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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산쌍독(邙山雙毒)

 

 

 

금릉(金陵)은 강남(江南), 아니 중원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다.

모든 게 풍족한 만큼 금릉 거리는 늘 사람으로 북적인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잘 차려입었는데 특히 여자들의 차림새는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형형색색의 비단 옷을 한껏 차려입은 채 살랑거리는 여자들의 자태는 만발한 꽃밭의 나비 같다.

여기가 극락인가?”

캬아! 살 냄새, 지분 냄새에 취하겠구만.”

인파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사내 둘이 있었다.

차림새는 허름하고 봉두난발에 수염이 덥수룩한 자들로 각기 지팡이와 쇠 퉁소를 들고 있다.

산적이나 땅꾼 분위기인 두 사내는 얼굴이 판박이다. 형제 아니면 쌍둥이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나라의 도읍이었던 금릉에는 발에 차이는 게 경국지색이라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세 걸음에 한번 이상씩 눈 돌아가게 만드는 년이 보이니 말이야.”

둥그스름한 윗부분을 천으로 감싼 지팡이를 든 자는 오가는 여자들을 벌개진 눈으로 훑어대었다.

정신 차려 임마! 그렇게 두리번거리면 촌구석에서 처음 대처(大處)에 나온 티가 너무 나잖아

다른 놈이 시커먼 쇠 퉁소로 동료의 어깨를 치며 눈을 흘겼다.

주변의 여자들은 두 사람을 피해가며 키득거리고 있다.

쪽 좀 팔리면 어떠냐? 대신 눈이 호강하는데... 아흐 저 여시 같은 것... 보는 눈만 없었으면 방탱이를 그냥 콱...”

지팡이를 든 자는 삼복의 개처럼 헐떡거리며 여자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하여간 밝히기는...”

쇠 퉁소를 든 자 역시 짐짓 혀를 차면서도 여자들을 훔쳐보기 바빴다.

 

사내들의 별호는 망산쌍독(邙山雙毒)이다,

구괴(具拐)와 구적(具笛)이 이름인 그들은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이며 한 문파의 공동문주다.

북망산(北邙山)에 자리한 독묘파(毒墓派)는 용독술과 독공 방면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든다.

독을 쓰는 재주뿐 아니라 뱀이나 지네등의 독충(毒蟲)들도 잘 다뤄서 구대문파라 해도 독묘파를 꺼려할 정도다.

아비로부터 독묘파를 물려받은 구괴와 구적은 북망산을 떠나본 적이 없다.

그러다가 건드려서는 안되는 어떤 인물에게 죄를 짓고 본거지인 북망산을 도망쳐 나왔다.

마침 그 얼마 전 금릉의 어떤 유력자로부터 초빙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망산쌍독이 북망산에서 수천리나 떨어진 금릉에 나타난 사연이다.

 

오늘 밤이 기대가 되는구만. 듣자하니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가 손님 대접 하나는 화끈하다고 하니...”

구괴는 입맛을 다시며 여자들의 아래 위를 훑어대었다.

그렇긴 하다만... 한왕의 초청에 응한 게 과연 잘한 짓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생각 없는 구괴와 달리 구적은 오만상을 썼다.

? 찜찜한 기분이라도 드는 거냐?”

여자 구경하기 바쁜 구괴가 건성으로 물었다.

황실과 엮였던 무림인 치고 끝이 좋았던 사례는 없잖냐. 대우와 제안이 파격적이어서 한왕의 초청에 응하긴 했다만... 반드시 뒤탈이 생길 것같은 예감이 든다.”

걱정도 팔자다. 적당히 챙길 거 챙기고 아니다 싶으면 튀면 되지.”

나도 지팡이 너처럼 근심 없고 생각 없으면 좋겠다. 하물며 우린 지금 악독하기로는 천하제일인 서(西) 늙은이에게 쫓기고 있는 중인데...”

구적이 쇠 퉁소로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쉴 때였다.

거기 서지 못해?”

누군가의 성난 외침이 들렸다.

내 사과 내놔라 이놈들아!”

구괴와 구적이 돌아보니 작달막한 노인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듯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는 노인 앞쪽에는 두 명의 소년이 여러 개의 사과를 품에 안은 채 뜀박질을 하고 있다.

히히덕거리며 달려오는 두 놈 중 한명은 덩치가 어른만하다.

다른 한 놈은 날렵한 체구에 족제비처럼 눈이 반짝인다.

비켜요!”

지나갑시다!”

두 놈이 뻔뻔하게 외치며 달려오자 사람들은 눈을 흘기면서도 급히 피했다.

뒷골목의 악동들인 모양이로군.”

