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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十 三 章

 

                    억지 청혼(請婚)

 

 

 

[으음...]

되날아온 패천산륜을 받아든 능천한의 얼굴이 이지러졌다.

상처가 터지며 칼로 베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고소를 금치 못했다.

[후훗! 패천신륜(覇天神輪)이 무섭기는 무서운 모양이군!]

통천금룡제(通天金龍帝).

그는 그렇게 쉽사리 남에게 패할 인물이 아니다.

능천한이라도 통천금룡제와의 격돌 결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그만큼 그자의 무공이 높고 또 금룡신장의 위력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능천한은 가볍지 않은 중상을 입은 상태가 아닌가?

그럼에도 통천금룡제는 패천신륜의 현신에 놀라 달아난 것이다.

천지십병(天地十兵)!

오랜 세월 이어온 이 열 가지 신병의 위명은 무림인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심어준 것이다.

그때였다.

[흐흐흐흐...!]

돌연 한소리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능천한은 내심 가슴이 서늘해졌다.

(어떤 자이기에... 이토록 가까이 접근하도록 눈치를 채지 못하였는가?)

능천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

고개를 들던 능천한의 두눈이 놀람의 빛을 띄웠다.

허공(虛空)!

능천한의 머리 위쪽 허공에 한 명의 인물이 둥실 떠있었던 것이다.

(바로 머리 위에까지 접근하도록 몰랐다니...!)

능천한은 자책하며 허공에 뜬 그 인물을 주시하였다.

그 인물은 백포의 노인이었다.

안색이 백지장같이 하얗고 두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번뜩이는...

일견하기에도 음침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극음(極陰)의 기공을 익힌 노인이다!)

능천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백의노인의 일신에서 골수까지 스미는 한기가 일었기 때문이다.

[흐흐... 네놈 애송이가 패천잠룡(覇天潛龍)이렸다!]

노인이 강팍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노인장께서는?]

능천한은 내심 긴장하며 대답했다.

백의노인은 시퍼런 두눈을 희번뜩리며 그런 능천한을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적은 아니군. 음침하지만 살기는 없으니...)

능천한은 내심 긴장을 풀었다.

[클클... 과연 고금제일의 체질이다. 네 녀석의 씨를 받고 태어나는 아이는 능힌 일세패웅(一世覇雄)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백의노인이 까마귀 울음소리같은 목소리로 말하자,

능천한은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뻘개졌다.

[노공(老公)! 무슨 말씀이신지...]

괴노인은 거북살스런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노부에게는 예쁜 계집아이가 하나 있다.]

[...!]

[계집들 중에서는 능히 천하제일을 다툴만한 미모와 재질을 지닌 계집이지만...]

백의노인은 괴팍스런 시선을 능천한에게 던졌다.

영문을 모르는 능천한은 멍한 표정으로 괴노인을 올려다 볼 뿐이었다.

[클클... 계집이기에 의발을 전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 계집아이로 하여금 네 녀석의 씨를 받게 할 생각이다!]

[예엣?]

백의노인의 말에 능천한은 아연실색하였다.

백의노인은 능천한을 씨받이로 쓰겠다는 얘기다.

[... 노인장!]

[흐흐... 인상 쓰지 마라. 그 게집은 천하제일의 첩()이 될 것이니 네 녀석은 그 계집에게 아들이나 하나 낳게 해주면 된다!]

[...!]

능천한은 어이가 없어서 입만 딱 벌릴 뿐이었다.

노인은 품속에서 옥함을 하나 꺼내어 들었다.

[옛다. 이것은 예물이니 받아두어라.]

--- !

괴노인은 능천한에게 그 옥함을 던졌다.

[...!]

능천한은 본능적으로 손을 내밀어 옥함을 받아들었다.

[크흐흐흐흐... 네 녀석이 예물을 받았으니 이 혼인은 성사된 것이니라!]

--- --- !

[노인장!]

당황한 능천한은 다급히 불렀다.

그러나 괴노인은 허공에서 몸을 틀어 단번에 멀리 날아갔다.

[크크크... 자부(紫府)의 영화(英華)를 취하러 왔다가 대붕(大鵬)의 씨를 얻게 되었구나!]

--- --- !

괴이한 말을 남기며 괴노인은 신기루같이 사라져갔다.

(대단한 경공... 천극수라영(天極修羅影)의 아래가 아니다!)

능천한은 노인의 가공할 경공에 혀를 내저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가?]

능천한은 손에 들린 옥함을 내려다보았다.

[이것은...]

옥함을 내려다보던 능천한의 안색이 일변했다.

놀랍게도 옥함은 만년한옥(萬年寒玉)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만년한옥(萬年寒玉)!

