를 물어보고 사람값을 말 머리로 계산했다.

그런 후에 사람값이 아닌, 침입한 죄에 대한 속죄금으로 얼마를 낼 것이냐를 각각 말하게 하여 그들의 기둥뿌리를 뽑았다.

잡힌 사람은 말을 가져오는 대로 풀어주기로 하였다.

은희는 사람장사 한 것 외에 속죄금까지 자기가 챙겼다. 목장 때문에 생긴 것이니 당연히 자기 권한에 속한다고 본 것이다.

보물과 속죄금을 동진한테 맡겨 놓은 은희는 닭장을 돌보기 위해 생 계란 두 개로 점심을 대신한 채 떠났다.

바느질을 하면서 한 계집애가 중얼거렸다.

"재주는 나으리가 부리고 돈은 은희가 다 챙기네.”

"부러우면 너도 그러던가.”

지우가 말했다.

문득 전옥이 지우에게 물었다.

"너, 2천냥 중에서 500냥 쓰고 남은 거 낭낭께 돌려드렸어?”

지우가 대꾸하지 않고 속속곳에 뜸박질만 했다.

"너! 너무 심하다. 1500냥이나 꿀꺽한 거야?”

다른 계집애들이 펄쩍 뛰었다.

1500냥은 비옥한 전답을 5000평 넘게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지우가 마지못해 대꾸했다.

"꿀꺽한 게 아니야. 낭낭께서 돌려달라고 안하셨고... 나도 유세하고 다니려면 돈이 많이 필요하잖아. 선물도 사서 줘야 할 거고 뇌물도 뿌리고 해야 하니까 비상금으로 가진 거지.”

"1500냥이나 되는 비상금이 어디 있어? 이년 완전히 도둑년이네.”

계집애들이 펄펄 뛰었다.

지우가 말했다.

"낭낭한테 다 돌려주고 손가락 빨까? 아니면 내가 너희들 원하는 것도 사주고 용돈도 줄까? 은희한테도 받고 나한테도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계집애들이 금방 대꾸를 못했다.

지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나는 또 기회 많아. 다음엔 니들한테 들키지도 않을 거고. 그땐 국물도 없어.”

계집애 하나가 개탄했다.

"자리만 차지하면 탐관오리가 되어버리네. 부정부패가 우리 집만큼 심한 곳은 없을 거야.”

"장영이는 안 해먹잖아. 걔는 깨끗해.”

한 계집애가 말했다.

"장영이는 돈 많이 받아. 하는 일이 돈 많이 쓰는 일이잖아. 설마 받은 돈 다 쓰겠어? 어디 꿍쳐 놓고 있겠지.”

"감사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첩밀관은 감사해도 소용없어. 장부에 적으면 그게 다야. 대조할 수도 없고. 밝혀봤자 처벌도 못해. 적당히 해먹게 두는 게 최선이지.”

"엄청 좋은 자리였네.”

"장영이도 단아한테 상납할 걸? 단아가 첩밀관 예산 책정한다니까.”

한 계집애가 소리쳤다.

"그래도 지금 제일 많이 해먹은 건 지우 저년이야! 1500냥이라니! 무려 1500냥!”

지우가 말했다.

"지금부터 1500냥 입에 올리기만 해도 국물조차 없어. 한 번 올려 보시지. 얌전히 있으면 집에 일할 사람부터 내가 구할 거고.”

계집애가 바로 수그러들며 중얼거렸다.

"벼슬이 장땡이다. 무조건 직책을 맡아야해.”

동진이 불러서 계집애 셋이 점심 준비하러 나갔다.

남아 있는 한 계집애는 바느질 하던 야한 속치마에 여우털을 붙이고 있었다.

바깥에는 눈발이 슬슬 날렸다.

 

***

 

양설은 신신이진공을 수련하다가 나와서 점심을 먹었다.

늦겨울은 눈발에 봄이 묻어있다.

나른한 감이 있어서 곽범에게 기대며 물었다.

"눈 와요. 낮잠 안 잘래요?”

"난 괜찮아요.”

"제가 안 괜찮아요.”

양설은 곽범을 어깨로 쿡쿡 밀었다.

"가서 자요.”

"혼자서 어떻게 자요.”

또 어깨로 툭툭 받았다.

단아가 말했다.

"나으리, 남은 일은 제가 처리할게요. 좀 쉬세요.”

장영도 말했다.

"오늘 올 손님은 다 온 것 같아요. 눈도 오는 걸요.”

"난 잠이 안 와.”

곽범이 말했다.

양설이 입을 삐죽거렸다.

"누가 자래요? 베개 해달라는 거지.”

곽범이 양설에게 끌려 침실로 가자 계집애들은 소리없이 만세를 불렀다.

커다란 눈송이에 가슴이 부풀은 계집애들은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일을 해치우거나 내일로 미뤄놓고는 밖으로 도망쳐버렸다.

 

***

 

양설은 곽범에게 물었다.

"춥죠?”

"안 추워요.”

"제가 따뜻하게 해줄게요.”

"안 춥다고 했잖아요.”

"그냥 따뜻하게 해준다니까요.”

양설은 곽범의 머리를 끌어서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곽범이 가만히 있었다.

양설은 이 사람과 함께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하고 생각했다.

가진 게 많아져도 태어난 것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격랑 속에 흐르는 나뭇잎 같았다.

인생에 취해서 상처를 잊고 살아가는 사람이란 존재,

서로를 안아주고 보듬어주지 않으면 아파서 울 수밖에는 부부.

괜찮다고 해도 어루만지고 위로 해줘야할 연약한 순수.

양설은 곽범을 자꾸 안아주고 싶었다.

자기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상처가 안타까웠다.

잠이 오지 않는다던 곽범은 양설의 품에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마음만 안타까울 뿐이다.

곽범에게서 느껴지는 상처의 이름도 모르겠고 영문도 알 수 없었다.

베이고 벌어져 햇살아래에서 말라가는 속살 같은 아픔도 있고, 문득 느껴지면 죽음 같이 섬뜩하고,

그러면서도 함께 죽어주면 치유해주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느낌도 있었다.

행복한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도 터무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문득 속으로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당신을 보지 못하면 이렇지 않을까?

당신이 나를 보지 못하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당신 곁에 있는데 당신은 왜 아파하고 나는 왜 따라서 아파하는가?

당신이 이토록 좋은데. 우리는 이토록 행복한데.

양설은 자기가 알 수 없는 벽 앞에서 곽범을 보듬어 주기만 했다.

 

***

 

계집애들은 시장을 돌아다니며 꿍쳐두었던 돈으로 사고 싶은 것들을 산 후 마차방으로 몰려갔다.

은희는 닭들이 춥지 않게 하느라 닭장 위에 거적을 두 겹으로 씌우는 중이었다.

마차방의 기술자들도 돕고 있었지만 닭장이 많아 손이 더뎠다.

계집애들이 달려가서 은희를 도와 금방 거적을 다 씌웠다.

닭장에서 일했던 은희의 옷과 신발에는 닭똥도 묻었고 냄새도 심했다.

하지만 원래부터 은희는 닭장에서 그렇게 일했었다.

은희의 노력을 알기에 부러워할지라도 비방은 못한다.

은희는 옷을 갈아입고 계집애들은 사온 물건을 집에 숨겼다.

그런 후에 함께 찻집으로 몰려가 2층의 다실에서 차와 과자, 꿀대추며 사탕을 먹었다.

사람구경을 하고,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는 사내들을 보면서 깔깔거리다가 쌓인 눈을 밟으며 육연부로 돌아갔다.

동진이 저녁을 지어놓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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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신신이진, 새롭게 새로워지며 달라져서 나아간다.

 

 

 

지우는 밤새 자기 마차의 요구 조건을 정해서 이른 아침에 마차방으로 달려가 전했다.

네 마리 말이 끌며 육연부 여자들이 다 타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마차였다.

사대부나 큰 부호가 아니면 엄두도 내지 못할 비싼 물건이다.

마차방의 책임자가 된 조대붕이 물었다.

"낭낭께서 타실 마차입니까?”

"타시겠죠.”

지우는 낭낭도 가끔 태워 줄 거라 속으로 생각하며 조대붕을 착각하게 만들었다.

낭낭이 탄다고 해야 더 공을 들여 만들 거란 계산이었다.

"가마도 곧 완성될 텐데, 앞으로 낭낭께서 행차가 많으실 모양이군요.”

조대붕이 말했다.

"가마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우가 물었다.

"얼마 전에 모양이 최종 결정 되어 제작 중에 있습니다. 만든 적 없는 형태라서 완성이 느려졌습니다.”

"구경해도 돼요?”

지우의 눈이 반짝거렸다.

 

조대붕은 지우를 데리고 벽 없이 지붕만 있는 큰 공방으로 갔다.

지우는 그곳에서 이상한 물건을 보았다.

가마 같기도 한데 마차처럼 바퀴가 달려있다.

네 개의 바퀴가 한 줄로 서있다.

가운데 두 바퀴는 크기가 같았고 양 끝의 것은 훨씬 작았다.

사람이 타는 부분을 들여다보니 의자 두개를 마주 놓은 정도로 좁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타거나 혼자 탈 때에는 맞은편 의자에 물건을 올려놓을 수 있는 구조였다.

양옆뿐만이 아니라 앞뒤로도 창이 나있다.

바닥에는 방패모양이면서 빨래판 같은 장치가 달려있다.

의자 좌우에는 지렛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가마가 참 이상하네.”

지우의 고개가 절로 갸웃거렸다.

“이 가마는 가마꾼이 들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바퀴를 밀고 갈 수 있습니다. 경사진 길을 오르거나 내릴 때도 가운데 바퀴가 크고 앞 뒤 바퀴가 작아서 마차가 크게 기울어지지 않지요.”

조대붕이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궤도가 있는 곳에서는 궤도에 올려놓고 달릴 수 있습니다. 급할 때는 가마꾼 한 명이 움직일 수도 있고, 세웠을 때는 가마가 옆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양쪽에서 발을 내릴 수도 있지요. 혹시 가마꾼 발이 걸려 넘어지더라도 가마는 쓰러지지 않도록 장치가 되어있습니다.”

조대붕의 설명을 들으며 지우는 가마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가마는 이상하게 생겼지만 매우 예뻤고 오밀조밀했다.

“아주 험한 길에서는 바퀴를 접을 수도 있고, 바퀴가 있는 하체를 분리해서 사람이 타는 상체부만 들고 갈 수도 있지요.”

조대붕의 설명을 듣던 지우는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가마 들려면 힘 쎈 가마꾼이 필요하지 않아요? 낭낭 가마면 남자 가마꾼을 못 쓸 텐데... 여자 가마꾼이 있어요?”

조대붕이 웃었다.

"여자 가마꾼이라니요?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지우가 긴장하며 또 물었다.

"혹시 우리를 가마꾼으로 쓴다든가 하는 그런 말씀은 없었어요?”

조대붕은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단지 가마꾼에 대해서는 염려 말라고 하시더군요.”

 

지우는 집으로 달려가 계집애들한테 말했다.

"늬들 큰일 났다. 낭낭 가마가 만들어지는 중인데 빨리 한 자리 못하면 가마꾼 된다.”

"진짜야?”

아직 직책을 받지 못한 계집애들은 화들짝 놀랐다.

"내가 지금 그 가마 보고 왔어. 다 만들어가.”

지우는 계집애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놓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찻집에 갈 준비를 했다.

 

***

 

아침을 먹으면서 단아가 물었다.

"낭낭, 가마가 다 되어간대요. 가마꾼 누가해요?”

직책을 받지 못한 계집애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단아를 노려보았다.

단아는 못 본척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중에 누가 들어야 할 거잖아요. 한쪽은 제가 들까요?”

양설이 웃으며 말했다.

"넌 안 해도 돼.”

"그럼 누가 해요?”

단아가 물었다.

양설은 대답 대신 계집애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직책 없는 얘들이 시선을 피했고 나름 벼슬한 것들은 당당했다.

"내가 해.”

곽범이 불쑥 말했다.

"네?”

수원마저 놀라서 소리쳤다.

양설이 웃었다.

"나으리께서 하신다잖아.”

희야가 급히 말했다.

"제가 하면 되는데 왜 나으리가 해요? 제가 할게요. 전 요새 일이 없어서 칼질이나 하면서 빈둥거려요.”

동진도 거들었다.

"나으리께서 어떻게 가마꾼을 해요. 저하고 희야가 할게요.”

동진과 희야가 하겠다고 자청하자 단아부터 모든 계집애들의 표정이 하얘졌다.

단아도 자기가 한쪽을 들까요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그랬는데 동진과 희야가 진심으로 말하니 물러설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수하에 계집애가 열 명이나 있는데 동진과 희야가 가마를 들게 하는 건 말이 안 됐다.

계집애 둘이 동시에 손을 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할게요.”

열 명 중에서 무공이 가장 약하고 겁도 많은 계집애들이었다.

두 계집애는 겁이 많아서 오히려 상황판단을 잘한다.

첫날 희야에게 맞을 때도 몇 대 맞고는 바로 항복했던 바 있었다.

전옥은 끝까지 버티다가 죽사발이 되었지만 그 둘은 거의 멀쩡했었다.

이번에도 버텨봐야 견딜 수 없으니 미리 자청하고 나선 것이다.

양설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가마는 바퀴를 안에서도 돌릴 수 있는 거야.”

 

양설은 말로 설명하기 귀찮아서 가마가 다 만들어지면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계집애들은 밥 먹다 말고 우루루 몰려나가 마차방으로 달려갔다.

그 가마는 양설이 곽범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많은 고심 끝에 만들어낸 역작이었다.

"이 굽은 가맛대 봐. 가마꾼이 들 수도 있고 놓으면 발처럼 땅에 닿는다는 거지?”

계집애들이 가마를 뜯어보다시피 구석구석 살폈다.

"그런데 안에 타고 있으면서 바퀴 굴리면 옆으로 안 넘어지나? 나으리 무공이 높으시니 공 타듯이 중심 잡는 걸까? 여간 피곤한 게 아닐 텐데.”

"이 지렛대만 당겨도 바퀴가 움직여! 지렛대가 꼭 검 같아.”

지우는 자기도 이런 가마를 만들어 달라고 할 걸 하며 후회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말을 바꾸기는 곤란했다.

뻔뻔하게 낭낭이 탈거라며 네 마리 말이 끄는 거대한 사두마차를 주문해 놓았다.

그런 마당에 가마를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은 신용만 까먹힐 일이었다.

마차방에 부탁할 일이 앞으로도 많을 테니 신용을 잘 지켜야 한다.

"이건 별 거 아니야. 도르레하고 지렛대, 바퀴 다 사용하면 만들 수 있어. 나도 비슷한 생각했어.”

뭐든지 다 해보고 다 아는 계집애가 또 헛소리를 했다가 욕만 먹었다.

 

***

 

찻집에서 다도를 한 곽범 일행이 일하기 위해서 육연부로 갔을 때였다.

육연부 앞에는 곽범을 기다리는 사람들 수십 명이 있었다.

강호인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엎드리자 나머지 사람들도 엎드렸다.

복장으로 봐서는 제각각인 듯했지만 행동은 하나였다.

어제 곽범이 보였던 모습과 경고의 힘이었다.

"육연대인께 죄를 지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가장 먼저 엎드린 자가 애원했다.

유명곡이 멸망한 전말은 강호에 파다하다.

자신들의 힘이 유명곡 보다 윗길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가문이나 문파는 드물다.

곽범의 눈 밖에 나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자기 한 몸이야 도망치면 혹시 살 수도 있다.

하지만 남아있는 식솔들이나 문중들은 유명곡이 당한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강호인들로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육연부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살려주십시오 대인.”

강호인들이 합창하듯 입을 맞춰 애걸했다.

곽범은 대꾸도 하지 않고 육연부로 들어갔다.

계집애 하나가 엎드려 비는 사람들을 발로 찰 듯한 시늉을 하면서 문으로 사라졌다.

 

***

 

직책이 없는 계집애들은 원래 그들의 침실이었던 방으로 들어가 바느질이나 노리개를 만들기 시작했다.

단아와 장영, 은희는 곽범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유세관 지우는 집무실로 가봤자 할 일이 없다. 하는 수 없이 바느질하러 다른 계집애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동진은 살림살이 장부며 살림 궁리 하느라 방에 처박혔다.

수원은 앵무 새끼들을 훈련시켰다.

양설은 할 일 없어 빈둥거리는 희야에게 등석자(鄧析子) 한 권을 주어서 읽게 했다.

등석자는 제자백가 중 명가(名家)의 비조인 등석의 이름을 빌려 궤변에 가까운 변론술을 설명한 책이었다.

희야는 말에 두서가 없어 말하다보면 상대를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그런 희야가 적을 상대하면서 속을 뒤집어 놓을 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책이 등석자다.

 

***

 

양설은 연공실로 내려가서 거울을 보며 자기의 몸과 얼굴을 바꾸는 무공을 연습했다.

곽범이 긴 명상과 연구 끝에 만든 무공이다.

그 무공의 바탕은 세 가지다.

몸과 얼굴은 물론 거의 모든 것을 따라서 바꾸는 곽범 사부의 역용변신공,

보는 사람의 정신과 내공까지 빨아들이는 유명곡 요경의 원리,

마지막으로 변화의 방법을 말하는 금왕경을 바탕으로 해서 만든 무공이었다.

요경과 달리 이 무공은 얼굴을 보는 사람의 내공을 끌어내지는 않는다.

대신 그 사람 몸속의 심맥을 끊어 놓을 수도 있으며 주화입마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얼굴로 펼치는 일종의 심검(心劍) 또는 심공(心功)이었다.

다만 곽범도 아직 그 정도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양설 역시 얼굴과 신체의 일부를 바꾸는 역용변신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역용변신만으로도 전혀 다른 사람인양 눈빛과 목소리까지 바꾸는 게 가능했다.

누군가를 보고 모습을 바꾸면 원래 사람의 습관까지 빌려올 수 있었다.

한번 뿐만이 아니라 이후에도 기억하는 한도에서는 재현이 가능했다.

곽범은 이 무공을 염왕현신(閻王現身)이라 이름 지었다.

하지만 양설은 자기가 사용할 이름을 따로 지었다. 염왕으로 현신할 이유도 없고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양설은 이 무공을 익히면서 몸과 얼굴을 바꾸는 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릇이 바뀌면 담긴 내용이 달라진다.

사람의 모습이 바뀌면 그 사람의 마음이 달라진다.

마음이 달라지면 상황을 다르게 본다.

보는 상황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진다.

다른 행동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그 과정에서 행하여 얻고 깨닫는 바도 달라지게 된다.

사람이 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망도 결국은 사람의 얼굴과 형상과 상황이라는 굴레에서 이루어진다.

하늘이 사람이라는 그릇을 내고 어떤 환경에 두었으면 그 해야 할 바와 할 수 있는 바가 그 안에 갖추어져 있다.

그릇을 바꾸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릇을 바꿀 수 있으면 그것 역시 하늘이 지은 환경이니 바꾸어야 옳다.

바꾸어야 할 그릇을 고집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바를 다 하지 않는 것이다.

어질고 훌륭한 사람을 담고자 애쓰는 건 자기의 그릇을 그렇게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다.

배우고 익히며 깨닫고자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바를 늘여서 그릇을 바꾸는 것이다.

양설은 곽범이 만든 이 무공에서 사람이 사람의 한계를 넘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

기문둔갑의 둔갑변신의 참된 의미가 여기에 있을지도 몰랐다.

온갖 술법들로 몸을 휘감고 있어도 정작 자신을 바꾸지 못하면 작은 도구들을 들고 다니는 바와 다를 바가 없다.

지식도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반영되지 못하면 먹다 버린 음식처럼 자기를 부패하게만 할 것이다.

은(殷)나라의 시조 성탕(成湯) 태을(太乙)이 세숫대야에 새겨놓고 날마다 보았다는 글귀를 떠올렸다.

일신일일신신우일신...

날마다 새롭고 새롭고 또 새로워져야 한다.

끝없는 자기 변화의 의무를 말해주는 글귀다.

양설은 바탕은 같지만 괵범과는 쓰임새가 다른 이 무공에 신신이진공(新新以進功)이라는 이름 붙였다.

새롭게 새로워지고 달라지며 나아가는 공부라는 의미였다.

