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7. 09:41 와룡강의 작업실/대도전능(大盜全能)
[대도전능] 13화 아홉마리 용을 삼키다.
13화
아홉 마리 용(龍)을 삼키다.
온고당에 손님이 끊겼다.
귀엽고 발랄한 분이가 호객을 안하는 탓이다.
해하촌에 놀러온 외지인들은 어둑하고 침침한 가게 안을 기웃거리다가 지나간다.
가게 안쪽 응접실에서는 천불투가 탁자 앞에 앉아서 원숭이 조각들을 닦고 있다.
천불투의 손에 들려진 천은 원숭이 조각의 같은 곳만 닦고 있다.
집중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어지럽구나. 뭔가 사달이 날 것같은 예감을 떨칠 수 없고...)
천불투는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 없이 불안감이 밀려온다.
이런 기분은 십오 년 전의 어떤 일을 겪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다.
(철두 녀석이 부운이를 데려간 것과 관련 있겠구나.)
천불투가 심란해진 원인을 생각할 때였다.
“용... 용이 나타났어!”
“모두 아홉 마리야!”
가게 밖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아홉 마리의 용이 나타났다?)
천불투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일어났다.
가게 밖에서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있다.
(설마!)
천불투는 급히 온고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
안채에서 저녁을 준비하던 온유향도 놀라 밖을 내다보았다.
“진... 진짜 용이야!”
“검은 용이 나타났어! 그것도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천불투가 온고당을 뛰쳐나와 보니 오가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쪽을 가리키며 외치고 있었다.
물론 폐가가 있는 언덕 쪽이었다.
펑! 퍼펑!
시커먼 용들이 폐가의 지붕을 뚫고 나와 꿈틀거리고 있다.
어느덧 아홉 마리 검은 용들은 몇 아름 굵기에 지붕 밖으로 빠져나온 부분만 삼, 사장이 될 정도로 거대해져 있다.
(저건 세상에 나타나면 안되는 존재다!)
천불투는 단박에 검은 용들의 위험성을 알아보았다.
정체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는 존재임은 오랜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
또 검은 용들이 난동을 부리고 있는 현장에 외손자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직감했다.
(제발 할애비가 도착할 때까지 버티거라!)
화악!
천불투는 쏘아진 폭죽처럼 치솟아 언덕 위를 향해 날아갔다.
“온... 온고당의 조영감이...”
“하... 하늘을 날았어! 조영감은 무림인이었던 거야!”
사람들이 기겁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자신이 무림인이라는 사실이 들통 나는 것보다 외손자의 안위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
크와아앙! 카아!
검은 용들은 폐가의 천장과 지붕을 뚫고 드나들며 난동을 부렸다.
그 바람에 부서진 크고 작은 나무 조각들이 폐가 안쪽으로 쏟아져 내렸다.
퍼퍽! 퍽!
나무 조각들이 웅크리고 있는 분이와 철두, 정칠의 몸을 때렸다.
아이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무릎을 꿇은 채 웅크리고 있는 부운의 몸도 천장과 지붕에서 쏟아지는 파편들에 강타당하고 있었다.
부운은 고통을 참으며 아홉 마리 용들이 자신의 몸으로 파고 들어와 난동을 부리던 경로를 확인했다.
의심의 여지도 없이 용들이 몸속을 누비고 다니던 경로가 일종의 내공심법이었다.
“악!”
그때 정칠이 지르는 비명이 들렸다.
돌아보니 상당히 큰 석가래 파편이 정칠의 한쪽 다리에 걸쳐져 있다.
수백 근은 나갈 그 파편에 맞아 정칠은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던 정칠은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늦었다.
번쩍! 번쩍!
검은 용들이 일제히 정칠을 돌아보았다.
크와앙! 카아!
그리고는 해일처럼 정칠과 아이들을 향해 쏟아져 내려왔다.
더는 시간이 없다.
위치가 들킨 이상 아이들은 검은 용에 의해 소멸당하고 말 것이다.
“여기다!”
부운은 벌떡 일어나며 고함을 질렀다.
