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9. 12:54 와룡강의 작업실/대도전능(大盜全能)
[대도전능] 15화 짐독, 신이라도 죽일 수 있는...
15화
짐독(鴆毒), 신(神)이라도 죽일 수 있는...
붕! 붕!
말벌들의 날개 짓이 더 빨라졌다.
그 오싹한 소리만으로도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온유향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말벌들 때문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수많은 넝쿨들이 몸을 조이고 찔러대는 것만 같다.
독천존이 뿜어내는 끔찍한 살기와 위압감이다.
(부... 부운이를 찾아온 저 노인이 칠대고수 중 한명인 독천존 서래음...)
독천존의 존재감은 오래 전에 두려움이란 감정을 잃어버렸다 생각한 온유향조차 혼절 직전까지 몰아넣을 정도로 강렬했다.
“말해봐라!”
독천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상 하직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기회를 주겠다.”
“부탁드리겠소이다.”
천불투가 두 손을 바닥에 대며 고개를 조아렸다.
“부디 이 늙은이의 손자를 살려주시오 서노사!”
“손자를 살려 달라?”
독천존은 스산하게 웃었다.
“부탁하기 전에 용서부터 빌어야하는 것 아닌가?”
“물론 손자 놈의 무례에 대해서는 용서를 빌어야하겠지만...”
천불투는 조아렸던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서노사는 노부의 손자를 반드시 살려야만 할 것이오.”
“이거 참...”
독천존은 어이가 없었다.
“부탁을 넘어서 협박을 하는 것인가? 나 서래음에게?”
독천존의 새파란 눈에 번갯불이 치달렸다.
그 푸른 눈빛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온유향조차 몸서리를 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천불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서노사가 왜 노부의 손자를 살려야하는지는 직접 확인해보시오.”
천불투는 온유향이 막고 있는 방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체 무슨 굿판을 벌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만 노부의 물건에 손 댄 이상 용서받을 수 없...!”
천불투의 시선을 따라가던 독천존의 눈이 부릅떠졌다.
쿠오오!
침대에 누워있는 부운의 몸 위로 아지랑이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는데 그 형상이 영락없이 용이었다.
“구... 구룡짐독(九龍鴆毒)!”
독천존은 너무 놀라 숨이 콱 막힐 지경이 되었다.
“어떻게... 구룡짐독에 중독되고도 어떻게 살아있단 말인가?”
충격에 휩싸인 독천존은 뛰듯이 부운의 방으로 다가갔다.
“구룡짐독이라니... 노부의 손자가 중독된 게 전설 속의 짐독(鴆毒)이었소이까?”
천불투도 놀라 몸서리를 치며 일어났다.
상황을 알아차린 온유향이 지미고 있던 방문 앞에서 물러섰다.
“그렇다. 저 놈 몸속에 들어있는 것이 세상 모든 독들의 제왕 짐독이다.”
독천존은 납덩이처럼 굳어진 얼굴로 방에 들어갔다.
(짐독... 짐독이었구먼!)
천불투는 경악과 흥분에 휩싸인 채 부운의 방으로 다가갔다.
짐독은 전설 속의 독물 짐조(鴆鳥)의 독이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여궤지산(女几之山)에 사는 짐조는 수천년을 살면서 오직 독을 지닌 독물들만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짐조의 몸에는 천지간에서 가장 지독한 독기가 쌓이게 된다.
짐조의 피 한 방울로 만 명을 죽일 수 있으며 그놈이 날아간 아래쪽에서는 모든 생명이 말살된다고 한다.
피뿐 아니라 짐조의 깃털과 뼈와 살에 섞여있는 독 역시 고대로부터 가장 지독한 독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중독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르기에 짐조의 독은 독(毒)의 제왕(帝王), 또는 제왕(帝王)을 죽이는 독(毒)으로 불린다.
다만 짐조는 멸종되어 몇 백 년 내에는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한다.
“짐독을 술법으로 정제하여 영성(靈性)을 갖게 만든 것이 구룡짐독이다.”
독천존은 침대 옆에 서서 부운을 내려다보았다.
부운의 몸에서 일어나는 용을 닮은 기운들은 틀림없이 구룡짐독의 영기(靈氣)였다.
“일단 금천구룡로(禁天九龍爐)에서 풀려나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구룡짐독인 데...”
독천존의 시선이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탁자로 향했다.
탁자에는 살천독낭과 그것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빠짐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물건 들 중에는 뚜껑이 열린 향로도 놓여있는데 안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어떻게 구룡짐독이 몸 안에 들어갔는데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단 말인가?”
독천존은 당혹해하며 비어있는 향로를 집어들었다.
금은 세상 어떤 것에도 부식되지 않는다. 가공할 독성을 지닌 짐독도 금을 녹이지는 못한다.
