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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1.15 [대도전능] 19화 소란스러운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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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소란스러운 밤

 

 

 

금릉은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진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금릉을 몽환적인 꽃밭으로 만든다.

불야성을 이루는 금릉에서 가장 어두운 곳은 의외로 고급스러운 저택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자금산 서쪽 자락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강남 일대의 부호들과 고관대작들의 저택들이다.

밖에서 보면 저택들에는 불빛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부지가 워낙 넓어서 정원과 숲과 담장들이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들을 차단하는 때문이다.

한데 어느 저택에서는 불빛이 요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굳게 닫혀있는 저택 정문의 처마에는 <孫府(손부)>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손부는 태자태부(太子太傅) 손충(孫忠)이란 인물의 저택이다.

태부(太傅)는 황제의 스승을 일컫는다.

태자의 태부라는 관직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손충은 황태자 주고치의 스승이다.

원래대로라면 태자태부는 명나라의 수도가 된 북경에서 봉직(奉職)해야 한다.

하지만 황태자 주고치가 금릉에 차려진 또 하나의 조정, 분조(分朝)를 관장하고 있어서 태자태부 손충도 금릉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 손충의 저택 손부가 다른 저택들과 달리 이리저리 움직이는 불빛들로 소란스럽다.

 

아가씨... 자경(紫鏡)아가씨 어디 계셔요?”

누군가 자경 아가씨 규방에 침입한 흔적이 있다!”

.... 색마살귀가 아가씨를 납치해갔는지도 모른다.”

손에 손에 등을 든 하인과 하녀들이 손부의 안채를 황황히 치달리며 외치고 있었다.

태자태부 손충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동딸이 있었다.

이름이 손자경(孫紫鏡)인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예쁘고 영특하기로 이름이 났었다.

아비가 황태자의 스승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황태자의 가족들과도 왕래가 있었다.

그런 인연으로 손자경은 황태자 주고치의 장남 황태손(皇太孫) 주첨기(朱瞻基)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항간에는 황태손 주첨기가 손자경을 후궁으로 삼길 원한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그 손자경이 누군가에게 납치당했다.

태자태부의 저택에 침입하여 외동딸을 납치해갈 정도로 대범한 자라면 색마살귀일 가능성도 있다.

서둘러 자금성으로 가서 부주님께 귀가 해주십사 청하라. 아가씨의 정절과 관련된 일이니 구체적인 이유는 발설하지 말고!”

예 집사님!”

늙은 집사의 지시를 받은 하인이 허둥대며 정문쪽으로 달려갔다.

부웅 부웅!

그 소동을 한 마리 말벌이 지켜보고 있었다.

크기가 무려 참새만한 거대한 말벌이었다.

 

***

 

 

계명사(雞鳴寺)는 금릉에서 가장 오래 된 절이다.

동진(東晉) 시대에 지어진 계명사에는 칠층으로 이루어진 약사불탑(藥師佛塔)이 있다.

“...!”

금릉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한 약사불탑 꼭대기에 누군가 서있다.

마치 탑의 일부가 된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그 인물은 검은색 복면을 쓴 훤칠한 체격의 사내다.

팔짱을 낀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복면인의 눈빛이 깊고도 강렬하다.

하늘에는 거의 완전해진 달이 떠있다.

내일이 보름이다.

(하루 남았군!)

복면인은 중천(中天)으로 올라가고 있는 달을 올려다보며 미간을 모았다.

(사 년 전부터였다. 보름달이 뜰 무렵 금릉 일대에서는 간살(姦殺) 당한 젊은 여자의 시체가 발견되곤 했다. 색마살귀라 불리는 작자의 짓인데..)

생각에 잠긴 복면인의 눈이 푸르스름한 살기로 물들었다.

(포청(捕廳)에서 작성한 검안서(檢案書)를 훔쳐본 바에 의하면 희생자들은 마치 수십 년의 나이를 단번에 먹은 것처럼 변해있었다고 한다.)

팔짱을 낀 복면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색마살귀에게 희생당한 젊은 여자들의 사인은 음기(陰氣)와 생기(生氣)의 소실이었다.

, 단순히 즐기기 위해 여자들을 간살해온 게 아니라는 뜻이다.

사악한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인지는 모르지만 여자들을 채음보양(採陰補陽)의 제물로 쓴 것이다.

