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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기인의 선물

 

 

-낭왕 혁련사!

 

음산(陰山)과 관외(關外) 일대에서 패자로 군림해온 인물이다.

늑대의 왕이라는 별호답게 그는 수천 마리의 늑대를 수족처럼 부린다.

게다가 늑대의 무리와 섞여 살며 독특한 무공을 창안하여 일문(一門)을 이루었다.

천랑마검은 바로 그 낭왕 혁련사의 제자였다.

물론 그자가 자랑하는 천랑십이식도 낭왕 혁련사가 창안한 검법이다.

무림인들이 천랑마검을 꺼려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가 낭왕 혁련사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쯧쯧, 혁련사, 그 덜 떨어진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애송이를 무림에 내보냈군.]

마의노인은 천랑마검을 흘겨보며 혀를 찼다.

마의노인은 관외 무림의 패자인 낭왕 혁련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욕했다.

그러나 마의노인이 스승을 욕하는 데에도 천랑마검은 찍소리도 못냈다.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천랑마검의 그같은 모습이 능풍운을 더욱 더 궁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노인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기에 저 작자는 스승이 욕을 먹어도 억지웃음만 짓고 있단 말인가?)

능풍운은 새삼 마의노인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의노인은 평범한 촌노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의노인의 눈동자가 녹색을 띠고 있다는 정도였다.

[하... 하교가 없으시다면 후배는 이만....]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굳이 더 잡지는 않으마.]

마의노인은 곰방대의 재를 능풍운의 뱃전에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감사합니다.]

안도한 찬랑마검은 급히 마의노인에게 포권을 한 후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너를 그냥 보내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그때 마의노인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안도하던 천랑마검의 얼굴이 단번에 사색으로 질렸다.

[노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어린놈들의 잡기를 재롱삼아 구경하는 게 그것이다.]

마의노인은 근처 어선의 뱃전에 걸터으며 말했다.

(휴... 난 또 뭐라고!)

천랑마검은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이 무서운 노독물(老毒物)은 자기보고 천랑일문(天狼一門)의 독문 검법 천랑십이식을 한 번 펼쳐 보이라는 것이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천랑마검으로서는 지옥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그럼 미거하나마 노야의 높으신 안목에 폐를 끼치겠습니다.]

천랑마검은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두 팔을 내려뜨렸다.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덮치려는 듯한 자세였다.

그 자세야말로 천랑십이식의 기수식인 아랑출림세(餓狼出林勢)였다.

[....]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천랑마검을 주시했다.

[카앗!]

다음 순간 천랑마검의 입에서 늑대가 울부짓는 듯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쉬학! 파츠츠...

뒤이어 시퍼런 검광(劍光)이 사위를 휘감았다.

섬뜩한 섬광과 날카로운 예기가 빗발치듯 아침하늘을 그어갔다.

천랑마검의 발검(拔劍)은 너무나도 빨라서 언제 검을 뽑아 검법을 시전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노야!]

스-윽!

그러던 어느 순간 검기가 싹 가시며 천랑마검의 모습은 삽시에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랑십이식을 모두 펼쳐 보인 후 떠난 것이다.

괜히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의노인이 또 어떤 명령을 내릴지 모른다.

(저것이 무공이란 것이구나!)

능풍운은 멍한 표정인 채 천랑마검이 검법을 펼치던 곳을 보고 있었다.

[모두 몇 가지 변화를 보았느냐?]

그런 능풍운에게 마의노인이 불쑥 물었다.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열 두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아홉 개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놈 봐라? 기껏해야 천랑십이식중 삼사식 정도밖에 못 볼 줄 알았는데...)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마의노인의 노안에 놀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역시 노부의 눈이 정확했다. 이놈은 백 년 내 다시없을 천부지재(天賦之才)다!)

능풍운의 빼어난 재질을 확인한 마의노인은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잘만 다듬으면 철혈대제(鐵血大帝) 능무벽(陵無壁)에 못지않은 거목이 되겠구나!)

마의노인은 내심의 흥분을 숨기며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능풍운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름은 풍운이라 하고 성은 능가입니다.]

