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본 무협지의 추억/천병신기보(天兵神奇譜)'에 해당되는 글 64건

  1. 2021.05.20 [천병신기보] 제 36장 실종
  2. 2021.05.19 [천병신기보] 제 35장 아! 천형제왕검!
  3. 2021.05.18 [천병신기보] 제 34장 황실 수호자의 등장
  4. 2021.05.17 [천병신기보] 제 33장 진회하에 부는 바람
  5. 2021.05.15 [천병신기보] 제 32장 부부의 정
  6. 2021.05.14 [천병신기보] 제 31장 고수 속출
  7. 2021.05.13 [천병신기보] 제 30장 처절한 낙화
  8. 2021.05.12 [천병신기보] 제 29장 여인 절대자 천향염후
  9. 2021.05.10 [천병신기보] 제 28장 고정(古井)의 비밀
  10. 2021.05.09 [천병신기보] 제 27장 천하제일기녀의 나신
  11. 2021.05.08 [천병신기보] 제 26장 독인과 미녀
  12. 2021.05.06 [천병신기보] 제 25장 여자들의 시대
  13. 2021.05.05 [천병신기보] 제 24장 헌원천황벽의 구결
  14. 2021.05.03 [천병신기보] 제 23장 만독묵린편의 저주
  15. 2021.05.02 [천병신기보] 제 22장 자부지존이 되어라!
  16. 2021.05.01 [천병신기보] 제 21장 흑룡천신
  17. 2021.04.30 [천병신기보] 제 20장 오백년전의 미녀
  18. 2021.04.29 [천병신기보] 제 19장 밀실의 열풍
  19. 2021.04.28 [천병신기보] 제 18장 혈황탈 대 패천신륜
  20. 2021.04.27 [천병신기보] 제 17장 위경 중의 연정
  21. 2021.04.26 [천병신기보] 제 16장 여자 중의 여자
  22. 2021.04.24 [천병신기보] 제 15장 변황제일병
  23. 2021.04.23 [천병신기보] 제 14장 자부의 다섯 가지 보물
  24. 2021.04.22 [천병신기보] 제 13장 억지 청혼
  25. 2021.04.21 [천병신기보] 제 12장 천둔곡의 기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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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六 章

 

                     실종

 

 

 

[제왕부(帝王府)의 전통은 황실과 함께 하네!]

태상존황이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청하궁 깊은 곳의 조용한 전각이다.

방안에는 능천한과 태상존황, 선덕제, 주하령 등이 둘러앉아 있었다.

(볼수록 신비로운 분이다. 분명 두 번째 만남인데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다니...)

능천한은 태상존황을 올려다보았다.

흡사 친인(親人)같이 느껴지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태상존황은 마치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사람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제왕부는 대대로 일인에 의해 이어지고 그 추구하는바 목표는 황실의 안정이네!]

[...!]

태상존황은 미소를 머금었다.

[노부가 현질에게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시겠는가?]

능천한은 고개를 저었다.

[소질은 알지 못합니다.]

[그럴 테지!]

태상존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일단 황실 내부의 겁운은 완전히 몰아내었네. 그러나, 무림이 온전하지 못하면 황실도 어지러워지는 법이네!]

[...!]

[노부는 북경으로 돌아가 황실만을 지킬 것이고...]

태상존황은 형형한 눈길로 능천한을 주시하였다.

[천하무림은 현질 손에 맡길 생각이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을 태평케 하는 것은 소질이 당연히 해야할 도리입니다!]

태상존황은 껄껄 웃었다.

[하하! 현질의 생각이 그러함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소매 속에서 두툼한 비급을 한권 꺼내어 능천한에게 내밀었다.

[이것을 익히면 천하를 평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니... 받게!]

[...!]

능천한은 흠칫하며 비급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천형제왕검(天形帝王劍) 연형결(鍊形訣)>

 

그것은 바로 제왕지검(帝王之劍)이라는 천형제왕검의 연형방법이 기술된 비급이었다.

[어찌 이 귀중한 것을 소질에게 주십니까?]

능천한은 비급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태상존황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적을 얕보면 아니 되네. 자네가 천형제왕검까지 지닌다 해도 상대키 어려운 적이 있으니...]

그의 말에 주하령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혈종은 천형제왕검도 못 받아낸 자가 아니옵니까?]

주하령의 말을 듣고 태상존황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만악의 근원은 혈종같은 애송이가 아니야!]

선덕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럼 혈종 뒤에 더 대단한 존재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

[...!]

능천한과 주하령은 놀라 태상존황을 바라보았다.

[그렇네. 그 진정한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거영(巨影)이 혈종의 뒤에 있지.]

[...!]

[...]

태상존황의 말을 듣고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이미 전부터 예감한 일... 다만 백부님께서도 그것을 감지하고 계셨다니... 그것이 놀랄 뿐이다.)

태상존황은 말을 마치고 능천한에게 천형제왕검의 비급을 밀었다.

[천하를 위한 일이다. 다른 생각말고 천형제왕검을 거두어라!]

[...!]

능천한은 더 이상 거절할 수도 없었다.

[백부님의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능천한은 태상존황에게 절을 올린 뒤 천형제왕검의 비급을 집어들었다.

[허허! 되었다. 천하의 안위가 네 양손에 달렸음을 잊지 마라!]

태상존황은 흐뭇하게 웃었다.

선덕제와 홍화공주도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띄웠다.

 

***

 

음침한 석실(石室).

츠츠츠---!

시뻘건 혈광이 석실 가득히 흐르고 있었다.

[크으... 천형제왕검이 황실에 있었다니...!]

혈광 속에서 아주 괴로운 신음성이 흘렀다.

자세히 보면 칙칙한 혈광 속에 한 명의 인물이 앉아 있음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리고 혈광의 외곽에 한 명의 백의노인이 꿇어앉아 있었다.

[사부님도 천형제왕검에 뜻이 꺾였거늘 또다시 천형제왕검에 당하다니...]

혈광 속의 인물,

혈종은 원독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문득,

--- 자작!

강렬한 혈안의 눈빛이 꿇어앉아 있는 백의노인에게로 떨어졌다.

[...!]

그 시선에 접한 백의노인은 부를 몸을 떨었다.

[쌍극천효! 꼴 좋구나. 너는 혈종문(血宗門)의 전력말고 혈종오패만으로도 천하제패를 장담하지 않았느냐?]

[혈종이시여!]

쌍극천효는 이마를 바닥에 붙인 채 몸을 떨었다.

[죽여 없애겠다던 패천잠룡은 버젓이 살아나 천하고수가 되었고 구천묵영독존, 천향염후... 그리고 태상존황등의 강적만 만들지 않았느냐?]

[혈종! 한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쌍극천효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그런 쌍극천효를 혈종은 칙칙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복안이 있느냐?]

[, 패천잠룡, 묵영독존, 천향염후 뿐만 아니라 태양신존(太陽神尊)까지도 일거에 쓸어버릴 계획이 있습니다.]

쌍극천효가 자신있게 말했다.

[... 그래? 어디 들어보자!]

혈종은 구미가 당기는 듯이 말했다.

[먼저... 패천잠룡을 제거할 것입니다. 이는 월영극살만 있으면 됩니다.]

[월영극살?]

혈종이 의아한 듯이 되물었다.

쌍극천효가 득의하여 말을 이었다.

[그 계집은... 패천잠룡의 계집입니다. 패천잠룡을 끌어 들이기에 충분한 미끼가 되지요.]

[월영극살... 그 계집이 능가와 배가 맞았단 말인가?]

츠츠츠츠---!

혈종의 몸에서 벼락치듯이 살기가 피어올랐다.

쌍극천효는 부르르 몸을 떨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계집은 패천잠룡을 암격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패천신문에 잠입시켜 둔 동안 능가에게 빠져버리고 만 것이지요.]

[... 발칙한 계집!]

혈종의 일신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좋다. 그 계집을 이용하여 능가를 없애라! 본문의 혈천구마성(血天九魔聖)이 네 일을 도울 것이다.]

혈종이 음악하게 말했다.

이에, 쌍극천효는 희색이 만면해졌다.

[감사합니다. 혈종! 반드시 능가 애송이를 누이고 말 것입니다.]

[좋다. 그리고 묵영독존 등은 어찌할 것이냐?]

혈종의 물음에 쌍극천효는 얼굴을 들었다.

[천마총(天魔塚)을 이용할 것입니다.]

[천마총!]

혈종의 몸에 두른 혈광이 부르르 떨렸다.

 

-천마총(天魔塚)!

 

천마(天魔)!

사상최강의 마종(魔宗)인 천마의 전설이 묻힌 곳이 아닌가?

신기보(神奇譜) 서열이 위의 신기(神奇)이기도 한,

한데 어찌 그 천마총이 쌍극천효의 입에서 거론되는가?

[쌍극천효! 미쳤느냐? 천마총은 본문만이 아는 곳이거늘... 그 천마총을 이용하다니... 천마총을 천하에 공개라도 하겟다는 소리냐?]

혈종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랬는가?

천마총의 비밀을 혈종문이 쥐고 있었는가?

쌍극천효는 자신있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천마총의 비밀을 한달 이내 풀립니다. 그렇게 되면 천마총의 기관함정들은 쓸모가 없게 되고...!]

[닥쳐랏! 그러나 만약에 일어날 엄청난 결과를 생각해 보았느냐?]

혈종이 벼락같이 일갈을 터뜨렸다.

[... 혈종...!]

[만일... 천마유물(天魔遺物)이 엉뚱한 자들의 손에 들어갈 경우... 혈종문의 이백 년 심원이 수포로 돌아감을 잊었느냐?]

혈종의 일갈에 쌍극천효는 안타까운 기색이 되었다.

[혈종... 그러나...!]

[그만 두거라! 천마총의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자.]

혈종의 말에 쌍극천효는 입술을 악물었다.

(역시... 애송이는 애송이다. 큰 힘을 늘이지 않고 천하를 얻을 계획을 묵살하다니...)

그가 중얼거릴 때였다.

[천마총을 이용한다... 좋은 계획이다.]

돌연 청수한 노인의 음성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

[...!]

그 목소리를 들은 혈종과 쌍극천효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 사부!]

[... 태상종주(太上宗主)!]

혈종과 쌍극천효는 그대로 이마를 땅에 대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그그긍!

스스스스!

이어 석벽이 쩍 갈라지며 한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고희가 막 지난 듯한 백의노인이었다.

안색이 어린아이같이 불그레 하고 머리가 칠흑같이 검었다.

일견하여 세외(世外)의 선인(仙人)을 연상케 하는 풍도의 노인이었다.

다만 두 눈가에 흐릿하게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이 괴이쩍게 보일 뿐!

[사부... 못난 제자를 용사하십시오.]

혈종이 머리를 조아리며 백의노인에게 말했다.

백의노인!

그가 혈종의 사부인가?

너무도 뜻밖의 인물이 아닌가?

[일어들 나라!]

백의노인은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혈종과 쌍극천효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시립했다.

백의노인을 바라보는 쌍극천효의 눈빛이 희열로 가득찼다.

(역시... 태상종주께서는 절대종사다우시다.)

백의노인은 그런 쌍극천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 너의 계획은 어떠한지 말을 해보아라.]

[! 태상종주!]

쌍극천효는 고개를 조아렸다.

(으음...)

그 모습을 보며 혈종은 입술을 실룩하였다.

쌍극천효가 백의노인에게 신임을 받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츠츠츠츠--- 츠츠!

스스스스!

그 때문인지 혈종의 몸에서 흐르는 혈광은 더욱 음산하게 혈색을 뿌렸다.

 

***

 

[홍예(紅霓)가 없어지다니...]

능천한의 검미가 깊이 모아졌다.

이곳은 만화원이다.

태사에 몸을 실은 능천한의 검미가 깊이 모아졌다.

그 앞에는 광양존후 금벽라, 녹림천봉, 진예빈이 앉아 있었다.

[상공께서 나가신 직후에 홍예동생도 급한 볼일이 있다고는 총총히 나갔사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식이 없사옵니다.]

금벽라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능천한은 태사의에 깊이 몸을 묻었다.

(무엇인가... 비밀이 있는 여인이었는데... 이번의 실종이 그 때문일까!)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휴우...]

그 모습을 보며 금벽라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홍예선희도 알고 보면 금벽라에게서 능천한의 사랑을 조금 빼앗아 간 씨앗의 한 명이다.

그러나 그녀 때문에 걱정하는 능천한의 모습을 보는 금벽라의 가슴은 아픈 것이다.

(어디가 있기에... 아우님의 근심을 저리 심하게 만드는 것인가...)

금벽라는 한숨을 쉬었다.

진예빈도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져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문득,

[맹주언니...]

방문 밖에어 소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냐?]

금벽라는 문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 들어가도 되어요!]

[그래 들어오너라!]

금벽라가 대답했다.

--- 이익!

문이 열리고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천산홍연 위지련이 들어왔다.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져 있음을 보고 금벽라는 가슴이 덜컥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능천한에게 절을 하고 일어선 위지련에게 금벽라가 물었다.

[이것이... 태상맹주님께 왔어요.]

위지련은 조심스럽게 말하며 한 장의 배첩을 능천한에게 내밀었다.

[이건...]

금벽라는 흠칫하며 배첩을 받아들었다.

 

<능천한친전(陵天漢親前)>

 

배첩의 겉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아우님...]

금벽라가 배첩을 능천한에게 넘겨주었다.

[...]

능천한은 배첩을 받아들어 펼쳐 보았다.

 

<패천지존, 그대를 본궁(本宮)에 초대한다. 물론 혼자 와야 하고... 아울러 그대의 첩() 홍예선희(紅霓仙姬)를 본궁에서 모셔두고 있음을 알려준다. 본궁은 복우산(伏牛山) 혈운애(血雲崖)에 있다.

 

---혈영군(血影君).>

 

 

[으음...]

배첩의 글을 읽어본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아우님... 무슨 일이옵니까?]

광양존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보십시오!]

능천한은 배첩을 금벽라에게 넘겼다.

[...!]

배첩의 내용을 본 금벽라와 진예빈의 안색도 일변하였다.

[홍예언니가 혈영궁에 잡혀가 있다니... 이것은 필시 지존을 시해하려는 혈종(血宗)의 음모예요.]

진예빈이 흥분하여 말했다.

[이 배첩을 언제 받았느냐?]

금벽라가 어두운 기색으로 위지련에게 물었다.

[방금 받았어요. 혈영군이 직접 전하고 갔어요!]

위지련이 어두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능천한은 깍지를 낀 손을 입가로 가져가며 깊이 침음했다.

[눈에 보이는 함정이옵니다.]

금벽라가 괴로운 어조로 말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누님, 그러나... 아니갈 수도 없지요. 홍예가 그자들에게 욕을 당하도록 놓아둘 수는 없으니...]

그의 말에 진예빈과 금벽라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지존! 아니되옵니다. 지존 한 분만을 바라고 살아가는 백만의 자부문도들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진예빈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을 모르는바 아니야. 그러나... 홍예를 그냥 놓아둘 수는 더욱 없지!]

능천한은 자리에서 일었다.

(당연히... 그리하셔야 하옵니다만...)

금벽라는 슬픈 눈을 하고 함께 일어섰다.

[지금... 가겠습니다. 빨리 서두를 수록 그들의 대비도 그만큼 허술해질 것이니...]

능천한은 금벽라의 등을 다독거렸다.

[걱정마십시오. 천극과 패천신륜이 내게 있는 한... 어떤 함정도 소제의 발길을 막지 못합니다!]

[아우님...]

금벽라는 흐느끼며 능천한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때였다.

[...]

방문 박에서 여인의 흐느낌이 들렷다.

[누구냐?]

진예빈이 냉갈하며 벌컥 문을 열었다.

방문 밖에는 검은 경장을 한 늘씬한 미인이 꿇어 앉아 흐느끼고 있었다.

[흑단(黑丹)언니...]

진예빈이 흠칫하며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그 흑의미인은 바로 흑단이었다.

[흑단...]

능천한은 탄식하며 흑단을 바라보았다.

[... 상공! 용서하세요!]

흑단은 능천한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꼈다.

[무엇을 용서하라는 것인가?]

능천한이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교주언니도... 이번 한 번의 살수행을 끝내고... 상공께 털어놓으시려 하셨사옵니다.]

흑단의 말에 능천한은 짚이는 것이 있었다.

(교주(橋主)! 홍예가 바로...)

능천한이 염두를 굴리리는데 흑단이 말을 이었다.

[홍예언니가 바로 월영극살이며... 만화원 일천기녀가 바로 밀살교의 일천살수들이옵니다.]

[...]

능천한은 예상한 일인지라 다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러나,

[그럴 수가...]

[홍예가... 월영극살...]

금벽라와 진예빈 등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랬군... 그래서 홍예의 왼쪽 젖가슴에... 잘려진 자성이 있었고...)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홍예가 바로 벽향(碧香)이겠지?]

흑단은 죄스러운 듯이 고개를 깊이 떨구었다.

[그렇사옵니다. 교주언니는 쌍극천효의 지시로 시녀로 화하여 패천신문에 잠입했던 것이옵니다.]

[으음...]

흑단의 말을 들으며 능천한은 깊이 탄식을 금치 못했다.

뚜벅 뚜벅!

능천한은 육중한 걸음을 옮겨 창가로 다가갔다.

[...!]

활짝 열린 창가에 선 능천한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북천(北天)!

복우산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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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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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五 章

 

             아! 天形帝王劍!

 

 

 

평화롭기만 하던 청하궁이 혈풍(血風)에 휘말려 들었다.

[--- 으악!]

[--- 에엑!]

전의를 잃은 자는 이미 고수(高手)가 되지 못한다.

혈종도들은 변변한 싸움도 못해보고 허물어져 갔다.

[흐음...]

선덕제는 그 장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귀한 신분으로 태어나고 자란 그인지라 그같이 참혹한 장면에 익숙치 않다.

물론 선덕제는 조부 영락제를 보좌하여 여러 번 북원 정벌을 다녀오긴 했다.

하지만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휘를 했을 뿐 직접 전장에 나갈 기회는 없었다.

그 때문에 피가 튀고 살이 잘리는 장면은 사실상 처음 본다고 해야 한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자들이 살덩이가 되어 나뒹구는 모습은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억조창생을 다스리는데 좋은 교육이 될 수도 있다. 제왕지로(帝王之路)는 결코 화()로만 다스려지는 길이 아니니...)

고통스러워하는 선덕제를 바라보는 태상존황의 표정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미 장내에서 벌어진 일장 혈전은 종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 아악!]

[--- 아악!]

혈종도들이 쓰러지며 흘린 선혈이 청죽림(靑竹林)을 흥건히 물들었다.

그때였다.

[크크크... 황실에 이런 거물이 웅크리고 있었을 줄이야.]

돌연 한소리 칙칙한 음성이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츳!

청하궁 상공이 시뻘건 혈광(血光)으로 뒤덮였다.

[... 혈종!]

[혈종이 나타나셨다.]

혈종도들이 회색이 되어 외쳤다.

스스스스!

[흐흐흐흐흐!]

섬뜩한 혈광을 모아 한 명의 혈인(血人)이 나타났다.

이어 한 명의 흑의노인이 귀신같은 몰골의 혈포괴인들을 이끌고 청죽림에서 나왔다.

[절대마황(絶代魔皇)!]

흑의노인을 발견한 주하령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흑의노인은 역천사황과 쌍황(雙皇)으로 불리는 절대마황이었다.

[크크... 태상존황! 그대의 전설을 무시한 것이 실책이었다.]

혈종이 음산한 어조로 말하며 태상존황을 노려보았다.

혈광 속에서 그자의 혈안이 섬뜩하게 빛을 발했다.

그러나 태상존황의 표정은 어디까지나 담담했다.

[혈종! 그대에게는 두 가지 일이 있다!]

태상존황이 그리 높지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

하지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혈종의 몸을 뒤덮고 있는 혈광이 부르르 떨렸다.

태상존황의 말에는 범접키 힘든 장중함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대역의 괴수로 본황과 백만 금군의 손아래 능지처참 당하는 길이고...]

[으드득! 계속 해봐라!]

혈종이 격노하여 이를 갈며 내뱉았다.

[두번째는 황상께 큰 절로 사죄하고 다시는 황실의 일에 관여 않겠다 맹세하는 것이다.]

[으음...]

혈광이 바람을 만난 듯이 파문을 일으켰다.

혈종이 격노하여 치를 떨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은 자유이니라!]

태상존황은 말을 하며 뒷짐을 지었다.

그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태산같이 장중하고 당당한 것이었다.

[...]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문득,

[혈종! 그자를 선덕제 곁에서 끌어내어 주십시오. 그 뒤는 속하가 맡겠습니다.]

한 줄기 전음이 혈종의 귀에 스며들었다.

(쌍극천효(雙極天梟)...)

혈종은 지나가는 눈길로 정사 뒤쪽의 죽림을 바라보았다.

흐릿하게, 그 청죽림 속에 한 명의 백의노인이 은신해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혈종은 마음을 굳혔다.

그 탓에 그는 알아보지 못했다.

태상존황의 입가로 파문같이 번져가는 작은 미소를...

[태상존황! 그 대답은 그대와 일전을 겨룬 뒤에 해주겠다. 나와랏!]

--- 스스슥!

혈종이 이십 장 밖으로 물러서며 외쳤다.

[핫하! 좋다. 혈황탈의 잔독함을 일찌기 들어 와거니와, 오늘 과연 혈황탈의 명성이 헛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해보겠다.]

스스스--- !

태상존황은 껄껄 웃으며 신형을 둥실 떠올렸다.

[...]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태상존황의 시선이 죽엽의 무성한 대나무 위를 훑고 지나갔다.

(과연...)

그 대나무 위에서 감탄의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인물이 있었다.

대나무 잎을 밟고 표표히 떠 있는 인물.

능천한이었다.

그는 천극을 비껴들고 장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선덕제가 있는 정사의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정사의 뒤쪽에는 두 명의 인물들이 은신하고 있었다.

백의의 심기가 깊어 보이는 노인과,

전신을 푸른 천으로 휘감아 언뜻 대나무와 구별이 아니 되는 왜소한 인물이 그들이었다.

(쌍극천효... 월영극살...)

능천한의 눈이 착잡하게 물들었다.

쌍극천효는 그와 세불양립의 적이다.

동시에 제갈영라의 아버지, 즉 능천한에게는 장인이 되는 것이다.

쌍극천효와 월영극살은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꿈에도 제삼자가 자신들의 전음을 듣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월영극살이 무감정하게 말했다.

[천효! 나는 더 이상 그대들과 동류로 남길 원치 않아요!]

월영극살의 말에 쌍극천효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쨌든 좋다. 오늘 이후로 그대의 행동을 간섭치 않겠다. 네가 그자의 첩이 되든 하녀가 되든...]

[...]

월영극살은 얼음장같은 시선으로 쌍극천효를 노려보았다.

[다시 한 번 그분에 대해 무어라 하면 늙은이 목부터 잘라주겠다.]

[흐흐... 흥분하지 마라. 오늘 네 손으로 선덕제의 심장을 잘라주기만 하면 네가 혈종께 입은 은혜는 없는 것으로 하겠다.]

[...]

월영국살은 묵묵히 장중에 시선을 돌렸다.

츠츠츠츠--- !

--- 이이이이잉!

장내에서는 두 개의 태산이 대치하고 있었다.

심혼을 얼려 버릴 듯한 혈광이 백 장을 뒤덮고 있다.

그중에 태상존황이 표표히 몸을 띄우고 있다.

한가롭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의 태상존황!

그러나 그의 일신에서는 보이지 않는 거창한 기운이 줄기줄기 일어나고 있었다.

한순간,

[크크크... 누워랏!]

혈광 속에서 혈종의 일갈이 터졌다.

--- --- --- !

츠츠츠츠츠--- 츠츳!

지옥의 마화가 치솟듯이,

시뻘건 파령이 벼락같이 일어나 태상존황을 덮어 씌웠다.

[핫하! 혈황탈인가?]

태상존황은 껄껄 웃었다.

--- 우우웅!

그의 몸에서 거창한 무혈경력이 일어났고,

--- 스스스슥!

혈황탈의 마기가 모래에 물이 스며들 듯이 사그라들었다.

[대단하구나! 받아랏!]

--- 쿠쿠쿠쿵!

일격이 실패한 혈종이 대갈을 치며 재차 혈황탈을 쏟아내었다.

--- 이이이잉!

--- 카카카캇!

이가 갈리는 소성과 함께 혈황탈이 마기로 만 장을 덮으며 폭사되었다.

그때였다.

[약속을 지켜랏!]

스스스스슥---!

월영극살이 몸을 띄웠다.

월영극살의 신형은 한 줄기 청무(靑霧)로 변해 선덕제에게로 날아갔다.

[흐흐...!]

날아가는 월영극살을 바라보며 쌍극천효가 득의의 미소를 흘렸다.

--- --- !

섬뜻한 비수(匕首)가 한망을 일으키며 선덕제의 등으로 파고 들었다.

중인들은 모두 태상전황과 혈종의 대결에 시선을 모으고 있어서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절체절명(絶體絶命)!

월영극살의 비수가 선덕제의 등을 가르는 순간,

[후훗! 벽뢰섬!]

한 줄기 묵직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 --- 파팟!

벼락!

한 무더기 강륜(罡輪)이 월영극살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

때 아닌 벼락에 월영극살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 파파파--- !

월영극살의 가슴을 스친 강륜이 정사의 바닥을 후려치며 요란한 굉음을 일으켰다.

[...!]

[! 저기...!]

선덕제가 움찔하며 뒤돌아서고,

자밀위대와 홍하공주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 이잇!]

--- 아아앙!

바닥으로 나뒹군 월영극살이 몸을 휘돌리며 월아밀살비를 선덕제의 가슴으로 폭사시켰다.

[천방지축도 모르는 것...!]

선덕제가 움찔하는데 능천한의 폭갈이 허공에서 터져 나왔다.

--- --- !

휘르르르르---!

허공이 가득 덮이며 능천한의 그림자가 청공을 뒤덮었다.

--- 쿠쿠쿠쿵!

[!]

월영극살의 눈빛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능천한!

그 태산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이다.

--- --- 콰쾅!

--- 가가각!

[!]

월아밀살비가 가루로 부서지고,

월영극살의 왜소한 몸이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나갔다.

--- !

월영극살이 나뒹구는 순간 능천한의 몸이 선덕제 옆으로 날아내렸다.

그와 함께,

[멸절마황수(滅絶魔皇手)!]

[혈영파천뢰(血影破天雷)!]

--- 쿠쿠--- !

파츠츠츠츠츠!

흑영과 혈영이 동시에 선덕제를 덮쳐들어 왔다.

그들은 절대마황과 은신하고 있던 혈영군이었다.

그리고,

[만천화우(滿天花雨)!]

--- 스스스슷!

정사 뒤쪽에서 우박이 쏟아지듯이 암기가 덮쳐왔다.

쌍극천효가 급습을 해온 것으로,

그 암기수법을 당문(唐門)에서 이미 오래 전에 실전된 초절한 수법이었다.

[...!]

멀리 떨어져 있어 손을 쓸 수 없는 주하령이 발을 굴렀다.

[물러가랏!]

직후 능천한이 폭갈을 치며 천극을 쳐들었다.

--- 우우웅!

--- 파파파팟!

일시에 정사가 극영(戟影)으로 뒤덮였다.

---천극망(天戟網)!

천극이절해 중의 제일식!

--- 콰콰콰쾅!

우르르르르--- !

만근 화약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터졌다.

우르르르르!

정사의 지붕이 박살이 나서 그대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 !]

[--- !]

그중에서 절대마황과 혈영군이 곤두박질을 치며 나뒹굴었다.

삼인이 합공을 햇으나 능천한 일인을 당하지 못한 것이다.

[...!]

선덕제는 탄성을 터뜨렸다.

그는 감탄의 눈길로 태산같이 우뚝 선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

능천한의 시선은 벼락같은 안광을 싣고 혈종과 태상존황을 바라보았다.

쿠쿠쿠쿠쿠--- !

천지멸렬(天地滅裂)!

화산이 폭발하듯이 거창한 탈영(奪影)이 수십장을 치솟았다.

[... ... 지독하다!]

[... 숨이 막히는 듯하다니...]

중인들이 사색이 되어 뒤로 밀려났다.

[왔는가?]

천지가 피의 광란으로 뒤덮인 속에서 태상존황의 정중한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한순간,

--- 파팡! --- --- !

갑자기 혈해(血海) 속에서 찬란한 빛이 치솟았다.

[... 저럴 수가...!]

[()... 검형(劍形)이닷!]

중인들이 아연하여 경악성을 터뜨렸다.

[저것은...]

바라보고 있던 능천한의 안색도 홱 변했다.

태상존황의 몸에서 무려 백여 장에 이르는 섬광이 뻗쳐 나갔다.

한데 그것은 검()!

다름 아닌 검의 형태를 한 강기의 무더기였던 것이다.

하늘()의 형태를 한 검()!

[()... ()... 제왕검(帝王劍)!]

능천한이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천형제왕검(天形帝王劍)!

 

바로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천마지존비와 쌍벽을 이룬다는 저 전설의 제왕지검(帝王之劍)!

그것은 무적(無敵)이며 절대(絶代)였다.

파가가가각!

--- 콰콰콰쾅!

천형제왕검이 이르는 곳에는 남아나는 것이 없었다.

저주의 혈황마기(血荒魔氣)가 얼음이 깨어지듯이 박살이 나고,

천하궁을 가득 메웠던 마기가 불속에 던져진 종이쪽지같이 재로 쓰러졌다.

--- --- !

()의 통곡같은 굉음!

[--- 으윽!]

그속에서 혈종이 피를 토하며 백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 천형제왕검이 나타나다니...]

공포에 물들은 음성이 들리며 혈종의 몸이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으아아아...!]

[... 달아나자! 천형제왕검이 나타났다!]

--- 이이이익!

화르르르르--- !

질겁을 한 혈종도들이 뒤도 안돌아 보고 날아갔다.

[... 상대가 아니다!]

[... 가잣!]

절대마황과 혈영군도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나고,

스스스슥!

쌍극천효가 쓰러진 월영극살을 잡아채어 흐르듯이 청하궁을 날아나갔다.

[...!]

[...!]

혈종도들은 일시에 청죽림에 사라졌다.

자밀위대 등도 태상존황의 신위에 넋이 나가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오오오! 태상존황이시여!]

[! 제왕천하(帝王天下)!]

그들은 미친 듯이 함성을 질렀다.

[하하...]

그 중에서 태상존황이 껄껄 웃으며 정사의 선덕제에게로 다가왔다.

[백부님!]

홍하공주 주하령이 환한 미소를 띄우며 태상존황에게로 안겨 들었다.

[하하... 홍하도 수고가 많았다!]

태상존황은 홍하공주의 등을 다독거리며 정사로 다가왔다.

그의 위엄에 찬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였다.

[황백!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선덕제가 태상존황에게 머리를 숙여 보였다.

그가 고개를 숙이는 대상은 천하를 통틀어 태상존황뿐이다.

[하하... 모두 대명(大明)의 천하를 위한 것이니...]

태상존황은 껄껄 웃으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아버님같으신 분...!)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태상존황에게 포권을 하였다.

[천형제왕검이 실제 검이 아니라 초극심검(超極心劍)인 줄은 몰랐습니다.

능천한이 태상존황에게 말했다.

 

---초극심검(超極心劍).

 

마음()의 검()이다.

마음속에 하늘()의 광대함을 담아 그것을 의지로 검형(劍形)을 이루고,

마음이 일면 검형(劍形)이 일어 천지(天地)를 가른다.

그것이 초극심검이고,

천형제왕검은 바로 그 초극심검인 것이다.

형태가 없이 최대 일만 장 길이의 검을 가슴에 담는 절대의 검법인...

[하하... 현질이 올줄 알고 있었지!]

태상존황은 껄껄 웃었다.

그리고 그는 능천한과 선덕제를 바라보았다.

[황상! 이 아이가 노부가 말하던 패천일문의 능천한이네!]

태상존황의 말에 능천한은 천극을 세우며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무부(武夫) 능천한이옵니다!]

선덕제는 미소를 지으며 능천한의 손을 쥐었다.

[과인이그대의 도움을 받았구려. 황산에 거룡(巨龍)이 있다는 말을 황백에게 듣고 그대를 한번 만나보기를 원했네.]

[황공하여이다!]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선덕제를 마주 보았다.

(좀더 경륜이 쌓이시면 만승지존으로 부족함이 없으실 분이다!)

능천한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오라버니를 도와주셔서 감사하옵니다.]

홍하공주가 두 사람 사이로 다가가 능천한에게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공주이신 줄은 몰랐소이다.]

능천한도 마주 인사를 하였다.

[하하... 홍하와는 구면이시군!]

선덕제가 기분좋게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태상존황을 돌아보았다.

[하하... 황백 어떻습니까? 콧대 높기로 유명하던 홍하(紅霞)도 이제는 시집을 보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를 말인가?]

두 사람의 말에 홍하공주의 얼굴에 홍조가 가득했다.

[백부님! 오라버니! 홍하를 놀리시는 거예요?]

그녀는 태상존황과 선덕제를 향하여 곱게 눈을 흘겼다.

[하하하...]

[허허...]

태상존황과 선덕제는 그런 홍하공주의 모습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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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四 章

 

                太上尊皇登場

 

 

 

(비록 희대의 요녀가 되긴 했으나... 바탕은 심약한 여인이다.)

능천한은 연민의 눈길로 천향염후를 바라보았다.

지난 밤,

건곤일척의 대격전을 치루었고,

그 바람에 엉뚱한 여인을 유린하게 만든 천향염후다.

그러나 울고 있는 천향염후를 능천한은 미워할 수가 없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문득 천향염후가 몸을 돌려 능천한과 마주섰다.

(역시 우물(尤物)...)

능천한은 내심 혀를 찼다.

두번째 대하는 천향염후다.

그렇건만 그녀에게서는 정신을 아찔하게 만드는 처절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천향염후는 눈물이 가득히 고인 눈으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 ---

사르르---

능천한의 시선을 접한 천향염후의 몸이 움츠러 들었다.

그녀의 옥용은 붉어지고,

그녀는 양손으로 젖무덤과 하복부를 가렸다.

(부끄럽다. 이 사내 앞에서는... 깊은 곳을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

천향염후는 입술을 악물었다.

음탕해지기로 강요받고 수치를 모르도록 단련된 그녀다.

만인의 앞에 벌거벗고 나가서도 웃을 수 있는 그녀이건만,

능천한에게만은 속살을 보이는 것이 그토록 부끄러울 수가 없는 것이다.

화르르르---

능천한을 바라보던 천향염후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교구는 한 가닥 체향(體香)을 남기고 까마득히 사라졌다.

[흐음...]

능천한은 나직이 탄식하며 시선을 거두었다.

[천검미후(天劍美后) 나설련... 그녀가 천향염후가 되다니...]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환몽천후인 교수를 쥐었다.

[, 이제... 청죽림으로 갑시다.]

스스스슥---

--- 이이잉!

능천한은 환몽천후와 함께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역천사황의 사혈(邪血)로 흥건한 갈대밭에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X X X

 

스스스스...

--- 사사사사삭---

청죽(靑竹) 사이로 여러 줄기의 인영들이 유령같이 움직였다.

[...]

[...!]

숨소리가 하나 없었다.

모두가 뇌전같은 안광을 지닌 자들로 고수(高手者)가 아니자 없었다.

 

청죽림의 외곽,

두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친 초로의 인물과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이 그들이었다.

비단옷을 걸친 인물은 허리춤에 황금빛 단장(短杖)을 찌르고 있었다.

길이 네 자 가량의 그 단장의 이름은 금룡신장(金龍神杖)이다.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은 매우 위풍당당했다.

군왕(君王)의 풍도를 지닌 인물인데

다만 야심이 지나칠 것 같은 인상이 드는 것이 흠이었다.

[통천금룡제! 청하궁(靑霞宮)에 그 아이가 있는 것이 확실하겠지?]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이 비단 옷의 노인에게 물었다.

비단 옷을 걸친 자는 바로 혈종오패 중의 통천금룡제였다.

[그렇소이다 전하! 선덕제는 오늘 아침 이래 청하궁에 머물고 있소.]

통천금룡제가 자신있게 말했다.

곤룡포의 중년인은 선황(先皇) 홍희제(洪熙帝)의 첫째 동생되는 인물이며,

스스로 만승지존(萬乘至尊)이 되기를 갈망하는 야심가다.

그는 바로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

[조왕(燕王)과 진왕(秦王)이 실패했다는 소문을 들었네.]

한왕이 신중한 어조로 말했다.

통천금룡제가 비웃음을 띤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분 왕야께서는 의욕만 앞설 뿐 아니라 후원해줄 뒷배도 모자라는 분들이었소. 하지만 전하께서는 경우가 다르지 않소이까?]

통천금룡제의 찬사를 들은 한왕은 자부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하핫... 다르지, 본왕에게는 혈종오패라는 강력한 조력자들이 있으니...]

통천금룡제도 마주 웃었다.

[하하... 왕야께서는 일이 성사된 후라도 혈종(血宗)의 크신 뜻을 저버려서는 아니되실 것이외다.]

[여부가 있겠는가? 그보다... 오늘 일은 확실히 해주셔야 하네.]

한왕이 통천금룡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걱정마시오. 오패의 정예 삼천이 청하궁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오이다. 일각내로... 그 어린놈의 목을 왕야께 갖다 드릴 것이오.]

통천금룡제가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한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만 믿겠네.]

통천금룡제는 웃어 보이며 청죽림의 안쪽을 바라보았다.

울창한 청죽림의 안쪽으로 화려하게 치솟은 용마루가 보였다.

지금 청죽림 전체가 죽음같은 적막으로 싸여 있었다.

[--- !]

문득 통천금룡제의 일갈이 청죽림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웅후한 공력이 실려 있어서 십 리 사방을 뒤흔들었다.

[--- !]

[--- !]

휘리릭---

스스슥---

청죽림에 매복해있던 형종도들이 메뚜기떼처럼 청죽림으로 밀려 들어갔다.

[하하... 함께 가십시오!]

통천금룡제가 자신있는 태도로 웃으며 청죽림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아---]

--- 차차차창!

[와아! 죽여랏!]

조용하던 청죽림이 삽시에 함성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성으로 가득 찼다.

 

---청하궁(靑霞宮).

 

대 부분의 건물이 청죽(靑竹)으로 지어진 별궁이다.

그 때문에 유사시에 방어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중전을 지켜랏!]

[와아!]

백여 명위 자의검수들이 혈종도들을 막아갔다.

그러나 혈종도들의 수는 무려 삼천이다.

자의검수 한명 당 일백명을 상대해야 한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전력 차이다.

[방어망을 축소하랏! 다른 곳은 포기하고 중전만 지켜랏!]

수뇌인 듯한 자의대한이 맹룡같이 신위를 떨치며 자의인들을 지휘했다.

--- 차차차창---

! 콰르르르릉! 콰쾅---

굉렬한 폭음이 폭죽같이 터졌다.

스스스스슥---

자의인들은 질서정연하게 후퇴하여 한 채의 정사(精舍)를 에워쌌다.

방어망을 축소함으로써 효과적인 방어가 가능해졌다.

[저자가 황제다!]

[황제를 베는 자에게는 황금 천만냥을 준다.]

[와아아아---]

콰르르르르---

혈종도들은 정사를 노리고 벌떼같이 일어났다.

자의검수들이 지키고 있는 정사 안에는 두 명의 인물이 앉고 서있었다.

한 명은 황색 곤룡포를 걸친 이십대 초반쯤의 청년이다.

비록 나이는 많지 않지만 곤룡포의 인물에게는 태산의 위엄이 있었다.

그것은 만승지존(萬乘至尊)만이 지닐 수 있는 제왕지기(帝王之氣)였다.

그 청년이 바로 당금의 황제인 선덕제다.

선덕제는 다탁을 앞에 두고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다른 한 명은 자색 장포를 걸친 중년인이다.

자의인은 차를 마시는 선덕제에게 등을 보이는 자세로 서있다.

뒷짐을 진 채 서 있는 자의인은 작은 금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쿠오오!

한데 놀랍게도 자의인의 몸에는 선덕제의 그것을 능가하는 엄청난 제왕지기가 흐르고 있었다.

과연 누기이기에 만승지존을 압도하는 기도를 지닌 것인가?

[...]

젊은 황제 선덕제는 담담한 시선으로 격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것은 자밀위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는 어떤 강한 방패가 있는 듯이 보였다.

[하하하핫...]

돌연 우렁찬 장소성이 들렸다.

그와 함께

--- --- ---

허공으로부터 한 줄기 금영(金影)이 선풍을 휘몰며 정사로 쏘아왔다.

[막아랏!]

[--- !]

--- 이이이잉---

차차차--- !

자밀위대가 다급히 외치며 일제히 장검을 휘둘러 금영을 무찔렀다.

그러나,

[흐흐흐... 금룡제천(金龍制天)!]

--- --- --- ---

금영(金影)이 손에서 벼락치듯이 금광(金光)이 쏟아지고,

[크읏---]

[...]

자밀위대들이 휘청이며 물러섰다.

스스스슥---

촤르르르---

금영은 저밀위대의 저지를 뚫고 정사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자는 물론 통천금룡제였다.

[! ... 저자가...]

[발칙한...]

자밀위대가 다급히 함성을 질렀다.

정사로 날아든 통천금룡제가 금룡신장을 들어 선덕제를 겨눈 것이다.

[핫하! 움직이지 마랏! 선덕제의 목숨이 본좌의 손에 있느니라!]

통천금룡제기 득의하여 외쳤다.

[으으... 저자가...!]

[으드득! 대역무도한 자...!]

자밀위대는 발을 구르면서도 다가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덕제는 여전히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어린놈이 무슨 담이 이리도 큰 것인가?)

통천금룡제는 내심 흠칫하였다.

그때였다.

[그대가 통천금룡제인가?]

선덕제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 그렇다!]

통천금룡제가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며 대답했다.

선덕제의 어조에는 만인을 누르는 위엄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짐에게 무기를 겨눈 것이 어떤 죄인 줄 알고는 있는 것인가?]

선덕제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한 중에 심령을 억누르는 기도가 담겨 있었다.

통천금룡제의 이마에서는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흐흐... 이제 곧 세상이 바뀔 것이거늘... 잔소리가 심하...!]

통천금룡제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 !]

갑자기 벼락치는 듯한 폭갈이 터졌다.

[--- !]

[--- !]

[---!]

그 폭갈은 엄청난 위력이 있었다.

천지가 뒤집히는 듯이 올렸고.

통천금룡제는 울컥 피를 토하며 비틀거렸다.

그래도 혈종오패에 끼인다는 그이건만,

돌연 터진 일성 폭갈에 내장이 뒤집혀 버린 것이다.

[...! ... 당신은...?]

통천금룡제는 공포에 질려 옆을 돌아보았다.

뒷짐을 짚은 채 등을 보이고 있던 자의이 돌아서 있었다.

두 눈을 부릅 뜬 자의인의 일신에서는 어마어마한 기도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

통천금룡제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에 부들부들 떨고 말았다.

자의인에게서는 실로 가공할 위압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강호의 필부가 감히 황실을 넘보다니...]

자의인이 벼락이 치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

통천금룡제는 부들부들 떨며 뒷걸음질 쳤다.

[! 이리 오랏!]

자의인이 장권 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싸움은 멈추어진 상태였고,

양측의 인물들은 모두 자의인의 기도에 눌려 버리고 말았다.

[...!]

그들은 일제히 자의인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으으...!]

그곳에는 청죽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중년인이 있었다.

화려한 곤룡포를 걸친 그자는 바로 한왕이었다.

(... 한왕을 너라고 하다니... 이자는 도대체...!)

통천금룡제는 비오 듯이 식은땀을 흘렸다.

자의인이 풍기는 기도는 실로 가공한 것이었다.

그때였다.

[... 태상존황(太上尊皇)이시여! ... 용서를...!]

--- !

한왕이 부들부들 떨며 털썩 주저앉았다.

[... 태상존황!]

통천금룡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의 뇌리로 무서운 전설이 떠오른 것이다.

 

<태상존황(太上尊皇)>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황실을 지킨다는 전설 속의 인물이다.

설령 황제라 해도 태상존황에게 상석을 양보한다고 한다.

이유는 그가 바로 전전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의 결의형제이기 때문이다.

평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황실에 분온한 기운이 감지되면 어디선가 나타난다.

일단 나타나면 그는 황실의 누구라도 변할 수 있는 생사여탈권을 지니는 것이다.

[주고후! 네가 네 죄를 알건데 어찌 스스로 벌하지 않는 것인?]

태상존황이라 불린 자의인이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 태상존황이시여... ... 용서를... 소질이... 어리석어서 간특한 자들의 꾀에 넘어갔나이다!]

한왕은 이제 이마를 바닥에 대며 덜덜 떨고 있다.

그는 태산존황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부황 영락제조차 태상존황을 형님으로 모시며 경외했었다.

들리는 말로는 홍무제 주원장이 제업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태상존황의 도움 덕분이라고 한다.

태상존황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한왕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다만 태상존황은 지난 이십여 년 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태상존황이 지금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

만일 태상존황이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한왕은 감히 역심을 품지 못했을 것이다.

헌데 통천금룡제를 따라 청하궁에 쳐들어온 직후 한왕은 공포에 휩싸였다.

태상존황이 조카 선덕제와 함께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 죽었다!)

태상존황의 존재를 알아본 한왕은 공포와 절망에 휩싸였다.

그의 당당하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다.

[휴우...]

그 모습을 보며 선덕제가 괴롭게 신음했다.

선덕제는 태상존황을 올려다보았다.

[황백(皇伯), 이숙(二淑)을 한번 용서해주심이 어떻겠습니까?]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공손하였다.

(아무리 태상존황이라도 황제의 말이라면 따르겠지.)

통천금룡제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황상께서는 마음이 모질어야할 때가 있음을 아니되네!]

자의인, 태상존황이 준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틀렸다. 황제도 움직일 수 없는 인물이다.)

통천금룡제가 사색이 되었다.

그때였다.

[으아...!]

한왕이 벌떡 일어나 쏜살같이 청죽림 밖으로 달아났다.

[본좌 앞에서 달아나겠다?]

태상존황이 엄한 소리로 일갈하였다.

다음 순간,

--- --- !

--- 아아악!

돌연 일섬 강기의 무더기가 낙뢰같이 흘렀다.

태상존황은 전혀 몸을 움직인 흔적도 없었거늘 강기가 떨쳐진 것이다.

[... 이심제기(以心制氣)!]

그 모습에 통천금룡제는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

그와 함께, 처절한 비명이 일며 달아나던 한왕의 목이 댕강 잘려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

--- 이익!

한왕의 끔찍한 최후를 접한 통천금룡제는 비명을 지르며 정사에서 날아나갔다.

일시에 그자의 몸이 오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태상존황은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헌데 통천금룡제가 막 청죽림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였다.

[어디로 가느냐?]

벼락치는 듯한 교갈이 터졌다.

[!]

--- -- 애액!

-- 츠츠-- 츠츠츳!

기겁하는 통천금룡제의 면전으로 수십 마리 옥접(玉蝶)의 형상이 쇄도하였다.

[... 옥접화운수(玉蝶花雲手)!]

통천금룡제는 질겁하며 금룡신장을 마주 쳐냈다.

--- -- 쿠쿵!

콰르르르---!

[---!]

굉음 속에서 통천금룡제는 휘청하며 떨어졌다.

[대역죄를 범하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날카로운 교성과 함께 통천금룡제의 앞으로 절색의 궁장미인이 날아내렸다.

[... 홍하공주(紅霞公主)?]

통천금룡제는 신음하며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고금(古琴)을 한손에 든 자의궁장미인!

그 여인은 바로 주하령(朱霞靈)이었다.

[! 누워랏!]

--- 자자자작!

-- -- 이이잉!

홍하공주 주하령이 일갈하며 재차 교수를 떨쳤다.

옥주(玉柱)같이 고형화된 강기가 벼락치듯이 통천금룡제에게 쏟아졌다.

[옥접존후신강(玉蝶尊后神罡)...!]

통천금룡제는 경악성울 터뜨렸다.

--- 이이잉!

쿠르르르--- 르릉!

그의 금룡신장에서도 지체없이 금룡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쿠쿠--- --- 쿠쿵!

--- 르르르---

[--- 아악!]

--- !

옥색과 금색의 강기가 부딪히는 순간 통천금룡제는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공력과 무공이 지닌바 양면에서 모두 홍하공주 주하령의 상대가 되지못한 것이다.

[일어나랏! 한 명도 놓치지 말아랏!]

이어 홍하공주 주하령이 청죽림을 향해 교갈을 쳤다.

다음 순간,

[--- !]

[으하하! 감히 폐하를 노리다니...!]

! --- 르르르!

--- 콰콰쾅!

