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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혀간 아이들

 

 

 

<선술집 과부의 딸 분이가 들렸었던 같던데... 또 부운이를 데리고 나갔는지요?>

안채에서 삼십대 중반쯤인 여인이 쟁반을 들고 나왔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얼굴이 흰 여인인데 어째서인지 눈을 감고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여인은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겨 탁자로 다가왔다.

부운이는 철두와 정칠이 놈이 부린 말썽을 해결하러 갔다.”

조노인은 주사위를 주머니에 챙기며 말했다.

<푸줏간 집 아들 철두, 여자 장사하는 작자의 사생아 정칠... 친구를 사귀어도 어떻게 그런 놈들만 사귀는 건지...>

여인은 한숨을 쉬며 탁자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이 아비가 터 잡고 살아온 동네가 빈민가이다 보니 부운이 또래는 가난하고 못 배운 놈들뿐이로구나.”

조노인은 여인의 눈치를 보았다.

<죄송해요. 아버님을 언짢게 해드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여인은 조노인과 마주 앉으며 고개를 숙였다.

아비도 마음 상해서 한 소리는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조노인은 여인이 내려놓은 쟁반에서 찻잔을 집어 들었다.

<...>

여인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이름이 온유향(溫裕香)인 그녀가 부운의 어머니다.

오늘은 눈 상태가 어떠냐?”

조노인은 차를 마시면서 온유향의 안색을 살폈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온유향은 한숨을 쉬었다.

<아버님이 수시로 눈에 좋은 약을 구해오시는 데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군요. 애만 쓰시게 해서 면목이 없어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눈 자체에 손상이 생긴 건 아니니 언제고 시력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게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가엾은 것...)

낙심하는 온유향을 보며 조노인은 소리 죽여 한숨을 쉬었다.

십오 년 전, 온유향은 너무도 참담한 일을 당했었다.

충격이 너무 커서 온유향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혀를 물었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눈에 이상이 생겨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다.

시력을 잃은 것이 혀가 잘리며 일어난 출혈 때문인지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혀가 잘렸어도 대화는 전음입밀로 할 수 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건 대체할 방법이 없거늘...)

양녀(養女)의 수척한 얼굴을 살펴보는 조노인의 진무른 눈에 안타까움이 서렸다.

 

***

 

금릉의 공식적인 이름은 몇 년 전 남경(南京)으로 바뀌었다.

명나라 제삼대 황제 영락제(永樂帝)가 자신의 근거지였던 연경(燕京)으로 천도하면서 생긴 변화다.

연경은 북경(北京)이 되었고 금릉은 남경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황도(皇都)의 지위를 빼앗기긴 했지만 금릉의 중요성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제국을 지탱해주는 경제력은 여전히 금릉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영락제는 황태자 주고치(朱高熾)로 하여금 금릉에 또 하나의 조정(朝廷)을 꾸려 다스리게 했다.

황태자가 거주하고 있는 옛 황성 자금성(紫金城)이 금릉의 중심이다.

하지만 실무행정을 총괄하는 금릉부(金陵府)의 중요성도 자금성에 못지않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다.

금릉부 정문에는 십여명의 관병들이 경비를 서고 있다.

아저씨! 아저씨!”

경비서는 관병들에게 달려오며 다급히 외치는 소녀가 있었다.

도와주세요! 큰일 났어요!”

숨이 턱에 차서 달려오는 소녀는 해하촌을 떠나온 분이였다.

저 아이 왜 저러지?”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구만.”

관병들이 의아해할 때였다.

우리 언니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네?”

달려온 분이는 관병들의 우두머리인 군관(軍官)의 팔에 매달리며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울지 말고 말해야 알아들을 거 아니냐?”

딸 뻘인 소녀가 울음을 터트리자 당황한 군관이 분이를 달랬다.

나쁜 사람들이 언니를 끌고 갔어요! 젊은 여자들만 납치해서 죽인다는 색마살귀(色魔殺鬼)들인지도 몰라요!”

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군관의 팔을 잡아끌었다.

(색마살귀!)

군관과 관병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일년전쯤부터 금릉 일대에서는 여자들이 실종되었다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일이 벌어졌다.