[능풍운이라....]

마의노인은 능풍운의 이름을 되뇌이며 왠지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능무벽, 그 괴물과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마의노인은 눈을 가늘게 뜨며 능풍운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아비의 이름은 무엇이냐?]

마의노인이 다시 물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이상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능초(陵超)라는 분이신데 제가 어렸을 때 괴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노부가 잘못 보았는가?)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마의노인은 눈가에 실망의 빛이 스쳤다.

(하긴 능가 괴물이 살아 있다면 이미 팔순을 넘었을 테니 이렇게 어린 아들놈을 두었을 리가 없겠지!)

염두를 굴린 노인은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꽤 귀찮게 굴었지?]

[아닙니다.]

[허허허, 마음에 없는 소리할 것 없다. 예쁜 계집이라면 몰라도 노부같은 늙은이와 노닥거려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마의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노부는 갈황(葛煌)이라는 늙은이다. 어린 것들은 노부를 노독물(老毒物), 또는 천독노조(千毒老祖)라 부르며 상종하지도 않으려 하지.]

마의노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지만 그 노인의 이름을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그 즉시 아랫도리를 적시며 달아날 것이다

 

-천독노조 갈황!

 

무림인들에게는 염라대왕이나 다름없는 공포의 대상이다.

나이 이미 이갑자(二甲子)를 넘긴 그는 천독곡(千毒谷)이란 문파의 주인이기도 하다.

무림에 적을 둔 인생치고 천독노조를 모르는 자는 없다.

그럼에도 천독노조의 출신내력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저 전설 속의 고금제일독종(古今第一毒宗) 만독조종(萬毒祖宗)의 진전을 잇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다.

천독노조는 마음만 먹으면 중원의 무림인 모두를 독살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독 다루는 재주, 용독술(用毒術)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용독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천독노조의 독공(毒功)이다.

천독노조는 백년 넘는 세월 동안 맹독을 상식(常食)하며 독공을 쌓아왔다. 그 결과 숨결만으로도 십리내의 생명체를 몰살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가히 독(毒)의 제왕(帝王)이라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 바로 천독노조다.

만일 천독노조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무림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천독노조에게는 그런 야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천독곡에 칩거한 채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

그 무서운 독의 제왕이 이 한적한 어촌에 홀연히 나타난 것이다.

 

(아깝구나 아까워. 무림칠보의 출토가 임박하지만 않았어도 이놈을 제자로 삼아서 물건으로 만들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천독노조는 능풍운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일가를 이룬 인물들의 가장 큰 소망은 뛰어난 후계자를 얻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바친 성취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천독노조도 예외가 아니다. 천고의 기재인 능풍운을 후계자로 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아쉽고도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선물을 주마.]

천독노조는 아쉬움을 달래며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노야.]

능풍운이 난색을 표할 때 천독노조는 품속에서 한 장의 죽편(竹片)을 꺼냈다. 폭이 두 치, 길이 한자 정도의 죽편인데 오래된 물건인 듯 반질반질 윤이 나고 있다.

[사양하지 말고 받아둬라.]

천독노조는 죽편을 능풍운에게 내밀었다.

[노부의 신물이니 곤란한 일이 있으면 아무나 붙잡고 보여 주거라. 그러면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능풍운은 천독노조가 내민 죽편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값이 나가거나 진귀해 보이는 물건이라면 사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저 대나무 조각이라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능풍운은 받아든 죽편을 살펴보았다.

죽편 앞면에는 곰방대를 물고 있는 늙은 노인의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노인은 어딘지 모르게 천독노조와 닮은 인상이었다.

하지만 죽편 위의 그림은 한 눈에 보기에도 오래 전에 새겨진 것이다. 천독노조의 모습일 수는 없었다.

앞쪽의 그림을 살펴본 능풍운은 죽편을 뒤집어보았다.

죽편의 뒷면에는 여러 가지 색의 얼룩이 찍혀 있었다. 적(赤), 황(黃), 흑(黑), 자(紫) 등의 색이 뒤섞인 얼룩이다.