청죽림의 지면으로부터 수천의 인영이 치솟아 올랐다.

그들은 하나같이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 된 절정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청죽림의 지면에 은신한 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함정에 빠졌다!]

[... 달아나자!]

괴수를 잃는 혈종도들은 우왕좌왕하였다.

[--- !]

[으하하하!]

--- 차차창!

콰르르르르---!

그런 혈종도들은 자의검수들을 볏짚단을 쓰러뜨리듯이 베어 넘겼다.

[--- 아악!]

[--- !]

[... 이렇게 당하다니...!]

혈종도들은 저항도 변변히 해보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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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三 章

 

                     秦淮河에 부는 바람

 

 

 

누각(樓閣).

--- --- !

맑은 금음(琴音)이 누각의 열려진 창문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누각 안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규방이었다.

누각 안에는 삼인(三人)이 있었다.

일남이녀(一男二女).

능천한과 금벽라, 그리고 홍예선희가 그들이었다.

능천한은 금벽라의 무릎을 베고 누워 선잠이 들어 있었다.

[귀여운 분...!]

금벽라는 푸근한 미소를 띈채 자기 무릎을 베고 잠이 든 정랑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섬섬옥수로 능천한의 넓은 이마를 쓰다듬었다.

선잠이 든 능천한.

그는 지금은 천하고수(天下高手)가 아니다.

다만 여인들의 애정을 받아들이는 일개 정인에 불과했다.

--- --- !

능천한과 금벽라의 앞에서 홍예선희가 조용히 칠현금(七絃琴)을 탄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탄주 솜씨는 천하일절이다.

그저 금음만으로도 편안하고 그윽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상공께서는... 언니만 옆에 계시면 아기같이 잘도 주무시는군요.]

탄주를 하며 홍예선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이분은 내가 오기만 하면 어린 아기가 되시는 분이니...]

금벽라는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때의 금벽라의 모습은 너무도 온화하고 푸근해보였다.

(사실은... 지난밤에 이 계집에게 몰두하셔서 한숨도 못 주무신 탓이기도 하지.)

금벽라의 볼에 살짝 홍조가 돌았다.

능천한은 몇 번이고 그녀를 요구했었고,

그녀도 거침없이 능천한의 사랑을 갈구했었던 것이다.

[새벽녘에... 이상한 꿈을 꾸었단다.]

금벽라가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능천한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꿈을...?]

홍예선희는 금을 내려놓으며 금벽라를 보았다.

금벽라의 두 볼이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어렴풋이 잠이 들자마자 천지가 새카매지고 뇌성벽력이 치는 꿈을 꾸지 않았겠니?]

[...!]

금벽라는 몽롱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암천(暗天)이 쩍 갈라지며 거대한 금룡(金龍)이 나타나 벼락 치듯이 내 속으로 들어왔어. 그 거대한 몸이 어떻게 내 속에 들어왔을까 하고 질겁하며 깨어보니 꿈이었단다.]

[언니...!]

꿈 이야기를 들은 홍예선희의 봉목이 밝게 빛났다.

그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보기엔... 그 꿈... 태몽(胎夢)같아요...]

[... 태몽!]

금벽라는 화들짝 놀랐다.

[설마...!]

언뜻 이렇게 말을 이었으나 금벽라의 가슴은 물방아 돌아가듯이 쿵쾅거렸다.

(그럴지도... 그럴지도 몰라...)

금벽라의 안색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 꿈이 정말 태몽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금벽라의 흥분에 휩싸여 풍만한 젖무덤을 지그시 눌렀다.

[호호... 축하해요. 언니... 저는 언니가 부러워 죽겠어요!]

홍예선희가 맑게 웃으며 금벽라의 손을 꼭 쥐었다.

[아직... 모르는 일인데... 축하라니...!]

금벽라가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누각 밖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금벽라는 방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방문이 열렸다.

이어 늘씬한 흑의미녀 흑단(黑丹)이 두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흑단은 그 이지적인 미모와 늘씬한 몸매로 만화원에서 홍예선희 다음으로 서열이 올라 있는 기녀였다.

그녀가 데리고 들어온 인물들은 일남일녀(一男一女)였다.

사내는 더부룩한 수염을 기른 녹포(綠布)의 중년인이었고,

여인은 환몽천후(幻夢天后)였다.

[...!]

녹포장한은 멈칫하였다.

능천한이 금벽라의 허벅지를 베고 고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천봉(天鳳)... 어서 오너라. 아우님이 주무시니 잠시 앉아 기다려라.]

금벽라가 조용히 말했다.

천봉이라니...

녹림천봉(綠林天鳳)!

그렇다.

녹포인은 바로 녹림천봉 진예빈이 변용한 모습이었다.

지금의 모습은 진예빈이 녹림대제(綠林大帝)를 대신하여 녹림을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이름하여,

 

---녹림천신(綠林天神),

 

녹림천신의 모습이 바로 지금 진예빈의 모습인 것이다.

녹림천봉 진예빈은 조심스레 한쪽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

이어 그녀는 조심스레 한 장의 정교한 인피면구를 얼굴에서 떼어내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선을 지닌 아름다운 얼굴이 면구 밑에서 나타났다.

(녹림까지 손에 넣으시다니... 상공께서는 도대체...)

홍예선희는 논란 표정으로 진예빈과 능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금벽라가 조용한 어조로 물었다.

금녀의 교수는 여전히 능천한의 시원한 이마를 쓰다듬고 있었다.

[금릉(金陵)으로...!]

진예빈이 시선을 능천한의 잠든 얼굴로 던지며 말했다.

[선덕제께서 미행을 나오셨습니다.]

[선덕제께서 미행을...?]

금벽라의 이마가 흠칫 떨렸다.

[금릉에는 이황숙(二皇叔), 황숙들 중에서도 야심이 가장 큰 한왕(漢王)이 있거늘... 이황숙이 당신을 노리고 있음을 잘 아실 터인데...]

금벽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혼자 오시지는 않으셨을 것이고...]

금벽라는 진예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진예빈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자밀위대(紫密衛隊) 삼백이 암중에 황상을 호위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삼백(三百)의 자밀위대라...]

금벽라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자밀위대!

 

황실의 절정 고수들로 이루어진 시위대다.

개개인의 무공이 화신지경에 이른 자들로서 삼백(三百)이라 해도 구대문파 중 한두 문파의 전력을 능가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서의 화살 앞에는 천명 만명의 시위라도 무력한 법,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같은 좋지 않은 시기에 어보(御步)를 옮기셨단 말인가?)

금벽라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천자(天子),

 

그 지위는 무림 뿐 아니라 억조창생의 생사가 걸린 무상지위다.

금벽라의 근심이 크지 않을 수 없다.

[... 무림이... 혈란 속에 있거늘 황실마저 어수선하다니...]

금벽라는 한숨을 쉬었다.

[하여... 어찌 해야 하올지요? 저희 힘으로라도 황상을 지켜드려야 할지 어떨지...]

진예빈이 물었다.

[급사이니... 자부에 있는 영라에게는 연락을 못했겠지?]

금벽라가 진예빈을 바라보았다.

[신응(神鷹)을 날려 보내기는 했으나... 저녁 늦게야 돌아 올 것입니다.]

[별도리 없구나. 녹림백팔무영대(綠林百八無影隊)와 정검신영대(正劍神影隊) 삼백으로 폐하 주위를 막고 신주오기와 취존개 태상호법(太上護法)을 급히 금릉으로 소환하거라!]

[...!]

[...!]

금벽라의 지시를 들으며 홍예선희와 흑단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암중에서... 사해정검맹은 엄청난 속도로 커가고 있었구나. 어쩌면 혈종은 큰난관에 부딪히겠는걸...)

홍예선희의 봉목이 맑게 빛났다.

그리고,

[분부... 거행하겠사옵니다.]

진예빈이 금벽라에게 절을 하며 일어섰다.

그때였다.

[예빈! 그럴 필요없다.]

한소리 담담한 목소리가 진예빈의 교구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언제인가 금벽라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능천한이 눈을 뜨고 있었다.

[,,,,, 지존!]

--- !

진예빈은 능천한을 향하여 오체복지하였다.

능천한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황상을... 호위해드릴 필요없다!]

능천한이 정좌를 하며 말했다.

[아우님... 무슨 말씀이신지...!]

금벽라가 의아해하며 시선을 모았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에게 손짓을 하며 입을 열었다.

[선덕제께서는 영민한 분, 이번 금릉미행에는 큰 뜻이 있을 것이외다.]

[큰 뜻?]

여인들은 이해를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하하! 환몽은 갈수록 아름다워 지는구려!]

여인들이 의아해하는데 능천한은 다가온 환몽천후를 덮썩 안아 무릎에 앉혔다.

[...!]

[...!]

여인들은 살짝 옥용을 붉혔다.

능천한의 손이 환몽천후의 저고리 속으로 들어가 환몽천후의 풍만한 유방을 만지작거렸다.

[황상께서는... 한 분의 강력한 조력자의 힘을 빌어 모든 환난을 일거에 제거하실 작정이실 것이오!]

[으음...!]

금벽라의 안색이 흔들렸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황상께서... 그 존체를 미끼로 던지셨단 말씀이십니까?]

금벽라가 신음하며 물었다.

능천한은 환몽천후의 유방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황상께서 점차 성장해 가시는 초조한 자들이 있으니... 이번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흑()과 백()이 명백히 구분될 것입니다.]

[으음...!]

[만승지존의 모으로 미끼가 되시다니...!]

여인들은 아연하여 신음을 흘렸다.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안은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덕제께서는 과연... 만승지존이 되시기에 충분한 분이다.)

본능적이랄까?

능천한의 뇌리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은...

(황백(皇伯)... 황제의 백부라는 그 자의인(紫衣人)... 필시...)

황백이라는 신비인물,

능천한은 그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X X X

 

청죽림(靑竹林).

진회하 연안을 격한 넓은 분지다.

이곳은 금릉특유의 청죽(靑竹)으로 가득 차 있는 절경이고,

청죽림에는 황실의 별궁(別宮)인 청하궁(靑霞宮)이 있다.

신시말(申時末),

스스스스...

가을을 당하여 진회하면서 갈대들이 하얀 머리를 풀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하하... 좋은 풍광이 아닌가?]

갈밭을 거닐며 호탕하게 웃는 청년이 있었다.

수려한 용모에 백삼을 걸친 청년이었다.

그 영준함도 영준함이지만,

청년의 초탈한 일신에서는 범접키 힘든 기도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청년...

그가 서 있는 곳은 아무리 너른 곳이라고 그의 기도로 가득 차는 것이다.

[...!]

청년의 뒤,

분홍궁장여인이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면사를 하여 용모는 알 수 없으나,

분홍궁장에 싸인 교구에서는 가히 폭발적이라 해야 옳을 매력이 발산되어 지고 있었다.

궁장여인은 가슴에 길죽한 피낭(皮囊)을 안고 있었다.

다섯 자 길이의 교룡피로 만든 가죽주머니였다.

[환몽! 이같은 풍광을 봄도 실로 오랜만이겠구려!]

청년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여인을 돌아보았다.

청년은 능천한이었고, 면사여인은 환몽천후였다.]

[하하... 이리 오시오!]

능천한은 껄껄 웃으며 환몽천후의 섬섬옥수를 쥐었다.

[...!]

환몽천후는 부끄러운 듯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능천한에게 섬섬옥수를 맡겼다.

영혼이 없는 여인,

그러나 영혼 이전에 여인이기에 지니는 본능(本能)이 있는 탓일까?

스스스스슥!

사가가각! 사삭--- 사각!

갈대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여러 가지 소성이 일었다.

문득,

--- --- 디딩!

그 갈대의 소리사이로 물이 흐르는 듯한 금음(琴音)이 일었다.

[훌륭하군. 홍예에 못지않은 솜씨인걸!]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히 빛내며 귀를 기울였다.

금음에 뛰어난 명인의 혼이 깃들어 있음을 느낀 것이다.

[환몽! 가봅시다!]

[...!]

스스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를 이끌고 구름이 흐르듯이 앞으로 나아갔다.

 

두 사람은 삽시에 십여 마장 밖에 이르렀다.

[...!]

능천한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진회하(秦淮河) 변의 울창한 버드나무숲이었다.

능천한은 버드나무가 휘휘 늘어진 사이로 시선을 보냈다.

버드나무가 빙 둘러선 사이,

화려한 향차가 한대 서 있고, 그 옆에 사방이 트인 천막이 쳐져 있었다.

천막주위에는 궁녀(宮女) 차림의 시녀들이 네명 둘러 서 있으며,

천막 안에는 한 명의 자의미인이 그림같이 앉아 고금(古琴)을 뜯고 있었다.

그 미인을 바라보며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한 폭의 미녀도(美女圖)를 보는 듯하군.)

미인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감탄의 기색이 흘렀다.

기품(氣品).

미인에게는 천성적으로 몸에 배인 고귀한 기품이 있었다.

그 기품은 범사한 아녀자들이 꾸며낼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문득,

--- !

금음이 높고 맑은 소리를 내다가 뚝 끊겼다.

--- !

그와 함께,

한 쌍의 너무도 강렬한 시선이 능천한에게 쏘아져 왔다.

여인의 시선이지만 범인이라면 오금이 저릴 위엄이 담긴...

(무공을 지녔군. 황실의 여인으로 보이거늘...!)

능천한은 내심 의외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때서야 시녀들은 능천한을 발견하고 안색이 홱 변했다.

[무엄하구나. 어느 분의 안전인데 눈을 바로 뜨느냐?]

시녀 중 한 명이 날카로운 교성을 질렀다.

[그만 두거라!]

자의미인은 그런 시녀에게 조용한 어조로 말하며 손을 저었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능천한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결례를 용서하오. 소저의 탄주가 너무 훌륭하여 발길이 이끌렸소이다.]

능천한은 정중히 포권을 하였다.

[부끄러운 솜씨로 귀공의 귀나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다행이겠사옵니다.]

자의미인이 훈훈하게 웃으며 답례를 하였다.

[부인과 잠시 오시지요. ()를 대접하고 싶사옵니다.]

자의미인이 능천한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맙소이다!]

능천한은 대답을 하고 자의미인이 있는 천막으로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시녀들은 움찔하며 공손하게 물러섰다.

(범상한 분이 아니다.)

그제야 능천한의 모습에서 비범함을 발견한 때문이다.

[고맙소이다.]

능천한은 천막 안으로 들어서 자리에 앉았다.

[존함이...!]

자의미녀가 조용히 물었다.

[능천한이외다. 황산(黃山)에서 왔소이다!]

[능천한... 능공자셨군요!]

자의미녀의 봉목에 산뜻한 이채가 지나갔다.

[소생을 아시는지...?]

능천한이 담담하게 묻자 자의미인은 함초롬히 미소를 지었다.

[호호, 패천지존 능대공자님을 뉘라서 모르겠습니까?]

[패천지존이라... 감당키 어렵소이다.]

[호호, 겸양이시옵니다. 소녀는 주하령(朱霞靈)이라 하옵니다.]

여인의 말을 들으며 능천한은 여인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씨라면 황족(皇族)이겠군. 황족이 아니면 이같은 기품을 지니기 어려우니...)

(과연... 황백의 말씀과 부합하는 영걸이다. 향후 백년무림이 이분의 손아래 있겠다.)

능천한과 주하령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우러졌다.

잠시 두 남녀는 서로의 깊이 감추어진 비범함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난세는... 큰 영웅의 탄생을 위하여 있다함이 틀리지 않음을 공자님을 뵙고 실감하겠사옵니다.]

[하하! 과찬 과찬이십니다!]

능천한이 껄걸 웃을 때였다.

--- --- !

멀리서 한 줄기 날카로운 호각성이 일었다.

[...!]

호각성을 들은 주하령의 교구가 움찔하였다.

(저곳은 청하궁이 있는 청죽림...!)

능천한은 눈을 들어 호각성이 들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을 청죽이 우거진 분지였다.

[실례를 하여야겠사옵니다!]

주하령이 고금(古琴)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생에 대해서는 심려마십시요!]

능천한도 같이 일어섰다.

[다시 뵈올 수 있기를...]

주하령은 유심히 능천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봉목은 기이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이어,

--- 스스슥!

옥보(玉步)를 한 걸음 떼어 놓았다고 여긴 순간,

주하령은 오십 장 밖에 이르러 있었다.

--- !

--- 르르르!

스스스스--- !

동시에 네 명의 시녀도 제비가 날듯이 몸을 뽑아올려 주하령의 뒤를 따랐다.

[옥접화영신보(玉摺花影神步)... 옥접지존(玉蝶至尊)의 후인인가?]

능천한은 날아가는 주하령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옥접지존!

 

홍무제 주원장을 도와 명조 건국에는 큰 몫을 했던 황실고수다.

그는 여인으로 황실사상 최강의 여고수(女高手)로 꼽힌다.

[환몽... 드디어 역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오. 가봅시다.]

능천한은 환몽의 교수를 꼭 쥐며 걸음을 옮겼다.

--- 스슥!

그의 신형도 일시에 백 장 밖으로 움직여졌다.

스스슥! 휘르르르르!

능천한과 환몽천후는 표표히 허공을 갈랐다.

문득,

[--- 아악!]

처절한 신음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호호호호...!]

극히 요요로운 웃음소리가 그뒤를 이었다.

[천향염후!]

그 웃음소리에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천향염후가 이곳에 나타나다니...!]

스스스슥!

--- 이이이잉!

능천한은 허공에서 벼락같이 몸을 비틀어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날아갔다.

[크으... ... 네년이... 바로...!]

고통스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스스스스--- !

능천한은 까마득히 치솟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갈밭의 일각이 풍지박살이 나 있었고,

그 안에 이인(二人)이 있었다.

한 명의 여인과 사악하게 생긴 회포노인이 그들이었다.

여인.

벌거벗다시피한 여인은 능천한도 아는 영니이다.

기묘한 체향을 갈밭 가득히 뿌리는 절세미녀...

바로 천향염후였다.

그리고,

[으으...!]

피범벅이 되어 꿈틀거리는 회포노인...

그자는 가슴이 으스러지고 복부가 찢어져 창자가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중상을 입었다.

[... 천검미후(天劍美后)... 네년이 죽지 않았다니...!]

회포노인이 피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뇌까렸다.

(천검미후 나서련! 천향염후가 바로 그녀...!)

장중을 내려다보던 능천한의 눈빛이 일변하였다.

[호호호호! 역천사황(逆天邪皇)! 천검성 일천원혼의 한을 갚겠다!]

천향염후의 교수에서 폭풍이 일었다.

[사황뇌격(邪皇雷擊)!]

파츠츠츠츠---!

회포노인은 발악하듯이 핏빛강기를 떨쳐 내었다.

그러나 회포노인, 쌍황(雙皇)에 든다는 역천사황이건만 천향염후의 적수가 아니었다.

콰쾅!

[--- --- !]

피와 살 조각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역천사황의 몸뚱이가 벼락에 맞은 듯이 산산이 부수어져 날아갔다.

 

---역천사황.

 

쌍황의 일인에 들던 그의 최후치고는 너무도 허무한 종말이었다.

--- 스슥!

능천한은 환몽천후와 함께 천향염후의 뒤로 날아내렸다.

[...!]

천향염후는 능천한에게 시선도 돌리지 않고,

망연히 서서 갈가리 찌긴 역천사화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울고 있구나.)

능천한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천향염후,

그 희대의 요녀의 양볼로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천향염후가 애처로워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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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二 章

 

                 夫婦

 

 

스스스슥!

폭풍대공이 장권 밖으로 물러나자 펄인(八人)이 철혈묵사를 둘러쌌다.

[...!]

철혈묵사는 침중한 안색으로 팔인을 돌아보았다.

 

---폭풍팔존(暴風八尊).

 

폭풍보 최정예 고수들이다.

개개인이 발군의 고수일 뿐 아니라 그들의 연수합격술은 통천가공하다.

이름하여,

 

---폭풍사멸대진(暴風死滅大陣).

 

폭풍대공이 만들었으나,

그 자신도 감당 못한다는 절정의 합격술이 이것이다.

--- 우우우우웅!

폭풍팔존의 신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우르르르---!

---르르르릉!

그들의 몸에서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릴 듯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폭풍이...

[...]

철혈묵사 정천학.

그는 철탑이 된듯이 폭풍의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철혈묵사! 용서해라! 다른 삼패에게 징계의 표시라도 그대로 벌하지 않을 수 없다.]

진세 밖에서 폭풍대공이 무겁게 말했다.

콰르르르르릉!

--- 우우우웅!

만근의 거석이라도 날려버릴 정도로 폭풍사멸대진의 진세가 강렬해졌다.

우지--- 지직!

--- 지끈! --- !

주위의 거목들이 견디지 못하고 성냥개비 꺾어지듯 뚝뚝 부러져 나갔다.

[...!]

그와 함께,

진중의 철혈묵사의 신형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안색도 막강한 잠력에 눌려 벌겋게 달아올랐다.

(사용할 것인가...? 사용하게 되면... 반드시 폭풍대공마저 쓰러뜨려야 하는데...)

철혈묵사의 철안으로 번민의 빛이 떠올랐다.

그의 우수는 옆구리에 이르러 머뭇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을 사용한다는 것일까?

(사용해야겠다. 그것이 아니면 폭풍진세를 뚫을 수 없으니...)

철혈묵사는 지그시 입술을 물었다.

그는 자신의 검은 허리띠를 꽉 움켜쥐었다.

바로 그때였다.

[겁멸파황(劫滅破荒)!]

우렁찬 함성이 터지고,

--- 이이이잉!

파츠츠츠츠---!

허공일각에서 벼락 치듯 새파란 륜영(輪影)이 쏟아져 내렸다.

그 모습을 본 폭풍대공의 안색이 일변했다.

[패천신륜! 조심하랏!]

폭풍대공이 버럭 경호성을 질렀다.

--- 자자자자장!

쿠쿠쿠--- 쿠쿵---!

패천신륜은 여지없이 폭풍사멸대진을 꿰뚫고 들어갔다.

--- 파팟!

--- 가가각!

[크으윽!]

[--- 으음!]

단번에 진세의 일각이 무너지며 삼인의 폭풍존이 주저앉았다.

그 순간,

[철혈등룡류(鐵血騰龍流)!]

--- --- !

츠츠츠츠--- !

철혈묵사가 벼락같이 쌍장을 쪼개어 내었다.

노도같은 묵강(墨罡)!

--- 콰쾅!

[--- 으윽!]

[...!]

재치 삼인이 뒤로 벌렁 넘어졌다.

[패천지존! 감히 방해를 하다니!]

콰르르--- !

폭풍대공이 벼락같이 외치며 막 패천신륜을 거두어 들이는 능천한을 무찔러갔다.

[물러서랏!]

--- 쿠쿵!

그 즉시 능천한의 우정에서도 노도가 일었다.

가볍게 휘저은 일장이나 그것데는 족히 오륙백 년 수위의 공력이 담겨 있었다.

--- --- --- !

쿠르르르---!

두 줄기 거창한 경력이 충돌하며 만근 화약이 터지는 듯한 폭음이 일었다.

[형님! 가십시다!]

[현제 고맙네!]

--- --- !

화르르르--- 르르르!

모래 바람이 뭉게구름같이 이는 중에 흑영과 백영이 야공을 가르며 흘렀다.

[으음...!]

그리고 모래 바람 속에서도 묵직한 침음성이 흘렀다.

[패천지존... 패공산(沛空山)에서 죽었어야 했거늘...!]

사진을 뚫고 나오며 폭풍대공이 아주 싸늘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의 두 눈이 더할 수 없이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패공산...!

능천한이 제갈영라를 구하기 위하여 혈종과 충돌한 곳이 아닌가?

그곳을 폭풍대공이 어찌 입에 올리는가?

더군다나 마치 패공산에서 능천한을 격살할 기회가 있었는 듯이 말하다니...

과연 폭풍대공은 어떤 인물인가?

 

***

 

[자네를 볼 면목이 없군!]

산봉 위,

능천한과 마주 앉은 철혈묵사가 무겁게 말했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오히려 혈종에서 발을 빼신 형님께 치하를 드리고 앂습니다!]

능천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때는 밤이 깊어 삼경이 지나고 있었다.

--- !

철혈묵사가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이만 혜어져야겠네. 다음에 만나게 되면... 술이나 한잔하세!]

[하하! 좋습니다.]

능천한도 껄껄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문득 철혈묵사의 시선이 천극에 이르렀다.

[천극에는 사연이 있지. 그 비밀을 푸는 자는 곧 고금제일인이 된다고 하던가?]

능천한은 짚고 있는 천극을 내려다보았다.

[잘 지니게. 앞으로 천극이 큰 소용이 있을 터이니...!]

이어 철혈묵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천하를 뒤집어 놓을 일이 내일 중으로 금릉에서 일어날 것이니... 금릉은 떠나지 말게!]

[천하를 뒤집어 놓을 일?]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혈종오패가 금릉주위로 몰린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큰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능천한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현제에게 많은 동조자가 있으니... 곧 알게 될 것이네. 자 이만 가네!]

철혈묵사가 걸음을 옮겼다.

[살펴가십시오. 곧 다시 뵙겠습니다.]

능천한은 철혈묵사에게 포권을 했다.

스스스슥---!

철혈묵사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삽시에 그의 모습은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마음에 드는 분이다.)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사라지는 철혈묵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

능천한은 철혈묵사가 사라진 반대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두 줄기의 왜소한 인영이 구름이 흐르듯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인 것이다.

그 두 왜영의 경공은 실로 경인 실색할 정도였다.

[누님과... 환몽이군!]

능천한의 입가에 따스한 미소가 감돌았다.

달려오고 있는 인영들,

 

광양존후(廣陽尊后) 금벽라.

환몽천후(幻夢天后).

 

바로 그녀들이었던 것이다.

스스--- 스슥!

--- 이이이이잉!

두 여인은 일순지간에 능천한이 서 있는 산봉까지 이르렀다.

[아우님...!]

광양존후 금벽라의 기품있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감돌았다.

[누님...!]

능천한도 마주 미소를 지었다.

[뵙고... 싶었어요!]

금벽라는 촉촉히 젖은 눈길로 능천한에게 다가왔다.

[소제도... 누님이 그리웠습니다.]

말을 하며 능천한은 금벽라의 풍만한 몸을 꼬옥 끌어안았다.

뭉클하며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동체가 두팔 가득하게 느껴졌다.

[아우님...!]

금벽라는 양볼을 도홧빛으로 물들이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

이지가 없는 환몽천후는 의미없는 미소를 띄우며 능천한과 금벽라를 바라보았다.

 

***

 

사르르르륵!

껍질이 벗겨지듯 한 겹 나삼이 벗겨져 나갔다.

그러자 흐릿한 황촉 밑으로 드러나는 너무도 뽀얗고 풍염한 육체...

[누님...!]

능천한은 사랑과 욕정으로 뜨거워진 손을 놀렸다.

[...!]

눈을 꼭 감고...

오직 정랑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황후의 기품을 지닌 미부(美婦) 금벽라...

금벽라는 정랑의 손에 의해 발가숭이가 되어가며 몸을 떨었다.

이곳은 만화원의 가장 깊은 곳의 침실이다.

본래는 홍예선희의 침실이었다.

하지만 지근은 능천한과 금벽라 부부가 차지한 것이다.

(석달의 기다림은... 너무도 길었사옵니다.)

꼭 감긴 금벽라의 긴 속눈썹이 흔들린다.

익을대로 익은 삼십대의 여체.

부부의 쾌락을 모른다면 모르되 막 그 기쁨을 안고 석달을 독수공방해야 했다.

그것은 실로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밤마다 그녀는 정랑의 그 뜨겁던 사랑을 회상하며 달아오르는 육체를 스스로 달래야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정랑의 사랑이 자신의 육신에 쏟아지려는 것이다.

--- !

그녀의 비궁을 가린 고의가 떨어지고 너무도 무성한 방초의 계곡이 드러났다.

[누님...!]

능천한은 바짝 달아올랐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뜨거운 몸을 금벽라의 나신 위에 포갰다.

육중한 중압감...

[으음...!]

야릇한 기대감에 금벽라는 전율하였다.

전율하기는 능천한도 마찬가지다.

금벽라의 몸은 다른 여인들과 다르다.

고향같다고나 할까?

너무도 강렬한 모정과 향수가 거기 있고,

꿈결인 듯 따스함과 푸근함이 가득한 육체였다.

[아아아... 아우님... 아아...!]

[누님... 흐음...!]

펄렁인다.

조용히 퍼지는 열정의 파랑에 황촉이 펄렁인다.

[아아아...!]

능천한의 강렬하고 뜨거운 사랑을 받아들이며 금벽라는 몸부림쳤다.

그를 오나벽히 소유한 희열과 녹아드는 듯이 번져나가는 희열에...

금벽라는 능천한을 따스함으로 휘감아 소유하고,

능천한은 끝이 없는 듯한 금벽라의 심신 속에 자신을 묻었다.

[아아... 아우님... 아우님... 아아...!]

금벽라...

그 정숙한 여체가 점차 뜨거운 탕부의 몸짓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뼈가 없는 연체동물인 듯이 휘감고 흔들며 비틀리는 나신...

[헉헉... 누님... 누님... 누님...]

[... 상공... 상공... ... 으윽... 아아아... 아흐윽...!]

열풍은 철벽이라도 녹일 듯이 뜨거워져 갔다.

오랫동안 불붙기를 기다려온 부부지정(夫婦之情)이 격렬하게 불타오르는 것이다.

[아아아... ... ... ...!]

금벽라의 죽어갈 듯이 잦아드는 교성이 밤을 지샜다.

몇 번인지 빈사지경에 이르면서도...

그 교성은 끊일 줄을 몰랐다.

 

X X X

 

밀실(密室).

[...!]

[...!]

백 명이상의 인원이 모여 있음에도 숨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정확히 백일명(百一名)의 여인들,

하나같이 꽃이 부끄러워할 미인들이다.

한데 그 꽃보다도 아름다운 미인들의 옥용에는 무심한 냉기가 흐르고 있다.

그것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살수들만이 지닐 수 있는 것이고...

상좌(上坐).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미인이 태사의에 앉아있다.

모든 여인들의 시선은 그 홍의여인을 향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후로 나는 그분을 따르기로 했다.]

문득 홍의여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밀실을 울렸다.

말을 한 홍의여인의 얼굴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그대들 여러 자매들이 나를 따르든지 말든지는... 그대들의... 자유다!]

홍의여인의 태사의에 교구를 깊이 묻었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교주(敎主)!]

이윽고 전열에 나란히 앉아있던 흑의, 백의, 남의를 입은 미녀들이 일어섰다.

아마도 여인들 중 최공의 배분을 지닌 여인들 같았다.

[교주께서는 더 이상 살수(煞手)가 아니에요.]

흑의의 늘씬한 미인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이에 홍의미인은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흑단(黑丹)! 네 말이 맞다. 감정을 가져서는 아니되는 살수된 자로,,,, 애정(愛情)의 감정을 키우고 있었으니... 나는 더 이상 살수가 아니지...]

홍의미인의 말을 백의미인이 받았다.

[우리 필살일백령(必煞一百靈)은 생사를 교주언니와 함께 하기로 피로 맹세했어요. 언니가 가는 길이 어디든... 우리는 따를 것이에요!]

홍의미인의 옥용에 흔들림이 일었다.

그것은 고통과 기쁨이 함께 있는 그런 떨림이었다.

[나는... 교주(敎主)가 되어... 자매들을 고생만 시키는구나...!]

[호호... 고생이란 말씀은 마세요.]

가장 어려보이는 남의미녀가 교소를 지었다.

여인들 중에서 그래도 그녀가 가장 따뜻해 보였다.

[언니의 행복이 곧 저희의 행복이에요. ... 그분의 사랑을 얻으셔서 행복해지셔야 해요.]

홍의미녀의 두 눈이 눈물로 글썽글썽해졌다.

[고마워... 그분께 큰 죄를 지어 죽음으로 속죄해도 모자르나... 무슨 짓을 해서든지 그분의 계집이 되겠어![

그녀의 말에 모여 앉은 여인들의 차갑던 옥용에 한 가닥 훈훈함이 감돌았다.

[호호... 평생 살수로 늙어 죽을 줄 알았는데... 잘하면 남연(藍燕)도 시집을 갈 기회가 오겠어요.]

남의소녀가 명랑하게 웃었다.

남의소녀는 장난삼아 해본 소리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백여 명의 얼어붙었던 방심(芳心)에 한 가닥 두근거림을 심어주게 되었다.

여인...

결국 그녀들도 살수이전에 사내의 따뜻한 손길을 본능적으로 고대하는 여인(女人)들이므로...

(언젠가는... 벽라언니가 그분의 잠자리시중을 들듯이... 나 또한 떳떳히 그분의 침실을 지킬 수 있게 되고 말리라.)

홍의여인의 두 눈이 보석같이 빛났다.

그녀의 이름은 홍예(紅霓)!

천하제일기녀(天下第一妓女)이고 또한 천하제일여살수(天下第一女煞手)이기도 한 여인...

이 밤,

황홀하고 뜨거운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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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一 章

 

                高手 續出

 

 

 

[으드득! 네놈의 목을 베리라!]

--- 자작!

노인의 손이 흔들린다 싶었는데 검기가 이미 능천한의 목 앞에 이르러 있었다.

[...!]

능천한이 탄식하며 몸을 흔들었다.

--- 가각

반응이 빠르긴 했지만 검기가 워낙 빨라 그의 어깨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러나 옷만 잘렸을 뿐 능천한의 몸에는 흐릿한 자국이 났을 뿐이었다.

[네놈을 누이지 못하면 해천신검제(海天神劍帝)란 이름을 쓰지 않겠다!]

--- 이이잉!

우르르르---!

노인, 해천신검제의 유달리 긴 장검에서 벼락같은 검기가 일었다.

[노공이 해천검파의 당대 장문인...?]

능천한은 침음하며 사란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고의가 아니었소. 다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변명은 지옥에나 가서 하거랏!]

--- ! --- 이잉!

능천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해천신검제의 장검에서 벽력같은 검기가 내뻗혔다.

[...!]

--- 르르르...!

능천한은 경시할 수 없어 천극을 마주 흔들었다.

카카--- --- 카캉!

불꽃이 튕기며 해천신검제의 검기가 오리처럼 깨져 흩어졌다.

아무리 날이 무디어도 천극은 천지십병에 드는 신병인 것이다.

[으드득!]

해천신검제는 이를 갈며 장검을 다시 쳐들었다.

--- 이이잉!

그의 장검으로부터 무지개같은 검강(劍罡)이 뻗쳐 나왔다.

[해천극랑파검강(海天剋浪波劍罡)...!]

능천한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등 뒤...!)

능천한은 흠칫하였다.

등 뒤로 한 줄기 인영이 소리없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해천신검제 보다도 강하다!)

능천한은 아연긴장하였다.

등 뒤로 나타난 인물은 능천한이 지금껏 만난 수많은 고수들 중 몇 손가락 안에 끼는 강자였다.

아무리 능천한이라 해도 두 명의 절정고수들을 상대로 경시할 수는 없다.

--- 이이잉!

츠츠츠--- 츠츠츳!

능천한의 일신에서 강력한 기도가 안개같이 일어났다.

[...!]

격노하던 해천신검제의 안색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도 절정에 이른 검수(劍手)로 불리기에는 손색이 없는 고수...!

능천한이 일으키는 기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

능천한 뒤쪽의 인물도 아연긴장한 듯 숨을 멈췄다.

능천한의 몸에서 일어나는 기도가 삽시에 석실을 가득 채운 것이다.

[...!]

[...!]

--- 이이잉!

숨 막힐 듯한 적막이 감돌았다.

어느 순간 해천신검제가 먼저 움직였다.

[해극파(海極波)!]

콰츠츠츠!

검이 앞으로 내찔러지며 폭포가 쏟아지듯이 검기가 폭출되었다.

[환밀파라강수(歡密破羅罡手)!]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교성이 능천한의 등 뒤에서 터졌다.

의외로 여인의 목소리였다.

콰르르르르--- !

--- 이이이이잉!

경천동지할 공세가 능천한을 앞뒤에서 후려쳐 왔다.

[천극망!]

능천한도 지체없이 천극을 휘둘렀다.

--- 자자자작!

--- 이이이잉!

수천 수만 줄기의 극영(戟影)이 석실을 가득 메웠다.

--- --- 가강!

--- --- 차창!

[크읏!]

[으음...!]

경기의 폭풍이 이는 중에서 두 마디 무거운 신음이 들렸다.

능천한은 천극을 거두며 돌아섰다.

[...!]

그런 그의 눈에 한 여인이 가슴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서역여인...!)

여인을 바라보는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화사한 분홍색 궁장의 여인이었다.

복장은 중원여인의 복장이나 그녀는 누가 보아도 서역 여인이었다.

피부가 우유빛으로 뽀얗기 이를 데 없고.

두 눈이 벽안으로 빛났다.

그리고 중원여인과 달리 그녀의 몸매는 매우 기름지고 풍만했다.

특히 그녀의 유방은 투실투실하기 이르데 없어 물러날 때마다 출렁거렸다.

그 여인은 능천한이 이제껏 만난 그 어느 여인보다도 아름다웠다.

촉망중이었으나 능천한은 벽안여인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능천한을 노려보던 벽안여인의 옥용에도 파문이 일었다.

(신존(神尊)에 못자 않은 거인이 중원에도 있었다니...)

벽안여인의 눈빛이 야릇하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환밀후(歡密后)! 분하지만 우리는 아직 저놈의 적수가 못되오!]

해천신검제가 능천한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환밀후... 그것이 이 여인의 별호인가?)

능천한은 무거운 시선으로 두 인물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이내 환밀후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사란의 교구를 안아들었다.

[이토록... 끔찍한 짓을 하다니...!]

정신을 잃은 사란의 짓이겨진 하체를 보며 환밀후가 혀를 찼다.

[기다려라. 신존께서 너를 찾으실 것이다!]

해천신검제가 냉갈하였다.

스스스슥!

해천신검제와 환밀후는 사란을 안고 석실을 빠져 나갔다.

[으음...!]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능천한은 괴롭게 신음했다.

[큰 파란이... 나로 인하여 일겠구나!]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해천검파와 요지를 다스릴 수 있는 인물은... 변황의 거인(巨人) 태양신존(太陽神尊) 뿐이고...]

중얼거리며 능천한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침중해졌다.

 

능천한은 곧 무너진 석실을 벗어났다.

그가 긴 석로를 절반쯤 지났을 때,

[상공!]

[태상맹주!]

두 명의 여인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마주 달려왔다.

홍예선희와 위지련이었다.

[상공...!]

능천한의 어지러운 형색을 본 홍예선희의 옥용이 번민으로 흔들렸다.

[괜찮으시옵니까?]

홍예선희는 능천한의 헝크러진 머리를 쓸어 올려 주며 걱정스레 물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지극한 관심과 염려가 서려 있었다.

[홍예... 괜찮소!]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홍예선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부러워...!)

그 모습을 보며 천산홍연 위지련의 귀여운 얼굴에 부러운 빛이 떠올랐다.

[태상맹주! 어서 나가세요. 이 주위로 혈종(血宗)의 마도들이 우글거리고 있어요!]

이어 위지련은 능천한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합시다!]

능천한은 홍예선희의 교수를 잡고 걸음을 옮겼다.

 

스스스스슥!

--- 르르르르!

일남이녀는 흐르듯이 석로를 빠져나가 예의 고정(古井) 밑에 이르렀다.

[쌍검군자께서는?]

--- 이잉!

능천한이 두 언니를 이끌고 고정을 날아오르며 물었다.

[맹주언니가 부르셔서 갔어요.]

[벽라누님이?]

능천한은 흠칫하며 위지련을 돌아보았다.

--- 스슥!

휘르르르르---!

세 남녀는 고정을 벗어났다.

헌데 그 직후였다.

[...!]

[...!]

세 사람은 긴장으로 몸을 굳히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폐장은 여전히 괴괴한 적막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적막 속에 숨통을 조이는 긴장감이 깔려 있음을 세 사람은 직감했다.

[혈종에서 노린 것이 다만 천향옥잠 뿐이 아니 듯해요!]

위지련이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얘기지?]

[혈종오패(血宗五覇)가 모두 이 주위에 나타났어요. 그들은 모종의 목적이 있는 듯이 웅크리고만 있지 움직이지를 않아요...!]

(혈종오패가 회동? 아직껏 그런 일은 없었는데...!)

능천한은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가 골똘히 생각할 때였다.

[헛허!]

돌연 한소리 담담한 웃음소리가 세 남녀의 귓전을 흔들었다.

[...!]

[...!]

삼인은 아연하였다.

그들은 모두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다.

특히 능천한은 천년공력을 지닌 절대고수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주위에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삼인은 반사적으로 웃음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고개를 돌린 능천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곳은 썩은 물이 고여있는 연못의 정자였다.

그 정자 위에 언제부터인가 한 인물이 뒷짐을 진 채 표표히 서 있었다.

그 인물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능천한의 몸이 뇌전(雷電)에 맞은 듯이 흔들렸다.

정자 위의 인물은 자색(紫色)의 곤룡포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나이는 사십 전후로 보이는데 안면 가득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보통 인물이 아니다. 이런 기도를 지닌 인물은 이제껏... 본적이 없다!)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자색 곤룡포의 중년인에게서는 기이한 기도(氣道)가 흐르고 있었다.

허허(虛虛)로운 중에...

어느덧 천지를 가득 메우는 장중한 기도가 피어올랐다.

(제왕지기(帝王之氣)...)

능천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곤룡포의 인물에게서 풍기는 기도는 바로 만승지존(萬乘至尊)에게 있음직한 제왕(帝王)의 기도가 아닌가?

누구라도 자의인 앞에 이르면 절로 공경치 않고는 못 배기리라.

(시선이... 아주 눈에 익다... 전에 전혀 만난 기억이 없거늘...)

능천한은 미소를 떠올리며 중년인의 따뜻한 시선을 바라보았다.

자의인의 시선은 아주 따뜻하고 온화했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은 흡사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그것같았다.

실로 이해가 안가는 눈길이었다.

[허허! 그대가 능붕비의 아들인가?]

자의중년인이 껄껄 웃으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은 공손하게 포권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능천한입니다.]

[헛허! 갓 낳았을 때 보았거늘... 벌써 이리 컸는가?]

자의인은 흐뭇하게 웃었다.

자의인의 말에 능천한은 흠칫 놀랐다.

[소생을 알고 계십니까?]

[암 알고 말고...]

자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는 황백(皇伯)이라고 하며 그대의 엄친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지!]

능천한은 자의인의 말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황백... 황제의 백부라는 이름인데... 아버님은 그런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거늘...)

그러나 능천한은 기이하게도 자의인에게 강력하게 끌림을 느꼈다.

그것은 자의인의 풍도가 아버지 패천황룡 능붕비의 그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자의인의 기도가 오히려 능붕비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점이 다를 뿐...

(이런 분이라면 아버님도 서슴치 않고 교제하셨으리라!)

능천한은 정중하게 자의인을 향하여 고개를 숙였다.

[백부(伯父)님이 되시는군요. 소자 능천한의 절을 받으십시오!]

말을 하며 능천한은 자의인을 향하여 절을 올리려 하였다.

[허허! 그만 두거라!]

자의인은 절을 하려는 능천한을 향하여 소매를 저었다.

(우웃!)

능천한은 경악했다.

천년내공을 지녔다는 그의 허리가 무형강기에 의해 도로 퍼졌기 때문이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천년내공을 지닌 것이 나 혼자인 줄 알았거늘... 제이의 천향염후가 또한 천년공력을 지녔고... 제왕같으신 이분이 또한...)

능천한은 놀란 표정으로 자의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그를 자의인은 온화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헛허... 능씨일가에 거목이 났군!]

자의인... 황백은 껄껄 웃었다.

[지금 곧장 동북(東北)으로 가보거라. 흥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스스스--- 스슥!

황백은 둥실 떠올라 유유히 폐장 밖의 황야로 날아갔다.

[군림천행보(君臨天行步)...]

그 신법을 보며 능천한은 신음하였다.

자의인의 신법은 이백 년 전에 단 한번 나타났던 경공술이었다.

그 경공술은 패천자와 함께 우주혈종을 쳤던 제왕천신(帝王天神)이 사용했었다고 전한다.

[헛허... 많은 계집을 거느리며 정을 뿌리는 것은... 영웅의 본색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거둠에 있어 소홀하면 여인의 한()을 삼을 십분 주의하여야 하느니라!]

그때 능천한의 귓가로 황백의 전음이 멀리서 들려왔다.

(백부님께서... 무엇인가 아셨는가?)

능천한은 사란공주를 범한 일이 생각나 씁쓸하게 웃었다.

이어 그는 홍예선희와 일지란을 돌아보았다.

그녀들은 능천한의 뒤로 다소곳이 서 있었다.

[홍예! 일지소저와 벽라누님을 찾아가오!]

그의 말에 홍예선희의 싸늘한 옥용에 근심의 빛이 떠올랐다.

[동북(東北)에 가시는 일은 그만두셨으면...]

능천한은 홍예선희의 근심에 찬 시선을 대하자 미소가 절로 일었다.

[하하! 근심이 되오?]

홍예선희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신첩의 예감이 불안하여...]

그녀의 말에 능천한은 내심 기이함을 느꼈다.

(홍예는 비밀이 있는 여인이다. 동북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아는 듯하니...-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홍예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하하... 걱정 마시오. 벽라누님을 만나뵙고 인사를 드리시오. 그리고...]

능천한은 미소를 지었다.

[하하... 천하제일기루라는 만화원(萬花院)에서 하룻밤 쉬고 싶으니 준비를 해주시고...]

스스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능천한은 이미 이백여 장 밖에 나가 있었다.

천폭환상영이 펼쳐진 것이다.

(강적들이 그곳에 있을 텐데...)

사라지는 능천한을 바라보는 홍예선희의 눈빛이 근심으로 물들었다.

능천한을 못 믿어서가 아니다.

못 믿기는 커녕 그녀에게 능천한은 하늘()과 같았다.

다만 사랑하는 이이기에 천에 하나 다칠까 저어하는 것이다.

[가요 언니!]

위지련이 그런 홍예선희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 그래, 가자꾸나!]

홍예선희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스스스스--- !

두 여인의 교구도 폐장에서 사라졌다.

이내, 폐장에는 다시 적막과 어둠만이 깊게 깔려 흘렀다.

 

***

 

[철혈묵사(鐵血墨獅)! 뜻을 바꿀 수 없는가?]

한 명의 청년이 무겁게 말했다.

일신에 청삼을 걸친 청년은 영준하고 당당한 기도의 소유자였다.

일견하여 청삼청년의 일신에서는 폭풍(暴風)같은 잠력이 느껴졌다.

이곳은 숲속의 널찍한 공지다.

공지 중앙에 이인(二人)이 마주 서 있고,

그들 주위로 팔인의 청의인들이 둘러서 있었다.

팔인은 하나같이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된 절정의 고수들이었다.

청삼청년의 전면.

[...!]

사자(獅子)의 눈을 지닌 흑포장한이 철탑같이 서 있었다.

철혈로 뭉쳐진 듯한 육중한 분위기의 인물...

그의 별호가 철혈묵사(鐵血墨獅)인 듯 했다.

[...!]

[...!]

청삼청년과 철혈묵사는 묵묵히 서로를 주시하였다.

문득 철혈묵사가 침중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본인이 혈종오패에 든 것은 쌍극천효에게 신세를 졌기 때문이고... 그 신세는 황산일전(黃山一戰)에서 갚았다.]

그러자 청삼청년이 얼굴을 굳히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혈종오패의 대열에서 물러서겠다는 얘기인가?]

철혈묵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더 이상 혈종의 이름을 본인과 연결지으려 하지마라. 본인과 철혈회(鐵血會)는 다만 철혈일문(鐵血一門)에 속할 따름이나...]

[으음...]

청삼청년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철혈묵사! 물론 고이 혈종에서 빠져 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겠지?]

청삼청년의 말에 철혈묵사의 안색에 어두운 기색이 돌았다.

[폭풍대공(暴風大公)... 내 손이 그대를 상대로 피를 보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래도 한 때의 동지였던 그대들을 쓰러뜨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본대공 또한... 철혈오패 중 그대만이 본대공과 뜻을 나눌 수 있는 제목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괴롭다!]

스스스!

폭풍대공이라 불린 인물도 괴로운 표정으로 말하며 물러섰다.

 

(폭풍대공... 저 인물이 바로...)

한 쌍의 시선이 장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능천한의 가지가 무성한 소나무 위에 몸을 숨긴 채 장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단한 인물... 혈종오패 중 폭풍보(暴風堡)의 폭풍대공이 가장 신비하다더니 사실이었군!)

능천한은 형형한 눈빛으로 폭풍대공을 바라보았다.

 

<폭풍대공(暴風大公)>

 

근래 철혈묵사라는 이름과 함께 천하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름이다.