정칠과 아이들을 노리고 내리꽂히던 검은 용들이 홱 방향을 틀었다.
(안돼 오빠!)
(부운이 저 새끼가 설마 자신을 희생하려고...)
분이와 아이들이 기겁하며 돌아볼 때였다.
“오라! 내가 여기 있다!”
빠지지직!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치는 부운의 몸이 벼락에 휘감겼다. 몸속으로 파고 든 용들이 난동을 부리던 경로대로 내공을 운용하자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카아! 카앙!
아홉 마리의 검은 용들이 부운에게 돌진해왔다.
“크아!”
부운도 입을 딱 벌리며 고함을 질렀다.
쿠오오오!
한껏 벌린 부운의 입 안에서 맹렬한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쾅! 투쾅!
직후 아홉 마리 검은 용들이 부운의 얼굴을 강타했다.
***
빠각!
멀쩡하던 접시가 둘로 쪼개졌다.
“아...”
온유향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토했다. 혀가 잘려서 말은 못해도 비명이나 신음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저절로 나온다.
저녁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접시가 쪼개졌다.
(무슨...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부운이에게...?)
쪼개진 접시를 든 온유향의 손이 저절로 떨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용들이 사라지고 있어!”
“전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어.”
“저게 무슨 조화지?”
온고당 밖에서 일어나는 소란이 주전자 속의 물이 끓듯 한다.
(언덕 위 폐가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났고... 의부(義父)님이 그것 때문에 나가신 것 같은데...)
온유향은 보이지 않는 눈으로 온고당 입구쪽을 돌아보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예민해진 귀로 천불투가 폐가를 향해 날아간 걸 알고 있었다.
오대신투 중 한명인 천불투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부운이를 지켜줄 것이다.
그걸 믿으면서도 온유향의 마음은 불 속에 던져진 마른 검불 같았다.
속은 타들어가지만 앞이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이 박복한 계집의 아들을 보우하여주시옵소서!)
쪼개진 접시를 내려놓은 온유향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원했다.
****
분이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른 부운을 향해 검은 용들이 쇄도했다.
검은 용들에 부딪히면 부운의 몸뚱이는 쥐들이나 폐가 안의 기물들처럼 연기가 되어 흩어질 것이다.
그랬는데 딱 벌린 부운의 입 앞쪽에서 맹렬한 소용돌이 같은 것이 형성되었다.
콰콰콰! 고고고!
검은 용들은 그 소용돌이 같은 것에 닿는 순간 확 줄어들고 뒤틀리며 부운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한 아름이 넘는 굵기의 용들이 손가락 보다 가늘게 압축되고 꼬이며 부운의 입속으로 사라진다.
“저... 저...”
정칠과 철두도 찢어져라 눈을 치뜬 채 입을 뻥끗거리기만 했다.
콰드드! 고오오!
삽시에 아홉 마리 검은 용들은 압축되어 부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운이 어떻게 거대하고 치명적인 용을 아홉 마리나 삼킬 수 있었는지 아이들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츠츠츠! 스스스!
여전히 하나로 뭉쳐져 있던 검은 용들의 꼬리 부분까지 부운에게 삼켜졌다.
텅!
검은 용들이 완전히 빠져 냐간 빈 향로가 바닥에 뒹굴었다.
그와 함께 소용돌이에 가려져 있던 부운의 얼굴이 드러났다.
입을 딱 벌린 채 눈을 까뒤집은 모습인데. 입 안쪽에서는 소용돌이가 일어나며 연기도 뿜어진다.
“부... 부운오빠!”
분이가 안도하며 환호하며 발딱 일어났다.
(닿는 건 무엇이든 소멸시키는 검은 용들을 어떻게 삼켜버린 건가?)
다리가 부러진 정칠도 끔찍한 통증조차 잊은 채 부운을 보았다.
그때였다.
스륵!
눈을 까뒤집고 있던 부운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악!”
분이가 비명을 지르며 부운에게 달려갔다.
텅!
부운은 통나무처럼 뻣뻣해진 채로 나뒹굴었다.