백독을 몰아내고 항시 젊음을 지켜준다는 무상지보가 아닌가?

한데 그 만년한옥을 깎아 옥함을 만든 것이다.

[그 노인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능천한은 내심 놀라며 옥함을 열어보았다.

옥함 안에는 세 가지 물건이 있었다.

매미날개보다도 얇은 천으로 만든 얇은 내의(內衣).

만년한옥으로 깎아 만든 옥병.

눈같이 흰중에 거무스름한 무늬가 종횡으로 뒤엉킨 손바닥만한 옥부(玉府)가 그것이었다.

[이것은...!]

능천한은 흠칫하며 옥부(玉府)를 집어들었다.

(현기(玄機)가 있다!)

능천한은 두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옥부 위에 얼룩진 검은 무늬를 들여다보았다.

옥부(玉府).

그것은 살덩이만한 만년한옥을 깎아야 손바닥만큼 얻을 수 있다는 구유현음벽(九幽玄陰壁)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구유현음벽 위에 얼룩진 무늬에 어떤 현기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만큼 큰 구유현음벽은 천하에 단 하나... 북해 유령궁(幽靈宮) 외에는...)

능천한은 급히 옥부를 뒤집어 보았다.

[역시...!]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옥부의 뒤에는 네 개의 글자가 전자체(篆子體)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유령제종(幽靈諸宗)>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이것은 천 년을 내려온 일파의 종주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문파는 바로,...

 

북해(北海) 유령궁(幽靈宮).

 

[... 그 노인이 바로 현음유령종(玄陰幽靈宗)...!]

능천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하였다.

 

<현음유령종(玄陰幽靈宗)>

 

그는 바로 남북쌍괴(南北雙怪) 중 북괴(北怪)가 아닌가.

벽력태세(霹靂太歲)와 함께 백년 이전에 이미 무림을 떠났던 전대절정고수인...

그가 나타난 것이다.

능천한은 경이에 찬 시선으로 옥함에 든 세 가지 물건을 들여다보았다.

[이것들은 유령사대중보(幽靈四大重寶)의 세 가지가 아닌가?]

그는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본래 북해 유령중에는 네 가지 지보(至寶)가 있다.

이를 일컬어 유령사대중보(幽靈四大重寶)라 한다.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빙잠천의(氷蠶天衣).

 

이것이 유령사대중보다.

하나같이 무가의 지보들이다.

특히 유령제종령과 유령공비의 가치는 무한하다.

 

---유령제종령(幽靈諸宗令)!

 

이는 유령궁의 조사인 유령대제(幽靈大帝)의 신물이다.

이에는 유령대제의 일신무학이 모두 감추어져 있다.

그 때문에 유령제종령은 그 권위와 더하여 사대중보 중 으뜸이 되었다.

 

---유령명공비(幽靈冥空匕),

 

이는 유령대제의 부인이던 명후(冥后)의 호신지병(護身之兵)이고...

동시에 천병보(天兵譜) 천병제일천좌(天兵第一天坐)에 오른 무상신병이다.

그 서열은 무려 십이위(十二位).

고금을 통틀어 이를 능가하는 병기는 열한 가지 이상이 없다.

벽력일맥이 벽력굉천권(霹靂轟天拳)과 함께 공히 십이위인 초절신병...

 

---만년빙옥정(萬年氷玉精),

 

만년한옥을 태산만큼 한홉을 얻는다는 극음제일영약(極陰第一靈藥)이 이것이다.

그 공효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한 방울만 마셔도 백 년 공력을 얻고 아무리 어려운 극음기공이라도 속성할 수 있다.

그 뿐이 아니고, 아무리 강한 극독이라도 얼려버리고,

영원히 청춘을 지켜준다.

 

---빙잠천의(氷蠶天衣),

 

이는 두 벌로 되어 있다.

한 벌은 여인용이고 한 벌은 남자를 위한 것이다.

그것은 만년빙잠(萬年氷蠶)의 빙잠사를 뽑아 만들며,

입고 있으면 화산이 터지는 정도의 충격과 압력으로부터 몸을 보호해준다.

빙잠천의는 유령대제(幽靈大帝)와 명후(冥后)가 쓰던 것이다.

[이 귀한 것들을... 서슴없이 주고 가다니...!]

능천한은 곤혹스런 표정이 되었다.

 

---천하패웅이 될 아이 하나만 유령궁에 주면 된다.

 

능천한은 현음유령종이 말한 의미를 되새기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륜대사를 어찌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가? 다시 만나면 돌려주리라!]

능천한은 옥함을 닫아 품속에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운무로 뒤덮인 절곡의 후면으로 다가갔다.

우르르르르--- ...!

