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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장

 

                향로(香爐) 속의 무공비결(武功秘訣) (3)

 

 

(바로 이것이었구나! 현장법사는 명산에 수장하는 심정으로 이 향로 안에 글을 새겨 두었던 것이다!)

임청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절묘한 방법이다. 책이라면 손상될 수도 있겠지만 구리로 만든 향로라면 천년이 아니라 수천 년을 간다 하더라도 여전할 것이다. 더구나 이 향로는 향불을 피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 재를 비우기 위해 들어올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임청우는 끔찍한 고통과 신열에 시달리면서도 오른손으로 향로의 안쪽을 더듬기 시작했다.

손톱보다 조금 큰, 즉 발톱만한 글자들이 향로 안쪽에 촘촘히 박혀있었다.

임청우는 윗쪽에서 시작하여 아래로 더듬어 내리며 읽었다.

 

<노납 현장은 황상(皇上)의 윤허도 받지 않고 홀로 장안을 출발하여 간다라를 거쳐 마침내 천축에 이르렀다.

-중략(中略)-

십팔 년이 지나 노납은 일백오십 개의 불사리(佛舍利)와 여덟 체의 불상(佛像), 육백오십칠 부의 경전을 가지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중략-

자은사에 대안탑을 세우고 불경을 번역하기 이십칠 년, 노납의 나이 고희에 달했으며 번역하지 못한 책은 오직 한 권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헌데 노납의 실책인가? 아니면 삼세를 굽어 살피시는 불타의 뜻이신가? 노납이 천축에서 가져온 경전 중 마지막 한부가 불법을 설파한 것이 아닌 줄을 그 누가 알았으리오?

노납은 삼 년의 망설임 끝에 그 마지막 한 부를 번역했다.

하지만 그 내용의 가공함으로 인하여 감히 세상에 흘리지 못하고 노납이 머물던 대안탑 칠층에 불심연화로(佛心蓮花爐)를 만들어 깊이 숨기는 바이다.

뜻이 있는 자는 구할 것이오, 인연이 있는 자는 얻을 것이다.

행하는 자는 불타의 자비를 잊지 말 것이며, 전하는 자는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

 

글을 읽은 임청우는 고소했다.

“불심연화로! 역성(譯聖)께서는 자신이 애써 만든 불심연화로가 한낱 떠돌이 임청우의 무덤이 될 줄을 생각이나 하셨을까?”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현장이 그토록 고심한 내용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임청우 자신은 이 향로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생을 마쳐야할 운명에 처해있었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죽어야 하는 것이 천명(天命)이라면, 은밀하게 숨겨져 온 비전(秘傳)을 접하게 된 것 또한 천명이 아니겠는가?

줄이 바뀌면서 갑자기 문장이 바뀌었다.

“불심연화지(佛心蓮花指)?”

임청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다른 글자들 보다 약간 크게 쓰여진 굵은 글자는 <불심연화지>였다.

(이럴 수가...!)

제목에 이어진 내용을 읽어가던 임청우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지금 읽고 있는 것처럼 생소하고 기이한 문장을 그는 한 번도 대해본 적이 없었다.

천지(天地)의 도(道)를 이야기할 때는 모든 성인(聖人)들과 비슷했으나 신체의 굴신(屈身)에 대한 구절에서는 도가의 양생술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그 내용들은 마치 한 줄에 꿰인 수백 개의 곶감들처럼 어떤 오묘한 원리에 의해 이어져 있었다.

인체에 관해 상세히 설명한 부분에서는 의서를 읽는 듯했고, 전혀 이해하지 못할 기(氣)라는 것에 대한 부분에서는 마치 무서(巫書)를 읽는 듯이 황당무계하면서도 신비한 감이 있었다.

임청우는 그 오묘하면서도 신비한 불심연화지의 구결에 빠져들어 몸이 아픈 것조차 잊어버렸다.

입으로는 연신 구결을 중얼거리며 눈은 망연히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손가락으로는 구결을 더듬었다.

구결을 외워감에 따라서 몸속에서 이해하지 못할 뜨거운 열기가 생겨났다.

그 열기는 배꼽 아래 세치 쯤 되는 곳이 간질간질해지더니 생겨났다.

아지랑이같고 연기같던 열기는 이내 뭉쳐져 불덩이처럼 변하더니 상승하기 시작했다.

아랫배와 명치를 지나 가슴 앞쪽을 통과한 불덩이같은 기운은 얼굴로 올라왔다.

턱 중앙을 지나 코 위로 흘러간 그 기운은 미간을 약간 더 올라간 위치에서 더욱 단단하게 뭉쳐지고 있었다.