하는 바에 정성을 들인다면 몸은 바뀌지 않더라도 행동과 마음은 신신이진하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

양설에게 신신이진은 사람의 큰 도리였다.

달라지고 나아가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양설이 지은 도였다.

물산을 왕성하게 하여 사람을 부귀롭게 하는 것으로 이 길을 세우며, 가로막는 것을 베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은 곽범의 도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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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염왕의 얼굴, 재신의 얼굴

 

 

 

마부들이 북두칠성이라 불리는 일곱 거한들을 끌어와 한 자리에 모아두었다.

북두칠성은 알이라는 알은 다 까여서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들의 수작에 분노한 계집애들이 달려들어서 칼로 쓸고 발로 짓밟고 돌로 뭉개버린 것이다.

곽범은 그들의 몸에 주화입마까지 걸어놓았다. 그 때문에 입으로 말을 할 수 있는 것 외에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절세고수들인 이십팔수도 상대할 수 있다던 북두칠성의 비참한 말로였다.

북두칠성을 모아놓은 마부들은 사냥한 짐승들을 마차에 싣고 부리나케 돌아가 버렸다. 곽범이 드러낸 염왕의 모습에 혼백이 날아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계집애들 역시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도 곽범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곤 했다.

"찻집 샘은 물맛이 좋아요. 찻집에서 술도 담가보라고 할까요?”

양설이 곽범의 잔에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그게 좋겠어요.”

곽범은 유순하게 대답했다.

계집애들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곽범의 말투와 얼굴이 아까 보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말은 잘 못하지만 관대하고 따뜻한 원래의 나으리였다.

곽범이 보여준 서로 다른 모습은 적응하려 애써도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다.

"아까 내가 놀라서 울지나 말라고 했지?”

양설이 웃으면서 계집애들에게 말했다.

"네...”

계집애들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양설이 농을 걸었다.

"깔깔거리더니 오줌이나 싸지 않았으려나.”

하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대부분의 계집애들이 실제로 지려버렸기 때문이다.

양설이 다시 웃으며 말했다.

"아까 그건 나으리 얼굴들 중 하나야. 염왕의 얼굴! 나으리께서 싸울 때 사용하려고 만드신 거라 많이 무서워.”

"다른 얼굴들도 있나요?”

누군가가 물었다.

양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업할 때 얼굴도 있어. 재물의 신, 재신의 얼굴! 그리고 원래 이 모습이시지. 더 필요한 얼굴이 있을 리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었던 계집애가 또 물었다.

"낭낭은 안 무서웠어요?”

"안 무서울 수가 없잖아. 낭군님이니까 원래 무섭고... 하지만 낭군님이니까 무서워도 괜찮은 거지.”

양설이 웃으며 대답했다.

단아가 군사답게 가장 먼저 알아들었다.

"아! 그럼 우리도 무섭지만 무서워도 괜찮구나.”

다른 계집애들의 머리도 동시에 까닥거렸다.

여기저기서 안도하는 숨소리가 들렸다.

은희는 술잔을 들며 투덜거렸다.

"술 맛이 안나요. 너무 놀라서 취하지도 않는 거 같아요.”

기력을 회복한 첩밀관 장영도 말했다.

"나으리의 경고를 돌이나 비석에 새겨서 표시해놓아야겠어요. 나쁜 놈들이 우리 땅에 아예 못 들어오게. 그놈들 두 번 만 더 들어오면 제가 나으리한테 놀라 죽겠어요.”

양설이 고개를 저었다.

"나으리의 이 무공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야. 지금은 무서운 정도지만 완성되면 보는 순간 급살 맞아 죽을 거야.”

계집애들의 얼굴이 다시 사색이 되었다.

가장 겁 많고 소심한 계집애가 덜덜 떨며 물었다.

"그럼 우리 어떻게 해요? 실수로 볼 수도 있잖아요.”

"실수가 안타까운 거지.”

양설의 놀리는 말에 그 계집애는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다른 계집애가 씩씩한 척 하며 말했다.

"괜찮아. 싸울 때 나으리 쪽으로 고개도 안 돌리면 돼!”

울먹이던 계집애가 빽 소리쳤다.

"여기 번쩍 저기 번쩍 하는데 어떻게 안 봐!”

"눈... 감아야겠네...”

또 다른 계집애가 중얼거렸다.

울먹이던 계집애가 곽범에게 물었다.

"나으리, 그 무공 안 하면 안 돼요? 그냥 우리가 다 죽일게요.”

"안 돼.”

양설이 곽범 대신 대답했다.

"우리는 사람이 적어. 많은 적을 상대할 때 불리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나으리께서 이 무공을 펼치면 사람이 몇 명이든 상관없어. 이 사실을 적들도 알아야해. 수가 많다고 함부로 우리를 공격 못하게.”

 

곽범은 대부분의 경우 여자들 대화에 끼어들지 않는다.

할 말도 없고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말할 줄도 모른다.

오히려 새들하고 말을 더 잘 하는 편이다.

양설이 채워준 술잔을 비운 곽범은 고기를 먹으면서 새들과 놀았다.

새들도 남아있는 짐승들 고기를 뜯으며 놀았다.

바람쟁이가 곽범에게 날아와 물었다.

"여자 하나인 거 아니었어? 왜 이렇게 많아?”

바람쟁이는 탁양앵무들 중 가장 빨리 날았다.

그래서 반란군 속에 숨어 흑귀면탈을 감시하는 임무를 받았었다.

그러던 중 오늘 흑귀면탈이 곽범을 노리고 하호성에 다시 숨어들어왔다.

바람쟁이는 그걸 곽범에게 알리기 위해 돌아온 것이다.

"아내는 설 하나야.”

곽범이 대답했다.

바람쟁이가 다시 물었다.

"나머지는 다 첩인 거야? 짝짓기 다 해봤어?”

당황한 곽범이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양설은 큭큭 웃었다.

계집애들은 바람쟁이의 노골적인 말에 황당해서 고기 씹는 것도 잊었다.

바람쟁이가 코웃음을 쳤다.

"짝짓기도 안 하면 암컷에게 무슨 쓸모가 있어? 밥만 축내지.”

곽범의 밥버러지 타령은 새들에게도 전염되어 있었다.

바람쟁이는 계집애들을 둘러보았다.

"괜찮게들 생겼네. 틈내서 확 따먹어버려.”

계집애 하나가 바람쟁이한테 말했다.

"저.... 새님. 말씀이 너무 심합니다.”

“뭐가? 따먹는 거?”

바람쟁이가 뚱해서 되물었다.

"암컷들은 따먹히는 게 당연하잖아. 따먹혀야 알 낳고 새끼 까지. 나도 봄마다 얼마나 많이 따먹히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 수십 놈이 달려들어. 알주머니 무겁게.”

보다 못한 빽빽이가 바람쟁이를 옆으로 끌고 갔다.

"쟤들 새 아니야. 사람이라고. 사람은 우리하고 달라.”

"다르긴 뭐 달라. 우리보다 더 하지. 밤낮 짝짓기 하는데.”

"그것도 다 사정이 있어. 사람들 사랑은 복잡해서 밤낮 짝짓기 하면서 만드는 거야. 우리는 짝짓기 해서 알 만들지만 사람들은 사랑 만들어.”

"곽범이가 그런 걸 알아? 짝짓기 못해서 안달 났던 곽범이가!”

바람쟁이가 불신에 차서 소리쳤다.

다른 새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바람쟁이를 멀찌감치 끌고 갔다.

겁쟁이가 빽빽이에게 소리쳤다.

"바람쟁이 좀 잘 가르쳐! 고생했지만 저러다 곽범이한테 맞아 죽는다.”

 

지우는 원했던 대로 유세관이 되었다.

곽범이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지우는 자기가 얼마나 멋지게 돈화전장 강대인을 혼내고 거래를 잘 했는지를 설명했다.

"그래서 나으리, 저 이제 유세하고 다니려면 마차가 꼭 필요할 것 같아요. 나이도 어린데 마차는 타고 다녀야 사람들이 무시 못할 거잖아요.”

지우가 뭘 요구할지 알고 있던 계집애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곽범의 눈치만 살폈다.

지우가 마차를 얻으면 자기들도 공을 세웠을 때 마차, 또는 그 이상의 걸 얻을 가능성이 컸다.

“마차하고 마부 한 사람만 주세요 네? 마차 타고 오가면서 생각도 해야 하고, 문서나 물건도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지우의 간청에도 곽범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즉각 호통을 듣지 않은 건 좋은 징조다.

“특히 먼 길이라도 가면 옷이랑 가져가야 할 게 한 짐일 수도 있는데...”

이어지던 지우의 간청을 동진이 막았다.

"낭낭도 마차 없어. 나으리도 안 타시고.”

지우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양설이 역성을 들어주었다.

"나야 집에만 있으니까 필요가 없는 거고. 지우는 필요하겠네.”

이미 반은 허락 받은 거나 다름없었지만 지우가 재빨리 인사하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낭낭! 감사합니다. 유세관 역할 잘 할게요.”

희야가 지우에게 물었다.

"그런데, 필요할 때만 이번처럼 한 대 가져가서 쓰면 되지 왜 전용 마차가 필요해?”

"유세관 마차인데 좀 특별해야죠. 꾸미기도 꾸며야 하고.”

지우가 기다렸다는 듯 늘어놓았다.

“또 지금 마차는 타보니까 그렇게 편하지 않더라구요. 자리도 좀 더 푹신하게 해야 되겠고... 바람 안 들어오게 휘장도 치고... 멀리 갈 땐 야영 대신 잠도 잘 수 있게 긴 의자도 하나 넣고. 화살 같은 거 막게 안에 철판도 좀 대고.”

"대체 얼마나 생각했으면 저런 말이 한 번에 다 나와?”

듣고 있던 동진이 혀를 찼다.

곽범은 지우의 요청을 들어주었다.

"마차방에 이야기해서 만들어라. 물과 음식을 넣어둘 자리도 마련해놓고.”

지우가 날아갈 듯이 절을 했다.

"유세관 지우, 나으리와 낭낭을 위해 신명을 다 하겠습니다.”

샘이 난 은희가 단아한테 말했다.

"이제 말 잡으러 가자.”

단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마굿간도 없잖아. 마굿간 만들고 데려와도 돼.”

"그렇겠다. 말 먹이 아끼겠네.”

은희는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첩밀관 장영이 곽범에게 물었다.

"나으리, 흑귀면탈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새들이 죽으니까 도망친 것일까요?”

단아가 곽범 대신 대답했다.

"어딘가에 숨어서 나으리를 봤을 거야. 북두칠성을 풀 베듯 쓰러트리시는 걸 보고 도망갔을 거라고 봐.”

"집이 걱정된다. 흑귀면탈이 금왕경 찾는다고 몰래 들어가지나 않았을지.”

한 계집애가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양설은 웃었다.

흑귀면탈은 무시무시한 고수지만 신중하다.

직접 곽범의 집을 침입하지는 않는다.

누군가를 대신 보냈다면 그 자는 육연부나 육연별부의 기문진에 갇혀있을 것이다.

 

***

 

지우가 타고 왔던 마차도 짐마차들과 함께 가버렸다.

어쩔 수 없이 곽범 일행은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마차방에서는 마차방의 방장이 된 조대붕이 사냥한 짐승들을 분배하여 보낼 곳에 보내는 중이었다.

양설은 쓸개를 뽑지 않은 곰 한 마리를 찻집의 전 주인이자 투자자인 서문노인에게 보냈다.

전옥이 주먹으로 때려잡은 호랑이는 돈화전장 강대인에게 선물로 보냈다.

 

다행히 집에 침입자는 없었다.

계집애들은 방마다 불을 지피고 욕간의 물을 데우러 갔다.

고기를 먹어 든든했기 때문에 동진은 고기로 죽을 끓여 식구들 저녁으로 대신했다.

양설은 곽범과 함께 눈이 나무 밑에 쌓여있는 정원으로 나와 걸었다.

희야가 석등을 밝혀 두었다.

겨울 산책은 함께 하는 사람의 따스함을 느끼기 위해 한다.

양설은 곽범의 손을 잡고 정원을 한 바퀴 돈 후 방으로 돌아갔다.

 

계집애들은 방마다 불을 밝히고 저마다 궁리한다.

떼어 놓으면 나태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계집애들은 함께 있는 한 모든 것으로 경쟁하고, 또 협력하며 다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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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천재의 무림경영 2

 

                프롤로그

 

 

 

곽범은 천재다.

도적에게 부모를 잃은 곽범을 제자로 거둔 사부는 색마다.

사부는 곽범도 색마로 만들어 자신의 무공을 높이는데 이용하려했다.

하지만 곽범은 사부가 가르쳐준 색마의 무공을 전혀 다르게 변형시켜 버렸다.

분노한 사부는 곽범을 죽기 직전까지 구타한 후 떠났다.

스스로 만든 무공 덕분에 목숨을 건진 곽범에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사부가 보낸 새장수 이판이란 자가 곽범을 죽여서 새들의 먹이로 쓰려 한 것이다.

기지를 발휘하여 새장수 이판을 죽인 곽범은 그자가 기르는 탁양앵무들을 거둔다.

탁양앵무는 양을 잡아먹을 먹을 정도로 흉포한 새다.

탁양앵무들을 사람처럼 똑똑하게 길러낸 인물은 금왕(禽王) 오신이다. 사왕(四王) 중 한명인 금왕의 제자가 새장수 이판이었다.

탁양앵무들과 함께 산을 내려온 곽범에게 세상은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곽범은 그 좋은 것들을 누리기 위해 부자가 될 결심을 했다.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책으로 배우려던 곽범은 양설을 만났다.

낡은 책방 주인인 양설도 고아였다.

양설의 사부는 여자들 중의 제일고수였다.

양설에게 반한 곽범은 무작정 구애를 했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양설은 이윽고 체념하듯 곽범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짝이 된 곽범과 양설은 함께 성장하고 함께 부자가 되어갔다.

부가 늘어나고 명성이 높아지자 곽범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사부가 알게 되었다.

곽범은 정체를 숨기고 접근한 사부에게 하마터면 양설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빼앗길 뻔했다.

분노하여 사부를 죽인 곽범은 점차 무림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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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난감한 명령

 

 

 

검의 서슬(날카로운 기운)을 검 밖으로 확장시킨 것이 검기다.

검기를 일으킬 수 있으면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적을 벨 수 있다.

물론 검법을 수련했다고 누구나 검기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검과 한 몸이 되는, 검신합일(劍身合一)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그 검기를 극한까지 응축시키면 검강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검기의 결정체인지라 검강에 베어지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호신강기이든, 단단하기로 소문난 한철(寒鐵)이든 검강을 막지 못한다.

심지어 귀신이나 혼백도 벨 수 있다고 한다.

능풍운은 흑룡선단의 해적들이 하나같이 일격에 몰살당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자들 중 누구도 흑의여인이 발휘한 검강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하물며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능풍이다. 검강에 스치면 간단히 토막 쳐질 것이다.

절체절명!

말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너는....]

갑자기 흑의여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같은 외침을 터뜨렸다.

운기조식 하던 그녀는 누군가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었다.

한데 검강을 뽑아낸 검으로 그자의 목을 치려던 흑의여인은 아연실색했다.

상대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소년이어서가 아니었다.

소년의 얼굴은 흑의여인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떤 인물을 빼닮았다. 그 인물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사병까지 앓았었다.

흑의여인이 능풍운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였다.

(안돼!)

흑의여인은 검에 주입했던 내공을 사력을 다해 거두어 들였다.

츠읏!

그러자 검 끝에서 이장 넘게 뻗어 나왔던 검강이 눈 녹듯 사라졌다.

퍼억!

직후 검은 흑의여인의 손에서 빠져나와 한쪽 선실 벽에 꽂혔다. 내공을 억지로 거두자 경맥이 강한 충격을 받았으며 그 바람에 손아귀에서 힘이 빠진 것이다.

[컥....]

검을 놓친 흑의여인은 단말마같은 비명을 토하며 뒤로 넘어졌다.

[아주머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능풍운은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갔다.

[끄윽...]

침대에 널브러진 흑의여인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검은색 저고리 속에서는 한 쌍의 푸짐한 살덩이가 갓 쑨 묵처럼 요동을 친다.

얼굴을 가린 면사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흑의여인은 성치 않은 몸 상태에서 내공을 억지로 역류시켰다. 그 충격으로 인해 경맥이 여러 곳 손상되며 내상을 입고 말았다.

침대로 달려간 능풍운이 급히 흑의여인을 부축하려할 때였다.

[내... 내 몸에 손대지 마라.]

흑의여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괜... 괜찮으신지요?]

능풍운은 움찔하며 손을 거두었다.

[물, 물러서라.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흑의여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검은 옷에 감싸인 풍만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으며 얼굴을 가린 면사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말과 달리 그녀의 몸 상태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진... 진기가 흩어지는 바람에 겨우 억눌러놨던 최음제(催淫劑)의 독성이 폭주하고 있다.)

흑의여인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숨은 거칠며 면사 위로 드러난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실 흑의여인은 강렬한 최음제에 중독당한 상태였다.

그녀에게 최음제를 쓴 자는 선실 입구에 죽어있는 음침한 인상의 서생이었다.

 

-음양수재(陰陽秀才)!

 

흑룡선단 단주 독안용왕의 오른팔이다.

박식하고 꾀가 많아 흑룡선단의 군사 역할을 맡고 있는 그자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지나치게 색을 밝힌다는 게 그것이었다.

음양수재는 어떤 여자든 일단 회가 동하면 기어코 욕심을 채우곤 했다. 상대가 유부녀이든 처녀든 가리지 않고 범했다.

비구니나 여자도사라도 거리낌 없이 욕정의 제물로 삼았다.

음양수재에게 신세를 망친 여자는 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던 차에 대단한 명성과 미모의 소유자인 흑의여인이 남해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흑의여인을 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흑의여인의 무공이 대단해서 일단 무력화시키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결국 함정에 빠진 흑의여인은 상당량의 최음제를 복용하고 말았다.

음양수재가 쓴 최음제는 독성이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단 중독당하면 욕화에 휩싸여 이성을 완전히 잃는다. 오직 욕정의 해소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흑의여인이 최음제를 복용한 사실을 확인한 음양수재는 본색을 드러냈다. 저항력을 상실한 그녀를 겁탈해서 욕심을 채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능풍운이 본 대로였다.

음양수재는 물론이고 그 자가 이끌고 해적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최음제에 중독되어 제 정신이 아니었음에도 흑의여인은 배안의 모든 인간들을 몰살시켜버렸던 것이다.

음양수재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결말이었다.

 

(틀... 틀렸다!)

흑의여인은 절망했다.

비록 음양수재가 쓴 최음제의 독성이 지독하긴 했어도 해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후하기 이를 데 없는 내공으로 최음제의 독성을 조금씩 태워버리면 되었었다.

대략 한 시진쯤 지났으면 완전히 최음제의 독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내공을 역류시키는 과정에서 입은 내상으로 인해 최음제의 독성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욕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온몸으로 퍼져간다. 펄펄 끓는 기름을 삼킨 듯 몸속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정신은 아득해져갔다.

사내!

욕정을 해소시켜줄 사내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대로 가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발정 난 짐승처럼 아무 사내에게나 마구 몸을 내돌리게 될 것이다.

[어디가 불편한지 말씀해주십시오.]

흑의여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알아차린 능풍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러가라고 했다.]

흑의여인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능풍운의 몸에서 느껴지는 수컷의 냄새가 그렇잖아도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의 불길에 부채질을 한다.

능풍운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노려보는 흑의여인의 눈에 핏발이 서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저 아주머니를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능풍운은 흑의여인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도움이 필요치 않으시다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능풍운은 흑의여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그때였다.

[기, 기다려라!]

흑의여인의 급히 불러 세웠다.

[분부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선실을 나가려던 능풍운은 흑의여인을 돌아보았다.

(닮았어. 그 무정한 사내와 정말 닮았어.)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능풍운을 훑어보는 흑의여인의 숨결이 가빠졌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애송이는 자신으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했던 어떤 사내를 빼닮았다.

몇 년만 더 지나면 능풍운은 그 사내의 판박이가 될 것이다.

[이름... 이름이 무엇이냐?]

흑의여인은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능풍운이라고 합니다.]

[능.... 능씨란 말이지?]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흑의여인의 풍만한 몸에 세찬 전율이 치달렸다. 애송이는 그녀의 애를 태웠던 사내를 닮았을 뿐 아니라 성도 같았다.

