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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02.18 [투천환일] 제 5장 우리는 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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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제 해가 졌고. 성 밖 빈민가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낡은 건물. 버려진 흉가인데. 불량해 보이는 소년들이 근처를 서성이며 경계하고 있고. 건물 안에서는 불빛이 흘러나온다.

그곳으로 걸어 올라오는 청풍.

건물을 지키던 소년들이 청풍의 눈치를 보며 인사하고

대꾸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청풍

등이 몇 개 안 켜져 있어 어둑한 건물 내부. 상당히 넓은데 좌우 벽쪽으로 로 복면을 쓴 소년과 소녀들이 이십여명 죽 늘어서 있다. 그 중간에 복면을 쓰지 않은 철두와 정칠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고. 조폭들의 집회 분위기. 다만 참가자들이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들이다. 일진들의 모임 같은 분위기. 소녀들 중에는 분이도 있지만 복면을 쓰고 있다.

[회주!] [어서 와라 청풍아.] [수고했어 오빠!] 복면을 쓴 소년과 소녀들이 아는 척을 한다. 나이 많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이 적은 아이들도 존칭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인사에 대꾸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청풍

<회주의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아무래도 오늘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 것같다.> 복면 쓴 소년 소녀들 침 꼴깍 삼키며 자기들 앞 지나가는 청풍을 보고

이윽고 철두와 정칠 앞에 멈춰서는 청풍. 철두는 청풍보다 반 뼘 정도 더 크고.

두 놈을 노려보는 청풍.

철두; [고... 고맙다 청풍아.] 비굴한 표정으로 청풍의 눈치를 보고

정칠; [네 덕분에 살았어.] 억지 웃음

퍽! 철썩! 철두의 명치를 주먹으로 치고 정칠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청풍. 가볍고 빠르다

소년과 소녀들 얼어버리고

[컥!] 털썩! 명치를 쥐며 무릎 꿇는 철두. + 퍼억! 옆으로 팽이처럼 돌아서 나뒹구는 정칠

<손... 손 쓰는 게 보이질 않았어!> <전광석화가 따로 없어!> <흑사회의 거친 인간들도 청풍이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어!> 소년과 소년들 침 꿀꺽 삼키고

청풍; [못난 새끼들...] 바닥에 주저앉고 나뒹군 두 놈을 노려보고

[끄윽!] 무릎 꿇은 채 꺽꺽 대는 철두. + 정칠; [청... 청풍아.]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고

청풍; [네놈들 보기에 내가 왜 화를 내는 것같으냐?] 이를 바득 갈며 두 놈 노려보고

정칠; [작... 작업 상대를 잘못 고르는 바람에 너까지 나서게 해서...] 눈치 보며 말하다가

다시 노려보는 청풍.

정칠; [미... 미안하다.] 삭 죽어서 고개 숙이고. 철두는 고개 숙인 채 이를 악물고 있다. 수치스러운 표정이고

청풍; [우리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흑건회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든 이유를 말해봐라.]

정칠; [흑... 흑사회의 파락호들로부터 우리 마을 해하촌(蟹蝦村)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청풍 네가 주도해서 흑건회를 만들었잖아.] 눈치 보면서 말하고

청풍; [그렇다.] [가진 것 없고 배경도 없는 가엾은 인생들끼리 서로 돕고 지켜주자고 만든 게 흑건회다.] 싸늘한 표정으로 끄덕

청풍; [그리고 우리 흑건회의 규칙은 간단하다.] 둘러보며 말하고

청풍; [배신하지 말 것!] [서로 돕고 보살 필 것!] [자신과 가족과 회원을 지킬 목적이 아닌 이상 사람을 해치지 말 것!]

청풍; [이상의 세 가지 규칙만 지키면 무슨 짓이든 용납이 된다.] [도둑질을 하든 사기를 치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장사를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말이다.]