(난 독천존의 감시 때문에 금릉을 벗어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무료함도 달랠 겸 지난 삼년간 꾸준히 색마살귀의 종적을 추격해왔다.)

독천존의 감시!

그렇다. 복면인은 부운이었다.

 

부운은 우내칠절 중 한명인 독천존에게서 금천구룡로를 훔치는데 성공했었다.

하지만 분이가 실수로 금천구룡로를 여는 바람에 세상을 종말로 이끌 수도 있는 구룡짐독이 튀어나왔다.

부운은 급히 익힌 조룡여의대법으로 구룡짐독을 삼켜서 자신의 몸속에 봉인했었다.

그것이 벌써 삼년전의 일이다.

재기발랄한 소년이었던 부운은 어느덧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독천존의 경고가 있어서 부운은 금릉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었다.

이에 무료함을 달랠 겸 색마살귀를 추적해왔다.

하지만 삼년여의 추적에도 별반 성과가 없었다. 그만큼 색마살귀의 행적은 신출귀몰했던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어린 여자들을 해쳐왔는지 모르지만 희생자가 더 늘기 전에 범인을 잡아야 한다.)

부운이 새삼 색마살귀에게 분노하고 있을 때였다.

부웅!

뭔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커다란 말벌 한 마리가 서북쪽으로부터 날아오고 있었다. 만독동천의 영물 말벌 대독금봉이다.

수고했다.”

부운은 손등이 하늘을 향하게 내밀었다.

부웅!

대독금봉은 부운이 내민 손등에 앉았다.

야행성이 아닌 너희를 밤에 일을 시켜서 미안하다만 알아낸 거라도 있는 것이냐?”

부운은 자기 손등에 앉은 말벌에게 물었다.

! !

그러자 대독금봉은 몇 번 날개 짓을 한 후 다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날아왔던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대독금봉이 뭔가를 발견했구나.)

휘익!

부운도 약사불탑의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라 대독금봉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지난 삼년 사이 부운의 내공은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덕분에 삼보면천을 쓸 경우 한 번에 십여장 이상을 날아갈 수 있다. 날아가다가 내공이 딸리면 하강해서 도움 밟기를 한 후 다시 십여장을 날아갈 수 있다.

 

삼년 전, 독천존은 온고당을 떠나면서 십여 마리의 대독금봉을 남기고 갔다. 그놈들로 하여금 분이를 지키게 하라면서....

독천존의 명령 때문인지 모르지만 대독금봉들은 분이를 주인처럼 따랐다.

분이뿐만 아니라 분이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마치 애완동물처럼 굴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분이와 분이 엄마도 곧 대독금봉을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나 문조 정도로 여기게 되었다.

대독금봉은 한방만 쏴도 황소를 즉사시킬 수 있는 무서운 독을 지녔다.

게다가 아주 영리해서 사람의 말까지 알아듣는다.

다만 대독금봉을 원하는 대로 부리려면 봉령소(蜂靈嘯)라는 휘파람을 불 줄 알아야 한다.

독천존은 부운에게 봉령소를 알려주고 떠났다. 분이가 깨어나면 가르쳐주라는 당부와 함께....

 

(독천존이 그렇게 신경을 쓰는 걸 보면 분이에게 만독동천과 관련된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하다.)

부운은 대독금봉을 따라 날아가며 새삼 분이의 신분에 의혹을 느꼈다.

손이 닿기만 해도 대상의 이력을 엿볼 수 있는 덕분에 부운은 분이의 출신내력을 엿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선술집을 하는 분이의 엄마는 생모가 아니었다.

분이에게는 부운으로서는 낯이 선 부모가 있었다.

다만 분이는 친 부모를 너무 어린 시절에 보았었다.

그 때문에 분이의 부모 이름은 물론이고 모습도 모호했다. 그저 분이의 생부가 생모보다 나이가 매우 많았다는 정도만 알 수 있었다.

(분이 엄마의 기억을 읽으면 분이의 신세 내력을 알 수 있겠지만....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니 해선 안된다.)

날아가며 부운은 쓴웃음을 지었다.

분이의 출신내력을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분이 엄마의 기억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남의 기억을 무단히 읽는 건 죄일 뿐 아니라 자칫 분이 엄마의 민망한 과거를 엿볼 수도 있다.