(이런 대나무 조각이 무슨 신묘한 능력을 지녔단 말인가?)

능풍운은 죽편을 살펴보며 내심 고소를 지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천독노조에게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노야! 긴요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고맙기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천독노조는 곰방대를 뱃전에 탁탁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능풍운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살펴 가십시오.]

능풍운은 천독노조의 등 뒤에 대고 다시 한 번 포권을 했다.

하지만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광세의 기연을 만났다는 것을...!

 

<독성죽결(毒聖竹訣)>

 

천독노조가 능풍운에게 준 낡은 대나무 조각의 이름이다.

천독노조는 젊은 시절 어느 산동(山洞)에서 독성죽결을 얻었었다.

독성죽결에는 신묘한 용독심결(用毒心訣)이 숨겨져 있었으며 천독노조는 그 비밀을 풀어내어 천하제일의 독공 고수가 될 수 있었다.

멀어지는 천독노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능풍운은 수평선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덧 해가 수평선 위로 한 뼘 넘게 떠올라 있었다. 천랑마검과 천독노조를 상대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것이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하겠습니다 햇님.]

능풍운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습관적으로 합장을 했다.

스으... 스으...

점점 강렬해지는 아침 햇살이 바다를 향해 우뚝 선 능풍운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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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몰려든 무림인들

 

 

 

해복진의 포구는 초승달 모양의 만(灣)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평선의 칠 할 이상을 가리고 있는 산맥의 꼬리부분이 난바다로부터 밀려오는 파도 대부분을 막아준다.

덕분에 만 안쪽은 늘 호수처럼 잔잔하다.

해변은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다.

십여 척의 어선이 눈부신 백사장 위에서 아침 햇살을 받고 있다. 혼자, 또는 서너 명이 탈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어선들이다.

한데 어쩐 일인지 날이 완전히 밝았음에도 어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여러 척의 어선들 중 단 한척에만 사람이 올라가 있다.

[어제 그 황새치 녀석이 크긴 컸네.]

건장한 청년, 아니 소년이 뱃전에 걸터앉아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키가 육척 가깝고 구릿빛 팔에는 근육이 울퉁불퉁하다.

몸만 보면 건장한 청년이지만 얼굴은 아직 앳되다.

소년 어부 능풍운이다.

짧은 바지에 소매 없는 무명조끼를 걸친 능풍운은 그물을 손질하기에 바빴다. 올이 굵고 튼튼해 보이는 그물이다.

하지만 그물은 여기저기 끊어져 있었다. 어제 무려 삼백근이 넘는 대물 황새치가 걸렸었기 때문이다.

반나절 넘는 악전고투 끝에 황새치를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그물이 많이 상했다. 다시 조업을 나가려면 끊어진 올들은 모두 이어야한다.

어느덧 수평선 위로 시뻘건 불덩어리가 떠오르고 있다.

날씨도 좋으니 이맘때쯤이면 포구는 출어 준비로 부산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능풍운을 제외하면 다른 배의 주인들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해상에서 무림인들이 죽고 죽이는 난투를 벌인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물을 손질하는 능풍운의 손길은 빠르고 능숙하다.

[휴... 겨우 끝났군.]

이윽고 능풍운은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그물의 수리가 끝난 것이다.

물고기를 유인할 미끼와 다른 어구들은 준비가 되어있으니 그물을 싣고 바다로 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였다.

[네가 이 배 주인이냐?]

뒤쪽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렸다.

능풍운이 돌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 인물이 서있었다.

검은색 경장을 걸친 서른 살 가량의 사내인데 오른쪽 허리에 검을 차고 있다.

옷 색깔과 달리 얼굴은 지나치리만치 하얗다. 가늘게 찢어진 눈매와 얄팍한 입술까지 더해져서 섬뜩한 인상을 풍긴다.

(무림인인가?)

흑의인이 차고 있는 검을 본 능풍운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무림인에 대해 마을의 형들로부터 듣긴 했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다.

(인상이 별로 안 좋네.)