마치 불이 붙은 솜이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 같지만 전혀 뜨겁지 않았다.

다만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 느껴질 뿐이었다.

임청우는 불심연화지의 구결을 거듭 반복하여 읽었다.

읽을수록 머릿속은 선명해지고 온몸을 뜨겁게 달구던 신열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이렇게 죽으란 법은 없구나. 이 글속에 이처럼 신비한 힘이 있을 줄이야.)

임청우는 뛸 듯이 기뻤다. 몸의 상태가 구결을 외움에 따라 표가 날 정도로 좋아지고 있는 것을 안 것이다.

네 번을 거듭 읽고 나자 거의 암송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임청우는 눈을 감은 후 빠른 속도로 암송했다.

그에 따라 그의 몸속에서도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났다.

배꼽 아래쪽에서 꾸준히 생겨난 기운은 이마의 튀어나온 부분까지 상승하여 하나로 뭉쳐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꽃같이 뜨겁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꽃같진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얼음 덩어리 같기도 했다.

그 속성을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사실 임청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었다.

임청우는 농산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진기한 약초를 채집하고 또 복용해왔었다.

덕분에 임청우의 몸속에는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당한 양의 영약 기운이 잠복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임청우가 내공심법의 구결을 외자 단전에 잠복하고 있던 그 영약 기운은 구결을 따라 앞머리의 신정혈(神庭穴)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일반적인 내공심법은 공력을 단전(丹田)에 모은다.

그에 반해 임청우가 암송하고 있는 불심연화지는 단전이 아닌, 이마 위에 자리한 신정혈에 공력을 모으는 특이한 내공심법이었다.

불심연화지의 구결을 외움에 따라서 임청우의 몸에서 신열은 사라지고 부어올랐던 팔의 부기도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한데 임청우가 도취된 듯이 불심연화지의 구결을 암송하고 있을 때였다.

 

“지독한 유가놈! 하지만 제 놈도 설마 우리가 이 대안탑에 숨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할 거야. 큿큿!”

임청우의 귓가로 갑자기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마...마면혈도란 자다!)

임청우는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들린 음성은 바로 비련곡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달아났던 마면혈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임청우가 너무 놀라 숨조차 멈춘 직후 아래층에서 또 하나의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말대가리! 또 검주 유소기를 과소평가하는군. 이곳을 찾지 못하길 바랄 수 있을 뿐, 찾지 못한다고 단정하고 있다간 그의 검에 목이 달아나게 될 걸?”

철선동시의 빈정거리는 듯한 목소리, 까마귀가 우는 듯한 역겨운 음성이었다.

(저 괴물들이 여기까지 오다니... 정말 재수가 없구나. 마치 내가 가는 곳마다 일부러 쫓아오는 것같다.)

임청우는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동료인 척포를 깨웠다.

임청우가 호리병을 살랑살랑 흔들자 척포가 금빛 뿔이 달린 머리를 내밀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쉿!)

임청우는 자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때 다시 마면혈도의 음성이 들려왔다.

“흐흐흐... 하지만 우리가 몽선도의 비밀을 풀기만 하면 유소기 놈쯤이야 간단히 찢어죽일 수 있지!”

츠으!

마면혈도의 음성을 들은 척포의 눈이 붉은 빛을 쏘아냈다.

척포는 농산의 비련곡에서 마면혈도와 싸울 때 그자의 혈도에 맞아 상당수의 비늘이 상하는 타격을 입었었다.

그 원한이 뼛속에 사무쳐 있었던 모양이다.

쉬쉭!

척포는 혀를 날름거리며 호리병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지금 나가면 안돼!)

임청우는 다급히 척포의 머리를 눌렀다.

끽!

괴상한 소리를 내며 척포의 머리가 호리병 속에 밀려들어가 버렸다.

(휴! 큰일 날 뻔했다. 만약 이 녀석이 뛰쳐나간다면 저는 몰라도 나는 말 그대로 죽은 목숨이지.)

임청우는 암암리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척포는 임청우가 손바닥으로 막아버린 호리병 속에서 나오려고 기를 쓰기 시작했다.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주둥이로 쿡쿡 찍어대는 데 간지러워서 미칠 지경이다.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지만 웃을 수가 없다.

(이 바보 같은 놈이 나를 죽이려고 드는구나.)

임청우는 얼굴이 벌겋게 된 채로 속으로 욕을 했다.

(만약에 들통이 나게 되면 네 녀석을 호리병 채 불속에 넣어서 구워버리겠다.)

막상 척포를 욕하고 나니 우습지만 그놈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저 말귀신과 얼어 죽은 강시는 왜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사람을 괴롭히는 건가?)

임청우는 대상을 바꿔 마면혈도와 철선동시를 욕하기 시작했다.

