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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문을 등 뒤로 닫고 안채로 들어서는 청풍. 불이 밝혀져 있지 않아 어둡다.

가게 안쪽의 안채에는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중앙에는 우물이 있다. 우물이 있는 좁은 마당을 가운데 두고 세 채의 건물이 ㄷ자 형태로 세워져 있다. 청풍이 닫고 들어온 문 정면에는 서재가 있다. 문이 열려있는 서재는 그리 넓지 않지만 삼면으로 수많은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책꽂이가 들어차 있다. 중앙에는 상당히 큰 책상과 의자가 있고. 책상 위에는 책과 문방사우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서재 좌우에는 문이 닫혀있는 방과 부엌이 있다.

부엌이 있는 쪽 건물의 방으로 가는 청풍.

달칵!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청풍.

어둑한 방안. 여자의 방이다. 옷장과 침대. 화장대, 침대 옆에는 작은 탁자와 의자도 있고. 침대에는 온유향이 잠들어 있다.

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침대로 가는 청풍

청풍; (어머니...) 잠이 든 온유향을 내려다보고

눈을 감고 잠이 든 온유향의 얼굴 크로즈 업. 눈꼬리로 눈물이 좀 맺혀있다.

청풍; (또 무슨 슬픈 꿈을 꾸고 계시는 것일까?) 한숨 쉬며 침대 옆의 의자에 앉고

청풍; (할아버지도 그렇고... 어머니도 내 출신 내력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계신다.) 온유향을 내려다보며

청풍; (그 때문에 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라왔다. 성이 장(張)씨라는 것 외에는...)

청풍; (아버지와 관련하여 말 못할 사연이 있을 테고...) (어머니가 시력을 잃으신 것도, 늘 비탄에 잠겨계신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청풍; (대체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소매 끝으로 조심스럽게 온유향의 눈 꼬리로 흐르는 눈물 닦아주고. 직후

온유향; [끄윽! 끅!] 혀 짧은 소리고 잠꼬대를 하면서 우는 온유향.

흠칫! 하며 귀를 기울이는 청풍

온유향; <안돼요 상공! 제발 그러시면 안돼요!> 끄윽! 끅!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배경으로 온유향의 말이 전음으로 들리고

온유향;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렇게 크나큰 죄를 지으시는 건가요?> 이불 밖으로 나온 온유향의 손 하나가 이불을 움켜쥔다

청풍; (가엾은 어머니...) (또 악몽을 꾸고 계신다.) 한숨 쉬며 두손으로 온유향의 이불 움 켜쥔 손을 감싸잡고

<빨리 자라고 강해져서 어머니를 이 기약없는 비탄에서 구해드려야만 한다.> 두손으로 온유향의 손을 감싸 쥔 채 생각에 잠기는 청풍의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나레이션. 온유향은 잠꼬대하며 울고 있고

 

#19>

여전히 금릉. 낮. 사람들 북적이는 대로. 철두와 정칠이 망산쌍독을 만났던 곳. 오늘도 사람들 북적

정칠; [사과가 맛있어요. 처녀 맛 나는 사괍니다.] 양손에 사과를 들고 외치는 정칠. 정칠 뒤에는 좌판이 벌려져 있고. 정씨 노인이 사과를 닦고 있다. 철두는 그 옆에 뻘쭘한 표정으로 서있고

[처녀 맛 나는 사과?] [망측해라!] 여자들 눈 흘기면서도 얼굴 발개지고. 사내들은 히죽거리고

정칠; [싱싱할 때 사세요. 여자든 사과든 때를 놓치면 맛이 갑니다.] 익살스럽게 호객을 하고. 지나가던 여자들 킥킥 대고. 사내들을 피식 거리고

정칠; [누나! 형님! 이거 한 번 잡숴바!] [누나는 때깔 좋아지고 형님은 물건 실해져!] 신이 나서 지나가는 남녀 커플에게 사과를 들이밀고. 싫지 않은 표정으로 킥킥 대며 피하는 남녀 커플

철두; (정칠 저 새끼...) 쓴웃음. 노인은 고개 설레 젓고

철두; (갈보집 아들 아니랄까봐 호객에는 도가 텄어.) 사람들에게 뭔가 수작을 거는 정칠을 보며

철두; (뭐 갈보들을 파는 것과 사과 파는 게 다를 것도 없지. 물 좋을 때 팔아야 제값을 받는 건 똑같으니...) 쓴웃음

철두; (정칠이 놈이야 어딜 내놔도 제 밥값은 벌 놈인데... 문제는 나다.) 한숨 쉬고. 그런 철두를 지나가며 힐끔 거리는 여자들

철두; (이 뻘줌한 짓을 한 달이나 계속해야한다니... 아주 죽을 맛이구만.) 여자들의 시선을 피하며 오만상을 쓰고. 그때

호객하던 정칠이 흠칫! 하며 누군가를 돌아본다. 두건을 쓴 노인이 옆을 지나가고 있고.

철두; (생각 같아서는 다 때려 치고 싶다만... 그랬다가는 청풍이 새끼가 지랄지랄 할 게 뻔하니 그럴 수도 없고...) 한숨 푹 쉬고. 그런 철두를 흘겨보는 노인

노인; [창피하면 그만 가봐.] 사과 닦으며 퉁명스럽게 말하고. 흠칫! 하며 돌아보는 철두

노인; [백정 같이 생긴 놈이 옆에 서있으니 될 장사도 안돼!] [성의를 보인 걸로 됐으니 돌아가.] 다시 사과를 닦으며

철두; [됐수다.] 퉁명스레 말하고

철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할배는 신경 끄슈.] 괜히 좌판의 사과를 뒤적이고

정칠; (맙소사! 저 늙은이는...) 누군가를 보며 공포에 질린 표정이 되고

노인; [퍽이나 좋아서 하는 일이겠다 이놈아.] [마지못해 자리 지키고 있는 게 훤히 보이는데...] 정칠이 상황은 모르고 코웃음 치고

철두; [아 사람이 말 하면 좀 믿어주던가...] 말하다가 흠칫! 하고

철두; (정칠이 놈의 호객이 멈췄다.) 흠칫! 하며 돌아보고. 노인도 정칠이를 보고

정칠이가 사과를 든 채 굳어져서 앞쪽을 보고 있다. 정칠이 보고 있는 쪽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 그 사람들 중에 두건을 뒤집어쓴 음산한 분위기의 인물이 가고 있는 뒷 모습이 보인다.

철두; (이 새끼가 뭘 봤기에 갑자기 얼어붙었지?) + [뭐냐?] 다가가며 묻고

정칠; [으으으!] 겁에 질려 떨고 있고. 앞쪽의 무언가를 보며

철두; [무슨 일인데 개장수 만난 똥개 시늉이냐고?] 정칠 옆에 서서 정칠이 얼굴 살피며 묻고

정칠; [야... 야 빨리 온고당(溫故堂)에 가서 청풍이 불러와라.] 턱! 들고 있던 사과를 철두에게 안기며 말하고. 시선은 앞쪽을 향한 채로

철두; [청풍이 새끼를 불러오라고? 무슨 일인데?] 사과를 받으면서 어리둥절

정칠; [잘 하면 한 달 동안 영감탱이 장사를 돕는 쪽팔리는 짓 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겼다.] 흥분된 표정으로 앞으로 가고. 누군가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는 모습이고

철두; [저 새끼가 뭔 소리를 씨부리는 건지 감이 안 오는군.] 찡그리며 돌아서고

철두; (그래도 아주 없는 소리 지어내는 놈은 아니니까 믿어보자.) + [영감, 나 잠깐 집에 좀 다녀오겠수다.] 사과를 좌판에 내려놓고

노인; [잠깐 다녀오지 말고 가서 아주 오지 말어. 네놈들이 바람 잡는다고 안될 장사 잘 되는 거 아니니까.] 뚱하게

철두; [나도 그러고 싶소.] [어쨌든 다녀오겠수다.] 달려간다

노인; [하여간 온고당 조(趙)영감의 손자 청풍이가 난 놈은 난놈이야.]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저 왈짜 놈까지 꼼짝 못하게 만드는 걸 보면...] 사람들 사이로 멀어지는 철두를 힐끔 거리며 중얼거리고

 

#20>

다시 빈민가. 아직 낮이라 시장통에 사람들 북적 대고 있고.

온고당 앞에서는 분이가 손님들을 상대로 흥정하고 있다. 골동품을 구경하는 잘 차려입은 뚱보와 우산을 쓴 기생 분위기의 여자에게 골동품들을 설명하고 있고.

가게 안에서는 청풍이 가게 입구를 등진 채 탁자 앞에 서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그 건너편에 앉은 천불투가 차를 마시면서 보고 있고. 청풍은 족자로 만들만한 긴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종이에 그려지는 그림은 눈 덮인 산을 털옷을 입고 비파를 품에 앉은 절세 미녀가 말 위에 옆으로 앉아있는 모습. 말고삐를 야만족 차림에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가 웃으면서 끌고 가고 있고. 그 뒤로 짐을 이고 진 궁녀와 하인들이 걸어서 따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야만족 차림의 군사들도 있는데 궁녀와 하인들 모두 우는 표정이다.

천불투; (불가사의로다.) 그려지는 그림을 보며 끄덕이는 천불투.

<단 한번 본 그림을 저렇게 똑같이 그려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청풍이 그림 그리고 있는 탁자 위에는 두루마리가 하나 놓여있다. 그때

[물건 보는 눈이 탁월하세요 손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 들어 가게 밖을 보는 천불투

분이; [그 옥두꺼비는 남송(南宋)의 휘종(徽宗)이 아끼던 물건이라고 해요.] 분이가 졸부처럼 보이는 뚱보를 상대하고 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뚱보가 주먹만한 크기의 옥두꺼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요리조리 살핀다. 기생같은 분위기의 양산 쓴 여자가 뚱보 옆에서 같이 보고 있고.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뚱보; [오오! 이게 풍류황제(風流皇帝)로 이름난 휘종의 애장품이란 말이지?] 눈이 휘둥그레

분이; [어머나. 남송의 휘종이 풍류황제라 불린다는 것도 아시고...] [손님, 정말 박학다식하시네요.] 놀라며 감탄하는 표정으로 두 손 모으고

뚱보; [어흠! 내가 역사와 예술에 조예가 깊긴 하지.] 으쓱 대고

피식! 웃는 청풍과 천불투. 청풍은 그림을 그리면서 웃고

분이; [그 두꺼비들은 한 쌍이었는데 어제 최상서(崔尙書) 댁의 둘째 공자님께서 한 마리를 업어갔지 뭐에요?] 허풍 떨고

뚱보; [최상서댁의 이(二)공자께서 한 마리를 가져갔다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분이; [원래는 둘 다 가져가고 싶어 하셨지만 마침 갖고 계신 돈이 얼마 없으시다면서 한 마리만 데려갔어요.]

분이; [조만간 다시 들르셔서 가져간다고 하셨는데 오늘은 아직 안 보이시네요.] 길거리를 살피는 시늉하고. 물론 뻥이다

뚱보; [그... 그래서 이걸 얼마에 팔려고 내놓은 것이냐?] 조바심

분이; [할아버지! 이 옥섬(玉蟾;옥두꺼비) 얼마에 팔까요?] 안쪽에 대고 묻고

손가락 네 개를 펴 보이는 천불투

분이; [사백 냥?] [알았어요.] 큰 소리로 대답하고

<사백 냥!> <가짜 옥돌로 만든 조잡한 두꺼비를...?> 놀라는 청풍과 천불투. 청풍은 그림을 그리면서 놀라고

분이; [주인 할아버지가 사백 냥 말씀하시는데... 에이 기분이다. 백 냥 깎아드릴게요.]

뚱보; [이 귀한 걸 삼백 냥에 주겠다고?] 감격

분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사백 냥 중 백 냥쯤은 제게 떨어지는 판매수당이에요.] 뚱보에게 몸을 기울이며 속삭이고

분이; [하지만 손님 인상이 너~무 좋으시고 또 오늘 마수걸이라 남기는 거 없이 드리는 거예요.] 눈웃음을 치며 팔꿈치로 뚱보를 슬쩍 치고

뚱보; [허어! 꼬마 아가씨가 배포도 크고 호탕하구만.] 입이 귀에 걸리며 한손을 품에 넣고

뚱보; [자! 신용도 으뜸인 대륙전장(大陸錢莊)에서 발행한 은표(銀表;지폐)다.] 새장의 큼직한 종이를 내밀고. 종이에는 복잡한 글과 그림이 테두리에 그려져 있고 중앙에 <壹百>이라는 글자가 크게 적혀 있다

분이; [고마워요 손님.] 두손으로 은표를 받으며 간드러지게 웃고

분이; [귀한 옥섬을 손에 넣으셨으니 머잖아 떡두꺼비같은 아드님을 얻으실 거예요.] 기생 같은 여자에게 눈웃음 치며 말하고.

뚱보; [그... 그렇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 헤벌레 하며 기생을 끌어안고. + 기생; [어린 동생이 혀에 꿀을 발랐네.] 기생도 눈 흘기지만 좋아하고.

분이; [또 들려주세요.] 끌어안고 가게 앞을 떠나는 뚱보와 기생의 뒤에 대고 허리 숙이며 간드러지게 인사하고. 이어

분이; [할아버지!] 돌아서고

분이; [분이가 오늘도 한 건 했어요.] 신이 나서 가게로 들어오고. 지폐를 흔들면서

천불투; [장사 수완이 좋은 건지 사기를 잘 치는 건지 갈피를 못 잡겠구나.] 고개 설레 젓고. 청풍은 신경 쓰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하고 있고

천불투; [네 냥에 팔아도 남는 조잡한 옥섬을 삼백 냥에 파는 건 지나치지 않느냐?] 한숨 쉬고

분이; [뭐 어때요?] 청풍이 그리는 그림을 힐끔 보며

분이; [골동품이란 게 원래 정해진 가격이 없는 거잖아요.] [아까 그 손님에게는 옥섬이 삼백 냥 이상의 값어치를 할 걸요?] 두손으로 지폐를 내밀고

천불투; [네가 번 돈이니 네가 가져라.] 갖으라고 손짓하지만

분이; [그럴 수는 없어요. 제가 그냥 좋아서 한 일이니까요.] 지폐를 탁자에 내려놓고.

천불투; [사양하지 말고...] 말하는데 + 분이; [어서 오세요 손님!] 밖을 보며 외치고

가게 밖에서 손님들이 가게 밖에 진열된 골동품들을 기웃거리고 있다.

분이; [찬찬히 둘러보세요.] [저희 온고당이 비록 이런 뒷골목에 자리하고 있긴 해도 물건 구색으로는 금릉 성내의 어떤 골동품 가게보다도 다양하답니다.] 손님들에게 가게 자랑을 하고

이어 손님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하는 분이의 모습. 거리에서 본 모습.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보고

[분이 저년 요즘은 온고당에서 아예 사는구만.] [자기 가게처럼 장사를 하고 있어.]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 중 나이 든 여자들이 분이가 손님들에게 물건 권하고 설명하는 걸 보며 눈 흘기고

[온고당 주인인 조영감의 외손자 청풍이 때문이야.] [청풍이가 왜?] 여자들의 대화

[왜긴 왜야? 조영감에게 잘 보여서 손주며느리 자리 차지할 꿍꿍이지.] [옳거니! 청풍이하고 잘 되어 보려고 제 어미가 하는 선술집 일은 나몰라라하고 온고당에서 사는구만.] 손님들을 상대하는 분이의 모습 배경으로 나이든 여자들의 이바구

천불투; (요즘은 분이가 청풍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는구나.) 가게 밖에서 손님들 상대하는 분이를 보며 생각

천불투; (하긴 이곳 해하촌에서 청풍이만큼 계집아이들의 마음을 잡아끌 사내 녀석은 없긴 하지.) 쓴웃음을 짓고

천불투; (문제는 청풍이가 언제까지 해하촌에 머물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숨

천불투; (신분도 다르고 사는 세계도 다르니 필연적으로 분이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천불투; (청풍이에 대한 분이의 마음이 더 영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생각할 때

청풍; [다 그렸어요.] 붓을 그림에서 떼고. 돌아보는 천불투

청풍; [북송(北宋) 초기의 인물화 대가 고문진(高文進)이 그린 귀비별리도(貴妃別離圖)의 모사(模寫)가 끝났어요.]

천불투; [수고했다.]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그림을 살피고.

