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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문을 등 뒤로 닫고 안채로 들어서는 청풍.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아 어둡다.

가게 안쪽의 안채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중앙에는 우물이 있다. 우물이 있는 좁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세 채의 건물이 ㄷ자 형태로 세워져 있다. 청풍이 닫고 들어온 문 정면에는 서재가 있다. 문이 열려있는 서재는 그리 넓지 않지만 삼면으로 수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책꽂이가 들어차 있다. 중앙에는 상당히 큰 책상과 의자가 있고. 책상 위에는 책과 문방사우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서재 좌우에는 문이 닫혀있는 방과 부엌이 있다.

부엌이 있는 쪽 건물의 방으로 가는 청풍.

달칵!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청풍.

어둑한 방안. 여자의 방이다. 옷장과 침대. 화장대, 침대 옆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도 있고. 침대에는 온유향이 잠들어 있다.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침대로 가는 청풍

청풍; (어머니...) 잠이 든 온유향을 내려다보고

눈을 감고 잠이 든 온유향의 얼굴 크로즈 업. 눈꼬리로 눈물이 좀 맺혀있다.

청풍; (또 무슨 슬픈 꿈을 꾸고 계시는 것일까?) 한숨 쉬며 침대 옆의 의자에 앉고

청풍; (할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내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계신다.) 온유향을 내려다보며

청풍; (그 때문에 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라왔다. 성이 장(張)씨라는 것 외에는...)

청풍; (아버지와 관련하여 말 못할 사연이 있을 테고...) (어머니가 시력을 잃으신 것도, 늘 비탄에 잠겨계신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청풍; (대체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소매 끝으로 조심스럽게 온유향의 눈 꼬리로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 직후

온유향; [끄윽! 끅!] 혀 짧은 소리고 잠꼬대를 하면서 우는 온유향.

흠칫! 하며 귀를 기울이는 청풍

온유향; <안돼요 상공! 제발 그러시면 안돼요!> 끄윽! 끅!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배경으로 온유향의 말이 전음으로 들리고

온유향;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크나큰 죄를 지으시는 건가요?> 이불 밖으로 나온 온유향의 손 하나가 이불을 움켜쥔다

청풍; (가엾은 어머니...) (또 악몽을 꾸고 계신다.) 한숨 쉬며 두손으로 온유향의 이불 움 켜쥔 손을 감싸잡고

<빨리 자라고 강해져서 어머니를 이 기약없는 비탄에서 구해드려야만 한다.> 두손으로 온유향의 손을 감싸 쥔 채 생각에 잠기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온유향은 잠꼬대하며 울고 있고

 

#19>

여전히 금릉. 낮. 사람들 북적이는 대로. 철두와 정칠이 망산쌍독을 만났던 곳. 오늘도 사람들 북적

정칠; [사과가 맛있어요. 처녀 맛 나는 사괍니다.] 양손에 사과를 들고 외치는 정칠. 정칠 뒤에는 좌판이 벌려져 있고. 정씨 노인이 사과를 닦고 있다. 철두는 그 옆에 뻘쭘한 표정으로 서있고

[처녀 맛 나는 사과?] [망측해라!] 여자들 눈 흘기면서도 얼굴 발개지고. 사내들은 히죽거리고

정칠; [싱싱할 때 사세요. 여자든 사과든 때를 놓치면 맛이 갑니다.] 익살스럽게 호객을 하고. 지나가던 여자들 킥킥 대고. 사내들을 피식 거리고

정칠; [누나! 형님! 이거 한 번 잡숴바!] [누나는 때깔 좋아지고 형님은 물건 실해져!] 신이 나서 지나가는 남녀 커플에게 사과를 들이밀고. 싫지 않은 표정으로 킥킥 대며 피하는 남녀 커플

철두; (정칠 저 새끼...) 쓴웃음. 노인은 고개 설레 젓고

철두; (갈보집 아들 아니랄까봐 호객에는 도가 텄어.) 사람들에게 뭔가 수작을 거는 정칠을 보며

철두; (뭐 갈보들을 파는 것과 사과 파는 게 다를 것도 없지. 물 좋을 때 팔아야 제값을 받는 건 똑같으니...) 쓴웃음

철두; (정칠이 놈이야 어딜 내놔도 제 밥값은 벌 놈인데... 문제는 나다.) 한숨 쉬고. 그런 철두를 지나가며 힐끔 거리는 여자들

철두; (이 뻘줌한 짓을 한 달이나 계속해야한다니... 아주 죽을 맛이구만.) 여자들의 시선을 피하며 오만상을 쓰고. 그때

호객하던 정칠이 흠칫! 하며 누군가를 돌아본다. 두건을 쓴 노인이 옆을 지나가고 있고.

