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8. 13:21 와룡강의 작업실/대도전능(大盜全能)
[대도전능] 14화 찾아온 독의 제왕
14화
찾아온 독(毒)의 제왕(帝王)
“다... 다 챙겼어요.”
분이가 철두에게서 건네받은 살천독낭에 향로를 넣으며 말했다.
“수고했다.”
천불투는 분이가 내민 살천독낭을 받았다.
“너희들...”
그리고는 고개 돌려 철두와 정칠을 노려보았다.
“예... 예!”
“...!”
정칠과 철두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독천존이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는 알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오늘 일과 관련이 있다는 걸 독천존이 알게 되면...”
천불투는 살천독낭과 함께 부운을 안아들며 정칠과 철두를 지긋이 보았다.
공포에 질린 정칠과 철두는 대답도 못하고 침만 꿀꺽 삼켰다.
“몸뚱이가 촛농처럼 녹아내려 죽고 싶지 않다면 오늘 이곳에서 벌어진 일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라.”
천불투는 부운을 안고 입구로 갔다.
“명... 명심하겠습니다.”
정칠이 식은땀 흘리며 대답했고. 겁에 질린 철두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라.”
휘익!
그 한마디를 끝으로 천불투는 폐가에서 날아나갔다.
분이도 소매로 눈물 닦으며 천불투를 따라 달려갔다.
“조... 조영감 말이 맞다. 부운이가 자기 주머니 터는데 우리가 관여했다는 걸 알면 독천존이 가만 둘리 없다.”
정칠은 철두에게 손을 내밀며 오만상을 썼다. 다리 하나가 부러져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가 없다.
철두는 말없이 정칠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오늘 일은...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하자.”
“그래야겠지.”
부축 받고 부축한 정칠과 철두도 폐가를 나섰다.
천불투는 이미 사라졌고 분이가 해하촌을 향해 달음박질치는 게 보인다.
(젠장... 부운이 새끼하고 엮여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경우가 없다.)
정칠을 부축해서 언덕길을 내려가며 철두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 기회에 얄미운 그 새끼가 칵 뒈져버렸으면...)
그러면 안된다 생각하면서도 부운이가 잘못되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는 철두였다.
물론 나쁜 마음이 생기는 건 분이 때문이었다.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부운이 새끼가 밉지만 그 새끼 덕분에 목숨 부지한 걸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철두는 한숨을 쉬며 정칠을 끌고 언덕길을 내려갔다.
붕! 붕!
한데 폐가를 떠나는 아이들을 몇 마리의 말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른의 가운데 손가락만한 거대한 말벌들이었다.
***
온유향은 온고당 안채의 마당을 서성이고 있었다.
마음은 마른 검불처럼 타들어가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이번 소란이 자기 아들과 관련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의부님이 사람들 이목도 아랑곳 않고 폐가쪽으로 날아가신 건 부운이 때문일 텐데...)
온유향이 속절없이 마주 잡은 손만 비비고 있을 때였다.
휘익!
허공으로부터 누군가 날아내렸다.
<아... 아버님!>
온유향은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그 인물이 누군지 즉시 알아차렸다.
유령같이 온고당 안채의 마당으로 내려선 건 물론 천불투였다.
<부운이... 부운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온유향은 두 팔을 내밀며 천불투에게 다가갔다. 보지 않고도 천불투가 아들을 데려온 것을 안 것이다.
“걱정마라. 위급한 상태는 아니니...”
천불투는 온유향을 안심시키며 한쪽 건물로 갔다.
온유향의 거처 맞은편 건물에는 천불투와 부운의 방이 있다.
<어쩌다가... 부운이가 왜 정신을 잃을 건가요?>
온유향은 울먹이며 천불투를 따라갔다. 시력을 잃은 대신 극도로 예민해진 청력 덕분에 그녀는 아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차렸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주마. 우선 물을 좀 데우도록 해라.”
천불투는 부운을 안고 부운의 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예...>
온유향은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허둥지둥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운의 방은 단출하다. 옷장과 침대가 있을 뿐이고 그 흔한 책장도 없다.
한번 본 것은 그대로 기억하는 능력을 지닌 덕분에 부운은 책을 소장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몇 권의 책이 침대 머리맡에 놓여있을 뿐이다.
천불투는 부운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으으으!”
금방이라도 꺼질 듯 위태로운 신음을 흘릴 뿐 부운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는 부운의 몸속을 이질적인 존재들이 누비고 있는게 느껴진다.
(버티거라 부운아. 네가 죽기라도 하면 또 한 목숨도 세상을 떠나게 될 테니...)
천불투는 땀으로 물든 부운의 이마를 닦아주며 한숨을 쉬었다.
부엌에서 황망히 물을 끓이고 있는 온유향의 모습이 보인다.
(추궁과혈(推宮過穴)이라도 해서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여유는 없다. 곧 이번 사달의 원인을 제공한 인간이 쳐들어올 테니...)
부운의 땀을 대충 닦아준 천불투는 방을 나왔다.
곧 들이닥칠 강적을 상대할 방책을 준비해야만 한다.
***
탁탁!
분이는 숨이 턱에 차서 온고당쪽으로 달려왔다.
해하촌에서 올려다보면 바로 보이지만 폐가까지는 거리가 제법 된다. 게다가 상당히 급한 경사길이라 오르내리는 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하악 학!”
비오듯 땀을 흘리며 달리는 분이의 몸은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다.
게다가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피가 나거나 말라붙어 있다.
상처의 대부분은 검은 용들이 무너트린 폐가 지붕의 잔해들에 맞아서 생긴 것이다.