천불투; [그럼 원본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자.] 탁자에 놓여있던 두루마리를 집어들고

촤아 두루마리를 펼쳐서

두루마리를 청풍이 그린 그림 염에 펼쳐 놓는 천불투

쿵! 두루마리의 그림과 청풍의 그림이 완전히 똑같다. 다른 점은 두루마리는 좀 낡은 느낌이고 청풍이 그린 그림은 새 종이라 전체적으로 밝게 보인다.

천불투; [감쪽같구나.] [인물들은 물론이고 왕소군(王昭君)이 타고 있는 말과 주변 풍경까지도 완벽하게 일치해] 고개 숙여서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비교하고

천불투; [그려진 재질이 다른 것만 빼면 어느쪽이 진본인지 분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개를 조금 들고. 시선은 여전히 그림을 향하고

천불투; [오래 본 것도 아니고 일별(一瞥), 말 그대로 한번 흘깃 본 그림을 어떻게 똑같이 모사를 한 것이냐?] 그림을 내려다보며 묻고

청풍; [이치는 잘 모르겠지만...] 어색하게 머리 긁적

청풍; [한번 본 건 그게 무엇이든 제 머리 속에 완벽한 형태로 각인(刻印)이 되곤 해요.] [전 그걸 그냥 다시 종이 위에 풀어내면 되구요.]

천불투; [아마도 넌 전설 속의 만천신안(瞞天神眼)을 타고 난 것같다.]

청풍; [하늘을 속이는 신의 눈...] [거창한 이름의 능력이로군요.] 좀 머쓱

천불투; [만천신안은 도둑들의 왕 도척께서 지녔었다고 알려진 능력이다.] [만천신안 덕분에 도척께서는 누구든 속일 수 있었고 누구에게도 속지 않았다고 한다.]

청풍; [도척이 도둑들의 왕이 된 배경에는 만천신안이라는 능력이 있었군요.] 흥분

천불투; [무엇이든 본 즉시 복제해낼 수 있는 만천신안의 능력은 투도 뿐 아니라 싸움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림을 살피며 발하고

천불투; [적이 사용하는 무공의 허실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풍; [그렇겠네요. 적의 허점을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을 테니...]

천불투; [하지만 너의 만천신안은 좀 더 보안을 해야만 한다.] 다시 그림을 보고

청풍; [제가 귀비별리도를 모사하면서 실수를 한 부분이 있나요?]

천불투; [이 그림에서 잘못 된 부분을 찾아봐라.] 원본을 가리키고

청풍; [잘못 된 부분이라면...] 그림을 보지만

청풍; [딱히 눈에 띄는 건 없는데...] 갸웃

천불투; [귀비별리도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느냐?]

청풍; [한(漢)나라 때의 미녀 왕소군이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왕)에게 시집가는...] + [!] 말하다가 깨닫고 원본 그림을 들여다 보고

천불투; [알아차렸느냐?] 웃고

청풍; [예!] 끄덕

청풍; [왕소군을 수종하는 시녀와 하인들뿐만 아니라 흉노의 군사들까지 우는 표정이로군요.] 하녀와 하인들과 군사들의 작은 얼굴 크로즈 업 배경으로 청풍의 말. 하녀와 하인들 뿐 아니라 군사들의 얼굴도 울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청풍; [절세미녀를 얻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흉노의 군사들이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라 울상을 하고 있다는 건 이 원본 그림도...] 찡그리고

천불투; [물론 위작(僞作;흉내 내어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끄덕이며 원본 그림을 집어들고

청풍; (역시!)

천불투; [이건 당대의 도수(盜首)인 야유신(夜遊神)이 젊은 시절에 모사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군사들의 표정을 원본과 다르게 그린 것도 야유신이었고...] 손에 든 그림을 보면서

청풍; [제가 베끼는데 급급해서 그림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놓쳤군요.] [그 때문에 원본이 위작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한숨 쉬며 자기가 그린 그림을 집어들고

천불투; [진정한 만천신안은 겉이 아니라 실체와 알맹이까지 알아보는 경지다.] [타고난 능력에 안주하지 말고 사물의 이치까지 궤뚫어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두루마리를 둘둘 말고

청풍; [명심하겠습니다.] 역시 그림을 말기 시작하고

청풍; [그리고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림을 말면서

천불투; [말해봐라.] 두루마리를 완전히 말면서 의자에 앉고

청풍; [올해 열리는 도척제전에는 참가하지 않으실 생각이신지요?] 천불투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림을 완전히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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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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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제 해가 졌고. 성 밖 빈민가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낡은 건물. 버려진 흉가인데. 불량해 보이는 소년들이 근처를 서성이며 경계하고 있고. 건물 안에서는 불빛이 흘러나온다.

그곳으로 걸어 올라오는 청풍.

건물을 지키던 소년들이 청풍의 눈치를 보며 인사하고

대꾸하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청풍

등이 몇 개 안 켜져 있어 어둑한 건물 내부. 상당히 넓은데 좌우 벽쪽으로 로 복면을 쓴 소년과 소녀들이 이십여명 죽 늘어서 있다. 그 중간에 복면을 쓰지 않은 철두와 정칠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있고. 조폭들의 집회 분위기. 다만 참가자들이 어른이 아니라 청소년들이다. 일진들의 모임 같은 분위기. 소녀들 중에는 분이도 있지만 복면을 쓰고 있다.

[회주!] [어서 와라 청풍아.] [수고했어 오빠!] 복면을 쓴 소년과 소녀들이 아는 척을 한다. 나이 많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나이 적은 아이들도 존칭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 인사에 대꾸하지 않고 굳은 표정으로 들어서는 청풍

<회주의 분위기가 장난 아닌데?> <아무래도 오늘 한바탕 폭풍이 몰아칠 것같다.> 복면 쓴 소년 소녀들 침 꼴깍 삼키며 자기들 앞 지나가는 청풍을 보고

이윽고 철두와 정칠 앞에 멈춰서는 청풍. 철두는 청풍보다 반 뼘 정도 더 크고.

두 놈을 노려보는 청풍.

철두; [고... 고맙다 청풍아.] 비굴한 표정으로 청풍의 눈치를 보고

정칠; [네 덕분에 살았어.] 억지 웃음

퍽! 철썩! 철두의 명치를 주먹으로 치고 정칠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치는 청풍. 가볍고 빠르다

소년과 소녀들 얼어버리고

[컥!] 털썩! 명치를 쥐며 무릎 꿇는 철두. + 퍼억! 옆으로 팽이처럼 돌아서 나뒹구는 정칠

<손... 손 쓰는 게 보이질 않았어!> <전광석화가 따로 없어!> <흑사회의 거친 인간들도 청풍이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있어!> 소년과 소년들 침 꿀꺽 삼키고

청풍; [못난 새끼들...] 바닥에 주저앉고 나뒹군 두 놈을 노려보고

[끄윽!] 무릎 꿇은 채 꺽꺽 대는 철두. + 정칠; [청... 청풍아.]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일어나 무릎을 꿇고

청풍; [네놈들 보기에 내가 왜 화를 내는 것같으냐?] 이를 바득 갈며 두 놈 노려보고

정칠; [작... 작업 상대를 잘못 고르는 바람에 너까지 나서게 해서...] 눈치 보며 말하다가

다시 노려보는 청풍.

정칠; [미... 미안하다.] 삭 죽어서 고개 숙이고. 철두는 고개 숙인 채 이를 악물고 있다. 수치스러운 표정이고

청풍; [우리가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흑건회라는 이름의 조직을 만든 이유를 말해봐라.]

정칠; [흑... 흑사회의 파락호들로부터 우리 마을 해하촌(蟹蝦村)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청풍 네가 주도해서 흑건회를 만들었잖아.] 눈치 보면서 말하고

청풍; [그렇다.] [가진 것 없고 배경도 없는 가엾은 인생들끼리 서로 돕고 지켜주자고 만든 게 흑건회다.] 싸늘한 표정으로 끄덕

청풍; [그리고 우리 흑건회의 규칙은 간단하다.] 둘러보며 말하고

청풍; [배신하지 말 것!] [서로 돕고 보살 필 것!] [자신과 가족과 회원을 지킬 목적이 아닌 이상 사람을 해치지 말 것!]

청풍; [이상의 세 가지 규칙만 지키면 무슨 짓이든 용납이 된다.] [도둑질을 하든 사기를 치든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장사를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말이다.]

청풍; [다만 그 과정에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건 안된다.] [그런 짓을 하면 흑사회의 쓰레기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청풍; [그래서 도둑질을 하고 등을 쳐도 되는 대상은 부자, 탐관오리, 권력을 지닌 자들로 한정해왔는데...] 무릎 꿇고 있는 철두와 정칠을 다시 돌아보고

청풍; [네놈들은 소매치기를 수월하게 할 목적으로 노점상 하는 장씨 할아범의 좌판을 엎어버렸다.] 두놈을 내려다보며 살벌한 표정을 짓고

<그래서 청풍이가 평소답지 않게 살벌했구나.> <역시...> 다른 아이들 끄덕이고

청풍;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가엾은 노친네의 생계 수단을 박살 내놓고도 느껴지는 게 없어?] 눈에서 강렬한 빛이 나고

정칠; [미... 미안하다.] 말하면서 팔꿈치로 철두의 옆구리를 찌르고

철두; [우리가 잘못했다. 용서해라.] 마지 못해 사과하고

청풍; [가난하고 비루한 인간들끼리 서로 돕고 보살펴주며 살아도 시원찮을 판에 폐를 끼치면 어쩌자는 거냐?] 불같이 화를 내고

청풍; [여기 오기 전에 장씨 할아범네 집에 들렀는데 네놈들이 패대기 친 사과들은 골병이 들어서 헐값에 넘겼다더라.] [떼온 값의 반절도 못 건졌다는 거다.]

청풍; [당장 내일 물건 떼올 돈도 모자른다고 한숨이 방바닥을 꺼트릴 것같았단 말이다.]

[그... 그런 줄은 몰랐다.] [내일 찾아가서 변상을 할 테니 용서해줘라.] 눈치 보며 말하는 철두와 정칠

청풍; [당연히 변상은 해야겠지.] 코웃음 치고

청풍; [내일부터 한 달동안 너희 둘이 장씨 할아범 장사를 도와라.] [물론 물건도 너희들 돈으로 떼어다 드리고...]

정칠; [한... 한 달씩이나 거리에서 과일을 팔라는 거냐?] 울상. 하지만

청풍; [왜? 죄책감이 뼛속까지 사무쳐서 한 달로는 부족하게 느껴지냐?] 냉소하고

정칠; [아... 아니다!] 기겁하며 손사레 치고

정칠; [앞으로 한 달 동안 정성을 기울여서 장씨 할아범 장사를 돕도록 하겠다.] 억지 웃음

청풍; [너희들이 제대로 죄 값을 치루는 지는 지켜보겠다.] 홱 돌아서고

청풍; [오늘 집회는 여기까지! 해산한다.] 말하며 입구로 가고.

바짝 얼었다가 그제서야 안도하는 소년과 소녀들

[같이 가 오빠!] 복면을 쓴 소녀 한명이 건물을 나가는 청풍을 서둘러 따라가고. 물론 분이다.

[그만 일어나라.] [청풍이의 불같은 성격에 한 대만 때린 걸 다행으로 여겨라.] [맞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라.] 무릎 꿇고 있는 철두와 정칠 주변으로 모이면서 위로하는 소년과 소녀들. 쓰고 있던 복면을 벗으면서.

정칠; [운이야 확실히 좋았지. 하마터면 뱀 새끼들의 밥이 될 뻔했으니까.] 속없이 웃으며 일어나고

정칠; [흡혈신사인가 뭔가 하는 투명한 뱀 새끼들이 덤벼들 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오금이 저린다는 거 아니냐?]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그렇다고 여기서 오줌 지리진 마라.] [그래 임마! 가뜩이나 냄새 지독한데 지린내까지 나면 상종 안해준다.] 소년들 정칠을 툭툭 치며 웃고 떠들고. 하지만

철두; (개새끼!)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를 바득 갈고. 청풍이 자신의 명치를 주먹으로 치던 장면을 떠올리면서

철두; (나이도 제놈보다 많은 날 공개적으로 개망신 시켜? 그것도 네놈이 흑건회를 조직하기 전에는 다 내 똘마니였던 것들 앞에서?) 정칠을 에워싸고 희희덕 거리는 소년과 소녀들 곁눈질로 보며 수치스러운 표정을 짓고

철두; (두고 보자! 오늘 당한 수모는 가슴에 새겨둘 테니...) 이를 바득 가는 얼굴 크로즈 업

 

건물을 밖에서 본 모습. 청풍이 나오고 그 뒤에서 복면을 쓴 분이가 서둘러 따라 나온다. 건물 주변을 보초서던 소년들이 돌아보고

청풍; [수고했다. 너무 늦지 않게 집에 돌아가라.] 건물 나오면서 밖에서 경비 서던 소년들에게 말하고. 분이가 뒤따라 나오고

[알았어 형.] [내일 보자 회주!] 소년들 대답하고.

빈민가 쪽으로 내려가는 청풍. 그 뒤를 따라 가며 복면을 벗는 분이. 복면이 벗겨지면서 발그레해진 분이의 얼굴이 드러나고

분이;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오빠?] 벗은 복면을 품에 넣으면서 청풍 옆으로 다가가 함께 내려가며 얼굴 살피고

분이; [정칠오빠에게 들어보니 그 자들 망산쌍독이라고 아주 무서운 인간들이었다는데...]

청풍; [분이 네가 보낸 관병들이 제 때 도착해서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끄덕이며 내려가고

분이; [내... 내가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야.] 얼굴 발개져서 청풍의 팔짱을 끼고

흘깃! 옆을 보는 청풍.

뭉클! 봉긋한 분이의 젖가슴이 청풍의 팔을 누르고.

분이; [하여간 철두오빠하고 정칠오빠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어.] 청풍의 팔짱 낀 채 마을로 내려가면서 쫑알 대고. 의식적으로 젖가슴을 청풍의 팔에 누르면서

분이; [어떻게 소매치기를 해도 망산쌍독같이 무시무시한 자들을 건드린데?] 얼굴 약간 발개져서 샐쭉거린다.

청풍; (분이에게서도 어느덧 여자 티가 나는구나.) 그런 분이를 곁눈질로 보면서

청풍; (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내들이 꼬일 테고...) (아무쪼록 분이가 제대로 된 사내와 맺어지길 바랄 뿐이다.) 분이와 함께 내려가며 생각하고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대로 여자의 삶이란 게 어쩔 수 없이 배우자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으니...> 내려가는 두 사람 모습 배경으로 청풍의 생각

 

#17>

밤. 금릉의 중심가 쪽은 아직 불야성이지만

성 밖의 빈민가는 대부분 건물들에 불이 까져서 어둑하다.

온고당. 문은 닫혀 있지만 문틈으로 흐릿하게 불빛이 흘러나온다. 온고당 근처 거리에도 인적이 드물고

어둑한 길을 걸어서 온고당으로 다가오는 청풍.

삐꺽! 주변 둘러보며 문을 열고 들어간다.

[늦었구나.] 들어서는 청풍의 귀에 들리는 음성

천불투; [벌써 이경(二更)이 다 되어간다.] 가게 안에 등이 걸려있고 탁자 앞에 앉은 천불투가 흐릿한 등불 아래에서 여러 개의 작은 원숭이 조각상을 살피면서 말하고. 10센티 정도 크기인 원숭이 조각상들은 각가지 표정과 자세를 하고 있다. 나중에 다시 나오는 소품들이다

청풍; [분이 어머니가 저녁 먹고 가라고 붙잡는 바람에 늦었어요.] 멋쩍은 표정으로 말하며 문을 닫고

천불투; [분이모녀가 애를 쓰는구먼.] 원숭이 조각 하나를 천으로 닦으면서 웃고

청풍; [애를 쓰다니요?] 어리둥절하며 다가가고

천불투; [별 거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웃고

청풍; [어머니는...] 안채로 통하는 문을 보고

천불투; [네 저녁상 차려놓고 기다리다가 지쳐서 먼저 잠이 들었다.]

청풍; [쓸데없는 일로 바빠서 어머니를 걱정하시게 해드렸군요.] 천불투의 맞은 편에 앉고

천불투; [별 탈 없이 돌아왔으니 되었다.] [그보다 오늘 위험한 자들과 시비가 붙었었다고 하던데...?] 고개 조금 들어서 보며

청풍; (벌써 마을에까지 소문이 퍼졌군.) + [저녁 무렵에 철두와 정칠이 건드린 자들이 망산쌍독이었더군요.]