사내를 찬찬히 살펴본 능풍운의 두 번째 생각이다.

사람을 대할 때 편견을 가지면 안된다는 게 평소의 지론이다.

그럼에도 흑의인이 풍기는 음산한 분위기는 좋아할 수가 없다.

능풍운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였다.

[놈! 귀를 처먹었냐? 이 배가 네 배냐고 물었지 않느냐?]

흑의인이 미간을 찡그리며 내뱉었다.

초면인데 대뜸 욕설이 튀어나왔다.

능풍운의 응대도 무뚝뚝해질 수밖에 없다.

[맞소만 왜 묻는 거요?]

능풍운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흑의인의 눈꼬리가 꿈틀했다.

보통의 양민이라면 상대가 무림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눅이 들어 굽신거린다.

그런데 이 어린놈은 뻣뻣하기가 바짝 마른 대나무 같다.

하지만 흑의인은 치미는 화를 억지로 눌러 참았다. 무림인이 이유 없이 양민을 해치면 공적(公敵)으로 지목되어 앞날이 고달파진다.

살인을 해도 증거를 남기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현재 해복진 근처에는 흑의인 말고도 무림인들이 다수 몰려와있다. 무고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혐의를 벗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양민을 해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그는 지금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이 배가 네 소유라니 잘 되었다. 옛 다.]

흑의인은 작은 주머니를 소매에서 꺼내 능풍운의 배 안에 던졌다.

쩔렁!

주머니가 배의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금속성이 들렸다.

[이게 뭐요?]

능풍운의 검미가 찌푸려졌다.

[뱃삯이다. 오늘 하루 네 배를 빌려야겠다.]

흑의인이 마치 시혜를 베푼다는 듯이 말했다. 능풍운이 당연히 자신의 지시를 따라야한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보시오. 나는 어부이지 뱃사공이 아니....]

[좋게 말할 때 본좌를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우고 가라.]

불쾌해하는 능풍운의 항변을 흑의인이 손을 들며 저지했다.

[지옥도!]

능풍운은 흠칫하며 눈을 치떴다.

 

-지옥도!

 

해복진에서 남동쪽으로 백여 리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섬이다.

육지에서 그리 멀지 않아 날씨만 좋으면 해복진에서도 바라다 보인다.

하지만 지옥도는 해복진의 어부들 뿐 아니라 남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모든 뱃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며 절대금지(絶代禁地)로 알려져 있다.

뱃사람치고 맨 정신으로 지옥도에 접근하려는 자는 없다.

이유는 지옥도 일대해역의 물길이 아주 험하기 때문이다.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진 지옥도 주변 바다 속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숨어있다.

멋모르고 지옥도로 접근했다가는 그 암초들에 부딪혀 좌초당하기 십상이다.

암초뿐만이 아니다.

지옥도 일대 바다 속에는 수많은 수중동굴이 뚫려 있다.

그 수중동굴들 때문에 지옥도 주변에는 수많은 소용돌이가 존재한다. 일단 그 소용돌이들에 휘말리면 배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끝장나버린다.

오죽했으면 뱃사람들이 지옥도 일대 해역을 불귀마해(不歸魔海)라 하겠는가?

한데 음산한 인상을 지닌 흑의인은 능풍운에게 다짜고짜 지옥도로 가자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딴 데 가서 알아보시오.]

철컹!

능풍운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돈주머니를 도로 흑의인의 발치로 던졌다.

(이 촌놈이...!)

흑의인의 눈썹이 꿈틀했다. 무지렁이 어부 따위에게 무시당했다 생각하자 살기가 치민 것이다.

[말했지만 난 고기 잡는 어부지 사람 태워주고 돈 받는 뱃사공이 아니....]

다시 어구를 정리하려고 허리를 숙이던 능풍운의 눈이 부릅떠졌다.

스악!

한 가닥 푸르스름한 섬광이 눈앞을 스쳐지나간 때문이다.

능풍운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굳어질 때였다.

펄럭!

능풍운의 이마를 동여매고 있던 머리띠가 배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럴 수가...!)