금천구룡로라는 이름의 향로가 금으로 만들어진 이유다.
“그 향로가 오제(五帝) 중 만독조종께서 남기신 금천구룡로였구려.”
방문 밖에서 지켜보던 천불투가 말했다.
“금천구룡로가 만독조종님의 유물인 것도 알고... 확실히 노형(老兄)도 평범한 인생은 아니로군.”
천불투를 돌아보는 독천존의 눈에서 시퍼런 벼락이 흘러넘쳤다.
그 눈빛은 앞이 보이지 않는 온유향을 떨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천불투는 독천존의 눈빛을 대소롭지 않게 흘려보냈다.
“어느덧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나이외다. 오래 산 덕분에 들은 것이 좀 있을 뿐이지요.”
“겸손한 척 하긴... 만일 노부가 노형의 손주놈을 죽이려 했다면 사용할 독수까지 준비해뒀으면서...”
독천존은 스산하게 웃으며 천불투의 허리춤을 보았다.
뒷짐을 지고 있는 천불투의 손에는 오리알만한 검은 구슬 두 개가 쥐어져 있었다.
크기는 작아도 그 구슬들은 작은 동산을 어렵지 않게 날려버릴 수 있는 폭발력을 지녔다.
삼문육가 중 화기(火器)의 명가 벽력당(霹靂堂)에서 만들어진 화탄(火彈)들 중 가장 강력한 게 그것이다.
본래 독(毒)의 상극은 불(火)이다.
그래서 독천존은 불의 기운에 매우 예민하다.
온고당에 들어서는 순간 독천존은 강력한 화기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손자가 자라는 걸 보는 게 유일한 낙인데 무슨 짓인들 못하겠소이까?”
화탄을 숨기고 있는 걸 들켰음에도 천불투는 태연했다.
“어련하시겠나?”
독천존은 냉소하며 다시 향로를 보았다.
“어쨌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거푸 벌어졌군. 구룡짐독을 삼키고도 살아있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강력한 금제가 걸려있어서 사람 힘으로는 열 수 없는 금천구룡로가 열리기도 하고...”
금천구룡로라는 이름의 향로를 살펴보는 독천존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천불투가 물었다.
“금천구룡로는 어떻게 해야 열리게 되어 있었소이까?”
“두 가지 경우인데... 만독조종님께서 남기신 술법과 만독조종님의 핏줄만이 금천구룡로를 열 수 있네.”
독천존은 거리낌 없이 금천구룡로에 얽힌 비밀을 얘기해주었다.
“그중 술법을 아는 건 하늘 아래 노부뿐이니 제하고, 만독조종님의 핏줄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서 사라졌...!.”
천불투의 질문에 대답해주던 독천존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걸... 이걸 연 게 누구인가?”
독천존은 몸서리를 치며 급히 천불투를 돌아보았다. 금천구룡로가 열리는 두 번째 경우를 떠올린 것이다.
“그걸 연 아이는 서노사께서도 이미 만나셨소이다.”
천불투는 가게로 통하는 문을 고개 짓으로 가리켰다.
부서진 문 밖에는 분이가 기절한 채 누워있다.
“저... 저 계집! 저 계집은 누구인가?”
독천존은 흥분을 억누르려 애쓰며 분이를 살펴보았다.
“분이라고... 이 동네에서 선술집을 하는 전직 작부(酌婦)의 딸이외다.”
“허어! 작부의 딸이라고?”
천불투의 대답을 들은 독천존은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천한 작부의 딸년이 금천구룡로를 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천불투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독조종께서 세상에 남긴 후손들 중 한명의 피가 분이의 몸에 흐를 수도 있지 않겠소?”
“일리가 있군.”
독천존은 분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독조종의 혈통은 공식적으로는 단절된 상태였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후손이 남아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고 보니....)
독천존은 자신이 부리는 거대한 말벌, 대독금봉들이 분이를 공격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대독금봉은 만독조종이 특히 정성을 기울여 개량한 독물들이다.
덕분에 몸집이 커지고 독성이 강력해졌을 뿐 아니라 영성까지 지녀서 대대로 기억을 후손들에게 남기기도 한다.
그 대독금봉들이 분이를 쏘려다가 돌연 물러났었다.
(대독금봉들이 저 계집의 몸에서 만독조종님의 핏줄을 느낀 것일까?)
분이가 만족조종의 후손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독천존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독천존은 만독조종의 수제자였던 천독일품(千毒一品)이란 인물의 후손이다.
천독일품에 의해 세워진 만독동천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만독조종의 핏줄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송원(宋元), 원명(元明) 교체기의 대혼란 속에서 만독조종의 후손들은 차례로 절멸당하고 말았었다.