청풍; [다만 그 과정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안된다.] [그런 짓을 하면 흑사회의 쓰레기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청풍; [그래서 도둑질을 하고 등을 쳐도 되는 대상은 부자, 탐관오리, 권력을 지닌 자들로 한정해왔는데...] 무릎 꿇고 있는 철두와 정칠을 다시 돌아보고

청풍; [네놈들은 소매치기를 수월하게 할 목적으로 노점상 하는 장씨 할아범의 좌판을 엎어버렸다.] 두놈을 내려다보며 살벌한 표정을 짓고

<그래서 청풍이가 평소답지 않게 살벌했구나.> <역시...> 다른 아이들 끄덕이고

청풍;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엾은 노친네의 생계 수단을 박살 내놓고도 느껴지는 게 없어?] 눈에서 강렬한 빛이 나고

정칠; [미... 미안하다.] 말하면서 팔꿈치로 철두의 옆구리를 찌르고

철두;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마지 못해 사과하고

청풍; [가난하고 비루한 인간들끼리 서로 돕고 보살펴주며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폐를 끼치면 어쩌자는 거냐?] 불같이 화를 내고

청풍; [여기 오기 전에 장씨 할아범네 집에 들렀는데 네놈들이 패대기 친 사과들은 골병이 들어서 헐값에 넘겼다더라.] [떼온 값의 반절도 못 건졌다는 거다.]

청풍; [당장 내일 물건 떼올 돈도 모자른다고 한숨이 방바닥을 꺼트릴 것같았단 말이다.]

[그... 그런 줄은 몰랐다.] [내일 찾아가서 변상을 할 테니 용서해줘라.] 눈치 보며 말하는 철두와 정칠

청풍; [당연히 변상은 해야겠지.] 코웃음 치고

청풍; [내일부터 한 달동안 너희 둘이 장씨 할아범 장사를 도와라.] [물론 물건도 너희들 돈으로 떼어다 드리고...]

정칠; [한... 한 달씩이나 거리에서 과일을 팔라는 거냐?] 울상. 하지만

청풍; [왜? 죄책감이 뼛속까지 사무쳐서 한 달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냐?] 냉소하고

정칠; [아... 아니다!] 기겁하며 손사레 치고

정칠; [앞으로 한 달 동안 정성을 기울여서 장씨 할아범 장사를 돕도록 하겠다.] 억지 웃음

청풍; [너희들이 제대로 죄 값을 치루는 지는 지켜보겠다.] 홱 돌아서고

청풍; [오늘 집회는 여기까지! 해산한다.] 말하며 입구로 가고.

바짝 얼었다가 그제서야 안도하는 소년과 소녀들

[같이 가 오빠!] 복면을 쓴 소녀 한명이 건물을 나가는 청풍을 서둘러 따라가고. 물론 분이다.

[그만 일어나라.] [청풍이의 불같은 성격에 한 대만 때린 걸 다행으로 여겨라.] [맞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라.] 무릎 꿇고 있는 철두와 정칠 주변으로 모이면서 위로하는 소년과 소녀들. 쓰고 있던 복면을 벗으면서.

정칠; [운이야 확실히 좋았지. 하마터면 뱀 새끼들의 밥이 될 뻔했으니까.] 속없이 웃으며 일어나고

정칠; [흡혈신사인가 뭔가 하는 투명한 뱀 새끼들이 덤벼들 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는 거 아니냐?]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그렇다고 여기서 오줌 지리진 마라.] [그래 임마! 가뜩이나 냄새 지독한데 지린내까지 나면 상종 안해준다.] 소년들 정칠을 툭툭 치며 웃고 떠들고. 하지만

철두; (개새끼!)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를 바득 갈고. 청풍이 자신의 명치를 주먹으로 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철두; (나이도 제놈보다 많은 날 공개적으로 개망신 시켜? 그것도 네놈이 흑건회를 조직하기 전에는 다 내 똘마니였던 것들 앞에서?) 정칠을 에워싸고 희희덕 거리는 소년과 소녀들 곁눈질로 보며 수치스러운 표정을 짓고

철두; (두고 보자! 오늘 당한 수모는 가슴에 새겨둘 테니...) 이를 바득 가는 얼굴 크로즈 업

 

건물을 밖에서 본 모습. 청풍이 나오고 그 뒤에서 복면을 쓴 분이가 서둘러 따라 나온다. 건물 주변을 보초서던 소년들이 돌아보고

청풍; [수고했다. 너무 늦지 않게 집에 돌아가라.] 건물 나오면서 밖에서 경비 서던 소년들에게 말하고. 분이가 뒤따라 나오고

[알았어 형.] [내일 보자 회주!] 소년들 대답하고.

