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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온 마두들 (2)

 

 

정말 묘한 곳이야. 여기라면 유가 놈도 우릴 쉽게 찾아내지는 못하겠지.”

마면혈도가 감탄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자의 눈에 절벽 가에 서있는 두 개의 대나무가 들어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 대나무의 위쪽, 달이 만든 절벽 그림자에 가려져있는 임청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마면혈도의 얼굴은 더욱 말같이 보여 공포스럽다.

죽이려다가 죽이지 못하고 갔으니, 발각되기만 하면 자신은 두 토막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임청우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철선동시가 허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한풍(寒風)이 불어나온다는 건 안쪽에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뒤쪽마저 막혀 있다면 금상첨화고...”

캇캇캇!”

마면혈도는 뭐가 그리 좋은지 커다란 입을 벌리고 웃었다.

(그래도 히히힝! 하고 웃지는 않는군.)

임청우는 마면혈도의 웃음이 공포스럽기는 하지만 말울음 소리가 아니라는 걸 오히려 신기해했다.

그 마면혈도가 웃음을 멈추며 말했다.

이봐! 얼어 죽은 놈! 도망쳐 다니는 것도 질렸으니 그만 이곳에 자리를 잡도록 하자.”

글쎄... 그래도 좋겠지만 바람 속에 사람냄새가 묻어있어. 골짜기 안에 사람이 있는 게 틀림없는데...”

철선동시가 철선을 흔들면서 의미심장한 눈빛을 마면혈도에게 보냈다.

그자의 말에 임청우는 자신이 발각된 줄 알고 깜짝 놀라 하마터면 죽마에서 떨어질 뻔 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럼 죽여야지.”

휘익!

마면혈도가 등에서 혈도를 꺼내들고 앞장서서 비련곡 안으로 사라졌다.

철선동시는 느긋한 웃음을 흘리면서 주변을 한번 돌아보고는 마면혈도를 따라갔다.

임청우는 두 괴물의 모습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죽마에서 내려왔다.

죽마를 절벽 그늘진 곳에 숨겨놓은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냐!”

좁고 긴 계곡 입구를 빠져나왔을 때 모옥 쪽에서 앙칼지게 외치는 어머니 임단심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임청우는 즉시 바닥에 엎드렸다.

싱싱한 약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크하하핫! 늙은 암고양이가 살고있을 줄은 몰랐는걸.”

즐거운 듯 웃는 마면혈도의 웃음소리가 임단심의 음성에 이어 들려온다.

바닥에 엎드린 임청우는 마면혈도와 철선동시의 등이 보이는 곳까지 기어갔다.

!

그 직후 모옥의 문을 부수고 어머니 임단심이 날아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가 빼어난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임청우도 전부터 알고 있던 바였다.

하지만 문을 부수고 날아 나와 선녀처럼 옷깃을 나부끼며 내려서는 어머니의 모습에는 놀라 눈이 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다.

철선동시는 한쪽으로 슬쩍 비키면서 웃고 말했다.

이같은 경계에 이인(異人)이 살지 않는다면 말이 되지 않지. 한데 신법을 보아하니 우리와 동류(同類)인 듯하군.”

... 당신은!”

임단심은 시뻘건 칼을 들고 서있는 괴물같은 마면혈도의 모습에 헛바람을 삼켰다.

마면혈도...!”

그녀는 주춤 물러서며 떨리는 음성으로 내뱉았다.

크캇캇캇! 본좌를 알고 있다니... 그럼 저 친구도 알아보겠는가?”

마면혈도가 광소를 터뜨리고 철선동시를 가리켰다.

(마면혈도와 철선동시...!)

임단심은 철선동시 역시 알아보고 파리한 얼굴에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흉포하기로 유명한 삼괴(三怪) 중 두 놈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삼괴...!

일왕(一王) 일협(一俠) 다음으로 거론되는 이자들은 사파(邪派)를 대표하는 고수들로서 독선적이고 흉포하기 이를 데 없는 무리들이었다.

삼괴의 첫째는 무비옹(無比翁)이라 불리는 늙은이인데 외호를 스스로 지은 자다.

무비(無比)라는 말은 견줄 곳이 없다는 뜻이니 그런 이름을 지은 것만 보아도 얼마나 오만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무비옹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직 삼괴의 둘째인 마면혈도와 세째인 철선동시가 매우 두려워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비옹의 무공이 두 사람에 비해 월등할 뿐만 아니라 흉폭 잔인하기까지 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비옹을 본 사람도 거의 없고 그의 무공을 본 사람은 더더욱 없다.

대신 이따금씩 발견되는 사지가 찢어지고 몸통은 새까맣게 타버린 시체가 발견되면 그것이 무비옹의 짓이라고 사람들은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그 흉악 잔인함은 이름 그대로 무비, 견줄 곳이 없는 인물이 무비옹이다.