(전생에 나와 무슨 원수가 졌다고 농산에서 두 번이나 보고 수백 리나 떨어진 이 대안탑에서까지 만난단 말인가? 귀신은 저놈들 안 잡아가고 뭣하며 벼락은 눈이 멀기라도 했나?)

간지러움을 참기 위해 평소에는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던 욕도 마음속으로 실컷 해댔다.

그러는 사이에 철선동시와 마면혈도는 대안탑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는지 마음 놓고 이야기하며 칠층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임청우는 조바심이 나서 미칠 지경인데도 척포는 여전히 그의 손바닥을 간질이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라 뱀 새끼야!)

임청우의 얼굴이 숫제 울상이 되었다.

 

“제길. 유소기 그 개같은 놈만 아니라면 우리가 이렇게 도망쳐 다닐 필요도 없는데...”

마면혈도는 칠층의 바닥을 밟으면서 소리쳤다.

철선동시가 속이 뒤집어질 것같은 역겨운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유소기보다도 더 무서운 자가 자네를 뒤쫓고 있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군. 그자에 비하면 유소기는 아무것도 아니지.”

마면혈도는 안색이 홱 변하며 급히 물었다.

“이봐, 철선동시! 마황이 나를 뒤쫓기 시작한 기미라도 있나?”

마면혈도의 어조는 전에 비해 훨씬 부드러웠다. 그동안 철선동시에게 한 수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마황은 멀리 있고 그는 가까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철선동시가 냉소하며 대답한다.

“그? 그라니 대체 누굴 말하는가?”

마면혈도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러나 철선동시는 입가로 묘한 비웃음을 지으며 말을 빙빙 돌렸다.

“하지만 자네가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아니니 패할 걱정은 할 필요 없네.”

“그럼 들을 필요도 없군. 그만하지.”

마면혈도는 석가여래의 무르팍에 걸터앉으면서 손을 저었다.

철선동시는 그런 그자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니야! 아니야! 말도 되지 않는 소리야!”

갑자기 마면혈도가 고개를 흔들며 소리쳤다.

휘익!

그자는 벼락같이 달려들어 철선동시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마면혈도에 비해 키가 작은 철선동시가 발까지 땅에서 떨어져 대롱대롱 흔들렸다.

“바른대로 말하지 않으면 목을 비틀어 버리겠다. 유소기보다 더 무섭다는 자가 나를 이길 수 없다니... 그런 개같은 소리가 어디 있느냐?”

마면혈도는 고함을 치면서 철선동시의 멱살을 흔들었다.

휘익!

순간 철선동시의 발이 빙글 돌아가며 마면혈도의 턱과 겨드랑이 아래를 동시에 노렸다.

쩌엉!

경쾌한 바람소리와 함께 마면혈도는 철선동시를 집어던지고 혈도를 뽑아들었다.

철선동시의 멱살을 그대로 잡고 있었으면 턱이 부서졌거나 팔이 떨어졌을 것이다.

휘릭!

철선동시는 몇 바퀴 맴을 돈 후에 아미타여래의 어깨 위에 내려서면서 소리쳤다.

“말대가리! 아무리 똑똑한 척해도 네놈은 돌대가리야. 기껏해야 그 정도까지만 생각할 줄 아는 걸 보면...”

“개 수작마라! 당장 말하지 않으면 얼어 죽은 놈이 칼 맞아 죽은 놈으로 변할 것이다.”

마면혈도가 혈도를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번쩍!

혈광이 번득이는 순간 철선동시는 아미타여래의 어깨에서 날아올라 비로자나불의 머리위로 피했다.

쿵!

혈도에 베어진 아미타여래불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쩍!

마면혈도는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하자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그대로 철선동시를 베어갔다.

실로 놀랍도록 빠른 수법이었다.

철선동시의 가슴 앞자락이 길게 베어졌다.

휘릭!

철선동시는 급히 비로자나불 뒤로 뛰어내려 숨었다.

“끼압!”

화가 꼭지 끝까지 치밀어 오른 마면혈도는 공력을 돋우어 괴성과 함께 비로자나불을 양단해버렸다.

쿠르르르!

비로자나불이 두 조각이 되어 좌우로 나누어졌다.

순간 철선동시가 좌측으로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이 미친 말대가리 놈아! 말은 끝까지 들어야 아는 것 아니냐? 네놈을 쫓는 사람이 우협 장백승이라 해도 내말이 틀렸다고 할 테냐?”

순간 마치 시간이 멎어 버리기라도 한 듯이 마면혈도가 우뚝 서버렸다.

그자의 몸이 석고처럼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은 이미 산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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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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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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