철두; (생각 같아서는 다 때려 치고 싶다만... 그랬다가는 청풍이 새끼가 지랄지랄 할 게 뻔하니 그럴 수도 없고...) 한숨 푹 쉬고. 그런 철두를 흘겨보는 노인

노인; [창피하면 그만 가봐.] 사과 닦으며 퉁명스럽게 말하고. 흠칫! 하며 돌아보는 철두

노인; [백정 같이 생긴 놈이 옆에 서있으니 될 장사도 안돼!] [성의를 보인 걸로 됐으니 돌아가.] 다시 사과를 닦으며

철두; [됐수다.] 퉁명스레 말하고

철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할배는 신경 끄슈.] 괜히 좌판의 사과를 뒤적이고

정칠; (맙소사! 저 늙은이는...) 누군가를 보며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고

노인; [퍽이나 좋아서 하는 일이겠다 이놈아.] [마지못해 자리 지키고 있는 게 훤히 보이는데...] 정칠이 상황은 모르고 코웃음 치고

철두; [아 사람이 말 하면 좀 믿어주던가...] 말하다가 흠칫! 하고

철두; (정칠이 놈의 호객이 멈췄다.) 흠칫! 하며 돌아보고. 노인도 정칠이를 보고

정칠이가 사과를 든 채 굳어져서 앞쪽을 보고 있다. 정칠이 보고 있는 쪽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 그 사람들 중에 두건을 뒤집어쓴 음산한 분위기의 인물이 가고 있는 뒷 모습이 보인다.

철두; (이 새끼가 뭘 봤기에 갑자기 얼어붙었지?) + [뭐냐?] 다가가며 묻고

정칠; [으으으!] 겁에 질려 떨고 있고. 앞쪽의 무언가를 보며

철두; [무슨 일인데 개장수 만난 똥개 시늉이냐고?] 정칠 옆에 서서 정칠이 얼굴 살피며 묻고

정칠; [야... 야 빨리 온고당(溫故堂)에 가서 청풍이 불러와라.] 턱! 들고 있던 사과를 철두에게 안기며 말하고. 시선은 앞쪽을 향한 채로

철두; [청풍이 새끼를 불러오라고? 무슨 일인데?] 사과를 받으면서 어리둥절

정칠; [잘 하면 한 달 동안 영감탱이 장사를 돕는 쪽팔리는 짓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겼다.] 흥분된 표정으로 앞으로 가고. 누군가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는 모습이고

철두; [저 새끼가 뭔 소리를 씨부리는 건지 감이 안 오는군.] 찡그리며 돌아서고

철두; (그래도 아주 없는 소리 지어내는 놈은 아니니까 믿어보자.) + [영감, 나 잠깐 집에 좀 다녀오겠수다.] 사과를 좌판에 내려놓고

노인; [잠깐 다녀오지 말고 가서 아주 오지 말어. 네놈들이 바람 잡는다고 안될 장사 잘 되는 거 아니니까.] 뚱하게

철두; [나도 그러고 싶소.] [어쨌든 다녀오겠수다.] 달려간다

노인; [하여간 온고당 조(趙)영감의 손자 청풍이가 난 놈은 난놈이야.]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저 왈짜 놈까지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걸 보면...] 사람들 사이로 멀어지는 철두를 힐끔 거리며 중얼거리고

 

#20>

다시 빈민가. 아직 낮이라 시장통에 사람들 북적 대고 있고.