삼괴의 둘째 마면혈도는 살인과 방화, 강간을 밥 먹듯이 하는 자다.

삼괴의 셋째이며 강시(疆屍)같은 몰골을 한 철선동시는 교활할 뿐만 아니라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마다하지 않는 냉혈한이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나 형제마저도 서슴없이 죽일 수 있는 자가 철선동시인 것이다.

 

(오늘밤 어쩌면 나 혈관음(血觀音) 임단심의 모진 목숨이 끝날지도 모르겠구나.)

임청우의 어머니, 혈관음 임단심은 푸른빛이 감도는 파리한 입술을 깨물었다.

(그나마 삼괴의 우두머리인 무비옹이 함께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삼괴는 당금 무림의 최절정 고수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비록 첫째인 무비옹이 함께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을 어떻게 상대한단 말인가?

임단심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면혈도가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다가왔다.

흐흐흐! 약간 늙기는 했지만 아직도 팽팽할 것 같군. 이 나으리를 즐겁게 해주기엔 부족함이 없겠어.”

그자의 주먹덩이 같은 눈동자가 음욕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임단심은 흠칫하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마면혈도가 기분이 내키는 대로 살인과 강간을 저지른다는 말은 익히 들었었다.

그러나 임단심은 이내 차가운 눈빛을 내쏘며 분노에 저민 말을 내뱉었다.

미친놈... 네놈 따위가 감히...”

번쩍!

순간 한줄기 혈광이 그녀의 눈앞에서 일어났다.

(위험하다!)

임단심은 날카로운 도기를 느끼며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몸이 안개처럼 흔들리며 옆으로 두 걸음 이동했다.

스악!

그러나 혈광은 허공에서 빙글 방향을 돌리더니 임단심의 면전에 다시 나타났다.

싸늘한 한기가 전신을 엄습하는 순간 그녀는 마치 거미줄에 얽히기라도 한 듯이 꼼짝할 수 없었다.

흐흐흐...”

혈도 끝을 임단심의 가슴에 댄 마면혈도가 음탕한 시선을 보내며 입을 열었다.

삼보면천(三步免天)! 세 걸음이면 하늘의 그물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보법이기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겨우 사성(四成) 수준의 삼보면천으로는 이 나으리의 혈도를 피할 수 없지. 자 순순히 옷을 벗어라.”

사삭!

마면혈도가 칼끝을 약간 아래로 내리자 임단심의 앞가슴 옷이 예리하게 베어지며 흰 속살이 드러났다.

임단심의 얼굴은 경악과 분노와 수치로 인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가녀린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삼보면천이라고?”

그때 한쪽에 서있던 철선동시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임단심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마치 까마귀가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말해라! 삼보면천을 누구에게 배웠느냐?”

! 그렇지. 대형께서 삼보면천을 사용하는 자를 보면 즉시 잡아두라고 하셨지!”

마면혈도가 머리를 끄덕였다.

(이놈들이 설마 내 신분을 알아차린 것일까?)

임단심의 안색이 확 변했다.

 

(저 괴물들이 어머니를 죽이려는 모양이다.)

기화요초가 무성한 초지에 엎드려서 보고 있던 임청우는 다급해졌다.

그 바람에 척포라고 이름 지어준 금관혈린사가 호리병에서 스르르 빠져나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마면혈도가 혈도로 어머니의 가슴을 겨누고 있는 게 임청우의 눈에 들어왔다.

이에 그는 급한 대로 근처에 있는 주먹만한 돌을 주워 있는 힘을 다해 던졌다.

!

돌은 포물선을 그리며 마면혈도의 뒤통수를 향해 날아갔다.

?”

바람소리를 들은 마면혈도는 뜻밖이라는 듯 몸을 빙글 돌리며 칼을 쥐지 않은 손으로 돌을 낚아챘다.

누구냐?”

철선동시도 벼락같이 소리치며 임청우가 엎드려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화악!

날아오며 휘두르는 그자의 철선에서 뼛속까지 얼려버릴 것같은 냉기가 쏟아져 나왔다.

(들켰다!)

휘리릭!

임청우는 다급히 옆으로 몸을 굴렸다. 그의 몸에 깔린 화초와 약초들이 땅에 납작하게 눌려졌다.

쩌저적!

임청우가 누워있던 곳의 기화요초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철선동시가 휘두른 철선에서 뿜어진 지독한 냉기 때문이다.

재빨리 몸을 굴렸지만 임청우도 그 냉기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털썩!

머릿속에서 쨍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정신이 아득해져 기화요초 사이에 널부러졌다.

