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6. 16:43 와룡강의 작업실/대도전능(大盜全能)
[대도전능] 12화 풀려난 공포
12화
풀려난 공포(恐怖)
꽈당!
부운은 나무토막이 쓰러지듯 뒤로 넘어졌다. 두 손으로 향로를 움켜잡은 채...
“오빠! 왜 그래 오빠!”
분이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끄윽... 끅!”
온몸이 마비 된 부운은 학질에라도 걸린 듯 벌벌 떨고 있었다.
눈은 뒤집어져 흰자위만 드러내고 있고 숨을 제대로 못 쉬어 꺽꺽거리기만 한다.
“부운아!”
“무슨 일이냐?”
탁자 건너편에 있던 정칠과 철두도 달려왔다.
“몰라! 부운 오빠가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고 있어!”
분이가 울음을 터트리며 부운의 팔을 주물렀다.
“젠장! 대체 뭔 지랄을 하는 거냐?”
“다리는 내가 주무르겠다.”
정칠과 철두도 달려들어 부운의 팔 다리를 주물러 대었다.
툭!
분이와 정칠에게 팔이 주물리키며 그때까지 부운이 움켜잡고 있던 향로가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향로가 손에서 떨어진 때문일까?
흰자위를 드러냈던 부운의 눈이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꺼억...”
그와 함께 꽉 막혀있던 숨통도 트였다.
“오빠! 정신이 들어?”
분이가 뺨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부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걱... 걱정마라. 난... 난 괜잖다.”
부운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분이를 안심시켰다.
숨통은 트였지만 경련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온몸의 근육이 제 멋대로 펄떡거려서 움직일 수가 없다.
“짜식! 사람 식겁하게 만들기나 하고... 대체 왜 그런 거냐?”
정칠이 안도하며 지청구를 늘어놓았다.
“향로... 향로 어디 있냐?”
정신이 돌아온 부운은 억지로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 있다.”
철두가 자기 무릎 근처에 뒹굴고 있는 향로를 집어들었다.
“그 향로... 위험한 물건이다. 조심해서... 탁자에 올려놔라.”
부운이 긴장하여 말했지만 철두는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 작은 향로가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하려고...”
분이와의 일도 있고 해서 이래저래 반발심이 생긴 철두는 향로의 뚜껑을 열어보려 했다.
“열... 열지마라!”
부운은 기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 철두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억!”
한데 향로 뚜껑을 열려던 철두가 당황하여 헛바람을 내쉬었다. 용머리 형상인 손잡이를 잡고 열려고 했지만 뚜껑은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뚜껑이 열릴 기미가 안 보인다.”
철두는 향로 뚜껑을 열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쓰느라 얼굴이 벌개졌다.
그럼에도 뚜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강력한 자석이 뚜껑을 잡아당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저 향로에는 내용물을 지키기 위한 술법(術法)이 걸려있었지.)
부운은 더 이상 철두를 말리지 않았다.
향로를 통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온 정보가 너무 많아서 무엇 하나 확실하게 파악한 게 없다.
그래도 향로에 강력한 금제가 걸려있다는 사실은 떠올랐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언지는 몰라도 향로에는 세상을 파멸시킬 수도 있는 끔찍한 재앙이 들어있다.
그것이 유출되는 걸 막기 위해 만독조종(萬毒祖宗)은 밀교(密敎)에서 유래한 술법으로 금제를...
(만독조종...!)
향로를 깃들어 있던 내력을 더듬던 부운은 어떤 인물의 별호를 떠올렸다.
처음에 자신을 움켜잡고 있던, 머리가 하늘 끝에 닿앗던 거인의 이름이 만독조종이었다.
“참 덩치 값도 못한다. 이리 줘봐.”
철두가 끙끙대는 걸 보고 있다가 답답해진 정칠이 향로를 빼앗았다.
하지만 마찬가지였다. 정칠이 용을 썼으나 향로 뚜껑은 옴쭉달쭉도 하지 않았다.
“거 참 뚜껑이 향로와 일체가 아닌 건 분명한데...”
머쓱해진 정칠이 향로를 요리조리 살펴보며 궁시렁거릴 때였다.
“부운 오빠가 위험한 물건이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분이가 정칠 손에서 향로를 낚아챘다.
원래는 부운의 말 대로 향로를 탁자에 올려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향로가 손에 들어오자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예뻐!)
분이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향로에 매료되어버렸다.