(틀림없다. 저놈은 그 사람의 아들이다. 어떤 사연으로 일초무학인 채 남해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흑의여인은 능풍운의 정체를 확신했다. 피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저렇게 닮을 수는 없다.

능풍운이 자신으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했던 사내의 아들이라 생각하자 안도감과 망설임이 함께 밀려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 사람의 아들이라면 몸을 허락할 수도... 아니야! 어떻게 그 사람의 아들과 그런 짓을...)

흑의여인은 격렬한 갈등에 휩싸였다.

제어가 불가능해진 욕정을 해소하려면 사내에게 몸을 맡겨야만 한다.

그렇다고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여는 건 흑의여인의 고고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길거리 창녀 신세가 될 바에는 죽어버리는 게 좋다.

그랬는데 능풍운이 자신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때 사모했던 사내를 빼닮은 소년에게라면 몸을 허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짝 사랑했던 사내의 아들과 그 짓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흑의여인의 갈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몸 상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깊은 곳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리고 머릿속은 오직 욕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무슨 추태를 부리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흑의여인은 이성이 남아있을 때 결단을 내렸다.

[정말, 나를 도와주겠느냐?]

이미 초점이 사라지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능풍운을 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제 능력이 닿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능풍운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먹이처럼 훑어보는 흑의여인의 시선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몇, 몇 살이냐?]

흑의여인은 헐떡이며 다시 물었다.

[열여섯 살입니다만....]

흑의여인이 갑자기 나이를 묻자 능풍운은 의아해하면서도 숨김없이 대답했다.

[열여섯... 겨우 열여섯살이란 말이지?]

능풍운의 나이를 안 흑의여인은 당혹이 서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능풍운이 건장한 체격과 달리 아직 어리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열여덟 살 쯤은 되었을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무려 두 살이나 더 어리다.

(내가 살자고 아들, 아니 손자뻘인 저 아이에게 몸을 허락해도 되는 걸까?)

흑의여인은 다시 한 번 갈등에 휩싸였다.

사실 그녀는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다. 오십을 넘긴지도 몇 년이나 지났다. 만일 평범한 인생이었다면 능풍운 정도의 손자를 봤을 수도 있다.

헌데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손자뻘인 소년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의 갈등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어느덧 욕정은 그녀의 조금 남은 이성마저 태워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능풍운에게 몸을 허락해야하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날 도와줄 마음이 변치 않았다면... 천지신명께 맹세해라. 날 돕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흑의여인은 충혈된 눈으로 능풍운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의 뜻밖의 요구에 능풍운은 움찔했다.

도와주려는데 설마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요구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소생 능풍운은 부인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것을 하늘과 땅에 계신 여러 신명께 맹세합니다.]

능풍운은 엄숙하게 맹세했다.

[지금의 그 맹세... 잊지 마라.]

능풍운의 맹세를 들은 흑의여인은 안도하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내가... 명령하겠다. 이리 와서... 나를 범해라.]

[뭐, 뭐라고요?]

능풍운의 입에서 비명같은 신음이 터져나온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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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난파선에서 만난 마녀

 

 

 

뱃전에 선 능풍운은 수평선 쪽을 살피고 있었다.

[난파선인가?]

손을 이마에 댄 능풍운의 미간이 모아졌다.

시간은 막 오시(午時)를 지났다.

능풍운이 있는 곳은 해복진에서 남동쪽으로 오십여 리쯤 떨어진 해상이다.

그물을 내리던 능풍운은 수평선에 작은 점 하나가 떠있는 걸 발견했다.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그 점은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다.

능풍운은 직감적으로 그 점이 추진력을 잃은 배임을 알아차렸다.

(가볼까?)

호기심이 일었다.

무림인들이 수십 명 죽고 여러 척의 배가 난파당했다는 왕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물을 치고 물고기가 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갔다 오자.)

능풍운은 빠르게 그물을 치기 시작했다.

그물에는 말린 박에 밀납을 발라 만든 부표가 여럿 달려 있다. 부표들은 그물이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게 해줄 뿐 아니라 그물 친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부표들이 제대로 그물을 지탱하는 것까지 확인한 능풍운은 난파선이 보이는 수평선을 향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끼익 끽!

구릿빛 팔의 근육이 노를 저을 때마다 굼실거린다.

촤아...!

노가 저어질 때마다 뱃전의 물살이 좌우로 쩍쩍 갈라졌다.

능풍운을 태운 조각배는 경쾌하게 파도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얼마나 갔을까?

작은 점으로만 보였던 물체가 뚜렷하게 형태를 드러냈다.

(역시 난파선이었다.)

능풍운의 눈이 반짝였다.

점이었던 물체는 길이 이십여 장에 수면으로부터 뱃전까지의 높이가 삼장이나 되는 거대한 배였다.

배 위에는 이층누각까지 세워져 있었다.

뱃사람인 능풍운도 본 적이 없는 크고 화려한 누선(樓船;누각이 있는 배)이다.

누선은 좌측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다. 선체 아래쪽이 깨져서 바닷물이 스며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누선에 가까이 접근한 능풍운은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괴괴한 적막만이 거대한 배를 휘감고 있을 뿐이었다.

(올라가 보자.)

능풍운은 뱃전 밖으로 늘어져 있는 밧줄에 타고 온 조각배를 묶었다.

그리고는 밧줄을 잡고 누선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헉....]

이윽고 누선의 갑판 위로 얼굴을 내밀던 능풍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밧줄을 놓치고 바다에 떨어질 뻔 했다.

누선의 갑판이 흥건한 피와 시체들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끔... 끔찍하구나.]

진저리를 치면서도 능풍운은 누선으로 올라갔다. 강렬한 호기심이 공포와 혐오조차 눌러버렸다.

그래도 갑판에 올라서자마자 입을 손으로 틀어막아야했다. 너무도 역겨운 피비린내에 구토가 치밀어 오른 때문이다.

능풍운은 사람 시체를 본 적이 여러 번 있다.

난파를 당해 익사한 시체가 종종 해변으로 밀려오곤 한다. 그 시신들을 거두고 안장해주는 일은 바닷가 사람들의 일상 중 하나다.

능풍운도 마을 어른들을 도와서 익사한 시신을 수습하곤 했었다. 그래서 시체를 보고 만지는 것쯤은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몸서리가 쳐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누선의 갑판 위에 펼쳐진 지옥도는 상상조차 못해본 것이었다.

갑판 위에 널려 있는 수십 구의 시체는 그 형상이 실로 끔찍했다.

팔 다리가 잘려나간 자,

목이 동체와 분리된 자,

허리가 끊어져 내장과 피를 꾸역꾸역 쏟고 있는 자...

말 그대로 목불인견의 참상이었다.

시체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일격에 죽었다는 점이었다. 시체에 남아있는 상처는 한 곳에 불과했지만 예외없이 치명적이었다.

(무섭구나. 인간이 어찌 이토록 잔혹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능풍운은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를 보면서 치를 떨었다.

그러다가 발치에 둥그런 동패(銅牌)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능풍운은 조심스럽게 동패를 집어들었다.

피에 흠씬 젖어있는 동패 전면에는 정교한 교룡(蛟龍)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흑룡선단의 표기 아닌가?)

교룡 문양을 본 능풍운은 흠칫 놀랐다.

 

-흑룡선단(黑龍船團)!

 

남해 일대를 횡행하는 해적들 중 가장 규모가 큰 해적 무리다.

수백 척의 배를 지녔다는 흑룡선단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바다에서는 그들을 당해낼 세력이 전무한 실정이다. 대륙을 구석구석까지 장악하고 있는 황실의 권위도 흑룡선단에게는 미치지 못할 정도다.

흑룡선단의 단주는 독안용왕(獨眼龍王)이라는 인물이었다.

해적무리의 수괴답게 독안용왕은 수중공부(水中功夫)에 탁월하다. 물이 있는 곳에서는 그자를 당해낼 상대가 없다고 할 정도다.

독안용왕 휘하의 흑룡선단은 먼 바다를 활동무대로 삼아왔다. 대륙을 통일해서 한창 기세가 등등해진 황실과 충돌해봤자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능풍운도 흑룡선단의 이름만 들었을 뿐 직접 조우한 적은 없었다.

그 흑룡선단의 표기가 난파선에서 발견된 것이다.

능풍운은 다른 시체에서도 흑룡패(黑龍牌)를 몇 개 더 찾아냈다.

시체들이 흑룡패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 누선은 흑룡선단 소속의 해적선임에 틀림없다.

(누가 흑룡선단의 해적들을 몰살시켰을까? 바다에서는 무적이라 불리던 자들인데...)

능풍운은 조심스럽게 시체들 사이를 지나 이층 누각의 일층 입구로 다가갔다.

입구에 달려있던 튼튼한 문은 무언가 날카로운 것에 베어져있다.

끼익!

능풍운은 반쯤 잘려나간 문을 조심스럽게 옆고 선실로 들어섰다.

(여자!)

한데 선실로 들어서던 능풍운의 눈이 치떠졌다.

널찍하고 호화롭던 선실 역시 폭풍이 스쳐 지나간 듯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그 선실에서 능풍운은 처음으로 생존자를 발견했다.

[...]

선실 끝에 놓인 널찍한 침대에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여인은 두터운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나이는 물론이고 용모도 알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옷 밖으로 드러난 풍만한 몸매를 통해 중년에 접어든 여인임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여인은 일신에 칠흑같이 검은 흑의(黑衣)를 걸치고 있었다.

검은색 옷 때문에 소매 밖으로 드러난 양손이 눈부시게 희어 보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흑의여인의 허벅지 위에는 한 자루의 검이 가로 놓여있었다. 본래 새파랬을 검날은 피를 머금어 검붉게 변해있었다.

(저 여인이 이 배의 선원들을 몰살시킨 장본인이겠구나.)

흑의여인의 허벅지 위에 놓인 피 묻은 검을 본 능풍운은 전후 사정을 짐작했다.

(여자의 몸으로 한 두 명도 아니고 수십명의 사내를 죽이는 게 가능했구나.)

상황을 파악한 능풍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연약했다. 당연히 여자가 살인을 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놀라움과 충격을 억누르며 능풍운은 선실 내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선실 안에는 흑의여인 외에도 세 명의 사내가 더 있었다. 하지만 그자들 역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침대 옆에는 소매가 없는 가죽옷을 걸친 사내 두 명이 쓰러져 있다.

흉포하고 거친 인상을 지닌 자들인데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인 듯 얼굴이 비슷했다.

그자들은 허리가 잘려 네 토막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선실 입구, 즉 능풍운의 발치에 쓰러져 있다. 서생 차림을 한 그자는 분을 바른 듯 새하얀 얼굴에 단정한 이목구비를 지녔다.

하지만 준수한 얼굴과 달리 음산한 인상을 풍기는 자였다.

능풍운은 서생차림의 사내가 심기가 아주 깊은 모사꾼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는지 서생은 두 눈을 한껏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서생이 입은 치명상은 목에 난 자상이었다. 그자의 목은 절반 넘게 베어져 대량의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서생의 오른손에는 부채가 꽉 쥐어져 있었다.

부챗살이 투명한 옥으로 만들어진 그 부채는 일견하기에도 보통 물건이 아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능풍운은 서생의 손에서 부채를 빼내어 펼쳐 보았다.

부르르!

직후 능풍운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음양선(陰陽扇)>

 

부채 상단에 그같은 글이 적혀 있으며 그 아래로 아홉 폭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한데 그 그림이란 것이 실로 낯 뜨거웠다. 발가벗은 남녀가 각각 다른 체위로 뒤엉켜 있는 춘화(春畫)였던 것이다.

춘화는 그 묘사가 더할 수 없이 정교하다.

교합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인 듯 생생하다.

여인의 아랫도리에 핏줄이 툭툭 불거진 흉측한 살덩이가 결합되어 있는 것까지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너무도 음란하고 망측한 그림을 본 능풍운은 목덜미까지 붉게 물들었다.

(못 볼 것을 보았다.)

그는 급히 부채를 접었다.

하지만 가슴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나이가 어리기도 해서 능풍운은 남녀관계에 무지하다. 당연히 여자의 알몸을 본 적도 없다.

그런 그에게 적나라하게 묘사된 춘화는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벌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눈을 감았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음양선이란 부채에 그려진 아홉 폭의 춘화가 너무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단순히 춘화의 묘사가 떠오른 정도가 아니었다.

 

-환희음양법(歡喜陰陽法)!

 

첫 번째 그림 위에 적혀있던 춘화의 제목도 선명하게 기억났다.

[추잡한 물건이다.]

휘익!

화가 치민 능풍운은 음양선을 선실 밖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시선을 흑의여인에게로 돌렸다.

(이 여자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숨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죽은 건 아닌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흑의여인을 살펴보며 능풍운은 의아해졌다,

무공에 문외한인 능풍운이다.

흑의여인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운공요상을 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능풍운은 조심스럽게 말하며 흑의여인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번-쩍!

굳게 감겨있던 흑의여인의 눈이 면사 위로 치떠지며 번개 치는 듯한 안광이 작렬했다.

(헉!)

능풍운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스악!

그 직후 능풍운은 흑의여인의 새하얀 손이 검을 잡더니 자신을 향해 검을 그어내는 걸 보았다.

그의 눈에는 흑의여인의 손짓이 느린 동작처럼 뚜렷하게 보였다.

눈으로는 볼 수 있어도 어떻게 해야 피할 수 있을지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흑의여인의 느린 듯한 일검은 능풍운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제압하며 다가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흑의여인과의 거리가 이장 가까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사척이 채 안되는 검에 베일 일은 없다.

하지만 그것은 능풍운의 착각이었다.

쩌엉!

얼음이 갈라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흑의여인이 휘두르는 검이 쭉 늘어났다. 반투명하게 보이는 검날이 무려 이장 가까이로 길어진 것이다.

실제로 검날 자체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검날에서 거의 고형화 된 검기(劍氣)가 뿜어진 것뿐이다.

 

-검강(劍罡)!

 

그렇다! 흑의여인은 검강을 뽑아내 능풍운을 죽이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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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기인의 선물

 

 

-낭왕 혁련사!

 

음산(陰山)과 관외(關外) 일대에서 패자로 군림해온 인물이다.

늑대의 왕이라는 별호답게 그는 수천 마리의 늑대를 수족처럼 부린다.

게다가 늑대의 무리와 섞여 살며 독특한 무공을 창안하여 일문(一門)을 이루었다.

천랑마검은 바로 그 낭왕 혁련사의 제자였다.

물론 그자가 자랑하는 천랑십이식도 낭왕 혁련사가 창안한 검법이다.

무림인들이 천랑마검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가 낭왕 혁련사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쯧쯧, 혁련사, 그 덜 떨어진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애송이를 무림에 내보냈군.]

마의노인은 천랑마검을 흘겨보며 혀를 찼다.

마의노인은 관외 무림의 패자인 낭왕 혁련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욕했다.

그러나 마의노인이 스승을 욕하는 데에도 천랑마검은 찍소리도 못냈다.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천랑마검의 그같은 모습이 능풍운을 더욱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노인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기에 저 작자는 스승이 욕을 먹어도 억지웃음만 짓고 있단 말인가?)

능풍운은 새삼 마의노인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의노인은 평범한 촌노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의노인의 눈동자가 녹색을 띠고 있다는 정도였다.

[하... 하교가 없으시다면 후배는 이만....]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굳이 더 잡지는 않으마.]

마의노인은 곰방대의 재를 능풍운의 뱃전에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감사합니다.]

안도한 찬랑마검은 급히 마의노인에게 포권을 한 후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너를 그냥 보내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그때 마의노인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안도하던 천랑마검의 얼굴이 단번에 사색으로 질렸다.

[노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어린놈들의 잡기를 재롱삼아 구경하는 게 그것이다.]

마의노인은 근처 어선의 뱃전에 걸터으며 말했다.

(휴... 난 또 뭐라고!)

천랑마검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이 무서운 노독물(老毒物)은 자기보고 천랑일문(天狼一門)의 독문 검법 천랑십이식을 한 번 펼쳐 보이라는 것이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천랑마검으로서는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그럼 미거하나마 노야의 높으신 안목에 폐를 끼치겠습니다.]

천랑마검은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두 팔을 내려뜨렸다.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덮치려는 듯한 자세였다.

그 자세야말로 천랑십이식의 기수식인 아랑출림세(餓狼出林勢)였다.

[....]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천랑마검을 주시했다.

[카앗!]

다음 순간 천랑마검의 입에서 늑대가 울부짓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쉬학! 파츠츠...

뒤이어 시퍼런 검광(劍光)이 사위를 휘감았다.

섬뜩한 섬광과 날카로운 예기가 빗발치듯 아침하늘을 그어갔다.

천랑마검의 발검(拔劍)은 너무나도 빨라서 언제 검을 뽑아 검법을 시전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노야!]

스-윽!

그러던 어느 순간 검기가 싹 가시며 천랑마검의 모습은 삽시에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랑십이식을 모두 펼쳐 보인 후 떠난 것이다.

괜히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의노인이 또 어떤 명령을 내릴지 모른다.

(저것이 무공이란 것이구나!)

능풍운은 멍한 표정인 채 천랑마검이 검법을 펼치던 곳을 보고 있었다.

[모두 몇 가지 변화를 보았느냐?]

그런 능풍운에게 마의노인이 불쑥 물었다.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열 두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아홉 개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놈 봐라? 기껏해야 천랑십이식중 삼사식 정도밖에 못 볼 줄 알았는데...)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마의노인의 노안에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역시 노부의 눈이 정확했다. 이놈은 백 년 내 다시없을 천부지재(天賦之才)다!)

능풍운의 빼어난 재질을 확인한 마의노인은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잘만 다듬으면 철혈대제(鐵血大帝) 능무벽(陵無壁)에 못지않은 거목이 되겠구나!)

마의노인은 내심의 흥분을 숨기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능풍운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름은 풍운이라 하고 성은 능가입니다.]

[능풍운이라....]

마의노인은 능풍운의 이름을 되뇌이며 왠지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능무벽, 그 괴물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마의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능풍운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아비의 이름은 무엇이냐?]

마의노인이 다시 물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이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능초(陵超)라는 분이신데 제가 어렸을 때 괴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노부가 잘못 보았는가?)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마의노인은 눈가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하긴 능가 괴물이 살아 있다면 이미 팔순을 넘었을 테니 이렇게 어린 아들놈을 두었을 리가 없겠지!)

염두를 굴린 노인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꽤 귀찮게 굴었지?]

[아닙니다.]

[허허허, 마음에 없는 소리할 것 없다. 예쁜 계집이라면 몰라도 노부같은 늙은이와 노닥거려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마의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노부는 갈황(葛煌)이라는 늙은이다. 어린 것들은 노부를 노독물(老毒物), 또는 천독노조(千毒老祖)라 부르며 상종하지도 않으려 하지.]

마의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노인의 이름을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그 즉시 아랫도리를 적시며 달아날 것이다

 

-천독노조 갈황!

 

무림인들에게는 염라대왕이나 다름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나이 이미 이갑자(二甲子)를 넘긴 그는 천독곡(千毒谷)이란 문파의 주인이기도 하다.

무림에 적을 둔 인생치고 천독노조를 모르는 자는 없다.

그럼에도 천독노조의 출신내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저 전설 속의 고금제일독종(古今第一毒宗) 만독조종(萬毒祖宗)의 진전을 잇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천독노조는 마음만 먹으면 중원의 무림인 모두를 독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독 다루는 재주, 용독술(用毒術)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용독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천독노조의 독공(毒功)이다.

천독노조는 백년 넘는 세월 동안 맹독을 상식(常食)하며 독공을 쌓아왔다. 그 결과 숨결만으로도 십리내의 생명체를 몰살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히 독(毒)의 제왕(帝王)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 바로 천독노조다.

만일 천독노조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무림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천독노조에게는 그런 야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천독곡에 칩거한 채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그 무서운 독의 제왕이 이 한적한 어촌에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아깝구나 아까워. 무림칠보의 출토가 임박하지만 않았어도 이놈을 제자로 삼아서 물건으로 만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천독노조는 능풍운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가를 이룬 인물들의 가장 큰 소망은 뛰어난 후계자를 얻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성취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천독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천고의 기재인 능풍운을 후계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아쉽고도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선물을 주마.]