그는 폭풍보라는 신비집단의 영수이며,

그 자신 또한 혈종오패 중 가장 신비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천하인은 정확히 그의 진정한 능력을 알지 못한다.

그 운중(雲中)에 가린 그의 진면목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혈종오패 중 최강을 철혈묵사라 칭함은 잘못이다. 폭풍대공이야말로 진정한 강자다.>

 

폭풍대공!

이름그대로 일신에 폭풍같은 장력을 지닌 인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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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三十 章

 

                  悽絶落花

 

 

 

여인(女人)이 있었다.

아니, 차라리 우물(尤物)이라 해야 옳으리라.

[으음...!]

능천한!

천하제일의 정력(定力)을 가진 그의 두 다리가 미미하게 떨린다.

그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석벽이 무너진 틈을 주시하였다.

한 명의 우물이 그곳에 서 있었다.

너무도...

너무도 완벽한 미인이었다.

옥으로 빚어 놓은 듯한 옥용,

뇌쇄적인 매력이 폭발할 듯이 출렁이는 동체...

그리고,

입가에 떠오른 도발적인 미소,

사내로 하여금 환몽에 사로잡히게 하는 기이한 체향(體香),

능천한의 안색이 시뻘개졌다.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이 화산 터지듯이 일어나는 것이다.

(... 안고 싶다. 한 번만 안아보면 죽어도 한이 없으리라...)

능천한,

천하제일 정력가라는 그마저 걷잡을 수 없이 여인에게로 빠져들었다.

그 정도였다.

가공하다 함이 옳을 여인의 마력은 그토록 가공한 것이었다.

[호호... 상공...!]

여인이 까르르 교소를 터뜨렸다.

소녀의 천진함,

중년미부의 푸근함,

탕녀의 끈적끈적한 색기,

기이하게도 서로 상반되는 이런 분위가가 하나에 집약된 목소리였다.

[호호... 상공께선... 참으로 영준하세요.]

미인이 팔을 활짝 벌리며 다가왔다.

그녀의 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속이 환히 비춰 보이는 나삼 하나...

그 나삼 속에서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육봉이 출렁였다.

[호호... ! 소녀는... 상공것이에요. 어서 갖으세요.]

미인이 교태를 똑똑 떨구며 다가왔다.

[...!]

능천한의 눈이 욕정으로 시뻘개졌다.

그의 시선은 미임의 쭉 뻗은 두 다리 사이,

우거진 방초로 뒤덮인 둔덕을 노려보고 있었다.

[흥흥... 아이... 어서...!]

미녀가 허리를 교태롭게 비틀며 능천한의 면전으로 다가섰다.

코를 찌르는 체향,

[...!]

능천한은 와락 미녀의 허리를 휘감아갔다.

[호호호...!]

미녀는 교태를 떨구며 허리를 비틀었다.

한데,

[...!]

그녀의 허리를 비틀어 안으려던 능천한의 몸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미녀의 옥용에 흠칫하는 빛이 떠올랐다.

능천한,

방금 전까지 욕정에 몸부림치던 능천한이 뚫어져라 그녀의 머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삼단같이 틀어올린 그녀의 머리.

그곳에는 분홍빛 요기를 떨치는 비녀가 꽂혀 있었다.

능천한의 안색이 일시에 싸늘해졌다.

극사(極邪)!

그 비녀는 극사지기(極邪之氣)를 뿌리고 있었다.

천극대정신맥은 극사와 극마에 극성(極性)임이라.

욕정을 일으킨 것은 미녀의 분위기와 미모 때문이었다.

그것은 천극대정신맥의 정기로 어쩔 수 없는 본능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비녀에서 흐르는 극사지기는 다르다.

그 극사지기를 접하자 천극대정신맥이 막강한 대정지기(大正之氣)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천향옥잠(天香玉簪)! 천향염후(天香艶后)의 화신이로구나!]

능천한의 폭갈이 터지고,

--- --- --- ---!

--- 쿠쿠쿠쿵---!

두 사람의 사이에서 가공스런 굉음이 터졌다.

양인의 몸에서 최극강의 강기가 터져 나온 것이다.

콰르르르--- 르릉!

--- --- ---!

양인의 충돌에 견디지 못하고 석실의 천정이 무너져 내렸다.

우수수수...!

그러나,

만근의 석괴들조차 양인의 주위에 이르러서는 먼지로 부숴졌다.

[천향염후! 천년 공력을 지녔다니... 놀랍구려!]

사진사이에 우뚝 서서 능천한이 묵직하게 말했다.

일차 충돌에서 양인은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했다.

놀랍게도 제이의 천향염후 역시 천 년에 이르는 내공을 지닌 것이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힘이었고,

능천한으로서도 일시지간에 어찌할 수 없는 힘이었다.

[패천잠룡... 아니 패천지존(覇天至尊)이라 해야 어울리겠죠. 이미 잠룡이 아니니...]

천향염후가 교소를 지었다.

가히 뇌쇄적인 미소지만 능천한은 아주 담담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패천지존이라... 과분한 칭호...!]

능천한이 담담하게 말했다.

[호호... 과분하지 않아요. 당대에 있어 본후말고 천년공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니... 기뻐요!]

미녀는 뇌쇄적인 추파를 던졌다.

[만일... 당신이 본후의 유혹을 벗어나지 못했어도 본후는 당신께 본후의 순결을 드렸을 거예요. 호호... 물론... 쾌락을 즐기신 후 본후의 손에 고혼이 되었겠으나...!]

능천한은 침중한 표정이 되었다.

[무슨 이유에서 천향염후가 되었는디는 모르나 한가지를 명심해야 할 것이오.]

[호호, 말씀해 보세요. 세이경청할 터이니...!]

천향염후가 깔깔 웃었다.

그녀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교태롭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기에 충분한 것이,

그녀는 제일 천향염후보다도 오히려 강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능천한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대는 어찌 되었든 여인이고... 여인인 이상 여인지도(女人之道)를 걸어야 할 것이니... 옥체를 소중히 하여야 할 것이오!]

능천한의 목소리는 장중했다.

그 목소리에는 대정지기(大正之氣)가 실려 있어,

꽉 닫힌 천향염후의 심정을 깨치고 들어가 지워질 수 없게 새겨졌다.

[...!]

교태롭던 천향염후의 옥용이 일그러졌다.

[... 본후의 심령을 뒤흔들다니...!]

그녀의 옥용이 새파란 살기로 뒤덮였다.

자신의 자존심이, 자부가 능천한의 한 마디에 깨어져 버린 것이다.

[빠드드득!]

천향염후는 이를 갈았다.

[내게 치욕을 주다니... 너를 갈가리 찢어 죽여 분을 풀리라!]

--- 이이잉!

스스스스---!

천향염후의 교구 주위로 분홍빛 강기가 무럭무럭 일었다.

[으음...!]

그런 천향염후의 모습에 능천한은 한숨을 쉬었다.

(사기(邪氣)가 골수에 박혔다. 나의 대정지기로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그는 한숨을 쉬었다.

--- 이이잉!

그의 손에 들린 천극에서도 장중한 기운이 일었다.

[호호호... 네가 과연 천향미욕심공(天香迷欲心功)에도 견디는가 보자!]

츠츠츠--- ---!

휘츠츠츠---!

일시에 분홍빛 강기가 확 퍼져서 능천한을 뒤덮었다.

[!]

자기도 모르게 분홍빛 기류를 들이마신 능천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고요히 가라앉았던 욕정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살수... 천향여음정(天香女淫精)을 마시다니...!]

능천한이 휘청하였다.

 

---천향여음정(天香女淫精),

 

천향지체가 된 여인이 몸에서 나오는 여음지정(女淫之精)이다.

이는 최극의 흥분제로 음양교합외에는 달리 해독할 방도가 없는 지독한 것이다.

그것을 방심하다가 한 모금 들이마시고 만 것이다.

[호호호호! 누워랏!]

--- 우우웅!

츠츠츠츠--- !

칼날같은 지강(指罡)이 능천한의 호신강기를 꿰뚫으며 날아들었다.

[...!]

스스스슥!

능천한이 몸을 흔들자 그의 신형이 백팔 개로 흩어졌다.

 

---구유백팔유령흔

 

유령대제가 남긴 최고지강의 보법이다.

그러나,

[흣호! 눈가림은 조무무라기들이나 속일 수 있음을 잘 알텐데...!]

--- 이이이잉!

츠츠츠츠---!

천향염후의 섬섬옥수가 환영으로 몸을 숨긴 능천한의 가슴으로 정확히 파고들었다.

[! 자극천단강!]

능천한은 이를 악물며 좌수를 쪼개내었다.

--- !

[!]

일수를 내친 능천한의 몸이 휘청하였다.

욕정을 누르느라 전력을 공세에 쏟지 못했고, 당연히 손해를 본 것이다.

(빨리 결판을 내자!)

능천한은 이를 악물었다.

[호호... 천향옥잠의 진정한 무서움을 알려 주겠다!]

그때였다.

천향염후가 머리에 꽂고 있던 천향옥잠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 !

갑자기 천향옥잠에서 삼 장 길이의 강기()가 내뻗쳤다.

[호호! 천향단강(天香丹罡)이다.]

--- 아앙---!

천향염후가 그대로 천향단강을 휩쓸어 왔다.

[찻핫! 거령폭류참!]

--- --- !

천극에서도 폭풍이 쏟아졌다.

--- 르르르릉!

--- 콰콰--- !

[!]

[!]

--- - !

굉음 속에서 양인이 동시에 뒤로 밀려갔다.

(선기를 빼앗기면 안된다!)

능천한은 천극을 집어던졌다.

그리고,

[자령천존수(紫靈天尊手)!]

벼락같이 우수를 쪼개어 내었다.

그러자,

--- 우우웅!

갑자기 석실 전체가 진공상태로 변하며 사위가 자광(紫光)으로 뒤덮였다.

[... 그대가... 자부지존이기도 하다니....!]

그속에서 경악성이 터지고,

--- 이이잉!

천향염후는 전력을 다해 천향옥잠을 그어 내었다.

--- --- !

불꽃이 튀고,

자고아이 흔들하였다.

그러나,

그 바람에 천향염후의 가슴에 헛점이 드러났고,

[가랏! 벽뢰섬(闢雷閃)!]

--- 자장!

--- !

패천신륜이 뇌전같이 그녀의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

천향염후로서는 막아낼 여유가 없었다.

--- ! --- !

[!]

패천신륜은 천향염후의 가슴에 부딪혀 튕겨나갔고,

그즉시 그녀의 가슴에 선혈이 확 일었다.

이미 금강불괴지체를 이룬 그녀이건만 패천신륜의 예기 앞에 피를 보고 만 것이다.

[--- ! !]

--- 이이잉!

천향염후는 가슴을 감싸안고 몸을 날렸다.

삽시에 그녀의 모습은 석벽사이의 통로로 사라졌다.

[!]

--- !

되날아온 패천신륜을 받아든 능천한은 털썩 주저 앉았다.

전력을 다해 공력을 사용했고,

그 때문에 간신히 억눌렀던 욕정이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던 것이다.

[... 지독하구나. 천향여음정...!]

능천한은 전신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욕정에 몸부림쳤다.

[... 정신을 잃으면 안되는데...!]

능천한은 정신을 차리려고 천극(天戟)의 날()을 손바닥으로 움켜 쥐었다.

그러나,

천극의 날은 너무 무디고,

그의 손바닥은 금강지수(金剛之手)이니 피가 날 까닭이 없다.

[제길... 이것도 안되다니...!]

능천한은 혼몽 속으로 빠져 들며 투덜거렸다.

그가 막 혼미한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오빠! 오빠!]

한 줄기 홍영(紅影)이 바람같이 석실 안으로 날아들었다.

유난히 눈이 크고 짙은 갈색의 육감적인 몸매를 지닌 미인이었다.

[홍예?]

능천한은 부르르 떨며 신음하였다.

여쳬가 가까이 있자 욕정이 배가하여 그의 한가닥 이성도 무너뜨리고 말았다.

[오빠... 어디 다치셨어요?]

갈색의 이국적인 미인이 멋도 모르고 다가섰다.

그 순간,

[흐흣!]

--- --- !

능천한은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그대로 미녀를 덮쳐갔다.

[! ... 왜이래욧?]

여인이 질겁을 하며 바둥거렸다.

그러나,

그녀의 바둥거림은 능천한의 격렬한 욕정 앞에서는 너무도 무기력했다.

[흐흐흐...!]

--- 지직!

--- 우우욱!

[아악! 놓아줘요... 아아... 안돼!]

미녀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능천한의 거친 손길은 미녀의 풍만한 동체를 가린 홍의를 단번에 북북 찢어버렸다.

투실투실한 유방이 거칠게 유린당하고,

팽팽한 하복부,

한줌의 세류요(細柳腰),

쩍 벌어진 둔부 등이 삽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흐흐흐...!]

[아악... 아파... 아아악! ... 오빠... 나좀... 사란을... ... ...!]

능천한의 떡 벌어진 몸에 짓눌린 미녀의 몸부림은 너무도 미약했다.

능천한은 그녀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유방을 터질 듯이 주무르고 덥석 깨물어 난자하였다.

[흑흑... 아아아... 아파... 엉엉...!]

미녀는... 갈색의 육감적인 육체를 버팅기며 유린당했다.

한순간,

[--- 아악! --- !]

미녀의 큰눈이 허옇게 치떠지고,

그녀의 미끈한 허벅지가 허공으로 버팅겨져서 부들부들 떨렸다.

[으흑...!]

미녀는 죽을 듯한 고통에 능천한의 등을 마구 헤집고,

그의 어깨를 있는 힘을 다해 물어뜯었다.

물론... 금강불괴지체인 능천한의 몸에 상처가 날 까닭이 없지만,...

그녀의 입시여 년을 고이 지켜온...

가장 소중한 것이 깨져 버린 것이다.

[---! 아악... 제발... 그만... 사란을... 살려주세... 아학!]

미녀는 능천한이 한번 내리찍을 때마다 사경을 넘나들어야 했다,

[흐흐흐... 헉헉...!]

[아흐윽... 아파... 제발...!]

폭풍!

능천한은 폭풍이 되어 미친듯이 어린 희생자를 몰아쳤다.

여리고 보드라운 대지가 그의 폭풍을 맞아 갈가리 찌기고 부수어져 나갔다.

처연한...

실로 애처로운 낙화(落花)였다.

 

[...!]

문득,

능천한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린 순간 응천한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그의 육중한 몸밑에 깔린 애처로운 여체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고통을 참느라 너무도 세게 물어 입술에서 선혈이 터져 흐르고...

곱던 동체가 유린당하여 시퍼렇게 멍이 든 미인(美人)...

바로 변황에서 온 소녀 사란공주였다.

[... 내가... 사란을...!]

능천한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으음...!]

몸을 일으키던 능천한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사란공주의 하복부...

최초의 향위도 견디기 힘들거늘...

성숙한 여인도 견디기 힘든 격렬한 향위를 받아들인 사란의 하체...

그곳은 실로 처참했다.

찢기고 깨쳐져서 온통 선혈로 범벅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 ... 사란... 사란...!]

능천한은 다급히 사란의 심맥을 살폈다.

이내 그의 얼굴에 일말의 안도의 빛이 흘렀다.

[... 살아있다!]

사란은... 그 험한 일을 당하고도 살아있는 것이다.

보통의 아녀자라면 견디기 힘들겠으나 그녀는 절정에 이른 고수였기에 다만 혼절했을 따름이다.

우르르르르---!

이내 능천한의 장심에서 향기를 띄운 기류가 일어 사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천약심향대법으로 얻은 약종지기가 떨쳐지는 것이었다.

[깨어나거라. 그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대에게 사죄할 터이니...]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연신 사란에게 약종지기를 불어놓었다.

그러자 새하얗던 그녀의 안색에 점차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

사란은 힘겹게 눈을 떴다.

[사란!]

능천한은 너무도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와락 사란을 끌어안았다.

사란은 잠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능천한으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 ... 오빠... 무서워...!]

그녀는 능천한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사란...!]

능천한은 죄책감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그는 공포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란을 꼭 끌어안았다.

그때였다.

[... 이놈! 당장 공주님을 내려놓지 못할까?]

한소리 분노에 찬 폭갈이 능천한의 구시전을 두들겼다.

(...!)

능천한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석문 입구에 한 명의 노인이 부들부들 떨며 능천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분노...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죄책감에 몸을 떨고 있는 노인.

그는 바로 유난히 긴 장검(長劍)을 지녔던 그 노인이었다.

[... 네놈이 공주님을 능욕하다니...!]

처참하게 유인당한 사란의 육체,

그것을 본 청의노인의 노구가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第三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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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九 章

 

                   女人 絶代者 天香艶后

 

 

 

능천한은 바람처럼 백여 장을 전진했다.

[--- !]

[--- 아아악!]

그러자 격전이 벌어지는 소음이 들려왔다.

(고정을 통하지 않고도 상당한 고수들이 들어와 있군!)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전장으로 접근하여 갔다.

 

[호호호홋!]

[깔깔깔...!]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너무도 끈적끈적하여 본능을 달아오르게 교소다.

그 뿐인가?

사르르르르...!

스스스스...!

붉은 홍라(紅羅)가 너울거리고...

분홍빛 육향이 사위를 가득 메웠다.

하느적거리는 육체...

연어의 뽀얀 속살과 암야의 짙음을 함께 지닌 여체(女體)들이다.

[흥흥... 아이...!]

[--- ... 아으음...!]

흔들린다!

여체가 나비같이 흔들리고,

억누를 길 없는 본능을 자극하는 육향이 뒤덮여 씌워졌다.

그러나...!

그 환몽의 유혹에는 죽음()이 있다.

[!]

[--- 에엑!]

눈이 시뻘개져서 여체를 쫓던 사내들이 픽픽 고꾸라졌다.

유혹하던 교수가 어느새 붉은 선혈을 묻히니...

백옥의 동체에 선혈이 피니 너무도 아름답기까지 하지 않는가?

여인들!

붉은 천조각을 휘저어 나신을 살짝 가린 여인들의 군무(群舞)를 추고 있다.

[흐응... 아흐응... ...!]

[호호호...!]

끈끈한 교성이 뇌쇄적인 동체에서 인다.

여인들은 둥근 환진(環陣)을 이루어 육, 칠십여 명의 사내를 가두고 있었다.

 

---나혼절염무(裸魂絶艶舞).

 

치명적인...!

사내들에게는 너무도 치명적인 미혼대법(迷魂大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심기가 허약한 사마외도들에게는 더욱 더 치명적인 대법이다.

[으으... 못참겠다...!]

[... --- !]

[...!

환진에 갇힌 사내들은 이미 대부분이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자들 대부분이 마도와 사도의 무리들인지라,

속절없이 나혼절염무에 걸려 들어가는 것이다.

[--- !]

[--- 아악!]

! !

욕정에 눈이 멀어 나녀들에게 달려들던 자들은 머리가 박살 나서 나뒹굴었다.

환진에 갇힌 인물들 중 그래도 이성을 잃지 않은 인물들은 단 삼인이었다.

두 눈이 시퍼런 벽안독마가 그 한 명이고,

검미를 찌푸리고 있는 쌍검군자,

못볼 것을 보는 듯이 눈을 꼭 감고 있는 소녀 천산홍인 위지련이 그들이다.

그러나 벽안독마와 쌍검군자의 안색도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쌍검군자는 입술을 악물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추태를 면치 못하리라!)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일렁이는 여체들로 인하여 점차 심기가 흐트러지고 있었다.

[... 에익...! 지저분한 계집들...!]

벽안독마가 참지 못하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는 어떤 사연으로 인해 여자에 대해 지독한 혐오감을 지니고 있다.

그 때문에 마도에 든 자로서 나혼절염무를 버티어 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안독마는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우르르르---!

--- --- 애액!

그는 대갈일성과 함께 시퍼런 독강(毒罡)을 쏟아냈다.

[주의하랏!]

어디선가 여인의 경호성이 들리고,

스스스스--- !

나녀들은 민첩하게 몸을 틀었다.

[--- 에엑!]

[--- !]

애꿎게도 벽안독마의 전면에 있던 무림인들만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츠츠츠츠---!

쓰러진 군웅들은 이내 시퍼런 독수로 녹아들었다.

실로 지독하기 이를 데 없는 독공이었다.

벽안독마가 불 맞은 짐승같이 길길이 날뛰었으나,

[... --- !]

[... 안돼! 케엑!]

쿠르르르르---!

퍼퍽!

애꿎게 죽어 넘어지는 것은 군웅들이었다.

[독마! 멈추시오!]

보다 못한 쌍검군자가 대갈하며 벽안독마를 향해 폭갈을 질렀다.

[()가야! 네 할 일이나 해랏!]

벽안독마가 흉흉하게 외쳤다.

[그대가 발작하면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입음을 모르오?]

쌍검군자가 벽안독마의 앞을 가로 막았다.

[비켜랏! 본좌는 저 냄새나는 계집들을 쳐죽이지 않고도 못 견디겠다!]

[어리석은...!]

쌍검군자가 얼굴을 싸늘히 굳혔다.

[호호호...!]

[--- 깔깔깔...!]

! !

[--- 에엑!]

[--- !

그사이에도 군웅들은 어지러이 나녀들의 교수 아래 쓰러졌다.

그때였다.

[우우--- 우우...!]

갑자기 우렁찬 창룡후가 장내를 뒤흔들었다.

그 장소성에는 폐부의 잡기를 몰아내는 많은 기운이 가득했다.

[!]

[...!]

[---!]

나무를 추던 나녀들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그녀들의 옥체가 선혈로 시뻘겋게 얼룩졌다.

그리고,

[... !]

[으윽... ... 지독한!]

군웅들도 픽픽 쓰러지고

벽안독마와 쌍검군자의 안색도 하얗게 변했다.

[지독한 내공... 누구기에...!]

쌍검군자는 경이의 눈길로 장소성이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 태상맹주(太上盟主)!]

장소성의 주인을 알아차린 천산홍연 위지련의 얼굴에 화색이 가득해졌다.

[태상맹주께서...?]

쌍검군자도 흠칫할 때였다.

뚜벅! --- !

한쪽의 석로(石路)에서 육중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그 발자국 소리에는 태산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 심혼이 부서지는 듯하다...!)

벽안독마의 안색이 푸르뎅뎅하게 변했다.

가공할 기도가 그 발자국 소리에 담겨 있는 것이다.

[...!]

[...!]

나녀들과 군웅들도 주저앉은 채 석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순간,

--- 쿠쿵!

석로의 일각이 와르르 무너지고,

황포청년이 극()을 옆에 끼고 전장으로 들어섰다.

[...!]

[으음...!]

중인들은 일시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 크게 보인다!)

그들의 눈에는 능천한의 육 척 장신이 흡사 태산같이 보이는 것이다.

[...!]

능천한은 깊숙이 가라앉은 눈길로 장내를 돌아보았다.

[태상맹주님!]

--- 이익!

위지련이 희색이 만면하여 능천한의 앞으로 날아내려 무릎을 꿇었다.

[! 일어나시게!]

능천한의 위지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상맹주를 뵈외다!]

쌍검군자가 다가와 정중하게 포권을 하였다.

능천한도 천극을 세우며 답례를 하였다.

[난경을 겪으셨외다!]

능천한은 쌍검군자의 인사를 받고는 한쪽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귀하! 그만 나오시는 것이 어떻소?]

능천한이 석벽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

[...?]

쌍검군자 등이 의아해 할 때였다.

[으음... 바로... 너였으냐?]

고통스런 여인의 목소리가 석벽 안에서 들렸다.

그리고,

--- --- 쿠쿵!

스스스스---!

그곳의 석벽이 모래로 부서지며 한 명의 여인이 나타났다.

능천한과 중인들은 나타난 여인을 일제히 주시했다.

그 여인은 자색궁장을 운치있게 차려입은 삼십대의 중년미부였다.

일견 싸늘함이 배어 흐르나 더할 수 없는 기품과 위엄을 갖춘 미부인이었다.

[으음...! 천환여제(天幻女帝)...!]

여인을 발견한 쌍검군자가 신음을 토했다.

겉보기에 그는 중년이다.

하지만 실제 나이가 칠십이 넘은 노인이다.

천환여제는 그와 동년배인 것이다.

[으드득! 천환여제! 네 계집들에게 당한 빚을 갚겠다!]

--- 이이잉!

쿠르르르--- !

벽안독마가 대갈하며 벽독마라강살(碧毒魔羅罡煞)을 내쳤다.

[벽안독마...]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일갈하며 천극(天戟)을 무찔러 내었다.

--- 쿠쿵!

천극에서 해일이 일고,

[!]

벽안독마가 허공에서 휘청하며 떨어졌다.

천극에서 뻗친 무형강기에 가격당한 것이다.

[패찬잠룡! 네놈이...!]

벽안독마는 능천한을 노려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두고 보자! 독종(毒宗)의 저주가 네게로 이를 것이다!]

스스스슥!

벽안독마는 능천한과 천환여체를 노려 보다가 몸을 날려 사라졌다.

(천환여체를 치려는 저 노마를 왜 막았을까?)

능천한은 내심 곤혹한 심정이 되었다.

그는 천환여제를 바라보았다.

 

---천환여제(天幻女帝).

 

분명코 처음보는 얼굴이다.

한데 기이하게도 능천한에게 천환여제는 낯설지가 않았다.

꼭 오랫동안 함께 있었던 느낌이 들고...

(어머님의 생전 모습도 저러하시리라.)

그는 천환여재의 얼굴에서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

천화여제의 표정도 기이했다.

웃는 듯, 마는 듯,

노한 듯, 미소를 짓는 듯,

복잡한 표정으로 능천한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능붕비의 아들이구나!]

천환여제가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소자가 능천한입니다.]

(소자(少子)?)

쌍검군자와 위지련이 멍청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환여제의 안색도 아주 묘하게 변했다.

(소자라... 나도 너같은 아들이 있었으면 할 때가 있었고... 사실 내가 네 에미가 되었을 수도 있었는데...!)

천환여제의 안색이 여러 번 흔들렸다.

두 사람 사이의 기묘한 분위기에 장내의 분위기도 따라서 이상해져 깄다.

나무를 추던 여황교의 소녀들은 부끄러운 듯이 은밀한 곳을 가리며 한쪽의 석문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천환여제가 괴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돌아가거라! 능붕비의 얼굴을 보아서...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천환여제의 말에 능천한은 난색을 떠올렸다.

[그렇게 해드렸으면 좋겠으나... 소자는 궁주께서 제이의 천향염후(天香艶后)를 키우고 있다고 들었기에...!]

천환여제가 싸늘한 안색을 떠올렸다.

[이미 늦었다. 오늘 밤으로 천향염후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

능천한의 안색도 침중해졌다.

[천하가 위태해지는 결과가 명약관화하므로... 소자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천환여제의 목용에 경련이 일었다.

그녀는 천하에서 가장 고집이 센 여인이다.

물러설 까닭이 없다.

[네가... 힘으로 본여제의 일을 막겠다는 얘기냐?]

[달리 도리가 없으므로...!]

[오냐! 능붕비가 자식을 어떻게 잘 가르쳤는지 보겠다!]

--- 르르르르--- !

천환여제의 일신에서 노도같은 강기가 일어났다.

[우웃!]

[어멋!]

쌍검군자와 위지련이 아연하여 뒤로 밀려났다.

우르르르...!

쿠쿠--- --- 쿠쿵!

그녀의 일신에서 여인의 그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고 웅장한 기도가 구름같이 일어난 것이다.

(강하다. 석달 전의 나만큼이나...)

능천한은 침중한 안색으로 천극을 쳐들었다.

[받아랏! 대천신후강뢰(大天神后罡雷)!]

--- 자자작!

천환여제의 몸에서 벼락이 쏟아졌다.

[뇌우(雷雨)!]

능천한도 천극을 마주 내쳤다.

--- 우우웅!

--- !

우르르르---!

굉렬한 폭음이 일면서 석산전체가 무너질 듯이 뒤흔들렸다.

그중에서!

[빠드득! 자신 있으면 들어와 보아랏!]

천환여제의 몸이 튕겨져서 석벽틈으로 날아들어갔다.

언뜻 능천한은 천환여제의 입가로 선혈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못할 짓을 한 것 같군!)

능천한은 자신이 부상당한 듯이 마음이 아픔을 느꼈다.

그의 이런 감정은 참으로 기이한 것이었다.

--- ! --- !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천환여제가 사라진 석벽으로 다가갔다.

[...!]

[...!]

쌍검군자 등도 긴장된 안색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 우웅!

우수수수수...!

석벽이 무형의 강기로 뻥 뚫려 버렸다.

(과연... 맹주께서 태상맹주로 모실만한 분이다.)

쌍검군자의 얼굴에 감탄의 기색이 흘렀다.

석벽 안쪽은 긴 통로였다.

[본인의... 십 장 뒤로 오십시오!]

능천한은 쌍검군자 등에게 그렇게 말하고 통로를 걸어들어갔다.

헌데 그가 채 십보도 걷지 않았을 때였다.

--- !

석굴의 밑바닥이 그대로 훌떡 뒤집혔다.

[!]

[태상맹주님!]

지켜보던 위지련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능천한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둥실 허공을 떠서 함정을 지나갔다.

--- 가각!

쿠르르릉!

천극이 석벽의 일각을 후려쳤다.

그그긍!

그러자 바닥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중인들은 한숨을 쉬며 능천한의 뒤를 따랐다.

능천한은 묵묵히 앞으로 나갔다.

 

석로는 끔찍한 기관함정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능천한이 누구인가?

천하학문에 달통하고 거기다가 만절기사의 만절기환록마저 자기 것으로 한 기재다.

아무리 교묘한 기관장치와 함정들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기 이를 데 없었다.

 

반각이 안되어 능천한은 서른 두 가지 함정을 뚫고 지났다.

그르르르릉!

마지막 관문인 석문이 열렸다.

그러자 야광주로 환하게 빛나는 석실이 나타났다.

[...!]

능천한은 천극을 비껴들고 석실로 들어섰다.

그가 막 석실로 들었을 때였다.

[호호호호...!]

갑자기 한소리 여인의 교소가 터졌다.

한데 그 교소는 보통의 교소가 아니었다.

[!]

능천한은 교소를 듣자 아찔해짐을 느끼고 아연해졌다.

그가 이러니 타인들은 오죽하겠는가?

[으으...!]

[!]

능천한의 뒤를 따른 군웅들의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얘지고,

일부는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으음...]

능천한의 안색이 더할 수 없이 심각해졌다.

(한발 늦었다. 대법이 끝나 제이의 천향염후가 탄생하였다.)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태상맹주...!]

쌍검군자가 쓰러진 위지련을 부측하며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할 걸음 늦었소. 대법이 끝난 모양이오!]

능천한이 말을 마치는 순간,

[깔깔깔...!]

다시 예의 교소가 터졌다.

그 교소는 한결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

[--- !]

다시 십여 명이 선혈을 토하며 나뒹굴었다.

쿠오오오!

그와 함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향기가 실내에 가득히 퍼졌다.

[호법께선 군웅들을 이끌고 이탈하시오!]

능천한의 말에 쌍검군자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태상맹주께서는...?]

[천향염후를 상대해보겠소.]

그리고는 그는 걱정하는 쌍검군자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걱정마십시오. 그녀에게 천향옥잠이 있다면... 제게는 패천신륜의 천극이 있으니...]

쌍검군자는 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럼... 보충하십시오.]

쌍검군자는 능천한에게 예를 올린 뒤 위지련을 안고 급히 석실을 나갔다.

군웅들도 화급히 그 뒤를 따랐다.

이내 석실에는 능천한 혼자 남게 되었다.

[호호호호...!]

재차 교소가 들려왔다.

그 교소는 어느덧 지척에서인 듯이 들렸다.

[...!]

능천한은 가슴이 울렁이고 전신이 후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천지이교가 타통되고 천년공력을 지닌 능천한이었다.

그런 그이건만 여인이 교소에 심력이 흩어지려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여인의 교소에는 뇌쇄적인 가공스러움이 있었다.

(향기가... 더욱 짙어졌군.)

능천한은 심호흡을 했다.

실내에는 여인의 체향같기도 한 기이한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 향기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마력이 담겨 있었고,

범인이라면 한 모금만 마셔도 혼미해질 정도로 지독한 것이었다.

그러나 능천한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점차 마음이 가라앉고 있었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그 천고에 신맥을 지녔기에 가능한 정력(定力)이었다.

[호호호...!]

--- 콰콰--- !

문득 석실전면의 석벽이 굉열한 폭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강렬한 천향(天香)!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석벽이 무너진 곳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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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八 章

 

                        古井秘密

 

 

 

[...!]

홍예선희가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접한 능천한은 내심 뜨끔했다.

홍예선희의 봉목에 어떤 결연한 빛이 감도는 것을 본 것이다.

(이 여인... 설마...)

홍예선희는 다소곳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면서 나직하나 아주 강경한 의지가 담긴 어조로 말했다.

[천첩... 비록 기녀의 몸이오나... 아직 청백지신(靑白之身)이옵니다.]

[...]

홍예선희의 말에 능천한은 표정이 복잡해졌다.

예감이 맞아 들어가는 것같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첩은... 처녀지신으로... 단 한 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곳까지 상공께 보여 드렸사옵니다.]

그녀는 능천한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능천한도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홍예선희의 봉목은 뜨거운 정열로 달아올라 있었다.

[상공께서 천첩을 거두시든지 어찌하시든지간, 천첩은 이제 상공을 위해 목숨으로 지켜야 할 정절(貞節)이 생겼사옵니다.]

[그대는...]

능천한이 무어라 말하려 하였으나,

홍예선희는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화답을 주소서. 만일 거두어 주신다면 상공에 대한 정절을 지키겠습니다.]

[으음...]

능천한의 표정이 당혹하게 물들었다.

홍예선희의 말은 반협박조였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능천한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구려.]

[상공...]

홍예선희의 눈빛이 흔들렸다.

(벽라누님에게 또 죄를 짓는군!)

능천한은 금벽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직후였다.

[...!]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무슨 일이온지요?]

홍예선희가 흠칫하며 능천한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심리를 철저하게 파헤치는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 덕분에 그녀는 능천한이 무엇인가를 감지했음을 재빨리 알아본 것이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소.]

능천한이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홍예선희의 눈이 갑자기 형형하게 빛났다.

마침 능천한은 누각 밖으로 시선을 돌려 홍예선희의 일변한 눈빛을 보지는 못했다.

(상당한 고수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주시하였다.

스스스슥---

야공을 가르며 한 명의 노인이 날아 내렸다.

칙칙한 회의를 걸치고 머리를 삭발한 자인데,

두 눈에서 섬뜩한 벽광(碧光)이 흐르고 있었다.

(독문(毒門)의 고수다. 벽독마라강(碧毒魔羅罡)을 익혔군!)

능천한은 단정히 앉은 채 그자를 내려다보았다.

문득 홍예선희가 전음으로 말했다.

[저자는 벽독문(碧毒門)의 문주인 벽안독마(碧眼毒魔)예요.]

[벽독문의 문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노인을 내려다보았다.

 

---벽독문(碧毒門),

 

독종(毒宗) 휘하 삼대독문(三大毒門) 중 하나이다.

다만 오래전부터 무림에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문파다.

(묵영독존의 수하에 든 자일까?)

능천한이 염두를 굴릴 때였다.

스스스슥---

주위를 힐끔 힐끔 돌아보며 벽안독마는 고정(古井)으로 뛰어 들었다.

(고정으로 뛰어들다니... 저 고정 속에 무슨 비밀이 있는 듯하구나!)

생각하던 능천한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스스스슥---

그의 예민한 귓전으로 여러 가닥의 파공성이 들린 것이다.

스스슥---

먼저 한 명의 문사가 내려섰다.

청포를 걸친 매우 청수한 인물로서 등에 쌍검을 꽂고 있었다.

(쌍검군자(雙劍君子)... 신주오기(神州五奇) 중의 인물이니... 벽라누님의 명을 받고 왔는가?)

능천한은 담담하게 눈을 빛냈다.

그 문사는 신주오기의 일인인 검()의 달인(達人)이다.

그리고,

스스슥---

한 줄기 왜영이 쌍검군자 앞으로 날아내렸다.

타는 듯이 붉은 홍의를 걸친 깜찍한 소녀였다.

(천산홍연(天山紅燕) 위지련...)

그 소녀는 능천한도 일전에 본적이 있는 천산노인의 제자 천산홍연이었다.

[대숙(大叔)! 맹주언니는 혈종과 충돌에 대비하여 외곽에 포진하시겠다고 하셨어요.]

위지련의 말에 쌍검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들어가자!]

[!]

스스스슥---

휘르르르---

쌍검군자와 위지련도 표표히 고정 속으로 날아 들어갔다.

(벽라누임이 와 계시는 모양이군!)

능천한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그때였다.

--- ---

스스스슥---

두 줄기 인영이 동시에 나타나 고정으로 뛰어 들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런 폐장에 무림인들이 저같이 모여드는가?)

문득 능천한의 뇌리에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혹시... 저 고정이 여황궁과 관련되는 것이 아닐까?)

능천한은 생각에 잠겼다.

그 사이에 이삼십여 명의 정사양도의 고수들이 고정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메뚜기떼같이 날아들던 무림인들의 종적도 뜸해지고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이제 끝인가?)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돌아보았다.

[우리도 가봅시다.]

[!]

헌데 두 남녀가 막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호호호호...]

한소리 맑기가 이를 데 없는 여인의 교소가 들렸다.

스스스---

이어 폐장 안으로 한 줄기 불타오르는 듯한 홍영(紅影)이 날아들었다.

일어서려다가 다시 몸을 낮춘 능천한은 날아든 홍영을 바라 보았다.

[...]

홍영을 바라보던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십여 세정도 되었을까?

홍영은 육감적인 갈색피부에 윤곽이 아주 뚜렷한 이국적인 용모의 여인이었다.

치렁치렁한 머릿결이 탐스럽고,

타는 듯 붉은 홍의에 감싸여 있는 육감적인 몸매가 연신 출렁이고 있었다.

가히 뇌쇄적이라 할만한 용모요 육체였다.

(대단한 미모와 색기의 소유자다.)

능천한은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색피부의 미녀는 그만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홍예!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보겠소?]

능천한은 전음으로 홍예선희에게 물었다.

[천첩도 저런 아이가 무림에 있다는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사옵니다.]

홍예선희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옥용에 안타까운 기색이 일었다.

(상공... 제발... 그 계집에게만 시선을 주지 마시옵소서.)

홍예선희는 홍의여인만 바라보는 능천한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는 냉혹한 손속을 지녔던 살수가 아니었다.

다만 한 남자의 사랑만을 기다리는 평범한 아녀자였다.

그때였다.

[--- --- ---]

갑자기 귓청을 찢는 날카로운 장소가 이 리 밖에서 들렸다.

(대단한 공력... 누구이기에...)

능천한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 장소성에 실린 공력이 적어도 육갑자에 이르는 것을 알아차린 때문이다.

[! 나 혼자 있고 싶었는데...]

홍의여인은 장소성이 들린 곳으로 혀를 낼름해보였다.

[검노(劍老)가 와보아야 헛탕만 칠걸!]

여인은 앙증맞은 표정을 지어 보았다.

[저곳에 숨어야지!]

--- --- !

이어 홍의여인은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

홍예선희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홍의여인이 날아든 곳은 바로 능천한과 그녀가 은신하고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 스슥!

전각으로 날아든 홍의여인도 질겁하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너무 놀라 까만 두눈을 화등잔만하게 치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둠 속에 능천한이 석상같이 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

[...!]

능천한의 시선과 홍의여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

능천한의 면모를 그제야 확인한 홍의여인의 옥용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 모습을 보며 흥예선희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 계집도... 상공께...)

그때였다.

스스스스--- 스슥!

안개가 퍼지듯이 폐장 안으로 한 줄기 청영(靑影)이 스며들었다.

[...!]

그 인물에게로 시선을 돌리던 능천한의 봉목에 형형하게 빛났고,

[! 헛수고나 하세요!]

홍의여인은 입안으로 재잘대며 청의인을 향해 혀를 낼름거렸다.

(대단하다. 은연 중에 흘리는 기도만으로도 누구든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능천한은 감탄의 눈길로 청의인을 바라보았다.

청의인은 나이를 알 수 없는 백발 노인이었다.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의 일신에서는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도가 흐르고 있었다.

능천한의 시선은 그 노인이 짊어지고 있는 장검(長劍)에 이르렀다.

장검은 무척 길었다.

길이는 무려 네가 여섯치나 되며,

폭은 한 치가 채 안되었다.

(저런 장검을 쓰는 곳은 단 한곳 동해(東海) 해천검파(海天劍派) ...)

능천한의 눈에서 형형한 신광이 흘렀다.

(변황제일검파라는 해천검파의 절정고수를 보게 되다니...!)

능천한이 내심 경이로워할 때,

[이곳에서 공주님의 웃음소리가 들린 듯 한데...]

창의노인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공주? 이 망나니같은 소저가... 공주라고?)

능천한은 고개를 돌려 홍의여인을 돌아보았다.

[!]

홍예선희 옆에 착 달라붙어 있던 홍의여인이 능천한에게 입술을 삐죽 내밀어 보였다.

[후훗...]

그런 여인의 모습이 귀여워 능천한은 나직이 웃음을 지었다.

--- !

순간 심신을 얼려버릴 듯한 검광(劍光)이 전각을 향하여 뇌전같이 흘렀다.

(대단한 이목! 단음기공을 썼건만...)

능천한은 감탄하며 천극(天戟)을 마주 내찔렀다.

--- --- 카캉!

불꽃이 튀고,

전각으로 날아들던 청의인의 검기가 산산이 부서졌다.

[...!]

검기를 부순 능천한은 몸을 일으켜 난간으로 나섰다.

[...!]

재차 검을 발출하려던 청의노인의 몸이 언뜻 굳어져 버렸다.

(... 태산같다. 신존(神尊)에 못지않은 기도를 지녔다니...)

능천한을 발견한 노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검의 예기에 평생을 걸어온 그다.

사람과, 그의 지닌바 무게 정도를 알아보는 데에는 이력이 난 청의노인이다.

그는 한눈에 능천한이 상대 못할 거산(巨山)임을 알아본다.

[...!]

청의노인은 노안을 부들부들 떨며 서 있었다.

(중원에... 이런 인물이 둘만 있으면... 신존의 대망이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청의노인은 복잡한 눈길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 가각!

섬전이 번뜩였는데 장검이 이미 검집으로 들어갔고,

--- 으윽!

일보를 내딛자 청의노인의 신형이 폐장 밖으로 날아갔다.

[...!]

청의노인이 사라지자 능천한은 비로소 긴장을 풀며 천극(天戟)을 거두었다.

(오빠보다도... 더 커보인다!)

그런 능천한을 넋이 나가 바라보는 눈길이 있다.

바로 홍의여인이었다.

[홍예, 가봅시다!]

스스스슥---

능천한이 몸을 움직여 고정 옆으로 날아내렸다.

--- !

--- 이익!

홍의여인과 홍예선희도 능천한의 뒤를 따라 옆으로 날아내렸다.

홍예선희는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난생 처음보는 홍의의 새까만 계집이 자기 팔을 꼭 끼고 붙어 다니기 때문이다.

[호호... 이봐요. 나는 사란(紗蘭)이에요! 남들은 공주라 부르죠!]

홍의여인이 능천한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사란... 예쁜 이름이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고정을 들여다보았다.

[와아! 사란의 이름이 예쁘다고요? 언니... 들었지? 들었지?]

능천한이 그냥 한 마디 했거늘,

사란은 길길이 날뛰며 좋아했다.

(의외로 순진한걸...)

그 모습에 홍예선희는 마음이 풀려 절로 미소를 지었다.

[맞아! 동생은 이름뿐 아니라 얼굴도 예뻐!]

홍예선희가 사란의 긴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호호... 언니 최고...]

사란은 홍예선희의 팔을 끼고 팔짝팔짝 뛰며 좋아했다.

[들어갑시다!]

--- !

능천한은 몸을 깃털같이 가볍게하여 고정 속으로 뛰어 들아갔다.

[함께 가요!]

사란이 홍예선희를 잡아끌며 그 뒤를 따랐다.

휘르르르르...

세 사람은 곧장 이십 장을 떨어져 내려갔다.

 

세 사람은 제법 널찍한, 물이마른 고정의 바닥에 이르렀다.

[어머멋!]

헌데 바닥에 내려선 직후 사란이 비명을 질렀다.

한쪽 벽에 큼직한 통로가 있었다.

한데 그 통로입구에 십여 명의 소녀가 죽어 넘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곱게 죽은 것이 아니고 사지가 찢어져 죽어 있는 것이었다.

(벽안독마... 그자 짓이군!)

능천한은 시신들이 시퍼렇게 변해있음을 보고 두눈을 싸늘하게 번득였다.

소녀들을 죽인 범인이 가장 먼저 고정으로 뛰어든 벽안독마임을 알아본 것이다.

--- --- !

능천한은 구름이 흐르듯이 통로 안쪽으로 날아들어 갔다.

통로 여기저기에는 입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인들의 시신이 나뒹굴고 있었다.

홍예선희는 질겁을 하는 사란을 이끌고 능천한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곧 널찍한 지하광장에 이르렀다.

(이런 곳에 지하광장이 있다니... 놀랍군!)

능천한은 담담한 눈빛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전면으로는 여러 방향으로 통하는 석문들이 있었다.

능천한은 어느 석문으로 들어갈까 망설였다.

그가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 --- --- 아악!]

어디선가 여인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한은 홍예선희를 돌아보았다.

[홍예! 그대는 사란소저와 이곳에서 기다리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홍예선희는 공손히 고개를 숙였으나 사란은 투덜대었다.

[이봐요! 우리는 왜 안 데려 가려는 것이에요!]

능천한은 엄한 눈길로 사란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 그대가 갈만한 곳이 못 되오. 여기서 홍예와 기다리시오!]

능천한의 엄한 말에 사란은 자라같이 목을 끌어당기며 투덜거렸다.

[! 저럴 때는 꼭 오빠같애...!]

스스스--- !

능천한은 투덜거리는 사란과 홍예선희를 뒤에 두고 바람같이 하나의 석문 안으로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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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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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七 章

 

                    天下第一妓女裸身

 

 

 

[중상이군...!]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홍예라는 여인의 상세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묵영독존의 묵강에 가격당하여 독기가 이미 골수로 스며들고 있는 상태였다.

범인(凡人)이라면 이미 독수로 녹아 절명했을 중태였다.

다만,

홍예라는 여인은 공력이 극고하고,

또 일종의 피독술(避毒術)을 연마한 덕분에 장시간 극독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우선... 급한 대로...!]

능천한은 품속을 뒤져 한 알의 환약을 여인의 입에 가져갔다.

그러나 혼절한 여인이 환약을 복용할 수 있을 리 없는 일!

[난처하군!]

능천한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결심하고는 환약을 자신의 입에 넣었다.

환약은 그의 입속에 들어가자 그대로 녹아 액체가 되었다.

능천한은 여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는 혀로 입술을 벌린 후 녹은 환약을 흘려넣어주었다.

(입술이...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달콤하구나!)

능천한은 고소를 머금으며 입술을 떼었다.

[독기가 더 이상 퍼지지는 않을 것이니... 어디론가 조용한 곳으로 가서 독기를 제거시켜 주어야겠다!]

능천한은 여인의 교구를 안아들었다.

여인의 교구는 무척이나 나긋나긋하였다.

(옥진의 몸이 생각나는군!)

능천한은 갑자기 불끈 열기가 치솟음을 느끼며 당혹해 했다.

그의 뇌리에는 떠나기 전에 자신에게 순결을 바친 천약관음 교옥진이 떠올랏다.

[환자를 두고 망상을 하다니...!]

스스스스슥!

능천한의 자책하며 몸을 날렸다.

 

화르르르르---!

천폭환상영을 펼친 능천한은 삽시에 삼십 리를 움직였다.

문득 능천한의 두 눈이 이채를 발했다.

멀리 어둠 속에 장원(莊園)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저런 곳에 장원이 있다니...]

능천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일단 가보자!]

스스스스스!

능천한은 선풍을 휘몰아 일시에 장원 앞으로 날아갔다.

[폐장(廢莊)이 아닌가?]

이윽고 장원 앞으로 날아내린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장원은 질퍽한 습지 가운데에 세워져 있었다.

원래는 매우 웅장하고 화려한 장원이었던 듯이 보였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아주 을씨년스런 몰골을 하고 있는 장원이다.

담벼락은 허물어져 물러 앉았고,

장원문은 풍상에 지쳐 썩어 문드러졌다.

[달리 갈 곳도 없고... 잠깐 머물며 치료할 곳이야 있겠지!]

능천한은 홍예를 안고 장원 안으로 들어갔다.

[...!]

장원문을 들어선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무성하게 우거진 잡초들,

허물어져 내리고 썩어 뒤틀어진 석가래와 기둥들...