온고당 앞에서는 분이가 손님들을 상대로 흥정하고 있다. 골동품을 구경하는 잘 차려입은 뚱보와 우산을 쓴 기생 분위기의 여자에게 골동품들을 설명하고 있고.

가게 안에서는 청풍이 가게 입구를 등진 채 탁자 앞에 서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 건너편에 앉은 천불투가 차를 마시면서 보고 있고. 청풍은 족자로 만들만한 긴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은 눈 덮인 산을 털옷을 입고 비파를 품에 앉은 절세 미녀가 말 위에 옆으로 앉아있는 모습. 말고삐를 야만족 차림에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가 웃으면서 끌고 가고 있고. 그 뒤로 짐을 이고 진 궁녀와 하인들이 걸어서 따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야만족 차림의 군사들도 있는데 궁녀와 하인들 모두 우는 표정이다.

천불투; (불가사의로다.) 그려지는 그림을 보며 끄덕이는 천불투.

<단 한번 본 그림을 저렇게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청풍이 그림 그리고 있는 탁자 위에는 두루마리가 하나 놓여있다. 그때

[물건 보는 눈이 탁월하세요 손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 들어 가게 밖을 보는 천불투

분이; [그 옥두꺼비는 남송(南宋)의 휘종(徽宗)이 아끼던 물건이라고 해요.] 분이가 졸부처럼 보이는 뚱보를 상대하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뚱보가 주먹만한 크기의 옥두꺼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살핀다. 기생같은 분위기의 양산 쓴 여자가 뚱보 옆에서 같이 보고 있고.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뚱보; [오오! 이게 풍류황제(風流皇帝)로 이름난 휘종의 애장품이란 말이지?] 눈이 휘둥그레

분이; [어머나. 남송의 휘종이 풍류황제라 불린다는 것도 아시고...] [손님, 정말 박학다식하시네요.] 놀라며 감탄하는 표정으로 두 손 모으고

뚱보; [어흠! 내가 역사와 예술에 조예가 깊긴 하지.] 으쓱 대고

피식! 웃는 청풍과 천불투. 청풍은 그림을 그리면서 웃고

분이; [그 두꺼비들은 한 쌍이었는데 어제 최상서(崔尙書) 댁의 둘째 공자님께서 한 마리를 업어갔지 뭐에요?] 허풍 떨고

뚱보; [최상서댁의 이(二)공자께서 한 마리를 가져갔다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분이; [원래는 둘 다 가져가고 싶어 하셨지만 마침 갖고 계신 돈이 얼마 없으시다면서 한 마리만 데려갔어요.]

분이; [조만간 다시 들르셔서 가져간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아직 안 보이시네요.] 길거리를 살피는 시늉하고. 물론 뻥이다

뚱보; [그... 그래서 이걸 얼마에 팔려고 내놓은 것이냐?] 조바심

분이; [할아버지! 이 옥섬(玉蟾;옥두꺼비) 얼마에 팔까요?] 안쪽에 대고 묻고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는 천불투

분이; [사백 냥?] [알았어요.] 큰 소리로 대답하고

<사백 냥!> <가짜 옥돌로 만든 조잡한 두꺼비를...?> 놀라는 청풍과 천불투. 청풍은 그림을 그리면서 놀라고

분이; [주인 할아버지가 사백 냥 말씀하시는데... 에이 기분이다. 백 냥 깎아드릴게요.]

뚱보; [이 귀한 걸 삼백 냥에 주겠다고?] 감격

분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사백 냥 중 백 냥쯤은 제게 떨어지는 판매수당이에요.] 뚱보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고

분이; [하지만 손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고 또 오늘 마수걸이라 남기는 거 없이 드리는 거예요.] 눈웃음을 치며 팔꿈치로 뚱보를 슬쩍 치고

뚱보; [허어! 꼬마 아가씨가 배포도 크고 호탕하구만.] 입이 귀에 걸리며 한손을 품에 넣고

뚱보; [자! 신용도 으뜸인 대륙전장(大陸錢莊)에서 발행한 은표(銀表;지폐)다.] 새장의 큼직한 종이를 내밀고. 종이에는 복잡한 글과 그림이 테두리에 그려져 있고 중앙에 <壹百>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분이; [고마워요 손님.] 두손으로 은표를 받으며 간드러지게 웃고

분이; [귀한 옥섬을 손에 넣으셨으니 머잖아 떡두꺼비같은 아드님을 얻으실 거예요.] 기생 같은 여자에게 눈웃음 치며 말하고.