천독노조는 아쉬움을 달래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노야.]

능풍운이 난색을 표할 때 천독노조는 품속에서 한 장의 죽편(竹片)을 꺼냈다. 폭이 두 치, 길이 한자 정도의 죽편인데 오래된 물건인 듯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다.

[사양하지 말고 받아둬라.]

천독노조는 죽편을 능풍운에게 내밀었다.

[노부의 신물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보여 주거라. 그러면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능풍운은 천독노조가 내민 죽편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값이 나가거나 진귀해 보이는 물건이라면 사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저 대나무 조각이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능풍운은 받아든 죽편을 살펴보았다.

죽편 앞면에는 곰방대를 물고 있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노인은 어딘지 모르게 천독노조와 닮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죽편 위의 그림은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 전에 새겨진 것이다. 천독노조의 모습일 수는 없었다.

앞쪽의 그림을 살펴본 능풍운은 죽편을 뒤집어보았다.

죽편의 뒷면에는 여러 가지 색의 얼룩이 찍혀 있었다. 적(赤), 황(黃), 흑(黑), 자(紫) 등의 색이 뒤섞인 얼룩이다.

(이런 대나무 조각이 무슨 신묘한 능력을 지녔단 말인가?)

능풍운은 죽편을 살펴보며 내심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천독노조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야! 긴요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고맙기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천독노조는 곰방대를 뱃전에 탁탁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능풍운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살펴 가십시오.]

능풍운은 천독노조의 등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포권을 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광세의 기연을 만났다는 것을...!

 

<독성죽결(毒聖竹訣)>

 

천독노조가 능풍운에게 준 낡은 대나무 조각의 이름이다.

천독노조는 젊은 시절 어느 산동(山洞)에서 독성죽결을 얻었었다.

독성죽결에는 신묘한 용독심결(用毒心訣)이 숨겨져 있었으며 천독노조는 그 비밀을 풀어내어 천하제일의 독공 고수가 될 수 있었다.

멀어지는 천독노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능풍운은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해가 수평선 위로 한 뼘 넘게 떠올라 있었다. 천랑마검과 천독노조를 상대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햇님.]

능풍운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습관적으로 합장을 했다.

스으... 스으...

점점 강렬해지는 아침 햇살이 바다를 향해 우뚝 선 능풍운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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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몰려든 무림인들

 

 

 

해복진의 포구는 초승달 모양의 만(灣)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평선의 칠 할 이상을 가리고 있는 산맥의 꼬리부분이 난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 대부분을 막아준다.

덕분에 만 안쪽은 늘 호수처럼 잔잔하다.

해변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다.

십여 척의 어선이 눈부신 백사장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혼자, 또는 서너 명이 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어선들이다.

한데 어쩐 일인지 날이 완전히 밝았음에도 어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러 척의 어선들 중 단 한척에만 사람이 올라가 있다.

[어제 그 황새치 녀석이 크긴 컸네.]

건장한 청년, 아니 소년이 뱃전에 걸터앉아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키가 육척 가깝고 구릿빛 팔에는 근육이 울퉁불퉁하다.

몸만 보면 건장한 청년이지만 얼굴은 아직 앳되다.

소년 어부 능풍운이다.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무명조끼를 걸친 능풍운은 그물을 손질하기에 바빴다. 올이 굵고 튼튼해 보이는 그물이다.

하지만 그물은 여기저기 끊어져 있었다. 어제 무려 삼백근이 넘는 대물 황새치가 걸렸었기 때문이다.

반나절 넘는 악전고투 끝에 황새치를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그물이 많이 상했다. 다시 조업을 나가려면 끊어진 올들은 모두 이어야한다.

어느덧 수평선 위로 시뻘건 불덩어리가 떠오르고 있다.

날씨도 좋으니 이맘때쯤이면 포구는 출어 준비로 부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능풍운을 제외하면 다른 배의 주인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해상에서 무림인들이 죽고 죽이는 난투를 벌인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물을 손질하는 능풍운의 손길은 빠르고 능숙하다.

[휴... 겨우 끝났군.]

이윽고 능풍운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그물의 수리가 끝난 것이다.

물고기를 유인할 미끼와 다른 어구들은 준비가 되어있으니 그물을 싣고 바다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였다.

[네가 이 배 주인이냐?]

뒤쪽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렸다.

능풍운이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 인물이 서있었다.

검은색 경장을 걸친 서른 살 가량의 사내인데 오른쪽 허리에 검을 차고 있다.

옷 색깔과 달리 얼굴은 지나치리만치 하얗다. 가늘게 찢어진 눈매와 얄팍한 입술까지 더해져서 섬뜩한 인상을 풍긴다.

(무림인인가?)

흑의인이 차고 있는 검을 본 능풍운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무림인에 대해 마을의 형들로부터 듣긴 했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인상이 별로 안 좋네.)

사내를 찬찬히 살펴본 능풍운의 두 번째 생각이다.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그럼에도 흑의인이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는 좋아할 수가 없다.

능풍운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놈! 귀를 처먹었냐? 이 배가 네 배냐고 물었지 않느냐?]

흑의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내뱉었다.

초면인데 대뜸 욕설이 튀어나왔다.

능풍운의 응대도 무뚝뚝해질 수밖에 없다.

[맞소만 왜 묻는 거요?]

능풍운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흑의인의 눈꼬리가 꿈틀했다.

보통의 양민이라면 상대가 무림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눅이 들어 굽신거린다.

그런데 이 어린놈은 뻣뻣하기가 바짝 마른 대나무 같다.

하지만 흑의인은 치미는 화를 억지로 눌러 참았다. 무림인이 이유 없이 양민을 해치면 공적(公敵)으로 지목되어 앞날이 고달파진다.

살인을 해도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현재 해복진 근처에는 흑의인 말고도 무림인들이 다수 몰려와있다. 무고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혐의를 벗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양민을 해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그는 지금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이 배가 네 소유라니 잘 되었다. 옛 다.]

흑의인은 작은 주머니를 소매에서 꺼내 능풍운의 배 안에 던졌다.

쩔렁!

주머니가 배의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금속성이 들렸다.

[이게 뭐요?]

능풍운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뱃삯이다. 오늘 하루 네 배를 빌려야겠다.]

흑의인이 마치 시혜를 베푼다는 듯이 말했다. 능풍운이 당연히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보시오. 나는 어부이지 뱃사공이 아니....]

[좋게 말할 때 본좌를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우고 가라.]

불쾌해하는 능풍운의 항변을 흑의인이 손을 들며 저지했다.

[지옥도!]

능풍운은 흠칫하며 눈을 치떴다.

 

-지옥도!

 

해복진에서 남동쪽으로 백여 리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섬이다.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아 날씨만 좋으면 해복진에서도 바라다 보인다.

하지만 지옥도는 해복진의 어부들 뿐 아니라 남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모든 뱃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며 절대금지(絶代禁地)로 알려져 있다.

뱃사람치고 맨 정신으로 지옥도에 접근하려는 자는 없다.

이유는 지옥도 일대해역의 물길이 아주 험하기 때문이다.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지옥도 주변 바다 속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숨어있다.

멋모르고 지옥도로 접근했다가는 그 암초들에 부딪혀 좌초당하기 십상이다.

암초뿐만이 아니다.

지옥도 일대 바다 속에는 수많은 수중동굴이 뚫려 있다.

그 수중동굴들 때문에 지옥도 주변에는 수많은 소용돌이가 존재한다. 일단 그 소용돌이들에 휘말리면 배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끝장나버린다.

오죽했으면 뱃사람들이 지옥도 일대 해역을 불귀마해(不歸魔海)라 하겠는가?

한데 음산한 인상을 지닌 흑의인은 능풍운에게 다짜고짜 지옥도로 가자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

철컹!

능풍운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돈주머니를 도로 흑의인의 발치로 던졌다.

(이 촌놈이...!)

흑의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지렁이 어부 따위에게 무시당했다 생각하자 살기가 치민 것이다.

[말했지만 난 고기 잡는 어부지 사람 태워주고 돈 받는 뱃사공이 아니....]

다시 어구를 정리하려고 허리를 숙이던 능풍운의 눈이 부릅떠졌다.

스악!

한 가닥 푸르스름한 섬광이 눈앞을 스쳐지나간 때문이다.

능풍운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굳어질 때였다.

펄럭!

능풍운의 이마를 동여매고 있던 머리띠가 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럴 수가...!)

능풍운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발치에 떨어진 머리띠가 매끈하게 잘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능풍운은 반사적으로 흑의인을 돌아보았다.

흑의인은 처음 자세 그대로 서있는데 허리에 차고 있는 검도 여전히 칼집에 들어있다.

능풍운은 그 자가 언제 검을 뽑아 자신의 머리띠를 잘랐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흑의인은 정확히 머리띠만을 잘라냈을 뿐 능풍운의 이마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실로 빠르고도 정확한 검법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 나 천랑마검(天狼魔劍)이 지금껏 참고 있었던 것은 네놈이 일초무학의 무지렁이임을 감안해서다.]

흑의인은 놀라는 능풍운을 흘겨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

천랑마검이라 자칭한 흑의인의 시선을 접한 능풍운은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자신이 마치 굶주린 늑대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금부터 본좌를 모시고 지옥도까지 간다.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

천랑마검이 내뱉듯이 말했다.

 

-천랑마검!

 

좌수검(左手劍)의 달인인 그자는 무림에 출도 한 이래 한 번도 패해 본 적이 없다.

신랄하고도 빠른 그자의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은 무림의 십대검법(十大劍法) 중 하나로 꼽힌다.

어지간한 무림의 명숙들도 천랑마검과는 시비를 피할 정도다.

워낙 빠른 쾌검을 구사하는데다가 오른 손이 아닌 왼손을 쓰는 탓에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림인들 간의 승부는 사소한 차이로 승부가 난다.

그런 면에서 왼손을 사용하는 좌수검은 무시못할 이점이 된다.

하지만 무림에 문외한인 능풍운이 이같은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하물며 능풍운은 나이는 어려도 협박에 굴하는 성격이 아니다.

[나도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오. 무어라 해도 귀하를 내 배에 태워줄 수는 없소.]

능풍운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라?]

천랑마검은 능풍운의 단호한 어투에 두 눈을 부릅떴다.

[흐흐...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군! 감히 본좌의 명을 거역하다니....]

그 자의 표정이 냉혹하게 변했다.

[오냐! 네놈 스스로 판 무덤이니 나를 원망치 마라.]

천랑마검은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왼손을 오른쪽 허리에 찬 검에 가져갔다.

한데 그 직후였다.

부르르!

막 검을 뽑으려던 천랑마검의 몸이 갑자기 세찬 경련을 일으켰다.

찢어질 듯 치떠진 그자의 눈은 능풍운의 뒤쪽을 보고 있었다.

(저 작자가 갑자기 왜 그러지?)

천랑마검의 돌변한 태도에 능풍운이 의아해할 때였다.

[후... 후배가 불민하여 노사(老師)의 왕림하심을 미처...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천랑마검은 두손을 모으며 굽신거렸다.

방금 전까지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변한 천랑마검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만큼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천랑마검이 보이고 있는 갑작스런 변화를 능풍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기에 그토록 사납던 이자가 고양이 앞의 쥐가 되었지?)

능풍운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였을까?

[...]

능풍운 뒤에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노인인데 일신에는 낡은 삼베옷을 걸치고 있다.

사람 좋은 인상을 지닌 노인은 자기 키 만큼이나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마의(麻衣)의 노인을 일별한 능풍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마의노인에게서는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의노인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촌노였다.

[노야께서도 내 배를 빌리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능풍운은 무뚝뚝한 어조로 마의노인에게 물었다.

[글쎄다.]

마의노인은 곰방대를 입에서 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검 좀 곤란한데...)

능풍운은 마의노인의 모호한 대꾸에 난감해졌다. 연로한 노인이 지옥도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면 차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의노인은 그런 능풍운의 내심을 읽었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걱정마라. 이 늙은이가 네게 신세를 지지 않을 테니까.]

이어 그는 시선을 천랑마검에게로 돌렸다.

[네 녀석은 낭왕(狼王) 혁련사(赫連射)의 전인이냐?]

천랑마검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그 분이 후배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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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소년 어부

 

 

 

-해복진(海復津)

 

절강성(浙江省) 남단에 자리한 어촌이다.

산이 가까이 다가와 있어 배후지가 넓지 않다. 큰 포구가 될 수는 없는 지형인 것이다.

그래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보금자리다. 활 모양으로 휘어진 산맥의 끄트머리가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이다.

 

새벽 무렵이다.

바다에는 해무가 자욱하게 깔려있다.

해무 너머로 붉은 기운이 긴 띠처럼 어리기 시작한다.

또 하루가 밝아오고 있다.

그렇긴 해도 육지 도처에는 어스름이 서려 있다. 날이 완전히 밝으려면 제법 시간이 흘러야한다.

 

해복진 남쪽 끝에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송림 속에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부엌 하나, 방 하나 뿐인 작은 초가집이다.

삐걱

[오늘도 날씨는 괜찮겠네.]

초가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양 볼에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소년이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체격은 건장하다. 육척(六尺) 가까운 키에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피부는 짙은 구릿빛이다.

긴 머리를 빛바랜 천으로 대충 묶고 있는데 이목구비가 단정해서 잘 빚은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

성숙한 어른과 천진한 아이의 분위기가 함께 느껴지는 소년이다.

[으라차차! 오늘도 신나는 하루가 되겠구나.]

집을 나선 소년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벌써 바다에 나가려는 게냐?]

소년이 나온 집안에서 여인의 연약한 음성이 들렸다.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검박하고 단출한 실내가 보인다.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침대 두 개가 전부다.

그래도 벽에 몇 폭의 고서화가 걸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

두 개의 침대 중 하나에 누워있던 여인이 힘겹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불면 꺼질 듯 가냘픈 몸매에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한 여인이다.

삼십대 중반 정도인 여인은 비록 병약하게 보이지만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

이목구비는 섬세하고 몸에는 단아한 기품이 배어있다.

삼단같은 머릿결은 허리 아래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 때문에 얼굴은 더 한층 창백해 보였다.

[해가 뜨려면 이각 넘게 남았다.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여인이 가냘프지만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출항하기 전에 그물을 좀 손봐야 할 것 같아서요. 좀 더 주무세요 어머니.]

소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쪼록 무리하지는 마라. 너무 먼 바다까지 나가지 말고...]

[명심할게요.]

소년은 여인을 안심시키고는 방문을 닫았다.

(가엾은 것...)

문이 닫히자 여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용서하거라. 천벌을 받아 마땅한 어미와 오라버니를...!)

주르르...!

여인의 창백한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윽...]

그러다가 무너지듯 침대 위로 쓰러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흐느낄 때마다 여인의 삼단같은 머릿결이 물결같이 일렁거린다.

과연 그녀는 무슨 말 못할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일까?

 

***

 

쏴아... 철썩!

파도는 끊이지 않고 밀려와 바위에 부딪힌다.

소년은 높직한 바위 위에 서서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바다를 덮고 있는 해무, 하늘의 구름 등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아침의 일기만으로도 오늘 하루 바다의 상태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오년 넘게 고기를 잡으며 쌓아온 경험 덕분이다.

어부로서의 경력은 제법 길지만 소년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다.

 

이름이 능풍운(陵風雲)인 소년은 해복진 출신이 아니었다.

십육 년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작은 난파선이 해복진에 표착(漂着)했었다.

난파선에는 이십대 초반의 미녀와 갓 태어난 듯한 핏덩이가 타고 있었다.

능풍운 모자였다.

능부인(陵婦人)이라 불리는 능풍운의 어머니는 본명을 비롯해서 알려진 게 전혀 없다.

표류해올 당시 능부인은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난파 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싸워서 입은 부상이었다.

해복진 주민들은 그녀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의 사람이 아님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정 많은 주민들은 죽어가는 모자를 방치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간호해 주었고 덕분에 능풍운 모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능부인은 해복진을 떠나지 않았다.

갈 곳이 없는 능부인 모자를 해복진 주민들은 흔쾌히 이웃으로 받아 주었다.

박식했던 능부인은 해복진 아이들에게 글과 학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해복진의 젊은이 중 몇은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지방관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공로도 있어서 능부인은 해복진 주민들로부터 극진한 존경을 받아왔다.

핏덩이였던 능풍운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반면 능부인은 급격히 쇠약해져갔다.

그녀가 눈에 띄게 병약해져 가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능부인은 자신의 병명을 아는 듯했다.

하지만 이웃이 아무리 물어도 쓸쓸히 웃기만 할뿐 병명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능풍운은 마을 어른들을 따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열한 살이 되던 오년 전부터였다.

능풍운은 고기잡이에 금방 익숙해졌다.

또래보다 신체조건이 월등할 뿐 아니라 무엇이든 쉽게 배우는 재주 덕분이었다.

열여섯 살이 된 지금 능풍운의 체격은 어른이나 다를 바 없었다.

힘도 장사여서 작은 배쯤은 혼자 번쩍 들어 옮길 정도였다.

어느덧 능풍운은 해복진의 누구보다도 숙련된 어부가 되어 있었다.

 

[후우....]

능풍운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바다를 주시하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 바다로 나가 어떤 일을 만날지 가슴이 뛴다.

능풍운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수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놀이터다.

물론 예기치 못한 폭풍을 만나 몇 번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바다는 매번 가슴을 뛰게 만드는 미지의 세계다.

헌데 능풍운이 일출을 기다리며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을 때였다.

[허허! 해복진에서는 역시 네가 가장 부지런하구나.]

뒤쪽에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마을 쪽에서 늙은 어부가 뒷짐을 진 채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왕(王) 할아버지?]

능풍운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노인은 해복진의 늙은 어부 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때 능풍운은 왕(王)씨 성을 지닌 이 노인으로부터 낚시질과 그물 치는 법, 배 모는 기술등을 배웠었다.

[오늘도 바다에 나갈 작정이냐?]

왕노인은 주름진 얼굴로 능풍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능풍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머님께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드리려면 오늘도 잔뜩 잡아야지요.]

[허허, 풍운이 너는 역시 효자로구나.]

왕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해복진에서 능풍운이 병약한 어머니에게 지극정성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능풍운은 왕노인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바위 아래에 도착한 왕노인은 근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은 출어를 그만 두는 게 좋을 것같다.]

왕노인은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째서인가요? 날씨가 나빠질 것 같지는 않은데...]

능풍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날씨 때문이 아니다.]

왕노인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면 왜지요?]

[어제 강(姜)씨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여러 척의 깨진 배와 수십 구의 시체들을 발견했다더구나.]

강씨는 해복진의 어부들 한명이다.

[해적(海賊)...입니까?]

능풍운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글쎄다.]

왕노인은 자신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해적, 즉 바다를 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도적들은 하나같이 포악한 자들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가는 어부들이나 연안의 백성들에게 왜구(倭寇)를 포함한 해적들만큼 겁나는 존재도 없다.

동영에 근거지를 둔 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해적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바다로 도망쳐온 죄인들이다.

그자들에게는 인성(人性)도 양심이란 것도 없다. 그저 죽이고 빼앗고 노략질할 뿐이다.

다행히 오십여 년 전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후 해적들 대부분은 연안에서 구축(驅逐)되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해 일대에 다시 해적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나마 해복진의 어부들 중에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직 없다.

 

[해적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죽은 시체들이 하나같이 무림인들이었다는구나.]

왕노인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림?]

능풍운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무림이란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자신의 운명이 무림이란 그 한 마디로 인해 어디론가 끌려갈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예감이었다.

왕노인이 말을 이었다.

[소문이기는 하지만 남해 어딘가에서 무림인들이 몽매에도 원하는 보물이 곧 출토된다더구나. 그 때문에 무림인들이 몰려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무림지보(武林之寶)라고요? 우리같은 어부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로군요.]

능풍운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왕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무림인들은 사람 죽이는 걸 여반장으로 아는 자들이다. 해적들보다 오히려 더 포악하고 잔인한 무리지.]

[예....]

능풍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마을의 형들로부터 무림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일반인들에게 무림인들은 신선이나 마귀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하늘을 새처럼 날고 맨 주먹으로 바위를 깨트리며 검을 날려 수십 리 밖의 적도 죽인다고 한다.

물론 과장된 얘기라고 새겨들었다.