천불투; [망산쌍독...] [위험한 자들이지. 일단 척을 지면 두고두고 우환이 될 수도 있는...] 원숭이 조각상을 탁자에 내려놓고 좀 심각한 표정

청풍; [할아버지가 이렇게 걱정하실 줄 알았으면 그자들을 죽여 버릴 걸 그랬네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천불투; [죽일 작정을 했다면 놈들을 죽일 수 있었느냐?] 지긋이 보고

청풍; [독이 통하지 않는 자들이라 좀 까다롭긴 하겠지만...] [위험을 무릅쓴다면 아마 죽일 수 있었을 거예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천불투; [청풍아.] 심각. 진지

청풍; [예 할아버지.] + (표정이 심각해지셨네. 내가 뭔가 실수를 했나?)

천불투; [할애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도둑이지 살수(殺手)가 아니다.]

청풍; [알고 있습니다.] 자세 바로 하며 진지하게

천불투; [알고 있다면서 위험을 무릅쓴다면 망산쌍독을 죽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냐?] 엄한 표정으로

청풍;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고개 숙이고

천불투; [도둑은 싸우는 자가 아니라 숨고 피하고 달아나는 자다.] [그 사실을 망각했다가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한숨 쉬고

청풍; [각골명심하겠습니다.] 고개 숙이고

천불투; [천불투라는 별호답게 할애비의 무공은 잠입하고 훔치고 도망치는 데 특화되어 있다.]

천불투; [자연히 파괴력도 지구력도 부족하고...] [그 때문에 살상이 목적인 무공을 익힌 자들과 정면으로 부딪힐 경우 대책이 없게 된다.]

천불투; [그러므로 적과 마주칠 경우 삼십육계(三十六計) 주위상책(走爲上策), 즉 삼십육계중 달아나는 것이 최고의 방책이라고 한 자치통감(資治通統鑑)의 금언(金言)을 떠올려야만 한다.]

청풍; [예...] 좀 삭 죽고

천불투; [물론 네 무공이 약하거나 볼품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위로하고

천불투; [오히려 경신술과 보법, 은신술 등의 재주는 누구보다 뛰어나 적수가 드물 것이다.]

천불투; [특히 지금의 네 공력은 할애비를 가볍게 능가하는 수준이다.] [거의 이갑자(二甲子)에 육박할 정도이니...]

청풍; [할아버지께서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각가지 영약을 구해다 먹여주신 덕분이지요.] 포권하며 말하고

천불투; [할애비가 여러 문파와 가문의 영약을 훔쳐다 네게 먹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네 공력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심후한 것은 네 특이한 체질 때문이다.]

청풍; [그렇습니까?] 조금 놀라고

천불투; [영약이라는 게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게 아니다.] [과다복용은 부작용을 야기할 뿐 아니라 몸이 흡수할 수 있는 영약의 약효에는 한정이 있기 때문이다.]

천불투;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어느 정도 영약을 먹으면 더 이상 내공이 증진 되지 않는다.] [약 기운이 쓰이지 못하고 배설되어 버리는 것이지.]

천불투; [헌데 특이하게도 네 몸은 전신의 경맥이 활짝 트여있을 뿐 아니라 영약의 기운이 헛되이 배설되지 않는 체질을 지니고 있다.]

천불투; [당장 용해되지 않은 약기운도 몸속에 누적되고 있어서 서서히 내공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청풍; [저같은 체질이 흔치는 않은 모양이지요?]

천불투; [흔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할애비가 팔십살 넘게 살아오면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체질이다.] 진지하게

청풍; [제가 그렇게 특별한 체질을 지닌 줄은 몰랐습니다.] 좀 흥분하고

천불투; [덕분에 할애비가 영약을 구해다 먹인 보람이 있긴 하다만...] 이마를 좀 모으고

청풍; [마음에 걸리시는 게 있으신지요?]

천불투; [네게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천불투; [상승(上乘)의 내공심법만 익혔다면 이갑자 이상인 내공을 무리 없이 쓸 수 있을 테고...] [그럼 세상 누구도 널 쉽게 어쩌지 못할 텐데...]

청풍; [상승 내공심법이란 게 손에 넣기 힘이 드는 것인지요?]

천불투; [힘들다마다!] 끄덕

천불투; [여러 문파나 가문에서 기밀 유지에 가장 신경 쓰는 것이 내공심법이다.] [내공심법이 모든 무공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천불투; [유력한 세력이나 이름 높은 고수치고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지니지 않은 경우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는다.]

청풍; [그렇겠습니다.] 끄덕

천불투; [하물며 이 넓은 강호에서 상승의 내공심법이라 불릴만한 무공은 몇 안된다.] [구대문파를 비롯한 전통 있는 문중과 가문들만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천불투; [그래서 지난 십오년 동안 꾸준히 시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할애비가 익힌 풍전심법(風電心法)을 능가하는 내공심법은 손에 넣지 못했다.]

청풍; [저는 풍전심법만으로도 만족합니다만...]

천불투; [도가(道家)에서 흘러나온 풍전심법도 나름대로 괜잖은 무공이다.] [즉각적으로 내공을 쓸 수 있게 해주며 빠른 속도를 내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다.]

천불투; [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빨라서 금방 지치게 만들며 지나치게 가벼워서 적에게 타격을 입히기에 적합하지 않다.]

천불투; [즉, 풍전심법은 철저하게 도둑질에만 최적화된 내공심법인 것이다.] [네가 앞으로 좀 더 큰 일을 하려면 중후하고 위력적인 내공심법이 필요한 이유다.]

청풍; [무림에서 이름난 내공심법이 어떤 게 있는지요?]

천불투; [내공심법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소림사의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이다.]

 

<역근세수경(易筋洗髓經)이라고도 불리는 달마역근경은 소림사 칠십이절기의 근본이 되는 비급이다. 당연히 그 안에 수록되어 있는 내공심법의 탁월함에 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중들이 춤을 추듯 움직이는 그림이 그려진 낡은 책을 배경으로

 

천불투; [물론 달마역근경이 과대평가되고 있다는 말도 있다.] [또 지나치게 어려워서 그 내용을 절반 이상 깨우친 인물이 없다는 풍문이 떠돌기도 한다.]

천불투; [그렇다고는 해도 달마역근경이 무림인들이라면 꿈에라도 보길 원하는 보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청풍; [할아버지께서도 달마역근경을 훔칠 시도를 하셨겠군요.]

천불투; [도둑들 세계에서 소림사의 장경각(藏經閣)은 자금성의 황실보고(皇室寶庫)와 함께 난공불락(難攻不落)으로 여겨지는 성역이다.]

천불투; [할애비도 몇 번인가 소림사 장경각에 잠입해보려다가 실패했다.]

청풍; [제가 나중에 소림사 장경각을 한번 털어보겠습니다.] 웃고

천불투; [손자 하나 잘 둔 덕분에 좀 도둑에 불과한 할애비의 이름이 무림을 뒤흔들겠구나.] 역시 웃고

청풍; [좀도둑이라니요?] [할아버지가 천하를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도(大盜)라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천불투; [천불투니 뭐니 해봐야 허망한 이름일 뿐이다. 도척제전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해본 적이 없으니...] 한숨 쉬며 고개 젓고.

청풍; (도수가 못 되신 걸 못내 아쉬워하시는군.) + [달마역근경에 비교될만한 내공심법은 또 뭐가 있는지요?]

천불투; [전설 속의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의 무공이라면 달마역근경을 오히려 능가하겠지.]

천불투; [하지만 지난 몇백년 사이에 삼황과 오제의 무공은 세상에 나타난 적이 없으니 오래전에 절전(絶傳)되었다고 봐야만 한다.]

청풍; [아까운 일이로군요.]

천불투; [삼황과 오제의 무공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얘기해주마.] [밤이 깊었으니 그만 들어가서 자거라.] 다시 원숭이 조각상을 집어들고

청풍; [예...] 일어나고

청풍; [할아버지도 편히 주무세요.] 포권하고

천불투; [오냐. 너도 잘 자거라.] 원숭이 조각을 천으로 닦으며 말하고

안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들어가는 청풍.

탁! 닫히는 문

천불투; (가엾은 녀석...) 한숨 쉬며 원숭이 인형을 닦고

천불투; (노부의 추측이 맞다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게 자랐어야하는 신분인데 뒷골목에서 도둑질이나 배우고 있으니...)

천불투; (그렇다고 이제 와서 가엾은 유향이에게서 떼어놓을 수도 없고...)

<십오년전에 그랬듯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인생! 저 녀석의 복연(福緣)이 남다르다는 것만 믿을 수밖에 없다.> 어둑한 가게 안에 홀로 남은 천불투의 모습 배경으로 천불투의 생각 나레이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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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저녁 무렵. 넓은 길가의 관청. 5-6명의 관병들이 지키고 있고

[아저씨! 아저씨!]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는 관병들

분이; [도와주세요! 큰일 났어요!] 달려오는 분이. 사람들 놀라 돌아보고

[저 계집 아이 왜 저러지?]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야.] 관병들 돌아볼 때

분이; [우리 언니 좀 살려주세요! 제발요 네?] 관병 중 대빵으로 보이는 자의 팔에 매달리며 울음 터트리는 분이. 당황하는 관병1. 나이가 좀 들었다.

관병1;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울지 말고 말해야 알아들을 거 아니냐?] 당황하여 달래고

분이; [나쁜 사람들이 언니를 끌고 갔어요!] [요즘 금릉 일대에서 여자들만 골라 겁탈하고 죽인다는 색마살귀(色魔殺鬼)들인지도 몰라요!] 관병1의 팔을 잡아끌며 울고

<색마살귀!> 관병들 눈 부릅떠지고

 

<색마살귀-! 일년전부터 금릉 일대에서는 알몸의 여자 시체가 발견되어 왔다.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인데 몸에 무참히 유린당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강물에 떠있는 젊은 여자의 알몸 시체. 그걸 강가에서 보며 놀라는 사람들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강간살인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 범인을 색마살귀라 부르며 두려워하고 있다.> 어떤 집에서 잠옷 차림의 여자를 끌어안고 담장을 넘는 복면인의 모습을 배경으로 나레이션

 

관병1; [어디... 네 언니가 어느쪽으로 끌려갔느냐?] 분이에게 다그쳐 묻고

분이; [언니가 진회하 하류의 용왕묘(龍王廟) 쪽으로 끌려가는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해요! 빨리 가서 우리 언니 좀 살려주세요!] 발 동동

관병1; [알았다! 아저씨들이 네 언니 구하러 갈 테니 진정해라.] 분이를 달래고

관병1; [한명은 안쪽에 기별하고 나머지는 나와 같이 용왕묘로 간다!] 동료들에게 외치며 달려가고. + [존명!] [포교(捕校)님을 따르라!] 다른 관병들도 달려가고. 한명만 관청 안으로 달려들어간다

분이; [우리 언니, 꼭 살려주셔야만 해요!] 달려가는 관병들을 향해 손 흔들며 외치고. 대답하지 않고 달려가는 관병들

뒤이어 관청에서 수십명의 관병들이 달려 나오고

그 관병들도 앞서 관병들이 달려간 곳으로 달려간다

분이; (됐어!) 담장 쪽으로 붙어서며 관병들이 달려가는 걸 보고

분이; (청풍오빠 지시대로 관병들을 용왕묘로 보냈으니까 내 역할은 다 한 거야.) 관병들의 눈치 보며 관청을 등지고 걸어가고

분이; (그렇긴 해도 청풍오빠가 도착할 때까지 철두오빠와 정칠오빠가 무사할 수 있을지 몰라.) 초조한 표정이 되고

분이; (설령 청풍오빠가 늦지 않게 도착한다고 해도 구해줄 수 있을까? 철두오빠와 정칠오빠를 끌고간 자들은 정말 무서워 보였는데...) 울상. 그러다가

분이; (아니야! 청풍오빠라면 상대가 누구든지 철두오빠와 정칠오빠를 구해낼 수 있어!)

분이; (지난 삼년 사이에 금릉 흑사회(黑社會)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흑건회(黑巾會)의 회주 흑건룡(黑巾龍)이 바로 청풍오빠니까!) 얼굴 발그레 해지고

 

#15>

외진 강변. 그 강변에 자리한 낡은 사당. 주변에 인적은 없고

<龍王廟>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문은 열려맀다.

[히익!] [안... 안돼!] 제단을 등지고 앉아서 겁에 질리는 철두와 정칠. 그런 두 놈 앞으로 다가오는 뱀 세마리. 크지는 않지만 몸이 투명해서 뼈와 내장이 들여다 보이는 뱀들이다

구괴; [운이 없다고 생각해라 이놈들아.] 웃으면서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호로병 뚜껑도 열고. 구적은 그놈 뒤에 서서 호로병을 들고 있다. 지팡이는 바닥에 꽂아놓았다

구괴; [우리 망산(邙山) 독묘파(毒墓派)의 영물들인 흡혈신사(吸血神蛇)들은 열흘에 한번 씩은 사람 피를 듬뿍 마셔야만 하는 습성이 있다.] 몸을 숙이며 호로병을 아래로 기울이고. 그러자

스륵! 그 호로병에서도 투명한 뱀들이 기어 나온다.

[히익!] [엄... 엄마야!] 겁에 질리는 철두와 정칠

툭! 툭! 호로병에서 나와 바닥으로 떨어지는 세 마리의 투명한 뱀들. 이제 뱀은 모두 여섯 마리가 되었고.

구괴; [오늘 안으로 사람 피를 마시게 해줘야하는데 네놈들이 재수 없게 걸려든 것이다.] 호로병을 들고 일어나고

구괴; [운이 좋으면 피를 빨리고도 살 수 있으니 순순히 우리 귀염둥이들에게 피를 나눠주는 게 좋을 것이다.]

정칠; [잘못... 잘못 했어요 아저씨!]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을 테니 제발 살려주세요!] 눈물 콧물 흘리며 무릎 꿇고 싹싹 빈다. 그 옆에 주저앉아 필사적으로 제단 쪽으로 등을 기대는 철두의 사타구니는 흥건하게 젖어있고

구괴; [그 새끼 참 분위기 파악 못하네.] 피식 웃고

구괴; [네놈 눈에는 지금 우리가 네놈들 버릇 고치려고 겁주는 걸로 보이냐?] 눈을 부라리고

정칠; [살려주세요!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 테니까 제발 이 뱀들을 물려주세요 네?] 애원하고

구괴; [여러 소리 할 거 없고, 그만 흡혈신사들의 먹이감이 되거라.] 통통! 말하며 손으로 호로병을 두드리고. 그러자

쉬쉭! 쉭! 투명한 뱀들이 혀를 낼름거리며 철두와 정칠을 덮쳐간다

[안돼!] [으악!] 팔로 얼굴 가리며 비명 지르는 철두와 정칠. 바로 그때

<눈 감고 입과 코도 막아라!> 누군가의 말이 들려서 눈 부릅뜨는 철두와 정칠

<청풍!> 놀라면서도 급히 눈 질끈 감으며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는 철두와 정칠. 직후

휘익! 휙! 뱀들 근처로 날아드는 작은 주머니들. 얇은 종이로 만든 주머니들인데

[!] [!] 놀라 눈 부릅뜨는 구괴와 구적

펑! 퍼억! 주머니들이 바닥에 떨어져 터지면서 연기와 가루가 확 일어나고

카악! 키엑! 연기와 가루를 뒤집어쓴 뱀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고

구괴; [웬놈이냐?] 바닥에 꽂아놓았던 지팡이를 잡아 뽑으며 뒤를 홱 돌아보고. + 구적; (석회 가루와 재가 섞여있다.) 소매로 입 가리며 역시 입구쪽을 돌아보고

쿵! 사당의 문간에 서있는 검은 복면을 쓴 소년, 물론 청풍이다. 양손에는 여러 개의 종이 주머니를 들고 있고

망산쌍독; [너 이 새끼 뭐냐?]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우리 형제에게 시비를 걸다니...] 문간으로 가며 눈을 부라리고

청풍; <뒷문으로 도망쳐라.> 철두와 정칠에게 전음을 보내면서 양손의 종이 주머니들을 쳐들며 뒷걸음질을 치고.