부서져 나뒹구는 석조들과 기왓장...

너무도 을씨년스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머뭇거릴 처지가 아니었다.

스스슥!

능천한은 홍예를 안고 물이 흐르듯이 폐장 깊숙이로 들어갔다.

능천한은 여인을 치료할 한적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장원은 너무 오랫동안 버러져 황폐해질대로 황폐해 있었다.

[! 성한 건물이 하나도 없다니...!]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 ! --- !

그의 발밑에서 마른 풀과 나뭇이플이 부수어졌다.

어느덧 능천한은 폐장의 후원에 이르러 있었다.

그 정원은 몹시도 화려하던 정원으로 보였다.

기기묘묘한 가산과 연못들이 곳곳에 벌려 있었다.

그러나 화원은 잡초로 뒤덮이고, 연못은 썩은 물로 시커멓게 차있었다.

능천한은 정원을 둘러보았다.

정원끝쪽에는 큼직한 고정(古井)이 하나 있었다.

청석을 깎아 난간을 만든 우물이었다.

그리고 고정(古井)의 뒤쪽으로 한 채의 이층누각이 있었다.

그 이층누각은 다른 전각들에 비하여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곳이 그런대로 낫군!]

화르르르---!

능천한은 한걸음에 정원을 날아 넘어 누각의 이층으로 내려섰다.

--- !

능천한은 창문을 열고 들어갔다.

먼지가 수북이 쌓였으나 매우 조용했다.

능천한은 바닥에 깔린 먼지를 쓸고 홍예라는 여인을 조심스럽게 뉘였다.

[급하군!]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여인의 전신이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강한 내공을 지닌 여인이다. 여염집의 아녀자로 보이거늘...)

능천한은 여인의 얼굴을 가린 면사를 걷어 내었다.

[!]

면사를 걷어낸 능천한의 두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나타난 여인의 얼굴!

그것을 어찌 인간의 용모라 하겠는가?

차라리 우물(尤物)이라함이 옳을 것이다.

너무도 완벽한 아름다운 옥용이 거기에 있었다.

싸늘함이 서려 있으나 한번 보면 평생을 잊지 못할 미인이었다.

그녀의 미모를 내려다보며 능천한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벽라누님에 못지 않은걸...)

능천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 어쩌다가 묵영독존과 충돌하여 이지경이 되었는가?]

그 미녀의 옥용에 검은 독기가 가득한 것이다.

--- 이이잉!

곧 지극히 맑고 향기로운 기류가 능천한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천약심향대법(天藥心香大法)으로 얻은 약종피독지기(藥宗避毒之氣)인 그것은 만독과 극성이다.

스스스스스스...!

우르르르르...!

능천한의 약종피독지기가 노도같이 홍예라는 여인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며,

홍예의 전신에 퍼져 있던 극독이 얼음깨지듯이 무너져 나갔다.

삽시에 새카맣던 홍에의 피부가 백옥(白玉)같이 해맑게 변해갔다.

이윽고 홍예라는 여인의 몸에서 완전한 독기가 가셨다.

그러나,

[어찌 깨어나지를 않는가?]

능천한은 검미를 찌푸렸다.

중독에서 벗어났음에도 홍예라는 여인은 깨어날 줄을 몰랐던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능천한은 여인의 심맥을 살폈다.

그녀의 맥문을 쥔 그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그렇군, 묵영독존과 대치햇을 때 일어난 기도(氣道)의 파동(波動)이 심력(心力)을 부수었구나!]

중얼거리던 능천한의 안색이 당혹하게 변했다.

[추궁과혈(追宮過穴)로 심기(心氣)를 일으켜 주어야 하는데...!]

추궁과혈을 하려면 의복을 모두 벗겨야한다.

능천한이 당혹해 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곤란하군! 어찌해야 하는가?]

능천한은 안절부절하며 여전히 혼수상태인 홍예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능천한의 눈에 결연한 빛이 떠올랐다.

[귀중한 생명이 달린 일이다. 우선 깨워 놓은 뒤... 죄를 빌 수 밖에...!]

능천한은 홍예의 저고리 옷고름에 손을 가져갔다.

사르르르...!

능천한의 손길에 옷고름이 풀어져 내려지며 풍만한 젖무덤이 붉은 젖가리개에 꼭 눌린 채 나타났다.

[!]

능천한은 길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여인의 풍염한 젖무덤이 그를 후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각! 사각!

이어 붉은 젖가리개마저 홍예의 젖무덤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자 나타나는 수밀도!

우람한 한쌍의 육봉이 허공을 향해 곤두선 채 물결을 일으켰다.

한데,

[이것은...!]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번뜩거렸다.

그의 시선은 홍예의 왼쪽 유방에는 흉칙한 자상(刺傷)이 나있었던 것이다.

예리한 병기가 참외를 쪼개어 놓듯이 왼쪽 유방을 두 쪽으로 잘라놓고 있었다.

능천한은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황산(黃山)에서 벽향(碧香)이란 계집에게도 이 부위에 패천신륜으로 상처를 입혔거늘...]

능천한은 홍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분명코 벽향이 아니었다.

[우연의 일치겠지!]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홍예의 치마에 손을 대었다.

사르르륵!

사각! 사각!

홍예의 붉은 치마가 그의 손길 아래서 벗겨져 내려갔다.

[... ...!]

능천한의 두 눈이 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손길 아래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나신이 그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룩한 세류요(細柳腰).

수줍게 숨어 있는 귀여운 배꼽,

그리고 끊어질 듯 가느다란 세류요의 밑으로 대지(大地)와도 같이 펑퍼짐한 둔부가 쫙 퍼져 있으며,

그 둔부의 전면, 두 개의 백옥기둥이 만나는 곳...

[허억!]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성숙한 여인의 비소(秘所)!

그 신비지가 무성한 방초(芳草)와 촉촉한 홍무(紅霧)에 젖어 나타난 것이다.

[흐음...]

능천한은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방초 속의 비소가 자꾸 그의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다.

[처음 대하는 여체도 아니거늘... 마음이 이리 흔들리다니...]

능천한은 탄식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광양존후 금벽라.

천혜선자 제갈영라.

천약관음 교옥진...

그 세 명의 절세미인들을 처첩으로 둔 그이건만 어쩔 수 없이 이 홍예라는 여인의 육체에 호기심이 이는 것이다.

곧 그의 마음은 명경지수와 같이 맑아졌다.

천극대정신맥을 지닌 능천한이다.

일단 마음을 정히 하면 천지가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물며 여체의 유혹 정도야...

[천주(天株) 옥당(玉唐), 화개(華開), 옥침(玉枕)...]

파파파팟!

능천한의 쌍수가 경쾌하게 홍예의 나선위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그러자,

우르르르르!

쿠르르르르--- !

경쾌한 그의 손놀림에 따라 폭풍이 일었다.

능천한의 손끝에서 일어나는 잠력이 홍예의 심맥 속에 잠들어 있던 원영지기를 두들겨 깨우기 시작한 것이다.

쿠르르르르...

그 힘은 능천한의 손길이 진행될 수록 강해져만 갔다.

그에 따라 홍예의 백옥같은 나신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 --- 콰쾅!

거창한 잠력은 그대로 홍예의 임독양맥으로 치달았다.

무인이라면 꿈에라도 관통시키고 싶어하는 생사현관이 그곳이다.

하나,

(의외군! 생사현관까지 타통되어 있었다니!)

능천한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홍예의 생사현관은 의외로 이미 타통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외로 절정에 이른 고수였다.)

능천한은 잠시 망설였다.

쿠르르르르릉!

그가 일으킨 장력은 곧장 홍예의 천지이교(天地二交)로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천지이교를 관통시켜줄 것인가?)

한순간 그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천지이교를 관통시켜줌은 범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물론 천년공력을 지닌 능천한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천지이교를 관통시켜주면 단번에 몇배 강한 고수가 되고...

그가 홍예라는 여인이 악녀(惡女)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기왕에 손을 썼으니...]

이내 능천한은 결심을 했다.

그녀의 천지이교를 관통시켜 주기로,

그 순간,

--- 우우웅!

능천한에게서 거창한 공력이 홍예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족히 오륙백년수위의...

한순간,

--- --- --- !

홍예의 몸에서 벼락치는 폭발이 터졌다.

그와 함께,

[!]

홍에라는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펄쩍 몸을 흔들고는 깨어났다.

[...]

정신을 차린 홍예의 봉목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당신이... 이이...]

--- !

홍예라는 다짜고짜 능천한의 따귀를 올려붙였다.

깨어나보니 능천한이 자신을 발가봇겨 놓고 주물러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능천한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음에도 그냥 한대 맞아주었다.

그러고는,

[옷을 입시오!]

오히려 온화하게 웃어보이며 몸을 돌렸다.

[...]

그제야 홍예라는 여인은 전후사정을 이해하고 놀라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왼쪽 유방을 가렸다.

이내 그녀의 봉목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다행히... 이 천한 계집의 정체를 알지 못하셨구나...)

여인의 눈빛이 복잡하게 빛났다.

죄책감과 연모,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또한,

(... 천지이교마저 타통시켜주시다니...)

능천한이 자신의 천지이교를 타통시켜 주었음을 깨닫자,

그녀의 봉목은 더욱 크게 흔들렸다.

[...!]

홍에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능천한이 벗겨놓은 자신의 의복을 교구에 걸쳤다.

(패공산에서 본지 석달이 겨우 지났거늘... 추측키 힘든 절대자(絶代者)가 되셨다.)

여인은 볼을 붉히며 능천한의 넓은 등을 보였다.

이내 그녀는 의복을 걸치고 능천한의 뒤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천녀 홍예... 은공의 구하심에 감사드리옵니다.]

여인이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자 능천한은 천천히 돌아앉았다.

그의 눈에 흐릿한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소저께 만화원주(萬花院主) 홍예선희(紅睿仙姬)셨다니... 의외구려.]

능천한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화원주(萬花院主) 홍예선희(紅睿仙姬)>

 

금릉에는 만화원(萬花院)이라는 기루(妓樓)가 있다.

만화원은 금릉, 아니 중원 천하에서 가장 큰 기루다.

경국지색의 절세미녀 일천(一千)이 기녀로 있으며,

한 기녀에게 열 명의 시녀들이 있다.

시녀들이라고 해도 하나하나가 빼어난 미인들이다.

만화원의 기녀들에게는 서열이 있다.

일천번부터 일번까지의 서열이 그것이다.

이 서열은 기녀들의 미모와 재기로 가려지는 것으로 일천번째 서열의 기녀라도 가히 경국지색으로 불릴만한 미인이다.

만화원은 진회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데 기녀들의 화대가 높은 것으로 또한 유명하다.

일천번째 서열인 화정(花情)을 하룻밤 안으려면 황금 오백냥을 들여야 한다.

황금 오백냥.

서민들은 상상도 못할 거금이다.

기녀들의 서열이 한등급씩 오를 때마다 화대는 곱절로 뛴다.

그래도 중원천하의 고관거부들은 눈에 불을 켜고 만화원의 꽃()들을 안으려고 한다.

대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만화원의 기녀들은 사내를 신선지경으로 보내는 기막힌 재주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화원의 기녀들 중 서열 일백위 이상의 기녀를 안은 사람은 없다.

이유는 그녀들의 화대가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서열 일백위인 기녀는 월랑()이라는 기녀다.

그녀의 화대는 무려 일백만냥의 황금이다.

이제껏 그녀를 안은 사람은 고사하고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

누가 있어 기녀를 하룻밤 안고 일백만냥의 황금을 쓰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만화원의 서열제일위의 기녀!

그녀는 만화원의 기녀들의 총수일 뿐더러 만화원의 주인이다.

 

---홍예선희(紅睿仙姬).

 

바로 이 여인이 만화제일화(萬花第一花)이다.

그녀를 안으려면 황금 삼천만냥이 있어야 한다.

(홍예선희였다니... 의외로군!)

능천한은 두눈을 담담하게 빛냈다.

그와 마주앉아 있는 홍의미녀.

그녀가 바로 만화원주이며 만화제일화라는 홍예선희인 것이다.

마음은 얼음같으나 몸에는 화산(火山)을 품고 있는 여인.

(구허기를 잘했다. 사악한 여인이 아니니...)

능천한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능천한의 미소!

그것은 여인의 방심을 스르르 풀리게 하는 위력이 있는 것이다.

[...]

능천한의 미소를 접한 홍예선희는 넋이 나가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나의 방심마조 흔들어 놓으실 정도로... 멋있어지셨다.)

정신을 차린 그녀의 표정이 아주 기이하게 변했다.

웃는 것 같고 우는 것도 같은...

그런 홍예선희의 모습은 가히 뇌쇄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천하제일기녀(天下第一妓女)임은 분명하군!)

능천한은 부드러운 눈길로 홍예선희를 내려다보았다.

[...]

그의 시선을 받자 홍예선희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아직... 창백지신이리라!)

수줍어 하는 그녀의 모습에 능천한은 절로 마음이 훈훈해졌다.

사실 원수지간이어야할 두 사람이었건만,

우연한 기연으로 서로의 마음이 훈훈하게 풀려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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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六 章

 

              毒人美女

 

 

 

 

금릉(金陵).

남경(南京)이라고도 불리는 천년고도(千年古都).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이래 역대 남조(南朝)의 도움이었으며,

대명(大明) 제국이 패업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황도가 연경(燕京)으로 불리던 북경(北京)옮겨진 지는 이미 오래다.

때문에 금릉의 성세가 전일만 같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금릉은 여전히 강남(江南)의 문물과 번영의 중심지이다.

 

진회하(秦淮河).

장강(長江)의 한 지류로서 금릉의 서쪽을 끼고 물줄기다.

전설에 의하면 진회하는 진시황이 금릉의 왕기를 끊기 위해 판 운하라고 한다.

진실이야 어떻하든 진회하는 풍광의 수려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진회하는 화향(花香)을 뿌리는 노류장화(路柳墻花)들로 유명하다.

진회하 일대에 천하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환락가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강과 합류하기 위해 북쪽으로 물길을 트는 곳에 이르면 진회하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다.

굽이돌고 휘돌아 치는 어지러운 물결,

거센 하로(河路)가 섬뜩함을 느끼게 한다.

그곳은 영진산(寧鎭山).

그다지 높지는 않으나 험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험산이다.

 

때는 늦어 어둠이 어슴프레 깔리기 시작하는 황혼녘이었다.

스스스스슥!

어두워지는 영진산을 저녁노을같이 흐르는 인영이 있다.

일신에 황포를 걸친 영준한 청년,

영준하다고는 하지만 그 영준함이 기품에 눌려 빛을 잃는,

태산의 풍도를 지닌 청년이었다.

[...!]

휘르르르르---!

묵직한 극()을 옆에 비껴 든 청년은 묵묵히 전면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의 일보가 내딛여지면 그의 신형은 이미 백 장을 나가 있었다.

문득,

[--- --- !]

어디선가 처절한 여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

황포청년의 검미가 꿈틀했다.

[대락 사마장 정도... 북쪽...!]

나직한 중얼거림이 그의 입에서 새어 흐르고,

스스--- 스슥!

그의 신형은 창공을 반으로 가르며 북쪽으로 날아갔다.

가공할 경공,

천폭환상영(天瀑幻像影)이 펼쳐진 것이다.

 

***.

 

이곳은 잡목이 우거진 산곡(山谷)이다.

산곡 중앙에는 한 대의 화려한 향차(香車)가 서 있었다.

이 험한 산중에 어찌 향차가 와 있는가?

게다가 향차 주변은 진한 피비린내로 뒤덮여 있었다.

마부석에는 한 명의 장한이 우뚝 서서 주위를 싸늘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흡사 철탑을 연상케 하는 거한이었다.

향차 주위로 십여 구의 시신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모두가 꽃다운 여인들이라는 점과,

그 여인들이 모두 목이 꺾어져 죽어 있다는 점이었다.

[... ... 네년이 바로...!]

향차 앞에 한 명의 요염한 미소부가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본래는 몹시 관능적이고 끈끈한 인상의 여인이나,

지금 이 순간은 공포와 분노로 교구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홍염선자(紅艶仙子)! 깨달음이 늦었다!]

그때 향차 안에서 냉막한 여인의 교갈이 터졌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이 아름다운 목소리이건만,

골수에 스미는 냉기가 서려 있는...

[두고 보자! 여황교(女皇敎)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 --- 애액!

홍염선자라는 여인은 이를 갈며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고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향차 안에서 다시 냉갈이 일고,

--- 으윽!

무지개같은 예기(銳氣)가 곧장 홍염선자의 목으로 날아갔다.

--- !

[--- !]

홍염선자의 교구가 허공에서 벼락을 맞은 듯이 출렁거리고,

--- !

사내께나 저승으로 보내었을 풍만한 풍체가 모질게 지면으로 나뒹굴었다.

[! 감히 여황교따위가 혈종(血宗)의 뜻을 거스리다니...!]

향차 안에서 예의 냉갈이 터졌다.

그때였다.

[크크... 혈종이 무어 대수라고 그러느냐?]

갑자기 싸늘한 일성이 향차 위의 허공에서 터졌다.

[!]

다급히 고개를 돌리던 마부석의 거한의 눈이 찌어질 듯이 치켜졌다.

향차 위쪽 십여 장 상공,

한 명의 시커먼 묵운(墨雲)에 뒤덮인 괴인이 둥실 떠있었던 것이다.

[묵영(墨影)...! ... 에엑!]

경악성을 지르던 거한이 목을 감싸쥐고 나뒹굴었다.

스스스스슥!

지면으로 나뒹군 거한의 동체가 삽시에 한줌의 시커먼 독수로 녹아버렸다.

그와 함께,

--- --- 쿠쿵!

콰르르르르---

벼락이 치듯!

시커먼 묵강(墨罡)이 향차로 쏟아졌다.

[--- !]

--- 지직!

--- --- 아악!

그 순간 향차가 박살나며 향차 안에서 한 줄기 홍영(紅影)이 쏟아져 나왔다.

일견하여 그 홍영은 홍의를 꼭 끼게 걸친 여인이었다.

--- 르르릉!

히히히히--- !

묵강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향차가 박살나고 향차를 끌던 준마들이 박살이 나서 즉사했다.

[()...!]

휘르르르르...!

묵인(墨人)을 노려보던 홍영이 다급히 교구를 비틀었다.

천지를 뒤덮으며 시커먼 묵운이 뒤덮어 온 것이다.

그녀는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르르르---!

뇌전(雷電)이 치듯 묵기가 홍의여인의 교구를 질타해 나갔다.

[!]

--- !

홍의여인은 비명을 앞으로 내려섰다.

[으으... !]

홍의여인은 아주 괴로운 신음성을 내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홍의여인(紅衣女人)!

얼굴은 면사에 가려 볼 수 없다.

그러나 꼭 끼는 홍의로 걸친 그녀의 몸에서는 폭발할 듯한 매력이 풍기고 있었다.

가히 뇌쇄적이라 할 만한 관능이었다.

하지만 그 관능적인 몸매가 삽시에 시커멓게 변색되어 가고 있었다.

지독한 극독에 중독당한 증세였다.

[으음... ... 그대가... ...!]

홍의여인은 자기 앞에 선 묵인을 노려보며 신음을 흘렸다.

 

---묵인(墨人).

 

그 인물은 먹물을 풀어놓은 듯이 시커먼 묵기(墨氣)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때문에 도저히 묵인의 용모를 알아볼 수 없었고,

다만,

--- 자자작!

뇌전같이 번뜩이는 한 쌍의 눈길만이 선명히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묵인이 서 있는 주위 십 장 방원의 잡초들이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그것은 묵인을 가린 묵기 속에 지독한 독기가 배어 있음을 뜻한다.

[홍예(紅霓)라고 불러주지!]

돌연 묵인이 지극히 패도적인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홍예!

 

그것이 여인의 이름인가?

[흐흣! 보존은 혈종을 무너뜨릴 작성이다!]

묵인이 홍의여인을 노려보며 말했다.

홍의여인은 죽어가면서도 얼음장같은 눈길로 묵인을 노려보았다.

[묵영독존(墨影毒尊)! 혈종을 과소평가하지 마랏! 혈종일문에는... 본녀같은 고수가 구름같이 있다.]

홍예라는 여인이 이를 갈며 내뱉았다.

 

---묵영독존(墨影毒尊)!

 

이 인물이 바로 일비(一秘)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인가?

운중(雲中)에서만 노닌다는 무림제일 신비인...,

또한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의 뒤를 이어 절대마종으로 떠오르는...

[후훗! 혈종의 잠력이 큰줄은 안다만... 혈종은 본존의 손바닥 안에 있다.]

[헛소리...!]

독기가 내부로 파고들어 홍예라는 여인은 말을 더듬거렸다.

[흐흐... 믿지 않는군! 어쨌든 좋다. 우주혈종(宇宙血宗)도 곧 구천독종(九天毒宗)이 자신의 상투 위에 앉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니...!]

--- 으윽!

묵영독존은 장을 쳐들었다.

[구천독종! 묵영독존... 당신이 바로 구천(九天)...!]

죽어가던 홍예가 번쩍 뛸 듯이 놀라 외쳤다.

[흐흐... 이제 그만 가거랏![

우르르르...!

--- 쿠쿵!

묵영독존의 우수에서 시커먼 묵강(墨罡)이 쏟아졌다.

(끝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다니...)

홍예는 눈을 감았다.

순간적으로 그녀의 눈앞에 영준한 청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천한(天漢)... 당신에게 죄를 빌 수 있기를 바랬는데...)

여인은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절대절명(絶代絶命)!

콰르르르릉!

묵영독존의 묵강이 여인의 교구 앞으로 닥쳤다.

바로 그때였다.

[천극망(天極網)!]

우렁찬 폭갈이 영진산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 자자--- 자장!

--- 쿠쿠---쿠쿠쿵!

빗발치듯하는 극영(戟影)이 그물같이 묵영독존의 머리 위로 뒤덮여 왔다.

[!]

묵영독존은 아연하였다.

허공!

극영(戟影)의 저 바깥쪽 허공에서 한 명의 황포청년이 내리 꽂히고 있었던 것이다.

한 자루 묵극(墨戟)을 무찔러내면서...

[--- 하앗!]

--- 이이이잉!

묵영독존은 위기를 직감하며 전력을 다하여 십 장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 으으윽!

그 순간,

그 많던 극영이 거짓말같이 사그러들었다.

(내친 공세로 저렇게 수월히 거두어들이다니...!)

묵영독존이 아연할 때,

휘르르르르...!

홍의여인 옆으로 황포청년이 극을 비껴들고 날아내렸다.

[...!]

[...!]

내려선 황포청년을 바라보던 홍예와 묵영독존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나를 아는 모양들인데...!)

황포청년은 극을 비껴든 채 묵영독존을 바라보았다.

묵영독존을 주시하던 황포청년의 두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강자(强者). 혈종에 못지 않은... 그리고... 저 묵강(墨罡)은 바로...!)

청년의 봉목에서 뇌전이 일었다.

그리고,

[으음... 패천잠룡(覇天潛龍)!]

묵영독존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렀다.

 

---패천잠룡!

 

황포청년은 바로 능천한이었다.

그는 자부(紫府)를 떠나 이곳 영진산으로 오는 길이었다.

자부문하로부터 영진산에 여황교의 흔적이 보인다는 전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본인을 아시는가?]

능천한이 묵직하게 물었다.

일순 묵영독존의 안광이 당황하여 흩어졌다.

[... 물론, 일잠룡(一潛龍)의 명성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

그리고는 묵영독존은 이내 냉정을 회복했다.

[본존은...!]

그가 말하려 하자 능천한이 말을 받았다.

[알고 있소. 묵영독존(墨影毒尊)이고... 구천독종의 당대 독종이겠지!]

[으음... 알아차렸는가?]

묵영독존이 묵기 속에서 신음했다.

그는 바로 저 구천묵독제의 뒤를 이은 구천독종의 후인이었던 것이다.

자부가 천년 동안 세외에서 웅크린 채 대비해온 바로 그...

(이토록 수월히 구천독종의 종주(宗主)와 만나게 되다니...!)

능천한의 두눈에서 줄기줄기 신광이 쏟아졌다.

우르르르---!

그와 함께 능천한의 몸에서 태산같은 기도가 일었다.

건들기만 하면 터질 활화산같이...

[그대가 구천(九天)의 후예라니... 잘 만났다.]

--- 이이잉!

천극(天戟)에서도 가공할 기류가 줄줄이 쏟아졌다.

그모습에 구천묵영독종은 괴롭게 말을 꺼냈다.

[패천잠룡... 그대는 당세의 유일한 영웅이다. 그대와는 다투고 싶지 않다. 그러나... !]

말을 하던 묵영독존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스스스스스...!

능천한의 일신에서 폐부를 시원하게 하는 향기가 일고,

그 향기에 닿자 묵독강기가 봄눈 녹듯이 녹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 약종지기(藥宗之氣)... 자부의 진전마저 얻었단... 말이냐?]

묵영독존이 경악하여 물었다.

[그렇다! 이제 왜 본인이 그대와의 일전을 고집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알겠는가?]

[으으음...!]

츠츠츠츠---!

묵영독존의 묵독강기도 파동을 일으키며 더욱 짙어졌다.

(자부와는... 인연이 없길 바랬다. 그러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기에...)

묵영독존이 묵기 속에서 아주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 이이이잉!

우우우--- 우우웅!

양 절대고수들 사이에서 가공할 기도(氣道)가 천장을 뻗쳤다.

묵영독존의 기도는 극강패도(極剛覇道)적인 것임에 비해,

능천한의 그것은 태산과도 같은 장쾌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라도 능히 기도만으로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

양인 모두 초극(超極)에 이른 절정고수들이기 때문이다.

[--- !]

--- 우웅!

홍예라는 여인이 모로 쓰러졌다.

그렇잖아도 중독된 몸이었던지라 두 절정고수가 일으킨 무형기도에 심력(心力)이 타격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 안돼! 그대와는... 투지(鬪志)가 일지 않는다!]

화르르르---!

묵영독존이 괴롭게 말하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가지 마랏!]

--- 이이잉!

--- --- !

능천한이 폭갈하며 천극을 무찔러 내었다.

그러나,

[정말이다. 그대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

--- 쿠쿵!

묵영독존은 묵독강기를 일으켜 극영(戟影)을 막아내며 까마득하게 치솟아 올랐다.

[그 계집이나 돌보게... 죽일 생각이었으나... 후일 그대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계집이니...]

멀리서 묵영독존의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능천한은 쫓아가려다가 다시 홍의여인 옆으로 내려섰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목소리가 낯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와 안면이 있는 인물같기도 한데...]

능천한은 복잡한 신색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안색에 한 줄기 고소가 떠올랐다.

[어차피... 일전을 치러야 할 인물이거늘... 웬지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구천묵독제와같이 편협하거나 악독한 인물같지도 않고...]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쓰러져 있는 홍의여인에게로 몸을 돌렸다.

[구천의 저주가... 실현되지 않는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

능천한은 독백하며 홍의여인의 상세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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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五 章

 

               女子들의 時代

 

 

 

 

자허천부(紫虛天府),

그 거대한 석전 뒤로 아담한 장원이 세워졌다.

그것은 제갈영라와 천약관음 교옥진이 능천한을 위로 세운 것이다.

 

<자허소축(紫虛少築).>

 

이것이 그 장원에 붙여진 이름이고,

자부의 전 문하가 정성을 쏟아 자허소축을 다듬었다.

물론 가장 정성을 쏟은 사람은 제갈영라와 교옥진이었다.

왜냐하면 자허소축이 자신들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허소축은 천외선경(天外仙境)과 같이 되었다.

아마 황실의 별원(別院)이라 해도 이같지는 못하리라.

 

시간은 때로 겨울밤같이 길 때도 있으나,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일순간같이 빠를 때도 있다.

능천한에게 지난 석달의 시간은 꼭 그러하였다.

자허천부!

자부천세의 영화가 깃든 그곳에서 능천한은 석달을 보냈다.

그 석달의 고련은 잠룡(潛龍)을 신룡(神龍)으로 성장시키는 재탄생의 시간이었다.

인간의 육향(肉香)이라고는 없는 석전(石殿)...

그 차가운 석전에서 능천한은 한 병의 공청석유만을 지닌 채 석달을 살았다.

만권의 경서가 그의 뇌리에 첨가되었고,

만종의 무공이 그의 쌍수에 익어갔다.

천수약왕의 희생,

그 값진 희생으로 능천한의 일신에서는 천년공력이 쌓이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인간의 힘이 아닌 것이었다.

그리고 능천한은 마침내 석전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일신에 과연 얼마만큼의 잠력이 첨가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

맹하(猛夏)는 어느덧 절정에 이르러 있었다.

 

자허소축의 가장 깊은 곳,

세외선경인 듯한 정원이 있다.

잘다듬어진 관목들 사이로 솟아있는 기기묘한 가산들,

가산 곳곳에서 옥수가 흘러 큼직한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연못에는 수련(水蓮)이 한창이어서 정원전체가 수련의 향기로 가득하였다.

[하하! 영라의 손길을 대하기도 참으로 오랜만이오!]

저녁호수같은 눈빛을 하고 초탈하게 웃는 청년이 있다.

연못가의 정자 안에서는 한 명의 황포청년이 비스듬히 앉아 미녀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미녀에게...

청의를 곱게 차린 난초같은 미녀가 청년의 터부룩한 수염을 깎아주고 있고,

백삼의 온화한 미인이 청년의 어깨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무리 무공에 몰두하시었더라도... 수염정도는 깎으실 일이 아니옵니까?]

청의미인이 청년을 책망하며 조심조심 손을 날렸다.

책망의 말이나 그 어조에는 기쁨과 사람이 담겨 있었다.

[하하, 영라가 깎아주길 바라고 깎지 않은 것이니...]

청년이 크게 웃었다.

분명 웃음소리는 크게 웃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청년의 입술은 움직이지 않았다.

[상공은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세요. 평소에는 점잖으다가도...]

청의미인이 살짝 볼을 붉혔다.

청년의 손이 그녀의 저고리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청년은 미소를 지으면서도 청의미녀의 뭉클하게 붕긋한 젖무덤을 더듬었다.

바라보던 백의미녀의 옥용이 발갛게 달아올랐으나,

두 여인은 그다지 꺼려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청년이 자신들의 일신을 맡아줄 주인이기 때문이며,

청년이 다만 탐욕으로 청의미녀의 젖무덤을 더듬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사각사각!

청의미녀는 젖무덤을 청년에게 맡긴 채 수염을 깎아 내려갔다.

드러나는 영준무비한 얼굴,

그는 능천한이었다.

(어머님을 일찍 여위셔서 모성애에 굶주린 탓이리라.)

백의미녀는 따뜻한 시선으로 능천한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천약관음 교옥진이었다.

문득,

[누구냐?]

교옥진이 서늘한 일갈을 토하며 정자 뒤쪽을 돌아보았다.

언제였는지 그곳에는 한 여인이 오체복지하고 있었다.

일신에 흑의를 꼭 끼게 걸친 여인이었다.

[녹림부주(綠林府主)... 어서 오세요!]

교옥진과 달리 제갈영라는 온화한 어조로 말하며 흑의여인을 바라보았다.

흑의여인의 일신에서는 칼날같은 예기가 흐르고 있었다.

[올라오너라!]

교옥진이 흑의여인을 향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하옵니다!]

흑의여인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여 정자로 올라왔다.

[...!]

정자로 올라온 흑의여인의 옥용이 살짝 상기되었다.

능천한이 제갈영라의 젖무덤을 더듬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대가 녹림대제(綠林大帝)의 제자인가?]

능천한이 몸을 일으켜 단좌하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무리가 없으시다. 일거수 일투족이 흐르는 물같으시니...!)

흑의여인의 싸늘한 옥용에 기광이 흘렀다.

그리고,

[녹림부(綠林府) 녹림천봉(綠林天鳳) 진예빈(珍霓賓)! 지존을 뵙습니다.]

흑의여인은 능천한에게 날아갈 듯이 절을 올렸다.

 

---녹림부(綠林府).

 

천하는 모른다.

녹림이 자부의 가장 큰 분부(分府)이고,

녹림을 일통한 녹림대제가 자부오대공봉(紫府五大公封)의 일인임을...

자부가 지닌 인절(人絶) 중 가장 큰부분을 녹림이 차지하고 있다.

녹림천봉 진예빈.

그녀는 녹림대제(綠林大帝)의 손녀되는 여인이다.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는 녹림대제의 실종이후 두 가지 신분으로 녹림을 호령해왔다.

, 녹림대제의 손녀인 녹림천봉의 신분이 그 하나이고,

녹림대제의 제자인 녹림천신(綠林天神)의 신분이 다른 하나이다.

(녹림에 천봉(天鳳)이 있음을 들었거늘... 허언이 아니었군!)

능천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인재(人才)들이 어찌 여인 중에서만 나는가? 항차 천하가 여인천하(女人天下)가 되지 않겠는가?]

능천한의 껄껄 웃자 녹림천봉의 옥용이 도화빛으로 물들었다.

능천한이 자신을 칭찬함을 알기 때문이다.

광양존후 금벽라.

천혜선자 제갈영라.

천약관음 교옥진.

그리고 녹림천봉 진예빈.

진실로 뛰어난 인재들은 사실 여인들 중에 많이 있는 것이다.

제갈영라가 미소를 지었다.

[하오나... 신첩들이 아무리 숫자가 많아야 상공한분만 낫지못함 또한 사실이 아니옵니까?]

능천한이 마주 웃었다.

[큰손 하나가 작은 손들만 못하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아야 하오!]

능천한은 껄껄 웃었다.

그런 능천한을 우러러보며 진예빈의 시선이 들렸다.

(크다. 흔적이 없는 중에 창천을 가득 메우는 기도를 지니셨다.)

그런 진예빈을 향하여 교옥진이 부드럽데 물었다.

[강호정세가 어떠한지... 지존께 말씀 드리거라!]

진예빈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였다.

[네 대사고!]

 

---대사고(大師姑).

교옥진은 배분상 진예진보다 두세배분이 위다.

천수약왕(天手藥王)의 배분이 자부오대공봉 중 으뜸이었던 때문이고,

지금 교옥진이 그 천수약왕의 공봉지위를 이은 상태였다.

[혈종(血宗)... 군사님의 뜻대로 천하를 석권하였습니다!]

진예빈의 말에 제갈영라는 한초롬이 웃었다.

[물론 그것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이지만... 어찌되었는지 혈종은 강남북 십삼개성을 수하에 넣었습니다.]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혈종오패(血宗五覇)를 앞에 내세운 혈종문(血宗門)은 천하위에 군림하였다.

무당파 소림이 천하에 등을 돌리고 혈종의 수족이 되었으며,

칠파일방이 문을 닫고 봉파에 들어갔다.

한때 혈종의 골치를 썩이던 사해정검맹과 녹림맹도 세외로 잠적한지 오래였다.

일견하여 천하가 혈종천하(血宗天下)가 된듯이 보인다.

그러나 진정코 그것은 표면의 현상일 뿐이다.

사해정검맹이 주축되어 암중에 커다란 잠력이 모여들고 있다.

그 힘은 녹림과 정파를 묶는 거창한 것이고,

그 잠력은 광양존후를 핵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제갈영라의 치밀한 배려가 있음을 천하는 꿈에도 모른다.

그리고 제갈영라는 자부의 잠력으로 또 하나의 거대한 힘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능천한의 복안이었으나 제갈영라와 교옥진이 실행하고 있었다.

 

[하온데... 의외의 변수들이 보이고 있사옵니다.]

지예빈의 말이 교옥진과 제갈영라의 안색이 다소 흔들렸다.

다만 능천한은 여전히 담담한 기색이었다.

[예측했던 일이지.]

능천한의 미소에 제갈영라는 자기 남편의 얼굴을 새삼 올려다보았다.

[예측하시다니요?]

교옥진의 물음에 능천한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지가 어지럽소. 구천(九天)의 저주가 깨어날 뿐더러... 변황의 거성(巨星)이 중원으로 향하고... 또한 중원내부에서도 전혀 새로운 요기(妖氣)가 날로 빛을 더하니...]

세 여인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천기를 읽으시다니... 만절조사(萬絶祖師)의 경지에 드셨단 말인가?)

여인들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 놀라움은 기쁨과 상통하는 것!

능천한이 거()해질 수록 자신들의 영화가 되므로,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황실(皇室)... 역모의 기미가 보입니다.]

[역모...]

능천한은 다시 비스듬히 몸을 뉘었다.

[...!]

천약관음 교옥진이 살포시 그를 안아 받혀 주었다.

능천한은 교옥진의 가슴에 기댄 채 진예빈의 말을 들었다.

[반년 전 새로 즉위한 선덕제(宣德)는 아직 약관이고... 세 분의 황숙(皇叔)들은 모두 야심이 큰분들인지라... 황실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옵니다.]

제갈영라가 말을 받았다.

[황실의 흔들림을 변수라 함은... 황실에서 절대강자(絶代强者)의 그림자가 보이는 모양이군요.]

교옥진과 진예빈은 감탄의 표정이 되었다.

[그렇사옵니다. 아직 정확히 정채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아주 강한 거인(巨人)이 황실 뒤에 있습니다.]

[혈종과 천하무림도 그것을 아는가?]

능천한이 물었다.

[알지 못하는 것으로 압니다. 저희도 우연한 기회에 안 것 뿐이니...]

(황실에 거인이 도사리고 있다...)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교수를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황숙 중 조왕(趙王) 휘하의 태백삼성(太白三星)이 선덕제를 시해하려다 암중거인의 일거수에 몰살당하는 장면을 수하들이 우연히 목도하였다 하옵니다!]

[태백삼성을 일거수에...]

제갈영라의 안색마저 일변하였다.

 

황실은 무림과는 독자적인 무공을 발전시켜왔고,

황실의 보호 속에 황실무학은 가공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강호와는 달리 무공이 단절되는 일이 없는 까닭이다.

태백삼성이란 황실에는 손꼽히는 강자들로서,

무림에 나온다면 초절정으로 불리는 자들이다.

천하를 통틀어도 그들 삼인을 일거수에 쓰러뜨릴 고수는 전무하다시피 한다.

(태백삼성을 일거수에 쓰러뜨렸다면... 혈종 이상의 강자라는 얘긴데...)

능천한은 많은 인물들을 뇌리에 떠올렸으나 마땅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다만... 아버님이 패천신륜까지 지니신 상태다면 가능하겠지.)

능천한은 아버지 패천황룡을 머리에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젓고 말았다.

패천신륜은 자신에게 있으므로,

그때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여황궁(女皇宮)에서 가공할 고수가 자라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여황궁? 여황교(女皇敎)의 총단에서?]

능천한이 진예빈을 바라보았다.

 

<여황교(女皇敎)>

 

백여 년의 전통을 지닌 여인교(女人敎).

초대교주는 여천제(女天帝) 예화원(藝華元).

그녀는 원조(元朝)의 공주(公主)였고,

원조가 만리장성 밖으로 밀려날 때 함께 가지 못한 원조의 여인들을 모아 여황교를 세웠다.

대대로 여황교는 세외(世外)에 있으면서 한을 가진 여인들을 수렴하여 왔다.

여인(女人)들의 힘,

그것은 때로 무섭게 성장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그 여인들이 하나같이 절세미녀들인 경우에는 말이다.

여황교의 세력은 욱일승천하였고,

마침내 그녀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원조를 부활시켜 보겠다는 야심 아닌 야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사십여 년 전,

당시의 여황교주 대천후(大天后)는 가공할 힘으로 일어섰다.

천하가 일시에 여인천하(女人天下)가 되는 듯이 보였으나...

 

---여인된 자로 어찌 망상을 하는가?

 

한 거인(巨人)의 폭갈 속에 여황교는 안개같이 스러졌다.

패천황룡(覇天皇龍)!

그 거인을 대천후는 간과했다.

결국 대천후는 패천황룡인의 철수(鐵手) 아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기필코... 복수하겠어요.

 

대천후의 여제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사부 대천후의 시신을 안고 세외로 갔다.

그후 여황교 세외에서 칼을 갈아왔다.

[소문에 의하면 천향옥잠(天香玉簪)이 여황교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천환여제는 천향옥잠으로 한 명의 소녀를 제이의 천향염후로 기르고 있다고 하옵니다.]

[그런 일이... 전혀 생각지 못한 변수가...]

제갈영라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진예빈이 말을 이었다.

[그 소문이 천하에 나돌자 혈종측에서 눈에 불을 켜고 여황궁을 찾고 있으며 많은 세외효웅들도 준동하기 시작하고 있사옵니다.]

[...!]

[...!]

교옥진과 제갈영라는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의 안색은 여전히 평온하였다.

[출도를 서둘러야 하겠사옵니다.]

제갈영라가 능천한에게 나직이 말했다.

그녀의 옥용에는 일말의 아쉬운 기운이 감돌았다.

(석달만에 상공을 모실 수 있어 기뻐했거늘... 상공을 아니 보내 드릴 수 없으니...)

교옥진이 진예빈을 돌아보았다.

수고했다. 약왕전에 네게 주려고 준비한 것이 있으니 갖고 녹림으로 돌아가 지존을 모실 준비를 하거라!]

녹림천봉 진예빈은 능천한에게 절을 올린 뒤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이어,

스스스슥!

진예빈은 영교한 신법으로 자허소축을 날아나갔다.

능천한은 보는 듯 마는 듯한 시선으로 사라지는 진예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제갈영라가 능천한의 손에서 교수를 빼며 일어섰다.

[신첩은 자령친위대(紫靈天衛隊)의 수련장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제갈영라는 함초롬히 웃으며 교옥진을 바라보았다.

[언니가 상공을 시중들어주세요. 워낙 장난이 심한 분이시니...]

[아우님...]

교옥진의 볼이 화사하게 물들었다.

[떠나시기 전에 언니를 사랑해 주세요. 그것이... 상공을 기다릴 언니에게 큰 힘이 될터이니...]

능천한의 귓전으로 제갈영라의 전음성이 들렸다.

[영라... 그대는 욕심도 없구려!]

능천한이 고소를 지으며 제갈영라를 바라보았다.

사르르르...

제갈영라는 옷자락을 끌며 월동문 밖으로 사라졌다.

[...!]

단둘이 남게 되자 교육진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침을 느끼며 시선을 떨구었다.

문득,

[옥진의 가슴은 매우 따뜻하구려!]

능천한이 나직하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이 풍염한 교옥진의 젖무덤 사이로 파묻었다.

따스함과 달콤한 젖내음...

능천한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벽라누님의 젖무덤만하군!)

장난스런 그의 표정으로 한가닥 붉은 기운이 떠오르고,

[아아... ... 지존...]

교옥진의 입에서 나직한 교성이 터졌다.

강한 두 팔이 그녀의 허리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으며 그녀를 쓰러뜨린 것이다.

그리고 그 손길은 열기를 모아 그녀의 옷깃 사이로 파고 들었다.

[아아!]

열기는 교옥진의 교구에 환몽을 불어넣어 몽롱하게 만들었다.

수련(水蓮)의 향기 가득하고...

[아아... ... 지존...]

너무도 선연한 홍화(紅花)가 마음속에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무도 뾰애서 눈이 부신 동체 위로...

산산이 부서지는 연화향(蓮花香)과 함께 눈이 시린 홍화(紅花)가 한 송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아...]

고통과 함께 희열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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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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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四 章

 

                       軒轅天荒璧口訣

 

 

 

 

자허천부(紫虛天府)는 구십 구 개의 석실(石室)이 있다.

한데 그 방대하고 많은 자허천부의 석실들이 가득가득 차 있었다.

서책, 비급(秘笈)...

명인(名人)들이 남긴 명품(名品),

신병이기(神兵異器),

가히 천하의 제화가 모두 이곳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재화와 기진들은 일이백 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일천 수백 년의 장구한 세월동안에 쌓여온 것들이다.

자허천부에는 자부오절(紫府五絶)의 삼절(三絶)이 담겨 있는 것이다.

천하를 사고도 남을 재절(財絶),

천하를 뒤집기에 충분한 수많은 신공절기들의 기공절(奇功絶),

그리고 하늘이라도 가려버릴 수도 있다는 기절(機絶)이 그것이다.

 

[...!]

능천한은 팔충의 마지막 석실에 와 있었다.

그곳은 병기고(兵器庫)였다.

자허천부에는 만종(萬種)의 병기들이 있다.

특히 이곳 팔층의 중병고(重兵庫)에는 그중의 발군의 것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 중병고에 있는 것은 모두 천병보 천병일천좌에 드는 것들입니다.]

천수약왕이 능천한에게 설명했다.

[그렇겠소이다. 어느것 하나 범상한 것이 없으니...!]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보았다.

중병고에 보관되어 있는 신병의 숫자는 삼백종(三百種)을 넘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천병일천좌 안에 드는 절대신병들인 것이다.

능천한은 형형하게 눈을 빛냈다.

(이 신병(神兵)들로 고수들을 무장시킨다면... 사상최강의 군단이 되리라.)

능천한은 내심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자부(紫府)!

천세를 신비 속에 가려져 온 그 엄청난 잠력!

그것은 능히 일만명 초절정고수로 변신시키고도 남을 정도인 것이었다.

[...!]

능천한은 작은 옥함을 집어들었다.

그 안에는 열두 자루의 호접차(蝴蝶叉)가 들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여인들의 장신구라고 생각될 정도로 화려한 세공의 호접차들이었다.

그러나,

누가 있어 그것들의 진정코 무서운 내력을 알겠는가?

열두 개의 호접차!

그것은 천하삼대암기(天下三大暗器)에 드는 가공할 암기인 것을,

이름하여,

 

직녀호접차(織女蝴蝶),

 

호접천후(蝴蝶天后)라는 상고(上古)의 여고수가 남긴 것이다.

이는 호신강기 파해 전문의 암기로서,

직녀호접차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는 호신강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것이다.

(열두 개... 벽라누님과 영라 등에게 나누어주면 좋아하겠군!)

능천한은 직녀호접차를 집어넣고 구층으로 통하는 석문 앞으로 갔다.

(만종의 재화를 보시고도 단 하나만 취하시다니...)

천수약왕은 감탄의 눈길로 능천한의 뒷모습을 쫓았다.

그르르르르---!

능천한은 구층으로 올라갔다.

 

구층!

자허천부의 가장 위층인 이곳은 널찍한 하나의 대전이었다.

그곳은 흡사 환몽천유부(幻夢天遊府)를 연상케 했다.

이곳에 비장된 것들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천만금의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제일먼저 눈에 띈 것은 세 폭의 초상화였다.

[...!]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초상화 앞으로 다가갔다.

초상화의 세 인물들은 모두 중년인들이었다.

중앙의 인물은 절대종사(絶代宗師)의 기품이 흐르는 자삼의 중년인이었다.

사자같은 위엄과 만인을 절로 감복케 하는 기도가 흐르는...

(자부존(紫府尊)!)

능천한은 전율을 느꼈다.

그 초상화의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의 시선은 이어 자부존의 좌측에 있는 초상화로 옮겨졌다.

(이분은 만절기사(萬絶奇士)...!)

능천한의 눈길은 이어 마지막 초상화폭으로 옮겨졌다.

마지막 화폭에는 호미를 들고 있는 야인(野人)의 모습이 있었다.

약초를 담는 주머니를 옆에 찬...

(천외약종(天外藥宗)!

능천한의 두 눈이 엄숙하게 빛났다.

능천한은 세 초상화의 인물, 절대삼기(絶代三奇)의 초상화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지존...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으시겠다는 의지가 계시다...)

뒤에 시립한 천수약왕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극강(極强)은 부러지기 쉬운 법임을 깨달으시기를 빌 뿐...)

천수약왕은 탄식했다.

그러나 그는 능천하에게 천하제일재녀가 있음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세 분의... 구세(救世)의 뜨거운 의혈을 느끼외다. 구천독종이든 혈종이든 후생의 손으로 단절시켜 보일 것이니... 지켜보아주소서!]

능천한은 축원을 옮겼다.

절대삼기를 올려다보는 그의 시선이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는 능천한을 천수약왕은 감격의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삼기께서 남기신 유품들...!)

능천한은 초상화의 밑을 주시했다.

세 폭의 초상화 아래에는 각기 하나씩의 옥함이 뚜껑이 열린 채로 놓여 있었다.

능천한은 자부존 앞의 옥함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두 가지 물건이 있었다.

한 권의 두툼한 양피지 비급,

그리고 자광(紫光)이 안개처럼 서린 주먹만한 구슬이 그것이었다.

능천한은 먼저 비급을 집어들었다.

 

<자령천존경(紫靈天尊經).>

 

[자령천존경!]

능천한은 비급을 대충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자령천존경 맨 뒤쪽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그곳에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자부이대절기가 적혀 있었다.

 

자극천단강(紫極天丹罡),

 

자부존이 구천묵독제의 가슴을 박살내버린 절학이다.

이에는 한철벽도 꿰뚫는 패도적인 위력이 있었다.