또 경사진 길을 달려 내려오다가 몇 번 나뒹굴어 여기저기 까지기도 했다.
하지만 분이는 상처의 쓰라림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죽지 마 부운오빠!)
분이는 눈물을 흩날리며 온고당을 향해 달려갔다. 부운이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아홉 마리 검은 용을 들이마시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빠가 죽으면 분이도 따라서 죽어버릴 거야.)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는 분이를 오가던 사람들이 놀라 돌아본다.
온고당이 곧 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온고당 앞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히익!”
“위... 위험해!”
온고당 앞을 오가거나 온고당을 들여다보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왜 그래요?”
분이는 온고당 근처에서 멀어지려는 사람들에게 외치며 달려갔다.
“들어가지 마라 분이야!”
“안돼!”
마을 사람들이 분이를 발견하고 다급히 외쳤다.
“할아버지! 부운 오빠 어때요?”
분이는 마을 사람들의 외침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온고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악!”
하지만 온고당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분이는 비명을 지르며 급히 멈춰서야만 했다.
부웅! 붕!
온고당 안에 수많은 말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벌도 보통의 말벌이 아니라 어른 가운데 손가락만한 괴물들이었다, 세차게 날개짓을 하는 그놈들은 거의 참새만하게 보인다.
“온고당 안에 말벌들이 가득해!”
“세상에는 저렇게 큰 말벌도 있는 거야?”
마을 사람들이 온고당을 들여다보며 겁에 질려 웅성거렸다.
부웅 붕!
말벌들은 주로 응접실 끝에 몰려있다.
“빨리... 빨리 나와라 분이야.”
“그놈들한테 쏘이면 죽을 수도 있어.”
분이를 아는 마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
(저 말벌들... 마치 안채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것같애!)
붕! 붕!
분이는 안채로 통하는 문 주변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말벌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겁에 질렸다.
하지만 두려움보다는 부운에 대한 걱정이 압도적으로 컸다.
(쏠 테면 쏴! 죽더라도 난 부운오빠를 봐야겠어!)
분이는 입을 앙다물며 안채로 통하는 문으로 다가갔다.
붕! 붕!
다가오는 분이 앞쪽에서 말벌들이 위협적으로 날아다녔다.
그놈들의 날개짓 소리만으로도 오금이 저린다.
그래도 분이는 굴하지 않고 안채로 다가갔다.
부웅! 붕!
안채로 통하는 문이 가까워지자 위협만 하던 말벌들이 일제히 분이를 쏘려고 날아들었다.
(쏘인다!)
분이는 어쩔 수 없이 공포에 질려 몸을 응크렸다.
그랬는데 그 직후 이변이 일어났다.
막 분이를 쏘려던 말벌들이 일제히 멈춘 것이다.
쏘는 걸 멈춘 정도가 아니었다.
붕! 붕!
말벌들은 좌우로 갈라져 길을 터주기까지 했다.
(저 말벌들이 왜....)
돌변한 말벌들을 보며 분이가 안도하며 어리둥절할 때였다.
“제법 결기(結氣)가 있는 계집아이로군.”
뒤에서 늙으스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년은 흥륭객잔 근처에서 노부를 엿보던 망나니들 중 한명이겠지?”
녹발벽안의 노인이 뒷짐을 짚은 채 온고당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독... 독천존!)
분이는 겁에 질려 숨이 콱 막혔다.
온고당으로 들어선 노인은 물론 독천존이었다.
“너희 년놈들이 오늘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했는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독천존이 새파란 눈에서 번갯불을 뿜어내며 다가왔다.
“안돼요!”
분이는 가느다란 팔을 벌리며 안채의 문을 막아섰다.
“어쭈...”
독천존은 어이가 없었다.
“못... 못 들어가요! 당장 여기서 나가요! 나가란 말이에요!”
팔을 벌린 분이가 악에 바쳐 외쳤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짓만 하는 계집아이로구나.”
독천존은 자기가 누군지 알면서도 감연히 막아서는 분이가 어이없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방해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독천존은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까딱했다.
“악!”
콰당탕!
분이는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보이지 않는 벼락에 맞아 감전된 것이다.
“안... 안돼! 들어가지... 말아요!”
분이는 정신을 잃으면서도 독천존을 막으려 했다.
“궁금하긴 하군. 대체 어떤 놈을 지키려고 저 계집아이가 두려움에 떨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는지...”
독천존은 새파란 눈을 번뜩이며 분이를 지나갔다.
펑!
독천존이 다가가자 안채로 통하는 문이 그대로 박살났다.
“...!”
보이지 않는 힘으로 박살낸 문을 통해 안채로 들어서던 독천존의 눈이 번뜩였다.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서(西)노사!”
안채 마당에 천불투가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운의 방문 앞에는 비수를 손에 든 온유향이 문을 가로 막고 서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죽기 전에는 비키지 않으려는 결기가 느껴졌다.
열려진 문을 통해 부운이 침대에 누워있는 게 보인다. 상체를 벗고 있는 부운의 몸은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부웅! 붕!
안채 마당 위쪽의 허공에는 수많은 말벌들이 구름처럼 떠있다.
독천존을 온고당으로 안내한 것은 대독금봉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놈들이었다.
“허어! 이거야 원...”
안채 마당으로 들어선 독천존은 헛웃음을 흘렸다.
“놀랍군! 놀라워! 이런 뒷골목 빈민가에 용 같고 이무기같은 인생들이 숨어있었다니...”
쿠오오!
천불투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독천존의 몸에서 아지랑이같은 기운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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