암고양이뿐 아니라 쥐새끼도 숨어있었구나!”

철선동시가 까마귀같은 음성으로 웃으며 임청우를 덮쳐왔다. 그자는 아직 임청우가 표운봉에서 만났던 소년임은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다.

헌데 철선동시가 막 임청우를 낚아채려 할 때였다.

쉬쉬쉭!

돌연 미미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크윽!”

그와 함께 마면혈도의 쥐어짜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마면혈도의 비명소리에 임청우를 낚아채려던 철선동시는 급히 허공에서 빙글 돌아 솟구쳐 올랐다.

우욱!”

직후 철선동시 역시 허벅지에 예리한 흉기가 파고드는 것을 느끼며 몸이 기우뚱했다.

철선이 뿜어낸 냉기에 피가 얼어붙어서 널부러졌던 임청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휘리릭!

정신이 돌아오자 임청우는 다시 사력을 다해 몸을 옆으로 굴렸다.

얼어붙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구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절벽 쪽으로 굴러가는 임청우의 눈에 얼핏 어머니가 무언가를 던진 자세로 훌쩍 물러서는 것이 들어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임청우의 몸은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몇 번 구른 사이에 절벽에 이르렀던 것이다.

 

크윽!”

마면혈도는 목을 움켜잡고 비틀거렸다. 그런 그자의 목에서는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치솟고 있었다. 길이 한 뼘쯤 되는 쇠못이 목에 박힌 것이다.

하지만 그 쇠못은 피부를 뚫고 들어왔을 뿐 치명상을 입히지는 못했다.

피가 심하게 뿜어지는 것은 목을 지나는 혈관중 하나가 찢어진 때문이다.

쿨럭! 쿨럭!”

임단심도 연신 기침을 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이 가랭이를 찢어 죽일 년!”

마면혈도는 목에 박힌 쇠못을 확 잡아 뽑아 멀리 집어던지면서 짐승같이 고함쳤다.

쉬쉭!

흐윽!”

직후 혈도가 빛을 발하고 혈광이 어지럽게 번득이는가 싶더니 임단심이 걸친 옷이 조각조각 나서 허공으로 흩날렸다.

이이이... 천한 것이 감히...”

삽시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이 되어버린 임단심은 급히 치부를 가리면서 분노와 수치를 이기지 못해 부르르 떨었다.

입가에 가득한 선혈과 살기어린 그녀의 눈빛에 마면혈도는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마면혈도는 목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가슴을 적시자 다시금 강한 분노와 함께 음욕이 들끓어 올랐다.

임단심은 마면혈도가 날아온 돌을 잡느라 뒤를 돌아보고, 철선동시가 임청우를 향해 몸을 날린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세 대의 쇠못을 발출했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상이 발작하여 기혈이 막혀버렸다.

그 때문에 공력의 상당부분이 흩어지면서 쇠못의 겨냥도 약간 비틀어져 버렸다.

바로 코앞에 있던 마면혈도의 목을 겨냥했던 쇠못은 요혈을 조금 비켜서 박혀버렸다.

철선동시의 등을 노렸던 나머지 두 대의 쇠못 중 하나는 그자가 피해버리고 겨우 한 대 만이 허벅지에 격중 되었을 뿐이었다.

(... 틀렸나?)

아득한 절망감이 임단심을 휩쓸었다.

흐흐흐... 두 번 다시 뻗대지 못하게 해주마.”

마면혈도가 음욕을 참지 못하는 웃음을 흘리며 칼을 흔들었다.

흐윽!”

붉은 빛이 눈앞에서 다시 한 번 번득이는 순간 임단심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것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고 말았다.

어스름 달빛 아래 혈도가 봉쇄되어 쓰러진 그녀의 나신이 파랗게 빛났다.

흐흐흐...”

마면혈도는 칼을 집어넣고 자신의 바지를 벗었다.

임단심의 얼굴은 서른을 넘긴 나이와 오랜 투병생활에 초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내를 뇌쇄시킬 만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마면혈도는 우악스런 손길로 임단심의 알몸을 화초들 위로 집어던지고, 그 위로 숨을 씩씩거리며 덮쳐갔다.

내상이 도져 정신이 혼미해진 임단심은 배추 속같이 새하얀 두 팔을 양쪽으로 힘없이 떨군 채 널브러져 있었다.

헌데 그런 그녀의 왼쪽 팔뚝에는 작고 붉은 점 하나가 찍혀있는 것이 아닌가?

수궁사(守宮沙)!

그것은 바로 처녀(處女)의 상징이라는 수궁사였다.

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인 여인이 어떻게 아직까지 처녀의 상징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물론 그토록 고이 지켜온 처녀성이 지금 색마의 손길아래 무참히 짓밟히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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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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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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