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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까이 있으나 먼 곳에서 왔느니

 

 

 

진양진인은 현천록이 초상감각에 아주 빨리 눈 뜨는 것을 보고 충분히 가르칠 만 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천록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어 버렸다.

양의신공의 구결을 진양진인이 풀어주기 시작하자마자 즉시 그 의미를 해득해버린 것이다.

양의신공같은 상승무공은 연공도 연공이지만 깨달음이 주가 된다.

특히 양의신공은 그 속에 여러 가지 무공의 비결을 담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양의신공에는 마음을 두 개로 나누어 사용하는 양심공이 포함되어 있다.

무당에서 원로들 중에 양의신공을 익히지 않은 자는 없다.

그러나 양의신공 속에 있는 양심공의 구결이나 그 밖의 묘용들을 깨달아 익히는 자 또한 극히 드물다.

현천록이 양의신공의 구결을 완벽하게 암송해낼 뿐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선천지기(先天之氣)를 이끌어내 양의신공의 바탕으로 만드는데는 진양진인의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자넨... 정말 신비하군. 마치 물을 담는 그릇이 존재하는 것처럼 자넨 양의신공을 배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네.]

현천록은 내공을 쌓기 위해서 흔히 하는 토납(吐納)과 축기(蓄氣)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보통 내공을 닦을 때는 천지의 기운을 몸속에 받아들여 쌓고 키워 나가며 더욱 정화시키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처음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지기를 이끌어내게 되면 그 순수함을 바탕으로 크지는 않아도 아주 뛰어난 내공을 지닐 수 있게 된다.

진양진인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을 말로만 들었지 직접 본 적은 없다.

현천록이 양의신공의 구결을 해득하면서 선천지기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는 것을 보는 그의 감회는 아주 특별했다.

양의신공은 도가의 무공이니 선천지기를 중시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진양진인은 어쩌면 양의신공을 다른 무공을 배운 후에 익혔기 때문에 선천지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천록이야 말로 진짜 양의신공을 익히게 되는 것같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진양진인은 양의신공의 구결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양의신공은 이미 현천록의 무공이 되어 있었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내력을 손으로 모아서 바위를 쳐보게.]

현천록의 손이 바위에 닿자 밀가루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났다.

!

가볍게 돌가루가 날린다.

현천록이 말했다.

[이정도면 얼마나 배운거죠?]

진양진인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주 잘했네. 아마도 전설 속의 그 창허진인도 자네보다는 못했을걸세. 세상에 기재는 따로 있었네 그려. 그 정도면 다른 사람의 삼십년 공력에 못지않네.]

현천록은 빙그레 웃었다.

진양진인이 무슨 생각에서 무당파의 최고 신공인 양의신공을 가르쳐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기를 몸 속에 지니게 됐다는 사실이 그를 유쾌하게 만들었다.

진양진인이 말했다.

[이제 자네가 내 몸에 양의신공을 조금 주입해서 막힌 혈도를 뚫어주게. 현기와 명문, 좌협, 천중, 선기, 협곡이네. 아니아니! 자네는 혈도를 아직 모르겠군. 총명하니 금방 배우게 될걸세.]

현천록이 웃으며 말했다.

[도장께선 우리가 내기했다는 걸 잊기라도 한 것 같군요.]

진양진인이 말했다.

[잊을 리가 있겠나? 하지만 자네가 지게 될걸세. 일단 내말에 따르기로 했으니 내가 시키는대로 따르게.]

현천록은 진양진인이 자기의 몸을 일일이 짚어가며 혈도의 정확한 위치와 묘용을 가르쳐 주는 것을 들었다.

[이제 자네 손으로 직접 자네 혈도들을 확인해보게.]

진양진인이 아주 지친 듯 피곤한 음성으로 말했다.

현천록은 자기의 몸이 마치 거미줄에 휘감긴 것 같은 착각을 했다.

손으로 혈도를 확인해나가는 곳마다 온 몸을 거미줄같은 것이 휘감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삼백육십개의 혈도를 다 확인하고 났을 때는 마치 몸밖에서 몸을 보는 것처럼 자기의 몸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미미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따금씩 끊어지기도 하고 신음도 섞여있다.

