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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장

 

               시체와 말의 혈투(血鬪) (2)

 

 

임청우는 윗부분이 반쯤 날아가 버린 불심연화로 속에 고동의 알맹이처럼 몸을 웅크린 채 밖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마면혈도의 수평혈도참에 하마터면 머리가 날아갈 뻔 했다.

생각하면 실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척포도 크게 놀랐는지 다시 호리병 속으로 기어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는다.

(칼이 수천 근도 넘을 구리 향로를 소리 없이 베어버리다니... 척포 이놈은 저 무시무시한 칼날아래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혈도의 가공할 위력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그러나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마면혈도가 혈도를 휘둘러 붉은 빛줄기를 철선동시에게 퍼붓는 것이 보였다.

우우웅!

마치 붉은 피의 파도가 몰려가는 듯하다.

마면혈도의 끔찍스런 용모와 함께 어우러진 그 광경은 마치 무서운 그림책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다.

(정말 사부님이 이기지 못한다고 할 만하구나. 세상에 저보다 더 무서운 무공이 있을 수 있을까?)

마면혈도의 도법을 본 임청우는 간담이 서늘해져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견문이 짧은 임청우로써는 처음 보는 가공한 장면이었다.

카카캉!

하지만 철선동시는 용조수로 괴이한 강기의 막을 형성하여 혈도의 도기를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화악! 파지직!

두 가지 힘이 부딪히며 예리한 경풍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파삭!

마면혈도의 발에 밟힌 아미타여래의 머리가 과자부스러기처럼 가루가 되어버렸다.

“끼요오오!”

마면혈도는 괴성을 지르며 더욱 세차게 혈도를 휘둘렀다.

“몽선도를 내놔라!”

철선동시 역시 혈도의 그림자 속으로 파고들며 갈까마귀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냈다.

카카캉!

철선동시는 용조수로 마면혈도의 혈도를 튕겨내었다.

촤라락!

뒤이어 그자의 빙혼철선이 접혔다가 확 펴지면서 마치 칼처럼 마면혈도의 목을 베어갔다.

마면혈도는 혈도의 끝부분으로는 용조수의 강기를 막고, 손잡이 부분으로는 빙혼철선을 가로막았다.

치이익! 빠카카캉!

달군 쇠가 물에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푸른 불똥이 튀었다.

휘익!

철선동시는 껑충껑충 뛰면서 바람처럼 재빠르게 물러섰다. 그의 모습은 이야기로나 듣던 강시와 다름이 없다.

두 괴물의 움직임은 귀신이 놀랄 정도로 빨랐다.

마면혈도의 혈도에서 뿌려지는 붉은 빛과 함께 용조수를 펼치는 철선동시의 손톱에서도 푸른빛이 귀화처럼 튀어나와 사방으로 치달린다.

철선동시의 그 기다란 손톱에는 독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강시가 말대가리에게 이기겠구나.)

임청우는 코 윗부분만 빼꼼히 불심연화로 밖으로 내민 채 구경하며 생각했다.

(발목이 잘린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빼앗으려는 걸 보면 몽선도라는 게 정말 중요한 물건인가 보다.)

그리고 보니 철선동시는 농산에서도 몽선도를 탐내는 듯한 말을 했었다.

그 사이에도 참혹한 싸움은 이어졌다.

철선동시의 발목은 지혈을 하지 않아서 피가 줄줄 흘러 대안탑 칠층 바닥을 피로 물들이고 있다.

그런가하면 어깨의 살이 움푹 뜯겨나가 뼈가 허옇게 드러난 마면혈도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용조수와 빙혼철선을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임청우의 생각처럼 두 괴물 간의 우열은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마면혈도의 혈도가 내뿜는 혈광은 점점 위축되는 반면 철선동시의 기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있었다.

철선동시의 빙혼철선은 접혔다 펼쳐졌다를 마음대로 하면서 마면혈도의 요혈을 노리고, 용조수는 가공할 기세로 상대를 핍박한다.

카카캉!

마면혈도는 철선동시의 공격을 가까스로 받아내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진짜 강시인 듯 껑충껑충 뛰는 철선동시의 경신술은 기이하면서도 빠르다.

마면혈도는 지금까지는 거의 위치를 옮기지 않고 싸웠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철선동시의 공격을 감당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져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둑! 콰직!