 

자령천존수결(紫靈天尊手訣),

 

두 번째 절기인 자령천존수를 읽어 나가던 능천한의 안면이 부르르 떨렸다.

자령천존수의 구결에는 능천한이 일전에 대했던 초식에 들어있던 어떤 영감이 있었다.

,

패천륜식(覇天輪式)의 최후절초인 만겁패천초극류(覇天超極流)!

그 절대초식에 있던 막연하고도 거대한 영감이 있는 것이다.

천수약왕이 말했다.

[자령천존수는 상상 속의 절기입니다. 초절기(超絶技)라 불리는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자부존사께서도 창안만 하시고 연성은 하지 못하셨던 절기입니다.]

[...!]

능천한은 나직히 신음하며 자령천존경을 덮었다.

이어, 그는 주먹만한 자광(紫光)의 구슬을 집어 들었다.

(온기가 있다니... 예사의 물건이 아니다.)

능천한이 흠칫하는데 천수약왕이 설명했다.

[자부존 조사께서는 타계하시기 직전에 당신의 내공을 단주(丹珠)로 만들어 후세에 남겼습니다.]

[이것이 자부존께서 남긴 원영단주(元瓔丹珠)!]

능천한이 흠칫하였다.

[그렇습니다. 누구든 그것을 복용하여 녹일 수 있다면 일시에 자부존께서 지니셨던 막강한 내공을 얻게 됩니다.]

[...]

능천한은 원영단주를 내려다보며 무겁게 신음하였다.

[그러나...천세로 내려오며 어느 누구도 자부존조사님의 원영내단을 용해해 보겠다는 엄두는 내지 못하였습니다!]

천수약왕이 말의 여운을 끌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나로 하여금 이 원영단주를 복용하여 용해시키도록 할 생각이군!)

능천한은 말없이 원영단주를 다시 옥함에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만절기가 앞에 놓인 옥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아주 두터운 분량의 비급이 들어 있었다.

 

만절기환록(萬絶奇幻錄),

 

[영라가 좋아하겠군!]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천외약종 앞을 바라보았다.

천외약종 앞에도 한 권의 비급이 있었다.

 

약종천의보(藥宗天醫譜),

 

고금이래 그것을 능가할 수 없다는 의약비서였다.

그것들을 대충 둘러본 뒤에 능천한은 천수약종을 돌아보았다.

[자부노조께서 말씀하시기를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만...]

[이리오십시요!]

천수약왕은 즉시 한쪽으로 능천한을 데리고 갔다.

, 능천한은 세 장의 옥벽(玉璧)을 볼 수 있었다.

자질이 좋은 옥()을 얇게 깎아 판을 만들고,

그 위에 갑골문자로 글을 적어 놓은 것이었다.

[...!]

헌원천황벽을 받아든 능천한의 두눈이 형형한 신광을 쏟아내었다.

헌원천황벽의 구결들이 갑골문자로 되어 있으나 능천한에게 그것들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능천한은 자신도 망각하고 헌원천황벽의 구결로 몰두해 들어갔다.

(자리를 피해 드리는 것이 좋으리라.)

천수약왕은 소리없이 구층의 석전을 벗어났다.

석전을 나서며 천수약왕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이백 수십 년의 세월... 너무도 오랜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편히 쉴 날이 왔도다...]

천수약왕의 노안이 형형한 빛으로 가득 찼다.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

 

그것을 과연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전설속의 성인인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남긴 것이 아닌가 추측 될 뿐이다.

헌원천황벽!

그곳에 적혀 있는 것이 어떤 기발한 초식이나 내공 따위가 아니었다.

헌원천황벽은 형() 이전에 있엇던 의()와 만상(萬象) 이전의 대혼돈(大混沌)의 지극히 큰 이치를 가리키고 있었다.

말하자면 대천황(大天荒)의 이치와 그것을 수렴하는 방법상의 진리랄까?

그것은 내공이 아닌 심법(心法)에 가까운 것이었다.

능천한은 헌원천황벽의 구결들을 경이에 차서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그 구결(口訣)들에 명칭을 붙였다.

이름하여,

 

<천황대정존극심(天荒大正尊極心).>

 

만상(萬象)의 이치가 그안에 있으며.

천외천(天外天) 대자연(大自然)의 근원이 되는 아주 큰 힘이 그곳에 있었다.

대정지경(大正之境)!

그것은 곧 천인지경(天人之境)이리라.

삼라만상(三羅萬象)을 그 의지로 다스릴 수 있는 천신(天神)의 경지...!

그러나,

(무엇인가 빠져 있다.)

헌원천황벽의 구결을 모두 읽고 난 능천한의 검미가 모아졌다.

헌원천황벽의 일부분이 쾡하니 뚫린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떤... 큰 힘의 도움이 없이는 대성하기 힘들다.)

천황대정존극심!

그 이루고자 하는 경지가 너무도 크고 광활하다.

그 때문에 다만 인간의 잠재력만을 갖고는 오성 이상 대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천황(天荒)... 대천황연(大天荒衍)과 관련 있는 것일까?)

능천한의 얼굴이 아주 심각하게 변해갔다.

 

---대천황연(大天荒衍).

 

신기보(神奇譜)에 전하는 저 제일신기(第一神奇)가 느닷없이 떠오른 것은 무슨 이유일까?

(천황지기(天荒之氣)... 대천황연의 천황지기를 한 모금만 얻을 수 있어도... 천황대정존극신강(天荒大正尊極神罡)을 이루어 보겠으니...)

능천한은 고소를 지었다.

대천황연이 다만 전설임을 상기한 때문이다.

[결국... 지금 상태로는 삼성(三成)이상을 이룰 수 없겠군!]

능천한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헌원천황벽인 마지막 세번째 장의 끝부분을 주시하였다.

그곳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이 적혀 있었다.

 

---()의 하늘이 무너지리라. 천지(天地)가 마기(魔氣)로 가득하고 만상(萬象)이 혈기(血氣)로 스러지리니... 때가 이르러야 비로소 천황(天荒)의 큰 벽()이 열리리라.

 

X X X

 

[...!]

능천한,

상체를 벗어 우람한 어깨와 가슴이 철벽같이 보인다.

그는 한좌의 석상(石床)에 앉아 가부좌를 틀고 있다.

그리고,

스스스스스...!

매캐한, 그러나 폐부까지 시원해지는 약향(藥香)이 무럭무럭 일어나 석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널찍한 석실!

그 안에는 백팔 개의 향로(香爐)가 진형을 이루며 배열되어 있다.

약향은 바로 그 향로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약향!

그곳에는 만종(萬種)의 영약의 정화가 실려 있다.

 

---천약심향대법(天藥心香大法).

 

지금 석실에서는 천외약종의 최고대법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신체를 금강불괴로 만들며,

만독(萬毒)을 극할 수 있는 절대신체가 이루어지는...

스스스스...!

향로에서 피어오른 만종약향(萬種藥香)은 끊임없이 능천한의 오공과 팔만사천의 모공으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악향에서 몸을 가린 채 일인이 서 있었다.

천수약왕(天手藥王)이었다.

그는 노안을 형형하게 빛내며 능천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때가 되었습니다. 복용하십시오!]

천수약왕이 신중하게 말했다.

그러자 능천한은 손을 내밀어 석상에서 하나의 구슬을 집어들었다.

그것은 자부존이 남긴 원영내단이었다.

능천한은 그것을 들어 입에 집어넣었다.

우우우--- --- !

그와 함께 능천한의 몸 주위로 새파란 강기가 번져나왔다.

패천존후신강을 끌어올린 것이다.

능천한은 이내 무아지경에 들어갔다.

[...!]

그러자 천수약왕이 천천히 능천한에게 다가왔다.

그의 노안은 모종의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천약심향대법으로 얻은 오백 년 공력을 지존께 옮겨 드리리라!]

천수약왕은 능천한의 등뒤로 다가가 단좌하였다.

천수약왕은 자신도 천약심향대법을 한 차례 걸쳤고,

그 때문에 무적이라 할 수 있는 공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노노의 오백 년 공력을 이어받으시면 원영내단을 융해하실 수 있고... 새로이 천년 공력을 지니시게 될 것이니...]

--- 이이이잉!

천수약왕의 몸에서 지극히 강한 기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 르르릉!

그 강대한 기운은 노노로 변하여 능천한의 명문(名門)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

능천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약왕(藥王)...!)

그는 천수약왕이 자신에게 내공을 쏘아붓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찌하랴?

능천한은 다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존! 자부(紫府)가 천 년을 그늘에서 살아온 것이... 지존 한 분을 기다리기 위했던 것임을 잊지 마소서!]

천수약왕의 창노한 음성이 능천한의 귓전을 울렸다.

스스스스스---!

쿠르르르르--- 르르릉!

만종약향이 솜에 물이 스며들 듯이 빨려들고,

천수약왕의 몸에서 쏟아지는 극강한 공력의 폭류는 끊이지를 않았다.

--- 이이이이잉!

점차 능천한의 일신에서 장엄한 서기가 무지개같이 일었다.

(), (), (), (), ()...!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투지를 상식케하는 극고한 기도를 실은 서기였다.

우르르르르...!

능천한의 몸에서 뻗치는 서기는 갈수록 더욱 짙어졌고,

그에 따라 천수약왕의 신색은 점점 고목(枯木)같이 굳어져 갔다.

쿠르르르--- 르릉!

츠츠츠...!

능천한의 일신에서 막강한 흡력(吸力)이 일어났다.

그 흡력은 한꺼번에 만종약황을 깡그리 끌어들였고,

아울러 천수약왕의 한모금 진기마저 모조리 긁어내었다.

[... 지존]

--- !

마침내 천수약왕이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완전히 진기를 능천한에게 주입시킨 그의 몸은 물기마른 고목같았다.

우르르르---!

주르르르...!

그 와중에 능천한의 볼 위로는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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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三 章

 

               萬毒墨鱗鞭詛呪

 

 

 

천삼백년전(千三百年前).

천하가 엄청난 겁란에 휘말려 든 때가 있었다.

고금제일독종(古今第一毒宗)이라는 독종(毒宗)에 의해 벌어진 참극이었다.

 

<구천묵독제(九川墨毒帝)>

 

묵독종(墨毒宗)이라고도 불려지는 이 인물이 겁란의 원흉이었다.

구천묵독제는 독공(毒功)으로 고금오대마종(古今五大魔宗)에 든 독문최강의 고수다.

그는 곤륜노(崑崙奴)라고도 불리는 흑인(黑人)이었다.

다만 태생이 흑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젊은 시절 한 가지 독공을 연성하다가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들었다.

그 때문에 전신이 먹물을 바른 듯이 시커먼 흑인이 되었다.

곤륜노는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취급받던 시절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비하하고 조롱하였다.

그렇잖아도 독공을 익히면서 성격이 모질어졌던 구천목독제였다.

세상의 따돌림과 핍박이 심해지자 구천묵독제의 성격은 지극히 편협해졌다.

힘을 갖은 자가 세상 사람들에게 한을 품었다.

그 결과는 너무도 끔찍한 것이었다.

 

---크크크... 너희들 하루살이만도 못한 것들이 본체를 비웃었느냐? 어디 뒈지면서 비웃어 봐라!---

 

구천묵독제는 광기에 사로잡혀 천하를 휩쓸었다.

가공할 겁란(劫亂)!

천마(天魔)와 혈종(血宗)이래 최악의 혈란이 몰아닥친 것이다.

천하가 구천묵독제의 독수(毒手) 아래 핏물로 녹아드는 듯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루에도 수천 명이 구천묵독제의 독수 아래 녹아들었고,

무림의 역사를 창출해온 고대(古代)의 상고문파들이 수도 없이 허물어졌다.

처참!

가공할 혈륜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더해져 갔다.

구천묵독제의 밑으로 많은 독문(毒門)의 인물들이 모였다.

그들은 구천묵독제를 종주로 떠받들며 사상최강의 독문(毒門)을 결성하였다.

 

<구천독종(九天毒宗)>

 

천세가 지난 후에도 무림인들을 공포에 떨게 한 최강의 독문 구천독종이었다.

이제 천하는 구천묵독제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구천묵독제의 위세를 등에 업은 구천독종 문하들의 횡포가 오히려 구천묵독제의 그것을 능가할 듯이 보였다.

천하가 영원히 구천(九天)의 저주 아래 녹아드는 듯이 보였고...

사실이 그러했다.

그러나...

천하는 넓고도 넓다.

세상사에 뜻을 두지 않고 세외(世外)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삼인의 기인(奇人)이 있었다.

그들이 구천독종의 만행을 보다 못해 나섰다.

 

<절대삼기(絶代三奇)>

 

---자부존(紫府尊).

---만절기사(萬絶奇士).

---천외약종(天外藥宗).

 

이들은 각기 한 방면에 있어 최강의 인물들이었다.

자부존(紫府尊)은 기공(奇功)방면으로,

만절기사(萬絶奇士)는 의술과 약술로 천하제일이었다.

그들은 연장자인 자부존(紫府尊)의 영도 아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천하의사(天下義士)들을 모아 자부맹(紫府盟)을 이루고 구천독종을 친다.

천외약종의 의술은 구천독종의 독술과는 상극이다.

만절기사의 지혜는 귀신이라도 잡아 죽일 지경이고...

자부존의 무공은 당대의 천하제일(天下第一)이었다.

구천독종의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독종천하(毒宗天下)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본시 마의 무리란 일견 강해보이나 실상은 너무도 무너지기 쉽다.

자부맹이 떨치고 일어나자 구천독종은 사상누각같이 허물어진다.

마침내 구천독종은 무너지고,

구천묵독제는 절대삼기에게 퇴로를 차단당한다.

 

---크크... 네놈들이 본제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은가?

 

구천묵독제가 광소를 하며 하나의 채찍()을 쥐어든다.

칠십 이 개의 묵룡린(墨龍鱗)을 만독(萬毒)에 담가 만든 채찍!

 

---크하하하!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이 본제에게 있는 한 하늘이라도 본제를 어쩌지 못하리라---

 

구천묵독제가 광소를 터뜨렸다.

 

<만독묵린편(萬毒墨鱗鞭)>

 

구천묵독제가 꺼낸 묵린편은 바로 만독묵린편이었다.

천병보(天兵譜)에 수록된 천지십병(天地十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독문제일병(毒門第一兵)!

한번 떨쳐지매,

묵독기강(墨毒氣罡)이 일어 백 장 내의 모든 생명체를 밀살 시켜버린다는...

그 저주의 만독묵린편인 것이다.

 

---하늘의 뜻(天意)이 우리와 함께 하리라!---

 

절대삼기는 분연히 만독묵린편을 든 구천묵독제를 짓쳐간다.

경천동지(驚天動地)!

천붕지열(天崩地裂)!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대격전이 삼주야를 끌었다.

결과는 절대삼기인의 승리.

천외약종의 약종지기(藥宗之氣)가 묵린독기강을 흐트리고,

그틈으로 만절기사의 만절신표(萬絶神剽)가 쏟아지며,

자부존의 최강절기인 자극천단강(紫極天丹罡)이 구천묵독제의 가슴을 박살내었다.

 

---크하하! 본제는 이제 쓰러지나... 구천(九天)의 저주가 천세 후에 부활하여 천하를 파멸시키리라!---

 

심장이 부서진, 구천묵독제는 무저갱(無低坑)으로 만독묵린편을 안고 몸을 던졌다.

 

---구천묵독제는 제거했으나... 구천의 암운은 걷어내지를 못하였으니...--

 

만절기사가 탄식하며 한줌의 독수로 녹라들고 만다.

만독묵린편!

그것은 실로 너무도 가공스러워 천외약종의 약술로 완벽히 막지를 못한 것이다.

그리고...

천외약종마저 쓰러진다.

그조차 만독묵린편의 독기를 견디지 못한 것이다.

남은 사람은 자부존뿐이었다.

 

---핫허... 이것이 승리인가?

 

그는 허탈하게 웃으며 자기의 두 다리를 잘라낸다.

자부존은 고금을 통해 다섯 손가락에 드는 공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 막강한 공력으로 독기를 다리로 몰아넣고 잘라내어 목숨을 구한 것이다.

그리고,

 

---구천(九天)의 저주가 천세에 이르면 자부(紫府) 또한 천세에 이르리라.---

 

그는 의제들의 진전을 수습하여 세외로 몸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

그것이 천삼백여 년을 이어 내려오는 신비 속의 자부(紫府).

 

긴긴 이야기가 끝났다.

[자부의 역사에 그런 비사가 숨겨져 있다니...!]

능천한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천수약왕은 능천한을 우러러보며 말을 이었다.

[자부는 구천의 부활을 막기 위해 천 년을 세외에서 기다려왔습니다. 그리고 구천의 그 저주는 당세에 이루어지고 구천을 막을 자부지존(紫府至尊)도 당세에 난다고 천기가 말하고 있었습니다.]

[으음...!]

능천한은 나직이 신음했고,

조용히 듣던 제갈영라가 입을 열었다.

[자부는 여러 개의 세력을 무림에 내놓고 있는 듯이 보이는군요.]

그녀의 말에 천수약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가장 먼저 무림에 내보낸 세력이 만절문(萬絶門)이었습니다만 팔백 년 전 천향일맥(天香一脈)에 파멸당했습니다.]

능천한이 물었다.

[자부궁(紫府宮)?]

[형식상 자부의 정통이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 약왕전(藥王殿)과 자허전(紫虛殿)입니다.]

[약왕전은 천외약종의 대통으로 이해되옵니다만 자허전이란...?]

제갈영라가 물었다.

[직접 들러보시옵소서! 노노가 모시겠습니다!]

천수약왕이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신세를 지겠소이다.]

능천한은 묵중한 걸음걸이로 천수약왕과 함께 움직였다.

 

***

 

약왕곡(藥王谷)은 광활하다.

사면이 깎아지른 석벽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넓이가 백만 평에 이른다.

한데 놀랍게도 그 백만 평의 분지가 모두가 약초밭이라는 점이다.

그것도 보통의 약초들이 아니고,

하나같이 기사회생의 영효가 있는 천년영약들인 것이다.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약초밭을 지나며 그저 아연할 따름이었다.

코를 찌르는 약향에 정신마저 아찔할 지경이니...

(석굴(石窟)이 있군!)

능천한은 전면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깎아지른 석벽에 수십 개의 석굴이 뚫려 있었다.

일견하여 그 석굴들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고,

그 석굴들에서는 하나같이 무럭무럭 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의외로 약왕곡에서 여러 명이 있군!]

능천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천수약왕이 그 말을 듣고 빙그레 웃었다.

[천외약종은 그대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곳 약왕전에는 노노같이 의술과 연단술에 미친 삼백의 의원들이 있습니다!]

[과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노는 그들과 함께 지존을 위하여 한 가지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천수약왕의 말에 제갈영라가 미소를 지었다.

[상공께 무적공력(無敵功力)을 주는 일이 아니신가요?]

천수약왕은 감탄의 눈빛으로 제갈영라를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존후!]

 

이야기하는 사이에 세 사람은 큼직한 석굴 앞에 이르러 있었다.

석벽에 난 석굴전체가 바로 약왕전인 것이다.

이곳에는 천하의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모여 있었다.

[사부님!]

예의 석굴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며 가냘픈 인영이 걸어 나왔다.

[...!]

능천한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석굴에서 피의(皮衣)를 걸친 여인이 나타난 것이다.

나이는 이십 오륙 세 정도였다.

금벽라의 온후함과 제갈영라의 정초함을 함께 지닌 여인이었다.

[...!]

능천한을 발견한 여인의 봉목에 깜짝 놀라는 빛이 흘렀다.

그리고,

[제자! 지존(至尊)을 뵈옵니다!]

여인은 그자리에 주저앉으며 능천한에게 큰절을 올렸다.

제갈영라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약왕곡의 인물들은 누구하나 범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분 소저는...?]

능천한이 침작한 어조로 물었다.

[노노의 제자 되는 아이입니다. 천약관음(天藥觀音) 교옥전이라 불리지요.]

[천약관음이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피의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꿇어 엎드린 미녀의 삼단같은 머리결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뛰어난 여인이다. 영라의 신체에는 못 미치나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백인(百人)의 여인보다 오히려 뛰어나리라!)

능천한의 눈가에 흐릿한 웃음이 흘렀다.

[약왕께서는 훌륭한 제자분을 두셨소이다!]

능천한은 천수약왕을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지존!]

천수약왕은 흐뭇하게 제자를 내려다보았다.

(지존의 헌신을 기다리며 지존을 섬기도록 가르친 효과가 있으리라!)

천수약왕이 싱글벙글 하는데 능천한이 말을 이었다.

[약왕전은 다음에 다시 보기로 하고 자허전(紫虛殿)을 먼저 보여 주시지 않으시겠소이까?]

천수약왕이 즉시 대답했다.

[분부 받들겠습니다. , 이리로...]

천수약왕이 말을 하며 예의 석굴로 능천한을 인도했다.

[신첩은 옥진언니와 약왕전을 돌아보겠사옵니다!]

제갈영라가 뒤쪽에서 말하자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수약왕과 함께 석굴로 들어갔다.

[언니 일어나세요!]

제갈영라가 교옥진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존후! 감사하옵니다!]

교옥진이 말하며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존후라는 이름은 큰 언니외에는 적당하지 않아요. 그냥 영라라고 부르세요!]

제갈영라의 말에 교옥진의 옥용이 어두워졌다.

[또 한 분이... 계시옵니까?]

[호호... 그래요.]

제갈영라가 맑게 웃었다.

(어분 언니도 한눈에 상공께 사로잡히고 말았구나!)

제갈영라는 영활하게 교육진의 마음을 읽었다.

그녀는 교옥진의 교수를 꼭 쥐며 부드럽게 말했다.

[큰 언니는 옥진언니도 아실거예요. 광양존후가 바로 그분이에요!]

교옥진은 다소 놀란 빛을 띄웠다.

[광양존후! 당대 제일여고수(第一女高手)께서 지존의 부인...]

[호호... 걱정마세요. 벽라언니는 마음이 좋으셔서 옥진언니께도 기회를 주실 것이에요!]

[...!]

제갈영라의 말에 천약관음을 교옥진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녀의 옥용이 도화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

 

쿠르르르릉!

높이 십 장.

무게 만근의 거창한 석문이 쩍 갈라졌다.

갈라진 석문사이로 능천한이 장중한 걸음걸이로 걸어 나왔다.

[곡중지곡(谷中之谷)! 약왕곡 후면에 이런 전곡이 있을 줄 누가 알겠소?]

능천한이 탄성을 발하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의 앞.

수백 장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절곡(絶谷)이 있었다.

나는 새도 들어오지 못할 절대절곡!

그것은 약왕곡의 후면에 자리한 곡중지곡(谷中之谷)이었다.

한데 절곡의 중앙에 거대한 구층석전(九層石殿)이 있었다.

그 석전은 높이 백여 장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석전이었다.

가장 하단부분의 높이가 이십 장이고,

각 층의 높이가 십 장 정도씩이었다.

그리고 일층 처마에 십여 장 길이의 거대한 편액이 있었다.

능천한은 그 편액의 글씨를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자허천부(紫虛天府)>

 

[자허천부...]

능천한은 나직이 현판을 읽으며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이런 심산에 저같은 전각을 돌로 짓다니... 자부의 잠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이 간다!)

능천한은 구층의 자허천부를 바라보며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었다.

뒤에 시립하고 있던 천수약왕이 공손하게 말했다.

[자허천부가 곧 자허전입니다. 자허천부에는 자부의 일천 년 영화가 담겨 있습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떼어 놓았다.

--- 스스스슥!

한 걸음을 옮겼는데 능천한의 몸은 이미 백 장 밖에 나가 있었다.

 

---천폭환상영(天瀑幻像影).

 

(과연 지존!)

천수약왕도 이내 능천한의 뒤를 따라갔다.

능천한은 이미 자허천부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는 까마득히 치솟은 자허천부를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었다.

태산(泰山)!

그런 능천한의 몸에서는 태산과도 같은 기도가 흘렀다.

(오히려 자허신부가 지존보다 작아 보인다. 자부가 일천 년을 세외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는 분이다!)

능천한을 바라보는 천수약왕의 노안에 절로 미소가 감돌았다.

[들어가시지요!]

천수약왕이 앞으로 나서서 굳게 닫힌 자허천부의 석문으로 다가갔다.

그그그그--- !

천수약왕이 석문의 사자상(獅子像)을 누르자 굉음과 함께 석문이 크게 열렸다.

석문의 안쪽은 넓은 대전(大殿)이었다.

모두가 청옥(靑玉)으로 만들어진 석탁과 의자가 쭉 늘어서 있다.

태사의 뒤쪽으로 승천하는 청룡(靑龍)의 조각이 놓여 있었다.

[...!]

뚝벅... 뚜벅!

능천한은 천극(天戟)을 비껴들고 장중한 걸음걸이로 대전으로 들어섰다.

그의 시선은 곧 장 용()의 조상으로 향해졌다.

금방이라도 용음(龍音)을 터뜨리며 날아오를 듯한 청룡(靑龍)!

(기도(氣道)가 느껴진다. 천지(天地)를 뒤덮은 장중(壯重)함이 있다!)

청룡(靑龍)과 잠룡(潛龍)!

동질성(同質性)이 있지를 않은가?

그때 천수약왕이 다가왔다.

[자령신부(紫靈神符)를 용()에게 물려주십시오!]

[...!]

천수약왕의 말에 능천한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품에서 자령신부를 꺼냈다.

츠으으으!

일시에 석전이 상서로운 자광(紫光)으로 물들었다.

능천한은 자령신부를 청룡의 입에 끼워 넣었다.

다음 순간,

--- 르르르르!

--- 이이이잉!

[...!]

웅후한 진동이 자허신부 전체를 흔들었다.

천수약왕이 능천한에게 설명했다.

[자허천부는 그대로 하나의 요새입니다. 아무리 절대고수도 무공만으로 자허신부를 오르지는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능천한이 묵묵히 들고,

천수약왕이 말을 이었다.

[자령신부로만 자허천부 전체의 기관을 해제시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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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二 章

 

                 紫府至尊이 되어라!

 

 

 

츠츠츠츠츳!

시커먼 묵기가 흑룡천신의 몸을 뒤덮었다.

그 모습은 흡사 하계로 내려온 신장(神將)같았다.

[...!]

[...!]

흑룡십팔웅들의 안면에는 긴장이 흘렀다.

그들은 능천한의 강함을 일차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흑룡파천황(黑龍破天荒)!]

사나운 폭갈과 함께 흑룡천신이 먼저 공세를 발동하였다.

짜자자자자--- !

파츠츠츠츠--- !

천지가 시커먼 흑룡의 그림자로 뒤덮이고,

뇌전(雷電)같은 도기(刀氣)가 빗발치듯이 그어져 나갔다.

범인(凡人)이라면 오금이 얼어붙을 가공할 도세였다.

능천한도 흠칫하였다.

(과연 흑도종사답다!)

흑룡천신!

그는 능천한이 상대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강했다.

아버지 패천황룡의 혈종을 제외하고는...

그러나,

[거령폭류참(巨靈瀑流斬)!]

능천한은 벼락치듯이 천극(天戟)을 무찔러 내었다.

--- --- 쿠쿵!

우르르르---

천극의 극인(戟刃)의 주위로 강륜(罡輪)이 무지개같이 일어나고,

--- --- !

--- --- 자작!

폭포가 쏟아지듯,

검붉은 강류()가 기세로 쏟아져 나갔다.

천극이절해(天戟二絶解) 중 거령폭류참이 펼쳐진 것이다.

--- --- --- !

[--- 으윽!]

흑룡천신의 입에서 피가 토해졌다.

호신해주던 흑룡무적강벽(黑龍無敵罡璧)이 종이처럼 찢어지며 가슴에 강력한 충격이 가해진 것이다.

그의 가슴은 삽시에 피범벅이 되었다.

[... 또다시... 좌절당하다니...!]

흑룡천신은 휘청거리며 분루를 흘렸다.

[...!]

그런 흑룡천신을 능천한은 무거운 안색으로 바라보았다.

[궁주!]

[대종사...!]

흑룡천신의 주위로 흑룡십팔웅이 무릎을 꿇으며 오열하였다.

장부들의 눈물,

거기에는 아녀자들의 그것같은 애절함은 없다.

그러나,

철벽이라도 녹일 듯한 비장함이 그 천배 만배로 깃들어 있었다.

그걸 보는 능천한의 마음이 좋을 까닭이 없다.

[... 천지십병(天地十兵)! 천지십병이 무엇이기에... 일초지적도 아니 되는 것인가?]

흑룡천신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너무 세게 악문 탓이다.

그때였다.

[궁주! 소녀 제갈영라가 외람되나 한 말씀 드리겠어요!]

제갈영라가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소저가 천혜선자(天慧仙子)!]

흑룡천신의 거구가 움찔하였다.

그런 그를 향하여 제갈영라가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개인의 신의나 자존심도 중요한 것이겠지요. 하오나 편협(偏狹)한 자존심이나 오도(誤導)된 신의로 천하를 해하는 일이 있다면 그보다 더한 우()는 없을 것이에요!]

[...!]

제갈영라의 말을 듣고 흑룡천신의 대추 빛 안색이 여러 차례 변했다.

(깨달음이 있으리라!)

능천한은 흐릿한 미소를 짓다가 천극을 세우며 정중히 에를 하였다.

[다시 뵐 때는 웃는 얼굴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외다!]

그리고,

스스스스스슥!

능천한은 제갈영라와 함께 백여 장 밖으로 날아나갔다.

[...!]

[...!]

흑룡천신과 흑룡십팔웅은 한동안 넋이 나간 채 능천한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았다.

흑룡천신의 표정에는 아주 복잡한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 패천황룡은 고사하고 그 아들의 적수도 못되다니...]

[...!]

흑룡십팔웅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런 흑룡십팔웅을 돌아보며 흑룡천신은 굳은 표정을 지었다.

[패배란... 때로는 치욕이 되나... 때로는 좋은 약이 될 수가 있다.]

[궁주...!]

[천 년의 세월 동안 정사양도에게서 천시 받은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결단이 없어 연성치 못하던 초절기(超絶技)를 수습하겠다!]

[대종사...!]

[대종사...!]

흑룡십팔웅!

흑룡십팔웅은 감격의 눈길로 흑룡천신을 우러러보았다.

좌절이란 때로 인간을 성장시키는 좋은 영양분이 된다.

그 본보기가 흑룡천신에서 나타나려는 것이다.

스스스스스슥---!

산풍이 언뜻 불어 흑룡천신의 흑포를 뒤흔들었다.

[...!]

하늘을 응시하며 철탑인 양 우뚝 선 흑룡천신,

그의 강렬한 신광,

굳게 움켜쥔 흑룡파황신도(黑龍破荒神刀)가 새로운 풍운을 잉태함을 천하는 알게 되리라.

물론 긴 혈운(血雲)의 시대가 지난 후의 일이지만...

 

***

 

[저곳에 강력한 진세가 흐릅니다!]

제갈영라의 말에 능천한은 멀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석비(石碑)같이 치솟아 마주 서있는 두 개의 산봉이 있다.

[... 그렇군!]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석비같은 산봉사이로 극히 강한 기운이 안개같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강하여 능천한으로서도 이제껏 본적이 없는 기운이었다.

물론 그 강한 진세는 범인의 안목으로는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의 그것보다 열 배는 강하다.)

능천한의 눈에는 경탄의 빛까지 흘렀다.

[영라! 갑시다. 저곳이 약왕곡(藥王谷)일 것이오!]

[!]

스스스--- !

--- 이이이잉!

두 남녀의 신영은 가공할 속도로 날아갔다.

너무 빨라 두 남녀의 신영마저도 흐릿해지는 정도였다.

 

---천폭환상영(天瀑幻像影).

 

환유천신(幻遊天神), 아니 환몽천후(幻夢天后)의 고금제일(古今第一)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공절기가 그것이다.

 

스스스스스--- !

화르르르---!

채 일다경도 안되어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삼십 리 밖에 이르러 있었다.

[대단하군요.]

지면으로 날아내린 제갈영라가 봉목을 빛냈다.

두 사람 앞에는 괴봉(怪峯)이 있었다.

마치 신()의 묘지(墓地)에 서 있는 비석과도 같이 생긴 봉우리...

두 석봉은 무려 삼백여 장이나 되는 높이로 치솟아 있었다.

그리고,

스스스스스---!

석비 모양의 두 괴봉사이의 분지에는 자하(紫霞)가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 자하(紫霞)는 겉보기에는 자연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문진세에 정통한 인물이라면 그것이 가공스런 진세에 의해 일어나는 것임을 알리라.

[...!]

[...!]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석상같이 굳어졌다.

웅장하고 괴이한 두 석봉 때문이 아니다.

두 사람은 태양같은 안광을 쏟아내며 자하로 가득한 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알아보시겠사옵니까?]

제갈영라가 능천한은 돌아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

능천한은 묵직하게 대답했다.

[팔극(八極)과 천문(天門)조차도 완벽하게 가려 선천강기(先天罡氣)에 싸여 있으니... 이는 자부일문(紫府一門)의 전설적인 절진(絶陣)...]

제갈영라가 말을 받았다.

[자령팔극천문대진세(紫靈八極天門大陣勢)!]

[그렇소... 자령팔극천문대진세... 만상귀허대천강진(萬像歸虛大天罡陣)과 더불어 고금양대절진으로 불리는...]

[...!]

두 사람은 다시 말을 멈추었다.

천하를 오시하는 지혜를 가진 두 기재...

그런 그들이건만 그들은 감히 경솔하게 진세를 파해하려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만큼 그들 앞에 있는 진세는 가공스럽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해봅시다. 저것도 인간의 지혜로 이루어진 것이니...!]

능천한이 빙그레 미소를 짓으며 제갈영라의 손을 꼭 쥐었다.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

--천혜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

 

인간으로서는 최고지상의 신맥과 지혜를 타고난 그들이다.

두 사람의 지혜가 합쳐진다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으리라.

[상공께서 도와주시기만 한다면...]

제갈영라도 자신에 찬 표정이 되었다.

(상공께서 곁에 계셔만 주시면 신첩 혼자라도 진세를 뚫어 보일 수 있사옵니다.)

제갈영라가 촉촉한 시선으로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좋소! 시작합시다!]

능천한이 제갈영라의 허리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끊어질 듯한 세류요가 그의 손안에 꼭 들어찼다.

[내가 팔극지세(八極之勢)로 열겠소. 영라는 천문(天門)을 맡으시오!]

말을 마친 능천한은 애정을 담아 제갈영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제갈영라는 이마가 불에 대인 듯이 화끈해짐을 느끼며 행복에 잠겼다.

(하늘이라도 열어 보이겠어요!)

능천한의 입맞춤은 제갈영라에게 천력(天力)을 주었다.

[조심하시오!]

스스스슥!

능천한이 우측으로 이동하였다.

[상공께서도...]

제갈영라도 미소를 지으며 좌측으로 이동하였다.

스스스스스---

이내 두 남녀의 모습은 짙은 자하(紫霞)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높직한 암봉 위,

초로(草老)의 노인 한명이 앉아 있었다.

삼베옷 걸쳤으나 노인의 모습에는 신선같은 풍도가 서려 있었다.

[...!]

노인은 노안을 형형하게 빛내며 자하(紫霞)의 바다()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의 노안에는 자하 속으로 들어서는 남녀의 모습이 비추어 지고 있었다.

노인의 노안은 우측으로 접근하는 황포청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청년은 매우 영준했다.

등에는 긴 극()을 짊어지고 있고,

전신에는 자하 속에서도 선연하게 광휘를 발하는 자광(紫光)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나타나셨다.]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령신부(紫靈神府)를 지닌 것으로 미루어... 궁주는 타계한 듯 하나 그 대신 자부지존(紫府至尊)을 이곳 약왕곡으로 보냈다.]

노인의 노안은 격동과 희열로 흔들리고 있었다.

[헛허... 구천(九泉)으로 갈 날이 다가와...자부지존께서 탄생하심을 보지도 못하고 갈까보아 저어했거늘...]

주르르르르...

노안에서 한 줄기 눈물이 메마른 뺨위로 굴러 떨어졌다.

화르르르르...

스스스스스...

자욱한 자하로 가려진 이곳,

이른바 약왕곡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

 

하루 밤낮이 흘렀다.

[핫하! 팔극(八極)은 천수(天手)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도다!]

한소리 호쾌한 장소가 터졌다.

거의 동시에,

[호호... 하늘의 문(天門)은 광활하나 역시 하늘()의 일각(一角)일 뿐이옵니다!]

옥구슬이 구르는 듯한 옥음(玉音)이 자하 속에서 아주 맑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 이이잉!

스스스스슥!

자하(紫霞)의 바다() 속에서 두 줄기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그들은 바로 능천한과 제갈영라였다.

[핫하! 영라!]

[호호호! 상공! 상공!]

두 남녀는 서로를 얼싸안았다.

뜨거운 가슴이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맞붙었다.

두 남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시도 떨어져 살 수 없는 정랑의 얼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희첩의 아름다운 옥용이 거기에 있었다.

두 남녀는 다소 초췌한 신색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주일야의 시간으로 일천일(一千日)을 책속에 파묻혀야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빛나는 눈!

끝없는 지혜를 담고 있는 눈빛들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영라... 초췌해졌소!]

[상공... 뵙고 싶었사옵니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가슴에 옥용을 묻었다.

그녀는 자령팔극천문대진세에서의 일주일야가 마치 백 년의 세월같이 느껴진 것이다.

[하하! 영라가 천문지세(天門之勢)를 약화시켜주지 않았다면 진중에서 백일(百日)을 보내야 했을 것이오!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등을 다독거렸다.

그렇다.

(!)

능천한의 몸이 경직되었다.

한쌍의 강렬한 신광이 서린 눈길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낀 때문이다.

[...!]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안은 채 천천히 돌아섰다.

(...)

몸을 돌린 능천한은 내심 흠칫하였다.

높직한 암석 위,

한 명의 삼베노인이 횃불같은 안광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양인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창해같은 능천한의 붕목에 은은히 놀람의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놀랍다. 아버님에 못지않은 공력을 지닌 기인이 있었다니!)

능천한도 내심을 혀를 내둘렀다.

 

---패천황룡 능붕비.

 

천지금룡(天地金龍)의 내단을 복용하여 오백년공력을 지닌 천하제일내공고수!

놀랍게도 초라한 삼베노인이 그 능붕비의 내공에 버금가는 막강한 내공을 지닌 것이다.

[...!]

제갈영라도 삼베노인을 발견하고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문득,

스스스슥!

삼베노인이 앉은 채로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

능천한이 흠칫하는데 돌연 노인은 능천한 앞에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노노(老奴) 약왕전주(藥王殿主) 지존(至尊)을 베알하외다!]

능천한은 돌연한 노인의 태도에 당황을 금치못했다.

[노인장! 어찌 이러십니까?]

능천한은 급히 무형경력을 일으켜 노인을 부축하려 하였다.

하지만 노인은 미동도 아니하였다.

삼백 년의 공력을 지닌 능천한이지만 노인의 내공에 비하면 조속지혈인 것이다.

그때,

[노공께서 어찌 상공께 지존(至尊)이라하시옵니까?]

제갈영라가 나서며 물었다.

노인은 오체복지한 상태로 대답했다.

[천극대정기(天極大正氣)를 지니신 분이 곧 자부지존(紫府至尊)이심을 알기 때문이외다!]

[자부지존!]

능천한이 검미를 모으며 중어거렸다.

[자부지존이라면... 상공께서 제이의 자부존(紫府尊)이란 말씀이시옵니까?]

[그렇소이다. 이미 일천수백년전부터 예견된 일이오니다!]

[...]

능천한은 나직하게 신음하였다.

(자령신부(紫靈神符)의 진정한 주인이 됨은... 자부의 부주(府主) 그이상의 의미가 있는 듯하니...)

능천한은 꿇어 엎드린 노인은 내려다보며 염두를 굴렸다.

그때,

[... 노인장께서 천수약왕(天手藥王)?]

제갈영라가 조용히 물었다.

[존후(尊后)! 바로 이 늙은이가 천수약왕이라 불립니다!]

노인이 머리를 조아린 채 대답했다.

[천수약왕!]

능천한과 제갈영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천수약왕(天手藥王)>

 

그는 이미 이백여 년 전부터 천하인의 입에 오르내린 전설 속의 인물이다.

그는 자부(紫府)의 인물이면서도 공공연히 천하에 나돌아 다녔었다.

그가 무슨 목적으로 천하를 횡행하였는지는 알길 없다.

그 덕에 수많은 양민들이 병고에서 해방되었다.

그의 의술과 약술은 편작이나 화타를 능가한다고 했다.

 

---죽은 자(死者)라도 하루가 지나지 않았으면 살려낸다.

 

그의 이름과 더물어 이런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사람들의 과장이었다.

그만큼 천수약왕의 의술은 독보적이었다.

혈종(血宗)과 패천자(覇天子).

그 전설적인 인물들과 시대를 함께 하던 전설적인 의선(醫仙)

천수약왕은 이런 사람이다.

한데 타계했어도 오래 전에 타계한 것으로 믿어지는 그가 살아있는 것이다.

(많은 영약들의 정화가 몸에 베어 있다. 그때문에 이분은 아직도 살아계신 것이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장, 소생이 불편하니... 일어서십시오!]

능천한이 말하자 그제야 천수약왕은 몸을 일으켰다.

[지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노인, 천수약왕은 대답하고는 공손히 시립하였다.

능천한은 허허로운 시선으로 약왕곡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부지존(紫府至尊)은 많은 신비에 싸인 지위인 듯 하구려. 영문을 알고 싶소!]

능천한의 말에 천수약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실 것입니다. 노노가 말씀드리지요!]

천수약왕은 이어서 천수백여 년 전에 있었던 고사(古事)를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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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一 章

 

            黑龍天神

 

 

 

--- 쿠쿠쿠쿠쿵!

콰르르르르르릉!

갑자기 수백만 근은 나감직한 석벽이 쩍 갈라졌다.

우르르르...!

사석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인(四人)이 걸어 나왔다.

선두에 선 황포청년은 교룡피에 싸인 길쭉한 물체를 옆에 끼고 있다.

봉황(鳳凰)의 기품과 영준함,

그리고 태산의 장중함이 청년에게 있었다.

능천한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정기가 넘쳐흐르고 있다.

그의 뒤로 삼인의 절세미인의 걸어 나왔다.

세 여인 모두 절세미인들인데 제각기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우아함과 기품으로 가득한 황후같은 인상의 백의미부(白衣美婦).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가냘픈 청초하며 가녀린 인상의 청의미인,

그리고 교교(嬌嬌)로운 분위기의, 그래서 요사함까지 느껴지는 홍의미인이 그녀들이었다.

광양존후 금벽라.

천혜선자 제갈영라.

환몽천후(幻夢天后)라 이름 지어진 환유전신(幻遊天神)...

바로 그녀들이었다.

[다시 태양을 볼 수 있어 기뻐요!]

막내인 제갈영라가 화사하게 웃었다.

[정말 그렇구나!]

금벽라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태양마저도 안을 수 있었으니...)

능천한은 바라보는 금벽라의 시선이 눈부셨다.

[...!]

능천한은 우뚝 서서 패공산의 산역을 굽어보았다.

천극(天戟)을 비스듬히 비껴든 능천한의 모습,

광해(光海)에 떠오르는 그의 모습은 흡사 천신(天神)같지를 않은가?

그때 능천한 뒤에서 금벽라와 제갈영라는 앞일을 숙의하고 있었다.

 

---신첩을 첩()으로 거두어 주셨으니 상공께서 신경을 쓰시는 일이 없도록 해드리겠아와요.

 

제갈영라는 능천한에게 자신있는 약속을 하였다.

아울러 그녀는 자연스럽게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의 군사가 되어 있었다.

[영라야. 네가 무이산까지 상공을 수행해 드려라.]

광양존후 금벽라가 잔잔히 어조로 말했다.

[언니가 상공의 시중을 드는 것이...]

제갈영라가 말하며 한눈을 찡긋했다.

남편에 대한 가장 은밀하고 깊은 시중을 의미함이리라.

금벽라는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 길은 다만 상공의 시중만이 전부가 아니지를 않느냐? 자부(紫府)의 천년영화를 수습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니... 그일은 네가 적임이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언니!]

제갈영라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네가 나보다 더 상공 곁에 머물고 싶을 것이니...)

금벽라가 공허해지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제갈영라를 바라보았다.

[내게 일러줄 말이 있겠지?]

[!]

제갈영라가 눈을 빛냈다.

[계책은 은()과 집()이에요.]

[()과 집()?]

금벽라가 나직하게 되뇌었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설명하였다.

[혈종(血宗)의 힘은 추측을 불허할 정도예요. 겉으로 드러난 혈종오패(血宗五覇)도 나만 혈종의 빙산일각(氷山一角)에 불과해요.]

[으음...]

금벽라는 나직하게 말했다.

혈종오패(血宗五覇)!

당금의 천하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그들이 다만 빙산의 일각이라니...

이 얼마나 놀랄 일인가?

[혈종일문의 진정한 변황파의 일전을 대비하여 감추어진 상태예요. 그것은 사해정검맹의 힘 정도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극강한 것이에요.]

제갈영라의 말을 들으며 금벽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세외(世外)로 숨어 힘을 기르란 얘기구나!]

제갈영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것이 은()이에요. 그러나 지금의 사행정검맹 정도의 재원과 인력으로는 아니 되어요.]

제갈영라의 두눈이 아주 밝게 빛났다.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은 광양회를 주측으로,

혈종(血宗)에 피해를 입은 제문파가 연합하여 구성한 맹()이다.

현상태로는 사해정검맹은 다만 혈종오패 중 일패를 간신히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많은 인재들과 기인들을 모아야 해요. 그것이 집()의 계책이에요!]

[그 대상은...?]

[인재가 많기로는 녹림(綠林)만한 곳이 없으며 녹림 또한 정도와 같은 처지이니 수월히 협조를 얻을 수 있을 것이에요!]

[녹림이라...!]

금벽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녹림대제가 실종된 이후,

의구심은 당연히 혈종오패에게로 쏠렸고,

녹림은 독자적으로 혈종과 대결하고 있는 중이다.

구주팔황(九州八荒)에 걸린 백만의 녹림도!

그들의 잠력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그것이 하나로 귀일(歸一)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그 외에 취존개(醉尊丐) 선배를 찾으시고 신주오기(神州五奇)를 사해정검맹의 호전(護殿)들로 불러들이셔야 해요!]

[기억할게!]

금벽라가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그런 금벽라를 보며 제갈영라를 환몽천후를 가리켰다.

[환몽(幻夢)을 대동하세요. 큰 방파제 구실을 해줄 거예요.]

[그래, 환몽을 내가 데리고 가마!]

금벽라는 대답을 하며 능천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태산,

능천한은 태산의 기도를 창공에 찔러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고독을 느끼시는가?)

여인들을 능천한의 뒷모습에서 서서히 깔려드는 고독의 그림자를 보았다.

강해지면 강해질 수록 심화되는 영웅의 고독이 능천한에게도 점점 베기 시작하는 것이다.

[...!]

능천한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하늘대신 능천한을 우러러보았다.

능천하는 곧 그녀들의 하늘()이므로...

 

X X X

 

무이산(武夷山).

호남(湖南)의 명산인 무이산이 초하의 뜨거운 별아래 푸를대로 푸르러 있었다.

오시(午時)가 막 지났을 무렵.

스스스스스--- !

자하(紫霞)가 피어오르듯이 무이산을 날아 넘는 한 쌍의 인영이 있었다.

황포의 청년과 가냘픈 미녀.

그들은 패하를 떠나 남하한 능천한과 제갈영라였다.

[호호... 제몸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제갈영라가 맑은 옥음을 내었다.

 

---천혜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

 

그 천고의 성체로 인하여 제갈영라는 무공을 익힐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 며칠 간 능천한에게 사랑을 받으며 그 지나친 음기를 억제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스스로도 무공을 연마할 수 있게 되었다.

능천한은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을 제갈영라에게 보여 주었고,

한번 봄으로써 그녀는 유령대제의 최강의 절기를 찾아내었다.

이름하여,

 

<유령현음명부강살(幽靈玄陰冥府罡煞).>

 

천하에서 가장 극음(極陰)하고,

천하에서 가장 음유(陰幽)한 신공절기가 바로 이것이다.

유령대제가 만년에 완성하고 채 연마도 못했다는...

만명(萬名)분의 음기를 지녔다는 제갈영라다.

그녀는 가공할 속도로 유령현음명부강살을 이루고 있었다.

[...!]

문득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그는 막 삼십여 장 높이의 석벽을 날아 넘는 중이었다.

그런데 섬뜩한 느낌이 스쳐 지난 것이다.

휘르르르---

스스슥---

능천한은 수직으로 석벽 위로 치솟았다.