한데 만독조종의 핏줄일 가능성이 있는 계집아이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금천구룡로를 소매치기 당한 게 어쩐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닌 것 같구나.)
독천존은 오늘 일어난 소동이 운명의 안배인 것처럼 느껴졌다.
천불투가 독천존의 안색을 살피며 말했다.
“분이 말에 의하면 자기가 실수로 연 금천구룡로에서 튀어나온 검은 용들을 노부의 손자가 들여 마셨다고 하외다.”
“그게 정말 이해가 안된단 말이지. 노부라 해도 구룡짐독을 들이마시고는 목숨을 부지한다고 장담할 수가 없거늘...”
독천존은 흐릿한 용의 형상이 들고 나는 부운을 보며 당혹스러워했다.
천불투가 애써 긴장을 감추며 물었다.
“손주놈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가능성은 어떤 것이 있겠소이까?”
“구룡짐독이 그걸 마신 인간을 죽이지 않을 가능성이라...”
독천존은 금천구룡로에 새겨진 용의 향상들을 들여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만독조종께서 남기신 조룡여의대법(調龍如意大法)을 익혔다면 숨을 쉬듯이 구룡짐독을 자연스럽게 몸속에 가뒀다가 토해낼 수가 있긴 한데...”
조룡여의대법이란 글자를 풀면 용을 부려서 뜻대로 하는 큰 재주라는 뜻이 된다.
“서노사께서도 조룡여의대법을 알고 계시외까?”
이어진 천불투의 질문에 독천존은 코웃음을 쳤다.
“알고 있었다면 거야택(巨野澤)에 숨어서 세상의 주인인 척 하고 있는 어떤 늙은이도 이미 한줌의 독수가 되었겠지.”
거야택은 황하(黃河)와 회수(淮水) 사이의 광대한 습지다.
황하와 회수가 수시로 범람하는 탓에 거야택에는 공권력이 미치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거약택 일대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유사 이래 죄를 지은 무수한 죄인들이 공권력을 피해 거야택으로 숨어들었었다.
거야택을 근거지로 삼아 악명을 떨쳤던 도적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유방이 항우를 이기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운 팽월(彭越)과 송나라 시절 악명 높은 도적 송강(宋江)이 있다.
원말 명초의 작가 시내암(施耐庵)이 송강을 주인공으로 쓴 소설이 그 유명한 수호전(水滸傳)이다.
십오 년 전, 사자천존의 돌연한 은퇴로 무림의 패권을 차지한 천마련의 총단이 바로 그곳 거야택에 자리하고 있다.
거야택의 다른 이름이 양산박(梁山泊)이다.
천불투가 넌지시 물었다.
“구룡짐독을 부릴 수만 있다면 천마련의 련주 철면마존이라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으시다는 것인데...”
독천존은 금천구룡로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만독동천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만독조종님의 절기 중 절반 이상을 유실하고 말았네. 실전된 그 절기들 중에 조룡여의대법도 포함되어 있고... 그 때문에 노부도 구룡짐독을 보관하고는 있지만 사용할 엄두는 내지 못해왔지.”
“노부의 손자놈이 조룡여의대법을 익혔을 가능성은 전무하오만...”
“노부도 그게 이해가 안되는 중인데...”
독천존은 미간을 찡그리며 부운을 보았다.
“다른 가능성은 없소이까?”
“없네! 구룡짐독을 몸속에 가둘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조룡여의대법이야.”
“만일 노부의 손자가 구룡짐독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소이까?”
“세상에 종말이 오겠지. 구룡짐독은 불로 태울 수도 없고 땅에 묻거나 바다에 버려도 없어지지 않기 때문일세.”
독천존의 얼굴은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오직 만독조종님께서 말년에 창안하셨다고 알려진 극독성결심법(克毒聖潔心法)으로만 없앨 수 있으나 극독성결심법 역시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
“서노사께서는 어떻게든 노부의 손자를 살려야겠소이다. 그 아이의 몸이 금천구룡로 대신 구룡짐독을 가두고 있는 상태이니...”
“어쩔 수 없이 그래야겠군.”
독천존은 오른손을 웅크리며 부운의 가슴을 겨누었다.
쩡! 쩡!
원래 깡말랐던 독천존의 다섯 손가락이 강철처럼 변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와룡강의 작업실 > 대도전능(大盜全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도전능] 17화 납치당한 소녀 (0) | 2025.01.11 |
---|---|
[대도전능] 16화 그 와중에 흥정 (0) | 2025.01.10 |
[대도전능] 14화 찾아온 독의 제왕 (0) | 2025.01.08 |
[대도전능] 13화 아홉마리 용을 삼키다. (0) | 2025.01.07 |
[대도전능] 12화 풀려난 공포 (0) | 2025.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