장군묵의 손에 중상을 입고 현천록에게 양의신공을 전수하느라 지칠때로 지쳐버린 진양진인의 숨소리다.

현천록은 양의신공을 다시 연습하면서 그가 잠에서 깨어나길 기다렸다.

무공을 배우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들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X X X

 

하얀 눈으로 뒤덮힌 자금산에 태양이 떠올랐다.

눈에 반사된 햇빛이 눈을 부시게 한다.

[! 얼굴까지 새까맣게 타겠군. 겨울에도 나다니려면 몽면을 하든지 해야지 원.]

이매봉은 투덜거리면서 황금빛 일출을 맞았다.

날이 밝을 때까지 코를 끙끙거리면서 눈밭을 헤맸지만 결국 희미해져버린 현천록의 종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매봉은 손수건을 깔고 앉았지만 엉덩이가 몹시 시려왔다.

어지간히 지치기도 지쳤다.

[어휴~ 그녀석!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손오공 정도로 생각했더니 나한테서 도망을 쳐? 어디 찾기만 해봐라 그냥...]

이매봉은 눈앞에 현천록이 있으면 치기라도 할 듯이 주먹을 번쩍 치켜들었다.

하지만 슬그머니 다시 내렸다. 햇살이 이렇게 찬란한데 주먹질을 해대는 건 어울리지 않을 성 싶어서다.

엉덩이는 찬바위를 닮아가며 싸늘하지만 얼굴은 햇빛을 받아 따스하다.

반이나마 온화함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세상사는 낙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하지만 이매봉의 드문 감상은 세 사람이 산정으로 다가오면서 끝나고 말았다.

세사람은 흑의(黑衣)를 입었는데 눈 위를 걸어오는 모습이 말 그대로 검은 점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린다.

이매봉은 마주쳐봤자 귀찮은 일만 있을 것 같아 적당한 바위를 찾아 몸을 숨겼다.

세 사람 모두 수염이 허옇게 센 노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인상이나 눈빛이 모두 바르게 살아온 사람같지는 않다.

친형제지간인지 모두 비슷한 얼굴이기도 하다.

한 사람은 검을 들었고, 또 한사람은 한겨울인데도 합죽선(合竹扇)을 들었으며, 또 다른 한 사람은 손안에서 호두 두 알을 굴리면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호두를 굴리는 사람이 말했다.

[노대(老大)! 진양진인 그 늙은이가 머리를 좀 쓴 것 같소. 헤헤... 물론 노대에겐 못미치겠지만 말이오.]

합죽선을 든 사람이 어깨를 한 번 우쭐하며 웃는다.

검을 든 사람이 말했다.

[노대! 노삼(老三) 말이 맞소. 그 늙은이가 함정을 파놨을 거라는 짐작이 여지없이 맞아떨어졌소. 겁없이 날뛰던 놈들은 현무호에서 모조리 죽었소.]

촤락!

합죽선을 든 사람이 한 번 펼쳐서 얼굴을 부치며 말했다.

[대단한 것도 아니다. 노이(老二)! 너도 한번 생각해봐라. 진양진인과 포두화상은 절친하다고는 못해도 옛날부터 친구지간이었지. 한데 뜬금없이 현무호에서 만나 싸운다는 게 말이나 되나?]

호두알을 굴리는 노삼이 말했다.

[하지만 노대, 진양진인이 옥황빙서를 가졌다면 포두화상이 싸움을 걸 수도 있지 않겠소?]

노대가 말했다.

[옥황빙서? ! 다들 미쳐서 날뛰는 옥황빙서 말이지? 진양진인이 가졌다고 들었는데 글쎄... 현무호에서는 진양진인은 콧베기도 보이지 않고 괴물같은 놈이 나왔지. 모두 그 괴물같은 놈에게 옥황빙서를 내놓으라고 달려들었는데 어떻게 됐나? 모두 죽었어. 그 괴물같은 작자는 옥황빙서에 대해서 가타부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노이가 말했다.