한창 좋을 때지. 먹고 노는 것 외에는 근심 걱정도 없을 테니...”

자기들 쪽으로 달려오는 소년들을 보며 구적과 구괴는 히죽거렸다. 온갖 못된 짓을 하며 자란 자신들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거기 아저씨들, 비켜주세요!”

족제비처럼 생긴 소년이 구적과 구괴에게 달려들며 외쳤다.

하지만 구적과 구괴는 히죽거리기만 할뿐 제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이쿠!”

... 뭐야 씨*!”

구적과 구괴에게 부딪힌 소년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나뒹굴었다.

그 바람에 소년들이 품에 안고 있던 사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못된 놈들 좀 잡아주쇼! 오늘 제대로 매타작을 해야겠소!”

사람들 틈에서 노인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 튀자!”

히익!”

소년들은 급히 일어나 달아나려 했다.

하지만 소년들은 구적과 구괴 형제의 손아귀에 멱살이 틀어잡혀 번쩍 쳐들렸다.

구적에게 멱살이 잡힌 덩치 큰 놈은 키가 구적보다도 크다.

구괴에게 쳐들린 족제비같은 놈의 두 발은 허공에서 바둥거렸다.

... 젠장! 이거 놓지 못해?”

끄윽! ... . 이래요?”

소년들은 숨이 콱 막혀 비명을 질렀다. 멱살을 틀어쥔 구적과 구괴의 손아귀가 강철 같아서 빠져나가는 건 꿈도 꿀 수가 없다.

갈 때 가더라도 어르신들 물건은 돌려줘야하지 않겠냐?”

쇠 퉁소를 허리춤에 꽂은 구적이 덩치 큰 놈의 품속을 뒤졌다.

다시 빼낸 구적의 손에는 묵직한 돈주머니가 들려있었다.

구괴도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족제비같은 놈의 품을 뒤지고 있다.

어라! 내 전낭(錢囊)이 어째서 네놈 품에서 나오는 걸까?”

구적이 돈주머니를 덩치 큰 놈의 얼굴에 들이밀며 웃었다.

신기하네. 내 전낭도 이놈 품으로 옮겨갔구만.”

구괴 역시 족제비같은 놈의 품에서 돈 주머니를 꺼내며 웃었다.

뭐야 저놈들? 소매치기들이었잖아.”

허튼 짓 하다가 딱 걸렸구만.”

주변 사람들이 그제야 상황 알아차리고 혀를 찼다.

두 소년은 피할 수 있었는데도 구적과 구괴 형제와 부딪혔다. 그리고는 귀신같은 솜씨로 두 형제의 돈 주머니를 빼낸 것이다.

... 잘 하셨소 어르신들! 그놈들은 근방에서 아주 악명 높은 말썽장이들이오.”

노인이 헐떡이며 도착했다.

도둑질에 소매치기에...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놈들이니 눈물을 쏙 빼주시구려. 어이구 내 사과... 다 곯아 터졌어.”

노인은 울상이 되어 사과들을 옷자락에 주어 담았다.

걱정 마시오 노인장. 이놈들로 하여금 두 번 다시 도둑질을 못하게 만들어놓을 테니...”

덩치 큰 놈의 멱살을 틀어잡은 구적이 길가의 골목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흐흐흐! 오랜만에 좋은 일을 하게 되었군.”

구괴도 족제비처럼 생긴 놈을 질질 끌고 구적을 따라갔다.

철두(鐵頭)하고 정칠(鄭七)이 놈, 시장통을 휘젓고 다니며 온갖 말썽을 부리더니 임자 제대로 만났군.”

저놈들은 좀 혼이 나야 돼!”

망산쌍독에게 멱살을 잡힌 채 골목으로 끌려들어가는 소년들을 보며 사람들을 고소해했다.

덩치 큰 놈의 이름이 철두고 족제비같이 생긴 놈이 정칠이었다.

두 놈은 워낙 악명 높은 말썽쟁이들이라 망산쌍독에게 끌려가는 걸 보면서도 도우려는 사람은 없었다.

도울 생각을 커녕 고소해하는 사람들 틈에서 울상을 짓는 소녀가 있었다.

차림새는 초라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럽게 생긴 열다섯 살쯤 된 소녀였다.

(... 큰일이야. 한눈에 봐도 저자들은 살인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다는 무림인들이야.)

철두와 정칠을 골목으로 끌고 들어가는 망산쌍독을 보며 소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

(서둘러야해! 자칫하다가는 철두오빠와 정칠오빠가 죽거나 다치는 수가 있어.)

울상이 된 소녀는 사람들을 헤집고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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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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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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