빈민가 쪽으로 내려가는 청풍. 그 뒤를 따라 가며 복면을 벗는 분이. 복면이 벗겨지면서 발그레해진 분이의 얼굴이 드러나고

분이;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오빠?] 벗은 복면을 품에 넣으면서 청풍 옆으로 다가가 함께 내려가며 얼굴 살피고

분이; [정칠오빠에게 들어보니 그 자들 망산쌍독이라고 아주 무서운 인간들이었다는데...]

청풍; [분이 네가 보낸 관병들이 제 때 도착해서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끄덕이며 내려가고

분이; [내... 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얼굴 발개져서 청풍의 팔짱을 끼고

흘깃! 옆을 보는 청풍.

뭉클! 봉긋한 분이의 젖가슴이 청풍의 팔을 누르고.

분이; [하여간 철두오빠하고 정칠오빠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어.] 청풍의 팔짱 낀 채 마을로 내려가면서 쫑알 대고. 의식적으로 젖가슴을 청풍의 팔에 누르면서

분이; [어떻게 소매치기를 해도 망산쌍독같이 무시무시한 자들을 건드린데?] 얼굴 약간 발개져서 샐쭉거린다.

청풍; (분이에게서도 어느덧 여자 티가 나는구나.) 그런 분이를 곁눈질로 보면서

청풍; (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내들이 꼬일 테고...) (아무쪼록 분이가 제대로 된 사내와 맺어지길 바랄 뿐이다.) 분이와 함께 내려가며 생각하고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대로 여자의 삶이란 게 어쩔 수 없이 배우자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으니...> 내려가는 두 사람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17>

밤. 금릉의 중심가 쪽은 아직 불야성이지만

성 밖의 빈민가는 대부분 건물들에 불이 까져서 어둑하다.

온고당. 문은 닫혀 있지만 문틈으로 흐릿하게 불빛이 흘러나온다. 온고당 근처 거리에도 인적이 드물고

어둑한 길을 걸어서 온고당으로 다가오는 청풍.

삐꺽! 주변 둘러보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늦었구나.] 들어서는 청풍의 귀에 들리는 음성

천불투; [벌써 이경(二更)이 다 되어간다.] 가게 안에 등이 걸려있고 탁자 앞에 앉은 천불투가 흐릿한 등불 아래에서 여러 개의 작은 원숭이 조각상을 살피면서 말하고. 10센티 정도 크기인 원숭이 조각상들은 각가지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나오는 소품들이다

청풍; [분이 어머니가 저녁 먹고 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늦었어요.] 멋쩍은 표정으로 말하며 문을 닫고

천불투; [분이모녀가 애를 쓰는구먼.] 원숭이 조각 하나를 천으로 닦으면서 웃고

청풍; [애를 쓰다니요?] 어리둥절하며 다가가고

천불투; [별 거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웃고

청풍; [어머니는...] 안채로 통하는 문을 보고

천불투; [네 저녁상 차려놓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잠이 들었다.]

청풍; [쓸데없는 일로 바빠서 어머니를 걱정하시게 해드렸군요.] 천불투의 맞은 편에 앉고

천불투; [별 탈 없이 돌아왔으니 되었다.] [그보다 오늘 위험한 자들과 시비가 붙었었다고 하던데...?] 고개 조금 들어서 보며

청풍; (벌써 마을에까지 소문이 퍼졌군.) + [저녁 무렵에 철두와 정칠이 건드린 자들이 망산쌍독이었더군요.]

