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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를 털어라!

 

 

 

영약이라 해서 많이 먹는 게 좋은 건 아니다. 과다복용은 부작용을 야기할 뿐 아니라 몸이 흡수할 수 있는 약효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조노인의 설명이 이어졌다.

일반인들은 어느 정도 영약을 먹으면 더 이상 내공이 증진 되지 않는다. 약 기운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그냥 배출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헌데 특이하게도 너는 영약의 기운이 배출되지 않는 체질을 타고 났다. 흡수되지 않은 약기운도 몸속에 누적되었다가 서서히 내공으로 전환된다. 이론상으로는 영약을 무제한으로 먹어도 되는 게다.”

조노인 말대로 부운의 몸속에는 소화되지 않은 영약의 약효가 상당량 고여 있다.

부운이 물었다.

저같은 체질이 흔치는 않은 모양이지요?”

조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다. 할애비가 팔십살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체질이다.”

제가 그렇게 특별한 체질을 지닌 줄은 몰랐습니다.”

부운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자신의 체질이 남다르다는 사실 역시 오늘 처음 알았다.

덕분에 할애비가 영약을 구해다 먹인 보람이 있긴 하다만...”

조노인이 이마를 모으며 말끝을 흐렸다.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으신지요?”

네게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상승(上乘)의 내공심법을 익혔다면 이갑자 이상인 내공을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테고... 그럼 세상 누구도 널 쉽게 어쩌지 못할 텐데...”

조노인은 못내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상승의 내공심법이란 게 손에 넣기 힘이 드는 것인지요?”

힘들다마다!”

부운의 질문에 조노인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의 문파나 가문에서 기밀 유지에 가장 신경 쓰는 게 내공심법이다. 내공심법이 모든 무공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유력한 세력이나 이름 높은 고수치고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지니지 않은 경우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겠습니다.”

부운도 납득이 갔다.

아무리 기발한 무공을 지녔어도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물며 이 넓은 강호에서 상승이라 불릴만한 내공심법은 몇 안된다. 전통 있는 문파와 가문들만이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조노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구대문파(九大門派)와 삼문육가(三門六家)등이 강한 것은 뛰어난 내공심법을 지닌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십오 년 동안 꾸준히 시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할애비가 익힌 풍전심법(風電心法)을 능가하는 내공심법은 손에 넣지 못했다.”

저는 풍전심법만으로도 만족합니다만...”

도가(道家)에서 흘러나온 풍전심법에도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다. 즉각적으로 내공을 쓸 수 있게 해주며 빠른 속도를 내는 데 적합하다.”

 

풍전심법은 보법 삼보면천과 함께 부운이 익힌 두 가지 무공 중 하나다.

발동이 빠른 게 장점이지만 내공의 소모도 빨라서 금방 지치게 만든다.

또 빠른 대신 발산되는 힘이 가벼워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같은 장단점을 지녀서 풍전심법은 도둑질에 최적화된 내공심법이라고 할 수 있다.

 

네가 좀 더 큰일을 하려면 중후하고 위력적인 내공심법이 필요한 이유다.”

무림에서 이름난 내공심법이 어떤 게 있는지요?”

부운이 묻자 조노인은 주저없이 대답했다.

내공심법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이다.”

 

달마대사가 지었다는, 혹은 천축(天竺)에서 가져왔다는 달마역근경의 가치에 관해선 이론이 없다. 역근세수경(易筋洗髓經)이라고도 불리는 달마역근경이 소림사 모든 절기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달마역근경에는 달마대사를 무공의 조종(祖宗)으로 만들어준 신비한 힘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근육을 바꾸고(易筋) 골수를 씻어낸다(洗髓)는 이명(異名)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달마역근경의 힘을 얻으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인간의 경지를 벗어날 수도 있다고 전해진다.

다만 달마역근경이 과대평가되었다는 말은 있다.

달마역근경이 세상에 나타난 후로 천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그동안 다른 무공들도 끊임없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달마역근경이 무림인들이라면 꿈에라도 그리는 보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달마역근경을 입에 올릴 때마다 조노인의 진무른 눈에 열기가 어렸다.