[!] [!] 콜록! 콜록! 기침 하면서도 깨닫는 철두와 정칠. 눈은 감은 채. 이어

급히 옆으로 기어 도망치는 철두와 정칠. 뱀들은 가루와 연기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고

구괴; [독이 특기인 우리 망산쌍독에게 독이라도 쓰겠다는 거냐?] 청풍이 종이 주머니들을 쳐드는 걸 보며 피식 웃는데

청풍; (망산쌍독...) + [그렇다.] 퍽! 퍽! 가죽 주머니를 사당의 바닥과 천장에 던지는 청풍. 그러자

펑! 펑! 바닥에 던져진 주머니들은 연기를 확 일으키고

퍼억! 푸스스! 천장에 부딪혔던 종이 주머니는 터지면서 고운 가루를 확 뿌린다.

그 가루와 연기들이 망산쌍독을 덮어씌우고 휘감고. 망산쌍독도 만일을 대비해서 소매로 입을 가리려 하는데. 그 직후

<이건...!> 눈 부릅뜨는 망산쌍독. 이미 연기와 가루에 휩싸였고

[엣취!] [아이쿠!] 기침하며 눈을 가리는 망산쌍독

[겨... 겨자 가루와 산초 태운 연기로구나!] [콜록! 콜록!] 기침하며 눈물 질질 흘리는 망산쌍독

청풍; [독공을 익혔다 해도 인간인 이상 매운 게 코나 눈에 들어가면 괴롭지 않겠어?] 비웃으며 뒤로 물러서고. 그러자

망산쌍독; [죽일 놈!] [잡아라!] 팟! 휘익! 악을 쓰며 사당 입구로 돌진하고. 매워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로. 그 직후

푹! 푹! 그놈들의 발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네 개의 침이 달린 쇠꼬챙이들. 철질려라는 암기들인데 사당 입구에 여러 개가 압정처럼 뿌려져 있었다.

[으악!] [아이쿠!] 철질려가 발바닥에 박혀서 펄쩍 펄쩍 뛰는 망산쌍독

좀 떨어진 곳에서 걸어가며 사당 쪽을 돌아보는 청풍

철두와 정칠이 사당의 뒷문으로 나와 도망치는 게 보이고. 입과 코를 가린 채로

청풍; (두 놈 다 무사히 빠져나왔군.) 생각하며 사당을 등지고 걸어가고.

구괴; [교활한 새끼! 입구에 미리 철질려(鐵蒺藜;가시 모양의 암기)를 뿌려두었구나!] 이를 갈며 청풍을 보면서 깨금발로 펄쩍이며 발에 박힌 철질려를 뽑아낸다

구적; (겨자가루와 산초 태운 연기로 눈을 자극했던 건 바닥에 뿌려놓은 철질려를 발견하지 못하게 할 목적이었다.) 역시 발 바닥에 박힌 철질려를 뽑으며 청풍을 보고. 눈물 콧물 흘리며. 청풍은 이미 수십미터 밖을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며 돌아보고 있다

구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버러지!] 팟! 발바닥에서 뽑아낸 철질려를 던지며 이를 갈고. 시선은 청풍을 향한 채

구괴; [박살을 내버리겠다!] 팟! 몸을 날려 청풍을 향해 날아간다. 그 뒤에서 구적도

청풍; (어서 따라와라. 그래야 철두와 정칠이 안전해질 테니...) 냉소하며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뛰는 게 아니고 서둘러 걷는 모습이고

구적; (저 애송이 놈...) 앞서서 날아가는 구괴를 뒤 따라가며 생각하고. 구괴의 앞쪽에 청풍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게 보인다. 뒤는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가는데 길이 아니라 풀이 무성한 풀밭을 가로지른다

구적; (어린 나이에 지나칠 정도로 침착하다.) 소매로 눈물 닦으며 찡그릴 때

구괴; [으아아!] 부악! 청풍의 뒤로 육박한 구괴가 악을 쓰며 지팡이로 맹렬히 청풍을 후려쳐간다. 눈물 콧물 흘리는 상태고.

휘릭! 옆으로 아이들이 앞구르기 하듯 굴러서 피하는 청풍. 그 위로 간발의 차이로 스쳐 지나가는 구괴의 지팡이

구적; [조심해라!] 날아오며 다급히 외치고

[!] 구괴도 무언가 느끼고 눈 부릅뜰 때

피핑! 구르던 몸을 일으키며 휘두르는 청풍의 손에서 별 모양의 표창 두 개가 구괴에게 날아가고

구괴; [억!] 팅! 핏! 표창 하나는 구괴의 지팡이에 맞아 튕겨지지만 다른 하나는 구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피를 튀게 만든다

구적; (어디서 저런 괴물이...) 쩍! 칼을 뽑으며 날아오고. 얼굴에 상처가 난 구괴는 비틀거리며 내려서고

청풍; [독공의 고수들이라 독 묻은 표창도 소용이 없는 건가?] 슥! 고개 갸웃하며 일어나고

구괴; [이 개새끼가...] 부악!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청풍을 덮치지만

콱! 이번에도 바닥을 밟은 구괴에 발이 철질려에 찔린다.

구괴; [아이쿠!] 콰당탕! 뒤로 발랑 넘어지고. 칼 뽑은 채 달려오던 구적이 놀라 급히 멈춰서고

구괴; [밟... 밟지 않도록 조심해라! 저 죽일 놈이 또 철질려를 뿌렸다.] 나뒹군 자세로 철질려가 박힌 발을 쳐들며 구적에게 외치고

청풍; [눈치 챘어도 소용없어. 이 주변은 풀로 덮혀 있어서 어디에 철질려가 뿌려져 있는지 보이지 않을 테니까.] 웃으며 돌아서고.

구적; [멀찍이 우회해서 잡으러 가자!] 팟! 옆으로 달리며 외치고.

구괴; [기필코 잡아서 찢어죽이고 말겠다!] 역시 쩔뚝거리며 반대쪽으로 달려가고. 하지만

청풍; [나하고 노닥거릴 여유는 없을 텐데...?] 웃으며 자기 앞쪽을 가리키고

[!] [!] 옆으로 달리던 구적과 구괴 눈 부릅

[저기 있다!] [색마살귀를 잡아라!] [놓치지 마라!] 강변을 따라 수십명의 관병들이 달려오며 고함을 지르고. 분이가 불러온 관병들이고

<관병들!> 얼굴 이지러지는 망산쌍독

청풍; [저자들이에요!] 복면을 벗으며 관병들에게 외치고. 한손은 망산쌍독을 가리키고

청풍; [저 인간들이 사당 안에서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어요.] 관병들에게 달려가며 순진한 표정으로 외치고, 그러자

[잡아라!] [절대 놓치면 안된다.] [거기 서라 이 마귀들아!] 관병들이 고함 지르며 청풍이 손짓하는 대로 망산 쌍독을 향해 달려가고

구괴; [저... 저 교활한 여우새끼...] 치를 떨고.

구적; (관병들까지 달고 오고... 정말 치밀한 놈이다.) 달려오는 관병들을 지나치면서 돌아보는 청풍을 보며 굳어진 얼굴.

구괴; [젠장! 관부와 시비 붙어서 좋을 거 없다. 빨리 여길 뜨자!] 쩔뚝거리며 사당 쪽으로 달려가고

구적; [그러세.] 멀어지는 청풍을 돌아보며 구괴를 따라가고

삐익! 삑! 사당으로 달려가며 휘파람을 부는 구괴, 그러자

쉬쉭! 쉭! 사당에서 날 듯이 기어 나오는 투명한 뱀들

휘익! 휙! 그 뱀들은 달려온 구괴와 구적이 내미는 호로병으로 날아 들어가고

[뱀까지 부리고...] [수상한 놈들이 분명하다.] [이놈들! 순순히 오라를 받아라!] 관병들이 외치며 사당으로 달려가고. 청풍이 지나치지만 관병들은 청풍을 보지 않는다

뱀들을 수습한 망산쌍독은 몸을 날려 멀어지고

[잡아라!] [거기 서라 이놈들아!] [멈추지 못할까?] 관병들이 망산쌍독을 따라가며 외치고

청풍; (망산쌍독...) 강변을 따라 걸어가며 생각하고 곁눈질로 사당 쪽을 보면서

청풍; (할아버지가 작성하신 강호인명록(江湖人名錄)에 의하면 북망산에 자리한 독묘파라는 문파의 공동문주인 자들인데...)

청풍; (독을 쓰는 재주로는 무림을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저자들이 무슨 일로 금릉에 나타난 것일까?)

청풍; (애들을 풀어서 뒤를 좀 캐봐야겠다.)

청풍; (물론 그전에 조져놓을 놈들이 있긴 하지만...) 나이답지 않게 음산한 표정이 되고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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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십오년후(十五年後)> 강변에 세워진 거대한 도시. 도시의 동쪽으로는 높은 산이 있다. 때는 저녁 무렵이고

<-금릉(金陵)> 아주 번화한 거리. 폭이 20미터쯤 되는 넓은 길인데 좌우로 가게들이 즐비하고. 사람들도 북적인다

사람들 틈에 산적이나 땅꾼 분위기인 중년의 사내 둘이 걸어오면서 오가는 여자들을 힐끔 거린다. 쌍둥이라 얼굴은 똑같은데 차이점은 한 놈은 둥그스름한 윗부분을 천으로 감싼 지팡이를 들었고 다른 놈은 시커먼 쇠퉁소를 하나 들고 있다. 둘 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눈깔이 흰자위가 없이 새카맣다. 허리춤에는 각기 휘어진 칼 한 자루씩과 큼직한 호로병 하나, 몇 개의 주머니를 달고 있다. 야만인같이 흉악한 인상인 이자들의 이름은 망산쌍독. 독을 잘 쓰는 자들이다.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조연들로 이름은 구괴와 구적. 나중에 한번 더 출연할 예정인 자들

구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明)나라의 황도(皇都)였던 금릉에 오면 발에 차이는 게 미녀라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만.] [세 걸음에 한번 이상씩 눈 돌아가게 만드는 년들이 눈에 띠니 말이야.] 지팡이를 든 놈이 눈이 벌개져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두놈을 힐끔거리고

구적; [정신 차려 임마!] 쇠퉁소로 구괴의 어깨를 툭 치며 웃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망산쌍독(邙山雙毒) 중 구적(具笛)>

구적; [그렇게 두리번거리면 촌구석에서 처음 대처(大處)에 나온 티가 너무 나잖아.] 옆쪽을 고개 짓 하고. 지나가던 여자들이 키득거리며 둘을 보고 있고

구괴; [쪽 좀 팔리면 어떠냐 적(笛)아? 대신 눈이 호강하는데...] 상관하지 않고 두리번거리며 여자 구경하고. 배경으로 나레이션. <-망산쌍독중 구괴(具拐)>

구적; [하여간 밝히긴...] 피식 웃고

구괴; [오늘 밤이 기대가 되는구만. 듣자하니 한왕(漢王) 주고후(朱高煦)가 손님 대접 하나는 화끈하다고 하니...] 입맛 다시며

구적; [그렇긴 하다만...] 찡그리고

구적; [한왕의 초청에 응한 게 과연 잘한 짓인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한숨 쉬며 말하고

구괴; [왜?] 돌아보고

구괴; [뭔가 찜찜한 기분이라도 드는 거냐?] 두리번거리며 건성으로 묻고

구적; [무림사를 통틀어 봐도 황실과 엮였던 무림인 치고 끝이 좋았던 인간은 찾아보기 힘들다.]

구적; [대우와 제안이 파격적이어서 한왕의 초청에 응하긴 했다만...] [반드시 뒷탈이 생길 것같은 생각이 든다.]

구적; [게다가 한왕은 형인 황태자 주고치(朱高熾)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 + 구괴; [걱정도 팔자다.] 다시 주변의 여자들 구경하며 피식 웃고

구괴; [적당히 챙길 거 챙기고 아니다 싶으면 튀면 되지 벌써부터 걱정을 사서하냐?]

구적; [나도 괴(拐), 너처럼 근심 없고 생각 없으면 좋겠다.] 한숨

구적; [하물며 우린 지금 악독하기로는 천하제일인 서(西) 늙은이에게 쫓기고 있는 중인데...] 말할 때. + [거기 서지 못해 이놈들아?]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고

[내 사과 내놔라 이놈들아!] 이십여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노점상을 하던 작달막한 체구의 노인이 지팡이를 머리 위로 휘두르며 고래고래 고함지르면서 달려오고. 그 앞에서 두명의 소년이 품에 여러 개의 사과를 끌어안은 채 희희덕 거리며 달려온다. 덩치가 어른만한 건장한 소년과 얍삽한 인상의 소년. <건곤일척 자료집 4페이지>에 철두와 정칠의 어린 시절. 이때 두놈의 나이는 17세. 하지만 철두는 이미 체격이 어른만하다. 반면 정칠은 평균보다 좀 작아서 중학생 정도의 체격이고

[비켜요!] [지나갑시다!] 히히덕거리며 사람들 헤집고 달려오는 철두와 정칠. 사람들 눈 흘기면서도 급히 피하고

구괴; [금릉 뒷골목의 악동들인 모양이로군.] 웃으며 보고. 철두와 정칠은 구괴와 구적 쪽으로 달려오는 중이다.

구적; [한창 좋을 때지. 먹고 노는 것 외에는 근심 걱정도 없을 테니...] 역시 웃는데

철두; [야 빨리 와!] 정칠을 뒤돌아보면서 달려오고. 바로 앞에 구적이 있다.

철두; [어이쿠!] 퍽! 어깨로 구적과 부딪히며 비명 지르고, 물론 구적은 꿈쩍도 않는데

슥! 철두의 손이 아주 빠르게 구적의 품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고

정칠; [비... 비켜요!] 쾅! 정칠도 구괴와 부딪힌다. 역시 구괴도 꿈쩍도 앉고

[아이쿠!] [으헥!] 구적과 구괴와 부딪혀서 바닥에 나자빠지는 철두와 정칠. 안고 있던 사과는 바닥에 흩어지고. 주변 사람들 기겁하며 물러서고

[그 못된 놈들 좀 잡아주쇼! 오늘 제대로 매타작을 해야겠소!] 노점상 노인이 고래 고래 고함 지르며 사람들 사이에서 달려오고

철두; [튀... 튀자!] 재빨리 기어서 일어나려 하고 + 정칠; [히익!] 역시 엉금 엉금 기며 달아나려 하고. 하지만 그 직후

콱! 철두의 멱살을 한손으로 쥐어 쳐드는 구적. 구적과 철두는 키가 거의 비슷하지만 답싹 쳐들려진다

콰득! 정칠의 목을 움켜잡는 구괴

철두; [젠... 젠장! 이거 놓지 못해?] 구적에게 멱살이 잡혀 쳐들린 채 버둥 대고. + 정칠; [끄윽! 왜... 왜. 이래요?] 목이 잡혀 눈이 돌아가고

구적; [갈 때 가더라도 어르신들 물건은 돌려줘야하지 않겠냐?] 웃으면서 왼손으로 철두의 품속을 뒤지고. 사색이 되는 철두

다시 빼낸 구적의 손에는 돈주머니가 들려있다. 구괴도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정칠의 품을 뒤지고 있고

구적; [어라! 내 전낭(錢囊;돈주머니)이 어째서 네놈 품에서 나오는 걸까?] 돈주머니 쳐들어 보이며 웃고.

구괴; [신기하네. 내 전낭도 이놈 품으로 옮겨갔구만.] 역시 정칠의 품에서 돈 주머니 하나를 꺼내며 웃고

[뭐야 저놈들?] [이제 보니 소매치기들이었잖아.] [허튼 짓 하다가 딱 걸렸구만.] 주변 사람들 상황 알아차리고 눈 흘기며 철두와 정칠을 보고. 그때

[잘... 잘 하셨소 어르신들!] 헐떡이며 현장에 도착하는 노인

노인; [그놈들은 이 근방에서 아주 악명 높은 말썽장이들이오.] 바닥에 흩어진 사과를 줍고

노인; [도둑질에 소매치기에...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놈들이니 눈물을 쏙 빼주시구려.] + [어이구 내 사과... 다 곯아터졌어.] 옷자락에 사과를 주어 담으며 철두들에게 눈을 흘기고

구적; [그건 걱정 마시오 노인장.] 웃고

구적; [이놈들로 하여금 두 번 다시 도둑질을 못하게 만들어놓을 테니...] 철두의 멱살을 잡은 채 옆의 골목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들 길 비켜주고

구괴; [흐흐흐! 오랜만에 좋은 일을 하게 되었군.] 역시 웃으며 정칠의 목을 쥔 채 구적을 따라간다.