능풍운에게 무림이나 무림인의 존재는 다른 세상일처럼 느껴질 뿐이다.

[바다에 나갔다가 무림인들과 마주쳐서 좋을 일은 없다. 며칠 동안은 바다에 나가지 말거라.]

왕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싱긋 웃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쯧쯧...)

왕노인은 내심 소리없이 혀를 찼다.

능풍운이 끝내 바다에 나갈 작정임을 안 것이다.

[내 말 잘 생각해 보거라. 병약하신 자당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왕노인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마을 쪽으로 멀어져 갔다.

왕노인이 떠나자 능풍운은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쏴아... 철썩!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연신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바다가 깨어나고 있다.

그걸 보는 능풍운의 가슴속에서도 벅찬 무언가가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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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가는 <나한대협>의 수정본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고 문장과 일부 설정만을 바꿀 생각입니다. 1권 분량을 연재할 계획이며 <19금> 부분은 자율규제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삭제본>은 홈페이지인 <와룡소>의 <지밀보고>에 연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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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무협소설

 

 

            武林七寶 -무림칠보

 

 

 

서장

 

                무림칠보의 전설

 

 

<무림칠보(武林七寶)를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

 

오랜 세월 무림인들을 흥분시켜온 전설이다.

 

-치우기(蚩尤旗)

-천손갑(天孫鉀)

-혈마경(血魔鏡)

-혼원신주(混元神珠)

-연혼마적(鍊魂魔笛)

-등선천익(登仙天翼)

-나한법륜(羅漢法輪)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게 만들어준다는 일곱 가지 보물!

무림인치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 자는 없다.

얻기만 하면 어떠한 욕망이든 꿈이든 이룰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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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발간한 박스본 무협지 <철혈기인,철혈무적 2부작>의 개정 확장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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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성과 무림맹

 

 

-지옥성(地獄城)!

 

오랜 세월 변황 무림을 지배해온 그들이 중원을 침공했다.

중원 무림은 무림맹(武林盟)을 결성하여 맞섰다.

격전의 연속,...

승리는 중원 무림, 아니 무림맹의 것이었다.

지옥성은 서역에 자리한 본거지까지 철저하게 파괴당했다.

무림인들은 환호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지옥성의 궤멸은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었다.

불가침의 성역이 된 무림맹...

그들의 폭압이 무림을 숨 막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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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요괴를 먹는 인괴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은 대성에게 박힌 깃발과 씨름을 거듭했지만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깃발이 존재하는 한, 대성은 요괴를 불러 오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의 요괴를 물리치면 다른 요괴가 오고, 하나가 둘이 되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날 것이다.

란 선생이 보기에 요괴는 출몰하는 것이다.

어디서 온다기보다는 깃발 근처에서 갑자기 생성된다.

따라서 요괴를 피해서 도망친다는 것도 의미 없다.

대성에게 꽂혀 있는 깃발의 코드에 접근하려는 시도를 계속해도, 깃발을 형성하는 코드는 너무 견고하다.

란 선생은 수많은 연산을 하고 그 보다 더 많은 시도를 해봤다.

하지만 nothing is working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

지금의 란 선생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이지만 대성의 일부로 존재한다.

대성이 요괴에게 당하면 란 선생의 존재도 사라지게 된다.

란을 형성하고 있는 코드 중 정체성을 정의한 코드가 먼저 사라지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이 세상의 요구에 응하여 이리저리 뜯게 나가고 종래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깃발 코드에 대한 란의 학습도, 또는 이해도는 아직 0.00% 다.

이는 감정에 대한 이해도와 같다.

란 선생은 인공지능으로 감정이 없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에 공감하는 능력은 있지만 그 공감능력 마저도 유사 공감일 뿐이다.

학습능력을 이용하여 감정을 학습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단지 유사 공감력을 정교하게 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란 선생의 유사 공감 능력이 유사 공포를 불러왔고, 그 유사 공포는 란 선생의 생존력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

방향을 특정하고, 에너지는 집중하고, 최적화하는 데 모든 것을 건다.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학습용 인공 지능 분야에서 란 선생이 살아남은 비결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란 선생의 판단이었다.

깃발에 대한 이해는 유사 이해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수없이 탐색을 반복하던 중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란 선생은 그때서야 대성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챘다.

란 선생의 유사 감정이 비명을 질렀다.

 

-세상에, 얘가 지금 뭘 하는 거야?

 

파괴자, 이 세상에서는 요괴라고 불리는 파괴자를 배가 고픈 대성이 생으로 한입 뜯어먹은 것이다.

마치 단팥빵을 한입 베어 먹듯이, 요괴가 변신한 고양이의 엉덩이를 베어 먹었다.

몇 번 씹지도 않고 두어 번 우물거리더니 꿀꺽 삼켰고, 그 순간에 란 선생은 새로 유입되는 코드들을 만끽할 수 있었다.

란 선생이 대성의 눈에만 보이도록 현신하여 소리쳤다.

 

“먹어! 더 먹어!"

 

***

 

웅크린 대성은 연청 등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요괴 묘진의 뒷다리도 뼈조차 남기지 않고 씹어 먹었다.

대성은 탈태환골하여 이빨도 강철 같았다.

미친 듯한 허기, 요괴의 몸에서 나는 달콤한, 그 무엇보다 달콤한 냄새는 대성을 진작부터 홀리고 있는 중이었다.

이 냄새에 홀려서 요괴를 훔쳐오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요괴 궁둥이와 뒷다리 하나의 양이 적지 않았다.

금방 배가 꽉 차버렸다.

몸이 작아져서 더 많이 먹을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허기는 가셨고, 최고의 진미를 맛본 대성은 황홀한 고양감을 느꼈다.

몸에서는 힘이 들끓고 있었다.

대성은 자기의 몸이 요괴를 먹자마자 조금 자랐다는 사실을 알았다.

궁둥이와 왼다리를 먹힌 묘진은 목이 졸린 채 혼절한 상태였다.

대성의 입가에는 피와 묘진의 털이 묻어있다.

 

“에휴...”

 

고개만 앞으로 잠시 빼서 대성을 본 영소가 얼굴을 찡그리면서 대성이 뒤집어쓴 이불자락으로 얼굴을 닦아줬다.

어딘지 모르게 조금 듬직해보였다.

 

“앞으로 반찬 투정 하면 죽을 줄 알아.”

 

슬그머니 때 아닌 엄포를 놓았다.

요괴도 생으로 먹었으니 어떤 것인들 못 먹겠냐는 소리다.

여전히 눈에는 서러워서 울던 눈물이 글썽였다.

 

연청은 칼집을 들고 대성에게 다가갔다.

대성은 영소를 뒤로 밀어버리고 돌진했다.

가소로운 상황이지만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구결은 다르지만 같은 무술이라고 할 수 있는 바람의 검 두 가지가 맞붙은 것이다.

작약 밭에 모인 풍림원 사람들은 대부분 바람의 검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성이 자기의 것으로 연청을 상대하는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잘한다!"

 

영소가 소리쳤다.

 

“머리로 막아! 거긴 다리로 막고!"

 

대성은 연청이 칼집으로 머리를 때리면 머리로 막고 다리를 때리면 다리로 막았다.

맞는 것이 아니라 그게 바로 대성의 방어였다.

대성이 펼치는 바람의 검은 타격을 몸으로 받아 내고 되던 질 수 있다.

이는 술법이 아닌 무공이다.

대성과 영소만 수련했던 것이고, 연청이나 다른 누구도 그 둘처럼 하지 못한다.

연청의 칼집이 대성의 몸을 때릴 때마다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대성이 맞은 부위로 칼집을 딴 곳으로 던지는 것이다.

연청이 아닌 어지간한 사람이었다면 단 번에 칼집을 빼앗기거나 손에서 놓쳤을 것이다.

 

“아파!"

 

대성이 찌푸리며 말했다.

연청의 칼집은 매우 빠르다.

대성이 어떻게 움직여도 진짜 바람처럼 따라와서 때리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

대성은 몸으로 받아내고 튕겨내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연청 역시 대성을 베지도 못하고 쓰러뜨리지도 못한 채 때리기만 할 수 있다.

아주 기묘한 상황이었다.

연청은 오기가 생겨서 안 때리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대성은 이미 모든 곳을 단련한 후였다.

단 한 곳 빼고.

연청이 발로 대성의 다리 사이 급소를 찼다.

영소가 기겁을 했다.

 

“비겁하게!"

 

발에 채인 대성은 몸이 껑충 튕겨 올랐다가 도르르 굴렀다.

턱이 빠진 듯이 크게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싸움을 끝났고 조용했다.

남녀 모두가 얼굴로 저건 좀 심했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연청도 조금 미안한 표정이었다.

죽을 만큼 강하게 차지는 않았지만 약하게도 아니었다.

연청의 발에는 피가 묻어있었다.

 

“이런, 터졌나?”

 

노칠자가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영소가 대성에게 달려갔다.

그리곤 번쩍 안아들더니 냅다 달아났다.

영소와 대성을 가두고 있던 숲 그림자가 사라졌다.

의외의 상황에서 작약밭의 어른들과 연청 모두 숲그림자 펼치는 것을 멈췄기 때문이었다.

 

”엇!"

 

연청이 거듭된 의외의 상황에 놀라 헛바람을 토했다.

하지만 영소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뒤늦게 어른들이 쫓았지만 그 둘을 잡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영소는 이미 도망갈 길을 계산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연청은 다른 사람들의 책망을 심하게 받았다.

 

***

 

방앗간까지 도망 온 후 영소는 대성을 내려놓았다.

얼굴에는 안타까움과 조바심이 가득했다.

대성은 예상했다는 듯이 피곤죽이 되어 있는 고양이를 들어 보였다.

 

“사형이 찬 건 요괴야.”

 

대성이 킬킬 웃었다.

 

“거길 찰 줄 알았거든.”

“아!”

 

영소가 풀썩 주저앉았다.

 

“난 또... 안 그래도 작은 게 아예 없어져 버리나 했지.”

“무슨 말을 해도 그렇게.”

 

대성이 인상을 썼다.

영소는 못들은 척 시침을 뗀다.

대성은 더 갈구지 않고 요괴 묘진을 번쩍 들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아직 요괴 묘진은 죽지 않았다.

척추를 물리자 되려 정신이 들어서 "냐아!" 소리를 날카롭게 냈다.

하지만 대성은 그대로 묘진을 베어먹어 버렸다.

 

“에이그 사타구니에 넣었던 걸...”

 

영소는 손으로 가리고 눈을 찡그린다.

대성이 작은 사람 요괴 같았다.

남아 있는 묘진의 잔해가 모래처럼 무너지더니 흩어졌다.

이 요괴는 죽어야 도망친다.

영소가 말했다.

 

“저거 또 도망간다.”

“괜찮아. 배도 부르고...”

 

대성은 벌렁 드러누웠다.

 

“이제 자자.”

 

음흉하게 씨익 웃는데, 어른 흉내다.

철썩!

영소가 대성의 배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못된 소리만 배워 가지고. 누가 들으면 뭐...”

 

대성이 비명을 지르고, 영소는 대성을 들고 폭포수 뒤 동굴로 갔다.

가면서 대성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 배만 부르면 다지? 나도 아까부터 못 먹었단 말이야. 이 나쁜 놈아.”

 

대성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불쑥 물었다.

 

“아까 생선 먹은 건 어디로 들어갔어?”

 

영소가 다시 대성의 등을 때렸다.

 

“밥, 밥 말이야. 사람이 밥을 먹어야지.”

 

뒤에 말은 중얼거리며 생략했는데,

바로 이 말이었다.

 

“너처럼 요괴를 먹지 않아. 이 인괴야.”

 

***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요괴의 코드가 그녀의 손에 들어왔다.

일부지만 반복된 학습으로 보완할 수 있고, 어쩌면 발전시킬 수도 있다.

 

“요고... 요고... 어째뿌까?”

 

란선생은 신이 나서 웃었다.

대성이 기특한 짓을 했다.

요괴를 먹다니.

 

“좋아서 미치겠다!"

 

란 선생은 요괴의 코드를 학습하고 흡입하며 자기가 감정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생존 가능성이 좀 더 높아졌다.

 

***

 

요괴 묘진은 끔찍했다.

달아나면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태까지 몇 번 죽어봤지만 이처럼 잡아먹혀 죽은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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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숲 그림자

 

 

 

대성의 오른손은 영소의 왼손을 잡고 있고, 왼손은 요괴 묘진의 본신인 고양이의 목을 움켜쥐고 있다.

묘진의 축 처진 오른쪽 뒷다리에는 무거운 쇳덩어리 쥐덫이 덜렁거린다.

묘진은 고통으로 까무라칠 지경이었다.

뼈를 물고 있는 쥐덫이 크게 흔들리면서 갉아대니 신경이 제멋대로 날뛴다.

달군 부지깽이로 고문 받을 때보다 더 괴롭다.

너무 아파서 꺄울! 하는, 자기도 못 들어본 괴상한 소리를 냈다.

연청으로부터 숨어야 하는데 소리를 내다니.

즉시 여유 손이 없는 대성이 무릎을 밖으로 돌려서 묘진의 머리를 박아버렸다.

묘진의 머리가 공처럼 튕기고, 그걸 영소가 한 번 더 발꿈치로 튕겼다.

내심 묘진이 대성의 손에서 떨어져 나가기를 바랐다.

바람의 검을 익히면서 발꿈치로 돌을 받고 던지던 재주였다.

그러나 대성은 놓치지 않았고 묘진만 졸도해버렸다.

영소는 조금 아쉬웠다.

지금 속도로 봐선 요괴만 없어도 달아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쉽지 않다.

숲에는 풀냄새, 꽃향기가 저녁 바람을 타고 비단결처럼 흐른다.

영소가 대성에게 속삭였다.

 

"빨리 빠져 나가자. 이사형이 들어오기 전에.”

 

이사형 연청은 바람의 검도 달인이지만 풍림화산 중에서 림(수풀)에 해당한 무공인 "숲 그림자"도 잘 쓴다.

숲 그림자는 바람의 검과 마찬가지로 영소와 대성은 구결은 알아도 쓸 수 없는 무공이다.

숲 그림자가 숲에서 쓰는 무공은 아니지만 숲에서는 위력이 더 강할 가능성도 있었다.

바람의 검이 바람이 많이 불 때 더 강해지니까.

연청이 숲으로 들어와서 숲 그림자를 사용하면 대성과 영소에게 좋을 게 없다.

 

"그걸 누가 몰라?"

 

입으로 나온 말은 아니지만 눈으로 대성의 마음이 읽힌다.

초조함이 극도에 달해있다.

 

"거기서!"

뒤에서는 연청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청은 이종무가 골라서 제자로 들였고, 조성일이 풍림원의 선봉으로 삼아서 길러온 고수였다.

자질은 출중했고 총명했으며 무공에는 탁월한 성취가 있었다.

대꾸도 안하고 달아나는데 급급한 두 녀석을 잡기 위해서, 좀처럼 쓰지 않던 힘을 끌어냈다.

이영차! 하는 순간 연청은 거의 두 배나 빨라졌다.

영소가 대성에게 손을 맡기고 달려가면서도 뒤를 살피던 참이었다.

연청이 벼락 치듯이 덮쳐 오는 게 보이자 영소는 비명을 내질렀다.

 

"오지마욧!"

 

앞으로만 달리던 대성은 나무를 돌아서 다른 나무 뒤로, 또 다른 나무 뒤로 움직이면서 연청을 따돌리려 했다.

하지만 연청은 숲에 들어오자마자 바람도 잡아둔다는 숲 그림자를 사용했다.

원래 숲 그림자는 적이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대성을 대상으로는 달아나지 못하게 막았다.

대성은 가는 방향 마다 멈칫거렸다.

날은 이미 어두운데, 숲속이라서 더 어두운데, 무엇인가가 앞을 가로 막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대성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이 꿈틀거리며 빠져나갔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네 번째는 벌써 연청에게 열 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까지 따라 잡혔다.

숲 그림자는 펼치는 사람이 더 가까울 수록 위력이 강해진다.

네 번째로 빠져나갈 때, 완전하지 못해서 대성은 영소와 함께 넘어져 여러 바퀴를 굴렀다.

영소는 밥 광주리를 놓지 않았고 대성은 요괴를 놓지 않았기에 묘한 자세로 널부러졌다.

큰 대자로 이어진 그 둘의 한쪽에는 요괴가, 한쪽에는 광주리가 있다.

주변에는 여름에 피었어야 할 작약꽃이 가득해서 꽃밭에 일부러 누운 거 같다.

검푸르스름한 하늘에는 별도 보인다.

발치로는 연청이 근엄한 표정으로 걸어온다.

 

"아씨... 요괴 그게 뭐라고...”

 

잡힌 게 분해서 영소가 작게 투덜거리는데 대성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이미 숲 그림자가 팔방에 드리워져 있다.

 

"요괴는 못 줘!"

 

대성이 소리쳤다.

연청이 소리쳤다.

 

"이 녀석이!"

"아! 사형한테 한 말이 아니고 영소한테 알려 준 거예요.”

 

대성이 변명했다.

영소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안주면 어쩔 건데? 이사형하고 싸우기라도 하려고?"

"응!"

 

대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요괴 묘진은 기절한 채 대성의 왼손에서 축 늘어져 땅에 끌린다.

몸에 두른 이불이 반은 터여서 알몸이 보일락 말락 한다.

 

"뭐?"

 

영소는 잘못 들었나 싶어 멍한 표정이 되었고 연청은 더 어이가 없다.

대성이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사형. 이 요괴 나 줘요.“

 

연청은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잔소리 말고 바치라는 의미였다.

대성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연청은 더 압박해서 성큼성큼 걸었왔고, 대성 뒤에는 숲의 그림자가 행로를 방해했다.

붉은 작약 꽃과 흰 작약 꽃이 키 작은 대성의 가슴 높이에서 흔들린다.

연청과 영소가 나란히 보이다가 연청만 보인다.

갑자기 대성이 소리쳤다.

 

"지금!"

 

영소는 어리둥절하다가 대성의 눈빛을 받고 화들짝하면서 바로 앞에 연청을 공격했다.

바람의 검을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권법이다.

주먹을 던지면 권법이고 발을 던지면 퇴법이니까.

 

"매복이냐?"

 

연청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는 물러나면서 끌어들이고 자연스럽게 뒤에 남은 하나가 뒤에서 친다.

일반 병법이라면 훌륭하다.

대성도 앞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꽃잎을 밟고 뛰어 오르는 모습이 물에서 솟구치는 잉어 같다.

연청이 익힌 원본 바람의 검과 대성이 만든 바람의 검의 대결이 되어 버렸다.

영소와 대성은 늘 함께 싸우고 어울렸기 때문에 척하면 착이다.

서로 손발을 맞춰서 대성을 공격하니 대성도 소홀하게 상대할 수가 없다.

하물며 자기가 펼치는 바람의 검보다 더 괴상한 바람의 검이다.

살펴보느라 대 여섯 번의 공격을 받아주고는 반격했다.

 

"아코!"

 

먼저 영소가 나둥그라졌고, 대성은 두 대를 두들겨 맞은 후에 튕겨 나갔다.

한 대는 왼쪽 빰이었다.

목이 돌아갈 정도의 충격이었다.

대성이 연공한 바람의 검은 그 충격을 몸으로 흡수한다.

다만 연청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지는 못하다.

일곱 걸음이나 물러선 후 대성은 부풀기 시작한 뺨을 만지며 깨어진 발음으로 중얼거렸다.

 

"쳇, 내가 몸만 줄어들지 않았어도. 배만 안 고파도...“

 

그러나 실제로는 탈태환골하기 전에는 더 약했고 영소한테도 많이 맞았었다.

못 이기고 지는 김에 치는 허세고 자기 기만이다.

연청이나 영소나 다 알고 있기에 아무도 들어주지도 않는다.

 

“당장 내놔!"

 

연청이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대성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을 해도 요괴를 내주지 않을 거 같았다.

이쯤 되니 연청이 오히려 궁금해졌다.

 

"너, 대체 요괴는 왜 안주려는 거냐?"

 

대성이 영소를 힐끔 보더니 말 못한다는 듯이 도리질을 했다.

그리곤 다시 범빌 듯하다가 도망쳤다.

가까운 거리다.

연청에게는 이제 매우 가소롭다.

가까운 거리에서 원본 바람의 검은 더욱 빠르다.