할아버지께서도 달마역근경을 훔칠 시도를 하셨겠군요.”

외조부의 표정을 살피며 부운이 물었다.

도둑들 세계에서 소림사 장경각은 자금성의 황실보고(皇室寶庫)와 함께 반드시 들어가 보고 싶은 이상향(理想鄕) 같은 곳이다.”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조노인의 얼굴에 떠올랐다.

세상에서 잠입하기 가장 어렵다는 두 곳의 금지 중 한곳인 소림사 장경각을 조노인은 털어본 적이 있다.

할아버지는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소림사 장경각을 드나드셨겠어요.”

부운은 외조부가 소림사 칠십이절기 중 두 가지를 거론했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소림사 장경각에 잠입했다가 빠져나온 도둑들에게는 성공했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무공비급이나 소림사만 보유하고 있는 진귀한 불경 중 한 가지를 필사(筆寫)해서 갖고 나오는 게 전통이 되었다.

필사를 하는 이유는 진본을 반출했다가는 소림사의 대대적인 추격을 당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도둑들은 한 번의 침투에서 한권의 책만 베껴서 갖고 나온다. 무려 소림사 장경각에 잠입한 이상 지체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기 때문이다.

 

사실 할애비는 장경각에 세 번 들어갔었다.”

오오!”

조노인의 말에 부운은 저절로 탄성을 질렀다.

오대신투에 드는 천불투답게 조노인은 무려 세 번이나 소림사 장경각을 드나든 것이다.

어쩌면 소림사 장경각을 세 번이나 턴 위업 덕분에 오대신투 중 한명으로 꼽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첫번째는 도둑으로서의 능력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네게 익힐만한 상승의 내공심법을 얻기 위해서였다.”

조노인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달마역근경 외에도 소림사에는 여러 종의 내공심법이 존재한다.

그 내공심법들 중 몇 가지의 위력은 풍전심법을 능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필사하지 않은 건 소림사 내공심법들이 지닌 한계 때문이다.

불문의 절기답게 소림사의 내공심법들은 거의 다 동자공(童子功)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익힐 수야 있지만 대성하려면 평생 동정을 유지해야만 한다.

장차 처첩을 들여 대를 이어야하는 부운이 익힐만한 내공심법들은 아니다.

 

세번째로 잠입한 건 십년전이었다. 네게 무공 전수하는 걸 더는 미를 수 없어서 장경각을 뒤졌지만 끝내 달마역근경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밤새 달마역근경만 찾다 보니 비급이나 불경을 필사할 시간이 없더구나.”

아쉬워하는 조노인에게 부운이 웃으며 말했다.

달마역근경은 제가 반드시 훔쳐내겠습니다.”

손자 하나 잘 둔 덕분에 좀도둑에 불과한 할애비의 이름이 무림을 뒤흔들겠구나.”

조노인 역시 웃었다.

도둑으로서 달마역근경을 훔쳐내는 것만큼 위대한 업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좀도둑이라니요? 할아버지가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大盜)라는 건 이 바닥 인생들이라면 다 아는 사실인데...”

오대신투 중 한명이니 뭐니 해봐야 허망한 명성일 뿐이다. 도척제전(盜蹠祭典)에서 단 한 번도 우승해본 적이 없으니...”

조노인은 주름진 얼굴에 숨길 수 없는 회한과 아쉬움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둑들의 세계에는 도척제전(盜蹠祭典)이라는 축제가 존재한다.

도둑들의 영원한 우상인 전설 속의 대도 도척(盜蹠)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축제다.

도척이 같은 시대에 살았던 공자(孔子)를 말빨로 물 먹였다는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 도척을 기리기 위한 도척제전의 우승자에게는 도수(盜首)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부여된다.

일단 도수가 되면 세상 모든 도둑들의 존경을 받게 되며 일정 범위 안에서는 도둑들을 지휘, 통제할 수 있는 권위도 생긴다.

도둑의 길로 들어선 양상군자(梁上君子;도둑)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귀영화도 권력도 아니다.

도척제전에서 우승하여 제이(第二)의 도척, 도수로 불리는 것이 모든 도둑들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도수가 못 되신 걸 정말 아쉬워하시는구나.)

