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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장

 

           신비한 동굴

 

 

-대과벽(大戈壁)!

 

갑자기 이검한 앞에 나타난 장대한 단층지대는 서역 제일의 절경이라는 대과벽이었다.

무려 삼천여 리에 걸쳐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절벽인 대과벽은 마치 거대한 용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꿈틀거리며 기어가는 듯하다.

그 거대한 대과벽이 지금은 저녁노을에 물들어 피를 칠한 듯 시뻘겋게 보였다.

“책에서 읽었던 대과벽을 실제로 보게 되다니...!”

대과벽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이검한의 가슴은 흥분으로 두근거렸다.

쏴아아아!

그 사이에 이검한을 태운 철익신응은 대과벽을 향해 비스듬히 날아 내려갔다.

이검한은 고개를 빼든 채 철익신응이 날아내려가는 아래 쪽을 살펴보았다.

그런 그의 시야로 대과벽 중간쯤에 쩍 갈라진 틈바구니가 보였다.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삼각형 형태의 틈바구니다.

(신응이 나를 데려온 목적지가 저기인 모양이다.)

쏴아아아!

이검한이 생각하는 사이에 철익신응은 대과벽 중간쯤에 나있는 삼각형의 틈바구니를 향해 빠르게 접근해갔다.

삼각형의 틈바구니는 어떤 동굴의 입구였는데 그 절묘한 위치 때문에 허공에서 보지 않으면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다.

즉, 새를 타고 살펴보기 전에는 그 동굴의 존재를 결코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콰아아아! 화악!

이검한을 태운 철익신응이 동굴 안쪽으로 날아 내렸다.

철익신응이 내려선 동굴 입구는 상당히 넓었다. 천장까지의 높이는 십여 장이나 되고 아래쪽의 폭은 그 이상이다.

“이곳에 내게 보여주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라도 하다는 거냐?”

휘릭!

이검한은 철익신응에게 물으며 그놈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구우우!

철익신응은 나직하게 울며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놈의 눈가로 물기가 번지는 것이 이검한의 눈에 들어왔다.

(저 안쪽에 철익신응과 관련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건가?)

눈시울을 붉히는 철익신응의 모습을 본 이검한은 흠칫했다.

그리고는 검미를 모으며 동굴 안쪽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동굴은 아주 깊고 어둑해서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구우우!

철익신응이 낮게 울며 부리로 이검한의 등을 밀었다.

“알았어. 들어가 볼께!”

이검한은 철익신응의 뜻을 알고 동굴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구우우우!

철익신응은 동굴 안쪽으로 사라져가는 이검한의 뒷모습을 보며 만감이 서린 울음소리를 토해내었다.

 

***

 

얼마나 걸어들어 갔을까?

“이런 곳에 사람이 만든 석문(石門)이 있다니...!”

이검한은 흠칫하며 멈춰 섰다.

동굴 입구로부터 백여 장 정도 들어온 이검한의 앞을 육중한 석문이 가로막아 섰다.

강철 못지않게 단단하다는 청강석(靑剛石)을 깎아 만든 그 석문 위에는 난해한 문양(紋樣)이 사람 머리통 정도의 크기로 새겨져 있다. 마치 올챙이들이 이리저리 꼬물거리는 듯이 보이는 복잡한 문양이었다.

(과두문(蝌蚪文)이다!)

그 기괴한 문양을 살펴본 이검한은 두 눈을 반짝 빛냈다. 석문 위에 적혀있는 사람 머리 크기만한 문양은 한자(漢字) 이전 시대에 쓰였던 상형문자인 과두문이었다.

전모 냉약빙은 엄청난 거구 때문에 미련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박학다식했다. 총명한데다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지닌 것이다.

그런 냉약빙에게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이검한은 한자뿐만이 아니라 서역과 천축의 문자도 대충 읽을 수가 있었다.

물론 냉약빙이 가르쳐준 다양한 문자들 중에는 한자의 원형인 전자(篆字)뿐 아니라 과두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음동천(玄陰洞天)>

 

이검한이 기억을 더듬어 해독한 과두문은 그런 뜻이었다.