[그럼 노대는...]

노대가 말했다.

[잘 생각해야돼. 괴물같은 놈과 진양진인을 혼동하면 절대로 안되지. 진양진인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야. 무공도 뛰어나지만 항상 주위에 있는 누군가를 이용하곤하지. 철저하게 계산적인 머리를 지닌 사람이지. 괴물같은 놈도 진양진인에게 이용당했을 거야. 옥황빙서는 진양진인이 가지고 있을거야. 우린 무조건 진양진인만 찾아서 죽이면 돼.]

노삼이 감탄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노대는 진양진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소그려.]

노대가 화를 벌컥 내면서 말했다.

[너는 내가 진양진인에게 패했던 걸 비웃는거냐?]

노삼이 황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난 노대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오. 석년에 노대가 그와 싸워 이기지 못한 것도 실상 노대의 삼음장(三陰掌)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지 않소? 지금 노대는 삼음장을 대성했으니 진양진인도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 확실하오.]

노대가 코웃음을 쳤다.

[! 알랑방귀 따윈 집어치워라. 진양진인이 왜 진양진인이겠나? 소양지(小陽指)의 공력을 지니고 있는데 내 삼음장인들 무슨 위세를 부릴까? 하지만 흥! 내겐 비장의 수법이 있지.]

그때 노이가 불쑥 물었다.

[노대, 진양진인은 누구한테서 옥황빙서를 얻었소? 그리고 대체 옥황빙서가 뭐요?]

노대는 한심하다는 듯이 노이를 보고 나서 말했다.

[옥황빙서는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옥황빙서에는 어떤 곳을 가리키는 지도가 그려져 있고 다른 쪽에는 천상의 무공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옥황빙서를 얻는다면 첫째는 무공을 익히고 둘째는 지도에 적힌 곳을 찾아가는 것이 순서다.]

노이가 물었다.

[옥황빙서에 대한 이야기는 어렸을 때 사부님께 얼핏 들은 적이 있소. 대체 옥황빙서는 얼마나 오래된 것이오?]

노대가 말했다.

[그것도 아는 사람이 없다.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이 됐는지도 모르지.]

노삼이 물었다.

[노대, 우리가 만약 옥황빙서를 얻게 된다면... 무공은 함께 익힐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곳을 찾아가는 것도 함께 할 수 있소? 혹시 한 사람만 갈 수 있다면...]

노대가 차갑게 쏘아부쳤다.

[별 걱정을 다하는군. 쓸데없는 걱정말고 진양진인이나 찾아봐! 틀림없이 자금산 중에 있을 테니까.]

노삼이 입이 쑥 들어갔다.

노대가 말했다.

[현무호에서 자금산 쪽으로 묘한 냄새가 이어졌단 말이야. 매화향기 같기도 하고 포도냄새같기도 한 냄새지. 미약한 것 같으면서도 잘 흩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묘한 냄새야. 어쩌면 옥황빙서에서 나는 냄새일 수도 있고 진양진인이 가진 다른 물건 냄샐 수도 있지. 어쨌든 이 근처가 틀림없어.]

이매봉은 노대라는 자가 하는 말을 듣고 속으로 감탄했다.

(정말 늙은 생강이네. 우리가 쓰는 일매향(逸梅香)은 어지간해서는 알아차릴 수도 없는데... 완전 개코다! 한데 일매향은 현천록한테서 나는 냄새잖아. 진양진인이라니 당신들은 짚어도 한 참 잘못짚었어.)

이매봉은 바위 뒤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중얼거렸다.

[나도 못찾은 녀석 당신들이 찾아주면 고맙지.]

그때 노이가 말했다.

[노대! 산 동쪽으로 가면 동굴이 하나 있소. 절벽 중간에 있는데 혹시 그곳에 숨은 건 아닌지 모르겠소.]

갑자기 노대가 버럭 소리쳤다.

[웬놈이냐!]

이매봉은 그 소리가 자기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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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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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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