능풍운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발치에 떨어진 머리띠가 매끈하게 잘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능풍운은 반사적으로 흑의인을 돌아보았다.

흑의인은 처음 자세 그대로 서있는데 허리에 차고 있는 검도 여전히 칼집에 들어있다.

능풍운은 그 자가 언제 검을 뽑아 자신의 머리띠를 잘랐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흑의인은 정확히 머리띠만을 잘라냈을 뿐 능풍운의 이마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실로 빠르고도 정확한 검법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 나 천랑마검(天狼魔劍)이 지금껏 참고 있었던 것은 네놈이 일초무학의 무지렁이임을 감안해서다.]

흑의인은 놀라는 능풍운을 흘겨보며 음산하게 웃었다.

[....]

천랑마검이라 자칭한 흑의인의 시선을 접한 능풍운은 소름이 오싹 끼쳤다. 자신이 마치 굶주린 늑대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이 들어서였다.

[지금부터 본좌를 모시고 지옥도까지 간다. 거부는 용납하지 않겠다.]

천랑마검이 내뱉듯이 말했다.

 

-천랑마검!

 

좌수검(左手劍)의 달인인 그자는 무림에 출도 한 이래 한 번도 패해 본 적이 없다.

신랄하고도 빠른 그자의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은 무림의 십대검법(十大劍法) 중 하나로 꼽힌다.

어지간한 무림의 명숙들도 천랑마검과는 시비를 피할 정도다.

워낙 빠른 쾌검을 구사하는데다가 오른 손이 아닌 왼손을 쓰는 탓에 상대하기가 극히 까다로운 때문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무림인들 간의 승부는 사소한 차이로 승부가 난다.

그런 면에서 왼손을 사용하는 좌수검은 무시못할 이점이 된다.

하지만 무림에 문외한인 능풍운이 이같은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하물며 능풍운은 나이는 어려도 협박에 굴하는 성격이 아니다.

[나도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오. 무어라 해도 귀하를 내 배에 태워줄 수는 없소.]

능풍운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뭐라?]

천랑마검은 능풍운의 단호한 어투에 두 눈을 부릅떴다.

[흐흐...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군! 감히 본좌의 명을 거역하다니....]

그 자의 표정이 냉혹하게 변했다.

[오냐! 네놈 스스로 판 무덤이니 나를 원망치 마라.]

천랑마검은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왼손을 오른쪽 허리에 찬 검에 가져갔다.

한데 그 직후였다.

부르르!

막 검을 뽑으려던 천랑마검의 몸이 갑자기 세찬 경련을 일으켰다.

찢어질 듯 치떠진 그자의 눈은 능풍운의 뒤쪽을 보고 있었다.

(저 작자가 갑자기 왜 그러지?)

천랑마검의 돌변한 태도에 능풍운이 의아해할 때였다.

[후... 후배가 불민하여 노사(老師)의 왕림하심을 미처...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천랑마검은 두손을 모으며 굽신거렸다.

방금 전까지의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변한 천랑마검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만큼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천랑마검이 보이고 있는 갑작스런 변화를 능풍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기에 그토록 사납던 이자가 고양이 앞의 쥐가 되었지?)

능풍운은 의아해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였을까?

[...]

능풍운 뒤에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노인인데 일신에는 낡은 삼베옷을 걸치고 있다.

사람 좋은 인상을 지닌 노인은 자기 키 만큼이나 긴 곰방대를 입에 물고 있었다.

마의(麻衣)의 노인을 일별한 능풍운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봐도 마의노인에게서는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의노인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촌노였다.

[노야께서도 내 배를 빌리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능풍운은 무뚝뚝한 어조로 마의노인에게 물었다.

[글쎄다.]

마의노인은 곰방대를 입에서 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검 좀 곤란한데...)

능풍운은 마의노인의 모호한 대꾸에 난감해졌다. 연로한 노인이 지옥도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면 차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의노인은 그런 능풍운의 내심을 읽었는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걱정마라. 이 늙은이가 네게 신세를 지지 않을 테니까.]