뚱보; [그... 그렇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 헤벌레 하며 기생을 끌어안고. + 기생; [어린 동생이 혀에 꿀을 발랐네.] 기생도 눈 흘기지만 좋아하고.

분이; [또 들려주세요.] 끌어안고 가게 앞을 떠나는 뚱보와 기생의 뒤에 대고 허리 숙이며 간드러지게 인사하고. 이어

분이; [할아버지!] 돌아서고

분이; [분이가 오늘도 한 건 했어요.] 신이 나서 가게로 들어오고. 지폐를 흔들면서

천불투; [장사 수완이 좋은 건지 사기를 잘 치는 건지 갈피를 못 잡겠구나.] 고개 설레 젓고. 청풍은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하고 있고

천불투; [네 냥에 팔아도 남는 조잡한 옥섬을 삼백 냥에 파는 건 지나치지 않느냐?] 한숨 쉬고

분이; [뭐 어때요?] 청풍이 그리는 그림을 힐끔 보며

분이; [골동품이란 게 원래 정해진 가격이 없는 거잖아요.] [아까 그 손님에게는 옥섬이 삼백 냥 이상의 값어치를 할 걸요?] 두손으로 지폐를 내밀고

천불투; [네가 번 돈이니 네가 가져라.] 갖으라고 손짓하지만

분이; [그럴 수는 없어요. 제가 그냥 좋아서 한 일이니까요.] 지폐를 탁자에 내려놓고.

천불투; [사양하지 말고...] 말하는데 + 분이; [어서 오세요 손님!] 밖을 보며 외치고

가게 밖에서 손님들이 가게 밖에 진열된 골동품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분이; [찬찬히 둘러보세요.] [저희 온고당이 비록 이런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긴 해도 물건 구색으로는 금릉 성내의 어떤 골동품 가게보다도 다양하답니다.] 손님들에게 가게 자랑을 하고

이어 손님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분이의 모습. 거리에서 본 모습.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보고

[분이 저년 요즘은 온고당에서 아예 사는구만.] [자기 가게처럼 장사를 하고 있어.]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 중 나이 든 여자들이 분이가 손님들에게 물건 권하고 설명하는 걸 보며 눈 흘기고

[온고당 주인인 조영감의 외손자 청풍이 때문이야.] [청풍이가 왜?] 여자들의 대화

[왜긴 왜야? 조영감에게 잘 보여서 손주며느리 자리 차지할 꿍꿍이지.] [옳거니! 청풍이하고 잘 되어 보려고 제 어미가 하는 선술집 일은 나몰라라하고 온고당에서 사는구만.] 손님들을 상대하는 분이의 모습 배경으로 나이든 여자들의 이바구

천불투; (요즘은 분이가 청풍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는구나.) 가게 밖에서 손님들 상대하는 분이를 보며 생각

천불투; (하긴 이곳 해하촌에서 청풍이만큼 계집아이들의 마음을 잡아끌 사내 녀석은 없긴 하지.) 쓴웃음을 짓고

천불투; (문제는 청풍이가 언제까지 해하촌에 머물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숨

천불투; (신분도 다르고 사는 세계도 다르니 필연적으로 분이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천불투; (청풍이에 대한 분이의 마음이 더 영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생각할 때

청풍; [다 그렸어요.] 붓을 그림에서 떼고. 돌아보는 천불투

청풍; [북송(北宋) 초기의 인물화 대가 고문진(高文進)이 그린 귀비별리도(貴妃別離圖)의 모사(模寫)가 끝났어요.]

천불투; [수고했다.]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그림을 살피고.

천불투; [그럼 원본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자.] 탁자에 놓여있던 두루마리를 집어들고

촤아 두루마리를 펼쳐서

두루마리를 청풍이 그린 그림 염에 펼쳐 놓는 천불투

쿵! 두루마리의 그림과 청풍의 그림이 완전히 똑같다. 다른 점은 두루마리는 좀 낡은 느낌이고 청풍이 그린 그림은 새 종이라 전체적으로 밝게 보인다.

