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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1.04 [대도전능] 11화 신비한 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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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신비한 향로(香爐)

 

 

 

해하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폐가 앞에 세 명의 아이들이 서있었다.

분이와 정칠과 철두다.

세 아이는 초조한 표정으로 해하촌에서 폐가로 올라오는 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분이는 달궈진 번철(燔鐵;솥뚜껑 모양의 조리도구) 위의 콩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부운오빠가 돌아오는 게 너무 늦어! 우리 보고 먼저 여기 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설마 잘못 되어서 독천존에게 붙잡힌 건 아니겠지?)

분이는 마주 잡은 두 손을 연신 조물락거리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조것이 아주 애가 타들어가는구만.”

대여섯 걸음 뒤쪽에서 보고 있던 정칠이 혀를 찼다.

하긴 짝사랑하는 낭군께서 무림 칠대고수 중 한명을 털겠다고 나섰는데 태연할 수는 없겠지.”

정칠의 이죽거림을 들은 철두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부운이 놈은 좋겠다. 자길 하늘처럼 떠받들어 주는 예쁜이도 있고...”

분이를 놀리던 정칠은 싸한 느낌에 입을 다물었다.

철두가 험악한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부운이가 분이에게 낭군까진 아니지. 그래도 걸음마 할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오빠인데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냐?”

정칠은 억지로 웃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

철두는 코웃음 치며 분이쪽을 돌아보았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꽁하긴...)

정칠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재주가 그닥 없는 철두는 수틀리면 주먹부터 나온다.

정칠도 철두의 뜬금없는 주먹질에 당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철두야 꿈 깨는 게 좋을 거다. 발버둥 쳐봤자 넌 부운이의 상대가 못되니까. 용모, 배경, 능력, 그 모든 걸 따져 봐도 네놈이 부운이를 이길 가능성은 없어.)

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철두를 보며 정칠은 코웃음을 쳤다.

분이는 해하촌의 아이답지 않게 귀티 나고 예쁘다.

그런 분이를 철두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고 있다는 건 알만한 아이들은 다 안다.

다만 성격이 무뚝뚝한 탓에 철두는 분이에게 직접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정칠은 계집 장사하는 아비를 둔 덕분에 여자들이 남자의 어떤 면에 끌리는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일찌감치 분이에 대한 헛된 생각을 포기할 수 있었다.

(부운이 놈은 애초부터 철두 네놈이나 내가 상대할 수 없는 존재였다.)

정칠이 친구를 위해 근심해줄 때였다.

오빠!”

갑자기 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팔짝 뛰었다.

정칠과 철두의 시선이 동시에 해하촌에서 올라오는 길로 향했다.

부운오빠! 무사한 거야?”

분이가 다람쥐처럼 달려 내려가며 외쳤다.

부운이 저 놈, 독천존의 주머니를 터는데 성공한 것 같다. 진짜라면 도둑들의 세계가 발칵 뒤집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거야.”

정칠도 흥분해서 길 아래쪽을 보았다.

해하촌 쪽에서 부운이 올라오고 있다.

한 달음에 달려간 분이가 부운의 팔을 와락 끌어안는 게 보인다.

분이와 함께 올라오는 부운을 보며 철두는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죽마고우인 부운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분이가 부운에게 달라붙어있는 걸 보면 부아가 치민다.

! 성공한 거냐?”

정칠이 마중 나가며 외쳤다.

부운은 씨익 웃으며 오른 손에 들고 있는 가죽 주머니를 쳐들었다.

괴물같은 새끼, 정말로 무림 칠대고수 중 한명의 주머니를 털었구나.”

정칠은 자기의 위업인 양 흥분했다.

주변에 기웃거리는 것들 없었냐?”

언덕을 올라온 부운이 물었다.

정칠이 대답했다.

꼬맹이들 몇이 놀고 있길래 엉덩이 걷어차서 쫓아 보냈다.”

잘 했다.”

부운은 앞장서서 폐가 안으로 들어갔다.

분이와 정칠이 따라 들어갔고 맨 나중에 들어간 철두가 문을 닫았다.