은은한 우뢰성을 동반한 운무,

그것은 너무 짙어 도저히 그 안쪽을 살펴볼 수가 없었다.

능천한은 통천금룡제가 서 있던 곳에 멈추어 서서 진세를 바라보았다.

그는 만박통지의 기재(奇才)!

기문진학에 대한 그의 지식도 천하를 통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다.

[대단한 진세다!]

이내 능천한의 눈에서 신광이 흘렀다.

[오행(五行)의 상극(相剋)에 의해 운무와 우뢰(雨雷)의 변화가 일어나고 상생(相生)의 묘결로 예측할 수 없는 대변수로 찾았다!]

그의 신색은 더욱더 침중해져 갔다.

[오행뿐이 아니고 사상(四象)의 근원이 진중에 있고 육합(六合)의 광활함과 팔괘(八卦) 구궁(九宮)의 복잡한 변화가 그중에 가미되었다.]

능천한의 두 눈은 휘황하게 빛을 토하며 진세를 훑어나갔다.

그 진세는 능천한이 이제껏 접해보지 못한 난해한 진형이었다.

만상(萬象)의 이치가 그곳에 있고 만류(萬流)의 흐름이 그에 더하여 있었다.

능천한도 일시지간에 진세의 실체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 진세는 최근에 이루어졌다. 어느 누가 이런 진세를 설치했는가?)

그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갔다.

(이 정도의 진세를 펼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천하를 털어 손을 꼽을 정도다.)

능천한은 뇌리에 비장된 수 많은 기문 진세들을 떠올렸다.

상고(上古)이래 천하에 나타났던 수많은 진세들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군!]

능천한은 문득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안색이 이내 밝아졌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진세의 내력을 기억해 낸 것이다.

[이것이 절전된 만상문(萬像門)의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이다!]

능천한은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만상천류대진(萬像天流大陣).

 

팔백 년 전,

천향염후(天香艶后)라는 고금제일여고수(古今第一女高手)에 의해 절문당한 문파가 있다.

만절문(萬絶門)이라는 문파로...

그들의 기문진학은 자부(紫府)일맥과 쌍벽을 이루었다.

만상천류대진은 바로 만천문에서 흘러나온 절진이다.

[사문(死門)이 철저한 변()과 환()에 숨겨진 극변(極變)의 절진...!]

능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진세의 이치를 알면 어렵기는 하나 통과할 수는 없다.]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신중한 발걸음으로 잔중에 들어섰다.

우르르르--- !

--- 이이잉!

그가 진중으로 들어서자,

거센 폭풍과 우뢰성이 그를 강타했다.

그와 함께

[크크크크... !]

[우희희희희...!]

섬뜩한 악귀들의 환상이 운무중에서 피어올랐다.

그것들은 금방이라도 능천한을 뒤덮쳐 올 듯이 섬뜩한 기세로 일어났고,

--- 르르릉!

--- --- --- !

해일이 일고 광풍폭우의 환상이 능천한을 뒤덮었다.

그러나,

[좌삼(左三) 우이(右二) 전일(前一) 퇴오보...!]

능천한은 육중한 바위가 움직이듯이 침착하게 만상천류대진을 뚫고 나갔다.

천지이교(天地二交)가 타통된 그다.

그저 단순한 환상에 흔들릴 까닭이 없다.

능천한의 걸음걸이는 점차 빨라졌다.

()은 변()으로,

급변(急變)은 쾌변(快變)으로 파해한걸까?

스스스스슥!

능천한은 행운유수로 진중을 지났다.

[...!]

문득 능천한의 발길이 멈추어졌다.

이미 진세의 팔할을 지나온 상태였다.

그러나 능천한의 얼굴은 극히 심각해졌다.

그는 뚫어져라 전면을 쏘아 보았다.

(이할 정도 되는 이 마지막 관문에 만상천류대진의 진정한 위력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진정한 어려움이 그 앞에 닥친 것이다.

[이 진세로 뚫거나 설치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자부(紫府)의 자부노조(紫府老祖) 쌍극천효(雙極天梟), 청허현도존(靑虛玄道尊), 취존개(醉尊)... 그외에는 달리 생각할 인물이 없다.]

능천한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 웬 피()...!]

그러던 중 능천한의 눈길이 번쩍 빛났다.

그가 서 있는 곳에서 일 자 정도 우측에 한 사발은 됨직한 혈흔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능천한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하루이전에 흘린 선혈이다... 어쩌면 이 진세를 구축한 인물이 토한 것인지도...!]

능천한은 혈흔을 손으로 찍어 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 패천잠룡(覇天潛龍)이신... ?]

한소리 미약한 음성이 능천한의 귀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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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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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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