한순간,

--- 이이잉---

츠파파--- 파팟---

석벽 위로부터 벼락치듯이 시커먼 강기의 덩어리가 밀려왔다.

[기다렸다.]

쿠쿠쿠쿵---

능천한은 지체않고 마주 강기를 내쳤다.

콰르르르릉---

--- 쾅쾅---

굉렬한 굉음이 터지며 무이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스스슥---

그 사이로 능천한은 제갈영라와 함께 표표히 석벽 위로 날아 내렸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능천한이 냉갈하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

[...!]

능천한과 제갈영라의 앞으로 십팔인의 흑포장한들이 묵묵히 서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은 일신에 시커먼 흑포를 걸쳤는데 하나같이 태양혈이 불끈 솟아 있었다.

일견하여, 모두가 절정의 대열에 든 인물들임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들이 팔목에 흑룡(黑龍)의 문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흑룡십팔웅(黑龍十八雄)들이에요.]

제갈영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흑룡십팔웅! 흑룡궁(黑龍宮) 최강의 호한들?]

능천한이 형형한 장한들을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 흑룡궁(黑龍宮)!

 

흑도대종사(黑道大宗師) 흑룡천신(黑龍天神)이 세운 흑도의 거파다.

흑룡천신에 의하여 흑도는 비로소 녹림이나 사마외도와 확연히 구분되었고,

스스로의 신념들대로 저사중도를 걷고 있었다.

흑룡십팔웅은 천하흑도를 대표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들이다.

제각기들 절정고수들이나,

그들의 연수합격은 흑룡천신이라도 당하지 못한다고 하는 정도다.

[흑룡천신은 최근 혈종(血宗)에게 굴복한 상태예요. 무엇인가 이유가 있겠지만 말이에요.]

제갈영라가 전음으로 말했다.

스스스스슥---

--- 우우우우웅---

그때 흑룡십팔웅이 용행호보의 보법으로 능천한과 제갈영라를 에워 싼 진세를 좁혀 왔다.

[이들은 기세가 대단한 자들이에요. 정면으로 부딪혀 기를 꺾어 놓으세요.]

[...]

능천한의 천천히 교룡피의 가죽집을 벗겨 천극(天戟)을 꺼내 들었다.

[...!]

[...!]

천극을 발견한 흑룡십팔웅은 흠칫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들 모두가 천극(天戟)을 한눈에 알아 본 것이다.

그리고,

우르르르---

흑룡십팔웅의 전신에서 시커먼 낙뢰가 쏟아졌다.

[흑룡개세(黑龍蓋世)!]

쿠쿠쿠쿠쿵---

콰르르르르---

한순간 십팔인에게서 태산이 무너져 내리듯 엄청난 묵류(墨流)가 쏟아졌다.

[--- !]

능천한의 입에서 창료후가 터졌고,

콰우웅---

그의 손에 들린 천극이 허공을 찔렀다.

--- 이이이잉---

쿠르르르---

그러자 일시에 천지사방이 거창한 강망(罡網)으로 뒤덮었다.

(천극망(天戟網)! 한번 구결을 읽으셨을 뿐인데...)

제갈영라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비록 그녀라고 해도 무공을 수습하는데에는 능천한을 따를 수가 없었다.

콰쾅---

파츠츠츠---

[...!]

[...!]

벽력설 속에서 흑룡십팔웅의 몸이 휘청하였다.

그들의 몸 여기저기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 있었다.

(우리의 합공을 물리치다니...)

흑룡십팔웅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천지십병은 무적이거늘... 견디어 내다니 대답한 인물들이다.)

능천한도 내심 놀라며 재차 천극을 비껴 들었다.

--- 이이이잉!

흑룡십팔웅도 지체없이 다시 진세를 압축하였다.

[...!]

[...!]

(거령폭류참(巨靈瀑流斬)을 이들이 견디어 낼까?)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다지 그는 흑룡십팔웅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스스스스스---!

천극에서 시커먼 기류가 줄기줄기 쏟아지고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장내를 뒤덮었다.

한데 그때였다.

[못난 놈들! 누가 너희들에게 이런 짓을 하라고 하였는냐?]

아주 괴로운 목소리가 장내를 흔들고,

스스스스슥---

허고에서 우람한 흑영이 떨어져 내렸다.

[궁주!]

[대종사!]

그 흑의인물은 흑룡십팔웅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능천한은 그 인물을 주시했다.

그는 아주 우람한 체구의 흑포노인이었다.

관운장을 연상케 하는 멋진 흑염을 가슴까지 내려뜨린...

(흑룡천신(黑龍天神)!)

능천한은 한눈에 그 인물을 알아보았다.

그 인물은 다름아닌 당대 흑도대종사 흑룡천신이었다.

[으음...]

흑룡천신은 괴롭게 신음하며 능천한을 둘러보았다.

[그대가... 페천잠룡(覇天潛龍)이었다.

[으음...]

흑룡천신은 괴롭게 신음하며 능천한을 둘러보았다.

[그렇습니다. 후배가 황산의 능모입이다.]

능천한의 후배에 흑룡신의 호목이 깊게 빛을 발했다.

그리고는 그는 허탈하게 웃었다.

[허허... 역시 황룡(皇龍)의 후손을 잘 두었소.]

흑룡천신은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본의는 아니나... 노부는 그대의 앞길을 막아야 하나.]

(무엇인가 사정이 있군.)

능천한은 흑룡천신의 모종의 위협에 눌러 있을 지시했다.

제갈영라가 전음을 보냈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에요. 그런 그가 혈종수하로 들어간 것을 보면 그는 크게 좌절을 당했었을 거예요.]

우우우우웅---

흑룡천신이 시커먼 묵도를 쳐들었다.

흑룡파황도(黑龍破荒刀)라는 흑룡천신 독문의 애병(愛兵)이다.

이는 사백 년 이전에 절전된 흑황문(黑荒門)의 진산지보,

천병보(天兵譜) 천병일천좌(天兵一天坐)의 이십칠위에 올라있는 병기다.

[천극(天戟)의 신위를 보고 싶네.]

흑룡천신이 무겁게 말했다.

[무너뜨리세요. 한번 좌절을 당한 인물에게는 그것이 약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갈영라의 전음에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팔성(八成)의 거령폭류참이라면... 그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으리라.)

능천한은 염두를 굴리며 천극을 쳐들어 흑룡천신의 가슴을 겨누었다.

우르르르르---

--- 이이이잉---

천극에서 낙뢰가 치듯,

묵직한 기류가 안개같이 피어올랐다.

츠츠츠---

흑룡천신의 흑룡파황도(黑龍破荒刀)에서도 은은한 우뢰성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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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二十 章

 

                 五百年前美女

 

 

 

[...!]

능천한은 망연히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몸에는 한 올의 힘도 남아있지를 않았다.

일신의 모든 힘을 두 여인의 몸에 쏟아부은 후였기 때문이다.

정녕 기이했다.

사지에는 그저 무기력함만이 가득함에 비하여,

그의 일신에는 맑고 신선한 기운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그것은 천극대정신맥에서 우러나오는 굳강하고 정대(正大)한 잠력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의 효용이리라...)

능천한은 쓴웃음 지었다.

... ...!

넓고 우람한 그의 가슴으로 따뜻하고 규칙적인 숨결이 와닿았다.

능천한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벌거벗은 가슴,

그곳에는 어미 새의 품에 안긴 아기 새같이 꼭 안겨 있는 여체(女體)가 있었다.

너무도 맑아 백옥같은 피부를 지닌...

바로 천혜선자(天慧仙子) 제갈영라(諸葛瓔羅)였다.

그녀의 고운 피부는 곳곳에 거칠게 유린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귀엽고... 당돌한 여인...)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바라보며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가냘픈 모습에 비하여 몸은 아주 뜨거운 여인이었다.

[영라...!]

능천한은 손을 들어 그녀의 젖가슴을 쓰다듬었다.

작으나 탄력있는 그녀의 육봉이 땀에 젖어 있었다.

그리고,

[... ...!]

능천한은 등으로 전해지는 또 다른 흐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발가벗겨진 풍만한 여체가 그의 등에 꼭 붙어 흐느끼고 있었다.

그 여쳬는 능천한을 놓치기라도 할까보아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누님...!]

능천한은 여인의 교수를 꼭 쥐었다.

[아우님...!]

여인... 광양존후 금벽라도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미안합니다. 누님...!]

능천한의 말에 금벽라는 옥용을 그의 등에 파묻었다.

[아우님의 잘못이 아니고... 신첩은 다만 아우님의 곁에 머물 수만 있다면 원이 없으니...!]

금벽라가 촉촉한 어조로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누님...!]

능천한은 돌아누우며 금벽라를 끌어안았다.

뭉클 안겨드는 풍만한 동체...

그리고 물기를 실은 기품있고 따스한 옥용이 거기 있었다.

그러나 금벽라는 얼굴을 물들이며 능천한을 살짝 떠밀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말을 하며 금벽라는 몸을 일으켰다.

젖무덤이 물결치듯이 출렁이고...

[...!]

돌아앉던 금벽라는 하복부를 움켜쥐며 움찔하였다.

하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며 의복을 걸쳤다.

능천한도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상공... 용서하세요!]

제갈영라가 눈을 꼭 감은 채 옥용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도 잠에서 깨어나 있었던 것이다.

[흐음...!]

능천한은 나직하게 한숨을 쉬며 제갈영라를 안아 일으켰다.

[지난 일이고...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니... 미안해 할 필요없소...]

그는 대답하며 그녀의 저고리를 어깨에 걸쳐 주었다.

[감사하옵니다. 상공...]

제갈영라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떨구어진 그녀의 시야로 석실바닥의 여기 저기에 피어 있는 선연한 혈화(血花)가 들어왔다.

두 여인이 능천한에게 순결함을 바쳤다는 아프고 아름다운 흔적이었다.

세 사람은 의복을 정돈했다.

[몸은 어떻소?]

능천한이 걱정을 담아 물으며 제갈영라 앞에 앉았다.

제갈영라는 목까지 붉게 물들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파서... 일어설 수가... ... 사옵니다...!]

[그것 보오...!]

능천한은 고소를 지으며 제갈영라의 가냘픈 교구를 두 팔로 안아들었다.

[이후로... 나의 허락없이 이런 당돌한 일을 하면 용서치 않겠소!]

능천한이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때였다.

[아우님... 이리와 보시어요!]

금벽라가 한쪽에서 능천한을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안은 채 금벽라에게로 다가갔다.

금벽라는 한쪽의 석벽 앞에 서 있었고,

그녀의 앞에는 또다른 은밀한 석벽이 하나 있었다.

[석문(石門)이 있어요!]

금벽라가 다정한 눈빛으로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어찌되었든 그는 금벽라가 평생을 섬겨야 할 지아비이니...

[기관이 있어요. 환유천신이 훔쳤다는 삼십육종의 재화중 마지막 신품(神品)이 숨겨져 있을 거예요!]

제갈영라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그렇겠구려!]

능천한은 석실의 유리관이 모두 삼십 오 개임을 되새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문의 우측상단 세 치 쯤에 지력으로 구멍을 내세요!]

제갈영라가 금벽라에게 말했다.

--- --- !

--- 가각!

금벽라가 지체없이 광양지력(廣陽指力)으로 석문에 구멍을 내었다.

그러자,

--- 그그긍!

으르르르...!

석문이 육중하게 끌리며 뒤로 물러났다.

[다른 위험은 없어요. 들어가시어요!]

--- --- 뚜벅!

제갈영라의 말에 능천한은 석문 안으로 들어갔다.

석문 안쪽은 또 다른 석실이었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석실인데 중앙에는 석상(石床)이 하나 놓여 있고

건너편에 또 다른 석문이 보였다.

한데 그 석문에도 전자(篆字)의 글씨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환혼비전(環魂秘殿).>

 

[환혼비전(環魂秘殿)이라...!]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석실중앙으로 다가섰다.

문득 그의 시선이 석상(石床) 위에 머물렀다.

석상위에는 길이 다섯 자 정도의 교룡피(蛟龍皮)에 싸인 물건이 놓여 있었다.

(무엇인가?)

능천한은 강렬한 호기심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기이하게도 어떤 영감이 강하게 일어나 그의 시선을 교룡피에 든 물건에 묶어 두었다.

 

---기다렸다. 수천 년의 세월을 그대를 기다려 왔노라.

 

능천한의 뇌리에 교룡피 안의 물건이 영감이 전해 오는 듯 하였다.

[영라는 신첩이 안을테니... 살펴 보세요.]

금벽라가 능천한에게 말하며 제갈영라를 안아등었다.

[...!]

능천한은 숨을 들이쉬며 석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흥분된 손길로 교룡피를 벗겼다.

[...!]

교룡피를 벗기던 능천한은 멈칫하였다.

의외로, 교룡피에서 나온 물건은 아주 볼품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무튀튀한 하나의 극()이었다.

길이는 다섯자,

극인(戟刃)의 길이가 두 자이고 손잡이가 세 자의 길이였다.

한데 그 극은 어디를 보아도 뛰어난 점이 없었다.

전체가 시커멀 뿐 아니라 극인(戟刃)조차도 뭉툭하여 무엇을 잘라낼 수 있을 것 같지를 않았다.

그러나,

(무엇이... 이리도 내마음을 끄는가?)

능천한은 그 볼품없는 극()이 너무도 강렬하게 자신의 마음을 끌어당김을 느꼈다.

그때였다.

[천극(天戟)이군요!]

금벽라에게 안긴 제갈영라가 나직하게 말했다.

[천극(天戟)! 이것이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서열십위에 올라 있는 천극(天戟)?]

능천한은 새삼스럽게 극을 바라보았다.

!

문득 교룡피 안에서 하나의 두루마리가 능천한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

능천한은 허리를 숙여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오래된 듯이 뽀얗게 빛이 바래 있었다.

능천한은 두루마리를 펼쳤다.

 

<인연(因緣)있는 자를 위하여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이 남긴다.>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

능천한은 나직이 되뇌었다.

 

---대라천기선(大羅天機仙)!

 

그는 무림사상 제일의 현자(賢者).

학문은 고금(古今)을 통하고 그 지혜는 천세를 뛰어 넘을 정도였다.

천극(天戟)!

그 볼품없는 거무튀튀한 극()이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남아있는 것도 실상은 대라천기선의 명성덕분이었다.

 

<천극(天戟)이 주인을 찾으리라.

극히 크고 혼돈된 때를 접하여 천극(天戟)의 진면모가 나타나리니...

그때를 만나면 대혈운(大血雲)도 산산이 부서지리라.

여기 연자(緣者)를 위하여 보잘 것 없는 재주나마 남기나니...

스스로 연자(緣者)가 아님을 느낀다면 다시 볼 필요도 없으리라!>

 

그리고, 그 아래로 두 가지 구결(口訣)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한 가지 심법과 이초(二招)로 이루어진 초식이었다.

 

<천혜극령쇄심기(天慧極靈碎心氣).>

 

이는 일종의 초상승의 정신력의 운용법이었다.

이에는 두 가지 묘용이 있다.

하나는 정령(精靈)을 극도로 강하게 다져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력으로 타인의 영혼을 부수어 버릴 수 있는... 극히 강한 파령지력(破靈之力)이다.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도록 강한 것이고,

그 때문에 이는 범인보다 몇 백배 강한 정력(定力)을 지닌 자만이 수습할 수 있다.

 

<천극이절해(天戟二絶解).>

 

천혜극령쇄심기 다음에 적힌 것은 천극의 운용을 위한 이초의 초식이었다.

 

---천극망(天極網).

---거령폭류참(巨靈暴流斬).

 

이것이 그 두 가지 초식이었다.

[지니고 있으시오!]

두루마리를 한번 훑어본 능천한은 제갈영라에게 건네주었다.

[...!]

그리고는 잠시 천극(天戟)을 들여다보았다.

검은 천극 속이 어떤 커다란 비밀이 감추어져 있음을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능천한은 천극을 교룡피의 집속에 집어넣고 걸음을 옮겼다.

(환혼비전(環魂秘殿)이다.)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건너편 석문으로 다가갔다.

그르르르르--- !

능천한이 밀자 석문은 의외로 순순히 열렸다.

스스스스슥!

휘르르르르---!

석문이 열리자 기이한 단향 내음이 확 풍겨 나왔다.

능천한은 강렬한 안광을 쏟아내며 석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화려하게 치장된 여인의 거처였다.

사방의 벽에는 고서화들이 가득 걸려 있는데 하나하나가 진품이었다.

능천한은 묵묵히 석실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붉은 휘장이 드리워져 있는 침상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누워있다.)

능천한은 침상 위에 누군가 누워있음을 알아차리고 다가갔다.

--- !

능천한은 거침없이 휘장을 걷었다.

(!)

휘장을 걷던 능천한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런 그의 두 눈은 당혹으로 물들었다.

화려한 금침,

그 위에는 천만뜻밖에도 발가벗은 나녀가 다소곳이 누워있었던 것이다.

삼단같이 흘러내린 머릿결,

백옥의 피부, 완벽한 균형의 동체(胴體),

우람한 유방, 끊어질 듯한 세류요 밑으로 벌려진 펑퍼짐하게 벌어진 둔부,

그리고...

[...!]

능천한은 넋이 나가 나녀의 비궁(秘宮)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방초(芳草)가 한 올도 없었다.

아주 뽀얗게 두드러진 옥둔(玉屯)이 있을 뿐이었다.

[색골같으신 분...!]

제갈영라가 눈을 흘기며 능천한의 허리를 꼬집었다.

[어쿠!]

능천한은 실태를 깨닫고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신첩들을... 그렇게 즐기시고도 한눈을 파시다니요...]

광양존후도 나직이 한숨을 쉬며 투정을 하였다.

그녀가 아무리 일대여종사라해도 여인은 여인이니까...

그때였다.

[환유천신(幻遊天神)이 여인이라니... 놀랍군요!]

제갈영라가 나직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여인이 환유천신?]

능천한은 흠칫하며 나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나녀의 머리맡에는 여러 권의 비급이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능천한은 제일위의 비급을 집어 들었다.

 

<환몽경(幻夢經).>

 

[환몽경... 이 여자가 정말 환윤천신이겠소.]

비급을 훑어본 능천한은 고개를 끄떡였다.

나녀는 바로 환유천신의 진정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환혼잠령대법(還魂潛靈大法)을 펼쳤을 거예요.]

제갈영라가 말했다.

[환혼잠령대법?]

능천한은 의아해하며 제갈영라를 돌아보았다.

제갈영라는 금벽라의 품에 안긴 채 말을 이었다.

[배교(拜敎)에서 흘러나온 것인데 사실은 불완전한 술법이었어요. 어찌 인간이 영생불사할 수 있겠어요?]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말을 들으며 또 한권의 비급을 집어 들었다.

 

<배교비전(拜敎秘典).>

 

[다만 환혼잠령대법은 환혼강시(還魂畺屍)를 만들 수 있을 뿐이에요!]

제갈영라가 말했다.

[환혼강시! 강시대법 중 인간에 가장 가깝다는...?]

능천한이 흠칫하며 침상 위의 환유천신을 바라보았다.

제갈영라는 금벽라를 바라보았다.

[강시라 해도 너무 예뻐서 저는 불안해요.]

제갈영라의 말에 광양존후 금벽라가 조용히 웃었다.

[차라리 잘 되었지 않아? 저 색골양반께서 그녀를 끼고 다니시면 우리를 못살게 구는 일은 적어질 테니...]

금벽라의 말에 능천한은 얼굴을 붉혔다.

[누님도... , 아무리 아름다워도 영혼이 없는 강시입니다. 강시에게 어떻게 딴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제갈영라가 입술을 삐죽였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아까 그녀를 보던 눈길은 탐욕스럽기 이를 데 없었는데... 특히 그녀의 아랫도리를 볼 때에는...]

[허참...!]

능천한은 멋쩍게 웃었다.

[호호... 농담이고요, 그녀는 생전에 묵적의 공력을 지녔었던 초절정의 고수였어요. 환생시키면 혈종과 싸울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니 환생시키세요.]

[누님의 생각은...?]

능천한은 금벽라를 돌아보았다.

[신첩도 영라와 같은 의견이에요!]

금벽라가 조용히 대답하자 제갈영라가 말을 이었다.

[강시를 깨우는 방법은 배교비전에 실려 있으니 참고하세요!]

[알겠소!]

능천한은 배교비전을 뒤적이다가 한곳에 시선이 머물렀다.

 

<반혼환령호혼술(返魂還靈呼魂術).>

 

[...!]

능천한은 말없이 구결을 읽어 내려갔다.

스스스스스...!

그러자 능천한의 몸주위로 괴괴로운 기운이 일어났다.

그 모습에 금벽라와 제갈영라는 서로를 돌아보았다.

(구결을 한번 읽으므로 운용을 하시다니... 저분의 능력은 끝이 없구나...)

두 여인은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고금제일의 능력을 가진 기재,

그가 바로 자신들의 남편인 것이다.

스스스---!

크크크...!

한순간 실내가 음산한 기운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일어나라! 구천(九天)에 떠돌던 잔혼이여 이제 환혼의 때가 되었노라... 일어나 눈을 뜨라. 새 생명이 그곳에 있나니...]

능천한의 입에서 괴괴로운 주문이 흘러 나왔다.

그러자,

--- !

--- 카캉!

가공스런 안광이 번뜩이며 그 안광에 가격된 천장이 움푹 패여 버렸다.

환유천신이 눈을 뜬 것이다.

(단천파라신안강(斷天破羅神眼罡)...!)

스스슥!

이어 환유천신이 꿈꾸는 듯한 눈동자로 일어나 앉았다.

[보라! 나와... 이 두 여인이 그대의 혼()이니라. 부토로 돌아가기까지 우리에게 머물러야 하니라!]

능천한은 두눈이 새파란 광휘를 쏟아내었다.

사르르르...!

한동안 세 사람을 바라보던 환유천신은 다소곳이 삼 인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성공이에요!]

제갈영라가 환희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는 해보고 싶지 않은 일이외다!]

능천한이 고소를 짓자 금벽라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힘은 드셨겠으나... 대신 천군만마의 힘을 얻지 않으셨사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 누님!]

능천한은 미소를 지으며 환유천신을 바라보았다.

[...!]

환유천신은 영문도 모르면서 능천한을 마주보며 고혹한 미소를 지었다.

 

<第二券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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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九 章

 

                幻夢天遊府의 情事

 

 

 

[흑흑흑!]

미녀가 애절히 흐느낀다.

[으음...]

능천한은 괴롭게 신음하며 무너진 석실 쪽으로 무릎을 꿇었다.

우두두둑!

바닥의 석괴가 그의 손아래서 가루로 부서졌다.

(노선배께서는... 내가 혈종의 적수가 안된다는 것을 아셨다. 그래서 혈종과의 싸움을 뒤로 미루게 하기 위해 자폭하셨다.)

능천한은 입술을 깨물었다.

청허현도존의 자폭이 자기의 무공이 약한 때문임을 아는 까닭이다.

[아우님... 제갈동생... 고정하세요.]

금벽라가 두사람을 다독이며 달랬다.

[흑! 벽라언니...]

미녀가 흐느끼며 금벽라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영라(瓔羅) 동생...]

금벽라는 미녀를 꼭 껴안아 다독여 주었다.

[흑흑...]

[...]

흐느낌과 깊은 비통함이 흘렸다.

그리고,

[아우님, 영라동생을 소개시켜 드릴게요.]

금벽라가 영라라는 미녀를 다독이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은 고개를 들어 그 미녀를 바라보았다.

(으음...)

미녀를 바라보던 능천한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경이에 찬 시선으로 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금벽라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알아보시는군요!]

그녀의 말에 능천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능천한은 묘한 시선으로 금벽라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웃는 듯 우는 듯 괴이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천혜... 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는 전설일 뿐인 줄 알았거늘...]

능천한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혜만음성령지체(天慧萬陰聖靈之體)>

 

천극대정신맥(天極大正神脈)과 비전되는 전설상의 신체(神體)다.

이는 천극대정신맥과는 달리 여인에게서만 나타난다.

천혜만음성령지체를 타고난 여인은 일만 명 분의 순음지기를 지니고 태어난다.

덕분에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재지(才智)를 지니게 된다.

반면 순음지기가 너무 강하여 단명하고 마는 단점이 있다.

즉, 순음지기가 지나치게 강해서 전신의 심맥을 얼려버리는 것이다.

그 상태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이 이십 세 전후다.

천혜만음성령지체의 지나친 순음지기를 소멸시키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강력한 그 순음지기를 사내가 흡수해 주는 방법뿐이다.

단, 보통 체질의 사내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순음지기를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전신이 얼어붙어 절명하고 말기 때문이다.

단 한명,

천극대정신맥을 타고 난 자만이 천혜만음성령지체의 순음지기를 다스릴 수 있다.

능천한은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영라를 부탁하네!

 

자폭한 청허현도존이 던진 말의 진의를 확인한 때문이다.

(내가 거두지 않으면 반년을 못 넘기고 절명한다. 싫건 좋건 그녀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능천한의 안색이 여러 차례 변했다.

천혜만음성령지체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음양교환의 방법을 써야한다.

즉,

능천한이 영라라는 미녀를 살리려면 부인으로 삼아야만 하는 것이다.

[천혜선자(天慧仙子)가 소저이외까?]

능천한이 나직이 한숨을 쉬며 물었다.

[신첩, 제갈영라(諸葛瓔羅), 상공을 뵙습니다!]

미녀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능천한에게 다소곳이 절을 올렸다.

[휴, 소저 일어나오!]

능천한은 제갈영라를 부축했다.

 

---천혜선자(天慧仙子).

 

능붕비가 광양존후와 함께 극구 칭찬하던 천하제일재녀가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또한 쌍극천효(雙極天梟)의 천금(千金)이기도 하다.

그러나,

제갈영라는 아버지의 무도함에 반발하여 뛰쳐나왔다.

그리고,

도가제일인(道家第一人) 청허현도존의 눈에 들어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이미 청허형도존의 모든 학문을 이어받았다.

단순히 청허현도존의 진전을 이은 정도가 아니었다.

제갈영라는 청허현도존의 경지를 이미 오래 전에 뛰어넘고 있었다.

천혜만음성령지체!

그 천고의 신체를 타고났기에...

 

[우선 이곳을 벗어나야 해요!]

광양존후가 두 사람을 재촉하며 일어났다.

제갈영라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이리 오시오.]

능천한은 제갈영라의 교구를 반짝 안아들었다.

[고, 고맙사옵니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가슴에 안기며 옥용을 살짝 붉혔다.

(가엾게도... 어린아이만큼 가볍게 여위다니...)

능천한은 연민의 표정으로 제갈영라를 내려다보았다.

뚜--- 벅! 뚜--- 벅!

이어 그는 석로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울리며 광양존후의 뒤를 따랐다.

 

***

 

석로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곳은 전대고인(箭代古人)의 은거지였던 모양이군요!]

광양존후가 주위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잠시 후 세 사람은 육중한 석문(石門) 앞에 이르렀다.

석문은 오강석(烏剛石)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중앙쯤에 큼직한 다섯 자의 전자(篆字)가 적혀 있었다.

 

<환몽천유부(幻夢天遊府)>

 

[환몽천유부!]

광양존후 금벽라가 나직하게 탄성을 질렀다.

[신기보(神奇譜) 서열 구위의 신기(神奇)를 여기서 보게 되다니... 놀랍군요!]

능천한의 가슴에 안긴 제갈영라가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음...]

능천한도 나직이 신음하며 석문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환몽천유부(幻夢天遊府)>

 

신기보의 아홉번째 장에 적힌 신기를 말한다.

일백 년 전,

신분이 완벽한 비밀에 가려진 대도(大盜)가 있었다.

그 대도는 출신과 용모는 물론이고, 심지어 남녀(男女)의 구별마저 알려지지 않앗었다.

 

---환유천신(幻遊天神).

 

고금제일대도(古今第一大盜).

고금제일탐미가(古今第一探美家).

가장 고상하고 가장 손이 컸던 대도(大盜)가 바로 그다.

환유천신은 금은(金銀)등의 재화를 탐한 좀도둑이 아니었다.

그는 그다지 많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유천신의 도둑질들은 천하를 뒤흔드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저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였다.

화씨지벽(華氏之璧)을 진시황(秦始皇)이 깎아 만들었다는 제왕지인(帝王之印)!

그것을 환유천신이 손을 댄 것이다.

당시의 황실을 비롯한 천하가 발칵 뒤집힌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고,

그러나 누구도 전국옥새를 찾을 수 없었다.

그후,

환유천신의 도둑질은 여러 번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천하가 경동되어 환유천신의 행방을 수만 명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환유천신은 여전히 운중(雲中)에 있었으며,

전국옥새가 사라진 뒤 육십 년 후 환유천신도 신비롭게 사라졌었다.

그것이 오백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후,

 

---환유천신은 자신이 도둑질한 삼십육종의 천하재화를 갖고 환몽천유부로 은거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이같은 소문이 천하에 나돌았다.

그것이 신기보에 올라 서열 구위에 기록되어 신기(神奇)로 남게 되었다.

 

삼인은 한동안 넋이 나가 석문(石門)을 바라보았다.

문득,

[환자(幻字)의 마지막 획을 똑같이 그려보세요!]

제갈영라가 금벽라에게 말했다.

[그러마...]

금벽라는 석문으로 다가가 제갈영라가 말한 대로 해보았다.

그러자,

그그그그그!

육중한 굉음이 일며 석문이 활짝 열렸다.

번--- 쩍!

스스스스스!

석문이 열리며 강렬한 광휘가 삼인의 전면으로 쏟아졌다.

[들어가요!]

금벽라가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능천한도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그그그--- 그긍!

그들이 들어서자 석문이 뒤쪽에서 다시 닫혔다.

 

삼인은 석실 안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널찍한 석실이었다.

한데 석실 전체가 교교로운 서기(瑞氣)로 뒤덮여 있었다.

또 석실 벽에 기대어 수십 개의 유리관이 놓여 있었다.

그 유리관들은 모두 삼십 오 개였다.

세 사람은 가장 가까이 있는 유리관으로 다가갔다.

스스스스스!

그 유리관에서는 기품있는 서기가 무지개같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이것은...!]

[아...!]

유리관의 안을 들여다보던 삼인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렀다.

유리관에는 청년단향복(靑年丹香木)으로 만든 목함이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서기는 목함에 들어있는 큼직한 옥인(玉印)에서 번져 나오고 있었다.

[전국옥새!]

능천한이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전국옥새(傳國玉璽)!

 

오백여 년 전에 잊혀진 무상지인(無上之印)이 거기 있었다.

이미 여러 차례 왕조가 바뀌었고, 대명의 새로운 옥새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기에,

직국옥새의 무상신위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다.

그러나...

전국옥새는 천수백 년을 내려오며 그 자상의 위엄을 떨치던 무상지인(無上之印)임에는 틀림이 없다.

[전국옥새를 볼 수 있다니...!]

광양존후의 시선도 흔들렸다.

그리고,

[화씨지벽의 아름다움을 전언으로만 들었는데... 이제 대하니 전언이 오히려 사실만 못하군요!]

제갈영라도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세 사람은 잠시 전국옥새를 들여다보았다.

그런 후 옆의 유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의 유리관 안에는 두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하나는 고색창연한 지환(指環)이였다.

재질은 천하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금강벽(金剛璧),

금강석만큼 단단하다는 금강벽 위에 두 마리의 봉황(鳳凰)이 새겨져 있었다.

(봉황신지환(鳳凰神指環)! 봉황지존(鳳凰至尊)의 봉황지소(鳳凰之所)를 열 수 있다는 신물(神物)...!)

제갈영라의 봉목이 아주 신비롭게 빛났다.

(그렇다면 이것은...!)

제갈영라의 시선은 봉황신지환의 옆에 놓인 작은 옥향로(玉香爐)에 머물렀다.

온갖 보물로 치장이 된 귀품(貴品),

그 옥향로만으로도 백만금의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더 귀한 것이 옥향로 안에 들어있다.

(봉황오보(鳳凰五寶)중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이다!)

제갈영라의 봉목이 아주 밝게 빛났다.

 

<봉황지존(鳳凰至尊)>

 

천년 그 이전에 있었던 전설적인 천외무종(天外武宗)이다.

그의 무공은 주로 선도(仙道)를 추구하는 온건한 것이었다.

그런 봉황지존이건만 한 가지 파천(破天)의 신기(神器)를 남겼다.

 

---봉황극락소(鳳凰極樂簫),

 

바로 이것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드는 무상신병(無常神兵)이...

봉황지존은 봉황극락소외에 많은 것을 남겼다.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는 음양(陰陽)의 화합을 이루게 해주는 묘향이다.

이는 비단 단순히 남녀를 육체적으로 하나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봉황극락신향은 육체뿐만이 아니고 영혼(靈魂)까지도 합일(合一)시켜 남녀 모두에게 무상의 공효를 주는 것이다.

(좋은 기회... 어차피 나의 몸을 상공께 드려야 한다면...)

제갈영라의 눈빛이 결의로 빛났다.

능천한과 금벽라가 그것을 보지는 못했으나...

제갈영라는 슬쩍 금벽라를 돌아보았다.

(언니도... 상공께 마음이 끌리시는 듯하니... 오히려 좋은 일이 되겠지.)

제갈영라는 생각을 굴리며 금벽라에게 말했다.

[언니... 저 옥향로를 열어 보세요!]

[옥향로를?]

금벽라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가 있겠지!)

금벽라가 제갈영라의 혜지가 대해 같음을 알기에 큰 의문을 갖지 않았다.

끼--- 이--- 익!

금벽라는 유리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는 봉황극락신향이 담긴 옥향로를 아무런 의심도 않고 열었다.

그러자,

스스스스--- 슥!

휘르르르르---!

향로 안에서 분홍의 안개가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

[...!]

능천한과 금벽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봉황극락신향에서 폐부를 맑게 하는 향기가 솟았고,

두 사람은 그 향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웃!]

[아...!]

직후 능천한과 금벽라는 아연하였다.

갑자기 단전으로부터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공이든 무엇이든 간에 막을 방도가 없는 강렬한 것이었다.

[봉...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 그... 그대가...!]

능천한이 시뻘개진 얼굴로 제갈영라를 내려다보았다.

제갈영라는 능천한의 가슴에 안긴 채 눈을 내리깔았다.

[상공... 용서...!]

그리고---!

[으...!]

능천한은 으스러져라 제갈영라를 끌어안았다.

[아으으음...]

너무 세게 끌어 안겨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제갈영라도 능천한에게 매달렸다.

능천한은 그대로 제갈영하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올라탔다.

[헉헉... 으...!]

능천한은 터져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 못하고 거칠게 제갈영라의 육체를 탐해갔다.

스--- 스스슥!

찌지지지직---!

제갈영라의 의복이 능천한의 손에서 거칠게 벗겨져 내렸다.

동그란 어깨,

주먹만하게 작지만 볼록 솟은 팽팽한 젖무덤,

그위에 오또마니 앉은 작은 열매...

[헉헉... 영라... 으음...!]

[아흐흑! 상공... 상공... 어서...아!]

능천한은 재갈영라의 나신을 주무르고 핥으며 탐했다.

그에게 탐닉당하며 제갈영라도 미친듯이 교구를 비틀어 대었다.

벗겨지는 치마...

한줌밖에 안되는 허리,

그리고...

미끈한 옥주와... 그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어린 나이답지 않게 너무도 무성한 방초의 숲...!

[헉헉... 으음...!]

능천한의 두 눈은 시뻘개졌다.

제갈영라의 허벅지를 거칠게 벌린 그의 눈앞에,

생전 처음 보는 여인의 비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아흐흑... 아우님... 제발... 저좀... 어떻게... 아... 흐윽...!]

그와 함께,

금벽라가 전신을 쥐어뜯으며 능천한을 휘감아왔다.

찌--- 지직!

그녀는 스스로 면사를 찢어내었다.

그러자,

온화하면서도 당당한 기품이 있는...

황후를 연상케하는 미소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순간...

[허--- 어억!]

콰르르르르...!

무너졌다!

[아--- 악!]

제갈영라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졌다.

그녀의 허리가 활이 부풀 듯이 휘어지고,

두눈은 하얗게 치떠지고

그녀의 교수는 자신의 처녀의 성을 무너뜨린 사내의 등을 후벼팠다.

우르르르르---!

콰--- 콰--- 콰쾅!

[헉헉헉헉...!]

[아흐윽,... 이이익... 아아아...!]

사내는 폭풍이었고,

그 아래의 여체(女體)는 폭풍에 두들겨 맞는 대지(大地)였다.

퍽! 퍽--- 퍼퍽!

콰르르르릉---! 콰--- 콰쾅!

[아--- 악! 흐으윽... 아... 아...!]

대지는 몸부림쳤다.

폭풍이 아래로 쇄도해 들어올 때마다 처절한 혈화가 화우(花雨)로 뿌려졌다.

처연한 낙화(落花)였다.

한순간...

[흐... 응... 으... 음...!]

콰--- 릉!

만근의 바위같은 힘이 하복부로 들이침을 느끼며 제갈영라는 축 늘어지고 말았다.

[으음...!]

밑에 깔린 여체가 축 늘어지자 능천한은 부르르 떨었다.

그러자,

[흐으으응... 아우님... 어서... 아...!]

너무도 풍염하게 무르익은 여체가 뜨겁게 능천한을 휘감았다.

[으...!]

욕정을 풀지 못한 능천한은 두눈이 시뻘개져 미소부의 동체를 끌어안았다.

광양존후 금벽라였다.

그녀의 몸은 제갈영라와 달랐다.

너무도 풍염하고 넓어서 능천한이 파묻힐 정도였다.

[아--- 악...! 아아...!]

그러나...

그녀도 파과의 고통 앞에서는 제갈영라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녀는 두눈을 하얗게 치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풍염한 육체로 능천한을 아기같이 감싸 안았다.

[헉헉... 으음... 누님...!]

그런 금벽라의 육체 위에서 능천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노를 저었다.

[아아...! 흥... 흥... 아이으으음...!]

금벽라의 입에서 교성이 흘렀다.

그녀 나이 이미 서른이 넘었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육체는 이내 강렬하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흑흑... 아아... 아우님... 아...!]

금벽라는 극한의 희열을 흐느끼며 능천한을 휘감았다.

 

---봉황극락신향(鳳凰極樂神香),

 

그 천고의 기향(奇香)은 세 남녀의 욕정을 끝없이 불러 일으켰다.

능천한은 환몽중을 헤매며 금벽라와 제갈영라의 육체 속으로 끝없이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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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八 章

 

               血荒奪 對 覇天神輪

 

 

 

 

--- -- !

쿠르르르르---!

경기가 해일같이 일고,

굉음이 우뢰같이 터지고 있었다.

널찍한 석실(石室).

자연적인 동굴에 인력(人力)을 가한 듯이 보이는 널찍한 석실이었다.

[! 지독한 늙은이...!]

[과연... 무당제일인(武當第一人)이다.]

두 명의 인물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일인(一人)을 합공하고 있었다.

콰자자자작!

--- 쿠쿠쿠쿵!

시뻘건 혈영강기(血影罡氣)와 찬연한 금빛의 강기가 무지개같이 일어났다.

콰르르르르---!

--- 이이잉!

그 사이로 한 명의 인물이 둥실 떠 있었다.

청수한 노도인(老道人).

한데 두 다리가 무릎 아래서 싹둑 잘라 있었다.

우르르르르---!

노도인의 몸에서는 창창한 청강(靑罡)의 노을()이 피어오르고 있다.

[혈영군(血影君)!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너희들 정도를 못 쓰러뜨릴 무당의 무공이 아니다!]

처참한 형색의 노도인의 입에서 우뢰성이 일었다.

노도인,

그는 무당제일인으로 불리던 절정고수다.

그 때문에 다리가 잘린 중상이건만 신위(神位)를 잃지 않는 것이다.

노도인은 석실에서 또 다른 곳으로 이어지는 석로(石路)의 앞을 막고 있었다.

석로(石路)의 안쪽,

한 명의 소녀가 힘없이 석벽에 기대어 있었다.

백지장보다도 하얀 피부...

그러나,

그녀의 용모는 가히 경국지색이었다.

비 맞은 난초의 모습이 그러할 것이다.

[에잇! 혈영마라살(血影魔羅殺)!]

혈영인, 혈영군(血影君)이 벼락치듯이 쌍장을 쪼개어 내었다.

그와 함께,

[금룡진천하(金龍震天下)!]

--- 우우웅!

우르르르!

석 자 길이의 금장(金杖)으로 폭풍을 끌어 모으는 자,

그자는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라고 불리는 자다.

--- 이이잉!

쿠쿠--- 쿠쿵!

시뻘건 혈영강기와 찬연한 금룡강기가 뒤엉키며 노도인을 쳐갔다.

[태청자허뢰(太淸紫虛雷)!]

스스스스!

노도인의 신형에서도 기이한 자청(紫靑)의 강기가 피어올랐다.

--- 콰쾅!

--- 꾸꿍!

폭죽이 터지듯이 굉음이 일었다.

거창한 파동이 석실을 뒤흔들어 무너뜨릴 듯이 번져 나갔다.

[! 지독한 늙은이...!]

[역시... 도존(道尊)이다!]

혈영군과 통천금룡제가 휘청이며 물러났다.

[...!]

그와 함께 허공에 뜬 노도인의 신형도 크게 흔들렸다.

그때였다.

--- --- !

한 줄기 백영인 유령같이 노도인을 스쳐 석로 안쪽의 미녀를 무찔러갔다.

[감히---!]

휘청하던 노도인의 입에서 벼락같은 노갈이 터졌다.

--- 르르르릉!

노도인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백영(白影)을 휩쓸어 갔다.

그때였다.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그러길 기다렸다!]

스스스스슥!

백영(白影)이 일시에 수십 개의 환영(幻影)으로 흩어졌다.

[!]

노도인은 당황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전력을 쏟아냈으므로 일시에 공세를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 순간,

--- !

[--- !]

노도인은 가슴이 화끈함을 느끼며 나뒹굴었다.

어느틈엔가 그의 가슴에는 월아형(月牙形)의 비수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 청허현도존)도 별것 아니군!]

백영이 남녀를 구별할 수 없는 탁한 목소리로 냉갈하며 청의노도인 앞으로 날아내렸다.

한데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이라니...

다리가 잘린 노도인!

그가 정녕코 청허현도존이란 말인가?

정도삼존(正道三尊)의 일존(一尊)이며 무당제일존이기도 하던 청허현도존,

그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천하제일지사(天下第一智士)라던 그도 자신의 운명은 알지 못했단 말인가?

[... 태옥(太玉)... 그 못난 놈이... 엉뚱한 짓만 하지 않았어도!]

청허현도존이 피를 토하며 몸을 일으켰다.

스스스스슥!

[크크크...!]

그의 주위로 혈영군, 통천금룡제, 그리고 백의에 몽면을 한 살수가 다가섰다.

살수는 일신에 백포를 뒤집어 쓰고 있어 남녀노소를 구별할 수가 없었다.

[영라(瓔羅)... 미안하다.]

청허현도존은 벽에 기댄 채 석로속의 미녀를 돌아보았다.

[...!]

석로의 미녀는 커다란 눈으로 청허현도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맑은 두눈이 처연함을 담아 촉촉히 젖어있었다.

[청허현도존!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여한은 없겠지?]

백의살수가 냉소하며 손을 쳐들었다.

의외로 여인의 그것같은 작은 손이었다.

그 손에는 싸늘한 빛이 흐르는 월아밀살비(月牙密煞匕)가 들려있었다.

[월영극살(月影極煞)... 영라에게는 손대지 마라!]

청허현도존은 백의살수에게 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월아밀실비가 꽂힌 청허현도존의 가슴에서는 선혈이 꾸역꾸역 흘렀다.

[! 물론이다! 영라는 본종(本宗) 군사(軍師)의 천금이니...!]

월영극살이라 불린 백의인이 냉소할 때였다.

빠캉!

[!]

요란한 금속성과 함께 월영극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디선가 날아든 강기가 월아밀살비를 박살낸 것이다.

[누구냣!]

[어떤 놈이냐?]

삼인이 대경하여 홱 돌아섰다.

그때였다.

[혈종(血宗)의 주구들! 용서할 수 없다!]

한소리 우렁찬 폭갈이 터져 석실을 뒤흔들고,

--- --- !

--- --- 이잉!

갑자기 석실전체가 새파란 륜영(輪影)으로 가득 찼다.

[!]

[... 패천신륜(覇天神輪)!]

[으아아... 패천신륜이다!]

삼인의 안색이 사색이 되었다.

--- --- !

쿠르르르---!

--- --- !

삼인은 사색이 되어서도 지체없이 전력을 다해 공세를 발동하면서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 --- 카캉!

--- --- !

모든 공세가 륜영(輪影)에 부닫히자 산산이 박살이 나서 흩어졌다.

그리고 혈영군(血影君)은 가슴이 화끈해짐을 느꼈다.

패천신륜의 예기(銳氣)가 혈영장기를 쪼개어 피를 본 것이다.

[...!]

[...!]

통천금룡제는 공포로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고,

월영극살은 얼마나 놀랐는지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고 있었다.

스스--- 스슥!

다음 순간,

스스스슥!

모든 륜영(輪影)이 가시며 청허현도존의 옆으로 이인(二人)이 유령같이 내려갔다.

그들은 물론 능천한과 광양존후(廣陽尊后)였다.

[능가... 또 네놈이냐?]

통천금룡제가 부들부들 떨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통천금룡제! 혈영군! 다시 만났구려!]

능천한이 묵직한 어조로 말하며 혈영군과 통천금룡제를 바라보았다.

(무섭다! 무서운 속도로 거대(巨大)해지고 있다.)

능천한의 시선을 접한 혈영군과 통천금룡제의 안면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어 그의 시선은 월영극살에게 머물렀다.

(낯익은 눈빛...)

능천한은 몽면사이로 드러난 월영극살에게 머물렀다.

월영극살은 그의 시선을 받자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때였다.

[... 그대가... 패천잠룡(覇天潛龍)... ?]

금벽라의 부축을 받으며 청허현도존은 힘겹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황산 능가의 후손입니다.]

능천한이 시선을 돌리지 않으며 대답했다.

스스스슥!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이 품자형으로 포위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시선을 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허허... 황산으로 그대를 찾으러 가다가 저 망나니들에게 막혔었는데... 이런 곳에서 그대를 만나다니,...]

청허현도존이 안심한 듯이 웃었다.

그때,

[죽어랏! 혈영척살류(血影剔煞流)!]

[금룡통천인(金龍通天印)!]

[...!]

파츠츠츠츠츳!

--- 쿠쿵!

--- !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의 공세가 일제히 노도같이 일었다.

그자들은 개개인이 초절정의 고수들이다.

능천한이 맨손으로 겨룬다면 크게 우세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능천한에게는 천지십병에 드는 패천신륜(覇天神輪)이 있다.

무엇이든지 잘라낸다는 천하의 패도신병(覇道神兵)...

(끝을 내자!)

능천한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차핫! 겁멸파황류(劫滅破荒流)!]

능천한이 대갈하며 패천신륜을 쪼개어 내었다.

패천제사절(覇天第四絶)!

--- 이이잉!

콰르르르---

천지가 갈라지는 듯!

거창한 륜세(輪勢)가 폭풍처럼 일어났다.

수천 조각의 륜영(輪影)!

그것은 하나하나가 한자 두께의 동장철벽이라도 잘라버리는 날카로움을 싣고 있었다.

--- --- 카각!

츠츠츠---

[!]

[... 상대할 수 없다!]

[...!]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이 피를 흘리며 밀려났다.

그들의 가슴은 쩍쩍 갈라져서 선혈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능천한도 패천신륜을 받아들며 휘청하였다.

월영극살이 내친 무형살인강(無形殺人罡)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물러가랏! 그대들과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다!]

능천한이 냉갈하며 싸늘히 삼인을 노려보았다.

[...]

[...]

통천금룡제와 혈영군이 치를 떨며 능천한을 노려보았다.

능천한의 일갈에 치욕을 느낀 것이다.

그러나 감히 발작하지는 못했다.

패천신륜의 무서음을 뼈아프게 느낀 탓이다.

그때였다.

[크흐흐흐! 그대가 패천황룡(覇天皇龍)의 아들인가?]

갑자기 한소리 소름끼치는 음성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그와 함께,

츠츠츠츠츳!

석실의 일각에서 칙칙한 혈광(血光)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

능천한은 이 돌변한 상황에 흠칫하였다.

그리고,

[... 혈종(血宗)!]

[종주(宗主)!]

혈영군, 통천금룡제, 월영극살이 급히 오체복지 하였다.

(혈종(血宗)?)

능천한은 흠칫하며 혈광(血光)이 번져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있었다!

[...!]

그곳에 어느 틈엔가 일인(一人)이 서 있었다.

전신을 칙칙한 혈광(血光)으로 뒤덮은 괴인(怪人).

그자의 눈에서는 번갯불같은 혈광(血光)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둔중하게 신음하였다.