천불투; [망산쌍독...] [위험한 자들이지. 일단 척을 지면 두고두고 우환이 될 수도 있는...] 원숭이 조각상을 탁자에 내려놓고 좀 심각한 표정

청풍; [할아버지가 이렇게 걱정하실 줄 알았으면 그자들을 죽여 버릴 걸 그랬네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천불투; [죽일 작정을 했다면 놈들을 죽일 수 있었느냐?] 지긋이 보고

청풍; [독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라 좀 까다롭긴 하겠지만...] [위험을 무릅쓴다면 아마 죽일 수 있었을 거예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천불투; [청풍아.] 심각. 진지

청풍; [예 할아버지.] + (표정이 심각해지셨네.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천불투; [할애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도둑이지 살수(殺手)가 아니다.]

청풍; [알고 있습니다.] 자세 바로 하며 진지하게

천불투; [알고 있다면서 위험을 무릅쓴다면 망산쌍독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냐?] 엄한 표정으로

청풍;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고개 숙이고

천불투; [도둑은 싸우는 자가 아니라 숨고 피하고 달아나는 자다.] [그 사실을 망각했다가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한숨 쉬고

청풍; [각골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천불투; [천불투라는 별호답게 할애비의 무공은 잠입하고 훔치고 도망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천불투; [자연히 파괴력도 지구력도 부족하고...] [그 때문에 살상이 목적인 무공을 익힌 자들과 정면으로 부딪힐 경우 대책이 없게 된다.]

천불투; [그러므로 적과 마주칠 경우 삼십육계(三十六計) 주위상책(走爲上策), 즉 삼십육계중 달아나는 것이 최고의 방책이라고 한 자치통감(資治通統鑑)의 금언(金言)을 떠올려야만 한다.]

청풍; [예...] 좀 삭 죽고

천불투; [물론 네 무공이 약하거나 볼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위로하고

천불투; [오히려 경신술과 보법, 은신술 등의 재주는 누구보다 뛰어나 적수가 드물 것이다.]

천불투; [특히 지금의 네 공력은 할애비를 가볍게 능가하는 수준이다.] [거의 이갑자(二甲子)에 육박할 정도이니...]

청풍; [할아버지께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각가지 영약을 구해다 먹여주신 덕분이지요.] 포권하며 말하고

천불투; [할애비가 여러 문파와 가문의 영약을 훔쳐다 네게 먹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네 공력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심후한 것은 네 특이한 체질 때문이다.]

청풍; [그렇습니까?] 조금 놀라고

천불투; [영약이라는 게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게 아니다.] [과다복용은 부작용을 야기할 뿐 아니라 몸이 흡수할 수 있는 영약의 약효에는 한정이 있기 때문이다.]

천불투;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영약을 먹으면 더 이상 내공이 증진 되지 않는다.] [약 기운이 쓰이지 못하고 배설되어 버리는 것이지.]

천불투; [헌데 특이하게도 네 몸은 전신의 경맥이 활짝 트여있을 뿐 아니라 영약의 기운이 헛되이 배설되지 않는 체질을 지니고 있다.]

천불투; [당장 용해되지 않은 약기운도 몸속에 누적되고 있어서 서서히 내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청풍; [저같은 체질이 흔치는 않은 모양이지요?]

천불투;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할애비가 팔십살 넘게 살아오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체질이다.] 진지하게

청풍; [제가 그렇게 특별한 체질을 지닌 줄은 몰랐습니다.] 좀 흥분하고

천불투; [덕분에 할애비가 영약을 구해다 먹인 보람이 있긴 하다만...] 이마를 좀 모으고

청풍;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으신지요?]

천불투; [네게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천불투; [상승(上乘)의 내공심법만 익혔다면 이갑자 이상인 내공을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테고...] [그럼 세상 누구도 널 쉽게 어쩌지 못할 텐데...]

청풍; [상승 내공심법이란 게 손에 넣기 힘이 드는 것인지요?]