마면혈도가 한걸음씩 물러날 때마다 그자의 발이 대리석 바닥으로 푹푹 파고들었다.

(얼어 죽은 놈이 무공을 속이고 있었구나. 대체 어디서 소림사의 용조수를 배운 것일까?)

마면혈도의 흉측한 얼굴이 식은땀으로 뒤덮였다.

쫘악!

마면혈도가 생각하면서 생긴 실날같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철선동시의 용조수가 그자의 왼쪽 소매 자락을 뜯어놓았다.

손톱에 직접 닿지도 않은 팔목이 화끈거린다. 용조수의 경풍에 스친 것이다.

팔을 뒤로 물리는 것이 조금만 늦었어도 마면혈도의 팔은 팔꿈치에서부터 뜯겨 나갔을 것이다.

(위험했다.)

마면혈도의 등골로 식은땀이 쫙 흘렀다.

반면 얼어 죽은 시체처럼 창백한 철선동시의 얼굴에는 득의의 웃음이 피어오른다.

촤라라랑!

빙혼철선이 마면혈도의 머리를 노렸다가 빙글 돌며 아랫배를 찌르고 들어갔다.

촤악!

동시에 용조수는 마면혈도의 혈도 중간쯤을 비스듬히 가격하고 있었다.

(승부가 났다!)

임청우는 내심 소리쳤다.

마면혈도에게는 뒤로 물러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막거나 피할 방법 역시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마면혈도는 과연 삼괴 중의 일인다웠다.

스악!

마면혈도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 빙혼철선을 스쳐 보내며 혈도의 손잡이로 철선동시의 팔꿈치를 가격했다.

철선동시는 팔이 깨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손을 움츠리지 않을 수 없었고, 마면혈도는 아슬아슬하게 철선동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크카카캇!”

화악!

회심의 일격에 실패한 철선동시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날아갔다.

팟! 쏴아!

마면혈도가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뒤로 날아갔던 철선동시는 벽을 차고 더욱 빠르게 날아들었다.

철선동시는 날아들면서 손을 어지럽게 아래위로 흔들었다.

샤샤샥!

순간 철선동시의 손에서 수십 수백의 손 그림자가 생겨났다.

새로 생긴 그림자가 먼저 생긴 그림자를 밀면서 노도같이 마면혈도를 향해 밀려갔다.

드드드!

그 가공할 위세에 반만 남은 불심연화로마저 진동했다.

무릇, 강호의 고수들은 대부분이 진실한 절기 하나 둘쯤은 결코 드러내지 않고 숨겨놓기 마련이다.

마면혈도도 이같은 생사의 존망에 처하자 숨기고 있던 비전의 수법을 펼쳐 내지 않을 수 없었다.

휘익!

갑자기 마면혈도의 허리가 뒤로 완전히 꺾이며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가 되었다.

(무슨 짓을...)

철선동시는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했다.

번쩍!

직후 그자의 발 앞에서 붉은 빛이 벼락같이 솟구쳤다.

“헉!”

철선동시는 기겁을 하면서 빙혼철선을 아래로 휘둘렀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크악!”

쩍!

철선동시의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이 동시에 베어져 천장으로 날아올랐다.

후두두둑!

피 보라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마면혈도는 자벌레처럼 몸을 뒤로 꺾어 자신의 두 다리 사이로 머리를 내밀며 혈도를 베어 올렸던 것이다.

바로 혈왕도법 중의 최후 절초인 구사일생(九死一生)이었다.

휘익!

반격에 성공한 마면혈도는 한 바퀴 굴러 자세를 바로 했다.

팔 다리가 하나씩 잘린 철선동시가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는 것이 그자의 눈에 들어왔다.

화악!

마면혈도는 내친김에 철선동시의 목을 벨 심산으로 철선동시를 덮쳐갔다.

퍽!

하지만 그 직후 접혀진 빙혼철선이 마면혈도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철선동시는 쓰러지면서 빙혼철선을 던졌었다.

승기를 잡았다는 사실에 흥분한 마면혈도를 미처 그것을 보지 못하고 철선동시에게 덮쳐갔었다.

날아드는 빙혼철선에 자진해서 몸을 들이민 격이 된 것이다.