그래서 부운은 분이 엄마의 기억을 읽어볼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어머니나 외조부의 기억을 함부로 읽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고 알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부운은 분이의 신세내력에 대한 궁금증을 삭이며 대독금봉을 따라갔다.

 

***

 

금릉 서쪽을 흐르는 진회하 주변에는 유명한 환락가가 형성되어 있다.

십리 이상 이어진 기루와 술집들은 밤새 흥청거린다.

강물 위에도 화려하게 불을 밝힌 놀잇배, 화방(花房)들이 반딧불처럼 떠다니고 있다.

 

탐화루(探花樓)는 진화하의 기루들 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안에 꼽힌다.

크기도 하고 예쁜 기녀들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손님들의 취향이면 뭐든지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적절한 대가만 치룬다면 탐화루에서는 죄상에서 죄악시 되는 쾌락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탐화루의 가장 안쪽에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한 채 있다.

불이 켜진 건물 안쪽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간간이 터지는 웃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휘익!

담장을 뛰어넘어 그 건물 앞으로 뛰어내리는 자가 있었다.

한눈이 없는 음침한 인상의 중년사내인데 품에는 잠옷 차림의 소녀를 안고 있다.

애꾸사내가 안고 있는 소녀는 몸매는 가냘프지만 얼굴은 말 그대로 경국지색이라 할만 했다.

무언가에 취한 듯 소녀는 인사불성인 상태였다.

소당주(少堂主)! 속하 마삼(馬三)입니다.”

애꾸 사내는 건물로 다가가며 말했다.

후다닥!

건물 안에서 대화 소리가 뚝 끊기며 누군가 문간으로 달려오는 기척이 들렸다.

성공했나 마()향주?”

덜컹!

누군가 급히 문을 열며 밖을 내다보았다. 허여멀건 얼굴에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스무 살 가량의 청년이었다.

정말 손태부(孫太傅)의 딸년을 데려온 거냐?”

흥분해서 문 밖으로 나서는 청년 뒤쪽에서는 두 명의 청년이 술을 마시다가 돌아본다.

그자들의 차림새도 화려한데 한 명은 삐쩍 말랐고 다른 한 명은 좀 살이 쪘다.

흐흐흐 제가 누굽니까? 노린 건 무슨 짓을 해서든 손에 넣고 마는 것으로 악명 높은 외눈박이 올빼미(獨眼梟) 마삼 아닙니까?”

마삼이란 이름의 애꾸는 히죽거리며 청년에게 다가갔다.

손태부의 딸년을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모셔왔으니 소당주님께서 직접 확인해보시지요.”

마삼은 안고 있던 소녀를 소당주라는 청년에게 내밀었다.

손자경! 정말 손자경이로구나.”

소당주는 흥분해서 소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소녀는 바로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손부를 발칵 뒤집어놓은 태자태부 손충의 외돌딸 손자경이었다.

손태부의 딸년이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은 들었습니다만 직접 보니 명불허전이더군요.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예쁜 계집은 속하도 난생 처음입니다.”

손자경을 소당주란 자에게 보여주며 마삼은 입맛을 다셨다.

혹시 회가 동해서 나보다 먼저 침을 묻힌 건 아니겠지?”

소당주는 그런 마삼을 의심의 눈초리로 흘겨보았다.

속하가 어찌 감히 딴 마음을 품겠습니까? 금릉의 흑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첩혈당(喋血堂)의 소당주님께서 맛보실 귀한 계집인데...”

마삼은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침을 묻혔는지 안 묻혔는지는 벗겨보면 알겠지. 데리고 들어가서 침대에 뉘어라.”

소당주가 옆으로 물러서며 말했다.

...”

마삼은 굽신거리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마삼을 따라 들어간 소당주는 한차례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 문을 닫았다.

 

“...!”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는 한 쌍의 시선이 있었다.

근처의 건물 지붕 위에 한 여인이 서있었다. 날렵한 경장을 걸친 스무살 가량의 여인으로 양쪽 허리에 초승달처럼 휘어진 칼을 차고 있다.

여인의 얼굴은 박속같이 새하얗다.

반면 눈썹은 아주 짙고 검으며 입술은 피를 머금은 듯 붉다.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균형이 잘 맞아 절세미녀라는 말을 들을만한 미모다.

하지만 눈꼬리가 올라가있고 표정이 차가워서 쉽사리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을 지닌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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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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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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