천불투; [힘들다마다!] 끄덕

천불투; [여러 문파나 가문에서 기밀 유지에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내공심법이다.] [내공심법이 모든 무공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천불투; [유력한 세력이나 이름 높은 고수치고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지니지 않은 경우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청풍; [그렇겠습니다.] 끄덕

천불투; [하물며 이 넓은 강호에서 상승의 내공심법이라 불릴만한 무공은 몇 안된다.] [구대문파를 비롯한 전통 있는 문중과 가문들만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불투; [그래서 지난 십오년 동안 꾸준히 시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할애비가 익힌 풍전심법(風電心法)을 능가하는 내공심법은 손에 넣지 못했다.]

청풍; [저는 풍전심법만으로도 만족합니다만...]

천불투; [도가(道家)에서 흘러나온 풍전심법도 나름대로 괜잖은 무공이다.] [즉각적으로 내공을 쓸 수 있게 해주며 빠른 속도를 내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천불투; [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빨라서 금방 지치게 만들며 지나치게 가벼워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기에 적합하지 않다.]

천불투; [즉, 풍전심법은 철저하게 도둑질에만 최적화된 내공심법인 것이다.] [네가 앞으로 좀 더 큰 일을 하려면 중후하고 위력적인 내공심법이 필요한 이유다.]

청풍; [무림에서 이름난 내공심법이 어떤 게 있는지요?]

천불투; [내공심법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소림사의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이다.]

 

<역근세수경(易筋洗髓經)이라고도 불리는 달마역근경은 소림사 칠십이절기의 근본이 되는 비급이다. 당연히 그 안에 수록되어 있는 내공심법의 탁월함에 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중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그림이 그려진 낡은 책을 배경으로

 

천불투; [물론 달마역근경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또 지나치게 어려워서 그 내용을 절반 이상 깨우친 인물이 없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한다.]

천불투; [그렇다고는 해도 달마역근경이 무림인들이라면 꿈에라도 보길 원하는 보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청풍; [할아버지께서도 달마역근경을 훔칠 시도를 하셨겠군요.]

천불투; [도둑들 세계에서 소림사의 장경각(藏經閣)은 자금성의 황실보고(皇室寶庫)와 함께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여겨지는 성역이다.]

천불투; [할애비도 몇 번인가 소림사 장경각에 잠입해보려다가 실패했다.]

청풍; [제가 나중에 소림사 장경각을 한번 털어보겠습니다.] 웃고

천불투; [손자 하나 잘 둔 덕분에 좀 도둑에 불과한 할애비의 이름이 무림을 뒤흔들겠구나.] 역시 웃고

청풍; [좀도둑이라니요?] [할아버지가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大盜)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천불투; [천불투니 뭐니 해봐야 허망한 이름일 뿐이다. 도척제전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으니...] 한숨 쉬며 고개 젓고.

청풍; (도수가 못 되신 걸 못내 아쉬워하시는군.) + [달마역근경에 비교될만한 내공심법은 또 뭐가 있는지요?]

천불투; [전설 속의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의 무공이라면 달마역근경을 오히려 능가하겠지.]

천불투; [하지만 지난 몇백년 사이에 삼황과 오제의 무공은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으니 오래전에 절전(絶傳)되었다고 봐야만 한다.]

청풍; [아까운 일이로군요.]

천불투; [삼황과 오제의 무공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주마.] [밤이 깊었으니 그만 들어가서 자거라.] 다시 원숭이 조각상을 집어들고

청풍; [예...] 일어나고

청풍; [할아버지도 편히 주무세요.] 포권하고

천불투; [오냐. 너도 잘 자거라.] 원숭이 조각을 천으로 닦으며 말하고

안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청풍.

탁! 닫히는 문

천불투; (가엾은 녀석...) 한숨 쉬며 원숭이 인형을 닦고

천불투; (노부의 추측이 맞다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자랐어야하는 신분인데 뒷골목에서 도둑질이나 배우고 있으니...)

천불투;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엾은 유향이에게서 떼어놓을 수도 없고...)

<십오년전에 그랬듯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 저 녀석의 복연(福緣)이 남다르다는 것만 믿을 수밖에 없다.> 어둑한 가게 안에 홀로 남은 천불투의 모습 배경으로 천불투의 생각 나레이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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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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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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