대부분이 십대인 희생자들의 몸에는 유린당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변사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흉수를 색마살귀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디... 네 언니가 어디로 끌려갔느냐?”

군관이 다그치듯 물었다. 색마살귀를 검거하는 건 모든 일에 우선한다.

언니가 진회하(秦淮河) 상류쪽으로 끌려가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해요! 빨리 가서 우리 언니 좀 살려주세요!”

분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닭 똥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알았다! 아저씨들이 네 언니 구하러 갈 테니 진정해라.”

군관은 분이를 달했다.

그리고는 부하들에게 분이가 온 방향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한명은 안쪽에 기별하고 나머지는 나와 같이 진회하 상류로 간다!”

존명!”

예 포장(捕將)!”

관병들 중 한명만 금릉부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나머지는 군관의 뒤를 따라갔다

우리 언니, 꼭 살려주셔야만 해요!”

분이는 달려가는 군관과 관병들에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잠시 후 금릉부 안에서도 수십명의 관병들이 몰려나와 군관 일행이 간 쪽으로 달려갔다.

(부운오빠 지시대로 관병들을 용왕묘로 보냈으니까 내 역할은 다 했어.)

관병들이 몰려가는 걸 보며 분이는 가짜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그렇긴 해도 부운오빠가 도착할 때까지 철두오빠와 정칠오빠가 무사할 수 있을지 몰라.)

가짜 눈물은 닦였지만 분이의 얼굴에 서려있는 초조한 기색은 가시지 않았다.

(설령 부운오빠가 늦지 않게 도착한다 해도 구해줄 수 있을까? 철두오빠와 정칠오빠를 끌고 간 자들은 정말 무서워 보였는데...)

울상을 짓던 분이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부운오빠라면 상대가 누구든지 철두오빠와 정칠오빠를 구해낼 수 있어!)

자그마한 주먹을 꼬옥 쥐는 분이의 두 뺨이 발개졌다.

(금릉 흑사회(黑社會)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흑건회(黑巾會)의 회주 흑건룡(黑巾龍)이 바로 부운오빠니까!)

 

***

 

진회하는 금릉의 서쪽을 흘러 장강과 합류한다.

진회하 상류의 강변에는 강의 신 하백(河伯)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하백 사당은 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주변에 인적이 없다.

 

히익!”

... 안돼!”

제단을 등진 채 주저앉은 철두와 정칠은 비명을 질렀다.

쉭 쉬익!

두 놈 앞으로 뱀 세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크기는 세 뼘 남짓 밖에 안되지만 몸이 유리처럼 투명해서 뼈와 내장이 들여다보이는 특이한 뱀들이다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이놈들아.”

구괴가 웃으면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큼직한 호리병의 뚜껑을 열었다.

구괴 옆에 서있는 구적의 손에도 같은 크기의 호리병이 뚜껑이 열린 채 들려있다.

우리 독묘파의 영물인 흡혈신사(吸血神蛇)들은 최소한 열흘에 한번 씩은 사람 피를 듬뿍 마셔야 하는 습성이 있다.”

구괴는 뚜껑을 연 호리병을 아래로 기울였다.

스르르

그러자 호로병에서도 세 마리의 투명한 뱀들이 기어 나왔다.

으으으...!”

... 엄마야!”

철두와 정칠은 사색이 되어 엉덩이를 뒤로 물렸다.

하지만 등이 제단에 닿아 있어서 더는 물러날 수도 없다.

쉭 쉬익!

여섯 마리로 늘어난 투명한 뱀들이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며 철두와 정칠에게 다가왔다.

그 귀염둥이들은 오늘 안으로 사람 피를 마셔야했는데 네놈들이 재수 없게 걸려들었지. 운이 좋으면 피를 빨리고도 살 수 있다. 귀염둥이들에게 순순히 피를 나눠주는 게 좋을 게다

구괴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잘못... 잘못 했어요 아저씨!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주세요!”

정칠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망싼쌍독에게 싹싹 빌었다.

필사적으로 제단에 등을 밀착시키고 있는 철두의 사타구니는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덩치는 산만해도 아직 열일곱 살 애송이일 뿐이다.

그 새끼 참 분위기 파악 못하네. 네놈 눈에는 지금 우리가 네놈들 버릇 고치려고 겁주는 걸로 보이냐?”