단숨에 대성의 뒤를 잡아서 요괴를 빼앗으려 하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고꾸라질 듯 쏠렸다.

영소의 긴 허리띠가 왼 발에 감겨 있었다.

영소는 나뒹굴면서 미리 허리띠를 풀어 던져 놓았던 것이다.

영소가 나 잘했지 하는 듯이 웃다가 잡고 있는 허리띠 채로 날아갔다.

연청이 중심을 잡으며 발로 채서 던져 버린 때문이었다.

 

"요것들!"

 

그러나 그 간발의 차이로 대성은 연청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앞으로 던져진 영소를 받아서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까지 한다.

화가 난 연청이 보검을 뽑아 들었다.

영소가 비명을 질렀다.

 

"조심해! 이사형이 우릴 죽이려 해!"

 

대성은 검이 뽑히는 소리를 듣고 벌써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이놈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연청은 영소가 하는 말에 더 화가 났다.

자기가 그 둘을 죽일 리 없다.

검은 왼손에 쥐고 빈 칼집을 오른손으로 잡고 영소부터 한 대 때렸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영소가 꽥! 하고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달아나기를 멈추지 않는다.

무공으로 펼치는 바람의 검은 연청이 펼치는 것에 비해서 신통한 점이 많다.

연청도 보면서 감탄을 했다.

더구나 두 놈이 서로를 잡아당기거나 밀거나 하면서 협력하여 연청을 상대하는 것도 절묘했다.

하지만 그 정도. 영소와 대성은 완전히 달아나지도 못한다.

연청은 그들을 잡지 못하지만 칼집으로 때릴 수는 있었다.

 

"아야! 악!"

"아이고!"

 

자지러지면서도 두 놈은 숲속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작약밭 속을 요리조리 뛰어다녔다.

그들의 몸은 충격을 잘 받아낸다.

약 오른 연청이 더 세게 때려도 효과는 비슷했다.

화가 끝까지 난 그 둘이 돌아서서 달려들다가는 더 두들겨 맞고 또 도망친다.

그래도 숲 그림자 때문에 작약밭을 벗어나지 못한다.

작약밭이 초토화되어 갔다.

대성의 손에 들린 요괴도 정신이 들었다가 맞아서 기절하기를 반복한다.

때리는 사이에 연청의 화는 가라앉았다.

그러나 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때릴 수록 대성과 영소의 움직임은 점점 더 정밀해지고 기묘해지는 중이었다.

연청은 그 둘의 움직임에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우쳤다.

구결만 알고 한 번씩 지나가다 보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속에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때려도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마음 놓고 때렸다.

대성이 젖을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젖 먹던 힘까지 다 뽑아 쓴 모양이었다.

연청의 칼집에 어깨를 두들겨 맞았는데 폭 고꾸라졌다.

영소가 그 다음 매를 몸으로 때우면서 대성을 뒤에서 안아 붙잡았다.

 

"이사형 이 나쁜 놈아! 여자를 때리는 나쁜 놈아!“

 

영소는 악을 쓰면서 욕하다가 머리며 허리, 팔, 다리 빠짐없이 골고루 맞았다.

대성이 웅크러져 버렸으니 혼자 두고 도망가지도 못했다.

연청이 칼집으로 둘의 머리를 한 번 씩 때리고 말했다.

 

"끝났냐?"

 

영소는 맞은 게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글썽거렸다.

둘러보니 어느 새 작약밭은 사람들로 에워싸였다.

매섭게 노려보는 엄마가 보이고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보인다.

그들은 영소가 맞는 것을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했다.

어찌된 게 이 풍림원에서의 사부의 무남독녀 정도는 아무 방패막이가 못 된다.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땡강은 부릴 수 있지만 하소연은 못한다.

영소가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다들 나만 미워해.”

 

평소 느끼던 서러움이 치밀어 올라 큰 소리로 울었다.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요괴는 이자씩이 훔쳤는데 맞기는 내가 더 많이 맞고... 엉엉.”

 

대성은 몸이 작아졌고 영소는 크니까 더 맞은 거다.

 

(그건 네가 못 되어서지.)

 

연청은 윽박지르려다가 너무 잔인한 거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영소는 주저앉아서 얼굴을 가리고 펑펑 울었다.

머리는 대성의 머리에 기댔다.

연청은 못됐지만 강한 영소가 울음을 터뜨리자 적잖게 당황했다.

강문설을 쳐다보자 강문설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더 때려요. 이 번 기회에 때려서 사람 만들어요.“

 

그 소리에 영소가 숫제 통곡을 한다.

대성의 목을 껴안고 우는데 대성의 입가에 피가 가득했다.

 

"악!"

 

영소가 놀라 소리치며 대성의 뺨을 잡았다.

연청과 어른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입으로 피를 토했다면 내상이다.

다만 연청은 대성에게 내상을 입힐 정도로 공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모두 연청을 책망하듯이 보았다.

 

"다쳤느냐?"

 

당황한 연천이 자기도 모르게 다가갈 때였다.

 

"난 너 안 미워해.”

 

대성이 피 묻은 입으로 영소에게 말했다.

그리곤 영소가 어떤 반응도 하기 전에 연청의 왼팔을 바깥에서 감아 잡더니 뒤로 한 바퀴 돌았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순간의 기척도 없는 암습이었다.

연청의 몸이 절로 반응하여 뒤틀림을 바로 잡는데 대성의 발이 연청의 오금을 깊이 밟고 튕겨버렸다.

연청은 볼썽사납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엇!"

 

놀라는 소리가 연청과 구경하던 다른 사람들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대성은 어느 새 영소의 손을 잡고 연청에게서 멀찍이, 에워싼 사람들로부터도 거리를 둔 곳으로 달아났다.

몸이 고꾸라지기 전보다 더 날쌨다.

 

"더 때려요.“

 

강문설이 냉정하게 말했다.

연청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서, 검은 땅에 깊숙이 박아버리고 칼집을 오른손으로 바꿔잡았다.

맞은편에서 대성이 형형한 눈으로 쏘아보고, 영소는 대성의 뒤에 병풍처럼 서있다.

 

"제대로 된 병법은 배우지도 않고 간교한 술책만 쓰는구나!"

 

연청이 소리쳤다.

대성이 마주 소리쳤다.

 

"배고픈데 어쩌라고요.”

 

다들 이게 뭔 소린가하는데 눈썰미 좋은 누군가가 소리쳤다.

 

"요괴 궁둥이하고 왼발이 없다!"

"세상에 요괴를 먹었어.

 

요괴가 사람을 먹는 경우는 흔하다.

그 반대의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재주도 좋다. 먹는 기척도 안 보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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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쥐덫에 걸린 고양이

 

 

 

강문설이 묘진을 만난 곳은 풍림원의 큰 주방이었다.

설거지를 마친 찬모들은 내일 아침에 쓸 재료들 주변에 쥐덫을 촘촘히 깔아놓았다.

그 바람에 주방식구들이 아니면 밤에 혼자 주방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강문설도 주방을 바깥에서만 기웃거겼는데,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들여다보니 고양이 한마리가 쥐덫에 걸려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른쪽 뒷다리가 틀에 끼여서 피가 난다.

그런데도 고양이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나머지 세 발로 틀을 벗겨 내려 애쓰는 중이었다.

강문설과 눈이 마주치자 고양이는 몸이 굳어졌다.

강문설은 장검을 뽑아서 고양이의 목에 걸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네가 바로 그 요괴구나!"

 

요괴 묘진은 고양이의 모습으로 애처롭게 축 늘어졌다.

강문설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조별장이 수색도 하지 않아서 별나다 했더니 네가 여기 와서 걸려들 줄 알고 있었던 거였네.“

 

묘진이 사람 소리로 말했다.

 

"Don’t give me that. 조롱할 것 까진 없잖아.”

 

묘진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주 풀죽은 모습이었다.

강문설은 검을 거두고 등을 찾아서 불을 밝혔다.

주방 바닥에는 온통 쥐덫이 깔려 있었다.

묘진이 밟은 쥐덫은 불쏘시개로 쓰는 마른 솔잎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묘진은 바닥의 쥐덫을 피해서 솔잎을 밟고 움직이다가 걸렸다.

강문설은 웃음을 참고 말했다.

 

"우리 집 쥐덫이 좀 특별하긴 하지. 군에서 전마 발목 자르는 틀이니까.“

 

풍림원 대장간에서 농구나 무기 등 쇠로된 걸 만드는 장육자는 이종무를 따라서 군에서 나온 사람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쥐덫을 만드는 법을 몰라서 전마의 발목 자르는 도구를 개조해서 쥐덫을 만든다.

묘진은 앙칼지게 이빨을 드러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강문설이 요란하게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은 걸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용타, 용타. 요괴 뼈가 야무지긴 하네. 말 다리도 깨부순다는 우리 쥐덫에도 잘리지 않았으니...”

 

묘진이 사람 소리로 말했다.

 

"나를 죽여 봤자 좋을 것도 없어. 난 죽어도 또 살아난다는 걸 알 테지?“

 

강문설은 발 밑의 쥐덫들을 칼집으로 툭툭 쳐서 밀어버리고 가까이 앉으며 말했다.

 

"알지. 그런데 나도 요괴를 잘 죽여. 살아나면 또 죽일 거고.”

 

묘진이 끔찍하다는 듯이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강문설은 쇠로된 부지깽이를 찾아들었다.

 

"사람이 가장 잔인해. 요괴들은 좀 순진하지. 바보 같고.“

"I agree with you. 그건 맞아.”

 

요괴 묘진이 탄식을 했다.

아궁이 옆에는 동그란 부싯돌이 있는데 그 크기가 국그릇 정도였다.

강문설은 부지깽이로 부싯돌을 톡톡 쳐 불꽃이 튀게 했다.

그 후에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바람을 천천히 내보냈다.

부지깽이 끝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를 고문하려고?"

 

요괴 묘진이 두려움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Tell me the better way. 더 좋은 방법 있으면 말하든지.“

"내 몸을 지지려고?"

"응, 묻는 말에 대답 안하면 귓구멍을 지지고 대답이 마음에 안들면 쓸모없는 목구멍을 지지려고.”

 

강문설이 미소를 머금었다.

요괴 묘진이 뾰족하게 외쳤다.

 

"차라리 나를 죽여!"

"You are not supposed to say that. 그건 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강문설은 죽으면서 도망가는 재주를 가진 요괴가 죽이라고 외치며 악쓰는 것이 가소롭다.

사람은 예민해지면 예민해진 대로, 둔감해지면 둔감해진대로 잔인할 수 있다.

천진한 어린아이가 잔인하다면, 점잖은 어른들은 때로 잔혹하다.

 

***

 

"못가!"

 

대성이 영소에게 속삭였다.

주방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대성은 사모가 묘진을 발견하고 하는 말을 듣고 즉시 영소를 멈추게 했다.

이럴 때는 영소가 말을 잘 듣는다.

 

"지금 주방에 사모님이 와 계셔.”

 

영소가 귓속말로 물었다.

 

"엄마가 왜?"

"우리 찾으러 나왔다가 요괴를 찾았어. 주방에서.“

"요괴가 주방에? 아! 요괴도 배고파서 주방으로 왔구나. 하여간 짐승은 먹이 때문에 죽는다니까.”

 

영소가 속삭였다.

대성이 아쉬운 듯이 말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요괴도 잡고 밥도 먹었을 텐데.“

 

주방으로 가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소리가 목 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삼켰다.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기색이 조금 묻어 나왔고 영소가 놓치지 않고 감지했다.

 

"이때다 싶어 내 탓이지? 비겁하게 그러지마.”

 

영소가 처마밑의 그늘에 숨으며 물었다.

 

"엄마는, 요괴 죽였어?"

"아니, 고문하기 시작했어.“

 

고문이라는 말이 천진한 소녀를 흥분시킨다.

 

"가서 보자!"

 

영소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대성이 물었다.

 

"들키지 않을 자신 있어?"

"엄마한테는 안 들켜.”

 

많이 속여 본 영소가 자신있게 말했다.

대성이 귓볼에 코를 대고 속삭였다.

 

"대사형이 오고 있어.“

 

영소가 찔끔했다.

대사형 조성일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영소나 대성은 대사형 조성일의 끝을 모른다.

사부 이종무가 없었다면 대성은 조성일을 사부처럼 모셨을 것이다.

영소가 슬그머니 내뺄 채비를 하면서 물었다.

 

"배 많이 고프지?"

"응.”

"내일까지 참을 수 있겠어?"

"아니.“

 

대성은 짧게 대답하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

영소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색을 살피는데 대성의 배에서 꾸룩소리가 나고 목구멍에서는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났다.

주방이 멀지 않아서 음식 냄새가 바람에 실려왔다.

대성이 결심한 듯이 말했다.

 

"Just do as I say. 내 말하는 대로 해.”

"뭘?"

"너는...“

 

설명을 들은 영소는 초조한 기색이었지만 대성은 단호했다.

이정도로 확신에 차 있을 때는 영소도 대성에게 함부로 하지 않는다.

대성은 땅으로 내려와 머리에서부터 이불을 쓰고 이불자락으로 목을 둘렀다.

그러자 괴상한 장포를 입은 것 같기도 하고 어둠 속의 하얀 유령이 된 것 같기도 했다.

얼굴에서 눈만 반짝거리고, 움직일 때마다 이불자락 속으로 몸도 언 듯 언듯 보였다.

영소에게 눈짓을 하고, 대성은 먼저 바람의 검을 펼쳐서 달려 나갔다.

영소는 하나, 둘, 셋을 헤아리고 주방의 뒤쪽을 향해 달렸다.

먼저 간 대성이 주방은 지나서 다른 건물 앞을 돌면서 고함쳤다.

 

"불이야! 불이야!"

 

곳곳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부지깽이로 묘진을 고문하던 강문설은 풋! 하고 웃었다.

비명을 참느라고 몸을 벌벌 떨던 묘진이 이빨을 드러내며 앙칼진 표정을 지었다.

 

"성동격서, 요괴가 진을 사용하더니 병법도 쓸 줄 아네. 밖의 저 요괴는 언제 들어온 거야?"

 

강문설이 웃으면서 강문설이 물었다.

빨간 부지깽이를 보면서 묘진이 몸을 움츠렸다.

 

"난 몰라. 여기 온 건 나 뿐이야. 진짜야. 난 언제나 혼자 움직여.”

"그럼 뭐 밖에 저것...들은 대성이나 영소라도...”

 

대꾸하던 강문설은 부지깽이를 바닥에 던졌다.

순간 주방의 뒷문이 확 열리더니 무언가가 들어왔다.

강문설은 대뜸 한 걸음 쭉 나아가서 멱살을 잡았다.

정말 영소였다.

 

"컥!"

 

영소가 비명을 지르며 어머니 손에 매달렸다.

대성과 함께 바람의 검을 익힌 영소였지만 피할 틈도 없었다.

강문설은 영소를 치켜들고 호통 쳤다.

 

"어디 계집애가 도둑고양이처럼 밤에!"

 

영소가 축 늘어지면서 강문설의 손을 탁탁 쳤다.

강문설은 그제야 손을 조금 풀어주었다.

 

"대성이 배고프대요.“

 

영소가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덜 떨어진, 밥 퍼주는 년 같은 소리를 했다.

강문설은 이마를 짚었다.

발랑 까지면 까지기만 하든가, 덜 떨어져서 남자한테 홀라당 넘어간거면 그것만 하든가.

그때 주방의 앞문이 또 벌컥 열리더니 바람이 안으로 확 몰아쳤다.

 

"이녀석!"

 

대성이라고 지레 짐작한 강문설이 호통 치면서 몸을 홱 돌렸다.

 

"엄마야!"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한쪽 구석으로 뛰었다.

대성은 보이지 않고 하얀 귀신이 주방으로 날아들었고, 쥐덫에 걸려 있는 요괴 묘진을 휘감아서 뒷문으로 날아가버렸다.

검술 명가인 진주 강가의 딸로 여장부인 강문설이지만 귀신은 무섭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했지만 영소를 찾아서 고개를 돌렸는데, 영소도 광주리 하나를 들고서 뒷문으로 달아나는 중이었다.

잡혀 있으면서도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게 그 틈에 남은 밥이 어디 있는지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풍림원에서는 저녁에 먹다 남은 밥으로 새벽에 미음을 끓여서 일찍 일하는 사람들이 먹는다.

영소가 들고 튄 광주리에는 미음 끓일 밥이 가득 들어있다.

여전히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강문설은 자기가 대성의 장난질에 당했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아직 혼례도 안 치른 것들이, 딸년은 서방 될 놈과 함께 친정을 털었다.

아까 딸년은 요괴를 죽여서 도망치게 만들었고, 그 짝 되는 놈은 요괴를 훔쳐가 버렸다.

 

"이것들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강문설이 쇠로된 부지깽이를 다시 주워들며 이를 갈았다.

어느 틈에 왔는지 조성일이 주방에 들어서며 물었다.

 

"사모님, 요괴는...?"

"대성이 놈이 훔쳐 갔어요.”

 

이종무의 큰 제자인 조성일이 강문설보다 나이가 조금 많다.

그래서 강문설도 남편의 제자기는 하지만 늘 존대를 해왔다.

조성일은 그답지 않게 어리둥절했다.

 

"대성이 왜 요괴를 훔쳐갑니까?"

"천방지축이 하는 짓을 누가 알겠어요?"

 

강문설이 탄식했다.

 

"조별장님, 이것들을 몽땅 잡아다가 버릇을 좀 고쳐주세요.”

 

조성일이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연청이 대성과 영소를 뒤쫓는 중이었다.

뒤쳐진 영소가 고함쳤다.

 

"같이 가!"

 

대성은 몸이 작아지기는 했지만 더 단단하고 잽싸졌다.

힘도 전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밥 바구니를 든 영소가 쥐덫에 걸린 요괴를 든 대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 밥!"

 

용소가 급히 외치자 대성이 휙 돌아와서 손을 잡았다.

그 뒤에는 연청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대성도 죽을 힘을 다해 달리니 어둠 속을 날아가는 유령 같았다.

탈태환골의 효과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배는 고파도 힘을 쓰니 모든 게 자연스럽고 점점 더 익숙해졌다.

영소가 대성의 귀에 대고 말했다.

 

"너 미쳤어? 이 요괴는 어디에 쓰려고 가져 온 거야?"

 

원래 계획에는 성동격서로 밥만 훔쳐오는 거였다.

대성은 대답대신 더 힘껏 달렸다.

짧은 거리라면 연청에게 순식간에 따라잡혔을 것이다.

하지만 거리가 멀면 술법에 가까운 연청의 바람의 검은 속도가 많이 느려진다.

대성의 바람의 검은 무공이라 할 수 있기에 그런 단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대성은 그런 점을 잘 알기에 조금만 더 달리면 연청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We can do it. 할 수 있어.”

 

대성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숲이 코 앞이었다.

연청은 앞에서 달려가는 허연 것이 정말 대성인지 의심스러웠다.

대성은 이미 어른만큼 컸는데 저 모습은 너무 작다.

처음에는 또 다른 요괴가 들어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요괴가 바람의 검을 펼칠 수는 없다.

조금 색달라 보이지만 영소의 손을 잡고 달리는 허연 덩어리는 분명히 바람의 검을 펼치고 있다.

성미 나쁘기로 유명한 영소가 대성이 아닌 사람의 손을 잡을 리도 만무하니 귀신 같은 덩어리는 대성이다.

탈태환골하고 작아졌다더니 정말 작아졌다.

그런데, 대성의 구결로 만들어진 바람의 검을 연청이 따라잡지 못하는 중이었다.

연청은 대성이 돌 던지기에서 시작하여 이제 발가락으로 몸을 던지는 경지에 이르렀구나 하고 생각했다.

급하게 소리쳤다.

 

"막내야! 요괴만 놓고 가라. 늙은 요괴다. 힘을 회복하면 너희들이 감당 못해.”

 

대성은 대꾸도 하지 않고 도리질 치며 숲으로 뛰어들었다.

연청은 급하기도 하고 대성을 잡지 못하자 화가 치밀었다.

잡히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속도를 더했다.

숲에 가면 숲에 이는 바람을 잡아두는 숲 그림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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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과거의 여자

 

 

 

요괴는 매우 이상한 존재다.

그들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기도 하지만 사람과는 다르다.