천불투; [감쪽같구나.] [인물들은 물론이고 왕소군(王昭君)이 타고 있는 말과 주변 풍경까지도 완벽하게 일치해] 고개 숙여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천불투; [그려진 재질이 다른 것만 빼면 어느쪽이 진본인지 분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조금 들고. 시선은 여전히 그림을 향하고

천불투; [오래 본 것도 아니고 일별(一瞥), 말 그대로 한번 흘깃 본 그림을 어떻게 똑같이 모사를 한 것이냐?] 그림을 내려다보며 묻고

청풍; [이치는 잘 모르겠지만...] 어색하게 머리 긁적

청풍; [한번 본 건 그게 무엇이든 제 머리 속에 완벽한 형태로 각인(刻印)이 되곤 해요.] [전 그걸 그냥 다시 종이 위에 풀어내면 되구요.]

천불투; [아마도 넌 전설 속의 만천신안(瞞天神眼)을 타고 난 것같다.]

청풍; [하늘을 속이는 신의 눈...] [거창한 이름의 능력이로군요.] 좀 머쓱

천불투; [만천신안은 도둑들의 왕 도척께서 지녔었다고 알려진 능력이다.] [만천신안 덕분에 도척께서는 누구든 속일 수 있었고 누구에게도 속지 않았다고 한다.]

청풍; [도척이 도둑들의 왕이 된 배경에는 만천신안이라는 능력이 있었군요.] 흥분

천불투; [무엇이든 본 즉시 복제해낼 수 있는 만천신안의 능력은 투도 뿐 아니라 싸움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림을 살피며 발하고

천불투; [적이 사용하는 무공의 허실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풍; [그렇겠네요. 적의 허점을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을 테니...]

천불투; [하지만 너의 만천신안은 좀 더 보안을 해야만 한다.] 다시 그림을 보고

청풍; [제가 귀비별리도를 모사하면서 실수를 한 부분이 있나요?]

천불투; [이 그림에서 잘못 된 부분을 찾아봐라.] 원본을 가리키고

청풍; [잘못 된 부분이라면...] 그림을 보지만

청풍;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는데...] 갸웃

천불투; [귀비별리도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느냐?]

청풍; [한(漢)나라 때의 미녀 왕소군이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왕)에게 시집가는...] + [!] 말하다가 깨닫고 원본 그림을 들여다 보고

천불투; [알아차렸느냐?] 웃고

청풍; [예!] 끄덕

청풍; [왕소군을 수종하는 시녀와 하인들뿐만 아니라 흉노의 군사들까지 우는 표정이로군요.] 하녀와 하인들과 군사들의 작은 얼굴 크로즈 업 배경으로 청풍의 말. 하녀와 하인들 뿐 아니라 군사들의 얼굴도 울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청풍; [절세미녀를 얻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흉노의 군사들이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라 울상을 하고 있다는 건 이 원본 그림도...] 찡그리고

천불투; [물론 위작(僞作;흉내 내어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끄덕이며 원본 그림을 집어들고

청풍; (역시!)

천불투; [이건 당대의 도수(盜首)인 야유신(夜遊神)이 젊은 시절에 모사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군사들의 표정을 원본과 다르게 그린 것도 야유신이었고...] 손에 든 그림을 보면서

청풍; [제가 베끼는데 급급해서 그림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놓쳤군요.] [그 때문에 원본이 위작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한숨 쉬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집어들고

천불투; [진정한 만천신안은 겉이 아니라 실체와 알맹이까지 알아보는 경지다.] [타고난 능력에 안주하지 말고 사물의 이치까지 궤뚫어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두루마리를 둘둘 말고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역시 그림을 말기 시작하고

청풍; [그리고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림을 말면서

천불투; [말해봐라.] 두루마리를 완전히 말면서 의자에 앉고

청풍; [올해 열리는 도척제전에는 참가하지 않으실 생각이신지요?] 천불투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림을 완전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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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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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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