[쌤통이다.] [철두(鐵頭)하고 정칠(鄭七)이 놈, 시장통을 제집처럼 휘젓고 다니며 말썽을 부리더니 임자 제대로 만났군.] [저놈들은 좀 혼이 나야 돼!] 망산쌍독에게 멱살과 목이 잡힌 채 골목으로 끌려들어가는 철두와 정칠을 보며 사람들 고소해하고. 헌데

사람들 틈에 섞여서 울상 짓고 있는 소녀. 분이다. <마면기정> <건곤일척> <아랑힐월>에 모두 출연한 분이 캐릭터를 사용. 분이의 이때 나이는 철두와 정칠, 청풍보다 한 살 어린 15세, 즉 중학교 2-3학년 정도. 분위기도 여중생 분위기. 젖가슴도 약간 나와 있다.

분이; (큰... 큰일이야.)

<한눈에 봐도 저 작자들은 악랄하기 이를 데 없는 무림인들이야.> 히죽거리며 철두와 정칠을 끌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는 망산쌍독을 배경으로 분이의 생각

분이; (서둘러야해!) 홱 돌아서고

분이; (자칫하다가는 철두오빠와 정칠오빠가 죽거나 다치는 수가 있어.) 사람들 헤집고 달려가는 분이. 눈 흘기며 비켜주는 사람들

 

#13>

<-금릉 외곽 해하촌(蟹蝦村)> 달동네 분위기의 마을. 동쪽으로 금릉을 에워싼 높은 성벽이 보이고. 성벽 밖의 마을이다. 빈민들이 사는 곳이라 앞 씬의 금릉선 내부의 넓은 거리와 달리 길도 좁고 게 딱지 같은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좁은 골목에서는 낡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고.

빈민가의 중앙에 자리한 조금 넓은 길 좌우로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술집, 옷 가게, 식료품 점, 푸줏간, 대장간등등이 늘어선 시장통이다. 손님들이 가게 주인과 물건 값을 흥정하고. 제법 활기차고 왁자지껄하다.

시장통 한구석의 골동품 가게. 골목의 가게들 중 제법 큰 규모인데 각가지 골동품들이 가게 앞에 진열되어 있다. 낡은 간판에는 <溫故堂>이라는 글이 고풍스러운 서체로 적혀있다. 간판 자체는 낡았다. 손님들이 골동품 구경하고 만지기도 하지만 응대하는 점원은 없다.

온갖 골동품과 잡동사니가 가득한 가게의 맨 안쪽. 청풍과 천불투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아있다. 탁자 위에는 다섯 개의 똑같은 모양의 사발이 한 줄로 엎어져 있고 천불투가 양손으로 사발을 만지는 중이다. 천불투는 이제 70대 후반, 아주 늙었다. 허리가 구부정하고. 그 앞 의자에 앉아있는 청풍의 나이는 열 여섯 살. 대충 입었지만 멋이 있고 얼굴에는 항상 웃음이 서려있다. 키도 천불투만하다. 너무 어리게 묘사하면 안됨

천불투; [투도(偸盜도둑질)의 기본은 눈이다.] 슥! 슥! 양손으로 천천히 사발들의 위치를 바꾸고 있다. 야바위꾼들의 야바위 놀이를 하는 중인데 사발이 세 개가 아니고 다섯 개라는 게 차이가 난다. 천불투 뒤로는 문이 하나 있다. 안채로 통하는 문이다. 그 문 안쪽에는 작은 정원과 살림집이 있다

천불투; [눈이 좋아야 표적을 정확히 볼 수 있고 눈으로 보는 게 빨라야 진짜와 가짜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윽! 슥! 사발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말하고

천불투; [비단 투도뿐만이 아니다.]

천불투; [남보다 눈이 좋고 보는 게 빠르면 싸움에서도 유리하다.]

천불투; [즉, 무공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것이 시력의 단련인 것이다.] 손을 떼고

천불투; [골라봐라.] 손으로 사발을 권하고

청풍; [이걸로 할게요.] 오른손으로 다섯 개의 사발 중 하나를 가리키고.

천불투; [잘 골랐다.] 딸칵! 사발을 쥐어 열어 보이고.

천불투; [그다지 빠르게 섞지 않았으니 어지간한 관찰력만 있어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젖혀지는 사발 안에는 작은 주사위가 하나 들어있고.

천불투;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겨뤄보자.] 다시 사발로 주사위를 덮고.

천불투; [할애비의 손을 눈으로 따라잡을 수 있으면 따라잡아봐라.] 샤샤샤샥! 엄청난 속도로 사발의 위치를 바꾸며 뒤섞는 천불투

천불투; (다른 건 몰라도 손 빠르기로는 세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부다.) 샤샤샤샥!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사발들의 자리를 바꾸는 천불투. 손을 흐릿하게 묘사.

천불투; (청풍(淸風) 네 녀석이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눈썰미가 좋은 건 알지만 내 손 기술을 따라잡지는 못...) + [!] 생각하다가 흠칫! 하고

청풍이 지루한 듯 하품을 하고 있다.

천불투; (욘석이 대놓고 지루한 티를 내?) 팟! 눈 부라리며 손을 멈추고

천불투; [자! 이번에는 어느 사발에 주사위가 들어있는지 맞춰봐라.] 눈 흘기며 권하고

청풍; [이거요!] 오른손으로 대충 한 개의 사발을 가리키고

천불투; [틀렸다 욘석아!] 턱! 다른 사발을 잡고. 청풍도 동시에 탁자에 오른손을 얹어놓고. 동시에

툭! 발로 탁자의 다리를 건드리는 청풍

사발을 조금 젖히던 천불투의 귀가 쫑긋! 해지고

눈이 살짝 옆으로 움직여서 청풍의 발이 건드린 탁자 다리 쪽으로 움직이는 천불투

약간 웃는 청풍의 입 꼬리

천불투; [주사위는 이 사발에 들어있...] + [엇!] 사발을 젖히며 집어 들다가 눈 치뜨고

쿵! 사발 안에 아무것도 없다

천불투; [이럴 리가 없는데...] 어리둥절할 때

청풍; [이번에도 제가 이겼네요.] 슥! 말하며 자기가 가리킨 사발을 한 손으로 덮어서 집어든다

스륵! 사발을 집어 드는 동작에 따라 청풍의 소매 속에서 작은 주사위가 굴러 내려서

딸칵! 완전히 젖혀지는 사발 아래쪽에 떨어지는 주사위

청풍; [어때요?] 의기양양하게 사발을 완전히 들고

쿵! 사발이 들려진 곳에는 주사위가 놓여있고

천불투; [허어!] 놀라 눈 치뜨고

청풍; [제가 주사위 들어있는 사발을 제대로 골랐지요?] 왼손으로 주사위를 집어들고

천불투; [분명 이 사발에 들어있었는데...] 사발을 든 채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갸웃하고.

청풍; [사발이 다섯 개나 되니 자리를 바꾸는 도중에 착각하셨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딸그랑! 주사위를 오른손에 든 사발에 넣으며 웃고

천불투; [그런가?] 갸웃하고. 그때

[청풍오빠!] 외치는 소리에 돌아보는 청풍과 천불투

분이; [큰일... 큰일 났어 청풍오빠!] 타탁!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분이. 시장통 사람들이 뭔 일인가 하며 들여다 보고 있고

청풍; [분(芬)이야!] 사발 내려놓으며 돌아보고

천풍;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냐?] 자신에게 달려드는 분이를 보며 묻고

분이; [가면서... 가면서 얘기할게! 빨리 나하고 같이 가!] 청풍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헐떡이고. 그러다가

분이;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뒤늦게 천불투에게 인사하고.

천불투; [참 빨리도 아는 척 한다.] 웃고

천불투; [네 녀석 눈에는 청풍이만 보이지?] 눈 흘기고

분이;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얼굴 발그레

분이; [급한 일이 생겼어요. 청풍오빠 좀 빌려갈게요.] 청풍을 끌고 입구로 가며 천불투에게 말하고

천불투; [오냐! 잘 쓰고 돌려주려무나.] 웃고

청풍; [내가 물건이냐? 빌려가게?] 웃으며 분이에게 끌려 가게 입구쪽으로 가고.

청풍; [그런데 큰일 났다는 게 무슨 소리냐?] 분이와 함께 입구로 가면서

분이; [철두오빠와 정칠오빠가 험상궂은 사람들에게 끌려갔어.] 울상

청풍; [그래?] 눈 번뜩! 이고

가게 안에서 사발을 정리하던 천불투도 힐끔 돌아보고

분이; [구하러 가는 게 늦으면 철두오빠와 정칠 오빠가 죽을 지도 몰라.] 울먹이며 발 동동 구르고

청풍; [다녀오겠습니다.] 입구에 멈춰서며 천불투에게 말하면서 골동품 사이에서 큼직한 주머니를 하나 집어들고

천불투; [오냐! 무슨 소동인지는 모르겠다만 조심하거라.] 대답하며 사발들을 한쪽으로 치우고

청풍; [어머니에게는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온다고 전해주세요.] 주머니를 들고 앞장 서서 달려가며 말하고. 분이가 울먹이며 뒤 따라 달려가고. 시장통 사람들이 뭔 일인가 하며 보고

천불투; [골목대장 노릇도 쉽지가 않구먼. 똘마니들의 말썽이 끊이질 않으니...] 고개 조금 젓고. 그러다가

천불투; [그나저나 노부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된 건가? 손을 쓰면서 실수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찡그리고. 그러다가

멈칫! 하는 천불투

청풍이 발로 탁자 다리를 슬쩍 건드리고. 자신의 눈꼬리가 순간적으로 옆으로 돌아갔던 장면이 머리에 떠오르는 천불투

천불투; [허허허! 그렇게 된 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고

천불투; [내가 주사위가 든 사발을 들기를 기다렸다가 탁자의 다리를 건드렸구먼.]

<그러자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이 잠깐 흔들렸고 그 짧은 순간에 사발 안에서 주사위를 빼냈겠지.> 천불투가 약간 위로 젖힌 사발 속으로 청풍의 손이 아주 빠르게 들어왔다 나가는 장면을 배경으로 천불투의 생각.

천불투; [청풍이 녀석, 눈썰미 뿐 아니라 손을 쓰는 재주도 할애비를 뛰어넘었구먼. 내 눈을 속이고 주사위를 빼낼 정도가 되었으니...] 웃는 천불투.

천불투; (이래서 핏줄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무얼 배워도 그 방면에서는 최고가 되어버리는 걸 보면...) 생각할 때

<아버님!> 덜컹! 누군가 안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온다. 뒤 돌아보는 천불투

온유향; <선술집 과부의 딸 분이가 들렸었던 같던데... 또 청풍이를 데리고 나갔는가요?> 안채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온유향. 눈을 감은 채 쟁반을 들고 나온다. 쟁반에는 찻잔이 얹혀져 있고. 옷차림이 수수하다. 온유향은 말을 못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눈을 감고도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말은 전음으로 하고. 십오년전과 모습이 거의 변화가 없다. 열린 문을 통해 우물이 있는 작은 마당과 마당 건너편에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로 들어찬 서재가 보인다.

천불투; [어서 오너라 아가야.] 열린 문을 등지고 다가오는 온유향을 돌아보면서 일어나고

천불투; [청풍이는 철두와 정칠이 놈이 부린 말썽을 해결하러 갔다.] 청풍이 앉았던 자리로 옮겨 앉고

온유향; <푸줏간 집 아들 철두, 여자 장사하는 작자의 사생아 정칠...> <친구를 사귀어도 어떻게 그런 놈들만 사귀는 건지 원...> 한숨 쉬며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고

천불투; [미안하다.] [애비가 터를 잡고 살아온 동네가 빈민가다 보니 청풍이 또래는 하나같이 가난하고 못 배운 놈들뿐이구나.] 한숨

온유향; <죄송해요. 아버님을 언짢게 해드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의자에 앉으며 고개 숙이고

천불투; [괜잖다. 마음 상해서 한 소리는 아니었으니 신경 쓰지 말거라.] 고개 저으며 찻잔을 집어들고.

온유향; <예...> 한숨

천불투; [그나저나 오늘은 눈 상태가 좀 어떠냐?] 차를 마시면서 온유향의 얼굴 살피고

온유향;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한숨

온유향; <아버님이 수시로 눈에 좋은 약을 구해오시는 데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는군요.> <애만 쓰시게 해서 면목이 없어요.>

천불투;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거라.] [눈 자체에 손상이 생겨서 안 보이는 건 아니니 언제고 시력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게다.]

온유향; <그랬으면 좋겠지만...> 한숨 쉬며 고개 떨구고

천불투; (가엾은 것...) 그런 온유향을 보며 소리없이 한숨 쉬고

 

<십오년전 그때, 유향이는 혀를 물고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날 이후로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 혀를 물어 잘라서 입으로 피를 흘리며 기절한 온유향을 안고 사당 입구로 나오던 자신의 모습 떠올리고

 

천불투; (혀가 잘렸어도 대화는 전음입밀(傳音入密;내공으로 하는 말)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앞이 안보이는 건 대체할 방법이 없는 치명적인 장애인데...) 한숨

천불투; (유향이의 눈이 안보이게 된 데는 두 가지가 가능성이 있다.) 온유향을 보며 생각

천불투; (혀가 잘리는 충격에 잠깐 숨이 멎으면서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았었고...) (그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을 수도 있다.)

천불투; (다른 하나는 유향이가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을 보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시력을 포기했을 가능성이다) 한숨

천불투; (어느 쪽이든 유향이의 눈은 간단히 치료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기적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두 사람의 모습 배경으로 천불투의 생각 나레이션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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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림맹의 정문. 여전히 비가 오고

성루에서 경비 서다가 흠칫! 하며 안쪽을 보는 무사들

안쪽에서 문쪽으로 오고 있는 장세명. 우산을 쓰고 있다. 망토 속에 아기를 안고 있지만 망토가 헐렁해서 티가 나지 않고

<총관님이 또 오셨군!> <순찰 돌고 가신지 얼마나 되었다고...> 긴장하며 돌아서서 성문 안쪽을 보는 무사들.

그 사이에 성문으로 다가오는 장세명. 성루 아래 성문에도 몇 명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다가 인사한다

장세명; [성벽 바깥 쪽을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겠다.] 다가오며 말하고

[예!] [다녀오십시오 총관님.] 덜컹! 쪽문을 열며 대답하는 무사들

장세명;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문을 닫고 기다려라.] 쪽문으로 나가며 말하는 장세명

밖으로 나서는 장세명. 뒤에서 쪽문을 닫는 무사들

닫히는 쪽문 쪽을 곁눈질하며 성벽을 따라 걸어가는 장세명

장세명; (내가 살아서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성벽을 따라 걸어가다가

장세명; (오늘 죽지 않는다 해도 차마 맹주님을 뵐 면목이 없으니...) 입술 깨물며 멈춰서고

장세명; (맹주님...) 성벽 쪽으로 돌아서고

장세명; (죄 많은 장세명, 죽음으로 죄의 값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눈물 떨구며 고개 숙인다

<총관님이 저기서 왜 저러시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시기라도 한 건가?> 성루 위의 무사들 옆을 보며 갸웃하고. 우산을 쓴 장세명이 성벽쪽으로 서있는 게 보인다. 고개 숙이고 울고 있지만 우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천마련에 대한 소탕전을 앞둔 시점이라 생각이 많으신 모양이군.> 성루 위 무사들의 신경이 온통 장세명 쪽으로 향해 있을 때

스윽! 구렁이처럼 성벽을 넘어서 무림맹 밖으로 나오는 사람의 형상. 물론 천불투다. 도마뱀처럼 네발로 성벽에 붙어서 머리가 아래로 하게 내려가며 성루쪽을 살핀다. 성루쪽과는 거리가 좀 있고

천불투; (장세명이 시선을 끌어준 덕분에 무사히 무림맹 밖으로 빠져 나오긴 했는데...) 슥! 성벽 아래 풀 숲으로 몸을 숨기며 장세명 쪽을 보고. 이제 장세명은 돌아서서 성벽을 따라 가고 있다.

