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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2.04 [무림칠보] 제 5장 난감한 명령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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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난감한 명령

 

 

 

검의 서슬(날카로운 기운)을 검 밖으로 확장시킨 것이 검기다.

검기를 일으킬 수 있으면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적을 벨 수 있다.

물론 검법을 수련했다고 누구나 검기를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검과 한 몸이 되는, 검신합일(劍身合一)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가능하다.

그 검기를 극한까지 응축시키면 검강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날카로운 검기의 결정체인지라 검강에 베어지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호신강기이든, 단단하기로 소문난 한철(寒鐵)이든 검강을 막지 못한다.

심지어 귀신이나 혼백도 벨 수 있다고 한다.

능풍운은 흑룡선단의 해적들이 하나같이 일격에 몰살당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자들 중 누구도 흑의여인이 발휘한 검강을 막지도 피하지도 못했다.

하물며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능풍이다. 검강에 스치면 간단히 토막 쳐질 것이다.

절체절명!

말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너는....]

갑자기 흑의여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같은 외침을 터뜨렸다.

운기조식 하던 그녀는 누군가 다가오자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었다.

한데 검강을 뽑아낸 검으로 그자의 목을 치려던 흑의여인은 아연실색했다.

상대가 무공을 전혀 모르는 소년이어서가 아니었다.

소년의 얼굴은 흑의여인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어떤 인물을 빼닮았다. 그 인물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상사병까지 앓았었다.

흑의여인이 능풍운의 얼굴을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이유였다.

(안돼!)

흑의여인은 검에 주입했던 내공을 사력을 다해 거두어 들였다.

츠읏!

그러자 검 끝에서 이장 넘게 뻗어 나왔던 검강이 눈 녹듯 사라졌다.

퍼억!

직후 검은 흑의여인의 손에서 빠져나와 한쪽 선실 벽에 꽂혔다. 내공을 억지로 거두자 경맥이 강한 충격을 받았으며 그 바람에 손아귀에서 힘이 빠진 것이다.

[컥....]

검을 놓친 흑의여인은 단말마같은 비명을 토하며 뒤로 넘어졌다.

[아주머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긴 능풍운은 깜짝 놀라 침대로 달려갔다.

[끄윽...]

침대에 널브러진 흑의여인은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다. 검은색 저고리 속에서는 한 쌍의 푸짐한 살덩이가 갓 쑨 묵처럼 요동을 친다.

얼굴을 가린 면사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흑의여인은 성치 않은 몸 상태에서 내공을 억지로 역류시켰다. 그 충격으로 인해 경맥이 여러 곳 손상되며 내상을 입고 말았다.

침대로 달려간 능풍운이 급히 흑의여인을 부축하려할 때였다.

[내... 내 몸에 손대지 마라.]

흑의여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괜... 괜찮으신지요?]

능풍운은 움찔하며 손을 거두었다.

[물, 물러서라.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흑의여인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검은 옷에 감싸인 풍만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으며 얼굴을 가린 면사 아래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말과 달리 그녀의 몸 상태는 결코 괜찮지 않았다.

(진... 진기가 흩어지는 바람에 겨우 억눌러놨던 최음제(催淫劑)의 독성이 폭주하고 있다.)

흑의여인의 눈꼬리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먼 거리를 쉬지 않고 달린 것처럼 숨은 거칠며 면사 위로 드러난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사실 흑의여인은 강렬한 최음제에 중독당한 상태였다.

그녀에게 최음제를 쓴 자는 선실 입구에 죽어있는 음침한 인상의 서생이었다.

 

-음양수재(陰陽秀才)!

 

흑룡선단 단주 독안용왕의 오른팔이다.

박식하고 꾀가 많아 흑룡선단의 군사 역할을 맡고 있는 그자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한 가지 있었다.

지나치게 색을 밝힌다는 게 그것이었다.

음양수재는 어떤 여자든 일단 회가 동하면 기어코 욕심을 채우곤 했다. 상대가 유부녀이든 처녀든 가리지 않고 범했다.

비구니나 여자도사라도 거리낌 없이 욕정의 제물로 삼았다.

음양수재에게 신세를 망친 여자는 수를 헤아리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많았다.

그러던 차에 대단한 명성과 미모의 소유자인 흑의여인이 남해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흑의여인을 범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흑의여인의 무공이 대단해서 일단 무력화시키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결국 함정에 빠진 흑의여인은 상당량의 최음제를 복용하고 말았다.

음양수재가 쓴 최음제는 독성이 강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단 중독당하면 욕화에 휩싸여 이성을 완전히 잃는다. 오직 욕정의 해소에만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흑의여인이 최음제를 복용한 사실을 확인한 음양수재는 본색을 드러냈다. 저항력을 상실한 그녀를 겁탈해서 욕심을 채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능풍운이 본 대로였다.

음양수재는 물론이고 그 자가 이끌고 해적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최음제에 중독되어 제 정신이 아니었음에도 흑의여인은 배안의 모든 인간들을 몰살시켜버렸던 것이다.

음양수재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결말이었다.

 

(틀... 틀렸다!)

흑의여인은 절망했다.

비록 음양수재가 쓴 최음제의 독성이 지독하긴 했어도 해소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심후하기 이를 데 없는 내공으로 최음제의 독성을 조금씩 태워버리면 되었었다.

대략 한 시진쯤 지났으면 완전히 최음제의 독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내공을 역류시키는 과정에서 입은 내상으로 인해 최음제의 독성을 제어할 수 없게 된 때문이다.