[귀하가 혈종(血宗)인가?]

능천한은 이내 능연히 몸을 세우며 물었다.

그러자 혈광 속의 괴인이 괴팍한 어조로 대꾸했다.

[크크... 패천잠룡! 그렇다. 본종이 혈종(血宗)이다!]

능천한은 두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우주혈종(宇宙血宗)과는 어떤 사이인지...]

[크크... 그것은 네가 알필요 없다.]

그리고,

--- 츠츠츳!

--- ! --- 이이잉!

그자의 몸에서 칙칙한 핏빛의 기류가 일어났다.

그것은 그자가 든 기형(奇形)의 탈()에서 솟구치고 있었다.

[혈황탈(血皇奪)...]

능천한은 둔중하게 신음하였다.

[자부궁(紫府宮)을 친 것도... 그대였군!]

--- --- 이잉!

츠츠츠츠---

패천신륜에서도 강렬한 기류가 일었다.

[조심하세요, 아우님!]

광양존후가 걱정스레 전음을 보냈다.

[...!]

능천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르르---

--- 이이잉!

석실이 거창한 예기(銳氣)로 가득찼다.

천지십병(天地十兵)!

당세에 동시에 나타난 천지십병 간의 충돌이 이제 벌어지는 것이다.

 

---혈황탈(血荒奪).

---패천신륜(覇天神輪).

 

이백 년 전 한 차례 격돌이 있었던 두 신병이 이제 다시 부딪히는 것이다.

[...]

[... 지독한 예기...]

두 신병사이에 있던 혈영군 등이 오공으로 피를 토하며 한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던 어느 순간,

[크크크...]

--- 이이잉!

혈종의 음소 속에서 가공할 혈기류(血氣流)가 쏟아졌다.

숨을 탁 막히게 하는 끔찍한 핏빛마기!

[겁멸파황류(劫滅破荒流)!]

--- --- !

--- 유우우--- !

패천신륜에서도 벼락이 치듯이 륜강(輪罡)이 쏟아졌다.

------ !

--- --- !

만균의 뇌정(雷霆)이 터지듯.

동장철벽이 깨어지는 듯한 폭음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 !]

! --- 쿠쿵!

그중에서 능천한의 앞가슴을 피로 물들이며 쿵쿵 물러섰다.

(공력(功力)의 차이가 너무 난다!)

능천한의 안색이 하얘졌다.

혈종의 공력이 너무 강한 것이다.

병장기끼리의 우열은 거의 없음에도 능천한은 손해를 본 것이다.

[아우님...]

광양존후가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그리고...

(안된다. 공력차이가 커서 혈황탈을 막지 못한다.)

청허현도존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살기는 틀린 몸... 영라를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뒤로 미루도록 해야 한다.)

청허현도존의 노안이 결의로 번뜩였다.

--- 이잉!

츠츠츠---

다시 혈종과 능천한은 막강한 예기를 일으키며 대치했다.

(폭천혈강류(瀑天血罡流)...)

능천한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능소형제... 내말을 잘 듣게, 노도가 뛰쳐나가는 순간에 급히 뒤로 물러나게!]

능천한의 귓가로 청허현도존의 전음이 들렸다.

[...!]

능천한은 흠칫했다.

(저분이 무슨 생각을,...)

다음 순간,

[--- --- !]

--- 아앙!

청허현도존이 폭갈을 지르며 혈종에게로 쇄도하여 갔다.

[! 노선배!]

[사부!]

능천한은 등이 아연하여 외쳤다.

[미쳤군!]

--- --- !

혈종이 흠칫하다가 혈황탈을 쪼개내었다.

[안돼!]

능천한이 아연하여 패천신륜을 쳐들었다.

그러나...

[능소형제! 영라를 부탁하네!]

청허현도존의 외침이 능천한의 귓전을 때리고.

[청허도천폭(靑虛道天暴)!]

--- 꾸꿍!

--- --- !

청허현도존의 일신에 새파란 안개()가 뒤덮이는 듯 하더니...

일시에 그의 노구가 굉렬하게 폭발하였다.

[노선배!]

[사부!]

능천한은 처절하게 부르짖으며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청허도천폭(靑虛道天暴)!

 

그것은 일신의 잠력을 한순간에 끌어올려 육신과 함께 폭출시키는 것이다.

절대절명의 최후신공...

--- 르르릉!

--- --- 쿠쿵!

[... 이런...]

혈종의 낭패한 목소리가 들리고,

청허현도존이 뻗친 청허도천폭의 공력에 석실전체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였다.

[노선배!]

능천한이 입술을 깨물며 석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헛허... 영라를 부탁하네...---

 

청허현도존의 말이 여운을 끌며,

--- --- 쿠쿵!

콰르르르릉!

무너지는 석실과 함께 굉음으로 사라져 갔다.

도존(道尊)!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의 비장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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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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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七 章

 

                 危境 중의 戀情

 

 

 

백의면사여인은 살짝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는 다소곳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사옵니다. 천첩이 광양존후(廣陽尊后)라는 과분한 칭호를 받고 있는 금가(琴家)의 계집이옵니다.]

여인... 금벽라의 대답에 능천한의 얼굴은 감탄으로 물들었다.

(역시 광양존후의 명성이 헛것이 아니었다.)

 

---광양존후(廣陽尊后) 금벽라(琴碧羅).

 

여자들 중에서는 천하제일고수라 불리는 여걸!

그녀는 정파의 지주인 광양회(廣陽會), 광양대제(廣陽大帝)의 외동딸이다.

금벽라의 나이는 이미 삼십을 넘었고,

그녀가 천하제일의 여고수임은 십오 년 전부터 변함이 없었다.

금벽라는 가전의 광양경(廣陽經)을 십이성 연마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일신에는 곤륜에서 흘러나온 세외신후(世外神后)의 진전이 담겨있다.

세외신후는 서왕모(西王母)의 수제자였던 전대 여종사다.

광양경(廣陽經)과 신후경(神后經).

양대 무맥의 비전을 한 몸에 지닌 광양존후의 무공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흑자는 그녀의 무공이 이미 아버지 광양대제(廣陽大帝) 조차 능가한다고 말한다.

 

[천첩의 생각이 맞는다면 공자께서는 패천잠룡(覇天潛龍) 능대공자이시겠지요?]

금벽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패천잠룡!]

[저분이 일잠룡(一潛龍) 능대공자!]

천산홍연 등은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능천한은 이전에 황산을 떠난 적이 없다.

그래서 무림인들 중 능천한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또한 능천한의 이름을 모르는 무림인 전무하다.

황룡(皇龍)인 아비 밑에서 날개를 키우고 있는 잠룡...

그를 어찌 모르겠는가?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소생이 능모이외다!]

능천한이 대답하자 천산홍연등의 얼굴이 흥분으로 물들었다.

[아이... 맹주언니. 우린 소개 시켜주지 않으실 거예요?]

천산홍연이 금벽라의 팔에 매달리며 투정을 부렸다.

금벽라가 미소를 지으며 능천한에게 일행을 소개했다.

[이 아이는 천산노인(天山老人)의 손녀인 천산홍연(天山紅燕)이예요!]

천산홍연이 냉큼 능천한 앞으로 뛰어 나왔다.

[호호! 잘 부탁드려요. 제 이름은 위지련(慰枝蓮)이예요!]

능천한도 미소를 지었다.

천산노인(天山老人)은 세외(世外)의 기인이다.

쌍황(雙皇) 그 이전의 인물이지만 좀체 세상에 나타나지 않는다.

[천산(天山) 비홍단천검식(飛紅斷天劍式)은 정말 빨랐소이다!]

[호호... 고마워요!]

위지련은 능천한이 관심을 나타내어 주자 뛸 듯이 기뻐했다.

금벽라는 이어 흑의미녀와 백삼청년을 소개했다.

그들 두 남녀는 약혼한 사이였다.

 

---사천묵봉(四天墨鳳).

---신수비검(神手飛劍) 남궁유운(南宮儒運).

 

당교하는 사천당가의 맏딸로서 일신에 백팔십 가지의 암기를 지녔다.

당대 후기지수들 중에서 암기로 일절(一絶)이라 불리는 여걸,

남궁유운은 하락(河洛)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장자(長子).

그는 가전의 기문진학와 검법에 숙달되었다.

거기다가 그의 재주에는 사천당문의 암기술과 독술이 가미되어 있다.

그것은 그가 장차 당문의 맏사위가 될 신분이기에 당문의 비전을 이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능대형의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바랍니다.]

남궁유운이 능천한에게 포권을 하였다.

능천한도 마주 답례를 하였다.

[소제도 부족함이 많은지라... 가르침이란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을 하며 능천한은 남궁유운을 살폈다.

(자질도 나쁜 편은 아니고... 무엇보다 성품이 침착하여 대기만성할 인물이다.)

그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 어엉!

화르르르--- !

[...!]

[...!]

갑자기 남쪽 십여 리 밖의 하늘에서 찬연한 화전(火箭)이 터졌다.

중인들은 흠칫하며 시선을 돌렸다.

(표향색절이 쓰려던 화전과 같은 종류...)

능천한은 금벽라의 손에 들린 화전을 바라보았다.

금벽라의 봉목이 언뜻 어둡게 변했다.

[남궁소협!]

금벽라는 남궁유운을 불렀다.

[, 맹수! 속하 여기 있습니다!]

남궁유운이 금벽라의 앞으로 시립하였다.

(그는 금소저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

능천한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혈종의 마도들이 우리보다 먼저 그 두 분을 찾은 것 같아요.]

금벽라가 무겁게 말했다.

(그 두 분...?)

능천한은 의아해졌다.

그리고,

(혈종도들과 사해정검맹은 누군가를 찾고 있었군.)

능천한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어찌하여야 할지요?]

남궁윤운이 고개를 숙인 채로 물었다.

[표향색절은 쌍극천효의 주구예요. 쌍극천효가 우리가 이곳에 있음도 파악하게 되면... 수수방관하지만은 않을 거예요!]

[...!]

[분하지만... 이란타석(以卵打石)의 누를 범할 수 없으니...!]

천산홍연이 급히 물었다.

[그럼 그분과 천혜언니는...?]

금벽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 가보겠다. 기회를 보아... 최선을 다할 수밖에...!]

[...!]

[...!]

남궁유운 등은 입술을 깨물었다.

(너무 급작스럽게 당하여 정도(正道)가 힘을 모을 기회도 없었던 것이 한이다.)

세 젊은이의 표정에 괴로운 빛이 흘렀다.

보고 있던 능천한이 끼어들었다.

[소생이 맹주의 힘이 되어드려도 되겠소이까?]

[능대공자...!]

그러자 금벽라는 반색을 하며 능천한을 돌아보았다.

다른 세 젊은이의 안색도 밝아졌다.

[능대공자께서 힘을 써주신다면 천군만마의 도움을 받는 것과 진배없어요. 정말 고마워요.]

금벽라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능천한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금벽라는 빠르게 남궁유운에게 지시하였다.

[남궁소협은 정검대(正劍隊)를 인솔하여 패하 방면으로 나가세요. 적을 치되 뒤를 칠 것이지 절대 정면충돌은 하지 마세요. 연후에 사로(四路)로 우회하여 동정호로 집결하세요!]

[존명(尊命)!]

남궁유운은 금벽라에게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갑시다!]

--- 르르르르!

--- 이익!

그는 천산홍연과 당교하를 데리고 빠르게 계곡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함께... 가시옵소서!]

금벽라가 능천한에게 말을 하며 허공으로 교구를 띄웠다.

스스스슥!

그 뒤로 능천한도 소리없이 몸을 띄웠다.

 

***

 

절곡(絶谷),

양쪽 석벽이 병풍같이 우뚝 마주 서 있다.

그 사이로 마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협도가 있고,

협도 그 안쪽은 제법 널찍한 분지였다.

스스스스슥!

어두워지는 야공에서는 두 줄기 인영이 절곡으로 날아들었다.

백의면사여인과 황포청년이었다.

[크크큿!]

[감히 어딜 들어오느냣!]

[죽어랏!]

그 직후 까마귀 울음소리같은 폭갈이 절곡의 안쪽에서 터져 나왔다.

--- 르르르릉!

--- 애애액!

그와함께 빗발치는 듯한 공세가 백의여인과 황의청년을 쓸어왔다.

그러나,

--- 스슥!

백의면사녀가 박꽃같이 뽀얀 교수를 들었고,

--- --- !

귀엽고 작으마한 교수에서 폭풍이 일었다.

콰콰--- --- !

[--- --- !]

[--- --- 아악!]

절곡 안쪽에서 일거에 십여 차례 비명이 터졌다.

[핫하... 훌륭한 광양푹풍참(廣陽暴風斬)이외다!]

황의청년이 껄껄 웃었다.

그들은 바로 능천한과 광양존후 금벽라였다.

--- 스스슥!

--- --- 이잉!

두 사람의 신형은 구름이 흐르듯이 절곡의 안쪽으로 날아 들어갔다.

[소생이 길을 트겠소!]

능천한이 크게 외치며 앞으로 폭사되어 갔다.

[수라혈강뢰(修羅血罡雷)!]

--- --- 쿠쿵!

능천한의 쌍장에서 핏빛 폭풍이 일어났다.

그 핏빛의 폭풍은 일거에 삼십 장 방원을 휩쓸고,

[--- --- 아악!]

[--- 에에엑!]

[--- 아악!]

후드드드득!

--- --- !

불나방같이 쇄도하던 혈포인들과 금의인들이 콩 튀기듯 튕겨나갔다.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의 절기까지 지니고 계시다니...)

바라보던 광양존후가 혀를 내둘렀다.

일시에 절곡이 혈향으로 가득했다.

능천한은 광양존후와 절곡중앙에 몸을 세웠다.

그곳은 방원 이삼백 장 가량의 절곡이었다.

그 절곡 안에 수백 명의 마도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자들은 대부분이 혈영궁도들과 통천방도들이었다.

[크크... 광양존후(廣陽尊后)... 네발로 예까지 기어들어오다니...]

스스스스슥!

능천한과 금벽라의 주위로 아홉 명의 혈포노인과 네 명의 금포인이 날아내렸다.

그자들은 하나같이 신광이 안으로 갈무리된 강자들이었다.

(만만치 않는 자들이겠는걸!)

능천한이 내심 중얼거릴 때 금벽라의 전음이 들려왔다.

[혈영구천살(血影九天煞)과 금룡사신(金龍四神)이란 자들이예요. 이자들의 합공은 오히려 혈영군이나 통천금룡제이상이니 조심하세요!]

그녀의 전음을 들으며 능천한의 시선은 절곡 밑의 석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있고,

동굴입구 주위에 시체같은 혈의인들이 둘러 서 있었다.

(금맹주가 찾는 인물이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저 안에...!)

능천한의 두눈이 강렬하게 빛났다.

그때,

[크크--- 크크크...!]

[혈영마뢰(血影魔雷)!]

[흐흐흐! 금룡군림천(金龍君臨天)!]

--- 이이잉!

츠츠츠츠---!

혈영구천살과 금룡사신이 신형을 벌리며 강렬한 암경을 발산하였다.

[!]

능천한은 한 걸음 휘청하며 밀려났다.

(시간을 끌 필요없다.)

능천한은 금벽라에게 전음을 보냈다.

[소생 뒤에 서십시오. 그리고 소생이 진세를 깨뜨리는 순간 지체없이 소생을 부축하여 저쪽 석벽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알겠사옵니다!]

금벽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 우우웅!

갑자기 능천한의 몸이 태산처럼 굳어지고 그의 쌍수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갔다.

(이것은 또 무슨 공력?)

금벽라는 아연하면서도 급히 능천한 뒤로 물러섰다.

[묵황굉벽뢰(墨荒宏霹雷)!]

직후 능천한의 입에서 벼락이 떨어지듯이 폭갈이 터졌다.

그리고,

--- --- !

--- --- !

엄청난 굉음!

그와 함께 시커먼 강기의 무더기가 폭죽이 터지듯이 쏟아져 나갔다.

삼십 자 두께의 묵옥강석(墨玉)을 깨뜨리기 위해 창안된 격파전용절기!

혈영구천살과 금룡사신의 공세는 묵옥강석의 굳음에 비하면 종이짝이다.

--- 아앙!

[--- --- !]

[! ... 이럴 수가!]

--- 드드둑!

혈영구천살과 금룡사신!

그자들의 신형이 조약돌 튕겨지듯이 사방으로 나뒹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 르르르---!

노도겉은 묵강류(墨罡流)는 백 장을 내뻗었다.

묵황굉벽뢰!

무엇이 있어 그것을 막겠는가?

[--- --- 에엑!]

[--- --- 아악!]

능천한의 전면에 서 있던 육십여 명의 마도들이 그대로 폭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으음...!]

능천한의 안색이 창백해져서 휘청하였다.

[대공자!]

금벽라가 급히 능천한을 안아들었다.

묵황굉벽뢰는 위력이 강한만큼 내공의 소모가 크다.

--- --- 이잉!

금벽라는 능천한을 가슴에 보듬고 그대로 육십 장을 날아갔다.

 

---광양폭풍영(廣洋暴風影).

 

광양일문의 최고 경공절기다.

[...!]

[...!]

마도들은 그저 입만 딱 벌릴 뿐 그녀의 앞을 막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화르르르---!

금벽라는 그대로 석벽에 난 동굴로 쇄도하여 갔다.

그러자,

[크크크---!]

동굴입구를 지키고 있던 시체같은 자들이 껑충껑충 뛰면서 금벽라를 짓쳐왔다.

[혈마강시(血魔)!]

금벽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 내가 맡겠소!]

금벽라가 혈마강시와 충돌하려는데 그녀의 가슴에 안긴 능천한이 우수(右手)를 번쩍 쳐들었다.

[천중압(天重壓)!]

--- --- --- !

--- --- --- 카카캉!

벼락이 치듯!

새파란 륜영(輪影)이 혈마강시들을 짓쳐갔다.

[...천신륜(覇天神輪)!]

금벽라가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 가가--- !

[--- --- !]

[--- 크크...!]

혈마강시들의 몸뚱이가 토막 나 뒹굴었다.

보검으로도 상처를 내지 못한다는 강시들이다.

그런 혈마강시들이건만 패천신륜의 예기에 닿자 무 베듯이 베어져 나가는 것이다.

(무섭다.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위명이 헛것이 아니었다.)

금벽라는 아연하면서도 날렵하게 패천신륜을 받아들고 동굴의 안쪽으로 쇄도하여 들어갔다.

혈마강시 외에는 다른 제지가 없었다.

그만큼 혈종의 마도들은 혈마강시를 믿었던 것이다.

스스스스슥!

금벽라는 백여장을 진행하였다.

그녀는 이 동굴의 안쪽으로 여러 사람이 지나갔음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발길을 멈추며 조심스럽게 능천한을 내려놓았다.

능천한의 안색은 백지장보다 하얬다.

묵황굉벽뢰를 쳐내고 연이어 패천신륜을 발출한 탓에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이것을 드세요.]

광양존후 금벽라는 한 알의 영단을 꺼내어 능천한의 입에 가져갔다.

그것은 광양신단(廣陽神丹)이라는 영약이었다.

[... 고맙소...!]

능천한은 금벽라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영단을 받아먹었다.

사실 그는 광양신단을 복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천지이교가 타통된 상태다.

그 때문에 아무리 내공이 심하게 탈진되어도 이내 회복된다.

외부의 자연지기(自然之氣)와 내부에 도사린 막강한 잠력을 융합시켜 범인보다 백배 빠르게 진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다.

곧 능천한의 얼굴 혈색이 감돌았다.

금벽라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보면 볼 수록 놀랍기만 한 분...)

그와 함께 삼십 년 넘도록 굳게 닫혀있던 방심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

--- !

능천한은 뇌전같은 신광을 흘리며 눈을 떴다.

눈을 뜨는 순간 능천한은 따스한 눈빛의 봉목이 내려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금벽라... 누나같은 분... 그녀의 가슴은 정말 따뜻하고... 좋은 내음이 났는데...)

능천한은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섰다.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지요?]

금벽라가 진심으로 능처한에게 물었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누님의... 가슴은 정말 포근했습니다!]

느닷없는 능천한의 한 마디...

(... 누님!)

금벽라의 교구가 휘청하였다.

그녀의 시선이 격동으로 흔들리고,

폭포같은 감흥이 그녀의 교구를 휘감았다.

[하하... 못나기는 했으나 동생을 하나 두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능천한이 밝게 웃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금벽라의 봉목이 촉촉히 젖었다.

[... 아우님...!]

광양존후는 와락 능천한을 끌어안았다.

[...!]

능천한의 얼굴이 광양존후의 젖무덤에 파묻혔다.

뭉클한 느낌이 얼굴을 때리고,

향긋한 살내음과 젖의 향기가 능천한을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고마워요... 천첩은 형제가 없어 외로왔는데...]

광양존후는 능천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능천한은 그녀의 가슴이 크게 뛰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가 능천한은 광양존후의 풍만하기 이를 데 없는 젖무덤을 더듬었다.

모성애에 굶주린 능천한의 본능적인 행위였으나,

[...!]

광양존후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당혹하여 능천한을 내려다보았다.

[누님의 젖은 무척 부드럽고... 따뜻하군요!]

헌데 능천한은 웃고 있었다.

일점의 사심도 없는 싱그러운 웃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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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六 章

 

              여자 중의 여자

 

 

 

관도,

두두두---!

한 대의 마차가 황혼을 등지고 질풍같이 달려왔다.

[이랴! 이랴!]

마부석에는 건장한 체격의 장한이 고삐를 잡고 일어서서 말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네 필의 건마,

그놈들은 거품을 물면서 장막이 두텁게 드리워진 마차를 끌고 달렸다.

장한은 비장한 모습으로 전면을 응시하며 마차를 몰았다.

헌데 마차가 한 굽이진 관도의 모퉁이를 돌 때였다.

[크크크크---!]

--- --- !

--- --- 파팟!

음침한 음소가 터지고,

관도 우측 숲속에서 시뻘건 강기가 벼락 치듯이 날아나왔다.

[!]

마차를 몰던 장한은 아연실색하며 피하려 하였다.

그러나,

콰작! 콰앙!

[--- 으윽!]

--- --- 히힝!

피가 확 일었다.

네 필 건마가 머리가 박살나고 장한도 피를 토하며 마부석에서 튕겨져 나갔다.

콰당탕!

장한은 관도 옆으로 나뒹굴었다.

스스스스슥!

휘르르르르---!

숲속에서 십여 명의 혈영인(血影人)들이 날아 나왔다.

하나같이 음악한 인상의 인물들이다.

[크크... ()가 계집년이 머리를 쓴다만... 그 따위 잔꾀엔 넘어갈 혈영궁(血影宮)이 아니다!]

혈영궁도들은 음침하게 마차로 다가갔다.

[크크... 이제 그만 나오시지!]

그중의 한 자가 장막을 들추었다.

순간,

[--- !]

--- --- !

--- 츠츠츠!

날카로운 교갈이 터지고 장막 안쪽에서 벼락치듯이 검기(劍氣)가 쏟아졌다.

그러나,

[크크...!]

[그럴 줄 알았지!]

--- 이잉!

쿠르르르르--- !

혈영인들이 기쾌하게 움직이며 일제히 장력을 내쳤다.

--- --- !

[--- 아악!]

마차가 통째로 박살이 나고,

그 안에서 한 명의 아리따운 소녀가 가슴이 박살나서 튕겨져 나갔다.

[크크크...!]

[헤헤... 고년... 죽이기는 아까운 계집이었는데...]

혈영궁도들은 죽은 소녀의 허벅지를 툭툭 걷어차며 음소를 지었다.

[흐흐... 천효(天梟)군사께서 펼친 천라지망에 십팔로(十八路)로 나간 금()가 계집년의 위장마차가 모두 걸려들었다.]

[크크... 결국,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늙은이와... 군사의 따님은 아직 이곳 패하(沛河)가 근역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얘기지!]

[크크... 가자!]

스스스슥!

휘르르르--- !

혈영궁도들은 분분히 몸을 날려 숲속으로 사라졌다.

일장의 혈겁이 몰아친 후,

장내에는 다시 적막이 감돌았다.

다시 반각 쯤 지났을까?

스스스슥!

한줄기 황영(黃影)이 허공으로부터 날아 내렸다.

봉황(鳳凰)의 용모에,

태산의 무게를 지닌 청년이었다.

[이런...!]

황포청년은 검미를 찡그리며 부서진 마차를 돌아보았다.

그는 급히 소녀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아직 어린 소녀가 가슴이 박살이 나 죽은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웠다.

[혈영마장(血影魔掌)... 혈영궁도들에게 당했군!]

청년의 얼굴에 싸늘한 빛이 감돌았다.

[혈영궁(血影宮)... 통천방(通天) 그리고 자객집단인 밀살교(密煞橋) 등의 발호가 극에 이르고 있다.]

청년은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

한쪽에서 미약한 신음이 들렸다.

[...!]

스스스슥!

청년은 유령같이 움직여 신음이 들린 곳으로 날아갔다.

관도 옆의 우거진 수풀 사이에 마차를 몰던 장한이 신음을 흘리며 누워 있었다.

청년은 급히 장한의 상세를 살폈다.

장한은 왼쪽가슴이 뭉개진 상태였다.

(회생은 불가능하다.)

파팟!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장한의 몇 곳 혈도를 눌렀다.

[...!]

그러자 장한이 간신히 눈을 떴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청년이 급히 물었다.

장한은 한동안 망연히 청년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힘겹게 입을 열었다.

[혈종(血宗)... 마도들을... 패하근역에서 끊어 내려는... ()맹주의 계획... 실패...!]

청년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패공산(沛空山),... 으로... 가서... 전해주십... 쌍극천효(雙極天梟)... 나타났... 맹주께서도... 위험,...!]

[쌍극천효(雙極天梟)...!]

[부탁...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 ... 무너지면,...]

장한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으음...!]

청년은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그의 두 눈이 아주 밝게 빛났다.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이란... 신흥조직이... 쌍극천효(雙極天梟)와 모종의 일로 다투는 모양이군!]

청년은 중얼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스스스슥!

그의 신형은 서북쪽으로 폭사되어갔다.

[무이산(武夷山)행이 더뎌지겠군!]

청년의 목소리가 그림자를 따르지 못했다.

황포청년,

그는 다름아닌 능천한이었다.

능천한은 무이산으로 가던 길이었다.

[패공산(沛空山)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는 듯하군!]

능천한은 중얼거리며 몸을 날렸다.

그의 모습은 이내 까마득히 사라져 갔다.

 

X X X

 

<쌍극천효(雙極天梟).>

 

사도제일뇌(邪道第一雷)라 불리는 모사(謀士).

만 가지(萬種)의 사이한 술수와 계략을 지녔다는...

사십여 년 전,

그는 패천황룡(覇天皇龍)의 눈 밖에 나서 초주검이 된 적이 있었다.

자신의 사이한 술수를 믿고 그는 만사교(萬邪敎)라는 문파를 세웠었다.

만사교는 쌍극천효를 등에 업고 천하무림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그들의 이간질과 농간으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막심한 피해를 입었고,

급기야 좀체 화를 안내는 패천황룡 능붕비의 노함을 샀다.

그 뒤의 결과는 명약관화,

만사교의 수뇌 일천(一千)이 폐인이 되고,

쌍극천효(雙極天梟) 자신도 반죽음을 당했었다.

그것이 사십여 년전의 일이었다.

 

X X X

 

패공산(沛空山).

절강(浙江) 서북단을 흐르는 패하(沛河) 근처의 산이다.

웅장한 산세는 아니나 예측불허의 험함과 어지러움으로 가득한 산이다.

 

저녁 무렵이다.

스스스스--- !

어둠이 스물스물거리는 패공산역을 한 줄기 인영(人影)이 흐르고 있었다.

그 인물은 홍의(紅衣)를 날렵하게 걸친 소녀였다.

스스스스--- !

홍의소녀는 물이 흐르듯이 산봉을 타고 넘어갔다.

한데,

[...!]

홍의소녀의 뒤로 유령같이 따라붙는 인물이 있었다.

신형이 흐릿하여 흡사 그림자를 연상케 하는 자...

홍의소녀는 그자가 따르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흐흐... 천산홍연(天山紅燕)! 어서 금()가 계집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그자는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앞선 홍의소녀를 노려보았다.

흐릿하게나마 드러나는 그 인물의 모습...

영준하게 생긴 문사차림의 인물이었다.

계집을 홀리기에 적당할 듯한 얄팍한 얼굴에 간교함이 가득한 자였다.

천산홍연(天山紅燕)이라는 홍의소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산봉을 넘어 치달렸다.

그러나...

간교한 그자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

그자의 머리 위쪽 허공에 또 한 명의 황의인이 둥실 떠서 따라가고 있음을...

능천한이었다.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 은밀함에 있어서는 으뜸이지.)

능천한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었다.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

 

유령대제(幽靈大帝)가 유령제종령에 남긴 절기 중 하나다.

능천한은 천곡둔에서 하루를 머물며 상세를 치료했다.

묘상을 하면서 그는 심심하여 유령제종령을 살펴보았고,

그 과정에서 교묘히 감추어진 두 가지 신법(神法)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유령잠천행(幽靈潛天行)이다.

천하제일인 추종(追踪) 전문경공이 그것이다.

 

휘르르르르!

천산홍연이라는 소녀는 두 사람이 자신을 쫓고 있음도 알지 못하고 비연(飛燕)같이 허공을 갈랐다.

이윽고 그녀는 은밀한 곡구(谷口)에 이르렀다.

(저 안에 여러 명이 있군!)

능천한은 곡구를 바라보며 신형을 더욱 은밀하게 감추었다.

곡구의 안쪽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돌아왔어요!]

천산홍연이 밝게 외치며 곡구로 날아들었다.

그러자,

쉬르르르---!

--- --- !

곡의 안쪽에서 두 줄기 날렵한 인영이 마주 날아왔다.

흑의미녀와 백삼청년이었다.

흑의미녀는 매우 활달한 성격으로 보였다.

백삼청년은 곱상한 것이 일견하여 문사(文士)의 인상이 들었다.

[조심해라 홍매(紅妹)!]

[누구냐!]

마주 날아오던 흑의미녀와 백삼청년이 대갈을 질렀다.

그들은 천산홍연을 뒤따라오던 간교한 자를 발견한 것이다.

[어멋!]

그제야 천산홍연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와 함께,

[흐흣! 사천묵봉(四川墨鳳), 신수제검(神手帝劍), 너희들도 있었군!]

간교한 자가 영악하게 웃으며 몸을 드러내었다.

[...!]

그자를 발견한 세 젊은이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특히 그자를 인도한 꼴이 된 천산홍연의 옥용이 새빨개져서 시근덕거렸다.

[표향색절(飄香色絶)! 네놈이...]

--- --- !

--- --- ---!

천산홍연이 벼락같이 표향색절이란 자를 덮쳐갔다.

(대단한 쾌검!)

숨어서 지켜보는 능천한의 눈가에 탄성이 흘렀다.

천산홍연이 허리를 더듬는 순간,

요대에서 한 자루 연검이 섬전보다도 빠르게 빠져나와 표향색절이란 자를 베어간 것이다.

그러나,

[흣흐...!]

--- 스슥!

표향색절이 어깨를 좌우로 흔들자 그자의 신형이 형기가 허공중에 스며들 듯이 흐릿하게 나뉘었다.

(표향환종보(飄香幻踪步)! 표향음마(飄香淫魔)의 진전을 이은 자군!)

능천한은 관목의 그늘에 선체 두눈을 싸늘하게 빛냈다.

 

---표향음마(飄香淫魔),

 

사백 수십 년 전의 인물인 그자는 지독한 색마(色魔)였고, 대도(大盜)였다.

그자는 미혼술과 최음제도 수많은 규중처자들의 순결을 짓밟았으며,

뛰어난 경공절기로 갖은 악행을 다했었다.

어느 해인가...

그는 화산파의 당대문주였던 화후(花后)까지 능욕하였으며,

그 일이 발단이 되어 구파일방의 합공을 받아 갈가리 찢겨 죽었었다.

한데 그 표향음마인 무공이 표향화음신이란 자의 몸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흐흣! 기껏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표향색절이 음침하게 웃으며 품속에서 오색화전(五色火箭)을 꺼내들었다.

[흐흐... 곧 혈종(血宗)의 정예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것이다!]

표향색절의 오색화전을 쳐들며 음악하게 웃었다.

[막아욧!]

[--- !]

천산홍연, 사천묵봉, 신수제검이 동시에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 !

--- 파파파팟---!

--- 이잉!

천상홍연의 몸에서 섬전같은 검기가 쏟아지고,

사천묵봉의 교수에서 수십 개의 암기가 우박같이 날아갔다.

신수제검도 웅장한 검세로 휘몰아 표향색절을 짓쳐갔다.

그러나,

[흐흣! 어림없지!]

스스스--- !

--- 아앗!

표향환음심의 몸이 유령같이 흔들리며 오색화전이 허공으로 치솟았다.

[!]

[...!]

천산홍연 등의 안색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오색화전에는 다량의 화약이 내장되어 있어 허공에서 찬연한 오색불꽃을 터뜨린다.

그것도 백 리 박에서도 볼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그들의 현위치가 강적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

[...!]

천산홍연 등은 오색화전이 터질 허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오색화전은 터지지 않았다.

스스스스--- !

한 줄기 흐릿한 인영이 어두워지는 허공을 가로질렀다.

오색화전은 어느 사이엔가 그 인영의 손안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인영은 백색궁장차림의 면사여인이었다.

[!]

백의궁장녀를 발견한 표향색절의 안색이 홱 변했다.

반면,

[()언니!]

[맹주!]

세 젊은이는 희색이 만연하여 백의궁장녀를 바라보았다.

(저 골치 아픈 계집이 나타나다니...!)

표향색절의 안면이 이지러졌다.

다음 순간,

스스스스--- ---!

그자의 신형이 연기가 흐르듯이 이십 장 밖으로 쏘아나갔다.

[달아나겠다?]

[서랏!]

천산홍연 등이 분분이 몸을 날렸다.

그때였다.

[!]

허공을 가르던 표향색절의 몸이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스스스스--- ---!

능천한이 관목의 그늘에서 육중한 기도를 휘몰아 표향색절 앞으로 날아내렸다.

[!]

[...!]

능천한은 발견한 중인들의 안색이 거의 동시에 변했다.

모두가 능천한의 엄청난 기도를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 --- ---!]

--- --- ---!

표형환음신이 발악하듯이 몸을 허공으로 띄워 올렸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그자의 신형이 무려 사십여 장을 치솟았다.

--- --- !

그러나,

능천한은 두눈을 싸늘히 빛내며 우수를 쳐들었다.

그의 우수(右手)가 일순 새파란 강기로 뒤덮였다.

[수라단천강류(修羅斷天罡流)...!]

백의면사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 --- !

--- --- 자작---!

능천한의 우수에서 새파란 강류(罡流)가 작렬하여 허공을 갈랐다.

--- !

[--- !]

처참한 비명과 함께 피보라가 확 일었다.

다급히 몸을 비튼 표향색절의 오른 팔이 박살나 버린 것이다.

--- --- 이잉---!

스스스!

그자는 팔 하나를 잃고도 물이 흐르듯이 멀리로 날아갔다.

--- --- ---!

능천한은 재차 수라강기(修羅罡氣)를 끌어 모았다.

(표향일맥... 천하여인들을 위해서하도 단절시키는 것이 좋다!)

능천한이 다시 한번 살수를 펼치려 할 때였다.

[공자(公子), 그냥 살려 보내세요.]

온화하고 기품있는 여인의 목소리가 능천한의 귓전을 울렸다.

(백의여인...)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렸다.

여인의 목소리에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그것은 부드러움 중에도 만인이 절로 고개를 조아리게 하는 힘이었다.

능천한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의 눈에 기품있는 자태의 백의면사여인이 다가오는 것이 들어왔다.

(대단한 기도를 지닌 여인이다. 여인 중 제일인(第一人)이 되리라.)

능천한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의여인에게는 능천한과 흡사한 점이 많았다.

먼저 기품이 그렇고,

만인이 절로 감복하는 장중한 기도가 그렇다.

(여인으로 태어난 것이 아깝다. 그렇지 않았으면 일대종사(一大宗師)가 되었을 터인데...)

능천한이 감탄할 때였다,

(거인(巨人)... 드디어 찾아내었다. 천하를 받칠 기둥을...)

백의면사여인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녀의 눈빛은 아주 신비했다.

맑으면서도 포근하여 어머니와 누이를 대하는 것 같으면서,

여인답지 않은 육중함을 담아 철혈의 장부라도 무릎을 꿇게 만들 위엄이 있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천첩은 사해정검맹(四海正劍盟)을 맡고 있는 금벽라(琴碧羅)라 하옵니다.]

백의여인이 능천한을 향해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맹주언니가 첩()을 자청하시다니...!)

(저 인물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백의면사녀의 태도에 세 젊은이들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그들의 눈에 능천한이 갑자기 거대한 거악(巨嶽)의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금벽라(琴碧羅)!)

능천한의 유연한 눈에도 이채가 흘렀다.

그는 한 여인의 소문을 떠올렸다.

[혹시 무림일신후(武林一神后)가 아니십니까?]

능천한은 정중하게 물었다.

면사여인을 보는 순간 아버지 패천황룡 능붕비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천하(天下)에 너와 짝이 될 수 있는 뛰어난 두 명의 여아(女兒)가 있다.

존후(尊后)와 천혜(天慧)라고 불리는 두 아이가 그들이니라.

존후(尊后)라는 아이는 일대여종사(一代女宗師)로서 광양존후(廣陽尊后)라고 한다.

천혜(天慧)라는 아이는 천하제일재녀(天下第一才女)라고 불리니라.

장차 네가 천하를 도모하려 한다면 이 두 여아를 가까이 해야 하느니라.

허허, 물론 그 아이들을 패천신문의 안주인으로 삼으면 더욱 좋고---

 

광양존후(廣陽尊后),

천혜선자(天慧仙子),

 

그녀들은 패천황룡을 감탄시킨 몇 안되는 인물에 든다.

그것도 이제 막 피어오른 젊은 여인의 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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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五 章

 

                   邊荒第一兵 太陽天火神槍

 

 

 

 

이곳은 한칸의 석실(石室)이다.

스스스스---

석실 전체에 기이한 분홍빛 향기가 가득했다.

그 향기의 내용은 아주 기이했다.

여인의 지부내음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물오른 여인의 몸에서 흐르는 체향(體香)같기도 하였다.

하여튼,

그 향기에는 마력(魔力)이 있었다.

여인이라면 모르나,

사내구실을 할줄 하는 남자에게는 치명적인 효능이 그 안에 있었다.

,

사내의 본능을 자극하여 여인을 안고 욕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아니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천하(天下)를 위태롭게 만들기에 충분한 향기였다.

[...!]

[...!]

죽음같은 침묵이 흐르는 석실 안,

향기에 휩싸인 채 일백여 명의 여인들이 있다.

낯뜨겁게도,

여인들은 모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들이었다.

하나같이 절세미인들인데 그녀들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그 여인들이 모두 초절한 공력을 지닌 여인들이라는 점이다.

여인들의 눈빛은 마치 횃불같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여인들의 내공이 적어도 이갑자 이상임을 나타내준다.

[...!]

[...!]

여인들은 나신으로 가부좌를 튼채,

하나의 옥상(玉床)을 에워싸고 있었다.

스스스...

자세히 보면 예의 분홍빛의 향기가 여인들의 몸에서 안개같이 스물스물 피어오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득,

스스스--- 그그그긍---

석실 한쪽의 석문이 열리며 두 명의 여인이 들어왔다.

한 명은 고풍스런 자의궁장을 걸친 중년미부였다.

아주 아름답고 왕후같은 기품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옥용은 싸늘한 한기로 덮여 있어 한편으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자의미부 옆,

눈에 확 뜨는 미인이 서 있다.

폐월수화!

침어낙안,

빙기옥골,

이런 미사여구가 오히려 부족한 미인이었다.

본래는 훈훈한 분위기의 여인인데,

어떤 험한 일을 당했는지 옥용이 얼음같이 굳어 있었다.

그 여인은 속이 훤히 비추어 보이는 나의하나를 걸치고 있었다.

터질 듯이 풍만한 육봉,

한줌에 들어올 듯한 세류요(細柳腰),

무엇이든 받아들일 듯이 펑퍼짐하게 퍼진 둔부,

미끈하게 내리뻗은 두 개의 옥주,

그리고 방초(芳草) 무성한 둔덕이 나삼을 사이에 하고 숨을 쉬고 있었다.

폭발적인 본능을 자극하는 동체였다.

[설련(雪蓮)!]

자의미부가 미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설련(羅雪蓮)!

바로 천검미후(天劍美后) 나설련이 아닌가?

그럼 자의미부(紫衣美婦),

그녀는 혈영군(血影君)의 마수에서 나설련을 구해낸 여황교주(女皇敎主) 천환여제(天幻女帝)였다.

천환여제(天幻女帝)!

그녀는 실상 칠십여 넘은 여인이다.

다만,

초극의 내공과 주안술로 하여 젊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천향소녀대미욕공(天香素女大美欲功)을 거치면... 너는 제이의 천향염후(天香艶后)가 될 수 있다.]

천환여제가 나설련에게 말했다.

 

<천향염후(天香艶后).>

 

천환여제가 언급하는 이 여인,...

그녀는 팔백 년 전의 여인이다.

여인의 몸으로 유일하게 고금오대마종(古今五大魔宗)에 들었던 고금제일여고수(古今第一女高手)가 그녀이다.

또한,

그녀는 지분(脂粉)으로 천하를 도탄에 빠뜨렸던 절대음녀(絶代淫女)였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가 나타나는 주위 십 리가 형언할 수 없는 기향(奇香)에 뒤덮인다고 했다.

그 향기에 접하면 누구라도 욕정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기꺼이 그녀의 개()가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미모와 지분으로 장장 일백 년을 천하 위에 군림했던 여인,

그녀와 천향염후(天香艶后),

천마(天魔) 혈종(血宗)에 비견되는 사상최강의 탕녀이며 여고수가 그녀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천지십병(天地十兵)에 드는 절대마병(絶代魔兵)이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비녀였다.

 

---천향옥잠(天香玉簪),

 

온통 신비로 가득 싸인 천향옥잠이 바로 그것이다.

[...!]

천환여제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미인들을 돌아 보았다.

분홍빛의 안개,

그 사이로 드러나는 여체들에서는 폭발적인 매력이 뭉클뭉클 솟아나고 있었다.

[천향일맥(天香一脈)의 팔백 년 영화가 네 일신에 달렸다. 가랏!]

천환여제가 나설련에게 말했다.

그러자,

스스스스슥---

나설련은 혼백이 나간 표정으로 옥상으로 다가갔다.

사르르르르---

옥상에 이른 나설련은 나삼을 벗어 버렸다.

그러자 나타나는 여체(女體),

숨이 탁 막힌다.

너무도 완벽하고 뇌살적인 몸매였다.

[...!]

나설련은 천천히 옥상 위에 나신을 누이고 살짝 다리를 벌렸다.

방초무성한 계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리고,

[시작해랏!]

천환여제가 차갑게 말했다.

그 즉시,

스스스---!

백 명의 나녀에게 분홍의 운무가 더욱 짙게 스며 나왔다.

석실은 여인들의 야릇한 체향으로 가득해졌다.

그와 함께,

스츠츠츠츠--- 츠츳---

--- --- 이잉!

나설련의 나신에서도 요요(妖妖)로운 광휘가 흐르기 시작했다.

츠츠츠츠...

나녀들의 분홍기류는 솜에 물이 빠려들 듯이 나설련의 몸으로 스며 들었다.

지금,

백인의 절정여고수들이 자신들의 일신공력을 기향으로 바꾸어 나설련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천환여제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붕비(鵬飛), 그대가 죽지 않았음을 믿어요. 설련이 천향염후가 되는 날... 당신에게 진 빚을 받아내고야 말 것이예요.]

천환여제의 봉목이 형형하게 빛났다.

붕비(鵬飛)?

패천황룡(覇天皇龍) 능붕비를 말함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X X X

 

황혼!

혈광으로 대지를 물들이며 환혼이 진다.

화살맞은 백조의 가슴으로 흐르는 선혈같이...

환혼이 진다.

 

한 명의 인물이 서 있다.

[...!]

천지가 무너져도 꿈쩍 않은 웅자로 한 인물이 서 있다.

꽉 다물린 입술,

불타오르는 눈빛,

태산의 웅자로 대지를 딛고 선 한 사나이가 있다.

타는 듯이 붉은 홍색의 경장을 꽉끼게 걸쳤으며,

그의 우수(右手),

(),

한 자루 신창(神槍)이 들려 있었다.

창신(槍神) 전체가 태양의 불꽃같이 시뻘건 신창(神槍)이 들려 있었다.

길이는 일 장,

홍포인의 우수에서 비스듬히 비껴 들린 신창에서는 태양화기(太陽火氣)가 뇌전같이 흐르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인물(人物),

그리고 범상치 않은 신병(神兵),

 

홍포인의 전면,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대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대초원(大草原),

한 가닥 막힘도 없이 그 끝나는 곳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초원!

그 초원을 딛고 홍포의 거웅이 우뚝 서 있다.

 

문득,

스스슥---

--- 르르르!

홍포인의 뒤로 삼인이 소리없이 내려섰다.

홍포인의 뒤로 내려선 삼인은 그대로 홍포인의 등을 향해 오체복지하였다.

[...!]

[...!]

잠시,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

홍포인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신존(神尊)!]

[신존(神尊)이시여!]

삼인은 이마를 땅에 박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홍포인,

그는 삼인에게 있어서 신적인 존재였다.

홍포인은 타는 듯이 붉은 시선으로 삼인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맨 좌측에 오체복지한 인물에게 닿았다.

그 인물은 피의(皮衣)로 중요한 곳만 가린 야수같이 생긴 인물이었다.

그자의 전신에는 시뻘건 털이 부숭부숭하게 나있어 섬뜩한 인상이 풍겼다.

[남황야수신(南荒野獸神)!]

홍포인이 묵직하게 입을 열었다.

[... 신존(神尊)!]

남황야수신이라 불린 그자는 벌벌 떨며 대답했다.

[준비는...?]

[... 일만 마리의 맹수와 일천의 독응(毒應)이 준비를 갖추고 신존의 명을 대기하고 있습니다.]

[!]

홍포인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의 시선은 가운데 있는 인물에게로 닿았다.

그 인물은 삼인 중 유일하게 여인이었다.

금발의 여인인데 몸매와 아주 풍염하고 전신에서 폭발적인 매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투실투실하게 부푼 유방이 지면에 눌려 있었다.

유방에 흙이 묻었으나 여인은 감히 털어버릴 엄두도 못내고 있었다.

[환밀후(歡密后)!]

홍포인은 여전히 무감정한 어조로 여인을 불렀다.

[신존(神尊)이시여...]

여인은 고개를 들어 홍포인을 우러러보았다.

서른정도 되었을까?

두눈이 새파란 벽안(碧眼)인 절세미녀였다.

우유빛의 피부가 미미하게 경련하고 있으며,

그녀의 벽안이 짙은 갈망을 담아 홍포인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길을 받자 홍포인의 두눈에 담담한 광채가 흘렀다.

(석역쌍미(西域雙美)에 드는 천만금의 가치가 있는 사랑스런 여인... 하나...)

이내 홍포인의 눈빛은 다시 엄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벽안이 슬픈 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변황의 신! 변황 백만무림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계집에게 정을 주어서는 아니된다. 나는 변황의 신이므로...)

[요지(瑤地)의 준비상황은...]

홍포인은 무뚝뚝하게 물었다.

벽안미인 환밀후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요지(瑤地).

 

당대 서역제일문파(西域第一門派).

본시는 서천(西天) 서왕모(西王母)의 후인들로 선도(仙道)를 추구하는 여인천하(女人天下)의 문파였다.

그러던 요지에 밀종(密宗)의 음사(淫邪)함이 만연되었다.

결국,

선도를 추구하던 여인들은 그 옥체에 사내들을 태우고 쾌락을 찾았다.

그것이 일천 년 전부터이며,

요지에서는 일천 년 전인 세월을 거치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음탕한 무공과 술법들이 창안되었다.

그러면서 요지의 여인들은 욕심을 키워갔다.

자신들의 육체로 천하를 정복해보겠다는 것이었다.

요지의 여인들은 이를 위해 그 아름다운 육체와 음탕한 술수로 서역무림의 신공절기들을 긁어 모았다.

결국, 일천 년이 흐른 당대에 와서 요지는 서역제일이 될 수 있었다.

홍교본산인 천룡사(天龍寺)가 요지인 분당이 된 것이 이미 오래 전이고,

황교본산인 살가사(薩加寺) 역시 천룡사와 같은 꼴이 되었으며,

백년 전에는 서장제일이라던 포달랍사마저 요지의 요녀들에게 점령당했다.