이어 그는 시선을 천랑마검에게로 돌렸다.

[네 녀석은 낭왕(狼王) 혁련사(赫連射)의 전인이냐?]

천랑마검은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그 분이 후배의 스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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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

 

                         소년 어부

 

 

 

-해복진(海復津)

 

절강성(浙江省) 남단에 자리한 어촌이다.

산이 가까이 다가와 있어 배후지가 넓지 않다. 큰 포구가 될 수는 없는 지형인 것이다.

그래도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보금자리다. 활 모양으로 휘어진 산맥의 끄트머리가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이다.

 

새벽 무렵이다.

바다에는 해무가 자욱하게 깔려있다.

해무 너머로 붉은 기운이 긴 띠처럼 어리기 시작한다.

또 하루가 밝아오고 있다.

그렇긴 해도 육지 도처에는 어스름이 서려 있다. 날이 완전히 밝으려면 제법 시간이 흘러야한다.

 

해복진 남쪽 끝에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펼쳐져 있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송림 속에 집 한 채가 자리하고 있다. 부엌 하나, 방 하나 뿐인 작은 초가집이다.

삐걱

[오늘도 날씨는 괜찮겠네.]

초가집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양 볼에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소년이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과 달리 체격은 건장하다. 육척(六尺) 가까운 키에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피부는 짙은 구릿빛이다.

긴 머리를 빛바랜 천으로 대충 묶고 있는데 이목구비가 단정해서 잘 빚은 조각상을 연상케 한다.

성숙한 어른과 천진한 아이의 분위기가 함께 느껴지는 소년이다.

[으라차차! 오늘도 신나는 하루가 되겠구나.]

집을 나선 소년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켰다.

[벌써 바다에 나가려는 게냐?]

소년이 나온 집안에서 여인의 연약한 음성이 들렸다.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검박하고 단출한 실내가 보인다. 가구라고는 탁자 하나와 침대 두 개가 전부다.

그래도 벽에 몇 폭의 고서화가 걸려있어 단아한 운치를 느끼게 한다.

두 개의 침대 중 하나에 누워있던 여인이 힘겹게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불면 꺼질 듯 가냘픈 몸매에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한 여인이다.

삼십대 중반 정도인 여인은 비록 병약하게 보이지만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다.

이목구비는 섬세하고 몸에는 단아한 기품이 배어있다.

삼단같은 머릿결은 허리 아래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 때문에 얼굴은 더 한층 창백해 보였다.

[해가 뜨려면 이각 넘게 남았다. 너무 서두르지 말거라.]

여인이 가냘프지만 자애로운 음성으로 말했다.

[출항하기 전에 그물을 좀 손봐야 할 것 같아서요. 좀 더 주무세요 어머니.]

소년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쪼록 무리하지는 마라. 너무 먼 바다까지 나가지 말고...]

[명심할게요.]

소년은 여인을 안심시키고는 방문을 닫았다.

(가엾은 것...)

문이 닫히자 여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용서하거라. 천벌을 받아 마땅한 어미와 오라버니를...!)

주르르...!

여인의 창백한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윽...]

그러다가 무너지듯 침대 위로 쓰러지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흐느낄 때마다 여인의 삼단같은 머릿결이 물결같이 일렁거린다.

과연 그녀는 무슨 말 못할 사연을 품고 있는 것일까?

 

***

 

쏴아... 철썩!

파도는 끊이지 않고 밀려와 바위에 부딪힌다.

소년은 높직한 바위 위에 서서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바다를 덮고 있는 해무, 하늘의 구름 등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아침의 일기만으로도 오늘 하루 바다의 상태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다.

오년 넘게 고기를 잡으며 쌓아온 경험 덕분이다.

어부로서의 경력은 제법 길지만 소년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열여섯 살이다.

 

이름이 능풍운(陵風雲)인 소년은 해복진 출신이 아니었다.

십육 년 전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날, 작은 난파선이 해복진에 표착(漂着)했었다.