그리고 현음동천이라는 글자들 아래로는 전자체의 글들이 몇 자 더 적혀 있었다. 크기가 주먹만한 그 글들은 현음동천이란 뜻의 과두문이 새겨진 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추가된 듯했다.

 

<이곳은 사천왕(四天王)의 영지다. 난입(亂入)하는 자에게는 구족지멸(九族之滅)의 신벌(神罰)이 있으리라!>

 

전자체로 새겨진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사천왕? 무림에서 그런 이름으로 불린 인물들은 없었던 것같은데...”

글을 읽은 이검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검한이 아는 한 무림의 역사를 통해 사천왕이라는 존재는 없었다.

“사천왕이라는 게 혹시 수미산의 사방에서 불법을 수호한다는 사대천왕(四大天王)을 가리키는 것일까? 여기는 무림과는 상관이 없는 불가(佛家)의 유적이고?”

이검한은 석문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누군가 험한 표현을 써가며 경고를 해놓은 걸 보면 들어가면 안되는 곳 같은데...)

허락 없이 석문 안으로 들어가면 구족이 멸해지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글귀가 마음에 걸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소년다운 호기심이 꺼림칙함을 눌러 버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나갈 수는 없지.)

이검한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석문을 밀어보았다.

그그긍!

육중해 보이는 것과 달리 석문은 의외로 쉽게 열렸다.

“시, 시체!”

헌데 석문을 밀어 젖히며 안쪽으로 들어서던 이검한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주춤 물러섰다. 이검한이 열고 들어간 석문 앞에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석문 안쪽은 일정한 간격으로 야명주가 박혀 있어 그리 어둡지 않은 복도였다.

그 복도에 석문을 향해 기어오는 듯한 자세로 죽어 있는 시체가 한구 있다.

깡마른 몸에 검은 색의 옷을 걸친 그 시체의 왼손에는 칼날의 폭이 좁은 장도(長刀)가 한 자루 쥐어져 있다.

길이가 네 자 정도인 그 칼은 만들어진 후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섬뜩한 빛을 흘리고 있다. 아마도 금석(金石)을 흙 베듯 하는 신병이기일 것이다.

“이... 이 사람은 누군데 이런 곳에 죽어 있는 걸까?”

이검한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조심스럽게 시체로 다가갔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의 시체는 아직 어린 소년인 이검한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시체는 목내이(木乃伊;미이라)처럼 바짝 말라있다.

비록 목내이가 되긴 했어도 시체의 얼굴은 살아있었을 때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냉혹하고 성말라 보이는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반백이다. 시체의 주인은 죽을 당시에 이미 노년이었을 것이다.

(혹시 이 사람이 석문에 쓰여 있던 사천왕중 한 명이 아닐까?)

평범해 보이지 않는 시체의 얼굴을 살펴본 이검한은 몸을 숙였다. 시체의 왼손이 쥐고 있는 칼을 빼내 살펴보려고 한 것이다.

우두둑! 퍼석!

헌데 이검한이 칼을 빼내려고 손을 대는 순간 시체는 바싹 마른 흙덩이처럼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헉!”

깜짝 놀란 이검한이 급히 허리를 펴면서 물러났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퍼억! 푸스스!

방금 전까지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시체는 고운 모래처럼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게 되었다.

시체의 주인은 아주 오래 전에 죽었으며 서역의 건조한 기후는 시체를 완전하게 건조시켜버렸었다.

그러다가 이검한의 손이 닿자 그대로 무너져 버린 것이다.

“고인의 유해를 훼손하다니...!”

이검한은 깊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시체 주인의 명복을 빌어준 이검한은 자신의 손에 들려진 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마도(魔刀) 파천(破天)

 

설화석고(雪花石膏)로 장식된 희고 매끄러운 칼의 손잡이에는 그같은 글이 음각(陰刻) 되어있다.

“하늘을 깨트리는 마귀의 칼? 섬뜩한 이름을 지닌 놈이다.”

손잡이에 새겨진 칼의 이름을 확인한 이검한은 침을 꼴깍 삼켰다.

마도 파천이라는 이 칼은 이름만 섬뜩한 것이 아니었다.

칼을 쥐고 있자니 절로 불끈불끈 살기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당장 무엇이든 베어보고 싶은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살기를 부추기다니... 마물(魔物)이다!)