 

***

 

문이 닫혀 어둑한 폐가 가운데에는 길쭉한 탁자가 놓여있다. 흑건회 아이들이 훔치거나 얻어온 음식을 나눠먹는 데 주로 쓰이는 탁자다.

정말... 부운이 너 정말 독천존의 주머니를 터는 데 성공한 거냐?”

부운을 따라 탁자로 가며 정칠이 흥분해서 물었다.

이건 네가 살펴봐라.”

부운은 대답대신 두 개의 주머니 중 작은 걸 정칠에게 건네주었다.

전낭이로구나.”

작아도 제법 묵직한 주머니를 건네받은 정칠의 입이 귀에 걸렸다.

이게 바로 우내칠절 중 한 명인 독천존의 돈주머니란 말이지?”

정칠은 신이 나서 전낭의 내용물을 탁자 위에 쏟았다.

쨍그렁. 투둑!

전낭에서 동전과 은자, 전표등이 쏟아져 나왔다.

뭐야? 기대했던 것보다는 많지 않네.”

전낭의 내용물을 헤아려본 정칠은 적잖이 실망한 표정이 되었다.

전낭에 들어있었던 건 백냥짜리 전표 세 장과 은자 이백냥 정도였다. 무게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동전은 세어볼 가치도 없다.

물론 오백냥도 결코 작은 돈은 아니다. 평범한 가정이라면 이, 삼년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거금이다.

단지 독문제일인이라는 주인의 명성에 비해 적을 뿐이다.

이 정도도 많이 갖고 다닌다고 봐야한다. 무림 칠대고수에 드는 인물인데 어디 간들 대접 못 받겠냐?”

철두가 전표의 액면가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하긴 독천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간이든 쓸개든 빼서 바칠 인간들이 줄을 서겠지.”

정칠도 은자와 동전을 정리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칠과 철두 건너편에서는 부운이 가죽 주머니에서 내용물들을 꺼내고 있었다.

그 주머니에 <하늘도 죽이는 독주머니(殺天毒囊)>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어있다는 건 부운으로서도 알 리가 없다.

다만 독천존의 물건이라 위험한 게 들어있을 가능성은 짐작하고 있었다.

그 주머니에는 뭐가 들었냐?”

돈을 세던 정칠이 건너다보며 물었다.

부운은 대답하지 않고 살천독낭에서 꺼낸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탁자에 늘어놓았다. 밀봉된 작은 주머니들과 도자기, 유리로 만들어진 병들이 대부분이었다.

(저 새끼가 또 내 말을 씹네.)

빈정 상한 정칠이 눈을 흘길 때였다.

독천존이 독을 쓰는 데 있어서 천하제일이라는 건 알 거다. 내가 꺼내놓은 병들과 주머니에는 위험한 게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건드리지 마라.”

부운이 물건들을 늘어놓으며 말했다.

...”

모두에게 한 말이지만 부운 옆에 붙어있던 분이가 냉큼 대답했다.

(내가 독천존을 털었다는 증거가 될만한 물건이 있어야할 텐데...)

부운은 살천독낭에 들어있던 물건이 줄어들어감에 따라 초조해졌다.

도척제전에서 우승하려면 독천존의 소유였다는 걸 모두가 인정할만한 물건이 필요하다.

부운이 살천독낭에서 마지막으로 꺼낸 것은 부드러운 사슴 가죽으로 만든 제법 큰 주머니였다. 주머니에는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의 둥근 물건이 들어있다.

(들어있는 게 상당히 무겁다. 거의 열근(6kg) 가까이 된다.)

부운은 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했다.

주먹 두 개 정도 크기에 무게가 열근 가까이 된다면 쇳덩이만큼이나 무거운 게 들어있다는 뜻이다.

(이 안에 결정적인 증거가 들어있을 것 같다.)

부운은 사슴 가죽 주머니의 입구를 묶고 있는 끈을 풀기 시작했다.

... 이상하네. 그 주머니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두근거려.”

보고 있던 분이의 얼굴에 열기가 발갛게 피어올랐다.