천불투; (곧 벌어질 대소동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가능한 멀리 달아나야만 한다.) 몸을 숙인 채 풀숲을 헤치고 빠르게 달아난다. 장세명이 가는 쪽과 반대 방향이다

 

#8>

무림맹 뒤쪽의 험준한 바위산. 여전히 비가 오고 깊은 밤이다.

바위산의 험하고 깊은 산중. 절벽 위에 세워진 낡은 사당이 한 채 있고. 문은 떨어져 나갔다

절벽 위로 난 길을 통해 사당쪽으로 날아오고 있는 장세명. 망토는 둘렀지만 우산은 쓰고 있지 않다. 두 팔을 망토 안에 넣고 있어 몸통만 날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영부인과 아드님이 무사하기를 바란다면 오늘밤이 가기 전에 사자천존의 아들 초무궁(楚無窮)을 산신묘(山神廟)로 데리고 오셔야만 할 것이오. -귀면지존(鬼面至尊)> 편지와 함께 놓인 반지를 떠올리는 분노한 표정의 장세명

장세명; (실수했다!) 이를 악물고

장세명; (천마련에 대한 공략이 끝날 때까지 집사람을 친정으로 보내는 게 아니었다.) 망토 속에서 조금 꺼내 펴보는 오른 손. 오른손의 손바닥에는 위쪽 회상 속의 그 반지가 얹혀져 있고. 왼팔로는 담요에 쌓인 아기를 안고 있다

장세명; (집사람이 연로하신 장모님 걱정으로 눈물 마를 날이 없기에 친정에 가게 했던 것인데...) (도중 어떤 자들에게 사로잡혀버렸다.)

장세명; (물론 궁지에 몰린 천마련의 짓일 테고...) 휘익! 이를 악물고 날아가고. 이제 바로 앞에 사당이다.

장세명; (날 믿고 중용해주신 맹주님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집사람과 청풍(淸風)이가 끔찍한 일을 당하게 할 수는 없으니...) 휘릭! 사당 앞에 내려서는 장세명. 이어

장세명; [나와라 귀면지존!] [네놈이 원한 대로 나 장세명이 왔다.] 어둠에 덮인 사당을 노려보며 외치고. 그러자

<신행철필 장세명...> 흐흐흐! 웃음소리가 사당 안에서 들리더니

<철심장부(鐵心丈夫)로 소문난 너도 어쩔 수 없는 아비이고 남편이로구나.> 스윽! 사당의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귀신 가면. <아랑힐월>등에 나온 귀면지존이 쓰는 귀신 가면. 그 배경으로 웃음소리와 말 소리가 들리더니

귀면지존; [겨우 아들과 마누라의 목숨 때문에 충성을 맹세한 주인을 배신하다니 말이야.] 스윽! 사당에서 밖으로 나서는 귀면지존. 얼굴에 쓴 귀신 가면은 하얗지만 몸에 걸친 옷은 검어서 어둠 속에 귀신 가면만 떠있었던 것 같았다.

장세명; [개소리 말고... 내 아내와 아들이 무사하다는 걸 증명해보여라.] 이를 갈고

귀면지존; [당연히 그래야겠지?] 딱! 손가락 퉁기고

팟! 사당 안에 불이 밝혀지며 밝아지고

쿵! 사당 안의 광경. 순하게 생긴 이십대 중반의 미녀가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채 무릎 꿇고 있고 그런 여자 주변에 칼을 빼든 복면인들 5-6명이 서서 위협하고 있다. 복면인들 중 한명은 덩치가 큰 꼽추다. 복면인들에게 에워싸인 여자는 바로 장세명의 부인이고 강보에 싸인 아기는 장세명의 아들이다. 장세명 부인의 이름은 온유향. <마면기정 자료집 21페이지>에 나온 온유향 캐릭터. 주혜금과 비슷한 시기에 아기를 낳아서 주혜금의 아들인 초무궁의 유모 역할도 했다. 온유향이 안고 있는 아기의 이름은 장청풍. 나중에 귀면지존에게 이용당하는 캐릭터. <아랑힐월>의 풍청처럼

장세명; [부인!] 다급히 외치고

장세명; [무사하시오? 다친 곳은 없소?]

온유향; [상공...] 겁에 질린 표정

온유향; [저는... 신첩은 무사해요. 청풍이도 별 탈 없구요.] 아기를 꼭 안고 말하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장세명의 처 온유향(溫柔香)>

장세명; [조금만 더 견디시오. 곧 장모님을 만나 뵐 수 있게 해줄 테니...] 말하며 귀면지존에게 시선을 돌리고. 그러자

온유향; [상... 상공! 설마...] 무언가 깨닫고 눈 치뜨는데

장세명; [네가 원하는 대로 소맹주를 데려왔다.] 촤락! 오른손으로 망토를 젖혀서 왼팔로 안고 있는 아기를 보여주고.

온유향; [흐윽!] 진저리를 치고

귀면지존; (온가년의 반응을 보니 저 애새끼가 초패강의 아들 초무궁인 건 확실하겠군.) 곁눈질로 자기 뒷쪽 사당 안의 온유향을 보고

장세명; [소맹주를 원한다면 아내와 내 아들을 이리로 보내라.] 아기를 보여주며 귀면지존을 노려보고

귀면지존; [현명한 판단을 했구나 장세명!] 짝짝 박수치고

귀면지존; [아무리 사자천존과의 의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마누라와 아들의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 웃고

수치스러운 표정으로 노려보는 장세명

귀면지존; [초패강의 아들놈을 이리 던져라. 그럼 네 마누라와 아들 놈은 풀어주겠다.] 손을 내밀고

장세명; [너도 사내대장부라면 약속은 지키리라 믿...] 말하며 두 손으로 아기를 들어 던지려 하고. 그때 + 온유향; [안돼요!] 악을 쓰는 소리가 들리고

움찔! 하며 아기를 던지려던 동작을 멈추는 장세명.

온유향;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요! 우리 모자를 살리려고 맹주님의 핏줄을 납치하다니요.] 순한 표정과 어울리지 않게 악을 쓰고. 주변의 복면인들 당황하며 칼을 들이밀고. 귀면지존도 흠칫! 하며 돌아보고

온유향; [당신은... 상공은 이제껏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오신 대장부시잖아요.] [제가 당신을 존경하는 이유도 당신의 그 올곧은 성품 때문이었구요.]

장세명; [부... 부인...] 수치심

온유향; [맹주님과 주모님께서 우리 가족을 어떻게 대해주셨는데...] [그분들께 죄를 짓고 무슨 면목으로 살아갈 수 있겠어요?] 애절하게 울며 외치고

귀면지존; [그 계집 좀 조용히 시켜라! 귀가 따갑다!] 복면인들에게 말하고.

[예 귀면지존님!] [조용히 하지 못해?] [아가리 닥쳐라!] 사방에서 칼을 들이대며 온유향을 협박하는 복면인들.

장세명; [해... 해치지 마라!] 다급히 외치고. 하지만 그 직후

온유향; [안녕히 계셔요 상공!] 울며 웃으며 사당 밖의 장세명을 보고

장세명; (설마!) 눈 부릅 뜰 때

온유향; [부디 우리 모자 때문에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는 죄를 짓지 마세요.] 콱! 말하고는 혀를 강하게 문다. 복면인들 깜짝 놀라고

장세명; [안돼!] 비명 지르고

귀면지존; (아차!) 눈 부릅

푸학! 혀를 깨물어서 입으로 잘린 혀와 피를 뿜어내며 앞으로 쓰러지는 온유향

후두둑! 피가 안고 있는 아기의 몸에 뿌려지고

장세명; [부인!] 비명 지르고

털썩! 나뒹구는 온유향. 그 바람에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떨구고.

[으아아앙!] 바닥에 나뒹굴자 잠에서 깨어나 자지러지게 우는 강보의 아기

<이런 독한 계집이...> <제 혀를 깨물어 완전히 잘라버렸다.> 혀를 물고 엎드려 벌벌 떠는 온유향. 그 앞에서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질색하는 복면인들

귀면지존; [장세명! 네 마누라 일은 유감이지만...] + [!] 돌아보다가 눈 부릅

팟! 장세명이 이를 악물고 몸을 날리고 있다. 왔던 곳으로 날아가고 있고

귀면지존; [잡... 잡아라!] 팟! 외치며 추격하고. 사당 안의 복면인들도 깜짝 놀라 돌아보고

귀면지존; [장가를 놓치면 안된다! 막아라!] 외치며 사당 밖으로 날아가고. 사당 안의 복면인들도 급히 따라가고. 복면인들 중 덩치 큰 꼽추만 현장에 남아서 죽어가는 온유향을 지킨다. 이 꼽추는 <마면기정> <아랑힐월>등에 나온 <타노> 캐릭터

 

#9>

장세명; (용서하시오 부인! 용서하시오.) 쐐액! 이를 악물며 왔던 길로 날아가고. 얼굴이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되었고. 날아가는 길 한쪽은 깎아지른 절벽이다, 절벽 위에 난 길임을 주의

장세명; (혈육의 정에 눈이 멀어서 당신을 부끄럽게 만든 날 용서하시오.) 쐐액! 화악! 날아가는 앞쪽에서 복면을 쓴 자들이 날아올라 공격해온다. 여기저기 풀 숲과 바위 뒤에 숨어있었고. 하지만

슈학! 질풍같이 그자들을 피해 빠져나가는 장세명

[헉! 빠르다!] [과연 신행철필이라는 별호답다!] [막... 막아라!] 장세명을 막지 못하자 당황하며 돌아보는 복면인들

[멈춰라!] [네놈이 갈 곳은 없다!] [가려거든 사자천존의 아들 놈은 놓고 가라!] 휘익! 쐐액! 연달아 앞쪽에서 날아오르며 공격하는 복면인들

콱! 날아가며 망토 속 허리에 차고 있던 강철로 만든 붓을 잡는 장세명

장세명; [비켜라!] 쩍! 서걱! 붓을 그어내며 앞으로 날아가는 장세명. 붓을 휘두르는 대로 허공에 <永>자가 생기고

[크악!] [컥!] [조... 조심해라! 저 놈의 독문수법인 영자필법(永字筆法)이다!] 허공에 생긴 영자에 스쳐 죽거나 막아도 충격을 받고 튕겨지는 복면인들. 피하면서 무기를 휘둘러 반격하는 복면인들도 있고

퍼억! 철퍽! 죽거나 다쳐서 물이 고인 바닥에 나뒹구는 복면인들. 하지만

쩍! 서걱! 후두둑! 장세명도 몸에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걸치고 있던 망토도 누더기가 된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날아가고

장세명; (조금만... 조금만 더...) 쐐액! 몸에서 피를 뿌리며 절벽을 따라 날아간다

장세명; (저 모퉁이만 돌아가면 소리를 질러 무림맹에 구조를 요청할 수 있다!) 절벽을 따라 난 길을 날아간다. 앞쪽에 모퉁이가 있고.

[여기까지다!] [더는 못 간다!] 휘익! 쐐액! 모퉁이 근처에서 열명 이상의 복면인들이 날아올라 장세명을 막으려 하고

장세명; [크아!] 콱! 붓을 내밀며 붓의 손잡이 부분을 강하게 움켜쥔다. 그러자

펑! 붓 끝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가는 쇠로 이루어진 붓의 털 부분이 앞으로 터져나간다. 수십 수백개의 쇠침이 튀어나가는 모습이고. 마치 크레이모아처럼

[크악!] [컥!] 퍼퍽! 퍽! 붓의 끝에서 터져나간 쇠침에 꽂혀 몰살당하는 복면인들. 쇠침은 모두 한 뼘 이상이 길이였다.

장세명; (됐다!) 쐐액! 쇠침에 꽂혀 나뒹굴고 떨어지는 복면인들을 뚫고 앞으로 쇄도한다.

그런 장세명의 앞쪽으로 모퉁이가 확 다가오고. 하지만 그 직후

[!] 오싹! 한기가 느껴져서 눈을 부릅뜨는 장세명의 앞 얼굴. 그런 장세명의 뒤쪽에서 시뻘건 손이 장세명을 움켜쥐어온다. 손 크기는 사람만 한데 깡말랐으며 손가락 끝에 달린 손톱은 면도날처럼 날카롭다

장세명; (위험!) 팟! 팽! 전력을 다해 몸을 확 돌리며 옆으로 피한다. 절벽 쪽이고

파바다닥! 그 바람에 흩날리는 찢어진 망토. 그와 함께 망토가 벌어지며 장세명이 왼팔로 안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드러나는데 아기가 손에 쥐고 있는 목걸이가 망토와 함께 흩날린다

쩍! 콰직! 간발의 차이로 장세명의 몸을 스치며 움켜쥐어지는 거대한 손. 장세명의 몸 대신 망토와 아기가 쥐고 있던 목걸이를 움켜 잡는다

휘익! 절벽 쪽으로 내려서는 장세명

화악! 그 앞에 나타나는 귀면지존. 오른손이 거대해진 상태인데 그 손아귀에 찢겨진 망토와 아기가 쥐고 있던 목걸이가 쥐어져 있다.

장세명; (위험했다!) 뒤로 비틀하며 물러서고. 하지만 직후

미끈! 발이 빗물로 미끄러워진 바위에서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는 장세명. 뒤로 넘어진다

[!] 귀면지존이 눈 부릅 뜰 때

장세명; [허억!] 비명 지르며 균형을 잃고 추락한다. 등이 아래로 향한 채

귀면지존; [이런...] 팟! 급히 절벽 끝으로 날아가고.

휘릭! 절벽 끝에 멈춰서며 아래를 보는 귀면지존. 하지만

쏴아아! 비가 쏟아지는 절벽 아래는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귀면지존님!] [죄송합니다!] [속하들이 무능해서 장가를 막지 못했습니다.] 휙! 휘릭! 뒤늦게 도착하는 복면인들

귀면지존; [허튼 소리 할 시간 있으면 아래로 내려가서 장가와 사자천존 아들놈의 생사나 확인해라.] 신경질 내고. 오른손은 여전히 거대한 상태. 그러자

[존... 존명!] [즉시 내려가 확인하겠습니다.] 겁애 질려 대답하는 복면인들. 이어

[비 때문에 미끄럽다 조심해라.] [발 딛을 수 있는 곳을 확인하고 내려가라.] 절벽 끝으로 와서 여기저기 살피는 복면인들. 내려가는 자들도 있고

곧 개미떼같이 절벽에 붙어서 조심스럽게 내려가는 복면인들

귀면지존; [다 된 밥에 코 빠트린 격이 되었군.] 바득! 가면 속에서 이를 갈고.

귀면지존; [사자천존 초패강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그자의 아들 초무궁뿐이었는데...] 슈우! 움켜쥐는 오른손이 줄어들어 원래 크기가 되고

귀면지존; [오제(五帝)의 후손일 게 분명한 초패강을 무공으로 어쩌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 [!] 오른손을 내려다보며 눈 번뜩

줄어든 그자의 오른손에 찢어진 망토와 함께 아기가 쥐고 있던 목걸이가 쥐어져 있다

귀면지존; [이 목걸이...] 왼손으로 목걸이를 집어 들고

귀면지존; [초무궁이 지니고 있었던 이 목걸이를 잘만 이용하면...] 눈 번뜩이고.

귀면지존; [장세명이 초패강의 아들놈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즉, 이 목걸이만 있으면 다른 애새끼를 초패강의 아들 놈으로 위장할 수 있는 것이다.] 흥분하며 혀가 잘린 채 쓰러진 온유향이 안고 있던 아기를 떠올리고

귀면지존; [고맙다 장세명! 어쨌든 네놈 덕분에 사자천존 초패강을 치울 수 있게 되었으니...] 흐흐흐! 화악! 웃으며 날아올라서

사당 쪽으로 날아가는 귀면지존.

 

#10>

무림맹

[!] [!] 월동문으로 들어오다가 기겁하는 죽립에 도롱이 쓴 무사들 서너명

월동문 안쪽은 사자천존의 아내 주혜금의 거처. 마당에는 여자 무사들이 쓰러져 있고.

열려진 문을 통해 건물의 거실에 진의원과 환설이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주모님과 소맹주님 신상에 변고가 생겼다!] [맹주님께 보고하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본맹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라!] [주모님!] [소맹주님!] 아수라장. 외치며 건물로 뛰어드는 자. 다시 월동문 밖으로 달려나가는 자. 호각을 불면서.