퍼억!

가슴에 빙혼철선이 박힌 마면혈도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엎어졌다.

쿠당탕!

균형을 잃은 철선동시의 몸이 불심연화로에 부딪혔다가 아무렇게나 처박힌 것과 거의 동시였다.

 

후두둑!

임청우는 흠뻑 피를 뒤집어썼다. 철선동시의 팔 다리가 잘려지며 뿜어진 피가 가까이에 있던 불신연화로에 흩뿌려진 것이다.

오라는 비는 오지 않고 엉뚱하게도 대안탑 안에서 피비를 맞았다.

드드드!

끈적거리는 불쾌감에 이어 불심연화로가 넘어갈 듯 흔들렸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철선동시의 몸뚱이가 부딪힌 때문이다.

(어이쿠! 이러다간 들키고 말겠다.)

임청우는 요동치는 불심연화로를 바로 하려고 바닥에 납짝 엎드렸다.

퍼억!

그 직후 등덜미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헉!”

임청우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쿵!

그 바람에 철선동시의 몸이 부딪혀 흔들리던 불심연화로가 기우뚱거리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콰당탕!

임청우는 밖으로 굴러 나와 약사여래불 앞에 모질게 엎어졌다.

휘익!

엎어지는 임청우의 손에서 벗어난 호리병이 천장의 틈을 통해 대안탑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으으으...”

등이 근질근질해지면서 손발이 떨려온다.

철선동시의 잘려진 왼팔이 높이 날아올랐다가 임청우의 등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시퍼런 손톱은 떨어지는 기세로 임청우의 등에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임청우는 전신의 맥이 빠지며 학질에 걸린 듯이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온몸으로 확 퍼져가는 끔찍한 냉기에 비하면 등줄기의 통증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으으으...”

임청우는 이빨을 달달 마주치며 무작정 앞으로 기어갔다.

정신이 몽롱해져 왔다.

몸속에 깃들어있는 북두칠성의 힘을 깨우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멀리 두 마두에게서 멀어져야만 한다.

그때 마면혈도가 엎어졌던 몸을 겨우 뒤집으며 거친 음성을 천천히 내뱉었다.

“크크큭! 숨어있던 쥐새끼가 벼락을 맞았군. 저 강시 놈의 빙골산(氷骨散)은 해약이 없는 극독인데...”

마면혈도는 임청우라는 것까지는 몰랐지만 불심연화로 속에 누군가가 숨어있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다.

다만 호흡이 정제되지 못하고 거친 것으로 보아 무공을 익히지 못한 자라는 것을 알았기에 서둘러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같은 사정은 철선동시도 마찬가지였다.

“끼끼끼... 말대가리, 네놈도 혈도에 색혈사(索血蛇)의 독혈(毒血)을 발라놨었군. 덕분에 셋 다 살아나기는 틀렸어.”

철선동시가 팔과 다리가 잘려져 널브러진 채 키득거렸다.

이상하게도 그자의 상처에서는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면혈도의 혈도에 묻어있던 색혈사의 독혈이 그의 피를 응결시켜 버린 것이다.

그 독기는 심장을 향해 가면서 모든 피를 굳혀버린다.

싸우는 동안에는 몸의 움직임이 급격하여 피가 솟구쳐 나왔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게 된 지금은 피가 상처에서부터 심장 쪽으로 급격히 굳어지고 있었다.

철선동시는 조금이라도 더 살아있기 위해 혼신의 공력으로 색혈사의 독혈이 몸속으로 스며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결국엔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다.

팟!

“썩을 놈!”

한숨 돌린 마면혈도가 가슴에 박힌 빙혼철선을 뽑아 던지며 악다구니를 썼다.

푸악!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진다.

빙혼철선에도 철선동시가 사용하는 빙골산이 묻어있었다.

빙골산은 극심한 냉기를 품고 있는 특이한 독약이다. 이에 중독된 자는 얼어 죽게 되는데 천년이 지난다 하더라도 썩지 않는다.

빙골산의 독기에 의해 마면혈도의 가슴 상처에 서리가 앉으며 허옇게 변하고 있었다.

용조수에 살이 뜯겼던 그자의 어깨는 공력의 운행이 중단된 탓에 벌써 서리가 두텁게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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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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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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