이검한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면서도 마도 파천을 버리진 못했다. 무언가 인연같은 것이 그 칼에서 느껴진 때문이다.

이검한은 무너져 내린 시체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집을 끌러내어 마도 파천을 집어넣었다. 시퍼런 한기를 뿜어내던 칼날이 칼집 안으로 사라지자 비로소 들끓던 살기가 갈아 앉는다.

이검한은 칼집에 넣은 마도 파천을 허리에 찼다.

이어 그놈의 주인의 신원을 밝힐만한 단서가 없을까 해서 무너져 내린 시체 무더기를 조심스럽게 뒤져보았다. 그리고 곧 두 가지를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검한이 먼저 찾아낸 것은 얇은 책자 한 권이었다.

 

<파천도보(破天刀譜)>

 

비단을 엮어 만든 책의 표지에는 그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책의 표지 안쪽에는 내공심법 한 가지와 삼초로 이루어진 도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폭혼낙백심결(爆魂落魄心訣)!

-파천삼식(破天三式)!

 

폭혼낙백심결-!

일신의 내공을 응축시켰다가 한순간에 토해내는 파격적인 내공심법이다. 폭혼과 낙백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일거에 폭발시켜 상대방의 혼백을 끊어버리는 위력을 지닌 것이다.

편협하고도 신랄한 이 폭혼낙백심결을 운용하면 자기보다 몇 배 더 심후한 내공을 지닌 고수와도 맞서 싸울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내공을 일거에 토해내는 탓에 그 뒤에는 완전히 탈진해버려 운신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이 단점이다. 폭혼낙백심결을 써서 적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그 자신이 적의 손에 죽게 되는 것이다.

 

파천삼식-!

단 삼초로 이루어진 이 도법에는 수비란 개념이 아예 없다. 오로지 적을 베어버리기 위한 공격적인 초식만으로 이루어진 도법이 파천삼심이었다.

 

“대... 대단하다! 폭혼낙백심결과 파천삼식이 실제로 구사된 무공이라면 이 시체의 주인은 고금을 통틀어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고수일 것이다!”

파천도보를 한차례 읽어본 이검한은 절로 혀를 내둘렀다.

이검한은 냉약빙으로부터 전궁만리비의 경신술 외에도 여러 가지 무공을 전수받았다.

하지만 냉약빙이 가르쳐준 무공들 중 폭혼낙백심결이나 파천삼식만큼 신랄하고 패도적인 것은 없었다.

(폭혼낙백심결은 몰라도 파천삼식은 익혀볼 가치가 있다.)

파천도보를 품속에 넣은 이검한은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파천도보에 이어 이검한이 발견한 두 번째 단서는 바닥에 새겨진 수십 자의 글이었다. 모래처럼 곱게 부서진 시체의 잔해 아래쪽에 판독하기 어려운 난잡한 글들이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마도 파천의 주인이 죽어가며 남긴 유언인 듯했다.

 

<마... 마녀(魔女)! 모든 것이 그 계집... 누란(樓蘭)...의 짓... 어리석게도 우리 사천왕은 그 계집에게 모든 양정(陽精)을 갈취당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 머지 않아 천년공력(千年功力)을 지닌 마녀가... 세상의 종말이...!>

 

이검한이 어렵게 판독한 글의 내용은 이러했다.

(양정을 갈취 당하다니... 무슨 뜻일까? 또 어떻게 인간이 천년 수위의 내공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이검한은 앞뒤의 연결이 불분명한 바닥의 글을 읽으며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아직 남녀 관계를 알지 못하는 순진한 소년인 이검한으로서는 여자가 남자의 양정을 갈취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리 없었다.

(이 동굴 안쪽에서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하다.)

바닥에 새겨진 글까지 읽어본 이검한은 동굴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지 마라! 천년마녀(千年魔女)가 깨어난다!>

 

마도 파천 주인의 혼령이 이검한의 발길을 저지하기 위해 울부짖는 듯했다.

하지만 이검한의 왕성한 호기심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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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부터 무협소설을 써온 와룡강입니다. 다음 카페(http://cafe.daum.net/waryonggang)에 홈페이지 겸 팬 카페가 있습니다. 와룡강의 집필 내역을 더 알기 원하시면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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