(부운 저 새끼, 죽은 건가?)
(그 무서운 검은 용들을 삼키고도 무사할 리 없지.)
정칠과 철두도 놀라서 부운에게 기어가려 했다..
“오빠! 정신 차려!”
부운에게 달려간 분이가 울부짖으며 부운을 끌어안으려 할 때였다.
“건드리지 마라!”
콱!
옆에서 나타난 누군가의 손이 분이의 손목을 잡아 저지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쿠오오!
돌풍을 일으키며 나타난 그 인물은 천불투였다. 변고를 알아차리고 날아온 그가 도착한 것이다.
“할아버지!”
천불투를 알아본 분이가 안도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부운의 외조부 조영감!)
(저 영감탱이도 무공을 감춘 고수였구나.)
부러진 다리 때문에 주저앉아있는 정칠과 비틀거리며 일어나던 철두도 놀랐다.
해하촌 사람들은 천불투가 무림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부운이 무공을 지닌 걸 알고 있던 정칠과 철두도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내막인지 말해봐라.”
천불투는 분이의 손을 놓으며 부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게... 그게...”
분이는 우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정칠! 분이 대신 네가 상황 설명을 해봐라.”
천불투는 깡마른 손을 펼쳐서 부운의 얼굴을 겨누며 정칠에게 말했다.
“오... 오늘 아침에 성내에서 정영감을 도와 과일 좌판을 하고 있었는데...”
“요점만 간단하게!”
지잉!
부운의 얼굴을 겨눈 손바닥을 진동시키며 천불투가 짧게 말했다. 그는 정신을 잃은 외손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부운이가 독천존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정칠이 급히 말했다.
“독천존? 무림칠절 중의 독절인 그 독천존을 털었다?”
천불투가 놀라서 정칠을 돌아보았다.
“예...”
정칠이 천불투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쯧쯧! 그렇게 무모한 짓을...”
천불투는 기가 막혀 혀를 찼다.
독천존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모르는 무림인은 없다.
무림맹 맹주 사자천존이나 천마련 련주 철면마존에게는 죄를 지어도 독천존에게는 절대 거스르지 말라는 것이 무림들 사이에 통하는 묵계(默契)였다.
한데 부운은 그 독천존의 주머니를 털었다는 것이다.
천불투로서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외손자가 왜 독천존을 노렸는지 이해가 갔다. 도척제전에서 우승하기 위해 독천존의 신물을 손에 넣으려 했을 것이다.
“제... 제 잘못이에요. 부운오빠는 만지지 말라고 했는데... 제가 그만 향로를 열어 버렸어요.”
부운 옆에 주저앉은 분이가 울며 말했다.
“향로?”
천불투는 바닥에 뒹굴고 있는 빈 향로를 돌아보았다.
“저 향로의 뚜껑을 열자 안에서 시커먼 용들이 튀어나와서 우릴 죽이려고 했어요. 그러자 부운오빠가 우릴 살리려고 그 검은 용들을 들이마신 거예요.”
분이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천불투는 부운이 정신을 잃은 이유를 알아차렸다. 부운은 삼키지 말아야할 것을 삼켜버린 상태였다.
“독천존의 물건은 일절 남기지 말고 챙겨라. 부운이를 구할 수 있는 단서가 그중에 있을지 모르니...”
천불투는 부운의 상태를 살피는 데 집중하며 말했다.
“예...”
분이는 엉금 엉금 기어가 빈 향로와 뚜껑을 챙겼다.
철두도 서둘러 탁자로 다가가 그 위에 늘어놓았던 물건들을 살천독낭에 쓸어담았다.
(부운이의 상태가 이상하다. 죽지는 않았는데 몸속에서 이질적이며 무시무시한 힘이 요동치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내공을 써서 부운의 상태를 점검하던 천불투의 늙은 얼굴이 당혹과 의혹으로 물들었다.
향로에 봉인되어 있었다는 아홉 마리 용을 삼킨 게 부운이 정신을 잃은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검은 용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천불투로서도 짐작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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