구괴는 싹싹 빌며 애원하는 정칠을 흘겨보았다.

그래도 정칠은 포기하지 않고 망산쌍독에게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제발 이 뱀들을 물려주세요 네?”

여러 소리 할 거 없고, 그만 흡혈신사들의 먹잇감이 되거라.”

! !

보고 있던 구적이 호로병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쉬쉭! !

그러자 투명한 뱀들은 미끄러지듯 움직여서 철두와 정칠을 덮쳐갔다

안돼!”

엄마야!”

철두와 정칠은 팔로 얼굴과 목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눈 감고 입과 코도 막아라!>

그때 누군가의 속삭임이 두 소년의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전음입밀로 전해진 그 목소리는 두 아이 귀에 매우 익다.

(부운?)

놀라면서도 철두와 정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손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 퍼억!

그 직후 뱀들 주변으로 작은 주머니 두 개가 떨어졌다.

! 퍼석!

얇은 종이로 만들어진 주머니들이 바닥에 부딪혀 터지면서 희고 고운 가루가 확 퍼졌다.

카악! 키엑!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뱀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웬놈이냐?”

구괴가 바닥에 꽂아놓았던 지팡이를 잡아 뽑으며 사당 입구를 돌아보았다.

(명반 가루인가? 뱀들이 가장 싫어하는...?)

소매로 입을 가리며 물러서던 구적도 사당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언제부터였는지 사당 문간에는 검은색 복면을 쓴 소년이 서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인 복면소년의 양손에는 여러 개의 종이 주머니를 들려있다.

복면소년은 물론 분이에게서 전갈을 듣고 달려온 부운이었다.

너 이 새끼 뭐냐?”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망산쌍독에게 시비를 걸다니...”

망산쌍독은 문간으로 가며 눈을 부라렸다.

<뒷문으로 도망쳐라.>

부운은 철두와 정칠에게 전음입밀을 보내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콜록! 콜록!

급히 코와 입을 막긴 했어도 가루를 적잖이 마신 철두와 정칠은 기침을 하며 옆으로 기어갔다.

뱀들은 석회 가루 속에서 허우적대느라 두 놈을 막지 못했다.

독이 특기인 우리 형제에게 독이라도 쓰겠다는 거냐?”

부운이 종이 주머니들을 쳐드는 걸 본 구괴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

! !

부운은 망설이지 않고 종이 주머니들을 사당의 바닥과 천장에 던졌다.

! !

바닥에 던져진 주머니들은 연기를 확 일으켰다.

퍼억! 푸스스!

천장에 부딪혔던 종이 주머니들은 터지면서 고운 가루를 확 뿌렸다.

가루와 연기들은 망산쌍독을 덮어쒸웠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독을 쓰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는 망산쌍독인지라 딱히 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 이건.,..”

엣취!”

망산쌍독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비비고 입을 가렸다.

... 겨자 가루와 산초를 태운 재로구나!”

콜록! 콜록! 니니럴... 콜록!”

그자들은 허리가 끊어지게 기침을 하며 눈물을 질질 흘렸다.

부운이 터트린 주머니 속의 가루들은 지독하게 맵고 자극적이었다.

독공을 익혔다 해도 인간인 이상 매운 게 코나 눈에 들어가면 괴롭지 않겠어?”

부운은 망산쌍독을 비웃으며 사당에서 나갔다.

, 죽일 놈!”

산채로 껍질을 벗겨버리겠다!”

망산쌍독은 악을 쓰며 사당 밖으로 돌진했다.

산초 가루가 너무 매워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였지만 분노하여 앞뒤 가릴 여유가 없었다.

! !

한데 사당 밖으로 뛰쳐나오던 두 놈의 발바닥에 날카로운 침들이 돋아난 쇳조각들이 박혔다.

전장에서 적의 보병이나 말들의 추격을 막기 위해 뿌리는 철질려(鐵蒺藜)라는 암기들이었다.

사당 입구에는 여러 개의 철질려가 뿌려져 있었다.

하지만 망산쌍독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어서 미처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으악!”

아이쿠!”

발바닥에 철질려가 박힌 망산쌍독은 돼지 멱 따는 것 같은 비명을 지르며 펄쩍 펄쩍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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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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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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