 

#11>

앙앙! 다시 사당. 여전히 불이 켜져 있는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복면을 쓴 덩치 큰 꼽추가 사당 안에 서서 바닥을 보고 있다. 바닥에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온유향이 엎드린 자세로 쓰러져 있고. 그 앞쪽에는 피를 뒤집어쓴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귀면지존; [온가 계집의 상태는 어떠냐?] 휘익! 사당 안으로 날아들고. 깜짝 놀라 돌아보는 꼽추 복면인

복면인; [숨... 숨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눈치 보며

복면인; [사실상 송장이 되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귀면지존; [덕분에 번거로운 일이 하나 줄었군.] 징! 진동하는 손으로 강보의 아기를 겨누고

팟! 귀면지존의 손에 끌려 들어와 잡히는 아기. 연신 울어댄다

귀면지존;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이놈아.] 슥! 목걸이를 아기 목에 걸어주고

귀면지존; [사자천존을 속여 넘기기 위한 역할만 아니었으면 네놈도 어미 뒤를 따라갔을 테니...] 목걸이를 걸어준 아기를 내려다보고. 이어

귀면지존; [이 애새끼는 네가 책임지고 보살펴라.] 아기를 꼽추 복면인에게 내밀고

복면인; [예...] 급히 두 손 내밀어 아기를 받고

귀면지존; [장세명! 네놈의 아들놈을 철저히 이용해줄 테니 저승에서나마 본좌에게 거역한 것을 후회하거라.] 흐흐흐! 웃으며 사당 입구로 가고. 복면인도 우는 아기를 안고 따라 간다

으하하하하! 휘익! 웃으며 사당 밖으로 날아가는 귀면지존. 복면인도 아기를 안고 그 뒤를 따라가고

 

시간이 좀 지나고.

이제 사당 안에는 온유향만 쓰러져 있는데

<쯧쯧!> 어디선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고

천불투; [가여운 계집이로구나. 악랄한 인간을 만나 하루아침에 남편과 자식을 잃어야했으니...] 스윽! 사당 안의 어둑한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천불투

천불투;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장세명을 따라왔다가 처참한 광경을 보고 말았도다.) 온유향의 옆에 이르러 내려다보고

천불투; (가엾지 않은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 (너만큼 박복하고 불운한 인생도 드물겠구나.) 한숨 쉬며 몸을 숙여서

천불투;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양지 바른 곳에 묻어주마. 안식이라도 편히 해야할 테니...) 두손으로 온유향의 몸을 안으려 하고. 그러다가

천불투; [이건...] 흠칫! 하고

천불투; [허허! 이런 일이...] 슥! 온유향을 바닥에 바로 누이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눈을 감고 있는 온유향의 얼굴이 드러나고

천불투; (아직 숨이 붙어있다.) 손가락을 굽혀 온유향의 코에 대보고

천불투; (혀가 너무 많이 잘린 탓에 남아있는 혀가 짧아서 기도를 완전히 막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질식을 면할 수 있었던 게고...) 두손으로 온유향의 가슴을 누르고

천불투; (기도를 통해 폐에 들어간 피만 빼주면 살릴 수 있다.) 퍽! 두손으로 온유향의 가슴을 강하게 누르고. 심폐소생술 하듯이. 그러자

[컥!] 쿨럭! 피를 왈칵 토하는 온유향. 숨이 돌아오고

천불투; (됐다!) 안도하며 연신 온유향의 가슴을 누르고

온유향; [끄윽...] 피를 흘리며 벌벌 떠는 온유향. 정신은 차리지 못했지만 숨은 돌아오고.

천불투; (혀가 잘려서 말은 못하겠지만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을 터...) 생각할 때. 삐익! 삑! 멀리서 호각소리가 들리고

천불투; (호각소리와 징소리...) 사당 밖을 돌아보고

천불투; (무림맹의 얼뜨기들이 비로소 사단을 알아차렸구먼.) 냉소하며 두팔로 온유향을 안아들고

천불투; (괜한 불똥이 튀기 전에 여길 벗어나야만 한다.) 온유향을 안고 사당 입구로 가고

<걱정하지 말거라 아가야.> 입으로는 피를 흘리고 감은 눈으로는 눈물 흘리는 온유향을 내려다보며 생각하는 천불투;

<이 늙은 도둑이 힘 닿는 데까지 널 보호해줄 테니...> 스스스! 사라지는 천불투

<무존령을 움치러 왔다가 양녀(養女)로 삼을 가엾은 아이를 하나 얻게 되었구나.> 완전히 사라진다. 그 배경으로 삐익! 삑! 요란한 피리소리들이 멀리서 들리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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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천환일 -偸天換日(하늘을 훔치고 태양을 바꾸다.)


#1>
이하의 나레이션을 한 화면에 배치배경 화면은 고풍스런 중국식 판화 그림으로 할 것엄청난 보물들의 산을 등진 채 화려한 의자에 앉은 패도적인 인상의 인물 앞에 부하 한명이 무릎을 꿇고 앉아서 무언가를 묻는 모습이다그 부하 뒤에는 여러 명의 인물들이 공손히 서서 듣고 있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도척(盜跖)은 부하를 구 천 명이나 거느린 도둑들의 왕()이었다그 도척에게 어느 날 한 부하가 물었다.
[감히 묻사오니 대왕이시어우리 도둑들에게도 도()라는 것이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했다.
[물론 있고 말고!]
[훌륭한 도적이라면 재물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 안다이것을 성()이라 한다.]
[훔치러 들어감에 앞장 서는 것은 용()이오,]
[훔친 후 가장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
[손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는 것을 지()라 하며,]
[훔쳐낸 물건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인()이다!]
[이럴진대 어찌 도적의 길에 도()가 없다고 하랴?]
-장자설(莊子設)>
 
#2>
<-무림맹(武林盟)높고 험준한 바위산을 등지고 세워진 웅장한 성채때는 밤비가 추적 추적 오고 있다계절은 가을이고닫힌 성문 성루 위에 등이 걸려있고 도롱이를 걸친 몇 명의 무사들이 지키고 있다이 장면 배경으로 나레이션
<욱일승천(旭日昇天)-! 이것이 무림맹의 기세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일 것이다.성문을 크로즈 업. <武林盟>이라 적힌 현판이 성문에 걸려있고
<불과 오년전에 결성된 무림맹은 사마외도(邪魔外道)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었던 강호 무림을 일거에 평정해버렸다.성문 위 성루에서 경비를 서는 무림맹 무사들의 모습.
<(), (교체기의 혼란을 틈타 강호 무림을 혼란으로 몰아넣어 왔던 수많은 사파(邪派)와 마도(魔道)의 무리들은 무림맹이 휘두르는 철퇴에 맞아 풍비박산절멸(絶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성문 아래를 내려다보며 흠칫하는 무사 한명
<이 모두가 무림맹을 세운 사자천존(獅子天尊초패강(楚佩岡)이라는 불세출의 기린아에 의해 이루어진 업적이었다.성문 아래쪽성문 옆에 누군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게 보인다.
<채 서른 살도 안된 젊은 천하제일인 사자천존 초패강에 의해 마도와 사파는 바야흐로 종말을 눈 앞에 두게 된 것이다.성문 아래 거적을 뒤집어쓴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인의 모습 크로즈 업
 
덜컥닫혀있는 무림맹의 정문그 구석에 달린 쪽문이 열리며 밖으로 나오는 무사들죽립을 쓰고 도롱이를 걸친 우비 차림이다두명이 나오고 서너명은 문 안쪽에서 내다 본다
[노인장은 뉘시오?]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본맹을 찾아온 거요?] 노인을 흔들며 묻는 밖으로 나온 무사들문 안쪽의 다른 무사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천불투; [... 용서하십쇼 어르신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불빛을 보고 찾아왔습니다요.] 거적 안에서 고개 들며 말하는 노인거지 행색인데 체격도 작고 얼굴도 주름살투성이아주 불쌍하게 보인다직전 작품 <아랑힐월>에 나온 <천불투캐릭터이 작품에서도 별호는 천불투지만 이름은 조구다이때의 나이는 예순살 가량인데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인다이하 천불투로 표기
<늙은 비렁뱅이로군.> <무공은 지니고 있지 않다.눈 번뜩이며 천불투를 살피는 무사들
천불투; [... 날이 밝을 때까지 만이라도 비를 피하게 해주십쇼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요.] 불쌍한 모습으로 애원하고.
<난감하군.> <천마련(千魔聯)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눈앞에 둔 시점이라 우리 무림맹 전체가 초비상 상태인데...> <그렇다고 불쌍한 늙은이를 쫓아 보내는 건 너무 야박한 일이고...무사들 난감하고그때
[무슨 일이냐?] 열린 쪽문 안쪽에서 누군가 다가오며 묻는다문 밖으로 나왔던 무사들 돌아보고
장세명; [날이 밝을 때까지는 일체의 출입을 통제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두 명의 무사를 거느리고 다가오는 장세명좀 초췌하고 지친 표정인데 길고 풍성한 망토로 온몸을 가리고 있고 큼직한 우산을 쓰고 있다따라오는 무사들은 죽립에 도롱이를 걸치고 있고장세명은 무림맹의 총관. <건곤일척 자료집 제18페이지>의 장세명 캐릭터무기는 허리에 차고 있는 상당히 큰 붓이다진짜 붓이 아니고 쇠로 만든 붓인데 우산을 들기 위해 망토에서 왼팔을 꺼낸 탓에 드러난 그 쇠로 만든 붓이 허리 띠에 걸려있음을 보여주고이때 장세명의 나이는 35어딘지 우울하고 근심이 서린 표정으로 묘사
[총관님!] [죄송합니다.] 돌아보며 고개 숙이는 문 밖의 무사들
[길 잃은 노인이 비를 피하고 있기에 보내려던 참이었습니다.] 장세명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무사들
장세명; [길 잃은 노인?] 우산을 쓴 채 쪽문 밖으로 나서며 천불투를 보고배경으로 나레이션. <-무림맹 총관 신행철필(神行鐵筆장세명(張世明)>
<무공은 지니고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위험한 인물은 아닌 것같습니다만...문 밖의 무사들이 전음으로 장세명에게 말하고그 배경으로 문 밖으로 나오는 장세명다른 무사들은 문 안쪽에서 대기하고 있고
쪽문 밖으로 나오며 문 밖의 무사들을 노려보는 장세명그러자
[... 죄송합니다.] [즉시 근처 마을에 데려다 주고 오겠습니다.] 찔끔하는 무사들이어
[갑시다 노인장!] [쉴만한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소이다.] 천불투에게 다가가 일으키려는 무사들
[으으...] 무사들에게 부축되며 헐떡이는 천불투맛이 간 모습이고
(이런...) (몸이 불덩이같다.) 당황하는 무사들찡그리며 그걸 보는 장세명
장세명; [어떤 상태냐?] 한숨 쉬고
[몸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차가운 가을비를 맞아서 중병에 걸린 듯합니다.] 천불투를 부축한 채 장세명을 돌아보고
찡그리는 장세명
[이 이상 비를 맞게 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장세명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무사 한명
장세명; [어쩔 수 없군.] 한숨 쉬며 옆으로 물러서고
장세명; [객관(客館)으로 데려가서 보살펴주어라약당(藥堂)의 진()노사에게 얘기해서 약을 좀 처방해 달라 하고...]
[예 총관님!] [그리 하겠습니다.] 안도하며 굽신거리는 무사들
서둘러 천불투를 좌우에서 부축해서 성문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무사들.
장세명도 따라 들어가고 다른 무사들도 들어와서 문을 닫는다.
천불투를 부축해서 멀어지는 무사들을 보는 장세명
장세명; (공교롭군하필 오늘밤에 예상치 못한 불청객이라니...) 뭔가 고민하는 표정이고
장세명;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자.) + [중요한 시기다경계를 소홀히 하지 마라.] 걸어가며 생각하고
[존명!] [명심하겠습니다.] 뒤의 무사들 포권하며 대답하고
장세명; (몹시 긴 밤이 되겠구나.) 입술 깨물며 한숨우산 쓴 채 걸어간다두텁고 긴 망토 두른 것 주의
 
#3>
여전히 비가 오고 있는 밤무림맹의 다른 곳외부 손님들이 머무는 객관이다영빈관은 아니라 화려하진 않고긴 건물에 수많은 방등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보통 손님 투숙용 건물이다깊은 밤이라 대부분의 객실에는 불이 꺼져 있고오직 한 개의 방에만 불이 켜져 있고그 방 앞에 천불투를 데리고 온 무사들 두명이 서있다한명은 우산을 들고 있고 한명은 등불을 들고 있다.
<별일 없겠지?> <약당의 당주 진()노사는 어의(御醫출신이시잖아설령 죽을병에 걸렸더라도 살려낼 게야.무사들 전음으로 말 주고 받고
<병약하신 주모(主母)님 보살피느라 과로하고 계시는 진노사께 괜한 폐를 끼치는 것같군.> <그러게 말일세.> 무사들이 전음으로 대화 나눌 때
그들이 보고 있던 방에서도 불이 꺼지고
<치료가 끝났군!긴장하는 무사들직후
삐꺽방문이 열리며 의원으로 보이는 예순 살 가량의 노인이 나온다왕진 가방을 든 꼬장꼬장한 인상의 이 노인은 무림맹의 의원인 진씨진의원으로 표기나중에 청풍의 출신내력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함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조연
[어떻습니까 당주님?] 등을 든 무사가 진의원에게 묻고
진의원; [제대로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데다가 찬 비를 맞아서 한증(寒症)이 심해진 것뿐이야.] 두 번째 무사가 건네주는 우산을 받고
진의원; [몸을 보하고 열을 내게 해주는 약제를 먹였으니 한숨 자고 일어나면 쾌차할 걸세.] 우산 쓰며 건물을 등지고 걸어가고
[주모님 간병만으로도 피곤하실 텐데 번거롭게 해드려서 면목이 없습니다.] 등불을 든 무사가 등불로 진의원의 발치를 비쳐주면서 앞서 걸어간다
진의원; [미안해할 거 없어의원(醫員)의 일이란 게 원래 이런 것이니...] 따라가며 말하는데
<저 노인을 받아들인 걸로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요?우산을 건네줬던 무사가 따라가며 전음으로 진의원에게 묻고
진의원; [막일을 해온 덕분인지 골격은 제법 튼튼하네만 무공을 익힌 흔적은 없었네.] 끄덕이고
<그렇다니 다행입니다.안도하는 무사들
<천마련과의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있어서 떨어지는 낙엽조차 주의해야만 하는 시기이니...멀어지는 세 사람 배경으로 무사의 전음
 
#4>
객관의 방어둑하고 좁은 방안의 침대에 이불을 목 아래까지 덮고 누워있는 천불투눈은 감았다
천불투; (갔군.) 눈 감은 채 생각하고그러다가
천불투; (생각했던 대로 무림맹에 잠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천천히 눈을 뜨며 천장을 보고
천불투; (또 무림맹을 출입하는 상인들과 포섭한 하인들을 통해서 사자천존의 거처가 어딘지도 미리 확인해둔 상태고...)
천불투; (사자천존에게는 미안하지만 정파백도가 그에게 만들어 바친 무존령(武尊令)을 반드시 훔쳐내야만 한다.)
천불투;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도척제전(盜蹠祭典)에서 우승하려면 무존령 정도의 보물이 반드시 필요하니...)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도둑들의 세계에는 도척제전(盜蹠祭典)이라는 축제가 존재한다.지하 광장에서 비밀스러운 집회가 열리고 있다단상에는 도척의 거대한 조각상이 앉아있고 그 앞에서 수많은 남녀가 제사를 지내고 있다도둑들인데 제사를 주관하는 늙은 도둑은 검은색의 장갑을 얹은 쟁반을 조각상을 향해 쳐들고 있다손목까지 감싸주는 길이의 검은색 장갑 손등에는 다섯 개의 서로 다른 색의 보석이 박혀있다이 장갑의 이름은 흑령장이다. <마면기정 자료집 25페이지>에 나오는 <천마신갑차용쟁반을 쳐든 늙은 도둑 뒤에는 음침한 인상의 중년 도둑이 무릎을 꿇고 있다.
<도둑들의 영원한 우상인 전설 속의 대도(大盜도척(盜蹠)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이 축제의 우승자에게는 도수(盜首)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부여되며 세상 모든 도둑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도척의 조각상을 등지고 흑령장을 쳐들며 환호에 답하는 음침한 인상의 중년 도둑이 중년 도둑은 당대의 도둑들의 왕인 야유신이다.
<도둑의 길로 들어서 스스로 대도를 자부하는 양상군자(梁上君子;도둑)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귀영화도 권력도 아니다바로 도척제전에서 우승하여 제이(第二)의 도척도수로 불리는 것이다.야유신이 쳐든 검은 장갑 흑령장을 크로즈 업
 
