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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피로 물들다 (4)

 

 

 

현무호에 왔던 이매봉은 혀를 찼다.

[! 한 발 늦었어. 다음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겠는걸.]

근처 바위 위에 서있던 상관숭이 시체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자는 이십년 전에 좌검우도(左劒右刀)로 이름을 날렸던 관부의 고수 황보전호(皇甫戰虎)군요.]

이매봉이 말했다.

[은거했다질 않았나?]

상관숭이 말했다.

[속하가 살펴본 스물일곱은 모두 강호에서 활동을 하지 않던 자들이었습니다. 뭣 때문에 다시 강호에 나와 죽임을 당했는지 알 수 없군요.]

이매봉이 말했다.

[옥황빙서 때문이야. 죽은 놈들이 외치는 소리도 못 들었어? 멀리까지 들리던데.]

상관숭이 이매봉 앞에 날아내리며 말했다.

[옥황빙서는 전설입니다. 아직 누구도 그걸 가졌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일곱째라는 자가 옥황빙서라는 걸 가졌겠군. 그러니까 그처럼 대단한 척하겠지.]

이매봉이 말했다.

[그 괴물을 잡아놓고 한 번 확인해보자구. 어때 너하고 한 번 붙어볼 만 하겠어?]

상관숭이 머리를 저었다.

[이백 초를 넘기지 못하고 찢어질 것입니다. 그자는 무공에 있어서 이미 일대종사(一代宗師)입니다. 어느 누구도 무공으로는 그의 앞에서 장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매봉이 깔깔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살며시 접근해서 실험만 해보면 되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하고 말 걸?]

상관숭이 말했다.

[금은동철석의 오보(五寶)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매봉이 말했다.

[한 녀석이 사기치길래 그냥 줘버렸어. 한 삼년 있으면 다시 구하게 되겠지.]

상관숭이 아주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이매봉이 활달하게 말했다.

[이봐! 너희들 오신검(五神劍)은 지금도 충분히 강해. 그리고 삼년 뒤에 다시 오보가 준비될 테니 서두르지마!]

[알겠습니다.]

상관숭이 머리를 숙였다.

금은동철석, 이 다섯 가지의 정화는 상관숭이 속해있는 오신검(五神劍)의 검을 다시 녹여 보강할 중요한 재료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할 검은 천하에서 가장 강한 검이 된다.

상관숭은 머리를 숙였지만 지난 삼년을 기다렸는데 다시 삼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이매봉이 말했다.

[오보는 그 녀석을 찾는 중요한 단서다. 우리 물건들에는 특이한 향이 들어있다는 걸 녀석은 모르고 있어.]

상관숭이 불쑥 말했다.

[그를 좋아하는군요.]

순간 이매봉의 손이 춤을 추었다.

짜짜짜자작!

상관숭의 양쪽 뺨에 불이 튀었다.

그리고 이매봉의 발이 상관숭의 턱을 걷어찼다.

상관숭은 허공에서 뒤로 한 바퀴 까뒤집어진 후에 눈 위에 떨어졌다.

이매봉의 발이 상관숭의 머리를 밟았다.

상관숭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이매봉이 얼음장처럼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

[상관숭! 본회주를 청루의 기녀쯤으로 아느냐?]

상관숭은 머리를 들래야 들 수도 없었다.

[속하의 불충을 용서하십시오.]

이매봉이 소리쳤다.

[죽여 달라는 소리 대신 용서하라고?]

[죽여...주십시오.]

상관숭이 힘없이 말했다.

자기도 모르게 이매봉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살아나긴 틀렸다 싶었다.

이매봉은, 상관숭이 아는 이매봉은 죽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망설이거나 마음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다.

모두가 이매봉을 두려워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들이 있다.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거칠 것 없이 행동하고 거슬리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이매봉이었다.

상관숭도 그녀의 입에서 무시무시하고도 중대한 결정들이 장난처럼 이루어지는 것을 숱하게 봤었다.

이매봉이 말했다.

[본 회주를 빈정거리거나 억누르려는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상관숭! 여기서 머리를 박살내고 싶지만 바꿔 신을 신이 없어 그냥 둔다. 하지만 즉시 돌아가라. 돌아가서 형극(荊棘)의 방에서 내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려라.]

형극의 방...

상관숭은 앞이 캄캄해왔다.

형극의 방에 들어간다면 죽어나오거나 미쳐 나오는 두가지 경우 밖에 없다.

약한 자는 모두 죽었고 강한 자는 미쳤다.

하지만 명이 떨어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다.

[... 회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상관숭이 다시 일어났을 때 이매봉은 사라지고 없었다.

상관숭은 바람처럼 달려갔다.

형극의 방에 들어가는 것도 늦는다면 그 뒤에 어떤 후환이 생길지 모른다.

회주 이매봉은 여자인 것이다.

여자의 앙심은 처음에 풀어놓지 않으면 평생을 두고 보복을 당한다.

남자 보기를 소 닭 보듯 하는 이매봉에게 실언을 했으니 처음부터 그녀의 분노를 누그러뜨리지 못한다면,

상관숭은 오보가 새로 완성되기 전에 자기는 시체로 변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매봉은 다정다감한 듯 하면서도 서릿발 같은 여자다.

다정다감함에 잠시 경계를 늦추었던 것이 실수다.

더구나, 제멋대로 인듯하면서도 거대한 조직을 조금의 실수도 없이 이끌고 있다.

이매봉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

 

상관숭이 달려가는 방향은 서쪽이다.

같은 시간 이매봉은 냄새를 쫓아서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이매봉은 자금산을 향해서 달려갔다.

(현천록 그 녀석은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현무호에 일어났던 혈풍도 녀석 때문인지도 몰라. 재미난 일이야. 녀석을 만나고부터 계속 이상한 일들이 생기니... 게다가 옥황빙서라니 후훗!)

머릿속에 현천록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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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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