(온고당에서 수많은 골동품을 봤지만 이 향로만큼 정교하고 예쁜 물건은 본 기억이 없어!)
분이는 홀린 듯이 향로를 살펴보았다.
향로 표면에 새겨진 아홉 마리 용은 너무도 생생해서 금방이라도 살아서 꿈틀거릴 것만 같았다.
(뚜껑이 안 열린다고 했는데...)
분이는 용머리 형상의 손잡이를 잡고 뚜껑을 살짝 들었다.
달칵!
그러자 뚜껑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향로와 분리되어 버렸다..
“어라!”
분이는 당황했다.
철두와 정칠이 용을 써도 꿈쩍하지 않던 향로 뚜껑이 너무도 간단히 열려버렸다.
뚜껑이 열린 향로 안에는 칠흑처럼 시커먼 액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츠으! 번쩍!
점성이 느껴지는 검은 액체 속에는 아홉 쌍의 붉은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어! 향로가 열렸잖아!”
정칠이 놀라고 철두와 부운이 분이를 돌아보았다.
“내가... 내가 향로를 열어버렸어!”
분이가 억지로 웃을 때였다.
“닫아라! 빨리!”
부운이 비명처럼 외쳤다.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어서 외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미... 미안해 오빠!”
깜짝 놀란 분이가 급히 향로의 뚜껑을 닫으려 할 때였다.
펑!
향로 안에 고여 있던 점성을 지닌 검은 액체가 분수처럼 치솟았다.
“엄마야!”
콰당탕!
분이는 향로는 떨구며 뒤로 발랑 넘어졌다.
텅! 푸하아악!
향로는 바닥에 떨어지고 그것에서 치솟은 검은 액체는 폭발적으로 증식되었다.
단번에 한 아름이 넘는 굵기가 된 그것은 폐가의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억!”
“뭐야 저거...”
철두와 정칠도 기겁하며 물러앉을 때였다.
화악! 쩌저적!
분수처럼 치솟은 검은 액체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갈라지며 퍼졌다.
모두 아홉 갈래로 갈라진 검은 액체들은 영락없는 용의 형상이 되었다. 머리에는 사슴의 그것을 닮은 뿔이 돋아났으며 몸통에서는 세 개의 손톱이 달린 다리 두 쌍이 생겨났다.
다만 아랫부분은 여전히 서로 합쳐진 채 향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숨, 숨을 멈춰라!”
부운은 일어나려 애쓰며 외쳤다.
향로에서 읽은 검은 용의 정체가 떠올랐다.
그놈은 살아있는 존재의 숨결에 반응한다.
“힉!”
“흡!”
발라당 나뒹군 분이와 뒤로 주저앉았던 철두, 정칠은 다급히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번쩍! 번쩍!
아홉 마리의 검은 용들이 눈을 번뜩이며 부운을 돌아보았다.
(위험...)
부운도 급히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늦어버렸다.
검은 용들은 부운의 숨결을 감지한 후였다.
화악! 크왕!
검은 용들이 부운에게 날아들었다.
부운은 입과 코를 틀어막은 채 자연스럽게 뒤로 넘어갔다. 삼보면천의 응용이었다.
삼보면천을 쓰면 기척도 소리도 완전히 죽인 채 움직일 수 있다.
화악! 부악!
검은 용들은 간발의 차이로 부운의 몸통 위로 스치고 지나갔다. 부운의 기척이 사라지면서 탐지에 실패한 것이다.
푸스스!
그래도 검은 용들과 닿을 뻔했던 부운의 가슴 부분 옷들이 순간적으로 증발되었다.
퍼억! 화악!
부운을 스치고 지나간 검은 용들이 닿은 탁자와 의자들도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맙소사!)
(저 검은 용이 닿은 건 뭐든지 재가 되고 있어!)
그걸 본 분이와 정칠등은 공포에 휩싸였다.
(독이다! 향로에는 지독한 독기가 갇혀 있다가 뚜껑이 열리자 뛰쳐나왔다.)
부운은 바닥에 누운 채 눈을 부릅떴다.
용의 형상을 한 칠흑같이 검은 독기는 단순한 독이 아니었다.
영성(靈性)을 지녀서 스스로 판단하여 생명을 지닌 모든 것을 소멸시킬 수 있다.
화악! 쿠오오!
아홉 마리 검은 용은 폐가 내부를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닿는 것은 무엇이든 소멸시켰다.
탁자와 벽체등이 검은 용들과 접촉하는 즉시 사라졌다.
