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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장

 

           소년이여. 창평곡에 와서 검(劒)을 받으라!

 

 

"우리 이쪽 문도 열어 봐요"

강미루는 백남빈의 손을 잡고 가운데 석문으로 갔다.

그긍!

백남빈이 손으로 밀자 가운데 석문도 그 무게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게 열렸다.

석문 안쪽의 석실에는 석탁이 하나, 돌로 만든 침대가 하나가 놓여있다.

침실인 게 분명한 데 특이하게도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맨 우측의 석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데 그곳은 앞쪽의 두 곳과 달리 그냥 석실이 아니었다.

“어머!”

“억!”

석문을 열고 들어서던 강미루와 백남빈의 입에서 놀람과 탄성이 터져 나왔다.

놀란 것은 석문을 열자마자 한기(寒氣)가 확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성을 토한 석문 안쪽에 상상도 못하던 광경이 펼쳐져 있어서였다.

 

***

 

마지막 석문의 내부는 앞선 두 곳과 전혀 달랐다.

먼저 넓이가 달랐다.

석문 안쪽에는 석실 밖의 뜰 보다가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넓을 뿐 아니라 그 형태도 기이하기 이를 데 없다.

마지막 석문 내부는 천장이 아주 높은 천연의 지하광장이었는데 전체적인 형태는 타원형이다.

입구에서 열 걸음 쯤 가면 갑자기 길이 뚝 끊기면서 수직의 절벽이 나타난다.

높이가 오장 쯤 되는 그 절벽 아래쪽은 얼음같이 차가운 물이 고여 있는 연못이다.

백남빈과 강미루를 오싹하게 만든 한기는 그 차가운 연못물이 뿜어내는 것이었다.

직경이 삼십 장 쯤 되는 타원형의 연못 한 가운데에는 바위섬이 하나 솟아있다.

헌데 이 바위섬의 형태가 기묘했다.

위는 좁고 밑은 넓으면서 전체 형태는 둥근 원추(圓錐)형인 것이다.

마치 깔때기를 엎어 놓은 듯한 바위섬의 평평한 정상은 폭이 일장쯤이며 맨 아랫부분은 직경이 십여 장 쯤 되어 보인다.

원추형의 바위섬에는 정상에서 아래쪽으로 빙빙 돌아가는 나선형의 길이 나있다.

그 나선형 길 중간 중간에는 석감(石龕;불상등을 안치하기 위해 바위에 판 공간)이 설치되어 있으며 석감마다 좌화(座化)한 시신들이 한 구씩 앉아있는데 그 숫자가 모두 열셋이었다.

백남빈과 강미루는 그 기묘한 바위섬에 창평곡의 모든 비밀이 숨어 있음을 직감했다.

석문의 입구와 높이가 같은 바위섬의 정상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녹이 슬지 않는 쇠로 만들어진 다리는 폭이 좁아서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어떤 분들인지 건너가서 살펴봅시다.”

백남빈은 바위섬으로 건너가기 위해 다리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좁은 철제 다리 옆에 사람 키만한 비석이 하나 서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사자검처럼 짙은 녹색인 그 비석에는 아주 오래전에 새겨진 것으로 보이는 네 자의 글이 적혀있었다.

 

<獅子劒傳>

 

“사자검전(獅子劒傳)!”

녹색의 비석에 적힌 글을 확인한 강미루의 입에서 비명같은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왜 그러시오 미루?”

강미루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백남빈이 놀라며 돌아보았다.

“이런... 이런 바보같은... 아아! 난 정말 멍청한 계집이에요! 사자검을 보고도 사자검전을 떠올리지 못하다니...”

강미루는 흥분이 극에 달한 표정으로 자기 이마를 치며 자책했다.

백남빈은 영문을 몰랐지만 말없이 기다렸다. 강미루의 흥분이 갈아 앉아야만 자책하는 이유를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대비문(四大秘門)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요?”

강미루는 녹색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백남빈에게 물었다.

“네 개의 비밀스러운 문파라... 무림에 그런 문파들이 있었소?”

백남빈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양부 이탁의 영향으로 독서량이 남다른 백남빈이지만 사대비문이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이었다.

“불교로 비교하자면 구대문파처럼 세상에 잘 알려진 문파들은 현교(顯敎;교리가 드러난 종파)이고 사대비문은 밀교(密敎;교리가 감춰진 종파)라 할 수 있는데...”

구구절절 설명하려던 강미루는 방법을 바꿨다. 백남빈이 뜬 구름 잡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본 때문이다.