천불투; (나 조구(趙九), 다섯 살에 투도(偸盜;도둑질)의 길로 들어선 후 훔치지 못한 물건이 없었으며...) (덕분에 천불투(天不偸)라는 과분한 이름까지 얻었다.) 천장 보며 생각하고
천불투; (하지만 투도의 세계에도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 때문에 숱한 설움을 겪어왔다.) 주먹 꾸욱
천불투; (변변한 배경도 사승(師承)도 없이 독학으로 도둑질을 배운 나를 족보와 세력이 있는 다른 도둑들이 천시하며 따돌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천불투; (비록 떳떳한 직업은 아니지만 투도는 내 삶의 전부였다.) (그런 날 멸시해온 놈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도척제전에서 도수로 뽑히는 것뿐이다.) 조심스럽게 일어나고
천불투; (그리고 도척제전에서 도수를 선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난이도(難易度).)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천불투; (설령 값이 나가지 않더라도 훔치기 어려운 물건이야말로 최고의 장물(臟物)로 평가받는 것이다.) 심호흡하며 눈을 감고
천불투; (그런 면에서 무림맹 맹주의 상징인 무존령만한 사냥감도 드물다.) 눈을 감은 채 깍지 낀 두 손을 자신의 명치에 대고
천불투; (무존령만 손에 넣으면 이번 도척제전에서의 우승은 거의 확실하다.) 깍지 낀 두 손을 명치에서 조금 떨어트렸다가
아주 강하게 자기 명치를 친다.
빠직감전 당하며 몸을 웅크리는 천불투
천불투; (... 명치에 압축하여 숨겨두었던 공력이 단전(丹田)으로 돌아간다.) 지지지몸을 웅크린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천불투의 몸이 벼락에 휘감기고
천불투; (노부는 천하를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도둑이다.) 억지로 웃고
천불투; (지닌 바 무공을 숨기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굽혔던 몸을 펴며 심호흡하고
천불투; (몸 상태는 최상...) 우둑 우두둑 몸을 움직여보고
천불투; (그럼 일생일대의 사업을 시작해볼까?) 음산하게 웃는 천불투의 얼굴 크로즈 업
 
#5>
여전히 비가 오는 밤무림맹의 웅장한 건물불이 켜져 있고죽립을 쓰고 도롱이를 걸친 무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우산을 쓰고 망토를 두른 채 다가오는 장세명그를 발견하는 무사들
말은 하지 않고 고개만 숙여 인사하는 무사들장세명도 고개만 조금 끄덕여 답례하고
입구에 서서 대청 안쪽을 보는 장세명
대청에서는 회의가 진행중이다수십명이 긴 탁자를 가운데 두고 앉아있다문 정면의 상좌에는 사자천존 초패강이 앉아있다. <건곤일척>에 나온 사자천존의 젊은 시절 모습이때의 나이는 29초패강 앞쪽에는 긴 탁자를 두고 나이 든 무림인들이 죽 앉아있다초패강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곱게 늙은 노파와 거구의 중이 마주 앉아있다두 남녀는 무림맹의 장로들곱게 늙은 노파는 고독신모중은 혈나한두 사람 모두 <건곤일척>에 나오는 고독신모와 혈가람 캐릭터혈가람을 혈나한으로 이름만 바꿈고독신모 옆에는 성깔 있어 보이는 중년의 비구니도 한명 앉아있다이 비구니는 아미파의 장로인 <금정사태>. 금정사태는 <마면기정>에 나온 캐릭터혈나한 옆에는 해학적인 인상에 코가 빨간 늙은 거지가 앉아있다개방의 방주인 <상취신개전형적인 거지에 술 호로를 여러개 허리띠에 차고 있다. <마면기정>에 나왔던 <삼절신개캐릭터에 술 호로를 추가
혈나한과 삼절신개 뒤쪽에는 거대한 지도가 걸려있고그 지도 앞에 서서 무언가 설명하고 있는 서른 살 가량의 잘 생긴 문사. <마면기정건곤일척아랑힐월>등에 나온 악역 위극겸이다이 작품에서도 최종 보스이고현재는 정체를 숨긴 채 무림맹의 군사 노릇을 하고 있다.
위극겸; [맹주님께 패해 중상을 입은 천강마존(天罡魔尊엽장천(葉長天)은 현재 대택향(大澤鄕)에 은신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위극겸; [뿐만 아니라 본맹에 쫓기던 마도 무림의 잔당들도 속속 대택향으로 모여들고 있는 중입니다.] 말하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무림맹 군사(軍師삼절서생(三絶書生위극겸(威極謙)>
혈나한; [사마외도의 떨거지들이 알아서 그물로 기어들어가고 있구만.]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웃고배경으로 나레이션. <-무림맹 장로 혈나한(血羅漢)>
상취신개; [말 그대로 일망타진(一網打盡)이 가능하겠소이다.] 해학적인 표정으로 웃고. <-무림맹 장로 상취신개(常醉神丐)>
고독신모; [그러나 장소가 대택향이라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게요.] 곱게 나이 든 중년의 귀부인 같은 인상으로 말하고. <-무림맹 장로 고독신모(孤獨神母)>
금정사태; [신모님 말씀이 맞아요.] 새침하게
금정사태; [대택향은 늪과 습지가 한도 끝도 없이 펼쳐진 곳이라 무작정 공격했다가는 아군의 피해도 심각할 수 있어요.] 말하는 배경으로 나레이션. <-무림맹 장로 금정사태(金頂師太)>
혈나한; [그렇다고 공격을 늦춰서는 아니 되오.]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면서
혈나한;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처럼 이번 기회에 사마외도의 죄 많은 중생들을 싹 쓸어버려서 지난 오십여년간의 혼란을 종식시켜야만 하오.]
금정사태; [물론 사마외도에 대한 소탕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에요.]
금정사태; [다만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효과적인 공략방법을 강구해야만 해요.] 반론
혈나한; [재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소?] 눈 부라리며 주먹으로 탁자를 치고
혈나한; [끈 떨어진 갓같은 신세가 된 놈들에게 숨 돌릴 틈을 주어선 아니되오.] [일거에 밀어붙여서 끝장을 내야만 하오.]
불쾌한 표정이 되는 금정사태그때
사자천존; [추후의 전략에 대해 군사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손 들며 말하고그러자
[예 맹주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혈나한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 급 공손해져서 굽신 거리고
사자천존; [복안(腹案)을 말해보시오 군사.] 위극겸에게 말하는 사자천존배경으로 나레이션. <-무림맹 맹주 사자천존(獅子天尊초패강(楚佩岡)>
위극겸; [예 맹주님!] 공손히 고개 숙이고
위극겸; [금정사태님의 우려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무작정 대택향으로 돌입할 경우 아군의 피해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 될 것입니다.] 금정사태를 보며
위극겸; [그래서 대택향의 칠할 정도만 포위를 하고 요란하게 압박을 해갈 생각입니다.] 지도에 반원을 그려 보이면서
상취신개; [옳거니!] [포위망의 일부가 트여있으면 결사적인 저항을 하기보다는 탈출하려는 놈들이 더 많겠군.] 주먹으로 손바닥 치고
위극겸; [적의 저항 의지를 와해시켜 혼란을 야기한 후 마도 무림의 수뇌부를 맹주께서 직접 정리해주시는 것이 제가 생각하고 있는 대략적인 계획입니다.] 사자천존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
위극겸; [마도 무림의 수뇌부에 저희와 내응하는 자가 몇 있으니 천강마존등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혈나한; [과연 군사는 제갈량의 재림이야!] [훌륭해!] 짝짝 박수를 치고
다른 사람들도 감탄하며 박수를 치고
위극겸; [제갈량의 재림이라니 감당할 수 없는 과찬이십니다.] 공손히 포권하고
사자천존; [그리 과찬이랄 수도 없지.] 웃고
사자천존; [군사 덕분에 사마외도들에 대한 소탕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진행되어 왔으니 말이오.]
상취신개; [맞소이다군사야말로 우리 무림맹의 보배라 할 수 있소이다.] 엄지손가락 세워 보이고
위극겸; [민망합니다 신개!]
사자천존; [그럼 대택향에서 진행될 토벌전을 좀 더 상세하게 논의해보도록 합시다.]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허심탄회하게 제시새보도록 하시오.] 둘러보며 말하고
[예 맹주님!] 대답하는 사람들
이어 대화 주고 받는 사람들의 모습대청의 입구에서 보는 시점이고
장세명; [회의가 쉽게 끝날 분위기는 아니로군.] 혼잣말
[그러게 말입니다.] [맹주님과 원로들께서는 오늘 밤도 꼬박 새실 것 같습니다.] 주변의 무사들 말하고
장세명; [방해가 끼어들지 않도록 경계에 철저를 기하라.] 돌아서고
[존명!] [명심하겠습니다 총관님!] 고개 숙이는 무사들
그 무사들을 등지고 걸음 옮기는 장세명
장세명; (맹주...) 걸어가며 곁눈질로 대청 쪽을 보고
<용서하십시오나 장세명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오늘 맹주께 짓는 죄의 대가를 치루겠소이다.무언가 결심하며 걸어가는 장세명
 
#6>
여전히 비오는 밤무림맹의 다른 곳잘 가꿔진 정원과 높은 담장으로 외부와 분리 된 안채 건물죽립과 도롱이를 걸친 여자 무사들이 지키고 있고건물 안에 불이 켜져 있고
건물 입구 안쪽은 거실이다불이 켜진 널찍하고 화려한 거실에는 16-7세쯤 된 소녀가 1살쯤 된 아기를 안고 서성이며 침실 쪽을 본다소녀는 <아랑힐월>에 나온 환설 캐릭터이 작품에서도 이름은 환설환설이 보고 있는 침실의 문은 조금 열려있고.
환설 품에 안긴 아기는 담요로 싸인 채 잠들어 있는데 손에는 금 목걸이를 하나 쥐고 있다금으로 꼰 사슬에 용 두 마리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는 형상의 패가 걸려있는 목걸이다중요한 소품 중 하나이므로 잘 묘사. ***환설이 안고 있는 이 아이의 이름은 초무궁이지만 우여곡절이 있어서 무림맹 총관 장세명의 아들 장청풍인 것으로 알려짐아기지만 청풍의 얼굴과 비슷하게 묘사.***
아기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사자천존의 아들 초무궁(楚無窮)>
열려있는 문을 통해서 어둑한 침실이 보인다침대에 누운 이십대 중반쯤의 절세미녀눈을 감고 있고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서 이불 밖으로 나온 미녀의 손목을 쥐고 진맥하는 진의원미녀는 사자천존의 아내인 주혜금이다아름답지만 병약하게 보이고 지금은 잠이 들어있다.
주혜금의 모습 배경으로 나레이션. <-사자천존의 아내 주혜금(朱慧錦)>
[...] 주혜금의 손목을 쥐고 진맥하며 무언가 생각하는 진의원이어
한숨 쉬며 진맥하던 손을 이불 속으로 넣어주는 진의원
문을 닫으며 침실에서 나오는 진의원
환설; [주모님의 오늘밤 용태는 어떠신가요?] 근심스레 묻고배경으로 나레이션. <-주혜금의 시녀 환설(煥雪)>
진의원; [어렵게 잠드셨으니 깨실 때까지 방해하지 마라.]
환설; [명심하겠사옵니다만... 빨리 쾌차하셔야할 텐데...] 울상 지으며 침실 문쪽을 보고
진의원; [원래 병약하셨던 몸으로 무리하게 출산을 하신 후유증이다.] 말하며 환설이 안고 있는 아기를 힐끔 보고담요에 싸인 아기는 잠이 들었는데 한손으로는 목걸이를 꼭 쥐고 있다.
진의원; [그래도 근래 들어 조금씩 기력이 돌아오고 계시니 다행으로 여겨야지.] 말하며 아기가 쥐고 있는 목걸이를 잡고 빼내려 하지만
작은 손으로 목걸이를 꽉 쥐고 놓지 않는 아기
환설; [... 조심하세요.] 그걸 보고 기겁하고
환설; [무리하게 뺏으려고 하면 도련님이 이만저만 성질을 부리시는 게 아니에요.]
진의원; [주모님의 신물(信物)이지?] 목걸이에서 손을 놓고
환설; [...]
환설; [주모님의 냄새가 배어있는 물건이라 그런지 무궁도련님은 그 목걸이를 특별히 좋아하세요.] 아기를 내려다보고
진의원; [아기들 특성상 손에 쥔 물건은 수시로 물고 빨 텐데...] 찡그리고
환설; [이빨이 날 때가 되신 때문인지 깨어있을 때는 거의 입에 물고 계셔요.]
진의원; [억지로 뺏을 수 없으면 더러워지지 않도록 자주 깨끗한 물로 닦아주어야...] + [!] 말하다가 움찔하며 환설의 뒤를 보는 진의원
어느 틈에 열려있는 문그 문 안쪽에 장세명이 서있다우산은 접어서 들고 있다.
환설; [!] 뒤늦게 알아차리고 돌아보며 놀라고
진의원; [총관이 밤중에 주모님의 거처에 무슨 볼일인가?] 불길한 예감에 몸으로 환설과 아기를 막으며 말하고그러다가
[!] [!] 놀라는 진의원과 환설
장세명의 뒤쪽열린 문을 통해서 여자 무사들이 건물 앞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보인다
환설; [!] 그걸 보고 비명 지르며 뒤로 주춤
진의원; [뒷문으로 달아나라어서!] 환설에게 외치며 팔을 벌리지만
이미 진의원의 가슴을 찌르고 있는 접은 우산의 끝죽인 건 아니고
진의원; [장세명 네놈...] 스륵기절하며 쓰러지고
환설; [안돼!] 비명 지르며 돌아서서 달아나고그 앞에서 진의원이 바닥에 쓰러지고 있고
이미 다가와서 환설의 등도 찌르는 장세명의 우산 끝덜컥하며 눈을 치뜨는 환설
환설; [... 도련님...] 기절하며 쓰러지는 환설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떨구고하지만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왼손으로 아기를 낚아채 끌어안는 장세명
털썩환설도 기절해서 바닥에 나뒹굴고.
[으으응...] 잠에서 깨며 눈을 껌뻑이는 아기.
장세명; [곧 무서운 얼굴을 보게 될 테니 자고 있거라.] 쿡쿡왼팔로 아기를 안고 우산을 든 오른쪽 손의 엄지 손가락으로 아기의 가슴을 찍고
[마아...] 다시 눈이 감기는 아기잠이 들면서도 목걸이는 놓치지 않고
장세명; [미안하오 진의원환설!] [그대들에게는 어떤 잘못도 없소.] 잠이 드는 아기를 품에 안고 진의원과 환설을 돌아보고
장세명; [혈육의 정 때문에 도리를 저버리는 나 장세명이 모든 죄를 감당할 것이오.] 우산 든 오른손을 이용해서 아기를 망토 속에 감추고
밖으로 나오며 우산을 펴는 장세명망토가 헐렁해서 아기를 숨기고 있는 게 안보인다아기를 안은 왼팔을 망토 밖으로 꺼내 오른손에 든 우산을 펴는 모습이고건물 밖에는 여자 무사들이 쓰러져 있고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장세명헌데
 
건물을 에워싼 정원의 나무 그늘 속에 숨어있는 천불투
천불투; (이것 봐라.) 눈 번뜩이고
<다른 자도 아니고 사자천존의 심복 중의 심복인 신행철필 장세명이 사자천존의 아들을 유괴한다?월동문으로 나가는 장세명을 배경으로 천불투이 생각
천불투; (아무래도 내가 때를 잘못 맞춰서 무림맹에 잠입한 것같구나.) 침 꼴깍겁에 질려서 숨어있던 곳에서 나오고
천불투; (자칫하다가는 이 유괴 사건의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가능한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한다!) 도둑 고양이처럼 달려서 월동문으로 간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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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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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 화백을 위해 쓴 무협만화 시나리오입니다.
이미 만화로도 나왔으니 시나리오와 비교해서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와룡강 나름대로의 시나리오 작법이라 생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몰입도도 떨어질 테고...
그래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되었을지 상상하시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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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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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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