(분이가 왜 저러지?)

생각지도 않은 분이의 반응에 의아해하면서도 부운은 사슴 가죽 주머니 입구를 묶은 끈을 풀었다.

분이는 얼굴이 발개진 채 침을 꼴깍 삼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주머니를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부운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향로(香爐)였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향로 표면에는 여러마리의 용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뚜껑이 덮여있다.

일반적인 향로와 달리 연기가 빠져나오는 구멍이 나있지 않은 뚜껑의 중앙에는 용머리 형상인 손잡이가 달려있다.

향로네!”

분이는 눈을 반짝이며 향로를 들여다보았다.

이야! 그건 한 재산 되겠다! 딱 봐도 황금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하니...”

건너편의 정칠과 철두의 눈도 휘둥그래졌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주먹 두 개 크기 정도의 향로라면 수천 냥은 족히 나갈 것이다. 빈민가 출신인 아이들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고가의 물건이다.

온고당에서 골동품 향로들을 여러 개 봤지만 이렇게 예쁜 향로는 처음이야.”

부운이 사슴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향로를 살피는 걸 보며 분이의 눈이 반짝반짝 거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향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분이는 처음으로 무언가를 정말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로를 갖을 수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분이는 문득 이상을 느꼈다.

부들! 부들!

두 손으로 향로를 들고 살펴보던 부운의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몸만 떨리는 게 아니었다.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부릅떠져 있으며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다.

얼굴이 달아오른 것은 숨을 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빠! 왜 그래?”

더럭 겁이 난 분이가 부운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부운은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향로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 부운 저 새끼 왜 저래?”

무슨 일이냐?”

탁자 건너편의 정칠과 철두도 변고를 알아차리고 건너다보았다.

정신 차려 오빠! 나 무서워!”

분이의 울먹이는 소리가 아득히 먼 곳에서 인 듯이 들린다.

부운은 끔찍한 공포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향로를 보자마자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만지기만 하면 물건의 내력을 알 수 있는 능력을 써보았다.

천불투가 만천신안일 것이라 추측했던 부운의 능력은 향로에 얽혀있는 모든 내력을 일거에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먹물을 칠한 듯이 시커먼 곳으로 떨어졌다.

그 암흑에는 온몸을 녹이고 분해시키는 끔찍한 힘이 실려 있었다.

어떻게든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암흑의 정체가 밝혀졌다.

그것은 한 인간의 손아귀였다.

머리가 하늘 끝에 닿아있는 그 인물의 영력(靈力), 즉 영적인 힘은 부운이 상상도 못해본 것이었다.

부운은 거인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육신과 혼백이 쥐어 짜이고 터지는 충격과 고통을 경험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거인이 지닌 영력의 압력(靈壓)에 압도당해 죽거나 백치가 되었을 것이다.

부운이 그리 되지 않은 것은 그의 혼백 속에 들어있는 금강석 같이 단단한 핵심(核心) 덕분이었다.

그 핵심은 거인의 가공할 영압으로도 부술 수 없는 것이었다.

거인 외에도 수많은 인생이 부운의 머릿속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만독(萬毒)이라는 두 글자로 얽힌 인생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세상을 뒤흔들었던 위인들도 많았지만 처음의 거인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수백 수천의 인생이 읽혔고 그 중에 어딘지 분이를 닮은 남녀도 본 것 같았다.

향로를 만졌거나 그것과 관련 있는 인생들이 폭풍처럼 지나간 후 돌연 용()이 나타났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아홉 마리였다.

(향로에 새겨져 있던 용들이다!)

부운은 향로에 새겨져 있던 용들이 향로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아홉 마리 용은 부운의 몸을 뚫고 들어왔다.

몸속으로 파고 든 용들은 오장 육부를 찢고 가르며 날뛰기 시작했다.

거인의 가공할 영압에도 견디었지만 실제로 내장이 찢어지고 모든 뼈가 부러지는 것같은 고통은 견디기 힘들다.

<끄아아악!>

끔찍한 고통을 견디지 못한 부운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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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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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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