“마교(魔敎)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겠지요?”

“물론 알고 있소. 명교(明敎)라고도 불리었으며 명나라를 세운 홍무제 주원장이 한 때 몸을 담았다고 알려진 비밀결사 아니오?”

강미루의 물음에 대답을 하던 백남빈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혹시 마교도...”

“사대비문중 하나예요.”

강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 외에 삼성동(三聖洞), 북두무맥(北斗武脈), 그리고 사자검전이 사대비문이랍니다.”

쉽사리 흥분을 갈아 앉히지 못한 강미루는 녹색의 비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교-!

그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누구는 동진(東晋) 시대에 존재했던 비밀결사 백련사(白蓮社)가 마교의 뿌리라고 한다.

또 누구는 파사국(波斯國;페르시아)의 배화교(拜火敎)와 마니교(摩尼敎)가 중원에 전래되었다가 사교(邪敎)로 낙인찍혀 지하로 숨어들면서 마교가 되었다고도 한다.

분명한 것은 난세가 되면 마교가 백련교, 명교, 미륵교등의 이름으로 민초들 사이에 요원의 불길처럼 세력을 뻗힌다는 사실이다.

마교의 기본 교리가 명왕(明王)이 현세하여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 신앙과 맥이 닿아있기 때문이다.

역대 왕조는 자신들의 정권에 위협이 되는 마교를 탄압하기에 혈안이 되어 왔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홍무제 주원장의 권력 기반이 되어주었던 마교, 즉 명교를 철저하게 탄압했다.

그 결과 마교는 깊이 잠적하여 지금은 종적이 묘연해진 상태다.

 

삼성동-!

북송(北宋) 시절에 살았던 무공과 의술과 공장(工匠) 방면에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던 세 명의 기인이 세운 문파다.

십절무성(十絶武聖), 대라의성(大羅醫聖), 성수신장(聖手神匠)이 삼성(三聖)이다.

삼성은 각 방면에서 절세적인 경지에 이르렀지만 세상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고향이 같다는 인연으로 해서 의기투합하여 만든 문파가 삼성동이다.

 

북두무맥-!

천여 년 전의 인물이지만 여전히 고금제일인(古今第一人)으로 추앙받고 있는 북두무제(北斗武帝) 섭장홍(葉長紅)의 후예들이다.

북두무제 섭장홍은 스승도 없이 무공을 깨우쳤으며 이십오 세 이전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수들을 꺾은 것으로 신화가 된 인물이다.

고금제일인으로 불리는 만큼 북두무제의 무공은 박대정심(博大精深)하여 한 사람이 다 물려받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북두무제는 일곱 명의 기재를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심득을 나누어 가르쳤다.

북두무제의 일곱 제자들은 북두칠성을 관장하는 칠원성군(七元星君)으로 불렸다.

 

“사자검전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마교, 삼성동, 북두무맥보다도 없어요.”

강미루는 어느 정도 흥분이 갈아앉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무림 어딘가에 검을 쓰는 일인전승(一人傳承)의 문파가 있으며 사자검전이라 불리는 그들의 검술이 절세적이라고만 알려져 있을 뿐이랍니다.”

강미루는 백남빈이 허리에 차고 있는 기괴한 검, 사자검을 곁눈질로 보았다.

“사자검(獅子劒)을 전(傳)한다라... 문파 이름도 특이하군.”

백남빈도 새삼 자신의 사자검을 만져 보았다.

사자검을 휘두르면 검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고 몸속에서 통제하기 어려운 힘이 용솟음 쳤던 것이 모두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헌데 미루는 세상 사람들이 거의 모르는 사대비문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요?”

백남빈은 두 살이나 어린 강미루의 견문이 자신과 비교도 안되게 넓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 물었다.

“어렸을 때 형부가 옛날이야기 대신 해줘서 알고 있었어요.”

강미루의 대답을 들은 백남빈은 그녀의 형부인 광평객 신가람이란 인물에 대해 새삼 신비한 느낌을 받았다.

아직 마흔 살도 안되었다는 광평객 신가람은 어떻게 독안룡 이탁도 모르고 있는 것같은 강호의 깊은 비밀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축하드려요. 사자검을 얻으셨으니 공자님은 이제 사대비문중 사자검전의 전인(傳人)이세요.”

강미루가 두 손을 모은 채 진심어린 표정으로 축하했다.

“사자검은 우리 둘의 공동 소유요. 따라서 미루 역시 사자검전의 전인이니 축하드리겠소.”