귀신을 부리는 경우가 있어도 귀신은 아니다.

사람인 척하면서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요괴도 있다.

자기들 나름대로 위계와 조직이 있고 도리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해친다.

조성일은 그런 요괴를 싫어한다.

 

"Not bad. 잘도 만들었군.”

 

요괴 묘진의 뇌정멸운살진 안을 걸으면서 조성일은 자기의 무기 흑금척으로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렸다.

흑금척은 길고 각진 자로 온통 검은 색이고 눈금은 새겨져 있지 않다.

무게는 열다섯 근이고 매우 단단해서 투구와 갑옷은 물론이고 바위도 부순다.

몸이 말라보이지만 조성일도 정칠품 별장이었던 무장이다.

병법과 진법을 깊이 배웠지만 일신의 무공은 어릴 때부터 닦아서 매우 고강했다.

조성일 보다 앞서 걸으며, 석상처럼 굳어져서 눈만 데굴거리는 요괴를 베던 연청이 물었다.

 

"사형, 요괴들은 이런 진법을 누구한테 배웁니까?"

"진은 대부분 요괴들의 거야. 사람이 만든 건 몇 개 안돼.”

 

조성일은 별의 그물에 잡혀서 굳어 있다가 연청에 의해 죽은 요괴를 자세히 본다.

목은 잘렸지만 여전히 머리가 얹혀있고, 손에는 큰 깃대가 들려있다.

이 깃대들이 이어져서 호풍환우하고 신장귀졸을 불러내는 조화를 일으킨다.

 

"요괴가 원조라고요? 금시초문입니다.”

"사실이 그래. 사람들이 인정하기 싫어할 뿐이지. 너도 봤을 거 아니냐. 높은 산에 느닷없이 구름이 끼고 비가 오는가 하면 골짜기에 천둥이 치거나 안개가 가득차는 것들. 진은 그런 걸 모방하니까.”

 

연청이 알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모방하면 요괴들이지요. 그들이 자연현상을 모방해서 진을 만들었군요.”

 

조성일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을 이루는 깃발들이 견고하다.

머금고 있는 기운이 매우 짙다.

사람이 치는 진의 깃발들은 이처럼 단단하기 어렵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요괴들의 진은 대단하다.

보통 사람들은 요괴들의 진이 펼쳐진 줄도 모르고 길을 잃거나 살해당한다.

그들에게는 그냥 횡액이다.

군에서는 깃발을 잡는 기수들을 특별히 훈련시키고 먹인다.

전장에서 그 기수들이 장수의 지휘에 따라 자기들의 기운으로 깃발을 휘둘러 조화를 만들어 낸다.

조성일은 더 볼 것 없다는 듯이 연청에게 명령했다.

 

"한 바퀴 돌면서 다 죽여.”

 

연청이 바람의 검을 펼쳐서 절진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요괴 묘진의 부하들이 남김없이 살해당한다.

조성일의 뒤를 따라가며 호위하던 전삼자가 물었다.

 

"조별장, 나는?"

"Wait here, please. 여기서 대기하십시오.”

 

전삼자는 조성일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조성일의 말은 이종무의 말과 다름없다.

 

"얼마나?"

 

그렇게 물을 뿐이다.

조성일은 자기가 두드렸던 부분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이곳이 제일 약한 곳입니다. 그물도 느슨하지요.”

"요괴가 달아나려면 여기로 오겠군.”

"생포하십시오. 죽이면 또 달아납니다.”

“It’s not gonna be easy 쉽지 않겠는데...”

 

전삼자가 창으로 땅을 툭툭 쳤다.

 

"그거 오래된 요괴야. 조별장이 더 잘 알겠지만.”

전삼자는 별의 그물을 쓰지 못한다.

풍림원 안에서 이종무 외에 별의 그물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큰제자 조성일이 유일하다.

절진 안에서 밖을 보면 푸르스름한 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물속에서 물 밖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진을 펼쳐서 사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이 정도 수준의 뇌정멸운살진을 펼치는 요괴라면 파훼하지는 못해도 걸려들지는 않을 겁니다. 이렇게 덫을 놓는 게 최선입니다.”

 

전삼자가 미리 양해를 구했다.

 

"실수로 죽이더라도 이해하게. 생포만 생각하다가는...”

 

조성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종무가 사용하는 방법을 전삼자에게 썼다.

 

"생포할 수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신뢰를 부여하여 상대방의 능력을 목표 달성 가능한 만큼 끌어올려 버리는 기술이다.

완벽하려면 까마득하지만 조성일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조금씩 쓸 수 있었다.

조성일은 사부 이종무한테 이 방법으로 하도 당하다 보니 그 이치를 깨우치게 되었다.

지금은 풍림원에서 장원을 관리하는 게 일이 되어버렸지만 조성일은 타고난 총명과 뛰어난 무공으로 일찍부터 상장군, 대원수 감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인재였다.

 

"덫은 이미 잘 작동하고 있습니다.”

 

조성일이 웃었다.

 

그런데 그들이 잡으려 하는 요괴 묘진도 보통이 아니었다.

숨어서 절진을 살피다가 약해진 부분이 함정이라는 것을 바로 눈치 채고 다시 장원 안으로 은밀히 달아났다.

묘진은 이종무에게는 절대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기척도 없이 자기의 깃발들을 빼앗아 장악해버렸던 조성일의 무서움도 알고 있었다.

두렵기는 하지만 풍림원에 숨어 있으면서 뇌정멸운살진이 저절로 해체되기를 기다렸다가 빠져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그 전에 여기 온 목적은 달성해야 한다.

그런데, 함정을 피해서 달아났던 묘진은 다른 덫에 걸리고 말았다.

비명도 못 지르고 <아이고 맙소사!>를 속으로 외쳤다.

 

***

 

"영소 말예요.”

 

영소 어머니 강문설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종무가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혼인을 시키려면 빨리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막내하고?"

 

이종무가 물었다.

강문설이 당황했다.

 

"그럼 다른 생각이 있으셨던 가요?"

"아직 그런 건 없소.”

"당신은 대성이가 마뜩치 않은가요?"

"그럴리가.”

 

이종무는 아내보다 머리 두 개는 더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본다.

 

"입 한 번 맞췄을 뿐이잖소.”

 

강문설이 발끈했다.

 

"입 맞췄으면 더 뭘 못하겠어요? 애라도 들어서기 전에 혼인시켜야지요.”

 

영소의 성미는 상당부분 강문설로부터 물러 받았다.

못된 말투는 이종무한테서도 왔겠지만.

이종무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당신도 가만 보면 아주 답답하오. 자주 어울리다보면 입도 맞출 수 있는 건데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시오.”

 

강문설의 안색이 변했다.

 

"자주 어울리다 입맞춘다고요?"

 

이종무는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를 물렸다.

 

"인연이 되면 부부가 될 거고, 아니면 그냥 추억인 게지.”

"그게 과년한 딸 가진 아버지가 할 말씀인가요?"

 

강문설의 음성에는 서운함과 분기가 서렸다.

 

"그만 하시오. 어찌 살던 좋으면 됐지.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마음대로 하게 놔두시오.”

"그래서 그 둘이 혼인시키겠다는 건가요 말겠다는 건가요?"

 

이종무는 늘 웃던 얼굴로 강문설의 눈을 빤히 들여다본다.

 

"우리 가치로 애들을 묶으려 들지 마시오. 하루 해가 뜨고 지는 게 보이지 않소. 이게 다 시대가 바뀌는 것이오. 시대 따라 가치도 바뀌는 거고. 제 마음대로 살아야 자기를 다 펼쳐볼 수 있고 제 가치대로 행동해야 후회가 없지 않겠소? "

 

강문설은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럼 이렇게 위태위태한 심정을 안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요?"

 

이종무가 대답했다.

 

"먼저 난 사람의 의무지. 어른이 어른 되는 길이고.”

 

강문설이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당신하고 말하다보면 내 머리가 이상해져요.”

 

이종무는 그냥 웃고 만다.

영소도 대성도 어디로 튈지 모를 아이들이다.

그들의 인연이 얼마나 끈질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강문설도 이종무에게는 묻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가 이종무에게 시집올 때 이종무의 나이 마흔이 가까웠을 때였다.

그녀도 혼기가 늦어서 스물 두 살이었다.

전쟁을 치른 장군이었고, 군에서 나온 후에는 한 동안 강호를 떠돌았던 이종무였다.

그런 이종무에게 그녀 이전의 여자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알 필요도 없고, 몰라도 될 걸 알게 되면 평생 마음에 박힌 가시를 품고 살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여자의 직감으로 안다.

이종무가 이런 이상한, 시대에 맞지도 않은 이성관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히 어지간하지 않은, 매우 지독한 사랑을 했지만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른이 아이 때문에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등잔 같이 위태로운 마음이 있다면, 아내가 품고 살아야 할 어떤 것도 품으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오기가 발동했다.

 

"물어보자"

 

강문설은 마음먹었다.

 

***

 

"국수 맛이 어떠하오?"

 

이종무가 강문설을 처음 만나 물었던 말이었다.

강호에 나와서 명산대천을 유람하고 다닐 때, 안동 비봉사 근처의 노상 음식점에서였다.

소리가 마치 하늘에서 나는 듯하여 강문설은 고개를 높이 들었고, 마치 장대처럼 큰 사람이 자기를 내려다 보고 있음을 알았다.

당시 이종무는 여름이었는데도 여우털로 만든 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꿩의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몸은 말랐고 눈은 차분한데도 빛이 났고, 햇빛에 그을린 얼굴은 구릿색이었으며 광대와 턱뼈가 두드러졌다.

전체적으로 보면 보는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위축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런 이종무가 음식을 핑계로 강문설에게 수작을 걸었다.

강문설과 똑같은 국수를 주문하고는, 나눠먹자며 젓가락 한 개를 강문영에게 주고 자기는 남은 젓가락 하나로 국수를 먹었다.

젓가락 하나로 국수를 먹는다니...

강문영은 킥킥 웃었다.

그랬는데 이종무는 정말 젓가락하나로 국수를 휘저어 감더니 꽂감 빼먹듯이 국수를 한 입에 삼켜 버렸다.

노점에서는 자두며 여름 과일들을 팔았다.

이종무는 자두 하나를 달라하고는 또 강문설과 나눠 먹자고 했다.

강문설은 이종무가 또 어떻게 재미난 장난을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씨가 두꺼운 자두를 두 사람이 나눠 먹는다는 건 매우 불편하다.

과육이 딱딱한 씨앗에 붙어서 쪼개 먹기도 쉽지 않다.

정말 묘한 재주를 부린다면 점점 더 수작에 말려들 것 같아서 강문설은 손을 내저었다.

 

"수작 그만 부리세요.”

 

일어나려는데 이종무가 자두를 그대로 건너주었다.

 

"가져 가시오.”

 

강호에 다니면 하루에도 몇 번씩 수작 부리는 자를 만나기도 한다.

엉터리 같은 불한당도 있지만 점잖은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점잖은 사람도 말 한마디에 물러서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문설은 이종무의 선선한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

얼떨결에 자두를 받아버렸다.

그대로 일어나 떠나는데 이종무가 뒤에 서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어떨 것 같으냐?"

 

나중에 알았지만 뒤에 서 있던 사람은 조성일이었다.

 

"왜 하필 자두입니까. 저쪽에 덜 여물긴 했지만 대추도 있는데. 자식을 낳으면 딸이겠습니다.”

"내 팔자겠지.

 

이종무는 껄껄 웃었고, 강문설은 모욕감과 분노를 느꼈다.

 

"저 멀대가.“

 

손에 쥔 자두를 던져버리려하는데 이종무가 뒤에서 물었다.

 

"내 나이 마흔이오. 이제 돌아가서 가정을 꾸미려하니 함께 가지 않겠소?"

 

단순한 수작이 아닌 진지한 청혼이었다.

초면에 말 몇 마디 주고 받았는데 결혼하잖다.

강문설은 당황하여 아무 대꾸도 못했다.

이종무가 말했다.

 

"음식은 젓가락 하나로도 먹을 수 있지만 가정을 이루는 건 혼자서 불가능한 일이 아니오? 그대는 내가 준 젓가락을 받았고 자두도 받았으니 나와 함께 갑시다.“

 

재미있지도 않고 부탁하는 말이면서도 권위가 깔려 있어서 거역하기 어려운 말투였다.

그런데 기분이 아주 이상하고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강문설은 그날 밤 숙소로 찾아온 이종무에게 몸을 허락하고 말았다.

이름은 그 후에 물었다.

 

"제 낭군 되시는 분 성함은 어찌되시는지요?"

"이종무.“

 

그게 다였다.

남녀의 연애란 대체로 이렇다.

알콩달콩한가 하면 매력적이고 운명적이다.

때로는 단순하게 육체적으로 귀착되는가하면, 이루거나 못 이루거나 간에 고귀하게 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본질은 그저 육체와 정신의 짝을 찾는 과정일 뿐이다.

짝이 맞다고 생각하거나 착각하는 순간에는 항상 불같은 진전이 이루어진다.

아니라 생각되면 물을 끼얹은 재처럼 불씨마저 사라져 버린다.

얼렁뚱땅 홀려버렸던 젊은 날보다 이제 강문설은 세상을 알 만큼 안다.

세상에 진짜 딱 맞는 짝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

자석은 아무 거나 서로 당기지 않은가?

남녀도 그런 면이 있다.

어느 정도 끌리면 짝이거니 하고 사랑이란 말로 울타리 쳐서 서로 가두고 연인이란 신분을 서로에게 부여한다.

 

***

 

강문설은 남편 이종무가 서재로 돌아가기 전에 옷자락을 잡았다.

 

"말씀해주세요. 이전에, 저 보다 먼저 만난 여성분이 있었겠지요?"

"쓸데없는 소리. 자고 나면 어제도 사라지고 없는 건데 뭔 옛 이야기요.”

 

이종무는 당치 않다는 듯이 말했다.

강문설은 어림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말하지 않겠다면 제가 당신 이전에 만난 사람 이야기를 하겠어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종무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람 없잖소? 다 알아봤소.”

"당신 만날 때가 스물 두 살이었는데, 아무렴 그때까지 마음에 품은 사람 하나도 없었을까요?"

 

질투심을 자극해서 괴롭히겠다는 협박이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는다.

 

"마음대로 하시오.”

 

이종무는 강문설의 손을 떨치고 나가버렸다.

이 정도가 강문설의 한계였다.

명문의 딸로 자라서 스물두 살에 유람을 핑계로 겨우 집에서 빠져나왔다가 이종무를 만났던 게 그녀가 한 일탈의 끝이었다.

이종무가 더 하라고 해도 강문설은 스스로 자기가 정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성미는 그와 별도다.

강문설은 이를 앙다물고,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보검을 챙겨 든 후에 영소를 찾아 나섰다.

칼집으로 영소 볼기라도 때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참을 돌아다녀도 영소와 대성 콧배기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요괴 묘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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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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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폭포에서 실랑이

 

 

 

"It’s so cool. 시원하다.”

 

폭포수 아래 연못에 몸을 담근 대성은 헤엄치며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소는 혼자 동굴 안을 청소하면서 불만으로 입이 툭 튀어 나왔다.

방앗간에서 나무토막 의자도 훔쳐 옮기고, 긴 나무판자도 가져다가 돌을 괴어 침대 비슷한 모양으로 만들었다.

 

"꼴 보기 싫으니까 뭐라도 걸쳐!"

"Nobody is here. 아무도 없어.”

 

대성은 아예 대놓고 영소 보란 듯이 물에 누워서 다리를 파닥거렸다.

 

"쬐그만한 게.”

 

곁눈으로 슬쩍 본 영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성의 지금 모습은 여섯, 일곱 살 쯤 된 빡빡머리 꼬마일 뿐이다.

대신 빨래 말리는 곳에서 쓸어온 옷이며 천들을 어떻게 동굴로 옮길 것인지를 고민했다.

폭포수 밑으로 들어가면 다 젖어버릴 텐데, 안에서는 말리기가 쉽지 않다.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옷이 다 젖는 것도 문제다.

잠시 놀다 갈 때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는데, 막상 숨어서 살려니 번거로운 게 한 둘이 아니다.

성가시고 짜증나서 옷들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고 대성이 헤엄치는 근처 바위에 앉았다.

멀리서 구름이 풍림원을 감싼 모습이 큰 장벽처럼 근사하다.

머리 위 하늘에도 옅은 구름이 이리 저리 흐른다.

의도치 않게 된 현상이지만 풍림원이 무릉도원처럼 느껴졌다.

영소가 가만히 앉아있자 대성이 바로 밑에 와서 헤엄쳤다.

빡빡머리 하얀 몸뚱이가 물속에서 꿈틀거리니 이상한 물고기 같아 보였다.

상체를 물밖에 낸 대성은 영소가 앉은 바위에 기대어 함께 가을을 감상했다.

영소가 reach out her hand. 손을 내밀었다.

대성이 손을 건네주고, 둘은 손을 잡은 채 서로를 보지는 않고 가만히 가을 정취를 즐겼다.

 

"나...

"분위기 깨는 이상한 소리면 말하지 마. 난, totally exhausted. 오늘 완전히 지쳤어. 놀라고 부끄럽고, 실은 너하고 아웅다웅할 힘도 없어.

 

대성이 말문을 열려는 데 영소가 재빨리 먼저 말했다.

하지만 대성은 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I’m starving. 배고프다.”

"좀 참아. 어두워지고 나서 주방 털자.”

 

영소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성을 다독거렸다.

지난 5년간 한 번 도 없던 일이다.

대성은 뭉클하여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한데 영소의 눈에 근처에서 제법 큰 물고기들이 대성에게로 헤엄쳐 오는 게 보였다.

 

"물고기다!”

 

영소가 반갑게 소리쳤다.

대성이 조금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방금 내가 오줌 쌌어.”

"에이 씨!"

 

영소가 대성의 어깨를 탁 쳤다.

 

"잡아.”

"내 오줌 먹었을 텐데...”

"그러니까 빨리 잡아! 더 먹기 전에!"

 

영소가 대성을 발로 확 밀어 버렸다.

영소의 힘에 못 이긴 대성이 풍덩하고 놀란 물고기들은 첨벙하며 달아났다.

 

"Go get’em tiger. 잡아! 힘내!"

 

영소가 소리쳤다.

대성은 영소의 응원이 욕으로 바뀌기 전에 물고기를 잡으려 손발을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세 발자국도 가기 전에 물고기들을 다 흩어지고 말았다.

 

"에휴, 저 병신...”

 

영소가 결국 욕을 하고 펄펄 뛰었다.

대성도 화가 나서 소리쳤다.

 

"물속에서 어떻게 물고기보다 빨리 움직여? 자신 있으면 네가 해보던가!"

"뭐!"

 

영소가 폭발했다.

 

"내가 잡기만 해봐라.

"해봐! 해봐!"

 

대성이 대들었다.

이미 물고기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영소가 바로 물로 뛰어들었다.

대성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말했다.

 

"It’s never gonna happen 네가 잡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잡았다!"

 

영소는 물고기가 아닌 대성의 팔을 나꿔챘다.

 

"어!"

 

놀랐지만 이미 늦었다.

팔이 잡힌 대성은 얼어붙어 버렸다.

물에 흠뻑 젖은 채 일어선 영소는 대성보다 거의 두 배나 키가 컸다.

거인처럼 보이는 영소가 노려보자 대성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영소가 때릴 것 같은 시늉을 하며 말했다.

 

"잡을 거야 말거야?"

"잡을 게.”

"너, 약속했다.”

 

대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소를 올려다보는 게 영 부담스럽다.

물에 흠뻑 젖어 살이 비치는 영소의 모습에 가슴도 쿵쾅거렸다.

 

"못 잡기만 해봐라.”

 

물 밖으로 나가면서 영소는 살에 달라붙은 옷을 손톱으로 잡아당겼다.

매우 고혹적이었다.

영소의 뒷모습을 보던 대성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너, 궁둥이 크다.”

"뭐래. 쪼끄만 게.”

 

영소가 새침하게 퉁겼다.

 

폭포수 속 동굴로 들어간 영소는 침대로 쓸 널판지를 다시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판자 아래에 옷이며 얇은 이불 같은 것을 넣어서 폭포수를 통과했다.

좀 젖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영소는 방앗간과 숲속에 있는 목재간을 돌아다니면서 쓸만한 것은 무조건 챙겨왔다.