난파선에는 이십대 초반의 미녀와 갓 태어난 듯한 핏덩이가 타고 있었다.

능풍운 모자였다.

능부인(陵婦人)이라 불리는 능풍운의 어머니는 본명을 비롯해서 알려진 게 전혀 없다.

표류해올 당시 능부인은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난파 과정에서 입은 상처는 아니었다. 누군가와 싸워서 입은 부상이었다.

해복진 주민들은 그녀가 자신들이 사는 세상의 사람이 아님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정 많은 주민들은 죽어가는 모자를 방치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간호해 주었고 덕분에 능풍운 모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능부인은 해복진을 떠나지 않았다.

갈 곳이 없는 능부인 모자를 해복진 주민들은 흔쾌히 이웃으로 받아 주었다.

박식했던 능부인은 해복진 아이들에게 글과 학문을 가르쳐 주었다.

그 결과 해복진의 젊은이 중 몇은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지방관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공로도 있어서 능부인은 해복진 주민들로부터 극진한 존경을 받아왔다.

핏덩이였던 능풍운은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반면 능부인은 급격히 쇠약해져갔다.

그녀가 눈에 띄게 병약해져 가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능부인은 자신의 병명을 아는 듯했다.

하지만 이웃이 아무리 물어도 쓸쓸히 웃기만 할뿐 병명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능풍운은 마을 어른들을 따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열한 살이 되던 오년 전부터였다.

능풍운은 고기잡이에 금방 익숙해졌다.

또래보다 신체조건이 월등할 뿐 아니라 무엇이든 쉽게 배우는 재주 덕분이었다.

열여섯 살이 된 지금 능풍운의 체격은 어른이나 다를 바 없었다.

힘도 장사여서 작은 배쯤은 혼자 번쩍 들어 옮길 정도였다.

어느덧 능풍운은 해복진의 누구보다도 숙련된 어부가 되어 있었다.

 

[후우....]

능풍운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바다를 주시하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 바다로 나가 어떤 일을 만날지 가슴이 뛴다.

능풍운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수시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놀이터다.

물론 예기치 못한 폭풍을 만나 몇 번 죽을 뻔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바다는 매번 가슴을 뛰게 만드는 미지의 세계다.

헌데 능풍운이 일출을 기다리며 몇 번인가 심호흡을 했을 때였다.

[허허! 해복진에서는 역시 네가 가장 부지런하구나.]

뒤쪽에서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돌아보니 마을 쪽에서 늙은 어부가 뒷짐을 진 채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왕(王) 할아버지?]

능풍운은 깍듯이 인사를 했다.

노인은 해복진의 늙은 어부 중 한 명이었다.

어렸을 때 능풍운은 왕(王)씨 성을 지닌 이 노인으로부터 낚시질과 그물 치는 법, 배 모는 기술등을 배웠었다.

[오늘도 바다에 나갈 작정이냐?]

왕노인은 주름진 얼굴로 능풍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능풍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어머님께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드리려면 오늘도 잔뜩 잡아야지요.]

[허허, 풍운이 너는 역시 효자로구나.]

왕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해복진에서 능풍운이 병약한 어머니에게 지극정성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능풍운은 왕노인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바위 아래에 도착한 왕노인은 근처 작은 바위에 걸터앉았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은 출어를 그만 두는 게 좋을 것같다.]

왕노인은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째서인가요? 날씨가 나빠질 것 같지는 않은데...]

능풍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날씨 때문이 아니다.]

왕노인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면 왜지요?]

[어제 강(姜)씨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여러 척의 깨진 배와 수십 구의 시체들을 발견했다더구나.]

강씨는 해복진의 어부들 한명이다.

[해적(海賊)...입니까?]

능풍운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글쎄다.]

왕노인은 자신이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해적, 즉 바다를 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도적들은 하나같이 포악한 자들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가는 어부들이나 연안의 백성들에게 왜구(倭寇)를 포함한 해적들만큼 겁나는 존재도 없다.

동영에 근거지를 둔 왜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해적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바다로 도망쳐온 죄인들이다.