백남빈은 강미루에게 포권을 하며 웃었다.

(나... 나도 사자검전의 제자라니...)

백남빈의 말이 진심임을 알기에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강미루였다.

 

***

 

백남빈이 앞장서고 강미루가 뒤 따르며 좁은 다리를 건넜다.

원추형의 바위섬 정상은 평평한 데 폭이 일장 남짓으로 제법 널찍하다.

경건한 자세로 그곳에 들어선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신선같은 풍모(風貌)를 지닌 노인이었다.

바위섬 정상의 평지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이 노인은 오래 전에 좌화한 시신이건만 얼굴이 불그스레하여 금방이라도 눈을 부릅뜰 것만 같다.

바위섬을 에워싼 차가운 연못물의 냉기가 시신의 원형을 보전해주기도 했지만 생시에 내공이 신화경에 이르렀었다는 반증이다.

풍채도 좋아서 보는 이를 절로 숙연하게 만드는 노인의 시신 주변 바닥에는 글이 가득 새겨져 있다. 어떤 명가(名家)의 글씨보다 수려한 필체의 글이었다.

 

<나 이백(李白)이 마침내 술을 깨고 보니 더 이상 세상에 아름다운 이가 보이지 않았다.

가인(佳人;양귀비)의 마음은 추악하고 제왕(帝王;당 현종)은 모든 것을 가졌으면서도 오히려 탐욕스러웠다.

인세의 드문 수재(秀才)인 친구(親舊;杜甫.)는 날마다 굶어서 볼 때마다 다른 사람이었다.

도적이 곳곳에 일어나도 혼미한 대부(大夫;벼슬아치)들은 자신의 곳간만 지킬 뿐이었다.

벗의 말마따나 대부들의 집에선 고기가 썩어 나가고 백성들의 집에서는 날마다 아사(餓死)한 시체가 썩어 나갔다.

나는 술 취한 사람이라 그렇다지만 나라는 어찌 하여 비틀거리며 기강을 잃었단 말인가?

황제도 의지할 바 못되고 지사(志士)도 믿을 바가 못 되도다.

평생의 뜻을 얻고자 천하를 주유했으나 성인(聖人:德이 많은 사람, 또는 孔子)은 보이지 않고 문왕(文王: 周의 문왕)도 만나지 못했도다.

세상의 친구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처량하게 되었으니 취한 유객(遊客)이 마침내 잔(盞)을 버리고 달 속에 들었도다.>

 

붓으로 직접 바위에 쓴 듯한 수려한 필체의 글은 이런 내용이었다.

백남빈은 읽기를 중단하고 노인의 시신에 대고 큰절을 했다.

"시선(詩仙)의 유해(遺骸)가 이곳에 계셨습니다. 후진이 일찍이 시선의 유협(遊俠)을 부러워하고 분방함을 존경하여 마지않았는데 유해나마 직접 뵙게 되었으니 어찌 큰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신선의 풍모를 지닌 노인은 바로 시선으로 불리던 이백, 이태백이었다.

놀랍게도 사대비문중 사자검전의 시조는 다름 아닌 이백이었던 것이다.

이백이 천의무봉(天衣無縫)한 대시인일 뿐 아니라 협객으로도 이름을 청사(靑史)에 남겼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이백이 사대비문 중 사자검전의 시조였을 줄을 백남빈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었다.

강미루도 덩달아 이백의 시신에 절을 올리고 이백의 유지(遺旨)를 함께 읽어 내려갔다.

 

<짧은 깨달음에 의지하여 잔을 들듯 검을 들기를 육십여 년, 잔은 전하여지지 않아도 나의 기호(嗜好)이니 무방하나 검은 옛사람으로부터 전해진 것이기에 묻을 수가 없다.

마침내 동정호에서 어부 소년을 만나 그에게 전하기로 하였다.

유객이 말하기를

"그대 창평곡에 와서 검(劒)을 받으라."

하였더니

소년 어부가 답하여 가로되

"검으로는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하였다.

선기(禪氣)를 지녔으니 가히 옛사람의 법을 전할 만하지 않겠는가?

세세히 그림을 그려 이곳을 일러주고 찾아오기를 거듭 당부하였다.

백(;李白)은 여기서 죽는다마는 검은 마침내 전해지리라.

소년, 그대 지금 나를 보거든 구배(九拜)하기를 주저치 말라.

오늘 여기에 옛사람의 검을 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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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룡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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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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