그런 요지이건만...

대초원에서 난 일인 절대영웅(絶代英雄)에게는 너무도 무력했다.

 

---태양신존(太陽神尊)!

 

천세를 걸쳐 내려오던 서역제일비(西域第一秘)!

태양성부(太陽聖府)의 비밀을 푼 이 절대영웅이 신창(神槍)을 한번 그음으로써 요지의 천년공격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것이 이십 년 전의 일이었다.

 

!

환밀후(歡密后)!

요지제일미의 벽안에서 옥구슬이 흘렀다.

(당신... 한 분을 위해 삼십 년 동안 가꾸어온 심신이거늘...)

환밀후는 눈물을 삼켰다.

[천년휘하 일만의 미인과 삼만의 서역제일용병들이 신존의 일언 천명(天命)을 받자고저 부복하고 있습니다.]

환밀후의 말에 홍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마지막 일인에게로 닿았다.

그 인물은 완전히 백발로 뒤덮인 노검사(老劍士)였다.

나이를 추측하기 힘들 정도의 백발노검사!

그러나,

그 노구에게서 뼈골까지 스미는 예기(銳氣)가 내뻗치고 잇었다.

범인이라면 그 예기만으로 피를 토하고 죽을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였다.

[해천신검제(海天神劍帝)!]

홍포인이 묵직하게 불렀다.

[신존! 동해(東海) 해천검파(海天劍派) 일만검사(一萬劍士)가 신존의 존명을 고대한지 오래이오이다.]

백발노검사, 해천신검제가 노인답지 않은 칼칼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좋소!

홍포인은 돌아서서 다시 황혼을 바라보았다.

태양(太陽)...

서쪽끝이 지평선으로 침몰하고 있었다.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홍포안은 입을 열었다.

[때가 왔소! 나 태양신존(太陽神尊)은 중원(中原)을 본존의 발아래에 두어보일 것이오!]

[... 신존...!]

[신존이시여!]

삼인이 격동으로 몸을 떨며 홍포인을 올려다보았다.

!

태양신존(太陽神尊)!

이 인물이 바로 천하삼정(天下三鼎) 중 태양지혼(太陽之魂) 태양신존(太陽神尊)이란 말인가?

 

[중원(中原)은 넓고... 잠룡과 대붕(大鵬)이 도사린 곳이나!]

--- 차창!

--- ! 화르르르---

!

엄청난 창영(槍影)!

신창(神槍)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백 장에 이르는 극양강기(極陽)!

태양신존이 신창으로 환혼을 찌를 것이다.

가공할!

실로 가공할 기세가 신창에서 쏟아졌다.

산산이 부서지는 황혼!

그 사이로 하늘이 양단되지 않는가?

 

[본존에게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이 있으니... 뉘라서 본존의 앞을 막겠는가?]

태양신존이 웅혼한 일성을 토했다.

!

그것이었는가?

신창(神槍)이 바로 그것이었는가?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천지십병(天地十兵)의 사대신병(四大神兵)에 드는 절대신창(絶代神槍)이 아닌가?

한번 내침으로,

배그 장에 이르는 태양강기(太陽)를 내뻗어 만상을 재로 만든다는...

그 천고(千古)의 신창(神槍)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태양성부(太陽聖府)!

그 천 년의 신비 속에 깊이 잠들어 있던 태양천화신창(太陽天火神槍)...

[신존(神尊)!]

[신존(神尊)이시여...]

남황야수신, 환밀후, 해천신검제가 감격하여 눈물을 지었다.

이역의 오랑캐라 하여 중화인들로부터 갖은 수모와 멸시를 당해오던 그들...

드디어,

그들은 떳떳이 천하 위에 설 기회를 목전에 둔 것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호호호호!]

한소리 맑디 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화르르르...

허공으로부터 한무더기 홍운(紅雲)이 사인 앞으로 날아내렸다.

그 홍운은 한 명의 지극히 아름답고 발라하게 생긴 홍의소녀였다.

팽팽한 홍의겉으로 여인의 신비한 육체의 곡선이 드러나보이고,

한가닥으로 묶은 검은 머리가 허벅지까지 이르렀다.

아주 당돌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소녀였다.

[사란()!]

소녀를 바라보는 태양신존의 안면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호호! 오빠! 드디어 중원(中原)에 들어가실 생각이신가요?]

사란이라는 소녀가 커다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소녀는 태양신존의 누이동생인 것 같았다.

태양신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단다. 일년내로... 중원을 사란에게 주었다.]

태양신존의 말에 소녀는 환히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오빠에게 부탁이 있어요.]

[무엇이냐? 말해 보거라!]

사란이라는 소녀는 냉큼 대답했다.

[오빠보다 사란이 한발 먼저 중원에 들어가 정세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주세요.]

[네가 척후가 되겠다고?]

태양신존은 검미를 찌푸렸다.

[아이... 오빠...!]

사란은 태양신존의 품으로 뛰어들어 애교를 부렸다.

이에 태양신존은 별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천하를 상대로 싸워도 지지 않을 나지만 사란 네 녀석에게 번번이 지는구나!]

[! 오빠 최고!]

사란은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였다.

그런 사란의 모습을 보며 태양신존은 엄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환밀후와 해천신검제를 데리고 가야한다!]

[! 사란 혼자가도 되는데...]

그러나,

오빠의 태양신존이 내세온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음을 알기에 군소리는 하지 않았다.

[! 내일 당장 떠날래요! 중원에는 강자가 많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알아볼거예요!]

사란은 중원쪽을 바라보며 작은 손을 앙증맞게 휘둘렀다.

[오빠! 먼저 가겠어요.]

[오냐!]

화르르...

사란은 제비같이 가볍게 몸을 날려 초원저편으로 날아갔다.

[환밀후! 해천신검제!]

사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태양신존이 묵직하게 불렀다.

[!]

[신존...]

양인이 무릎을 꿇으며 복명했다.

[사란을 잘 돌아보오! 그 일은 환밀후가 주력하고... 해천신검제는 중원의 내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보고 하오!]

[존명(尊命)!]

[심려 놓으시옵소서!]

환밀후와 해천신검제의 대답을 들으며 태양신존은 남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중원(中原)이 있었다.

[사란으로 인하여... 너 중원이 몇달 늦게 변황의 광풍에 휘말리게 되었구나!]

태양신존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변황(邊荒)으로 부터의 대풍운(大風雲)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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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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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四 章

 

                  紫府의 다섯 가지 보물

 

 

 

(!)

능천한은 흠칫했다.

들려온 목소리는 죽어가는 병자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나를 찾는 인물을 만나다니...!)

능천한은 놀라긴 했으나 침착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침중한 어조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소생이 능천한입니다만... 어느 분이십니까?]

능천한의 물음에 즉시 대답이 있었다.

[... 패천잠룡(覇天潛龍)... 사경에서... 만나다니... 하늘이... 노부를 버리지는 않았군...]

고통스럽고 힘에 겨운 목소리였다.

[파진...의 비결을... 알려... 주겠네... 들어... 오게!]

능천한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귀를 기울였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의 최대 묘용은 류()와 환(), ()의 묘리이네... ()...!]

끊일 듯 끊일 듯, 위태로운 어조로 노인은 만상천류대진의 진세를 설명하였다.

!”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발했다.

노인의 설명을 듣자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것 같이 가물가물하던 이치들이 확연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문일지십(聞一知十)!

노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능천한은 벌떡 일어섰다.

[기다리십시오! 소생이 노인장께 가겠습니다.]

[... 조심하게...!]

스스슥!

능천한은 미끄러지듯이 진중으로 들어갔다.

콰르르르르!

우우우!

츠츠츠---!

()... ()... ()...!

해일이 일어나듯!

광풍폭우와 천지멸렬의 환상이 능천한을 뒤덮어 왔다.

[...!]

능천한은 조금의 미동도 않고 냉철하게 전면을 바라보며 진행하였다.

이윽고...

스스슥!

모든 진세가 연기같이 사라져 갔다.

능천한의 눈에 그다지 넓지 않은 절곡의 모습이 드러났다.

[...!]

능천한은 멈칫 몸을 세웠다.

오십여 장 밖,

깎아지른 석벽이 서 있었다.

그 석벽에 한 명의 혈인(血人)이 기대앉아 있었다.

능천한은 급히 그 인물에게 다가갔다.

혈인(血人)은 청수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원래 노인은 자색 장포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피에 흠씬 젖어 혈포가 된 것이다.

[노인장!]

능천한은 급히 자의노인을 부축하였다.

[...!]

자의노인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사색(死色)이 완연한 노인의 두 눈이 안도감으로 물드는 것을 능천한은 보았다.

[... 역시... 잠룡(潛龍)...!]

능천한을 바라보며 노인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상세가 중하십니다. 말씀하시지 마시고 우선 상세를...!]

능천한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러나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노부는... 틀렸네... 외상(外傷)도 중하니 내상은 그보다 열배 중하지!]

[...!]

능천한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렀다.

그제야 노인의 상세를 알아본 것이다.

노인의 몸은 어느 곳 하나 성하지 못하고 쩍쩍 갈라져 있었다.

특히 자의노인의 가슴은 처참하게 으스러져 있었다.

그러나 노인의 외상은 내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인의 전신 심맥은 완전히 박살이 난 상태였다.

게다가 노인의 심장조차 절반 이상 으스러져버렸다.

(이분... 누구기에 이런 중상을 입고도 살아 계시는가?)

능천한은 그저 아연할 뿐이었다.

노인의 상세는 범인이라면 이미 몇 번 죽었을 중상이었던 것이다.

[허허... 패천... 잠룡(覇天潛龍)... 만날 한 가닥 기대러 일천 리를 달려온... 것이 헛고생은... 아니었군!]

능천한은 바라다보며 자의노인은 웃음을 지었다.

[소생을 찾아오셨습니까?]

능천한은 무거운 안색으로 물었다.

[그렇네... 천하를... 구할 거룡(巨龍)을 찾아온 것이지...!]

자의노인은 말을 하며 능천한을 올려다보았다.

[소형제... 한 가지 부탁... ... 있네!]

[말씀해 보시오!]

[노부... 일신에는... 일문(一門)의 흥망이... 달려있네... 노부 일신의 은원을... 대신... 받아주지 않겠나?]

능천한은 그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해드리겠습니다.]

노인의 죽음이 드리운 얼굴에 흐릿한 미소가 감돌았다.

[... 고마우이... ... 부르르 앉혀주......!]

[!]

능천한은 노인을 편하도록 석벽에 기대어 주었다.

노인은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노부는... 자부(紫府)...의 자부노조(紫府老祖)일세...!]

노인의 말에 능천한은 아연하였다.

[노공(老公)께서... 자부노조(紫府老祖)십니까?]

[그렇네... 이 늙은이가... 자부노조(紫府老祖)...!]

[으음...!]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자부(紫府)>

 

이 얼마나 신비한 이름인가?

자부(紫府)는 무림제일비(武林第一秘)라고도 불리는 신비문파(神秘門派)이다.

그들은 무림의 유수한 문파로 천 년을 이어내려왔다.

그러나 누구도 자부(紫府)의 진면목을 모른다.

과연 자부(紫府)의 힘이 어느정도인지...

그들 휘하에 얼마만큼의 사람과 재력과 능력이 있는지를...

흑자는 말한다.

 

---자부(紫府)는 마음만 먹으면 천하를 살 수도 있는 재력(財力)이 있으며... 천하를 손아귀에 넣을 힘과 능력이 있다.

 

...라고

자부(紫府)를 세운 인물은 아주 유명한 인물이다.

동시에 천하에 천세후인 지금도 그 이름을 기억하나...

천 년 후인 지금도 진정한 면모를 알지 못하는 신비의 인물이다.

 

---자부존(紫府尊).

 

자부존(紫府尊)이라 불리는 천수 백년전의 신비고인이 바로 그다.

신비 속에서 운룡(雲龍)같이 노닐었던 제일신비인...

당대의 자부지존(紫府至尊)은 자부노조(紫府老祖)라는 고인이다.

남북쌍괴(南北雙怪)와 시대를 같이하던 전대고인(前代高人)이 그다.

 

(자부노조께서 이 지경이 되다니...!)

능천한의 검미가 부르르 떨렸다.

자부노조는 세외제일지사(世外第一智士)로 불린다.

그 때문에 능천한은 평소 자부노조를 지극히 흠모해 왔었다.

한데 그 자부노조가 죽어가는 신색으로 그의 앞에 있는 것이다.

[만상... 천류대... 진을... 치고... 그 진운이... 자네를... 불러... 오길 바랬지...!]

자부노조는 죽어가면서도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놓인 때문일까?

[... 천하가... ()의 저주(咀呪)... 잠기고 있네...!]

[...!]

[... 첫번째... 재물이 패천신... 문파... 우리 자부(紫府)였던... 게야...!]

자부노조는 치를 떨었다.

[자부궁(紫府宮)... 삼천의 궁도와... 함께... 궤멸... 노부만이... 간신히... 빠져 나왔네...!]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하였다.

[자부궁이 궤멸당하다니요...? 어느 누가 자부궁을...?]

능천한이 다급히 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자부노조가 어둡게 말했다.

[... 우주혈종(宇宙血宗)... 아는가?]

[우주혈종(宇宙血宗)!]

능천한은 너무도 크게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우주혈종(宇宙血宗).

 

능천한이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이백여 년 전,

저주의 혈황탈(血荒奪)로 천하를 혈세한 대사종(大邪宗)!

결국 패천자(覇天子)와 제왕천신(帝王天神)의 손에 의해 지옥애로 떨어지고 말았지 않았는가?

능천한이 아연하는데 자부노조는 말을 이었다.

[사흘... 전이었는데... 한 명의 혈인(血人)... 자부(紫府)로 찾아왔네... 그자는 혈광에... 싸인 채... 한 자루의 핏빛 탈()... 사용...!]

[혈황탈(血荒奪)!]

능천한이 자기도 모르게 신음했다.

[반각... 반각만이었지... 자부궁은... 삼천궁도... 들과 함께... 무너졌고... 노부도 그 탈()에서 쏟아진... 저주스런... 강기에... 저항도 못하고... 이 모양이 되었지...

[으음...!]

능천한은 땀이 절로 흘렀다.

자부노조는 말을 이었다.

[혈강(血罡)... 번뜩이는... 순간... 천지가 혈기로 가득차고... 그것으로 끝이었네... 노부도 자부탄천신강(紫府彈天神罡)... 아니었으면 즉사... 를 면치... 못했을... 것이네,...]

[흉수가... 우주혈종이라고 생가하십니까?]

능천한이 침중하게 물었다.

[... 수 없지. 우주혈종이... 이백 년을 ... 살아왔다고... 생각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자가 쓴 것은... 혈황탈(血荒奪)...]

[... 황탈(血荒奪)...!]

 

---혈황탈(血荒奪).

 

천하사대마병(天下四大魔兵)의 하나.

일단 펼쳐지면 소름끼치는 마성과 핏빛의 강기로 삼라만상을 뒤덮어 버린다는 전설의 마병(魔兵)이 아닌가?

그것이 당세에 나타나 혈풍을 부르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제왕천신(帝王天神)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려는가?)

능천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천기(天機)... 보았지. 천하는... 소형제 부자가... 죽었다고 하지만... 천기는 그것을 부정하고 있었네...]

자부노조는 능천한을 올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노부는... 그대에게... 우주혈종(宇宙血宗)이든... 그 후인이든간에... 그들이 일으키는... 혈풍을 가라앉힐... 힘을 주기... 전에는,... 죽을... 수 없었지...]

[...!]

[노부는... 그대에게... 자부오절(紫府五絶)을 줄... 작정이네!]

자부노조가 힘겹게 말했다.

[자부오절(紫府五絶)...?]

[그렇네... 그대는 자부오절(紫府五絶)... 아는가?]

능천한은 고개를 저었다.

[알지 못합니다!]

자부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듣게... 자부에는 천하를 위진... 시키는... 다섯 가지... 가 있네... 그 일절(一絶)이 인절(人絶)... 이네...]

자부노조는 자부심을 떠올리며 자부오절을 떠올렸다.

 

<자부오절(紫府五絶)>

 

이것이다.

이것이 자부(紫府) 일천 년의 신비이며,

자부의 그 밝혀지지 않은 거대한 잠력인 것이다.

 

---인절(人絶).

자부(紫府)의 진정한 힘이 이것이다.

자부에는 인재가 많다.

각방면에서 최고의 경지에 달리는 인재들이 자부에 있는 것이다.

십만(十萬)!

이 엄청난 잠룡들이 자부지존(紫府至尊)의 현실을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는 것이다.

 

재절(財絶).

자부제일절(紫府第二絶).

일천 수백 년의 세월동안 축격된 엄청난 재력이 자부에 있다.

그것은 실로 중원전체를 사고도 남을 지경의 양이었다.

 

기절(機絶).

자부제삼절(紫府第三絶).

자부의 기관지학, 토목지학, 기문진법은 정평이 나있다.

만상문(萬像門)이 궤멸된 이후,

자부의 그 방면에서의 진전은 독보적인 경지였다.

 

[자부가 방심을 하지만... 않았다면... 혈종(血宗)... 환생했어도 자부궁을 건드리지... 못했을 텐데...!]

자부노조는 한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상처에서는 꾸역꾸역 선혈이 흘렀고 사색(死色)이 노안에 가득했다.

[사절(四絶)... 약절(藥絶)... 자부(紫府)는 만종(萬種)의 영약을... 지녔지... 오절(五絶)... 기공절(氣功絶) 천지십병이 나타나지만...않으면 무너지지 않는 기공이... 자부에... 있네...]

말을 마친 자부노조는 이미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다만 강렬한 내공과 정신력이 이미 죽은 그의 육신에서 영혼을 묶어 두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자부오절(紫府五絶)이고... 조사 자부존(紫府尊)... 뒤를 이를 자부지존(紫府至尊)의 현신을 기다리며... 천 년을... 잠속에 있었네...!]

능천한의 눈빛이 안타깝게 변했다.

--- !

자부노조의 얼굴에 떠오르는 희광반조의 현상을 보았기 때문이다.

[혈종후예(血宗後裔)... 사실... 자부오절과... 또 한 가지... 보물을... 노렸지만... 헛허... 그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네...!]

[...!]

능천한은 경건한 자세로 자부노조의 이야기로 경청하였다.

자부노조는 죽어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 한 가지 보물이란... ... 개의 상고신품(上古神品)이네...!]

[상고신품(上古神品)...?]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자부노조의 말을 기다렸다.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이라는... 것이지...]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

능천한이 탄성을 발하자 자부노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노부가... 우연히... 돈황(敦煌)의 석굴(石窟)에서 얻은... 옥벽(玉璧)이네,...]

[...!]

[그 옥벽에는... 대천황지기(大天荒之氣)에 연관되는 극히... 심오한 이치가... 적혀... 있었네!]

[대천황지기(大天荒之氣)! 혹시 대천황연(大天荒衍)과 관련되는...?]

능천한이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노부가... 추측키로는... 그것은... 황제(皇帝)의 저술로 보이네!]

[황제(皇帝)! 전설의 성군 황제(黃帝)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네...!]

[으음...!]

능천한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강렬한 영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그에게 또 다른 운명을 전개해 보이는 예시와도 같은 것이었다.

[품속에...자령신부(紫靈神府)가 있네. 무이산(武夷山)... 약왕곡(藥王谷)... 천수약왕(天手藥王)에게... 보여주면... 자부오절(紫府五絶)... 헌원천황벽(軒轅天荒璧)을 그대에게 줄 것이네...!]

말을 하면서 자부노조의 얼굴이 점차 옆으로 떨어져 갔다.

[노인장...!]

능천한이 안타깝게 불렀다.

[부탁... 천하가... 혈종(血宗)... 저주로... 침몰하려... 구해야... 하네!]

...!

말을 마치자마자 자부노조의 목이 힘없이 꺾어졌다.

[노인장! 노인장!]

능천한은 다급히 자부노조의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자부노조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으음...!]

능천한은 손을 떨구며 깊이 탄식했다.

(천하가 무너져... 가고 있다. 자부노조께서는 그것이 걱정되어 눈도 감지 못하신 것이다!)

스르르---!

능천한은 자부노조의 치뜬 노안을 내리쓸어 감겨 주었다.

그는 이어 자부노조의 시신에 대고 깊게 머리를 숙였다.

[편히 잠드소서. 자부(紫府)가 저로 안하여 소생하고... 천하가 저를 의지하여 지탱하도록 하겠습니다!]

묵도를 한 후,

능천한은 자부노군의 시신을 안고 일어섰다.

 

잠시 후,

절곡의 양지바른 곳에 작은 봉분이 생겼다.

[...!]

봉분 앞에 꿇어 앉은 능천한.

그의 두 손에는 하나의 옥패가 들려 있었다.

자색(紫色)의 서기가 도는 옥패.

 

<자령신부(紫靈神府)>

 

그것은 자부존(紫府尊)이 만든 것이고,

자부(紫府)의 천년정화를 수족으로 부릴 수 있는 무상권위가 담겨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무이산 약왕곡에 가야겠군! 천하를 평정키 위해서는 막강한 세력이 필요하니...!]

능천한은 자령신부를 깊숙이 집어넣었다.

우르르르--- 르르!

--- --- !

절곡 주위의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에서는 끊임없이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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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三 章

 

                    억지 청혼(請婚)

 

 

 

[으음...]

되날아온 패천산륜을 받아든 능천한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상처가 터지며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고소를 금치 못했다.

[후훗! 패천신륜(覇天神輪)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군!]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그는 그렇게 쉽사리 남에게 패할 인물이 아니다.

능천한이라도 통천금룡제와의 격돌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그자의 무공이 높고 또 금룡신장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능천한은 가볍지 않은 중상을 입은 상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통천금룡제는 패천신륜의 현신에 놀라 달아난 것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

오랜 세월 이어온 이 열 가지 신병의 위명은 무림인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심어준 것이다.

그때였다.

[흐흐흐흐...!]

돌연 한소리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한은 내심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떤 자이기에...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도록 눈치를 채지 못하였는가?)

능천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고개를 들던 능천한의 두눈이 놀람의 빛을 띄웠다.

허공(虛空)!

능천한의 머리 위쪽 허공에 한 명의 인물이 둥실 떠있었던 것이다.

(바로 머리 위에까지 접근하도록 몰랐다니...!)

능천한은 자책하며 허공에 뜬 그 인물을 주시하였다.

그 인물은 백포의 노인이었다.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얗고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뜩이는...

일견하기에도 음침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극음(極陰)의 기공을 익힌 노인이다!)

능천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백의노인의 일신에서 골수까지 스미는 한기가 일었기 때문이다.

[흐흐... 네놈 애송이가 패천잠룡(覇天潛龍)이렸다!]

노인이 강팍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노인장께서는?]

능천한은 내심 긴장하며 대답했다.

백의노인은 시퍼런 두눈을 희번뜩리며 그런 능천한을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적은 아니군. 음침하지만 살기는 없으니...)

능천한은 내심 긴장을 풀었다.

[클클... 과연 고금제일의 체질이다. 네 녀석의 씨를 받고 태어나는 아이는 능힌 일세패웅(一世覇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백의노인이 까마귀 울음소리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능천한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뻘개졌다.

[노공(老公)! 무슨 말씀이신지...]

괴노인은 거북살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노부에게는 예쁜 계집아이가 하나 있다.]

[...!]

[계집들 중에서는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만한 미모와 재질을 지닌 계집이지만...]

백의노인은 괴팍스런 시선을 능천한에게 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능천한은 멍한 표정으로 괴노인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클클... 계집이기에 의발을 전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 계집아이로 하여금 네 녀석의 씨를 받게 할 생각이다!]

[예엣?]

백의노인의 말에 능천한은 아연실색하였다.

백의노인은 능천한을 씨받이로 쓰겠다는 얘기다.

[... 노인장!]

[흐흐... 인상 쓰지 마라. 그 게집은 천하제일의 첩()이 될 것이니 네 녀석은 그 계집에게 아들이나 하나 낳게 해주면 된다!]

[...!]

능천한은 어이가 없어서 입만 딱 벌릴 뿐이었다.

노인은 품속에서 옥함을 하나 꺼내어 들었다.

[옛다. 이것은 예물이니 받아두어라.]

--- !

괴노인은 능천한에게 그 옥함을 던졌다.

[...!]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옥함을 받아들었다.

[크흐흐흐흐... 네 녀석이 예물을 받았으니 이 혼인은 성사된 것이니라!]

--- --- !

[노인장!]

당황한 능천한은 다급히 불렀다.

그러나 괴노인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단번에 멀리 날아갔다.

[크크크... 자부(紫府)의 영화(英華)를 취하러 왔다가 대붕(大鵬)의 씨를 얻게 되었구나!]

--- --- !

괴이한 말을 남기며 괴노인은 신기루같이 사라져갔다.

(대단한 경공...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의 아래가 아니다!)

능천한은 노인의 가공할 경공에 혀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가?]

능천한은 손에 들린 옥함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옥함을 내려다보던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했다.

놀랍게도 옥함은 만년한옥(萬年寒玉)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만년한옥(萬年寒玉)!

백독을 몰아내고 항시 젊음을 지켜준다는 무상지보가 아닌가?

한데 그 만년한옥을 깎아 옥함을 만든 것이다.

[그 노인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능천한은 내심 놀라며 옥함을 열어보았다.

옥함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있었다.

매미날개보다도 얇은 천으로 만든 얇은 내의(內衣).

만년한옥으로 깎아 만든 옥병.

눈같이 흰중에 거무스름한 무늬가 종횡으로 뒤엉킨 손바닥만한 옥부(玉府)가 그것이었다.

[이것은...!]

능천한은 흠칫하며 옥부(玉府)를 집어들었다.

(현기(玄機)가 있다!)

능천한은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옥부 위에 얼룩진 검은 무늬를 들여다보았다.

옥부(玉府).

그것은 살덩이만한 만년한옥을 깎아야 손바닥만큼 얻을 수 있다는 구유현음벽(九幽玄陰壁)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구유현음벽 위에 얼룩진 무늬에 어떤 현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만큼 큰 구유현음벽은 천하에 단 하나... 북해 유령궁(幽靈宮) 외에는...)

능천한은 급히 옥부를 뒤집어 보았다.

[역시...!]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부의 뒤에는 네 개의 글자가 전자체(篆子體)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유령제종(幽靈諸宗)>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이것은 천 년을 내려온 일파의 종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문파는 바로,...

 

북해(北海) 유령궁(幽靈宮).

 

[... 그 노인이 바로 현음유령종(玄陰幽靈宗)...!]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였다.

 

<현음유령종(玄陰幽靈宗)>

 

그는 바로 남북쌍괴(南北雙怪) 중 북괴(北怪)가 아닌가.

벽력태세(霹靂太歲)와 함께 백년 이전에 이미 무림을 떠났던 전대절정고수인...

그가 나타난 것이다.

능천한은 경이에 찬 시선으로 옥함에 든 세 가지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이것들은 유령사대중보(幽靈四大重寶)의 세 가지가 아닌가?]

그는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본래 북해 유령중에는 네 가지 지보(至寶)가 있다.

이를 일컬어 유령사대중보(幽靈四大重寶)라 한다.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빙잠천의(氷蠶天衣).

 

이것이 유령사대중보다.

하나같이 무가의 지보들이다.

특히 유령제종령과 유령공비의 가치는 무한하다.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이는 유령궁의 조사인 유령대제(幽靈大帝)의 신물이다.

이에는 유령대제의 일신무학이 모두 감추어져 있다.

그 때문에 유령제종령은 그 권위와 더하여 사대중보 중 으뜸이 되었다.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

 

이는 유령대제의 부인이던 명후(冥后)의 호신지병(護身之兵)이고...

동시에 천병보(天兵譜) 천병제일천좌(天兵第一天坐)에 오른 무상신병이다.

그 서열은 무려 십이위(十二位).

고금을 통틀어 이를 능가하는 병기는 열한 가지 이상이 없다.

벽력일맥이 벽력굉천권(霹靂轟天拳)과 함께 공히 십이위인 초절신병...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만년한옥을 태산만큼 한홉을 얻는다는 극음제일영약(極陰第一靈藥)이 이것이다.

그 공효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한 방울만 마셔도 백 년 공력을 얻고 아무리 어려운 극음기공이라도 속성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고, 아무리 강한 극독이라도 얼려버리고,

영원히 청춘을 지켜준다.

 

---빙잠천의(氷蠶天衣),

 

이는 두 벌로 되어 있다.

한 벌은 여인용이고 한 벌은 남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만년빙잠(萬年氷蠶)의 빙잠사를 뽑아 만들며,

입고 있으면 화산이 터지는 정도의 충격과 압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준다.

빙잠천의는 유령대제(幽靈大帝)와 명후(冥后)가 쓰던 것이다.

[이 귀한 것들을... 서슴없이 주고 가다니...!]

능천한은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천하패웅이 될 아이 하나만 유령궁에 주면 된다.

 

능천한은 현음유령종이 말한 의미를 되새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륜대사를 어찌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가? 다시 만나면 돌려주리라!]

능천한은 옥함을 닫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운무로 뒤덮인 절곡의 후면으로 다가갔다.

우르르르르--- ...!

은은한 우뢰성을 동반한 운무,

그것은 너무 짙어 도저히 그 안쪽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능천한은 통천금룡제가 서 있던 곳에 멈추어 서서 진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만박통지의 기재(奇才)!

기문진학에 대한 그의 지식도 천하를 통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대단한 진세다!]

이내 능천한의 눈에서 신광이 흘렀다.

[오행(五行)의 상극(相剋)에 의해 운무와 우뢰(雨雷)의 변화가 일어나고 상생(相生)의 묘결로 예측할 수 없는 대변수로 찾았다!]

그의 신색은 더욱더 침중해져 갔다.

[오행뿐이 아니고 사상(四象)의 근원이 진중에 있고 육합(六合)의 광활함과 팔괘(八卦) 구궁(九宮)의 복잡한 변화가 그중에 가미되었다.]

능천한의 두 눈은 휘황하게 빛을 토하며 진세를 훑어나갔다.

그 진세는 능천한이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난해한 진형이었다.

만상(萬象)의 이치가 그곳에 있고 만류(萬流)의 흐름이 그에 더하여 있었다.

능천한도 일시지간에 진세의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 진세는 최근에 이루어졌다. 어느 누가 이런 진세를 설치했는가?)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 정도의 진세를 펼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천하를 털어 손을 꼽을 정도다.)

능천한은 뇌리에 비장된 수 많은 기문 진세들을 떠올렸다.

상고(上古)이래 천하에 나타났던 수많은 진세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군!]

능천한은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색이 이내 밝아졌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진세의 내력을 기억해 낸 것이다.

[이것이 절전된 만상문(萬像門)의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이다!]

능천한은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

 

팔백 년 전,

천향염후(天香艶后)라는 고금제일여고수(古今第一女高手)에 의해 절문당한 문파가 있다.

만절문(萬絶門)이라는 문파로...

그들의 기문진학은 자부(紫府)일맥과 쌍벽을 이루었다.

만상천류대진은 바로 만천문에서 흘러나온 절진이다.

[사문(死門)이 철저한 변()과 환()에 숨겨진 극변(極變)의 절진...!]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진세의 이치를 알면 어렵기는 하나 통과할 수는 없다.]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신중한 발걸음으로 잔중에 들어섰다.

우르르르--- !

--- 이이잉!

그가 진중으로 들어서자,

거센 폭풍과 우뢰성이 그를 강타했다.

그와 함께

[크크크크... !]

[우희희희희...!]

섬뜩한 악귀들의 환상이 운무중에서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능천한을 뒤덮쳐 올 듯이 섬뜩한 기세로 일어났고,

--- 르르릉!

--- --- --- !

해일이 일고 광풍폭우의 환상이 능천한을 뒤덮었다.

그러나,

[좌삼(左三) 우이(右二) 전일(前一) 퇴오보...!]

능천한은 육중한 바위가 움직이듯이 침착하게 만상천류대진을 뚫고 나갔다.

천지이교(天地二交)가 타통된 그다.

그저 단순한 환상에 흔들릴 까닭이 없다.

능천한의 걸음걸이는 점차 빨라졌다.

()은 변()으로,

급변(急變)은 쾌변(快變)으로 파해한걸까?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행운유수로 진중을 지났다.

[...!]

문득 능천한의 발길이 멈추어졌다.

이미 진세의 팔할을 지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능천한의 얼굴은 극히 심각해졌다.

그는 뚫어져라 전면을 쏘아 보았다.

(이할 정도 되는 이 마지막 관문에 만상천류대진의 진정한 위력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진정한 어려움이 그 앞에 닥친 것이다.

[이 진세로 뚫거나 설치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자부(紫府)의 자부노조(紫府老祖) 쌍극천효(雙極天梟),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취존개(醉尊)... 그외에는 달리 생각할 인물이 없다.]

능천한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 웬 피()...!]

그러던 중 능천한의 눈길이 번쩍 빛났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일 자 정도 우측에 한 사발은 됨직한 혈흔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능천한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하루이전에 흘린 선혈이다... 어쩌면 이 진세를 구축한 인물이 토한 것인지도...!]

능천한은 혈흔을 손으로 찍어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 패천잠룡(覇天潛龍)이신... ?]

한소리 미약한 음성이 능천한의 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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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二 章

 

            千谷屯奇門陣

 

 

 

[...]

[...]

--- !

시선이 마주쳤다.

지극히 묵직한 시선이 거기 있었다.

태산의 무게가 그 시선중에 담겨 있는...

능천한은 홀린 듯이 전면을 바라보았다.

장권 밖.

언제부터인가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 있었다.

시커먼 묵의(墨衣)를 걸친 대한(大漢)이었다.

마치 사자(獅子)를 연상케 하는...

(육중하다! 태산으로 보인다!)

영웅(英雄)이어야만 영웅(英雄)을 알아본달까?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

구리빛의 피부, 먹을 찍어 누른 듯한 눈썹,

그리고 고독한 사자(獅子)의 눈...

능천한은 대한의 모습에서 고독한 백수지왕 사자(獅子)의 모습을 보았다.

(사귀고 싶은 인물...!)

대한의 인상은 지극히 강렬하게 능천한의 뇌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역시... 잠룡(潛龍)... 장차 천하가 황산에 웅크리고 있던 이 잠룡의 그늘로 가려지겠군.)

사자인 대한의 두눈에서 깊숙한 광채가 흘렀다.

그와 함께 그의 꾹 다무린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하하... 역시 패천신륜(覇天神輪)이네!]

대한이 나직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극히 정중함이 실린 목소리였다.

능천한은 패천신륜을 소매에 집어 넣으며 포권을 해보였다.

[소제는...]

[알고 있네. 패천잠룡(覇天潛龍)이 아니면 뉘라서 현제같은 기도를 발하겠는가?]

대한의 말에 능천한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비로소 한 인물의 이름을 떠올렸던 것이다.

[일전에 한 가지 요언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나는군요!]

[요언이라...!]

대한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천(九天)에 독존(毒尊)이 있고 (九天在毒尊). 천중(天中)의 철사(鐵獅)는 홀로 외롭네 (天中孤鐵獅).]

능천한이 미소를 지으며 요언을 읊었다.

이는,

십년 이내에 천하를 풍미한 일비(一秘), 일웅(一雄)을 가리킨다.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

---철혈묵사(鐵血墨獅).

 

이들이 바로 일비일웅(一秘一雄)이다.

구천묵영독존(九天墨影毒尊)---

그는 아주 신비로운 인물이다.

묵영독존(墨影毒尊)으로도 불리는데, 그 검은 그림자(墨影) 외에는 전혀 알려진바 없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이래 최대마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철혈묵사(鐵血墨獅).

천하에 자신의 짝될 영웅이 없어 고독(孤獨)하다는 일대호웅(一大豪雄)이다.

[핫하! 또 한 가지가 있지. 우내(宇內)에 잠룡(潛龍)이 엎드려 있지 않는가?]

대한이 호탕하게 웃었다.

영락없는 사자(獅子).

대한은 바로 철혈묵사(鐵血墨獅) 정천학(鄭天壑)이었다.

철혈회(鐵血會)의 대종주(大宗主).

당대제일의 강골(剛骨)을 지닌 인물이 바로 그인 것이다.

그때,

[--- !]

--- 쿠쿠--- !

철혈묵사의 거구가 불끈 치솟아 한곳으로 내리꽂혔다.

그곳은 높직한 가산 자리였다.

(철혈강기(鐵血罡氣)!)

능천한의 두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철혈묵사의 몸에서 검붉은 강기가 노을같이 번져 나옴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 --- !

--- !

가산 전체가 박살이 나서 날아갔다.

[--- !]

[--- 에엑!]

박살이 나서 날아가는 돌더미에 십여 명의 혈의인들이 튕겨져 나갔다.

무적지위(無敵之位)!

철혈묵사의 공세는 가히 무적의 기세였다.

--- 쿠쿵---

화르르르르---

사석이 흩날리는 중에 철혈묵사가 표표히 날아 내렸다.

지면으로 날아내린 철혈묵사는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한명... 간교한 자가 자네를 이 황산에 파묻어 버릴 생각을 하고 있네.]

[그렇습니까?]

능천한은 고소를 지었다.

[소제를 황산에 파묻어 무엇을 하겠다는 게지요?]

철혈묵사가 얼굴을 굳혔다.

[능현제는 자신이 천강지성(天罡之星)임을 모르는가?]

[후훗! 소제가 천강지성?]

철혈묵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아주 복잡했다.

어떤 심각한 갈등이 있는 듯이...

이내,

철혀룩사의 시선은 형형하게 빛을 뿌렸다.

[능현제가 거룡(巨龍)이 됨을 원치 않는 자들이 있네. 그자들은 무슨 짓을 해서든지 자네를 해치려 할 것이네!]

[흐음...!]

능천한도 안색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 벽향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누군가의 안배에 의한 것일게고...)

철혈묵사는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능천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당세는 혈란의 시대이네. 거룡(巨龍)... 그것도 고금(古今)에 이른 대창룡(大蒼龍)이 아니면 혈운(血雲)을 삭이지 못한다네...!]

[...!]

능천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 !]

[--- 크크---!]

멀리서 두 마디 굉렬한 장소성이 터졌다.

[...!]

[...!]

양인은 힐끗 장소가 터진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벽향이 사라진 곳이었다.

(십 리 밖... 막강한 내공을 지닌 자들이군.)

능천한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철혈묵사가 능천한을 바라보았다.

[가게! 자네를 찾아오는 거마(巨魔)들일세!]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상을 입은 상태이니... 강적과 부딪힐 필요는 없지.)

능천한은 붕분으로 다가갔다.

옷깃을 여민 그는 패천신문의 문도들이 잠든 봉분을 향하여 일배를 올렸다.

(마도들의 목을 베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봉분에 일배를 하며 능천한은 마음에 한철을 담았다.

[다시... 뵙겠습니다!]

능천한은 철혈묵사에게 포권을 해보였다.

[강호(江湖)에서 보세!]

[그럼...!]

스스스--- !

능천한은 허공으로 날아올렸다.

일시에 그의 몸이 백 장 밖으로 날아갔다.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을 펼친 것이다.

[혈종(血宗)과 최후를 가리기 보다는... 잠룡(潛龍)과 겨룸이 더 낫겠지...!]

날아가는 능천한을 바라보며 철혈묵사는 중얼거렸다.

그의 말뜻은...?

[--- --- !]

[--- --- !]

제차 장소성이 터졌다.

그것은 오 리도 아니되는 곳까지 접근해 있었다.

[...!]

그쪽을 바라보는 철혈묵사의 시선에서 한기가 일었다.

[잠룡(潛龍)이 거룡(巨龍)으로 성장함을 지켜봄도 큰 즐거움이 되리라!]

철혈묵사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스스--- 스슥!

이내 철혈묵사도 묵영(墨影)이 되어 멀리로 날아갔다.

 

***

 

스스스스--- !

능천한은 천곡둔(千谷屯)이라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천곡둔(千谷屯).

 

이름 그대로 천 개의 곡()이 있는 구릉이었다.

그다지 깊거나 큰 절곡들은 아니고,

고만고만한 절곡들이 천여 개나 벌려 있는 곳이 천곡둔이다.

멀리서 천곡둔을 바라보면 수많은 밭이랑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천곡둔의 지형은 나보다 잘아는 사람이 없다. 천곡둔의 중지로만 들어가면 상세를 치료할 수 있다!)

능천한은 지그시 가슴을 누르며 작은 계곡을 날아넘었다.

문득,

[!]

능천한의 눈에서 이체가 흘렀다.

그는 칠팔마장 밖의 천곡둔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르--- 르르르---

--- --- ---

한의 게곡에서 운무가 뭉실뭉실 치솟고 있었던 것이다.

우르르릉---

나직한 우뢰성까지 백 수십 장을 뒤덮고 있었다.

(전에는 저런 현상이 없었는데...)

능천한의 붕목이 형형하게 빛났다.

갑자기,

[그렇다!]

능천한이 탄성을 질렀다.

--- 스스슥!

능천한은 구릉을 박차고 유성이 흐르듯이 운무쪽으로 날아갔다.

[진운(陣雲)! 진운(陣雲)이다!]

능천한의 두눈이 강렬한 신광을 쏟아내었다.

진운(陣雲)!

능천한은 그 운무가 강력한 기문진세(奇門陣勢)에 의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최근에 누군가가 저곳에 절대기진(絶代奇陣)을 포진하였다. 그때문에 뇌성까지 동반한 진세가 일어나는 것이다.]

호기심!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렬한 호기심이 능천한의 가슴에서 피어 올랐다.

--- --- ---

일시에 능천한은 그 절곡의 외곽으로 이르렀다.

한데,

[...!]

막 지면으로 내려서던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살기(殺氣)!

강렬한 살기를 느낀 것이다.

그 순간,

--- --- !

전면의 바위 뒤에서 십여 줄기 혈영(血影)이 닥쳐 들었다.

그자들의 병장기가 섬뜻한 혈광을 토했다.

[혈영궁(血影宮)?]

능천한의 입에서 폭갈이 터지고,

--- --- !

벼락치듯이 한 무더기 강기가 쏟아졌다.

[! 수라탄천강(修羅彈天罡)!]

[...!]

혈영인들이 질겁을 하며 경악성을 토했다.

--- --- !

--- --- 르릉!

창창한 강기가 해일같이 쏟아져 혈인들을 쓸어내었다.

[--- --- !]

[--- --- !]

혈영인들이 피를 토하며 튕겨졌다.

[!]

능천한도 휘청하며 이삼 보 물러섰다.

힘을 쓰자 가슴과 어깨의 상처가 터진 것이었다.

(혈영궁(血影宮)의 마도들이 이미 와 있다니...)

능천한이 가슴을 누르며 눈을 빛냈다.

 

---혈영궁(血影宮).

 

마도의 일파로 수십 년 전부터 암암리에 세력을 넓혀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암중이었고,

최근에 이르러서 그 흉악한 발호가 맹렬해지고 있었다.

혈영궁도들에게는 인도(人道)가 없었다.

오로지 본능적이 탐욕과 마심(魔心)이 있을 뿐인 자들이었다.

[어느 놈이냐?]

[누워랏!]

--- !

파츠츠츠츳!

뒤미처 금영(金影)이 번뜩이며 노도같은 기세로 능천한을 뒤덮어왔다.

오인(五人)의 금포인이 벼락같이 능천한을 덮쳐왔다.

언뜻, 능천한은 그자들의 소매에 용()이 수놓아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능천한의 검미가 꿈틀하였다.

[통천방(通天幇)까지?]

--- 르르릉!

--- 츠츠츠!

그와 함께 능천한의 손에서 수백 수천 개의 강륜(罡輪)이 빗발치듯이 쏟아졌다.

패천대륜오절식의 만절환(萬絶幻)!

--- 가각!

[--- !]

[--- ...!]

비명과 함께 오인이 금포를 피에 물들이며 나뒹굴었다.

(통천방도들도... 저 진운(陣雲)을 발견했다는 말인데... 어떤 자가 저것이 진운인지 알아내었는가?)

스스스--- !

능천한은 눈을 빛내며 계곡으로 날아들어갔다.

 

<통천방(通天幇)>

 

정사 중도를 걷는 문파이다.

그다지 두드러진 활동을 하는 문파는 아니나 평소 패천황룡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 이유는,

통천방이 암중에 정사의 야심가들을 끝없이 포섭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러 통천방이 과연 얼마만한 세력을 지녔는지는 추측할 수 없다.

다만,

그 세력이 강대함이 소림이나 무당을 합친 것 만큼 강할 것이라고 짐작될 뿐!

그들의 방주는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야심이 큰 인물이다.

상고(上古)의 절전문파인 금룡궁(金龍宮)의 절기가 그의 일신에 있다.

 

--- 스슥!

[...!]

능천한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그곳은 제법 널찍한 계곡이었다.

한데,

계곡의 반대편은 짙은 운무로 뒤덮여 안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우르르르르--- !

--- 이잉!

뭉클뭉클 치솟은 운무!

그리고,

그 운무 중에서 은은히 울려 나오는 우뢰성!

[...!]

능천한은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운무가 일어나고 있는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한 명의 금포인(錦袍人)이 있었다.

화려한 비단 곤룡포를 걸친 인물인데 허리춤에 석 자 가량의 금장(金杖)을 차고 있었다.

금포인은 운무를 마주하고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혹시... 저자는...!)

능천한은 안색을 굳히며 금포인에게 다가갔다.

[...!]

갑자기 금포인의 몸이 움찔하였다.

능천한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으리라.

금포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순간,

--- ---

두 쌍의 시선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었다.

[...!]

[...!]

그자는 몹시 놀란 표정이 되었고,

능천한의 눈에서도 이채가 흘렀다.

그 인물은 중후한 인상인 초로의 중년인이었다.

머리에는 금관(金冠)을 썼고 있고 입고 있는 비단 장포에는 날아오르는 금룡(金龍)이 수놓아져 있었다.

(강적(强敵)...!)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그자가 철혈묵사에 못지않은 강자임을 느꼈다.

금포인은...

입술을 실룩이다가 입을 열었다.

[패천잠룡(覇天潛龍) 능천한(陵天漢)?]

그자의 목소리는 몹시 중후하였다.

[그렇소. 귀하는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맞다!]

--- --- !

금포인 통천금룡제가 대답과 함께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금장(金杖)을 뽑아 들었다.

우르르--- 르르!

츠츠츠--- !

일시에 사위가 찬연한 금광(金光)으로 뒤덮였다.

그 금광 중에서 은은한 금룡(金龍)의 형상이 일었다.

[... 금룡신장(金龍神杖)이군!]

능천한이 나직이 경탄성을 발하며 통천금룡제의 손에 들린 금장을 바라보았다.

 

---금룡신장(金龍神杖).

 

금룡궁(金龍宮)의 무상지보(無上至寶).

천병보 천병일천좌(天兵一天坐)의 서열십오위인 신병(神兵)이다.

금룡신공(金龍神功)을 익힌 자에게서만 위력이 나타난다.

,

금룡신공을 금룡신장에 주입하던 무상의 금룡통천강기(金龍通天罡氣)가 일어나는 것이다.

 

[본인과 귀하가 다투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능천한이 오른손을 왼쪽 소매에 집어넣으며 침중히 물었다.

그러자,

통천금룡제가 차갑게 대꾸했다.

[이유를 알려 하지마라. 네가 패천잠룡이기 때문에 본제의 손에 죽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능천한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 이제보니 벽향, 혈영군(血影君)이란 작자들과 한통속이었군!]

[크흐흐흐... 과연 영특하군!]

--- --- !

--- --- 우웅!

금룡신장에서 벼락치듯이 강기가 쏟아졌다.

금빛을 띄운 검인(劍刃)같이 예리한 강기였다.

--- 르르르---!

그 순간,

능천한의 신형이 십여 개로 흩어졌다.

--- --- !

금룡신장의 금룡통천강기가 여지없이 빗나가고.

[수라잔영보(修羅殘影步)... 네가 어떻게 수라천극존(修羅天極尊)의 무공을...]

통천금룡제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졌다.

[호기심이 많으신 분이군!]

--- --- !

--- 츠츠츠츳!

능천한의 냉갈 속에서 새파란 륜영(輪影)이 뇌전(雷電)같이 쏟아졌다.

륜영을 대한 통천금룡제는 사색이 되었다.

[... 패천신륜(覇天神輪)!]

그리고,

--- --- 우웅!

--- 르르르르릉!

통천금룡제는 사력을 다해 금룡통천강기를 내쳤다.

--- 쿠쿠쿵!

--- 르르르릉!

천지멸렬의 굉렬한 폭음!

새파란 페천신륜의 륜영에 부딪힌 금장(金杖)이 박살이 나서 부서져 나갔다.

[--- !]

--- --- !

그중에서 한 마디 답답한 신음이 터지고 통천금룡제의 신형이 까마득히 허공으로 치솟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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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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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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