그자들에게는 인성(人性)도 양심이란 것도 없다. 그저 죽이고 빼앗고 노략질할 뿐이다.

다행히 오십여 년 전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선 후 해적들 대부분은 연안에서 구축(驅逐)되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남해 일대에 다시 해적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나마 해복진의 어부들 중에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아직 없다.

 

[해적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죽은 시체들이 하나같이 무림인들이었다는구나.]

왕노인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림?]

능풍운의 두 눈이 번뜩 빛났다.

무림이란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자신의 운명이 무림이란 그 한 마디로 인해 어디론가 끌려갈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 수 없는 예감이었다.

왕노인이 말을 이었다.

[소문이기는 하지만 남해 어딘가에서 무림인들이 몽매에도 원하는 보물이 곧 출토된다더구나. 그 때문에 무림인들이 몰려드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무림지보(武林之寶)라고요? 우리같은 어부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로군요.]

능풍운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싱긋 웃었다,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왕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무림인들은 사람 죽이는 걸 여반장으로 아는 자들이다. 해적들보다 오히려 더 포악하고 잔인한 무리지.]

[예....]

능풍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마을의 형들로부터 무림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일반인들에게 무림인들은 신선이나 마귀와 같은 존재로 여겨진다.

하늘을 새처럼 날고 맨 주먹으로 바위를 깨트리며 검을 날려 수십 리 밖의 적도 죽인다고 한다.

물론 과장된 얘기라고 새겨들었다.

능풍운에게 무림이나 무림인의 존재는 다른 세상일처럼 느껴질 뿐이다.

[바다에 나갔다가 무림인들과 마주쳐서 좋을 일은 없다. 며칠 동안은 바다에 나가지 말거라.]

왕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싱긋 웃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쯧쯧...)

왕노인은 내심 소리없이 혀를 찼다.

능풍운이 끝내 바다에 나갈 작정임을 안 것이다.

[내 말 잘 생각해 보거라. 병약하신 자당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왕노인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휘적휘적 마을 쪽으로 멀어져 갔다.

왕노인이 떠나자 능풍운은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쏴아... 철썩!

파도는 바위에 부딪혀 연신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어둠이 서서히 걷히면서 바다가 깨어나고 있다.

그걸 보는 능풍운의 가슴속에서도 벅찬 무언가가 눈을 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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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한지 어느덧 20년이 되어가는 <나한대협>의 수정본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비슷하고 문장과 일부 설정만을 바꿀 생각입니다. 1권 분량을 연재할 계획이며 <19금> 부분은 자율규제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삭제본>은 홈페이지인 <와룡소>의 <지밀보고>에 연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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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강 무협소설

 

 

            武林七寶 -무림칠보

 

 

 

서장

 

                무림칠보의 전설

 

 

<무림칠보(武林七寶)를 얻는 자 천하를 얻는다!>

 

오랜 세월 무림인들을 흥분시켜온 전설이다.

 

-치우기(蚩尤旗)

-천손갑(天孫鉀)

-혈마경(血魔鏡)

-혼원신주(混元神珠)

-연혼마적(鍊魂魔笛)

-등선천익(登仙天翼)

-나한법륜(羅漢法輪)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게 만들어준다는 일곱 가지 보물!

무림인치고 그것을 원하지 않는 자는 없다.

얻기만 하면 어떠한 욕망이든 꿈이든 이룰 수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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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발간한 박스본 무협지 <철혈기인,철혈무적 2부작>의 개정 확장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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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성과 무림맹

 

 

-지옥성(地獄城)!

 

오랜 세월 변황 무림을 지배해온 그들이 중원을 침공했다.

중원 무림은 무림맹(武林盟)을 결성하여 맞섰다.

격전의 연속,...

승리는 중원 무림, 아니 무림맹의 것이었다.

지옥성은 서역에 자리한 본거지까지 철저하게 파괴당했다.

무림인들은 환호하고 안도했다.

하지만 지옥성의 궤멸은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었다.

불가침의 성역이 된 무림맹...

그들의 폭압이 무림을 숨 막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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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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