부운 자신도 도둑인지라 외조부의 아쉬워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칠십 년 넘게 도둑질을 업으로 삼아왔지만 천불투는 끝내 도척제전에서 우승은 못했다.

달마역근경에 비교될만한 내공심법은 또 뭐가 있는지요?”

부운은 침울해진 분위기를 전환시킬 겸 질문을 했다.

전설 속의 고수들인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의 무공이라면 달마역근경의 내용을 오히려 능가하겠지.”

외손자의 마음을 모를 리 없는 조노인이 즉시 대답했다.

하지만 몇백년 내에 삼황과 오제의 무공은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다. 오래전에 절전(絶傳)되었다고 봐야만 한다.”

아까운 일이로군요.”

삼황과 오제의 무공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주마. 밤이 깊었으니 그만 들어가서 자거라.”

조노인은 다시 원숭이 조각상을 집어들었다.

... 할아버지도 편히 주무세요.”

부운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냐. 너도 잘 자거라.”

원숭이 조각을 천으로 닦는 조노인을 남겨두고 부운은 응접실 안쪽의 안채로 들어갔다.

(가엾은 녀석...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자랐어야하는 신분인데 뒷골목에서 도둑질이나 배우고 있으니...)

조노인은 소리없이 한숨을 쉬며 원숭이 인형을 닦았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엾은 유향이에게서 떼어놓을 수도 없고...)

주름진 조노인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졌다.

부운에게는 어머니인 온유향조차 모르는 어떤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은 오직 조노인만이 알고 있다.

(십오 년 전에 그랬듯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 저 녀석의 복연(福緣)이 남다르다는 것만 믿을 수밖에 없다.)

어둑한 가게 안에 홀로 남은 조노인의 모습이 오늘 따라 왜소하게 보였다.

 

***

 

부운은 가게 뒤쪽에 붙어있는 안채로 들어섰다.

안채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중앙에 우물이 있다.

우물이 있는 좁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세 채의 건물이 품()자 형태로 세워져 있다.

부운이 들어온 문의 정면에는 서재가 있다.

서재는 그리 넓지 않지만 삼면에 책들이 빼곡이 채워진 책꽂이가 채워져 있다.

서재 좌우의 건물 중 왼쪽 건물에는 방과 부엌이 있다.

부운은 부엌 옆에 있는 방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갔다.

불이 꺼져있어 어둑한 실내에는 화장대와 옷장, 침대가 있다.

전형적인 규방, 여자들의 방이다.

침대에는 온유향이 곤히 잠들어 있다.

(어머니...)

침대로 다가간 부운은 온유향을 내려다보았다.

지나치게 흰 탓에 온유향의 단아한 얼굴은 어둠 속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감겨진 온유향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혀있다. 악다문 입에서는 신음인지 흐느낌인지 알 수 없는 숨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또 무슨 슬픈 꿈을 꾸고 계시는 것일까?)

부운은 한숨을 쉬며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았다.

(할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내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계신다. 그 때문에 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라왔다. 성이 장()씨라는 것 외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관련하여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시력을 잃은 것도, 늘 비탄에 잠긴 채 지내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대체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부운은 온유향의 눈꼬리로 흐르는 눈물을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끄윽! !”

부운의 손길에 자극을 받아서진이 혀 짧은 소리로 하는 온유향의 잠꼬대가 좀 더 커졌다.

손가락을 떼려던 부운은 움찔 했다. 닿은 손가락을 통해서 어머니의 잠꼬대가 느껴진 때문이다.

<안돼요 상공! 제발 그러시면 안돼요!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크나큰 죄를 지으시는 건가요?>

가슴이 사무치는 슬픔과 회한이 느껴지는 잠꼬대다.

(가엾은 어머니... 또 아버지와 관련된 악몽을 꾸고 계시는구나.)

부운은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어머니의 눈꼬리에서 떼었다.

더 살펴볼 수도 있지만 자식의 도리가 아니기도 하고 아버지와 관련된 비밀을 아는 게 두렵기도 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강해져서 어머니를 기약없는 비탄에서 구해드려야만 한다.)

초췌한 어머니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새삼 결의를 다지는 부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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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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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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