욕정이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온몸으로 퍼져간다. 펄펄 끓는 기름을 삼킨 듯 몸속이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지고 정신은 아득해져갔다.

사내!

욕정을 해소시켜줄 사내만이 필요할 뿐이다.

이대로 가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발정 난 짐승처럼 아무 사내에게나 마구 몸을 내돌리게 될 것이다.

[어디가 불편한지 말씀해주십시오.]

흑의여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알아차린 능풍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러가라고 했다.]

흑의여인은 버럭 고함을 질렀다.

능풍운의 몸에서 느껴지는 수컷의 냄새가 그렇잖아도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의 불길에 부채질을 한다.

능풍운은 움찔하며 물러섰다. 노려보는 흑의여인의 눈에 핏발이 서있어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전 그저 아주머니를 돕고 싶었을 뿐입니다.]

능풍운은 흑의여인의 눈치를 보며 뒷걸음질을 쳤다.

[도움이 필요치 않으시다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능풍운은 흑의여인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돌아섰다.

그때였다.

[기, 기다려라!]

흑의여인의 급히 불러 세웠다.

[분부하실 일이 있으신지요?]

선실을 나가려던 능풍운은 흑의여인을 돌아보았다.

(닮았어. 그 무정한 사내와 정말 닮았어.)

초점이 사라진 눈으로 능풍운을 훑어보는 흑의여인의 숨결이 가빠졌다.

아무리 봐도 눈앞의 애송이는 자신으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했던 어떤 사내를 빼닮았다.

몇 년만 더 지나면 능풍운은 그 사내의 판박이가 될 것이다.

[이름... 이름이 무엇이냐?]

흑의여인은 달뜬 목소리로 물었다.

[능풍운이라고 합니다.]

[능.... 능씨란 말이지?]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흑의여인의 풍만한 몸에 세찬 전율이 치달렸다. 애송이는 그녀의 애를 태웠던 사내를 닮았을 뿐 아니라 성도 같았다.

(틀림없다. 저놈은 그 사람의 아들이다. 어떤 사연으로 일초무학인 채 남해에서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흑의여인은 능풍운의 정체를 확신했다. 피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저렇게 닮을 수는 없다.

능풍운이 자신으로 하여금 상사병을 앓게 했던 사내의 아들이라 생각하자 안도감과 망설임이 함께 밀려들었다.

(생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 사람의 아들이라면 몸을 허락할 수도... 아니야! 어떻게 그 사람의 아들과 그런 짓을...)

흑의여인은 격렬한 갈등에 휩싸였다.

제어가 불가능해진 욕정을 해소하려면 사내에게 몸을 맡겨야만 한다.

그렇다고 아무 사내에게나 몸을 여는 건 흑의여인의 고고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길거리 창녀 신세가 될 바에는 죽어버리는 게 좋다.

그랬는데 능풍운이 자신과 깊은 인연이 있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 때 사모했던 사내를 빼닮은 소년에게라면 몸을 허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어떻게 짝 사랑했던 사내의 아들과 그 짓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흑의여인의 갈등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몸 상태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깊은 곳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리고 머릿속은 오직 욕정을 해소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이대로 정신을 잃으면 무슨 추태를 부리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흑의여인은 이성이 남아있을 때 결단을 내렸다.

[정말, 나를 도와주겠느냐?]

이미 초점이 사라지고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능풍운을 보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제 능력이 닿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능풍운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먹이처럼 훑어보는 흑의여인의 시선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몇, 몇 살이냐?]

흑의여인은 헐떡이며 다시 물었다.

[열여섯 살입니다만....]

흑의여인이 갑자기 나이를 묻자 능풍운은 의아해하면서도 숨김없이 대답했다.

[열여섯... 겨우 열여섯살이란 말이지?]

능풍운의 나이를 안 흑의여인은 당혹이 서린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능풍운이 건장한 체격과 달리 아직 어리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열여덟 살 쯤은 되었을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무려 두 살이나 더 어리다.

(내가 살자고 아들, 아니 손자뻘인 저 아이에게 몸을 허락해도 되는 걸까?)

흑의여인은 다시 한 번 갈등에 휩싸였다.

사실 그녀는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다. 오십을 넘긴지도 몇 년이나 지났다. 만일 평범한 인생이었다면 능풍운 정도의 손자를 봤을 수도 있다.

헌데 얄궂은 운명의 장난으로 손자뻘인 소년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번의 갈등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어느덧 욕정은 그녀의 조금 남은 이성마저 태워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능풍운에게 몸을 허락해야하는 상황이 닥칠 것이다.

[날 도와줄 마음이 변치 않았다면... 천지신명께 맹세해라. 날 돕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흑의여인은 충혈된 눈으로 능풍운을 훑어보며 말했다.

그녀의 뜻밖의 요구에 능풍운은 움찔했다.

도와주려는데 설마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요구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다.

[소생 능풍운은 부인을 위해 어떤 짓이든 할 것을 하늘과 땅에 계신 여러 신명께 맹세합니다.]

능풍운은 엄숙하게 맹세했다.

[지금의 그 맹세... 잊지 마라.]

능풍운의 맹세를 들은 흑의여인은 안도하며 침대에 반듯하게 누웠다.

그리고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내가... 명령하겠다. 이리 와서... 나를 범해라.]

[뭐, 뭐라고요?]

능풍운의 입에서 비명같은 신음이 터져나온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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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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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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