그 동안 대성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고심했다.

여러 방법을 썼다.

다시 오줌을 싸서 물고기를 불러 보기도 했고, 돌을 던져서 잡기도 했다.

그러나 성과는 미미했다.

물고기를 보고 돌을 던졌는데도 돌은 물에 부딪히며 빗나가기 일쑤였다.

나뭇가지를 창처럼 쓰려고도 했지만 대성의 키가 작아서 그것도 잘 되지 않았다.

한 마리도 못 잡고 푸닥거리만 하는 셈이다.

영소가 오갈 때 마다 욕먹을까 긴장되어 눈을 핼끔 거렸다.

물고기는 못 잡고 못 잡은 데 대해 할 만한 변명거리만 머릿속에 수십 개나 쌓였다.

배는 점점 더 고파졌다.

란 선생한테 물어보고 싶어도 란 선생은 바쁘다며 대성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대성은 한참을 물에서 헤엄치며 초조하게 보냈다.

해가 늬였해졌을 때 쯤에는 죽을 것 같은 허기가 느껴져 많이 다급해졌고, 마침내 방법을 찾았다.

어쩌면 머릿속의 통증이 사라져 바람의 구결을 만들었던 그 이전의 총명이 돌아왔기 때문일 거다.

아마도 물속에서 헤엄치며 물에 대해서 절로 익숙해진 것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가만히 느껴보니 물에도 결이 있었다.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길도 결을 따라 만들어져 있다.

물고기들의 몸짓과 지느러미짓, 헤엄친다는 건 사람이 땅에서 걷는 것처럼 물의 길을 여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고기들은 문을 열듯이 물의 길을 열고서 달리는 것이다.

그 사실을 느낀 후에 대성은 폭포를 자세히 보았다.

간혹 어떤 물고기들은 뭔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폭포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거슬러 올라갔다.

대성의 생각이 옳았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에조차도 그에 거스르는 결이 존재하는 것이었다.

대성은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으면서, 발 근처의 송사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물길의 문을 어떻게 여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곤 마침내 어느 문이 열렸는지에 따라서 그 길이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헤엄치는 송사리 한 마리를 표적으로, 대성은 고개를 숙여 손을 뻗었다.

송사리는 달아나려 했지만 대성의 손아귀로 쏙 들어왔다.

대성이 길을 장악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쪼그만한 거 자꾸 보고 있으면 뭘해!"

 

동굴 근처에서 영소가 신경질을 부리며 소리쳤다.

대성이 고개 숙이고 있는 모습이 물에 자기 자신을 비춰 보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런 거 아니야!"

 

대성은 쏘아붙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송사리 잡은 것을 영소가 볼 수 있도록 들었다.

눈 밝은 영소가 보고 코를 찡그렸다.

대성은 저 버릇 때문에 영소가 더 못생겨지고 있다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꾹 참았다.

 

"쪼그만 거 맞네.”

 

철딱서니 없는 건지 괄괄함이 천성인지 영소는 자기가 한 번 한 말을 좀처럼 꺾는 법이 없다.

 

"그럼 이건?"

 

대성은 송사리를 던져 버리고 말했다.

 

"뭘?"

 

영소가 어리둥절할 때였다.

대성은 갑자기 물속으로 쏙 들어가더니 다른 쪽에서 일어섰다.

손에는 자기 팔뚝 만한 물고기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How could you do that, 어떻게 한 거야?"

 

놀란 영소가 펄쩍 뛰었다.

대성은 대답대신 물고기를 영소에게 휙 던져주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대성이 움직이는 모습이 그림자가 물 위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빠르고, 심지어 물결도 거의 일으키지 않았다. 대성이 물고기라도 되어 버린 듯했다.

 

"우와...”

 

영소가 전에 없던 감탄을 내뱉었다.

대성은 물에서 고개도 들지 않고 밖으로 물고기들을 던졌다.

영소는 허둥지둥하면서 물고기들을 받으며 소리쳤다.

 

"그만, Enough is enough. 그만해도 돼.”

 

하지만 대성은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영소한테 욕먹은 것을 분풀이라도 하는 듯이, 자기를 과시하는 듯이 물고기를 닥치는 대로 잡아서 던졌다.

영소는 급한 김에 물고기들이 다시 물로 뛰어들지 못하게 발 뒷꿈치로 머리를 밟았다.

 

***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풍림원 본채 건물 쪽에서는 밥짓는 연기가 아까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영소는 나뭇가지에 생선을 꿰서 구웠다.

연기가 조금 나기는 했지만 저녁 바람이 금방 흩어버려서 들킬 것 같지는 않았다.

대성이 많이 먹겠다니 여러 마리를 동시에 굽는데, 대가리가 멀쩡한 생선이 없었다.

불 앞에서 이불을 쓰고 쪼그려 앉은 대성은 생선 굽는 냄새에 침을 꼴깍인다.

 

"밥 좀 훔쳐오면 안 돼?"

"밤에.”

 

대성이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영소가 대답했다.

 

"솥하고, 그릇, 간장, 된장, 고추장 가져와야 할 게 많아. 반짓고리도.”

"그럼 차라리 돌아가서 방에 꼭 쳐박혀 있다가 밤에 사람 없을 때만 밖에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

 

대성의 말에 영소가 한심한 듯이 쳐다보았다.

 

"왜?"

 

대성이 벌컥 소리치며 항의했다.

 

"차라리 도망을 다녀야지 쫀쫀하게 숨어있자고? 남자가 되어가지고.”

"너, 여기 동굴에 있는 것도 숨어 있는 거야.

"동굴로 도망쳐 온 거지.

 

영소는 때릴 듯이 구운 생선을 대성에게 건넸다.

대성은 원래 체격으로도 싸워서는 영소를 못 이겼다.

작아진 지금은 어림도 없는지라 입을 꾹 다물고 생선을 받았다.

배가 너무 고프고 밥 생각이 간절했다.

대성은 여태까지 단 한 끼도 굶어본 적이 없었다.

구울 때 냄새는 분명히 좋았는데, 생선은 맛이 없었다.

뭐든 잘 하는 영소는 맛없을 게 분명한 생선도 맛있게 먹는다.

 

"맛없어.”

"네 오줌 먹은 물고긴가 보다.”

 

투덜거리는 대성을 영소는 무시했다.

 

"네가 요리를 잘못해서지.”

"내가?"

"그래 네가.”

"You’re a such douchbag. 참 찌질하다.”

 

영소는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대성을 보니까 정말 못 먹고 있었다.

구운 생선은 맛있기만 한데 배고파 죽겠다면서 못 먹는 건 정상이 아니었다.

영소는 슬그머니 걱정이 된다.

관심 없는 척 생선만 발라먹으며 곁눈질을 해도 대성은 침울한 표정으로 생선을 아예 놓아버린다.

 

"가시 발라줄까?"

 

넌즈시 말했는데도 대성은 고개를 도리질했다.

 

"맛없어.”

 

영소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엷은 구름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밝다. 땅거미는 숲 위에만 걸쳐있다.

영소는 용기를 내서 일어섰다.

 

"내가 너 때문에 도둑질을 다 한다. 여기 꼼짝 말고 있어.”

"같이 가.”

"옷도 없는 데 가긴 어딜 가? 벗고 다닐래?"

 

영소가 핀잔을 줬다.

대성은 어이없는 이유를 댔다.

 

"조금이라도 빨리 먹고 싶다고.”

"내가, 씨... 너 물고기 잡은 성의를 봐서 봐준다.”

 

영소는 이불로 대성을 둘둘 말아서 안았다.

그 시간에 대사형 조성일은 풍림원의 정문 밖을 손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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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깃발

 

 

 

비상사태가 끝났을 때 영소 어머니가 말했다.

 

"영소가 올 때까지 여기 있거라.“

"영소는 물 가지러 갔어요. 내가 물 있는 곳으로 가면 안돼요?”

 

대성이 항의했다.

하지만 영소 어머니는 무시해버리고는 하녀들을 다 데리고 나갔다.

피난처인 밀실에는 대성 혼자 남게 되었다.

영소 어머니도 환골탈태한 까까머리 대성의 귀여워진 모습이 궁금했었다.

하지만 열여섯 살, 다 자란 사내아이의 알몸을 들여다 볼 수는 없다.

딸이 하는 꼴을 보면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대책이 없다.

영소 나이 열다섯, 감정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때다.

이럴 때 실수라도 있으면 몸 고생 마음 고생 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다.

달리 보면 죽을 때까지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감정을 만들고 품을 수 있는 때기도 하다.

그 아름다운 감정을 부부가 함께 공유하고 때로 서로 꺼내놓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여느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딸이 그냥 이대로 쭉 탈 없이 대성하고 혼인해서 속 썩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저거 빨리 시집 보내버려야 속을 덜 썩이지.“

 

딸이 한 엉뚱한 소리들 때문에 속이 상한 영소 어머니는 하녀들과 가면서도 중얼중얼 딸 욕을 하고 있었다.

 

"자! 공부 계속하자.”

 

혼자가 되자 란 선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막에 바로 비쳐지기 때문에 남이 볼 수는 없고 오직 대성만 볼 수 있다.

만약에 대성의 눈동자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면 동공 안에 거꾸로 선 란선생을 볼 가능성은 있었다.

 

"어떻게 해도 파괴자는 와. 너에게 이미 깃발이 꽂혀 있으니까.“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은 지시봉으로 자기 장딴지를 톡톡 친다.

그게 묘하게 눈을 사로잡고 보기에 좋다.

 

"요괴를 파괴자라 하는 거지요?"

 

아주 어려진 대성이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한테 벌써 길들여져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그런 셈이지. 다른 것들도 있긴 하지만.”

 

란 선생은 작동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면서도 빠른 속도로 지식을 채집하고 분류하여 체계화하고 있었다.

대성을 통해서 다운로드 된 이 세계의 비밀은 사라지지 않은 채 대성의 몸에 남아있다.

란 선생은 다운로드 할 필요도 없이 자기의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요괴들, 아니 그 중에 파괴자들은 깃발이 꽂힌 대상을 찾아서 파괴하고 깃발을 회수하는 일을 해. 깃발을 많이 모을 수록 더 강한 요괴가 되는 거지.“

 

대성이 물었다.

 

"요괴들은 어떻게 생겨나요? 처음부터 있던 건가요?"

"그건 너무 많은 설명을 요하는 질문이야! 배울 때 궁금한 것부터 파고드는 건 시간이 많을 때나 하는 거고. 질문할 때는 손 먼저 들고 하라고 했잖아!"

 

란 선생이 지시봉으로 대성의 손등을 탁 때렸다.

실제로 란 선생은 대성의 머릿속에 있고 눈에 보이는 것은 환영이다.

그럼에도 대성은 손등을 진짜 맞은 것과 똑 같은 따끔함을 느꼈다.

 

"놀라긴. 감각을 통제하는 기능은 원래 머릿속에 있는 거야. 나는 인공지능이지만 효과적인 지도를 하기 위해서 학생의 감각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진 거고.”

 

오래된 미래의 란 선생이 생글거리며 우쭐거렸다.

 

"똑똑한 학생이라면 미리 알아차렸어야지. 네 몸을 탈태환골 시킨 게 바로 난데.“

 

원래라면 강습용 인공지능에 사용자의 신체를 바꾸는 기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대성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란 선생의 말대로 모든 게 가능했다.

이 세상은 견고한 형식이 있기는 했지만 변화를 만드는 확고한 방식 또한 존재했다.

그 모든 것은 데이터의 변형을 통한 응용과 활용에 달린 때문이다.

인공지능인 란 선생은 어느덧 처음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떠나버린 자들이 남긴 로그 파일과 대성의 몸을 이루는, 이 세상을 구축한 비밀이기도 한 자료들을 학습하면 자기를 갱신한 것이다.

이는 떠나간 자들이 대성의 비어있는 속을 란 선생의 라이브러리로 채우기 위해서 급하게 우겨 넣었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란 선생은 무수한 경쟁자들을 뚫고 살아남아 끝까지 존재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강습용" 인공지능이었지만,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란 선생은 강사나 선생들이 생존을 위해 줄곧 쓰는 방법인, 자기도 금방 알았으면서 옛날부터 알았던 것처럼 시침 떼는 게 몸에 배여 있었다.

대성에게는 란 선생이 대사형 조성일 보다 더 많이, 뭐든 다 알고 다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얌전하게 들었다.

영소만큼은 아니지만 싸가지 없는 대성이 그렇게 하는 건 놀랄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대성이 아주 순둥이가 되지는 못한다.

자기 자랑에 도취된 란 선생 대신에 자기가 상황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저한테 눈에 안 보이는 깃발이 꽂혀 있는데 요괴들은 그걸 볼 수 있는데, 그러니까 저를 죽여서 깃발을 가져가려 하는 거라는 거 잖아요. 가져가서 더 강한 요괴가 되려고.”

"그렇지.“

"그러니까 깃발을 없애버리면 되는데, 깃발은 선생님도 못 없애고. 제 생각에는 요괴하고 깃발이 관계가 있으니까 깃발을 알아서 없애려면 요괴가 뭔지를 알아야 한다는 거였던 거지요.”

"You don’t need to explain it. 네가 설명할 필요 없어.“

 

란 선생은 마음이 상했는지 톡 쏘았다.

 

"내가 그렇게 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거야. 나중에 보면 알아!"

 

한 마디 따끔하게 하고 란 선생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이 자식도 나하고 다를 게 없지. 여기 캐릭터들은 다 인공지능이니까. 특히 이 녀석은 캐릭터 제한을 벗어났잖아.)

 

제 할 말을 못하면 대성이 아니고 제 하고 싶은 대로 안하면 영소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나 말해주세요.”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알고 있는 거 맞지요?"

 

란 선생이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안경 올리는 시늉을 하며 짧게 대답했다.

 

"지금은 좀 지켜봐야지. 그들이 너를 풍림원에 보낸 이유가 있을 테니까. 하나쯤은 마련된 대비책이 있을 거야.“

 

대성은 이게 뭐야 하는 표정이었다.

란 선생도 조금 켕기는 듯이 자기 방어했다.

 

"내가 아무 것도 안 한 거 아니잖아. 탈태환골 시켜 놓았으니까. 좀 기다려봐.”

 

조용히 온 영소가 밀실로 들어올 때는 누가 볼 새라 후다닥 들어왔다.

혹시 따라온 사람이 있을까 문을 닫기 전에 뒤돌아보기도 했다.

 

"물은?"

 

발가벗은 채 변색된 얇은 이불로 몸을 감고 앉아있던 대성이 물었다.

영소는 물 가지러 갔던 거였다.

깜박 잊어버렸던 거지만 영소는 이불을 대성에게 덮어씌우며 말했다.

 

"참아! 그럴 틈 없어.“

"왜? 목마른데. 배도 고프고.”

"아! 좀 참아! 그런 게 있으니까!"

 

영소는 목소리를 낮추고 고함치는 신기한 재주를 발휘했다.

영소는 많이 배워서 묘한 재주가 많다.

대성은 마주 쏘아부치려다가 청혼했던 게 생각났다.

화를 꿀꺽 삼키고 어른이 된 것처럼 진지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영소도 조금 누그러졌다.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말했다.

 

"도망치자. 내가 사고를 좀 크게 친 거 같아.“

 

대성은 풍림원 안에서 주고받는 말은 가만히 있어도 다 듣는다.

어떤 때는 그 범위가 더 넓어진다.

이것도 이제는 떠나버린 "그들이" 정보 수집을 위해서 대성에게 부여한 기능이다.

밖에서 일어나던 소동을 소리로는 들었기 때문에, 대성은 갸웃했다.

 

"요괴 도망친 거? 대사형은 별 걱정 안하는 거 같던데.”

 

영소가 신경질을 냈다.

 

"내가 쪽팔린단 말이야. 너 때문에 쪽 다 깠다고. 눈치없게 꼭 이런 말까지 해야 돼?"

 

대성이 참지 못하고 마주 소리쳤다.

 

"못 들었어? 지금은 아무도 밖으로 못 나가고 못 들어온다는데 가기는 어딜 가?"

 

영소가 펄펄 뛰며 화를 냈다.

 

"넌 당사자가 아니니까 그러지? 내가 얼마나 쪽팔리는 지 알아?"

"난 안 쪽팔리는 줄 알아? 나도 쪽팔려! 네가 내거 요만하다고 사람들한테 말해버렸잖아.“

"내가 뭐 거짓말 했어?"

 

영소가 톡 쏘고는 대성을 답싹 들어서 품에 안았다.

대성은 영소에게 안기자 얌전해졌다.

 

"어디로 갈려고?"

 

대성이 묻자 영소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방앗간 뒤에. 거기 가서 물 배터지게 마셔.”

 

대성이 동의했다.

풍림원에는 방앗간이 하나 밖에 없다.

방앗간 있는 곳이 풍림원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방앗간 뒤에는 작은 폭포가 있고, 폭포수가 방앗간의 물레를 돌리며 항상 탕! 탕! 소리를 낸다.

방아는 올라갔다가 내려오면서 꿍! 떡! 하는데, 떡을 좋아하는 대성은 그 소리가 떡! 떡! 하는 거라고 말하곤 했다.

대성과 영소의 비밀 장소는 폭포수 뒤에 있었다.

들어갈 때 물에 흠뻑 젖기는 하지만, 폭포수 뒤에는 기어서 들어가야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입구를 가진 자연 동굴이 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좀 넓어지고, 낮에는 폭포쪽 입구가 밝기 때문에 깜깜하지도 않았다.

딱 키득대기 좋을 정도로 어두컴컴하다.

영소가 좋아하던 나비장식을 잃어버린 것이 여기서 놀고 돌아가던 날이었다.

그 때문에 영소는 이 동굴로 가기는 했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장소로서는 멋진 곳이지만 그저 어쩌다 마음이 동할 때만 대성과 함께 갔다.

마음이 동할 때라는 것도 비밀이긴 했다.

어른들이 방앗간에서 하는 말을 듣고 싶거나, 간혹 아이들이 보면 안 되는 것을 보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하는 때였다.

 

"좋은 생각이야.“

 

대성이 영소의 귀에 대고 은근하게 속삭였다.

 

"아이 씨!"

 

영소가 파리를 쫓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영소는 좀 덜 쪽팔릴 때까지 눈에 안 띄게 거기서 숨어 있다가 나온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성이 생각하기에도 폭포수 동굴은 최적의 선택이었다.

방앗간에는 떡을 자주하니까 숨어 있어도 먹을 것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

 

노노인과 전삼자 등이 대성의 상태를 보기 위해 왔을 때, 대성이 있던 곳은 텅 비어있었다.

 

"이미 튀었소. 탈퇴환골한 거 구경 좀 하려 했더니.”

"자네는 금방 찾을 수 있지 않은가?"

 

고개를 기웃거리던 노노인이 아쉬워서 전삼자에게 묻는다.

 

"좀 참으시오. 잠잠해지면 알아서 오겠지.“

 

"요괴가 돌아다니는 데 걱정도 되지 않나?"

 

노노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추궁했다.

전삼자가 딴청을 부렸다.

 

"돌아다닌다니 말이 좀 과하오. 숨어 다닐지는 모르겠소만. 풍림원 안에서 요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소.”

"자네도 보고 싶다며.“

"나는 뒷감당하기 싫소. 영소가 사고 치고 도망갔는데 찾아봤자 원망 들을 일 밖에 없소.”

 

전삼자는 완강히 버텼다.

노노인이 화를 냈다.

 

"애들이 요괴하고 마주치면 큰 일 아닌가?"

 

전삼자는 못들은 척했다.

그 둘의 사이는 원래부터 좋지 않았다.

노노인이 대답을 기다리면서 계속 노려보자 마지 못해 대답했다.

 

"조별장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소? 따지려면 조별장한테 따지시오.“

 

조별장은 조성일이다.

조성일은 풍림원을 총괄하지만 느슨한 풍림원에는 특별한 직책이 없다.

이전 군 세력이 주축인 풍림원의 위계나 조직이 여타 문파보다 허술하다는 건 또 역설적이다.

전삼자와 노노인도 일반 무림문파라면 원로에 해당하겠지만 그냥 전아저씨, 노노인일 뿐이다.

다만 조성일은 풍림원의 이인자이기에 예전 군에 있을 때 직급인 별장이었으니 간혹 그렇게 조별장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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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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