검은 용들이 품고 있는 독기는 너무도 강력해서 태우는 걸 건너뛰고 연기로 만들어버린다.
찍! 찌직!
소란에 놀라 여기저기서 쥐들이 기어 나왔다.
검은 용들은 쥐들이 토해내는 숨결을 감지하고 벼락 치듯 달려들었다.
퍼억! 푸스스!
검은 용들에게 덮쳐진 쥐들은 영문도 모르고 연기가 되어 흩어졌다.
검은 용들은 시시각각으로 커져서 어느덧 한 아름이 넘는 굵기에 길이는 몇 길이나 되었다.
퍼억! 푸스스!
폐가의 벽체뿐만 아니라 지붕과 석가래들도 거대해진 검은 용에 닿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가라! 절대 숨을 쉬면 안된다!>
부운은 억지로 일어나 앉으며 분이와 두 아이에게 전음입밀을 보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서둘러 입구쪽으로 기어갔다.
번쩍! 번쩍!
그때 천장 근처를 휘돌던 검은 용들의 눈이 강렬한 빛을 뿜어내었다.
그놈들은 입구쪽으로 기어가는 분이등을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저 놈들, 호흡뿐 아니라 움직임에도 반응한다.)
부운은 아차 했다. 검은 용들이 움직이는 건 무엇이든 공격하는 속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분이 등은 검은 용들에게 공격당한 쥐들처럼 단번에 소멸되고 만다.
“움직이지 마라!”
부운은 사력을 다해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엄마야!)
(헉!)
분이등은 기겁하면서도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화악! 크와앙!
세 아이를 덮쳐가려던 검은 용들이 방향을 홱 틀어서 부운에게 날아들었다.
(삼보면천!)
부운은 이를 악물며 다시 한 번 삼보면천을 구사했다.
부운의 몸은 기척도 소리도 없이 한 바퀴 돈 후 바닥에 깃털처럼 쓰러졌다.
슈악! 화악!
이번에도 간발의 차이로 검은 용들은 부운의 몸 위로 지나쳤다.
크와앙! 카아!
또 다시 부운을 죽이는데 실패한 검은 용들은 분노하여 몸부림쳤다.
(생각 했던 대로다. 저놈들은 맹목(盲目)이다!)
급격하게 커져서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검은 용들을 올려다보며 부운은 조심스럽게 숨을 흘려내었다.
독으로 이루어진 아홉 마리의 용은 영성을 지니긴 했어도 직접 대상을 보지는 못한다.
대신 생명 반응에 반응을 하는데 호흡에 가장 민감하고 움직임도 감지한다.
콰드득! 퍼석!
검은 용들은 더 거대해져서 이제 지붕을 뚫고 나가기도 했다.
퍼퍽! 터텅!
부서진 천장과 대들보의 파편들이 분이 등 세 아이 주위로 떨어졌다.
크고 작은 파편에 얻어맞았지만 아이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나 혼자라면 삼보면천을 써서 여길 빠져나가는 게 가능하지만...)
부운은 바닥에 누운 채 탁자의 다리 사이로 세 아이를 보았다.
입을 틀어막은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다.
(저 아이들이 검은 용들에게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이 건물을 빠져나간다 해도 검은 용들에게 따라잡힐 테고...)
부운은 다급해졌다.
“끄윽! 끅!”
입을 틀어먹은 아이들의 얼굴이 시뻘개 지고 있다. 숨을 참는 게 한계에 이른 것이다.
(시간이 없다! 빨리 타개책을 찾아내야하는데...)
달군 가마솥에 빠진 개미처럼 초조해하던 부운의 머릿솟으로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향로 표면에 정교하게 새겨진 아홉 마리의 용... 그놈들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와 난동을 부렸었다.
(이제 보니... 그건 단순한 난동이 아니라 일종의 내공심법이었다!)
부운은 검은 용들이 자신의 몸속을 누비고 다니던 경로를 떠올렸다.
(검은 용들이 치달렸던 경로대로 내공을 운용하면 그놈들을 제어하는 게 가능할 지도 모른다.)
부운은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위험천만한 시도일 수도 있다.
만일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부운에게는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크왕! 콰득! 퍼펑!
그새 더 거대해진 검은 용들은 폐가의 지붕을 여기 저기 뚫고 올라가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퍼퍽! 퍽!
그 바람에 폐가 지붕의 파편들이 더 많이 떨어져 아이들을 때리고 있다.
아이들은 파편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부운에게는 한 가지 선택 밖에는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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